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01 21:26
아브라함의 축복
본문 : 창15:1-8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로라 그가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으로 업을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은 후 세상에 있는 것으로는 구비 하다고 할만큼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아브라함은 땅에 있는 그런 온갖 축복을 받았지만 그것은 항상 아브라함의 마음에 만족이 되지 아니하고 늘 그가 소원하는 것은 딴 데 있었습니다. 자기가 목축업을 하고 알뜰히 그 목축업을 하고 있으니까 다른 사람 보기에는 그의 존 소망이 목축업으로, 목축의 물질에 있는 것으로 보여졌지만 롯과 시비가 일어났을 때에 그 뭐 물질 그것은 참 그렇게 귀중히 보지를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을 어길까 두려워서 그것을 그저 하나님의 헌신짝 같이 그렇게 여겼습니다. 목축하는 사람이 가나안을 택한다는 것은 가나안은 아주 풀이 없는 발간 산입니다. 자기 업이 다 실패되는 것이지만 그래도 조카로 더불어 분쟁해서 사람을 잃지 아니하려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롯보다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시니까 붉은 자산에서도 목축이 생각 못할 만큼 흥왕 했습니다. 그래서 그 후 자손들이 말하기를 여호와를 순종하면 '자산에도 푸른 초장이 있다' 아주 풀 없는 발간 산에도 양들이, 짐승들이 먹을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초장이 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은총으로 흙을 먹고 자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새는 과학적으로 짐승에게 흙을 먹이는 것이 아주 유익하다고 해서 흙을 먹고 자라는 그런 닭들이 있습니다. 또 그러고 난 다음에 소돔 왕으로 더불어 그 큰 적산을 두고 그것은 아브라함이 으레히 차지할 것인데 아브라함에게 소돔 왕이 '이것을 차지하고 사람만 보내 달라' 이러니까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내가 만일 이것을 차지하면 너로 인해서 내가 부요하게 됐다 내가 잘 됐다 하여 영광이 너에게 돌아가고 또 영광이 나에게 돌아오고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지 않을 그것을 생각해서 내가 실 한 오라기만한 그런 것 하나도 취하지 않겠다'고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러한 것은 그가 땅에 있는 것으로 하나님이 온갖 축복을 해 주시지만 자기 마음에는 항상 불만입니다. 마음에 자기가 소원하고 있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
이제 이렇게 소돔 왕이 떠나가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서가지고 그제야 '아브라함아 두려워하지 말라 너는 이제 모든 면에 부족함이 없이 모든 것이 충족하게 되었으니 두려워하지 말라 왜 나는 너희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이렇게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실 때에 아브라함은 만족이 됐습니다. 아브라함은 천하 재물을 다 줘도 그것으로서는 그저 하나님과 하나님의 동행을 얻기 위해서, 그런 것들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동행을 얻는 한 장소요 운동이요 계기들인 줄을 알기 때문에 알뜰히 그 법칙대로 하기는 하지만 그것으로서 자기는 욕망이 채워졌다고 그렇게 생각하지를 안한 사람입니다.
