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도

 

1987. 3. 6. 새벽 <금>

 

본문:고린도전서 1장 18절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의 도를 문서로 기록해 놓은 것은 신구약 성경 도리요 그 내용의 실상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속해 놓으신 열한 가지입니다. 열한 가지인데 그중에 여덟 가지는 자본이 되고 세 가지는 여덟 가지 자원을 우리가 힘입어서 세 가지 구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여덟 가지 자원은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과, 또 예수님이 우리를 하나님과 화친을 일으켜 놓은 그 화친의 생명과, 또 하나님의 지성 지공의 공심판에 대신 행해서 대신 해서 통과시켜 놓은 완전 자유와, 또 우리 대신 형벌 받으셔 가지고 죄를 완전히 멸해서 죄에서 해방시켜 주신 것과, 죄에서 해방시키니까 죄의 값인 사망을 멸하시고 사망에서 해방시켜 사망에 자유시켜 주신 것과, 또 이러니까 악령이 우리는 침해할 수 없어서 악령에게서 해방시켜 자유시켜 주신 것과, 또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한 진리대로의 사는 영생과, 하나님을 향한 영감대로의 사는 영생, 이라면 몇 가지입니까? 이라면 몇 가지입니까? 여덟 가지.

여덟 가지 이것은 이미 우리가 받아 놓은 구원입니다. 받아 놓은 구원인데 벗지만 안하면 됩니다. 받아 놓은 구원이기 때문에 벗지 아니하고 산 시간은 길든지 짧든지 그 시간에 언행심사의 행동은 다 생명에 속하고 영생에 속해서 영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믿는 사람으로서 평신도든지 아주 그 은사직을 맡아서 최고로 목사까지, 주일학교 반사, 또 거게서 차차 올라가 가지고 집사, 권찰, 장로, 또 이렇게 뭐 목사 교사 이렇게 올라가서 어데까지 올라갔다 할지라도 여덟 가지를 벗지 아니하고 산 그 언행심사의 생애는 시간이 길든지 짧든지 다 그것은 영생에 속하게 됩니다. 또 자기가 이 여덟 가지를 벗고 산 생애는 길든지 짧든지 그것은 두번째 사망하는 사망에 속하게 됩니다.

여덟 가지를 벗고 살 때에는 사망한다, 여덟 가지를 벗고 살 때에는 사망한다 하는 말과 여덟 가지를 벗고 살 때에는 사망하는 게 아니고 두번째 사망하는 사망을 한다. 그러면 어느 말이 바로 된 말입니까? 첫째요 둘째요? 둘째 말이 바로 된 말입니다.

그래서 이 여덟 가지는 이미 다 돼 가지고 있는 것인데 우리에게는 벗으면 여덟 가지의 효력을 제가 보지 못하고 벗지 안하고 입고 살면 여덟 가지의 효력을 받습니다. 여덟 가지의 효력을 받지 못하면 세 가지 그 실력이 이루어지지를 않습니다.

세 가지 이 연습이 되고, 여덟 가지를 벗지 안하고, 여덟 가지를 제가 만드는 게 아니고 여덟 가지를 벗지 안하고 여덟 가지로 살면 세 가지 실력을 자기가 받게 되고 또 세 가지 그 일을 제가 연습하게 됩니다. 세 가지 일을 연습하고 세 가지 실력을 받게 됩니다.

연습하는 것은 세 가지를 한번 해 본다 말입니다. 세 가지를 한 번 해 보고 두 번 해 보고 하니까 자꾸 연습이 되어지니까 나중에는 세 가지 일이 점점 숙달되게 돼서 세 가지의 실력을 가지게 됩니다. 세 가지 실력도 가지고 세 가지의 그 이력, 세 가지를 행한 그런 이력도 가지게 되고, 세 가지 이력도 가지게 되고 세 가지 실력도 가지게 됩니다.

