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06 15:09
양심과 양심을 구별
1987. 5. 17. 주일오후
본문:고린도전서 13장 1절∼8절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오전에 증거한 말씀 가운데에 이 물질계라는 우주와 영계라고 하는 천국 지옥과 또 이 세월이라는 무한의 세월은 다 하나님의 농장이라 했습니다. 이거 내 말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농장이라고 성경에 말씀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농장이라, 또 하나님의 나라라, 또 하나님의 집이라 이렇게 비유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런데, 거게는 자존자 조물주가 농장 주인이요 또 농부요 하나님이 지으신 교회는 거기에 여러 종류의 식물들이요 또 모든 것들도 다 거기 심겨 있는 식물들이라 그렇게 비유했습니다. 했는데, 주인의 심지 안한 것은 원수가 와서 심은 것은 전부 다 뽑아서 불에 사른다 이랬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사는 가운데에 이 조물주, 주재자, 주권자, 영원한 왕이요 영원한 주이신 그분에게 거슬리면 제 아무리 커도 절단난다는 거 요거 꼭 잡아야 됩니다. 뭐 ‘이렇게 세계에 강대국인데’ 강대국이면 그까짓 게 강대국 그런 거 억억만 개라도 상관없어. 일시에 싹 가루를 만들어 버립니다. 그 아무 힘 없어.
우리는 하나님을 이렇게 믿습니다.
또 아무리 잘난 개인이 있으면, 또 모든 사람들이 많이 따르고 다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있는 사상이나 주의나 종교나 이분의 뜻에 어긴 것은 다 유황불 구렁텅이에 모조리 쓸어 넣습니다. 요거 알아야 됩니다. 종교마다 저거 교주가 다 하나님이라고 이렇게 생각하지마는 성경에 보면은 그렇지 않습니다. 또 그 하는 행동 보면은 또 다릅니다. 성경과 다릅니다.
이러니까 세상에 있는 모든 이종교나 온 세상에 있는 모든 지식이 그게 참이라면 신구약 성경은 완전히 거짓말이요, 신구약 성경이 참말이라면 그거는 전부 거짓말이오. 이러니까 둘 중에 하나는 뭐이든지 깨질 것 아니겠습니까? 절대로 신구약 성경 말씀은 믿는 사람이 보면 이게 참입니다. 참인 것이 확실합니다.
뭐 사람의 손으로야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마는 이번에 대구 집회서도 기적으로 영병 나은 거 숫자 못 세고, 또 마음병 고친 것도 숫자 못 세고, 고기덩어리병 고친 그거는 다 다른 사람이 볼 수 있고 알 수 있기 때문에 그것만 말해 놓은 것도 근 사백여 명이 손 안 대고 뭐 그래 됐으니까 그거 하나님이 하신 약속하신 말씀대로 그리 한 것 아닙니까? 이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집에 살고 있으니까 조심 있게, 하나님의 나라에 살고 있으니까 조심 있게, 하나님의 밭에 살고 있으니까 조심 있게, 어짜든지 그분을 자존자요 창조주요 주재자요 주권자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것을 알고 그분에게 거슬리지 안해야 되지 그분에게 거슬리면 전멸이라. 암만 잘나도 소용 없어.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소망을 가진 자들은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거리낌이 없도록 살도록 힘을 써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과 사람 앞에 거리낌이 없이 살 수가 있겠느냐? 그것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있고 또 영감의 진리가 있고 하니까 자기 양심만 쓰면은 그렇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했습니다.
또 요한일서 3장 21절로 22절에 말씀하시기를 “자기 마음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자기가 자기 마음에 자기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자기 마음이 자기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그 말은 자기 마음은 그 마음은 양심을 말합니다. 자기 속에 있는 양심이 자기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기도하는 것을 다 얻을 수 있고, 또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담대하고 기도한 것은 다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슨 이유냐? 이유는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킨 이유요 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이유라 했어.
그러면 우리가 주님의 피 있고 성령 계시고 진리 있고 성경 있고 우리 양심 있으니까 우리만 힘쓰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로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다 지켜서 우리의 소원대로 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어 주실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기도하는 거 소원하는 것 다 하나님이 들어 주실 수 있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 소원과 하나님의 소원이 일치된다 그 말이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위반된 것도 기도하면 들어 주시겠습니까? 양심 생활, 신앙 양심 생활 하는 사람은 자기가 힘써 신앙 양심 생활 하면 모든 언행심사가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다 그 말이오. 모든 희로애락이 하나될 수 있다 그 말이오. 하나님과 같이 된다 말 아닙니까? 우리가 힘만 쓰면 됩니다.
이렇게 양심은 가치 있는 것인데, 양심은 뭐이 양심인가? 양심은 자기가 인정하는 그 지식대로 옳게 바르게 요 지식대로 옳게 바르게 하겠다. 그 지식에 잘못됨이 없이 그 지식대로 바로 할라 하는 그것이 양심입니다. 이러니까 사람의 지식은 천도 만도 넘으니까 자기 아는 지식대로 바로 할라고 하는 그것이 양심이니까 양심의 종류는 천도 만도 넘습니다. 요걸 알아야 돼요.
요게 자꾸 들으니까 뭐 예사로운 말로 생각하지마는 요게 예사로운 말이 아니라.
양심이 여러 수천 수만의 종류가 있다 하는 말을 나는 아직까지, 공부는 많이 안 했지마는 신학교 가서 들어 본 일이 없고, 책에서 읽어 본 일이 없고, 사람에게서 들어 본 일 없어. 그러나 사실이야. 실상과 맞아. 이걸 예사로 듣는다 그거요.
그러기에 오전에 하다 말았는데, 양심 중에는 디모데전서 4장 1절로 2절까지에 보면 미혹받은 양심이 있고 귀신의 감화받은 양심이 있고 그런 것을 가리켜서 화인맞은 양심이라. 그 말은 죽은 양심이라 그 말이오. 귀신과 마귀의 미혹을 받은 양심들은 다 죽은 양심이라 했어. 피와 성령과 진리에 충만한 사람이 아닌 사람은 다 귀신에 유혹받아 가지고 살고 있어. 이래서 “너희들이 이 생명의 도를 받기 전에는 지금 불신자 속에서 역사하고 있는 공중의 권세 잡은 마귀가 너희 속에서 너희를 주관하였느니라” 이랬어.
