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보와 성화

  선지자선교회

1982. 5. 29. 토새벽

 

본문고린도후서 97~10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한바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연보에 대해서 다시 뒤에 또 이런 면을 말하려 하면 많은 시간 걸리기 때문에 계속해서 말씀을 합니다. 연보는 대속적인 성격을 가진 것입니다. 연보는 대속적인 성격을 가진 것인데, 실은 물질 연보나 자기의 몸을 드리는 헌신 연보나, 물질 드리는 것 가리켜서 구별해서 말하기를 연보라 이렇게 해 놨고, 또 몸을 바쳐서 구속 사업하는 것을 우리들 말로 표현하기를 헌신이라, 몸을 바친다. 힘을 다하여 하는 것이 그 몸 바치는 것인데, 또 생애를 바치는 것 자기의 목숨을 바치는 것 이런 것이 전부가 다 대속의 본질과 본성을 가진 것입니다. 이것이 대속입니다.

대속은 인간은 대속할 그런 자격이 없습니다. 대속은 하나님의 지공법과 지성법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흠이 없는 자라야 대속을 할 수가 있지 흠이 있는 자는 자체가 멸망의 세력 아래에 있어서 멸망할 것인데 멸망할 것이 무슨 멸망을 대신해서 거기서 구원해 낼 수가 있겠습니까?그러기 때문에 대속은 온전하고 깨끗한 것이어야 대속할 자격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대속을 못하는 것입니다. 대속은 다만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만이 대속하셨고 대속하실 수 있습니다. ? 이분만이 깨끗하시기 때문에 그러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연보하는 것은, 헌신하는 것은,연보라 하거든 헌신, 순생 순교를 다 한데 포함해서 생각을 가지십시오. 연보하는 것은 주님의 피로 값주고 사서 주의 것이 된 그것을 주님이 또 대속에 쓰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기의 것을 드리는 줄로 알면 실은 그 연보가 백프로 들어 맞지는 않습니다. 주님이 대속하셔서 주의 것이 된 그것을 또 주님이 당신이 대속하시는 그 일을 계속 완성할 때까지 대속의 은혜를 베푸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연보는 대속하는 것인데, 대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위로 하나님이 소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그 일을 하는 것이요 옆으로는 멸망 가운데 있는 인간을 구원하는 그 일을 하는 것이 모든 연보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위로 하나님에게 대해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아버지가 원하시는 대로,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는 것이요, 실상은 그분 뜻대로 쓰는 것, 곧 인간을 위해서 인간에게 쓰는 것입니다. 인간을 구원하는 구원에 쓰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연보나 이것은 주님의 완전한 대속을 입어 주의 대속으로 깨끗해진 주의 것 된 것이 주님이 지금 물질로 대속하시고, 또 피로 값주고 산 당신의 것이 된 몸으로 대속하시고, 생애로 대속하시고, 목숨으로 대속하시는 이 대속의 역사를 주님이 당신 자체로 당신 자체가 값주고 사서 당신의 것이 된 그것을 가지고 대속의 역사를 하고 있는 것이 모두 연보들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기는 엄격히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그 범위 내에서 되지 그 밖에서는 안됩니다.

그러기에 연보하는 것은 주님의 피로 값주고 산 구속받은 주의 것이라는 것을 명백히 인식해야 하고, 또 그러기 때문에 이거는 내것 아닌 주님의 것인데, 주님의 완전 대속을 했기 때문에 아주 결박하고 온전한 것이라는 것을 자신이 믿음으로 인식해야 하고 또 여기는 이러기 때문에 부정이 있으면 안된다는 이 사실을 인식해야 됩니다.

연보라면 사람들은 간단하게 생각해서 하나님께 돈 드리는 것이라.’ 어떤 사람이 쓰기를 연보는 하나님에게 드리는 것입니다.’ 연보에 대한 설교를 듣고 오해하지 마십시오.’ 이렇게 나한테 편지 썼는데, 그 사람은 일반적 지금 이 세계의 교리에서 말하고 있는 그것을 들어서 암만 해도 고치지 않기 때문에 그러고 있는 것입니다.

들어서 고치지 않는 사람은 반드시 뒤에 가서 반발하게 되고 또 참 이 도 속에 들어오지 않는 사람은 이 도로 말미암아 제가 조금 권위있게 되면 다 제 장사로 나갑니다. 그것이 이제 자기 장사하러 나갑니다. 자기가 왕 노릇 하기 위해서 자기 중심으로 나갑니다. 나가는 것이 이쪽 마음에는 안타깝고 마음에 참 원통한 것뿐이지 손해는 없습니다. 일해 놓은 것이 헛일이니까 안타까울 것뿐입니다. 그러기에 양심을 안 가지면 지금 하는 말도 무슨 말인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연보는 대속을 입은 것이라야 하고 주의 된 것이라야 하고 또 주님이 택한 자들을 위해서 내나 당신이 십자가에 못박혀 희생하는 거와 같은 그런 희생의 것이라는 것을 믿음으로 인정을 하고 실행해야 마귀가 틈타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의 지공법에 걸리면 안됩니다. 지성법에 걸리면 안되는 것입니다. 주의 대속을 입어서 주의 것이 된 그것이 안되면 지성법에 걸려서 더럽기 때문에 합격이 안됩니다.

