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평가

 

1982. 4. 13. 화새

 

본문 : 고전 1:18-19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십자가의 길은, 도라 말은, 도라 말은 길이란 말입니다. 도라는 말은 우리가 살아  갈 길이라 말이오. 십자가의 도는, 십자가의 길은 예수 믿는 예수교는 십자가의  도입니다.

 이 십자가는 어떤 것이 십자가인고 하니 하나님과 하나님이 선포해 놓은 신구약  성경 말씀 진리와 진리 안에서 역사 하는 영감이 세 가지는 곧 하나입니다.

 하나님과 선포하신 이 진리와 성신의 감화 감동은 이름은 셋이지마는  하나입니다. 함께 움직입니다. 진리가 하나님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영감과 진리는 언제나 함께 있고 함께 움직입니다. 십자가의 도는  하나님과 진리와 영감으로 인하여 없어지는 것이 십자가의 도입니다. 없어지는  방편은 하나님과 영감과 진리에 쓰여져서 없어지는 방편도 있고, 하나님과 영감과  진리 때문에 손해를 봐서 없어지는 것도 있고, 또 하나님과 진리와 영감 때문에  세상 악의 세력에게 박해를 당해서 없어지는 것도 있습니다.

 어떻게 어떤 방편으로 없어지든지 하나님과 진리와 영감으로 인해서 없어지는  것이 십자가의 도입니다. 소유나 자기의 지위나 권세나 명예나 몸이나 생명이나  그 모든 것이 주님과 주님의 이 도리와 성신의 감화 감동을 인해서 없어지는  이것이 십자가의 도입니다.

 예를 들면, 자기가 어떤 강한 권세를 가졌는데 이 권세를, 주님과 주님의 도와  성신의 감화 감동 때문에 이 권세를 쓰지 못하는 일 있습니다. 있어도 쓰지  못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면 쓰지 못한 그것이 왜 권세를 가지고 권세를 쓸 수 있는데 못쓰게 됐는가.

그것이 십자가의 도를 걷는 사람입니다. 십자가의 손해입니다. 십자가로 인한  손해입니다.

 또 자기가 그런 희생은 할 필요가 없는데, 안 해도 되는데 주님과 주님의 도와  영감을 인하여, 그 희생을 안 해도 되지마는 이 세 가지 때문에 안 할 희생을  하는 그것이 십자가의 도를 걷는 것입니다.

 자기가 또 그런 박해는, 그런 욕은, 그런 손해는, 그런 멸시와 천대는 넉넉히 안  받을 수 있는데 주님과 영감과 진리 때문에 받는 그것이 십자가의 걸음을 걷는  사람입니다. 자기 소유도 몸도 다 그러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나님과 영감과 진리를 위하여 자기와 자기의 소유를 손해보는  것이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손해보는 것이 십자가인데,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꼭  우리를 하나님과 영감과 진리 때문에 손해보는 것만 위주를 하시는가, 왜 손해만  보는 이 손해보는 것으로만 우리를 구원하시는가.

