2015.12.09 01:13
영감론
본문 : 디모데후서 3장 15절∼17절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새벽에, 모두 각처에 있다가 집합된 것을 볼 때에 집회할 수 있는 그 통로를 아주 잘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나님이 그 지혜를 주어서 잘하게 하셨습니다. 또 그러고, 우리가 이렇게 한 자리에 모여서 예배드릴 수 있도록 온갖 은혜를 베풀어주신 주님 앞에 우리가 감사합니다. 또 우리들이 이 집회에 참석할 수 있는 자유와 능력을 주신 데 대해서도 감사합니다.
첫 시간부터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하나님같이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한 자를 만드시기 위함이라는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그 말씀은 어디다 근거하고 말씀하는 것인고 하니, 성경 디모데후서 3장 17절에 "이는" 하는 말은 하나님께서 문서 계시인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하는 말입니다. "이는" 성경을 주신 것은, "이는" 우리에게 나타나신 성경 역사는 하는 말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이 스스로 혼자 계셨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영감 역사가 있었으니 곧 하나님의 뜻이 나타났으니 그 뜻이 곧 하나님의 목적이십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나타났으니 그 목적이 어떤 목적인가 하는 것을 우리가 몰랐으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모든 것을 예정하셨습니다. 그 예정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우리는 모르겠으나 그 후에 모든 것이 창조될 때에 '아, 이렇게 예정되어 이렇게 창조됐구나.' 하는 것을 후에 알게 되고, 또 하나님의 보존이나 섭리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우리는 몰랐으나 그 후에 창조 된 것들이 창조함을 받은 것들이 이렇게 저렇게 움직여서 나뉘었다가 떨어졌다가 합했다가 갈렸다가 이렇게 하는 이 모든 것을 보아 '아 하나님이 이렇게 섭리하시는구나.' 하는 것을 하나님의 섭리를 우리가 알게 됐습니다.
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그 독생자 그리스도 예수가 우리에게 나타나신 것을 보아 그리스도 예수가 나타나신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고 하니 하나님의 섭리가 들어 있고, 하나님의 섭리 안에 하나님의 창조의 것들이 들어 있고, 하나님의 창조 안에 하나님의 예정이 들어 있고, 하나님의 예정 안에 하나님의 목적이 들어 있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이래서, 신인양성일위로 도성인신 하신 주님이 나타나셔서 십자가의 대속을 이루시고 그 대속을 이루심을 인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이라 하는 것을 좀 더 똑똑히 정확히 알게 되고. 도성 인신의 대속으로 더우기 알게되고.
대속하시고 난 다음에 다시 신인양성일위로 부활하셔 가지고 부활로 인해서 우리에게 보혜사 영감을 보내서 영감이 우리에게 오셨고, 또 영감이 진리로 더불어 함께 하고. 또 영감과 진리가 주님의 대속으로 더불어 함께 해서 하나가 되어 역사하여 우리가 알기 시작한 것은 우리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난 데에서 알게 되었고, 과거에는 우리가 영이 뭐인지 있는지 없는지 몰랐으나 영이 중생 후에 우리의 심신을 움직이고 다스리는 것을 보아서 영이 살아남을 알았고, 또 중생되지 아니한 사람과 중생한 사람의 그 모든 생활을 통하여 영감과 진리와 피로 그 죽은 영이 살아난 사람도 있고 살아나지 못한 사람도 있다는 것을 우리가 짐작을 하게 됐습니다.
그라고 나서 피로 인하여 영감과 진리가 우리에게 나타나서 그 진리가 또 말씀으로 나타나셨고 말씀이 곧 성경으로 나타나셔서 성경을 볼 때에 우리가 하나님의 목적 안에 지음을 받았다, 하나님 목적 정하실 때 우리가 있는 것은 아니나 목적이 예정이 되었고 예정이 창조가 되었고, 창조가 우리가 되었는데 그 나타난 결과인 열매를 보아서 알 수 없는 그 근원을 미루어서 알게 됐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거기에서 하나님의 목적인 우리의 곧 구원인데 구원이 어떤 구원인가? 그 구원이 곧 여기 오늘 아침에 봉독한 말씀과 같이 그 구원이 어떤 구원인가?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목적이요 곧 구원 입은 자들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사람들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라는 말은 어떤 말인고 하니 하나님 혼자 자존하셨고, 자존하신 다음에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셨고, 목적을 정하신 후에 예정하시고, 창조하시고, 보존하시고, 섭리하시고 또 예수님의 대속을 이루시고 부활하시고 또 피와 성령과 진리로 우리를 중생시켜, 중생시킬 때까지도 우리는 몰랐습니다.
중생시킬 때까지도 모르나 중생시켜 비로소 우리가 믿는 행위를 하기 시작할 때부터 우리의 심신은 알게 됐고, 심신이 알고 난 뒤에 미루어 보니 내 속에 과거에 없던 생명 역사, 과거에 없던 곧 진리 역사, 영감 역사가 우리 안에 역사하고 계시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고 하니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주님의 그 목적 곧 선택, 예정, 창조, 보존, 섭리, 중생, 또 신앙생활을 시작 거기에서부터 우리는 비로소 알았는데 이것을 가리켜서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교회라고도 하고, 또 하나님의 나라라고도 하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도 하고, 하나님의 자녀라고 합니다. 그것은 다 그렇게 여러 가지로 발표를 하신 것은 이 각도 저 각도 각도가 다르기 때문에 이 각도로 말씀을 하셨고 저 각도로 말씀을 하셨으나 그 어느 각도든지 그 각도를 파고 들어가면 곧 그 안에는 하나입니다. 그러기에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
자, 처음에 그라면 뭐 시발이 어뎁니까?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의 목적이 곧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하나님의 목적 안에 우리가 든 그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선택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이 선택은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렇게 택하셨다 말씀하시고 또 우리를 예정했다 이렇게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하나님의 아들의 존재의 시발은 언젠고 하니 하나님의 목적 정하시는 그때부터 시발 됐는데 그때는 우리가 존재해서 시발이 된 것이 아니고 목적이 계셨고 목적 안에서 우리가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우리에게는 선택이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구원의 시발은 목적 곧 선택이 그것이 우리의 구원의 시발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 선택이라는 것이 우리가 존재하고 난 다음에 선택을 하셨느냐? 우리가 존재하기 전에 선택으로 우리가 존재하게 되었느냐 하는 것을 그것을 가지고 사람들은, 신학자들은 많이 논단을 하고 있습니다. 없는 걸 어떻게 선택하느냐 하는 논리를 가지고 있고, 어떤 사람은 선택해서 비로소 존재하게 됐다 그렇게 또 논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래서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그 모든 예정 창조, 예정이 있었고, 창조가 있었고 창조 후에 타락이 있었고, 타락 후에 이제 선택이 있었다 그렇게 선택을 타락 후에다가 붙이는 선택도 있고, 우리는 그렇게 믿지를 않습니다. 우리의 선택은 창조 전에 있었고, 창조 전에 있었는데 에베소 1장 3절 이하에 창세 전이라고 이라는 그 창조 전이라는 그 말을 가리켜서 '창조 전이라고 하지 안했느냐?' 이랄 때에 후택설을 말하는 사람들은 '그 창조는 곧 뭐이냐 하면 이 시공 창조다. 이 시공 창조기 때문에 시공 창조 후니까 하나님의 의지 예정으로 말하면 이 창조는 그 후에 된 것이다.' 이래서 창조는 시공 창조로 그렇게 해석을 하고, 그라기 때문에 택함은 하나님의 창조 후에 택했다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창조 후에 택했으면 그러면 그 사람이 모두 이 시공 세계가 창조되고 난 다음에 그렇게 모든 선택이 되었고 또 예정이 되었느냐 할 때에 그것은 이 창세 후에 된 것이 아니고 그것은 하나님의 의지 세계에서 우리의 구원이 다 예정되었다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주권 의지 안에서 모든 것이 예정되어서 그 예정을 말할 때에는 하나님의 의지 안에서 하나님 홀로 계실 때에 하신 것을 말을 하고 선택이란 선택할 때에 창조라 하는 것은 그것은 시공 창조를 가리켜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사람들이 인간의 생각을 가지고 그 인간의 생각에다가 하나님의 성경 말씀을 그렇게 끼어 맞춰서 하는 수도 있고, 인간 생각에 하나님의 말씀을 끼어 맞출 수도 있고, 하나님의 그 뜻에 인간 생각을 끼어 맞출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이 선포해 놓으신 성경 말씀에 인간을 거기에 의속시켜서 거기에 따라서 인간들의 생각이나 무엇이나 거기에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이 근본이시요, 사람들은 거기에 소속한 것으로서 거기에 피동으로써 이렇게 되어지는 그런 성경 해석 방편이 있고 또 사람의 그 의사 사람의 의사를 사람의 깨달음을 하나 주장해 놓고 그 깨달음에다가 하나님의 성경 말씀을 이렇게 끼어 맞춰서 이렇게 일치시키는 그런 역사도 있습니다. 그래서 죽고 사는 것이 거기에서부터 이제 분기가 됩니다. 마치 수도물을 이래 갈래길로 분기해 내는 것 같이 거기에서부터 분기가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그 말씀이 근거되는 그 성경 해석과 신앙 사상들을 가리켜서 신본주의라 그렇게 말을 하고, 또 인간의 그 모든 의사나 사상의 그것을 근본으로 해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기에 맞도록 이렇게 연구하고 발표하고 하는 것을 가리켜서 인본이라 그렇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과거에 해방 직후와 지금과 다른 것이 해방 직후에는 그때에 모든 사람들이 타락을 해 가지고 어두워져 가지고 있을 때에 어두움에서 빛을 사모하고 그 어두움에 대해서 권태를 느끼고, 어두움을 벗어나고 빛을 찾으려고 애를 썼었습니다. 이러니까 그때는 사람들의 심령들이 타락해 가지고 있었고 참 해가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입니다. 해가 기울고, 아가서에 해가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라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의 영감이 없고 보니까, 그림자가 간다 말은 음지 양지가 없으니까 전부가 다 새카매진다는 말입니다.
해가 없으면 뭐 무엇이 어둡다 밝다, 또 검다 뭐 희다 하는 그런 것이 없어지니 전부가 다 새카매져 버리고 맙니다. 그때는 전체가 새카매져서 아주 까맣게 새카매졌었는데 새카매진 그 어두운 가운데 있으니까 사람들은 빛을 찾고 원했습니다. 이래서 왜정 말년에는 다 어두워졌고 어두워졌고 빛이 일반적으로 없었습니다. 또 그 빛의 종자는 있어서 빛을 받은 사람들은 있었지만 빛을 받은 사람들은 있었지만 그 사람들은 아주 희귀했고 드물었고, 또 그 빛을 발하지 못하도록 강압 해 가지고 그 빛이 널리 퍼지지를 못했기 때문에 모든 중생된 기독자들은 그 갈망이 어디 있느냐 하면 빛에 갈망이 있었습니다. 진리에 갈망이 있었습니다. 진리에 갈망이 있어서 그때는 사람들이 다 진리에 갈망이 있도록 하나님이 섭리하셔 가지고 막 진리에 갈망하는 사람들만 몰리도록 이렇게 집중 역사를 하셨고, 또 그때는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신앙을 억압함으로 모든 사람들이 굶어도 신앙의 자유 얻었으면 좋겠다, 또 못 먹고 못 입어도 신앙의 자유를 얻었으면 좋겠다, 그때에 하나님이 마구 몰아 쳐 줘 가지고 이렇게 만들기를 진리를 갈망하고 자유를 갈망하는 이 사람들로 아주 이렇게 몰아쳐 가지고 그런 사람들이 됐었습니다.
그라다가 하나님께서 그 후에 이제 환경을 변동을 시켜 가지고, 환경을 변동시켜서 이제는 갈급하던 신앙 자유를 가지게 됐고, 갈급하던 진리를 사람들이 접하게 됐습니다. 진리와 자유를 접하게 됐습니다. 이러니까 이 사람이 배가 되게 고프다가 음식을 닥치면 뭐 모든 거 다 맛있고 그만 꿀떡꿀떡 넘어가는 것처럼 이렇게 진리와 자유의 갈급을 가지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다가 이제 진리와 자유를 주니까 사람들은 뭐 따지지 안하고 마구 먹어 삼키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그때에 모든 사람들은 진리를 잘 받았고 자유를 그때에 말할 때는 가치 있게 여겨서 자유를 할라고 애를 썼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럴 때는 인본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는 인본이라는 말이 있었어.
그럴 때는 인본이라는 말이 있고, 그럴 때는 신본이라는 말이 있었어.
이랬는데 그때는 인본이니 신본이니 말하면 사람들이 눈이 버쩍버쩍 뜨여서 시청을 하고 귀하게 들었지만 오늘에는 이제 배가 불러서, 자유의 배가 불러 가지고 배가 터지고 지금 배가 갈라져 가지고 있고, 진리의 배가 불러서 배가 터져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진리를 게우는 때요 또 자유를 토하여 내트리는 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해방 직후에는 인본 신본 뭐 이런 말이 있지만 지금은 인본 신본이라는 말이 강단에서는 없어지게 됐습니다. 거의 없어졌습니다. 아마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왜?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다 권태를 내기를 신앙의 자유의 권태를 내고, 신앙의 자유는 권태를 내고 이 옛사람의 자유를 원하고 있습니다. 옛사람의 자유.
그때 해방전 어두울 때에는 자유를 원했는데, 그때 자유 원한 자유는 지금 자유와 다른 자유입니다. 그때 원한 자유는 어떤 자유를 원했는고 하니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우리이기 때문에 하나님으로 자유하는 것을 원했습니다.