또 주의 것으로, 주님이 자기는 지체로 쓰시든지 도구로 쓰시든지 주님의 피로 대속해서 주의 것된 것을 주님이 지금 이렇게 하고 있는 것 내가 연보하는 것이 주님이 이렇게 나를 쓰셔서 가치있게 연보하고 있는 이 사실을 자기가 믿을 때에 큰 능력이 오고 인정치 아니할 때에 그 일은 하나님이 당신이 잘 이용하시고 바로 이용하시지마는 본인에게 대한 성화구원은 이루어지지를 않습니다.

? 그것은 연보했지마는 옛사람인 자기 주관에는 자기가 한 것이 되기 때문에 그것이 성립되면 구주가 천명 만명 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구주가 천명 만명 억만명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것은 사실은 주님의 값, 피로 값주고 산 것이기 때문에 당신이 하신 것이니까 실상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마는 자기가 성화되는, 자기라는 것은 그 자기가 왕 되어 가지고 하는 옛사람 그자가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자만 자라서 왕만 자라지 성화는 안되는 것입니다. 연보가 여기서 틀려 가지고 연보하는 사람들이 아무 성공을 하지 못하고 망하는 일이 여기서 생겨지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지공법이 거기 관련되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것도 대속물로 써 주십시오.’ 하는, 그 예수님 한 분만이 대속주이지 다른 이는 대속주가 못 됩니다. 하나님의 공의에 걸려 버립니다. 그러기 때문에 연보에는 인색함과 억지 이것이 조금이라도 섞여 있으면 안됩니다.

인색이 섞여 있을 때에 무슨 법에 걸리는고 하니 이 연보는 대속인데 무슨 법에 걸리는고 하니 인색은 하나님의 지성법에 걸립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높으시고 지극히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있는 걸 다해야 되지 아까워하면서 하는 그것은 당신이 받을 수 없는 그 지성의 분이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민하신 것도 혹 세포 하나라도 남겨 놓고, 성의의 억억만분의 일이라도 남겨 놓은 것이 있으면 지성은 섬길 수가 없습니다. 지성은 만족하지를 못하고 지성법에는 걸려 버립니다. 있는 걸 다해서 그분만을 바라보고 사랑하고 위하고 섬기는 이것이어야 지성의 지성법에 걸리지 않습니다.

억지 연보돼서 안된다이 말씀은 억지는 자기가 원치 않는 그런 요소와 원하는 요소 둘이 섞여 있을 때에 껍데기는 드리기는 드리지마는 속은 억지라. 자원함이 아니고, 원함도 있지마는 원하지 않는 놈이 그 요소가 그 안에 들었다 이럴 때에는 지공법에 걸립니다.

? 이는 제 일 하는 것이 아니고 대속하기 때문에, 자기의 가진 것을 다른 이를 위해서 희생하는 대속의 것이기 때문에, 대속적인 것이고 대속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공평은 지공은 내 일 나 하고, 그가 망할 때 그가 망하게 하지 네가 대신해 줄 것이 뭐이냐? 대신해 줄 것이 뭐이냐? , 죄는 지은 자가 벌을 받는 게 마땅하지 네가 대신 받을 게 뭐이냐?’ 하는 것이 지공법입니다.

그러나 그가 죄를 지었지마는 나는 그를 대신해서 그 형벌 내가 대신 받고 싶어하는 이 대속을 원하고 원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제일 중요한 것이 자유성이기 때문에 자유성을 또 이것을 용납하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이기 때문에 하나도 남김없이, 예를 들면 자기의 요소가 백개라면 아흔 아홉개는 대속을 원하지마는 한 개가 원치를 아니한다고 하면 그것은 아흔 아홉이 아무리 원해도 지공법에서 대속을 허락지 않습니다. ? ‘아흔 아홉은 원하지마는 하나는 원치 않고 있지 않느냐? 이 강제 아니냐? 어떻게 강제로 다른 사람을 대속할 수 있느냐? 제가 원함으로만 되는데.’이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민하신 것이 하나님의 지공법에 혹 예수님의 심신이 대속을 원하시고 원하시지마는 아파서 고통스러울 때에 깜빡이라도 그 성의와 성심과 그것이 하나님에게 다 기울이지 않으면 지성법에 완성은 이루지 못하고.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켰다그 말은 지성법에 합격됐다 그말입니다. 로마서 81절 이하에 있는 말씀.

또 고민하신 것은 혹 세포 하나라도 아야해도 지성법에 걸렸고, 또 세포 하나라도 원치 아니할 때에는 어디 걸립니까? 지공법에 걸립니다. 지공법에 걸리기 때문에 이것 때문에 죽기까지 고민한 것이지 죽기 싫어서 죽는 것이 어려워서 고민한 것 아닙니다.

