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도

 

1987. 3. 4. 밤(수)

 

본문:고린도전서 1장 18절∼21절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십자가의 도라는 말씀은 십자가의 길이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기독자들이 구원을 이루어 가는 생애 법칙이라는 말씀입니다. 십자가의 도라고 하는 도 자는 길 도자인데 우리가 살아가는 길, 살아가는 법칙, 멸망을 헤어나는 길, 영원한 구원을 찾아 이루어 가는 길 이 길을 가리켜서 십자가의 길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십자가의 길로 걸어가는 것은, 이 십자가의 도대로 살아가는 것은 멸망하는 자들이 볼 때에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길이요 또 이 도로 인해서 멸망하는 사람들은 멸망을 하는 것이요, 구원을 얻는 자는 이 길이 지혜로운 길이요 또 지극히 큰 능력의 길이요 영생하는 길이라는 말씀입니다.

지혜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세상 지혜요 하나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십자가의 도는 하나님의 지혜대로 살아가는 것이요 십자가의 원수의 걷는 길은 세상 지혜대로 살아가는 길입니다.

사람들이 사람들 자기들의 그 지혜를 위주로 하고 그것을 옳다 인정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지혜는 그들의 지혜에 반대되기 때문에 미련한 어리석은 지혜라 그들은 그렇게 평하게 됩니다. 이래서 세상 지혜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지혜로 사는 사람을 어리석다, 미련하다, 멸망한다 그렇게 보게 되고, 또 하나님의 지혜로 사는 사람은 세상 지혜로 사는 사람을 어리석다, 미련하다, 멸망을 스스로 취하고 있다 그렇게 보게 되는 것을 여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십자가의 도인과 이 세상 지혜대로의 사는 사람 이 두 종류가 있어서 서로 자기 옳다, 자기가 지혜롭고 복되다 이렇게 시비를 하고 있는 것이 예수님이 구름타고 오실 때까지의 세상 인간 생활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창조하셔서 있게 하셨고, 또 있는 그 모든 것을 크고 작은 개별 개별까지 그분이 다 섭리하셔서 만들기도 그분이 만드셨고 만들어 놓으신 것을 보존하시고 관리하시고 섭리하시기도 그분이 홀로 하시고, 또 영원 무궁의 세계에도 그분이 다 주관하시기 때문에 그분이 모든 것을 파괴할 거 파괴하시고 건설할 거 건설하시고 죽일 것을 죽이고 살릴 것을 살리시는 모든 결말을 이루시는 이는 그분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끼리는 다 제 옳다고 저 잘난 재미로 또 자기의 지혜로 판단해서 가장 좋은 복되고 지혜로운 길을 택해서 산다고 하는 것이 다 인생들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사람은 저 사람을 애처롭게 안타깝게 보고 저 사람은 이 사람을 안타깝게 보고 애처롭게 봅니다.

