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처녀 비유

 

1984. 1. 29. 주후

 

본문: 마태복음 25장 1절∼13절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 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쌔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쌔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 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 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선지자선교회  이는 열 처녀 비유인데 이 열 처녀 비유에 대해서 해석이 각각 다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슬기 없는 다섯 처녀는 멸망받을 불택자라 그렇게 말을 하고 또 슬기  있는 다섯 처녀들은 택자로서 구원받은 자들이라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슬기 있는 다섯 처녀나 미련한 다섯 처녀나 다  그 사람들이 택자로 구원은 얻으나 하나는 영광 있는 구원을 얻고 하나는  수치스러운 구원을 얻는다 그렇게 견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 구원이 어데를 근거하는고 하면 그 처녀의 기름 준비를 하고  못한데 그 밤중의 등불을 들고 들지 못한 거기에 구원의 좌우가 되어졌으니  그것은 그 행함에 구원이 근거되기 때문에 그것은 곧 행함으로 되는 구원 곧  건설구원 성화구원을 말하는 것이고, 행함에 근거하지 안하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만 구원 얻는 근본적인 구원은 행함과 상관이 없고 영원 전부터 하나님이  마련해 놓은 구원이기 때문에 이 열 처녀가 다 구원 얻을 수 있다 그렇게  해석하는 것입니다. 저도 그 해석에 대해서 전자를 인정하지 안하고 후자를  인정합니다.

 이 비유에 대해서는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고 하니 제일 중요한 것은 준비할  수 있을 때에 준비한 자들은 다 주님을 맞이해서 성공을 했고 준비 할 수 있는  그 기회에 준비하지 아니하고 필요하다고 할 그때에 당장에 무엇을 준비할려고  한 사람들은 다 실패를 했다. 슬기 없는 다섯 처녀들도 준비할 필요성도 느꼈고  준비해야 될 줄을 알았지마는 그 사람들은 당장에 할려고 하니까 그 준비가 안  되고 말았다. 미리 그것을 알고 준비한 사람 들은 준비가 됐다. 미리 준비 해야  되지 미리 준비하지 아니하고 필요하다 그 요긴하다고 생각하는 그때는 벌써  준비할 때가 아니고 준비한 것이 어떻게 되었나 하는 준비의 효력을 그때 나타날  때이기 때문에 준비할 때가 있고 준비한 그 효력을 나타낼 때가 따로 있는데  준비한 효력을 나타날 그 때에 준비를 할려고 하면 안 된다 하는 것입니다.

 마치 농부가 추수 때는 지금 미리 농사를 지어 놓은 그것을 추수 때에 지금  추수하는 것인데 농사지을 때는 하나도 짓지 아니하고 그래 있다가 추수할  그때사 자기도 추수 할려고 애를 써봤자 짓지 아니한 농사에 추수 할 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짓지 아니한 사람이 추수할려고 하면은 남의 농사지어  놓은거 도둑질이나 할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그런 일도  하지마는서도 하나님의 도에서는 그런 일이 안 됩니다. 그러기에, 기독교의 모든  구원은 준비로 되지 준비 아니고 당장에 되는 일은 없다 모두가 다 준비적이다.

하나님께서 교회의 전체로 말하면 사 천 년동안은 농사를 짓는 그런 시기라고  말했고 이천 년동안 신약시대는 추수할 때라고 그렇게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준비할 때와 그 효력을 거둘 때는 다릅니다. 준비할 때는 그  효력은 하나도 보이지 안하고 준비할 때니까 희생만 되어지니까 자기가 곤고하고  수고롭고 손해만 가지 효력이라는 그런 이득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득  없는 그 준비를 할 필요가 없다 해서 미련한 사람들은 이득을 준비할 수 있는 그  준비 때는 준비하지 안하고 이득이 필요한 그때에 이득만 취할려고 하니까 그  사람들의 하는 일이 모두다 실패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기독자들의 전부의 이  건설구원이라 하는 것은 여기에서 다 성공하고 실패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건설구원은 그 사람이 그 효력이 아직까지 보이지 안하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리 이렇게 하면은 이런 좋은 효력을 얻을 수 있고 이것을 하지  안하면 그 효력을 추수할 수가 없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어 우리에게  지도하시는 도인데 이것을 그 사람이 깨닫고 '앞으로 닥쳐 올 효력을' 거둘려면  준비를 해야된다 준비는 희생뿐이요 노고뿐이요 아무런 이득있는 일이 없으나  앞으로 있는 이득 그것을 생각하고 준비하는 사람이 기독자의 구원을 이룰  사람이요 그저 당장에 이득만 생각하고 이득이 준비 끝에 있다는 것을 인정치  안하는 사람들은 미련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흘은 구원을 이루지  못한다'그것을 말합니다.

 노아의 홍수 때도 노아는 아무 이득 없고 다른 사람들에게 조롱받고 멸시받고  하는 일백 이십 년 동안 그 배를 모은 것은 앞으로 하나님이 말씀 하신 그 홍수  심판에 이득을 추수하기 위해서 일백 이십 년 동안 아무 이득 없는 그 준비를 한  그것이 일백 이십 년 후 홍수 때에 비로소 효력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그래 다른  사람들은 그 미래에 이득 있는 그것은 하나 넘이 말씀하시지마는서도 그 말씀을  믿지 안하고 무시하고 당장에 이득 있는 그것만 자꾸 이렇게 취해서 나가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다 멸망을 받았습니다.

 세상에서도 실은 그렇습니다. 대게 내일 준비는 오늘에 있지 내일에 뭐  해가지고 안 됩니다. 내일 준비는 오늘에 있고 또 명년 준비는 금년에 있고 또  장성한 어른이 될 때의 준비는 그 아이 때에 있습니다. 또 늙어서 준비는 젊었을  때에 있고 또 죽을 때의 그 준비는 살아 있을 때에 있고 내세 영원의 준비는  금생에 있는 것이 이것이, 뭐 어디나 다 요 이치대로 되어 있는 것이 하나님이  지으신 이 모든 만물 존재의 법칙입니다. 그런줄 알면서도 이 세상이라는 한계  안에 것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만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는 미래에 있는 그  이득을 위해서 현재에 준비를 해야 된다 하는 것을 다 알아서 공부도 하고 뭐  기술도 배우고 또 여러가지로써 남 밑의 생활을 부하 생활을 열심히 해서 차차  올라가고 이렇게할 줄 알면서 이 죽음 준비가 죽음 준비가 살아 있을 때에 해야  된다 요게 가 가지고는 그만 딱 끊어져서 사람이 모릅니다. 또 죽음 너머 죽음  너머 준비는 죽음 이쪽에서 해야 된다 하는 그것도 깜깜하게 모릅니다. 이것은  성신의 감동을 받지 안한 사람들은 모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지으신 이 만물에 대해서나 또 우리  구원에 대해서나 모든 것은 준비가 있고 준비한 대로의 그 결과의 보응이 있다  하는 요것을 명심하고 잡아야 되고, 그러면 준비와 준비한 그 결과가 결과의  추수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짧은 것도 있고 긴것도 있다. 긴 준비에는 긴  추수가 있고 짧은 준비에는 짧은 추수가 있고 작은 준비에는 작은 추수가 있고  큰 준비에는 큰 추수가 있다 하는 요것을 생각해서 살아야 되겠습니다. 준비.

 둘째로는 반드시 자기에게 필요한 그 이득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성공이라고 할  수 있는 성공이라고 할 수 있는 성공은 준비할 때에 성공이 있는게 아니고 그  준비해 나가는 데에 가장 어려운 때에 그 성공이 있다 어려운 때에 성공이 있다.

그러기에 사람이 아무리 세상 무슨 일을 할지 라도 장사를 해도 그 장사에 제일  어려운 때, 농사를 지어도 제일 어려운 때, 공부를 해도 제일 어려운 때 어려운  때가 있으니 그 어려운 때를 그것을 바로 하지 못하면 안 된다. 그러면 어려운  그때가 추수 때다, 그때가 성공을 좌우하는 때다 하는 것입니다. 제일 어려운  때만 잘 통과 해놓으면 그 다음에는 뭐 문제가 없이 저절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이득과 성공을 기다리는 사람은 반드시 이득과 성공은 쉬울 때 있는  것이 아니고 가장 그 일로써 어려운 때 그 위치에 어려운 그 위치에 이득이라는  것과 성공이 있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평소에 암만 잘해도 소용 없고 가장  어려울 때에 다급할 때에 그때에 바로 해야 성공하게 된다 하는 그것을 여기에  보입니다.

 이 처녀들이 제일 목적하고 있는 그 이득과 성공은 뭐인고 하니, 신랑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이 비유입니다. 비유인데 신랑을 맞이하는 그것이 이제  저들이 기다리고 있는 목적의 성공인데 다섯 처녀는 그 목적한 신랑을 맞이해서  혼인 잔치에 들어 갔고 다섯 처녀는 신랑이 오기는 왔지마는 그만 맞이하지  못하고 쫓겨남을 당했습니다.

