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07 14:34
연보제도 일곱 가지
1986. 1. 19. 주일오후
본문:말라기 3장 9절∼12절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데에서 능력이 와서 역사하십니다. 안 믿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선포해 놓은 말씀은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는 이 사실을 믿으면 그 사람에게는 이 말씀이 획 하나도 가감이 없이 고대로 다 성취됩니다. 만 명이 믿어도 성취되고 여러 수억만 명이 믿어도 성취되고 아무리 그 사람이 성경을 잘 알고 오랫 동안 믿는다고 해도 안 믿으면 소용 없습니다. 그러기에, 신구약 성경을 주신 것은 우리가 어떻게 믿겠는가, 믿는 법칙을 우리에게 기록해 주신 것이 신구약 성경입니다. 그러면 기록해 주신 이 법칙대로 믿으면 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믿지 안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영국 나라도 처음에는, 믿음은 어렸습니다. 믿음도 어리고 또 교리도 어렸습니다.
교리도 모두 구비하지를 못하고 그저 믿는 도리를 깨닫는 것은 그렇게 구비하게 깨닫지를 못했지마는 해적이던 그 민족이 처음에 도를 받아 가지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성경 말씀을 받아 가지고 그대로 사실될 것을 믿었을 때에 그때에 가속도로 그 나라는 세계에 강대국이 될 뿐만 아니라 또 세계에서 시기하지 안했습니다. 모두 다 그 나라를 세계 모든 인류 중에 제일 다 신사적이고 또 복받을 그 민족이다 이렇게 모두 존경도 하고 칭찬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뒤에, 신앙 연조가 차차 영국이 깊어갔습니다. 깊어갈 때에 그때에 예수 믿는 이치는 이 사람이 깨달은 것, 저 사람이 깨달은 것 주 종합해 가지고서 이라니까 아주 예수 믿는 이치를 잘 깨달았었습니다. 지금도 깨달은 것이 세계의 어느 나라보다 영국에서 깨달은 것이 국가적으로 말하면 영국에 있는 그 교회들이 제일 많이 깨달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이치를 배워서 깨닫는 것은 점점 유식해 가는데 그 나라는 축복이 자꾸 이제 점점 쇠퇴해 갑니다. 그 축복이 차차차차 감해져 갑니다. 그 이유를 지금까지도 그 이유를 바로 잡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우리나라의 깨달은 교리와 신조가 이거 바르다 이것만 자랑할 줄 알지 뭣 때문에 그 영국 나라가 그렇게 쇠퇴해 나가는가. 그거는 지금도 못 잡고 있습니다. 미국에 있는 그 교회들이 처음에 청교도들이 와 가지고 참 박해를 당한, 아주 쫓겨 돌아다니는 것으로서 그저 죽으면 죽고 살면 살고 쫓겨서, 약간의 배를 타고 쫓겨서 바람에 밀려서 가다가 비로소 미국이라는 대륙을 발견해 가지고 걸렸었습니다. 걸려 가지고 처음에 고생을 많이 했는데, 그 사람들은 지금도 그 교리와 신조는 영국 것을 갖다 쓰고 있습니다. 영국 교리와 신조를 가지고 미국에서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국 나라는 그렇게 그 모든 예수 믿는 도리를 바로 깨달은 그 교리와 신조를 발견해서 창작해 낸 그 나라는 차차차차 쇠퇴해서 지금, 그저 옛날 영국이지 지금은 형편 없습니다. 지금으로 부터 한 오륙십 년 전만 해도 영국이라 하면 유명했었는데, 지금 뭐 영국이라 하는 나라는 아주 존재가 없이 그렇게 아주 빈약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게서 떨어져 나온 부스러기를 주워 가지고서 지금 자기네들의 교리와 신조를 삼아 가지고 믿는 미국 나라는 또 많이 축복을 받아 가지고 부흥이 돼서 뭐 한 삼백여 년 좀 넘었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세계에 천연적 자원으로 말하면 제일 세계에 갑부고 다른 나라가 거게 따라갈 수 없기까지 그렇게 부강한 나라가 됐었습니다. 됐는데, 그 뒤에 또 미국 나라가 지금 차차차차 쇠퇴해서 참 뭐 이름만 그렇게 부자라고 나 가지고 있으니까 그저 얻어 먹을라고 달라드는 그런 거지 떼들은 많이 달라들고 실은 자기네들 먹을 거는 없어서 뭐 미국 나라에 거지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또 미국 나라의 경제라 하는 것은 부강한 줄 알아도 아주 그 경제가 심히 빈곤합니다. 그러기에, 여게서 의수이 재벌이라 하면 미국 나라에 굉장한 부자입니다.
그런데, 그 나라가 왜 그렇게 또 지금 쇠해지고 있는가? 미국 나라는 지금 그것을 좀 깨닫고 아무래도 우리가 이 하나님의 도리를 받아 가지고 믿지 않기 때문에 이 믿음이 고장이 나 가지고 이리 되는 것이니까 아무래도 회개 하고 믿어야 되겠다 그것을 지금 여게 저게서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통일되지 안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복음을 받아 가지고 이대로 될 사실인데 천지는 변해도 획 하나도 변하지 안하고 이대로 될 이 사실인데, 창조주 그분이 이대로 말씀하셨고 또 말씀하신 분이 이대로 다 이루실 터인데 이 사실을, 천지는 변해도 획 하나도 변동 없는 이 사실을 믿지 않는 이것이 참 망할 징조요 이게 탄식이라는 거게 대해서 강하게 강조하는 그런 사람이 미국에 있기를 그저 쌀 가마니에 뉘와 같습니다. 쌀가마니, 한 가마니 쌀로 말하면 얼마나 숫자가 많겠습니까? 그러나 뉘를 가려 보면은 아마 찍해야 요 한 옴큼될까? 한 옴큼도 안 될 것입니다. 한 가마니에 그 모양으로 그렇게 믿음을 지금 주장하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한 부선 목사님도 지금도 그분이 믿음에 대해서 지금 걱정을 하고서 그렇게 있다는 말을 제가 들었습니다. 또, 보나 안 보나 한국에 있는 모두 목사들이 이거 너무도 이 썩은 내음새만 맡고서 자꾸 이래 돌아다니는 그런 목사들이 많이 건너 가 가지고 그분들이 회개하지 안하고 자꾸 더 그런 사람 돼 가는 것 보면은 미국을 안 가도 미국의 그 신앙들이 어떻다 하는 것을 그런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러니까 미국에, 목사라고는 인정치 안한대요. 한국 목사는 그 모든 인간 인위적인 그런 모든, 인간 행위를 하지 안해서 다 신임을 받지 못하고 미국에 있는 목사들은 전부 과학자고, 또 그는 사회주의자고, 뭐 하나의 유물주의자 이런 면으로는 철두철미하게 하지마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이 와 가지고 된다 하는 그런 것은 별로이 생각이 없고, 그래서 거게, 여기 ○○○파들이 가 가지고 거게서 교회를 많이 일으켰고 ‘믿으면 모든 면으로 기적과 축복이 온다’ 하는 그것을 말할 때에 다 그들은 웃고 ‘뭐 지금 그런 일이 있겠느냐? 지금 그저 다만 하나님의 이 말씀을 하나의 구원도리로 믿고 이렇게 사람이 수양적으로 이렇게 고쳐서 이라면 되는 것이지 뭐 그런 거 지금 뭐 기적이나 축복이나 그런 것이 필요도 없을 뿐 아니라 뭐 그런 것이 있겠느냐?’ 이랬는데 실상으로 그런 일들이 여게 저게서 표적이 나타난 것을 보고 그들은 이상하다 해 가지고서 일어나서 그 교회들이 많이 잘 돼 가지고 있고, 또 이 ○○파가 가 가지고서 일하는데, 이 ○○파는 뭐 기적과 축복이라 하는 그런 거는 또 믿지 않습니다. 별로이 믿지 않습니다. 요새 여기 한국서도 그걸 뭐 믿지 안하고, 그런 소리하면은 ‘그뭐 그런 걸 하고 있는가? 그저 이렇게 신사적으로 교리나 신조나 바로 가지고 믿으면 되지.’ 이래도 거게서 고만 모두 다 쥐 흔들어 놓은 그런 교리와 신조를 간추려 가지고 그래도 이대로 철저한 그런 신앙 생활을 해야 된다, 기적과 축복은 바라지 안해도 새벽 기도 나와야 된다. 뭐 어떻게 한다 하는 그런 것을 말하니까 ‘아, 이거 새벽 기도 나온다 하니 저 무슨 아마 좀 열심 있는 교회인가 보다.’ 이래 가지고 미국에서 새벽 기도를 시작한 교파가 제가 듣기로는 ○○○파에서 시작하고 ○○교파에서 시작하고 그 두 군데서 그렇게 새벽 기도를 시작하고 이래서 교회들이 모두 좀 크게 부흥이 돼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 나라들이 다 교리와 신조만 가지고서 다 실패를 했습니다. 대개 성경 학자들은 모두 교리와 신조만 가지고 자꾸 말합니다. 그것밖에는 내놓을 게 없으니까, 항상 책만 보고서 앉아 가지고서 이런 일을 했으니까, 뭐 자기네들이 참 순교적인 희생의 신앙 생활을 한번 해 봤습니까, 십자가를 져 봤습니까, 뭐 그저 책상 위에서 자꾸 교리와 신조만 가지고 이랬기 때문에 그것만 가지고 이래 자꾸 주장을 하고 있지 그 신앙이라 하는 그것은 그렇게 느끼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고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이 한 징조입니다.