이러니까, 예수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와 일치된 그 사람에게만 양심이 살았지 그 외 양심은 다 죽은 양심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신구약 성경 영감 도리를 주셨으니까 이거는 하나님의 지식이요 완전한 지식이요, 귀에 안 들어가. 귀에 안 들어가. 테레비 그런 거는 보면 좋지. 이거 안 들으면 비참하다. 이 말씀 안 들으면 비참해. 이 말씀이 귀에 안 들어가면 비참해.
오후에는 저 자리가 퉁 비었는데 그게 뭐이냐? 비참해 그래. 우리 서부교회 교인이라도 비참해서 제가 일생동안 벌어 봤자 오후에 들은 요 한 말씀만도 못해.
그렇게 바로 평가하는 사람이라야 예수를 믿습니다.
뭐 하나님과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진리를 가진 자가 땅위에 무엇을 부러워해? 모든 게 다 제것인데. 주님 구름타고 오시면 다 내것 되는데. 내것인데. 내가 거기 왕으로 앉을 터인데. 예수님이 왕 중에 왕이요 나는 그 밑에 왕노릇할 터이고, 예수님이 모든 거 주권하시는데 나는 그 주권에 같이 동참할 터인데. 조그매라도 뭐 빈틈이 있소? 없어. 어누리가 하나도 없어. 과장이 하나도 없어.
이런데, 양심과 양심을 구별할 때 화인맞은 양심을 구별해야 됩니다. 또 로마서 1장 21절로 25절에 보면 미련한 마음이 있습니다, 미련한 마음. 그 양심이 미련해져 버렸어. 그것도 죽은 양심. 우매한 마음이 있어, 우매한 마음. 양심이 우매한 마음이 됐어. 어리석은 마음이 됐어. 그거 왜? 다 제 하고 싶은 대로 하다가 다 그래 버렸어, 그건 성경에 보면은. 또 정욕의 마음이 있어. 그만 양심이 자기 정욕의 양심이 돼 버렸어. 그것 다 화인맞은 양심이야. 한 말로 말하면 화인맞은 양심이요 죽은 양심이라 그 말이오.
착한 양심이라야 하나님을 향해서 찾아가. 착한 양심은 뭐이 착한 양심인데? 착하다 하는 것도 정의가 달라요. 박사 학자들은 ‘선이면 모두 다 이 세상이 말하는 그게 선인데 백 목사는 선은 하나님 중심 악은 피조물 중심 인간 중심이 그게 악이라, 틀렸다.’ 하지만 재판 가 봐. 요다음에 내가 틀렸으면 영원히 그들에게 머리 숙여야 될 것이고, 그들이 틀리고 내가 옳으면 영원히 내 밑에 무릎을 꿇고 평생 영원히 고패드려야 될 거라. 이런 미래가 있습니다, 여러분들.
아무나따나 말하면 되는 게 아니고 행동하면 되는 게 아니라. 우리 말하고 행동하는 거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 앞에서 다 평가받을 것이고 그때에 결정지워지기 때문에 그때 가서 잘못됐으면 그는 세상에서 어떤 인기를 끌었다 할지라도 평생 저는, 영원 무궁토록 저는 참 가슴치면서 벌을 받아야 돼. 하나님의 뜻대로 옳고 바른 것을 가르치고 주장해서 천하 사람이 다 안 들어도 그는 영원 무궁토록 해와 같이 빛납니다. 이런 미래가 있는 줄 알고 우리가 살아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양심대로 한다고 되는 거 아니야. 화인맞은 양심대로 하면 망해.
마귀와 귀신에 미혹받은 양심대로 하면 망해. 제 주관에 욕심대로 하는 그 양심대로 하면 망해.
그러기 때문에 세상에는 바른 지식은, 쉬워. 바른 지식은 하나뿐이라. 신구약 성경 하나님의 지식 외에는 바른 지식이 하나도 없습니다. 왜? 세상과 세상에 있는 모든 지식은 죽음 너머는 몰라. 사람은 산 이편보다도 죽은 너머가 성경에 멀다 했어. 거게 무한해.
이런데, 예를 들면은 만 척, 만 자, 한 자 두 자, 만 자 되는 가운데에 한 푼밖에는 모르는 그것이 그 지식의 한 푼만 보고 거게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말해 놓은 그 너머 구천구백구십아홉 척이 있는데 그거는 알지도 못하고 말했는데 그 말이 맞을 수 있어요? 그 말이 맞아요? 안 맞아.
그러기 때문에 산 지식은 신구약 성경 하나님의 지식 영감 도리 하나밖에는 없어.
이 지식은 전지의 지식이요 전능의 능력이 함께 하는 지식이라. 이 지식은 천지는 변해도 획 하나도 가감 없이 그대로 이루어질 지식이라. 억억억억만 년 가도 호리도 변함이 없어. 모든 존재 모든 것에 대해서도 하나도 잘못됨이 없는 완전한 지식이라.
그러기 때문에 산 양심은 어떤 것이 산 양심인가? 요 지식에 맞춰서 요 지식대로 할라 하는 그게 산 양심이라. 요 지식을 버리고 세상에 어떤 위인의 어떤 유명한 그 명언, 유명한 사람의 말 명언에, 어떤 철학에, 어떤 과학에, 어떤 역사 통계의 그 사상에 어데 맞아도 신구약 성경에 맞추지 안한 건 다 죽은 양심이라 고거 알아야 됩니다.
이렇게 똑똑히 가르쳐도 양심이 뭐인지 구별하지 안해. 예사로 들어. 사람이 죽는 날까지 양심 양심 양심으로서 살았다 할지라도 양심을 찾기 전에 네 지식부터 구별하라. 네가 어느 지식으로 지식을 표준하고서 양심을 세우느냐? 신구약 성경 말씀을 표준해 가지고서 요대로 살라고 하는 양심이 아니면 다 죽은 양심이라, 죽은 양심.