하나님으로 자유하는 것을 원했습니다. 진리가 내게 자유하기를 원했고, 영감이 자유하기를 원했고, 주님의 대속의 피가 자유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때는 하나님의 자유를 원했지만 이제, 하나님의 자유를 먹지 못하니까 원해서 이제 아주 시골에 파전을 파도 신앙의 자유 있었으면 좋겠다 양심의 자유했으면 좋겠다. 생활 자유 했으면 좋겠다. 다시 말하면 영감대로 살고 진리대로 살고 주님의 대속의 공로대로 맘껏 사죄 입고 그 칭의 입고 하나님과 화친한 생활로 살았으면 좋겠다고 그 자유를 원했지만 그러니까 그 자유가 처음에 해방 직후에 오니까 막 사람들이 벌컥 달려들어 가지고 마구 먹어 재꼈습니다. 그때는 모두 다 사람들이 진리를 말하면 진리를 잘 듣고 그거 듣고 마구 변종이 되고 변화가 됐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해방 직후에야 얼마나 은혜가 있었느냐? 해방 직후에야 은혜가 있었지만 지금은 은혜가 없다.' 그렇게들 말하는 사람들 있습니다. 그 사람이 계산의 착오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계산을 바로 하지 못해서 겉어머리만 보고 말하는 것이지 알맹이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 사람이 착각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해방 직후에 나타난 그 진리는 그때에 진리들이 모든 사람들이 다 가지고 있던 것 아니고 그때에 진리를 가진 사람들이 많지를 못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유명한 목사들 모두 총회장 노회장 서로 할라고 이렇게 운동할 그때에 총회장, 노회장 된 그런 사람들에게 빛이 있지를 안했고, 저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빛이 있었고, 또 그보다 더 약한 빛은 저 망명 해 가지고, 마귀에게 끌려가지 안기 위해서 도망을 해서 피해서 망명한 사람들에게 빛이 있었고, 저 ○○교회 무슨 조사님이고 ○조사님이가? 못 듣는데. 이걸 못 들으면 지난 밤에 눈 뜨지 못한 사람 오늘 아침에라도 눈을 떠야 되지 오늘 아침에도 눈뜨지 못하면 무슨 설교인지 모른다 말이오. 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가? 무슨 소리하는가 모릅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에 송도 가 가지고 ○○○목사님이 시무하는 교회에 와서 사경회를 해 달라 해서 거기에 가 가지고 그 몇 시간을, 신학교 다니면서 금요일날 밤부터 토요일, 주일, 월요일 아침까지 거기에서 설교를 했는데 그분들이 그 뒤에 간증을 하기를, 그 후에 서울 환도해서 서울 올라가 가지고 ○○○목사님에게 한 삼 년 배운 후에 그들이 말하기를 '아. 그때 송도에 가 가지고 백조사님이 와서 사경회할 때에 가르쳤는데 그때는 한 마디도 알아듣지를 못했는데 지금 생각하니까 그때 가르치던 것과 지금 가르치는 거와 같은 거 같다. 그분을 한번 청해 가지고 어떤고 한번 들어 보자 그 해서 저를 청해서 ○○○교회 가 가지고 집회를 했었습니다.
했는데, 그때에 ○○○목사님에게 한 삼사 년 다니면서 은혜 받은 사람들은, 목사들은 다 거기에 전부이 다 모였읍디다. 다 모여 가지고서 -내가 하는 말 그들이 하는 말입니다.-그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목사님에게 배웠는데 ○목사님이 가르치는 것과 백 조사님이 가르치는 것이 꼭 같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한국에 있는 두 진리를 잡았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제 이 진리를 가지고 한국 교회를 새롭게 해야 되고 개혁을 해야 된다.' 하는 그런 말을 그들이 모여 가지고 말을 하면서 나한테 여러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나는 ○○○목사님 만나 보지 못했으니까 그분의 가르치는 것과 저 가르치는 것을 대조해 볼라고 내가 그때에 가르치지 안하고 가르친 게 나타나지 안한 것은 꿰뚫어 가지고 '요런 것은, 이 성구는 어떻게 해석합니까?' 그 성구를 해석을 할 때에 또 내가 해석하니까 '아, 이것도 ○○○목사님과 해석이 같다. 같다.' 이래 가지고 그들은 그때 전적 저를 지지하고, 그렇게 '이제 다른 데는 모르지만 한국에서는 제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이 진리의 인도자들을 우리가 붙들었다.
찾았다.' 이렇게 말을 하면서 그때에 따랐고, 또, 그때에 배웠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이 노력하기를 무슨 노력했느냐 하면 ○○○목사님과 저와 둘이 이제 하나만 되면 이거 큰일을 이루겠는데 하나되는 공작을 해야 되겠다 해 가지고 하나되는 역사를, 서로 합병되는 그런 역사를 할라고 애를 썼었습니다.
그래서 그 집회에 나를 참석시킬라고 애를 써서 그때에, 그 집회에 그후에 참석을 했습니다. ○○○교회에 청함을 받아 가지고 거기에서 사경회를 하고 난 다음에 이 다음에 꼭 ○○○목사님 집회에 참석해 보라고 그렇게 간청을 해서 그후부터 참석을 했었습니다.
그랬는데, 그분 만나기 전에 나는 그때에 머리를 깎고 있었습니다. 머리를 깎고 있었는데, 저는 처음에 머리 깎고 있다가 왜정 말년에 모든 목사들 다 삭발을 시키고 이 각반을 다 채우고 그래 가지고 작업복을 입혀 가지고 그렇게 다 설교를 하도록 하고 그랄 때에 그때 저는 무슨 마음인지 그들 하는 일에 반발해서 그때 머리 길러 가지고 그때 하이칼라를 했었습니다. 하고, 이래 가지고 지내다가 해방 후에 이 진리 운동한다고 ○○교파에 속해 가지고 이리 신앙생활하다가 ○○교파와 저와의 서로 완력이 있어 가지고 그때에 나뉘어지기 좀 전에, 나뉘어지기 전에 제가 거기에서 자꾸 내 딴에는 진리를 외친 다고 외치다가 안 되기 때문에 내가 그때에 머리를 깎았습니다. 머리를 깎고 '내가 다시는 이 진리를 이들에게 내가 외치지를 않겠다, 않겠다. 이제 그저 나만 뿍뿍 걸어 갈 일이지 뭐 할 필요가 없다.' 그때에 나는 머리를 깎았기 때문에 ○○○목사님 만나기 훨씬 전에 머리 깎았습니다. 그러니까 머리 깎은 것이 같고 진리가 같으니까 아마 둘이 하나인갑다 해 가지고 했는데 그분도 나를 몰랐고 나도 그분을 몰랐습니다. 이랬는데, 그분이 피난 와가지고 창녕 계실 때에 창녕에 있는 집사 두 분이 서부 교회 와 가지고 오며 가면서 듣고 '꼭 ○○○목사님이 가르치는 것과 백 조사님이 가르치는 게 같습니다. 백 조사님도 머리를 깎았읍디다.' 이러니까 ○○○목사님은 은연 중 아, 나와 같이 머리 깎고 있으니까 나와 같은 동지가 있고 또 같이 가르친다 하니까 아주 좋아해서 만나기 전에는 굉장히 나를 존경했고 나도 그분을 존경했고 서로 만나기를 원했었습니다. 원했는데, 제가 삼각산 집회 때에 집회 가기 전에 ○○교회 ○○목사님의 인도를 받아 가지고 한번 갔더니만 대단히 기뻐 환영을 해 주시고.
또 그라고 난 다음에 삼각산 집회 갔을 때도 저를 많이 사랑해 주고 이렇게 해 주셨습니다.
그랬는데 그때에 그만 ○○○목사님하고 나하고 그만 벌어지는, 벌어짐이 생겨져 버렸습니다. 벌어짐이 생겨지는 거는 뭣 때문에 벌어짐이 생겨졌느냐 하면 그 목사님이 가르치는 가운데에 이 모든 육체는 이거 죄 덩어리다. 이 피는 죄 덩어리다. 고깃덩어리는 다 죄 덩어리다. 죄 덩어리다 하는 그것을 강하게 주장하기 때문에 내가 그 자리에서는 말을 못 하고 나와 가지고 사석에서 나는 그 ○목사님을 애끼는 참 중심에서 '지금 목사님 이 모든 교계에서 이 고깃덩어리는 물질이기 때문에 물질은 죄가 없다 그렇게 말하고, 이 고깃덩어리 물질이 죄가 있다고 하는 것은 물질 개악설이라고 물질은 다 악한 것이라고 이래 가지고 그것을 이단으로 정죄를 받고 있습니다.' 이 말을 했는데 이 말을 하니까 그만 그 목사님이 '아, 그래. 그저 배우러 왔으면 배우기나 하지 뭐 그런 소리 하지 말라' 고. 이래서 그만 콧방을 먹고 나와 버렸었습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그 다음 시간에 나오시더만 거기에 대해서 '배우러 왔으면 배우기나 할 일이지 이제 배움에 대해서 이런 저런 시비를 말한다'고 그렇게 말을 해서 그때 그만 저는 그 다음에 더 말하지 안하고 입을 다물고 있었습니다. 있었는데. 그때부터 그만 좀 나를 조금 적대시하는 그런 것으로 했었는데, 그후에 그래도 ○○○ 목사님에게 배울 것이 있어서 내가 갔습니다. 배울 것이 있는 것은 교리적으로 배울 게 있다는 것보다도 뭐 하나 배우느냐? 도무지 듣기 어려운 이제 '사람을 만들어야 된다.' 사람 만든다는 그 말 한 마디가 그만 ○○○목사님에게 배운 것 중에 내가 제일 매력이 있었고 제일 가치로 여겼습니다, 그 말 한 마디를 배웠기 때문에 나는 그 후에도 ○○○목사님을 꼭 존경을 하고 또 늘 살아 계실 때는 위해서 기도를 했었습니다. 이랬는데, 이라니까 그 밑에 따라 다니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따라 다니는 사람들 가운데 제일 으뜸 되는 사람이 ○○○목사님입니다. ○○○목사님이었는데 이제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아, ○○○목사님. 지금 바로 직계 후계의 수제자는 백 조사님이다. 그는 만나기 전부터도 그전에 그렇다.' 이라니까 이상하게도 이 시기 마귀란 놈이 들어 가지고 얄궂게 시기로 자꾸 사이를 벌어트리게 했습니다. 그래 되어지니까 어짠지 그만 ○○○목사님은 나를 자꾸 몰아칩니다. 몰아쳐 가자고 강단에서 자꾸 자기 개 교회에서 설교할 때도 그렇게 되고 자꾸 이라는데, 나는 뭣 때문인지를 모르고 이상하다 이렇게 해서 나는 그것으로서만 그래 됐다고 만 나는 생각을 가졌었습니다.
가졌었는데 그 후에 ○○교회라고 ○○교회에 ○○목사님이 있을 때 그때, 그때 ○○목사님이 있을 때인가 뭐인가 내가 잘 모르겠습니다. ○○교회에 ○○목사님이 있을 때가 아니고, ○○목사 있을 때인가 어떤 때인가는 내가 잘 모르겠습니다. 햇수가 오래 돼서, 그때에 거기서 집회를 했는데 성경을 가르켰습니다. 오전 공부하고 난 다음에 ○○○목사님이 나를 만나자고 이렇게 말하더니만 '내가, 조사님에게 내가 사과할 게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뭐 사과할 게 있겠습니까?' '내가 ○○○목사님에게 내가 그 조사님을 그렇게 헐어서 말한 그런 일을 한, 사이를 벌어트린 그런 작용을 내가 한 거 같아서 그것이 양심의 가책이 돼서 사과합니다.' 그런 말을 본인이 합디다. 그래서 내가 있다가 '뭐 그거야 사람이라는 것이 어디 언행심사에 실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지요 나도 그런 일을 얼마나 범했겠습니까? 감사합니다.' 그라고 서로 웃고 나뉘고 그때 이렇게 나갔었습니다.
이것도 지금 설교록에 나갈 터이니까 ○○○목사님이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목사님과 저와 그만 좀 이래 나뉘어 가지고 있었는데, 나뉘지는 안하고 늘 그때 함께 있었지만 별세하셨을 때에 저한테 전보가 왔기 때문에, 그날 장례 하는 그날 전보가 왔읍디다. 장례 하는 그날 전보가 와서 갑자기 전보를 듣고 그 장례에 참석을 할라고 비행기를 타고 제가 급하게 갔더니만 아직까지 출상은 하지 안했고 출상할라고 모여서 예배 보는 그 장소에 제가 참석을 했습니다. 참석을 해서 제가 온 것을 알렸습니다. 온 것을 알렸는데, 그때에 장례 할 때에 뭐 식이 다 그러니까 ○○○목사님이 전적 맡아서 다 장례식을 다 주례를 해서 그렇게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 목사님이 ○○교회를 맡으셔 가지고 그렇게 시무하시다가 얼마 있다가, 반 년인가 얼마인가 지난 후에 저한테 그렇게 전화로 한번 한 일이 있었습니다. 전화 오기를 '아무래도 조사님이 이거 ○○교회는 맡아야 되지 지금 자꾸 이렇게 분열이 생겨지고 이러니까 맡아야 되겠다는 그런 전화가 왔기 때문에 '아이구 목사님 나는 지금 나 맡은 일이 있고, 이러니까 거기에는 목사님이 그 일을 맡아야지 그 일을 내가 어떻게 그 일을 맡겠습니까? 나는 그 일을 맡을 시간도 없고 또 내 일이라 그 생각지 않기 때문에 내가 맡지 않습니다.' 그라면서 '목사님은 이 서울에서 진리를 증거하고 저는 부산 구석에서 진리를 증거하고 그렇게 증거해서 어쩌든지 하나님의 뜻만 이룹시다.' 그라고 그때에 나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저를 청하러 ○집사하고, 그때 집사가 둘인데 ○집사하고 또 누구하고 그렇게 온 것을 제가 거절하고 가지를 안했습니다.
그랬는데, ○○○목사님이 서울에서 개혁 신학교라고 ○○○ 목사님하고 ○○○목사님하고 두 분이 시작한 그 개혁 신학교에 강사로 거기에 수고를 하셨습니다. 그때에 개혁 신학교에 ○○○목사님, ○○○목사님, ○○○ 목사님 이런 분들이 그 개혁 신학교에 거기에서 졸업을 해 가지고 신학 졸업을 거기에서 했습니다. 그때에 저는 그 개혁 신학교를 저와 같이 하자 할 때에 저는 같이 하는 것을 마음에 없어서 같이 하지를 안했었습니다. 안 했는데 그때에 ○○○목사님이 거기에 가 가지고, 개혁 신학교에 가 가지 그 진리를 가르치다가 어디서부터 고장이 났는고 하니 내나 제가 말한 그 물질 개악설이라는 그것이 그때 나와 가지고 그 문제가 들어서 ○○○목사님하고 이거는 물질 개악설을 말하는 이것은 성경적이 아니기 때문에 이거는 틀렸다 말할 때에 ○○○목사는 틀리지 안했다, 주장해 가지고 옳다 이래 가지고 그 물질은 죄악이라. 물질이 죄악이 아니라 이렇게 말하는 물질 개악설이라는 그 교리에서 그때에 ○○○목사님이 개혁 신학교 강사로 나가다가 강사로 나가는 걸음을 그만 뒀습니다.
