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07 10:48
여호와인줄 알리라
본문 : 이사야 49장 23절 열왕은 네 양부가 되며 왕비들은 네 부모가 될 것이며 그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네게 잘하고 네 발의 티끌을 핥을 것이니 네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참 자존하시고 제일 높으시고 또 크시고 알지 못하심이 없으시고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이 지극히 크신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바라보고 의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 말씀을 인해서 믿게 되고 또 성신의 감화를 받아서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자기에게 참 실력있는 그런 믿음이 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 읽고 또 다른 사람에게 성경 말씀을 가르쳐 줌을 받고 성신의 감화를 받아서 그 사람이 믿는 것이지마는 이것만 너희 그 믿음가지고는 그 믿음이 온전하지를 못합니다. 자기가 이 신구약 성경에 하나님이 계약해 놓으신 이 계약을 보고 이 계약대로 이행을 해보면 '아, 하나님이 참으로 계시는구나' 이미 이행하기 전에도 계신줄 알고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이래 했지마는 자기가 하나님이 계약으로 선포해주신 이 법칙대로 자기가 해보고 난 다음에야 참으로 하나님은 계약의 하나님이로구나 하는 것을 자기가 안다는 것입니다
23절에 "열왕은 네 양부가 되며" 그말은 요새는 모두 대통령 제도라서 왕 그 제도가 별로 없지마는 대통령이나 왕이나 그 백성 그 나라에 정권을 잡고 있는 것은 같습니다. 이리 저리 갈아서 하는 그것이 다르지 그때에 그 권세 잡은 것은 좀 차이는 있지마는 같습니다.
"열왕은 네 양부가 되며" 양부는 어떤것이 양부인고 하니 자기 몸에서 나지 안한 그 사람을 그 법적으로 자기 아들을 삼아 놓고 자기의 피와는 상관도 없고 자기와는 상관도 없는 그런 사람이지마는 법적으로 자기 아들이라 이렇게 정했으면 호적상으로 그리되기 때문에 그 부모의 모든 재산은 그 몸에서 난 아들이나 조금도 다름이 없이 모든 재산을 다 상속받을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양자입니다.
그 아들이 아니면서 그 아들과 꼭같이 그에게 있는 재산을 자기가 상속받을 수 있는 그것이 양자요. 또 그 아버지가 양부입니다.
"열왕은" 그 말은 모든 왕은 모든 세상 권세잡은 자는 양부 된다. 권세 잡은 자의 모든 것은 결국은 하나님의 계약을 요대로 실생한 그자의 것이 된다. 그자에게 준다. 그 열왕이라면 한 왕을 말하는게 아니라 모든 왕을 다 가르쳐서 열왕이라.
이렇게 말한긴데 모든 권세 잡은 권세잡은 자들이 예수님 잘 믿는다고 그에게 모든 걸 줄리가 있습니까? 이러나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다 그 말이오.
하나님이 그렇게 하셔 가지고 의례히 여기에 무슨 권세가 생긴다. 저게 무슨 권세가 생긴다. 여기에 무슨 세력이 생긴다 생겼다고 하면 두말할 것 없이 그것은 하나님의 계약을 이행하는 사람 그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기에 가르쳐 말합니다. "열왕은 네 양부가 되고" 그들은 너희를 좋아하지도 아니하고 또 너희가 거기에 속하지도 아니했고 그와 연결도 없고 그렇지마는 하나님이 모든 땅위에 있는 움직이는 이 모든 세력은 그의 만든 모든 것을 결국은 너 위해서 만들어서 네것이 되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하시겠다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열왕은 네 양부가 되고" 그 말이오. 양부. 양부가 됐으면 저희는 저 거지로 길가에 돌아다녔는데 당장에 우리 지방에서 제일 부자의 양자로 들어가지 안했느냐? 부자의 아들이 없어서 양자가 되지 안했느냐? 그러니까 부자의 것은 전부 회사 재산 뭐 농장 그 공장 그 전부 그 사람의 것이다.
왜 양자가 됐기 때문에 양자가 됐기 때문에 아무것이 그사람 그 양부 아니가 그말은 그 뭐이냐? 그 재산 그 전부가 그 사람의 것이 됐다 그말입니다.