죽음이 인간 고통 중에는 뭐라고 해도 최고의 고통입니다. 그러나 그 죽음은 자원해서 이 세상에서도 인간 힘으로 죽음을 자취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은 발달이 되어서 차차 그것이 변해져 나가지마는 고행주의라는 고행주의, 금욕주의, 불교도 일종의 금욕주의입니다. 이 금욕주의, 이런 사상에서도 자기의 생명을 스스로 버리는 것을 얼마든지 했습니다. 생명 바치는 것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오. 공산주의자들도 다 생명을 내놓고 나섭니다. 또 이쪽 저쪽에 간첩에서 훈련받은 사람들도 아예 생명은 벌써 다 내놓고 있는 것들이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는 그 죽음이 어려워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민한 것 아닙니다. 이것 때문에 고민했다, 십자가 상에서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하는 것은 너무 심했기 때문에 말했다 하는 그런 사람들은 아직까지 순교에 대한 것을 기도하지도 못한 사람이고 진정 그 속에 원하는 게 없는 사람입니다. 원하고 원해도 껍데기 원하고 알맹이 원하고 하나도 섞임없이 전부가 다 원하는 것이 다릅니다. 그러기에 지성과 지공에 걸릴까 해서 그래서 심히 죽기까지 고민하신 것이 그것인데, 우리가 연보에 대해서 할 때에 이것은 대속의 것이기 때문에 인색이 있으면 하나님의 지공법에 걸려서 안됩니다. 그러면 안되는 그것이 뭐하는 것이냐? 제가 주관으로 인식을 잘못했지 주의 피로 값주고 산 주의 것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몸도 우리의 소유도 다 주님의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 손에 잡혔을 때에 당신이 써서, 그것은 써서 의로운 일 했지마는 자기 이 심신의 주관이라 하는 거는 성화는 안됩니다. 변화는 안됩니다. ? 지공법에 걸렸기 때문에 자기는 연보했으나 연보 안한 사람이오. 했으나 안한 사람입니다.

당신이 당신의 것을 쓴 것뿐이지 자기는 그 일에 동참해야 성화되는데 동참이 안되기 때문에 성화가 안된다는 것. 이러기 때문에 억지로 하지 말아라 인색함으로 하지 말아라하는 이 뜻을 밝히 깨달아서 이것이 안되면 자기 주관 성화가 안된다는 것을 이것을 이해하고 기억해야 됩니다.

 

또 연보는 이것은 대속의 것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독생자 주심에 동참함이라그말은 아버지의 심정으로 가장 사랑하는, 자기가 당신이 사랑하는 것을 남을 위해서 희생한 것처럼 자기에게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을 남을 위해서 희생하는, 꼭 아버지가 독생자 주신 그 성격이요, 그 본질이요, 거기 속해서 그것이 되어야 됩니다. 또 예수님의 사활 대속에 참여하는 것이라 사활 대속이 되어야 됩니다. 거기 동참한다 말은 이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이웃을 살리기 위해서 자기가 죽는 것입니다. 이것이 죽는 것이요, 물질이 죽는 것이요 소유가 죽는 것이요 자기의 생애가 죽는 것이요 자기는 손해보는 것이요, 죽는 것이오.

또 손해보는 삶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심 같이 순생이라 하는 것은 손해봄의 삶입니다. 이거 어려운 말들입니다. 다 들어가고 들어가고 들어가 가지고 저 안에서 들어감에서 말하기 때문에 일반 교계에서 배우고 이런 소리 하면 망령이라하기 쉽습니다.

브라질에서도 거기 목사님이 별세하셨는데 그 아들이 후임으로 와 가지고 들짱 말하는 걸, 우리를 욕한다고. ‘뭐 구원이면 구원이지 기본구원이니 건설구원이니 그런 억지스런 소리를 한다고욕한다고.

우리를 욕하는 그것은 그것이 우리 욕 얻어 먹을 만한 일이 있어 욕을 얻어 먹으면 그것도 좋습니다. ? 세상에 욕 얻어 먹었기 때문에 그 형벌이 가벼워져요. 그거 형벌받는 것이오. 욕 얻어 먹을 게 있는데 욕 얻어 먹는 것은 그 댓가인 형벌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유익하고, 또 그걸 들을 때에 즉시 고치니까 선생님 만났으니까 유익하고, 또 고칠 게 없는데 듣고 참고 있으면 또 하늘나라의 상급 있고, 만고에 칭찬은 분석해 보면 손해뿐이고 욕 얻어 먹는 것은 유익뿐입니다. 이런데 이 목회로 나간 지교회 목사들이 목회자들이 거떡거리면 와 가지고 우리는 뭐 백파니 뭐니 하며 이러기 때문에 전도가 안된다.’ 그래 내가 네가 그 인간이기 때문에 네가 전도하는 교회가 안된다. 네가 그 인간이다.’ 내가 그렇게 말은 안 해도 좀 나와 가까운 자에게는 내가 네가 그 인간이다.’ 내가 그렇게 말합니다.

서부교회는 백파라 욕 얻어 먹으면, 욕 얻어 먹는 원 뭉텅이가 서부교회인데 그런다고 서부교회가 안되나? 서부교회만큼만 너도 크게 그렇게 복음으로 흥왕시켜라.’이러는데 가면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을 자기네들이 아직까지는 생각해 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다 아는 사람들 많지마는 생각해 보지도 못한 그런 사람들이 그렇게 핍박하고 조롱하고 해서 점점 거꾸로 기어들어 갑니다.

그러나 그것을 논문을 내라이렇게 대항적으로 뭐 할려고 이렇게 하지마는 대항을 하면 반발하면 사람이, 사람이라는 것은 각각 그 자존심이 있기 때문에 옳은 줄 알고도 반발 한번 했으면 그것을 잘못됐다 이렇게 머리 숙여 돌아오기는 참 어렵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가만히 둬 둡니다. 둬 두면 내게 깨닫게 해 주신 성령님이 그들도 깨닫게 해서 서서히 다 바른 길 가게 되기 때문에 틀린 자를 틀렸다고 이렇게 공박하는 그것이 손해입니다.

