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신앙

 

1989. 1. 7. 토새.

 

본문: 히 11:8-12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

 

 지난밤에 중간반 반사 O집사가 말씀을 증거했는데 잘 증거했습니다. 말씀을  듣고 진실되게 깨닫고 자기가 알면 망령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진영에는  교역자들이 이래 보면 그만 교만해서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과 떨어지고 탈선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말을 할 때에는 상대방이 알아듣도록 상대방을 이해시키고 납득시키고 그  사람을 정복하는 데에다가 주력을 하는 것은 시험에 듭니다. 그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니까 그것보다도 내가 말하는 이 말이 사실에 맞나 안 맞나 그 면을 주력을  해야 됩니다. 맞으면 상대방이 이해하든지 못 하든지 사실에 맞으면 그 말은  보증되는 힘이 있습니다.

 또 그보다 더 주의할 것은 내가 이 말 하는 것이 하나님이 인정하시나 안  하시나 그것을 살펴야 됩니다. 사람들이 여간 어떻게 한다 할지라도 그 말 하는  것이 사실에 좀 삐뚤어졌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인정하시면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기생 라합이 말한 것은 그 사실에는 삐뚤어졌으나 하나님이 인정을 했습니다. 또  하나님이 인정하는 것보다도 이 일에 하나님이 협동을 해주시나 안 해주시나 그  면을 생각하면서 말을 해야 될 터인데, 요새 우리 진영에는 내가 말을 들을 때에  그거 참 답답하고 기막힌 것은 이 면은 생각지 아니하고 어쨌든지 사람에게,  어리석은 사람에게 이해나 시키고 납득을 지키기 위해서 반거짓말을 대 가지고  꾸며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하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는데, 그러면 그  방편을 쓰다 보면 얼마 안 가서 탈선합니다. 내가 지금 몇 가지 말했습니까?  첫째는 상대방에게 납득과 이해를 시키려고 주력하는 그것보다 뭐이 낫다 했소?  사실이 더 권위 있습니다. 또 사실보다 말을 할 때에 그 것보다 뮐 더 권위 있게  생각해야 된다 했습니까? 하나님의 인정. 그보다 또 뭐입니까? 하나님이 협조해  주나 안 해 주나 그 면을 생각하고 하는 요것을 항상 애를 써서 하면 고 사람은  말을 못 하는 사람이오. 말을 역부러 더듬으려고 더듬는 게 아니고, 말을 하면서  거게 맞는가 안 맞는가 그것을 찾아서 하기 때문에 말이 항상 졸면, 말 못하는  사람 같은 그렇게 되어집니다.

 그걸 생각지 아니하고 상대방에게 그저 어쨌든지 이해만 시켜서 설득만  시키려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은 마구 거짓말 참말 그래 반거짓말 또  이런 걸 마구 주 대 가지고 말을 하기 때문에 들어보면, 어리석은 사람들은 당장  그렇지마는 그래도 속에 중생된 그 영이 있기 때문에 조금 지나가면 그것을  까뭉캐서 없앱니다. 중생되지 아니한 자들은 그게 자라지만 중생된 자들은 그것을  까뭉캐서 없애 버립니다. 그걸 가리켜서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말한 것이  목자라는 것은 예수님을 가리킨 것인데, 하나님이 인정하는 그런 말을 듣지 그 막  거짓말 참말 주 대 가지고 그저 사람이나 설득시키는 그런 말 듣지 않습니다.

 지난밤에 증거한 것이 진실되게 깨닫고 증거하려고 애를 써서 증거를 해서  잘했습니다. 그렇게 나가면, 뭐 그 방편만 가지고 나가면 목회 나가 가지고 잘할  수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여러분들이 내가 지금 네 가지 단계를 말했는데, 요것을  잊어버린 사람은 얼마 안 가서 외식 교역자가 됩니다.