한상동 목사님도 제가 말 들어보니까 그 고향이 다대포인데 자기 아버지의 재산이 굉장히 많았다고 합니다. 그 분이 양자로 가 가지고 양부의 재물이 그렇게 많았는데 나중에 예수 믿고 난 다음에 그 부모님에게 말하기를 나는 제사를 할 수가 없으니 내가 양부에 대해서 자손으로 효성은 하겠으나 내가 제사를 지내지 못하는 사람이 됐으니 이 재산은 다른 데 다주고 내가 그저 믿으면서 부모님을 생시에 잘 효성 하겠다고 이러니까 노해서 시비를 하다가 네가 정 그러면 내가 양자도 파양을 하고 이 재물은 내가 다 다른 데로 주겠다 할 때에 단마음으로 그렇게 해 주기를 원해가지고 그 재물을 다 내어놓고 예수 믿는 길을 따랐다고 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런 일이 없어도 자원해서 아브라함이 롯과 이렇게 시비하고 소돔 왕과 더불어 말할 때에 이런 것처럼 하늘의 사람들, 모두 신앙의 사람들은 다 물질 문제에 초월하는 것은 이것은 단행입니다. 그렇기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불의의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네가 불의의 재물에 대한 이 물질면으로 하나님께 대해서 충성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도의나 명예나 권세나 그런 일에 대해서야 네가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러하다가 하나님께서 '나는 너희의 방패와 지극히 큰 상급이 되겠다.' 이러니까 아브라함에게는 만족입니다. 그러면 그 이상 원할 게 없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하나님 되고 자기의 모든 생활에 하나님이 동행하시고 자기의 힘으로 방어하지 못할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방어해 주시고 자기가 건설할 수 없는 모든 건설을 하나님이 해 주시고 한다 하니까 자기에게 대한 모든 그 파괴와 건설을 하나님이 주관해 주신다고 하니까 그 이상 더 없는 만족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에게 요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지극히 큰 방패와 상급, 하나님이 나의 방패와 상급이 되셨으니 이로서 만족하고 그 이상 내가 구할 것이 없는데 그러면 주시는 이 복을 어디에다가 전하겠습니까, 어디다 상속을 시키겠습니까, 내게 무엇을 주려고 합니까, 이렇게 큰 것을 큰 축복을 은혜를 나에게 베풀어 주셨으니 이 은혜를 내가 우매 무지할 뿐만 아니라 망령과 강퍅한 마음으로 주님의 대적이 되어 있는 이 가나안에 있는 이 백성들에게 내가 상속을 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나를 따르고 있는 내 종업의 이 모든 종들에게 이 큰 축복을 상속을 하겠습니까, 어디다가 상속을 하겠습니까, 그것을 아브라함이 걱정해 가지고서 물었습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가나안에 있는 족속들도 아니다 네 집에서 지금 따르고 있는 모든 종들도 아니다 네 몸에서 나는 그 씨로서 이 축복을 상속하게 되리라' 그렇게 말씀을 하시고 아브라함은 그때 나이가 백세 가까이 구십구 세 때인데 아무 것도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을 하시니까 아브라함이 '아, 이 큰 축복을 내 혈육의 자손에게 이렇게 하나님께서 주셔서 상속을 시킨다고 하니 마음에 얼떨떨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데리고 한데 나가서 하늘의 별을 보이면서 네가 이 별의 수를 헤아려 봐라 이 별의 수를 네가 헬 수 없는 것같이 네 자손이 천하에 퍼질 터인데 자손의 수를 헬 수 없으리라, 너에게 내가 방패와 지극히 큰 상급이 되어진 이 축복 이 큰 은혜를 네가 대대로 잘 보존을 해야 될 터인데 이 은혜 이 축복을 어디다가 상속을 시킬까 하는 상속시킬 것을 염려를 하니 참 네가 이 축복을 네 평생 잘 간수하고 또 대대토록 이것 잘 간수해야 되겠는데 이 간수할 상속자를 네가 염려를 하니 하나님이 만족입니다.