해방 후에 한국에서 정통 신학을 어데서 시작했느냐 하면은 ○○교파에서 정통 신학을 시작했습니다. ○○교파가 한국 교회에 신학으로서는 제일 정통 옳은 신학을 그때에 시작을 했었습니다. 그후에 ○○○박사가 정통 신학을 한다고 해서 서울에 가 가지고 ○○신학을 세우기는 세웠지마는 그 북미에 있는 보조를 위해서 신신학 교수들이 더러 들어와 가지고 이래서 지금은 교회들이 많이 속화돼 가지고 신학도 다 이렇습니다.
또, ○○교파도 고만 여게 저게 뭐 양사방 갈라지 가지고서 지금 그라고 있습니다.
그럴 때에, ○○교파는 처음에 8.15 해방 후에는 모두 거게 잘 믿는 사람들이 다 그리 머리를 돌렸습니다. 돌려 가지고서 잘 믿는 사람들만 주 있으면서 그저 교리 신조도 하지만 교리 신조보다도 믿음이 있어야 된다 하는 거 가지고서 믿음을 많이 강조를 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때에 교세로 말하면 ○○파 교세가 아주 갑자기 커지기는 커졌지마는 그렇게 별로이 교세가 크지를 못했었습니다. 못 했으나 그때에 믿는 얼마 동안, 한 이십 년 동안 그 신앙 생활을 바로 해 나오는 가운데에 그때에 신앙 생활 시작한 사람들은 아마 현 정부에서도, 거게, 정계에서도 좀 유력한 사람들을 이렇게 주 뽑으면은 거의가 다 ○○교파에 있을 것입니다. 또 여게 저게서 유력한 학자들도 뽑으면 얼추 거기 있을 것입니다. 또 재벌가들도 이렇고 뭐 한 이십 년 동안에 많이 됐었는데, 또 그 후에 그만 ○○교파라는 정체는 좀 많이 흐려지게 됐습니다. 얼마 전에도 제가 ○○교파에 있는 수뇌의 목사들을 제가 만났었는데. 말하기를, 목사님 지금 뭐 아시다시피 우리 ○○교파가 흐려지기는 많이 흐려졌습니다. 이거 지금 우리가 모두 탄식하고 있습니다. 이거 어짜든지 이거 좀 새로와져야 될 터인데 이거 탄식이라고 그런 말을 합디다. 뭐 안해 봤자 다른 사람들이 다 그래 알고 있으니까.
또, 여기 우리 총공회가 교회가 몇이 안 됐으나 처음에 시발할 때에 모두 교계에서 안 됐지마는 평하기를 뭐라고 평했느냐? 우리를, 총공회에 있는 우리를 그 개교회라는 그 뜻을 모르고 독립 교회라 저거는 아무 데도 무소속으로 초교파적으로 독립 교회라 이래 가지고 독립 교회라 이렇게 말해. 그래 독립 교회라 하다가 지금은 인제 독립 교회라 말은 차차차차, 알아서 없고 개교회라고 이라다가 총공회라 하니까 총공회라 이래서 모두 다 한국에서는 이 총공회 이 한 교파가 하나가 됐다 이렇게 생각을 모두 하고 있습니다. 있으면서, 그때는 수는 적었지마는 온 전국에서, 그래도 잘 알아요. 어쨌든지 그분들에게 생명의 역사가 있다. 그저 진리를 배울라면 그분들에게로 가야 된다 그게 공통이었습니다. 또 불을 받을라면 저 ○○○파로 가야 된다. 이렇게 모두 말을 하고, 그때에 우리 진영의 교회는 그저 서면 부흥이 됐습니다. 서면 부흥이 되고, 그래서 제가 ○○교파에 있는 그런 교역자들도 더러 만났는데, 물론 겸손한 말로 하는 말은 하는 말이지마는 아이구 저는 뭐, 우리는, 자기네들 진정, 거게는 모두 다 실력가들만 있는데 우리는 그 실력가 구원에 갈 수 없다고 , 모두 실력가로, 실은 속은 텅 비었는데 그렇게 알더라 그말이오.
그게 뭐이냐 하면 그때는 처음에 시작한 사람들이 다 믿음을 가지고 어짜든지 믿어야 되지 믿지 않으면 소용 없다 하는 믿음을 주장하고 이래 믿었는데 그후에 차차차차 교회는 늘어 나가고 교역자는 없고 이라니까 아무나따나 우선 교역자를 막 들어 써야 되기 때문에 그저 마구 모드리 잡아서 목사를 세우고 이렇게 했었습니다. 너무 인원이 적으니까, 그라고 난 다음에 이제는 교회 수나 또 교역자 수나 거의 맞춰 가고 있고, 이제는 그만치 돼서 이제는 그 교회 거석한 것은 교역자 할 수 있는 그런 일군이 있으면 그런 일군들이 하나만 나서면 그만 교회되니까, 그렇게 해서 복음을 자꾸 전파해 나가도록 하자 이렇게 인제 하고 있는데, 그래 그 뒤에 그런 사람들이 들어와 가지고 이거 이름만 가지고 도무지 신앙 생활하지 안하기 때문에 그렇게 다른 모든 진영에서 앙모하면서 보던 그 총공회 교회가 그렇게 발전이 안 되고 성장이 안 됩니다. 인제, 이거 보고 다른 사람들이 놀래서 ‘우리도 힘쓰자’ 이렇게 다른 사람은 이제 힘을 쓰도록 해 놓고 저거는 지금 뒤로 가라 앉고 있습니다.
