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09 01:05
영감과 진리의 능력
본문 : 요15:1-14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물질계라고 하면 이 우주입니다. 물질계와 물질계 안에 있는 모든 것과 또 영계와 영계에 있는 모든 것은 말씀이라고 이름하는 하나님이 말씀으로 영계와 물질계의 그 중에 있는 모든 것과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영계의 것이나 물질계의 것이나 그 모든 것도 말씀이라고 우리에게 이름을 선포하신 그 하나님이 영감의 말씀을 가지고 우주도 영계도 지으셨고 그 가운데 있는 만물도 지으셨고 또 우리도 지으셨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있으니' 또 '말씀이 육신이 되어' 하는 그 말씀은 진리인 말씀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성부 성자, 성자라고 하는 제이 위의 역사를 하시는, 이위 역사를 하실 때의 그 하나님의 이름을 말씀이라 그렇게 하나님이 선포해 주셨습니다.
그런고로 성경에는 말씀이라는 말씀 중에는 제이위가 되신 하나님의 이름을 가리킨 것도 있고 또 말씀이 말씀하신 그 말씀을 가리킨 것도 있고 있습니다.
제이위인 하나님을 말씀이라고 이름하신 그는 하나님이요 또 말씀이 말씀하신 그는 하나님은 아니고 진리입니다.
말씀으로 이름을 선포하신 그 하나님이 나타나셔 가지고 말씀으로 영계와 물질계의 모든 것을 다 창조하시고 또 그 가운데 우리도 창조하셨습니다.
창조하시고 그때 창조하실때에 이 심신으로 된 육은 흙으로 창조를 하셨습니다.
물질로 창조를 하셨고 우리의 영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를 하셨습니다.
창조하시고 창조된 영을 영감과 진리로 다시 영감과 진리로 생명을 주어서 산 영이 됐다 그렇게 성경에 말씀했습니다.
다른 물질은 흙으로 지으실 때에 그때에 다 물질의 생명을 다 얻어 가지고 물질 생명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사람만큼은 영이 지음은 받기는 받았지마는 영은 생명을 가지고 있지를 안했습니다. 그러면 그때 그 생명이 없었으면 죽어 있었느냐? 죽은 것은 생명을 가졌다가 생명이 없어졌을 때에 죽었다는 그런 말을 할 수 있는데 사람의 영은 지음받은 그대로 있었고 생명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죽은 영이 아니요 생명을 가지지 안한 생명이 없는 영으로 있다가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 넣었다 하는 그 생기는 곧 영감입니다. 영감으로 지음받은 영이 산 영이 됐다 이렇게 성경에 기록돼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기 전에도 말씀하셨고 부활한 후에도, 생기를 숨을 내쉬면서 성령을 받으라 그렇게 말씀을 하시는 것으로 곧 생기가, 하나님의 생기가 곧 성령이라 하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그 생기의 힘이 있으니 그 생기의 힘은 곧 하나님의 영감의 힘이요 그 영감이 나와 가지고 만물을 접했을 때에 이름을 하기를 진리라 그렇게 했습니다.
우리가 없는 가운데서 지금을 받을 때에 무엇으로 지음을 받았는고 하니 영감의 말씀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영감은 영원 자존하신 무형의 하나님이 역사하실 때에는 영감으로만 역사합니다. 영감으로 역사하는, 하나님에게서 하나님의 역사가 나올 때에는 영감이요-하나님의 감동이라 말입니다.-영감이요 영감이 나와 가지고 모든 만물을 접하려는 그럴 때에는, 접하는 역사를 할 때에는 진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가 영감으로 나타나고 영감이 진리로 영존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처음에 나타날 때에는 영감이요 한번 영감이 나타났으면 그 영감은 진리가 되어 영원 불멸의 진리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없는 가운데서 하나님이 지으실 때에 당신이 영감으로 영감하셨을 때에 그 영감이 진리로 나타나 가지고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그러면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없는 가운데서 지음을 받을 때도 영감의 진리로 지음을 받은 우리들입니다. 영감은 하나님은 아니시요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역사를 가리켜서 영감이라 그렇게 합니다. 역사가 영감이요 그 영감을 우리가 다시 우리에게 나와서 있을 때에 그 영감을 가리켜서 진리라, 그러면 논리적 순서로 말하면 진리는 영감에서 나왔고 영감은 하나님에게서 나왔다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없는 가운데서 지음을 받을 때도 영감의 진리로 지음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영감하여 그 영감이 진리로 나타나 가지고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영감의 진리로 지음받았다 하는 우리들입니다.
영감은, 영감은 하나님의 역사를 가리켜서 영감이라고 하고 영감은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완전하시고 무한하신 분이 역사하시는 그 역사가 하나님의 영감입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그 역사가 영감이요 그 영감이 바로 진리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지으실 때에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진리로 지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진리로 지었으면 하나님과 진리 그 사이는 뭣이냐? 그 사이가 곧 영감입니다. 하나님이 영감의 진리로 모든 것을 지으셨습니다.
그러면 우주도 영계도 다 그러하고 또 우리들도 영감의 진리로 지음을 받은 우리들입니다. 불택자나 택자가 다 영감의 진리로 지음을 받았는데 다만 다른 것은 택자는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지음을 받았고 또 불택자는 목적을 이루는 데에 이용하기 위해서 지은 것이 그것이 불택자인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를 영육으로 지어놓으시고, 처음에 영육으로 지어놓으시고 그 영육으로 지어놓은 영육은 지어놓으신 그대로 있었지 생명은 없었습니다. 생명이 없었으면 죽었는가? 생명을 얻었다가 잃었으면 죽었는데 생명을 아직까지도 얻지 안했기 때문에 생명 없는 영육입니다.
생명 없는 영육이 하나님께서 코에 생기를 불어 넣었다 그렇게 성경에 표시했는데 그 생기는 곧 생명, 생명, 그 생기가 있으면, 육체의 생명을 생기라고 합니다. 그러면 생기는 힘입니다. 하나님께서 힘을 불어 넣으니 산 영이 됐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은 영은 하나님의 힘으로만 살아난다, 하나님의 힘으로 살아났다.
하나님의 힘으로 살아난 그 영이 하나님을 배반하니까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지니 하나님의 힘이 그에게 끊어지니까 영은 단번에 죽은 영이 된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 사람들이 지음받은 것도 영감의 진리로 지음을 받았고, 그러면 영감의 진리, 혼자 지은 게 아니고 영감으로 역사하시고 영감으로 역사하신 그 영감이 진리로 나타나 가지고 우리를 지었는데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이 영감과 진리로 우리를 지으셨다 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영감과 진리로 우리를 지으시고 영감과 진리로 짓기만 지어놓은 우리들을 또 영감과 진리로 우리를 산 영이 되게 했습니다. 그러면 산 영이 됨으로 영은 영감의 진리의 힘으로 산 영이 됐고 영의 소유가 되어진 심신은 그 영이 산 영이 된 그 영의 힘으로 가지고 심신은 살아 활동하도록 된 것입니다.
그것이 정상적인 구조요 조직으로 된 것인데 에덴동산에서 우리 인류 시조가 하나님으로 지음받고, 하나님으로 살아났고, 또 살아난 영으로 산 육이 되어 있는 그 사람이 그만 하나님의 말씀을 그 육이 범했습니다. 하나님의 법도를, 하나님의 영감의 진리를 육이 부인하고 육이 거절해서 배반해서 영감의 진리는 사람의 육에게 배척을 당했습니다. 육에게 부인을 당했습니다.
육에게 부인을 당함으로 심신의 주격이 되어 있는 심신을 책임진 그 영은 하나님의 법도를 어기지 안했지마는 영육이 일체가 되어 았는 영의 소유인 그 심신이 하나님의 법칙을 범했는고로 하나님의 법칙을 범한 그 죄의 책임은 육의 주격인 영이 심판을 받아야 되는고로 영육이 다 한꺼번에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지게 됐습니다. 끊어짐으로써 영은 단번에 죽었습니다.