 그러면 신랑을 맞이할 마음이야 다 있지마는서도 그 신랑을 맞이 할려면 등불을  들어야 되는데 그 등불을 다섯은 들었고 다섯은 들지 못해서 그만 쫓겨남을  당쾌습니다.

 그러면 다섯이 등불을 들지 못한 그것은 무엇 때문에 들지 못했느냐 들기가  싫어서 못 들었는가? 아니, 들고 싶기도 했습니다. 또 들 줄을 몰랐는가? 아니.

들어야 될 줄도 알았습니다. 그러면 등이 없었는가? 등도 다 있었습니다. 또  그게 그러면 처녀가 아니고 무슨 무슨 과부나 그러 늙은이인가? 아, 다  처녀입니다. 또 똑같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다 같은데 무엇이  틀렸느냐? 그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이해야 될 터인데 등불을 들라고 하니까  등불을 켤수 있는 기름이 없어서 그만 불이 꺼져서 맞이 못했을니다. 다른 거는  꼭 같은데 불을 켜지 못해서 쫓겨남을 당했고 불을 켠 사람들은 다 성공을  했습니다.

 그러면 그 불은 무얼로 켰는가? 기름으로 켜는데 그 기름으로 켠다는 것을  잊어서, 이 처녀들이 모르는 거 아니라 알았습니다. 알고 갑자기 기름이 없어  불이 꺼지니까 기름을 나눠 달라 이래 말했지마는 이 기름은 나눠 줄 수도 없고  나눠 주면 너도 헛일이고 나도 헛일이기 때문에 나눠어 줄 수 없는 기름이라.

그러기 때문에 파는 사람에게 가서 사라 이라니까 갑자기 사겠다고 가 가지고 뭐  달음질치고 급하게 갔지마는서도 기름도 사지도 못하고 오니까 또 신랑은 문  닫아 버리고 다시 만나지도 못하고 실패 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우리가 무슨 성공이든지 성공을 기대하는 사람은 반드시  성공하는 그 과정에는 제일 어려운 역경이 있다 제일 어려움의 그 고비가 있다.

농사 짓는 사람들도 농사의 제일 고비가 되는 그때에 그만 그 고비를 잘 하지  못해 버리면 농사 실농해 버리고 맙니다. 또 자기가 상업 하는 사람들도 실은 그  상업에 고비가 있습니다. 제일 절정되는 고비가 있는데 그 고비에 자기가 그  장사하는 일은 잘하지 안하고 만일 실패하면 그만 다 실돼해 버립니다. 또  공부하는 사람도 고비가 있습니다. 뭐. 이사회에 출세하는 사람도 고비가 있고,  또 전쟁을 하는 데도 고비가 있고 개인 일, 단체 일. 이런 일, 저런 일 모든 그  성공을 기대하는 사람에게 그 성공은 어데 있느냐? 제일 어려울 때에 성공이  좌우된다 그것을 여기에서 보여 줍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성공은 제일 어려울 때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늘 쉬운 것만 생각합니다 쉬운 것만 찾아다니면서 어려운  것은 살살 피하고 쉬운 것만 찾아다니면서 쉬운 일은 하고 어려운 일은 오면은  그만 그거는 또 뒤로 미뤄 버리고 양보하고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성공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이 비유에서 우리는 무슨 전공을 하든지 무슨 사업을 하든지 무슨  출세를 하든지 무슨 입신양명을 할려고 하든지 뭐 정치나 학계나 예술이나  무엇이든지 반드시 그 일을 해 나가는 데에는 참 제 과거에 보지 못한 어려움,  미래에도 보지 못할 어려움 그 어려움의 절정인 그어려운 절정기가 있으니  그것을 가리켜서 이게 밤중이라 그렇게 비유했습니다. 제일 그런 그 절정기가  있는 것인데 그것을 피하는 사람은 성공을 하지 못합니다. 그것도 없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세상 일이나 믿음의 일이나 무엇이든지  반드시 성공을 바라는 사람은 그 성공이 어데 있느냐 시작에 있는 것도 아니고  끝에 있는 것도 아니고 중간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성공은 제일 어려운 그 때에  거기에 놓여 있다 제일 어려움의 거기에 놓여 있다. 그러니까 그것을 잘  통과해야 되지 그때에 실패하면 안 된다 하는 그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 때에 실패하지 안하고 성공을 할려고 하면은 그 성공하는 준비는  어데 있는가? 준비는 평소에 있다, 평소에 준비를 해야 되지 평소에 준비하지  안하면 안 된다. 그러면 준비는 평소에 있다, 또 자기가 바라는 그 성공은 제일  어려운 그 절정에 있다 요 두 가지를 우리가 요게서 배울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거는 보통적이요 여기에 는 이 열 처녀들이 지금 바라고 있는 성공은  뭐인고 하니 그 성공은 신랑을 맞이하는 것인데 이 신랑은 예수님을 비유해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맞이하는 것, 예수님을 맞이하는 것 또  성령을 맞이하는 것, 신앙승리 면류관을 맞이하는 것 예수님을 맞이하는 것,  성령의 능력을 맞이하는 것, 또 모든 전투의 승리를 맞이하는 것 그런 것이 다  예수님 맞이하는 것이요 신랑 맞이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밤중에는 세상에 다른 일은 그 절정기에 성공이 있지마는서도  여기에는 절정기 예수님을 만나는데 거기에 등불을 들고 있어야 성공을 했지  등불들지 안한 사람들은 다 쫓겨 났습니다. 등불 든 거기에서 성공을 했습니다.

그 등불은 이것도 비유인데 밤중은 깜깜 어두운 때입니다. 깜깜 어두운 때인데  그 어두운 때에 어두움에 삼켜지지 안하고 어두움과 같이 되지 아니하고 어두운  그 때에 어두움의 정반대인 그 빛을 든 사람만이 주님을 맞이했다 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도 그러합니다. 사람들이 대개 보면 사업하는 사람이든지 뭐이 이래  하는 사람을 보면 그것을 해 나가다가 자기가 목표하는 그성공을 할려고  나아가다가는 그 성공이 어데 있는가? 제일 절정, 어려운 때 있다 이렇게 성경  말씀에 말해 놨는데 어려운 때에 있는데 어려운 그때 일수록이 자기가 하는 그  사업이라든지 무슨 전공이라든지 그것을 할 때인데 그 어려울 때에 밤중을, 제일  절정기 어려운 때를 잘 통과해야 된다하는- 이 신랑맞이에는 등불을 가리켜서  말해 놨는데-그와 같은 이치는 있습니다. 자기가 출세를 하려 하면은 출세하기에  제일 어렵고 애로가 많고 고통이 많고 마찰이 많고 제일 어려운 그 때에 자기는  가장 조심하고 힘을 써 가지고서 거기에 대해서 정확성, 진실성. 거기에 에  대해서 참 가장 옳고 바른 그 길을 양보하지 안하고 그 길을 불끈 잡고 통과하면  앞뒤에 저 너머에 만 당 너머에 까풀막 '주: 비탈진 곳'도 점령했고 이 앞에  있는 까풀막도 점령했고 양쪽 그 모든 까풀막은 다 점령해서, 그것은 제 자유를,  벌써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 장사하는 사람들도 여기에 서 이 진리를 배울 수가  있습니다. 장사하는 사람이 자기가 장사에 성공하는 것은 장사의 성공은 그  장사의 제일 어려운 역경의 역경, 절정의 장사의 성공이 있는데 절정, 역경에 가  가지고서 등불 들지 못하면 헛일입니다. 역경 절정에 가 가지고서 천 인 만 인이  다 변질이 돼 가지고서 변해 나갈지 라도 자기는 성공을 하든지 못하든지 돈을  벌든지 못벌든지 그 절정기 그때에 자기가 변질되지 아니하고 정상적인  사람으로, 딱 거기에 서 요동치 안하고 통과하면 벌써 거기에 서는 벌써 권능을  얻었고 벌써 승리를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평소에는 조심해서 자기가 아무런 양심에나 그런 거 가책없이  하나님의 법칙대로 맞추어 한다고 해도 되게 어려운 절정이 오면 그때는  어려우니까 이럴 때야 어쩔 수가 있나 해 가지고 그럴 때에 변질이 됩니다.

