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과 진리의 능력


선지자선교회 1983년 10월 19일 수새 

 

본문 : 딤후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의 감동을 가리켜서 영감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영감이라 말은 하나님의  감동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계셨고 하나님에게서 하나님의 감동이 나왔고 그  감동이 우리에게 진리로 나타나셨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진리입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사람 우리 택정함을 받은 우리 자신들을 온전케  하시고 또 우리의 기능과 모든 행위를 온전케 하는 능력입니다.

 영원 전 성령과 진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예택하셨고 예택이라 말은  예정으로 우리를 없는 가운데서 택했다는 말입니다. 또 그리스도 안에서 영감과  진리가 모든 것을 예정하셨고, 또 그리스도 안에서 영감과 진리가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또 성령과 진리로 도성인신하셨고, 성령과 진리로 도성인신하셨고,  또 영감과 진리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중생시키셨고, 또 영감과 진리로  우리의 심신의 기능을 그리스도 안에서 살렸고, 또 계속 살리고, 또 계속  성장시킵니다. 가꾸어 기릅니다.

 그런고로 영감과 진리는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존재적으로 제삼순위가  있는 그 순위를 확보하게 해 주십니다. 삼순위를 우리가 뺏기지 않고 그  삼순위를 확보하도록 그렇게 해 주십니다.

 또 우리가 만나는 그 현실 현실에서 영감과 진리로만 그 현실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어떤 현실이든지 그 현실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와 연결될 수 있는 것은 내가 그리스도에게  속하고 그 보증함을, 보호함을 받는 것은 영감과 진리로만 됩니다  영감과 진리는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하게 하고 또 그리스도 안에 있을  수 있도록 우리를 보호하고 그리스도와 연결을 시켜 줍니다. 그리스도는 곧  예수님의 신성이십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라, 또 그리스도 예수라 그렇게  말하고, '그리스도가 너희들을 위해서 십자 가에 못박히셨다' 그렇게 말하고  예수님이 너희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히셨다' 그렇게 말씀합니다.

 그런고로 어제 아침에도 아레 아침에도 늘 계속 말했는데, 영감은 어떤게  영감인가? 영감은 우리가 중생된 자가 성경 말씀대로 살려고 애를 쓸 때에 애를  쓰는 그 마음을 가리켜서 신앙 양심이라, 신앙으로 된 옳은 마음이요, 좋은  마음이라, 바른 마음이라, 깨끗한 마음이라 그말입니다.

 진리대로 우리가 나타난 문서계시 신구약 성경 법도대로 살려고 애를 쓰는 그  마음이 신앙 양심입니다.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마음입니다. 양심이라 말은 착한  양심이라 말이지요? 양심입니다. 양심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애를 쓸  때에 그때에 우리가 영감을 볼 수 있습니다. 애를 쓸 때에, 그렇게 애를 쓰면  차차 차차 내 마음이 밝아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내 마음이 또 깨끗해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또 내 이성이 밝아져서 비판이 똑똑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것을 하고 싶었는데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생각하니 '그것은 내가  취해서는 안 되겠다, 행해서는 안 되겠다,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되겠다.' 이렇게  애를 써서 '안 되겠다' 하는 그 마음이 속에서 나올 때에 그것을 가리켜서 신앙  양심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해서는 안 되겠다, 그것을, 그 장사는 해서는 안 되겠다, 그 돈은  취해서는 안 되겠다,그런 교제는 해서는 안 되겠다. 그런 것으로써 내 호신을 해  가지고는 안 되겠다.' 하는 그런 자기의 이성 비판도 나오고 생각도 나오고 그래  나오나 그래도 그것이 아직까지도 힘이 없어서 '그것 그렇기는 그런데' 여러가지  자제가 돼지고 '이러나 저러나?' 그렇게 마음이 이랬다가 저랬다가 할 그때는 그  마음을 가리켜서 양심이 지금 하나님을 찾아가려고 애를 쓰고 하나님하고 나와  접선을 시켜 주려고 양심이 그 중간에서 중매쟁이같이 그렇게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 애를 쓰는 가운데에 성신의 감화가 오면 어찌 되느냐? 차차 차차  '이것 뭐 주저할 것이 없다. 이것 주저할 것이 없다 이렇다.' 자기에게 확실한  이성 비판이 나오게 됩니다.

