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06 15:35
양심의 화인
본문 : 딤전4:1-5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 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사람이 언제나 독립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지으실 때부터 의존해서 살도록 만들어 놓으셨고 또 능동으로 살지 아니하고 피동으로 살도록 그렇게 지어 놓으신 것이 사람입니다. 무엇이든지 의지하고 그것에게 순종을 해서 살도록 만들어진 것이 사람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저는 아무것도 의지하지 않고 제가 독립한다고 생각을 하고 또 아무것에게도 순종하지 안하고 저는 능동 비판으로 살고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면 그 사람은 어리석고 교만해서 전 생활이 다 멸망이 되고 맙니다.
사람이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그말은 차차 말세가 가까와올수록 하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예수 믿는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면 무엇에 속하고 무엇에게 순종하는 자가 되느냐 하면 미혹케 하는 영, 미혹케 하는 영이라는 이것은 내나 악령을 말합니다.
미혹케 하는, 꾀워 가지고 꾀워 가지고 그 사람을 망하게 하는 그 영, 악령, 또 귀신, 귀신은 미혹케 하는 영의 새끼입니다. 그 부하입니다. 미혹케 하는 영이라면 사탄이 되고 악령을 말하고 귀신이라면 거게 속한 모든 악령의 군졸들을 말합니다. 군대 마귀라, 귀신, 마귀, 악령, 사탄, 다 그것들은 같은 한 종류들인데 그것의 그 크고 작고, 능력이 크고 작고 한 그것을 구별해서 그렇게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사람이 믿음을 떠나면 믿는다 말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믿는 것은 하나님 바라보고 하나님 의존하는 것이요 또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이요,하나님 의지하고 바라보고 순종하는 그것이 아니면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받아서 움직이게 된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본구원은 얻어 가지고 이래 있지마는 악령과 귀신의 가르침으로 움직이는 생활이 얼마나 많은지 자기가 이 악령과 귀신의 가르침을 받고 있는 줄 알고 그것을 벗어날라고 애를 쓰고 받지 안 할라고 애를 쓸 그때가 바로 제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는 때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니 나는 안심이다' 하는 때는 벌써 미혹에 넘어갔습니다. 그만치 우리는 변하기를 잘 변하고 유혹을 잘 받고 요동하는 자로 하나님이 지으셨습니다.
그렇게 지으신 것은 재빨리 번개같이 움직이시는 하나님에게 번개 같이 피동되어서 짧은 그저 백 년 미만의 세월, 혹은 늦게 믿은 사람은 몇 해 미만의 세월, 그런 짧은 세월에 하나심에게 대한 모든 것을 배우고 속하고 해서, 그렇게 속성으로 성장해야 하니 가속도로 순웅성이 없으면 안 되기 때문에 좋은 목적으로 지음받았기 때문에 그대로 되면은, '뭐 같이 예수 믿었는데 제가 좀 예수를 잘 믿었다 할지라도 그렇게 차이 있겠나?' 하지마는 하늘과 땅이 차이 있는 것처럼 그떻게 사람과 사람의 차이가 무궁세계는 크게 있습니다. 있는 것을 고린도전서 15장에 똑똑히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하나님에게 의지하고 바라보고 순종하는 그 믿음 생활 그것을 하든치 그것만 안 하면 즉시 악령과 귀신의 가르침을, 인도함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것이 뭐 이 교체가 며칠 걸리는 게 아니고 이거는 참 찰나입니다. 자기가 좋은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 어떤 말을 시작챘는데 그 말을 하는 첫마디는 하나님에게 속하고 순종하는 말을 하고 그 다음 마디는 악령에 미혹받아서 악령에 순종으로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 마디 한 마디에서 바꾸어질 수 있고, 또 한 마디에서도 그말을 시작할 때는 하나님께 속했다가 그 한 마디, 그 마디 말하는 가운데에 악령으로 바꾸어 교체되기도 쉽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 역사를 가리켜서 '번개같은 역사라 에스겔 1장에 보면은 생물들이 번개같이 움직이매 따라서 성도들도 번개같이 움직인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대체로 말하면 '성도의 걸음은 송아지 걸음과 같이 발은 쪽발이고 다리는 곧아서 앞으로만 향해서 가더라 생물의 모형을 말하는 것이 기독자들이 얻는 생명의 모형을 하나의 그 형식을 가지고서 나타내 가르치신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 믿는 사람은 이 불교와 정반대입니다. 불교는-불교인들의 사진을 보면 아주 점잔하고 부동자세입니다. 부동자세로서 아주 점잔하고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 그런 자세지마는 예수 믿는 사람의 그 형상은 다릅니다. 잘 믿는 사람이면 그 사람이 밤송이같고 까끌까끌하고 지금이라도 뭐 말을 하고 있는 데도 그 사람의 모든 정신이나 모든 것이 수많은 안팎으로 역사하는 아주 바늘 끄트머리 같은, 바늘 끝같은 그런 예민하고 민활하고 참 무엇이 와서 붙을 수 없는 그런 날카로움으로서 그렇게 자라가는 것이 기독자들인 것입니다.
부처는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이렇게 참선에 들어가서 꿍 하고 있는 그것이지마는 기독자는 불교인의 그저 잠 죽고 있는 그 일 초 생활에 기독자들은 여러 수백 가지를 연구하고 안에서 싸웁니다.