이해가 됩니까? 이 똑똑한 양반들 다 이해가 돼요, 잘난 양반들? 아무리 잘나도 요 틀리면 망해! 그까짓 게 뭐야! 오늘밤이라도 하나님이 부르면 그만 가는 것이고 다 심판하면 제가 오그라지고 말고 불타고 말지 무슨 권리 있어! 여러분들, 우리가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나 우리 자체나 땅위에서 하나님 말씀 외에는 우리를 보증할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 외에는 우리를 보증할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보증하다니? 하나님 말씀은 ‘네가 요라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보증한다. 요라면 네 입술뿐이지 보증 안 한다’ 요 말씀이 보증을 하면 아무 피조물도 정죄 못 해. 그 다음에, 말씀에 보증받았으면 됐지마는 영원 자존자이신 그분은 그위에 계시기 때문에 그분의 보증을 우리가 기다리지마는 그분의 보증이나 말씀의 보증이나 하나라. 하나님은 진리시요 진리는 하나님과 동거 동행해 하나라.
그러기 때문에 신구약 성경 말씀의 보증이 없는데, 신구약 성경 말씀의 보증이 없는데 커다란 배경이 보증했다, 재물이 보증했다, 잘난 사람들이 보증했다, 시대가 보증했다, 오늘 이십세기의 시대가 보증한다. 시대 보증이 무슨 힘이 있어? 어리석어. 시대 보증이 무슨 힘이 있어? 이 시대가 전부 옳다고 보증을 하면은 힘이 있어요? 시대 보증이 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봐요. ‘전세계가 보증하면 됐지’ 전세계의 보증이 정말 힘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 ‘세계가 보증하면 힘 있지’ 세계 보증이 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봐요. ‘세계가 보증해도 하나님의 말씀이 보증 안 하면 다 아무것도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봐요. 이거라. 세상과 달라.
이 말 하면은 세상은 미쳤다 할 거라. 미쳤다 해. ‘온 세계가 보증하는데 뭐 신구약 성경이 보증 안 하면 그거 다 거짓부리고 소용 없다? 이 미친놈아.’ 할 거라. ‘미친 거는 내가 미친 게 아니고 이놈아, 네가 미쳤다!’ 할 거야. 왜? 누가 미쳤는지 가 보자. 주님 구름타고 오시면 그때부터 확 일나지. 어리석지 말아요.
그러기 때문에, 양심과 양심을 똑똑히 구별해야 돼. 말씀을 들을 때에 똑똑히 듣고, 책임지고 듣고, 자, 우리가 무슨 세상에서 교훈을 듣는 것이나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이나 그런 줄 아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배울 때에, 가르칠 때에 살고 죽는 게 여게 있습니다. 믿습니까? 살고 죽는 게 여게 있다는 걸 믿습니까? 잘못 가르치면 죽어. 저도 죽고 배운 사람도 죽고 다 죽어. 바로 가르쳤으면 가르친 사람도 상급이요 배워서 행하는 사람도 살아. 이 살고 죽는 것이 이 말씀 바로 가르치고 삐뚤게 가르친 여게 있어. 그런 줄 알고 여러분들이 들어요? 제 비위 맞으면 듣고, 저를 좀 알아주고 추주면 듣고, 제게 거슬리면 안 듣고. 이 어리석은 자야. 죽고 사는 문제인데 네게 거슬리고 하는 게 문제야? 네가 뒈지는데. 이러니까 가르치는 자도 배우는 자도 죽느냐 사느냐 하는 거라. 잘못 가르치고 잘못 배웠으면은 죽고 바로 가르치고 바로 배웠으면 살아.
죽고 사는 것만 결정입니까? 천해지고 귀해지는 것도 여게 있어. 바로 가르치고 바로 배웠으면 귀해지고 잘못 가르치고 잘못 배웠으면 천해져. 삐뚤어지게 가르쳤다 말이오. 삐뚤어지게 가르치고 삐뚤어지게 배웠으면 천해져.
또, 그러면 귀천만 그런가? 빈부도 그래. 바로 가르치고 바로 배웠으면 부자돼.
금생도 부자 내세도 부자 영원히 부자돼. 잘못 가르치고 잘못 배웠으면 금생도 거지되고 영원 무궁도 거지돼.
잘못 가르치고 잘못 배우면 승리하고 실패하는 게 여게 있어. 잘 가르치고 잘 배웠으면 승리, 잘못 가르치고 잘못 배웠으면 패전이라. 금생과 영원한 패전이라 실패라. 바로 가르치고 바로 배웠으면 영원히 살고 영생하고 잘못 가르치고 잘못 배웠으면 영원한 사망을 당해. 믿습니까? 자, 이 말이 맞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봐요. 맞아요.
그러면, 이러면 이렇게 중요한 말씀인데 제 비위를 앞세울 수 있어? 제 비위에 맞으면 듣고 맞지 안하면 안 듣고, 제 기분에 좋으면 듣고 기분에 싫으면 안 듣고, 제 친구 좋으면 거기 따라서 가서 듣고 배우고 삐뚤어졌든지 말았든지 제 친구 좋으면 따라가서 배우고 듣고, 제 기분에 나쁜 사람들만 모였으면 아무리 바로 가르쳐도 안 배우고 안 가르치고 이거는 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교훈에는 바로 교훈 그것이 바로 죽고 사는 것이요, 하나님의 교훈 그게 바로 죽고 사는 것이요, 그게 바로 승리하고 실패하는 것이요, 그것이 바로 성공하고 패전하는 것이요, 그것이 바로 부자되고 가난해지는 것이요, 그것이 바로 살고 죽는 것입니다. 이런 줄 알고 배워야 돼.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은 문체도 필요 없어. 웅변도 필요 없어. 언변도 필요 없어. 유창하게 뭐 정서도 필요 없어. 까끌까끌하든지 벙어리든지 더듬거리든지 어쨌든지 옳은 것 말하면 천상 천하에 하나님 다음으로 내게 제일 가치 있는 것이고 천하 정서와 문체를 다 넣어 가지고서 천하에 정서 문학 문체를 다 넣어 가지고서 해도 삐뚤어지면 내게는 그 이상 더 해독스러운 게 없어. 좀 깨야 될 터인데! 조그마치라도 어누리 된 말이요? 어누리가 있는 말은 아니야. 어누리 있는 말이 아니라. 털끝만치도 어누리 없어. 틀림도 없고.
여러분들이 지식에는 산 지식과 죽은 지식으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님의 지식만이 산 지식이요 살리는 지식이요 그거 외 다른 지식은 다 죽은 지식이요 죽이는 지식이라. 오늘에는 이라지마는 나중에는 이 말 하는 사람을 잡아서 죽여서 지금 점점이 쪼개 가지고서 마구 공중에 먼지같이 날릴란지 몰라.
