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을 이리가운데 보낸 두려움과 기쁨

 

1980. 12. 4. 목새벽

 

본문: 마태복음 10: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오늘 아침에 그만 늦잠을 자서 늦잠이 들어서 늦었습니다. 네 시반에  강집사님이인타폰 하는 소리를 듣고서 그래 깼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많이  늦었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내니’내가 하는 것은 주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구속하신 주님이 내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주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를’ 하는 너희를 하는 너희는 구속 받은 우리 모든 성도들을 다 말씀 하신  것입니다. 너희를 하는 너희 속에는 우리 믿는 사람들은 다 포함됐습니다.

어‘내가 너희를 보냄이’보냄이 하는 이 보낸다는 말은 어디 보낸다 말인가?  세상에 보낸다 말입니다. 구속을 하시 가지고 이 세상에서 한토막 살고 하늘나라  가도록 보낸다는 말씀입니다.

너희를 보냄이 세상에서 살도록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에 보냄과 같도다. 양이  제일 무서워 하고 양을 또 만나는 대로 잡아 먹는, 이 양을 잘 잡아 먹는 아주 양  잡아 먹기를 좋아 하는 이이리 속에이리때 속에 보내는 거와 같다 말씀했습니다.

그 말은 제일 무서운, 제일 무섭고 두렵고 염려 속에 보내는 거와 같다. 염려 속에  보낸다 그말이요.한토막 세상살이를 하도록 하는 데에 이 한토막 세상살이가 제일  근심 속에서 살도록 하나님이하시고 제일 고통 속에, 걱정 속에서, 염려 속에서,  두려움 속에서, 또 위험 속에서 살도록 보낸다 그말이요. ‘양을 이리 가운데에  보내는 거와 같다’너희들을 이 짧은 세상살이지만은 세상살이를 주님이  시키는데 세상살이를 어떻게 시키시는가? 아주 등 따시고 배 부르고 평안하고  염려없이 그런 세상살이를 하도록 보내는 것이 아니다.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는  거와 같은 이런 세상살이를 하도록 보낸다 .

그러면 제일 염려되고, 제일 무섭고, 제일 근심되고, 제일 고통스럽고, 참 제일  의로운 뭐 재미나 정이나 하는 그런 거는 하나도 붙지 않는 그런 세상살이를  하도록 보낸다 그말이요. 양을 이리 가운데에 보내는 거와 같으니까 우리 생활은  그렇다 그말입니다.

그런데‘보냄과 같다’어 그러면 우리 믿는 사람은 또 그런 고통 속에서 이 살면  천국 가는 준비가 잘 되느냐? 아니라 그게요. 또 성경에 말하기를 어‘모든  염려를 근심을 두려움을 고통을 다 주께 맡겨버리라’ ‘주께  맡겨버리라’그러면 주께 모든 걸 다 주님에게 맞겨 버렸으니까 제게 하나도  없다 그말이요. 하나도 없다. 또 그다음에 말씀하시기를 ‘기뻐해라.

기뻐해라.’이러니까 우리 믿는 사람의 생활은 일계단이 기쁘고 멋모르고  기쁨니다. 예수 믿는다고 시작할 때에 믿으면 하나님이아버지되지. 하늘나라의  소망이 있지. 영생이 있지. 어짠지 택함을 입은 사람들은 예수 믿으면 기쁩니다.

뭐 어찌 기쁘다고 해석할 것 없이 예수 믿는 사람은 처음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 처음에는 기뻐요. 예수 믿기 시작 할 때에 기쁘지 않는 사람도 혹  있겠지만은 억지로 끌려서 나오는 그 사람들은 아직까지 예수 믿는 사람 아니요.

어짜든지 예수 믿기 시작된 사람은 처음에 기쁨니다. 예수 믿음면서 마음에  어쩐지 예수 믿기 시작하고 난 다음에 예수 믿으니까 처음에 기뻐요. 예수님 믿기  시작하고 나서 처음에 기쁜꼴 맛본 사람 손 들어 봅시다. 예수 믿기 시작할 때에  기쁜 것 예수 믿은데 기쁜 것 맛 안 본 사람 있습니까? 안효일씨는 안 봤어. 안  본 사람 말고 본 사람 손 들어 봐요. 아직 못 본 사람은 저 가운데 저 몇 사람 못  본 모양이네.

에 저 누고 저 갖다가 보자 저 사람 아직까지 예수를 믿어도 맛을 못 본  모양인데. 저 누고 보자 저 뭐고? 저 길천 교회서 온 사람 아니가? 구선생 뒤에  누라? 새로 나온 사람인가? 웅길씨 아들이가? 머리를 들어봐. 머리 들어봐.

그누요? 응. 웅길씨 아들이지. 응. 맞았어? 누라? 맞아. 또 이쪽에는 누라요?  이쪽에 또 머리 들어봐. 옳지. 예수 믿어 재미 못 봤어. 처음에 믿을 때 어짠지  기쁨니다. 저 모든 사람이 다 예수 믿기 시작할 때에 뭐인지 모르고 그만 기쁘요.

