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도

 

1987. 2. 11. 밤 (수)

 

본문:고린도전서 1장 18절∼21절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우리 기독교를 가리켜서 십자가의 도라 그렇게 말씀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아라” “다니는 사람 가운데에 십자가의 원수가 많다” “십자가는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 되고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 이렇게 십자가라는 성구가 많이 있습니다. 십자가는 고난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어떤 고난인가? 첫째는 하나님에게로 돌아오는 고난이요, 세상을 등지고 세상에서 나오는 고난이요, 또 자기를 구원하기 위한 고난이요,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고난입니다. 이 고난을 가리켜서 십자가의 고난이라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고난 당하신 것은 하나님을 배반한 우리를 대속하시려고 우리를 총책임지고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서 하나님에게 귀속시키기 위한 고난이요, 또 세상에서 해방 받기 위한 고난이요, 모든 택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당하신 고난입니다.

우리가 지는 십자가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믿음으로 입고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고난이요, 마귀와 세상을 배반하는 고난이요, 자기와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고난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은 멸망하는 사람들이 볼 때에는 아주 미련하게 보입니다. 또 구원을 얻은 자들에게는 심히 지극히 큰 능력의 걸음인 것을 알게 됩니다.

첫째로 세상은 자기와 동거 동행 아니한다고 우리를 핍박합니다. 세상은 우리가 저의 편이 되지 않는다고 핍박합니다. 또 반드시 예수 믿는 신앙을 지키는 것은 틀림없이 망한다고 멸시도 하고, 천대도 하고, 조롱도 하고, 훼방도 합니다.

세상은 제편 되어서 저와 함께 동하고 정하는 이 동류 생활을 하지 않는다고 우리를 핍박합니다. 또 우리가 걷는 신앙 걸음은 저희들 보기에 반드시 망하는 길이라고 우리를 멸시합니다. 천대합니다. 믿는 걸음을 조롱도 하고 훼방도 합니다. 이것이 세상이 우리를 대한 행동이요 우리는 세상에게 공연히 핍박을 받으니 그런 것을 가리켜서 십자가의 핍박이라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둘째로는 우리들의 친척과 친구들은 그들이 보기에 우리의 신앙 걸음은 반드시 망한다고 애타합니다. 또 많이 염려합니다. 또 만류합니다. 하다 안 되면 꾸중도 합니다. 또 타이르기도 합니다. 그래도 안 되면 강제로 우리 신앙 걸음을 막습니다. 금하다가 안 되면 욕질하고 온갖 박해를 하고 야단을 치는 것입니다.

친척은 우리가 걷는 신앙 걸음을 이해 못 하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고 애낌으로 우리의 신앙 걸음을 방해하고 핍박하고 조롱합니다. 세상은 저와 같이 동류되지 않는다고 저의 편이 되지 않는다고 우리를 대적하고 핍박합니다. 우리 가는 길이 틀림없이 망하는 길이라고 조롱하고 멸시하고 천대하고 마음껏 안심하고 훼방을 합니다.

또 셋째로 우리의 원수가 없지마는 상대방은 우리를 원수로 삼는 사람 많이 있습니다. 원수들은 우리의 신앙 걸음 걷는 것이 반드시 망할 줄 알고 속으로는 기뻐 수근수근 합니다. ‘저거 인제 망한다, 저놈이 예수 믿는다 하니까 예수 믿는 그거야 안 망할 수 있나? 불철주야로 일해도 살기가 어려운 세상에서 엿새 일하고는 하루씩 놀지, 또 거게다 토요일날이라고 그 날은 또 뭐 심방하니 전도하면서 또 일도 안 하고 그렇게 방종하지, 밤이면 밤에 또 어데 가서 뭐 기도한다고 저거 마음대로 산으로 들로 돌아다니지, 예배당으로 그저 저거 가고 싶은대로 돌아다니지, 새벽마다 다른 사람은 깨지도 안해서 벌써 세시 반 네시 되면 일어나 가지고 야단을 지기지 이러니까 저거는 참 비정상의 미친 자들이며 틀림없이 저거는 망한다.’ 이렇게 확신을 가지기 때문에 믿는 사람을 조롱하고 멸시하고 천대합니다.

