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07 00:14
엘리 엘리 라마 사막다니
1987. 11. 25. 새벽 (수)
본문:출애굽기 19장 4절∼6절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
4절에 “나의 애굽 사람에게” 주님은 이 불택자 불신자도 다 주님의 사람들입니다. 택자나 불택자나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다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왜 이 말씀을 했는고 하니 사람에게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그러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이지마는 세상에 속한 불택자와 나와의 어떻게 하나님이 취급을 하신 그것을 우리가 잘 생각해야 합니다.
여기 19장에는 오순절에 대한 말씀인데 오순절은 그때는 십계명을 오순절에 받았고 오늘은 오순절 은혜가 사도행전 2장에 오순절 성령 강림하셔 가지고 그 성령 강림으로 인해서 신약 성경을 우리에게 기록해 주셨고, 또 그 성령으로 인하여 구약 모든 성경과 신약 성경을 다 깨닫게 해 주셨고, 또 이 성령이 사도들을 붙들고 교회을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교회 터가 된다고 그렇게 발표한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 도리를 읽는 것이라든지 깨닫는 것이라든지 또 성신의 감동을 우리가 받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어떤 준비가 돼야 되느냐 하는 그것을 여게 지금 말하고 있습니다.
그저 사람들이 일반 서적을 읽는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고 그런 마음과 모든 정신의 자세를 가지고 성경을 대하면 성경에 대한 깨달음이 생겨지지를 않습니다.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그러면 하나님께서 나를 일반인과 나와의 어떻게 하나님께서 구별을 하셨는가 구별 취급을 하셨는가 하는 그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내가 어떻게 예수 믿게 되었으며 나를 예수 믿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취급을 하셨으며, 또 그 다음에는 “독수리의 날개로 너를 업어서 구원했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 이 구원을 상하지 안하도록, 이 구원이 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가지고서 하나님이 작용하시고 섭리하신 그것을 우리가 자꾸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람을 지도할 때에 보면 ‘그 사람은 참’ 우리 생각으로서는 `그 사람에게는 그런 어려움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하는 그런 것 많이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그런 어려움이 없었으면 좋았겠는데 이렇게 보이는 일들도 있고 ‘또 그 사람은 신체적으로 그런 병이 안 들었으면 좋을 뻔했는데’ 그렇게 되는 일도 있고 또 어떨 때는 그 사람에게는 ‘그 사람이 병들거나 죽지 안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보이는 것 많은데 우리가 생각 못 할 변들이 많이 생겨집니다.
사람에게 대해서, 경제에 대해서, 시대에 대해서 이렇게 자기의 심령이 어두워서 깨닫지를 못하고 또 거게 대해서 생각지를 아니하기 때문에 깨닫지를 못하나 차차 심령이 밝아지면 자기가 무슨 자의식이 성장돼 가지고 무슨 이성 비판이 있을 때로부터가 아니고 이성 비판이 있기 전, 자기가 어려서 어머니 젖가슴에서 이렇게 닥친 일, 모든 자기의 움직인 움직임 그 모든 것을 미루어 생각을 할 때에, 다윗은 자기를 어머니의 태중에서 지을 때부터 자기에게 구별되어 있었던 것을 가르쳤고 또 느끼게 했습니다. 그래서 죄악 중에 났다고 하는 것을 말했습니다.
이래서, 믿는 사람들이 다 공통적으로 신앙 고백하는 것은 자기가 그 말 한 마디 들은 것, 말 한 마디 들은 것, 또 뭐 하나 구경한 것, 또 뭣 하나 충격 받은 것, 무슨 이런 인인 관계에 인연, 또 저런 인인 관계에 인연 그런 모든 것들을 낱낱이 다 생각하고 깨달을 때에 그 전부가 한 토막도 빈토막이 없이 자기를 예수 믿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섭리하셨다 하는 것을, 억지로 끌어다 붙이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확실한 것을 자기가 깨닫게 됩니다.