응 게그라다가 참 세상에서 예수를 믿을라고 하니 이리 속에 사는 것 같이  고통스럽습니다. 고통을 만나게 됩니다. 또 그라고 난 다음에어떤 일이 있는고  하니 평안합니다. 그 모든 어려움이 다 올라가고 물러가고 없어집니다. 그라고  난다음에는 이제 기쁘고 즐겁습니다. ‘너희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억지로 기쁘게 여기는기 아니라 기쁘다 이기요. 억지로 기쁘게 여기는기  아니라 기뻐. 왜?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게 버린 그 다음에 기쁜 것입니다.

어 그런데 우리 교인들은 처음에 예수 믿어 기쁜 그게 있었고 기쁘고 난 다음에  양을 이리 가운데에 보낸 거와 같은 이리 속 생활이라 하는 이런 생활을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 아니냐 그렇게 생각합니다. 예수 믿으면서  걱정되는 세상살이, 고통 되는 세상살이, 두려운 세상살이 이런 이리 가운데에 그  사는 거와 같은 이런 형편을 모두 만나지 못하고 그만 처음에 기뻣던 기쁨도  사라지고 처음에 기뻔던 기쁨도 사라지고 어려운 세상살이 여게는 도달하지를  안했고 이러니까 중간에 어리벙벙하게 그저 믿는동 만동 이래 가지고 예수  믿어야 아무 재미도 없고, 행여나 부자나 될런가 뭐이 될란가 해서 그런 것만  바라고 예수를 믿지만은서도 또 그것도 잘 안됩니다. 새술을 헌부대에 넣으면  헌무대가 좋을 줄 알아도 째져 버립니다. 터져 버리요.

헌부대는 이 세상인데 예수 믿어서 세상 성공 하리라 생각하면 믿을수록 세상이  박살이 나는 것입니다. 그 새술은 예수님 믿는 이 도리요. 헌술은 헌부대는  세상이요. 예수 믿는 도리는 세상살이를 박살 내는 것이 예수 믿는 도리입니다.

새술은 새부대에 넣어야지 예수 믿는 도리는 새부대 저 천국에 필요 있는  도리입니다. 천국이 잘되는 도리요.

이러니까 예수 믿는 것은 전부 세상을 다 죽여버리고 없애 버리는 것이요. 자기도  죽이지 세상도 죽이지. 다 세상을 버리라 자기 목숨도 버리라 다 버리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다 절단나는 기라. 이제 이라고 나면 그 다음에 세상에서도 참  좋은 세상이 자기 세상이 됩니다. 세상을 버리고 나니까 하나님이주시는 세상이  있는데 어떨 때는 돈 많은 세상도 주고, 어떨 때는 가난한 세상도 주고, 어떨 때는  영광스러운 세상도 주고, 어떨 때는 억울함을 당하는 그런 세상도 주고, 어떨 때는  참 위험천만한 그런 세상도 주시고 또 평안한 세상도 줍니다.

그러면 이런 것 저런 것 바꿔줍니다. 바꿔 줄 때에 아무리 바꿔주도 자기라는  사람이 문제 해결하는 열쇠를 가졌기 때문에 해결을 하는고로 어떤 것을 줘도  기쁩니다. 바울이 나는 부한데 처할 줄도 알고 가난한 데 처할 줄도 안다. 왜  이거는 지족하는 그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기쁩니다. 지족하는 은혜라니 이것도  저것도 자기에게 꼭 같은 선물이요 필요 있는 가치가 있고 이용하면은 그 결과  맺는 것도 꼭 같은 결과를 맺을 수 있는 이런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고 자기는  눈에 보이는 것 조건이 좋다 하는 그 조건 가지고 무엇을 하는 것 아니라 그  조건은 이러나 저러나 자기에게는 시험되는 유익되도록 시험되게 하시는 것이고  그것만은 자기에게 시험뿐이지잘못 이용하면 망하는 것 뿐이고 잘 이용하면 모두  다 복될 것 뿐인데 그것 가지고서 조건이 좋다고 좋으니까 '나는 성공하겠다 .이  조건이 나쁘니까 안 되겠다.' 그게 아니고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능치  못할 것이 없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능치 못할 것이 없다.' 이제  주님으로 자기의 모둔 자본을 삼으니까 이분은 여게도 아주 충만한 자본이요  남는 자본이요, 저게도 남는 자본이요 이 주님이 주시는 이능력 가지고 모든 것을  하니까 이 자본은 뭐 어디든지부족이 없어.

자기 혼자 아주 외로운 대해 속에 빠져 가지고 있을 때도 그 자본은 넉넉하고  공산주의자들에게 붙들려서 저 혼자 감옥 속에 들어가 있어도 아무도 따라오지  못하지만 이 자본은 거게도 따라와 거게도 상관이 없어. 이 감옥이나 바다나  그까짖거 상관 없이 그 주님이 내게 주시는 그 자본인 이 자본은 어디든지  충만해 또 무엇에든지 충만해 안 될 기 없어. 이 자본을 잡았기 때문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능치 못할 것이 없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능치 못할 것이  없다. 과거에는 번역을 그래 했는데 요새 번역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이렇게번역을 했는데좀 믿음이 어릴 때에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하면 그  번역보다 능치 못할 것이 없다 하는 그 번역이 더 맛이 있습니다.