 확실한 이성 비판이 나와 가지고 '이것은 뭐 주저할 것이 없이 그만 이렇게  단정할 일이지 뭐 주저할 것이 없다' 이러면 뭐 손해가 가느냐 안 가느냐 그런  것도 '그러면 유익이 되지, 주님과 접촉되니까 유익되지 손해갈 게 뭐이냐?  손해갈 리가 만무하다. 손해갈 리는 만무하다. 유익만 된다.' 그런 모든 것이  자기에게 확정이 되고 단정이 되고 확신이 되어집니다.

 그래 가지고 자기가 그 일을 그렇게 작정을 하고 그렇게 하려고 하니까 속에서  또 기쁨이 나옵니다. 그것이 이제 성신이 감화의 일호입니다. 기쁨이 나옵니다.

또 평강이 나옵니다. 또 담력이 나오게 됩니다. 그러면 이제 그 일이 실행이  돼집니다.

 자기가 안 해야 될 것은 안 하기로 실행이 돼지고 해야 될 것은 하는 것으로  실행돼지고 그렇게 그만 단행이 돼 버립니다. 그것이 이제 성신의 감화입니다.

성신의 감화까지 이끌어 들이는 것이 뭐이냐? 문 서계시 이 진리가 거기에까지  끌어들이고 문서계시로 인해서 성신의 감동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이 성신의 감동과 진리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영이 살아 났습니다.

영은 단번에 살아나서 두 번 살아나는 게 아니라 한 번 살아났으면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그말은 그리스도 안에서 영감과 진리가 그리스도와 연결을 시키는,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신데 예수님의 신성이신데 그리스도와 연결을 시키는 그  연결을 한 번 연결된 이후에는 다시는 변동이 없기 때문에 그 연결이  영생입니다.

 또 우리의 심신의 기능도 한 번 몇결된 요소는 다시는 변동이 없습니다. 그것이  성화입니다. 아직까지 자기 심신 가운데서는 그리스도와 연결되지 못한,  성화되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그러면 성화된 것도 그것이 성화로 완전히  결정돼서 심판을 이기게 되는 때는 어느 때냐? 자기에게 죄가 없어지는, 죄가  끊어지는 때라야 됩니다.

 그러면 다른 지체가 범죄한으로써 아직까지, 다른 지체가 범죄함으로 다른  지체가 의롭게 행했다 할지라도 의롭게 행한 그것이 의는 됐지마는 다른 지체의  범죄를 인해서 정죄를 벗어나지를 못하고 미결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다가  범죄하던 그 지체가 이제 의를 행하지 못할지라도 죄를 후회를 합니다. 죄를  후회를 해서 고해서 사함을 받습니다.

 그러면 그 지체가 의는 행하지 못하지마는 죄는 짓지 아니하는 그런 단계에  오면 그 단계가 대개는 죽을 때는 사람들이 죄짓는 그런 것은 버려 버립니다.

사함은 받고 죄짓는 그 행동은 중단돼 버렸고 죄는 안 짓지마는 죽을 때니까 뭐  의를 행할래야 행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 지체가 의를 행해서 기능 성화는 받지는 못하지마는 다른 지체에  이미 받아 있는 기능을 의로 판정하는, 미결에 있는 것을 의에게 완전히  판정해서 귀속시키는 그런 일에 방해하고 있던 그 방해는 이제 끝이 나 버리니까  그때에 성화된 그 부분은 옳다 인정함을 받아 가지고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해서  그것은 다 생명으로 완전히 옮겨지게 됩니다.

 그래서 구약 성도들이 짐승을 가지고서 제사를 해서 그렇게 아주 율법을 지켜서  의를 행했지마는 아직까지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가 성취되지 안했기  때문에 그들이 바라보면서 행한 그 의는 미결에 있습니다. 미결에 있다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니까 그때 성전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서 하나님과 자기들 사이에 가로막혀 있는 그것이 비로소 해결이  돼졌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가리켜서 히브리 11장에 보면은 이런 말씀이 기록돼 있습니다.

38절에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는  이것이 이제 우리와 교회는 하나이기 때문에 구약 교회가 온전한 교회 된 것도  신약 교회로서 연결이 되지 안하면 완성이 안 된다.