동산에서 이렇게 영감의 도리를 연결함으로 영감의 도리에 연결이 되어 그로 동하고 정함으로 영이 살았고 영이 동하고 정함으로 거게 심신이 피동되어 살고 이럴 때에 그때에 그는 다 영육이 산 사람이 었습니다.
그래서 영육이 산 사람이기 때문에 그 영이 육을 다스려서 한 모든 일이 곧 하나님의 하신 일이기 때문에 하나심이 이름을 지으라 하고, 첫 역사가 그것인데 그 역사를 다 하나님이 선하시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 역사가 하나님 중심으로 됐고 바로 됐다는 것을 발표하셨습니다.
그랬는데 심신이 영을 거절해서 하나님을 배반한 그 심신의 배반으로 인해 가지고 심신의 주격이 된 영이 주격 책임에서 정죄받았고 또 그가 하나님을 거부했기 때문에 하나님과 절단돼서 영은 단번에 죽음을 받아 죽임을 받았고, 끊어지니까 단번에 죽었고 그 심신으로 된 육은 영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와 가지고 영의 움직임으로 그 심신이 움직여서 살아야 그게 산 것인데 영이 하나님과 끊어졌고 심신은 영과 끊어졌고 이래서, 영은 존재적으로는 존재하지마는 기능적으로는 완전히 죽은 것과 같이, 없는 것과 같이 되어버렸고 그 심신은 영과 관계 없이 저 혼자 독단으로 움직이는 그것이 되어졌음으로 그의 주격이 죽었기 때문에 그것이 단번에 죽지를 안하고, 왜? 심신은 수많은 그 세포로 되어,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단번에 죽지 안하고 그 세포가 자기에게 정한 기간인 재세의 기간의 순서 순서를 통해 가지고서 한 세포 두 세포 이렇게 수많은 중복적으로 죽임을 당해 가지고서 마지막에 다 죽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서서히 죽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영과 육이 아울러 그래서 죽게 됐는데 죽게 된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택자와 불택자와 두 종류가 있어 불택자는 그대로 두시고 택자는 예수님이 대속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대속하실 때에 우리를 대신하실 때에도 무슨 힘을 가지고 대속을 하셨느냐? 예수님께서 영감의 진리의 힘으로 예수님이 대속을 하셨습니다.
영감과 진리의 힘으로 대속하신 예수님의 공로를 택자들이 입었을 때에 그때에 그 사망의 모든, 영육의 사망의 그 문제, 사망의 원인은 죄요, 죄의 원인은 하나님이 법을 정해 놨기 때문에 그 법을 어긴 것이 죄요, 죄로 말미암아 사람이 죽게 된 것인데 사망의 원인인 그 법에 까지의 문제를 예수님이 대속으로 완전히 해결을 지웠습니다.
그러니까 택함을 받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이 모든 사망에 속한 문제 해결지워 주심을 다 받은 자들입니다. 그 사람이 나기도 전에 다 받았고, 예수 믿기 전에 다 받았고, 이랬는데 이제 그 사람이 믿는 후에는 그걸 알지마는 알기 전에 벌써 우리로 말하면 지금으로 근 이천 년 전에 예수님이 대속의 공로를 베푸셨기 때문에 우리가 나기 전에 우리에게 대한 모든 것을 예수님이 하나님의 전지한 지혜로 예수님에게 부담을 시키시고 예수님이 정죄받아 예수님이 다 대신의 형벌과 순종과 화친을 가지고서 담당하셔서 대속의 그 공로를 다 입게 된 것입니다.
대속의 공로를 입은 사람이, 사람이 날 때에 대속의 공로를 입은 사람으로 출생될 때도 있고 또 대속의 공로와 상관이 없이 대속의 공로를 반대하는 그대로 출생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인류 시조가 하나님을 배반한 그대로, 본지위에서 본관계에서 타락해 가지고 있는 그 정죄받은 그대로 그 자손이 정죄 아래에서 났기 때문에 불택자들은 하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지 못하고 출생하게 됐고 택자들은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나기 전부터 벌써 입고, 본인은 몰라도 입고 출생을 한 것이 선택을 받은, 하나님 목적 안에서 지음을 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대속을 받아 대속 안에서 출생한 사람들이 세상에 나서 살 때에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대속의 공로 입힌 자를 대속의 공로 입은 그자로, 영육의 대속의 공로를 법적으로 입었지마는 아직 실상으로는 입지 못하고 있는 것을 실상을 입히기로 시작하는 그 시작한 때가 어느 때인고 하니 영감과 진리로 그 영을 살리는 것이 첫 착수입니다.
그래서 택한 자의 그 영을 성령과 진리로 다시 살리시는 그것은 이미 법적으로 이 대속의 공로를 입고 출생된 자가 하나님이 때가 되니까 당신의 기뻐하시는 정하신 뜻대로 때가, 에베소 1장에 보면은 '때가 찬 경륜으로 예정했다' 이랬습니다. 모든 때를 다 정해 가지고서 이와같이 예정한 것인데 때가 참을 따라서 성령과 진리로, 성령과 그 말씀으로, 말씀이면 진리요 진리면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요 진리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것은 하나인 것을 언제든지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의 진리라, 하나님에게서 나온 진리라. 하나님의 진리는 영감된 것이 우리에게 왔을 때에 그를 가리켜서 진리라. 그러면 영감이나 진리나 하나님의 말씀이나 그 순위가 다르고 나타난 때가 다르지 곧 하나님에게서 나온 하나님의 역사인 것입니다.
이래서, 택자들을 영감과 진리로 단번에 살렸습니다. 이것을 가리 켜서 중생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중생은 본인이 모르게 됩니다. 순전히 하나님의 역사이기 때문에 중생된 것을 본인은 모릅니다.
성경에 말하기를 '바람이 눈에 보이지 아니하지마는 바람이 부는 것은 그 나타난 결과를 보아서 동풍 서풍이라 말하는 것과 같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바람이 보이지 않는 것은 우리 육안이 바람을 볼 수 없는 우리의 시력이 거게 대해서 불충분한 것이지 바람이 안 보이는 것은 아닌데 우리 눈이 모자라 안 보이는 것처럼 성령과 진리로 중생되는 것은 볼 수 있는 것인데 인간에게는 그런 영안이 없기 때문에 다 어두워졌기 때문에 보이지 안하고 다만 바람 부는 것과 같으니 그 영이 죽었던 영이 살아난 그것은 그 사람의 행동 여하를 봐서 그 결과를 봐서 이 사람은 중생됐다 안 됐다 하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게 성경에 말씀했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남아 있는 것은 우리의 심신이 법적으로 주님이 입혀 놓으신 이 구속을 입으려고 하는 것이 우리의 지금 노력입니다. 그래서 로마인서 8장 9절 이하에 보면은 '우리의 영은 하나님의 대속의 공로로 인해서 하나님의 의로 살아난 것이지마는 우리의 심신으로 된 육은 아직까지 죄 아래 있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죄 아래 있는 이 심신이 또 지금 살아나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이 몸이 살아나는 이것이 이제 건설구원이요 이것이 성화구원이요 이것이 행위구원이라 그렇게 우리가 표시를 합니다.
자, 이것 잠마귀가 와 가지고 막 야단을 지깁니다. 여러분도 잠 오지만 나도 잠 옵니다. 잠마귀를 뗍시다. 이 눈을 떠야 되지 눈 감으면 잠이 오요. 안경이 자꾸 내려오니까 이것 이중 안경이니까 요래 내려오면 맞보기니까 먼데는 잘 보이지마는 깜깜하고, 요게 을라가면 또 먼데는 캄캄해집니다. 이러니 요게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데 자꾸,
찬송가 7장, 그만 우리끼리 합시다.
전능왕 오셔서 우리로 찬송케 하옵소서 마귀를 이기신 성 부여 오셔서 우리를 다스려 주옵소서 강생한 주시여 오셔서 기도를 들으소서 택하신 백성을 복 많이 주시고 거룩한 진심을 주옵소서
우리는 없는 가운데서 우리가 생길 때에 영감의 진리에게 지음을 받아 가지고 우리가 생겨졌습니다. 생겨지기는 생 겨졌지마는 죽은 것은 아닌데 한번도 생명을 받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지음만 받은 우리 인류 시조의 영육이 하나님의 영감과 진리의 하나님의 기운의 역사로 산 영이 되었고 산 영으로 산 육이 된 것이 사람입니다.