반드시 저 신앙 걸음은 망한다 해서 망할 줄 알고 좋아하면서 망할 길을 가니까 좋아하면서 호응하는 사람은 호응합니다.

이 세상은 아무 보편적으로 우리가 친하고 살아오던 온 세상은 우리가 저거 동무 안 된다고, 저거와 함께 동하고 정하지 않는다고, 그 세상에서 빠져 나왔다고 우리를 대적하고 핍박합니다.

또 그래도 우리의 그 저거와 동류의 걸음을 안 걸어도 저희들 보기에 희망이 있는 그런 거 같으면 두려워라도 하고 조심이라도 하지마는 자기네들 보기에는 우리의 걷는 걸음은 백의 백이면 틀림없이 망한다 하는 것을 저들이 보고 있기 때문에 그들 보기에 망할 걸음밖에는 안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멸시하고 천대하고 조롱하고 핍박합니다.

또 친척들은 우리를 아껴서 망하는 걸 보고서 안타까워서 또 핍박하고 여러가지로 방해하고 금지합니다. 원수들은 우리 가는 걸음이 틀림없이 망하는 걸음이기 때문에 속으로는 기뻐하고 춤을 춥니다. 그라면서 우리를 옹호합니다.

세상에서 우리의 신앙 걸음을 옹호하는 사람은 우리의 망할 것을 보고 좋아서 옹호하고 우리를 사랑하는 친척들은 다 방해하고 박해합니다. 그냥 우리가 잘 지내던 모든 세상 이웃들도 우리들을 핍박하고 방해하고 조롱하고 욕합니다.

그것이 다 이유가 있습니다. 안 그럴 수가 없는 우리의 걸음입니다.

언제 어떤 개척 교회 전도사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그 지방에서는 기독교 협의회라고 교역자들이 모여서 부곡 온천도 가고 또 어데도 놀러도 가고 또 뭣도 하고 만나면 이러니 저러니 재미 있는 그 놀음을 일 주일에 한번씩인가 뭐 얼마 동안인가 이렇게 하는데 거게 가 보니 아무 재미 없고 이런데 가는 것도 그렇고 안 가면 또 핍박이 있을 거고 이런데 ‘어째야 됩니까?’ 이래서 `가거라, 가서 그만 좀 벙어리같이 가만히 뒷구석에 처박혀 앉았다가 그래 오면 안 되느냐?’ 이라니까 그러면 그 하루 종일이라는 그 시간이 아까우니 또 그것도 안 되겠고 이러니 참 못 할 일입니다.

이런데 속담에 등치고, 등을 톡톡 두드리면서 간을 내 먹는다는 말과 같이 악마는 간교하게 성도들에게 알랑알랑하고 성도들을 그저 살근살근 꾀우고 달래면서 하나님 말씀대로 하면 안 된다고 꾀워 가지고 하나님 말씀을 지키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지키지 못하게 때를 따라서 요런 취미도 보이고 조런 유익도 보이고 ‘요라면 네가 된다’ 온갖 수단 방법을 다 들여 가지고 성도들을 꾀워서 성도들로 하여금 신앙을 지키지 못하게 하고 범죄케 합니다. 하나님의 법을 범하도록 그렇게 악마가 꼬웁니다.

꼬우고 난 다음에 성도들이 어리석게 마귀에게 꼬여 가지고 범죄해서 망합니다.

망하고 난 다음에는 또 세상을 시켜서 범죄해서 망한 성도들을 멸시 천대 조롱을 합니다. 또 가족들에게는 가서 그 간교하게 이간을 붙여서 믿지 않는 가족들은 믿는 그 성도를 보고 말할 수 없이 분발해서 분이 나서 못 견딜 만치 그래 가지고 또 핍박하게 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가는 걸음입니다.

제가 오늘 요한계시록을 한번 다시 이렇게 훑어 보면서, 온 세상은 바늘 하나 찌를 만한 빈틈 없이 온갖 고난과 환난과 죄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성도는 발붙일 곳이 없는 가시밭과 같은 그 세상인 것입니다. 집에 가도 고독과 쓸쓸함과 외로움뿐이고 학교 가도 정말로 잘 믿는 사람들은 그러합니다. 사회에 가도 물에 거품처럼 빙빙 돌리고 외로워집니다.