 또 그 사람의 다른 지체가 다 바로 잘했어도 한 지체가 죄를 범하고 있으면 한  지체 그것 때문에 하나님과 완전한 결합이 되지를 못하고 미결에 있다. 항상  정죄 아래 있다. 그러다가 그 지체가 죄를 범하지 안하고 끊어버리면 죄를  범하지 안하면 그때부터, 의는 행하지 안할 지라도, 의는 행하면 그 자체, 그  지체 자체가 구원이 되는 것이고 죄를 범하는 것은 저만 범하는 게 아니라 모든  지체를 다 멸망 지금 아래에 머물도록 그렇게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한 지체를 끊어버리고 네가 하늘나라 가는 게 낫다. 한  지체 그것 없고 하늘나라 가는 게 낫다.' 끊어버린다고 해서 어찌 갑니까? 그런  그것 때문에 정죄 아래 있다가 그것이 이제 죄를 범하지 안하게 됐으니까 다른  것은 의로 확정이 되어지는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구속받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들을 영감과  진리로 우리 영을 그리스도와 연결을 시켜서 영생을 가지게 됐고 또 우리의 이  심신의 기능을 영감과 진리로 그리스도와 연결을 시킴으로 자꾸 살아납니다.

연결을 시킴으로 자꾸 살아나고 또 살아난 것은 연결을 시킴으로 자라갑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감과 진리는 무슨 역사를 하는고 하니 영감과 진리는  그리스도와 연결시키는 역사를 하고 또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가게 하는 그런  역사를 합니다. 그러기에 생명과 신령에 속한 것은 영감과 진리가 우리에게  역사해 가지고서 운반해 줍니다. 그러기에 '성령과 물과 피가 보증이 된다' 피는  그리스도의 그 공로를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영감과 진리가 아니면 그리스도 안에 완전 소속을 시키지  못합니다. 법적으로는 소속이 돼 가지고 있지마는 이것이 완전 소속이 되면  영원히 살았고 완전 소속이 안 되면 이것은 살아 법적으로 살았다가  죽어버립니다. 그걸 가리켜서 둘째 사망의 해라고 그렇게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영감과 진리는 그리스도와 연결을 시켜서 영생을 시키는데 한 번  연결되면은, 연결되면은 재연결은 없습니다. 다시 끊쳐지지 않습니다. 한 번  연결된 것은 다 영생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생을 이룬다' 이랬습니다. 우리의  행동에서 이렇게 되면 영생이 된다 하는 것은 연결된 부분은 영생이 됩니다.

 그러면 그 연결은 언제 연결이 되는가? 그 현실에서만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현실에서 연결이 되는데 현실에서 연결된 것은 영생이 됐고 또 그 다음에  현실에서 진리와 영감으로 자기가 거기에서 배척돼, 영감과 진리를 배척하지  안하고 영감과 진리대로 자기가 살게 되면, 영감과 진리를 배척하지 안하고  버리지 안하고 영감과 진리대로 자기가 참고 견디고 있으면 죽은 것은 살아나고  살아나 가지고 있는 그것은 장성하게 됩니다. 살아난 것은 자라고 죽은 것은  살아나고 그 두 가지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자라가라' 하는 그말은 분량에  이르라 말은 죽은 것이 자꾸 이와 같이 살아나서 모든 것이 다 살아나도록 하고  또 자라가라 말은 살아난 것이 점점 자라가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영생으로 자라가는 것은, 영원한 실력으로 자라가는  것은, 영원한 그 기능으로 자라가는 것은, 영원한 영광이 마련되는 것은, 영원한  권세가 마련되는 것은 전부가 현실이 아니면 안 되고 현실에서 영감과 진리의  역사로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를 계속 입고 있어야 되고 또  영감과 진리를 계속 우리는 복종해서 이렇게 해 나가야 됩니다.

 그런고로 어제 아침에도 이 영감과 진리는 존재적으로 제삼순위라 하는 것은  무엇을 가리켜 말하는고 하니 자존하신 하나님 그 다음에 하나님이 한  분이시지마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목적을 정하실 그때에 목적이  '그리스도 안에서 목적을 정했다.' 그랬습니다.

 그때에 이제 그리스도와 목적은 제이순위로 나타났는데, 그러면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마는 그리스도라면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의 본체가 이 일을 하겠다  하는, 하는 임무를 때고 나와서, 그때에 가리켜서 그리스도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 제사장 선지자 왕의 직책을 가지고 제사장과  선지자 왕의 직책자를, 제사장과 선지자와 왕의 실력자를 제사장을 만들고  선지자를 만들고 왕을 만들어서 마치 그리스도의 원형과 같은 그런 모형으로,  그래서 왕 같은 제사장이각 말은 그리스도 같은 제사장이라 그걸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존재적으로는 제삼순위를 확보하는 것이 영감과 진리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3장 20절 이하에 보면은 너희들이 이 세상 것 가지고서  세상에 어떤 사람이 높으다 크다 뭐 이렇게 말을 하지마는 그런 것은 다  하나님이 헛것으로 여겼다.

