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을 밝히는 법

 

1989. 6. 14. 수새벽.

 

본문: 마태복음 6장 19절∼23절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어제 아침에도 내나 그 말씀을 했는데, 우리가 성경을 보고,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행해야 되느냐 하는 그것을, 성경을 보고 깨달은 그것을 가리켜서  제가 말하는 교리라 하는 것입니다.

 또 성경을 보고서 우리는 어떻게 믿어야 하느냐? 어떻게 무엇을 인정하며  어떻게 순종해 살아야 하느냐 하는 그것이 신조입니다. 우리 총공회 교리와  신조는 핍박을 당하는 교리와 신조인데 세계에 없는 교리와 신조는 아닙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다른 핍박받는 교리와 신조입니다. 총공회 교리와 신조를  아멘 하지 못하고 하는 사람은 총공회에 있는 것이 큰 짐이 될 것입니다. 큰  고통이 될 것입니다. 똑똑히 깨달으면 그는 이 노선을 떠나지는 못합니다. 또  앞으로 환난이 와도 아무 별게 없습니다. 그거나 그거나 꼭 같은데 거기 대해서  뭐 달라질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여기에서도 우리가 소유와 몸, 자기 보물이라면 크게 말하면 네 가지인데, 자기  소유 몸 마음 생명 이거면 다인데 생명이라는 것은 마지막에 죽는 것만 생명이  아니고 하루 하루 사는 그게 생명입니다. 생명을 바친다 말은 하루 사는 그  살이를 바친다 그 말이오. 이것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하늘에 쌓아 두라.

그러면 땅에 쌓아 두는 것은 이 세상에서 없어질 것들, 죽을 때에 가져가지  못하는 것들, 만일 가치가 있다 할지라도 죽을 때에 가져가지 못하는 것, 다시  말하면 잠깐 있다가 없어질 그런 것들을 다 땅이라고 말하고 외모라고 말한 그런  것을 다 땅이라고 말했고 세상 떠날 때에 가져가지 못할 것, 다 불완전한 것,  제한된 것, 하늘이라고 말하는 것은 완전한 것, 영원 불변한 것, 죽음을  꿰뚫어서 죽음에 걸리지 안하고 죽음에 그대로 통과돼서 가는 것, 하나님의  심판도 공심판은 예수님의 대속이 됐지마는 사심판은, 이거 없는 말이야, 이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은 놀래지 안하니까 놀래지 안하는 그자는 이 교리와  신조가 제것은 아니라. 암만 말로 해도 제것은 아니라.

 이러기 때문에 교리와 신조의 효력은 누리지를 못합니다. 하늘이라 말은 죽음을  꿰뚫는 권능 있는 것을 말하고 죽음을 꿰뚫어 그 너머, 하나님의 심판을 꿰뚫어  그 너머 모든 완전 영원 불변하는 그런 것들을 가리켜서 하늘이라고 말한  것이니까 이것은 곧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입니다. 사활의 대속은 예수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와 하나님을 향한 하늘의 소망 이것이 예수님의 대속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은 피만 대속이지 왜 그럴까?' 예수님이 피를 흘리실 때에 성령이  같이 했습니다. 진리가 같이 했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예수님을 붙들고 사활을  하게 하셨습니다. 또 진리가 그때 함께 했습니다.

 이래서 표면에 나타나기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을 말하나 그 속에 역사한  능력은 성령이시오. 또 이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우리에게 전하여서 우리에게  효력 있게 전달하는 그 역사를 하는 것은 성령과 진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 네 가지, 피 성령 진리 하나님을 향한  소망 이 네 가지인데 이 네 가지가 곧 우리에게 말씀하신 하늘입니다. 하늘에  쌓아 두라 그말은 이 네 가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안에 두라 그 말이오.

 그래서 빌립보 3장에 바울은 말하기를 '세상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는 것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 바로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  하는 그것입니다. 그리스도 안 외에는, 예수님의 사활 대속 밖에는 우리에게  필요한 게 하나도 없어, 우리에게 또 요긴한 게 하나도 없습니다. 또 완전한 게  하나도 없습니다. 이런데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에는 좀이 못 먹는다.' 영원  무궁 억만 년 가도 세월 간다고 해 하나도 못 보인다. 동록이 해하지 못한다.