겉에 싸움이 없을 때는 안에 싸움이 있고 안에 싸움이 없을 때는 겉에 싸움이 있고 한 가지 싸움만 하는 게 아니라 이 싸움도 하고 저 싸움도 하고 싸워서, 바다에 자기가 빠졌을 때에 물이 밀고 들어오는 그 빈틈없이 물이 자기에게 밀고 들어오는 거와 같이 이 세상에는 악령과 죄악이 빈틈없이 밀고 들어오는데 그 모든 것을 낱낱이 다 투쟁해서 승리해야 되는 그것이 기독자의 생애기 때문에 기독자의 생애는 다 이런 것입니다.
기독자는 점잔한 그런 중들 용모와 같지 많습니다. 대구에 어떤 이 름은 내가 말하지 않습니다. 최 목사님이라고 있었는데-그분이 가르칠 때에 그 용모가, 성도의 용모가 자기딴에는 아주 참 아름답고 덕이 있고 유순하고 이렇게 화평하고 이렇게 해서 그 묘사를 하는데 꼭 중 부처와 같은 그런 모형을 말하는 것을 들어봤습니다.
그래서 그분에게 사경회를 하는데 내가 거기 참석을 했는데 그것 하나가 좀 의문이 돼서 늘 거게서 배우면서 사경회 끝날 때까지 '도덕면은 잘 바로 말하는 것 같은데 신앙면이 바르지 안해서 이상하다 이랬는데 나중에 그분이 탈선돼서 돌아갔습니다. 대외 대외 내외전을, 안팎 전쟁을 그 사람은 모르고 관심 안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전쟁에 삼키워져서 마지막에는 완전히 마귀에게 삼켜져서 마귀의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아주 번개같이 우리 생각은 날뛰어야 됩니다. 그저 하나 생각하면 우욱 그대로 있는 게 아닙니다. 그걸 생각하면 따라서 악령의 화살이 이리도 들어오고 저리도 들어오고 계속 들어오고 있습니다. 뭐 하나 생각하면 그 생각 그것만 쭉 가지고 가면 갈 줄 알아도 그 생각을 가지는 데에 옆에서 수없는 그 침노자가 이모 저모에서 싸고 들어오기 때문에 그런 것을 방어해서 전투해야 되기 때문에 번개같이 움직인다 그렇게 번개로 묘사를 했습니다.
기독자는 부동 자세가 좋은 것 아니오. 또 가만히 그저 침묵한다고 입이 침묵한다고 그 속에 마음도 가만히 침묵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언제든지 부동적인 노력이 있어야 되고 번개같은 노력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기에 그 사람이 도덕면에, 기독교 도덕주의라는 것은 도덕면은 둔한 것입니다. 도덕면은 둔해서 느립니다. 그러기에 재빠르면 도덕면에는 제로가 됩니다. 느리기가 동하는 것이 아주 느리게 동해야 됩니다. 그러나 자기가 영감대로 사는 그 영감이라는 것은 얼마나 재빠 른지 모릅니다. 그 사람은 도덕을 지킨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그 도덕은 포위를 당했고 벌써 마귀에게 침노를 당했고 다 패전을 당했지만 저는 패전당한 줄도 모르고 살기 때문에 기독교 도덕주의는 눈이 어두워지고 모든 사물과 인간에 대한 관찰력이 둔해서 언제든지 패전하고도 승리한 줄로 그렇게 아는 자 되기 쉽습니다.
자기의 외부에 행동은 빠르지 안하지마는 내부의 공작은 심히 빨라야 됩니다.
그래서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 그말은 속에 내적인 역사는 재빠르고, 뭐이든지 보든지 듣든지 할 때에 그 시각이 빨라서 빨리 정확한 파악을 하고, 거게 대해서 움직이는 것은 그 시기와 환경과 모든 그 형편들을 봐서 천천히 움직이라 그말입니다.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맞아서 양심 화인 맞은 것이 어떤 것입니까? 양심이 무슨 화인을 맞습니까? 양심이 악습의 화인을 맞습니다. 양심을, 화인이란 건-쇠로 도장을 만들어 가지고 벌거이 달궈 가지고 꾹 찍으면 그게 타서 딱 박혀집니다.-그게 화인인데 그건 다시는 닦아야 닦아지지 안하고 박혀지는 것 인데, 그 양심이 화인 맞는다 그말은 그 사람이'어떤 것이든지 하나 그것을 자꾸 또 삐뚤어진 잘못된 것이라도 또 하고 하고 매일 연습하고 연습하고 또 그것을 거듭거듭 이래 하게 되면 그만 거게 대해서는 마비가 되고 그 면역성을 받아서 그것에 대해서는 죄감이 느껴지지 안하는 그것이 화인 맞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법에 아닌 것이라도 처음에 그걸 범할 때와 또 열 번 범하고 나면은 그 다음에 느끼는 감과 자기가 벌써 오랫 동안, 뭐 혹은 한 달, 두 달, 일 년, 이렇게 그게 아니지마는 범하게 되면 거게 대해서는 그만 그것이 자기에게는 합리화가 돼 버리고 아무런 죄감이 느껴지지 안하고 거게 대해서는 양심에 자극을 받지를 아니해야 될 때에 그면에 대한 양심은 벌써 그것에게 정복을 당해 가지고 그것의 양심이 돼 버렸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기가 모르고 범하는 죄가 자기에게 해가 제일 많다.