제가 절실히 느끼는 것은 왜 고신에서 내가 쫓겨 나왔느냐? 미움을 받기 시작된 것이 예배당 소송이 죄라는 그것을 강하게 말을 해서, 송상석목사님 밑에 있는 부목사 장목사가 그 집회 시간에 한 시간 참여하고 가 가지고 나는 예배당 소송하는 이 목사님 밑에서는 부목사 노릇 못하겠습니다.’ 당장 그 시간에 가 가지고 사면해 버리니까 그것이 송목사님이 나와 충돌된 첫째 충돌입니다. 그때 다른 목사님은 다 나를 환영했어.

영도에서, 그때는 총노회그때 총회가 없던 때요.총노회라고 이제 노회 겸 총회 겸 그래서 이름을 총노회라 한 건데, 거기서 시작할 때에 송상석목사님, 황철도목사님이 그때는 세력을 잡고 있었는데 그들이 팜플렛트를 내 가지고, 내기를 예배당 소송하는 사람은 우리 형제가 아니니까 구원이 없는 사람들인데 이것을 형제로 보고 예배당 소송을 반대하는 백영희조사를 치리해야 된다.’ 하는 그 팜플렛트를 꾸며 가지고 왔었는데, 하나님이 그때 나를 붙들고 알려 주셔서 서부교회 김집사라고, 그 집이 부산서 여관입니다. 무료 여관이오. 종들은 오면 무료로 얼마든지 대접을 했습니다.

거기 와서 송상석목사님이 와서 밤에 주무시면서, 이인재목사님하고 같이 주무시면서 밤참 가지고 가니까 내가 지금 이 백조사에 대해서 이거 팜플렛트를 내 가지고 내일은 백조사를 자를려고 한다.’ 그때 이인재목사님은 나를 옹호했습니다. ‘이제 이것을 이목사가 백조사한테 이런 말 안 할려고 하면 내가 말해 주겠다.’ 그래서 내용을 읽는 것을 ○○○집사님이 들었어.

둘이 같이 누워잤습니다. 같이 누워자고 아침에 식사하러 가면서 전성도목사님에게 이것을 빨리 가서그때는 사람들이 얼마 안되니까 한 5백부만 하라고 ○○○목사님에게 그것을,같이 잤는데,맡기고 식사하러 가자 하면서 전목사님은 먼저 이말출집사님 집에 오고 송목사님은 좀 뒤에 오고 하는데, 그때 내가 위에 어른들이기 때문에 가서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이말출집사님은 우리 집사님 집이기 때문에, 우리 교회 집사이기 때문에 가 가지고 인사차로 기다리니까 전목사님이 그때 그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렇게 이렇게 오늘 지금 팜플렛트를 내 가지고 조사님을 예배당 소송 반대한다고 짜를려고 하는데 지금 이것을 사과를 해라하는 그런 격으로 말을 했습니다. ‘그것을 조금 팜플렛트를 날 좀 보여줄 수 없느냐?’ 이러니까 송목사님이 곧 오는데 어떻게 볼 수 있느냐?’ ‘, 지금 한 15분만 보면 된다고그것을 가지고 2층에 올라가서 15분 동안에 그걸 빨리 읽으면서 거기서 대략 반박할 것을, 변증할 것을 적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전목사님에게 돌리고 나니까 마침 송목사님이 오시면서 , 백조사 왔어요?’ 이러면서 반가이 인사를, 우선 인사를 하면서 그래 들어 왔습니다. ‘아 예, 오셨습니까? 들어오십시오.’ 그러고 인사하고 제가 떠나 가지고 거기 대해서 반발론을, 반발론을, 변증론, 반증론을 기록한 것이 제가 고신 있을 때에 처음에 낸 팜프렛트입니다. 그것을 그때 한 7백부 만들어 가지고 그날 그것 다 해 가지고 저녁 아홉시까지 인쇄가 완전히 완료됐습니다. 지금 같은 이런 인쇄의 발달된 때가 아닌 미개 때입니다. 완료해 가지고 있으니까, 박인순선생님이 나와 같은 사상을 가졌었는데 오늘 밤노회 때에총노회라 합니다. 그때는 총회이고 노회 하나뿐입니다.고신에 이 총노회에서 밤에 송목사님이 팜플렛트를 냈다. 냈으니까 이는 속절없이 이제 이번에는 백조사님이 치리를 당하게 됐으니까 이걸 어떻게 하나? 빨리 가서 이것을 사과를 해서 지금부터는, 잘못됐다고 이거 사과를 해서 빌어야 되지 가지 않으면 안되니까 빨리 가 사과해라.’ 그래 가지고 걱정이 되어서, 그때 통행 금지가 열시던가 그런 때입니다. 열시던가 아홉시던가 이랬는데 가지고 왔습니다.