여러분들 이런 것도 조금 참고로 삼아서 아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리학을 공부하는 것과 교회사를 공부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그 교리사와 교회사를 공부하는 것은 이제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모든 교회들을 이렇게 망라해 가지고 한눈으로 보는 것이 그 또 모든 이렇게 갈(之)자 걸음으로 걸어온 그 모든 교리들을 한 눈으로 보는 것이기 때문에 과거를 보면 현재로부터 미래를 바로 걸어갈 수가 있기 때문에 그 교회사와 교리사가 우리가 공부하는 가운데에는 둘째로 중요합니다.
첫째로 중요한 것은 저는 법학을 말합니다. 법은 인간들의 그 이성 비판에서는 가장 선택 선택해 가지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했기 때문에 인간의 그 주관으로서는 가장 정의를 공평을 말해 놓은 것이 법이기 때문에 법을 공부하라 그렇게 말하고, 사학을 공부하라 하는 것은 이렇게 자꾸 시대를 따라서 갈 지(之) 자는 이래 이래 이래 이라는 것이 갈 지(之) 자입니다. 갈 지(之) 자 걸음을 걷는 이 모든 교리사 교회사기 때문에 이런 것을 구경하고 그 가운데서 '아, 요거는 틀림없다.' 갈 지(之) 자는 이랬다가 이랬다가 이래도 그 가운데 중심은 항상 가졌어. 그 딱 끊은 글자. 갈 지(之) 자를 잘 쓸라면 딱 요래 끊어 놓으면 어떨 때는 이게 요리 나가고 요리 나가고 그렇다해도 한가운데 중앙이 있어. 중심은, 중앙은 있습니다. 그것이 진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 고럴 때도 요거는 고리 나가지 안하고 요럴 때도 요리 나오지 안하고 이 나오지 안한 것이 쪼로록 먹줄같이 있는 게 있으니까 이게 진리라 그것을 찾기 위해서 교리와 교회사를 공부하라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와 교리사를 공부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좀 진실되고 활동성보다도 고수성이 있고, 고수성이 있고 보수성이 있고 이렇게 좀 움직이기는 좀 더디 움직이고, 굳게 잡고 지키기는 요동치 아니하고 굳게 지키는 그 사람을 가리켜서 교리사와 교회사를 하라 그렇게 지도하는 것입니다. 그냥 아무나 따나 하는 것 아닌 것입니다.
오래 전에 제가 법학과 사학을 공부시키는 것이 제일 낫다. 또 이 과학을 공부시키는 것은 돈벌이 할라면 과학을 공부시키지만 과학 공부시키는 그게 좋은데, 과학이 하나님께 나왔기 때문에 좋은데 사람들이 과학을 공부시키는 것은 꼭 내 주관에서, 내 주관에서 인정이 되어 내 주관에서 인정이 돼야 인정을 하지 내 주관에 인정이 안 되면 인정 안 하기 때문에 신앙이라 하는 것은 내 주관을 다 부인해 버리고 하나님의 것을 객관 역사로 우리에게, 믿으라 할 때에 객관의 것을 내가 인정해서 그분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따라가는 것이 신앙이기 때문에 과학이라 하는 것을 공부를 잘못하면 하나님의 도리도 자기 주관이 이해되는 것만이 믿고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안 믿기 때문에 그것은 과학적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는 거기에 무한히 초월한, 탁월한 고차원의 것이기 때문에 과학을 가지고 만 가지를 판단하는 사람은 신앙생활하기가 어렵다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학자가, 참으로 과학자가 하나님을 발견하고 과학자가 그 과학의 근원이 하나님인 것을 깨닫고 '이것이 하나님에게서 나왔구나.' 예를 들어서 사람의 인체 하나를 연구를 한다 할지라도 의학이라는 의학 하나를 연구한다 할지라도 이렇게 세밀한 것이 이것이, 이 세밀한 것이 되었을 때에 이것이 자존으로 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수많은 세월을 거쳐서 자꾸 자기에게 필요한 것은 자꾸 성장되고 필요 없는 것은 도태되고 이렇게 그 본능적으로 이것이 수억만 년 걸려 가지고 이렇게 인간이 됐다, 이래서 아메바가 원숭이 되고 원숭이가 사람됐다 이렇게 과학자들은 말을 합니다. 그것은, 그것이 이 모두가 본능적으로 본능이 성장이 돼서 이런 존재가 됐다 하는 것들이 과학자의 할애비입니다. 과학자의 할애비 알겠소? 과학자의 선조라 말이오. 선조. 그러나, 거기에서 참된 기독자는 이렇게 오묘한 것이 저 아메바가 차차 차차 원숭이 돼 가지고 원숭이가 사람되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 하나님이 지으실 때에 어린 아이로 지은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지으실 때에 벌써 장성한 이 성장된 사람을 성인을 하나님이 지으셨다. 지으셨는데, 그때 지으심으로부터 지금까지 이 타락이 변동됐지 인체에 대해서는 변동된 것이 없다. 이렇게 연구해서 나가면 오묘하고 깊고 광대한 그 세밀하니 어떻게 이것이 본능으로 되었으며 자연으로 됐으며 됐겠느냐. 이러니까 이 모든 걸 볼 때에 절대자이신 완전자이신 우리가 그분을 부를 때 완전, 완전, 완전, 완전, 완전, 완전 억만 번 말해도 그 완전을 말할 수 없는 그 완전 속에 완전히 계시고 완전 완전 속에 완전, 완전 속에 완전, 무한한 완전 그분이 계신다. 그분이 하나님이요 자존자 하나님이시다.
이분을 아는 자가 과학자가 되면 과학을 모르는 자가 과학을 봄으로써 하나님의 그 솜씨의 흔적을 보게 되기 때문에 확고한 신앙자가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은 뭐인가? 신앙은 그 하나님의 특별 계시인 그 제시를 근거하는 동시에 그 특별 계시로 인해서 이 자연 계시를 깨닫게 되고, 자연 계시에서 특별 계시를 깨닫게 되고, 인간의 그 모든 감정에서 하나님의 영감을 깨닫게 되고, 영감에서 인간의 감정을 깨닫게 되는 그래서 인간의 그 마음들이 요렇게 조렇게 요렇게 하는 것은 인간들의 마음은 수억억 만도 넘는 각도요 모양이요 형체요 그 모든 자연들이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보면서, 이 모든 것을 보면서 아, 하나님께서 인간을 이렇게 섭리하시는데 인간의 이 모든 마음의 구조의 수많은 마음의 구조 이것도 성경이 가르치고 있다. 성경은 이것을 가르치고 있다. 이래서 특별 계시와 자연 계시가 모순되지 안하고 특별 계시나 자연 계시가 일치가 되어지는 거기에서 자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 계시에서 자라면서 자연 계시에서 자라지 안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무엇인가 자기의 주관 행위에서 아직까지 확실히 획득하지 못한, 도통이 되지 않은 거기에 있기 때문에 그 이상이 가 가지고 그 사람을 유혹시킨다고 하면 그 이상의 유혹에는 들 수밖에 없는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특별 계시에서 자연 계시를 자연 계시에서 특별 계시를, 특별 계시를 바로 알았으면 안 것 만치 자연 계시의 그 세밀한 그런 것은 알 필요도 없기 때문에 모르지만 윤곽적으로 강령적으로는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이라 하면 이 세상에 이 자연의 이 모든 자연 계시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라 그렇게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리 저리 치우치지 말고 이것에서 저것을, 저것에서 이것을 우리가 잡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세상은 말이요. 세상은 장터와 같은 세상입니다. 장터와 같은 세상, 장터에는 가면 수많은 종류의 물건이 있습니다. 수많은 종류의 물건이 있는데 그 장터에서는 어떤 사람이 장사를 잘하는 사람입니까? 장사 잘하는 사람은 '저 물건이 내 물건보다는 좋습니다. 저 물건이 내 물건보다 좋습니다.' 저 물건이 자기 물건보다 좋은 것을 소개하는 사람은 장사 못 합니다.
빌어먹습니다.-빌어먹소. 자기 것을 좋다고 선전해야 됩니다. 제것은 백 원짜리인데 저 만 원짜리보고 실은, 값이 싸기는 싸서 사람들이 멸시하지만 이 백 원짜리 이것이 실은 그보다 효력이 많습니다. 이렇게 이걸 가리켜서 선전이라 이렇게 말하는데, 이래서 저 구미에 있는 사람들은, 선전에 자본을, 백 프로를 다 선전에 넣고, 일본 사람들은 팔십 프로를 넣고 한국 사람은 선전에다가 넣는 게 아니고 백 프로를 물질에 넣는다 그렇게 말한 답니다. 이러니까 한국 사람은 뒤떨어져서 앞서 가지를 못합니다. 미국 사람 그런 사람들 실질적이라 해도 선전 굉장하요. 선전하는 것이 범위가 넓게 하기 때문에 그 범위를 몰라 그렇지.
이래서, 세상은 장터 모양으로 제것 좋다고 자꾸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것도 그 버릇이 가득 차 있는데 그것을 가리켜서 뭐이라고 말하는고 하니 악령으로 생겨진 것이요, 악성으로 생겨진 것이요, 악습으로 생겨진 것입니다. 악령은 영이 자기중심의 영이요, 악성은 인간이 자기중심의 인간이요, 악습은 자기중심의 모든 행동들을 주 모아 놓은 것을 가리켜서 악습이라 이렇게 말을 합니다. 이라기 때문에, 그것을 가리켜서 옛사람이요 그것이 원죄인데 교회도 이렇게 생각해서 '얘. 너는 목회 그래 해 가지고는 헛일이다.' '왜?' '아, 이 등신아 장사를 할라면 그 시장에 물건이 꽉 찼지만 장사 잘하는 사람은 이제' 다른 사람 물건을 그것을 나쁘다고 그렇게 말을 할라 하면, 야만들은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 물건은 나쁘다 저 좋다 하지만 실은 값싼 이게 그거보다 낫다, 그거보다 낫다 이렇게 말합니다.
이래서 우리나라도 처음에, 건국이 되고 난 다음에는 그런 선전 방법을 썼습니다. 선전 방법을 썼어. 아무 물건보다 우리 물건이 낫다 아무 물건 보다 낮다. 낫다. 낫다 이렇게 해 가지고 그 사람들이 처음에 좀 돈 벌었습니다. 돈을 벌었지만 나중에 그게 나중에 종합이 돼 가지고 '어떻게 우리 물건을 치고 너희 물건을 선전을 하느냐?' 이래서 '우리 물건은 치고 너거 물건만 선전을 하느냐?' 이래 가지고 나중에 손해 배상을 했다 말이오. 이래 가지고 저거 물건 좋고 남의 물건 나쁘다 하는 거기에 대해서 배상을 물게 되다 보니까 어제 이 버릇이 쑥 들어갔다 말이오. 버릇이 쑥 들어가 지금은 이제는 아무 물건보다 우리 물건이 낫다 그렇게는 지금 선전을 잘 안 합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선전해 가지고 또 장터에서는 그렇게 쪼그만한 장에서는 선전할 수 있어요. 그러나 무슨 회사가 되면 그런 선전을 못해. 그런 선전은 못하지만, 남의 물건은 나쁘고 그보다 우리 물건이 낫다 이 소리는 못 해도 좋다는 것을 하나 좋으면 천 개 좋다 하는 사람 있으면 그 사람이 더 장사 잘하고. 하나가 좋은데 천 개 좋다 하는 사람보다 만 개 좋다 하는 그 사람이 있으면 장사를 더 잘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것이 세상으로 되어 가지고 있는 세상이기 때문에 세상도 이렇게 돼 있는 것이 인간들의 습성이요 인간들의 전체라 그말이오. 전체로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교회 안에도 이렇습니다. 교회 안에도 이래.
제가 대구 가 가지고 얼마 집회를 했을 때에 대구에 있는 목사님들이 처음에는 많이 따랐습니다. 많이 닳고 와 가지고, 따라다니면서 뭐 여기도 가고 저기도 가고 마구 따라다니면서 그분들에게는 큰 걱정이 생겼습니다. 걱정이 생긴 것은 무슨 걱정이 생겼느냐? 걱정이 생긴 것은 자기네들이 그때는 말하기를 예수를 잘못 믿었다. 예수를 지금부터 새로 믿어야 되겠다. 새로 믿어야 되겠다고 말했지만 새로 믿어야 되겠다는 그 말이 간단한 말이 아니야. 그라고 나면 이제까지 해 놓은 일이 있기 때문에 그 일어나는 파동이 얼마나 큰데. 파문이 얼마나 큰데. 이러니까 자 그라고 나니 교회가 어지러워집니다. 교회가 이런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말하니까 교회가 어지러워지니 교회 어지러워지는 어려운 문제를 저한테 많이 말을 했습니다.
말을 했을 때에 제가 말하기를 '그 교회 어려운 문제는 그것은 우리는 해결할 수가 없다.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어느 장로를 붙들고 어느 집사를 붙들고 어느 사장을 붙들고 어느 그 뭐 정치가를 붙들고 해결할라고 그런 짓을 하면 점점 파묻혀서 죽게 된다. 하지말고. 자기 할 일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그대로만 자꾸 해 나가라. 그대로 해 나가면 물에 빠져 죽을 거 같고 그대로 해 나가면 망할 거 같지만 망할 거 같은데, 그대로 해 나가다 망하기만 망해라. 하나님의 진리와 영감대로 행하다가 망하기만 망해라, 망하고 나면 다니엘이 죽음에서 살아나 온 것 같은 그런 이제 십자가의 승리와 부활을 만날 것이다.' 이렇게 말을 했지만 나중에는 그 고민이 있어서, 자, 다 새로와질라 하니 이거 문제고 그만 '내가 이제까지 가르친 이거는 잘못 가르쳤다' 이래야 될 터인데 그라면 위신도 떨어지겠고 이거 문제다, 문제다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그 사람들이 한목 똑 떨어져 버렸습니다. 한목 똑 떨어져 버렸어. 그만 한목 똑 떨어지고 다시는 참가를 안 합니다.
똑 떨어지기를 뭣 때문에 똑 떨어졌는고 하니 대구 노회에서, 노회에서 ○○○목사님 ○○○목사님 그 두 분이 앞에서 일하고, ○○○목사님도 거기에서 찬동을 하고 이래 가지고 '백영희 조사는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 그런 주장을 한다. 이것은 이단이다.' 이래 가지고 경북 노회서 노회적으로 정죄를 해서 이단으로 정죄를 했습니다. 정죄를 하니까 그때 모든 사람들이 '그러면 그렇지. 그러면 그렇지.' 이제 그거 다 고칠라 하니까 영 기가 막히고 기가 막히는데 그만 이단으로 딱 정죄가 돼 버리고 나니까 '그거 틀렸다. 그러니까 우리가 옳다.' 이래 가지고 그때 그 사람들이 그만 일어나서 자기네들이 과거에 목회나 모두 해 나온 것이 옳고, 지금 백 목사한테 배워 가지고 틀렸다 하는 '이거는 우리가 틀렸다, 고치자, 예수 잘 못 믿었다, 새로 잘 믿자' 하는 그 말은 다 틀렸다 해 가지고 고쳐서 그때 뭐 쏵 무너지고 다 떨어져 버렸습니다.