화인을 맞아서 그것은 잘못이라는 느낌이 자기딴에는 없 지마는 그게 없으니까 거게 대해서 주저하지도 안하고, 제재하지도 안하고, 조심하지도 안하고, 느끼지도 안하고 이렇기 때문에 그것으로 망해버리고 맙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 보면 분명히 그 면에 대해서는 그것이 잘못됐지마는 그에게는 습성화됐기 때문에 그것 잘못된 것을 그렇게 느끼지를 안합니다.
요새 우리 교회에 차타고 다니는 그것은 차타고 다니는 그 차를 타서 주일 범하는 것은 화인이 돼 가지고 화인 맞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만 차타고 다니는 데 대해서는 아무런 주일 범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생각이 되기 때문에 으례히 탈 줄 알고, 이제는 경쟁이 '다른 사람은 걸어가는데 나는 돈이 있어 차 타고 간다' '다른 사람은 버스타고 가는데 나는 택시타고 간다' 하는 이런 헛된 경쟁이 붜고, 양심이 그거 화인 맞아 그렇습니다.
그러면 그말 할 때에 또 어떤 사람은 '먼데서 차타고 오는 게 죄라고 하니까 이제는 가까운 교회 가야 되는구먼' 하는 그 사람이 '주일날 차타는 것이 죄니까 그것을 범하지 안하도록 기도하고 힘써서 노력해서 고치도록 해라'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것은 사랑하셔서 성신의 감동으로 그렇게 말씀해 주시는 것인데 거게 대한 반발입니다. 거게 대한 반발 이오. 벌써 그것은 그 사람에게 화인이 됐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양심이라는 가책을 받지 안하고 그것의 사람이 됐기 때문에 '주일에 차를 타지 말라'하니까.
주일날 차를 탐으로 자라고, 차를 탐으로 자라고 차를 탐으로 점점 강해지는 그놈이 들어서 지금 그 교훈에 대해서 반발하는 말입니다.
주일에 차를 탐으로 자라는 것은 뭣이 자랍니까? 한번 대답해 보 십시오.뭣이 자라요? 여기 중간반 반사들 한번 말해 봐. 뭐이 자라지? 녜 악습이라 했는데 그거는 죄가 자라는 것입니다. 죄가 자라는 것이오. 죄가 자꾸 자랍니다.
죄가 장성하면 뭣 낳는다 했소?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그거 죄가 자랍니다. 한 주일 자꾸 그래 가지고 자라니까 죄가 자라니까 나중에 가서는 그것 가지고 모든 주일을 범하게 됩니다.
또 모든 주일을 범하니 모든 하나님의 계명을 다 어겨도 가책 없이 어기게 됩니다.
그러나 자기가 그것이 하나님 앞에 범죄라는 계명을 어기는, 사계명을 어기는 것이라 하는 그것을 자기가 생각하고 주님 앞에 죄인 줄 알고 고해서 사함을 받고 또 그 죄를 범하지 안하도록 노력을 하고 이렇게 하면은 화인이 맞아지지 안하고 그 양심이 그면에 대해서 양심이 자꾸 역사를 하고 활동을 하고 노력을 하고 양심대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연결을 시켜서 새로와지기 때문에 화인이 안 됩니다. 그위에 그만 철판으로 꽉 덮어서, 무쇠로 덮어서 꼼짝 못 하게 죽여버리는 그런 일 하지 못하게 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주일날 공연히 다른 사람들 구원하기 위해서 내가 차타고 돌아다니고 그러면 뭐 내 구원에 절단나니까 그럴 필요가 있 느냐? 학생들 먼데 가서 차 태워 가지고 데리고 올 필요는 없겠다.' 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 있겠습니다. 그것도 차 타고 다니는 그 죄되는 그것을 의라고 칭찬해 주기를 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도 죄의 편에 선 사람이지 하나님의 편에 서서 사람을 구원할라는 사람은 아닙니다.
자기가 주일날 차를 타고 가면서도 '이거는 안 타야 되는데, 내가 이것을 차를 안 타면 거게를 가지는 못할 것이고 데리고 오지를 못할 것이고 이러니까 자, 차를 타면 사계명을 범하는 것이라, 내가 그 사람을 인도하지 안하면 그 사람이 예수 믿지 못해 가지고 멸망을 받는 것이라. 그러면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목숨까지 버리라고 했는데 내가 내게 그 거리끼는 주일 성수를 위해서 그 사람을 내비두면 그 사람이 멸망받으니까 내가 하나님 앞에서 그 증인 생활에는 어떠며 형제를 구원하는 사랑면에서는 어떻게 되느냐?' 이 면을 생각해서 둘을 비교해서 경중을 달다가 '내가 이것은 부득이 주일 온전히 지킴으로써 의에 대한 상은 얻지 못할지라도 내가 여게 대해서 이 죄가 나를 삼키는 일은 하지 못한다. 