이런데바울이 이걸 잡았기 때문에 그는 언제든지 안심합니다.우리 믿는 사람이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은혜로 어짠지 기쁩니다. 이래서 처음 것을 계속  가지라 하는 그 말씀을 여러번 말씀했습니다. 기쁜데 고 기쁨을 가지고 이제  기쁘니까 예수 믿는 일을 그대로 할라고 하면 당장 어려움이 닥칩니다. 경제 면에  대해서도 어려움이 닥치요. 내가 이제까지 하고 있던 그 사업은 이것은 하나님의  법칙에 위반되는 사업이면 버리야 되겠고  또 내가 사업하던 그 방편을 살펴 보니까 그 방편이 하나님 법칙에 위반되는 그  방편도 또 버려야 되겠고 또 자기가 모아 논 걸 보니까 모아 논 그것도 또 그  법칙에 위반되니까 그것도 버려야 되겠고 자기가 이제까지 좋아하던 그것도 또  보니까 버려야 되겠고 자기가 제일 싫어하고 미워하던 그것도 또 좋아해야  되니까 도 이것도 기가 차고 뭐 전부가 이리 가운데에 사는 거와 같이  그렇게어려워지는 그 일을 닥치게 됩니다. 왜 그것이 그런가?  그것은 과거에는 순전히 나를 멸망시키는 것만 내가 좋아 했고 멸망시키는 그  방편만 내가 갖다가 써먹었고 나를 멸망시킬 그런 것만 수두룩이 태산 같이 재  놓고 있었으니까 이제 깨닫고 보니 그런 것을 다 정리 해야 되니까 아무래도  사람이 그렇게 변화가 못되니 하나님 말씀을 보면 정리해야 되지만은서도 또  보면 필요하고 요긴하고 중요한 것이니 그것도 문제 또 정리할라고 하니까 모든  친구 모든 갖다가서 이웃 이가 다 저거 따라가니  또 싫어하니까 이것도 마찰, 제사 지내려 가는데 제사도 안 지낼라 하니까 이것도  마찰, 술 먹던 친구가 술 안 먹으라 하니까 이것도 마찰, 노름하던 사람이 노름 안  할라 하니까 깡패 노릇하던 것 깡패 노릇 안 할라 하니까 만나서 만날 들신 들신  거리면서 갖다가 이리 놀러 다니고 저리 놀러 다니고 하는데 그것도 안 할라  하니까 그 동무 만나면 쓰지 못할 이야기 아주 죄되는 그런 노름의 재미인데  그거 안 할라 하니 그것도 또 부부간도 사람에게서 오는 그 사업에서 오는 것  자기 소유에서 오는 것 자기가 희망했던 그 희망을 다 버리 버리게 된다 말이요.

자기 욕망에서 오는 것 이 전체가 다 참 이리 속 살이와 같은 그런 살이가 오는  것이 필연한 것입니다.

그게 왔는지 그것을 만났는지그것을 아직까지 만나지 안한 사람들이 많이 있지  않나 그저 그런 것 없이 이래 사는데 6.25 같은 그런 어려움이 되면 제가 그걸 안  버릴라 해도 그게 다 절단 나니까 이북에 있는 사람들 강제로 죽을 지경이니까  이북을 버리고 월남을 할라 하니까 욕심나는 것 짊어지고 오다가 골만 참 빠졌지  가져 오지도 못하고 오다가 그만 하나 내버리고 둘 내버리고 이래 버리고 저리  버리고 아나 안됐다 간추려서 가벼운 것만 가지고 가자이래 가지고 나중에는  몸둥이만 넘어 오면서도 목숨이나 살려 돌라고 이제 다 포기 했지요.

어 풍랑 만나면 배 안에 들었던 것 다 던지는 것처럼 이거는 제가 깨달아서  하나님의 법도대로 던지는 기 아니라 법도대로 안 던지고 있으니까 강제로  환경에 몰아쳐 가지고 제가 안 던지면 안 되도록 그렇게 던진다 이기요. 그렇게  환란 만난 사람들은 다 강제로 한번 갖다가서 이리 속 생활 같은 생활도 하게  되는데 그런 꼴도 못 봤지 그만 하나님의 법도만 안 지키고 제 욕심대로만 살면  아무 고통 없는 그런 살이를 하는 데서만 사는 사람은 불쌍합니다.

그 사람을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무엇이 오든지 그리 안하면 6.25 같은 뭐 그런 기  오든지 뭐이 하나 와야 구원이 되지지 안 오면 구원이 안 되지요. 스스로 버린  자는 스스로 주의 법도를 지킴으로 오는 자는 스스로 참 양이 이리떼에 주님이  보냄같이 주님의 법도 지키다가 그런 꼴 당했으니까 주님 때문에 그런 꼴 당했다  그말이요. 주님의 법도대로 했으니까 법도 때문에 그런 꼴 당했다 그말이요.