 내가 서울 가면 사람들 버린다, 속화된다. 옛날은 한국에서는 '말은 나거든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나거든 서울로 보내라' 했는데, 그때도 나는 의문이 지금  생겼습니다. 대개 서울 가서, 옛날도 서울 간 사람들이 불량자고 착취자고 그래서,  서울에 그 성받이에서 오르내리는 사람이 있으면 그 성받이의 살림살이는 그세  다 떨어먹습니다. 그래 가지고, 옛날은 가족 단위이기 때문에 뭐이 하나 출세하려  하면 집안 살림 다 떨어 거석하는데 과거보러 다닌다고 해 가지고 서울 다니면서  뭐 거기서 뭣을 없어도 있는 듯이 뭐 배경이 있는 듯이 이래 쌓아니까 뭐이  되는가 하고 살림 다 떨어 주고, 다 떨어먹고 보면 진실이 없는 거짓부리라.

 지금도 내가 요새 들어 보면 서울 사람이 제일 어리석소. 데모 바람도 보면 서울  사람이 제일 어리석다 하는 것이 표가 나오고 또, 이 대통령 선거 투표의 표수를  봐도 서울 사람이 제일 어리석다는 것이 표시가 나오고, 아주 시골이지마는 고성  사람들이, 고성 사람 여기 있습니까? 고성 사람 있으면 손 한번 들어 봐요. 고성  사람들이 제일 한국에서는 진실합니다. 고성 사람들이 제일 진실해. 통영  사람들을 말하지만 통영 사람들은 좀 외모 외식이 많고 고성 사람들이  진실합니다.

 나는 그거 내가 그 사람들 만나봤소? 거기 가 집회야 하기야 했지마는 집회하고  내가 아는 게 아니고, 투표하는 그런 것 투표한 것 또 모든 여론들 그런 것을  듣고 조사할 때에 그 환하게 다 압니다. 거게 뭐 맨 아주 조 지방은 조  순거짓말쟁이 잔꾀뿐이로구나. 새앙쥐 모양으로 잔꾀뿐이지 널리는 못 본다, 그런  거. 저거는 또 끈질끈질하게 쇠 심줄 모양으로 그저 그런 끈기는 있다. 표리가  다르다. 그 모두 그걸 통계해서 OO도는 산중호출이라, 산에서 뛰어나은 범  한가지라. 그놈 왈칵 뛰어 나왔으니까 뭐 다른 사람도 겁이 나고 야단지기지마는  그거 감당 못 합니다. 나중에는 잡히고 마요. 그러기 때문에 OO 사람들이 힘을  못 써.

 하나님 말씀을 들을 적에 바로 듣고, 자꾸 내가 말하는 것은 '여게서 가르친  거게서 자꾸 깊이 들어가라.' 내가 처음에 말할 때는 그거는 한 치밖에는 말을 못  하는 것이, 그것도 못 들으니까 한 치를 말하면 그 한 치 거게서 두 치로  들어가고 세 치로 들어가고 한 자로 들어가고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다.

 그러면 예를 들어 어떠한 설교에 다섯 가지를 말해, 다섯 면으로 말했으면 요  면으로 말했으니까 '나는 딴것 말해야 되겠다' 요래 가지고 여섯 가지를 말하려고  하지 말고, 다섯 가지를 말했으면 다섯 가지 여게서 다섯 가지로 파고 들어가  봐라. 요 금줄을 파고 들어가는데 딴 구덩이를 내려고 하지말고 요 줄로 파고  들어갔는데 만일 열 자를 파고 들어갔으면 딴거 내려고 말고 그 열 자 거게서 더  스무 자 서른 자 마흔 자 뭐 백 자 얼마든지 파고 들어갈 수 있고, 그리 되면  바로 되기 때문에 요 가는 길을 바로 지금 많은 테에서 생각해 가지고 바른 길을  잡아서 그래 가기 때문에 그리 들어가는 사람이면 나 십 배 백 배 위대한 설교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요게 왕되고 싶어, 거게서 말해, 백 목사가 그래 말했으니까 나는 요  딴걸 요게서 말할 수가 없느냐? 딴걸 말하기 때문에 그게 나중에 보면 되는 것  같지마는 그게 탈선이 돼 버리고 말아요? 저는 임시만 보고 한 것이지, 길게를  보지 못하고 지금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는 계시의 도요 인간들이  만든 도는 전부 철학의 도입니다. 진화의 도요.