이러기 때문에 기독자의 걸음은 참 쓸쓸한 걸음입니다. 이러니까 예수 믿을 맛이 없습니다. 예수 믿을 맛이 없습니다. 온 세상도 우리를 조롱하고 핍박하지, 가족들도 조롱하고 핍박하지, 원수들도 조롱하고 핍박하지, 그들이 핍박하고 조롱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속했으면 저희 동류로 저희 것으로 알고 우리를 좋아할 것이나 우리가 세상에 속하지 안했기 때문에 우리를 핍박한다고주님이 요한복음 15장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가족들은 우리 가는 걸음을 망한다고 걱정하고 안타까와 여겨서 핍박합니다.

원수들은 우리 망할 줄 알고 좋아하고 옹호하고 협조합니다.

우리 원수 아닌 것은 전부 우리 신앙 걸음 걷는 것을 다 대적하고 핍박하고 이래 저래 조롱합니다. 우리 원수들은 우리 가는 걸음이 그들 보기 얼마나 망하는 것이 틀림없는 필연한 일이기 때문에 그들은 속으로는 ‘저놈 인제 망한다’ 하고서 기뻐하고 좋아하면서 ‘뭐 예수 믿는 걸 핍박해? 괜찮지.’ 이래 옹호하는 것 같으나 실은 우리의 망할 것을 보고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은 어데 가도 세상과 대립이요, 고독이요, 또 마찰이요, 훼방이요, 천대요, 멸시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들의 지식으로 볼 때에는 그렇게밖에는 해석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러니까 믿는 사람들이 자, 복음을 받아서 안 믿을 수는 없고 중생돼 놨으니 안 믿을라 해도 속에서 불안하고 믿을라 하니 참 세상에 낯을 들지 못하겠고, 저도 보면은 번연히 자꾸 망하고 망하고 자꾸 예수 믿어서 이렇게 천해지기만 되니까 안 믿을래야 안 믿을 수 없고 믿을라니 참 부끄럽고 세상에 나가니 외롭고 쓸쓸하고, 이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이 어떤 식당에 가면은 기도를 못 합니다, 부끄러워서.

예수 믿는다고 다른 사람들이 알까 싶어서 부끄러워서 기도를 못 합니다.

이러니까 기도를 못 하고 음식을 놓고 그저 잠깐 거석하듯이 이라며 음 이라고 말고 또 슬그머니 이래 어째 손을 해서 말고 기도하기를 부끄러워하지, 그러니까 엎드리면 전도해야 되겠다 싶지마는 일어나서 사회를 당하면 전도할 용기가 안 납니다.

어데를 가면 모든 사람들이 나 예수 믿는다고 주목을 하고 조롱할 터이니까 그만 예수 믿는 사람들이 어깨가 축 쳐져 가지고 있습니다. 그만 예수 믿는 사람들은 어깨가 쳐져 가지고 있거든 예수 믿는 사람이라 그렇게 지금 이 온 세상이 그렇게들 말하고 있습니다. 다 축 쳐져 가지고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어데가도 조롱이요 멸시요 천대요 또 훼방이요, 집에 가도, 학교 가도, 사회 가도 참 물에 기름 뜨듯이 빙빙 떠서 돌아다니고 이거 참 발 붙일 곳이 없는 것이 기독자들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을 해야 되지 않습니까? 참 분개한 일입니다. 그러면 성경에는믿는 사람 복받는다 했는데,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다고 했는데,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는다고 했는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는다고 했는데, 남에게 꾸어 주지 꾸지는 안 한다고 했는데 정반대라.

예수 믿으면서 남의 돈 부도내고 이리저리 피해서 숨어 돌아다니는 자가 얼마나 많으며 날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가면서 조롱과 천대를 받는 이런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교회도 제가 여기 온 지가 삼십육년째 나는데 여기, 지금 인제 권사님들이 됐소. 신앙 잡히고 돈 얻어 가지고, 밑에 식구들이 돈 좀 말해 달라 하니까 권찰이니 집사니 이는 신용 있고 안심한다 해 가지고 돈을 안심하고 긁어서 은행에 저금하는 것처럼 여기고 돈 둘러줘 가지고 전부 다 망쳐서, 예수 믿는 사람이 그렇다고 교회 안 나올 수도 없고 이러니까 낙심한 사람이 얼마며, 또 서로 한 교회 다니기는 다니지마는 ‘저거 돈 떼먹은 도둑놈’ 이렇게 속에 생각하고 있는 그런 일이 얼마나 많으며, 예수 믿다 망했다 하는 그런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전에 여게 우리 서부경찰서 서장으로 있는 그이 아버지가 교회 나왔는데 그이가 마지막에 교회 몇 번 왔어. 가 보니까 안 믿고 낙심하고 있습니다.