또 자기가 말 한 마디 들은 그런 것도 그 말을 어떤 사람은 백번 천번 들어도 모르는데 자기는 그 말 한 마디 들은 것이 자기에게 박혀 가지고 있고 기억돼 있어, 이래서 자기가 비록 학교에서나 이 세상 다른 학문에서 공부하지 안했으나 자기 구원 이루는 데에 또 자기가 하나님에게 쓰여지는 데에 필요한 모든 지식, 필요한 모든 단어, 필요한 모든 사건, 필요한 모든 형편, 인인 관계, 그런 모든 것을 다 주님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역사하셨다 하는 것을 그것을 확실히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말하기를 자기의 과거를 미루어 가지고 생각해서 ‘지나고 보니까 내게 접촉된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악한 사람도 선한 사람도, 어리석은 사람도 지혜로운 사람도, 좋은 일, 나쁜 일, 어려운 일, 뭐 놀라는 일, 겁나는 일, 그만 일어나는 그 모든 전부를 미루어 하나 하나 생각할 때에 그것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섭리하지 안한 것이 하나도 없다.’ 하는 것을 다 깨닫고 고백하는 것이 그것이 공통입니다. 전부입니다. 억지로 끌어다가 붙이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차차 차차 이렇게 장성해 가면서 ‘이 일은 왜 그때 있었던가? 이 말은 왜 들었던가? 아, 내가 이런 지식을 가졌는데 이 지식은 언제 주님이 나에게 주셨던가?’ 하나도 당신의 섭리로써 이루어지지 안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그러면 애굽 사람도 다 주님의 사람입니다. 다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이 만든 사람이요 먹이고 기르고 입히고 관리하고 애끼시고 하는 모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과 나와의 모든 관계되는 그 관계를 뒤에 깨닫고 보니까 그 모든 사람의 관계를 내 구원 위해서 다 하나님이 조정하시고 조절하시고 관리하셔서 내게 접한 말 한 마디도, 소리 한 마디도, 사건 하나도, 나와 직접 관련 있는 것, 관련 없는 것, 그저 구경만 한 것, 소문을 들은 것, 오다 가다 들은 것, 접촉된 것, 그 하나도 우연히 된 것이 아니고 그것이 전부 내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이 그렇게 섭리하셔서 모든 사람으로 내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이 섭리하셨다 하는 것을 그것을 우리가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그것을 나타내서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의 날개로 너를 업어” 그러면 만일 밑에 맹수가 많이 있든지 또 해할려고 하는 뭐 어떤 여러가지 종류들이 많이 있고 또 거게는 강도 있고 덜강도 있고 지면은 모든 것이 있다 할지라도 거게서 지면에서 데리고 끌고 올라 하면 굉장한 마찰로서 끌고 올 수가 없어. 애굽에서 인도해 낼 수가 없어.
인도해 내려면 그런 것들을 다, 그걸 안 죽이면 우리가 죽을 것이고 우리를 안 상하게 하려면 그걸 상하게 해야 할 것이고 이러니까 독수리의 날개로 이렇게 업어서, 공중 높이 업어서 이렇게 구원하니까 땅의 것들은 봐도 소용 없고, 방해할라 해도 소용 없고, 덤불이 있고 뭐 바다가 있고 강이 있어도 높은 산이 있어도 상관이 없어. 그것 전부 그것을 다 초월한 이 방편을 가지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니까 그것들도 하나도 상하지 안하고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역사하신 그 참 상상 못 할 그런 하나님의 지극한 그 사랑의 역사를 모형으로 표현해서 “독수리의 날개로 업어서 구원했다”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열 가지 재앙을 내려 가지고 한 그 열 가지 재앙을 연구해 보면 애굽 사람들도 하나도 상하지 안하도록 해서 어쨌든지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해방시켜 구원하려고 하시는 데에 방해되는 것만 방해하지 못하도록 다 막아서 그들도 상하지 안하고 그저 방해된 데 대해서 자기네들이 다른 것 때문에 방해할 수 없도록 그렇게 만들어 가지고서 했는데 그들이 아홉 번이나 듣지 안하고 마지막에 안 들을 때에는 할 수 없어서 장자 재앙으로써도, 다 전멸시키는, 그들이 해방 안 시켰으면 다 전멸시킵니다. 이런데 장자만 재앙을 내려 가지고서 그들이 장자가 이제 죽기 시작할 때에 그들이 못 견뎌서 거기서 회개를 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다 석방시켰습니다.