 그 다음 절에, 그래 말씀해 놓고 21절에 말씀하시기를 '사람으로 누구나  자랑하지 말아라' '사람만으로는 자랑하지 말아라' 왜? 사람 만으로는 그것이  하나의 동물 가운데 고등 동물이나 되고 또 영이 있기 때문에, 동물은 당장에  그게 멸망받아서 다른 원소로 돌아가 버리지마는 사람은 영이 있기 때문에  그렇지 못하고 영원 불멸의 존재라 하는 것은 인간이다. 그는 고통이나 많이  당하지 아무 가치가 없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으로 자랑하지 마라.

 왜? '사람은 그리스도의 것이 되면 이제 것이나 장래 것이나 하늘의 것이나  땅의 것이나 사망이나 생명이나 모든 바울이나 게바나 아볼로나 -복음 운동  말입니다.-이 모든 것이나 그 전부가 다 너희 것이 된다. 너희 것이 된다.'  이렇게 너희 것 되는 여기에서 그리스도인의 가치가 생겨지는 것이지 네가 모든  것을 억만분의 일을 소유했으면 너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억만분의 일의 가치를  완성한 자요, 또 백분지 일이 됐으면 백분지 일을 완성한 자요, 또 십분지 일이  됐으면 십분지 일을 완성한 자요, 이제 십의 십이 다 됐으면 이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온전한 자라 그걸 가리켜서 말합니다.

 그러기에 모든 것이 다 네것 되는데 네것 되는 조건은 네가 그리스도의 것이  되면 그러하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모든 것이 너희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그러면 하나님, 그 다음에  그리스도, 그 다음에 모든 존재의 주인공되는 우리, 그것을 가리켜서 제삼순위를  말한 것입니다. 제삼 순위는 영감과 진리가 우리를 확보케 합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어떤 현실을 만나든지 그 현실은 우리에게는 어떤 현실인고  하니 우리가 그리스도와 나와의 연결되지 못하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연결될 수 있는 법적 연결은 돼 가지고 있지마는 실상 연결이 되지 못한 그것이  연결되는 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아직까지 살아나지 못한 것이  살아나는 때입니다. 또 그때가 무슨 때냐? 살았다는 이름을 가졌는데 죽는  때입니다. 그러면 죽고 사는 것이 그 현실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그 현실에서 어떤 현실을 닥쳤든지 그 현실에서 영감과 진리를  버리지 안하고 영감과 진리를 배반하지 안하고, 영감과 진리를 제가 배반하면  뭐와 끊어집니까? 영감과 진리를 배반하면 무엇과 끊어지지요? 그리스도와 법적  연결됐던 것이, 대속으로 연결 됐던게 끊어져 버렵니다. 그게 둘째 사망입니다.

 그러면 현실에서 영감과 진리를 배반하면 사망은 내게 살아났고 죄는 살아났고  그리스도는 내게서 떠나버렸고, 알겠습니까? 떠나버리고,  현실에서 내가 영감과 진리를 버리지 안하고 영감과 진리를 모시고 영감과  진리에 속해서 영감과 진리대로의 사람으로 내가 되어 있으면 그리스도는 내게  와서 살아 역사하게 되고, 죽기는 뭐이 죽습니까? 뭐이 죽습니까? 사망이  죽습니다. 사망이 죽습니다. 죄가 죽습니다. 악령이 내게 대해서는 쫓겨나  버렸습니다. 그러고 또 뭣이 소유됩니까? 뭣이 소유되지요? 하늘의 것과 땅의 것  이제 것과 장래 것이 그 현실에 해당된 그 기능이 소유해야 될 소유는 전부 다  소유하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현실에서 영감과 진리를 떠나지 안하려고 하면 힘이  듭니다. 왜 힘이 듭니까? 악령과 악령의 군졸이 되어 있는 온 세상이 전심전력  다해 가지고서 우리를 진리와 영감을 떠나게 하려고 애씁니다. 진리와 영감을  떠나게 하려고 애를 쓰는 목적이 뭐입니까? 영감과 진리와 나와 떨어지면,  내게서 떠나가면 그리스도와 나와의 연결이 끊어져 버립니다. 그리스도와 나와  연결이 끊어지면 이제사 망하게 돼 버립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현실은 하나님이신 영감과 진리와 또 내 중생된 영과 또 내게  이미 성화된 심신의 기능과, 대적이 되는 악령과 악성과 악습의 모든 죄악과  인본의 자율, 인간의 주관, 인간의 모든 선입적 관념이나 기존 지식 모든 그런  것, 이 세상에 속한 것, 첫째 아담에게 속했던 것 이것과 대립이 돼 싸웁니다.