 지난밤에 증거한 것을 아마 다른 데서 더러 온 사람들이 있겠다 해서 요거  하나라도 잘 알아서 말해 주는 게 좋겠다 해서, 아주 지난밤에 증거를 잘했습니다.

잘했는데 그래 가지고 그분이 그걸 놓지 아니하고 자꾸 생각해서 파고 들어가면  자꾸 들어갑니다. 아브라함의 그 삼계단의 신앙을 말했는데 그 잘 말했습니다.

그러면 엊저녁에 말한 것이 몇 계단? 삼계단 말했어 사계단 말했어? 삼계단을  말했는데 실은 말 하기는 사계단 말했지? O 조사? 안 그랬나? 삼 계단이라고  말은 하기는 해도 사 계단 말해. 하나 더 말했지? 안 했는가, 그래? 이삭을 제단  드리는 거 그거 하나 더 말했지?  제일 처음의 것은 아브라함이 자기 부인, 자기 초월한 신앙입니다. 자기를  부인했습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그것은 그게 그래 말만 그래 해 놨지  하나님이 가라 했으니까 하나님 인정하는 거 또 자기가 또 자기를 믿는 거.

하나님 믿는 거 자기 믿는 거 '이래 가면 지금 앞으로 어찌 되겠노?' 하는 그걸  생각하는 것이 다 본능이요, 자기 애착심이요, 생의 애착심이요, 자기를 사랑해서  애끼기 때문에 '내가 이러면 어찌 되겠노?' 하는 그것을 생각을 가지는 것이  필연입니다. 그게 자기요.

 그런데 자기가 자기를 생각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나 생각하는 게 크다 이러기  때문에 '이래 가면 어쩌 되노?' 하는 그런 걸 생각지 않아. 이래 되면 어찌 되노  해 봤자 가기가 그걸 생각하는 것이니까 자기가 생각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더  좋게 잘 생각하고 바르게 생각하기 때문에 거게서 '내 생각에는 이런데? 내  계산에는 이런데?' 그것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인정하나 안 인정하나 그런 데에  있지 않아. 자기 부인하고 자기를 초월하는 그 신앙을 가졌다 그거요.

 그거 엊저녁에 그것을 바로 말했어. 바로 말했는데 그거 조금 지금 혹 못  알아들었을까 싶어서 내가 말합니다. 그거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보다 하나님을 더  믿는 자기를 초윌한 그 신앙이라 그거요. 그것이 아브라함의 신앙이오. 또  둘째로는, 현재 눈에 보이기에 가나안 준다 하더니마는 가나안은 커녕 가나안에  가 가지고 행여나 줄까 싶어서 가 있어 봐야 삼 대나 있어도 그저 남의 밑에  우막살이 장막 생활 했지 그 지역을 차지해서 지역의 주격노릇을 못 했다  그말이오. 현재가 이래도 아브라함은 그외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어.

 그러면 자기 눈에 보이는 이 현실, 현재 되는 현실, 현실 이것보다 주님을 더  믿었다 그말이오. 현실을 부인하는, '현재 이런데?' 해도 주님이 말씀하신 약속하신  말씀은 '이런데?' 한 것보다도, '이런데 번연히 여기 없는데?' 없는데 이래도  아브라함온 하나님이 있다 했으니까. 눈에 보이게 환하게 없는 그 현실보다  하나님이 있다고 하신 말씀을 더 믿었다 말이오. 현실을 부인하고 현실보다 그  초월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졌어. 그것이 둘째로 믿온 것이라. 아주  중요합니다.