그러면 지음받은 것이 하나님의 영감과 진리의 힘에게 지음을 받았고 지음받은 그것이 지음받은 그대로 있으면 생명 작용은 못하는 것인데 하나님의 영감과 진리로 지음받은 그 우리의 영육이 하나님의 영감과 진리에 연결이 됨으로 산 영이 되었고 산 육이 되어 산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셋째로 에덴동산에서 계속 영감과 진리에 순종으로 살도록 하나님이 에덴동산에 거처하게 하셨습니다. 에덴동산에 거처할 때에 하나님의 영감인 그 진리에 순종하는 순종으로 살 때는 계속 잘 살고 아주 평안하고 자유롭고 또 그 기능이라 하는 것은 무한한 기능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 무한한 기능을 가졌는데 얼마나 무한한 기능을 가졌던가 하면 모든 피조물을 다 복종시킬 수 있는 기능을 가졌고 또 피조물들은 거게 복종하기를 원하고 원하는 그런 모든 존재들의 조직이 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랬는데 인류 시조가 엉감과 진리에 순종으로 살아야 할 것이 영감과 진리를 거역했습니다. 거역한 그 거역의 과정이 사탄은 우주 밖에 있었는데 그때 사탄이 우주 안에 들어와 가지고 하와를 먼저 유혹을 시켰습니다. 하와는 아담과 좀 달랐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이 직접 지으신 것이 아담이요 하와는 아담의 육을 그것을 갈라 가지고서 지어 놓은 것이 하와였습니다. 그러기에 육은 아담의 자손이 된 것이 하와요 영은 하나님께서 직접 지으셨습니다.
그러기에 지금도 여러가지로, 사람들의 영이 그러면, 육이 부모에게 유전으로 그렇게 그로 인하여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지은 것과 같이 영도 그를 통해 짓느냐? 영은 직접 짓는다는 것이 성경적으로 다 정통으로 이미 교리가 결정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에덴동산에서 자유로 살게 됐는데 하와가, 아담의 육에서 나온 하와는 주격을 가지지 안한 사람인데 하와가 배암에게 미혹을 받아 가지고 선악과를 먹은 그것이 하나님이 명령하신 그 명령을 책임자 주격 책임자인 아담이 범한 것은 아니지마는 거게 그로 말미암아 분자로 되어져서 나온 그 하와가 범했습니다. 그러나 그 범죄 가지고는 인류가 죽지를 아닙니다.
배암은 하와는, 아담을 유혹시킬 수 있는 하와는 점령을 했지마는 아담을 점령해야 할 것이기 때문에 하와에게 강하게 그가 설득을 시켜 가지고 아담을 미혹시켜서 아담이 하나님의 법령을 어겨 먹지 말라는 그 선악과를 먹음으로 그때에 아담이 범죄하게 됐습니다.
아담이 범죄한 그 과정에 논리적 순서를 말하면 아담의 그 고기덩어리가, 고기덩어리가 범죄함으로서 마음이 범죄했고, 육이 범죄함으로써 그 영이 범죄해 가지고 하나님 앞에 정죄를 받은 것입니다.
지금도 사람은 영육이 있는데 영이 주격이지마는 주격인 그 영이 세력이 강한 사람도 있고 그 육이 강한 사람도 있고 육 중에도 고기덩어리가 강한 사람이 있고, 고기덩어리가 제일 강한 사람도 있고 고기덩어리보다 마음이 강한 사람도 있고, 마음보다 영이 강한 사람도 있고, 영보다 하나님이 그에게 강한 사람도 있고 이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일 타락한 인간은 어떤 게 타락한 인간이냐 하면 하나님 보다 중생된 영이,-중생된 영은 세력을 가지지 못합니다. 하나님과 중생된 영은 하나인데.-영보다, 영보다 그 마음이 세력을 더 가진 것이 그것이 타락 전 하와입니다. 또 마음보다 고기덩어리가 세력을 더 가진 것이 제일 타락한 사람들입니다. 또 고기덩어리보다 제일 아주 그것은 인간 이하의 수성으로 돼 버린 것은 그것은 물질이 그 육보다도 더 세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살되 어떤 사람은 물질이 제일 세력을 가지고 사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물질보다는 '모든 만물이 있어도 내 몸에 건강만 못하다' 하는 사람은 제법 깬 사람입니다. 또 고기덩어리보다 자기의 양심이나 마음의 문제를 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고, 그것이 세상에서는 최고의 도덕의 사람입니다.
불택자로서는 최고의 그 가치가 있는 지혜가 있는 인격의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 그것보다 이 심신으로 된 육보다도 중생된 영이 제일 가치 있오. 권위 있다, 이래서 육 중에는 양심을 권위로, 양심 위에 양심을 지배하고 있는 중생된 영을 그 위에, 중생된 영 위에 진리를, 그 진리는 영감에서 나왔고 하나님에게서 나왔기 때문에 그를 제일 존귀하게 여기고 사는 그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범죄해서 영은 단번에 죽었고 육은 서서히 죽는 것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세상에서 나는 것이 살려고 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그 사람이 순서대로 다 세상을 통과해야 되기 때문에 세상에 와서 하나님이 정죄로 사망케 해 놓은 그 사망을 이제 완성하기 위해서 세상에 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그날부터 죽기를 시작하는 것이지 그것이 살기를 시작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그 죽음의 기한이 다 되면 다 죽으면 그것으로써 끝나는 것이 인간인 것입니다.
이렇게 일반인은 되는데 택한 사람들은 그 영과 육이 하나님의 그 역사인 영감과 진리를 배반함으로 죽게 된 그것이 하나님에게 순종치 안하고 하나님을 부인하고 거역함으로 죽은 그 모든 죽음의 그 문제를 하나님이 다시 거게서 구출하시기 위해서 사람되어 가지고 오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도성인신 해 가지고 오신 하나님은 그분이 누구시냐? '태초에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다' 하는 그 하나님이 곧 도성인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한복음 1장에는 '말씀이 만물을 지었다 지은 것이 그가 없이는 지은 것이 하나도 없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창조하시고 창조하신 하나님은 물 위에 운행하셨다 했는데 물 위에 운행하신 그 하나님이 도성인신하신 그 신성이십니다. 또 타락 했을 때에 아담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찾으신 그 하나님이 곧 도성인신하신 예수님의 그 신성의 하나님이십니다.
에덴동산으로 인도하신 이도 그 신성인 하나님이시요 에덴동산에서 범죄함으로 거게서 쫓아낼 때에는 '우리가 이것을 어찌 처리해야 되느냐?' 할 그때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를 가리켜서 우리라고 했는데 삼위일체는 한 하나님이지마는 성부의 역사가 있고, 성자의 역사가 있고 성령의 역사가 있는데 이 세 역사에서 다 이 세 역사가 합리적으로 해 가지고서 에덴동산에서 쫓아낸 그것을 가리켜서 우리가 어떻게 할까? 쫓아낼 때 의논해 가지고 에덴동산에서 인간이 쫓겨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영은 단번에 죽고 육은 서서히 죽는데 그 죽은 가운데서 예수님이 대속해 가지고서 택한 자들은 그가 하나님을 부인하고 거역함으로써 하나님과 끊쳐진 그것을 다시 재연결시키는 데에는 하나님을 믿는 것과 순종하는 그것으로만 그것을 복구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님을 저주하시고 그렇게 해도 주님은 끝까지 인정하는 것과 또 순종하는 것이 변동하지 안하고 그것으로써 이 세상살이가 끝이 나 버렸습니다. 그 이상 더 유지할 수 없어 끝나기까지로 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는 순종의 공로요 순종의 공로로 불순종으로써 이루어 놓은 사망의 그 모든 원인들을 다 해결지워 가지고 해결지워 준 그 공로를 택자들에게는 다 입혀 줬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대속을 하실 때에도 불택자까지 다 대속한 것이 아니고 택자만을 대속한 것을 가리켜서 '아버지께서 내게 준 자들이라' 하는 것을 구별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담당하신 택자들은 이 대속의 공로를 나기 전에 입고 있고 입은 자로 났습니다. 입은 자로 난 이것을 이제 실질적으로 입히는 역사를 하기를 누가 하는고 하니 입히는 역사를 책임진 것이 요한일서 5장에 보면은 셋인데 그 셋은 성령과 물과 피라 했는데 성령은 과연 영감의, 영감하신 하나님을 말하고, 물이라 하는 것은 진리를 말합니다. 진리를 한 형용사입니다.