그 세 가지 연습을 해서 세 가지 행동한 그것이 그 사람의 이력서를 쓴다고 하면은 세 가지를 몇 번 했다 하는 이력이 이루어지고 또 그 세 가지 하는 일이 숙달이 되어지고 세 가지의 실력이 갖추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세 가지 실력이 뭐인가? 곧 제사장 실력이요 선지 실력이요 왕의 실력입니다.

그러면 제사장 실력을 어떤 것에게 하는가? 제사장 실력은 창조주와 피조물 그 사이에서 중보 역할을 하게 됩니다. 중보라는 것은 성경에 말한 대로 한편만 위하는 것이 중보가 아니고 양편을 위하는 것이 중보입니다.

이래서 중보 역할 하는 그 일을 자기가 한 번 해 보고 두 번 해 보고 이렇게 점점 해 보는 그것이 연습입니다. 그래 가지고 여러번 하면은 그 일이 숙달이 되어집니다. 숙달이 되어지면 실력이 생겨지게 됩니다.

그러면 무슨 일을? 제사장 일 선지 일 왕의 일을 연습하고 또 숙달되어지고 그라면 실력이 생겨지는데 세 가지 일을 어떻게 하는 것이 세 가지 일의 연습이며 또 차차 숙달돼 가며 또 실력이 갖추어져 갑니까? 뭣을 하면은 이 세 가지 제사장 선지 왕직을 하는 그 일을 연습이 됩니까? 한 번 하면 한 번 했고 두 번 하면 두 번 연습했고 세 번 하면 세 번 연습하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이 세 가지 직책을 연습 연단 연성 숙달로 되어집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제사장 일을 자꾸 연습하는 일이 됩니까? 저 뒤에,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이 세 가지 일을 연습하는 일이 되는 것인지 내가 묻는 데 여러분들이 답을 해 보십시오. 답을 소리를 내서 안 할라면 자기 혼자는 알 터이니까 내가 답을 말할 터이니까 ‘나도 그렇게 답을 했다’ 그런지 ‘나는 그 답을 하지 못했다' 하면 자기 스스로 자기는 삐뚤어졌다 바로 알았다 하는 것이 판정될 것입니다.

세 가지, 제사장 선지 왕직의 연습이 곧 여덟 가지 이미 구원받은 여덟 가지를 벗지 안하고 살면 그것이 되어집니다, 벗지 안하고 살면. 여덟 가지를 벗지 안하고 사는 그 언행심사의 행동이 제사장 될라고 하지 안하고 선지 될라고 하지 안하고 왕 될라고 하지 안해도 여덟 가지를 벗지 안하고 생활하는 그것이 그것이 되는 것입니다.

또 이 여덟 가지를 벗지 안하고 하는 그 행동 외에는 이 세 가지를 연습하는 일이 없습니다. 연습하는 일이 되는 일이 없습니다. 또 숙달되는 일이 없습니다.

이 여덟 가지 행위를 벗지 안하는 것으로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덟 가지 행위는 이거 다 전능의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공심판 통과도 그는 전능이라야 되지 인간으로서는 하나님의 공심판 통과자가 하나도 없기 때문에 다 불택자들이 다 지옥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과 화친을 그것을 우리는 그 일을 이루지 못합니다. 전능하신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이 대신 화친의 제물이 돼 가지고 화친을 일으킨 것입니다.