변질되는 그것이 사업으로 말하면 내나 등불이 꺼진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럴 때에 제일 어려울 때에 정직을 가지지 못하고 정직을 가지지 못하고  진실을 가지지 못하고 신용을 가지지 못합니다. 그럴 때에 그 아무리 어려워도  다 망한다 할지라도 정직도 놓지 말고, 장사에는 정직이요 장사는 진실이요  장사에는 친절이요 장사에는 신용이요 그 너덧 가지만 있으면 됩니다. 자기가  진실하고 정직하고 친절하고 신용 있고 하는데 요 절정에 오면은 그것을 지키면  박살이 날 것 같해서 그걸 그만 지키지 못하고 그때는 이렇츰 다급하니까 어쩔  수 있느냐 해 가지고서 변질이 되는 그것이 무어냐 등불을 들지 못하는 거와 꼭  같은 것입니다.

 그럴 때에 그 사람이 보자, 옆에 사람이 다 보는데 '야, 이 사람아 지금은 네가  이럴 때니까 이럴 때 어쩔 수가 있나 조금 거짓말 한마디 해라 또 이럴 때는  조금 무엇이 뭐 좀 이질적으로 뭐 속이는 그런 것도 한번 해라 또 이럴 때는  네가 꼭 신용을 지켜서 뭐 그럴게 뭐 있나 해라' 이렇게 옆에서 말하고 자기  속에도 그 생각이 나오기 때문에 그만 그럴 때에 등불 들지 못하는 거와같이 그  환경에 몰려 가지고 자기도 환경과 같이 그렇게 변질되고 부패되고 타락하기  쉽습니다.

 그럴 때에 성경을 배운 사람은 오, 이때가 참 추수를 하는 때요 그 이제까지  내가 노력한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요 절정기니까 요럴 때에 나는 전심전력을  기울여 가지고서 그거야 어찌 되든지 말든지 내 자신이 등불을 든 거와같이  그렇게 바르게 옳게 참되게 진실하게 하겠다. 요렇게 해 나갑니다. 해 나가면 그  사람이 그래 가지고 턱 낭패를 당합니다. 낭패를 당해도 얼마 안 가서  돌아옵니다. 그 뒤에 사람들이 다 인인성사를 하는 것인데 사람들이 가만히  살펴보니까. 야, 그 사람이 먼저 그때는 그때야 거짓말 안할수 없고 그때야  사기를 안 할 수 없고 협잡을 안 할 수 없고 그때는 좀 가짜를 이렇게 해서 하지  안할 수 없고 에누리 하지 안할 수 없었는데 그럴 때 다 망해도 보니까, 그  사람은 요동치 아니하고 하니까 저 사람 저게 등신이라든지 그렇지 않으면 저  사람이 뭐 속에 있든지 있는데 가만히 보니까 그 사람이 지혜도 있는  사람이지마는서도 변질되지 않기 위해서 참된 거, 바른 거, 곧은 거, 진실한 거,  신용 있는 거, 친절한 거, 이것을 - 뭐 상업도덕이나 상업 권위, 상권은 진실이  신용이 상권입니다. 진실이 상권이요 상권이나 상업도덕이나 그런 모든 면을  보니까 이 사람은 참, 요번에 그걸 보니까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하면은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을 붙들고서 모든 일 할 수 있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부자도 될  수 있고 하루아침에 큰 사장도 될 수 있고 얼마든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럴 때 사람들이 변질되는 데에서 그만 자기 중량이 가볍기 때문에  날아가 버리고 맙니다.

 그러니까 무엇이든지 우리는 준비하는 그 준비 끝에 성공이 있지 준비 없는  성공은 없다. 준비해서 나가는 데에 그 성공은 어데 있느냐 성공은 제일  어렵다는 그 위치 그 절정, 역경, 제일 어려운 때 거기에 성공이 있다 거기에  성공이 있는데, 있는 그 성공을 취할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취할 사람은 그  사람은 그때에 빛을 들어야 되고, 그 어두움에 같이 싸여서 어둡지 안하고 환한  광명의 빛을 내게 되면 신랑을 맞이하게 된다, 자기의 모든 것을 맡아줄 수 있는  자기보다 뛰어난 무한히 뛰어난 그 실력을 자기가 맞이해서 그 실력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하는 그런 이치의 말입니다.

 여기에는 기름 준비를 한 사람은 맞이하고 준비 안한 사람은 맞이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기름준비는 뭐할라고?-등불을 들고서 하는 것인데 신랑이  오기를 밤중에 오니까 그 환경이 깜깜 어두워지는데 밤중에 오니까-그 등불이라  하는 것은 낮에 쓸라고 등불을 만들어 놓는게 아니 그 밤중에 어두울 때에  쓸라고서 등불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이러니까 밤중이니까 등불이 가장  필요한 때입니다. 등불이 가장 필요한 때인데 그때 그만 다섯 처녀는 기름이  없어서 등불을 켜지 못해 가지고서 쫓겨 났습니다. 밤중이니까 가장 어려운 때요  가장 어두운 때니까 등불이 가장 필요 한 때인데 그 등불의 자본이 되는 그  기름이 없어서 그만 맞이하지 못하고 실패를 했습니다.

 이거는 다 비유인데 우리가 신앙 걸음을 걸어갈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의 빛이라고 말하는 그 말은  우리가 빛이라는 말이 아니고 빛을 맡은 사람이라 그말입니다. 그러면 빛은  어두움의 반대가 빛이요 어두움은 모든 삐뚤어진 것, 잘못된 것, 이 사망,  망하는 것, 저주 그 모든 좋지 못한 것들을 가리켜서 어두움이라 말하고 빛이라  하는 것은 모든 좋은 것 옳고 바르고 참된 것. 행복스러 운 것, 성공, 기쁨,  즐거움, 참기쁨과 즐거움은 빛이요 사람에게 슬픔과 고통 하는 그런 것은 다  어두움에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기 때문에  우리 기독자의 성공은 어데 있는고 하니 세상 이 가장 어두워질 때에는 하나님의  빛이 가장 필요합니다.

 그러기에 그 어두울 때에 그때에 하나님의 빛이 필요하니까 그 어두울 때에  빛을 비추어서 그 어두움을 없애고 물리칠 수 있는 그 사람이면 주님이 그와  동행하시고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기시고 인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우리 기독자들을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는 것은 어두운 세상에 우리를 빛으로  두셔 가지고서 빛으로 필요한 자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어두운 걸 비추는 데에  필요합니다. 어두운 것을 밝게 하는 데에 필요한 것이 우리 기독자들입니다.

그러면 어두운 데에 빛이 무엇이 필요한가? 빛이 필요한 것은 모든 어두움의  세력들이 다 없어지지, 어둠의 세력이 없어진다는 것은 죄악의 세력이 없어지는  것이요 거짓 세력이 없어지는 것이요 삐뚤어지는 세력이 없어지는 것이요 악의  세력들이 없어지는 것이요 사망의 세력들이 없어지는 것이요 모든 궤휼과 간교와  이단과 참소, 훼방, 온갖 죄악 그런 것들이 다 어두움인데 그런 것들을 없애기  위해서 우리들을 구속해 가지고 세상에 두신 것입니다. 그런 것을 없애기  위해서. 또, 어두움을 없애고 난 다음에는 그 빛이 무엇이 필요 있는가?  어두움을 없애고 난 다음에 빛이 필요한 것은 이제 모든 존재를 바로 환하게  사람들이 보고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것이 빛인 줄 압니다. 저거는 사람이다  저거는 개다 저거는 네모잽이다 저거는 세모잽이다 저거는 사기꾼이다 저거는  진실한 사람이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정체와 정색과 정질과 정평 '저게 뭐이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옳고 바르게 모든 것을 그것을 사실 실상대로 세상에게  알려 주는 그것이 우리의 또 한 가지의 의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 앞에서 착한 일을 하여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너희들의  선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 영광을 돌리게 하라'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시고. 인간을 내시고 먹히고 입히고  기르시면서 이렇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무슨 소망 가지고 하느냐?  과수원지기가 과수를 가꾸고 하는 것은 그게 열매는 열매 맺는 그 과실을 바라고  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이 만물을 내시고 기르고 하는 것은 무슨  과실을 바라고 하느냐 하면 하나님이 없는 가운데서 자존하신 이 조물주,  창조주, 주재자, 주권자 이분을 이 피조물들이 알아서 이분을 이분으로 대우하고  이분을 이분으로 섬기고 이분을 이분으로 바라보고 의지하고 해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아 하나님을 바로 올바로 상대함으로써 하나님께서 또 저들에게  올바른 면을 끼쳐 주고 이래서 하나님에게는 기쁨이 되고 모든 피조물에게는  그것이 행복이 되어지고 생명이 되어지도록 이렇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이 지금  이 과수원을 과수원을 심으고 기르고 가꾸는 것입니다. 이 모든 사람들을  가리켜서 과목이라고 말했고 이 세상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과수원이라 말했는데  이 과수원에 하나님이 이렇게 애써 기른 거는 뭐이냐 하면은 과실을 바라서  기른다. 과실은 뭐이냐? 그 과실은 조물주를, 피조물이 조물주로 알고 조물주를  조물주로 섬기고 바라보고 의지하고 그에게 순종하고 따르면 하나님에게는  유익될 거 한 네끼도 없지마는서도 하나님은 기쁜 것뿐이고 그리함으로써  피조물이 당신이 만들어 놓은 피조물이 망하지 안하고 천 년이고 만 년이고  천만이고 영원히 행복되게 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것을 원하셔서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너희들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  영광을 돌린다' 그 말은 너희들이 이대로의 열매 맺는 하나님 중심으로 대주재  중심으로 자존자 중심으로 창조주 중심으로 주재자 주권자 중심으로 그분  중심으로 너희들이 사는 걸 보고 세상에서 저거는 전부 각자가 각 각 다 제  중심으로 제 욕심대로 제 사욕대로 제 주관대로 제 성품대로 제 뜻대로 전부  이렇게 사는 이것으로 멸망할 세상에 하나님 중심 위주로 사는 것을 네가 보여  주면 그들이 아, 저들은 절대자이신 그분 한분의 중심으로 천 명이고 만 명이고  보니까 그 사람들은 그 한 분의 중심으로 이와 같이 사니 그 한 분의 중심으로  하는 그것이 진리요 그라니까 그것이 다 안녕 질서와 조직과 모든 정연해  가지고서 이게 바로 되는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 사람들이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고, 돌이쳐서 구원 얻게 된다 하는 그런 말입니다.