주일학교 반사까지 했는데 낙심했는데 ‘왜 낙심을 했느냐?’ `교회 집사라고 장로라고 말해서 돈 빌려 줬더니마는 다 떼먹고 돈을 갚아주지 안해서 그래서 나는 낙심했습니다.’ 뭐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만일 구역장이 돈 말해 줘 가지고 돈을 떼였으면 구역장이 집을 파십시오.

팔아서라도 갚으십시오. 갚지 안하면 하나님 앞에 진노요 화를 면치 못합니다.

절대 면하지 못합니다.

뭣 때문에 구역장들이 교인들 돈을 이리 말해 주고 저리 말해 주고, 말해 줄 때에는 그 사람이 못 갚으면 제가 갚아야 될 것 아닙니까? 말은 제가 말해서 저 보고 신용해서 돈 빌려 줬는데 떼이기는 애매한 순진한 그 교인들이 떼이고 손해봐 되겠습니까? 이래도, 오늘도 신앙 가지고 이리 저리 말해서 전부 돈을 빌려서 이러니까, 사업이라는 것은 자본 없어 사업 못 하는 것 아닙니다. 사업할 만한 자격이 문제지 사업할 만한 자격만 있으면 자본은 저절로 오는 것입니다.

이게 교회에서 가르치는 방편이건마는 생전 사업할 자격은 하나도 없는 것이 돈만 있으면 된다고, 사업할 실력은 없고 돈만 있으면 된다는 그자는 백이면 백 천이면 천 망합니다. 돈 가지고 사업하는 줄 아는 자는 망합니다. 많든지 적든지 망합니다.

‘실력 있으면 자본 그까짓 거야 문제 없다. 저절로 온다.’ 요 바른 깨달음을 가지고 해야 되는데 모두 돈 빌려 가지고 전부이 자격 없는 것을 돈을 이리 저리 말해 줘 놓으니까 남의 돈을 가지고 자격 없는 것이 많은 돈을 가졌으니 아무 경험 없이 이리 저리 벌로 관리하고 나돌리다가 다 망하고 말았으니 공연히 실력 없는 자에게 돈 대 줘 가지고 사업 망한 그 멸망은 돈을 받을 것이 아니라 그 사람 멸망케 한 그 멸망의 값까지 돈 빌려 준 그자가 받아야 됩니다. 알겠습니까? 그래 놓고 뒤에 돈 안 갚아 준다고 시비하고 욕질할 게 아니라 네가 그 사람 망치게 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네가 화나 면하도록 하나님 앞에 죄 사유함을 받도록 노력해라.

이런 것이 다 뭣 때문에냐? 예수 믿는 사람이 왜 이렇게 핍박 조롱받고 멸시 천대받고 망하기만 망해 가지고 있느냐? 간단합니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쓸데 없어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그래 말씀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소금이 맛 잃은 것은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었으니까 일곱 가지 대속으로 살고 진리로 살고 영감으로 살면 이것이 맛을 가지고 하루를 보내는 것입니다. 이걸 가지고 하루 살면 하루가 줄었습니다.