마구 죄악으로서 우주가 불탈 때도 상관없고 하나님의 심판에서 죄악은 모조리  싹 삣고 깎아서 싹 추려내고 온전한 것만 심판 통과해 갈 때에 그때 심판에도  하나도 해받지 않는다. 그것이 동록슬지 않는다 동록슬지 않는다 그래서 비유를  말했습니다. 아무나따나 주 맞춰서 비유하는 게 아니고.

 이러니까 못 깨닫는 자는 평생 들어도 못 깨닫습니다. 이걸 참이라 알고 생명을  바칠 것인데 생명 바칠 그 생명보다 가치 있는 것을 알아야 자기가 이 교리와  신조가 자기에게 효력 있게 하지 '뭐 이 사람도 이래 하고 저 사람도 저래 하고  모든 사람이 말하는 중에 말 한 마디인데' 그럴 수 없어 성경은 우리를 온전한  사람으로 만들고 온전한 행위를 만드는 것이 성경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오늘은 교리 신조가 그까짓 거 이 사람은 이래 하고 저 사람은  저래 하고 천인 만인이 천 신조 만 신조도 더 됩니다. 박태선씨는 신조가 없는  줄 압니까? 그 사람은 교리가 없는 줄 압니까? 그것도 있어. 그 사람도 있어.

문선명씨도 있어. 불교인들도 성경적 교리와 신조가 없지 저거도 또 저거 교리와  신조가 있습니다.

 이런데 내가 생명 바칠 교리와 신조는 어떤 것이냐 이것을 찾아야지.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라고 다 성경입니까? 아니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라고 성경 아니오. 우리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있다면 믿기는 믿지마는  성경은 아니오. 요걸 알아야 됩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말이라고 다 성경입니까?  OOO조사? 사도 바울이 한 말이라고 다 성경입니까? 아니오. 육십육 권에 딱  제한을, 결말을 맺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전지성과 하나님의 주권성과  하나님의 개별 섭리성을 믿는 사람이라면 오늘 '육십육 권 도리만이 성경이라'  이래서 우리는 육십육 권 도리 성경을 믿습니다. 바울이 한 말이라도 성경  아니고는 그걸 성경으로 우리가 믿지는 않습니다. 옳은 말이면 인정은 할지라도  성경으로는 안 믿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라도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아닌 딴 말이라면 그거 우리는 인정은 할지라도 성경으로는 안 믿습니다.

성경이라 하는 이것은 딱 국한돼 가지고 있는 것이라. 이걸 알아야 되지.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냐' 요런 것도 빛이 빛이  참으로 신앙 양심을 가리켜서 빛이라 하는가? 생명을 바칠 만치 확고하게 알아야  되지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그까짓 게 무슨 자기를 구원할 수가 있겠습니까?  교리 신조를 믿는 것만치 그에게 힘이 있고 행위가 있고 믿는 것만치 그 사람이  됩니다. 바로 교리 신조 이것을 믿으면 믿은 그대로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이루어지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무슨 구원 이루는 것 아니오.

하나님이 순전히 와 가지고 우리에게 와서 구원을 이루시는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올바른 교리와 신조를 인정하는 그것이, 제가 인정착는 게 아니고 인정하는  그것이 벌써 하나님이 그 교리 신조대로 우리에게 실상을 주시고 실상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 그렇게 그만큼 우리는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래서, 또 여러날 아침에 또 본 것은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냐' 이거 신앙 양심이라 하는 것이 아무나따나 끌어다 붙여서  해석을해서 이랬는지? 이거는 다른 말로는 혹 표현을 한다 할지라도 이것은  아니라. 이것은 참 양심을 가리켜서 말한 것이니까 다른 말로 해도 양심 같은  그것이지. 어쨌든지 빛이라 그말은, 빛이라 말은 옳은 것이라 말입니다.