이 주일학교도 말하면 아, 서부교회 주일학교 보고 우리도 다 모두 다 따라서 힘을 써야 되겠다. 이 서부교회 주일학교가 이렇단다 이거 가지고서 뭐 전국에서 방문하고 심방하고 또 견학하고 이라는 운동들이 바짝 일어났습니다. 바짝 일어나 가지고서 우리 한국 교회가 얼마나 크게 발전이 되고 참 부흥이 됐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나는 듣기를 ‘아, 그 교회들이 모두 다 그런가?’ 이랬는데, 불과 한 삼사 년, 삼사 년, 불과 한 삼사 년입니다. 삼사 년 동안에 ‘그 교회가 크다 해도 한 뭐 오륙백 명 되거나 크면 한 천 명 되거나 그렇지 않겠는가?’ 이랬는데 요새 들으니까 뭐 이천 명이니 하는 그런 교회가 많이 생겼다고, 또 서울 같은 데는 뭐 사천 명이니 오천 명이니 그런 큰 교회들이 많이 일어났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고 역사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교회라 하는 것은 되는 것도 잠깐이요 망하는 것도 잠깐입니다. 이 세상 이 자연의 것 같으면 제 힘이 이만치 있었으면 그 힘이 다 늙어서 없어지고 빠져 버려야 그게 망하지마는 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벌컥 일어나고 하나님이 고만 손 뚝 떼 버리면 그만 팍 가라앉는 것입니다. 그게 교회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서부교회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서부교회 교인이 어데로 일어난 줄 모르게 바짝 일어나 가지고서 뭐 굉장하게 일어나게 됩니다.
경제적으로도 일어날 것이고, 또 문예적으로도 일어날 것이고, 또 모든 인물적으로도 다 모두 유명한 인물들이 다 되어질 것이고, 모든 면으로 그렇게 가속도로 다 성장하게 되지마는 그라다가 하나님이 손 딱 떼 버리면 그만입니다.
마치 이 전구에 전기가 가서 커면 전구 불이 환하다가 그만 전기 그게 딱 끊어지면 당장 아무것도 없지 않습니까? 그거 모양으로 사람이, 아무리 그 사람이 뭐 미인이고 장사라 한다 할지라도 생명 딱 끊어져 버리면 고만 송장이라 아무 가치 없습니다. 이거 모양으로 이 교회라 하는 것은 생명이 하나님이 생명인데, 하나님과 연결이 되면 그만 잠시 부흥됩니다.
요새 지금 새로 개척 교회 우리 진영에서 요 부산에서 한 서너 개가 났고, 서울에 또 하나 나왔고, 또 대구에 하나 나오고 이랬는데 그 교회들이 가만히 보면 그 교회의 교역자 자체가 이 인간의 힘으로 안 된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알고 그분의 비위를 맞춰서 그분을 믿어야 된다. 그분을 믿어야 된다 말은 그분을 인정한다는 것, 그분을 따라야 된다. 그분에게 모든 주주권이 다 계시고 알지 못하심이 없으시고 능치 못함이 없으시고 그분이 당신을 바로 알고 당신을 딿는 자의 하나님으로 이렇게 나타내 보일라고 하는 하나님이시니까 그런 자들이 돼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교회 부흥보다도 나오는 몇 사람이라도 그 사람들이 하나님을 바로 알고 바로 믿도록 할라고 애를 쓰는 이런 교회는 차차차차 자꾸 일어납니다.
그래서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지마는 앞으로 아마 한 이삼 년 되면은 그렇게 나가는 교회라고 하면은 다 몇천 명되는 그런 교회가, 큰 교회가 되지 않느냐 그렇게 생각이 되어집니다.
그래서, 저거 서부교회는 자라지를 않습니다. 늘 고 태생이고 이런데, ‘어떻게 해서 이럴까?’ 그저 보면 오전 예배 숫자를 보면은 삼천 백, 뭐 삼천 이백 항상 삼천 백 몇십 명 늘 그렇습니다. 인제 오후 예배는 보면은 한 이천 한 오륙백 명, 인제 아마 오전 예배와 오후 예배에 그렇츰, 참석하는 수가 별 차이가 없이 많이 참석하는 것은 그것은 아마 좀 잘 한다고 그렇게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인제 다른 교회서 오는 그런 분들 말고, 본 교회 교인들만.
그게 뭐이냐? 우리가 아는 것으로만, 몰라서도 안되니까 알기도 알아야 되지마는 아는 것으로만 되는 게 아니고 우리가 믿어야 됩니다. 알고는 믿어야 그 능력이 나타나지, 믿어야 하나님이 일해 주시지 믿지 않는 자에게 하나님이 일해 주시면 그 사람 속에 하나님 안 믿고 제 생각도 있고 뭐 이 피조물 이런 거 저런 거 다 의지하고 있는 그자에게 하나님이 줘 보십시오. 더 의지하는 그거 더 커지고, 이런 거 저런 거 바라보는 게 더 많아지고, 그라니까 배나 지옥의 자식을 만들 터이니까 하나님이 어떻게 그 사람에게 줄 수가 있겠습니까? 못 줍니다. ‘당신 아니면 안 됩니다’ 하고서 딴데 아무 연결도 가진 거 아니고 ‘아, 당신만, 나는, 사람이야 물론 사람을 사랑하라 하니까 사랑하고 서로 화목하라 하니까 화목하고 얼마든지 이래 하지마는 당신과 당신의 법 이 외에는 촌보도 내가 옮기지 않습니다. 내가 수 많은 사람을 좋아하지마는 당신의 법을 어기는 일을 해 보십시오. 내가 그거 하나라도 용납하는가? 나는 당신의 법만 내 생애 법칙으로 지키고 당신만이 모든 걸 주권하고 계시는 것을 내가 믿기 때문에 고대로만 나는 살고 있습니다.’ 하는 이런 사람이 되면 하나님이 축복해 주실 터인데 이게 모자라지 않느냐 그게 생각이 돼지고, 그라고 난 다음에 제가 하나 요새 회개한 것은 그런 게 있었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을 위해서 자꾸 교회, ‘서부교회는 백파라고 하면서 핍박을 해 쌓아서 이거 전도가 안 된다’ 그거 못난 사람들이 그렇지, 그래 내가 몇 번 말하기를, ‘그 ○○교파로 말하면 한국에서는 제일 부산이 제일 근거지인데 여게서 그렇츰 대항을 하고 이래도 하나님이 축복하시니까 이 서부교회가 부산에 있는’ 그때 ○○교파 ○○교파 하는 교회는 교회가 아주 아주 약했습니다. 한 그저 이삼백 명 되는 교회 이상은 없었습니다. 없고 ○○교파가 한 팔백 명, 그렇지요 한 팔백 명 되고 있랬는데 제가 그때 말하기를 그거 증거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렇게 함께 해 주시니까 우리 서부교회가 부산에 제일 큰 교회 삼 배 된다. 그런 말을 제가 여러분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그런 말을 했습니다. 그런 말을 했는데, 내가 요새 그런 거 회개를 합니다. 아마 하나님께서 ‘이거 네가 교만하다. 네가 교만해 가지고서 지금 제일 큰 교회 삼 배 된다 이라니까 너는 저 꽁지로 내려가구로 쳐 박아 버리고 이제 다른 교회를 높이 들겠다.’ 하나님이 그렇게 지금 하시는 것 아닌가, 그래서 하나님 앞에 그 노를 풀라고 기도를 하고 있는 중에 있기는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은 그저 내 개인 실수기 때문에 내가 회개만 하면 되는 것이고, 교만치만 안하면 하나님이 그렇게 안할 터인데 제일 고질병은 무슨 고질병이냐? 고질병이라 하는 것은 우리가 믿지 않는 게 고질병입니다. 말씀을 듣고 믿지 않는 이거는 고치지 못합니다. 죄 중에 사함받지 못하는 죄는 안 믿는 죄입니다. 안 믿는 죄는 믿어야 해결이 되지 믿지 않고는 아무리 고해도 사함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함받지 못하는 죄가 무슨 죄인가 하면은 불신의 죄라 그렇게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래서, 오후에도 지금 연보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하고 기억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 해서 지금 증거를 하는 것입니다. 오전에도 여러분들 제가 증거하는 거 들었지마는 연보 많이 할라 하지 말고 적게 하라는 소리만 내가 늘 했습니다.