그러나 하나님의 지식은 산 지식요 살리는 지식이요 하나님의 지식 외에 거, 하나님의 지식 외에 것. 하나님의 지식 외의 것이면 하나님의 지식과 반대된 지식이라 말이오. 하나님의 지식 외의 것은 다 죽은 지식이요 죽이는 지식이라 한다고 만일 그 사람을 잡아서 갈아 가지고서 먼지를 만들어 가지고 공중에 날리면 그 공중에 날리는 그 모든 먼지는 우주와 영계가 막 환영할 것이요 영원히 뭐 찬양할 것이요 영광스러워질 것이라. 믿습니까? 하나님의 사람들이여, 믿고 있어요? 믿습니까, 모두? 담력이 나와요! 모두 죽은 소리구만.
이렇게 죽은 것과 산 것을 증거하다가 감옥에 가도 좋고 사형 받아도 좋고 맷돌에 갈아 가지고서 먼지같이 공중에 날려도 좋아요? 좋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봐요. 저 뒤에는 슬그머니 들어. 슬그머니 들어도 좋아. 하나님 앞에 우리가 약속이야. 맹세라.
여러분들, 깨끗하게 살고 갑시다, 못난 자 되지 말고 깨끗하게. 세상은 지나가는데 앞으로 우주와 영계, 우리가 뭐 지구덩어리 조그만한 데 살지마는 우주 영계는 심히 넓어. 굉장히 그것도 많아. 영계도 더 넓어. 이런데 이 모든 것에게 다 가 가지고 우리가 그 앞에서 서서 살 터인데 그때에 이 옳은 데 속한 것은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다 내것이라. 이제 것이나 장래 것이 다 내것이라. 사망과 생명이 내것이라.
하나님이 거짓말 합니까? 하나님이 거짓말 안 합니다. 천지는 변해도 변함이 없습니다. 이분을 믿고 이분의 말씀을 신실히 믿습니다. 이런 데에서 성도들은 세상이 이해 못 할 고독의 걸음을 걷고, 독보의 걸음을 걷고, 십자가의 걸음을 걷고, 이해 못 하는 그 의의 걸음을, 진리의 걸음을 걷는 것입니다.
다 그라다가, 저 문명국에서 부강한 문명국을 다 버리고서 미개국에 가 가지고서 자기 일생을 바치다가 또 자기의 자녀에게 또 저 문화국에서 잘 양육한 자녀를 또 계대시켜 가지고서 삼대 사대를 미개인 야만들 위해서 다 바쳐 가지고 거기에 십자가의 도로서 구원 얻는 그 일을 다 개척한 것이 깨달은 사람들의 그 의인들의 발걸음입니다.
잠시 잠깐 후면 주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고 희생한 사람들의 그 영광과 존귀가 주님과 함께 나타나는 것을 우리가 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보이는 것은 없어지고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히 나타납니다.
그런고로 산 양심과 죽은 양심을 구별하지 못하면 양심 생활 하다가서 자멸합니다. 양심 생활 하기 전에 산 양심과 죽은 양심을 구별해야 됩니다. 산 양심은 신구약 성경 지식에 복종하는 것이 산 양심이니 신구약 성경은 뭐 가르치는가? 신구약 성경은 예수님의 열한 가지 구속을 가르치는 것이 신구약 성경 전부입니다. 신구약 성경은 그것을 가르치고 있소. 소개하고 있소.
오늘 오후에 본 사랑에 대해서, 또 사랑에 대해서 여러분들에게 이 모든 미혹을 벗어나서 확정을 짓고 주저하지 말고 머뭇거리지 말고 생명의 길을 담대히 담대히 용진하도록 하기 위해서 오후에 이 말씀을 봉독합니다.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는 그 생명법이 뭐입니까? 위에 있고 아래 있지 않고 그 생명법이 무슨 법입니까? 머리가 되고 꼬리되지 않는 법이 그 무슨 생명법입니까? 하늘 문을 열고 쌓을 곳이 없도록 준다는 그 생명법이 뭐입니까? 신앙 양심대로 사는 법입니다.
신앙 양심대로 살다가 사업이 거리끼면 팽개치고, 자기 생명이 거리끼면 생명 내놓고, 뭣이든지 신앙 양심대로 사는 데에 거리낀 거 있으면은 어떤 것이든지 다 포기하고, 죽어도 살아도 신앙 양심대로 살아 보겠다 하는 이것이 하나님을 얻는 방법이요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모든 것을 받을 수 있는 자격 있는 사람들입니다.
죄는 엉망으로서 백의 구십구는 죄 뭉텅이 그대로 있는데 백의 일만 하나 회개해 놓고 요거 회개했으니까 구원 얻으리라. 이 어리석은 자야 온 전신은 죽었는데 네게 있는 어느 한 지체 손가락 하나 살아 있다고 그 세포가 아직까지 다 죽지 안하고 남아 있다고 그거 가지고 전신이 살아날 수 있느냐? 네가 하나님은 창조주시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고 있는 것도 없애시고 없는 것도 있게 하시고 작은 것을 키우시고 큰 것도 작게 하시는 전능하신 생명의 주요 우리를 사랑하신 줄 알면, 그분을 믿으면 모든 거 그분에게 거리낀 거 다 정리하고 그분 한 분만을 바라봐야지.
네가 하기 쉬운 것은 주를 따라 살고 하기 어려운 것은 다 네 맘대로 안 하고 껍데기로 그렇게 외식하는 그거 가지고 하나님을 네가 꾀로 가지고 매수를 할라고? 네가 하나님을 어떻게, 어부가 고기 낚듯이, 밥티끼로 잉어 낚듯이 하나님을 그렇게 네가 껍데기 외식 행위 가지고 낚아 볼라고? 어리석은 자야.
따라합시다.하나님은!만홀히 여기심을!받지 아니하시느니라!사람의 심은 것은!무엇이든지!그대로 거두리라!욱체로 심은 자는!썩어진 것을 거두고!성령으로 심은 자는!영생을 거두리라! 천지는 변해도 변치 않습니다. 이분이 변치 않습니다. 이분의 능력도 변치 않소.