물은 그 모든 더러운 것을 씻는 것과 모든 것에 생기를 주는 그것을 하나 상징해서 '성령과 물로 너희들이 거듭났다' 할 때도 진리로 거듭난 것을 물로 거듭났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 물이라는 것을 베드로전서 1장에 가 가지고는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거듭난 것이 아니고 항상 있고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씨로 거듭났다' 이제 거게 가서 중생된 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중생됐다는 것을 또 증거를 해서 그렇게 바로 그대로 나타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택함을 입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 대속의 공로로 인해서 우리 인류 시조가 우리를 대표해서 배반한 그 죄로 말미암이 본 지위에서 타락해 가지고서 영원 멸망 가운데 있는 그것을 다시 하나님이 구출하시기 위해서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로 우리의 본지위에서 타락하게 된 그 원인은 하나님을 부인하고 자기를 나타내고, 또 하나님의 법을 거역하고 제 욕심대로 한 그것을 대신해서 주님이 신인양성일위가 돼 가지고서 하나님만 인정하고 당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에게만 복종하고 당신의 소욕대로는 하나도 하지를 아니하심으로써 이 공로가 완전히 설정됐는데 이 공로를 입혀서 법적으로는 다 사망에서 벗어났습니다.
그에서 로마인사 8장 1절 이하에 보면은 '택함을 입은 자들은 정 죄함을 발지 아니한다 이랬습니다. 정죄합을 받지 안한 정죄함이 없는 데서 나왔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고 실질적으로 대속의 공로를 입히시는 순서가 이제 '성령과 물과 피라' 이랬는데 성령은 곧 하나님이신 성령님이시요 또 물은 하나님의 영감에서 나온 그 진리요 또 피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입니다.
이래 가지고 지금은 어떤 때인고 하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법적으로 완성해 놓은'이 구원을 실질적으로 실상으로 우리 각자들에게 입히시는 것이 지금 하나님의 하시는 역사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 역사를 하실 때에 누가 이 역사를 책임을 졌는가? 이 역사를 책임지신 분은 셋이니 곧 성령과 진리와 피입니다. 예수님의 공로가 아니면 이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의 그 무한하심이 이 타락한 죄인들에게 건너오지를 못합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어서 올 수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죄의 문제, 자율의 문제, 하나님과 원수된 문제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언제든지 있어 가지고서 날마다 새롭게,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을 때에 베드로가 말하기를 '그렇다면 우리 전신을 다 씻어 주십시오' 할 때에 예수님이 대답하시기를 '이미 씻어 깨끗한 자는 발만 씻으면 깨끗하니라' 하는 그 말씀은 주님이 대속의 공로를 입히셨는데 사람들이 입었다가도 매일 매일 걸어가는 그 신앙 생활에서 자꾸 더러워지는 그것은 더러워질 때마다 그때 그때 자꾸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에 씻으면 되는 것을 그때 예표해서 보여준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지금 영은 단번에 살았는데 우리에게 책임이 없고 순전히 하나님의 객관의 당신의 역사로써 영은 죽은 것이, 중생이라 그말은 거듭 중(重)자 살 생(生) 자, 거듭 살아났다. 이제 살았던 것이 죽었다가 살아났기 때문에 중생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에덴동산에서는 그것 중생이 아닙니다. 그것은 '생명을 얻었다' 그랬고 지금은 중생입니다.
중생된 사람도 그 심신으로 되어 있는 그 육은 아직 죄 아래 있다 그렇게 로마서 8장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8장 10절에 '그리스도께서 너히 안에 계시면 몸은'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우리 영 말이요 '영은 의를 인하여'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이러니까 영은 단번에 이 중생이 되지마는 중생된 사람도 육은 단번 되지 안하고 그것을 수많은 회수를 통해 가지고서 살게 됩니다. 왜? 그게 종자가 심신은 수많은 그 분자로 수많은 세포로 되어 있는 것이요 영은 단일체지마는 이 마음도 종합체요 고기덩어리도 종합체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 하나가 그때 그때 살아나는 그 순서의 시기를 통해서 살아나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우리의 심신이 살아나야 되겠는데 심신이 살아난다면 우리의 심신이 살아나는 것이 두 종류로 돼 있습니다. 우리의 몸이나 마음이나 이것이 살아나는 것은 예수님이 재림하셨을 때에 우리의 몸이 살아나는 것을 가리켜서 부활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살아난 것은 마음은 물질보다 달라서 마음은 물체에서 나온 신령한 것인데 마음은 물체지마는 신비한 물체입니다. 또 생명도 고거 신비한 물체입니다.
그게 비유는 안 되지만 이러면(종을 한번 치심) 이것 쇠가 울려지면 이 쇠는 거석하지마는 이 쇠가 울리는 그 소리 이것은 분명히 물질입니다. 물질이지마는 이 물질에서 나온 것이지만 조금 신령해서 신령합니다.
우리의 이 마음이라는 이것은 신령한 신비한 물질이요 우리의 육의 생명도 신비한 물질이기 때문에 육의 생명의 기능, 육의 생명의 기능 이라면 생명의 힘입니다. 물질의 힘입니다. 생명의 기능 이 마음의 기능은 이 세상에서 살아났으면 살아난 그것은 그대로, 그 영육이 나뉘어 가지고서 세상을 떠날 때에 그 영과 이 육의 생명의 기능과 이 마음의 생명의 기능은 같이 영계로 같이 가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계에 가 가지고서 역사할 때에 그 마음의 기능은 그때 같이 가 가지고 역사를 합니다. 또 지옥에 있는 사람들도 한가지입니다. 그 영이 지옥 갈 때에 그 사람 마음이 같이 가고 그 사람의 육의 생명의 기능이 완전히 죽은, 죽은 기능이 같이 갑니다.
그러나 고기덩어리는 같이 못 갑니다. 같이 못 가다가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고기덩어리는 다 살아나서 음부에서 오는 자기의 영과 자기의 사망의 기능 그 모든 마음의 죽은 모든 죽은 기능, 영의 죽은 가능 또 마음의 죽은 기능 또 생명의 죽은 기능 이 죽은 기능과 죽은 몸이 그때 부활할 때에 같이 부활해 가지고 하나님의 심판에 심판받아 가지고 이제 무궁한 사망으로 옮겨져 가는 것입니다.
혹 들을 때에 '그러면 사망이 무슨 기능이 있느냐?' 죽는 힘이라 그말이요, 죽는 힘. 사망의 힘, 좋은 기능이 아니요 죽는 힘이라 말이요, 죽는 힘.
그러나 택한 자들은 이 세상에서 한 시간 한 시간의 생활에서 자기의 생명의 기능이 그때에 해당된 것은 죽고 그때에 해당된 것은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때에 해당된 그 생명의 기능이 이미 죽어 있는 생명의 기능, 생명의 기능이라 말하면 육체의 생명의 기능입니다. 요것 좀 혼동되면 안 되는데 성경에는 영원한 참 생명이 있고 이 죽는 것이 현재 죽는 생명이라, 죽는 생명. 죽어 있는 죽는 생명이 그 생명은 자꾸 시간이 갈수록이 자꾸 죽어집니다.