주님의 법도대로 했으니까 법도 때문에 당했으니 주님 때문에 당한 거지. 그 이런  데에 그것도 안하지, 하나님께서 강제로 환경을 통해서 되어지는 그런 일도 없지,  제가 이리 가운데에 주님이 보내서 이리 가운데에 가지도 안했지, 이리 가운데를  피해버렸지, 이리떼가 와 가지고 달라 들어서 그 꼴도 안됐지, 주님 막아 놓으니까  이리떼가 오지도 안했지, 제가 이리떼 속으로 들어 가지도 안했지 이리를 만나  보지도 안한 자 그자들이 많이 있지 않는가 염려가 됩니다.

또 양이 되지도 안한 것 양이 되지도 안하고 이리 맹수와 시랭이와 같은  우리들이었는데 모두 마귀의 대장이었는데마귀의 아주 직계 자식이었는데 이것이  변화되지 아니하고 그대로 있으니까 세상이 제 세상이지 거리낄 기 뭐 있습니까.

이리가 양으로 변하지를 안해서 이리 속 맛을 보지 못한 이런 사람들이 있지  않는지 또 이리 속에 들어 가지를 안해서 주님은 이리 속으로 보냈는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졸졸 행하다 보면은 이리 속에 들어가게 되는 것인데 말씀대로  행해야지 이리 속에 가라 해도 가야지 한 자국도 안 떼 놓고 있는데 이렇게  주님이 명령하신대로 걷지를 안해서 이리를 만나지 못한 그런 자들이 아닌지  주님이 아직까지는 옆에 다른 것 때문에 이리가 오지를 안해서 그래. 이리 맛을  보지 못한 이런 자들이 아닌지.

이러니까 변하지 안해서 이리떼가 이리를 겁나는 이리를 이리 속 생활을 이리  속에 경험과 체험을 하지 못한 사람이면 어서 변화가 되어야 되겠고, 양이 되야  되겠고, 중생이 되야 되겠고, 중생되지 안한 사람은 고통 없습니다. 중생 안 된  사람도 여게 옵니다. 아버지 어머니에게 끌려서 억지로 갖다가서 오기 싫은 것  억지로 오는 그런 사람들은 중생되지 안한 사람도 있는지 모릅니다. 어째든지  제가 예수를 믿고 싶어서 믿으니까 기쁨을 경험한 뭐인지 모르고 기쁘지요.

기쁨을 경험한 그 사람은 중생된 증거입니다. 그것이 그런데 중생된 사람은 이리 속에양의 양과 같은 이런 두려움을 만나야 될 터인데  이 두려움을 만나지 못한 사람은 중생된 사람이라도 제가 말씀대로 살지를  아니해서 이런 두려움을 만나지 못한 사람이든지 그러면 말씀대로 살아서 참  이리 속 살이와 같은 이런 세상살이를 제가 맛을 보고 제가 이 살이를 이 살이의  단계를 지나 가야 되고 이것이 한번 되면 없어지는 것 아니라 오늘도 또 이리  속에 살았다가 그 다음에 또 해결이 되어 기뻣다가 그러니까 믿는 사람의 살이는  이리 속 살이에서 목자의 품안에 앉기니까 기쁜 생활에서, 그러면 해결되면 다  되느냐 또 그 다음에 또 이리 생활 또 목자의 품안에 있는 애낀 편안 생활  두렵고 근심의 자국 하나 떼 놓고 그 다음에는 또 양의 목자의 품안에 안긴 또  기쁨 또 한자국 떼어 놓고 이렇게 환란과 평강으로 걸어가는 것이 믿는 사람의  생활이라 이기요.

이런데 제가 말씀대로 지키지 안해서 어려움이 오는 저 오늘은 보니 유태성  집사님이 눈을 또록 또록 떠 가지고 있는데 뭐 꽃시장에 뭐 회장이라 하나  사장이라 하나 이런데 꾀를 내 가지고서 '어짜든지주일날 아닌 날 회의를 해라.'  이러니까 그 사람들이 '안 된다 우리는 주일날 회의를 해야 된다. 그러면 회장 내  놔라.' 회장 내놓기는 싫고 이러니까 '그러면 주일날 할라면 우리 예배 시간에 나  예수 믿는 사람인데 예배 시간이 요렇고 요러니까 고 공간 시간을 해라.' 그  사람들이 공간 시간을 처음에는 좀 해주다가 나중에는 불평을 하고서 안 되겠다  이랄 기라 말이요. 이러면 나중에 가서 아이구 이래도 저래도 맞춰봐도 안 되겠고  '그저 어짤 수 있나 회의 하는 날은 그 날은 주일을 범하고 그러면 평안하지.'  주일을 갖다가서 안범 할라고 하면은 고것도 조그만한 고통이라도 고통이지. 왜  회장 떨어지니까. 사장인지 회장인지 회장 떨어지니까 고것도 고통일기라. 응고런  종류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면 회장이 떨어지게 되니까 고통을 고민하다가 회장을 에라 내놓으면 이제  그때는 갖다가서 억지로 내놓습니다. 억지로 내놓고 나면은 나중에 갖다가서  고통을 면해주는 수 있고 고통스러울 때에 보니까 옆에 목자가 있어. 자기를  사랑하는 목자가 있어요. 이러니까 물불을 헤지 아니하고 목자에게로 뛰어가서  목자의 품안에 안기니까 이 목자는 이리떼 그까짓거야 갖다가서 뭐 아무리  많아도 그거는 갖다가 상관 없는 그런 실력 있는 목자니까 목자 속에 안기  가지고는 어찌 됩니까.