어두움이란 거는 삐뚤어졌다 말이고 우리에게 제일 옳은 것 바른 것 깨끗한 것  곧은 것 지혜 있는 것 그게 뭐입니까? 그게 뭐이요? 우리는 몸은 둔하고 마음은  더 슬기로운데, 몸은 마음의 지배를 받는 것인데 '네게 있는 빛이라' 이랬으니까  육체의 눈을 그 위에 말했으니 '눈은 몸의 등불이라' 이랬지요? '눈은 몸의  등불이라' 이런데 네게 있는 빛이 했으니까 빛은 우리에게 있는 것으로서는 제일  옳은 거라 말이오. 제일 참된 것이라 말이오. 제일 바른 것이라 말이오. 제일  깨끗한 것이라 말이오. 제일 곧은 것이라 말이오. 우리 밖에 하나님에게 대한  것은 말하지 안하고 우리에게, 첫째 아담에게서 난 아담의 자손에게 있는 것  중에 제일 옳은 것 참된 것 바른 것 곧은 것 깨끗한 것 그게 뭐입니까? 그게  뭐이요? 예? 그게 뭐이라? 양심이라 할 수 있어 없어? 양심 외에 뭐 있어?  이성이라? 이성 그까짓 거는 아주 엉터리요. 이성이 깨끗하요 곧소 양심이 곧소?  감정이 참돼요 양심이 참돼요? 자기의 의지가 있다면 의지가 곧고 바르고 참돼요  양심이 참돼요? 이걸 비판해 보면 아무나따나 해석이 아니라. 해석을 하면은 이  해석은, 사람이라는 것이 말했으면은 그것이 절대성이라고는 할 수 없지마는  자기 대로는 힘을 다 기울여 가지고. 한번 말하면 자기가 천하에 별별 학자들이  다 있을 터이니까 그들이 어떻게 말한다고 할지라도 반드시 그들에게 정죄받지  안할 것과 그까짓 것 보다도 하나님의 심판에서 정죄받지 안할 것, 무궁세계에  정죄받지 안할 것 그것까지 자기는 생각하니까 그거 어떻게 생각하겠소? 그거  성경이 보증을 하는 것이 아니면 우리는 담대히 말할 수가 없다 말이오.

아무나따나 말하는 게 아니라. 인기끌기 위해서 아무나따나 주 대서 별스러이  이상스러운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보면 '이 사람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하나님께 이용을 당하는 사람이다, 이용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세상 인기만 생각하지 하나님의 심판은 생각지 않는  사람이다.' 환하게 판단할 수 있어. 시야가 좁아서 판단을 못 하지 넓게 보면 다  판단할 수가 있다 그거요.

 빛은 양심인데 우리에게 있는 제일 옳은 데로 끄는 것이 양심이요, 바른 데로  끄는 것이 양심이요, 곧은 데로 끄는 것이 양심이요, 깨끗한 데로 끄는 것이  양심이요, 우리에게는 제일 옳고 바르고 참되고 이렇게 끄는 것이 양심인데  그거면 완전입니까? 그거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지, 사람은 피조물이요 유한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들이 다 유한한고로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암만 해도 하나님의  것 같지는 안합니다. 사람의 지혜로운 게 하나님의 어리석은 것보다 못하다 했어  이랬는데 우리에게 참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완전자이시니까 완전 자를 우리가  찾아가는 데에는 우리에게 양심 외에는 다른 것으로는 찾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갈망도 하고 필요성도 느끼고 원하지 양심이 아닌 돈  욕심하는 물욕, 욕심 그것이 강하기는 강합니다. 욕심 그놈이 강하기는 강하지만  그거는 도야지 같소. 짐승 같소.

 이래서 '육신의 소욕은 다 이것은 사망이라' 그렇게 하나님께서 그만 단정을  선포해 버렸어. 이러니까 네게 있는 빛이라는 건 양심인데 이 양심을 우리가  보배로 알고 양심은 돈보다도 귀하고! 양심은 힘보다도 귀하고 모든 자원보다도  귀한 것이 양심입니다. 암만 자원이 많아도 삐뚤어지게 그걸 투자하면 헛일  아닙니까? 바로 투자를 누가 시키느냐? 양심이 사킨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양심은 우리 몸에 생명 다음에는 가는 것입니다. 생명은 생명  없으면 양심이고 뭐고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뭐 일단 첫째로 생명이 있어야  되기 때문에 생명부터 있고 봐야 된다 그 말이오. 있고 봐야 되기 때문에 생명  다음에는 양심이라. 자기가 생명이 있은지 다음에 필요한 거는 양심이라. 이렇게  양심의 가치성을 알아야 양심을 가질라고 애를 쓰지 양심이 돈 천만 원만치도  못하고, 백만 원만치도 못하고, 양심이 제 재산 전부만치도 못하고, 양심이 자기  몸뚱이만치도 못하고 이라는 사람은 양심을 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안 구합니다.