사람들이 믿음의 눈이 어두우면, 믿음의 눈이 어두우면 하나님과 화친된 것이 보이지 안하기 때문에 자기의 배경이 없고 이 세상 어떤 큰 것을 화친할라고 애를 씁니다. 하나님과 화친된 자가 세계를 통일한 그자와 화친할라고 하는 그런 것을 만분의 일이라도 가지지 않습니다. 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했지 그 사람하고 화친하면 그 덕 보겠다고 해서 하면은 벌써 이 구원에 대해서는 천리 만리 먼 자요 그는 내나 옛사람으로 돌아가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바디매오의 소경이 이 하나님의 계시 계약에 되어 있는 이 계약의 실상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비참하다 하는 그것을 여러 시간 말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말하나 이걸 눈이 어두워서 항상 보지는 못하고 그저 조그매씩 볼라고 애를 쓰면 보이지만 그리 안 하면 안 보여집니다. 아직 저 사람이 못 봤다 하는 것을, 암만 본 척해도 못 봤다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계약된 걸 보지 못하는 그런 것을, 다시 말하면 만유의 대주재이신 하나님과 나와의 바로 육체의 부자간과 같은, 아주 친밀한 육체의 부부간과 같은 이런 친밀한 관계가 돼 가지고 있는 이 사실을 자기가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가 외로운 자가 돼 가지고 있지 이 사실을 실상을 제가 봤다고 하면은 그 사람은 이것으로서 만족하지 딴데 구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어떤 타협을 해도 어떤 의논을 해도 어떤 그 행동을 해도 그분과 친교로 인해서 이루어지고 친교로 인해서 모든 것을 할라고 하지 그것 벗고 딴것 피조물 가지고 친교해 가지고, 피조물을 사귀어 가지고 뭘 할라 하는 그런 자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 믿어도 이 세상에, 그건 세상 방편상 그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이해하도록 해 가지고 우리가 기도하고 그래 가지고 그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 지하철로 말하면은 지하철에 관련된 사람들을 떡도 사 주고 그 사람들을 또 가서 말도 하고 또 간청도 하고 또 교제도 하고 이래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래 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세웠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을 시켜서 그 일을 지금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일 하는 그들과 우리와의 그 친밀한 이 관계를 가져야 되지 그분들과 대립이 돼지면 하나님이 하시는 그 역사에 대립되면서 우리가 뭐 할라고 할라 하기 때문에 일이 안 되는 것이라 그거요.

그러나 그 되는 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우리로 더불어 합의해서 뭣을 하도록 해 주셔야 되지 그분의 주권으로 말미암아 되어지는 것이지 그분이 안 된다 하면은 우리 서부교인들이 그걸 위해서 기도하다가 죽어도, 전부가 다 기도하다 죽어도 털끝만치도 이루어지는 것 아닙니다. 또 우리가 다 어떻게 뭣을 다 바치고 어떻게 한다 해도 그 이루어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불택자에게는 되지만 택자에게는 안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그런 것을 의지해 가지고 하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이 세 가지, 우리가 미완성한 것이 세 가지인데, 우리가 건설하고 있는 것이 세 가지인데 이것에 대해서 자꾸 연습하고 연습하는 가운데에서 연성이 되어지고 나중에는 숙달이 되어지도록 이렇게 하는 이 일을 우리가 해서 점점 건설합니다.

우리가 건설하고 있는 것은 어떤 걸 건설하느냐 하면은 세 가지를 건설하고 세 가지로 지금 성장시키고 있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세 가지 성장시키는 데에는 여덟 가지를 벗지 아니하고 여덟 가지 벗지 아니하고 여덟 가지 입고 사는 생활 그것이, 입고 하는 행동 그것이 곧 세 가지의 이 결과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기독자가 이 세 가지의, 예를 들어서 제사장직을 해서 제사장직의 실력이 만일 만분의 일이 있다고 하면은 어찌 됩니까? 제사장 실력이 만분의 일이 있으면 그 사람은 어떠한 사람입니까? 그 답을 한번 해 보십시오.

제사장직을 만분의 일이 지금 성립됐습니다. 그 만분의 일은 그것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면 제사장직에 만일 만 번을 해 가지고 만분의 일이 이루어졌다고 하면은 그 사람은 어떤 사람 사람입니까? 대답해 보십시오.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자, 누구든지.