 이러니까 이 밤중에 소리가 났다하는 이 비유인데 이제 세상이 어두워서 진리가  제일 없을 때가 밤중이요 악의 세력이 제일 강할 때가 밤중이요 모든 사이비한  것들이 가득 차서 옳고 바른 것을 분별할 수 없는 때가 밤중입니다. 이러니까  이럴 때는 가장 이 밤중은 하나님께 속한 모든 것은 다 가리워지고 없어지고  악령과 이게 악의 사망의 이 모든 죄악의 것들이 세력을 들고서, 이라니까  세상은 전부이 꺼꾸로 돼 버리고 깜깜해서 조물주도 모르고-저거가 또-이북의  공산주의들 저런데는 제말로 됐다고 공산주의 김일성이 제가 조물주라고 제가  신이라고 이렇게 하든지 이렇게 어두워지는 그런 어두워지는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무얼 요구 하시느냐? 빛을 요구하신다 그 말이요. 빛을, 빛을  요구하여 저희들이 틀렸다는 것도 알려 주고 이건. 보라 하나님 중심이 아니기  때문에 이거는 아주 틀렸다. 그들이 틀린 것을 보여 주고 알려 주고. 또 그것은  다 사망하는 길이요 틀린 거라 그것을 알려 주는 그것을 하나님이 요구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지금 이북과 이남에 이렇게 되어져 있는 이것도 이남에서 빛을 빛을  보여서 이 빛이 켜 가지고서 이북의 저 어두움을 깨뜨리면 우리 한국에 큰  한국교회가 큰 성공이 될 것이고 그 어두움을 깨뜨리지 못하고 어두움에게  삼켜지면 완전히 절단 나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지금 이  국제적으로 들 빛은 뭐이냐? 이북이 이남에-이남에는 그 어두움이 차차차 심해  가지고서 이제 차차차 더 어두움이 심해서 밤중이 되어 오고 또 여기에 서는  지금 등불을 들고 이래 하는데 이제 등불이 꺼지느냐 어두움이 녹아지느냐  여기에서 이 한국 민족의 그 생사화복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 뭐 안 믿는  사람들은 이것을 모르니까 국력강화니 뭐 그들은 다 그들의 할 일은 또 그거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지마는서도 실은 이 어두움은 이북에서는 어두움을 붙이고  이남에서는 광명을 비추고 있는데 이 광명의 빛이 저 어두움을 저것을 완전히  깨뜨려서 없애 버리면은 이제 이 한국 교회는 살아나고 한국 민족은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빛을 비추는 그런 것은 우리가 지금은 할 일이 뭐이냐? 지금은 할  일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깨끗하게 회개해서 하나님이 보실 때에 이제 등불이  됐다 실력있는 등불이 됐다 당신이 볼때에 실력있는 등불이 되고 기름이 넉넉한  등불이 됐다 우리의 기도로써 그 밝은 등불이 됐고 우리의 회개로써 밝은 등불이  됐고 우리 남한에 있는 교회가 깨끗한 등불이 되면 하나님께서 이 등불을 들고  이북을 쓱 한번 밀면 이북에 있는 어두움이라 하는 것은 싹 소멸돼 버리고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 국제적으로 말하면. 지금 이남에 있는 이 열 처녀와 앞으로 오는  자꾸 어두워져 가는 이런 밤중.-어두움의 세력과 이래 가지고 있는데-어두움의  세력에게 점령을 당한 처녀들은 다 실패를 봤고 어두움의 세력들에게 점령당하지  안하고 광명으로 어두움을 깨뜨린 그 등불든 처녀들은 다 승리를 했습니다.

이것은 국제적으로 되는 것이고,  개인적으로도 그러합니다. 개인적으로도 이 밤중의 어려움 이것은 우리  기독자들에게 있어서는 가장 자기 주위, 환경, 자기 현실이 악의 세력으로  강해지고 불의로 강해지고 또 믿음이 없는 불신으로 강해지고 인본으로 강해지고  세본으로 육신주의로 강해지는 이것이 차차 차차 강해지면 그것이 뭐이냐 밤중이  짙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지금 우리 남한으로 말하면 그런 정도에 있습니다. 이 어두움의  세력이 남한 안에서 남한 안에서도 교회의 어두움의 세력, 광명의 세력이 두  세력이 이래 가지고서 어두움의 세력이 좀 강해졌다가 광명의 세력이 강해졌다가  이 두 세력이 자꾸 이래 하는데 앞으로 어느 세력이 지고 어느 세력이 이기느냐  하는 그것이 이제 결정이 날 것이고 또 이 남한 안에서도 그리될 뿐 아니라 남한  안에서도 이 기독교가 수가 많지마는서도 여기에 서 진리가 승리를 하느냐 또 이  모든 사이비한 진리 아닌 속화된 교회가 승리 하느냐? 인본주의가 승리하느냐  신본주의가 승리하느냐? 천국운동이 승리를 하느냐 이 지상 천국운동이 승리를  하느냐 이 둘은 둘로 이라고 있는데 어느 것이 승리하느냐? 그러면 승리하는  것은 승리하고 패전하는 것은 패전하게 됩니다. 이러니까 앞으로 차차 차차 이  속화 교회가 세력이 강해 지고서 진리가 차차 이렇게 가리워져서 한국에 있는  교회 전체적으로 보면 빛이 어두워지고 이 어두움이 더 강해지고 이런 만일 이  세대가 자꾸 이렇게 돼 나가면은 이 한국교회 전체적으로서는 실패됩니다.

그러나 그럴 때에 이제 전체적이 안 되면 한 교회 한 교회가 그 교회는 빛으로  강해지고 한 교회는 다른 교회는 어두움으로 강해지면 이제 마지막에는 이  어두움의 숫자가 많고 광명의 숫자가 적어지면은 차차 차차 전체적으로서는  광명의 수자가 압도해서 처지게 되는데 광명의 숫자 그러니까 나중에 가서는  하나와 하나들이 싸우다가 나중에는 하나 가지고 둘 하고 싸우다가 하나 가지고  열 하고 싸우다가 하나 가지고 백 하고 싸우다가 이래서 마지막에 한 사람이라도  빛을 끄지 안하고 그 빛이 그대로 켜가지고 있으면은 전 한국 교회와 세계교회를  다 이길 수도 있고 다 이길 수도 있는 그것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이 승패의  길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넓게 이북에는 어두움의 세력이 오고 밤중이 차차 오고  이남에는 이 빛을 들고 있는 교회. 하나님을 인정하는 이 교회가 있는데 앞으로  이제 이 어두움과 빛이 서로 한번 싸우는 마지막의 승패가 결정되는 전쟁이 있을  것이다 하는 그것을 우리는 예상해야 됩니다.