이분의 권세도 변치 않소. 이분의 지혜도 변치 않소. 이분이 우리에게 선포해 놓은 계약도 변치 않소. 변치 안해. 이러니까 든든히 믿어 놓고 그분 상대해서 살 만하지 안해요? 세상에는 능력이 있다고 믿고 살았는데, 믿고 살았는데 하루밤이니까 그 능력이 휘떡 달라져 버립니다. 이 모든 권세도 조석으로 물결 모양으로 뒤비지고 변해지지, 살아 있어도 변해지지, 죽어 변해지지, 환경이 변해지지, 인인 성사해 놓은 것이 인인 다 분산이 돼 버리니까 변해지지, 뭐 믿을 거야? 그러나 이분은 변치 안해요. 이분은 변치 않기 때문에 이분을 든든히 믿고 부르도자 모양으로 뿍뿍 걸어가, 어짜든지. 뭐 그저 감옥에를 가든지 살림이 패가하든지 말든지 신구약 성경, 내가 봐서 예수님의 열한 가지 구속 배웠으니 열한 가지 구속에 맞도록만, 배고파도 살아가고, 헐벗어도 살아가고, 감옥이라도 살아가고, 매 맞아도 살아가고, 외로와도 살아가고, 멸시 천대라도 살아가라! “시험을 받고 참는 자 복이 있나니 이것에 대해서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야, 너는 참 믿는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리라” 말씀했습니다.
조금 믿고 마는 그자, 조금 믿는 자에게 줘 놓으면 그것 가지고서 나중에 가서 무슨 재를 저질러 놓고 저를 망치도록 할라고! 끝까지 믿는 자에게 하나님은 그를 안심하고 좋은 것을 다 주실 수 있습니다. 조석으로 변하는 자에게 줘 놓으면 그거 가지고서 무슨 장난하고 무슨 죄지을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자에게는 줄 수도 없고 받을 수도 없어.
“너희들이 믿음으로 구하고 의심치 말라. 마치 의심하는 자는 바다의 물결의 요동하는 자와 같으니 정함이 없는 자들이니라.” 아무것도 정함이 없어.
이라다가 저라다가 휘뜩 정함이 없으니까 그 사람에게 뭣을 하나님께서 주실 수 있어? 주면 탈나지. 끝까지 믿어 봐요, 끝까지.
우리가 단정할 수 있는 것은 자기야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어두운 가운데서 멸망받고 있는 사람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여야 할 책임은 우리들에게 있어.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해 가지고서 그렇게 인도하게 하실란지 몰라요.
다 같이 거지로 지냈는데 하나님 믿고 보니까 나를 큰 거부로 부자를 만들어 가지고 ‘아이구야, 그 사람 예수 믿어 큰 거부 됐으니까 나도 예수 믿자.’ 그래 가지고 그 방식으로 어두움에 있는 사람을 인도해 낼란지? 또 ‘그 사람 나하고 우리 나라서나 세계에서 제일 재벌될 수 있는 그런 그 위치에 앉은 사람이 그거 다 버리고 지금 자기 심신을 다 기울여서 복음 위해서 날마다 순교의 순생 순교의 걸음을 걷고 있다’ 하는 것으로써 감탄되어서 예수 믿게 할란지도 몰라.
○○○목사님이라고 저 ○○교회 있는 그 목사님, 그 회사가 ○○입니까? ○○? 그 회사에 총무로 있었는데 그분이 들어 그 회사를 그렇츰 키웠어. 그 본사에 사장으로 세울라 해 안 할라 하니까 아마 미국이 가고 싶은갑다 이래 가지고서, 미국에 자기 가족들이 가 있거든. 그뭐 처음에 예수 믿기 전에 작은 마누라 얻었으니까 작은 마누라 가족들 다 떼내서 미국에 다 보내 버렸어. 보내고 난 다음에 예수 믿기 시작했어. 이러니까 모두 생각하기를 자기 소가가 자녀들이 다 미국 가 있으니까ㅡ그거 내 해석이야ㅡ있으니까 미국 갈라 하나? 미국 우리 지금 지사가 있으니까 그 지사에 사장으로 가라고도 자꾸 권해도 안 한다 하고 한 달에 삼만 원 개척 월급 받고 전도사로 나가 가지고서 고생 많이 하다가 인제 목사 됐어.
이것 보고 우리 사돈은 그 ○사장이라고 있는데 그 사람은 또 아주 세상으로 좀 뭐 중앙청에 저 세무 무슨 청장인가 뭐 했는데 그래 그 사람은 그 사람 알다가서 ‘이상하다. 그분이 세상에 나는 지혜가 그만침 지혜 있는 사람 못 봤고 뭐 참 그 위대한 사람인데 그 사람이 어찌 예수를 믿었어? 이상해.’ 그래 가지고 한번 만났더래요. 만나 가지고서 그걸 권면하면서 이래 하니까 그래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나도 믿겠다고 그래 가지고 예수 믿어요. 지금 예수 믿는데 아마 곧 장로될란지 모를 겁니다.
그래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게 할란지, 거지가 부자돼 가지고 전하게 할란지, 이거 아주 저 세상 벼슬로 저 산따로로 저 밑에 말단에 있던 그것이 저 제일 대가리 높은 데 정권을 떡 잡아 가지고서 그래 가지고 예수 믿게 할란지, 어쨌든지 우리는 하나님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어떻게 이용할란지 모릅니다.
그러면 이게 좋고 저게 나쁩니까?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지.
이러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복음의 일꾼으로 쓰실라고 하는 데에는 우리가 끝까지 믿어야 하나님이 쓰시고 싶은 대로 쓰시고 일하시고 싶은 대로 일할 수 있어. 이러니까 끝까지 믿는 사람 됩시다. 이래도 저래도 양심 생활 변동 말아요.
점포 그거 잘된다고 좀 잘 되니까 ‘주님, 은혜 감사합니다’ 조금 안 되니까 ‘아이구, 이거 왜 이렇노?’ 걱정하고 또 낙심이 돼지고 그따위 그런 똑 대롱에 팥 두 개 모양으로 촐랑촐랑한 그게 무슨 큰일 하겠어? 자, 따라합시다.끝 없는 믿음!끝 없는 믿음!영원한 믿음!변치 않는 믿음!이 믿음이라야 하나님도 상대할 만하고 그 사람도 또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받아 가지고서 감당할 수 있지요.
이러니까, 어짜든지 오전에 공부한 데서 산 양심 죽은 양심 요거 꼭 기억하고, 산 양심으로 살면, 산 양심으로 살면 하나님 앞에 담대해져. 하나님 앞에 담대, 하나님 앞에 담대하면 뭐, 하나님 앞에 담대한데.