자 이리 속에서 두려웠던 그 두려움이 없이 목자 속에 목자의 품안에 안긴 것과  그런 두려움 속에서 달려와 목자 속에 안긴 것과 목자 속에 안긴 그 평안함이  같겠습니까, 다르겠습니까? 다릅니까. 다릅니까. 그러면 어느 것이 더 좋겠습니까?  예 어느 기 더 좋겠소? 이리 속에 있다가 오니까 더 좋지요. 그렇지 안해요. 밖에  두려움이 있는데 속에 평안함을 얻으니 더 좋은 것입니다.

아 6.25 때 그때 용산교회서 절 청해서 그때 그 박집사님이 집에 도야지를 한  마리 먹여 놨는데 인민군들이 와 가지고 전부이 다 잡아 가는데 그것은 어떻게  숨기고 숨겨 가지고서 숨겨놨는데 이제는 숨길 수가 없는데 6.25가 지내서 고기도  한 번도 먹도 못하고 이랬으니까 이 도야지를 잡아서 하나님의 종들이나  대접해야 되겠다 하고서 이 역부러 와 가지고서 오라고 싸서 그 할 수 없어 안  갈라고 하니까 '이거는 조사님 대접하기로 했는데 내가 이거 뭐 얼마나 고생을  하고 이래 갖다가 숨긴 줄 압니까 보이소.'할 수 없어 갖다 말이요. 갖는데그날 가  가지고서 마을에는 안 되고 저 첩첩 산중에 거 가지고서 인민군 없는데 거 가  가지고서 그걸 잡아 가지고 그래먹고 그 거게서 앉았는데 내려다 보니까  저 인민군들이 갖다가서 뭐 수송하는 차가 왔다 갔다 하고 저래 하는데 거게  가니까 어떻게 평안한지. 밑에는 인민군이 막 어글어글 하면서 갖다가서 그저  교회 있어도 항상 살라 하면은 죽을 지경이고 주를 위해서 목숨 버리자 하고서  목숨 내 놓으면 평안하고, 내 놓으면 평안하고 살라 하면 고통스럽고 하는 그런  자리에 있다가 인민군이 없는 좀 산중에 가니까 어떻게 평안한지. 평소에 그렇츰  평안하면 산골자기에 살지 뭐 여 안와 살 것입니다. 그렇츰 평안했는데, 그거는  밑에 인민군이 있기 때문에 평안해.껍데기 두려움이 있으니까 속에 갖다가 두려움  없는데 가니까 그렇게 평안한 것입니다.

아 엘리야가 살렙다 과부의 집에 갖다가서 과부집이니까 조그만한 오두막이  아니겠소. 오두막의 집에 갖다가서 숨어 앉았는 그게 밖에 지금 갖다가 흉년이  들어서 죽을 지경이니까 가루통 털어서 갖다가 그 그저 뭐 아무것도 없이 떡만  꾸워 가지고 먹는 그것도 맛이 있었을 것이고 아주 그것이 아주 좋았을 것입니다.

밖에 그것이 없어지면 갖다가 그것 좋지 않소. 6.25 때는 땅굴 속에 들어 있어도  그 자리가 그렇게 평안하고 이랬는데 해방되고 나니 그 자리 가서 있을라 하면  못 있는 기라.이리 속에 있던 그것이 목자에게 안겨지면 없었던 거 보다 더  평안하고 기뻐진다 이기요.

 갖다가 이것이 예수 믿는 순서인데 이런 순서가 있는지 그 예수 믿어서 처음에  어짠지 기쁜 그 순서를 밟았다 하는데 그것은 밟았으면 고 다음에 이리 속  살이와 같은 이런 살이를 우리가 계속 만나야 되는데 이리 속 살이와 같은  외로움을 어려움을 만나고 어려움은 누구 때문에 만납니까? '내가 너희를 보내니'  예수님이 보내서 예수님 가라 하는데로 가다 보니까 그런 어려움 당했다 이기요  갖다가서. 말씀대로 삶으로 인해서 어려움을 당한 것 이것 무슨 갖다가 사업을  할라 해도 말씀대로 살라고 하니까 모두가 다 어려움이 뭐 봉착되서 고통입니다.