하나님의 지혜로 사는 사람은 세상 지혜로 사는 사람을 안타깝게 불쌍하게 보고 또 세상 지혜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지혜로 사는 사람을 미련타 어리석다 불쌍하게 안타깝게 그렇게 생각하는 이 대립되어 있는 이 세상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 없는 부모 친척이 믿음 지키는 사람을 믿음에 방해하고 핍박하고 하는 것은 자기네들 지혜 지식으로 볼 때에는 믿음 지키는 이 하나님의 지혜대로 사는 것이 분명이 멸망할 길이기 때문에 사랑함으로 핍박하고 안타깝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상 지혜를 가진 사람으로서 자기와 가까운 사람일수록이 핍박을 많이 합니다. 또 자기를 사랑하고 애끼는 사람일수록이 핍박을 많이 합니다. 이유는 세상 지혜로 하나님의 지혜대로 사는 사람을 볼 때에 그는 분명히 미련하고 멸망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에 사랑함으로 그를 가지 못하게 붙잡을 수밖에 없고 가지 못함으로 꾸중할 수밖에 없고 가는 것을 가지 못하게 방해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지혜로 사는 사람은 세상 지혜로 사는 그 사람에 대해서 자기와 가까울수록 세상 지혜로 사는 사람을 거게서 구출하기 위해서 ‘돌아서라, 세상 지혜로 네가 세상과 피조물을 소망하고 향해서 가는 그 걸음을 네가 돌아서서 하나님의 지혜대로 하나님을 향하여 소망을 가지고 걸어가라.’ 이렇게 강권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식이 잘못돼서 세상에 이런 저런 모든 분쟁과 투쟁이 있으나 다 근원은 애끼고 사랑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이래서 주님 말씀하시기를 “원수가 네 집안 식구리라” 말은 세상 지혜를 가지고 사는 사람 중에 너와 가까운 사람이 제일 너에게 원수 노릇을 할 것이다 하는 말입니다. 그말은 지식이 다르기 때문에 가까울수록 네가 하나님의 지식 생명길 걸어가는 것을 안타까워서 방해하고 반대해서 걸어가지 못하게 할 것이라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에 두 가지 지혜가 있어서 사람들은 두 가지 종류의 생활을 해 나가고 있는데 이 두 가지 종류의 생활은 정반대로서 서로 안타깝게 여기고 대립되고 충돌되고 또 만류하고 권하고 이렇게 복잡하게, 어째 보면 서로 살릴라고 애쓰는 것이요 어째 보면 서로 망칠라고 애쓰는 것으로서 이렇게 혼돈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에 지식이 하나뿐 아니고 지식과 지혜가 둘이 된 연고로 이렇게 세상은 복잡하게 된 세상인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우리가 굳게 잡아야 할 것은 모든 것이 없는 가운데서 생겨지기를 보이지 않는 자존자 하나님 그분 한 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생겨졌습니다. 또 생겨져 있는 모든 것을 지금이나 영원이나 보존하고 그것을 복되게 할 분도 만드신 그분 한 분뿐이십니다. 그분이 모든 사람들의 사는 생애를 홀로 다 총찰하시고 모든 것을 살피시고 거게 대해서 상당한 지공 지성의 심판의 보응으로 그 행한 대로 갚으시는 분이 또 그분이십니다.

그러기에, 한 토막 하룻밤 나그네와 같은 이 세상은 잠깐 지나가는 토막이요 그 너머의 세계는 영원합니다. 짧은 한 토막 요 세계에서 우리의 사는 걸음은 영원 무궁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조물주, 모든 것의 주재, 모든 것을 주권적으로 관리하시고 창조주 당신이 피조물들에게 정해 주신 생명의 입법이 있으니 생명의 법칙이 있으니 이 생명의 법칙에 맞게 살면 그분이 선포하신 약속대로 영원히 행복되고 영원히 살고 또 그분의 법칙을 어기는 것은 사망과 영원한 멸망으로 그에게 심판 놓는다 하신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런고로, 사람들이 죽기 전 이 세상 토막만을 보고 이 세상 죽음 이편에서는 네가 옳다 내가 옳다 시비가 많지마는 일단 사람이 죽어서 하나님 앞에 심판 앞에 서고 난 다음에는 세상에 있을 때에 조물주, 창조주, 주재자 그분의 법을 지킨 거 후회하는 사람 하나도 없고, 그분의 법을 무시하고 인간 지혜 지식대로 산 것을 후회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음 저편의 것을 보지를 못합니다. 주님은 이러기 때문에 죽음 저편의 것을 하나를 끌어다가 우리에게 보여 준 것이 있으니 곧 홍포 입은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일입니다.