그래서 '네 몸의 씨가 상속자가 되리라' 했습니다. 나이가 백세가 다 되어 가는데 아이도 못 낳았고 벌써 사라는 늙어서 쪼그라진 할머니가 돼 가지고 있고 이런데 도무지 참 얼떨떨한 말이지요. 이러니까 데리고 나가 가지고서 공중에 별을 보이면서 '이 별의 수와 같이 많게 되리라' 이렇게 하나님께서 말씀을 했습니다. 그럴 때에 이제는 아브라함이 그 사실을 믿었습니다.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절에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이렇게 소중하고 귀중히 여기고 이 은혜를 어디다가 상속할까 나는 나이가 많으니 곧 죽을 터인데 내가 죽고 나면 이 하나님의 지극히 큰 은혜를 어디다가 상속을 시킬까 어디다가 계대를 시킬까 하는 이 문제를 첫째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렇게 재물을 많이 주시고 자기 집에서 훈련한 군대가 오대 연맹국도 이기지 못한 그런 강한 사대 강국을 저의 집의 훈련병으로 이겼으니까 얼마나 그 인권도 셉니까? 이런 축복을 줘도 아브라함이 이것을 어떻게 보존할까 하는 그런 염려를 가지지 안했습니다. 이 권세를 어떻게 하면 잘 보존할까 이 물질을 어떻게 하면 잘 보존할까 그렇게 많은 재물을 조카 롯으로 더불어 시비가 있을 때에 이 재물을 어떻게 하면 내가 하나도 축내지 않고 잘 보존을 할까 이런데 대해서는 승강이를 가지지 안했습니다. 참 대인이요 참 선이 굵은 사람이요, 포부가 큰 사람입니다. 뭐 거기 대해서는 하나님 비위 상할까 해서 그것이 어찌 됐든지 그 숙질간에 윤리를 버리지 안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지 않고 지켜서 '네 마음대로 네 좋은 대로 택해라' 했고 또 소돔 왕이 와가지고 그렇게 큰 문제가 있어도 그것을 당장에 그 실오라기 하나도 손대지 안하고 포기하는 그런 일은 했지만 하나님이 '내가 너의 방패와 지극히 큰 상급이 되겠다.'하는 이 하나님의 축복에 대해서는 아브라함이 이 복을 받아 가지고서 어떻게 해야 이 축복을 내가 잘 간수하겠습니까 하는 여기에 대해서 염려를 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 씨로 이렇게 될 것을 말하고 데리고 나가서 하늘의 별을 보이면서 이와같이 네가 받은 이 축복을 상속 받아 가지고서 보존할 그 자손이 이렇게 많으리라 하는 것을 말씀하실 때에 아브라함이 그 사실을 그렇게 될 것을 믿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지극히 큰 은혜를 내게 주셨는데 이 은혜를 상속받을 자손이 하늘에 별과 같이 많아 가지고서 이 복을 상속받는다 하니 아브라함에게는 만족이 됐습니다. 이 사실을 아브라함이 믿었습니다. 믿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의로 정하셨다' 이렇게 인정하고 안심할 때에 그것을 '아브라함은 의라 네 행동이 내게는 만족하다' 하시고 의인으로 인정했습니다.
그러하고 난 다음에 아브라함은 그 이상을 더 요구하지를 안했습니다. 안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또 한가지를 자원해서 말씀하십니다. 7절에 또 '그에게 이르시되' 여호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이 이것은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로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네가 이 큰 축복을 잘 보존할 대대손손을 생각을 했으니 참 내게 만족하다 이 지극히 큰 은혜를, 인류에게 대해서 제일 큰 지극히 큰 은혜를 네가 받아 가지고 '이 은혜를 어떻게 감당할까 내가 죽고 난 다음에 어떻게 감당할까' 이 은혜 감당할 일데 대해서 네가 이렇게 제일 마음에 감당할 여기에 대해서 염려하고 땅의 것에 대해서는 '내가 어떻게 보존할까' 이런 염려는 하나도 내 앞에서 하지 안하고 이 큰 상급을 준 이 은혜를 어떻게 보존할까 하는 것을 네가 염려하니 하나님에게 만족이 되어서 '이러 이러한 자손이 있으리라' 하니까 아브라함이 이제 안심하니 그 원하는 소원과 그 안심하는 거기에 그만 하나님께서 만족하고 그만 아브라함에게 쏵 쏠렸습니다.
아가에 '네 눈으로 내 마음을 빼앗았고 네 목에 구슬 꿰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다' 하는 그 구슬 꿰미란 말은 목에 다는 건데, 목에 구슬을 꿰어 목에 다는 건데 그 성도의 속에서 마음에 요런 생각 저런 생각 요런 소원 저런 소원 마음의 작용의 그 아름다운 작용 하나 하나에 하나님은 그만 폭 녹아 버립니다.