사람에게 대해서도 하나님 말씀대로 할라고 하니까 고통이요 고만 세상대로 척척  척척 처리해 버리면 문제 없는데 이걸 안 할라 하니까 고통이라 그말이요. 응어떤  사람이 와 가지고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내가 소문 들으니까 그 사람 예수 믿는  사람인데무슨 갖다가 그 일을 넉넉이 할 수 있는데 그 사람하고 서로 대립하지  안 할라고 화평을 누릴라고 이렇게하니까 그 사람이 대립을 하는데의례히 갖다가  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인데도 화평을 누릴라 하니까 그 사람이 대립을 해서게  두 사람이 대립하는데 한 사람에게는 가 가지고 화친하자고 이래 가지고 뭐 열  번 갔다가 뭐 뭐 몇 번 갔던가 일곱 번 갔던가 갔는데 한 사람한테는 덜 왔다  말이요. 이러니까 저기 좀 저 사람한테는 갖다가서 굽신거리기를 갖다가서 와서  열 번이나 굽신 거리고 나한테는 갖다가서 다섯 번 밖에는 안 굽신 거렸다 날  무시하나. 그게 예수 믿는 것이요.

예수만 아니면 그 당장 갖다가서 고만 솜씨대로 해버리면 절절 매고 그만 항복을  하지만은서도 그걸 못한다 그말이요 갖다가. 이러니까 그것도 고통이라.예수 믿는  사람이주님 때문에 당하는 그 고통 이 고통을 당해야 되는 것인데 이 고통이  있는지 없는지 주님 말씀하시지 안했소. 나와 내 도를 인해서 부모나 형제나  자매나 전토나 이런 것을 빼앗기면 손해 보면 이 손해를 보면 그게 고통이요. 그  고통 아니겠소. 그런 고통이 있는지.얼마나 주님의 뜻대로 살라 하니까 이제  부모하고도 절단이나도 부부하고도 부부하고도 그리 되지지, 다른 사람에게도  이렇게 되지, 뭐 죄인 중에 죄인으로 매장이 되지, 오해가 되지, 사람마다 별별  일이 꽉 찻다 말이요. 이래도 대번에 할 수 있지만은 그라면 주님 섭섭하고  법대로도 할 수 있고 경우대로도 할 수 있는데 그라면 주님이가라 하는대로 안  가는 기라 이기요 갖다가. 이러니까 주님 가는 대로 갈라고 하니까 이것이 다  절단나 버렸다 그말이요.

그러기에 주님 말씀 하시기를 '나와 내 도를 인해서 이런 것들을 다 이런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은 잃고 난 다음에 잃은 사람들은 내가 그에게 여러 번 혹  백 배도 주고 영생에 들어가지 못할 자가 없다' 요렇게 되는 요것이 영생  걸음이라 말이요. 그래야 영생인데 없어져서 그걸 그것을 갖다가 없애게 할  때에는 없애라 할 때에는 없애야 그게 영생이 되는 것인데 고기 아까운 사람은  주님을 내놓고 영생을 취하지 못하게 된다 이기요 갖다가.

영생을 취하고 보면 무궁한 것도 얻었을 뿐 아니라 세상것도 또 여러배 백 배도  얻어질 수 있어. 얻어지는 것은 거게 소망을 안 붙여야 얻어지지 소망되 가지고  붙어지는 것은 예수 믿는 하나님의 선물이 아닙니다. 그게야 오든지 가든지  주님의 뜻대로만 살라는 일편단심 요것만 하고 보니까 그것이 오요. 오면은 또  오는대로 살고 가면 가는대로 살고 와도 자기는 변하지 아니하고 가도 변하지  아니하고 그대로 사는 기 참 우리 생활인데 그거는 참 어렵습니다. 성경에는  보면은 배가 불러도 배가 부르지 않은 것 같이 배가 고파도 배가 고프지 않은 것  같이 거게에 피동되어 살지 안해야 될터인데 그것은 참 어렵다 이기요.

이러니까 그저 죄나 짓지 말고 배부르게 줄 때는 배부르게 먹고 또 배고플 때는  배고프면서 계명지키고 나는 그 수준에서 삽니다. 게고렇게는 좀 살기 어려워요.

이러니까 부요해도 부요가 오면은 부요 자리에서 하나님 말씀 어기지 아니하고  하나님 말씀대로만 살고 또 평안한 자리에서도 하나님 말씀대로만 살고 참  부요한 자리나, 평안한 자리나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그 자리에서 그 걸어갈 수  있는 힘이 있으면 좋겠는데그 자리에서는 걸어갈 힘이 없어. 사도 바울은 그  자리에서 걸어가는 걸음이 조금 보여지는데 다른 사도들은 그렇게 걸어가지  아니했어요. 다른 선지자들은 그래 간 사람 하나도 없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주신대로 고만 살면 됩니다. 이래서 양을 이리 속에 보냄과 같은 요 이리 속  세상살이를 이것을 하고 있는지 이 자국을 떼 놓는지 이 자국을 떼 놔서 고통을  당하고 고 다음에 그것을 주님에게 맞겨 주님이 해결해 주심으로 이제 평강이  되는  이러니까 나는 주의 말씀대로 주님의 말씀대로 내가 삶으로 고통을 내가  마련하고, 주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함으로서 주님의 은혜로서 평강을 마련해야  되고 이러니까 나는 뭐입니까? 십자가의 부활입니까, 죽는 것입니까? 나 할 일은  뭐입니까? 우리 할 일은 죽는 것 죽기만 하면은 그 다음에 부활은 누가  시킵니까? 하나님이 시키는 것.