연보 백지 많이 하지 마십시오. 할 수 없는 거 자꾸 해 가지고서 이렇게 하지 말아라. 또 뒤에 그때 할 때 있으면 또 그때 하지. 그때 할 때 되면 그때 하지 지금 미리 할 형편이 안 되는데 자꾸 해 가지고서 그뭐 빚을 내서 그러니, 또 이렇게 억지로 거기 눌려 가지고서 고통당하는 그런 거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다. 자기로서, 나는 이만치 은혜 받았으니까, 이만치 은혜 받았으니까 내가 요 연보는 해야 되겠다 하는 걸 바로 깨닫고 감사함으로 연보해야 되지 감사함으로 하지 안하고 억지 연보, 빚 내 연보 그런 거 도무지 하지 마십시오.
연보에 대해서 제가 일곱 가지를 한번 기록해 봤습니다.
첫째는 연보는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서 저주를 벗어나게 하는 것이 연보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진로를 이런 거 저런 거 푸는 길이 있지마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푸는 데에 제일 속빠르고 쉽고 하나님의 저주를 벗어나는 제일 쉽고 좋은 방편이라 하는 그것을 제가 먼저 생각했었습니다. 오늘 이 말씀에도 ‘너희들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했는고로 온 나라가 다 저주를 받고 있다’ 했는데 그러면 이 하나님의 진노, 하나님의 진노를 푸는 방법은 온전한 십일조, 헌물과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라, 그러면 하나님의 진노가 풀린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연보는 하나님 앞에 잘못 돼서 하나님을 노엽게 한 그 진노를 푸는 아주 쉽고 가볍고 속빠른 그런 방편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풀고 저주를 벗어나게 하는 그 방편으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연보는, 이 제도가 없으면 우리는 참 비참하고 기막힐 사람들입니다. 한번 잘못한 그걸, 잘못한 그걸 이렇게 뭐 마음으로 고친다고 생각으로 고친다 해 가지고도 그게 썩히 안 됩니다. 사람이 잘못 됐다 하는 걸 마음으로 고친다 해도 이 마음에 물든 거는 고만 그거 ‘내가 이거 잘못됐습니다’ 하고서 정하신 대로 연보를 하고서 이래 하면은 그게 쉬운데 왜? 연보하면 보물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또 그라면은 내 마음도 가지고 이래 돼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달리 이렇게 회개한다는 것은 이것이 좀 힘이 듭니다. 그러기에 연보는 하나님의 노를 풀고 저주를 벗어나게 하는 아주 간단 명료한 아주 간명한 방편으로, 우리를 사랑하셔서 주신 이 방편이라 하는 고것을 우리가 기억합시다.
그러면, 무슨 노인가? 그 노의 내용을 보면은 우리 몸 밖에 있는 모든 것이나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나 나나, 예수님의 대속을 받았기 때문에, 나나 내게 속한 모든 것이나 내 환경에 있는 모든 것이나 이 모든 것은 다 우리를 십자가에서 대속하신 주님의 것이라는 요것을 우리가 깨닫고, ‘주님의 것입니다. 이제 주님의 것인 걸 내가 깨닫지 못하고 벌로이 내가 취급했습니다. 이거 다 주님의 것인 것을 깨닫고 주님의 것이라는 표로ㅡ적어도 좋습니다ㅡ표로 이제 주님에게 이 연보를 드립니다’ 하고서 드릴 때에 고것이 벌써 표를 냈기 때문에 고게 결정이 됐다 말이오.
이래서, 이것을 ○○교에서는 속죄표라 하는 걸 만들어 가지고 속죄표, 또 돈을 가지고 속한다고 속전, 죄를 속한다고 속전, 돈으로 속한 것은 속전이라 하고, 또 그 돈을 주고서 표를 사 가지고서 이래 하는 것은 속죄표라고서 해 가지고서 그래 한 그들이 탈선은 하기는 했지마는 공연히 그런 말이 난 것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노를 푸는 데에는 이 구약에 보면은 그 노 푸는 것을 자기가 회개하는 그 표시로 회개금을 이렇게 내 가지고 이래 해 가지고 하나님 노를 푸는 그런 일이 구약에 늘 계속해서 나왔습니다. 그것을 마귀란 놈이 혹 생각하기를 ‘이거는 아, 그 물질을 모우는 한 모금 방편이라.’ 이렇게 생각하는 자는, 그는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엿새 동안에 우주를 다 지으신 하나님께서 뭣이 없어서 우리에게 그런 방편 가지고 모금을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에게 받지 안하고 먼저 하나님에게 드리고 뒤에 받는 그런 자가 어데 있느냐? 하나님이 내나 줘 놓고 난 다음에 또. 줘 놓고 난 다음에 고걸, 하나님께서 주셨다고서 감사하며 바치면은 또 주시고 이래 가지고 ‘먼저 하나님에게 드려 가지고서 갚음을 받은 사람은 없다’ 그렇게 성경에 말했습니다. 다 하나님이 먼저 주신 그것을 받아 가지고서 감사함으로 당신에게 약속하고 법조대로 그렇게 헌물을 할 때에 하나님이 또 거게다가 덧붙여 축복을 해 주셨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그것을 첫째 기억하고, 내가 마땅히 연보를 가지고서 이렇게 하나님 앞에 진노의 저주를 해결할 수 있는 이 길이 있는 이것을 무시하고서 해 가지고 자꾸 우리에게 그 저주가 벗겨지지 안하고 하나님의 진노가 풀어지지 안하고, 그 진노는, 돈은 많이 없어도 됩니다. 고거 만일 예를 들면은 말이오. 예를 든다고 하면은 요새 돈이 십 원짜리 아닙니까? 제일 작은 돈이 십 원이지요? 십 원이라도 ‘주님이여 이거는ㅡ그 사람이 진정ㅡ내가 이 모든 존재가 당신이 지었다고 말은 했지마는 당신의 것이라는 것을 참으로 내가 믿지를 못했습니다.
나와 내 모든 것도 당신의 피로 구속한 당신의 것이라는 걸 내가 믿지 못했습니다. 내가 지금 길가에 오다가 내가 깨달았기 때문에 내가 지금 호주머니에 돈이 없습니다. 호주머니에 돈을 보니까 돈 십 원밖에 없습니다. 십 원이나마 내가 진정 이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요 나도 당신의 피로 값 주고 산 구속의 것, 당신의 것이라는 것을 내가 깨닫고 당신의 것을 당신의 것으로 알지 못하고 내 맘대로 내가 벌로 관리해서 취급했던 이 죄를 회개하고 당신의 것이라는 것을 내가 인식했다는 그 표시로서 이제 십 원을 드립니다’ 하며 드렸으면은 그 돈 십 원은 하나님 앞에는 억억만금보다도 더 큽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거 없이 온 나라를 드리는 것 그것 다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오. 당신이 모든 것 다 만들었는데 당신 것 아닌 게 뭐 있습니까, 있기를? 그런 고로 이런 줄 알고 우리가 연보의 성질을 깨닫고 하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또, 둘째로는 이 연보라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축복받는 그 길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마련해 주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법도대로 하면서 이 모든 것은 다 당신의 것으로 나에게 주신 것인 것을 내가 확실히 깨닫고, 이제 이것은 당신이 주셨기 때문에 주셨다는 표시로써 내가 당신에게 뭘 드립니다. 작은 것을 드렸는데, 작은 걸 드리니까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셨기 때문에, 거기 말하기를 그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황충을 금하다니? 이거 농사 짓는 것은, 다 농사 짓는 것이 아니니까 뭐 장사하는 것이나 뭐 정치하는 거나 다 한가지입니다.