그 홍포 입은 부자가 세상에서는 자기는 행복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믿는 사람 중에 제일 천한 거지 나사로는 불행한 줄 알았는데 딱 이 세상 살이가 끝나고 영원 무궁한 세계에 하나님의 보응을 척 받는 거게서부터 나서서 보니까 홍포 입은 부자 자기같이 불쌍한 자가 없고 차라리 거지 나사로로 살아도 하나님의 법도를 지킨 그 사람이 행복되다는 것을 깨닫고 그때사 후회하고 자기 집에 형제 다섯이 있으니까 이렇게 속는 세상 지식에게 속지 말고 회개하여서 바른 길 걷도록 사람을 보내서 이것을 이 비밀을 알려 달라 말했지마는, ‘여게서는 갈 수도 없고 거게서는 올 수도 없고 거게도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할라고 선지자들을, 하나님의 도를 전하는 사람들을 주일학교 학생, 반사, 또 중간반, 장년반, 권찰, 집사, 장로, 전도사, 목사 이 모두 다 많이 있어서 그들이 이 비밀을 밝히 지금 가르치고 있는데 그들에게 다 들어서 알 것이다.’ ‘아닙니다.

죽은 가운데서 살아나 가지고 말하면 들을 것입니다.’ ‘아니다. 그들의 말을 듣지 않는 자는 비록 죽은 가운데서 살아난 자가 말한다 할지라도 듣지 않는다.

그 듣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성신의 감동을 받아야 그 말씀이 들려지지 그렇지 않으면 안 들린다.’ 하는 것으로서 결론을 마쳤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에는 두 가지 지식이 있기 때문에 서로 옳다 그르다 하는 시비가 있는 세상이다. 이런데 이것을 옳고 그른 것을 그 다음에 보응시킬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네 길이 옳다 내 길이 옳다 이렇게 말하는데 옳고 그른 것의 그 결과를 판단해 가지고, 오늘이 내일의 원인, 내일은 모레의 원인, 오늘은 어제의 보응, 어제는 저아레의 보응, 내가 스무 살 먹었을 때에는 열아홉 살의 보응, 열아홉 살 먹을 때에는 열여덟 살의 보응, 이렇게 그 원인과 보응 인과로서 이렇게 되어지는, 옳게 살았는지 삐뚤어지게 살았는지 어느 것이 이치에 바른지 옳은지 하는 그것은 마지막에 판단이 있으니 그 판단은 하나님의 심판이라.