그래, 여덟 가지에 만분의 일을 행하니까 그게 만분의 일이 됐지요. 그건 된 걸 말하는 것이고, 만분의 일이 됐으면 말이요, 된 걸 다 말했는데. 만분의 일이 됐으면 그 사람은 어떠한 사람입니까? 그것은 ‘만분의 일이 됐으니 어떻게 해 가지고 만분의 일을 만들었습니까?’ 하면은 ‘여덟 가지를 만분의 일을 해 가지고 제사장 만분의 일을 만들었습니다.’ 그래 답이 돼야 될 것이고, 또 그러면 만분의 일, 제사장이 만분의 일 돼 가지고 있으면 그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그러면 그 사람은, 만일 그걸 만들어져 가지고 있으니까 만분의 일을 만들어 가지고 있으니 그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하는 것은 만분의 일의 효력이 어떠하냐 하는 걸 묻는 거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내 말이 틀렸어요? 말귀를 알아들어야 돼요.

만분의 일을 만들어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만분의 일을 만들어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만분의 일을 만들어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어떤 그 실력을 가졌으며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까? 어떤 실력, 어떤 가치, 어떤 역사를 할 수 있는 사람입니까? 어떠한 가치를 가졌으며 어떠한 실력을 가졌으며 어떠한 그 가치 어떠한 영광을 가진 사람인가? 그 사람은 어떤 가치, 어떤 실력, 어떤 영광, 어떤 대우를 가진 사람인가? 그걸 한번 대답을 해 봐요.

하나님의 실력이 만분의 일. 하나님의 실력이 만분의 일. 만분의 일의 결과. 다 그 엉뚱한 소리. 예? 전능, 만분의 일이 전능? ‘만분의 일이 전능’ 하는 것도 그것도 여기 하는 말과 같이 좀 핀트가 맞지를 안해요. 만분의 일의 중보! 만분의 일의 중보! 하나님에게 만분의 일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알겠습니까? 그 사람 자체가 하나님에게 만분의 일이 필요합니다. 모든 피조물들에게는 어찌 됩니까, 모든 피조물들에게는? 만분의 일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과 피조물들에게 만분의 일이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피조물들에게 만분의 일이 필요하니 만분의 일의 가치를 가진 사람이요 만분의 일의 환영을 가진 사람이요 영광을 가진 사람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러면 그 사람이 선지능이 만분의 일이 됐다고 하면은 그 사람은 어떠한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것을 만분의 일을 갖다가 피조물들에게 만분의 일을 주는 사람입니다. 알겠습니까? 하나님에게 만분의 일을 받는 사람이요 피조물들에게 만분의 일을 주는 사람이라. 알겠습니까? 이해가 돼요? 안 되면 헛일이라. 이해가 돼야 돼.

하나님의,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을 받아 가지고 피조물들에게 주는 것이 피조물들에게 주면은 그대로 하면 다 생명이요 평강이요 영생이 돼.

알아듣겠어요? 하나님이 피조물에게 줄 때에 뭘로 줍니까? 실물로 줍니까 진리로 줍니까? 진리로 줄 때 진리대로 하면 되는 거라. 알겠습니까? 하나님의 충만을 이 피조물들에게 갖다 주는 것이 뭘로 줍니까? 진리로 줍니다.

그러면 뭘로 줍니까, 누가 줍니까? 선지자가 줍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피조물들에게 선포할 때에 피조물들이 그대로 해서 다 얻는 그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교회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충만으로 모든 피조물들에게 충만케 하는 충만이라”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요 ‘충만이니라’ 요것을 요 성구가 참 해석이 안 돼서 요거 잘, 요걸 깨닫지 못해서 해석이 안 돼서 그건 다 모두 그냥 지내 보냈는데 이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깨닫게 해 주셔 가지고 얼마든지 말을 해서 이것이 지금은 차차차 번져 나가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왕직이 만분의 일의 실력이 갖추어 있다고 하면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 사람은 창조주와 피조물의 모든 움직임이 통일이 돼, 만분의 일의 통일이 되도록 만든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통치와 인간의 움직임의 통치가 대립이 되면은 누가 깨집니까? 뭐이 깨집니까? 인간의 대립이 깨집니다.