폭 쏠려 버립니다. 거기에 그만 꼼짝을 못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네 목에 한 구슬 꿰미로써 내 마음을 다 빼앗았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만족하고 그 이상 아브라함이 모를 때에 하나님이 자원해서 또 말씀합니다. '네가 이 은혜를 사람에게 대해서는 어떻게 어떤 사람에게 이 은혜를 상속시켜 보존할까 이렇게 네가 생각을 가졌지만 다른 것 하나는 네가 생각을 가지지 못했다 그러면 이 은혜를 어떤 장소에서 어떤 사업을 하면서, 어떤 장소 어떤 직업에서 이 은혜를 보존할까 하는 그것은 네가 생각하지를 못했는데 나는 네게 대해서 이 지극히 큰 은혜를, 어떤 위치에서도 또 어떤 그 직업에서 이 은혜를 감당하고 보존할 것을 내가 미리부터 생각하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출발하라 해서 인도한 여호와 네 하나님이시다' 말씀했습니다. 그럴 때에 아브라함이 어떻게 좋아 놨는지 8절에 '그가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으로 업을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이렇게 이 땅으로 말하니까 얼핏보면 물질주의자들이 생각해 보면 그 땅을, 가나안 땅을 업으로 주려고 하니까 아브라함이 그만 거기에 눈이 뜨여지고 그 지극히 큰 상급이니 방편이니 하는 데에는 예사롭게 생각했다 이렇게 보여지기 쉽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을 말했지만 가나안에서 줄곧 나그네로 우거하고 지냈습니다. 그가 뭐 땅에 있는 그 소욕을 가지지 안했습니다. 이런데 가나안을 주려고 이래 하니까 좋아서 '이 가나안을 나에게 업으로 주는 이것을 내가 뭘로 가지고 믿겠습니까' 이렇게 말한 것은 마지막으로 그 어떤 장소에서 어떤 그 직업에서 하나님의 큰 축복의 은혜를 감당하는 이 세상 믿음의 생활을 할 것을 말씀하니까 내가 이 땅을 업으로 주님이 주시는 것을 내가 무엇으로 알리이까 하는 이 말은 위에 것을 다 연결 시켜 가지고서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지극히 큰 축복과 상급을 나와 내 자손 대대로 누리도록 해 주시려고 약속하시고 이 축복을 세상에서는 누리되 어떤 장소에서 누리며 어떤 업에서 누릴 것까지 주님이 다 이렇게 가르쳐 주시니 이것을 내가 무엇으로써 알겠습니까? 또 무엇으로 그 증거를 하나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말할 때에 '네가 제사를 드리라 그러면 이렇게 내가 너희에게 해 주실 그 사실을 네가 믿어질 수 있는 증거를 더 확고히 해 주겠다'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하나님이 우리의 방패가 되시고 우리의 지극히 큰 상급이 되시는 이 사실을 계약으로 우리가 받았습니다.
계약으로 받았지만 우리가 믿음이 모자라면 이 계약이 우리에게 오지를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씨'라고 이랬는데 그 씨는 곧 예수님을 두고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삭의 계통에서 주님이 나시고 주님이 나심으로 그 혈육 자손이 신앙 자손으로 이렇게 계대 됐습니다. 그 족보를 보면 신앙으로 계대되어 나오되 친손으로 외손으로 친손으로 외손으로 신앙을 따라서 이렇게 계대해 나가다가 마지막에는 예수님께서 그 외손으로, 어머니는 마리아지만 아버지는 없는, 성령으로 잉태해 가지고 예수님께서 나시고 난 다음에 비로소 천하 온 인류에게 이 신앙의 종자는 퍼져서 이제 천하 모든 인류가 다 아브라함의 신앙의 자손들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될 것을 말씀을 하시고 또 어떤 장소 어떤 처지에서 이렇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아브라함이 받은 이 큰 축복을 우리가 상속받을 우리입니다. 