하나님의 심판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뭐 권세자가 말하니까 내야 꼼짝 하겠나?’ 그렇지 안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다 양심이 있기 때문에 ‘네가 스스로 네 걸음을 판별해 봐라. 이 길과 이 길 두 길이 있었으니까 네 길이 망해야 되겠느냐 이 길이 망해야 되겠느냐?’ ‘내가 망해도 내 간 길이 망해야 되겠습니다. 내 원수가 걸어도 그 길이 흥해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자유의 율법대로 모든 사람에게 양심이라는 걸 하나님이 지어 줬기 때문에, 판단해서 판정할 수 있는 이성을 지어 줬기 때문에 이성으로 비판하고 평가할 수 있는 이런 자유의 심판에서 다 심판받아 멸망받게 된다 하는 요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두 지식이 있는 동시에 두 지식의 생애를 공정하게 판단할 심판이 있다 하는 것을 그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또 공정한 심판 너머 영원 무궁의 보응이 있다. 이러기 때문에 세상 하룻밤 나그네와 같은 짧은 토막의 이 생애는 영원 무궁을 결정지운다. 이 하룻밤 나그네와 같은 짧은 시간에 생애 이것으로서 영원한 멸망을 취할 수도 있고 영원한 구원을 취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것을 간단하게 분석하면 세상에서 지음받은 것이 제 개체 자기 사욕 자기 사심으로서 자기만을 좋게 하려는 자기 생각대로 사는 것은 멸망하게 되고 모든 것을 있게 하시고 보존하시는 지성 지공하신 하나님의 이 뜻, 나만 좋은 게 아니라 저도 좋고, 인생만 좋은 게 아니라 동물도 좋고, 생물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무생물도 좋고, 금생만 좋은 게 아니라 영원히 좋은 이 시간과 공간에 제한받지 않는 영원히 가도 변치 않는 진리, 이 진리의 법칙대로 산 이것을 영원히 보존시키는 이 사실이 있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 두 가지 지식이 있으니 시비 있는 세상이다. 이거나 저거나 다 옳다고 살지마는 반드시 그 결과에는 모든 것을 정평하고 정가하는, 올바로 비판하고 올바로 평가하는 하나님의 이 심판이 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 하나님의 심판에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성을 하나님이 만들어 주셨고 양심을 만들어 주셨기 때문에 오늘에는 이성과 양심이 흉측한 자기 욕심이라는 이놈에게 너무 억제를 당해 가지고 욕심의 주장대로 하지마는 그럴 때는 세상을 욕심 낸 욕심은 세상이 다 지나갔기 때문에, 세상이 욕심내라고, 눈 앞에 보이니까 욕심나는 돈이 있고, 욕심나는 권세가 있고, 욕심나는 미인이 있고, 욕심나는 미남이 있고, 욕심나는 세상 영광과 취미가 있어서 그 욕심에 끌려서 이랬지마는 그 욕심 세계가 다 지나가고 난 다음에 자기의 생애만 딱 가지고 하나님의 공심판 앞에 서서 보니까 자기 속에 하나님이 지어 주신 양심이 있고 이성 비판이 있으니 이 이성 비판과 양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법칙에 이 지식이 있고 이 지식이 있고 두 가지 지식이 있으니까 이 세상 지식이 지혜가 옳으냐 하나님의 지식 지혜가 옳으냐 네가 판단해라. 네 양심으로 판단해라. 네 이성으로 판단해라. 판단하라 할 때에 내가 아무리 이 세상 지식으로 살았다 할지라도 이거는 망해야 되고 저는 흥해야 된다 하는 것을 자기 양심으로 직고할 것이고 자기 이성 비판으로 직고해 가지고 심판을 통과해서, 너는 살았을 때에 너만 좋게 살았고, 이는 제가 어떻게 해로워져도 저를 만드신 대주재를 위해서 살았고, 다음은 모든 피조물 전부에게 좋은 이것을 위해서 살았으니까 이를 흥해야 되겠느냐 네가 흥해야 되겠느냐 어느 것이냐? 나는 망하고 그는 흥해야 되겠습니다 하고서 자유의 심판으로서 심판받아서 영원히 멸망과 구원을 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영원을 우리가 있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세상에 지식이 두 가지 지식이 있으니 두 가지 생애의 옥신각신하는 이 시비가 있는 세상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나는 것 아니다. 이 생애가 다 하나님의 공심판이라는 공심판에 다 간추려서 그 앞에 생명록에 행동록에 기록한 대로 다 심판받게 된다.

사람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 아니다. 물에 빠져 죽은 사람, 불에 태워 화장한 사람, 또 어떤 저런 모양으로 땅에 매장된 사람, 어데 있든지 자기가 가지고 살던 뼈와 살 근육 신경 모든 것을 다 그대로 하나님께서 살려내 가지고 완전히 죽기 전 자기의 지체를 다 되찾아 가지고 이래 가지고 하나님의 심판 앞에 나타나게 되는데 하나님의 심판은 무슨 심판이냐? 옳고 그른 지극히 공평된 심판이요, 공평이라 말은 나와 너와 사를 두지 안하고 모든 것을 한테 놓고서 제일 옳고 바른 것을 비교하는 것이 공심판이라, 지공한 심판이요 지극히 깨끗한 심판이기 때문에 ‘보라. 너에게 양심이 있고 이성이 있으니 어느 것이 깨끗하냐? 어느 것이 영원히 보존돼야 되겠느냐? 네 마음에 어느 것대로 세워야 되겠느냐, 어느 것을 파괴시켜야 되겠느냐?’ ‘나 간 것이 파괴해야 되겠습니다. 저가 영원히 건설돼야 되겠습니다.’ ‘네 양심이 어떠냐?' `더욱 그러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심판받은 자들이 다 말하기를 “하나님의 심판은 지극히 거룩하고 공평됩니다”라고 다 고백을 했습니다.