또 그 사람에게는 양심을 기르고 양심을 가꾸는 그런 일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몸이 암만 있어도 양심이 삐뚤어지면 헛일이오. 암만 젊어서 생명이  살 생명의 기간이 많이 있어도 양심이 삐뚤어져 잘못하면 헛일이라. 모든 것  잘못하면 헛일이라는 것, 삐뚤어지면 헛일이라는 것, 사업을 암만 투자 많이  하면 되는가? 사업 이게 바로 했나 안 했나 그개 문제지. 삐뚤어진 사업에 투자  많이 하면 그게 투자 많이 했다고 뭐 일이 됩니까? 안 돼. 온 세상이 우리에게  자연 계시요. 성경은 구약 신약이 둘이 있기 때문에 구약은 신약으로 연구하고  신약은 구약으로 연구하고 이걸 가리켜서 특별 계시라 하는데 특별 계시는 뭘로  연구해요? 저 OO에 O조사? 특별 계시는 뭘로 연구 해요? 양심 가지고? 양심  그까짓 게 그런 거는 못 해. 귀넘어 듣기 때문에 쏙쏙 안 들어와. 들으면 깜짝할  건데. 그거 천하게 보기 때문에. 놀랠 말이야! 그게 그래 짜다라 있는 게  아니라. 깨달은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외나 잘 깨달은 사람들은 그  사람들은 그렇게 남하테 자랑하기를 싫어하고 자꾸 이렇게 발표하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대개는 보면 잘 깨달은 사람들의 깨달음이 발표가 그래 나오지를 못하고  있다 이거요. 아무나따나,  '그 사람은 저서 몇 권 했다' 저서 권수를 가지고 자기를 키울라 합니다. 그  저서가 바른지 삐뚤어겼는지 그걸랑 생각지 않고. 그러기 때문에 서점에 가 봐야  볼 책이 없어. 사람이 서적을 만들었지마는 서적이 사람을 만듭니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만들어요. 그러니 중요하지. 양심의 가치성을 알아야 여기에다가  주력을 하고 구하려고 하지 사람들이 사망 아래에서는 이렇고 저렇고 하지마는  자기에게 복이라는 선 위에는 양심으로 한 것이 아니면 거기에는 뚫고  올라가지를 못합니다. 안 믿는 불택자들도 그러합니다. 더군다나 더 양심으로  하지 안한 그것은 하나님에게 근방에 접근해 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데 양심을 이것을 밝게 하는 데는, '어두우면 얼마나 어두움이 크겠느냐'  이래 말했는데 그러니까 양심을 밝게 만드는 것, 양심을 권위 있게 만드는 것,  양심을 아주 능력 있게 만드는 것, 양심을 기르는 데는 뭘로 기른다 했어? 여기  간단하게 말하지 안했어?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면 마음도 거기 있느니라'  마음이 하늘에 있으면 어찌 돼요? 마음이 하늘에 있으면 그 마음이 하늘에서  용납하는 마음, 하늘에 가 가지고 영주할 수 있는 마음 그 마음이면 그 마음이  더러운 마음이요 옳은 마음이요? 옳고 바르고 참돼서, 성령 안에 있을 마음,  진리 안에 있을 마음, 하나님을 소망하는 소망 안에 있을 마음,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 속에 있을 수 있는 마음, 그러면 그 마음이 '마음이 거기에 있다.

하늘에 있다.' 하늘은 심판 너머 것을 말하는 것인데 하늘은 우리 하늘은, 우리  영원 세계는, 우리의 안정처는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 외에 아무것도 없어.