그때 다 떨어지고 그만 그것으로써 다 떨어졌습니다.
떨어졌는데, 이제 그것이 중생된 영이 범죄를 하는지 안하는지 거기에 대해서는 내가 별로 말을 하지 않습니다. 말하지 않고 '거기에 대해서 논문을 내십시오.
논문을 내면 우리가 알 것 아닙니까?' 논문을 내라고 하는데 논문을 내지 않습니다. 또 그 뒤에는 많이 주장도 하지 않습니다. 이러니까 '아마 그렇게 주장을 하다가 안 하는 거 보니까 푹 들어가서 안 하는 가 보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저는 변함이 없습니다. 중생된 영은 절대 죄 짓지 않습니다. 중생된 사람은 죄를 짓습니다. 중생은 영만 중생했지 마음도 중생한 거 아닙니다. 몸도 중생한 거 아닙니다. 마음은 언제 중생하는고 하니 마음은 부분적으로 중생합니다. 마음은 마음 전체가 중생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의 기능이, 중생하는데 기능은 수백번 수천번 수만번으로써 그렇게 부분적으로 중생을 합니다. 몸의 기능도 부분적으로 중생합니다. 마음의 기능과 몸의 기능이 수천번 수백번 자꾸 이렇게 분류해서 중생하는데, 이 중생은 언제 하는가 현재에 합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성화라고 합니다.
이래서 영은 단번 중생이요, 마음은 중복적으로, 몸은 중복적으로 그 기능이 중생하는 것인데, 몸의 몸 덩어리는 언제 중생되느냐 하면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실 때에 그때에 부활할 때에 이 몸뚱이는 그때에 중생이 되고 기능은 지금 중생됩니다. 중생되는데, 이러니까 이다음에 우리가 부활할 때에 몸은 우리 몸뚱이가 다 부활을 해서 중생을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때에 다, 자세히 보면 알 수 있을 만한 그런 안면을 가지고 다 중생합니다. 몸뚱이는 그렇고, 또 그러나 그때 거기에는 병신이 없습니다. 다 모두 그거는 고장난 것이기 때문에 몸뚱이는 정상적인 몸뚱이로 다 부활이 되고 이렇게 되나 기능은 지금 살려 놓은 기능만, 그때 중생된 몸뚱이가- 그거는 중생을 가리켜서 부활이라고 말합니다.- 부활된 몸뚱이가 자기가 중생된 심신의 기능 있는 그 기능을 가지고 부활하기 때문에 부활체는 꼭 같지만 속에 기능은 천인 만인이 각각 다릅니다. 그러면 그것을 가리켜서 영광이라 권위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래서 중생된 사람은 범죄를 합니다. 중생된 사람은 범죄합니다. 중생된 사람은 왜 범죄하는고 하니,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안하지만 중생되지 안한 마음과 중생되지 안한 몸이 범죄하기 때문에 중생된 사람은 영만 중생했기 때문에 범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범죄가 어떤 것은 몸만이 범죄하는 거 있습니다. 몸만이 범죄한 것이 있습니다. 마음은 그렇지 안한데, 마음은 그렇지 안한데 몸뚱이가 하나님 말씀을 어긴 것 있습니다. 자기 마음으로는 안할라고 했는데 이 몸뚱이는 말을 잘 듣지 안하고 이 몸뚱이대로 하던 습성도 있고, 이것이 몸이 잘 듣지 안해 가지고 몸이 실수할 수가 있다 말입니다. 또 자기 마음으로는 그렇지 안한데 이 혀가 곧아 가지고, 혀가 곧아 가지고. 혀가 잘못 나와 가지고 마음에는 그말을 안 할라고 했는데 그말이 돼 버렸습니다.
마음이 같지 범죄하지 안하는 고깃덩어리만 범죄하는 것도 있고, 또 고깃덩어리는 범죄하지 안하는데 마음만 범죄하는 것도 있습니다. 고깃덩어리 범죄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다 보기 때문에 고깃덩어리는 범죄하지 않지만 마음은 범죄하는 거 있습니다. 이 교회 자건들이 이런거 때문에 다 일어나는 사건들입니다. 이제 속으로는, 속으로는 미워하면서도 겉어머리는 사랑하는 것처럼 허허허허 자꾸 이랍니다. 겉어머리로는 사랑하는 거 처럼 허허허 이렇게, 이러니까 그때는 뭐이냐 하면 마음으로는 범죄하면서 고깃덩어리로는 범죄하지 않는 것입니다. 범죄하지 않는 것이요 어떨 때는 또 그 마음은 범죄하지 안하는데 이 고깃덩어리가 말을 듣지 안해 가지고 범죄합니다. 그 습성이 있어 가지고. 습성이 있어 가지고 자기는 술을 안 먹을라고 했는데, 술을 안 먹을라고 했는데 옆에 친구가 한 잔 먹으라 권하니까 이거 그만, 먹던 버릇이 있어 가지고 고깃덩어리가 그 음식의 습성이 있으니까 이거 술은 내가 '아, 나는 술 안 먹을라 했다. 안 먹을란다.' 안 먹을라고 했는데 억지로 먹으라고 입에 대니까 입에 대니까 또 맛있다 말이오. 꿀떡꿀떡 넘어 삼킨다 말이오.? 꿀떡꿀떡 넘어 삼키고 난 다음에는 '아이구 내가 술 먹었다' 이래 또 후회를 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고깃덩어리와 마음은 단합이 될 때도 있고 단합이 안 될 때도 있습니다. 이래서 중생된 사람은, 영은 죄를 짓지 않는데 이 마음과 고깃덩어리가 죄를 짓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7장에 말하기를 내 속사람으로서는 하나님을 섬길라고, 뜻대로 할라고 하는데 내 지체 가운데에, 지체, 육체 가운데에 딴 법이 있어 가지고 이놈이 나를 죄 아래로 끌고 간다. 끌고 간다 그말은 끌고 간다 말은 그 끌려 가는 건 누군가? 끌려가는 건 중생된 영입니다.
중생된 영이 끌려 가는 거. 몸뚱이가 가니까 중생된 영도 가야 되지 않습니까? 가는데, 그 중생된 영도 가는데 이 몸뚱이가 마음하고 둘이 한 덩어리가 돼 가지고서 죄를 짓습니다. 죄를 지으면 그때, 중생된 영은 가기 싫은데 억지로 끌려 가지고서, 그놈이 죄를 지으니까 지금 중생된 영은 같이 합작돼 가지고 죄를 짓는 게 아니라 거기에서 지금 둘이 싸웁니다. 그때는 뭐이냐 하면, 그러기 때문에 둘이 싸워서 속에 중생된 영은 하기 싫고 이 심신은 하고 싶고 이래 가지고 했기 때문에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고 지체 속에 다른 법이 있어서 그거는 죄의 법을 섬긴다. 내가 죄를 짓는 것은 내가 죄를 짓는 게 아니라 내 속에 있는 죄가 죄를 지었다 하는 그말이 이기게 분류해서 말씀한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들은 말하기를 그것을 지금 모르고 말이요, 그분들이 뭐 나만 못 해서 그런 게 아니고 나보다 모든 면이 낫고 이라는데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이 면을 알려 준 사람 있고 저 면을 알려 준 사람 있고 혼자 다 알지를 안했어. 하나님께서 혼자 다 알게 하지 안하고 하나님께서 이 면을 알리고 저 면을 알리고 알리는 것이 마치 성경에 비유하기를 이제 눈이 하는 일이 따로 있고 귀가 하는 일이 따로 있고 입이 하는 일이 따로 있는 것은 왜 그러냐 하면 눈이 전부 귀 하는 일, 입 하는 일 다 해 버리면 눈 저 혼자 독차지 다 해 버렸기 때문에 입이고 귀고 눈이고 다 무시해 버릴 거라 말이오.
무시해 버리는데, 이 눈이 하는 일은 눈이 할 일만 하는데 눈의 영양이 모자랄 때는 입한테 사정을 해 가지고 이거 좀 먹어 달라 또 이렇게 해야 되겠고, 또 눈이 하지 못하는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안했는데 여기 지금 뭐이냐 하면 뭐 나를 죽일라라는 무슨 소리가 들리더니만 내 눈에 안 보이니까, 내 눈에 안 보이니 안 보인다 말이오. 안 보이니까 이 귀에게 좀 도와 달라 이라면 귀가 '야, 여기 지금 자꾸 네 눈에는 안 보이지만 저 먼 데서 지금 자꾸 폭탄 소리가 나오고 수류탄 소리가 나오고 대포 소리가 나오고 이라는데.' '어디 나와?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너는, 너는 못 봐, 그까짓 눈 네가 혼자 가지고 다 할 듯이 그래 쌓지만 너는 못 봐. 나는 봐. 지금 보니까 대포 소리가 나고 이렇게 기관총 소리가 나고 대포 소리가 나는데, 하, 점점 가까와 온다. 기관총 소리가 난다.
가까와 온다.' 가까이 온다 하는데 이 눈은 못 본다 그말이오. 이러면 귀가 있다가 그때 또 알아 가지고 '야 지금 여기 기관총 소리가 나오는데 대포 소리가 나더니만 이제는 기관총 소리가 나오고 기관총 소리가 나오고 또 때콩 때콩하는 이거 에무 원 "M1 소총"인가 뭐가 M1 소리가 난다. 이제 아주 가까왔다. 이제 가까왔으니 가자.' 이래 가지고 갈려고 '가자' 귀가 '가자' 합니다. '가자' 하니까 또 그때 가서 누구한테 사정을 해야 됩니까? 누구한테 사정을 해야 되지요? 말해봐. 예? 다리한테 사정을 해. '야, 가자. 이거 좀 누구 좀 싣고 가자.' 또 사정을 해야 됩니다.
이러니까, 이거 아니면 저 놈 죽고 저거 아니면 이놈 죽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각각 다, 독권을 주지 안하고 모든 자에게 이렇게 준 것은 이 지체가 저 지체를 멸시하지 못하고 저 자체가 이 지체를 멸시하지 못하고 서로 지체와 지체끼리 화합하고 서로 존대하면서 '너 아니면 나 못 산다. 나 아니면 너 못 산다.' 이렇게 화합해서 한 몸을 이루어 가도록 한 거와 마찬가지로 기독자들도 이 사람이 깨달은 장점이 있고 저 사람이 깨달은 장점 있고 이래 가지고 그리스도 안에 한 몸을 이루어 가기 위해서 한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기가 깨달은 것이면 이것을 선전해서 알릴 것이지 제가 그거 하나 알았다고 다이고 제가 전부 다 알았다고 이렇게 하지를 못하도록 하나님이 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을 그것을 그 직분 어떤 사람이 깨달았으면 그것을 다른 이에게 말해 줄 때에 그것을 될 수 있는 대로 전달이 잘되도록 해야 되지 전달이 잘되도록 못 하면 안 되기 때문에 거기에서는 '중생된 영은 범죄 안 한다는 건 이단이다.' 떡 이랄 때에 이쪽에는 또 '이단이 아니다' 이래 가지고 서로 갑론 을박 하면 그 사람은, 이단이라 하는 사람은 더 이단자가 점점 더 돼버려서 돌아오지 못할 것이고, 이제 이거는 이러기 때문에 전달이 잘 안 된다 그말이오.
'이단이라고 하면, 그 이단이라고 하면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만 하고 더 이상하지 말아라. 그리 안 하면 악으로 좇아 나온다. 네 중심으로 좇아 나오는 것이다.' 이라기 때문에 그 이상 말하지 안하니까, 말하지 안하니 모든 사람이 가만있다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아 이거 이거 아니다. 아니다. 이거. 사람이 중생된 그것이 우리 구원 시작인데 중생된 영이 범죄 하면 부활한 부활체도 범죄해야 될 것 아니겠는가? 이러면 물과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것이 그것이 또 범죄하고 더러워진다고 하면 바랄 게 뭐 있겠나? 이거 뭐 '뒤에 가서 억천만번이라도 더러워질 터이니까 이거 구원이라 하는 것은 다 부인되고 만다.' 이러니까 이래 가지고 자꾸 그런다 말이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나한테 말하기를, 나는 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목사님이라는 그 유명한 목사님이 있는 모양인데 그 목사님에게 가 가지고 '아 영에 대해서 이 중생된 영이 어찌됩니까?' 그라니까 그 목사님이 그렇게 말하더라고. '아, 영에 대해서는 나는 지금 거기에 대해서 그렇게 연구가 깊지를 못하니까 어쩌든지 영에 대한 문제를 알고 싶거들랑은 부산 그 백영희 목사님이 있으니까 목사님 있는데 그 목사님에게 가 물으면 잘 가르쳐 줄 겁니다.' 그렇게 소개를 하더라고 와서 묻는 사람이 있어. 그런 분들은 얼마나 도리를 안 사람이라 말이오. 어째 예수 믿는 도리를 알아. 뭐 욕을 하고 뭐 꺼지고 불에 사뤄도 도리를 안 사람들은 그 나타난 열매가 있는 것입니다. 열매가 있어.
그런데 그분은 그렇게 말해. 그래서 내가 이래 말하니까 '아, 그러냐고?' 역부러 서울에서 와 가지고 그래 듣고 가는 사람도 더러 있습디다.
그래서 이 예수 믿는 것도, 예수 믿는 것도 악습을 가지고 예수 믿는 사람 많습니다. 악습 가지고 예수 믿는 사람 많소. 악성 가지고 예수 믿는 사람 많소.
악령 가지고 예수 믿는 사람 많애. 사람들은 그만 성경 자기가 한번 듣고 나면 그 다음에는 두번 말하면 '아, 저거 또 듣는 성경인데, 아는 성경인데 또 자꾸 말하니 오늘 뭐 허탕했다. 오늘 새 성경을 봐야 뭐 새 수입이 있는데 허탕했다.' 그 사람은 아직까지 진리에 깊이 들어가지를 못 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한 진리를 내가 지식으로 가지고, 지식으로 가지고 그 다음에 뭘로 가져야 됩니까? 예? 자, 지식으로 가지고 둘째로는? 인정으로 가지고 그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실행으로 가져야 되지요 그랄라면 인제 지식으로 가지고는 믿을 수 있는 인정하는 능력을 받아야 되고, 인정을 해서 인정을 하면 얼마나 인정을 해야 되겠습니까? 인정이 얼마나 돼야 됩니까? 인정이 되는 것이 그것이 자기 주관대로 꾀쟁이로 가지고 인정되는 거는 안돼. 실상으로 인정이 돼. 실상으로 인정된 것.