이게 통일이 돼서 하나님의 통치나 인간 통치가, 다스리는 정치가, 통치라 하는 것은 정치라 하는 것이 행정이 일치가 돼지면 이거는 하나가 돼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창조주와 피조물의 일치를 만드는 그것이 우리의 왕직이라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피조물에게 대해서 제사장 선지 왕직 이 세 가지 외에 또 필요한 것이 있습니까, ○○○씨? ○○○ 어데 있어? 손 들어 봐. ○○○? 왜 거기 섰노? 저 뒤에 꼼뱅이로 왔구나. 와서 들어야 되지 그까짓 거 논문 백 번 쓰고 뭐 미국 가 가지고 신학 뭐 몇십 년 한다 해도 소용이 없어. 요 진리에 생명이 요게 있어. 이거 모르면 헛일이라.

이것을 그러니까 내가 여기 삼십육년째 있는데 암만 가르쳐도 항상 물으면 몰라.

항상 새 말이고 새 대답이라. 그 물어도 모르면 공연한 말 물어도 모릅니까? 성경에 있는 걸 물어도 몰라. 이러기 때문에 참 기가 막힌다 그거요.

내가 뭣 때문에 물었느냐? 이거 알아 가지고 앞으로 사람들에게 내가 죽으면 뒤에 좀 이걸 좀 전달을 할까, 이거 좀 뒤에 인계를 해서 계대를 해서 좀 전달해 줄까 하는 소망을 가지는데 엉뚱하게 뭐 늦게사 떡 이래 와 가지고 뒤에 와 가지고 앉으면 뭐이 되는 거라? 나는 어제 아침에 여게 늦게 나왔는데 밤에 자기를 새로 두시에 잤습니다.

그때까지 뭐 했는가? 그때까지 찬송가에 대해서 찬송 위원들하고 다 앉아 가지고 의논하면서 두시에 잤어. 두시에 자고 그래 가지고 깨 보니까 늦어서 그래 됐어.

그래도 내가 어제 아침에는 내가 낯을 못 들겠어, 늦게 와 놓으니까. 늦게 와서 얼마나 더디고 늦게 와 놓으니까 다른 사람 보면 ‘저 목사님 무슨 죄를 지었나? 어쨌노?’ 이랬을 거라.

어제 찬송가에 대해서 편집 위원들로서 고생하는 수고한 그 세 분은 소리해 가지고, 또 다른 데 좀 유력한 분이 와서 그래 그분은 그때 갈 분이라 돼 놔서, 요번에 총공회에 와서 갈 분이 돼 놔서 그분하고 만나 가지고 서이하고 너이하고 나하고 다섯이 거게서 이런 거 저런 걸 의논하다가 나중에 보니까 한시 반인데 가고 난 다음에 또 뭐 이래 가지고 잔다고 해도 내가 아마 두시 넘어서 잤을 것이오.

이것을 모르면 헛일입니다. 제사장직이라 하는 그거 환하게 다 아는데 왜 이리 맞추면 모르고 이리 맞추면 모릅니까? 원만한 지식이 돼 가지고 있으면 이리도 저리도 다 맞는 거라. 이거는 꼭 보태기식 수학을 배워놨는데 알밤을 다섯 개에 다섯 개 보태면 열 개라 요것만 알았는데, 요것만 알아 가지고 떡 말하기를 ‘야, 이거 계란이 여게 다섯 개 여게 다섯 개 둘 합하면 이거 얼마고?’ ‘계란이요? 나는 이제까지 배워도 알밤만 배웠지 계란은 안 배웠는데요?’ 또 ‘자, 여게 지금 그 쌀포대가 다섯 있고 여기 다섯 있고 여게 와서 이게 합해서 몇 포대인지 모르겠다.’ ‘그거 내가 모르겠는데요?’ ‘여게 알밤 다섯 개 있고 여게 알밤 다섯 개 있는 그거 뭐이냐?’ `그건 열 개지요’ 이런 지식이 그게 다 기계적인 지식이지 그거 생명된 지식이 못 됐기 때문에 그렇다 말이오. 그 지식이 됐으면 여게도 저게도 다 되지. 적용성이 없기 때문에 요리 말하면 모르고 조리 말하면 알고 이러니까 도무지 적용성 없는 것이기 때문에 기계적인 지식이지 생명적인 지식이 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말이오. 이거 믿고 행하지 않기 때문에 그래요.