 이것과 대립이 돼 싸우기 때문에 그 대적이 내 안에도 있습니다. 내 안에 있는  죄를 짓던, 죄를 짓던 그 습성, 하나님의 법을 어겼던 습성 오늘까지 하나님  말씀을 어겨서 돈을 벌었고, 하나님 말씀을 어겨서 지위를 감당했고, 하나님  말씀을 어겨서 모든 권세를 감당했고 하나님 말씀을 어겨서 어떻게 했던 그것을  가리켜서 이름을 악습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악습.

 또 자기 속에 적이 있으니 뭐이냐? 악성입니다. 악성은 악성은 어떤 게  악성인가 하니 내야 죽든지 살든지 하나닙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 위주로 살지 안하고 자기 위주로 자기 중심으로 살려는 그 자기가 있으니  그놈이 옛사람인데 그놈이 또 자기의 원수입니다. 현실에서 영감과 진리대로 못  하게 대적을 합니다.

 또 그 위에 악령은 내 마음에 지금 두 마음이 있어 가지고 이렇게 지금 싸우고  있는데 이 악령은 와 가지고서 '영감과 진리대로 살면 네가 망한다' 해 가지고서  '이렇게 망한다 저렇게 망한다.' 이런 증거도 대고 저런 증거도 대고, 이런  사람을 와 가지고 역설도 하고 저런 사람을 와 가지고 역설도 하고, 이런 권세를  가지고 위협도 하고 탄압도 하고 마구 이렇게 온 세상이 제가 죽는 판이고  쫓겨나는 판이고 나를 뺏기는 판이니까,  바로가 이스라엘 뺏기지 안하려고 발악하다가 마지막에 죽어 없어 져야 되지  그전에는 발악치던 것 그것이 똑 우리에게 지금 하나의 형식계시로 역사계시로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것 들이 발동을 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현실에서 영감과 진리를 배반치 안하면 그리스도와 연결돼서  거기에 해당된 기능은 영생이 됩니다. 다시 그거는 죽지 않습니다. 이리 되고  그때에 영감과 진리를 배반하고 그 악령과 악성과 악습대로 주윈의 세상대로  하면 그때는 그리스도와 끊어지는 것이니까 끊어지면 다시 연결 못 합니다. 그  부분은 그 부분적으로는 끊어져서 다시 연결하지 못하니 그것이 둘째 사망의  해로 영원한 멸망을 받아 버린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현실에서 영감과 진리대로 행하려고 하면 자기를 먼저 부인해야  됩니다. 자기 부인하라 말은 자기 중심을 부인하라 말이요, 또 자기 습성을  부인하라 말이요, 이제 자기의 모든 사욕 그런 것을 다 부인하라 말입니다.

육체의 소욕을 다 부인하라 말입니다.

 그것을 부인해야 되고, 그 다음 자기 부인하고 난 다음에는 온 세상을 부인해야  됩니다. 온 세상을 부인해서, 세상이 좋은 것이지마는 영감과 진리를 내가  가지고 영감과 진리로 살려고 할 때에 '영감과 진리로 가지고 살면 내가 세상을  내가 너한테 뺏들어 버린다, 세상을 내가 주지 안한다.' 이럴 때에는 영감과  진리를 내가 취하기 위해서 세상을 내놔야 된다 말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보화를 발견한 자가 있는 것을 다 팔아서 밭을 삼과 같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때 우리의, 그러기 때문에 우리 현실에서 영감과 진리는 어떠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가? 어떤 중대한 결실을 맺고 있는가 이것을 우리가 똑똑히  알아야 되겠고, 또 현실에서 영감과 진리를 배반치 안 하고 내가 영감과 진리를  모신-영감과 진리를 내가 가진 게 아니고- 영감과 진리를 모시고 영감과 진리의  슬하를, 영감과 진리의 나래 밑을 내가 내 발로 걸어나가지 않으면 뺏들어 갈 자  없습니다.