 그러면 그럴 때에 가장 악의 세력이 강했을 때에 그 때에 이 광명의 세력이  숫자가 많으면 좋고 숫자가 많으면 많은 승리가 될 것이고 숫자가 적으면 적은  승리를 얻을 터이니까 많든지 적든지 승리하는 것은 그 빛이 꺼지지 안하고 빛이  어두움에 삼켜지지 안하고 어두움을 정복할 수 있는 그 빛이 되어야 승리하지  그렇지 않으면 승리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남과 이북의 이  넓이, 범위 넓이 잡은 어두움과 빛의 이 서로 투쟁도 있고 또 남한 안에서 또  어두움과 빛의 이 투쟁도 있고 또 한교회 안에도 있고 또 개인 자기 안에도 개인  자기 안에도 어두움의 세력과 빛의 세력이 이 둘이 들어서 싸워 가지고서 이렇게  다투는 그것이 뭐 좁은 데도 있고 넓은 데도 있고 큰 데도 있고 국제적으로도  세계적으로도 있고 이와같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면 가장 어두운 때. 하나 예를 든다고 하면, 다니엘 시대는 그 때에  온 전국이 다 하나님을 미워하고 하나님 도를 업신여겨서, 어짜든지 예수 믿는  도를 없애 보자 하고 예수 믿는 도를 박멸하기 위해서 기도 하는 자들은  사자구덩이에 넣자 하는 그런 결의를 온 전국이 다 결의했으니까 그 결의하는  데에서 아마 기독자들도 다니엘 한 사람 말고 다른 사람들은 다 삼켜진 것  같습니다. 뭐 기도 안 하겠습니다. 하고 삼켜진 것 같해. 만일 삼켜 지지  안했으면 그 사람이 큰 전투가 있어 놨을 것이고 그것이 무슨 역사에 기록했을  건데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고 그만 다 기도 안 하라 하면 기도 하지 말라고  하니다. 속으로나 기도한다니 하고 그만 이렇게 다 얼버무려 가지고서 없었는데  딱 다니엘 한 사람에게 와서 비추어진 겁니다. 그러면 그럴 때에는 온 전국이  깜깜한 밤중 세력인 때입니다. 밤중 세력의 때인데 그 때에 그 기름 준비하지  아니한 사람들은 다 그 어두움에게 삼켜졌지마는서도 기름준비한 이 다니엘은 그  때에 그 전국이 하나님께 기도하지 말고 그 다리오 왕에게 기도하라고 다리오  왕을 신화시켜 가지고서 그에게 기도하라고 하는 그런 어두움의 세력이 꽉 와서  하나님을 없애 버리고 다리오 왕을 다리오 왕을 하나님 대신으로 이렇게  세울라고 하는 전국 운동이 이것이 다 되어 가지고 있는데 뭐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거기에 삼켜져 가지고서 다 삼켜졌는데 다니엘 한 사람에게 딱 맺혔다  말이요. 그러나 다니엘 한 사람은 그 빛을 양은 적지만 자기 한 개인은 개인  이지마는서도 그 개인이 어두움에게 조그만치라도 양보하지 안하고 빛을 그대로  들고서 강하게 빛을, '아, 나는 기도 안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계속  기도합니다.' 하는 요 빛을 가지고 그 어두움에 삼켜지지 안하고 이래 하니까  그때가 어느 때냐 하면은 그 밤중이라, 어두움의 세력이 하나님 대적되는 세력이  강해지는 때요, 또 하나님에게는 어떤 때냐 그때는 하나님 대적의 세력이  강해지는 때이니까 하나님에게는 무엇이 제일 필요한 때냐 하나님에게는 무엇이  제일 필요한 때입니까 뭐 이 필요한 때이지요? 어? 하나님에게 무엇이 필요한  때입니까? 그렇게 되니까 밤중이 됐다 말이요, 밤중이 돼 가지고 악의 세력이  강해져서 하나님의 세력은 다 벌써 까 뭉캐져 버리고 없어지고 하는 그 밤중이  됐으니까 그 밤중인데 하나님은 그때 무엇을 원하시겠습니까? 뭐이 필요합니까?  빛을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럴 때에 빛이 제일 필요합니다. 하나님에게는  그때에 빛이 제일 필요해, 낮에는 빛이 필요 없고, 제일 필요한데 그때에 빛을  가진자 가, 아무도 없었는데 다니엘 한 사람은 빛을 가지시고 그 빛이 양보하지  안하니까 그 빛을 마지막에 없애 버리려고, 사자 구덩이에 집어넣어 놓고 이제는  이제는 다 없앴다 하고서 저희들이 잔치하고 좋아하고 기뻐했지마는서도 그 빛을  자기가 양보하지 안하고 그 빛을 끄지 안하고 그 빛을 들고 있으니까 든 빛은  어두움이 삼키지를 못합니다. 어두움이 사자구덩이까지 집어 넣었지마는서도  어두움이 이 빛을 둘러싸고 진하게 강하게 어두워지니까 이 빛은 더 넓게 퍼지고  강하게 퍼집니다. 낮에는 빛을 싸봤자 표가 없지마는서도 밤이 깊어 갈수록이  등불은 더 표가 납니다.

 이래 가지고서 사자구덩이에 집어 넣었지마는서도 그 빛은 마침내 파사나라에  전국에 환하게 비춰서 전국에 있는 어두움을 완전히 쫓아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러니까 그때에 하나님이 제일 빛을 요긴으로 생각하는 때, 빛이 제일 필요한  때, 등불이 필요한 때, 등불이 필요한 때 그때에 등불들고 있는 그 등불을  가치있게 높혀 주지마는서도 등불이 필요할 때는 그만 등불이 꺼져 버리고 등불  필요 없을 때, 환하게 밝을 때 그때는 등불이 있으나 뭐 햇빛이 있는데 그  등불이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이러니까 등불을 필요로 하는 그때, 하나님이  빛을 필요로 하는 때, 하나님이 진리를 필요로 하는 때 하나님이 하나님의 이  계약을 인간들에게 알려 주고 하나님이 살아 계시 하나님의 전능을 세상에게  보여주는 것이 빛이요 하나님의 주권을 보여주시는 것이 세상의 빛이요 하나님이  모든 창조주이신 것을 보여 주는 것이 세상의 빛이요 하나님이 주권자인 것을  보여 주는 것이 세상의 빛이라.

 이러니까 하나님과 하나님의 그 역사 이것을 이 깜깜 어두워 하나님 모르는  깜깜, 마귀가 어둡게해서 깜깜한 세상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그 역사,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구원을 세상에 보여 주는 그것이 어두운 세상의 빛인데 하나님이  그것을 어두울수록이 그걸 원하고 계시는데 그때에 등불을 들고 세상에게  하나님을 보여줄 자가 누구냐 하나님의 절대적인 그 권능을 보여줄 자가 누구냐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보여 줄 자가 누구냐 하나님이 주권자인 것을 보여 줄  자가 누구냐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전능자인 것을 보여 줄 자가 누구냐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재하고 있고 모든 걸 그곳에 속했다 하는 것을 보여줄  자가 누구냐 보여 주는 사람만 있으면 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고하나 종자를  통해 가지고 얼마든지 크게 역사 할 수가 있는데 그때 보여 줄 자가 누구냐? 그  보여 주는 것이 그것이 등불 든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앞으로 그 어두움이 올 때에는 그때에 잘못하면 생각하기를  하나님이 계시면 왜 어두움을 이렇게 오게 하는가 어두움을 오게 하는가 이래서  어두움의 세력을 더 큰 줄로 알고 하나님의 세력은 자신 조차도 벌써 멸시하는  그런 사람 되기 쉽습니다. 세상이 어두워지고 하는 그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어두워지게 되도록 어두워지게 만드시는 것은 뭐이냐 하면은 하나님이 그까짓거  빛으로 할라 할진대 대번에 하지마는서도 어두워지게 하는 것은 이매 세상에  빛된 이 빛으로 하여금 빛을 나타내도록 하기위해서 어두워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 어두워지게 할때에 그때에 자기가 생각, 하기를 '아 지금 벌써 하나님의  빛이 없다 진리가 없다, 영감이 없다, 진리가 없다, 하나님의 권능이 없다  하나님의 위신이 없다, 하나님의 존영이 없다. 하나님을 높이고 섬기는 일이  없다 하나님도 하나님의 능력도 하나님의 역사도 하나님의 구원도 완전히  없어지고 깜깜 어두운 세상 이북같이 저런 어두운 세상이 되어지는 저럴 때에  그때에 뭐이 필요하나?' 그때에 필요한 것이 등불입니다. 그때에 필요한 것이  등불이요, 하나님이 그 등불을 원하십니다.

 이러니까 그렇게 될 때에 그것을 하나님이 그 등불로 세워놓은 이 등불에  가치가 있도록 등불을 가치있게 만드는 것이요 등불을 필요하게 요긴하게 쓰이게  만드는 것이요 이 등불을 높이 들기 위해서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환경이 어두워지는 것은 기독자로 하여금 영광스럽게 존귀케 하려는 것입니다.

다니엘 시대에 그렇게 세상이 그래된 것이 다니엘만 다니엘이 어떤 사람이라하는  것을 온 파사나라에 보여주기 위하는 것도 있고 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라하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하는 것도 있고. 그래 가지고 그때 그것으로써 그  파사나라에서 그렇게 어두운 세력들이 강하게 한 그것이 결과적은 무슨 일을  나타내느냐 하면은 다니엘은 어떻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냈고,  그 사람은 어떻게 세상 이 다 어두워도 그 어두움에게 삼키지 안하고 혼자라도  '반짝' 반짝 빛으로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냈고, 그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 라는 것을 나타냈고 또 하나님으로 인해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냈고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 어두움의 세력이 올 때에는  반드시 그것은 그 어두움의 세력은 하나님이 그와같이 하시는 것인데 그  어두움의 세력은 무엇할라고 하나님이 그렇게 어두움의 세력을 나타내느냐? 그  어두움의 세력을 그렇게 마련해서 강하게 만드는 것은 둘을 위해서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그 어두움의 세력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둘을 위해서.