이 “십자가의 도가” 하는 것을 어제 아침에도 말하고 오늘 아침에도 지금 그것 말하다가 지금 이라는데 이걸 얼마나 말해야 될란지 몰라.

십자가의 도가 그 껍데기는 뭐이요? 십자가의 도의 껍데기는 뭐입니까? 외형은 뭐입니까? 대답 한번 해 봐요, 오늘 아침에 말했는데. 신구약 성경 도리 이 도리는 계약 도리입니다. 이 실상이 있는 것입니다. 실상을 우리에게 나타내 보인 것인데 잡으면 되는 거라, 제것 삼으면. 믿으면 제것 되는 거라.

또, 십자가의 도의 외형은 계시 계약이고 그 속에 내용의 실존은 뭐라요? 내용의 실존은 뭐라요?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녜, 요래 가리키는 게 맞아. 요래 가리키는 건 틀려. 요래 하면 둘로 봐, 아무라도. 요래 가리키면, 요라면 될 터인데 요래 가리키치는 것 보니까 열하나로 보는 거라. 누가 요래 가리켜요, 보니까.

지혜 있는 사람이라. 이라고 난 다음에 이래 가리키는 사람은 이거는, 이래 가리키면 누가 둘로 보요 열하나로 보요? 둘로 봐. 열하나가 실존입니다.

열하나는, 열하나는 그거는 다 완전성이요 영원 불변성이요 전지 전능성이요 아닌 게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열한 가지를 우리에게 은혜로 대속해서 구원해 주셨는데 이 열한 가지를 우리에게 줬기 때문에 우리가 이 열한 가지를 벗지 안하고 살면 당신이 대신 해 줬기 때문에 내가 대신 해 준 것을 내버리지 안하고 이것을 가지고 살면은 세 가지가 이루어져. 여덟 가지를 가지고 살면 세 가지가 이루어져. 세 가지 이루어지는 것도 완전 전능이라. 완전이요 영원 불변의 것이라.

완전 영원 불변의 것이 제사장 선지 왕직인데 이것을 만들라면 완전 불변의 것을 재료로 삼아 가지고 이것이라야 이걸 만들지, 완전이라야 완전을 만들지 불완전이 완전을 만들 수 있습니까, 어데? 이러기 때문에 이 도를 알면, 이 도를 알면 땅위에 뭣을 구원하기 위해서 염려하지 다른 사람이 무슨 욕을 하든지 어떻게 하든지 뭘 하더란대도 그 자체를 구원하기 위해서 그걸 멸망치 않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저렇게 하는 것이지 자기 위해서는 할 일이 하나도 없어.

요 여덟 가지만 가지고 하면은, 여덟 가지 생활 하면은 세 가지는 저절로 만들어져. 여덟 가지 행동하는 거. 여덟 가지 벗지 안할라고 하는 요것만 힘쓰지 딴거는 아무것도 없어.

이러기 때문에 “내가 과거에 가치로 보배로 여겼던 것을 이제는 다 배설물로 여긴다” 사람들이 모르기 때문에 이 보배가, 이 열한 가지의 보배, 여덟 가지는 재료요 세 가지는 결과적으로 조성돼 나가는 것인데. “이 열한 가지의 보배가 질그릇에 담겼다” 이 껍데기가 너무 허무하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이 껍데기 고기덩어리 사람에게 담겨 있는데 이 고기덩어리 사람에게 담겨 있기 때문에 겉어머리는 약한 것 같고 인간의 주관에 담겼기 때문에 인간 주관으로 볼 때에는 약한 것 같지마는 속의 알맹이는 한없이 강하다 그말이오.