 내가 내 자유성을 가지고 영감과 진리의 이 나래 밑에, 암탉이 병아리를 나래  아래 품은 것과 같이 이 영감과 진리의 이 은총 능력의 보호 안에, 보호 안에  여기에서 내가 버리고 나가지 않으면 아무도 손대지 못합니다.

 이 안에서 있으려고 하면 내 안에 대적이 얼마나 많으며, 내 안에 대적은, 내  안에 대적이 얼마냐? 대적이 셋입니다. 자기 안에 대적이 셋입니다. 악령 악성  악습 이 셋이 대적이고 자기 밖에 것은 온 세상이 전부 대적입니다.

 온 세상이 전부 대적 아닌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 대적입니다. 이만치 내가  현실에서 영감과 진리를 떠나지 안하고 영감 진리를 배반하지 안하고 버리지  안하고 영감 진리대로 내가 그대로 내가 영감과 진리에게 복종하는 믿음 생활을  하려고 하면 대적이 이렇게 많기 때문에 이 대적을 이기려면 있는 걸 다 내놔,  목숨까지도 다 내놔야 돼. 내놓지 않으면 안 된다 말이오.

 내놓는다고 해서 일 분 일 초라도 일찍 죽는 것 아닙니다. 공연히 어리석어서  마귀란 놈이 위협 주는 데서 그랬지 하나님이 그 지위와 권세를 내놓지 않는데  어떤 자가 내놓게 하겠습니까? 어림도 없습니다. 더 견고해지지요. 더  견고해집니다.

 아무 실력 없는 게 자꾸 거짓말로 위협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이 말하기를  '마귀는 거짓말쟁이라 거짓말쟁이의 애비라' 말했습니다. 거짓말쟁이 애비라  말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거짓말쟁이를 만들어 놨다 말이오. 거짓말쟁이  만들어 놨다. 그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의 이 생명 운동에 반대하는  자들을 만들어 놨다 그말입니다.

 이러니까 내 안에 대적이 많이, 내 밖에 온 세상이 대적이지 이래 그러면  대적인데 이 싸움을 싸워서 내가 진리와 영감을 버리지 안하고 진리와 영감에게  복종하여 진리와 영감에게 소속함으로 그리스도에게 연결되는, 영원한 제사장  선지자 왕의 이 실권을 가지는, 갖추어 가게 되는 이 참 지극히 크고 영화로우신  이 구원, 하나님의 속성에 가담해서 하나님같이 되어지는 이 영광된 이 구원을  이루려고 하면 이 대적이 이렇게 많은데 이 대적을 이겨야 되지 이 대적에게  지면 안되니 이 대적에게 이기려고 하면 네가 있는 것을 다 내놓지 안하면  안된다.

 왜? 그놈이 자꾸 할 권리도 없지마는 자꾸 위협을 하니까 협박을 하니까 안  내놓으면 그 협박에 떨어져서 그만 안 된다 그말이오.

 그만 딱 그걸 주님에게 다 맡겨 놓고, '모든 걸 주께 맡긴다. 내 생명도 네까짓  게 하나도 권리 없다. 내 지위 권세도 네까짓 게 하나 권리 없다. 네가 위에  정권자라고 권리 있는 줄 아나? 어림도 없다. 정권자 네 위에 대가리 우리  주님이 계신다. 어림도 없다. 아무것도 네가 없다.'  거짓말쟁이인 줄 아나 그저 나는 주님에게 맡겼으니까 '그것 내가 상관할 것  없다.' '너 죽인다.' '죽이고 사는 것은 네게 권리가 없다. 주님이 뜻대로  하시는데 주님에게 다 나는 맡겼다. 주님이 오늘 죽으라 해도 좋고 내일 죽으라  해도 좋고 주님에게 맡겼고 모든 지위도 권세도 맡겼어. 모든 경제도 맡겼어.

모든 고락도 다 맡겼어. 그분이 나를 잘해 주실 전지 전능의 사랑의 주님이시기  때문에 잘해 줄줄 아는고로 나는 그분에게 맡겼어. 이러기 때문에 나는 거기  대해서 암만 말해야 내가 그런 위협에 떨어지지 안해. 협박에 떨어지지 않는다.