가지고 왔기 때문에 그것을 천천히 읽어 보고, 보니까 제가 거기 대해서는 다 그것이 비성경적이라는 것, 성경적이 아니라는 것을 똑똑히 보고 거기 대해서 반증이 바로 됐습니다. 또 이 팜플렛트를 또 내 보였습니다. ‘그게 성경이 아니라면 암만 해 봐도 소용 있는가? 이걸 보라.’박인순선생이 보고 이러면 이제 고신은 다 깨지고 갈라지는 것이니까 이게 문제라고이러면서 그분이, 통행금지가 그때 엄하니까 가지는 못하고 있다가 새벽에 네시 되어서, 그때는 차도 또 없는 때요. 택시가, 지금 이런 때가 아닙니다. 달음질을 쳐 가지고 가 가지고 박윤순목사님한테다가 이 팜플렛트를 전해 드렸어. 이러니까 박인순선생 가고 나서 한 두시간 있으니까 박윤선목사님이 헐떡거리면서 쫓아왔습니다. 그것을 보고 이거 내 놓으면 우리 고신은 다 깨어지는 것이니까 이걸 내놓지 말고 참고, 이거 다 그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이 아니냐? 그 사람들은○○○목사님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때 고신이 송목사 황철도목사하고 둘은 세력을 가지고 이 하나가 됐고, 나머지기는 하나이고 두 파가 되어 가지고 있었는데, 그때 한 목사님 편은 저하고 하나고 송목사님 편은 반대되고 이래 되어 가지고 있었는데, 말하기를 그들은 다, ‘개들을 삼가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들은 다 그의 입장에서 지금 하고 있는 게 아니냐? 이러니까 백조사 참아라.’ 하는 그 말을 ○○○목사님이 나한테 세 번 거듭 말했습니다. 말은 다 우리 심판 받습니다. 하나님 앞에 심판 받아. 내가 안한 말 한 것 아니오. 세 번 말했습니다. 그때 그래 가지고 지금 고신인데, 내가 그걸 발언을 안 해요, 지금.

먼저 탁명환, 뭐 탁명환 목사요? 장로가? 그분이 우리에게 대해서 잘못된 글을 냈기 때문에 그때 이것을 다 가지고 보고 그분이 외나 고신 중에 진짜 고신은 여기 있구만하는 것을 그의 입으로, 그런 증거 했지요? 송목사님 들었습니까? 그때 자기네들이 갔다와서 다 말하데. 그걸 보고. 박목사님도 이러면 깨지니까 안된다고 이러는 것을 가 가지고 그걸 뿌려 버렸습니다.

뿌리니까 그때 그 장장로님이 있다가 밥은 쉬었어. 쉬었어.’ 밥은 쉬었다고 고함을 지르면서 고신이 쉬었어. 썩었어. 쉬었어.’ 그 자리에서 영도 제일교회에서 고함을 질렀습니다. 온 청중이 놀래 버렸어. ‘어떻게 예배당 소송 문제가 죄가 아니냐? 그걸 반대하는 것이 어찌 그게 비성경적이냐? 성경 해석이 다 바로 되어 가지고, 그것이 그때에 그분들 한 것을 총노회에서 다 이것이 틀렸고 백조사의 이 성경 해석이 맞다.’ 이래 가지고 그것이 정죄가 되고 여기서는 다 아무 일 없이 되어 가지고 그 고비를 무사히 넘겼습니다.

이렇게 되고 난 다음에 그분들과 대립이 되니까 차차 차차 내가 말하는 게 자꾸 거리껴 가지고, 대립 대립되어 가지고, 마지막에는 최종으로 대립된 것은 오종덕목사님은 여기 당회장인데, 날 자꾸 굴복하라고, 자꾸 그들에게 머리 숙이라는데 안 숙인다고 서로 대립이 됐고, 이인재목사님 대립된 것인제 ○○○장로님 오셨습니까? 손들어 보이소. , ○○○장로님 자기 교회 ○○○교회니까 잘 알 것입니다.

○○○교회서 이인재목사님이 사면하실 때에 그때에 나는 저 서울에 우이동 산 집회할 때 그때에 가서 이인재목사님을 그 교회 있도록 할려고 내가 얼마나 애를 썼고 집회를 할 때에 그 교인들이 진리를 들으니까 이 진리로 말하고, 지금 목사님이 하는 그 진리 그건 틀렸기 때문에 이 진리로 말하고 그래 하라고 자꾸 이렇게 하니까 그 집회하라고까지 하고 나는 그때 그분을 거기 둘려고 애를 썼는데 수습위원으로 가라고, ○○○목사님하고 나하고 수습위원으로 ○○○교회 갔었는데 ○○○교회 가서 새벽에 나를 설교하라고 하는데 설교를 할 때에 마태복음 16속에 성신의 감화대로 너희들이 하라하는 이 설교를 한 것이 나는 영감대로 했는데 그것이 어떤 결과를 냈느냐? ‘, 너희들이 양심을 써서 영감대로 하고 사랑으로 하라했는데 그들이 이인재목사님이 너무 인본적의 것이기 때문에 이거는 용납할 수 없다그만 그게 돼버렸다 말이오. 그래 가지고 그때 나와 딱 대립이 됐습니다, 여기 뭐 ○○○교회 많이 와 있는데.