 셋째로는 또 이 사라가 나이 늙어서 뭐 할머니가 됐으니까 그거야 낳을 리가  없는 거라 말이오. 그런데 이러니까 인제 뭐 늙어서 지금 곧 다 죽어 가는데  이러니까 하나님이 이렇게 역사하시는 이 모든 생산법 하나님의 이 자연법, 나고  죽고 나고 죽고 하는 자연법, 하나님의 자연법으로 이거 본다면 아브라함이나  사라는 아이 낳으리라 하는 그런 것은 생각하지 못해요. 모든 자연법, 이제  늙었는데. 이제 뭐 지금 뭐 백 세가 다 돼 가는데. 할망탕구인데 무슨 아이  낳겠나? 이래도 그것을 부인했어.

 '하, 이제 늙었는데.' 이래도 '늙었으니까 너 백지 아이 낳는다는 거 그거 헛말  아니야? 부인해라.' 늙었으니까 아이 낳을 수 없다는 하나님의 이 자연법을  부인하고 그걸 초월한 신앙, 그것보다 늙어서 지금 죽는데 이래도 '하나님 말씀은  변치 않다' 이렇게 모든 자연 생산법을 부인하고 초월한 신앙을 가졌어. 이러니까  뭐 세상 이만치 가졌으면 다 됐다 그말이오.

 그 다음에 또 이삭을 드리라는 거 이삭을, 지난밤에 그 해석을 잘했어. 잿가루가  됐는데 이것이 아이를 아들을 낳을 거라 그말이오. 거게서 생사를 부인하고,  죽었는테, 죽었는데 뭐 하느냐? '죽어도, 죽어도 하나님 말씀온 있기 때문에  죽어도 상관없다. 재가 돼도 상관없다.' 생사를, 생사법이라 하면 모든 사람이  환하게 아는데 생사를 부인하고 그것을 초윌한 하나님의 신앙을 믿었다 말이오.

'죽었는데 무슨 소리 하노? 재가 됐는데 무슨 소리 하노?' '아니다. 재가 돼도 재된  그게 상관 없다. 하나님 말씀은 재가 돼도 그의 약속은 재된 그것보다도 더 권위  있다. 신실하다.' 이러기 때문에 재가 살아나 가지고, 아이 낳을 거를 그와 같이  지금 했다 그말이오. 그래서 아브라함의 신앙이 이런 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정을 했습니다.

 그러면 내가 지금 몇 가지 말했지? 네 가지 말했어? 세, 네 가지 지난밤에  O집사가 네 가지를 증거했어. 그렇게 진리를 깨달아 솔솔 나가면 딴데 갈 곳이  없습니다. 딴데 못 갑니다. 그러면 탈선 안 됩니다. 여기 지금 저거딴에는 옳다고  뭐 찬송가를 뭐라 하고 뭐 또 간판을 뭐라 하고 이러는데 그게 자멸 행위요. 그게  쉽게 알고 그렇게 한 게 아니라. 이 총공회 간판을 두니까 이거 들어오던 사람이  간판 보고 '이거 아니다.' 가 버린다. 말을 꾸며 내기를 어쨌든간에 잘 꾸며 내.