내가 주님 앞에 고해서 사함을 받아 이 죄가 나한테 왕노릇 하거나 내가 상이 없이 벌은 있을 리가 없다. 그러나 이 주일 지킨 상은 없어져도 형제를 구원하는 그 일을 위해서 내가 희생을 하니 그와 경중을 달면은 내가 부득이 이 사람에게 주일에 차를 타지 안하면 학생들이 멸망을 받고 구원의 도리를 듣지 못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또 이단으로 빠지든지, 그렇지 않으면 죄가운데 빠져서 멸망을 받든지, 그렇지 않으면 바로 가르침을 받지 못하는 데에서 구원을 이루지 못하니 이들의 구원을 위해서 내가 이렇게 주일을 지켜 상을 마련하지 못해도 주 앞에 고해서 사함은 받을 수 있는 이 사합을 받고 이 사람들 멸망을 구원해야 되겠다.' 요 마음을 가지고 제가 그 사람을 주일을 범하는 차를 타 가지고 와서 구원할라고 해야 되지 그것을 예사로 그러면 벌써 그 사람의 신앙 그 면의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마비돼 있기 때문에 가 봤자 영감도 없고 가 봤자 구원에 대한 그 역사는 없고 그냥 하나의 당파를 만드는 것뿐이지 다른 효력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물 속에 들어가 있는 빠져 있는 사람을 건져낼라고 할 때에 '이 물에 들어가면 잘못하면 여게 내가 같이 뭉쳐서 같이 물에 빠져 죽게 된다' 그것을 알고 안 빠져 죽을 준비를 하고 그런 위험성을 무릅쓰고 그를 구원하겠다는 그것을 가지고 해야 저도 살고 그 사람도 살릴 수가 있지, 그것을 예사롭게 뭐 으례히 들어가면 건져낼 수 있다는 것만 생각하고 죽는다는 건 생각지 아니하고 그 면만 생각하고 들어가면 둘이 다 죽을 수가 있는 것이고 그건 또 사랑도 아닙니다. 그거는 하나의 보통 일이지 자기 생명을 바쳐서 빠진 형제를 구출하는 그런 사랑의 뜨거움의 역사도 아니라 그거요.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먼 데서 차를 타고 오지 안하면 자기가 주일을 지킬 수 없는 그런 형편 주일 지키지 못하는 주일 범하는 것과 자기가 그 면을 하나님 앞에 죄인 줄 알고 주의 피에 고해서 사함을 받을 그 소망을 가지고, 또 자기가 기도함으로 차차 차차 그것이 단 번에는 안 되지마는 주일날 차타지 아니할 수 있는 그런 향방을 향해서 노력해 가는 그 노력을 가지고 주일에 차를 타고 을 것이요, '주일을 범하는 것보다 그게 낫다' 그래서 주일 범하는 거게다 비 해서는 차타고 오는 그 손해가 있어도 수지 계산을 맞추면 주일 지킨 그것이 낫기 때문에 그 평가를 가지고 와야 됩니다. 평가를 가지고, 차타고 오는 것도 평가를 가지고 '이것보다는 이게 좀 수입이 낫고 손해가 적다. 이것보다는 주님을 더 기쁘시게 하는 일이 된다.' 하는 그 수지 계산을 맞추고 알고, 잘못된 것은 주님 앞에 고해서 사함받는 그 사는 길도 자기가 알고, 벗어나는 그 길도 알고 이래 가지고 해야 되지 그렇지 안하고 하면은 안 됩니다.
저 가운데 되게 조는 분이있는데 저분이, 내가 여기 잘, 눈이 어두워서. 먼저 나한테 왔던 그분 아닌가? 그분 같으면 지금 아주 죽자살자 하고 들어야 될 터인데 들을 때에 졸고 하면 그 마귀 시험 이기지 못합니다. 그분 같으면 그 머리를 해 가지고 있는 것, 그분 아닌지 모르겠어. 그분 같으면 머리 하는 것도 그래 해서는 안 되고 아주 칼날같이 단정해서 그래야 사탄이 붙지를 못하고 승리하게 됩니다. 이 머리 이것도 유혹도 되고 이상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할 수 있으면 이 머리도 될 수 있는 대로 자주 동하지 안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 자기 입장이 달라. 남편이 하루 열 번 머리가 동해야 바람을 피우지 안할 남편에게는 열 번 동해야 돼요. 요랬다가 조랬다가, 그거 뭐이냐 하면 다른 사람에게 그리 하면 그 마음을 끄는 유혹이 되지마는 그걸 끌어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끌고 가는 데에.는 그래야 될 때에는 그렇게 하는 그것이 선도가 되고 유혹이 안 됩니다. 그러나 잘못하면 그 머리 해 가지고 있는 것도 자기에게 유익이 없고 손해가 돼.
그러기에 여게 남녀 반사들도 머리 해 가지고 있는 그것이 이상한 역할을 합니다. 저 불량자들이 이래 다니며 보면 이래 쭉 지나가면서 '저것은 침노할 가능성이 백의 일프로도 없다. 저건 침노할 가능성이 백의 한 십포로는 있다.
아, 저거는 침노하면은 가능성이 오십프로는 있다. 저거야 뭐 침노만 하면 다 될 수 있는 백프로 가능성이 있다.' 내나 그자들이 그자들이기 때문에 거기 대해서 채점을 잘 합니다. 그걸 보고 달라드요.
미물의 이 고기 같은 것도 아무나따나 뭐이든지 삼킬라고 달라들지 않습니다.