 그 이유는,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고 우리에게 선포해 놓은 당신의 뜻은  당신의 사랑을 인해서 택한 자들을 구원하시려는 이것이 당신의 뜻이요 당신의  소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내가 있는 것을 내 마음대로 쓰면 그들이 죽습니다. 내게 있는  것을 내 마음대로 하면 그들이 구원을 받지를 못합니다. 마치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하나님 노릇만 하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손해보지 않았으면 우리 구원은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부요도 영광도 권세도 지위도,  또 인생의 몸도 생명도 자유도 부스러기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 다 아버지의  소원인 곧 우리 구원을 위하여 다 희생하셨기 때문에 우리 구원이 된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십자가에 못박혔다가 부활하신 하나님이신 주님, 창조주이신  주님, 영원 자존자이신 주님 이 주님이 하나님이 사람되시기까지 원하신 일이  있고 모든 것을 다 내어놓으시기까지 원하신 일이 있고 죽기까지 원하시는 일이  있으니 그 일이 뭐인가. 그 일이 곧 택한 자들을 구원하시는 이 일이요 이것이  당신의 기쁨이요 소원인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주님이 이렇게 나 위해서, 우리 위해서 모든 것을 손해를  보심으로 우리 구원이 된 이 사랑의 구원을 받은 우리들이 주님의 사랑과 주님의  구원의 이 방편과 성격, 이 이치를 깨닫고, 이 이치 외에는 구원하는 길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의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그 뜻을 인해서 형제를 구원하기  위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다 희생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 상대방에게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구원 이루어지는 이 십자가 행위를, 십자가 생환을, 십자가 걸음을  이것을 어떤 사람은 보고 참 하나님의 능력이라 이렇게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고  어떤 사람은 참 어리석고 미련하다 이렇게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왜 한 사람의 십자가 지는 그 일을 보고 두 가지로 비판할까. 하나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말하고 하나는 미련하고 어리석다 그렇게 평가할까.

 하는 이유는, 세상에는 하나님의 지식과 배암의 지식 이 지식이 둘이 있습니다.

인간을 구원하는 사랑의 지식이 있고, 인간을 멸망시키는 배암의 지식, 인간의  지식이 있습니다.

 배암의 지식, 인간의 지식, 죽은 지식, 죽이는 지식 이 지식으로 비판하고 평가할  때에는 십자가의 이 생애가 어리석고 미련한 생애입니다.

 왜. 배암의 지식, 인간의 지식, 죽은 지식, 죽이는 지식, 멸망할 이 지식은 언제나  자기 중심이요 자기 위주입니다. 자기 중심이요 자기 위주인데, 자기가 자기 아닌  하나님을, 다른 것을 위해서 이렇게 희생하여, 하나님 본위로, 다른 이 본위로  이렇게 사니까 이는 자기 위주로 자기본위로 사는 자의 계산으로 하면 아주  미련하고 어리석고 망하는 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의 법칙, 산 법칙, 살리는 법칙, 조물주가 원하시는 그  법칙, 조물주가 이런 것만, 이렇게 하나님 위할 줄 알고 하나님의 소원인 인간  위함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다, 자기의 존재를 다 활용할 수 있어 자기와  자기의 소유는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있는 것인 것을 깨닫고 위해서 사는 것이  바른 생활이고 가치 있는 생활이고 이런 것만 무궁세계에 하나님이 다 주워 모아  가지고 이런 것만 가서 사는 세계가 영생하는 세계요 하늘나라인 것입니다.

 이 사실을 말씀해 놓으신 이 하나님의 지식으로 볼 때에는 이것이 성공이요  이것이 권능인 것으로 판단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십자가의 생애가 어리석게 미련하게 손해보는 생애라  이렇게 인정되고 인식되게 하는 배암의 지식을 완전히 우리는 멸시를 해야  됩니다. 이것은 거짓말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곧 하나님의 소원, 죄인을 구원하는 이 구원, 곧 나그네 세상에서 영원 무궁  하늘나라를 준비하는 이 준비에 성공의 이 생애, 곧 하나님과 이웃을 구원하기  위하여 진리를 인하여 손해보는, 희생하는, 없어지는 이것이 어리석은 일이다  이렇게 보는 지식, 이것이 손해 가는 것이다 이렇게 보는 지식, 이것이 미련한  일이다 이렇게 우리에게 알게 하는, 이렇게 인정하게 하는 이 지식이 바로 배암의  지식이요, 마귀의 지식이요, 죽은 지식이요, 자타를 죽여 떠날 세상을 위주로 하고  영원 무궁한 자기 소망을 모르게 하고, 죽는 법, 망하는 법, 하나님과 원수 되는  법 이 법만 위주로 해서 걸어가게 하는 마귀의 배암의 지혜 지식인 것을 알고,  이것이 나를 죽이고 망하고 실패케 하는, 마귀가 나를 멸망시키기 위해서  유혹시키는 배암의 지식인 것을 알고 물리칠 수 있는 우리가 돼야 됩니다.