하늘과 땅과 땅 아래 있는 물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예수님의 인도하신 일, 예수님이 가르치신 일을 세상에서는 반대했지마는 그 교훈이 발랐는데 우리가 거부해서 망했습니다. 과연 당신은 구주요 당신은 영원한 우리 피조물의 중보자입니다 하면서 멸망 가운데 있는 자들도 예수님을 자기의 주라고 시인하면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린다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이 비밀을 깨닫고 오늘 밤에 말씀하신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사람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구원을 얻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권능이라” 하는 말씀은 이 십자가의 도, 십자가의 도는 무엇이 십자가의 도냐? 우리에게 나타나신 신구약 성경의 이 생애 법칙 이것이 십자가의 도입니다.

그러면 이 생애 법칙을 도라고 말하지 왜 십자가의 도라고 말했는가? 십자가의 도는 예수님께서 이 도를 제일 먼저 걸으셨고 또 이 도를 이 길을 뚫어 놨습니다.

이 길을 예수님께서 휘장 가운데로 이 길을 예수님이 시공해 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십자가의 길은 예수님이 제일 먼저 걸으신 길이요 이 길은 예수님이 닦아 놓은 생명의 대로입니다.

그러면 왜 그거 십자가의 도라고 했는가? 그것은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심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한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서 아버지의 사랑 안에 있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있으리라.” 말씀하신 그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신데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심같이”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예수님이 아버지를 사랑함으로 아버지가 원하시는 일,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일, 곧 멸망 가운데 있는 택한 자들을 구원하는 일, 이호로 모든 피조물을 구원하시는 일 이 일을 아버지가 기뻐하시고 원하셔서 이 일을 예수님에게 요청할 때에 예수님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고 아버지를 경외함으로 아버지를 사랑함으로 아버지가 원하시는 택자를 멸망에서 구출하는 일, 모든 천상 천하의 피조물을 구출하는 일, 심지어 어겨서 지옥에 있는 것까지도 구출하는 일, 이 일을 예수님께서 “내가 그 일을 하겠습니다. 내가 이 잔을 마시지 않고는 안 되겠습니까? 이 잔은 내가 마시지 안하고 이 잔이 지나갈 수 있으면 지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이 잔을 내가 마시지 안하면 안 될 것 같으면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이 잔이 곧 아버지의 소원하시는 대로의 아버지가 사랑하시는 이 택자, 모든 피조물, 음부에 있는 것까지 이것을 사랑하는 사랑에서 구출하는 데에는 이 대속이 있어야 되는데 이 대속 이것을 앞에 놓고 기도한 것입니다.

“이 대속은 심히 어려운 일인데 이 대속을 내가 하지 않고는 지나가지 안하면 나에게 주시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 잔을 안 마셔도 이 대속을 안 해도 될 수 있으면 안 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이 죽음을 싫고 두려워서 하신 것이 아니고 ‘이 대속은 심히 어려우니 나보다 이 대속을 아버지 보실 때에 이들을 사랑하여 구출하셔서 아버지를 만족케 하는 이 대속 이 구속의 이 역사를 나보다 더 잘 감당할 수 있는 자가 있으면 그들을 감당시켜 주시고 이 감당은 내가 안 해서 안 될 것이라면 내 뜻대로 마시고 부족한 나를 잡으시고 이 일을 감당케 해 주시옵소서’ 하는 것이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였습니다.

이래서, 십자가의 대속의 이 대속의 공로를 설정하는 데에 어려워서 피가 얽힌 기도를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셨던 것입니다. 이래도 마지막에는 이 몸이 약해서 이 기도의 완료를 하지 못해서 아버지에게 부르짖을 때에 아버지의 천사가 와서 예수님의 몸을 도와 가지고 이 기도를 비로소 완성을 이루어서 기도의 결과를 봤습니다.