옆에 가서 슬그머니 지나가 보면서 길이도 같애보고 둥치도 같애보고 그 체격을 같애보고 또 오랫 동안 신강하면서 활동하는 것도 보고 속에 힘이 얼마나 있는가 보고 그러고 난 다음에 그것을 잡아 먹을라고 시작하는 것이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도 자기의 해 가지고 있는 의복이나 머리나 이게 다 보호색인데 그게 자기를 보호가 돼야 되지 머리든지 여게 분 칠하는 것이든지 옷이든지 그게 다 자기를 보호하는 보호색이 돼야 되지 그것이 자기를 원수가 삼킬 수 있는 피해의, 피해를 받는 그런 색깔이 되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내가 주일을 범하는 이것은 안 됐지마는 나를 위해 범하는 것 아니다. 내가 형제를 위해서 범해야 되겠고 범하는 이것도 범해도 형제 위해 범해도 이것도 없는 게 좋은데 부득이 이렇게 하는 데에는 내가 하나님 앞에 사함받고 안 할 수 없어 그렇다.' 이러니까 요걸 깨닫고 하면 그 사람의 자신이 점점 주일을 범할 수 없는 사람으로 자기 거주지가 그렇게 될 것이고 또 자기가 사람을 인도하는 구원도 차차 차차 주일 차타지 안할 수 있는 이 부근으로 힘을 써서 이 부근의 학생들이 자꾸 많아지게 될 것이고 또 그것이 안 될 때에는 그것보다는 조금 차를 타서 멀리 가도 이 많은 사람들 구원해야 되겠다 하는, 언제든지 하나님 앞에 죄냐 의냐, 또 경중이 어느 것이 중량이 무거우냐, 어느 것이 이해에 크냐 작으냐 이걸 수지 계산을 자꾸 하고서 모든 걸 해야 되지 그만 '주일날 차타는 것은 이것은 뭐 인간 구원하기 위해서 주일 지킬라 하는 거는 아무런 죄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은 법대로 세워놓고 또 거게 대한 지공한 하나님의 심판은 심판대로 세워놓고 그러고 난 다음에 자기는 해야 됩니다. 잘못하면 양심이 화인맞기 쉬워.
어떤 사람은 이 면에 대해서, 물질면에 대해서 양심에 화인이 맞아 가지고 있어. 그 면에 대해서는 아무런 감각이 없어. 거짓말 하는 데 대해서는 양심에 화인이 맞았어. 거짓말에 화인을 맞았기 때문에 거게 대해서는 그 사람이 무관심이라.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을 훼방하는 그 훼방에 화인을 맞았기 때문에 그 면에는 아무 관심이 없어. 양심이 한 군데 화인을 맞았으면 그것이 전면이 다 명랑하고 활발해야 되는데 아무리 건강해도 눈만 하나 병신이라도 그만 안 럽니다. 그 홰동에 지장이 있다 말이오. 눈썹만 병신돼도 그만 지장이 있어.
제가 어떤 한번, 오래 됐습니다. 열차를 타고 오는데 그 어떤 사람이 보니까 아주 안경을 썼는데 아주 잘생겼어. 이랬는데 뭐 유별스럽게 다른 사람들에게 자꾸 대접을 하고 이렇게 하고 하는 것이 좀 보기에 '이상하다. 저 사람이 저렇게 잘생긴 사람이 남한테 저렇게 봉사할라 하는 것이 무슨 봉사에 참 옳은 정신을 가지고 있으면 거기서 빛이 나올 건데 그것도 아니고 뭐인가 저자세로서 자기에게 꿀리는 게 있기 때문에 저렇게 하는 것이다' 그래 태도가 그래 보여서 유심히 살펴봤습니다. 살펴보니까 이거 눈썹이 하나도 없어요. 눈썹이 하나도 없어 나환자라 그말이오. 눈썹이 하나도 없는데 겉어머리는 아무 데 다른 표가 안 나요. 눈썹이 하나도 없어. 그래 놓으니까 그것 때문에 그 사람이 될 수 있는 대로 눈썹은 안 보일라고 하니까 사람 안 보이는 데로 저리 얼굴을 피하고 다른 사 람한테 얼굴을 빤빤스럽게 딱 나타내지를 못하고 이래 가지고 그만 기가 죽어지더라 그거요.
그 사람은 눈썹 그까짓 거야 뭐 밥을 만드요 옷을 만드요 그까짓 게 어데 보기나 하요? 무슨 소용 있소? 없지마는 달려 가지고 있는 눈썹 그것이지만 눈샙 하나 그것 때문에 온 전신이 제재를 받아 가지고 큰소리를 못 치고 그렇게 저자세로 죄지은 것 모양으로 굴해지더라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 양심도 그렇습니다. 양심이 어느 무엇으로써라도 그 양심이, 화인을 맞아 놓으면 그것 때문에 그 양심은 큰소리를 못 하고 활발스럽게 활동을 못 하게 됩니다.
어떤 자는 그런 화인, 또 어떤 자는 그만 남녀 이성의 칠계에 대한 화인을 맞아 가지고 있어. 그것도 그만 화인 맞으면 그것이 다른 사람은 놀라지마는 그 본인에게는 죄로 느끼지를 안하고 그만 보편화돼 버리고 맙니다. 이러기에 범죄가 보편화된 것을 가리켜서 양심에 화인 맞았다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외식함으로 껍데기만 자꾸 단속합니다. '거짓말 하는 자들이라' 저짓말 하는 자들이라 그러니까 그것 하나가 삐뚤어지면,그것 하나 삐뚤어졌다고 딴게 삐뚤어져요? 백에 하나가 삐뚤어졌다고 백이 다 삐뚤어질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어 없어? 백에 하나가 삐뚤어졌다고 백이 다 삐뚤어져요? 삐뚤어집니다. 비유컨대 항해를 하는 사람들이, 요새는 그것을 다 초월해서 다른 게 났지마는 바다를 가는 사람들이 나침판을 보고 지남침을 보고'요게는 요게서는 얼마 동안은 남쪽으로 향해야 된다 얼마 동안은 북쪽으로 향해야 된다.' 그 거리를 재어 가지고 그 거리에 맞춰서 배가 가는데 '여게는 어데서,여게서는 어디로 가야 된다.' 지남침 그것 가지고 자기가 운전을 하게 되는 것인데, 운전하게 되는 것인데 그만 지남침에 옆에 조그만한 못이 하나 박혀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 지남침이 바로 가리 킵니까 그리 당겨집니까? 못 박힌 데로 이 끄트머리가 그리 댕겨지요 바로 가요? 당겨집니다. 조금 당겨져.