죽는 생명의 그 기능이 산 생명의 기능으로 바꾸어질 수도 있고 죽는 생명의 기능이 그것으로써 다시 한번 살 수 있는 그런 기회를 완전히 잃어버려서 완전히 영원히 죽는 기능으로 결정되고 화해지는 것도 그것도 우리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믿는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에 육의 죽음의 기능, 말 하자면 사람들은 육의 생명이라 하면 좀 알겠는데 육의 생명은 그것이 사는 생명이 아니고 그 생명은 죽이는 생명이라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그 아이가 나 가지고서 한 살 먹었으면 일 년이 됐으면 그만치 죽었습니다. 그만치 그 생명이 들어서 그만치 기능을 죽였습니다. 그러면 안 믿는 그 사람이 일 년 산 것과 한 달 산 것과, 일 년 산 것은 일 년 산 것만치 그 기능을 그 삶이라는 그것을 통해 가지고서 죽였습니다. 그러기에 죽는 날까지 일생을 삶으로써 그에게 있는 남은 서서히 죽어야 될 그 세포적인 분자적인 심신의 분자의 사망은 완전히 사망 되는 것이 마지막 이제 세상을 떠날 때 그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에 죽느냐 사느냐 하는 것이 불택자들은 다시 살아날 기회가 없기 때문에 죽은 것이 그대로 계속 죽는 것으로 자꾸 더해 집니다. 마음의 기능이라는 것도 살아날 기회가 없습니다. 그건 죽는 걸로 계속돼 가지고 완전히 죽음으로써 완성되는 것이지마는 택한 자들은 예수님이 대속을 하셔 가지고 죽음의 원인을 완전히 해결지워 버렸고 또 영원히 사는 그 원인을 다 예수님이 설정해 버렸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우리가 다 입고 있는데 실질적으로 입는 것이 문제인데 아무리 법적으로 입었어도 제가 실질적으로 입지 못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 사람이 왕의 아들이니까, 왕의 아들이니까 왕권을 상속할 만한 그 사람이지마는 왕권의 아들의 실력을 가지지 못했으면 그것은 반드시 역적들에게 그는 죽임받아 가지고 다 뺏겨져 버리고 마는 것이 오늘에 군왕주의라는 세력이 역사에 남아 있지 안하고 다만 영국에 좀 남아 있고 일본에 좀 남아 있지만 그것도 그저 말뿐이지 속으로는 다 능력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의 요 심신은 그 현실을 통해서 살아났으면 살아난 그것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어 가지고 그 공로를 요 현실에서 벗지 안하고 그 공로를 입은 그대로에 현실을 통과했으니까 그 사람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어서, 예수님이 싸워 가지고 숭리해서 우리에게 사망에 해결을 지웠고 영생하는 그 모든 것을 다 설정해 가지고 주셨는데 그걸 우리에게 입혀 주셨는데 입혀 주셔 가지고 우리로 하여금 이 뽀스래기 십자가, 주님의 남은 고난을 우리에게 채우도록 하셔 가지고서 우리에게 십자가 주셨는데 우리가 현실을 당했을 때에 예수님의 이 대속의 공로를 세상은 벗기려고 애를 씁니다. 벗기려고 애를 쓸 때에 우리가 벗지 안하려고 하면은 안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벗지 안하려면 안할 수 있는 것과 다릅니다. 예수님은 벗지 안하려고 할 때에 그때에 실력 투쟁을 해 가지고서 그를 이겨야 되지마는 예수님이 다 이겨 놔서 우리를 이 대속의 공로를 벗으라 하는 그 세력이 우리에게 왕권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왕권을 가지고, 요걸 똑똑히 잡아야 됩니다. 왕권을 잡고 있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사망이 너희들에게 왕노릇 하지 못한다. 죄가 너희들에게 왕노릇 하지 못한다. 마귀가 너희들에게 왕노릇 하지 못한다.' 왕노릇 하지 못하는 것은 궁극적인 세력을 가지지 못했다 그말입니다.
절대적인 세력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세력을 가진 것같이 우리에게 위협을 하지마는 우리가 그를 대항해서 대항하면 그들을 이길 수 있어. 대항해서 이기면 그것을 가리켜서 뭐라 했느냐? '생명의 면류관을 너에게 준다' 이랬습니다.
그러면 그를 대항해서 이기는 데에는 주님도 있는 걸 다해 가지고서 대항해서 싸워 이긴 것처럼 우리도 죽도록 충성하는, 있는 것을 다, 땅에 속한 것을 완전히 하나님에게 바쳐서 하나님의 것으로 바쳐야 이기지 바치지 안하면 이기지 못합니다. 바치지 안한 것을 승리로 한 다면 그게 내나 부패성 죄악성 그대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또 다시 재행하고 다시 재독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것을 용납지 아니합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미 예수님이 법적으로는 입혀놓은 이 법적의 것을 실상으로 내가 입는 데는 그 방편이 무엇이냐? 또 실상으로는 내가 죽어 있는 이것이 살아나는 데는 그 방편이 무엇이냐? 이것을 잡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홍포 입은 부자와 나사로를 거기 한 그것은 비유가 아니고 영계에 음부와 하늘나라에 그 두 영계에 있는 사실 하나 우리들에게 인용하셔 가지고서 그대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 아브라함도 갔을 때에 영만 간게 아니고 그 모든 생명의 기능과 육의 생명 기능 생명 기능과 또 그 마음에 기능은 같이 가 있었습니다. 또 나사로도 같이 가 있었습니다. 음부에 가서 있는 홍포 입은 부자도 같이 가서 있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가 고기덩어리는 거기 가지 못했지만 마음의 기능 또 사망의 육의 기능은 같이 있기 때문에 거게서 나사로를 보고 여전히 종으로 잡아 부리는 그런 소리를 했고 심부름을 시켰고 또 거기서 자기가 답답하니까 물을 달라고 나사로를 심부름 시키려고 했고 또 아브라함이 있다가 '여게서는 안된다 거게에서라야 되지 여기 와 가지고는 세상에 있는 그 형제들에게는 거게서 증거를 받아야 되지 여기의 증거는 받지 못한다' 이러니까 '아니로소이다 지금이라도 시람을 보내면 됩니다.' 그러는 그 전부가 다 사망의 소리입니다.
그게 전부 하나님을 거역하는 소리요 전부 사망의 소리입니다.
그러기에 홍포 입은 부자도 그이의 마음의 기능의 죽은 죽은 마음의 기능 죽은 마음의 기능 그것은 그대로 가지고 있었고 또 아브라함도 산 그 마음의 기능은 그대로 가서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영감과 진리로 하나님이 하나님이 영감과 진리로 우리를 지었고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도 영게도 영감과 진리로 지었고 또 지어놓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실때에 영감과 진리로 주어서 우리가 산 영 산 육이 되도록 하셨고 또 에덴 동산에 가가지고서 아담하와가 영감과 진리를 거슬려서 죽었고 거슬려 죽을 것은 주님이 다시 영감과 진리에 순종하는, 죽기 까지 순종하는 것으로써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의 본체시나 동등될 걸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그 분에게만 순종하고 그 분만 인정하는 이것으로써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베푸셨습니다.
순종으로 대속의 공로를 베푸셔서 우리가 부인, 하나님을 믿지 않는 하나님을 부인하고 자기를 믿고 자기를 믿게 된 것은 배암 그놈을 믿었기 때문에 자기를 믿게 됐다 말이오.
하나님은 부인하고 배암과 자기를 믿고, 또 자기 욕심대로 함으로써 죽은 그것을, 그 죽은 그것은 하나님을 인정치 아니함으로 죽은 것이요 하나님을 인정치 아니하고 자기를 인정함으로 죽은 것이요, 하나님께 순종치 안하고서 자기 욕심대로 자율대로 주관대로 함으로써 죽은 이것을 예수님이 대속의 공로로 베푸셨는데 예수님이 우리를 대속하실 때에도 방편은 뭣인고 하니 자기 부인 하나님 인정, 자기 모든 주장 소원을 다 버리고 하나님께 순종으로 했지마는 그때에 예수님이 우리를 대속하시는 방편은 그러했지마는 대속할 때에 대속할 수 있는 그 능력은 뭐였더냐? 대속하신 그 능력은 무엇이냐? 우리를 대속해서 우리를 영원한 사망을 해결짓고 영생을 우리에게 베푸신 그 능력은 무슨 능력이었더냐? 그 능력은 영감의 능력 진리의 능력이었습니다.