예를 들어서 하나 비유한다면 우리 나라의 ○대통령 앞에서 담대해 ○대통령이 나를 전적 옹호한다면 그 밑에 무슨 장관이니 차관이니 뭐 순경이니 뭐 이런 뭐 동장이니 뭐 그런 사람들 어짠다 해도 그뭐 염려할 게 뭐 있어? ○대통령이 나를 옹호하고 인정하고 보호하는데. 그거 생각이 됩니까? 하나님 앞에서 담대해.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고 인도하시는데 염려할 게 뭐이야?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지키시고 나를 도우시고 내편 돼 가지고 역사하시는데 피조물이 우리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담대함을 얻고” “우리 구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다 얻고” 구하는 것 다 얻는다 말은 부자된다 말입니까, 구하는 것 다 얻는다 말은 부자된다 말이요 무슨 말이요, ○○○목사님? 하나님과 모든 의사가 하나라 그 말이오. 하나님과 자기와 모든 의사가 하나라.
그러면 하나님 되지 안했어? 그러고, 하나님 계명 다 지킬 수 있어. 하나님을 어데서든지 기쁘시게 영화롭게 할 수 있어. 이런 큰 축복을 받습니다.
이 좀 굵닥굵닥한 것을 소망하고 살아야 되지 뭐 땅에 요런거 쫄막쫄막한 거, 예수 믿는 사람들이 좋다 하는 거는 전부 오늘 있다 내일 없어질 거 그런 것들 모두 가치 없는 거 썩음에 속한 거 죽음에 속한 거 없어짐에 속한 거 그런 것만 좋아합니다. 커다란 영원하고 불변하고 완전하고 영생이요 영원한 영광 있는 그런 것을 우리가 탐해야 됩니다.
여게 이 사랑에 대해서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이 무슨 말입니까? 사랑이 없으면 죽은 것이라 그 말입니다. 알겠습니까? 양심은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받는 데에 필요한 방법입니다. 양심은 하나님의 모든 은혜와 축복을 받는 비결이요 필요한 것이요 사랑은 생명을 받는 필요하고 요긴한 것입니다.
“아무리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아무리 지식이 풍성하고 믿음이 있고 오만 비밀 오만 것을 통달한다 할지라도 사랑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무슨 말입니까? 생명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 그 말입니다.
생명 없으면 아무것도 없다 말이오.
여게 사랑을 생명으로 해석을 하십시오. 여게 사랑을 생명으로 해석하면 됩니다.
이것도, 이것도 좀 어렵습니다. ○○○목사님 어데 있습니까? 거기 여기 좀 저 양성원에 가면 주석 많을 터이니까 여게 사랑에 대해서 사랑이 뭐인고 사랑의 정의가 뭐인고 좀 그 주석을 보고 좀 다 상고해 가지고 나한테 좀 알려 주십시오.
나는 그런 거 잘 못 읽어요.
3절에,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구제하고” “내게 있는 모든 걸로 구제하고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이거 또 구제하고 몸까지 주어서 희생한다 할지라도 사랑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산 사랑을 말합니다, 산 사랑.
생명을 말합니다, 생명.
사랑의 정의를 바로 알지 못하면 헛일이오. 사랑은 두 가지 있어. 양심도 두 종류 있고. 산 양심 죽은 양심, 사랑도 산 사랑 죽은 사랑, 산 사랑은 살리는 사랑이요 죽은 사랑은 죽이는 사랑이라. 사랑과 사랑을 구별하지 못하면 헛일입니다.
여게 요한일서 4장 10절에 이런 말씀이 있어요. 4장 10절에, “사랑은 여기 있으니” “사랑은 여기 있으니” 사랑은 둘이 아닌 줄 알아야 됩니다. 요새 뭐 테레비에서 ‘사랑, 사랑’ 해 가지고서 사랑으로 뭐 야단이고 사랑이 제일 귀한 줄 알고 뭐, 그 어찌 그 말을 잘 알았는지?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이래 가지고 막 사랑에 모두 미쳤어.
참말로 사랑에 미칠 만합니다.
이런데 이것은 예수님의 피에 구속 받은 성도들이 증거해야 될 이유가 있는데, 증거할 의무가 있는데 목사 쳐놓고 요 사랑을 바로 가르쳐 죽은 사랑 산 사랑 가르치지 안하면 그 목사가 하나님 앞에 큰 벌을 받을 것이오! 여기 목사 많지마는. 여기 목사 많이 참석했을 거라.
죽은 사랑 산 사랑을 해서 죽은 사랑은 사람을 죽이는 사랑이요 산 사랑은 사람을 살리는 사랑이라는 요것을 구별하지 안해서 세상이 어두워서 사랑과 사랑을 뒤타 가지고서 죽은 사랑인지 산 사랑인지 구별하지 안하고 사랑은 다 사랑이라, 사랑은 하나라 이래 가지고 사람이 마구 무더기로 죽어 가지고 있는 이것을 아무도 모르는데 목사들은 알아. 목사가 이것을 바로 증거하지 안하면 목사가 큰 심판 받아! 큰 심판 받아. 일생 동안 목사 해도 이거 바로 하지 못한 그벌 받다 보면 나중에 가서 아무것도 없어. 저는 영만 하늘나라 가 있지 심신의 기능은 유황불 구렁텅이 가서 있을란지 몰라! 이 설교록이 나갈 터이니까 뭐 수백 수천이 볼 거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어. 사랑은 하나님 혼자만 가지고 있어.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오늘 오후에는, 사랑은 두 종류인데 죽은 사랑 죽이는 사랑, 죽은 사랑은 죽이는 사랑이고 산 사람은 살리는 사랑입니다. 산 사랑은 하나뿐, 죽은 사랑 죽이는 사랑은 천도 만도 억도 넘어.
죽은 사랑 죽이는 사랑은 배암의 사랑이니 에덴동산 하와가 타락한 후에 생겨진 사랑인데 배암의 사랑인데 곧 인간 사랑이라. 곧 죽이는 사랑이라. 그 사랑이 첫 걸음에 배암이 와서 하와를 사랑한다고 하니까 하와가 배암의 사랑에 폭 녹았어.
그래 가지고 그 사랑에 녹아서 하와가 죽었어. 하와가 죽고 난 다음에는 그 사랑 가지고서 아담을 죽였어. 아담 죽이고 난 다음에 일반적 생육법으로 난 모든 사람을 다 죽였어. 이것이 배암의 사랑 죽은 사랑 인간의 사랑입니다.