사람은 뭐 믿음이 있든지 없든지 하루 지나면 그만치 녹아졌습니다. 일 년 지나면 그만치 녹아졌습니다. 요새는 안 늙는 비결이 있다고 떠들어 쌓지마는 볼 줄을 몰라 그렇지 암만 분을 칠해도 볼 줄 아는 사람은 정확한 나이를 알아낼 수 있도록 늙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소금은 녹습니다. 사람들은 하루 이틀 지내가는 가운데서 점점 노쇠해 가는 것입니다. 노쇠해 가는데 이 일곱 가지 대속으로 하루를 늙고 일곱 가지 대속으로 일 년을 늙고 하면은 그는 땅의 것이 늙어졌으면 영영한 것으로 존귀해져서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자가 될 터인데 이렇지 않기 때문에 믿는 사람이 천해지는 것입니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땅에 밟힐 뿐이라” 하는 그 말씀대로 그대로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이 홀로 계시면서 당신의 제일 소원하는 목적으로 삼은 것이 우리 구원입니다. 우리 구원 위해서 모든 것이 예정됐습니다. 영계와 물질계 모든 존재도 우리 구원 위해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우주에 가득 찬 이 모든 보존과 모든 섭리는 다 우리 구원 위해서 있습니다. 만물들도 우리 구원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에는 모든 존재가 우리 구원 위해서 기다리고 있지, 전개되는 모든 순서도 우리 구원 위해서 전개되고 있지, 모든 만물이 탄식하면서 고대하고 있지, 마구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과 은총 속에 파묻혔는데, 행복 속에 파묻혔는데 우리 자체만이 더러워지고 변질했기 때문에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활의 일곱 가지 대속이 어떤 것입니까? 자존자 하나님으로 더불어 밀접한 하나된 것이 우리 아닙니까? 하나님의 지성 지공의 모든 공심판을 다 통과시켜 주심 받은 것이 우리 아닙니까? 마귀와 죄와 사망을 이겨서 우리 종으로 삼은 것이 우리 아닙니까? 진리와 영감대로 하나님을 향하여서 호리도 죽음 없이 영생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우리 아닙니까? 이런데, 우리가 이 사실을 믿지 안하고 마귀 시키는 대로, 악령 악성 악습 시키는 대로,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이 악령 시키는 대로 이대로 우리가 걷기 때문에 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망해야 됩니다. 당연히 망해야 됩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족속들이 있지마는 수많은 족속 가운데에 하나님께서 제일 잔인하게 학살하고 학대하고 고난 받게 한 것은 이스라엘입니다. 성경에 이스라엘에 대해서 하나님이 열심히 사랑한 것같이 이제는 열심히 이스라엘을 박해하겠다 그랬습니다.

세계 역사에 이스라엘보다 각처에 박해와 조롱과 천대받은 족속이 어데 있습니까? 그래도 다른 족속 같으면 종자가 끊어질 터인데 종자 끊어지지 안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또 약속대로 된 것입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온갖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서 우리의 현실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고 그대로만 실행하면, 요게 믿음인데. 내 현실에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인도를 바고 찾고 죽든지 살든지 하나님께 맡겨 놓고 요대로만 실행하면 세상은 내것이요 우주는 내것이오.

바벨론의 참혹한 현실에서 하나님 명령 지킨다는 것을 세상은 조롱하고 불구덩이에 집어 넣었지마는 즉시 바벨론 나라는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권위와 이 복음의 생명 전도로 가득차게 된 것입니다. 시간이 걸렸습니까? 그것은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과 명령을 어기지 안하고 지키는 그 한 사람을 통해서 이렇게 생명 역사와 떨어졌던 하나님의 영광은 다시 드러났고 멸시 천대받던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존대가 왔던 것입니다. 파사 나라에서 다니엘이 당한 것도 그런 것 아닙니까? 오늘도 그 하나님 그 능력 그 약속 그대로 있어서 오늘도 지키는 자는 자기 지방에서 이겁니다. 지키는 자는 지방에서 이것이오. 제 나름대로 지키는 자는 그 가정에서 이게 되든지 동리에 이게 되든지, 자기 분량대로. 면에서 이게 되든지, 군에서 이게 되든지, 민족 중에 이게 되든지 국가에 이게 되든지 반드시 되고야 맙니다. 왜 안 됩니까? 우리는 맛 잃은 소금이기 때문에 이런 것입니다.

우리는 앞에 두 길이 있습니다. 믿음을 버리느냐? “거름에도 쓸데 없는 것처럼 세상에게 짓밟힌 자 된다” 하나님의 계약입니다. 믿음을 지키느냐? “하나님의 영광을 네가 보리라” 참 우리는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너무 기막히고 안타깝습니다. 지금 모두 우리 교회는 다섯 기도 산이 있고 다섯 기도실이 있어서 이렇게 기도하러 가는데 모든 사람들이 구경하고 조롱하고 비웃습니다. 저 양산동에도 그 동리 사람들에게 머리를 못 폅니다. 말 한 마디도 크게 못 합니다. 그저 그들의 비위 상할까 싶어서 막 절절 절절절 매면서 그저 저도 머리는 허연 영감이지마는, 물론 청년들은 그렇고 아이들도 만나면 참 코가 땅에 대이도록은 못 해도 최경례는 합니다. 절절절 매고 돌아다닙니다.