 이렇게 자기가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이 이것이 멸망하는 것으로 보여지는 이  악령의 지식을 버리고 이렇게 십자가 걸음을 걷는 것이 이것이 막바로 하나님의  권능이라, 이것이 영생의 권능이라, 이것이 하늘나라를 점령하는 권능이라, 영계와  물질계에 있는 모든 것을 자기 것을 삼는 권능이라, 이것이 하나님에게 환영받는  권능이요, 이것이 모든 피조물들에게 다 감축을 받는, 감사와 축하를 받는  권능이요, 모든 피조물이 영원히 찬양할 수 있는 찬양의 대상이 되어지는 이  권능인 것을 우리는 아는, 인정되는 이 지식을 우리가 가져야 합니다.

 그러기에 십자가의 도가 미련한 것으로 멸망하는 것으로 보여지는 이 생각을  완전히 우리에게서 뽑아버려야 됩니다. 이 지식을 배암의 지식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완전히 이것을 원수 삼아서 던져 버려야 합니다.

 이렇게 권유하는 사람도, 십자가의 이 걸음을 물리치라, 이것을 피해라, 이  십자가를 버리라, 배반해라, 이럴 때는 네가 지혜를 살짝 썼다가 다시 예수를  믿지 미련하게 이 십자가의 걸음을 걷는 이 걸음을 걷지 말아라 하는, 이렇게  권유하는 가족도 그것이 배암의 일꾼이 되어 가지고 나를 죽이려고 달려드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원수요, 친구도 그러하고, 동역자도 그러하고, 일반인도  그러하고, 나에게 십자가의 걸음을 걷는 이것을 방해하는 자는 나를 멸망  시키려고 하는 마귀에게 사로잡혀 정신차리지 못한 술 챈 자요. 마귀에게 붙들려  마귀의 종된 자이기 때문에 그자는 나에게 대해서 원수의 노릇을 하는 자입니다.

 원수의 노릇을 하는 자인데, 그자가 원수 노릇 하는 것이 제 마음이 아니고 원수  마귀에게 붙들려 가지고 이용당해서 원수 노릇 하는 자이니 불쌍히 여겨서,  나는 내가 십자가의 길을 뿍뿍 용감스럽게 걸어 감으로 죽을 것이 살아나고,  약한 것이 강해지고, 이미 자연으로 없어질 것이 영원히 있어지게 되고, 하나님과  원수 된 것이 화친되고, 나그네 세상에서 없어질 것 가지고, 떠날 세상 가지고  영원 무궁을 마련하는, 모든 존재와 원수가 되어 있고, 서로 사랑 안 하고 원수가  되어 있는 이 모든 원수에게 환영의 화친을 이루는 이 일인 것을 자기는 깨닫고  용감히 걸으면서, 자기를 방해하는 그자를 원수의 노릇을 하는, 주님이 사랑하는  나의 사랑하는 형제니 그가 원수 노릇 하는 것은 제 자의가 아니고 마귀에게  붙들려 마귀의 종이 되어 가지고 원수 노릇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행위는  미워하고 그 사람은 사랑함으로 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는 내가 십자가  지는 그 십자가를 달게 질 때에 그 사람에게 구원의 손길이 건너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사도 되기 전에 그는 예수교를 제일 핍박하는 제일 일선에 선  자입니다. 그가 예수 믿는 사람을 모조리 잡아 죽이는 이 일을 하려고 지금  책임을 맡고 출발해 가지고 집사 스데반을 향할 때에 스데반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가지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생명의 도를 전했습니다.