이래서 우리가 성경 도리를 깨닫는 데나 영감을 받는 데에는 내가 모든 사람을 접촉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 사람은 어떻게 취급했고 나는 어떻게 취급하셨는가 하는 그것을 다 미루어서 생각해 여게서 깨달음이 닥쳐진 이 현실 세상 일로 깨달아짐이 있어야 그 깨달아짐에 심령이 밝아져서, 그런 것을 깨달음으로 자기의 심령이 밝아져 가지고 그런 데서 차차 차차 밝아져 가지고서 밝아진 그 심령으로 성경을 깨달아야 깨닫게 되고 또 그보다 더 밝아질 때에 영감을 자기가 접촉하게 되고 접선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우리는 만드시는 것이 목적이요, 우리는 세상에다 깊이 파묻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우리는 세상에서 뽑아서 들어내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요, 우리는 땅에 속해서 뿌리 박게 하는 것이 아니고 땅에 속하지 못하게 땅에 뿌리 박지 못하고 하늘에 뿌리를 박도록 또 자기가 남에게 해를 당한 것은 하나님께서 다 보충해 주시지만 남에게 피해는 당할지라도 가해하지 안하도록, 또 피해는 당하되 썩어지고 없어질 그 모든, 오늘이라도 세상 떠나면 자기는 관련 없는 그런 것 다 썩어진 것을 피해받게 하고 썩지 안한 것은 피해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섭리하셨다.
그 하나님의 섭리를 연구하면 얼마든지 우리가 참 깨닫고 놀랠 만한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땅의 것을 위주로, 세상 것을 위주로, 육을 위주로, 자기를 위주로 이렇게, 현실을 위주로 이렇게 살도록 하나님이 환경과 주위에, 그걸 다른 말로 표시할라 하면 분위기라 할까, 분위기. 공기. 그 분위기. 분위기란 말은 그것도 또 하나의 묘한 표현인데, 공기. 공기와 같이, 공기가 보이지 안하나 꽉 싸고 있지 않습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이렇게 그 모든 분위기 전부를 다 조절할 때에 나로 하여금 하늘의 사람이 되도록, 또 세상에서 하늘로 소속이 되도록, 죄악에서 의로 소속이 되도록, 또 자기에게서 하나님에게 소속이 되도록,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사람을 전부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 또 그 다음에는 다른 사람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는 이 모든 것을 가르치고 느끼고 해서, 자기가 깨닫지 못할 때는 전체가 원망이요 불평이요, 예수 믿는 게 이게 전체가 망하는 것이고 이것 참 절단나는 것이고 백해 무익이다. 해만 있지 유익은 하나도 없다고 이렇게 생각할 수 있도록 되어지고, 깨닫고 보면 온 세상은 전부 나를 위해서 하나님이 관리하시고 섭리하셔서 나로 하여금 온전하고 구비하고 거룩한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이렇게 하신다 하는 요 면을 깨달아서 눈이 열리고 보면 하나님이 자기에게 섭리하시기 전에 자기가 깨닫습니다.
‘아, 이 사건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나에게 이렇게 이제 섭리를 하실 것이다.
이러면 다른 사람들이 예수 믿는 게 도로 화를 받고 도로 저주받는다 그렇게 생각을 할 것이다. 또 내가 이 길을 택해서 가면 저 미련한 길 간다, 저 예수 믿는 것들은 천치 바보다 이렇게 할 것이다.’ 왜?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을 우리의 소유로, 하나님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만들기 위해서, 깨끗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모든 것에 은혜를 베풀고 남에게 해를 끼치는 그 가해자가 되지 않고 시은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모든 면에,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니까 필요 없는 인물이 아니고 이제는 그와 정반대로 모든 사람에게 하나라도 유익이 되고 없어서는 안 될 그런 필요한 존재로 만들기 위해서 이렇게 하신 그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어릴 때에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섭리하시는 것이 전부 다 원망스러운 일이요, 불평스러운 일이요, 또 낙망될 수 있는 일이요, 예수 믿어 다시 말하면 어리게 말하면 예수 믿어 망했다 할 수 있는 모든 일로 환경들이 짜여 들어옵니다.