결과를 보고 난 다음에는 이제는 기뻐하시면서 오셔 가지고 제자들이 피곤해서 자고 있는 것을 깨우면서 ‘너희들이 한 시 동안을 깨어 있지 못하느냐? 이제는 너희들이 자고 쉬라. 잠깐이나 눈 붙여서 자고 쉬라.’ 잠깐 쉬고 난 다음에는 다시 깨우시면서 ‘이제는 때가 됐으니까 나를 잡을 자가 왔으니까 가자.’ 그래 가지고 오는 가룟유다를 맞이해 가지고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이루셨던 것입니다.

이래서, 아버지의 사랑을 받은 독생자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경외하는, 아버지를 공경하고 아버지를 사랑함으로 아버지가 원하시는 그 일 세 가지, 택자를 영원 멸망에서 구원하는 일, 모든 피조물을 영원 멸망에서 구원하는 일, 멸망 받아 있는 음부의 모든 것을 구원하는 일, 순서적으로 이것을 구원하여 이 일을 아버지가 원하시기 때문에 아버지의 원하시는 그 소원에 복종하여 이 일을 맡고 오신 것이 하나님이 사람되어서 땅위에 오신 것입니다.

오셨는데, 이 일을 이루시는 데에는 예수님이 대형으로 이 죄를 멸하여서 세 가지 자유로 구원을 했고, 멸망에서 해방시켜 죄와 사망과 마귀에게서 해방시켜 세 가지 자유로 구원을 하셨고, 또 주님이 대신 하나님의 공법을 죽기까지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지공법에서 우리를 완전타 통과시키는 영원한 완전 자유를 우리에게 완성시키셨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원수된 것을 화목 제물이 되셔 가지고 이렇게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다섯 가지 대신 행하신 이 대속으로서 다섯 가지 구원을 우리에게 주셨고, 부활하심으로 두 가지 구원을 주셨고, 이래서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한 이 선택하는 일이 이루어진 이것을 자본으로 삼아 가지고 우리를 영원 무궁토록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중보되는 제사장 선지 왕의 직을 감당할 수 있는 이 실력자로 우리를 성화시켜 양육시키는 이 일을 당신이 책임지고 하신 이 건설, 이렇게 아버지의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일, 곧 아버지를 사랑하시는 일, 아버지를 경외함으로 피조물을 사랑해서 구원하시는 이 대속으로 베푸신 이 길을 열어 놓은 것이 십자가의 도인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도입니다.

십자가의 도는 곧 신구약 성경 말씀인데 신구약 성경 말씀은 예수님의 이 택하심과 이 사활의 대속의 일곱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히 제사장 선지 왕의 이 그리스도의 구원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 예수님이 만들어 놓은 길입니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에게로 올 사람이 없다고 하신 이 완전자, 타락한 피조물이 완전자 창조주 하나님에게 나아가는 이 길, “나는 길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 당신이 무슨 길이 돼 주셨는가? 택함과 사활의 대속의 일곱 가지와 대신 이 성화시키는 세 가지 성직의 길 열한 가지 길을 우리에게 열어 놨으니 이것이 우리의 십자가의 길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십자가의 길은 신구약 성경은 이 십자가의 길을 우리에게 걷는 것을 가르쳐 놨기 때문에 현실에서 요 말씀 영감과 진리대로 요 말씀대로 한 자욱 한 자욱 걸어가게 되면은 이것이 곧 십자가의 도라.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살아난 도라. 우리들이 이 멸망에 속한 것은 죽어지고 생명에 속한 것으로 살아나는 것이라. 서로 싸워서 뺏드는 것을 다 없애버리고 죽음으로 영원히 사는 이 생애라. 사망의 법칙을 버리고 생명의 법칙에서 사는 길이라.

이러기 때문에 이 길은 세상이 모르는고로 그들은 이 길을 보고 미련타고 하고 이 길을 가는 사람은 이것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가는 것이지 사람이 가는 것은 아니라.