너는 털끝만치도 할 권리가 없다는 걸 내가 알고 있다. 또 거기에 대해서는  주님에게 맡겼기 때문에 주님이 잘해 주실 걸 내가 알고 있다. 그러기에 너한테  내가 그런 협박에 떨어지지 않는다.' 이러려면 모든 것 다 주님에게 맡기니까  자기는 내놔야 되지 요것 하나라도 가져가려 하면 안 된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그 현실에서 영감과 진리를 배반치 아니하고 영감과 진리에게  속해서, 영감과 진리 아래 피한다 말이오. '암탉이 병아리를 나래 아래 품음같이  이렇게 품으려고, 여러번 품으려고 했지만 너희들이 듣지 안했다' 마태복음  23장에 말씀하신 것과 같이 이렇게 영감 진리는 이 권능인데, 영감과 진리는  나를 능히 보호할 수 있고 엿새 동안에 모든 만물을 창조했고, 창조한 그 창조로  호령칠 수 있는 그것이 영감이요 호령 칠 때 그 호령이 나와 가지고 만물을  만들었으니 호령 그 자체가 진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 영감과 이 진리를 내가 현실에서 배반치 안하고 영감과  진리대로 행동하는, 영감과 진리의 능력의 이 보호 안에 영감과 진리 안에  있으면 내가 그 영감과 진리로 무엇이 되어집니까? 위로는 뭐이 됩니까? 영감과  진리로 인해서 나는 안보되고, 내 자체는 평안하게 안보되고 위로는 무슨 역사가  일어납니까? 예? 녜 위로는 그리스도와 연결이 됩니다. 그리스도와 연결이  됩니다.

 위로는 그리스도와 연결이 되고 또 자기가, 그러면 연결이 되니까 제삼순위가  있는 건데 아래로는, 아래로는 무엇이 됩니까? 모든 존재가 자기의 소유가  됩니다.

 소유가 되나, 소유가 되나 이 세상 말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소유되면 소유된  자는, 소유한 자는 좋아하지마는 피소유격자는 싫어합니다. 소유권자는  좋아하지마는 피소유격자는 싫어한다 그말이오. 그렇지 않습니까? 정권자는  좋아하지마는 정권자에게 이제 피소유가 되어진 자는 언제 나도 한번 정권자  될까 해서 반발심이나 그런 것이 있을 수 있다 그말이오.

 하늘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만물이 다 너희에게 속했고 너희 것이 된다.'  그말은 무슨 말인가 하니 이건 평가적인데 모든 피조물, 천군 천사나 지옥에  있는 것이나 어떤 것이라도 다 나를 좋아하고 나를 바라고 기뻐하는 것은 내가  그에게 주격이 되어지는 것이 자세적으로 주격이 되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를  착취적으로 주격이 되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를 희생시키는 것으로 주격되어지는  것 아니고,  내가 그들에게 모든 것보다 내가 제일 유익하기 때문에 유익을 줄 수 있는,  그들에게 혜택을 입힐 수 있는 이 시은적으로 혜택적으로 그들을 살리는 것으로  유익되게 하는 것으로 그것으로서 내가 저거 들에게 그 으뜸이 되어지는 자이기  때문에 하늘나라는 시비가 없고 전체는 감사와 간구와 복종뿐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만물이 다 너희 것이니라' 내것이라고 생각할 때 내것이면 만물  보기에 미안한 그런 마음을 가질 거라 말이오. '모든 것이 다 내것이라. 그러면  나는 좋아하지마는 만물은 싫어하겠네.' 그런 마음을 가질 때 그것이 세상  말입니다. 세상 생각이요 세상 지식대로 하는 것입니다.

 모든, 모든 만물이 다 내것이 될 때에 내게는 책임이 무겁습니다. 책임감을  느끼게 됩니다. 내것이 될 때에 모든 만물들은 좋아할 것입니다. 좋아한다는,  만물들은 좋아하지마는 만물들이 과연 좋아하는 그 기뻐하고 소망하는 그 기대에  내가 어긋나지 않을 수 있겠느냐? 그 기대에 족하겠느냐? 그것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고민한 것이 그것이 고민한 것이지 죽기를 두려워  고민한 것 아닙니다.

 그 생명이라 하는 게 그리 큰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도 생명이라  하는 그 문제는 그리 큰 문제 아니라. 그래도 사선을 넘어서라야 이 세상 일  하지, 하나 정권을 잡으려 하는 것도 사선을 넘어야 잡습니다.

 이번에 버마에 그렇게 외교로 간 것도 사선을 넘어서 갔습니다. 넘어 가지고  갔는데 그게 안 돼 그렇지 사선을 넘어서 다 생명 내놓고 갔지 생명 안 내놓고  갔으면 어리석은 사람들이오. 다 생명 내놓고 갔소.