이것을 나중에 자기가 차차 차차 자라서 깨닫고 보면, 그런 가운데서 그래도 낙심도 할 수 없고, 이리 저리 끌어 가지고 믿는 세월을 자꾸 거쳐서 지내서 이래 오랜 세월을 지내고 보니까 ‘아, 이것이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참 사랑이요 그때 그 사건에서는 이 길이 제일 나에게 제일 좋은 방편이지 그보다 더 좋은 방편이 없었다’ 하는 것을 자기가 깨닫게 되고, 또 나중에 그것이 자라고 나면 하나님이 자기에게 섭리하시는 데에서, 섭리하시는 데 대해서 이해가 되는 것만이 아니고 이해되는 데에서, 섭리하시는 것이 자기에게 ‘참 이렇게 하나님이 나를 특대하시고 나를 이렇게 고차원에서 관리를 하시고 양육을 하시는구나’ 하는 걸 자기가 짐작을 할 수 있고, 그것이 장성하게 되면 자기에게 닥쳐지는 일에 대해서 ‘아, 하나님이 내게 대해서는 아마 이 건에 대해서는 이렇게 하실 것이다. 이 사람과는 이렇게 관계가 가져지게 할 것이다.’ 자기가 하나님의 뜻을 먼저 알아서 그렇게 될 것을 생각하고 또 그렇게 됐을 때에 놀래거나 이상한 일 당한 것으로서 다른 오해하지 안하고 거게 대해서 옳은 이해를 가지고 나중에 그게 장성하면 옳은 이해만 가지는 게 아니라 자기도 그와같이 되려고 노력을 해서 자기 노력과 하나님의 노력이 일치가 되어지는 그런 성장 단계에 자꾸 나아가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면에 눈을 뜨이려고 자꾸 애를 써서 이 면을 생각지 안하면 성경 도리는 깨닫지를 못합니다. 영감은 더욱 자기가 깨닫지를 못합니다. 여게서 깨달아서 말하는 것을 듣든지 안 듣든지 자꾸 설교해 주고 말해 주지만 듣는 사람이 처음에는 아주 맛없는 말로, 소용 없는 말로, 잔소리로 이렇게 듣고 차차 눈이 열려지면 ‘이는 하늘의 음성이다, 이는 참으로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해 주신다.’ 하는 것인 것을 차차 차차 알아서 모든 비판도 평가도 거게 대한 자기의 이룰 대책의 모든 준비도 다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땅에 속한 사람과 하늘에 속한 사람들의 그 모든 비판과 평가와 소욕과 또 계획이 다 다르고 행위가 달라지고 사람이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시간이 많이 지나갔는데. 이 말을 했는데,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을” “어떻게 행하였음을” 그러면 어떻게 행했다 말이요? 인인 관계에서 내게는 땅의 것을 버리고 하늘의 것을 눈뜨도록 만들었고, 땅에서 정이 떨어지고 하늘에 정이 붙도록 했고, 나로 하여금 모든 세상에 매인 줄이 끊어졌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줄이 매여졌고, 자기를 점점 하늘의 것으로써 변화를 시키고, 또 깊은 데에서, 나는 그에게 가해를 못하게 하고 피해를 받게 하고 나는 그이에게 은혜를 끼치도록 이렇게, 내가 한 게 아니고 억지로 그렇게 되어지도록 이렇게 섭리하셨다.
“어떻게 행했음을” 이 말을 했는데, ○○○장로님, 무슨 말인지 좀 이해가 됩니까? 이해가 됩니까? 뭣인지 모르겠습니까? ○○○목사님? 이게 조금 이해가 됩니까? 아마 좀 그총중에 낫게 이해가 될 것 같애. ○○○목사는 이해가 되겠지.