예를 들면 독침이 와 가지고 이와 같이 찌를라고 달라들 때에 지식적으로는 '주님의 주권 개별 섭리기 때문에 이것도 주님이 섭리하지 안한 것은 없다.
사랑하는 주님이 나에게 독침 가지고 하는 것은 네가 정말로 나를 사랑하나 안 사랑하나, 나를 어느 정도 사랑하나, 어느 정도 나를 믿나 이제 당신이 나하고 지금 한번 서로 사귈라고, 아이들 말로 하면 연애 할라고 주님이 나하고 연애할라고 지금 좋아서 이와 같이 하는 것이니까. 이렇게 딱 거석할 때에, 이렇게 독침 가지고 왔을 때에 하나님의 주선의 그 개별 섭리를 믿을 때에 그렇게 됩니다. '아, 주님이 나에게 이 독침을 가지고 시험하시니까 시험하신다.' 시험하니까' 염려는, 두려움은 없는데 염려가 됩니다. 염려가 되는 건 뭐이 염려가 되느냐? '아, 여기서 주님이 나를 지금 시험하시는 거니까 내가 태도를 어찌 해야 되겠나, 내가 춤을 춰야 되겠나 내가 춤을 춰야 되겠나, 내가 노래를 불러야 되겠나, 내가 뭐 웃고 있다가 요래면 요래 요래 이걸 좀 잘해야 되겠나. 어째야 이 분에게 잘 보일꼬?' 이제 그 걱정이라 말이오. 분명히 독침이 온 것은 주님이 지금 나에게 독침을 썩 내면서 이와같이 하는 것인데 이 어찌해야 될까? 어떻게 해야 될까? 거기에서 할 일은 뭐입니까? 이러니까 주님이 독침으로 나한테 지금 이와같이 대는 것이니까, 나에게 뭐 날 시험할라고 이렇게 하는 것이니까 이라면서 공산주의가 죽인다. 죽인다 이라니까 얘, 네가 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너를 붙들고 역사하셔서 네 배후에는 내 사랑하시는 주님이 너를 붙들고 역사하셔. 그 미혹에 들지를 안합니다.
그 미혹에 들지를 안하고 그 다음에는 '주님, 내가 주님의 주권 개별 섭리를 믿습니다. 주님이 이렇게 하시는 것을 내가 믿습니다.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므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을 내가 믿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것도 내 구원을 위해서 나를 사랑하심으로써 내게 이와같이 하시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로 말미암아 나와 주님과의 더 가까와질 것을 믿습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이라는데 얼굴을 보니까 자꾸 찌른다 찌른다 하니까 차차차차 포르족족하게 아주 노라이 자꾸 안색이 변해집니다. 여기 ○집사님 그라면 주님이 좋아하시겠지요? 예? 좋아하시요? 좋아 안 하시요? 어떻게 하면 좋아하시요? 어떻게 하면 좋아하시요? 사탄에게 질리면 좋아하시요? 그 좋아하실 거 한번 좀 말해 보라고. 그럴 때에 어떻게 하면 좋아하실 것인지? 한번 말해 봐요. 어째 하면 좋아하시지? 평생 부부 생활해도 그걸 모르는 모양이라. 그래 놓으니 어짤 거라. 그래 놓으니 만날 남편들은 남편들대로 항상 고통이지. 그 때 좋아하는 건 뭐이요? 좋아하는 것은 그때 벌써 입에도 뻐쩍뻐쩍 웃음이 나오고 또 벌써 눈에도 즐거워서 반가와서 기쁨이 나오고 그 모든 이 가죽 껍데기 피부까지도 전부 기뻐 좋아서 못 견딥니다 기뻐 좋아서, 좋아서 못 견딥니다.
그라면 예수님을 믿는 증거요 안 믿는 증거요? 믿는 증거라, 그것 볼라고 그래.
그것 볼라고, 여러분들 그거 볼라고.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현실을 당했을 때에 현실은 어떤 현실을 어떤 현실을 당하느냐? 현실이 오는 것은 전부. 내가 이제까지 믿던 이 예수 믿는 것을, 내가 믿던 그 신앙, 이제까지 믿는 것을 못 믿도록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알겠소? 못 믿도록 하는 것이 현실이라. 못 믿도록 하는 것이 현실인데 그 현실을, 못 믿도록 한 그 현실을 누가 그렇게 하고 계시요? 누가 하고 계시요? 하나님 하지마 좀. 정이 떨어져. 누가 그렇게 하고 계시요? 주님이 하고 계시요.
하나님이 아니고 주님이 하고 계시요. 내나 주님이 하나님이지만 이제 좀 주님이라고 하자 그말이오. 주님이 하고 계시오.
그러면 주님이 하고 계시면 그렇게 나 못 믿도록 떡 그래 지금 하고 계시는데, 못 믿구로 하고 있는 것은 못 믿구로 하는 못 믿게 하는 것을 꿰뚫어 가지고 꾹 뚫어 가지고 그 속에 믿는 믿음을 당신이 원하신다 말이오. 못 믿구로 하는 그 믿음을 뿍 뚫고 들어가면 주님이 딱 만나진다 말이오. 딱 만나져. 날 만나 가지고 날 아듬어 주고 기뻐하시면서 좋아하신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그게 믿는 거라.
그러니까 현실에, 자, 우리에게 현실이 닥치는 그것은 무슨 현실이요? 그 현실 닥치는 것은 그것은 우리 신앙생활을 잘 하도록 해 줍니까, 신앙생활을 방해하도록 합니까? 신앙생활을 잘 하도록 하는 것은 유혹입니다. 잘 좀 생각해야 돼. 신앙생활을 하지 못 하도록 그렇게 만듭니다. 만드는 이가 주님인데 신앙생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신앙생활하지 못하게 하는 그런 것을 초월한, 그런 것을 꿰뚫은, 그런 것을 다 승리한, 그런 것을 뛰어 넘은 그런 사랑에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섬기고, 주님을 높이고 주님을 교제하고, 주님으로 더불어 하나 하라 그말이오. 그러니까 막는 것은 그 막는 그것보다도 초월해서 그것보다도 그 이상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이상으로 믿고, 주님을 그 이상으로 교제하게 하는 것을 가리켜서 그렇게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런데 이 신앙 생할도, 신앙생활도 사람들이 악습 가지고 예수 믿기 쉽습니다.
악습 가지고 믿는 것은 뭐이냐 하면, 악습이라 말은 오늘까지 자기중심, 자기중심의 행위, 자기중심의 교리, 자기중심의 모든 관념, 자기중심의 모든 비판, 자기중심의 모든 대우, 자기중심의 모든 신조 이런 것들을 입고 그런 걸 가지고 그런 걸 가지고 예수 믿는 사람 있습니다. 또 그런 것 가지고 믿고 있는 사람, 그러니까 사람들은 뭐 뭐이든지 여호와의 증인에 걸린 사람은 여호와의 증인에게 배운 그것은 다 악습의 지식인데 악습의 지식인데, 악습의 지식이라도 저거 지식을 좋다고 지금 그렇게 지금 팔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 장사 잘해요. 여호와 증인 장사 잘합니다. 여호와의 증인 장사 잘하요. 또 그 전도관 ○○○씨도 장사를 잘하고, 모든 사람들이 다 장사를 잘합니다. ○○○씨도 장사를 잘하고, ○○교도 장사 잘하고 ○○교도 장사 잘하고, 다 모두 ○○도 다 ○○도 다 장사 다 잘합니다. 장사 잘하는 것은 뭐이냐 하면 자기가 깨달은 거, 자기가 깨달은 거 이제까지 자기가 깨닫고 자기가 배우고 주장한 거 그것을. 그것을 옳든지 그르든지 이것은 내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좋다고 선전을 해 가지고서 주장을 하려는 그것이 다 장사꾼 예수라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알아듣겠습니까 장사꾼 예수 이 말을 꿰뚫어야 돼! 못 알아들으면 헛일이오 또 이것은 자기 성미에 맞습니다. 자기중심에 맞습니다. 자기중심에 맞고 자기 주관에 맞습니다. 자기 주관에 맞아서 이 악성적 신앙이 있습니다. 신앙을 하되 전부, 신학을 해도 악성 신학이 있고, 신학 어떤 교수가 돼도 악성 교수가 있고, 있으니 모든 거 다 분석하고 분석하고 해석해 들어가면 마지막에는 자기중심이라 하는 것만 남고 나머지기는 다 타 버렸다 말이오. 옆에 뭐 진리를 말하고 영감을 말하고 뭘 말하고 뭘 말하고 많이 말했지만 자꾸 이것을, 이 것을 불에 넣어 달궜는데, 불에다 넣어 달구고 보니까 달궈 보니까 자꾸 탄다 말이오. 자꾸 탄다 말이오. 불에 다 넣어 가지고 자꾸 구으니까 다 타고 자기중심이라는 것만 남습니다. 악성만 남습니다.
그런데 그 불미는 그거 태우면 불로 만들어 놓은 열도로 만들어 놓은 불미에는 태우면 은도 타고 구리쇠도 타고 쇠도 타고 돌도 타고 순금만 남는데 이제 이 모든 것을 다 태워서 마지막에 남는 것은 악성만 남고 다른 거는 하나도 남지 안해. 자기중심만 남아. 자기중심만 남고 이제 악령만 남아.
그런데, 그 도가니는 무슨 도가니지요? 그 도가니는 무슨 도가니요? 그 도가니 이름 아는 사람 한번 손들어 봐요. 그 도가니 이름 아는 사람, 그 도가니가 무슨 도가니지? 용광로? 유황불 구렁텅이? 무저갱? 자꾸 주대면 맞지 싶어서 인제 답 쓰라 하면 막 자꾸 이 성구 저 성구 이래 놓고 그러면 쭉 그어 버려 이거는 모르는 놈이 이거 백지 이거 마구 주 대기만 마구 주 대는 것으로 이래 된다 말이오. 그거 괜찮애. 그래도 틀린 거라도 말한 사람은 뒤에 가서 잊어버리지 안해. 그 말하면 뒤에 가서 내가 이거 말해서 틀렸다. 이러니까 다시 잊어버리지 안해. 그 말하는게 좋은데 틀려도 말한 게 학생이 좋은데 '틀렸나, 하지 말자' 하는 고거는 속에 못된 게 속에 들어앉았어. 고거 큰일나요. 이런데 그 도가니는 뭐일까? 청강수? 소산수 도가니? 무슨 도가니? ○○○조사님이. 잘 깨닫는데 한 번 대답해 봐요. 이 현실이라는 도가니라.
현실 도가니가 있는데? 예? 현실 도가니도 있어요? 자, 신학자가 자기중심의 신학자, 악성의 신학자인지 악습의 신학자인지 그 장로가 악습의 장로인지 악성의 장로인지 악령의 장로인지 이것을 알려면 도가니다 넣어 놓고 이렇게 구워 보면 안다 하는데 그 도가니를 말하기를, '그 도가니가 무슨 도가니지?' 하니까 현실이라는 도가니라 하는데, 현실이라는 도가니 있소? 현실이라는 도가니가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봐요. 현실이라는 도가니가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봐요. 예, 그렇지 뭐. 몇 사람 안 드네. 그 뭐 그러면 그렇지. 자 현실이라는 도가지가 비유인데,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봐요. 이제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봐요. 이것도 안 들고, 그러면 뭐요? 뭐입니까? 현실이라는 도가니를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라고 하니 손도 안 드네. 여기도 그러네요. 그러면 또 한번 물어 볼까요. 현실이라는 도가니가 있다고, 비유로 하는 겁니다. 현실이라는 도가니가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봐요. 이제는 좀 많이 든다. 저기도 뻐뜩 들어. 교만하게 요만큼 이래 하지 말고, 이제 모처럼 자기가, 이제까지 죄만 짓다가 나와 가지고 새로 예수를 믿는데 새로 믿는데 고쳐야 돼. 쑥 들어봐, 이래 한번 더. 저 뒤에도. 저 뒤에도 들어 봐. 교만 부리지 말고. 놔요.
현실이라는 도가지란 말이 백점이라 맞았어. 맞았어. 아무도 모르는데 이 ○○○조사 저 알기는 어북 알아. 알기는 아는데 저거는 알기는 잘 알면서 계속성이 없어서 그게 지금 병이야. 아는 대로는 죽자 살자 하고 놓지 말고 그저 계속해 버려요. 현실의 도가니라는 현실의 도가니에서 요동하지 말고 아는 대로 그대로 나가요. 그라면 큰 성과를 볼 거라.
현실이라는 도가니입니다. 현실이라 하는 도가니인데, 이제 왜정 말년 때에 모두가 총회장 노회장. 모두 다 목사들 많이 있었는데. 신학자들도 많이 있었는데 그때에 그 도가니에다 한번 구워 봤습니다. 구워 보면서 '이 저는 보자. 이 속에 뭐이 있는고 보자.' 구워 보니까, 도가니에 이와같이 지금 구워 보니까 거기에서 남아 있는 것은 거기에서는 좋은 게 남아 있는 거야 나쁜 게 남아 있는 거야? 나쁜 게 남아 있는 가본데 구워 보니까 악성만 남았고 악성 신학 악습 신학 악령 신학만 남았고 딴거는 다 없어져 버려요. 다 없어져 버렸어. 그때 그 도가니는 무슨 도가니지요? 저기 뭐꼬 보자. 아따 나는 ○뭣이고? 저기 ○○○교회, 뭐 이고, 이름이? ○○이 ○○이 한번 대답해 봐.
무슨 도가니야? 무슨 도가니에 녹이니까 그것만 따글따글하게 거기 남았지? 그 도가니에 대고 구워 보니까 그 도가니는 나쁜 것만 남았는데 그 도가니에 구워 보니까 전부, 자기중심, 악령, 악성, 악습의 신학자, 목사, 악습의 목사 악성의 목사 또 악령의 목사만 남고 나머지기는 다 없어져 버렸어. 그 도가니가 무슨 도가니지? 신사참배 도가니 신사참배 도가니.
이렇게 말해도 모르면 심령이 어둡다 그말이오. 벌써 그거 말하면 다 알아야 돼요. 신사참배 도가니에다가 들이 구워 재끼니까. 구워 재껴 버리니까 다 없어져 버렸어. 이제 다 어디로 없어졌느냐? 망명해서 없어졌고, 감옥에 들어가서 없어졌고, 돌아다니지만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지 못하도록 해서 없어졌어. 없어 졌어.