열왕의 모든 것은 열왕은 너의 양부가 되고 열왕의 모든 것은 다 네것이 되어지도록 하나님이 하시겠다 그 말이오. 계약지키는 자에게 또 왕비는 네 유모가 되고 왕비는 임금과의 관계된 그 모든 여자들을 다 말하는데 그 왕 다음에는 그게 권세가 있는 것인데 내적으로 권세 외적으로는 남편은 외모적으로 바깥 주인이고 또 아내는 안에있는 내정 주인이고 하는 것처럼 그 모든 권세의 외부의 세력도 그러하고 내부의 세력은 네 유모가 될 것이며 네 유모는 이것은 제가 놓지 안한 아이인데 자기의 정성과 자기 진액을 다 그이에게 먹여서 기루는 것이 그것이 유모아닙니까? 유모는 자기가 놓지 안한 아이를 자기가 논거와 같이 자기 정성을 다 기울이고 자기 몸에서 나오는 진액인 그 젖을 다 먹이서 기루는 것이 그것이 유모 아닙니까? 그러면 내적 그 모든 세력의 전 움직임도 정성도 그에게 있는 모든 진액도 전부가 다 '하나님의 계약지키는 너를 위해서 하는 것이 되게 하였다'. 하나님이 이렇게 계약을 선포했습니다. "유모가 될것이며" 그들이 그렇게 모두다 위해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얼굴을 땅에 데고 네게 절하고 얼굴을 땅에데고 네게 절하고 그들이 이렇게 존대한다 그 말이오. 이렇게 존대하고 얼굴을 땅에 데고 절한다 자 있는 것 다 주지 얼굴을 땅에다 데고 이렇게 존대한다 말이오. 아무라도 주는 사람이 세력이 있지 받는 사람이 세력있습니까? 이렇지마는 하나님의 계약을 지켜서 하나님이 그것을 통하여서 성도에게 줄때에는 그것이 주고 또 얼굴을 땅에 데고 절한다. 존대한다 그 말이오. 존대한다. "얼굴을 땅에 데도 절하고 네 발에 티끌을 핱을 것이니" "네 발에 티끌을 핱을 것이니" 아 받는 사람은 주는 사람을 존귀히 여기지마는 주는 사람이야 받는 사람 그 불쌍하나 가련하게 여기지 그렇게 귀하게 여기겠습니까? 이런데 "네 발에 티끌 핱을 것이라" 네가 보기에 하도 두렵고 위대하고 존귀히 여기져서 땅에데고 절을 하고 또 이렇게 권세로 위엄스럽게 높히만 보는게 아니라 어떻게 보고 아름답고 좋고 귀하든지 "네발에 티끌을 핱을리라" 하나님의 계약을 지키는 자에게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상대해서 하는 자에게 이렇게 하겠다.
"그때야 네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이렇게까지 네가 계약을 지키면 이렇게까지 해내겠으니 그때는 참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고, 알지 못하심이 없고, 모든 것을 당신이 다 주권해 가지고 계시고, 계약지키는 자에게는 이렇게까지 해주시는구나. 그때야 네가 내가 누군줄 알지, 지금 뭐 성경 보고 설교 듣고 성신의 감화받고 이래 가지고 아무리 인정한다 해도 내가 네가 내계명 지키는 거기에 대해서 이렇게 계약한대로 해줌을 받고난 그뒤에는 네가 이렇게 실행하기 전에 인정하는거와는 아주 다르다 "그때야 네가 나를 계약하고 계약대로 이행하시는 하나님인줄 알리라" "네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됐느냐?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상대하는 자는 이렇게 실패가 없고 후회가 없고 천해지지 않는다. 나만 상대해서 살았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해서 준다 하는 그말입니다.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수치 당하지 안하는 그 반대는 뭐입니까? 존영하게 여김을 받지 존영하게 여김을 받지 못하는 자가 없으리라.
"존영하게 여김을 받지 못하는 자가 없으리라" 하는 말입니다. "존영하게 여김을 받지 못하는 자가 없으리라" 그러면 주님을 바라는 자가 어떤 자인데 주님을 바란다 그말은 주님만을 상대한다 그말입니다. 주님만을 상대한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당신에게 주권되어 있고 또 모든 것이 다 당신에게 속하고 당신의 것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을 상대해도 주를 바라보는 것이 어떤것이 여호와를 바라보는 것인가? 사람을 상대할 때에 주님에게는 잘하지마는 사람에게 잘할게 뭐있는가? 사람을 상대할 때에 이 사람이 주인이 하나님이시며 또 이 사람과 나와 서로 주고 받고 하는 말하는 여기에 하나님이 지금 참가하고 계시며 또 고대로 다 판정해 가지고 보응해 주신다.
이렇기 때문에 사람을 대해도 짐승을 대해도 일을 대해도 물건을 대해도 어데서 든지 하나님이 그 모든 것을 다 보시고 아시고 공평되게 처리하시기 때문에 어데가든지 눈으로 실금실금 그분을 쳐다보면서 그분의 얼굴 쳐다보면서 내가 이렇게 하는 일에 대해서는 이분이 상을 찡그리나 이분이 좋아하나 이분이 머리를 흔드나 이분이 참 고개를 끄덕 끄덕하나 어쩌나 이분만 보고 합니다. 의논하는 것도 처리하는 것도 그 피조물 그것을 상대해서 하지마는 그걸 서로 상관해서 상대하는 때도 이분의 눈초리를 보면서 이분 보면서 이분 보면서 한다 그 말이오.