어리석어서 어쨌든지 막 그리 주 꿰다 붙이면 되는 것인 줄 알지만 아니야. 암만  따져보고 따져보고, 나도 오십여 년 따져봤어. 다른 신 학자들은 인간학을  공부했지만 나는 인간학을 공부하지 안했어. 나는 신구약 성경만 공부하기를  내가 오십여 년 공부했어. 지금도 자꾸 공부하고 있어, 지금도. '보물 있는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보물이 몇 가지라고  말했지요? 네 가지. 그러면 네 가지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둘라면은 네 가지  보물을 우체로 부치요? 배로 부치요? 어떻게 부치요 하늘에 쌓아 둘라면? 어떻게  부치요? OOO장로님? 그 기능으로 어떻게? 기능으로 어떻게 해서? 네 가지 기능을  어떻게 해서 OOO? 어? 하늘에 쌓아 둘라면, 그 보물은 네 가지 보물인데 네  가지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하늘에 쌓아 둘라면 뭘로 보내느냐 말이요?  배로 부쳐 보내요? 항공으로 보내요? 우편으로 보내요? 뭘로 보내? 기능으로  보낸다? 네 가지 기능으로 보낸다? 기능으로 어째 보내는고? 소유의 기능을 뭣을  어떻게? 그렇게 말해도 귀가 안 뚫혀.

 이러기 때문에 암만 배워도 엉뚱한 짓 하고 교회가 부흥이 안 돼. 자꾸  설교함으로써 하나님을 머리 쥐박으니까. 설교하는 게 하나님을 쿡쿡 쥐박으니까  하나님이 저와 같이 할 수 있어야지? '주여 주여' 하며 쥐박습니다. '주여 주여'  하며 막 칼로 찌릅니다. 칼로 찌른다 말은 주님을 찌르는 말하는 것이 그것이  주님을 찌르는 것이오. 그러니까 주님이 같이 할 수가 있어? 보내는 것은 자기의  이 네 가지가 보배인데 네 가지 그걸 가지고 그 행동을 하면은 행동은 그게  없어져요 없어지지 안해요? 죄 지은 행동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죄지은 행동도  기독자의 행동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에 갑니다. 가 가지고 거기에서  결정나요. 옳은 것은 그리스도의 심판 너머 무궁세계에 등용되고 잘못된 것은  거기에서 정죄받아서 멸망받습니다. 안 믿는 사람의 행동은 어찌 돼? 안 믿는  사람의 행동은 그리스도의 심판에는 상관 없어. 하나님의 공심판에 가서,  공심판에 다 가 가지고 없어져요. 돈도 가져가지 못하고, 집도 가져가지 못하고,  뭐 명예나 그런 것 가지고 가지 못하지만 자기 행동은 하나도 두고 가지 못해요.

꼭 가서 하나님의 공심판에 가 가지고 낱낱이 거기 가서 심판을 받아야 돼.

이해가 돼요 안 돼요?  이러기 때문에 내가 말하는 건 법을 공부하라는 거라. 법을 공부하고 둘째로는  사학을 공부하라 하는 거라. 사학을 공부하라 말은 어떤 단편의 함정에 빠지지  발아라. 길게 넓게 봐서, 쉰발쟁이라 하는 것은 발이 쉰 개 있다고 쉰발쟁이  하는데 쉰발쟁이 모양으로, 쉰발쟁이는 구멍에 잘 안 빠져요.

 역사라 하는 것은 여러 수천 년 된 것을 한 눈에 볼 수 있기 때문에 이제 이  모든 과거에 대한 시야가 넓기 때문에 한 어떤 국부에 빠지지 않는 그런  필요성을 말한 것이오. 법을 말한 것은 인간들로서는 제일 옳고 바르다고 다  합동해 가지고 그거 그것을 선택하고 인간의 안녕 질서를 말해 놓은 그게 법이기  때문에 내가 법을 공부하라고 말한 거라. 법을 공부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거라. 성경을 알면 법을 공부 못 해도 다 알아. 성경을 공부하면 그 법을 공부  안 해도 다 알아요.