또 법적으로는 상속을 받아 가지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그러면 상속을 받아가지고 있는 우리들은 할 일이 무엇인가? 할 일은 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아브라함이 이 사실을 믿을 때에 하나님이 의로 여기심 같이 우리가 할 일은 이 사실을 우리가 믿고 사는 이것이 첫째 할 일입니다. 믿는 것, 그러면 하나님은 나의 방패가 되시기 때문에 어떤 그 강한 대적이 와도 그 대적 앞에서 하나님이 그 대적이 내게 대해서는 털끝만큼도 해하지는 못한다는 이 사실을 믿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공산주의자들이 첩첩이 싸서 자기를 고문과 고행에서 가죽을 벗기고 눈을 빼고 혀를 잘라도 결단코 공산주의가 자기에게 털끝만큼도 해하지는 못하고 해할 자는 자기의 자유성에 있는 것이니까 자기가 믿음을 떠날 때에 그라 해할 수가 있지, 믿음을 떠나지 않으면 혀를 자른 것이 눈을 뽑은 것이 살을 깎은 것이 그것이 한없는 영광이요 이제 무궁세계 하나님 앞에 가가지고 혀도 눈도 다 신령한 것으로 바꾸어져서 영영한 것으로 얻었는데 그때에 그 혀는 주와 및 진리를 위해서 형제에게 신앙의 빛을 보이기 위해서 자기의 눈도 아끼지 안하고 가죽도 아끼지 안하고 아픈 것도 상관없이 끝가지 이 증거한 사람들의 그들의 얻는 그 영광과 존귀가 어떠하겠습니까? 그래서 산다씽은 설교할 때에 '주를 위하여 세상에서 이런 것 저런 것 모든 것을 아낌없이 버려 주를 섬기고, 사랑한 사람들이 잠시 후면 영광 중에 주님과 같이 있을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다'했고 이 사실을 깨달은 그는 일생을 독신으로 충성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믿으면 이 축복이 우리에게 옵니다. 온 세상은 우리로 하여금 이 축복을 감당해서 참 하나님이 우리의 방패가 되신 이 방패의 효력을 받도록 이 방패 되시도록 하기 위해서, 약한 데에 방패가 됐으면 그만큼 적게 하나님이 방패 됐고, 천하가 다 막아도 막을 수 없는 어려운 일에 하나님이 내 방패가 됐으면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더 크게 방패가 되셨지요. 이러니까 세상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으로 더 우리의 하나님 되게, 하나님과 더 밀접하게, 하나님과 더 가깝게 하나님과 더 친밀하게 무궁 세계에 더 존영하게 이렇게만 해 주는데, 우리가 믿음이 없어서 그 손해를 보지 믿음이 있으면 영광이 될 터인데 믿음이 없기 때문에 그로 인해서 꺾어지면 손해지. 독침을 가지고 '너 죽인다' 할 때에 믿음이 없어서 하나님이 방패해 주실 이 믿음이 없어서 죽기를 두려워함으로써 그에게 종 됐으면 자기는 믿음 떠났기 때문에 하나님이 방패가 안됐지 그러다가 독침에 찔려서 죽어도 하나님은 내 방패라는 걸 믿었으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함으로 변절되지 아니함으로 독침에 죽었으면 그 사람에게 있어서 독침이 그 사람을 손해 보였습니까, 유익을 보였습니까, 장선생, 뭐이지? 어떻게 유익을 보였어? 어떻게?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으로 결점 지웠지. 하나님이 방패 되시는 것을 의심 없이 믿었지.
이러니까 그로 인해서 다 떨고 배반할 모든 사람들보다 하나님과 가까워졌지.
하나님께서 인간 구원을 맡겼는데 독침에 찔려도 신앙을 요동치 안했으니까 인간 구원에 큰 선물을, 빛을 줬지. 이러니까 모든 만물과 만인간이 존대하지 하나님이 그를 인정하고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지. 그렇기에 우리 할 일은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이 이를 믿으니 그를 의로 여기셨다' 이랬습니다.
만족했어.