하나님이 그걸 없앨려고 하면은 당장에 없앨 수 있지마는서도 그것이 뭐이냐?  하나님의 사람을 빛의 사람으로 만들고 빛의 사람 한 사람이면서 수 많은 빛의  사람을 만들어 가지고서 그 자체가 세상의 빛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와같이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어두움을 통해서 다니엘이 어떤 그 빛을 준비한 사람인가. 어떻게  기름을 준비한 사람인가. 그 사람이 등불을 어떻게 준비한 사람인가 하는 것을  그 어두움을 통해서 드러났고, 또 그 다니엘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라  하는 것을 죽음 가운데서 살리시고 사자굴에도 그 하나님은 상관이 없다 이렇게  하나님은 참, 전지전능의 주권자 하나님인 것을 다니엘을 통해서 나타났고, 또  다니엘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함을 통해서 다니엘은 이렇게 위대한 사람이라  해서 다니엘은 그 전국에 제일 높은 사람이 됐고 또 하나님은 그 전국뿐 아니라  모든 존재 중에 제일 높은 이로서 그와같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것이  우리앞에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그 어두움이 올 때는 그때는 그 어두움을 하나님이 그와같이  만드시는 것인데 어두움이 올 때에는 빛이 된 사람과 빛을 가진 사람과 빛을  가지지 못한 사람을 구별하기 위해서 나타내고, 빛 가지지 못한 사람은 망하도록  하기 빛 가지지 못한 사람은 다 쫓겨나도록 하기 위함이요, 빛 가진 사람들은  드러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고, 그러면 빛 가진 사람과 빛  가지지 안한 사람 그 사람을 드러내고. 또 하나는 하나님이 어떠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알려 주기 위해서 그와같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런 밤중같은 어려움이 올 때에 요 지식을 미리, 함부레, 예비  상식으로 똑똑히 가지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무슨 국제적인 어려움이  온다든지 혹은 이 국내 안에서 무슨 사신 우상 하는 어려움이 온다든지 주일을  지키지 아니하는 어려움이 온다든지 요 어려움이 올 때에 요것을 꼭 단단히  기억히 가져야 됩니다. 안 가지면 안 됩니다.

 그 어려움이 올 때에는 그 어려움을 오게 하는 이가 하나님이시요 오게 하는  이가 하나님이신데 뭐 할라고 어려움을 오게 하느냐? 어려움을 오게 하는 것은  빛을 가진 다섯 처녀와 빛을 가지지 못하는 미련한 다섯 처녀를 구별하기 위해서  밤중을 보인 것이고, 그 밤중에 빛 가진 자를 통해서 하나님이 나타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어떠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슬기 있는 다섯 처녀는 주님을 영접했다 그렇게 이 비유에 신랑을  영접했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런고로 요럴 때에 밤중된 요럴 때에 등불을  마련치 못한 미련한 처녀 미련한 성도는 다 그는 그때까지 바라보던 것보다도  현재까지 그의 가치보다도 훨씬 가치가 뚝 떨어졌고 권위도 떨어졌고 영광도  떨어졌고 주님과 멀어지게 됐습니다. 그러나 그 빛을 가지고 준비한 사람은  이제와 다른 거 가지고서 신랑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럴 때에 요 두 가지를  나타내기 위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신랑이 나타났습니다.

거기서 그럼으로써 전지전능의 하나님 '아. 네가 섬기는 하나님은 전지전능의  하나님이시로구나 참 주권의 하나님이시로구나 주재의 하나님이시로구나  그분에게 인간의 생사화복이 다 달렸구나.' 하는 이런 하나님을 세상에다가 보여  주기 위해서 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두움은 우리 기독자에게 절대로  해로운 것이 아닙니다. 어두움이 오는 거, 어두움의 세력, 악의 세력이 오는 거.

악의 세력은 어떤 게 악의 세력이냐? 악의 세력은 하나님의 도를 서지 못하게  하는 거 진리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거, 하나님 뜻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거,  바르게 신앙을 지키지 못하게 하는 그 모든 환경과 주위들이 이것이 어두움의  세력인데 어두움의 세력이 오는 것은 주권자이신 개별 섭리 주권자이신 주님이  그 어려움을 만내가지고서 어두움을 만들어 가지고 어두움을 그렇게 지금 자꾸  차차 차차 고도로 이렇게 성장시켜 가지고서 밤중을 만드는데 밤중 만드는 그게  이제 승패가 있습니다. 밤중의 그 승패에 대한 거는 우리가 좀전에 배웠습니다.

 밤중의 그 승패가 있는데 이 어두움을 만드는 것은 무엇 때문에 만드느냐  만드는 것은 슬기 있는 다섯 처녀와 슬기 없는 다섯 처녀를 구별하기 위해서  마련을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또 그 다음에는 슬기 없는 다섯 처녀는  하나님이 쫓아내는 그 하나님으로 하나님에게 버림을 당하는 그런 자는  하나님께서 버려서 그걸 아주 그만 저하시켜서 아주 뚝 떨어뜨려서 가치없이 뚝  떨어뜨리는 하나님으로서 그 자에게 나타나고, 또 슬기 있어서 그 때에 빛을  들고서 어두움에게 삼키지 안하고 어두움에 반대되는 어두움이 왔다가서  어두움이 금방 와서 점령해 가지고 어두움을 정복하고 어두움을 이긴 그  승리하는 그 준비한 자를 통해서는 신랑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신랑을 맞이해서  이제 여기에 는 비유니까 신랑을 맞이했다 이랬지마는서도 그걸 통해서 전능자가  그의 하나님이요 전지자가 그의 하나님이요 주권자가 그의 하나님이요 이 하나님  되는 것을 파사 나라에 그 빛을 준비한 다니엘을 통해서 전국에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라 다니엘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라 이래 가지고서 다니엘의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높이고 또 다니엘의 하나님을 이렇게 모두 다 숭배하고  존경하고 이라니까 그 바람에 다니엘도 굉장히 높아지고 존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그 어두운 밤중이 오는 것을 그것을 ○○○ 목사님은  말 하기를 그걸 '대목장이라' 그렇게 비유해 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어려움이 오는 것은 대목장이라' 그래 말해 놓고 또 그 어려움을 올 때 그때에  '봉사 문고리 잡는 것이라' 봉사가 더듬다가 문고리만 잡고 확 열면 이제 문이  열리는 것처럼 이제 더듬더듬 대다 가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 가지고서 그  뜻을 찾아 가지고서 그 뜻에 순종만 하면 그만 문이 확 열린다 모든 것 다 해결  돼 버린다 그렇게 말을 해 놨고 또 그분이 말하기를 바위에다가서 이 정을  가지고 구멍을 뚫으면 하루종일 뚫어 봤자 야문 돌을 요만치 밖에 더 못  뚫습니다. 요만치 뚫지마는서도 다른 사람은 돌을 정으로 뭐 참 매로 깨니까  어북 한짐이나 깨 놨는데 요 사람은 하루종일 뚫어 봐야 땅땅해 봤자 요만치  밖에 뚫은게 없지마는서도 거기에 다이나마이트를 넣어 놓고서 그 떡으로 단단히  다져 가지고서 거기에 다 도화선에다 불을 켜 놓으면 그만 꽝 그러면 당장 여러  수백 점이 뚝 떨어져 나온다, 그같이 '기도라 하는 것은 이거 정으로 구멍 뚫는  거와 한가지다' 그렇게 비유를 했다. 아주 좋은 비유를 해 놨습니다.

 이러니까 이 세상의 어두움의 세력이 빛의 세력을 압도하는 것은 빛의 세력은  무엇이며 어두움의 세력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그 실상을 드러내기 위해서 이  빛과 어두움의 세력을 드러내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와같이 만드는 것인데 드러낼  자는 누구냐 드러낼 자는 성도들입니다. 성도들이 그럴 때에 준비해 가지고서 그  어두움에 삼키지 안하고 빛을 드는 그 등불을 들고 어두움을 헤치면 신랑  맞이합니다. 전능자 맞이하고 전지자 맞이하고 주재자 맞이합니다.

 그러면 그의 하나님은 그의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요 전능의 하나님이요  주권자 하나님이요 주재자 하나님이니까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고 떨면서 그래  압니다.