그 방편은 영감과 진리를 부인함으로 죽은 것을 인정함으로, 거역함으로 죽은 것을 순종함으로 했지마는 그렇게 우리를 사망에서 구속하신 대속의 공로의 역사를 일으킨 그 역사의 능력은 뭐였더냐? 그 능력은 역연 영감과 진리의 그 능력이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를, 하나님께서 우주와 영계를 창조하시는 것도 영감과 진리의 능력이 창조했고, 또 창조해 놓은 우리를 산 영으로 만든 것도 영감과 진리의 힘이 살렸고, 또 에덴동산에서 우리 시조를 영생하게 했는데 영생하게 한 것도 영감과 진리에 순종으로 영생하라 했는데 거게서 죽은 것은 영감과 진리를 부인함으로 죽었습니다.
부인함으로 죽은 그것을 다시 예수님이 살리기 위해서 영감과 진리를 인정하고 순종하는 것으로써 우리에게 사망을 해결짓고 생명을 해결 지워서 죽음은 벗고 영생하는 우리가 되도록 이렇게 해결을 지워서 주셨습니다.
이런데 우리의 영이 주격체이기 때문에 주격이 죽어버렸기 때문에 죽은 자가 뭘 하겠습니까? 이런고로 하나님의 객관의 능력으로서 죽은 주격인 영은 당신이 살리셨습니다.
주격을 살렸으니까 주격인 영을 살렸으니까 주격이 살았으니까 그에게 소속한 소유는 제가 살릴 수 있기 때문에 영의 소유가 되어 있는 이 심신은 중생된 영에게 살리도록 하나님께서 직접 살리지 아니하시고 성령이 중생된 영을 통하여서 이 심신을 살리는 그 역사를 이루는 것을 가리켜서 말하기를 '성령이 우리 영을 통하여' 성령이 중생된 우리 영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에게 속해서 어떻게 살아야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지금 영은 단번에 살았지마는 아직까지 영이 살아나지 못한 사람들은 이것도 영감과 진리에 순종으로 어떤 사람에게 가 가지고서 '예수님은 너의 구주니까 예수를 믿고 죄사함 받고 구원 얻으라' 하는 이 복음을 전할 때에 그 복음의, 복음은 껍데기는 진리요 속에는 영감인데 이 영감과 진리가 그에게 전해질 때에 그들이 살아 납니다.
중생된 자가 중생된 자가, 이미 믿는 자를 통하여서 진리와 영감, 껍데기는 진리요 알맹이는 영감이라. 껍데기는 진리라 말은 겉은 성경 말씀대로요 그 속에는 영감이 역사하시는 그 전도로써 중생이 되는 것입니다.
중생된 자가 또 건설구원 심신의 구원을 얻는 것도 이것도 역연 영감과 진리로만 이제 심신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지금 다 돼 갑니다. 인제.
그까지만 하고 말겠는데.
그러면 오늘 우리가 지금 문제 되는 것은 심신의 구원입니다. 심신의 구원.
심신에게는 뭣이더냐? 우리의 심신에게는 죽이는 생명, 또 죽어서, 자꾸 죽어가는 마음의 기능, 죽어가는 몸의 기능, 죽어가는 그 생명의 기능 생명도 지금 죽어가는 생명이요, 마음의 기능도 죽어가는 기능이요, 몸의 기능도 죽어가는 기능이라.
그러기 때문에 그 생명이나 그 마음이나 몸의 기능이 그것이 움직이면 움직인 것은 다 죽습니다. 움직인 것은 다 죽습니다. 일 초 움직였으면 일 초 움직인 것은 죽었고, 일 년 움직였으면 일 년 움직인 것은 다 죽었고, 십 년 움직였으면 십 년 움직인 것은 다 죽었고, 제가 죽는 생명의, 죽는 생명, 죽는 생명의 기능, 죽는 그 마음의 기능, 죽는 고기덩어리의 이 기능 그것을 가지고 제딴에는 세계를 점령해서 '내가 세계에 제일 권위자다. 제일 유식한 자다.' 네가 암만 해도 네 전부의 움직인 것은 다 사망뿐이라.
이러니까 그것으로써 결국 사망이 완성되는 때가 어느 때냐 하면 그 사람으로서 세상을 끝나는 때입니다. 그러면 그다음에 이제 하나님의 심판에서, 너는 죽기를 어떻게 어떻게 죽었기 때문에 너는 어떤 자리로 지금 너는 처분을 해야 되고 너는 죽되 어떻게 죽었기 때문에 처분되는 그것이 지옥에 각각 처소로 마련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죽는 것은 다 어째 죽느냐? 하나님을 부인하고 피조물이 하나님 대신되고, 하나님의 영감인 그 진리에 순종으로 사는 것 그 반대에 피조물 저거 욕심 저거 주장, 저거 생각대로 저거 주장대로 사는 그것이 이제 죽음의 전 힘이요 방편입니다.
살리는 방편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과 하나님의 그 영감 진리인 거기에 복종하는 것 그것이 살리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지금 심신 구원이 우리의 문제인데 우리가 이 하나님의 율법으로 죽어 있는 걸 알아야 됩니다. 너무 자꾸 좁기 때문에 그 말씀을 요걸 하나 하려 하면은, 요것 하나 하려 하면, 어떤 의사기 눈, 안과 의사니까 눈 거게만 고름이 들었다 뭣 들었다 이러지마는 그 사람 그래 치료하면 그 남 눈 버려버립니다.
이 눈에 고름이 들었으니 이것은 지금 눈과는 얼토당토 안한 저 발가락 끄터리에 무슨 일이 있어 가지고 그 영향이 여기 와 있다. 그 사람이 내장에 와 가지고 뭣 있다. 이제 전신에 그게 거기 표시된 것인데 그것만 가지고만 안 되는 것처럼 이 진리를 가리려 하면 그 범위를 말해야 되는데 그 범위를 될 수 있는 대로 여러분들이 아는 데까지는 필요 없는 범위는 말하지 안하고 좁게 간단 명료하게 하려고 해도 그걸 말하지 안하면 안 되기 때문에 말하니까 복잡한 것 같지마는 이 복잡한 이것을 한 것 같으나 이것을 자기가 듣기에 괴로와 하고서 알지 못하는 사람이면 실지의 생활에 가 가지고는 그게 될 수가 없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은 자기가 들은 대로 실행을 해 보면은 자연히 자기가 자각할 수 있어.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체험에서 되지마는 이 설교나 모두 다 이것 뭐 신학이나 이런 것은 다 논리적, 논리적 구원입니다. 논리적 구원을 자기가 실지로 실행을 하면은 실험적 구원이 되기 때문에 논리의 구원 가지고서 책상에 앉아서 논리만 가지고 있는 그 사람들이 아무리 말해 봤자 실지로 실행해서 체험한 사람들 말하면 이것이 백분지 구십구가 틀린 것도 있다 그말이오. 백분의 구십구가 틀릴 수 있어.
그러니까 하나님 말씀을 듣되 자기가 실험을 경험해서, 논리적으로 하는 그것을 듣고 지식으로 가지고서 실험을 해 가지고 이 양면으로 연구해 가는 사람은 설교를 들을 때에 '저거는 논리뿐이다. 실험 안 해 봤다. 네가 그 말을 하지마는 실제의 생활 하려 하면 그 천리 만리 거리가 멀다.' 또 그 사람이 할 때 '저 말은 과연 그 사람이 나도 실험을 해 보니까 이런데 실험을 해 가지고서 나와 같이 실험으로 실지로 실험해 본 사람의 말이다. 저것은 실효가 있다.' 해 보면 된다 그거요.