황충을 금한다 말은 해충을 금한다 말입니다. 정치에도 해충을 금하고, 또 장사에도 해충을 금하고, 농사 짓는 데도 해충을 금하고, 모든 연구에도 해충을 금하고, 목회에도 해충을 금하고, 해하는 것들을 다 금해 주시겠다. 해치는 것들을 다 없애 주시겠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고 또 내 모든 농사 짓는, 네 손으로 하는 모든 토지의 그 소산을 아무도 멸하지 못하게 하겠다.
그러면 토지의 소산을 멸하지 못하니까 장사하는 사람은 그 상업을 아무도 해하지 못하고, 또 정치하는 사람은 그 사람 정치하는 거는 아무도 해하지 못하고 또 그 사람이 무슨 사업을 하든지 뭐 목회, 너 목회하는 데에 아무도 해하지 못하게 하겠다. 그러면 하나로, 자기 농사, 자기로서 자기 농사로 짓는 자기 기업, 자기 기업을 아무도 해하지 못하게 하겠다 그 약속입니다. 이것이 연보로 하나님께서 작정해 놓은 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연보 길을 냈지 우리에게 뭣을 긁어 모아서 당신이 가져 가기 위해서 연보 길을 내지 안한 것을 우리가 확실히 믿어야 됩니다. 그러면, 당신이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길을 냈지, 우리 것을 뭣을 긁어 가지고 당신이 모아 가지고 가기 위해서 낸 게 아니오. 하나님은 그런 칙칙한 더러운 일 하지 안합니다. 자존하신 하나님이시오. 창조주 하나님이시오.
또, 그러고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한다. 이거는 뭣이든지 경영하면 중간에서 중간 실패하지 안하고 반드시 그것이 다 완성이 되고야 말고 처음에 경영하는 것보다도 더 끝이 더 몇 배나 수익이 커지지, 처음에는 큰 것을 계획하고 소망했는데 나중에 그것이 적어지고 조그만한 게 됐졌다 이런 그것은 다 저주라고 말했습니다. 저주받은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됐습니다. 이러니까, 연보는 우리의 모든 하는 일, 무슨 일이든지 하는 일 거기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고 길을 우리에게 마련 해 준 거라. 길을 마련해 준 거라.
사람들이, 마음이면 제일이지 그 연보 그게 무슨 거석이냐? 성경에는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하나니 이를 중히 여기면 저를 경히 여기고 저를 중히 여기면 이를 경히 여기느니라’ 그런데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하는데 한 주인은 뭐이냐? 한 주인은 하나님이요 한 주인은 물질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은 물질이 그만큼 지금 점령을 하고 있기 때문에, 물질에 대해서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는 사람이라면 다른 거 다 잘 지킵니다. 다른 거 다 지키요. 주를 위해서 물질을 그것을 주의 법도대로 물질을 다 취급하는 사람이고 그 물질에 대해서 완전히 주님을 믿고 주님에게 맡겨 놓고 뭐이 오든지 내게 모든 것을 다 유익하게 합당하게 해 주신다는, 요 물질에 대해서 당신이 내게 대해서 책임지고 관리한다는 요것만 확실히 믿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아주 신앙이 그래도 중등 이상 되는 사람입니다. 중등 이상 되는 사람이오. 의수이 뭐, 예수를 믿는 장로들 목사들 이래 봐도. 물질에 대해서 그렇게 이 확신을 가지고서 나가는 그런 사람들이 많지를 못합니다.
그러기에, 둘째로는 우리의 모든 하는 일 우리의 모든 전체의 전체의 일을 하나님이 축복해 주실 수 있도록, 간단하게, 축복해 주실 수 있도록 축복받는 그 길을 마련해 준 것이 우리에게 연보하는 길을 마련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연보하는 이런 것을 이 내용일랑 모르고 이 연보 내놓은 것이 모금 운동이라 이렇게 마귀란 놈이 이라니까 그런 소리를 듣는 그런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기 쉽습니다.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이 연보는 하나님께서 모금하는 그 모금 운동, 모금 방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만약 사람에게 질질 뭐 다른 이종교 모양으로 이렇게 해서 한 푼 두 푼 모금하는 그런 하나님 같으면 저는 안 믿습니다. 저는 안 믿어요. 안 믿겠어요. 그런 하나님 같으면, 뭐 할라고 믿겠습니까, 뭐? 그런 하나님 뭐 할라고 믿어. 내 주먹만도 못할 건데,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공연히 되지 못하고 된 줄로 그렇게 알면 안 됩니다.
우리 교역자들 가운데도 보면 나서면서, 많든지 적든지 나서면서 자기의 모든 물질의 소유라 하는 것은 싹 그만 없애 버리고 그렇게 빈손 쥐고 나선 사람들 있었고, 또 어떤 사람은 나섰다가 무슨 일이 있을까 싶어서, 싹 다 청산하고 나설 때에 ‘너는 지금 왈칵 나서기는 나서지마는 나중에 네가 지금 아직까지 되지를 못했기 때문에 이거 없애 놓으면 안 되니까 그래 그러면 냅둬라. 인제 네가 뒤에 곤란 하거든 오라.’ 이라고 고걸 딱 누구에게 보관시켜서 저금을 딱 해 냅두고 봅니다. 그러면 그걸 오 년 십 년 쫄쫄 내다가 호려다가 다 씁니다. 오 년 십 년 가는 동안 또 어려우면 그것 또 거석해 구출하고 구출하고, 그라면은 어째 그거 다 줘서 하다 보면은 그냥 살릴 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얼마 동안 하다가 이제 목회로써 그냥 밥이라도 먹을 수가 있다 싶으면은 그거 싹 터는 사람 있고, 아예 딱 보고 하는 사람 있고, 어떤 사람은 다 자기 할 것 전부 실속 있게 다 해 놓고서 하나의 찌끼 가지고서, 하나님 믿는 게 아니고 자기 수지 계산으로 다 맞춰 놓고서 하나님은 하나의 부업으로써 도와 줘도 안 도와 줘도 좋고 하는 그런 격으로 목회하는 사람은 암만 해 봐야 그 목회가 안 됩니다.
그래 내가, 오늘도 내가 누구에게 말하기를, 교학실장하고 말했습니다. ‘아, 그분이 목회를 하는데 그 목회가 잘할 줄로 알았는데 그 목회가 여게 가도 실패, 저게 가도 실패 실패인데.’ 내가 그런 말로 하니까 그 교학실장이 ‘아, 글쎄요?’ 그렇게만 하고 말았어. 그래 좀 전에도, 제가 한 이틀 병난 것은 내가 그 교회 때문에, 교회 몇 교회 때문에 꼭 이틀 밤을 내가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하나도. 그 교회를 이라자 해도 안 되고 저라자 해도 안 되고 이 교회는 이렇지, 이거 사람들은 뭐 그래도 이 총공회 산하에 있다고 이러고 있는데 이 복음을 가루는 일 하고 있지, 아무런 충성은 없지, 이래 놓으니까 이리도 못 하고 저리도 못 하고 이래서 고민하다가 나중에 하나로 결정을 지우기는 지웠었습니다.