그때 이인재목사님과 나와 최종으로 마지막 사람으로 나와 대립이 되어 가지고 그때 나는 고신에서는 위에 주권을, 정권을 가진 사람들과는 손잡은 사람이 마지막으로 이인재목사님이 떨어졌습니다. 그것이 떨어진 것이 주를 위해서 떨어졌고 진리를 위해서 떨어졌고 진리로 인해 떨어졌지 그때는, 내가 지금 다른 데는 엉망진창의 흠이 있어도 그 노선 관계에서는 털끝만치도 제 보기에는 흠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만 내가 지금 원통히 생각하는 것은 그때에 예배당 소송 문제가 죄라는 것을 내가 너무도 강하게 외쳤기 때문에 그분들의 하는 일에 너무 반발적이 됐기 때문에, 그들이 도로 반발적으로 나서 가지고 했기 때문에 효력을 거두지 못했다.’ 이래서 그게 내 마음에 깊이, 마음 아프게 느껴지고 후회된 일이 되어서 중생된 영이 범죄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데 그 말을 내가 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저 한 번만 말해 주고 강하게 말해주지 마라. 강하게 말하면 그들과 나와 자꾸 그릇, 갑론을박을 하면 그와 나와 결국은 그 교리 문제로 멀어지게 되기 때문에 돌아올 수가 없는, ‘예배당 소송 문제가 죄라는 그말 한 것이 나는 옳다 해서 명예심 영광심을 가지고 이렇게 한, 내가 나를 세울려는 그런, 십자가의 대속적인 것이 없었던 것이 아니냐? 그래서 효력나지 않고 그들이 반동하지 않았느냐?’ 그게 느껴져서 그것을 논문을 내라고 해도 내가 논문을 내지 않습니다.

안 하고 가만히 둬 두나, 그분들이 유력한 분들이 논문 내겠다고 많은 말 했지마는, 중생된 영이 범죄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단이라고 노회적으로서도 그들이 많이 말했지마는 논문 내는 데까지는 겁이 나 가지고 안 내고 중단되어 있기 때문에 서서히 중생된 영이 범죄하지 않는다는 것은 인식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대속의 성질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이 이것을 똑똑히 알지도 못하고 가 가지고 벌말 하면 다른 사람들이 듣고 공연히 나를 이단이라 말한 사람들은 내 밑에 있는 은혜받은 사람들이 가 가지고 벌말을 말해 가지고 그들이 오해를 하고 감정을 품어 가지고 그 결국은 물은 흘러 나가고 돌은 쳐진다는 것, 마찬가지로 그런 사람들이 아무 정체가 없기 때문에 해야 상관 없고 결국은 뚜렷한 내게 대해서 전부 공격이 와 가지고 이와 같이 되어진 것입니다.

 

그러기에 연보에 대한 이런 것도 여러분들이 깊이 깊이 연구해서,이 성격이 안되기 때문에 연보를 많이 한 사람이 성화의 변화는 받지를 못하고 하나의 사욕적으로 해서, 그것 가지고도 복음 운동은 되기는 되지마는 실은 이 대속적이 아니기 때문에 자체에게는 성화가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연보는 이렇게 참여해서, 사활에 참여하고 예수님이 구원을 완성해 놓은 그 일에 내가 동참하는 것이오. 나 하는 일도 그 구원 완성에 들어간다 그말이오. 그게 된다 이거요.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모든 것 주신 거기 나도 동참해서 같이 그 유업으로 얻는다 그말이오. 주님이 주라고 시인하는 거기에 같이, 주라고 시인하는 거기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지난 밤에 여기 다섯 가지를 말했는데 이것이 중요합니다. 이것만 해도 세계를 한번 깨울 수 있는, 뒤집을 수 있는 논문이 됩니다. 큰 교리입니다.

이렇게 대속적이기 때문에 이것은,이스라엘 백성들이 짐승을 잡아서 하나님 앞에 속죄 제물로 드린 것은 제 양을 하나님에게 잡아 드리는 것이 분명합니다. 제 돈 주고 제 양을, 제 양을 제단 위에 잡아다가 드리는 것이 분명합니다. 제 걸 드렸습니다. 그러나 실은 그 양을 잡아 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대속의 양인 독생자를, 제가 양을 드림으로써 독생자를, 실은 구속주를 자기가 받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구약 때에 양을 드리는 것은 드리는 것으로 외부에는 보이지마는 실상은 받는 것이라 그말입니다. 거기까지가 안되면 뜻을 바로 모르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그들이 양 잡아 드리는 것은 대속주를, 대속주를 대속주로 하나님의 어린 양을 받는 것이요 그것을 성심 성의있게 드리는 것은 주님의 대속의 이 대속을 자기가 주님이 성심 성의있게 자기에게 주어 성심 성의있게 주는 걸 자기는 온전히 받는 것입니다.이게 좀 어려운 말이라서드릴 때에 허무하게 드린 것은 주님의 대속이 자기에게 허무하게 옵니다. 허무하게 받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드린 것만치 받는 것이라 이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합니다.