이러니까 지금 여게서 말하는 것은, 없는 가운데서 지은 것도 하나님의 영감과 진리가 지었고 또 지은 그 중에 우리도 지을 때 영감과 진리가 지었고, 또 지어놓은 우리들을 새로 생명 가지고 활동하게 하는 그 활동의 작용의 능력을 줄 때도 진리와 영감으로 주었고, 또 에덴 동산에 가 가지고서 '너희들이 이렇게 먹을 것 먹고 먹지 말 것 먹지 말고 이래 가지고서 영생하라' 하는 그것도 영감과 진리로 살라 했고, 이랬는데 영감과 진리로 된 것이 영감과 진리로 된 모든 우주 가운데에 영감과 진리로 된 것을 다 사용하면서 살 것이 영감과 진리를 배반을 했음으로써 죽었습니다.
배반으로 죽은 것을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서 우리가 영감과 진리를 부인하고 불순종함으로 죽은 것을 당신이 대신 순종하시고 대신 인정하셔 가지고 했기 때문에 그것은 우리 하나의 뭉텅이만 해도 백 근이라면 만일 열이면 천 근이 될 것 아닙니까? 택자들의 전부를 다 대신 담당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그 고난은 우주적 고난이라 역사적 고난이라 하는 것입니다. 역사에 있는 모든 자의 고난이라 그말입니다.
이래 가지고서 순종으로 일으켜 놓은 이 구원을, 영의 구원은 주격이기 때문에 그건 당신이 살려야 되지 어쩔 수 없으니까 객관의 능력으로 단번에 살렸고 주격이 살았으니까 그의 소유는 그 주격이 제가 힘만 쓰면은 도와주지 그 주격이 살았는데 주격이 산 그것은 무시해 버리고 당신이 혼자 독단으로 그렇게 하는 월권 행위를 안 한다 그 말이오.
하나님이 월권 행위를 안 하기 때문에 이미 살려놓은 그 영을 통해서 이 심신의 기능을 살리려고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심신이 이게 살아야 되는데 이 심신의 이 고기덩 어리 이 부활은 예수님의 재림 때에 부활하기 때문에 이것은 기본구원에 속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육의 생명의 기능, 요 살리는 기능, 또 우리 마음의 기능, 몸의 기능 이것은 지금 살리지 안하면 헛일입니다. 지금 주님이, 주님이 법적으로 살려놓은 것을 우리가 사는 데에는 법적으로 살려놓은, 법적으로 심신의 생명의 기능을 살려놨는데 법적으로 살렸지마는 실상은 죽었다 그말이오.
그러면 법적으로 산 것이 실상으로 죽어 있는 이것이 살아나는 데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죽도록 충성하라있는 전부를 다 기울여서 그분에게 복종하라, 순종하라.
이것 가지고서 순종해서 살면 그 사람은 죽을 것이 살아났고, 그러기 때문에 썩을 것이 썩지 안함으로 다시 살고, 썩을 것을 심고 썩지 안할 것으로 다시 살고 그말은, 심는다 말은 자기 속에 있는, 가지고 있는 이것을 내던지는 것이 심는 것 아닙니까? 이제 자기가 잡고 있던 썩을 것을 자기가 잡고 있던 것을 하나님 명령 순종을 인해서 이것을 순종을 인해서 네가 가지고 있던 이걸 일단 내놓으면 그것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변화된다 하는 그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심신의 기능이 살아나는 것은 영감과 진리로만 살아나는데 법적으로는 살아났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만 힘쓰면 살아날 수 있습니다. 법적으로 살렸기 때문에 우리는 마귀가 우리에게 왕노릇 하지 못합니다. 불택자는 마귀가 왕노릇 하기 때문에 절대 그에게 범할 수, 어기지를 못합니다. 복종 안 하지 못 합니다. 왕이라 하는 것은 주권을 가졌다 그말이오.
마귀가 우리에게는 주권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우리 마음에 대해서 주권 가지지 못했고 우리 몸에 대해서 주권 가지지 못했고, 우리의 생명에 대해서 주권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만 힘만 쓰면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 현실에서 영감과 진리를 우리가 복종함으로 베풀어 놓은 그 공로를 입어 영감과 진리를 우리가 벗지 안하고 그대로 입고 그 현실을 통과하면 그것이 하나님이 법적으로 입혀놓은 그 공로를 우리가 입은 것이요, 우리는 그 공로를 안 벗고 입은 것뿐이오. 입은 것이요 그것이 우리의 죽은 것은 그 공로를 힘입어 우리에게 해당된 전투를 우리가 힘써 해서 진리와 영감을 배반치 안하고 했기 때문에 요것이 뭣이냐? 우리가 싸워 가지고 이긴 것이기 때문에 '생명의 면류관이라' 면류관은 승리하고 난 다음에 숭리자의 상급으로 주는 것이 면류관입니다.
그러면 요것이 우리가 싸워 이겨 가지고 승리함으로써 되어진 것이니 요리 되면 죽을 것이 다시 살아났고, 약한 것이 강해졌고, 더러운 것이 깨끗해졌고, 혈육의 것이 신령한 것이 되어져 버렸고, 그러나 여기에서 만일 죽도록 충성해 가지고서 요 승리를 하지 못 하게 되면 그때에 법적으로 입지 안한 것은 죽어 있는 것이지만. 법적으로 이 생명의 은혜를 입어 가지고 산 것이 법적으로 산 것 된 것이 제가 전투할 것을 전투하지 안해 가지고서 패전했으면 그걸 뭐라 하느냐 하면 둘째 사망의 해라, 둘째 사망.
왜 그러면 첫째 사망이라 안 하고 둘째 사망이라 하느냐? 둘째 사망은 그것은 예수님이 죽었던 것을 살려놨는데, 살려놨는데 살려놓은 것이 또 죽었기 때문에 둘째 사망입니다. 안 믿는 사람은 둘째 사망이 아니라. 안 믿는 사람은 전부 첫째 사망입니다.
우리는 둘째 사망을 안 받을 수 있는데 둘째 사망의 해를 받는다 말이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러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니 둘째 사망의 해를 네가 받지 아니하리라' 말씀했습니다.
그런고로 오전에는 요것으로써 끝납니다. 단단히 기억하십시오.
없는 가운데 우주와 영계를 영감과 진리가 창조했고, 그 가운데 우리 택불택자들을 다 영감과 진리가 창조해서 나게 했고, 모든 택자나 불택자나 전부 인류의 시조, 아담 하와가 에덴동산에 간 것은 아담 하와는 인류의 택불택자의 전인류의 대표로서 신인 계약을 해 가지고서 하나님의 계약을 어겼기 때문에 전인류는 그때 다 정죄받은 것입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모든 사람이 다 죄 정함을 받았다' 이랬습니다.
진리와 영감을 어김으로써 정죄받았고 정죄받아 사망하게 된 거기에서 예수님이 택자들을 구별해서 당신에게 맡긴, 주신 택자들을 위해서 도성인신해 가지고서 하나님을 부인하고 진리를 거역함으로써 죽은 그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서 당신이 그 벌을 받아서 해결했고, 당신이 대신 순종하고 인정하는 것으로써 대신해 가지고서 이제 대속의 공로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그 공로로 인해서 우리의 영은 그 공로를 입혀서 단번에 살아났습니다. 영은 왜 단번에 살아났느냐? 영은 단일체기 때문에 죽으면 단번 죽고 살면 단번 삽니다. 이러나 이 고기덩어리는 이것은 합동체이기 때문에 죽어도 수없는 시간을 걸쳐 죽고 살아도 수없는 시간을 걸쳐서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죽는 것은 다 영감과 진리를 거부로 죽고 사는 건 영감 진리에 순종함으로 사는 것인데, 영은 살아났습니다. 왜 영은 살리고 육은 살리지 안했느냐? 영은 주격이기 때문에 주격이 죽었으니까 그걸 살려야 되지 주격이 죽은 데 그 객관 능력이 안 살리면 어떻게 살겠습니까? 객관 능력이 살렸고, 객관 능력이 주격을 살렸기 때문에 그 주격의 소유가 되어 있는 그 심신은 주격이 살릴 수 있기 때문에 주격을 통해서 살려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그 주격을 하나님이 주격의 권리를 줬는데 그 주격을 무시하고 월권이고 주격을 멸시하는 것이 되어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그 심신의 구원은 직접 하시지를 아니하십니다.