 전하니까 사울이, 이놈 무슨 예수교를 전하느냐고 이래 가지고 정죄해서 모든  무리들을 동원해 가지고 돌로 쳐서 죽였습니다. 돌로 쳐서 죽일 때에 그 책임자가  사울입니다. 사도 바울 사도 되기 전에 사울입니다. 사울에게 그 옷을 벗겨서  던졌습니다. 사울이 책임져. 이거 내가 책임지니까 죽여라.

 죽였는데, 거기에서 스데반은 하나님과 영감과 진리 곧 죄인을, 마귀에게  사로잡혀 있는 형제를 구원하는 이 일을 하기 위해서 자기가 단 마음으로  희생했습니다.

 거기에서 죽음을 피해서 안 죽을 도리가 있기는 있습니다. 나도 너거 편이다,  나도 너거 편이니까, 나도 너거와 한편이니까 날 죽이지 마라 하면 그만 좋다고  안 죽입니다. 또 거기에서 하나님만 배반하고 진리만 배반하고 영감만 배반해도  안 죽입니다.

 그러나 자기와 자기의 모든 것은 하나님과 영감과 진리와 인간 구원을 위해서  있는 것이요 이것 위해서 다 희생하는 것이 십자가의 길인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스데반은 거기에서 죽는 그 시간까지 하나님의 도를 그들에게 전했습니다. 전하는  것은 그들의 귀에 거슬리는 소리입니다.

 전하면서, 기쁨으로 전하면서 돌에 맞아 죽어 갈 때에 하늘 문이 열리고  주님께서 하늘에 계시면서 나를 기다리고 나를 영접하고 나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주님의 영광스러운 안면이 보인다, 그 안면을 보고, 주님의 안면을 보고  기쁨이 충만해서 얼굴에 서기가 충만하고 하면서 주님이 나를 기다리신다 하면서  기뻐하면서 주님을 보라고 말을 하고,  그 마지막에 숨이 떠날 때에는, 주여 내가 이들을 위해서, 이들 구원을 소원해서,  알지 못하고 이와 같이 하는 자들의 구원을 소원해서 내가 돌에 맞아 죽는  것이니 저들이 알지 못하고 이와 같이 하는 것을 정지하지 말으시고, 멸하지  말으시고 용서하시고 저들을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하는 이 기도를 마지막에 힘껏  하고 운명했습니다.

 그때에 바울은, 생명이 여기에 있구나, 이것이 과연 구원 얻는 도라, 케케묵은  이것 이스라엘의 유태교는 이것은 다 그분이 살아 계실 때에 멸망에 빠져 있고  다 속화되어서 화를 받을 도라고 하더니마는 맞다, 이분들이 믿는 도가 생명의  도요 하나님이 역사하시는구나 하는 그것을, 그가 하나님을 믿는 것, 의지하는 것,  바라보는 것,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십자가를 지는 것, 또 거기에 하나님이  하늘나라에서 그를 영접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것을 그 얼굴에 나타난 서기로  말미암아 본 것, 마지막에 자기를 죽인 원수를 위해서 축복의 간절한 기도, 죽을  때는 아파서 죽을 지경이니까 언제 힘 없는데 마지막에 남은 그 한 마디 있는 힘  한 가지, 한 마디 할 수 있는 힘 그 힘 다해 가지고 그 형제를 구원하기 위한  기도로서 끝을 마친 것을 보고 그때에 사도 바울은 거꾸러졌습니다.

 거기에서 이상하다 하는 이것이 일대 큰 의문을 가졌습니다. 큰 의문을 가지고  이상하다 이상하다 하고, 그렇지마는 남자가 모든 단체에서 사명 받아 예수 믿는  사람을 죽이기로 사명 받아 가지고 나섰는데 그 감정적으로 그렇게 할 수는 없다  해서 다메섹으로 지금 계속 사람 죽이러 내려갑니다.