요것을 자꾸 생각하면 알게 됩니다.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을” ‘인인 관계에 대해서 왜 나는 이럴까? 예수 믿기 시작했는데 왜 내게는 이럴까?’ ‘이럴까?' 했는데 나중에는 가 가지고서 ‘나에게 어떻게 이렇게 참 은혜를 베푸셨습니까?’ 이러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떻게 나를 버리셨나이까? 나를 어찌 버리셨나이까?” 이러는데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사람들이 해석하기를 ‘주님이 십자가 못박히게 되니까 참 처음에는 각오도 하고 결심도 하고 이렇게 했지만 정작 십자가에 못박히실 그 일을 척 닥치고 보니까 너무 어려움이 돼서, 너무 어렵고 고통이 심해서 다 원망스러운 말이 나왔고 불평스러운 말이 나왔다. 나한테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습니까? 이렇게 했다.’ 하는 것으로써 이 주석돼 가지고 있는 것이 모든 전주석입니다, 전주석. 내가 칼빈 주석은 못 봤는데 다른 주석들은 내가 보는 거는 다 그래 했는데 ○○○선생 어데 있노? 오늘 칼빈 주석 가 봐.
거기 가서 어떻게 거게 대해서 말했는가? 다 이런데 실은 “어떻게” 하는 것을 당신에게 해 되게 해서 이렇게 ‘어떻게 나한테 이렇게 이 참ㅡ그렇게는 아니지마는 극단으로 나가면ㅡ나에게 이와 같이 무정하게 잔인하게 이렇게 나를 상하게 이렇게 할 수 있습니까’ 이런 것으로 다른 사람은 다 깨달았는데, 바로 깨달은 사람들은, 주님은 ‘아버지여 내가 무엇이건데 이렇게 나에게 큰 대우를 해 주십니까? 나에게 이렇게 위하게 유익되게 이렇게 좋게 나를 위해서 이렇게 참 측량 못할 나를 대우를 해 주십니까?’ 감사해서 말하는데 그걸 깨닫지 못하면 불평하게 말했어.
해석을 하기를, 주님은 그렇게 여기지 안하고 감사하게, 말할 수 없는 감사해서 지금 말씀하고 기뻐서 말씀한 것인데 사람들은 ‘불평스러워서 주님이 원청 고난이 심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래 해석을 해. 그러면 예수님은 실패야. 그것은 원망은 죄라. 죄 지었는데 무슨 구주가 되겠소? 그러나 거기 대해서 깊이 생각지 안했기 때문에 이랬는데 이것은 지금 아마 차차 공통이 돼 갈 것입니다.
이렇게 이 말한 이것은 자기네들이 반대했지마는 차차 생각하면 ‘그 잘못된 해석이 아니고 그 해석이 옳다’ 하는 것을, 옳은 것은 결국은 구석에서 말하고 귀에 대고 말해도 그것이 세계에 퍼쳐 나갑니다. 그걸 왜? 옳게 옳은 것을 그 사람에게 알려 주신 이가 성령이시기 때문에 성령님이 전달하시니까 인인 전달이 안 돼도 다 전달이 돼 나갑니다. 하나가 발표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쭉 전달이 돼 나가는 것이오.
이와 마찬가지로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을 너희가 알 것이라” 하는 이것을 자기가 생각하면 주님이 나를 위해서 이 세상 사람들을 어떻게 취급하셨다 하는 것을 알게 되지만 자기가 생각해서 깨닫지 못하게 되면 예수 믿는 것은 망하는 길이다 다 이렇게 하는 것이 그게 공통이라 그말이오.
자기는 큰 축복받고 ‘나 예수 믿다가 손해봤다’ 이래 하고, 이제 깨닫고 나면은 자기는 ‘아, 나에게 이렇게 큰 축복을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 부딪혀지는 모든 인인 관계나 사물 관계나 그 모든 것이 내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섭리하시지 아니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어떤 성자는 깨닫고 ‘나는 주님의 사랑의 태 속에 들었다’ 아이가 어머니 태 속에 들었을 때에는 뭐 위에도 아래도 옆에도 전체가 어머니인 것같이 이제 자기는 깨닫고 보니까 ‘전체가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사랑의 태 속에서 나는 자라고 있다. 하나님 안에서 자라고 있다 나를 태 속에서 이런 요소 저런 요소 나를 기르고 계신다.’ 하는 것을 깨닫고 감사함을 드린 것입니다.