 왜정 말년에도 일본 사람들이 그렇게 놀렸지마는 마지막에는 그들이 손들고  제일 두려워하기를 하나님을 제일 두려워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해방 직후에  일본에 있는 천황 그 폐하도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하고 예수교가 제일이다 이래  가지고 믿기로 작정하고 그때 일본에는 높은 사람으로 부터 낮은 사람까지  모조리 다 예수 믿기로 작정하고 그때 뭐 일시에 전부 예수 믿기로 다 패전해  돌아가지고는 '아, 한국에 와 보니까 제일 무섭기는 예수 믿는 사람이 제일  무섭다 예수 믿는 사람의 그 하나님이 제일 권위 있다' 이래 가지고서 천황  폐하도 예수 믿는다는 말을 내가 그때 그 사람들에게 들었습니다. 다 이래  됐는데 마귀란 놈이 살짝 살짝 꼬우니까 그만 하나님 보이지 안하고 하나님  깜깜해져 버렸으니까 다신교의 그 우상 종교의 나라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끝이 없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밤중이 올 때에 그것을 보고 낙망하지 말고 아, 이제는  이제까지 준비한 추수를 할 때가 왔다, 이제 결실을 거둘 때가 왔다, 이득을  이제는 참 볼 때가 왔다, 그러기에 이득은 꼭 절정에 있지 다른데 평소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럴 때 낙망하지 말고 큰 수입의 성공이 온 줄 알고 그럴  때 하나님이 하나님을 모든 사람이 업신여길 때에 그때에 자신이 업신여기지  안하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시고 참고 견뎌서 나가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그것  가지고 꽝 해 가지고 과연 하나님이 계신다 하는 걸 보여 주지마는서도 우리가  믿음이 없으면 안 된다 그말이요. 그러면 그럴 때에 그와 같은 그 등불의,  어두움의 빛을 드는, 모든 불법이 있어야 하는 데에 하나님의 진리를 이와같이  나타내는 이 일을 하는 데는 우리가 평소에 해야 된다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등불은 진리대로의 행위를 말하고 영감대로의 행위를 말하고 기독자의  참된 올바른 행위를 가르쳐서 등불이라, 이 세상의 어두움은 그 성경 진리와  영감대로 사는 생애에 정반대되는 것을 어두움이라, 등불은 진리와 영감대로의  사는 생애를 이것을 빛이라 등불이라 그렇게 비유했습니다.

 그러면 그라는 데에는 기름을 준비해야 된다. 그 기름은 무얼 말하나? 기름은  불을 피어낼 수 있는 그 재료가 기름인데 이것은 그렇게 세상에 진리와  영감대로의 사는 생활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은 그 속에 진리의 능력과 영감이며  권능 얻는 것입니다. 이 권능을 얻어야 되어지는 것이 권능 안 얻으면 안  됩니다.

 그럴때 암만 믿을라 해도 믿어져야 믿지요 믿어지는 믿음, 또 의심없는 믿음  정확한 믿음, 담대하고 평안한 믿음 그 믿음을 가지는 것은. 평소에 준비를 해야  되지 준비를 하지 안하면 안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지금 평안한 때는 무슨  때냐 평안한 때는 준비할 때다 평안한 때는 준비할 때지 평안한 때에 준비하지  아니하고 평안한 때에 그때에 자기가 평안하게 잘 살 수 있는 때라 그리하면 또  시기를 오용한다 그말이요. 평안한 때는 준비할 때다, 또 어려울 때는 수입이  있는 때다, 어려울 때는 그때는 평소에 준비해 놓은 것이 이제 효력 있게  쓰여져서 이득과 결실을 맺을 수 있는 때다. 그러기에 평안한 때는 준비할 때다.

어려울 때는 이득의 결실이 나타나서 하나님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내가  나타나고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나타나서 이러니까 '너는 나로 더불어 먹고  나는 너로 더불어 먹는다. 너는 나로 더불어 네가 나타나고 너로 더불어 내가  나타난다.' 이러니까 '너로 더불어 내가 영광스러워졌고 나로 더불어 너가  영광스러워졌다 다니엘 너로 더불어 내가 영광스러워졌고 다니엘 너는 나로  더불어 네가 영광스러워 졌다' 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그 평안한 때와  밤중이라는 그 역경과 요 시기를 잘 구별해서 요걸 정확한 올바른 판단과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되겠고,  그러면 평소는 준비하는 땐데 준비하는 때는 어떻게 준비할 수가 있는가?  평소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말씀대로 그 말씀대로 우리가 지식을 우리의  지식을 준비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의 지식을 준비, 지식을 준비 하는 때요  평소에는 지식을 준비하는 때, 이 세상에는 사이비한 많은 지식들이 있는데 그  지식은 죽은 지식이기 때문에 죽은 지식은 산지식이 다 먹는 것입니다. 죽은  지식은 산지식의 밥이 됩니다. 나쁜 거 아니요 산지식의 밥이 되는데 죽은  지식을 살아 있으면 죽은 지식을 밥으로 먹지마는서도 그 생명이 끊어지면 그  죽은 지식과 함께 썩어 야리고 맙니다.

 이러니까 지식을 준비, 요 평소에 성경을 읽어서 준비 또 읽어서도 준비할게  아니라 평소에 읽어서만 준비할게 아니라 '요 말씀대로 살면 참말로 되나 안  되나 한번 만들어 보자' 이래서 지식 준비할 때요. 자기가 그대로 한번 연습을  해볼 때요 연습, 이 말씀을 준비할 때요, 둘째로는 연습을 할 때요 또 셋째로는  뭐 할 땝니까? 뭐 할 때요 예? 연단, 연단할 때요, 이러니까 조그매씩 조그만한  어려움이 옵니다. 말씀대로 한번 해보자 해보니까 되거든, 말씀대로 해 보니까  그 말씀대로 하니까 좋은 결과도 맺고 효력이 나온다 말이요. 그 말씀대로  하니까 자기속이 정리가 돼지지, 인품이 정리가 되지지. 사상이 정리가 되지지,  모든 속성이 정리가 되지지. 모든 생활이 자꾸 정리가 돼서 자꾸 안정해지고  이와같이 단순해지지 연습해 보니까 효력이 있지, 연습을 하다가서 조금씩  어려움이 옵니다. 조그매 그 말씀대로 살려고 하니까 조금 어려움이 와도 조금  어려움이 와도한번 해 보자 어려움이 와도 또 하니까 또 되거든. 그래 가지고  조그만 어려움에서 자꾸 조금 어려움, 한 번 두 번 이라니까 차차 차차 큰  어려움, 큰 어려움 하는 거 작은 어려움을 겪어 가지고서 거기에 서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 하는 그것을 자꾸 연습해 나가는 그걸 가리켜서 무어냐 하면은  연단 그 연습 다음에는 연단이요. 연단은 좀 어려움이 있어도 그 어려움의  신앙을 빼앗기지 안하고 그 신앙으로 통과하니까 어려움이 있지마는서도 그  신앙이 환경에서 주는 어려움에게 삼켜지지 안하고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그  연단받은 거라 그거요 연단받은 거, 마치 금을 연단하면은 다른 거는 타버리고  금만 남은 것처럼 그 환경의 어려움이 있어도 자기의 그 신앙이 타지지 안하고  그대로 남아 있는 그것이 연단이라, 그 연단하고 나면은 그 다음에는 인제  뭐인고 하면은 이제는 연승이라, 이제는 연단받아 가지고 완성돼 버렸다. 그  완성은 언제 되느냐 하면은 아주 그것은 마지막으로 밤중 어려운 불이 왔을 때도  이때 자꾸 연습을 자꾸 해 나왔으니까 어두움 아주 좀 크기만 크지 별게 없다  말이요, 그걸 연습을 시키되 총총 연습해 나온 사람은 어려움이 없어요. 예를  들면은 산을 올라가는 사람이 일 미터도 일 미터에 걸어올라가는 거나 천 미터  걸어 올라가는 거나 한 자욱씩 또박또박 걸어가니까 항상 앞에는 한 자욱만  걸어가면 돼 한 자욱 걸어가도 천 미터 마지막 자욱 그것도 한 자욱만 올라가면  천 미터가 되어지요. 이러니까 자기는 항상 한 두 자되는 그 거리만 올라가면  되는 것처럼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를 연습시키기를 얼마나 연습시키기를 얼마나  연습을 시키느냐? 우리에게 조그막이씩 한 것을 자꾸 이렇게 해 가지고서 조금  어렵고 조금 어렵게 해서 연단시키기를 조금씩 조금씩 이래서 그저 한몫 많이  어렵지 안하고 조금씩 어려움을 해가지고 그 어려움을 자꾸 통과해 가지고서  이래 하고 보니까 마지막에 세상사람 연단 안 받은 사람들은 놀래서 죽을  지경이라도 자기에게는 별 일 아니라 그말이요, 별 일 아니고 어렵지 안하고  조금만 조금만씩만 어려워서 그것을 통과하기는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평소에 진리와 영감대로라 말하면 진리 영감대로 뭐 진리  영감대로란 말은 진리와 영감이 뭐하고 있느냐? 진리와 영감이라면 수 많은데  그것을 간추려서 말하면 진리와 영감은 뭐하고 있느냐? 세 가지 하고 있습니다.