평양에 있는 오행선 장로님이 있었는데 그 장로님은 그때에 신사참배를 운동하고 다녔습니다. '아무도 신사참배하지 마라. 신사참배 하지 마라.
신사참배 하지 마라. 신사참배 하면 안 된다. 신사참배 이거는 우상숭배니 하지 마라.' 이라면서 평양 시내에 돌아다녔습니다. 돌아다니니까 그 오행선 장로님이 없어졌어. 그래 돌아다니니까 전할래야 전할 데가 없으니까. 그러니 전할 데가 없으니까 전해 봤자 안전한 거 한가지라. 그때 왜 그 장로님이 외쳤는데 전할 데가 없습니까? 듣는 사람이 없어. 그 오행선 장로 저 서상에 가서 일하는 분이 오행순이가, 오행선이가? 그 형이라요. 그 오 장로님 형이 저 평양에서 그렇게 했는데 그분은 돌아다니면서 복음 전했습니다. 복음 전하는데 들을 사람이 없어.
아예 저 있다가서, 보면 전부 사복을 하고 있는 형사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저 오 장로하고 악수만 하면 딱 잡아갑니다. '하 요놈은 사상이 딴 놈이다.' 잡아갑니다. 이라니까 오 장로가 오면 사람이 피합니다. 저 오 장로가 저기 오면 인사 할까 싶어서 보니까 저기 오면 이래 모르는 척하고 이래 피해 가고. 좀 간좀 큰 사람은 '아, 장로님 안녕하십니까?' 이라면서도 손만 잡으면 일나기 때문에 '보자. 손잡는가 보자.' 인사하는 건 잡을 수 없고 손 잡는가 보자' 손 잡으면 잡을 터이니까 손을 못 잡고 달아났습니다. 그러니까 이래 떡 가면 그만 저기 오다가서 오 장로님이 이리 썩 길을 가면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다 바로 와도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다 이리 다 피했어. 이리 가면 저리 가고 저리 가면 이리 가고, 다 피해 가 버린다 말이오. 피해가고, 좀 담대한 사람들은 와 가지고 오 장로 님 보고 '아 장로님 안녕하십니까?' 이라고 난 다음에 그래 반가워서 손 잡을라고 손을 내면 그만 이래 가지고 도망쳐 버리요. 이라니까 만날 사람이 없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이제 신본주의는 다 갇혀서 없어져 버렸고, 못 견디니까 외국으로 망명해서 없어져 버렸고 또 그 자리에서 전하는 사람들은 사람들이 다 꾀해서 없어졌고 이래 없어졌습니다. 신사참배 때에 그때 그렇게 됐어.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런 도가니를 가지고 자꾸,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하시는 것이라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신앙생활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을 요구하시는고 하니 악습을 죽여서 악습을 원수로 삼아 가지고 악습을 떠나면, 악습을 죽이면 그 뒤에 악성이 조그매씩 죽기 시작하고. 악성이 죽으면 그 후에는 악령이 내게서 조금씩 쫓겨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이오. 그러기 때문에 일반 신자들을 무엇이 들어서 죽입니까, 악령이 죽입니까, 악성이 죽입니까, 악습이 죽입니까? 무엇이 믿는 사람들을 제일 많이 죽인다고. 많이 죽이는 숫자가 뭐이라고 생각합니까? 뭐이라고 생각합니까? 이거 참 잘 알았는데. 악습입니다.
악습이 제일 많이 죽여. 악습이 죽이는 양이 제일 많습니다. 그 다음에 악성이 나타나기 전에 악습이 다 죽였는데 뭐 악성이 나서 일할 게 뭐 있습니까? 악성이 나타나기도 전에 악습이 다 들어서 그 사람 다 행위를 다 죽여 버렸는데, 악습이 들어 다 죽여 버렸는데 악성이 나와 일할 것도 없어. 악습을 다 죽이고 나면 그 다음에는 누가 나옵니까? 악성이 나옵니다. 악성이 나오는데 악성을 다 죽여 버리면 그 다음에는 뭐이 나옵니까? 악령 이놈이 저 혼자, 제 군대가 다 없어졌으니까 제 군대가 다 없어지니까 악령 이놈이 저 혼자 자꾸 침해합니다.
침해를 해서 천로역정에 말하기를, 믿는 기독자가 천국에 오른 발을 떼 놓고, 아, 왼발인가 오른 발인가? 그 오른 발이라 했소 왼발이라 했소? 예? ○○○ 목사님 잘 알건데. ○목사님은 백과 사전이라. 그런데 대해서는 잘 기억하고 있어. 인제 그런 거 지금 기억하지 말아요. 더 좋은 거 기억해요. 그거는 암만 기억해 봐야 소용 없어. 책보따리지. 한 발자국 떼 놓고 마지막에 발자국을 다 들여 놓을 때까지 악령은 따라와 가지고 그때도 한번 해 볼라고 합니다.
이라다가 두 발자국 마저 다 들어가서 천국문을 탁 닫아 버리면 악령이 '아이구 인제 헛일 했다' 하고 나자빠진다고 했습니다. 참 아주 천로역정, 신앙의 사람이 기도 중에서 쓴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 사람들도 다 그렇게 평신도도 악습 신자 있고, 악성 신자 있고. 악령 신자 있으니 악령 신자가 최고의 신앙가요, 최고의 신앙가인데 그것들을 가리켜서 육백 육십 육이라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이래서 악습과 악성과 악령을 이것을 반대하고 죽이고, 죽이고 진리의 신앙가 진리의 신앙가. 진리의 신앙가는 무엇이 진리의 신앙가인고 하니 이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는 신앙가를 진리의 신앙가라 합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의 신앙 아무리 자기가 주장을 하고, 자기가 주장을 하고 지금 자기가 만일 신학교 교장이 돼 가지고 자기가 진리를 주장을 이렇게 했습니다. 이렇게 했는데 하고 나서 보니까, 나중에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이래 보니까 이래 보니까 '아 요거는 성경 말씀대로가 아니다. 성경대로가 아니다.' 성경대로가 아니다 할 때에 그때 '아, 성경대로 아닌 것을 내가 다른 사람에게 가르쳤다.' 가르쳤다 하면서 그때 그것을 자기 교장 명예도 있고 교수 명예도 있지만 '요거는 성경대로 가르치지 안했다' 하고 그것을 탁 취소를 하고 '내가 이것을 그렇게 가르치지 안했으니까 이것을 내가 회개를 합니다. 자복을 합니다.' 그것을 그렇게 말을, 선전을 하고, 자기가 기회가 있으면 그것을 자기가 말한 데까지, 나타난 데까지 해서 자기 저서가 있으면 저서에 기록하든지 그리 아니면 이런 뭐 기독교 신문에나 발표를 해 가지고 그렇게 하는 사람 '요거 틀렸다' 그 사람은, 고게는 자기의 이제까지 자기중심의 잘못 깨달은 악습적인 교리와 신조가 있었는데 그것이 그 자리에서 대번 죽어 버리고, 그 다음에는 자기가 그 악성적인 교리와 신조를 가졌었는데 그것을 그것도 그만 죽여서 넘겨 버리고, 고라면 그 다음에는 악령 남았는데 악령이 왕노릇 할 수 없으니까 악령이 그 사람을 주관하지는 못하지만 평생 따라다니면서 악령이 그 사람을 침노하기는 침노합니다. 자꾸 건드려 보고 짤박짤박하면서 지금이라도 어떻게 해 먹을 수가 있을까 해서 그렇게 달라듭니다. 달라드는데 언제까지 달라 든다고 했습니까? 예? 천국문을 열고 두 발자국 다 들여 놓고 문 착 닫으면 그때 손 뗍니다.
그때까지는 달라듭니다. 이것을 알아야 돼요.
이러는 사람 있고 어떤 사람은 자기가 이제까지 해 놓은 것이 지금, 말해 놓은 것이 그게 다 자기 행동한 건데 그것이 말하자면 자기중심의 행동하는, 자 성경대로가 안 된 교리를 가르쳤으면 그 교리는 그거는 악습 교리입니까 그것은 하나님 중심의 바른 교리입니까? 바르지 못한 교리 아니겠소? 그런데 그걸 그 악습 교리를 자기가 그것을 '아. 이거 틀렸다.' 할라 하니까 무엇이 죽습니까? 무엇이 죽지요? 저 ○○교회 조사님, 악이 죽어? 자기. 그래. 자기가 죽는데 그때 고게는 표시하기를 '악습 자기'라고 붙여요. 그래야 똑똑히, 이름이 똑똑하지. 악습 자기, 악습 자기가 죽어. 악습 자기가 죽어.
그런데,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교인과 서기관들이 다 있으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죽일라고 도모한 것이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이 옳다 하는 것을 그들이 인정을 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네? 그들이 인정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성경 뭐라고 보요? 인정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 예수님을 그 오실 메시야로 인정을 했습니까 안했습니까? 인정했지요? 인정했어.
인정했으면 왜 예수님을 메시야로 영접하지 왜 영접을 안 했습니까? 왜 영접 안 했습니까? 영접 뭐 때문에 영접 안 했지요? 악습이 절단날 것이기 때문에 악습 절단나지 않기 위해, 악습을 애껴서, 악습이 뭐인데? 악습이 누군데? 자기, 악습 자기, 악습 자기 죽이지 않기 위해서 예수를 죽여 팔았습니다, 이걸 여러분들이 알아요.
오늘도 내가 뭐 시장판이라 하니까 무슨 시장 이야기하노 지금 이래 말하는데.
이거 넓은 범위서 좀 이렇게 알려 주기 위해 하려는데 엉뚱하게 '또 시장 무슨 시장이라 하노? 뭐 명태가 있나, 청어가 있나? 뭐' 그런 그렇게 생각하니까 도인들이 아니라 그말이오. 도를 들을라고 하지 안해. 도를 들을라고 하는 사람은 내 입에서 사투리가 나오든지 뭐 그 단어에 무식한 말이 나오든지 뭣이 나오든지 그거 냅두고 어떤 목사 하나, 내가 공과를 가르치면, 공과를 가르치면서 그 공과에 요새 자꾸 신식 말하는 것을 그걸 모르고 나는 엉터리 이래 말해서 표준말 하지 못하고 이라니까 그 사람은 듣기를 표준말 거기에만 가치를 두고 있는 거라. 표준이냐 사투리냐 고게만 가치를 두고 있다가, 그러니까 요래 딱 보니까 '아, 사투리 한다. 가치 없다.' 이라니까 그 사람은, 표준말에다가 가치 두는 사람은 표준말을 따라 가기 때문에 표준말의 목사가 될 것이야. 표준이거나 사투리거나 이제 진리에다가 가치를 둔 사람은 뭐라고 말하든지, 큰 소리로 말하든지 작게 말하든지 뭘 말하든지 진리에다가 가치 둔 사람은 진리를 따라갈 것이라 그말이오.
여기서도 좋은 음성에 가치를 두는 사람, 그거도 가치 있지요. 큰 소리에다가 가치를 두는 사람, 또 용기에다가 가치를 두는 사람, 또 그 단어와 술어에다가 가치를 두는 사람. 문장에다가 가치를 두는 사람, 지식에다가 가치를 두는 사람.
진리에다가 가치를 두는 사람, 인제 그 위에는 없습니까? 그 외에는 뭐이 있어? 영감, 영감에 가치 두는 사람.
'아, 그 사람이 아주 웅변적이다. 성대도 좋다. 말도 아주 신식 말을 쓰고 유식한 말을 쓴다. 좋다. 그런데 진리가 없다. 아, 내가 소망하는 거는 없으니까 나는 가야 되겠다.' '아, 그 사람이 모든 거 다, 말도 없고 유식도 없소 문자도 없고 또 모든 이 세상 모든 소식통도 없고 그런 거 없는데, 그거야 뭐 없어도 내가 그거 목적하고 온 거 아니기 때문에. 진리가 있다. 아, 진리가 있다.
이러니 내가 진리를 바라고 왔기 때문에 진리가 있으니 내가 수입할 것이 여기 있다. 내가 수입할 것이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진리가 있다. 아, 진리는 있는데 보자. 보자. 진리는 있는데 거기에 영감이 나오느냐? 이래 가지고 그 사람은 가치를 영감에다 뒀기 때문에 영감에다 뒀기 때문에 이제, 진리를 듣는데, 진리는 있어도 영감이 없어요. '아, 내 소망하는 거는 없으니까 내가 가야 되겠다.' 가버리는 사람 있고, 또 이제 영감이, 다른 뭐 진리는 그 사람이 많이 못 하고 진리는 가끔 가다가 한 마디씩 말하고 이렇게 모두 다 세상 말하고 진리는 한 마디씩 하는 데도 영감이 있다.
그러면 영감은 뭐이 영감입니까? 영감은 우리에게 그 진리를 확고히 알게 하는 것이 영감이요, 확실히 믿어지게 하는 것이 영감이요, 그렇게 간절한 뜨거운 소원을 가지게 하는 것이 영감이요, 그렇게 할, 단행할 용기를 나에게 불어넣어 주는 것이 영감이니 '아, 여기는 영감이 있다.' 여기는 웅변은 들을 것도 없고 열변은 들을 것도 없고 유식은 들을 것도 없고 뭐 여기는 그런 거는 없지만 진리는 있다. 여기는 진리는 있지만 영감은 없다. 영감은 뭐이냐? 영감은 능력입니다. 바로 영감은 지난밤에 말한 거같이 오늘 아침에 영감 말하려고 하다가 지금이라고 있는데-영감은 하나님, 자존하신 하나님, 자존하신 하나님 한 분이 꿈틀 움직일 때에 하나님이 역사할 때에 그 역사하는 역사를 가리켜서 우리에게 가리켜 말씀하시기를 뭐이라 했습니까? 영감. 이걸 알아요.