그러기에 독침이 와도 ‘이것은 주님의 사랑의 태라.’ 사랑 속에, 그게 주님의 사랑이라.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기르는 사랑이라. 독약 앞에도 고문 고형 그것도 나를 사랑하는 사랑이요 구원이라 하는 그것을 깨닫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요것을 생각해서 눈이 좀 뜨이기 시작하면 자꾸 뜨여서 이러는데, 평안 무사시에 생각해서 요것을 단단한 지식으로 가지고 있어야 환난 때 이렇게 될 때도 망령을 부려서 뒷발을 버투고 돌아서려고 애를 쓰지 안하지, 돌아서면 하나님께서 강제로 붙들되 뽈끈 붙들면 주무르면 뒈질 것이기 때문에 주물지도 안하고 이 물로 가지고 이래 멍클거려서 이 하는 것 모양으로 이렇게 하나님이 하셔 가지고서 나를 사랑하셨다 하는, 하나님이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을” 하는 이것도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이 들어 있고, “나를 독수리의 날개로 업어서” 하는 것도 우리가 생각하면, 그것 그렇지 않겠소? 땅에 있는 그뭐 어데, 강물을 그래, 땅으로 끌고 올라면 강물을 갈라뜨리든지 강물에 뭐 배를 모으든지 뭐이든지 해 가지고 와야 될 터이고 또 맹수가 있으면 맹수를 죽여 버리든지 그리 아니면 어짜든지 할 터인데 그것도 죽이지 안하고 올라 하면 독수리 날개로 위에 날아서 이래 공중으로 날아오니까 밑에 그 많은 것들이 있지마는 상하지 못한다 말이오.
그러면 이래 가지고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는데 밑에 뭐이 있는지 업혀 오는 그까짓 게 뭣 압니까? 아무것도 모르지. 아무것도 모르지만 거기서는 심히 험한 길 심한 맹수 심한 어려운 것들이 다 있는 그런 것을 하나님의 권능으로 이와같이 우리가 모르게 그런 가운데서 구출해 가지고서 우리를 인도해 내신 그것이 자라가면 차차 차차 알아지게 된다 그거요.
앞으로 계속할 터이니까 자꾸 좀 많이 읽으십시오.
반사 선생님들은 언제든지 공과는 나오면 그걸 외우도록 노력을 하고 외우고 명상해야 됩니다.
또 그리고 하루 삼십 분 기도는 어짜든지 놓으면 안 됩니다. 이 삼십 분 기도하라 말을 예사로 들었던 사람들은 앞으로 환난 때에 녹아지게 됩니다. 슬기 없는 다섯 처녀가 미리 기름 준비했으면 수월하게 준비할 건데 나중에 급한 꼴 봐 가지고 뛰어가 가지고 급하게 준비 할라하니 준비 뭣 됩니까? 준비도 되지 못하고 고생만 했지.
그것 모양으로, 그러기 때문에 회고의 영감은 가슴 치며 울게 되고, 지나가고 난 다음에 영감되는 것은 후회가 돼서 가슴 치면서 울게 되고, 현실 영감은 환난 당할 때에 두려워서 떨려서 못 견디고, 왜? 공산주의가 왔는데 ‘나는 예수 믿는 것 치워버리고 공산주의 되겠습니다.’ 하면 무슨 환난이 오겠소? 그러나 그렇지 못하고 진리대로 살라 하니까 그때 두려워 죽을 지경이라.
미래적 영감은 어찌 됩니까? 회고적 영감이 있고 현실 영감이 있고 앞으로 미래에 당긴 영감이 있는데 당긴 영감은 어찌 됩니까, 환난이 오면? 환난 전에 고통해. 미리 보니까, 미리 내다 보니까 환난 닥칠 때와 같은 그런 고통을 미리 해. 미리 하니까, 그때는 알아 봤자 발동해 봤자 소용 없지만 미리 하니까 그때 놀랄 걸 지금 놀라고, 그때에 급한 걸 지금 급하게 서둘고 그때에 큰 일이라는 것을 지금 큰 일인 줄 알고, 그때 죽는다는 것을 지금 죽는 것으로 미리 아니까 있는 힘을 다 준비해서 해 놓으니까 환난이 오면 그때 환난을 닥치지 안해.
환난이 오면 그 사람은 벌써 미래에 속해 살기 때문에 환난을 훌떡 넘어서 날아 넘어서, 환난이 와 다른 사람은 죽겠다고 야단 지기는데 그 사람은 한 자리에 있어도 죽겠다는 야단 그것이 없다 그거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