이러기에 연보라는 것은 실은 외부에는 하나님에게 드리는 것으로 보여지지마는 드리는 것이 아니고 영원히 자기 것으로 받는 것인 것입니다. 영원히 자기 것으로 받는 것, 이것은 대속의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자기는 대속할 것이 없어. 이것이 주님의 것을 주님의 것으로 완전히 인식하고, 주님이 그것을 쓰시기 때문에 자기 것을 주님에게 완전히 드리는 것, 드리는 건 뭐입니까? 주님이 대속으로 먼저 날 대속을 날 줬기 때문에 값으로 산 것이라 그말이오. 이것을 값으로 산 것이라고, 내것이 아니라 주의 것이라는 것은 주님의 대속은 자기 것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이러기 때문에, 연보는 대속의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사랑의 폭발에서 되어져야만 된다는 것을 지난밤에 말했습니다. 그 사랑의 폭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이나 사람되어 오신 것은 누구 때문에 그런 것 아니오. 아버지 때문에 그래. 아버지는 아버지의 사랑 때문에, 성자는 성자의 사랑 때문에, 성령은 성령의 사랑 때문에 이 사랑의 폭발로 필연적으로 다 이루어지는 일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연보는 본성이 사랑이 아니면 안된다는 것, 또 이것은 대속의 것이기 때문에 대속에 참여한다 그 말은 대속의 것이라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여기는 인색이나 억지가 있으면 다 하나님은 그것 가지고 당신의 피로 값 주고 산, 나야 주관이 내거라 하든지 말든지 당신의 피로 값주고 산 당신이 쓰실 수 있다 그말이오. 써 가지고 가치있는 일 하시지마는 자기에게는 소용이 없습니다. 알겠습니까? 옛사람이 나오는데 그 변화는 안돼. 그놈 죽이들 못합니다. 이게 바로 될 때에 죽어지고 변화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억지나 인색은 안된다. 있으면 안된다. ? 억지와 인색이 있으면 뭣 때문에 안됩니까? 집사, 뭣 때문에 안되지? 억지와 인색이 있으면 왜? . 백점이오. 이거 알아야, 귀가 뚫려 이걸 알아야 돼. 이걸 알아야 되지, 그거 모르고 허영에 날뛰어서 여기 가면 될 것 아니가?’ 허영에 날뛰는 그런 자는 회개 안 하면 안돼.

총공회 산하는 무대가 좁다.’ 어리석은 자요. 무대는 어디가 넓습니까? 무대는 어디가 큽니까? 우리 주님의 단일교회 그것이 무대가 제일 큰 겁니다. 그게 무대가 제일 큰 거요. 성령이 역사하는 거기가 제일 무대가 큽니다. 하나님의 그 무대가 커. 그러니까 내가 성령에게 속하면 내 무대는 천상 천하의 전부가 내 무대라. 내가 아무리 세계에 제일 큰 교파 속에 가서 붙었어도 내가 성령과 연결이 되어 있지 않았으면 자기 무대는 사탄과 연결된 무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무대는 눈꼽재기만한 것도, 먼지만한 것도 자기 무대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게 신앙이오. 이 신앙으로 나가야 될 것인데 이 전부, 전부 인본이기 때문에 뭐 뜯어 고칠래야 고칠 수도 없고, 그저 옳은 거는 옳다 아닌 거는 아니라만 이래 하고 지나갈 것뿐이라 말이오.

오늘 아침에도 이 말씀이 속에 박히면 교만이 팍팍 꺾어지고 회개할 것인데, ? 회개 안 하면 자기 망한다 그말이오. 안다고 하는 것이, 회개 안 하면 자기 망하지 남은 손해를 털끝만치도 못 보여요. 주님과 진리와 연결된 그 사람을 하나님도 피조물도 다 위하고 마귀도 위하는데 저는 안 위할 건가? 반대하는 것이 그것이 이상한 이치로 결과적으로는 유일하게 위하는 것이 됐다 그말이오.

다니엘을 묘한 꾀 꾸며 가지고 사자 굴에 집어 넣어 놓고 손뼉치고 잔치한 그 사람들이 그렇게 다니엘을 결과적으로 위한 것이 될 줄을 누가 알았소? 그렇게 위한 것이 되도록 하나님이 만들기 때문에 이 진리를 아는 사람들은 그런 데 요동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다만 말하는 것은 상대방을 불쌍해서 그를 구원하기 위해서 말하는 것이지 딴것은 없다 그거요.

 

그러니까 연보는 사랑의 본질과 본성을 가져야 된다는 것, 말하자면 일본 말로 말하면 야마가끼인데, 이 봉오리만 뜨끔 뜨끔 말하는 것인데 이것을 가지고 밑에 발치를 연구하면 알게 된다 그말이오. 연보는 사랑의 본성이 아니면 안됩니다.

연보는 대속의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공 지성법이 있는고로 억지와 인색이 속에 끼어 있으면 헛일입니다.

그런고로 이것을 기억하고, 연보 제도를 왜 냈느냐? 이것은 더 충만하고 가득 차고 넘치도록 하기 위해서, 대속하고 대속하고 대속하고 대속해서 예수님의 이 모든 대속에 자기가 동참하는 것, 거기 가 보니까 제가 해 놓은 것이 또렷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걸 찬성하고 그것이 자기가 이와 같이 대속을 하니까, 대속을 하는 것이 이것이 자기 것을 드리는 것입니까 주님의 것을 드리는 것입니까? 주님의 것을 드리는데, 주님의 것을 드리는데, 드리니까 자기는 주는 것입니까 취하는 것입니까? 취하는 것.

어떻게 취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대속을 점점 자기 것 만드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만드는 것. 법적으로는 됐지마는 실상으로는 이 주님의 대속을 내것 삼는 것만치 내것은 당신의 것처럼 인정하고 이런 게 바꾸는 것이오.

이것을 가리켜서 값이 없어도 돈 주고 사라 했습니다. 값이 없다 말은 댓가는 안된다. 그러나, 그러나 자기를 대속받은 것이면 주의 것이 된 것인 것을 알고 이것이 주의 것인 것을 인정, 인정할 때에 주님의 대속은 내것으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거는 변동을 못 해.