이래서, 이 장터와 마찬가지로 자기가 말해 놓은 것이 그것이 자기 말해 놓은 것이 악습이 말한 사람은 그 악습 그것을 죽이지 않기 위해서. 없애지 않기 위해서 진리를 내 놓습니다. 진리 내놔. 자기가 이제까지 악습은 뭐이냐 하면 이제까지 그 교리를 말했고. 그 신조를 말했고 그 주장을 말했고, 또 배운 것이 그거고, 들은 것이 그거고 말하는 것이 그거고 그거라 말이오. 이제까지 내가 배운 교리와 신조가 있어. 교리와 신조가 있으니까 이제 그걸 가지고 써먹었고, 내치 그걸 가지고 말했고, 그것만 주장했고 이랬는데, 이랬는데, 아! 가다가 보니까 자기가 성경을 보고 깨닫고 보니까 틀렸다. 자기 혼자 성경을 보고 깨달았든지 누구한테 배워서 깨달았든지 깨달았을 때에 이것은 틀렸다. 틀렸다 할 때에 그때에 틀렸다고 하면 자기 위신이 절단날 것이고, 자기가 이제까지 가르쳐 놓은, 점령해 놓은 모든 악습의 뭉텅이가 절단이 날 것이고 점령해 놓은 사람들이 제자들이 절단날 것이고, 권위가 절단날 것이고, 지위가 절단날 것이고, 많은 사람의 신빙이 절단날 것이고, 이러니까 '자. 이 깨달은 게 이게 옳기는 옳은 데, 내가 이제까지 이 주장을 해놨는데 이게 옳으니 어떻게 되나?' 이래 가지고 '옳기는 옳지만, 옳기는 옳지만 이게 옳다 하는 날이면 내가 교인들에게 언제는 그래 가르치더니만 지금 잘못 가르쳤다 하는 거 보니까 목사 신임 못 하겠다. 실컷 몇 해나 주장해 놓고 틀렸다 이래 하는 것 보니까 저 목사 따라가다가는 큰일나겠다 이래 가지고 교인들이 흔들리고 인제 이러겠으니까 안 되겠다.' 이래 싶어서 그것을 할 수 없어 그렇지만 이 교리를 다른 사람이 말했으면 '아, 목사님은 이래 말하는데 거기는 이래 말하니까 다르네요?' 이랄 때에 그게 옳기는 옳은데 이걸 내가 옳다 하는 날이면 이게 다 무너질 터이니까 할 수 없어서 이걸 옳다 소리하지 못하겠고, 이게 옳다고 주장하고 옳다고 주장할라 하고 보니까 저기 틀렸다고 주장할 수밖에 없으니 그때에 옳은 걸 틀렸다고 주장하고 틀린 걸 옳다고 냈던 바람으로 주장을 해 가지고 그와 같이 나가는 것은 그것은 무슨 행동입니까? 그게 무슨 행동이요? 악습 행동.
대답으로 큰 소리는 안 해도 악습 행동이라고 말하는 게 좋고, 또 큰소리로 대답하면 다른 사람들도 모르는 사람들도 따라서 합니다. '악습 행동' 이라는데, 여기서 말할 때 '고거 맞습니다. 악습 행동이 맞습니다.' 이라면 '아 나도 그렇게 믿어야 되겠다.' 이랄 수 있어. 그래 가지고 자기가 악습보다, 악습은 이제까지 생활해 나온 것이 그것이 악습인데 자기중심의 생활인데 악습보다 진리를 높일 때에 그때에 그 진리가 자기와 하나가 되는 것이지, 악습만치 못 높이고 자기가 이용해 먹기 위해서 악습을 얼마든지 이용해 가지고 자기를 위하는 악습으로 진리를, 악성으로 진리를, 악령으로 진리를 이용해 먹는 그 자는 하나님과 원수되는 것이지 하나님이 그에게 이용을 당하지 않습니다.
이용하는 줄 알아도 이용을 당하지 많습니다. 요런 일 하던 것 오늘 회개 다 하십시오. 회개를 해야 돼요.
이래 가지고 장터라 말은 뭐이냐 하면 장터에 십 원짜리를 갖다 놓고도 십 원짜리 기계, 십 원짜리를 갖다 놓고도 말하기를 이 십 원짜리를 갖다 놓고 십 원짜리 반지 갖다 놨습니다. 십 원짜리 반지를 갖다 놓고 팔면서 '이게 돈은 십 원입니다. 돈은 십 원이지만 이게 얼마나 좋습니까? ' 그 사람이 설명을 하기를 금반지 낀 사람이 있다가서 '아이구 이건 더럽다. 저걸 사야 되겠다.' 할 만치 그렇게 혹하게 설명을 합니다. 설명을 해. 설명을 하는데 이제 야만인들은 '그까짓 거 무겁기만 무겁지 그것보다 이것이 훨씬 낫습니다.' 이렇게 설명하는데 지금은 설명은 그래는 못 해. 그래는 못 하고 '금반지 나쁩니다.
이게 좋습니다.' 이렇게는 말을 못 해도 이 반지 좋다고 뭐 설명을 얼마든지 할 수가 있다 말이오. 자유로 할 수가 있다 말이오. 그래 가지고 요새는 또 선전도 정가 이상을 하면 안 된다 그것도 제재가 지금 나오는 같습디다. 나오나 또 그걸 그대로 좋다 하는 거야 뭐 뭐 좋다고 하는 거는 그대로 좋다 말이지. 이십 원짜리는, 십 원짜리 좋습니다. 좋습니다. 만 번 해도 관계없어. 만 번 해도, 왜? 법에 잡아 놓고 '야 이놈아 네가 그걸 좋다고 자꾸 이래 만 번이나 말을 하니 사람들이 미혹을 받는다.' '아, 이거는 이것만치 좋지, 좋다 소리 못할 게 뭐 있냐' 그 법에서도 제재할 수가 없어. 그렇지 안해요? 인제 이게 장터라 말이오.
이거 장터와 마찬가지로 오늘 예수 믿는 가운데서는 전부 옳았든지 조랬던지 제것을 이제까지 팔았던 악습이 있기 때문에 그놈이 절단날 것이기 때문에 이거를 고치지 못하는 자는 그것이 악습을 섬기는 사람이 되고 악습을 따라가는 사람이오. 악습이 그 사람에게 우상이 되고 악습이 그 사람의 하나님이 돼 가지고 있지. 그 사람에게 악습이 그 사람의 하나님이 됐고. 악성이 하나님 됐고, 악령이 하나님 됐지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그의 하나님은 되지를 못한 것입니다.
그런고로, 자, 그럴 때에는, 그럴 때에는 우리가, 틀리지 안한 사람이 없습니다. 틀리지 안한 사람이 없어. 인간이 완전입니까? 틀리지 안 할 수 없어.
없기 때문에 가르쳤다가 잘못 됐을 때에는 얼른 그것을 광고를 하든지 말을 해 가지고 해야 됩니다. 잘못된 거 했으면 그 시간에도 말해야 됩니다. 그 시간에 했으면 시간 지나가지 안하고 뭘 잘못 가르쳤으면 그 시간에 잘못 가르친 것을 그 시간이 지나가기 전에 고게서 말을 해야 됩니다. 고게서 말을 해 가지고 그것을 고쳐 버려야 되지 잘못 하면 자기 악습을 살리려 하다 보면 주님을 배반하게 되고 악성을 살리다 보면 주님을 배반하게 되고, 악령을 섬기다 보면 주님을 배반하게 되기 때문에 이것이 뚤뚤 뭉쳐서 옛사람 자기, 자기 아닌 자기 자기를 죽인 자기, 이것이 자기 아닌 자기, 옛사람 자기인데 이놈을 부인하지 안하면 예수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주님이 한 마디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는 장터에 장돌뱅이 신앙을 다 회개하자 하는 것입니다. 장돌뱅이 신앙을 회개하자. 오늘까지 내가 주장을 하고 오늘까지 교인들을 그렇게 가르쳤다 할지라도, 가르쳤다 할지라도 이제 그게 틀린 줄 알면 솔직하게 '이거는 틀렸다. 이게 더 좋고 내가 성경을 보고 깨달으니까 요래 깨달은 거보다 이게 더 좋다.' 그렇게 스스로 깨달은 것이라도 밝혀야 자기가 시험에 들지 안하고. 다른 사람에게 배웠으면 '나는 요렇게 깨달았는데 아무것이는 요렇게 깨달아서 가르치니까 그분은 나보다 깨달음이 낫다' 이제 하면서 자기를 푹 낮춰 가면서 이렇게 하는 사람이 시험에 들지 안하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 자, '요거 내가 성경을 요렇게 가르쳤더니만 오늘 새로 깨닫고 보니까 이것보다도 요렇게 깨달은 것이 잘 깨달았는데 과거에 깨달아 가르친 것은 이것은 잘못됐다.' 하고 그렇게 하는 목사를 환영할랍니까. 이제 잘못 깨달음이 되고 바로 그 다음에 깨달은 것이 더 좋아도 그전에 잘못 깨달았다 소리를 하지 안하고 그것을 그대로 빈적빈적 주장을 해 가지고 요리 빈적거리고 조리 빈적거리고 빈적거려 가지고 딴걸 둘러 맞추기는 맞추지만 그때 요렇게 말했지만 그것은 사실 결과는 요렇고 요렇고 요렇고 요러니까 요런 것이다 해서 자기가 잘못 됐다는 것을 요리조리, 뭐라더라? 캄푸라지라던가, 캄푸라지라던가, 캄푸라지를 해 가지고 그렇게 하는 그 목사 속에는 뭐이 들어 있느냐 하면 그 악습 그것을 이별했소 악습을 지금 잘 안보하고 있소? 악습을 안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봐요? 저 뒤에도. 네, 맞았어요.
그러면 악습을 안보하고 있는 목사를 대우하겠소, 악습을 딱 죽이는 그 목사를 대우하겠소. 어떤 목사를 대우하겠소? 악습을 그렇게 안보해서 지키는 목사를 대접할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봐요. 그런 목사는 배척하고, 배척 안 해도, 고 건으로써는 멸시를 하고 '저 목사님 틀렸다' 멸시를 하고 그것을 딱 죽이는 목사를 존대할 사람들 손들어 봐요.
여러분들, 이것만 가지면 됩니다. 이것만 가져도 여러분들이 살아나는데, 이라면 목사가 자꾸 고치는 목사가 될 터인데, 이제 그 목사를 완전자로 알고 목사가 뭐 틀렸다고 고치면 그만 비쭉거리고 멸시를 하기 때문에 아예 또 안 고칠라 한다 말이오. 여러분들이 목사 죽이고 목사가 여러분들 죽이고 다 서로 다 죽이요. 그런 짓 하면 안 돼요 이제는. 인간이 뭐 완전자가 있습니까? 완전자가 없어. 백목사도 틀린 거 있으면 그 서부 교회 강단에다가 이거 잘못됐다고 자꾸 말을 합니다. 자꾸 잘못됐다고 말을 해요. 그러니까 잘못하고 난 다음에 그만 잘못됐다고 말 안 하는 것은 큰 병, 또 잘못된 걸 잘못됐다고 하기를 부끄러워하지 안하고 아무나 따나 이래 놓고 '잘못됐습니다. 아, 잘못됐습니다. 이거 잘못 됐습니다.' 그렇게 잘 못됐다는 것을 수치로 모르고 날뛰는 그것은 더 병신 더 고장이라 그거라.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때에 증거했으면 그것이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기 때문에 그 증거한 것이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에 가서 심판을 받을 것인지 안 받을 것인지 그것을 우리가 알아서 신중히 해야 되지 그것을 신중히 하지 안하고 일시 사람들에게 인기만 끌기 위해서 한다는 것은 참 아주 어마어마한 자살 행위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장돌뱅이의 이런 신앙들을 우리가 가지지 않도록 하입시다.
장돌뱅이 신앙은 자기가 이제까지 주장하던 거 자기가 이제까지 말하던 거 이제까지 행동하던 거 그것이 암만 틀린 줄 알아도 버리지 안 하고 자꾸 그것을 좋다고 말하는 것이 그게 내나 죄짓는 사람이 죄짓는 것을 나쁘다고 회개하지 안하고 자꾸 짓는 그것이나 그 틀린 것을 틀린 줄 알고도 그것을 자존심상 자꾸 주장을 하고 나가는 것이나 그 둘다 같은 종류는 종류인데, 안 된줄 안 행동을 자꾸 하는 것은 자기 혼자 죽고 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영향은 조금 미치지만 교리는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기 때문에 잘못된 교리인 줄 알고 잘못 깨달음인 줄 알고도 그것을 고치지 안하고 그걸 주장하는 사람은 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자입니다. 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자요. 우리가 똑똑히 알고 살아야 돼요.
그러기 때문에 장터 돌뱅이 신앙을 회개합시다. 자, 고함을 질러서 장돌뱅이 신앙을 회개하자! 장돌뱅이 신앙을 회개하자! 이것을 우리가 가집시다. 가지고 여기서 여기서 이 말씀에서 새로와진 것을 더럽히지 말고, 이 예배시간에 새로와진 것을 더럽히지 말고 고게서 또 더 새로와지고 더 새로와지고 더 새로와지는 가운데에서 모든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말미암은 것은 자꾸 치료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이 무능한 것도 악령 악성, 악습으로 말미암아 무능하게 된 것이고, 우리의 마음의 병도 다 악령, 악성, 악습으로 말미암아 마음병이 든 것이고. 또 마음의 병이든 것이고 -마음의 병을 뒤에 시간 있으면 한 번 더 말하겠습니다.
-또 우리의 몸의 병도 악령 악성 악습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몸의 병들이 생겨진 것입니다. 이러니까 그 사람이 지금 팔을 펴지를 못하고 항상 요래 가지고 있는데 이 병신된 거 병 이거 쏵 잡아 떼 버렸으면 팔 펼 수 있어요 없어요? 팔 펴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악령, 악성, 악습의 이 모든 것만 쑥 잡아 빼 버리면 완전 사람이 됩니다. 이라면 이제 죄 없는 사람이 됩니다. 죄 없는 사람이 되고 사망 없는 사람이 됩니다. 거기에다 성령과 진리와 주의 피 이 세 가지를 채우게 되면 그 사람은 완전한 사람이요, 온전한 사람이오. 온전한 사람이오.