'간판을 총공회 간판을 달아 놓으니까 내나 전도해 가지고 오는 사람, 제대로  찾아오는 사람 오는 사람들이 예배당 문 앞까지 와 가지고 간판 보고 다 달아나  버린다. 또 거에서 억지로 끌어들여 가지고 예배당에 끌여 들여 놓으면 예배당에  들어왔다가 그만 달아나 버린다.' 달아나는 사람이 무슨 사람이냐? 달아나는  사람이 이 앞에 교회 들어와 가지고 교회를 야단치고 교회를 어지럽게 만들고  분탕지우고 이래 가지고 나증에 결국은 거게서 묻혀 가지고 끌고 나갈 사람,  교회를 어지럽게 해서 순조롭게 구원을 이루지 못하게 방해할 사람, 그런  사람들이오. 그거 다 다른 데 다니면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그 사람이 간판 알지  그리 안 하면 간판을 몰라요. 또 와 가지고 뒤에 요 복음으로 자라지 않고, 요  복음으로 자라지 않고 이 복음이 다른 복음과 다르다. 여기는 그렇다. 이제  엉뚱한 생각 가지고 딴것 보면서 흔들릴 그런 사람들이 찬송가 보고 그래. 이거  그런 게 아무 없는 사람들은 와 가지고 그만 찬송가면 찬송가 뭐다 이래 가지고  말씀을 증거하는데 말씀에 딱 붙들려 버린다 말이오.

 그러니까 이것이 일차 방어선에서 간판 가지고 방어하니까 적이 간판에 막혀  가지고 못 들어오고, 거게서 뚫고 들어온 것은 찬송가의 방어선에서 방어하니까  못 들어오고 나가 버리고, 인제 그 안에 그 다음에 이걸로 방어했는에 들어온  그것은 알맹이요 이 교훈으로 끝까지 길러도 될 수 있는 자들이라 그말이오. O  조사 무슨 말인지 알아들려? 잘 모르겠지? 똑똑히 알아들었으면 알아들었다 하고  잘 아직 이해 못하면 못 한다고 말해. 잘 못 알아 듣겠지? 그래. 알아듣겠어? 그  확실해? 적을 방어하는 일 방어선 이 방어선이라 하는 것이 확실히 느껴져?  그것을 내가 그 말해도 그 못 알아듣는 사람은 못 알아들어. 이러기 때문에 제가  스스로 망하지. '이게 찬송가 한 것이 이게 속화를 얼마나 방지하는 것이다. 속화  방지에 큰 역할 하고 있다' 이렇게 말해도 그 사람들 안 들어. 얼마 안 가서 그게  좀 고장이 나져요.

 오늘 아침에 이제 엊저녁에 내가 안 나와서, 엊저녁에 좋은 설교 들었은데  그것만 가지고는 조금 아직까지 알쏭달쏭한 사람들에게 더 내가, 여게 금요일날  은혜받기 위해서 온 분들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서 내가 다시 아침에 나서 가지고  그것을 재독을 했습니다. 그 네 가지.

 그래서 우리 진영에 금요일날은 다 모여 가지고 듣는데, 아직까지 내가 아는  것도 저희들이 배우려 하면 아직 많이 남아 있고 또 하나님이 자꾸 연상적으로  가르쳐 주시는 그거는 받을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는 이 세대에 하나님이  가르쳐 주려 하는 것인데, 요것을 못 오도록, 금 요일날 오는 걸 요걸 시기해  가지고, 금요일날 오는 걸 시기해 가지고 여게 오지 않고 저희들에게 가도록 해  가지고, 시기해 가지고 여게 오는 것을 반대한 사람들이 있다 말이오. 여게 오는  것을 반대한 사람들, 그래 가지고 반대한 사람은 뭐이냐? 여게 반대해서 오는 걸  반대하면 여기 안 오면 거기 오지 해 가지고 그래 하려 하는 그게 내나 고라라,  고라. 모세를 시기한 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되지.