이러니까 그들은, 우리 기도실에 정원수 옛날 사람들이 심어 놓은 거 그 사이에 넓은 길이 끼여 있지마는 길 건너 있는 사람들이 ‘그 정원수 심은 거 우리 집에 그늘이 끼이니까 내가 할 말인지 안 할 말인지 모르지만 그늘이 끼여 그거 안 됐소.’ 그래 나한테 전달이 왔기 때문에 내가 두 말 안 하고 ‘가서 목사님이 말하니까 그러면 그 가지를 쳐라 그렇게 말씀하시더라 하고서 가지를 쳐라.’ 내가 이랬습니다.

그거는 딴 의미에서 그렇다 할 수 있지만 우리가 도처에 믿는 사람이 이렇게 왜 천대받고 멸시받느냐? 주님은 참 안타까울 것이오. 만고에! 우주가 우리의 배경인데, 하나님이 배경인데, 만물이 고대하고 있는데,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는 대주재가 계약했는데, 왜 이리 우리가 못났는지? 참 못났습니다.

믿음 지키면 능치 못할 것이 없는 믿음을 가지고, 우리가 이 믿음 하나 버려 놓으면 믿는 사람은 천물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믿음 하나 버려서 천하에 제일 천물되고 멸시받고 예수 믿는 사람이 믿음 하나 가지면 온 천상 천하에 제일 존귀한 자 되는 것이 기독자인 것입니다.

참 마음에 이거 안타깝고 참 분개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이렇게 마귀에게 꼬여 가지고 자살 행위 자멸 행위를 이게 사는 것이라고, 이것이 지혜 있는 것이라고 이래 가지고 생명길을 걷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도 기막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 밤에 내가 독창을 하나 청했습니다. 지금 독창 하나 있겠습니다. 다 기도하면서 독창 듣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그래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성도야 깨어라’ 독창>

주일학교 광고입니다.

이번에 주일학교 졸업하는 학생들을 모르는 구역장님들은, 이번에 주일학교 졸업하는 학생들을 모르는 구역장님들은 졸업 학생들을 맡을 자격이 없습니다. 이 학생들은 앞으로 잘 관리하는 구역으로 옮기겠습니다. 이러니까 이번에 졸업할 때에 구역장이 그 학생을 안면도 모르고 그래 자기 구역이라고 하는 그런 구역장은 이번에 그 살펴서 다 그것을 관리를 바로 할 수 있는 그런 구역장에게로 옮길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번에 졸업할 때에 구역장 자기가 모르는 학생은 아예 자기의 구역으로 소속시킬 그런 생각을 가지지 말아야 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천해지느냐 영광 되느냐 우리 앞길에 있습니다.

 


선지자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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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0 십자가의 도/ 고린도전서 1장 18절/ 870305목새 선지자 2015.11.28
2589 십자가의 도/ 고린도전서 1장 18절∼21절/ 870304수야 선지자 2015.11.28
2588 십자가의 도/ 히브리서 12장 1절-8절/ 801123주후 선지자 2015.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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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6 십자가의 도/ 고린도전서 1장 18절/ 1985년 12공과 선지자 2015.11.28
2585 십자가의 도/ 히브리서 12장 1절-2절/ 1980년 48공과 선지자 2015.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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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2 십자가의 평가/ 고린도전서 1장 18절-19절/ 820413화새 선지자 2015.11.28
2581 싸움 준비/ 에베소서 6장 10절-20절/ 851013주후 선지자 2015.11.28
2580 싹스와 쏘마/ 마태복음 13장 24절-30절/ 870610수새 선지자 2015.11.28
2579 쓴뿌리/ 히브리서 12장 14절-17절/ 850719 지권찰회 선지자 2015.11.28
2578 씨 뿌리는 비유/ 마태복음 13장 3절-9절/ 870426주전 선지자 2015.11.28
2577 씨 뿌리는 비유/ 마태복음 13장 3절-9절/ 841027토새 선지자 2015.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