조금 당겨졌지마는 그것이 호 리가 차이가 있는, 것이 나중에 천지 차이로 달라집니다.
이러니까 조금 틀렸는데 그것 때문에 자기는 하나님의 뜻을 명중하지 못하고 그것으로 인해서 자기는 전체가 삐뚤어진 길을 걸어서 암초에 부딪혀서 그 배는 침몰되는 그런 우려성이 있게 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어느 면 하나라도 양심에 화인을 맞아버리면 긋것 하나 가지고 그 양심은 자유롭게 활발스럽게 활동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 하나로 인해서 모든 것이 다 틀런다. 한 죄로 모든 것이 다 틀린다. 그러기 때문에 '죄가 장성한즉 하는 그 말은 하나가 삐뚤어지면 또 둘이 삐뚤어지고 셋이 삐뚤어지고 차차 차차 시간이 걸리지 마지막에는 다 삐뚤어지게 된다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거짓말 하는 자들이라.
그러니까 양심에 일면이 화인 맞으면 그 모든 것이 거짓말이 된다 그말은 하나님의 뜻에 명중하지 못한다 그 말이오. 하나님의 뜻에, 성경 말씀대로 한다고 해도 하나님 뜻에 명중하지는 못해. 삐뚤어져. 자기딴에는 다 맞다고 하지마는 하나님 뜻에 명중하지 못하고 삐뚤어져 버린다 그말이오. 거짓말 하는 자들이라 그말은 사람을, 거짓말은 뭐 있는 걸 있다 해도 거짓말 되고 있는 걸 없다 해도 거짓말 될 수 있어. 있는 걸 있다고, 있는 걸 없다고 해도 거짓말 안 될 수 있다 말이오. 거짓말에 기준을 어디다 두고 하느냐? 사람의 구원이 되고 안 되는 그것, 사람은 그 사람을 참 복되게 하는 것이면 그 사람에게 참말이요 바른 말이요 그 사람 망하게 하는 것이면 다 그 사람 해치는 말이기 때문에 해치는 말은 다 거짓말이라 그말이오. 이러니 거짓말 한다 그 말은 결국은 내가 인생을 해치는 그 결과를 맺는 말만 하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양심을 깨끗하게 자유해라. 양심을 자유시키고 양심을 가꾸어라 말하는 것입니다.
'거짓말 하는 자들이라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 터이나' 이거는 금욕 생활입니다. 금욕생활. 식물은 하나님의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마귀도 선하다 그말이오. 마귀도 하나님이 지었어. 마귀도 선합니다. 또 죄는,-이게 바깥에 나가면은 '봐라, 그러기 때문에 이단 아니가? 세상에 죄를 선하다 하는 그게 어데 있느냐? 죄는 하나님이 짓지 안하고 뭐 딴 자가 지은 줄 압니까? '죄는 마귀가 지었지' 마귀를 지은 이가 누군데? 마귀를 지은 이가 하나님이니까 하나님이 마귀 안 지었으면 죄 없지. 그러니까 자꾸 뿌리를 찾아서 책임을 추궁해 들어가면 결국은 하나님께 메여지고 만다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진리를 바로 깨닫지 못하면 성경은 전부 난해 억해가 되고 맙니다.
선이니 악이니 하는 그 정의도 바로 나와 있는 책이 나는 못 봤어. 아무나따나 들으니까 예사로 듣지마는 '하나님이 지으신 것은 선하매' 마귀도 선하고 죄도 선하고 모두 선하다. 그말이 무슨 말입니까? 마귀도 선하고 죄도 선하다 그말이 무슨 말이요? 배운 대로 여러분들이 배운 대로 무슨 말입니까, 그러면? 뭐? 무슨 말이요? '마귀도 선하매' 하면 그거 무슨 말이요? 이래 놓으니까 이것 뭐 자꾸 학교 공부해 가지고 학교에서 '능금 세 개씩 세 줄 놨으면은 삼삼구 아홉 개다'했으면은 계란도 그렇고 집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그만 생각하면 될 건데, 떡 이라니까 '나 이거 안 배웠는데요? 교과서 어데 있던가?' 가 가지고 '나는 능금 세 개씩 세 줄 놓으면은 아흡 개 그거는 배웠지마는 이건 모르는데.' 그 사람은 그 지혜를 이치를 응용하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까짓 거 공부해 봤자 무슨 소용 있겠소? 이러니까 응용하지 못하니까 '악한 자의 꾀를 좇지 말며' 하는 걸 얼마든지 가르쳐 놨는데 이거 응용하지 못하니까 다 마귀에 사로잡힐 것 아니요? '하나님 지으신 것은 선하매 '하나님의 지으신 마귀는 선하매' 그 무슨 말이요? 그 말이 '하나님이 지으신 건 다 선하매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모든 것이' 했으니까 하나도 빠진 게 있습니까? 마귀는 하나님이 안 지었소? 이러기 때문에 이런 성구 해석이 안 되고 만다 그거요. 억해를 자꾸 해 가지고.