연보라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하는 모든 일에 당신이 복을 주시고 싶어서 원하고 원하는데 이 복 줄 길이 없어서 당신, 오전에도 하나님과 우리와의 연결줄이 끊어져 있으니까, 연보 없으니까 연결 줄이 끊어져 있으니까 말이오. 연결 줄이 없어 그분은 그분이고 우리는 우리고, 끊어지면, 자, 부자 그분하고 거지 우리하고, 또 당신은 생명이요 우리는 생명이 없는 생명에 피동된 자인데 그분하고 끊어지면 우리만 죽지 뭐 그분에게 손해 갈 게 뭐 있습니까? 그분은 손해갈 거 하나도 없습니다. 연보로 가지고 당신과 자꾸 연결을 맺기 위해서 연보 제도를 주신 것입니다.
이래서, 둘째로 연보 제도는 하나님이 모든 걸 준비해 놓고 이것을 우리에게 얼마든지 지금 은혜로 마구 주고 싶은데, 은혜로 주고 싶은데 이것을 받을 수 있는 그래도 무슨 길을 마련해 가지고서 그 길 방편으로 받으면 주님도 기쁘고 우리도 받아서 좋아지고 이래야 되지 그 길을 만들어 놓은 것이 잘못 만들어 놓아 있어서 고거 고 방편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다고 하면 우리가 망할 수 있는 길이라면 그거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이 연구하시고 연구하셔 가지고서 연보라는 이 길을 가지고 하나님의 모든 축복을 우리 하는 모든 일에 축복해 주시기 위한 방편으로, 축복을 주시기 위한 방편으로,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길로 우리에게 주시기 때문에 이 길이 없으니까 우리 축북이 없어 버립니다. 연보 제도가 없으면은 우리는 이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셋째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래 살아도 저래 살아도 지내가는데, 사람이라는 것이 하나님이 예정돼 가지고 자꾸 이래 나가기 때문에 사람이 환경을 만드는 것 같지만 만들지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형편 저런 형편 자꾸 그래 가지고 오늘 부자가 됐다가 내일 거지 됐다가, 물질이라 하는 것은 성경에 말하기를 정함이 없는 재물이라 이랬습니다. 정함이 없는 재물이라. 왜? 금방 이렇게 올라갔다 내려갔다 자꾸 지금 층어리 있는 이런데, 이것을 없어지기 전에, 없어지기 전에 이것을 하늘나라에 내가 저축하는 그런 방편으로서 이 연보 제도를 하나님이 또 세워 주신 것입니다. 땅의 것을 내가 죽기 전에, 또 없어지기 전에 이것을 하늘나라에 영원한 내 소유로 , 내 기업으로 이것을 완전히 영원한 내것으로서 등록하기 위해서 내신 제도가 연보 제도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그래 말씀했어. ‘공수래 공수거라’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간다. 우리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잠깐 보관해 가지고서 있는 것뿐이지 보관했다가 오늘이라도 생명부르면 그 사람이 가 버리면 그거는 제것 하나도 아닌 것입니다. 제 딴에는 있다가 자녀에게 주면은 자녀에게 줬으니까 준 것 같지마는 그게 아닙니다. 자녀에게 줬다 할지라도 그게 뒤에 화가 될란지도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 우리에게 있는 이것이 없어질 것을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할 것으로, 땅에 있는 것을 하늘의 것으로, 일시 보관하였던 것을 영원히 자기의 것으로서, 자기의 소유로 영원이 그것을 이용할 수 있는, 이용할 수 있는 그런 길을 마련해 준 것이 이것이 연보인 것입니다.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그라면 보물을 하늘에 쌓아둔다고 이라니까 그러면 이 돈이 거기까지 갑니까? 안 가나, 돈은 가는 것 아닙니다. 이 물질은 물질계에 있고 하늘나라에 가지마는, 물질이라는 그 활용권, 물질이라는 그만큼 권리권 그것은 내나 하늘나라 가 가지고서 그대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돈이 가는 게 아니고, 그만치 자기는 그만큼 물질에 대해서 권위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알기 쉽게 그래 말하기를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둬라. 거게는 도적도 안 맞고 동록도 안 슬고 좀도 먹지 않는다. 그래서 연보 제도는 없어질 이것을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할 내것을 만드는 방편으로 주셨다. 또 하나님의 것을 다 보관해 가지고, 내게 있는 거는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의 것을 영원히 내것을 만드는 이 방편을 주셨다 하는 것을 성경에 말씀해 놓으셨습니다.
그라면, 또 뭐입니까? 네째로는, 이 연보 제도는, 우리는 이 세상에 떠나서 하늘나라 갈 터인데 하늘나라에 가서 있는 그 친구, 하늘나라에 있는 그 친구를 사귀는 방편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16장 9절에 보면은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없어질 때에 그가 영원한 집으로 너를 영접하리라’ 이랬습니다. 그러면 영원한 집으로 영접하는 것은 주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영원 무궁세계에 가 가지고 주님을 내가, 그때는 사귈라 해도 못 사귑니다.
영원 무궁세계에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모든 것에 다 주권 가지고 계시는 그분을 내가 이 간단한 것 가지고서 사귈 수 있도록, 그분을 사귈 수 있는, 영원한 친구는 곧 주님이신데, 영원한 친구 주님을 사귈 수 있는 그런 아주 간략한 방편을 가지고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것이 이게 연보 제도인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6장 3절에도 보면은 거게 이제, 구제할 때에 네가 오른손이 하는 걸 왼손이 모르게 하라. 은밀한 중에 계시는 너희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그런 건 다 이거 주님 사귀는 것입니다.
그러면 연보 이거는, 연보 가지고서 주님을 내가 사귀는 것, 주님을 내가 직접 대접할 수 없는데, 지금 주님을 대접할 수 있는 그 길이 이거 연보 길입니다. 그때 가 가지고 만왕의 왕을 우리가 어떻게 대접을 해서 되겠습니까? 그러나 이 대접은 영원한 집에서 ‘아, 네가 나에게 이렇게 했으니 내가 이런 대접을 받았다.’ 하면서 그 대접받은 것을 다 초대해 가지고서 영원한 처소로 영접한다.
그 영원한 처소로 너희들을 영접한다. 그러기 때문에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이 없어질, 불의의 재물이라 말은 저주 아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없어질 재물 가지고서 너희가 영원한 친구 곧, 거지 그 사람 사귀는게 아니라 영원한 친구 주님을 사귀라. 지금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영원 무궁세계에 만왕의 왕이신 주님을 사귀는 하나의 방편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이 연보 제도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연보 제도는 우리에게 뭐 어떻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 선물로 주신 축복의 길인지 모릅니다.
또, 다섯째로, 연보는 하늘나라를 우리가 상속받는 그 일에 아주 주동 역사를 하는 것이 이거 연보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 34절 이하에는 보면은 오른편에 있는 그 모두 의인들에게 말하기를 이 세상을 창조할 때에 너거들을 위해서 예비한 영영한 나라를 상속으로 받아라’ 영영한 나라를 상속으로 받아라’ 이랬습니다.