이분 보면서 그것이 아무리 나를 천하것이 다 잘해줄라해도 이분이 안하면 헛일이요. 모든 피조물이 다 나를 어떻게 해 한다 할지라도 이분이 나를 위하면 그까짓거 소용이 없소.
이러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람에게 대한 일은 그 사람과 나와의 일대일의 관계기 때문에 내가 그 사람에게 이렇게 해야 그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해 주지 또 내가 그 사람에게 이렇게 방비를 해야되고 주의 해야되고 이렇게 꾀를 써야 되고 이렇게 모략을 써야 되겠고 이렇게 먼저 공격을 해야 되겠고 침략을 해야 되겠고 방어를 해야 되겠고 사람은 대할때는 사람깨리의 관계된 그 사람과의 관계 그것을 그 사람 내게 어떻게 하고 내가 그 사람 어떻게 하고 인인관계 이것을 알긴데 인인관계 가질때도 그 사람하고 이 사람이 좋아하겠나 싫어하겠나 이 사람 날해하겠나 위하겠나 이걸 보는게 아니라. 사람 상대할때도 주님이 그 둘이 상대할 때 요 위에 딱 계시면서 보고 있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하면 이분이 이 사람이 결국 나를 환영하고 좋게 하시겠느냐? 또 이분이 암만 내가 좋아도 그 사람하고 원수가 되게 하겠느냐? 인긴관계에도 이분에게 주권있는 줄 알고 그 껍데기는 그 사람하고 관계하지마는 그 사람하고 관계하는 것을 이분의 비유를 보면서 지금 갖다하고 있습니다. 물건을 상대할 때도 일을 처리할때에도 그것이 여호와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당신의 안면을 당신의 인정을 당신이 거기에대해서 어떻게 보응하실 그 보응을 바라보면서 이를 상대해서 이렇게 할때에 그 사람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그 사람은 어떤 피조물에게도 언제든지 어데서든지 그 사람은 자기에게 조그만치라도 해될일은 닥치지 않는다 천해질일은 닥치지 않는다. 전부가 다 양부같이 그 전부 가진 것이 다 그를 위해서 너를 위해서 하게되고 내적으로도 그 모든 것이 전진액이나 쏱는 것이 결국은 다 너위해서 하는 것이 되어지도록 하겠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네가 내가 선포해논 이 계약을 지켜서 내가 어데까지 해주나 계약을 지키면 열왕은 양부되고 왕비들은 유모가 되고 그들이 네게 대해서 땅에 대해서 절하고 그들이 네 발에 티끌을 핱고 이렇게까지 그러면 이 이상 존귀할게 없다 그 말이오. 이렇게 까지 할때에 그때에 참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행하시는 하나님이로구나 하는 것을 그때야 네가 조금 뭐 보고서 아 베드로가 고기잡은 것보고 '아이구 하나님이십니다'. 이랬지마는 고것도 고 하나가 되니까 고리 여겼다 말이오.
이러면 지키면 자꾸 되고 되고 이러니까 그렇게 여겨 여겨 마지막에는 하나님은 계약의 하나님이라는 인식이 하나 행하고 나면 다르고 둘행하고 나면 다르고 셋을 행하고 나면 다르고 점점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렇게 체험적으로 경험적으로 신앙생활하는 사람은 자꾸 벌이 꿀맛보고 난 다음에는 꿀을 취하러 가는 것이 데지 않고 죽을줄도 모르고 달라드는 것처럼 예수 믿어서 이렇게 하나 하나의 하나님께서 참 그 모든 것이 양부의 역할을 유모의 역할이 되어지도록 자기를 존귀히 여기고 또 아름답게 봐지는 이런 하나님의 역사를 자기가 받음으로 받는데 따라서 조금 받으면 조금 인정이 더 되지고 더 많이 받으면 더 인정이 되어지고 이래가지고 이렇게 받아가지고 난 다음에라야 비로서 날 여호와인줄 알것이다.
그러면 이 말은 네가 해봐라. 네가 이렇게 하리니 네가 나를 지금 안 믿고 천하게 여기지마는 이렇게 해보면 마지막에는 머리를 숙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계약은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이와같이 여기에까지 당신이 하시겠다는 것을 말씀하시면서 이렇게 할터이니까? 네가 그제야 나를 누군지 알리라 말씀하는 것입니다.그러기에 여호와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않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그러기에 우리는 의식주로 인한 희로애락이 안되야 돼. 하나님으로 인한 희로애락이 의식주 고락 그것이 조금도 침노하지 못하도록 되는 것이 우리가 승리요. 참 천천 금은보다 나은 말씀들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깊이 새기고 가지면 자기에게 영생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