이러니까 죽는 이기 뭐이냐? '양을 이리 속에 보냄과 같다' 이 말씀입니다. 이리  속에 들어가는 이것이 십자가 지는 기라. 이것이 죽는 기라. 우리 할 일은 이거  할 일 있어. 주님 때문에 고생 당하고 주님 때문에 어려움 당하는 것, 주님 때문에  근심 당하는 것, 주님 때문에 감옥에 들어 가는 것, 주님 때문에 죽음 당하는 것  이기 우리 할 일이요. 우리 할 일은 이것이라. 평상 우리 할 일은 이긴데 우리는  이것만 할거로 알고 이리 하면 그 다음에 삼일만에 부활시키는 것은 하나님께서  부활시키십니다.

다니엘이 하나님 말씀대로 기도하면 사자 구덩이 집어 넣는다 이랄 때에  다니엘은 사자 구덩이 던짐을 받아도 기도하는 것이 자기 할 일입니까, 사자  구덩이 살아 나오는 것이 자기 할 입니까? 뭐이 자기 할 일이요? 네 사자  구덩이에 던짐을 받아도 계명 지키는 것이 다니엘 할 일이지. 계명을 지킴으로  사자 구덩이 던짐받는 것이 그것이 다니엘 할 일이요. 다니엘이 그 일 하니까 그  이튿날 아침에보니까 사자의 발을 다 입을 다 봉해서 살아 나오는게 발도 사자  발도 봉하고 입도 봉하고 이래서 그 이튼날 살아 나오게 한 이는 제가 살아  나왔습니까, 하나님이요? 하나님이 그거 살려 나오게 했다 말이요. 그게  부활입니다.

그러니까 이거 말씀대로 살지 안해서 고통의 맛도 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  사람들을 인해서는 뭐이 와야 되겠소? 이리떼가 찾아 와야 되겠다 그말이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함으로 다른 사람은 이리데를 만나지 못했는데 저만 이리떼  만나는 이런 사람은 하나님으로 인해서 이리떼를 자기가 찾아 가서 만난  사람이요. 이렇게 하지 안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이리떼를 보내 가지고 만나는  사람입니다. 이리떼를 보내 가지고 만나는 사람으로서는 그 사람이 고통을 당하지  아니할 사람이 없어. 거게서 고통 당해 제가 찾아감으로 이리떼 만난 사람은 다  깨끗한 승리를 하게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하나님께서 이리떼를 그거 기도했소. 여게 나가 뭐 삼십 사십 오십 육십 칠십 된  사람들의 망령 부리는데 대해서는 이리떼가 와야 됩니다. 이리떼가 와야 되지만은  이 주일학교 학생들 그것은 아직까지 갖다가서 그게 그런 기름을 못 받았다  말이요.이북에 이런 주일학교가 없지 않습니까. 이것이 뭘 좀 배우고 알아야 뭘  갖다가서 순교 제물도 되지. 이러니까 시기상조 같으니까 좀 기달려서 이것들을  갖다가 신앙으로 길러 놓거들랑 그렇게 제물이 되도록 그렇게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하는 기도를 엊저녁에도 내가 했습니다.

엊저녁에 기도하고 가 가지고서 저녁을 안 먹어서 배가 고파서 또 소고기가 먹고  싶어서 그래 소고기를 갖다가 사람을 시키 사 가지고 꾸 가지고 그래 갖다가서  저녁을 먹는데 전화가 온다 이기요. 전화가 밥을 먹다가 내가 갖다가 내려가서  전화를 받으니까 '여보시요' 하니까 딱 끊어버리요. 또 좀 먹다 또 앉았으니 또  전화가 왔어. 또 내려가 가지고서 이제는 여보시요 하지 아니하고 뭐인고 싶어서  딱 들고 있으니까 뜩 끊어. 그래서 내 마음에는 아마 내가 엊저녁에 오늘 저녁에  설교한 것이 이거 마구 갖다가서 간첩들과 갖다가서 뺄갱이들에게  좌익들에게저거 대원수의 설교를 했으니까 그 대원수의 설교지 갖다가  여러분들은 여사로 여겨도 다 목숨 내놓고 하는 설교라 그말이요 갖다가. 목숨  내놓고 하는 설교라. 그 쉬운 설교가 아니라.

요새 보니까 동아일보는 볼기 없습니다. 그 사람들은 그저 야당지라 하는 그것만  지키는 사람들이지 야당이라는 것은 여당이 잘할 때는 칭찬해 주고 잘못 할 때는  갖다가서 반하고 하는 기 정상의 하나이지 되나 안 되나 잘할 때도 반대 못할  때도 반대 반대하는 것이 야당인 줄 야당이 썩었어 썩어. 음 정신 없이 갖다가  하고 있는 기라. 잘할 때는 잘한다 못할 때는 반대 이래야 되지 야당지라는 것만  생각하지 도무지 갖다가서 정평 정가가 없어요. 경향신문이라는 그 신문은 그게  제일 낫아 보니까 그것이 모든 것을 정평하고 정가 하고 있다 그말이요. 그래  내가 그 물었어.