산 사랑 살리는 사랑은 하나님 한 분만이 가지신 사랑인데 그 사랑이 우리에게 왔으니, 그 사랑이 우리에게 왔으니 하나님이 독생자를 보내서 우리를 죄와 사망과 마귀에게서 완전히 해방을 시켜 자유를 주고 하나님의 공심판을 완전 통과시켜서 의를 주시고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중생하는 영생하는 새 생명과 산 소망과 기업을 우리에게 주신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뭐했는가? 첫째는 우리 죄를 멸했고, 하나님과 화친을 일으켰고 모든 죄와 사망과 마귀에게서 완전히 해방의 자유를 주었고, 금생과 내세 영원 무궁토록 영생을 우리에게 주었고, 썩지도 쇠하지도 낡아지지도 안한 산 기업을 우리에게 줬어. 그게 뭐인데? 예수님의 열한 가지 구속이라. 그걸 줬어. 이게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왔으니 그 사랑이 와서 뭐 했는가? 그 사랑이 우리에게 왔는데 그 사랑을 분석하니 열한 가지 구속이요 그 사랑의 작용은 열한 가지 구속을 우리에게 충만히 입게 하는 그 작용을 했어. 산 사랑은 이것이 산 사랑이라. 산 사랑은 죄와 사망과 모든 죽은 기업과 하나님과 원수된 것을 완전히 소멸하고,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의와 하나님과 화친과 새생명과 하나님을 향한 영생과 모든 산 기업 이것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 이게 하나님의 사랑이라.
그러기 때문에, 네가 아무리 말을 잘해서 천사의 말을 해 가지고서 사람을 어떻게 설득을 시키고 감화를 시키고 이해를 시켜서 네가 어떻게 사람을 점령해서 속에 알맹이까지 싹 다 빼먹는 그런 네가 설득을 시켰다 할지라도 열한 가지 구속 이거 없으면 생명 없다. 열한 가지 이거 없으면 다 죽인 것이다. 죽이는 것이다.
아무리 네가 세계 지식과 모든 인간 지식뿐 아니라 하나님의 지식까지 다 통달하고 뭐 인간의 지식 하나님의 지식 모든 지식이라 하는 거 비밀 오만 거 다 통달한다 할지라도 이 열한 가지 구속을 가지고 있지 안하면은, 구속을 주지 못한다면은 다 아무것도 아니라.
네가 믿음이 있어서 산을 옮길 만한 그런 믿음이 있다 할지라도, 네가 믿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눈을 놀래게 하고 어떻게 한다 할지라도 그에게 열한 가지 이 구속의 생명을 주지 안하면 소용 없어.
네게 있는 거 다 구제해 주고, 구제해 주고, 네 소유 다 구제해 주고 네 몸과 네 생명을 다 상대방을 사랑함으로 희생의 제물로 네가 희생해 준다 할지라도 그것 가지고는 사랑이 없어. 그거는 사랑이 아니야. 그거는 죽이는 것이지 살리지 못하기 때문에, 대체로 사랑하는 자라면 살려 놔야지. 사랑하는 자라면 사랑이라면 살려야지. 사랑이 죽이면 사랑인가? 살려야지. 살려야 사랑이지. 아무것에게도 구애받지 않는 자유를 줘야 사랑이지. 영원한 평강과 부강을 주어야 사랑이지.
사랑은 여게 있어.
그러기 때문에 이 사랑은 하나님만이 가질 수 있지 하나님 외에는 가질 자가 없어. 가질 자격이 없어. 아무리 지혜 있어도 전지가 아니라면은, 전지가 아니라면 나중에 모르는 데가 오면은 저는 죽어야 됩니다. 알겠습니까? 아무리 능력이 세계에 제일 큰 능력 가졌다 할지라도 전능이 아니라면 그보다 더 큰 능력 오면 그 능력 앞에 저는 박살나야 돼. 아무리 억만 년 가도 영원이 아니라면은 억만 년 후에 그 사람은 죽어야 돼. 아무리 제가 웅장하고 화려해도 변하면 죽어야 돼.
변치 안해야 돼.
사랑은 영원 자존성, 완전성, 영원 불변성, 이 단일성의 완전자가 아니면 전지 전능자가 아니면 이 사랑은 가지지 못해. 사랑하니까 ‘내가 너를 사랑하니 믿으라!’ 했는데 뒈지니 소용 없어. ‘하, 내 권력이 이렇다. 믿으라!’ 했는데 그놈의 권력이 바짝 부숴져 버리니 소용 없어.
사랑은 전지, 전능, 완전, 영원, 불변, 영원한 생명과 평강 이걸 줘야 사랑이라.
이걸 줘야 사랑이라. 이걸 가지고 사랑하고, 이걸 주어 사랑하고, 나도 이거 가지고 그도 이거 줘 가지고 둘이 다 영생하니까 영원히 사랑할 수 있지.
이러기 때문에, 그 다음에 해석은 시간 없으니 여러분들이 가서 하십시오. 하나만 머리만 떼 줍니다.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이 사랑, 하나님의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어. 하나님의 사랑 산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 없어. 물고 빨고 뭐 나 아니면 너 죽겠다 하고서 뭐 안 주면 내가 정사하겠다 떠들어 쌓아도 어리석은 자야 어리석은 자야 그거는 사랑도 아니라. 배암의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한 것만치 너는 속았어. 녹은 것만치 속았어. 바친 것만치 속았어. 어리석지 마라. 그거는 배암의 사랑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라. 산 사랑이 아니라.
4절에 “사랑은 오래 참고” 잘못 하면 ‘이 배암의 사랑도 사랑은 오래 참는다.’ 오래 참기는 뭐 오래 참아? 뭐 오래 참아? 뒈지면 그만인데 뭐 오래 참아? 배암의 사랑은 오래 못 참아요. 오래 참을 수 있어요? 배암의 사랑 쳐 놓고 시집가고 결혼해 가지고서 백 년 참은 사랑 있어요? 백 년 못 참아. 몇해 되면 다 죽어야 돼.
뭐이 참아? 참는다 말 요거는 계속한다 말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는다. 사랑은 오래라 말은 무한이라 말이오. 무한히 참는다 말이오. 무한히 뭘 계속돼? 예수님의 열한 가지 구속은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가도 가도 남아 있어.