영영한 나라를 상속으로 받아라 이랄 때에 그때에 그 의인들이 아, 그걸 지금 저희가 그런 영영한 나라를 상속으로 받을 무슨 그런 실력이 있습니까? 이라니까 딱 표시하기를, 오전에도 말했지만 ‘내가 주릴 때에 먹을 걸 주었고 목마를 때 마실 것 주었고 내가 모든 헐벗고 나그네 되고 병들고 옥에 갇혔을 때에 나를 대접했다’ ‘언제 그랬습니까?' 하니까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위해서 이 한 모든 것이 다 나를 위해서 한 것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늘나라에 있는 모든 기업을, 하늘나라에 있는 그 기업을 땅에 있으면서 약간의 사소한 것 가지고서 하늘나라의 그 무한한 그 기업을 내가 상속받는 그 방편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 이 연보 방편인 것을 우리가 기억하고 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면 연보를 해도, 자꾸 연보를 많이 할라는 그런 거 생각지 말고, 우리가 과거에 연보해도 잘못했으면은 그런 것도 생각해서 ‘나는 공연히 다른 사람 하니까 따라서 이리 했다’ 이렇게 했을지라도 아직까지 우리가 가기 전이니까, 가기 전이니까 그런 걸 다 고칠 수 있습니다. ‘주님이여 내가 언제 한 그거는 내가 모르고 했으니까 그것은 지금 당신의 진노를 풀기 위해서 그 연보를 한 것입니다. 이건 당신의 축복을 내가 기다리고 연보했습니다.’ 그런 조건들을 다 붙여서, 하면 당신은 돈 모우는 게 당신의 주장이 아니기 때문에 그냥 연보만 해 놓고 떡 해 놓고 하는 그거는 하나님이 지금 고통입니다. 그럴 거 아니겠습니까? 우리를 사람 만들기 위해서 지금 이와같이 하는 것인데 해 놓고 아무 뜻 없이 연보일랑 떡 해 놓고 이래 가지고서 그저 연보했으니까 됐다 하고 있으니 그거 기가 찬다 말이오. 그런데 사후나마 요렇고 요렇고 요 조건부를 따져 가지고서 요게 대해서 ‘내가 연보했는데 요거는 요게 대한 연보입니다. 요게 대한 연보입니다.’ 이래 하니까 하나님이, 정리가 착착 되고서 그러니까 ‘그래, 그래 됐어. 요거는 내가 거게 대해 주지. 거게 대해 주지.’ 자꾸 이래 가지고 당신이 번민이 없어지고 우리에게 대해서 하실 일을 단행할 수가 있다 그거요
또, 여섯째로는, 고린도후서 9장 8절로 10절까지에 보니까, 우리에게 조금 줬다가 넉넉하게, 많이, 모든 것을 풍성하게 그렇게 점점 우리에게, 조금 줬다가 조금 더 주고 더 줬다가 또 더 주고, 조금 줘 가지고 하는 행동 보고서 고것을 잘 심고 잘 또 사용하고 이래 가지고서 그 준 것이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에게도 기쁨이 되고 하나님 명령대로 모든 사람들을 구출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그런 일을 자꾸 하니까 하나님이 얼마든지 주신다 말이오. 그래 가지고 하나님이 적은 것으로부터 많은 것을 주시는 그런 그방편으로 우리에게 연보의 길을 주신 것을 고린도후서 9장에는 보여 주고 있습니다.
또, 디모데전서 6장 17절로 19절에 보면은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네가 이렇게 연보해서 하는 것이 장래에 네 자신을 위해서 좋은 터전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랬습니다. 영생하는 터전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영원 무궁세계의 자본을 마련하는 것이다. 우리는 무궁세계에 가 가지고서 자기가 이 세상에서 터전을 마련한 대로ㅡ비유입니다ㅡ터전을 마련한 대로, 자본을 마련한 대로 그 위에서 자기는 해 나갑니다. 닷 냥쭝 받은 사람은 같은 노력하니까 열 냥쭝 됐고, 두 냥쭝가진 사람은 같은 노력하니까 넉 냥쭝 됐고, 그러면 이 세상에 터전을 마련하는 그것대로 영원 무궁토록 자꾸 그거는 성장돼 나갑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서, 믿는 사람과 믿는 사람의 차이가 예를 들어서 한 열 길이, 열 자가 차이 있다고 하면은, 높이 열 자가 차이 있다고 하면은 하늘나라 가서 천 년이 되고 보면 백 자 차이 있고 만 년이 되었으면 억만 자 차이가 있고 갈수록이 자꾸 차이는 더 많아지는 것입니다. 그 나라에서는 새로 종자나 터전이나 시작은 없는 것입니다. 이제 있는 그것을 자꾸 이와같이 성장돼 나가는 것이지 그러기 때문에, ○○교파에 그때, ○무슨 교수인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지금 요새는 독일 갔다든가 뭐 이랬는데 그분은 연보하는 데에 뭐 ○○교파도 그때 돈이 적은 때니까 월급도 얼마 주지도 못하고 이렇지마는 그거 전부 연보하고 이라면서 어데든지 하면은 그저, 그 사람은 십 원짜리 바꿔 가지고 다니요. 십 원짜리 십 원짜리 가지고 어데든지 연보한다 하면 십 원짜리 해요. 십 원. 또 그 뒤에는 뭐 혹 한번 오십 원도 하고 백 원도 하고, 왜? 다른 이가 보면 웃어요.
‘나는 이거 뭐 상은 받을라고 하는 거 아니고 그래도 내가 거기 참석할라고 참석할라고, 요게 대한 상을 베플 때에 참석할라고.’ 참석하는 건? 너는 찍해야 십 원밖에 안 했으니까 그뭐 너 얻을 게 뭐 있나? 얻을 게 없지마는, 그래도 십 원이라도 뺄 수는 없거든. 십 원이니까 안 그렇습니까? 뺄 수 없으니까, ‘거기 참석할라고.’ 그 사람이 그런 신앙을 가지고 아주 제가 볼 때에 는 그 사람이 독실한 신앙가였고, 또 그 사람을 다른 사람이 보면 너무 신비주의라고 말할 만한 사람이고, 그런데 아주 독실한 신앙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교수 이름이 뭐인지 압니까? 녜. ○○○교수라고 하는 그 교수가 그런 교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언제 갈지 모릅니다. 언제 갈지 모르기 때문에 하늘나라를 바라보면서 참 후회 없는 걸음을 걸어야 할 것입니다. 그 연보 많이 하는 게 문제가 아니고, 이걸 지금 알고 우리가 그래 가지고 하나씩 해결을 지워서 이래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위해서 영원한 터를 마련하는 것이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제가 다시 한번 첫째로 말해 보겠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진노를 풀고 저주를 벗어나는 길, 또 둘째는 내 행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하신 길,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하신 길. 하나님이 날 받도록 해 주신 그 길이라 말이오.
그 길을 내가 사용하면 되고 그 방편 사용 안 하면 안 되는 것이니까.
셋째로는, 없어질 내 보물을 영원히 없어지지 안할 데로 옮기는 것, 잠깐 하나님의 것을 내가 보관하고 있던 이것을 이제 하늘나라의 영원한 내것으로 만드는 것, 연보는, 그러기 때문에 연보는 내가 하나님에게 바치는 게 아니고 하나님에게 받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연보는 하나님께 바치는 게 아니고 하나님께 받는 것이라는 거 요걸 알아야 됩니다. 받다니? 이거 내가 보관해 가지고 있는 이것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이제 세상 끝나고 나면은 두고 가야 됩니다. 냅두고 가야 됩니다. 하나도 자기 것이 아니라 했어. 두고 가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청지기라 이 말은, 청지기라 말은 보관자라 말입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보면은 보관했다가 주인이 나가라 하니까 다 소유 냅두고 빈손 쥐고 나오지 안했습니까? 그거 비유 아닙니까? 이럴 수 있는 것인데, 내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하나님 법도를 따라서 이 인간 구원에다가 투자를 해 버리고 나면은 고만 그것은 영원히 내것 만들었다 말이오. 그러니까 하나님이 보시고 그거 지혜롭다 이랬습니다.