 나는 법 개론도 안 봤어. 입문도 안 봤어. 안 봤으나 세상법 낱낱이 논평해  가지고, '이건 틀렸다. 이거는 너거가 암만 나라에서 입법해도 이 법은 틀렸다.

이거는 이 법은 한계가 어데까지다, 범위가 어데까지다. 요 범위까지인데 요게만  맞지 요 범위 너머는 안 맞는다.' 그거 다 정평 정가를 완전히는 못 하지마는 할  수가 있어.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는 것은 자기 행동은 없어지지 안하고 행동은  하나님의 심판 앞에 가 가지고 거기서 옳은 것이면 무궁세계로 들어갈 것이고,  그러기 때문에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사람의 뭐라 했어, 너 말해 봐? 너?  O조사님 옆에 있는 너 말이요? 그래.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고 행위대로 갚으시니까 행위는 다 간다 그 말이오.

 그러면 우리의 모든 네 가지 이 보배가 하늘나라 갈라 하면은 어떻게 부쳐  보내요? 배로? 항공으로? 우체로? 어떻게 부쳐 보내? OOO조사님? 행위로 부쳐  보내. 내가 무궁세계에 갈 행위에 내가 투자했으면 그 행위 갈 때 그거 자본  그것도 간다 그거요.

 이 말을 결론을 지워 자꾸 이래 나오면 뭣이 되느냐 하면은 양심을 기르는  데에는 이 네 가지 보배를 바로 쓰는 데에서 양심은 자라간다 그 말이오. 맞아요  안 맞아요? 논리가 맞아요 안 맞아요?  그러면 자기 소유, 자기 몸은 혀도 몸이야. 손도 몸이야. 모든 지체가 몸이라.

마음에 이런 생각 저런 생각 한 것도 그거 다 마음이라. 그것을 네가 예수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예수 안에 들어갈 수 있는, 뭐 단일 교회 단일 교회 말하지마는  단일 교회를 입으로만 말하지 단일 교회가 뭐인지를 생각을 못 하고 있어. 단일  교회라 말은 하늘나라라 말이오. 예수 그리스도의 사대 대속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거기에 들어갈 것. 거기에 들어갈 행동에다가, 그 행동에다가  투자했는데 그 행동으로 만든, 그 투자로 만든 행동이, 자기의 소유로 만든  행동이, 자기의 몸으로 만든 행동이, 자기의 마음으로 만든 행동이, 자기가  살아가는, 자기 생명 하루 사는 그 살이로 만든 그 행동이 하늘나라 가면은 그  자본이 가요 안 가요? 가요 안 가요? 갑니까 안 갑니까? 확실히 가느냐 그  말이요? 확고하게 잡아.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고 무슨 말 해도 다 듣소.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고. 그런데 배암의 말, 하나님 말씀이 아니고 배암의 말인, 들은  말, 여러분들은 불경, 중들이 와 가지고 불경 가지고 해설하면 다 넘어갈  사람들이라. 기가 차. 공산주의자들이 와 가지고 말하면 다 넘어갈 사람들이라.

OOO집사님이, OOO박사지. OOO박사님이 내나 법학과를 가 가지고 가르쳤는데  여러분들이 얼마나 들었는지? 내가 언제 시간 있어서 가면 한번 물어 볼 거라.

다 조부라운 지식이라, 좁은 지식. 보수라 진보라, 보수주의 진보주의 하는데  그거 말도 아닌 소리라, 다. 그믐 달밤이라 하는 말 한가지라. 그믐에는 달이  없어. 말이 안 된 말인데 다 듣고 있어 보수도 독립 못 합니다. 진보도 독립 못  합니다. 논리를 해 나가면 그거 존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보수는 진보에서  연명하고 그 명이 연해서 연명하고 진보는 보수에서 생명을 얻습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뭐 그 어데 세상 학문이 그게 그렇게, 너무 그거 범위가  좁아. 이러기 때문에 자가가 '내가 이렇게 하면, 혀를 이렇게 놀리면, 내 마음을  이렇게 쓰면, 내 생각을 이렇게 쓰면,' 마음 쓰는 거는 생각도 마음이요, 욕심도  마음이요, 뜻도 마음이요, 감정도 마음이요, 그 모든 것 다 마음이요 또  비판하는 것도 마음이요 그것을 발표하는 것은 몸이오. 이런데 이것. 잘못 쓰면  하늘에 쌓아 두지 안하면 양심이 어두워져.