“사랑은 오래 참고” 요 사랑의 해석을 바로 가지면 ‘오래 참고’가 해석이 됩니다. 그리 아니면 해석이 안 됩니다.
“사랑은 온유하며” 온유하다 말은 따뜻하다 말 아니오. 온유하다 말은 자기 마음에 든든하고 평안해서 조급이 없고 언제든지 든든하고 평안한 것을 말합니다.
하나 예를 들면은 나는 여행을 가는 데에 도시락을 싸지 안했습니다. 그렇지마는 내게 돈이 여러 수십만 원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행 가면서 ‘야, 거기 가면 뭐 먹을 건데’ 돈만 있을진대야 뭐 얼마든지 막 거리 거리 꽉 찼지. 그라면 도시락 안 싸도, 도시락 싼 사람은 ‘도시락 있는데 저거는 도시락도 안 싸고 저거 어짤란고?’ 이래도 돈이 호주머니에 있으니까 마음이 어떻습니까? 마음이 어때요? 어떻지? 든든해. 그걸 가리켜서 온유라 말합니다. 알겠습니까? 열한 가지 이 사랑을 가지고서 주고 받는 데는 조급이 없어. 영원히 무한이라, 무한히. 갈수록 좋아. 갈수록 좋고. 택함을 해석하면 더 좋지. 대속을 생각하면 더 좋지. 영생 받았으니까 더 좋지. 뭐 안 되는 게 있어? 시간과 공간에 제한이 있어야지? 온유할 수밖에 없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이 사랑은, 이 사랑은 미워하는 자가 되지 안해, 이 사랑은 왜? 사람을 죄에서 해방시켜서 하나님과 화친 만들라고 하니까 화친 만들라 하니까 옛사람 그놈은 미워하지마는 새사람은 자꾸 사랑해야 돼. 이거는 자꾸 아끼고 달래고 기르고 자꾸 이래야 돼.
“사랑은 자랑하지 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안하며” 사랑은 저를 나타낼 수 없어. 사랑은 저 나타낼 수 없어. “사랑은 자랑하지 안하며” 배암의 사랑은 제자랑하고 있어요.
언제 어떤 사람 여기 국회의원으로 있는 사람 그 사람이 그날 그만 수영하고 그만 그날밤에 죽어 버렸어. 수영하고. 왜? 수영하는데 자기 애인이 옆에서 관람했거든. 자기 애인이 수영하는데 옆에 앉았다 여게 봤다 말이오. 봤으니까 이 나이가 한 오십 세 된 영감인데 애인이 옆에 있으니까 내가 아직 오십이 돼도 젊다 하는 그걸 가지고서 그만 그날 자기 건강을 더 과시할라고 막 헤엄을 치고 막 설치다가 보니 너무 지나치게 보일라고 하다가서, 그게 자기 자랑하는 거라.
자기 소개하는 거라. 이라다가 그만 과로가 돼 가지고 그날밤에 떨어져 버리고 말았어.
무슨 사랑도 사랑이라는 이 배암 사랑은 제 자랑하요. 왜? 저를 소개해. 전부 배암 사랑은 제게 들어 붙여 가지고서 저를 제일 위주로 해 가지고서 저를 중심으로 해 가지고서 제게 속하라고 하기 때문에 제 자랑밖에 할 게 없어.
자랑해 봤자 송장 자랑이지, 썩은 자랑이지, 죽은 자랑이지 그거 무슨 가치가 있냐 말이요? 답답하지. 자랑해 봤자 그만 썩어지고 송장 뭉텅이니까 이제 든든한 거 예수님의 열한 가지 구속을 자랑하면 자랑해도 또 남고 또 남고 얼마든지 남을 건데. 사랑은 자랑하지 안해. 저 자랑하지 안한다 그 말이오. 저 자랑하지 안해.
“자랑하지 안하며 교만하지 안하며” “교만하지 안하며” 이 자꾸 예수님의 열한 가지 구속을 입힐라 하면은 교만해져요? 자, ○○○권사님 어째요? 다른 사람한테 가서 이 복음 전하면 교만해지던가? 숙여야 돼. 자꾸 숙여야 돼. 숙여야 되고 종의 종이 돼 가지고 그리 되니 이거는 참 이상한 도라. 그게 사랑이라.
그 다음에 쭉 내려가면 사랑의 정의를 바로 알면 그게 다 해석은 단순히 됩니다.
그러나 사랑을 바로 모르면은 이 해석은 절대 못 합니다. 오래 참기는 뭐 사랑이 오래 오래 참아? 오래 참으면 열흘 참는다 말인가? 그거야 죽는 날까지는 참을란지 모르지마는 그게 오래가 되는가? 백 년도 못 되는 무슨 오래가 되는가? 오래라는 뜻은 장구라는 말인데, 장구. 장구토록 있어? 암만 좋아도 그깟놈의 사랑 장구토록 없어. 좀 있으면 쭈글쭈글해지고 좀 있으면 권태나지고 배암의 사랑은 바뀌어.
배암의 사랑은 자기를 중심해 가지고 모든 걸 자기에게 들어붙일라 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것을 살려서 좋게 할려고 구원할라 하는 그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오전에는 양심과 양심을 구별할 것, 오후에는 사랑과 사랑을 구별할 것. 이래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니라” “제일은 사랑이니라” 배암의 사랑이 아닙니다. 열한 가지 구속을 노래한 노래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습니다. 열한 가지 구속을 자랑한 자랑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습니다. 열한 가지 구속을 위해서 수고한 것은 냉수 한 그릇의 수고도 결단코 헛되지 않습니다. 열한 가지 구속 이것만이 영원히 남아 있고 이것만이 위대하고 이것만이 존귀합니다.
그런고로 오늘 오전과 오후를 통해서 양심에 죽은 양심 산 양심 요것을 똑똑히 구별해서 산 양심대로 사는 것은 무한한 축복이 다 성취할 수 있습니다. 달성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제 하나님 되어서 저와 동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양심을 버리고는 하나님을 찾지 못합니다.
사랑 없는 곳에 생명이 없습니다. 사랑은 생명이 있습니다. 사랑이 뭐인데? 사랑은 여기 있으니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났으니 뭐이냐? 독생자 보내 가지고서 열한 가지 구속을 완전히 달성시킨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