영원히 내것 만드는 거. 그러기 때문에 이게 다 우리를 극히 사랑하시므로서 내놓은 방편입니다.
네째로는, 영원한 친구를 지금 마련하는 것, 내가 그때 가 가지고야 하나님을 뭘, 예수님을 무슨. 친구 만들라고? 지금 뭐 ○대통령도 아마 친구로 마련할라고 한번 대접을 한다든지 한번 만나든지 한번 초대를 할라 하면은 힘이 들고 대단히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그런 데에 있지 안하고 자기가 출세하지 안하고 그저 학생으로나 돌아다니고 이럴 때 그때 친절하게 빵떡 하나만 잘 대접했어요, 그게 어려울 때 대접했으면은 그게 기억나 가지고서, 지금, 그때 그 기억이 남아 있으면은 혹, 와 가지고서 ‘아, 저는 그때 아무 때 그 빵떡 한 개 그때 시장해 하실 때 대접한 저입니다.’ 아이쿠 그러냐고 손을 잡으면서 뭐뭐 고만 그 청와대로 모실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하나님을 이렇게 사귀기 쉽지마는 일단 지나가면 하늘나라 가서는 그렇게 사귀기가 힘들고 쉽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모양으로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연보는 네째로, 영원한 친구를 마련하는 그런 좋은 방편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다섯째로는 영원한 하늘나라의 모든 것을 내가 조그만한 연보 그거 가지고서 상속을 받는 그 상속권을 우리가 마련하는 것입니다. 상속권. 성경에 말하기를, 네가 이리 이리 했기 때문에 영원한 나라를 네가 상속받아라 이랬어. 영원한 나라를 상속받아라. ‘아, 예수님의 대속으로 되지 그래 되는가? 대속으로 됐기 때문에, 대속을 받았지마는 법적으로 대속을 받았지마는 이게 없으면 실지로 상속권이 없다 말이오. 그걸 말하는 것 아닙니까? 마귀란 놈은, 실상을 대서 말하면은 고만 저 기본 원리를 말하고, 기본 원리를 말하면 실상을 갖다 붙이고 이래 가지고 자꾸 우리 구원을 헛일되게 합니다. 어쨌든지 우리는 이 연보하는 것은 영원한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유일한 방편으로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을 기억을 해야 할 것입니다.
또, 고린도후서 9장 6절 이하에 있는 말씀은 우리에게 더 많이 주시기 위해서 하신 방편이라 하는 것을 거기 기록했습니다. 그저,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것이 넉넉하고 해서, 부요해서 의의 열매를 가득히 차도록 해 준다. 그러니까 조금 하면은 또 좀 더 많이 주고 많이 주고 점점 많이 줘서 당신의 모든 것을 얼마든지 많이 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내놓은 제도가 연보 제도입니다. 이거 당신은 필요 없소. 그거 뭐 그 연보한다고 당신이 뭐 가지고 갑니까, 어데 또? 그라고 우리가 이렇게 해 보면, 이런 것도 믿고 해 보면 하나님이 실제로 그와같이 해 주시는 그걸 한 번 경험해 두 번 경험하니까 아, 이거 믿으니까 고다음도 믿고 다 차차차 믿어 가지고 믿는 사람이 되어지는 것인데, 아예부터 믿지 안하니까 무슨 효력이 납니까, 어데? 하나님 말씀대로 연보해 가지고서 물질에 빈곤한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여게도 그럴 겁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물질 관계를 해 가지고서 물질에 빈곤한 사람 절대 없습니다. 뭐 그거는 아주 쉽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해 가지고서 물질에 곤경을 면하는 사람은 그거는 뭐 잠깐이요. 그리 힘 안 드요. 그거는 어린 신앙이라도 다 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다른 면에는 잘 믿고 똑똑한 것 같지마는 물질에 대해서는 딱 인색하고 그래 가지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은 평생 물질에 대해서 어려움을 면하지 못합니다.
항상 곤고하게 지냅니다.
또, 일곱째로는 이 연보라 하는 것은 자기를 위해서 장래 좋은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연보 제도를 주셨다.
그러면 하나님이 연보 주신 목적이 뭐 있는가? 어데 있는가? 그 목적은 당신을 위함이 아니고 우리를 위해서 하신 것인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우리를 위해서 하는데 우리에게 그뭐 연보 제도를 가지고 그렇게 하는가? 연보 제도하는 그것은 인간들의 마음이 이게 물질과는 이상한 인연이 붙어 가지고서 이래서 물질을 초월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질을 초월하지 뭇하고 있어요. 이러기 때문에, 보물 있는 곳에 마음도 있다. 돈 있는 곳에 마음이 있어요. 그런 사람이 보통 사람이라. 아예, 예수를 믿어도 돈 그런 데 상관없는 사람 있어요 돈 그거 뭐 상관없이. 그거야 뭐 있든지 없든지 거게 대해서 아무 상관없는 그런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많지를 못해요. 거석한 사람들은 돈에 대해서는 아무 상관하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이 물질을 가지고 우리에게 이렇게 연보 제도로써 하나님과 우리와의 연결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 하신 것입니다.
이러니까, 오늘 연보하는 이것도 여러분들이 그저 연보 한번 작정해 놓은 것은 뭐 그렇지만 작정해 놓았더란대도 ‘아, 이거 내가 잘못 작정했다 너무 많이 작정했다.’ 많이 작정한 것 같으면 어서 그걸 말해 가지고서 가서 감해 버리십시오. 감하십시오. 절대로 허영 연보하지 마십시오. 허영 연보하지 말고, 허욕 연보 하지 말고, 또 도박 연보 하지 말고, ‘내가 요번에 조그매 연보하면 하나님이 큰 축복 줄 것 아닌가?’ 그런 거 하지 말고, 또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기 때문에 인색한 마음을 가지고, 인색한 마음이나 부득이 해 가지고서 그렇게 남의 이목을 봐서 ‘그래도 아, 내가 이만한 직분이 있으니까 얼마는 해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고런 외식한 연보 하지 마십시오. 그것도 하나님 앞에 노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또 자기 정도에 과한 것 하지 말고, 자기가 또 마땅히 했는데 ‘아, 이만하면 하나님이 나를 축복을 해 주시겠느냐? 이거 아무래도 내가 이거 또 빈약해서 안 됐다’ 싶으면은 또 그걸 더 보태서 하십시오.
그라고, 성경에 그저 여게도 보면 지나치게 연보했다 하는 그런 말이 있고, 또 자기 연명할 것을 다 연보했다 하는 그런 것을 주님이 칭찬은 칭찬은 하시기는 하셨습니다. 하셨으나, 그거는 그런 비상한 때가 있는 것이지 그런 것을 평소에 늘 사용하면 안 됩니다 우리 서부교회 교인들은 이제는 연보라 하는 건 꼭 법대로 해서 씨는 심고 양식은 사용하는 고걸 딱 획선을 그어 가지고 또 한 달 후에 연보하면 또 고만치 또 할 수 있고, 또 두 달 후에도 할 수가 있고 이렇게 해서 우리가 이 연보로 하나님의 그 일곱 가지 이 큰 관계를 맺는 이 사실을 깨닫고 이 관계 맺는 일에 계속해서 늘 맺어 나가도록 그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