그러면 어째 하시느냐? 중생된 영을 통하여 우리에게 증거한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에게 자꾸 증거를 해 주십니다.
그 말씀이 어데 있습니까?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하나님의 아들된 것을 증거하느니라' 옳지 16절, 여기 있어. '양자의 영을 받음으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독단 안 한다 그말이오. 성령이 우리세게 월권해 가지고서 직접 우리의 심신을 살리는 일을 못 합니다.
그것 하면 주격을 우리에게 영에게, 내게 대해서는 영에게 주격을 줬는데 '영 네까짓 것은 일 추지 못하니까 너는 그만 치워버려라. 내가 한다.' 무시해 버리는 것이 되기 때문에 안 되기 때문에 성령이 중생된 영을 통해서만 심신을 살립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너는 하나님의 자녀다 하나님의 자녀다' 하는 걸 자꾸 이래서 '너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따라 살아라. 하나님을 바라봐라. 하나님의 주시는 그 모든 유업을 네가 소망해라.' 자꾸 이렇게 한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우리가-요것 자꾸 말해도 더 하고 싶은데.-
하나님이 영감과 진리로 없는 가운데서 우주와 영계를 지었고, 그 중에 우리도 진리와 영감으로 우리를 지었고, 지어놓은 우리에게 영감과 진리로 우리에게 생기를 주셔 산 영이 되게 하셨고, 또 에덴동산에 옮겨 영감과 진리로 살라고 하셨고, 이랬는데 영감과 진리를 어김으로써 죽었고, 죽은 거기에서 하나님이 영원 전 하나님 목적 안에서 지음을 받은, 영원 전 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기 전에 택한 택자들의 이 죽음을 구출하기 위해서 도성인신하셔 가지고서 우리를 대신해겠 구출해 주셨으니 어떻게 구출했느냐? 우리를 대신해 가지고 구출하셨다.
그러면 대신한 것은 형벌을 대신했고, 의무와 책임을 순종을 대신 했고 화친을 대신해 가지고서 사망의 문제도 해결했고 생명과 영원한 평강의 문제도 다 건설해서 한 것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입니다.
예수님이 다 하셨는데 다 해 놓으신 이것을 우리 각자에게 나눠 주기 위해서 지금은 나눠 주는 것이니까, 법적으로 우리가 영생을 얻었고 모든 걸 다 얻은 걸 가리켜서 기본구원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랬는데 이것을 실질적으로 우리에게 실상으로 이루어 주기 위해서 지금 지금은 하나님이 역사하시니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누구냐? 그분을 가리켜 성령이라 말했고 역사하는 능릭은 또 누구냐 하면 내나 천지 창조하던 진리, 하나님의 영감과 진리 두 역사, 또 그 두 역사만 가지고는 벌써 우리가 일단 받아 가지고 범죄함으로 죽었기 때문에 안 돼. 두 역사, 하나님하고 진리 가지고는 안 돼.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피의 공로가 언제든지 같이 와서 이렇게 해 가지고 공로가 자꾸 이것 닦아주고 씻어주고 담당해 주고 이래야 된다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성령과 물과 피가 우리를 대신해서 보증이 됐다 그거요.
이랬으니까 지금 우리는 심신의 구원을 얻는 게 우리 문제고 택자들로서 중생되지 안한 사람도, 중생되는 그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인데 우리가 이미 믿은 우리들이 이래 전도하는 전도를 통해서 중생이 됩니다. 그러니까 중생은 본인에게는 책임 없습니다. 중생은 본인에게는 책임 없고 이미 중생돼서 믿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에게 생명을 전해 줄 책임이 있습니다.
믿는 자들이 그들에게 생명을 전해 줄 때에 중생되고, 중생된 사람은 자기의 심신을 구원해야 되는데 심신 구원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심신 구원은, 심신 구원은 영감과 진리를 인정하고 순종하여 영감과 진리에 딱 연결만 돼 버리면 살고 영감과 진리에 끊어지면 죽고 요것을 우리가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그러니까 법적으로는 됐지마는 실질적으로는 영감과 진리가 네가 연결이 됐느냐 안 됐느냐? 믿으면 영감과 진리가 믿어 하나님이 나를 책임지시는데 피조물이 주먹 든다고 무서워할 게 뭐입니까? 만유의 대주재가 나를 책임졌는데 먹을 것 입을 것 없어 굶어죽을 것 염려할 게 뭐 있습니까? 안 믿는 데서 된다 말이요, 안 믿는 데서.
지금 주님이 이렇게 공로를 입혀 줬지마는 안 믿으면 입힌 공로도 다 벗어버리고 죽고, 인정하고 순종하면 사는 요것입니다. 요것을 오 전에 요것으로 결론을 지웁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두가 우리가 영감 진리 하는 건 영감과 진리가 모든 일을, 하나님 영원 자존하신 한 분 하나님이 일하신 건 전부 영감과 진리 가지고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영감과 진리에 결합되면 살고 영감과 진리에 떨어지면 죽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오후에 그 계속을 하겠습니다.
영감과 진리를 무시하지 맙시다. 영감이 우주와 영계를 다 창조했습니다. 우리 속에 예수님의 공로로 인해서 지극히 큰 능력이 우리에게 왔습니다. 지극히 큰 능력이 우리에게 온 지극히 큰 능력이 뭣입니까? 영감입니다.
영감을 그것을 제 생각같이 왔기 때문에, 만일 영감이 제 생각같이 안 오고 엉감이 쇠뭉텅이같이 왔으면 그것도 큰 병들 것이오. 영감이 우리에게 거치는 그 형체 하나도 안 가지고 그저 제 생각같이 온 그 생각같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우리에제 편리하게 왔지마는 그는 전지 전능의 하나님의 능력이십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그 능력이오 이러기 때문에 알고 믿고, 영감과 진리를 우리가 무시하면 안 됩니다.
(초신자를 위한 기도) 주님, 이제 주님이 부르셔서 믿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수많은 죄악의 얽힌 속에서 참 주님이 반석 속에 숨긴 것을 파낸 것과 같이 힘들여 파내서 멸망에서 구출하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피공로로 인한 영감으로 저희들에게 충만시켜 주사 이제 대주재이신 하나님이 아버지 되신 것을 확실히 깨닫게 하시고 모든 것보다 지극히 크신 아버지의 자녀된 것과, 이 공로를 베푸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친히 사람되어 죽기까지 대속하신 이 사랑과, 택해서 불러 하나님의 자녀된 자는 여인이 자기 태에서 난 아이를 잊을지라도 밤이나 낮이나 순간도 잊지 안하시고 지키시는 이 사실들을 확실히 믿는 자 되게 하사 언제든지 믿음으로 온유하고 진실하고 평안하고 담대한 저희들이 되어 악령에 유린받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대주재가 아버지 되었사오니 염려 없는 저희들이 되게 하사 영감과 진리를 배반하는 데서만 하나심이 손댈 수 없고 저 혼자 날뛰어서 망하고 홍해지는 것이지 영감과 진리를 떠나지 안하면 주님이 망하고 흥하는 것을 책임지시고 언제나 넘어지지 안하고 평안한 가운데서 구원을 잘 이루게 하시는 이 사실을 확실히 믿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과 악령이 진리를 떠나서 주는 아무리 좋은 것이 있다고 하여도 이것은 꾀우는 것이요 속는 것이니 그것이 큰 화를 자취하는 것 외에는 다른 것이 없는 것을 확실히 알아 이제는 아버지 앞에 모든 은총을 생각하면서 진정 감사하고, 아버지 앞에 잘못된 것을 자복해서 용서 함을 받고, 모든 사정 있는 것을 이제는 아버지와 의논을 해서 아버지의 인도와 도움을 받고, 모든 부족한 것을 아버지에 간구하여 얻어서 아버지 하나님 한 분으로서 이 세상은 넉넉히 얼마든지 호화롭게 평안 하게 자유롭게 영광스럽게 가치 있게 살아 영원을 마련할 수 있는 이 사실을 확실히 믿는 믿음과 순종하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영육을 지켜 주시고 앞으로 모든 일에 주님이 동행해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