 어두워지면 어두워진다 말은 무슨 말이요? 양심이 어두워진다 말이 무슨  말이요? 옳은 것을 못 본다 말이요, 바른 것을 못 본다 말이요, 곧은 것을 못  본다 말이요, 멸할 것과 불멸의 것을 보지 못한다 말이오. 이러니까 그까짓 거  암만 많아 봐야 짐승 한가지지. 비록 존귀한 데 처하나 깨닫지 못하면 멸망할  짐승같은 내나 수성으로 살고 있지. 가치도 수성의 가치요 사랑도 수성의  사랑이오, 이제까지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 이렇게 말해도 이거는  외우기는 다 외우는데 이 복음을 제 복음으로 받은 사람은 극히 희귀해. 받는 것  같은데 보면 아니야. 제게 닥쳐 보면 헛일이라. 정신 차려서, 예수 믿는 것이,  기본구원은 꼭 같지마는 건설구원이 이것이 하늘에 있는 거와 땅에 있는 거와  이제 것과 장래 것이 다 자기 것이 되어지는 이 구원이 그렇게 쉽게 되는 건 줄  아요? 정말로 자격이 없고 실력이 없는 줄 압니까? 실력 없는 게 아니라. 천사도  다스릴 수 있어. 우주와 영계를 다스릴 수 있어. 어떻게 해서 그렇게 돼? 영계와  물질계의 모든 것이 다 자기 것이 되어지는 데에는 어떻게 하면 자기 것이  돼져요? 어떻게 하면? 어떻게 하면 자기 것 돼져? OOO조사님? 자기가 그리스도의  것이 되면.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나쁜 건 안 취해. 그리스도의 것만 되면.

그리스도의 것만 되면 자기가, 자기가 사는 것이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지.

그리스도의 것만 되면 그리스도가 그이 속에서 살고 그거는 그리스도의 지체로  또 쉽게 말하면 그리스도의 나팔이 되든지 뭐 그리스도의 도구가 기계가 되든지  그렇지.

 그리스도는 제사장 선지 왕 아니요? 이러니까 하늘과 땅의 것은 어떤 자의  차지인가? 제사장의 차지요 선지자의 차지요 왕의 차지라. 아무나따나 꿰어  맞추는 게 아니라. 심령이 어두우면 암만 들어도 모릅니다. 여러분들 요 말이  아주 모순된 말 갈아서 깨닫기 어려울 것이오. 바울의 말이 성경이 아닙니다.

바을의 말이 성경이 아니라. 바울이 한 말이라고 성경이 안 해. 성경에 기록된  그것만 성경이 되지. 예수님이 하신 말씀도 성경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한  그것만 성경이지.

 이런데 성경의 권위성을 막 박살을 내는 오늘입니다. 성경의 권위성 박살나면  다 봤소, 뭐. 그까짓 거 뭐 암만 천하를 휘둘러도 그 아무 소용 없소. 성경의  권위성을 다 잊어버렸는데 뭣이 들어서 그 사람을 붙들고 의의 길을 걷게  하겠소? 못 걸어. '이 말씀이 너희들을 지켜 능히 든든히 세워 거룩한 자들이  얻는 그 업에 참여하게 된다.' 이랬어. 안 믿기 때문에 지혜가 안 나와.

 주일학교 반사 선생님들은 공과를 외우고 실행 실천해서 경험과 체험을 가져야  제가 가르칠 게 있어. 이래 놓으면 자기 속에 불이 붙어. 자기 속에 '이 말씀을  이건 우주보다 귀하다' 가치를 그만치 자기가 인정된 그 사람이 가서 테레비  보는 학생에게 말하는 거와 거기에 대해서 부인하는 자가 말하는 거와 달라.

뭐이 달라? 전능자가 역사하고 안 하는 게 다르지.