이 경향신문 이것 참 이것 보니까 이거 아주 책임성 있고 또 생명 내놓고 이렇게  갖다가서 발간을 하는데 여게 어떤 인물이 있노. 유력한 인물이 있고 참 아주 참  참으로 이 신문의 본질을 아는 사람이 있는가 보다 해서 내가 물으니까 거게  편집국장이김영례라는 그 사람이 편집국장이라요. 그 사람 내가 아요. 김영례  장로입니다. 장로인데 그 사람이 삼일교회교인인데그 사람이날 잘 알고 그 전에는  날 자주 찾아 오고 내게 은혜도 받고 그렇게 아주 좋은 그때 집사인데저거  장모가 백집사입니다. 이랬는데 그 사람이편집국장이라 해. 아마 그 사람이 이걸  이런 기록 하지 않는가 그 좀 갖다가 세계관을 바로 보고 있어. 이 좌익관도 바로  보고 있고.

그 경향신문 그 경향신문 좀 보십시요. 동아일보 볼 필요가 없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갖다가 요새는 경향신문에 아주 명확하게 났어. 동아일보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주 백성들에게 생명 문제 어려운 것은 이만침 내고 소용 없는  것은 이만침 내고 경향신문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만침 내고 필요 없는 것은  요만침 내고 그래요. 모두 다 갖다가서 겁이 나 그런데 갖다가 그것을 어제 그  신문 어제 갖다가 설교하는 그것이아주 좌익들이 들으면 싫어하는 설교라.

이러니까 이거 어떤 사람이 듣고 가 가지고서 지금 갖다가서 나한테 무슨 협박  전화나 하나 또 그렇지 않으면 먼저 같은 그런 일을 꾸미나 이렇게  생각했다가내가 기도를 했소. 이기 뭐인지 그거 같으면 또 알게 해 주시고 또  갖다가 어떻게 태도를 취해야 될란지이걸 알게 해 주시옵소서.

그래서 기도하고 나니까 어떤 사람에게 전화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 여게 전화  해보자 그 사람에게 전화를 하니까 그 사람이 있다가서 저 다른 교회에서 아무리  전화를 해도 전화가 안된다고 나한테 전화가 왔습디다. 그래 내가 그리 전화를  해서 거 전화 하니까 거게서 전화를 두 번 했어. 두 번 해 가지고서 이 전화가  도무지 갖다가서 받지를 안해서 말았다 이라는데 그고기 갖다가서 내가 밥 먹다  내려 갔으니까 받지 않아서 받지 않아서 수화기를 났다 이라는데 내가 아마도  들고서 여보 할 때 그때 그 사람은 놨던 모양이라. 내가 들 때 그 사람은 놨어.

그러니까 여보 하는 그걸 못 들었어. 하나님이 고렇게 공작 하시요. 그래서 잠깐  동안 또 간첩 속에 들어 갔었습니다.

강당에서 부터 아마 이들이 나를 갖다가서 저거가 알면 남한에서는 없앨 것  중에는 갖다가서 첫째는 몰라도 갖다가서 몇째 중에는 갖다 '요걸 없애야 우리가  성공하지 요것 두고는 성공하기 어려울 기라' 하는 요걸 지금 깨달으면 나를  사형을 시키도 그냥 안 시킬 것이고 마구 이렇게 저렇게 찢어 가지고 지금  분해서 그럴 것이다.그러면 그때에 하나님이 도와 줘. 믿음을 지키면 참  영광되기는 영광된데 그 영광을 감당할런지 모르겠다.그걸 갖다가서 강당에서  기도를 하고서 그래 가 가지고 밥을 먹으라 하니까 그 소고기 먹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소고기를 갖다가서 가져오라고 한 근 사 가지고 오라고 그래서 갖다가서  그 또 밥도 좀 가져오라고 그래 가지고구워 가지고 아마 그 사람이 삼분지 일쯤  먹었으면 내가 삼분지 이쯤 먹었어. 어떻게 땡기는지 그래 먹고 그만 잤는데, 그만  잠을 갖다가서 폭 잤던 모양이라 갖다가서.

뭐 늦게 자서 네 시 반에 인타폰 해서 그래 내가 깼어. 그 안에 누가 인타폰  했는지 대개는 갖다가 그 거석하면 숙희집사님이 해 주는데 그 나도 일어나면  하고 또 거서 안하면 내가 하고 이래 하는데 그 했는지 안 했는지 몰라도 그만  아주 자고 네 시 반에 딱 일어놨어. 숙희 집사 있어 손 들어 봐. 인타폰 했어.

안했어. 안했답니다.아주 폭 자서 그만 아마 살이 찐것 같습니다.

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우리가 고요히 이 말씀을 듣고 나는 이리 속에 가지도 안한 자가 아닌가 그것도  가지도 안한 자는 회개 안해요. 가지 안한 자는 양심 안 써요. 가지 안한 자는  예수 믿는데 참 그 두려워 떨면서 주를 붙잡지 안한 사람은 그 사람은  가짜입니다. 말씀대로 살면 당장에 어려움 당해요. 안 당하지 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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