 이 세상 일도 다 생명을 넘어서 사선을 넘어 가지고 가는 것인데 그게 아니고  예수님께서 그렇게 고민하신 것은 과연 하나님 아버지가 기대하시고 원하시고  만족하실 수 있는, 모든 천상 천하의 모든 피조물들이 과연 만족할 수 있는,  그들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그런 대속을 할 수 있나 없나 그점에서 지금 고민  고통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만물이 너희 것이니라' 하는 여기에 대해서 오해하지를 말고  그러면 거기에서 평가적으로 그들에게 주격이 되어지기 때문에 그들은 좋아하고  기뻐하는 것이지, 그러기에 강제나 그런 게 아니라 말이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0장에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은 그렇지 않다.

세상은 작은 자가 큰 자의 종이 되지마는 너거에게는 큰 자가 작은 자의 종이  된다. 으뜸이 되는 것은 이제 밑에 들어서 봉사자가 돼야 으뜸이 된다.' 그러면  하늘나라 으뜸이라는 건 봉사로 으뜸입니다. 봉사로 으뜸이요 주는 것으로써  권리요. 다른 권리가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현실에서 그때에 영감과 진리를 배반치 안하면 이로 인해서  우리는 제사장 선지자 왕의 그 실권을, 실력을 갖추게 되고 모든 존재에게  필요하고 그들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것이 되어지기 때문에 로마인서 8장에  말씀하시기를 '만물들이 탄식하면서 고대하는 것은 하나님의 뭇자녀들이 영감과  진리대로 살기를 원한다' '자유함에 이르기를 원하고 있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오늘 아침에 아직까지 증거하려 하는 것은 아직까지 결론 안  나왔는데 요것만 요게 인제 결론입니다. 우리는 이러기 때문에 현실에서 영감과  진리를 버리지 안하고 내가 영감과 진리의 사람으로 그 시간을 통과하면 그때에  관련된 모든 것은 소유적으로 다 내것 됩니다. 소유권적으로 내것이 됩니다. 또  그 모든 것은 다 나에게 혜택을 입고 나를 바라보는 것이 됩니다. 그러기에 나와  유일한 친밀한 것이 됩니다.

 독침이 와 가지고 공산주의 독침이 와 가지고 찌를 때에도 내가 영감과 진리를  떠나지 안하면 독침 그것은 영원히 나를 찬양하는 것 되고 나를 바라보는 것  되고, 독침으로 찌른 그 사람이 불택자면 지옥에 가서라도 그는 영원히 나를  찬양하는 자 되고 영원히 내 지배를 받게 되고 내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현실에서 영감과 진리를 내가 버리지 안하고 영감과  진리에게 복종하는, 영감과 진리와 나와 하나되는, 영감과 진리와 나와  하나되는, 그리스도와 나와 하나되고 그리스도 나와 하나되면 그리스도와 함께  모든 피조물들에게 제사장노릇 선지자노릇 왕노릇을 할 수 있는 것이며 모든  피조물들에게 만족히 은혜를 베풀 수 있는 우리들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러기에 요 현실에, 현실의 가치도 우리가 알아야 되고, 또  현실에 영감과 진리의 이 권위도 알아야 되고, 그 결과가 버리면 어찌 되며 이제  영감과 진리에 순종으로 그걸로써 현실을 통과하면 어찌 된다는 요걸 똑똑히  알아야 우리가 소유와 몸과 생명을 아끼지 안하고 다 내놓고 기쁘고 즐거움으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지난밤에는 칠백오 명이 기도하고 갔습니다. 그런데 아마 집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한 천여 명 넘어 되는 모양입니다. 멀리 못 오니까 집에서, 뭐 집에서  어 데든지, 여기 꼭 와 하는 게 아니라 산에서도 할 수 있고, 또 들에서도 할 수  있고, 옥상에 가서도 할 수 있고 자기 방에서도 할 수 있고, 자기 직장에서 요  생각을, 나는 앞으로 모든 참 크고 영화로운 때에 그때 주님 배반해 가지고  비참하고 가련한 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기도를 이렇게 하는 요 기도를  생각하고,  일하면서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일하면서도 기도하고 다른 사람에게  얘기하면서도 속으로는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래 해도 한 사람들은 했다고, 자기가 못 하면 가족들이라도 보내 가지고서  거기다가 도장을 꼭꼭 찍어 주면 다른 사람에게 기도의 힘을 격발시키는 그런  운동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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