 내려가면서도 의문 의문 중에 고민입니다. 내려가니까 다메섹 도중에서 주님이  나타나서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나는 너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너를 구원하려고 하나님이 사람되어 와 가지고 너 위해서  십자가 대속의 공로를 설정했는 데 왜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할 때에, 공중에서  소리가 날 때에 그 빛에 쏠려서 사도 바울은 그 시간에 눈이 멀었고  거꾸러졌습니다.

 꺼꾸러져서 주여 뉘시오니까 물을 때에 나는 너를 위해서 희생한 구주라는 것을  증거를 했습니다. 그 때에 사도 바울은 눈이 멀었습니다. 그 사도 바울이 늘  안병으로 고생하는 것을 뒤에 말했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즉시 다메섹성에 들어가 가지고 외쳤습니다. 예수교는 생명의  도다, 예수는 우리의 구주다 하는 것을 그 자리에서 외치니까, 하 이놈이  예수교인들 잡아죽이라고 보낸 놈이 갑자기 지금 미쳐서 이래 변동됐다, 이놈을  죽여야 되지 이놈이 지금 예수를 믿으면 전부 예수교로 쏠릴 것이다 하고 할  때에 거기에서 죽이려고 하니까 들 창문으로 달아서 내려서 아라비아 가 가지고  3년동안 자기의 지은 죄를 회개를 하고 거기에서 굳은 회개를 하고 결심을 하고  나서 가지고 복음을 전하다가 마지막에 순교한 것이 사도 바울인 것입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불러서 사도로 세우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렇게 하나님의 소원은 십자가요, 모든 진리가 나타난 진리의 목적은  십자가요, 우리에게 영감 시키는 영감은 십자가요, 우리를 구속하신 주님이 땅  위에 남겨 두어 살게 하시는 것은 십자가요, 우리가 하나님과 만물에게 환영받을  것은 십자가요, 죄인을 구원하는 길은 십자가요,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만물을  하나님이 안심하고 우리에게 맡길 수 있는 실력은 십자가요, 모든 만물이  환영하는 이 환영의 감탄은 십자가입니다.

 그러기에 이 십자가는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이오. 이 십자가 이것이 망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십자가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이것이 하나님도 자기 하나님 삼는 능력이요, 모든 피조물도 자기의 것을 삼는  능력이요, 피조물과 창조주에게 환영을 받을 수 있는 그 자기가 되어지는 능력인  것입니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완전히 모든 것을 해치는 이기주의로 사는  이것이 모든 존재를 위하는 이것으로 영원한 봉사자로 승격되어지는,  승화되어지는 이 능력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십자가의 도를 깨닫고 십자가의 원수의 길을 걸으면 안됩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내가 여러 번 말했거니와 이제도 눈물 흘려서 너희들에게  말하노니 예수 믿으러 다니는 자 가운데에 십자가의 원수가 많다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다. 저는 창조주 이분을 버리고 의식주 이것이 저희의 하나님처럼 이것을  위해서 살고 있다. 그들은 땅의 것만 생각한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시면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물을 복종케 하시는  그분의 전지 전능의 능력을 가지고 우리의 이 천한 몸도 당신의 영화로운 몸과  같이 부활시켜서 영원히 무궁세계에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서 봉사할 이 영광의  직책 예수님과 함께 누릴 우리들이다 하는 것을 자기가 간증했습니다. 빌립보  3장에 사도 바울이 말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는 이제는 과거에 귀하게 여겼던 모든 것을 배설물과 같이  여기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져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있어지기를  원함이라. 이러기에 어떻게 하든지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에 자기도 참여하고  예수님의 부활의 영광에도 참여하려고 한다, 일편단심 이거 향하여 나아간다  말씀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우리는 이 권능을 얻어야 됩니다. 이 미련케, 이것을, 십자가의 도를 미련케 보는  이 지식이 우리의 원수이기 때문에 이것을 원수인 것을 확실히 깨닫고 굳게  잡아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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