진리와 영감은 세 가지 하고 있는데 그 세 가지 뭐 하고 있느냐? 우리에게 죄에  대해서 한 가지 하고, 의에 대해서 한 가지 하고 하나님 모시고 동행하는데  대해서 한 가지 하고, 이 세 가지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진리가 수많이  있지마는 간추리면 이 세 가지란 말이요. '이러니까 어데서든지 나는 사죄받고  죄짓지 않겠다.' 그말은 삐뚤어지지 않겠다 말이요 하나님의 말씀에 삐뚤어지지,  하나님의 법칙에 삐뚤어지지 않겠다 나는 삐뚤어지지 않겠다 하는 그것을 자기는  뭐 내가 하나님 말씀 털끝 만치 양보 안한다 또 내가 하나님에게만 피동되지  어떤 세력에 내가 피동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법칙에 맞은 세력은 아이가 말해도  내가 거기에 피동되고 어른이 말해도 피동되고 상관이 말해도 피동되고  피동되지마는서도 하나님의 뜻이 아닌 데는 내가 목이 달아나서도 피동되지  않는다 요것이 의를 지키는 것이라 말이요.

 요것을 조금씩 조금씩 이래 하면은 된다, 된다, 하니까 된다 하니까 된다, 자꾸  자신이 생겨진다 말이요. 그렇게 해 가지고서 이제는 처음에 지식하고 그  다음에는 연습하고 그 다음에는 이제 연습하다가 이 학년이 되면 연단 좀  어려움이 까끔 까끔한 어려움이 있다 말이요. 어려움이 있어도 딱딱 해  나갑니다. 해 나가니까 그 다음에는 이제는 연승이 돼 버리요. 이제는 무엇이  와도 됐다 하면은 그 다음에는 밤중이 옵니다. 그때는 참 마지막 밤중에 최고로  역경이 올 그때가 뭐이냐 하면은 하나님은 자기 통해서 나타날 수 있는 그 소원,  하던 것이 소원성취가 이루어지고 자기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인간 뭐 인간,  친구나 뭐 자기의 열심이나 충성 이런 거로 올라가는게 아니라 하나님이 들어  올려서 하나님으로 인하여 높이 올라가는 것 하나님으로 인하여 올라가는 거 또  자기로 인해서 하나님이 올라갔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자기는 올라가고 하는 이  초자연의 기적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이 그것이 이제 밤중 인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평소는 준비할 시기다 놀 때가 아니다. 이 평소에 돈벌이  하는 때가 아니고 평소에 돈벌이 하는 때가 아니고 평소에 이거 뭐 직장생활하는  때가 아니고, 그러면 직장생활 하지말라 말이요? 그말이 아니요 평소에 직장에  있지마는서도 다른 사람보기에는 다같이 직장생활 하지마는서도 자기는 지금  연습하고 있다말이요 연습, 하나님 말씀을 그 직장에 연습하고 있어, 또  사업에서 지금 연습하고 있어. 연습하다 보니까 뭐 말씀대로 해도 되기는 되는데  아, 다 가다가는 보니까 애로의 어려움이 턱 닥칩니다. 아 요거는  연단시키는구나 연단시키니까 요럴 때에 내가 요 영감과 진리대로의 이 사죄  칭의 화친의 생활을 양보하지 안하고 해야 되겠다 그러면 할라 하니까 꽤  어려웠지마는서도 그걸 하고나니까 할 때 까지는 근심같이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안할 수 없었으나 하고나니까 크게 기뻐하도다 하고는 기쁘다 그 말이요. 이래서  자꾸 연단을 해서 이제는 뭐 연단을 하도 받아 놓으니까 뭐 그 뜨끈 뜨끈한 불,  어떤 불이 와 봤자 이 제는 손해갈게 하나도 없고 요동치 않는다. 그라고 난  다음에 이제 그 사람 다섯 사람이 출발해서 요이땡 했는데 이 네 사람은-예를  들면은 말이요-이 세 사람은 그걸 연습을 잘하고 연단을 받아서 요거는 이게  보니까 시기가 되었어 이게 요래하니까 요대로 법칙대로 하니까 요게 다 됐다  말이요 연습 연단, 연승이 됐다 말이요. 요 둘은 안하니까 그냥 있어, 이러니까  이제 시기 다 됐으니까 안 하는 게을뱅이 이거 보고 기다릴 수가 없어. 이거  보고 기다릴 수가 없으니까 한 자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밤중을 턱 보냅니다.

밤중은 보내면 다섯은 그만 슬기 있어 승리하고 다섯은 패전하고 된다 이기야.

이러니까 하나님께서는 그 게을한 그런 자를 보고서 참아 기다리기도  하시지마는서도 또 슬기 있는 자를 위해서 속히 이루시기도 이루십니다. 그래 그  하나님의 심정이 '이 자를 보면 하루가 천 년 같고 이 자를 보면 천 년이 하루  같다' 하는 그것을 당신의 심정이 어려운 것을 가리켜서 베드로후서 3장에  말씀해 놨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평소는 연습하는 시기라 이 연습, 연습은 진리와 영감 대로의  사는 신앙생활하는 연습인데 이 연습. 하면은 그 다음에는 가다가서 연단이  나온다. 연단은 따끔따끔 어려운 때라 말이요. 그 연단에서는 잡탱이 신앙이  제거되는 것입니다. 연단이 온다. 그 다음에 연승을 해 놓으면 이 게을뱅이로  인해서는 더 참고 있어야 되지마는서도 이 연승해 놓은 이 사람이 묵어지니까  이사람이 헛일이니 안 된다 말이요, 때를 줘야 되겠다 말이요, 때를 주면은  미련한 것은 낙제해 떨어지고 이제 그 사람은 합격해 올라갑니다. 그러면 합격된  자는 뭐이냐 주님 맞이한다 말이요. 합격된 자는 주님 맞이하고 이제 낙제해  떨어진자는 주님에게 쫓겨남을 당한다 그 말입니다. 주님 맞이한다 말은  다니엘이 평소에도 하나님을 맞이했지마는서도 사자구덩이를 통해서 전국이 아는  그 영광스러운 주님이 다니엘에게 찾아왔고 다니엘은 맞이했다. 그 다니엘이 그  맞이하니까 그 다리오왕도 있다가 말하기를 '야! 다니엘아 너거 하나님은 참 참  진실한 하나님이요 위대한 하나님이시다 그분이 제일이다 우리나라도 그분을  섬겨야 되겠다' 이래 가지고서 이 다니엘의 섬기는 하나님을 마다한 욕을 하든지  훼방하려던 그자들은 전부 가족을 다 멸하겠다 이렇게 말해 놓고 전부가 다  하나님 섬기라 이라니까 뭐 그러면 하루밤 동안에 하루밤 동안에 그만 하나님이  그 나라에 충만했다 말이요. 이렇게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 이 어두움의 그  시기를 통해 가지고서 이런 그 영광을 받으셔서, 뭐할려고? 당신 나타내려고?  아니, 그럼으로써 어두움의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지음받은 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서만 살 수 있는데 이걸 모르니까 모든  피조물을 아껴서 이것을 구출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와같이 하시는 것이라  그거요, 이러니까 우리가 중한 책임이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가  많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를 하나님께서 기업이라, 기업이란 우리만  바라보고 산다 그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오늘 요걸 좀 배웠습니다. 평소는 준비하는 때 또 아주  밤중은 하나님을 참 믿는 사람이 나타나는 때요 또 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타나는 때라. 그러면 그 사람으로 하나님이 나타나고 하나님으로 그 사람이  나타나는 때라. 그 사람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하나님으로 그  사람의 영광이 나타나는 때라. 그래 그때에 우리가 승리하는 때라 성공하는  때라. 그러나 그것은 평소에 준비하지 안했으면 헛일이다, 준비 하면 된다.

그러니까, 준비 못한 사람은 자꾸 툭툭 쓰러진다 그말이요.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 합시다.

 우리가 작은 것부터 이겨놔야지 지극히 작은데 충성한 자라야 큰데 충성 하지,  지극히 작은 것을 무시하면은 큰 거는 절대 안 됩니다. 지극히 작은 데서부텀  승리하고 패전하지 마시고 양보하지 말고 딱딱 하면서 뭐 밤중이 오면 큰 수입일  줄 알고 믿읍시다. 믿고 우리가 나가면은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하나님이 참  전능하신 하나님이, 만왕의 왕되신 하나님이 하나님으로 나타나실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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