십자가의 도가 겉어머리로 볼 때에는 약한 거 같지마는 속에 알맹이는 한없이 강하다 그거요.

이러니까 요걸 자꾸 가서 읽어 가지고 ‘이 십자가의 도라?’ 그러면 십자가의 도는 뭐인가 요것은 말했습니다. 알맹이 껍데기로 말했어.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 얻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의 도가 어떤 자가 볼 때에는 ‘이는 참 불리하다’ 하게 보여지고, 불리하다 보여지고 또 불리하게 돼져 버려요. 어떤 자에게는 ‘이 십자가의 도는 참 이 권능이다’ 그렇게 보여지고 또 행하는 자에게는 권능이 돼 버려. 전지의 권능이 돼. 하나님의 전지의 권능으로 자꾸 만들어져 나중에 보니까 껍데기는 사람이지만 속에는 하나님의 권능이라. 껍데기는 사람인데 속에는 하나님의 전지 전능이라. 이 사람이 우주와 영계를 다 통치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새벽기도를 나와요. 어제는 많이 나왔더니만 오늘 아침에는, 어제 아침에는 내가 좀 늦게 나오니까 그만 또 마귀란 놈이 ‘아이구, 목사님도 뭐 무슨 뭐 죄를 지었는가 와 가지고 머리도 못 들고’ 내가 머리 못 드는 것은 내가 내딴에는 그렇지마는, 어제 거게 ○○○선생이 그 있었고, 또 여기 ○○○선생이 있었고, ○○○목사님의 딸 ○○○선생이 그 있었고, 저 충주에서 온 음악에 아주, 그분은 실력이 있어요. 엊저녁에 보고 나는 또 놀랬어. 그분하고 이래 연구하느라고 이랬지마는 그걸 다 말하지 못하니 내 속에는 있지마는 다른 사람들이 ‘저렇게 그 시간 전에 안 나오고 늦게 나왔으니’ 하니까 다른 사람이 이래 보고 있으니까 내가, 일은 그래 했지마는 조금 늦게 나와 놓으니까 낯이 부끄러워서 머리를 들지 못하겠더라 그거요.

이 삼십 분 기도를 놓지 맙시다.

어제 아침에 기도에는 어제 이 보고에는 구의남 집사님이 기록 돼 있지 안 했어.

구의남 집사님? 엊저녁에 기도할 때는 어제 아침에 아레 저녁이니까 와 늦게 왔었어요? 늦게 와서 그래? 늦게 와서 그러면 그 장로된 사람이 그라면 안 돼.

장로 되면 좋은 줄 알아도 장로되면 자꾸 인제 야단만 만나. 야단 만나니까 좋아요 나빠요? 어? 나빠요?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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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7 십자가의 도/ 고린도전서 1장 18절-21절/ 870211수야 선지자 2015.11.28
2586 십자가의 도/ 고린도전서 1장 18절/ 1985년 12공과 선지자 2015.11.28
2585 십자가의 도/ 히브리서 12장 1절-2절/ 1980년 48공과 선지자 2015.11.28
2584 십자가의 비밀/ 사도행전 1장 4절-11절/ 820411주후 선지자 2015.11.28
2583 십자가의 원수/ 빌립보서 3장 17절-21절/ 800815금야 선지자 2015.11.28
2582 십자가의 평가/ 고린도전서 1장 18절-19절/ 820413화새 선지자 2015.11.28
2581 싸움 준비/ 에베소서 6장 10절-20절/ 851013주후 선지자 2015.11.28
2580 싹스와 쏘마/ 마태복음 13장 24절-30절/ 870610수새 선지자 2015.11.28
2579 쓴뿌리/ 히브리서 12장 14절-17절/ 850719 지권찰회 선지자 2015.11.28
2578 씨 뿌리는 비유/ 마태복음 13장 3절-9절/ 870426주전 선지자 2015.11.28
2577 씨 뿌리는 비유/ 마태복음 13장 3절-9절/ 841027토새 선지자 2015.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