이 지저분한 어두운 세상에서 하나님의 택하심을 거머쥐고 택하심에 합당한 자로, 하나님과 화친된 이 화친을 가지고 화친을 놓지 안하고 하는 요 화친된 자로, 하나님의 공심판을 다 대신 행해 주셨으니 하나님의 공심판을 다시는 어기지 아니하는 자로, 마귀를 이제는 해방됐으니 마귀에 다시는 종되지 않는, 마귀로 인해서 범죄하지 않는 자로, 죄로 인해서 범죄하지 않는 자로, 죽음이라는 이 위협 가지고 범죄하지 않는 자로, 하나님을 향하여서 진리대로 사는 자로, 영감대로 사는 자로, 그리스도가 땅위에서 현실에서 제사장직을 조그만한 뿌스러기 제사장직을 하라 할 때에 그 제사장직을 감당하고 감당해서 진합태산으로 뿌스러기 같은 이 제사장 노릇, 선지 노릇, 왕 노릇 하는 것이 마지막에는 자기의 몸과 소유와 생명을 다 바쳐서 선지자 노릇 하고 왕 노릇 하고 이 제사장 노릇 해서 자기 몸과 생명을 예수님이 다 바친 거와 같이 이 십자가의 도에 다 바친 자는 예수님이 다 바쳐서 승리하고 아버지 우편에 앉은 거와 같이 바쳐서 승리한 자는 내 보좌에서 영원 무궁토록 나로 더불어 영원히 피조물에게 왕 노릇 하리라, 피조물을 통치하리라, 영원히 피조물의 생명이 되리라, 피조물의 행복이 되리라, 피조물의 평강이 되리라, 모든 피조물이 너희를 보고 영광되다 영광되다고 너 아니면 우리는 못 산다, 교회 아니면 우리 못 산다. 모든 피조물들이 동경하고 소망하고 있는 하나님의 충만으로 충만케 하는 것이 교회니라 하는 이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열한 가지 대속을 받은 이 대속을 팔아먹지 않는 거, 대속을 팔아먹으면은 그날은 좋아. 비유컨대 학생이 머리 짜매고 공부하는 것보다도 아이들 데리고 여기 뭐, 뭐라더라, 뭐 딱 그라면, 요래 때리면, 나는 가 보지는 안했는데 한번 내가 한번 볼 모양이라. 뭐 쏙 올라오는데 탁 때리면 아야 죽으며 아야아야 하는데 뭐 김일성이 뭐 뚜드리는 거라 하는데 그거 뭐라 하지? 그거 뭐이라? 안 그렇던데? 이름이 그거 아니라. 그 이름이 뭐인고 이름 알고 있지 안해, 모두? 아이들 학교 갔다 오면서 들어가서 돈 주고 이라는 거.

전자오락! 다 틀려. 이래 놓으니 등신들이라, 모두. 예수 믿으면 등신 돼. 그것 다 알아야 되지.

이제 ‘그런 데 다니면 너, 학교 가고 그런 데 다니지 마라. 그거 하면 사람 못쓸 사람만 자꾸 만들어진다.’ 저 어떤 동리 내가 보니까 아이가 나쁜데 ‘저 아이가 나쁘다 걱정이 된다, 저거 못쓰겠는데.’ 살펴보니까 전자오락장에 간대요.