또 하나 우리 할 일은 무엇입니까? 그러면 내가 이 큰 축복을 받은 이 축복을 이 땅위에 있는 동안에 어느 자리 어느 사건에서 내가 이걸 누릴까 자기는 생각 못했지만 이 사람 만나 가지고 생각할 게 아니라 '이 영광된 이 축복을 네가 누릴 자리에서 누려야 되지 누릴 사건에서 누려야 되지요. 축복을 누릴 수 있는 장소와 사건이 결정되었는데 그 장소와 사건을 네가 바로 맞추지 못하면 헛일이다 요 장소와 사건을 내가 너에게 정해 놨다' 할 때에 아브라함은 여기 대해서 확신을 주옵소서 하는 것을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큰 상급을 받았고 큰 방패를 받았습니다. 이 방패가 내 방패가 되게 하는 이 일은 어느 곳에서 될 것인지 어떤 사건에서 될 것인지 하나님께서 내 지극히 큰 상급이 되어진 이 상급이 내 상급으로 영원한 상급이 되어지는데는 어떤 형편에서 확정이 될는지 어떤 어떤 장소에서 요것이 다시 변동 없이 영원 확정이 되어질는지 여기에 대한 확신을 달라고 아브라함이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여러분들 인정이 됩니까? 그렇기에 믿는 사람들이 거주를 제 마음대로 못합니다. 아, 여기는 약소국이고 적화될 나라니까 적화 안될 강대국으로 가자 강대국으로 가자 적화 안될 강대국으로 가자, 저 좋게 하기 위해서 제 편리 위해서 제 유익 위해서 장소를 택한다는 것을 벌써 아브라함에게 주신 이 큰 축복은 내어놓은 것입니다.
내어놨소. 그는 발람이 돈을 따라 간 것과 같이 벼슬 따라 간 것과 같이 벌써 갔습니다.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간다' 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자리에서 영원히 내 방패와 내 상급이 되어 주셨는데 이것이 완전히 끝을 맺을 건가 영원히 변동 없는 확정이 될 것인가 이것만을 보존하기 위해서 이것만이 확정되는 이것이 소망이요, 땅의 것이 소망이 아니기 때문에 미국 같은 데 가 가지고서 실력 다 갖추어서 우리 송목사님도 어서 빨리 나오겠다고, 서목사님도 어서 빨리 나오겠다고 합니다. 왜? 거기서도 교수노릇 합니다.
거기서도 교수로 지나면서 잘 살 수 있소. 그런데 뭣 때문에 여기서 다 피난가는 우리 한국에 오겠습니까. 뭣 때문에 오겠소. 다 그들은 땅에 것을 욕망하지 않습니다. 하늘의 것을 욕망합니다. 이러니까 어떤 사람들은 거기 교회서 자꾸 청하고 마구 강권해도 안갑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이 상급과 방패된 이 사실이 거기서 완성을 할 수 있다면 날라 가겠지. 거기가 완성할 곳이 아니요, 완성할 것을 찾기 때문에 이곳이 완성이면 그 삶은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또 자기는 어떤 경우에서, 업이라는 어떤 경우 자기는 회사 사장을 하면서 그러할 건가 목회자가 되면서 그럴 건가 자기는 공산주의 앞에서 그럴 건가, 공산주의를 못 만나고 민주주의에서 여기서 진리와 불의로 투쟁하면서 그럴 건가, 어느 사건에서 어느 생활에서 이 일이 될 건가, 공산주의자들 그들이 칼로 찌르고 고문 고행을 할 때에 거기서 될 건가 어디서 될 건가? 며칠 전에도 제가 어떤 사람에게 이야기를 했는데, '산곡의 백합화'를 우리 하기 아동 성경 학교 때 부르기 때문에 이야기했는데 그걸 즐겨 부르던 변판원선생님이라고 있었습니다. 저 거창 봉산 교회에 있었는데 그가 그 칼 바위 뒤에 삼봉산이라고 그 높은 산인데 호랑이 굴이라 하는 굴인데 거기 가서 기도하고 며칠씩 있을 때에는 그 큰 태산 밑이니까 아주 젊은 사람이 올라와도 거기까지 올라가려 하면 아마 아침에 일찍 나서면 점심때가 늦어야 도달되거나 그럴 것입니다. 아마 오후쯤 돼야 갈 터인데 집에서 저녁 딱 먹고 볼 일 봐 놓고 가정에서 핍박이 심해서 할 일 다 해 놓고, 어떻게 그 가정에서 학대를 주는지 생전 고무신을 장가 갈 때 한 번 얻어 신었지 돈 한푼도 제 마음대로 못쓰고 이 나무 피죽을 두껍게 한 이 놈을 구멍을 뚫어 가지고 삼으로 매어 가지고 이걸 신고 다닙니다. 그래도 풀 다 베고 집에서 나서 가지고 거기까지 올라오면서 막 날아올라 옵니다. '산곡의 백합화' 이 찬송을 부르면서 와 가지고 거기 와서 찍해야 한두 시간 있거나 거기서 찬송하고 기도하고 또 새벽에 일찍 내려가서 자기 새벽일 합니다.