그러니까 억해하는 것과 성경대로 해석하는 것이 반대라. 그러니까 이 사람은 저것 틀렸다. 저 사람은 이것 틀렸다 이라는데 이제 오직 판단하실 이는 하나님이시 라.
'선하매" 선이라 말이 무슨 말이지? ○이 ○씨? 하나님 중심 그라면 이것도 말하면 되지 안해? "하나님이 지으신 것은 선하매" '하나님이 지으신 마귀도 선하매' 하면 무슨 소리라? 금방 '선은 뭐이냐?'하니까 '하나님 중심이라' 이렇게 말해 놓고도 '하나님이 지으신 마귀는 선하매' 하니까 그거는 무슨 말이고 하니까 그만 못 해. 이떻게 응용성이 없기 때문에 실행하지 안하니까 도가 통하지 안했다 그말이오. 영감이 없어.
그러니까 배운 그것만 겨우 하다가 나중에 딴데 마귀가 둘러엎어 버리면 다 아무것도 모른다 말이오 하나님의 지으신 마귀는 하나님의 중심의 것이매 그말이오. 하나님의 중심의 것. 죄도 하나님 중심의 것이요 마귀도 하나님 중심의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다 그것이 기독자의 이 구원을 위해서 있는 것이요 하나님이 필요해서 지은 것입니다.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라 감사 함으로 자기 해치는 것을 감사함으로 받습니까? 마귀도 이걸 하나님 중심으로 지었으니까 하나님 중심의 자기가 될라고 하는 것이니까 하나님 중심인 자기로 성화받을라고 하는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라 그말이오. 필요한 것.
이러니까, '이렇게 하나님 중심의 역사를 위해서 하나님 중심으로 존재함이 된 이것을 내게 접촉시켜 가지고서 하나님 중심인 내 구원을 이루는 데에 필요 있게 쓰여지도록 이렇게 하나님이 필수의 것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를 다 깨닫고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5절에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짐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거기다가 적응을 시키고 또 거기다 네가 하나님을 향하여서 돕는 그 은혜를 구하는 '기도함으로써 거룩하여 짐이니라' 거룩하여지는 것은 마귀가 거룩해집니까 죄가 거룩해집니까 자신이 거룩해집니까 누가 거룩해집니까? 예,자신이 거룩해지지요.
마귀 접촉 죄 접촉 그런 것은 하나님 중심으로 다 만드신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너희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의 것으로 하나님이 만드셔서 선물로 주신 것이니 그 사실을 깨닫고 '주여, 이렇게 없어서는 안 될 필요한 것을 나에게 주시니 감사합니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 '그러면 그걸 어떻게 이용합니까?' 그것을 네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것을 상대하고, 말씀대로 이용하고, 말씀대로 접촉하고, 말씀대로 그에게 행하고, 네가 모자라는 것은 하나님에게 도움을 구하고 그래 함으로써 거룩하여짐이니라.이제 누가 거룩해집니까? ○씨? 자신이 거룩해집니다.
마귀를 접함으로 네가 거룩해진다. 죄를 접촉함으로 네가 거룩해진디 죄가 거룩해진다 말 아니오. 그럼으로써 말씀과 기도함으로 네가 거룩해진다.
이러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구원 중심으로 모든 것이 지음을 받아 가지고 있는 것이니 그걸 금욕으로 안 먹어야 된다. 또 부부 남녀 이성 관계는 안 해야 된다 이래 가지고 금욕 생활자들은 그것이 의인 줄 압니다. 그것이 마귀도 그러하고, 남녀 이성 관계도 그것이 선합니까 악i니까? 남녀 이성이라는 것 하나님이 지으실 때에 선하게 지었습니까 악하게 지었습니까? 선하게 지었다 말이 무슨 말이요? 하나님 중심으로 지었다 그말이오.
아무리 부부간이라도 하나님 중심으로, 또 하나님의 말씀을 비추어 자기가 기도함으로 그것도 절제하지 안하면 죄가 됩니다. 자기 망칩니다. 그것으로 망쳐지는 망한 사람 많습니다. 제가 볼 때에 저 사람은 뭣으로 저 일생을 실패하느냐? 그것 때문에 실패합니다. 그 사람은 뭐 간음이나 음행이나 하지 안해. 음행 간음은 남의 남자 남의 여자에게 대해서 하는 것이 음행 간음이요 음란은 저의 부부끼리 하는 것도 음란이 됩니다.
이러니까 그것으로써 구원에 도움도 되고. 고린도전서 7장에 보면은 '네 정욕이 불과 같이 일어날 때에 마귀로 틈탈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서 한 남자에게 한 여자를 다 정해서 그렇게 결혼하게 됐다' 불타는 정욕으로서 마귀가 틈탈 기회 가지고 마귀의 자식이 되고 범죄로 자기 멸망받을 그런 걸 하나님께서 부부의 관계로써 그것을 그 구멍을 막아서 그런 미혹이 들어오지 못하게 했으면 얼마나 구원이 좋게 된 것이요? 그러기 때문에 '침소는 거룩하니 더럽다 하지 말아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나 절제가 없으면 망합니다.음란은 뭐이냐? 저거 부부끼리에 음란이라. 저 혼자도 음란할 수 있어. 음에 대해서 난잡하다 그말이오 절제가 없다 그말이오.
그러면 그것으로 다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요 말씀을 단단히 기억합시다.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요것이 요 해석이 꺼꾸로 된다 말이오.