 이래 가지고 금요일날 오는 것이 차차 차차 '그거 뭐 안 온다고?' 목사님이  처음에는, 목사님이 '오기 싫은 사람들도 차비도 없는데 오기 싫은 사람들을 자꾸  오라고 이래 놓으니까 안 오면 또 목사님이 어떻게 여길런가 하니까 억지로  강제로 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요래 가지고 살살 들어와 가지고 그것을 '이제  그래 나는 안 갑니다.' 안 갔다 말이오. 안 오고, 그래도, 강제로 와도 그 살리기  위해서 강제로 오니까 강제로 와서 들으면 고쳐지고 고쳐지고 그럴 때에는 와서  그러니까 아무 잡탱이 말이 없어. 그만 하자 하는 대로 바로 의사가 같애 쭉  갔는데, 안 오고 난 다음에는 제각각 깨달은 게 달라. 이러기 때문에 서울에 있는  복음과 서부교회 복음이 다릅니다. 그 사람들을 보면, 저희가 봐 알 건데? 내차  그럴게 아니라. 거기 가서 있는 사람들이 거게 보고 여게 보니까 '이거 뭐 좀  다르다' 하는 게 알아질 터인데. 그러면 달라졌으면 그게 맞느냐 이게 맞느냐? 그  둘 중에 맞온 게 하나지 뭐 둘이 될 리는 없다 그거요.

 이래 가지고 그랬는데, 인제 그래도 또 끝까지 오는 사람, 와서 오면 오는 사람은  그럴 건데 '자꾸 간다' 조금 권위 있는 사람들이 안 와도 교회가 부흥되니까 '안  가야 부흥되는 갑다' 또 이래 가지고 또 안 오는 사람들 있어. 안 오면 그거 제가  모르기 때문에 안타깝지. 일은 누가 하느냐? 진리가 합니다. 어제 아침에는 뭣  배웠지? 어제 아침에는 뭘 배웠어? 여기 O집사? OO서 온 O집사? 신앙 의지는  뭐라고? 하나님이 자기에게 있는 신앙 의지를 만들어 준 것이지 제가 스스로  만들은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헛일이라. 그걸 어제 아침에 내가 증거를  했어. 그래, 어쨌든지 알아야 됩니다. 바로 모르면 구원 바로 이루지 못하요.

 이번에 우리 전도지 보내는 거 이거 지금 사람들은 웃고 있지마는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당신이 원하고 원하고 '이 말 한 마디 해 달라. 이 말 한 마디 해  달라.' 곧 지금 불심판이, 제일 급한 일, 큰 일이 있는데, 이걸 사람들이 다 마귀란  놈에게 미혹받아 가지고 잊어버리고 있으니까 이걸 좀 알도록 '이 급한 일이 있다'  요 말 한 마디, 당신이 그 말을 해 달라 하는 것을 얼마나 원하고 계시는데, 이  급한 소식이라, 무슨 큰 일이 있느냐? 땅위에 이거 물심판은 지나가고 불심판이  온다. 이걸 알려 달라 하는 그것을 집집마다 해 가지고, 알려 주니까 당신이,  기뻐하십니다. 당신이 기뻐하셔. 원하고 원하는 당신의 말을 전달하니까 얼마나  기뻐하실지 모르요.

 그래서 아브라함의 신앙은 나는 지난번에 서이를 말했는데 O집사님이 너이를  말했어. 잘 굳게 잡고 그래 나가도록 하십시오. 그 신앙은 아브라함의 신앙 그거  안 가지고는 우리가 신앙 가지지 못합니다. 다 일번에 다, 떨어져. 일호에. '이러면  어찌 될까? 이래 순종하면 어찌 될꼬?' 이러다가 떨어져. 그것을 다니엘 신앙을  들어서 예를 들었는데 아주 잘 들었어. 그만 일호에 떨어져. 뭐 하나님 말씀을  '이렇게 하면 어찌 되노' 하는 거게서 그만 탈선이라. 그게 뭐이냐 하면 하나님이  시키는 하나님의 신실한 권위와 사랑보다도 제 이성 판단, 자기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더 인정되기 때문에 제게 인정 안 되면 하나님을 부인하는 거라.

그것이 자기를 부인한 초윌한 신앙을, 자기보다 하나님을 더 믿는 신앙이라.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반사 선생님들은 공과를 외우고 꼭 체험하고 경험한 것을 가르치고, 하루 삼십  분 기도. 또 책임진 자를 마음 속에 기를 것, 육신의 자손온 뱃속에서 기르면  되지마는 믿음의 자녀들은 자기 마음 속에 넣어 놓고 길러야 돼요.