그렇게 준비한 사람인데 공산주의자들이 후퇴할 때에 잡아 가지고 가서 구듬재라고 그 엉큼한 재가 있습니다. 그 재에서 십자가를 이렇게 나무에 달아 놓고서 성경을 가지고 '네 이놈아 이 거짓말을 믿느냐' 성경을 그들이 인정 안 되는 건 다 거짓말이라 합니다. '이놈아 이 거짓말도 네가 믿느냐?' '믿습니다' 이러니까 칼로 한 번 푹 찌르고 또 확 찔러 빼내고 또 '이래도 이놈아 믿나?' '믿습니다.' 일곱 번이나 찔려도 '믿습니다.' 이러니까 '이놈 배지 속에 뭐이 들어서 이러나' 하면서 칼로 가지고서 배를 도렸어. 앞에서 배를 도리니까 그 드는 칼로 도리니까 등어리 등심 이 일대까지 오려져서 구멍이 이만큼 뚫혀졌습니다. 그럴 때까지도 '믿는다' 하고서 '형제들도 예수 믿어 구원 얻으라'고 이렇게 강력하게 증거하고서 거기서 순교했습니다. 그랬는데 그걸 모를 건데, 거기에 같이 안믿는 사람들도 잡혀 갔는데 그 사람들은 죽이지 않고 잡아 천천히 골라 가려 했는데 거기서 그만 그 광경하는 바람에 이놈들이 거기에 도취가 돼가지고서 이 사람들에게 대해서는 관리가 모자랐다 말이요. 그만 배 그리는 것 보고 마지막 그만 죽는 것 보고서 얼마나 놀랬던지 그만 이 사람이 도망쳐 나왔습니다. 그래 도망쳐 나온 사람이 와가지고서 증거를 했어요. 그때 그 사람을 교회에서 교회장으로 장례를 치뤘습니다. 그 삶이 거창에서 순교한 중에 제일 멋진 순교를 했습니다. 아주 그 사람은 하나님을 방패로 삼았습니다.
이러니까 인민군이 그렇게 한 것이 한 번은 죽는 건데 그 생명도 다 헛되지 안했고 죽음도 다 아주 이용을 잘 했습니다. 그 몸뚱이 가지고 이용을 얼마나 잘했습니까? 이 믿음으로 나갔으니까 하나님께서 그에게는 하나도 손해 가게 하지 안했습니다. 이러니까 그 원수가 그렇게 한 것이 이 변선생 영광스럽게 존귀하게 하늘나라에 가서 다 그렇게 한 것이 환하게 보이고 다 알기 때문에 모든 성도가 그 앞에 다 머리를 숙일 것이고 하나님이 그분을 제일 사랑함으로 가깝게 이래 한다고 해서 아무도 시기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 그가 세상에 있는 동안 주를 사랑하고 믿은 것이 환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또 그분의 인도를 받으려고 애를 쓸 것입니다. 참 믿음 가지고 방패 됐어. 믿음을 지켰기 때문에 그 공산주의가 한 그것이 그에게는 지극히 큰 상급이 됐습니다.