지으신 것은 선하니까 뭣뭣은 다 선하지마는 죄에 관련이 있는 건 선하지 않는다 그말 아니오. 마귀도 선하다 죄도 선하다 그말이오. 이 선이라는 해석을 잘못하면 안 돼. 하나님 중심으로, 죄도 하나님 중심으로 구원 중심으로 하나님 위해서 죄도 생기고 났습니다. 있습니다.
이러니까 수많은 죄악이 네 속에 몰려 들어오니까 그 죄악은 너를 더럽힐까 여겨도 수많은 죄악이 들어오나 네가 하나님 말씀과 기도 함으로 그 죄악을 삼켜서 네가 더 그로 인해서 거룩해질 수 있다. 그렇지 않소? 일본에 하천풍언씨를 그 사람이 시생오고요데 하는 사선을 넘었다 하는 그 책을 쓴 걸 제가 그 사람 책을 몇 권 봤는데 그 사람이 빈민굴에 가서 있을 때에 빈민굴이 첫째는 죄악이오. 죄악 덩어리오. 빈민굴 전체가 죄악의 덩어리인데, 저기는 참 사람으로 제일 못쓸 사람들만 모여 있는 곳인데 그곳에 있음으로 그 사람이 성자 됐어.
그 사람이 미국에 갔을 때에 일본에 있는 그 사람 저서가 나가 도니까 모든 사람이 그 저서를 봤는데 '하천풍언씨가 일본 온다' 이러니까 어떻게 사람이 모여들었든지 그때 교통부에서는 특별 차를 내게 됐고 사람이 얼마나 많이 모였든지 그 사람의 말소리는 듣지 못하고 다만 저 먼데서 그 사람이 손을 들고 흔드는 그 손 흔드는 손을 보고서 모든 사람이 감동을 받꼬서 회개를 하고 거게 꺼꾸러졌어, 그 사람의 저서를 본 사람들은 말이오. 그렇게 그 사람이 성자라고 된 그것이 어데서 됐느냐? 죄악의 소굴인 빈민굴에서 됐다 그거요. 그러기에 빈민굴의 그 죄악의 악인들도 하나님이 지으신 것인데 그것이 다 선합니다.
선하다는 것 그 쟈체가 깨끗다 말이 아니고 그 자체가 하나님 중심으로 되어 있는 것들이다 그말이오.
이랬는데 그분이 성자되고 난 다음에는 이제 출세한다고 그만 자꾸 대학에서 와 가지고 끌어서 할 수 없어 대학에 이제 강사로 나가다가, 교수로 나가다가, 또 정계에서 끌어대서 정계에 나가다가 나중에 그래 가지고는 성자가 똥덩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왜정 말년에 제가 있으니까 하천풍언씨가 한국에 온다는, 그때 조선이오.
조선에 온다는 그 말을 듣고서 마음에 그 김천으로 지나간다 하기에 김천이 저 있는 데서는 백 한 삼십 리 되는데 그래 가서 만나련 하고서 가서 한번 얼굴이나 볼라고 이랬는데, 나온 목적이 뭐 이냐? 내선일치 하는, 내선일치가 되는 그 운동을 할라고 온다는 그것이 약간 거게 포함돼서 그것이 그 신문에 나타났기 때문에 마음에 원통애서 참 기가 막히기는 막혀, '그 사람이 신사참배 했구나.
벌써 그 사람이 정부에 삼켜졌구나.' 해서 '옛날 하천풍언씨는 죽고 이는 딴 사람이라, 변해졌다.' 하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그때 안 가고 말았습니다.
그뒤에 말 들으니까 인도의 간디한테도 면접하러 갔다가 하천풍언 씨가 왔다 하니까 '하천풍언씨가 왔으면 나하고 친한 하천풍언씨는 옥에 갇혔든지 죽었든지 했고 지금 왔으면 그 사람은 내가 아는 하천풍언씨가 아닌 사람이기 때문에 나는 면접할 수가 없다.' 칸디가 옥중에서 거절해서 면접을 못 하고 왔습니다. 면회를 못 하고 왔어요.
사람이 죄악 안이라고 더러워집니까? 겨자씨가 썩은 것이 많은데 심어져야 무성하게 자랍니다. 성도는 죄가 많은 데에 가야 의롭게 자 라고 거룩하게 되고 무성하게 장성하게 강하게 자라지 죄 없는, 시험이 없는 그런 데서 자라는 것 아니오. 백난의 시험, 세상 다른 사람들이 접촉하지 못하는 수많은 마귀와 악령의 죄악의 거기에 접하는 데에서 아무도 그 입장 그 처지를 당할 수 없는 그 입장 그 처지 당한 거기에서 성도는 자라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낙망이 없어. 우리에게는 두려울 것이 하나도 없어.
그런고로 우리가 오늘 아침에는, 양심이 화인 맞으면 안 됩니다. 너는 그것을 죄인 줄 모르고 예사로 하지마는 그것 하나로 들어서, 네 전신은 네 구원 전체는 다 망하고 있다. 뭘 해도 그것으로 다 망하고 있다 그것을 찾읍시다. '내 양심은 무엇에게 화인을 맞아 있는가?' 자기 양심을 어떤 화인이 지금 찍어서 병이 들어 있는가? 그것도 주님의 대속의 은혜면 눈과 같이 양털같이 깨끗하게 됩니다.
이러니까 그것을 오늘 아침에 발견합시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