 그러고 내가 어제 권찰회 때 보니까 뭐 달력을 나누는데, 성구 기록한 달력을  나누는데, 성구를 기록해서 달라 이래 가지고. 달력 그뭐 짜다라 박아져 가지고 꽉  찼는 게 달력인데 뭐 할라고 달력을 사다 박아? 자꾸 박아 가지고 달력 없는  사람, 우리 집에 많아. 우리 집에 많이 들어와 있어요. 들어와 있는 거 그런 거 돈  안 줘도 자꾸 얻는 거 꽉 찼는데, 이 자꾸 주는 광고 달력 많이 있는데 뭐할라고  박아? 그 박은 거 성구가 없고 그림 그려서 그렇다고 이라는데, 그림 그려서.

그러면 그거 좋겠어. 성구를 그랬으면 성구 기록한 달력을 사용하거들랑은 유익을  봐야 돼. 아마 성구 그러면 열두 달이니까 열두 달 열두 성구, 열두 성구 그것을  매일 그 외우고 생각하고 그대로 실행하고 그러면 달력 억억만 배의 가치도 더  되는 수입을 가질 것입니다. 그러나 저게는 그림 그려 놓은 거 모양으로 저래  있다 이라면 아무 소용없어. 뭣이든지 말씀을 내가 양식을 삼아서 먹어야 되지.

 


선지자선교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2536 아브라함의 신앙/ 창세기 12장 1절-4절/ 810622월새 선지자 2015.12.01
2535 아브라함의 신앙/ 창세기 14장 20절-15장 1절/ 810625목새 선지자 2015.12.01
2534 아브라함의 신앙/ 창세기 15장 1절/ 810626금야 선지자 2015.12.01
2533 아브라함의 신앙/ 창세기 13장 14절-18절/ 840525금새 선지자 2015.12.01
2532 아브라함의 신앙/ 창세기 13장 14절-18절 / 840525금야 선지자 2015.12.01
2531 아브라함의 신앙/ 창세기 14장 21절-24절/ 820606주일오후 선지자 2015.12.01
2530 아브라함의 신앙/ 창세기 12장 7절-10절/ 810623화새 선지자 2015.12.01
» 아브라함의 신앙/ 히브리서 11장 8절-12절/ 890107토새 선지자 2015.12.01
2528 아브라함의 신앙/ 마태복음 10장 40절-42절/ 881213화새 선지자 2015.12.01
2527 아브라함의 신앙의 길/ 창세기 12장 1절-20절/ 871018주전 선지자 2015.12.01
2526 아브라함의 축복/ 창세기 15장 4절-6절/ 810717금새 선지자 2015.12.01
2525 아브라함의 축복/ 창세기 15장 1절-17절/ 810716목새 선지자 2015.12.01
2524 아브라함의 축복/ 창세기15장 1절-8절/ 810715수새 선지자 2015.12.01
2523 아브라함의 평안과 롯의 평안/ 창세기 13장 14절-15절/ 881222목새 선지자 2015.12.01
2522 아브라함-하나님의 영광만 생각/ 창세기 14장 21절-15장 1절/ 830629수야 선지자 2015.12.01
2521 아이와 같이 집회에서 말씀을 받자/ 마태복음 13장 53절-58절/ 870504월밤집회 선지자 2015.12.04
2520 악독을 회개하라/ 히브리서 12장 5절-9절/ 840504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04
2519 악독을 회개하자/ 사도행전 8장 9절-24절/ 840424화새 선지자 2015.12.04
2518 악을 뽑아야 믿어/ 고린도전서 10장 1절-6절/ 860929월새 선지자 2015.12.04
2517 악을 죽이는 법/ 디모데전서 6장 17절-19절/ 860820수야 선지자 2015.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