이러기에 껍데기로 이와 같이 되어 가지고 명예주의, 영광주의, 뭐 사업주의, 이 세상의 구멍가게 하듯이 자기의 위신주의, 자기주의 그러니까 교회는 단일교회라. 이 교회의 단일성이라는 것. 여러분들이 이렇기 때문에 단일성입니다. 억지로 주 모은다는 것이 아니오.

이렇게 하는 것은 참 불쌍합니다. 복음 받아 가지고 복음으로 자기 망치는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이오. 옛날 제사장 서기관들이 교권을 가졌지마는 그 사람들이 구원 하나도 안 이룬, 못 이룬, 그들을 우리가 보고긴 편지가 여섯 조목으로 왔는데, ‘목사님은 지식에 반대하는 반지식론자인데 이것이 잘못된 줄 아십시오. 목사님은 과학도 지식인데 자가용 타고 다니고,’ 뭐 내가 또 그걸 잊어버렸다. 비디오라던가 뭐라던가 이거 하는 것, 비디오가? 뭐 그건가? ‘그것도 지금 사용하고 있는 것 내나 그 지식인데 그러면서 지식을 반대한다, 그 사람이 제 주관을 가졌기 때문에 잘못 들은 거라. 지식이 나빠? 지식이 하나님의 지식보다 그것이 앞서 있기 때문에 그래 나쁘다는 그걸 모르는데, 그걸 알면 ! 살았다!’ 이럴 건데 그걸 모르기 때문에 날 반지식론자로 인정하기 때문에 저는 그것으로 저만 손해보고 마는 것이지, 그런다고 해서 내가 이만치라도 마음에 손해가는 건 아니고 그를 위해서 기도하고 참 안타까운 것뿐이라 그말이오.

여러분들, 알기 쉽게 운전대가 이것이 필요합니다. 운전대를 운전수가 잡았는데 운전대가 운전수에게 복종을 해야 운전대가 필요합니까? 이 운전대는 운전수에게 복종하는 게 아니라 운전수가 끌려 갑니다. 오른쪽으로 틀라 했는데 그 운전대가 왼쪽으로 획 틀어서 이 운전수가 운전대에게 끌려서 왼쪽으로 이거 틀어지면 그러면 그 운전대 그것 필요합니까 망치는 것입니까? 망치는 것이오 필요하요? , 그 운전대 필요하다고 그 차 타고 있으면서 그런 운전대 있는 그 차에 타고 싶은 사람 손 한번 들어 봐. 손 한번 들어봐요, 그런 데 타고 싶은 사람. 다 타기 싫어. 그거라 그말이오. 그거라.

운전대가 운전 기사가 사람이 있어 휙 이리 틀면 이리 오고, 이리 틀면 이리 오고 여기 복종을 해야 이게 안정이 되고 진행이 되지 운전대가 운전수를 끌고 제 마음대로 운전수는 오른쪽으로 틀려 하는데 제가 왼쪽으로 휙 운전수를 끌고 왼쪽으로 틀고 이래 하면 그거 안 죽소? 그와 마찬가지로 세상 지식은, 인간 지식은 그런 것이기 때문에 인간 지식이 운전수와 같은 하나님의 지식에게 지배를 받아야 그것이 효력을 내지 그것이 하나님의 지식과 동등됨을 취할려고 이러다가 하나님의 지식은 꺼무러지고 인간 지식이 위에 가 가지고 결국은 최종 결론과 판정은 인간 지식이 앞서서 주장하고 하나님의 지식이 그 지배를 당하는 그것이 어찌 안 망하느냐 그말이오.

이것을 말해 주는 것인데, 이것을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이면 그 말을 한다면 그만 거기가 살았다. 살았다! 이놈아 네가 나한테 와 이랬지만 날 죽이는 놈이다!’ 원수인 줄 알 터인데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참 기찹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올 때 믿음을 찾아보겠느냐 믿는 자를 보겠느냐노아 때와 인자의 때가 같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이 말을 예사롭게 듣는데 참 기가 차는 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말을 들어도 이거 장사할려고, ‘이 설교를 팔아 먹자.’ 이것 가지고 팔아 가지고 돈도 만들고, 밥도 만들고, 옷도 만들고, 지위도 만들고, 당파도 만들고 이러면서, 제게 없는 것 하나님이 그 사람을 통해서 주시는데 그것은 받아서 쓸모있으니까 이것만 내 실속이지하고, 그 전하는 사람은 대적을 해서, 대적해서 슬슬 훼방하고 뜯고 이렇게 하니 그 사람이 복음으로 받지를 못한 사람이오. 복음으로 받았으면 하나님이 기관으로 쓰신 사람이 하나님은 아니지마는 자기에게는 대리 하나님 노릇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닌 사람을 하나님처럼 존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네가 누구에게 배운 것을 기억하라 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에. 이러니까 여러분들에게는 그런 일이 없지마는 그런 요소가 들면 여러분들에게는 결국 성령이 떠나고 악령이 지배하게 되기 때문에 그런 시험에 들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 될 것입니다. 거기 있는 사람은 마지막에 자기가 딴길 가게 되면 결국은 하나님이 모처럼 새 움을 트게 해서, 새 움을 트게 했는데 새 움에 참여하지 못하고 내나 묵은 뭉치 옛날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니까 이런 일을 삼가해야 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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