전자오락장에 몇 번이나 갔나 조사를 하니까 세 번 갔대. 세 번 갔는데 사람이 더러워지고 변해집니다. 아주 말단의 인간의 부패성을 아주 충격시켜서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이라니까, 이 정부에서는 김일성이 뚜드리니까 좋다 하지만 김일성이 뚜드리는 거 사람 뚜드리는 거 깩 그러면 좋아하면은 지금 우리 나라 대통령도 탁 때려서 깩 그러도록 만드는 그게 온다는 걸 알아야 돼. 남의 부모에게 불효하면은 제 부모 나에게도 불효가 온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이래서 그런 걸 하지 말라 하면 듣기 싫어하고 하라 하면 재미 있지마는 결과가 멸망 아닙니까? 이 모양으로 이 열한 가지의 대속을 이루는 걸음을 걸으면 현재는 쓰운 거 같고 현재는 어려운 거 같지마는 잠시 후면 사람과 모든 것이 다 바로 되기 때문에 점점 희망 있고 영광스러운 사람이 돼지지마는 이 열한 가지의 대속을 무시하는 자기 생각대로 자기 욕심대로 임시임시 일시일시대로 사는 자는 한 번 살았으면 그만치 속았고 두 번 살았으면 그만치 속았기 때문에 점점 멸망으로서 마지막 세상 끝날이면 완전 멸망을 성취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학생들이 이거 알아야 됩니다. 우리 학생들 가운데서도 데모에 가담은 안 하지만 데모 그걸 이해를 못 하고 할 만하다고 생가하는 그런 자들이 있대요. 그거 공산주의에 가담한 것 아닙니까? 환하게 나타나는데 왜 그걸 해요? 요새도 인권 옹호니 하면서 한 사람 고문에 죽은 거 그거 아깝기는 아깝지마는 지하 운동, 공산주의 지하 운동을 내비두면은 우리 남한의 사람이 수십만이니 수백만이니 몰살할 것이니까 수백만 몰살하는 것보다는 하나 죽는 게 낫지. 뭘 그게 나쁘다 그말이요? 이상한 세계야.

그거 안 죽으면 좋고 죽은 거 안타깝기야 안타깝지마는 이 지하 운동으로 공산주의 운동 이런 것은 이것은 우리가 방어해야 돼. 잘 이 말 안 해요. 그라면 암살당할까 싶어서 잘 말 안 해요, 안 하기를. 바른 대로 말해야지, 뭐.

그런고로, 우리가 진리대로 생명을 전파하는 이 말과 생명 생활을 할라고 하면 자기에게는 일시 어려움이 옵니다. 옳은 길을 갈 때에 어려움이 옵니다. 어려움이 오지마는 전능자가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 전능자가 내 안에 있고 전능자가 내 밖에 싸고 있는데, 전능자가 싸고 있는데 세상 피조물 전체가 다 달라들면 그까짓 게 어떻게 할 것입니까, 하기를! 이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런고로 십자가의 도는 멸망하는 사람이 볼 때는 미련한 것으로 보이지마는 구원을 얻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권능입니다. 하나님의 전능의 능력을 힘입지 안하면 열한 가지의 이 대속을 이루고 보존해 나가는 이 걸음을 걷지를 못합니다.

우리 서부교회 장년반, 중간반 일이부, 유치반 다 이 깨달아서 어지러운 세상에 바로 살면, 하루 살면 천지를 얻은 것보다 수입어 더 컸어. 아무리 많이 얻어도 다 그거는 다 썩을 것들이라.

하루 바로 살면 영원히 썩지 안할 거 주니까, 손양원 목사님이 말하기를 왜정 말년에 감옥에 들어 앉아서 콩깻묵을 솔방울만한, 요만한 솔방울만한 거 하나 받아 가지고 기도하기를 ‘주님이여, 감사합니다. 이 콩깻묵 솔방울만한 요거 하나는 주님 밖에서 오늘도 살찐 소가 수천 마리 죽어서 수천 마리를 잡아 가지고 만들어 놓은 수천 마리 소고기, 예수 밖에서 사는 수천 마리 소고기 그것보다 주 안에서 내가 콩깻묵을 솔방울만한 것 먹는 요것이 가치 있습니다.

이는 우주와 영계를 통치할 것이요 이거는 살았습니다. 그거는 다 죽었습니다.’ 요렇게 평가하는 눈이 있기 때문에 그는 승리하고 갔습니다.

다 같이 요 도를 생각하면서, 십자가의 도가 뭐이 십자가의 도인가? 십자가의 도로 살아나가는 사람은 세상이 볼 때에는 미련한 것으로 보여지지마는 구원을 얻은 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인다 하는 요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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