 하루 삼십 분 기도 이거 깔보지 말고 잃지 말고 계속 하십시오. 이 광고하는  것을 듣고 '아따 기도하는 거 엔간히 자랑한다.' 이렇게 견해하는 자는 견해하고  '이렇게 모두 기도에 힘을 쓰니, 아무 구역은 기도하러 많이 갔는데 우리 구역은  기도하러 적게 갔다.' 이래 가지고 성경에 말했어. 선을 격발케 해 가지고 다문  얼마라도 기도를 좀 더 힘쓰는 자가 되도록, 다른 교회 사람들이 오면 '이  교회는 기도에 힘쓰니까 우리 교회도 기도 힘써야 되겠다.'  이래서 주님이 원하시는 그거 이 건설을 위해서 구원을 위해서 하는 것이지 제  자랑을 하는 거는, 백 목사가 제 자랑하면 백 목사 미친 놈이요, 미친 놈. 백  목사 미친 놈 아니야! 영감으로 해! 이 기도하라는 것을 지금 팔 년 계속하는  이게 인간의 생각이 아니야. 하루 삼십 분 기도 벌써 매일 광고하는 것이 삼년째  나. 내 마음 내 생각이 아니야. 주님이 이 일에 대해서 동행하셔. 어떤 구역은  기도 하러 다니고 어떤 구역은 기도도 안 하고 하나도 없이, 제가 뭐 할 건고?  '에이고 뭐, 아이들 모양으로 경쟁을 시키는구만. 경쟁을 시키는구만.' 옳은  경쟁은 성경이 시키니까 그거 해야지. 선을 격발케 하는 게 죄인가? 그래 가지고  '우리야 뭐 그 소리 듣고 기도하러 안 간다.' 가기 싫거든 말아라! 네까짓 거  마지막은 멸망이다. 목사라도 멸망 장로라도 멸망이지 별수 없다. 네가 기도 안  하고 네가 뭘 네까짓 게 어떻게 한다 말이고? 기도하는 데도 시기하나? 기도하는  데도 반동하나? 어리석지 말아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열렸거든 다시 닫지 마라. 놀라서 '이거 어짠 일인고?' 했는데, '놀라서 어짠  일인고?' 했는데, 가 들으니까 옆에서 '저거 누이 형제가 지금 우리 마을에 있지  않느냐? 목수 내나 요셉이 아들 아니가? 마리아 아들 아니가?' 하니까 놀랬던  것이 싹 까뭉캐졌어. 그게 죽는 거라! 그게 죽는 걸 알아야 돼! 양성원 학생들  암만 가르쳐 봐야 참 싹이 노래, 사실에는. '희망을 줘야 되지 절망을 준다.'  나쁜 걸 나쁘다 해야 살아나지, 뭐. 살아날 거는 살아나고 죽을 거는 죽지. 나  할 일은 나팔 부는 것뿐이라. 나 하면. 나 할 일은 그거 하면 다 했어. 세계와  다 대립이 됩니다. 온 세계와 대립이 돼서, 다 주님 한 분만 보고 가기 때문에  뭐 세상에 인정 받을라 하면 안 되니까 하나님 한 분에게 인정받으면 되는  것이지. '온 천하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울 때에 진실한 자들만 이긴다'  진실한 자들은 나는 해석을 진실을 그래 해석 했어. 이기선 목사님은 진실을  사람 보기에 진실하고, 또 자기가 보기에 진실하고, 이렇게 다른 사람이 보기에  진실한 이것을 말했는데 나는 그게 아니라. 지식이 성경으로 자기 지식을 삼은  지식 진실, 성경대로 행위의 행위 진실, 성경대로의 사람의 사람 진실, 이게  돼야 이겨. 이 해석을 양보하지 안해. 천하 사람이 정죄해도 하나님이 변호해  주셔. 정신차려서 믿어야 돼요. 어짜든지 쉽게만 그래 가지고, 사랑도 쉽게만  거석해 가지고. 사랑은 칼로 꾹 찌르는 게 사랑이라. 이 교훈 안에 있는 게  사랑이라, 이 진리대로 행하는 것이 사랑이라, 계명대로 행하는 것이 사랑이라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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