아브라함은 생각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네가 요것도 알아라 네가 어느 장소에서 어느 직업에서 어느 생활에서 네가 이 축복을 보존할 것을 내가 너에게 정해 준다' 하시면서 가나안을 말씀을 했습니다. 가나안을 말씀하신 그것은 아브라함에게는 그랬으나 가나안은 뭐이요? 하나님께서 '여기 있어라'는 그 곳이요 하나님이 인정하는 그곳이 오늘 우리에게 가나안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어떤 것이 가나안이냐? 하나님께서 여기 있어라 하는 그것이 우리에게 가나안이요. '변판원아 너는 요렇게 십자가로써 칼에 찔리는 요 자리에서 나를 섬기라 요 자리에서 나를 높이라 요 자리에서 나를 네 방패로 네 상급으로 삼아라' 하는 것입니다. 우리 할 일이 믿을 것과 그 장소와 사건 요 두 가지가 우리 할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는 땅의 것을 구하지를 않습니다. 매일 구하기를 '주여 내가 어느 지경에 이르렀든지 어느 지경에 이르든지 주를 따라 주를 따라 가려 합니다. 어느 장소에서 어느 사건에서 장기간의 고문과 고행에서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그 건에서 내가 주를 입어야 되겠고, 주를 차지해야 되겠고, 주를 섬겨야 될 터인데 그런 그 도수가 높을 때에는 내 힘으로 안되니까 지극히 큰 능력이 도와 주셔서 이 일을 감당케 해 주십시오' 하는 것을 기도하는 것이 성도들의 기도인 것입니다. 매일 성도들은 이런 것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이 은혜를 받았으니 이 은혜를 누구에게 전달할까 이것이 성도들이 원하는 것이라 자기의 본국의 그 평안한 자리를 다 두고도 미개국에 가 가지고서 선교하려고, 복음을 전하려고 도 이 큰 축복을 누구에게 전할까 해서 주일학교 반사들은 근근히 먹는 것을 못먹고 못입고 이것을 토큰을 줘가면서 인간 구원의, 이것을 다 깨닫고 하는지 몰라도,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큰 축복을 상속시키려고 또 이 큰 축복을 상속을 시키고 또 이 축복을 어느 장소 어느 사건에서 내가 완전히 종결을 지을까 하는 여기에서 사는 사람들이 성도입니다. 이것이 순생자요. 이것이 순교자요.
저도 우리 서부 교회의 유치반 중간반 장년반에 대해서 기도하는 것은 늘 그것입니다. '이 무리들이 다 순생자가 되게 해 주옵소서 다 순교자가 되게 해 주옵소서' 순생이라면 주를 위해서 날마다 사는 생활에서 자기는 죽고 주님은 자기에게 살고 자기 생활에 주님이 주장하고 자기 주장을 하나도 못해 그러면 자기 모든 생활에 자기는 다 양보하고 죽은 자고 주님이 주장을 하셔 이것이 순생자입니다. 마지막에 죽을 때에 자기는 죽고 거기에 진리만 살아 역사해.
주님만 거기서 주장하시고 공산주의 앞에서 주님만 거기서 나타내고 주님만 높이고 자기는 죽고 그것이 순교자입니다. 생명을 바치기까지 하는 그것이 순교자요.
중간반 반사 선생님들은 지금 산에서 단식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어제도 모두 비가 오는데 그래서 사람을 시켜 비닐을 사다가 줬는데 비가 안 와서 다행입니다. 늘 비 맞고 비속에서 그렇게 단식기도하고 있소. 그러니까 자기네들은 희생이 되지만 주님은 영광을 받았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하고 있는가? 8월 집회 이 중간반 학생들이 이렇게 막는 것이 많으니까 자유로 갈 수 있어야 될터인데, 건강을 줘야 될터인데, 형편을 줘야 될터인데, 또 경제가 없으니까 경제를 줘야 될터인데, 가서 건강해야 될터인데, 아무 가서 은혜 받는데 지장이 없어야 될터인데 그런것 위해서 기도합니다. 가서 이 학생들을 잘 통솔을 해야 될터인데, 하나님이 함께 해 주셔야 되겠는데, 그 전부 이 은혜를 상속시킬 것을 염려합니다. 그러면 자기에게 그 은혜가 든든해집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