이래서,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이 성경 "이는" 내나 성경 말씀을 말합니다. '이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아, 성경이 말했는데 왜 부인을 합니까? 하늘에 있는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온전하라 하는 이것을 주석에 주석하면서 이 성경이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한다고 온전케 하기 위해서 성경 말씀이 나타났는데, 이 성경 말씀 안에는 그 모든 역사들이 다 있는데, 나타났는데 사람들이 이것을 소망해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서도, 지난밤에 그것을 말씀했는데 우리가 온전한 사람이 될 이 소망을 가지지 안했다면 이 죄를 회개해야 됩니다. 우리가 온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를 믿는 것이요, 주님이 중생시켜서 피로 구속하신 것도. 영감과 진리 준 것도 온전한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이 역사를 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사람 온전, 사람 온전을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하신다는데 왜 안 된다고 자꾸 그와 같이 지금, 믿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온전한 사람으로 할라 했다 요거 믿는 것이 믿는 거 중에서도 아주 보배로운 믿음인데, 이걸 믿지 안하고, 사람이 완전할 수 있나? 사람이 완전할 수 있나? 땅에 뭐 완전한 것이 있나? 그따위 소리를 많이 합니다. 왜? 사람이 완전할 수 없으면 하나님이 거짓말쟁이 될라고? 사람이 완전 될 수 있는데 사람들이 부족해 그러니까 이제 완전 될 수 있는 이 소망을 가지고 어쩌든지 완전 되도록 자꾸 노력을 해야지. 아예 절망을 가지고 낙망을 가지는 이것이, 이거는 죄 아닌 줄 안다 말이오. 떡 의수히 '땅 위에 뭐 온전이 있는가? 사람이 온전이 있는가? 사람이 온전할 수가 있는가?' 이것을 말하면서 신사적으로 말합니다. 신사적으로 말해. 그라는 저는 신사적이고. 이제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은 온전을 목표로 하고서 하나님도 그랬고 우리 목표도 온전이다 이라면 교만하다! 이렇게 말합니다. 왜 교만이라? 그 사람, 그렇게 말하는 사람 교만이라 하면 하나님도 같이 교만이라 하는 말이 되지. 하나님이 교만하요? 이걸 회개해야 돼요. 예수를 바로 믿어야 돼. 바로 믿어야 돼.
이래 믿기 때문에, 왜정 말년에 신사참배가 될 때에 선천 고을에서는 예수 안 믿는 집이 뭐 네 집 밖에는 없었다고 말하는데 그 뒤에, 그 목사님한테 말 들으니까, 그 외에는 다 믿었는데도 신사참배할 때 '신사참배 안 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어. 내가 또 그 목사님 이름 성을 들었다가 또 잊어 버렸다. 무슨 목사? 서울 ○○교회 ○○○목사, ○○○목사님 동생이 뭐이더라? 그 목사님이 말해요. 그렇게 산천 고을에 많은 사람이 믿었지만 이렇게 삐뚤어지게 믿었기 때문에 신사참배 때에 이거는 전부 다 보니까 전부 이 악습자, 악성자, 악령자지 하나님을 다 부인해. 저보다 하나님을 못하게, 하나님 없다는 사람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알지요. 하나님 알지만 저보다 하나님을 못하게 여겼고, 저를 하나님보다 높이 대우했다 말이오. 제가 희생되는 데는, 하나님이 희생되고 제가 희생될 수 없기 때문에 제가 남아 있기 위해서 하나님을 버렸다 그거요.
야고보서에 말씀하시기를 '마귀도 하나님을 알고 떠느니라' 왜 떨어? 하나님 알기는 우리 만치 모르는 줄 압니까? 우리만치 알지요. 왜 떨어? 저 안 죽을라고 떨지. 그러니까. 이제 하나님 말씀은 너 죽고 하나님 살아라 너는 죽고 하나님 살라 하는 것이니 제가 죽기 싫으니까 떨지. 그걸 그러기 때문에 마귀 신앙가들이 전부 왜정 말년에 신사참배한 거는 다 마귀의 신앙가들이라 그말이오. 마귀 신앙가들. 다 자기 살기 위해서 하나님의 진리도 다 버려 놓고 난 다음에 신사참배는 뭐 국가 의식이니 뭐니 이래 가지고 천조 대신 이름으로 세례도 받고 이렇게 해 가지고 한 그거다 마귀 신앙이라 그말이오. 마귀 신앙.
하나님 알지요 하나님 아는데. 하나님 아는데 비위에 맞지 안하지요. 하나님 알라 하니까 자기를 부인해야 되겠고 하나님 높일려 하니까 자기를 낮춰야 되겠고, 하나님 인정할려니까 자기를 부인해야 되겠고, 이러니까 전부이 자기 차지하고 하나님 부인하지 안했습니까? 이러니까 잘못 믿은 것을 잘못 됐으면 바로 고쳐야 된다 그말이오. 바로 고쳐야 돼요.
제가 대구에서 대구 교회들이 많았지만 대구 교회에서 신사참배에서 그때 이긴 사람이 그때 누구인지 제가 아는 사람으로서는 없습니다. 그때 무슨 목사님이 경북 노회에 속했는데, 안동에 있었던가 뭐 경주에 있었다던가 이랬는데, 그 목사님 내가 오래 돼서 이름을 잊었습니다. 그 목사님이 감옥에 들어가 가지고 해방 육 개월 전인가 오 개월 전인가 삼 개월 저인가 신사참배, 마지막에는 한다고 자기가 승인을 하고 나왔었습니다. 자기 부인이 와 가지고 쏙삭쏙삭하니까, 자꾸 충동하니까, '하, 이제 교회서 뭐. 교회서 지금 우리를 사택에도 못 있도록 쫓가냈고. 또 이렇고 이렇고 자꾸 이래 이래 마구 이래 자꾸 이래 자꾸 불어대니까 그만 이 목사님이 그만 그 마누라 미혹에 들었다 말이오.
'그래 참 섭섭한데. 섭섭한데, 섭섭한데,' 이 섭섭이 자꾸 감사가 없어지고 섭섭이 자꾸 거석하니까 '그래. 그라면 뭐 나도 내가 가족이고 뭐고 안 돌보고 내가 그랄 수가 있나? 또 이제 진리 좀 지키는 교인들은 매장을 당하고 이런 것들이 다 머리를 들고 이라니까 내가 그럴 수야 있나? 내가 나가지. 뭐 내가 좀 구원에 좀 이거 뭐 패전하고 나가지. 내가 나가면 그까짓 거 당장에 이래 가지고 떡 자원 해서 백지 마누라 말 듣고 누가 고문도 안 주는데 떡 그래 가지고 고문에 그런 것도 아니고 마누라 말 듣고 이래 가지고 소리해서 '나 지금부터 내가 말을 들으니까 교회들이 다 이와 같이 있으니 나도 이제 나가 가지고서 한번 하겠습니다. 나 신사참배 자원해서 하겠습니다.' '아이구 그렇습니까?' 그래 가지고 그 목사님 일본에 유람까지 보내고 막 이랬는데 그래 나가 가지고 떡 나가니까 '이제 목사님이 지금 나가십시오. 나가면 그 교회에 우리가 협조하고 응원할테니까 그 교회에 목사님 주장에 만일 반대하는 게 있으면 우리가 잡아다가지고 막 때릴 겁니다.' 막 이라니까 가 가지고 이 목사님이 척 들어가니까 일사천리로 모든 사람이 벌벌벌벌 떱니다, 약발 받으면 안돼 약발 받으면. 약발 받으면. 감정을 죽이기 전에 예수 믿는 신앙을 가질 수가 절대 없는 것입니다. 감정 죽이기 전에. 요런 감정 요런 감정 하나 움직여 가지고.
이거는 뭐 암만 신앙 좋다 해도 한 번 살짝 건드려서 자기에게 조금 치이는 말 한마디만 하면 그만 빼쭉 삐꿔 가지고 그만 바꿔 가지고 진리고 뭐고. 영감이고 뭐이고, 목사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 예수 믿으면 안 됩니다. 요번에 바로 철저하게 해서 예수를 바로 믿어야 돼요.
이래서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이라다가 돈보다도 주님을, 권세보다도 주님을, 지위보다도 주님을, 의식주보다도 주님을, 뭐 자기의 건강보다도 주님을, 이라다가 제일 마지막에, 그것보다 주님을 더 사랑할 수는 없다 하는 마지막에 제일 어려운 게 뭐입니까? 저 ○선생, 예, 뭐요? 안들려. 크게 해봐. 그래, 생명. 생명이라 '다른 거는 다 내가 희생할 수 있습니다만 생명만은 희생할 수가 없습니다' 이래 가지고 생명만은 희생할 수가 없다고 하는 그것이 '생명 하나는 가지고 내가 예수를 믿겠습니다. 생명 하나를 가지지 않고는 예수를 못 믿겠습니다.' 이 사람 다 버린 사람이 요 하나 가진 사람이요? 또, 생명과 가족은 버릴 수 없습니다' 하는 사람은 몇 가지고 예수 믿는 사람이요? 둘 가지고 예수 믿는 사람. 또 생명과 자기의 가족과 돈 가지고 믿는 사람은 몇 가지고 믿는 사람이요? 세 가지 가지고 믿는 사람. 그러면 그 세 가지는 예수님보다 낫게 여기는 것이요 못 하게 여기는 것이요? 이러니까 예수님을 일호로 삼는 사람 이호로 삼는 사람 삼호로 삼는 사람, 사호로 삼는 사람, 오호로 삼는 사람, 육호로 삼는 사람 '아주 꾀 있게 지혜 있게 민첩하게 네가 세상 처세술을 하지만 심판은 너는 모른다. 심판은 모르는 너는 소경이다. 너는 소경이다. 너는 악령에게 불의에게 매여서 네 속에 악이 가득 찼다. 네 중심이 가득 찼다.' 이래 가지고 예수 믿는 것도 이용하는 자 어리석어.
이러기 때문에 하나라도 가지고는 못 삽니다. 이것을 성경에 말씀했습니까? 성경에 말씀해 놨어요? 어디 말씀해 놨어요? 예? 뭐 누가복음 어디? 누가복음 14장에 뭐라고 했소? 뭐라고? '있는 것을 다 버리지 안 하면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말씀했습니다. 제자가 된다 말은 예수님과 같이 된다 그말이오 다 버리지 안하면 예수님과 같이 되지 못한다 그말이오. 우리의 목표는 예수님과 같이 되기 위해서 우리가 예수 믿는 것입니다.
'사로 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하리라 '무엇이든지 하나라도 잡고는 갈 수 없다 하는 것이 이것이 우리가 제자되는 길입니다.
돈보다도 주님 권세보다도 주님 내 건강보다도 주님, 행락보다도 주님 가족보다도 주님, 내 자유보다도 주님, 목숨보다도 주님, 주님을 최고로 모시는 자라야 주님은 그의 하나님이 되시지 주님을 이등으로 모시는 자에게는 하나님은 상관없어. 앞으로 일등으로 모시는 자 되도록 하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는 것이지. 우리에게 하나님을 일등으로 모신 부분이 있어. 하나님을 일등으로 모신 부분이 뭐입니까? 하나님을 일등으로 모신 부분이 뭐입니까? 자, 따라합시다.
하나님을 제일로 모신 것, 중생된 영. 하나님을 제일로 모시는 것은 중생된 영.
우리가 목표하는 것은 이제 우리의 심신이 하나님을 제일로 모시는 심신될라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뭣이 예수 믿는 것입니까? 오늘까지 우리가 그렇게 생각지를 안하고 이렇게 어짜든지 교회 다니면서 주일이나 지키고, 의식이나 행하고, 연보나 행하고, 목사의 눈에만 들고, 목사만 좋다 하고 하면 된 줄로 알았던 그런 신앙은 다 버려야 합니다. 다 고쳐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깨닫고 놓지를 말아요.
장터 장돌뱅이 신앙 가지지 마라. 장돌뱅이 신앙. 장돌뱅이 신앙은 뭐인데? 제것 좋다 하는 것이 장돌뱅이 신앙이라. 알겠소? 그거 좋다 하는 것 이 장돌뱅이 신앙이라. 아무리 성경에 틀렸어도 틀렸다고 그 설 고쳐서 선포하지 안하고 자기 주장을 옳다고 말하는 그게 장돌뱅이 신앙이라.
아, 중생된 영이 죄를 안 짓는다 하고 죄를 짓는다고 했으면 '중생된 영이 죄를 짓는다 하는 것은 내가 잘못 깨달았다. 중생된 영은 죄를 안 짓는 다는 것이 옳다. 중생된 영이 죄를 짓는다고 주장한 것은 잘못됐다.' 이것을 선포를 해야지 이것을 선포를 해야지 이것을 신문에 내야지. 자기가 신문에 못 내면 개인에게도 말할 때 말해야지. 목사 같으면 강단에 말해야지. 자, 그라면 그 사람은 무슨 신앙입니까? 그 사람은 무슨 신앙이요? 진실한 신앙입니다.
그런 것을 자기 손해 갈까 싶어서 설설 묻어 놓고 이리 저렇게 변명을 해 가지고 이렇탁 저렇탁 해 가지고 마지막에 끼어 붙여서 이러니까 우리가 그때 중생된 영이 범죄한다 그렇게 말한 것은 이렇고 이렇고 이렇게 말 해 이런 각도로 말했기 때문에 이리이리 됐는데 중생된 영이 범죄한다는 것은 그것은 틀렸고 중생된 영이 범죄 안 한다는 것은 옳다 맞았다 요렇게 변명을 해서 끄트머리는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 하는 끝을 딱 맞춰 버립니다. 맞춰 버리면 그 사람 백점이요. 오십점이요? 백점이요 오십점이요? 자 백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손 한번 들어봐요. 오십점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봐요.
모르는 사람들 손들어봐요. 참, 암만 가르쳐 봤자 참 답답하다. 답답해요.
여기는 말해. 여기는 그러면 그 사람 속에 악이 죽었어요 악이 지금 살아 있어요? 지금 그렇게 끝을 딱 맞춘 것은 악이 그렇게 맞추고 있어요 성령이 맞추고 있어요? 악이 맞추고 있어. 악령이 맞추고 있어 악성이 맞추고 있어.
알고 살아야 돼. 알고 살아야 돼. 솔직한 것이 그것이 슬기로운 일입니다.
공연히 어리석지 말고요. 우리가 오늘 갈지 내일 갈지 모르는데 하나님의 심판을 보지 안하고 사는 것은 다 죽은 생활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보고 살아야 되지.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이제 배운 것을 가만히 생각하면서 작정을 하십시오. 작정하고 자기를 부인해, 자기 명예를 부인해요. 지위를 부인해요, 자기의 재산을 부인해요, 교회 교인을 부인해요, 교회 대우를 부인해요. 자기 목회의 지위와 권위를 부인해요, 모든 성도들의 인정도 부인해요. 이거 모든 것보다 주님이 좋아요. 이런 것을 다 내놔도 주님은 모셔야 돼요. 이거 아껴서 안 내놓을라 하다가 주님 내놓습니다.
그런 썩은 놀음하지 말아요. 썩는 생활하지 말아요 오늘이 끝날인지 모릅니다.
우리의 종말 시간은 모릅니다. 주님이 오실 때가 언제인지 모릅니다. 어리석지 말아요.
이 시간에 확실히 지난 밤에도 오늘 아침에 말한 대로 해서 고칠 거 고쳐요.
일어설 거 일어서요. 작정할 거 작정해요. 버릴 것을 버려요. 잡을 것은 잡아요.
완전히 자기를 부인할 걸로 부인해 버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