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28 23:13
십자가의 도
본문 : 신명기 28장 1절∼6절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오전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 되고 구원을 받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고 하는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십자가의 도라는 말은 십자가의 길이라 말입니다. 믿는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생활은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걸어가기가 힘드는 어려운 길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십자가의 길인가 하는 것을 간단하게 오전에 증거를 했습니다.
첫째는 우리 주 하나님만 믿는 생활이요, 또 우리 주 하나님만 위하는 생활이요, 또 주 하나님의 뜻만 따르는 생활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도입니다.
십자가의 길입니다. 하나님만 믿는 것이 무엇이 그렇게 어려우며 또 주 하나님만 위하는 것이 무엇이 그렇게 어려우며 주님의 뜻만 따르는 것이 무엇이 그것이 어렵기에 십자가의 길은 걸어가기가 어려운 길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는가 하는 그것도 좀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어렵게 되는 것은, 우리가 세상에 하나님 외에 믿을 것이 많이 있는데 그 모든 것을 믿지 말고 하나님만 믿으라고 하니까 하나님만 믿는 것도 어렵지만 우리가 세상에 믿던 것이 하나 둘만이 아니고 심히 그 수가 많은데 그 모든 것을 안 믿고 하나님만 믿을라 하니까, 내가 믿었고 믿어 나왔고 또 믿어야 하는 그런 것들을 믿지 안하고 믿는 것을 하나님 한 분에게 만 다 그리다 집합을 시켜서 하나님 한 분만 믿으니까 내가 믿던 그것들이 저를 믿지 않는다고 해서 많은 어려움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길이 어렵습니다.
또, 내가 위하여야 할 것이 않습니다. 위하여야 할 것이 가장 좁게 자기도 위해야 되겠고, 가정의 가족도 위해야 되겠고, 사회도 위해야 되겠고, 또 국가도 위해야 되겠고, 전 인류도 위해야 되겠고, 또 물질도 위해야 되겠고 뭐 위할 것이 하나 둘뿐 아니라 많이 있는데 그 모든 것들을 다 위하지 말고 하나님 한 분만 위하라, 주님 한 분만 위하라 이라니까 위하는 것을 다 촐촐 끊어 거둬 가지고 하나님 한 분만 위하는 데다가 다 전부 집중시켜 버리니까, 내가 위하던 그것이 위하지 안하니까 반대를 하고, 위해 주지 않는다고 그렇게 대적을 하고 원수시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십자가의 길이 어려운 것입니다 또, 내가 서로 의논하고 서로 이해하고 서로 양보하고 서로 타협하고 이래 가지고 살아야 할 의사 교환을, 의사 타협을, 의사 양보를 또 의사 복종을 할 그런 뭐 대상들이 하나 둘 뿐 아니라 세상에는 가득찬 것이 세상입니다. 이런데, 이런 것들의 그 의사를 하나도 따르지 아니하고 싹 끊어 버리고 하나님 한 분의 의사에만 따를라고 하니까 그것들이 저희 의사에 응해 주지 않는다고, 합해 주지 않는다고. 저희 의사에 따르지 않는다고 해 가지고 여러가지 마찰과 박해가 오기 때문에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것은 어려운 길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 눈 떠. 졸면 뭣 하노, 졸면? 네가 목사 될라 하나? 목사 될라 하면 예배 시간에 조는 그까짓 게 무슨 목사가 되노? 안돼. 그라면 안 돼. 졸음이 오면 바늘 있어, 바늘. 바늘 가져와서 자꾸 찔러 대. 졸음 오거든 바늘로 찔러 하나님의 종 될라 하는 사람들은 그리 안 하고는 안 돼요. 졸음이 오거든 바늘로 찔러. 바늘로 찌르면, 뭐 그래 찔러 봤자 병 하나도 안나. 뭐 피가 약간 나도 더 건강해져, 괜찮아, 졸음을, 안 자야 되지.) 이렇게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은 십자가의 생활을 하는 것은 어려운 생활이요 어려운 길이라 십자가의 생활은 주님만 믿고 뭐 딴것은.-믿지 않는다 그 말은 인정 안 된다 그 말이오. 인정 안 되고, 신용 못 한다 그 말이오. 신용 못하고, 인정 안 돼. 인간들, 모두 다 자기를 인정하라고 자기를 따르라고, 자기를 위하라고 하는 것이 온 세상 사람들인데 그것을 하지 말라 하고 그것을 다 끊어 버리고 주님 한 분만을 믿고, 주님 한 분만을 위하고, 주님 한 분에게만 딿고 하는 이 생활 걸음을 걸을라고 하니까 마구 세상 그 전체가 달라들어 가지고 저 인정하지 안한다고, 저 인정치 않는다고, 제 말 듣지 안한다고, 저 따르지 않는다고, 저 위해 주지 않는다고 또 저를 따르지 않는다고 이래 가지고 달라드니까, 그 세상이 나에게 달라들어서 이 십자가의 길을. 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하니까 거기에 여러 가지로 고통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고통이 있기 때문에 십자가의 길을 어려운 걸이요 고통스러운 길이라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대해서도 오전에 말씀했는데 여러분들이 잘 새겨야 알지 새기지 안하면 모를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세상에 믿던 것을 다 버리고, 세상에 위하던 모든 것도 다 버리고, 나는 부모도 위해야 되고, 처자도 위해야 되고. 친구도 위해야 되고 이웃도 위해야 되고, 상관도 위해야 되고, 부하도 위해야 되고 뭐 위할 것이 얼마나 많은데 위하는 것을 다 끊으라고 하지, 또 모두 다 믿고 살자고 이라면서, 요새는 신문에 뭐 믿고 살자고 이래 가지고 언제 내가 어디 한번 보냈더니만 갔다 오더니 말하기를, '아 그거 할 게 뭐 있습니까? 서로 좀 믿고 삽시다.' 그런 말하더라고. 어떤 집사님이 나한테 와 가지고, 뭐 나무 때문에 갔었는데, 갔다 오니까 '아, 서로 믿고 삽시다' 그렇게 말하더라고. 어디든지 가면 그만 '믿고 삽시다' 이라는데, 모두 믿고 사는 것을, 사회에서도 국가에서 도 철학에서도 각 종교에서도 모든 학계에서도 교육계에서도 전부 믿고 살자 하는 이 세상인데 예수 믿는 것은 '땅위에 있는 모든 피조물을 믿지 말아라' 하기 때문에 이거 큰 참 역할의 길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믿던 것을 어떻게 하는가? 그런 것을 믿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그런데 대해서는 다 그것을 믿지 안하면 다 끊어 버려 버리고 저버려 버리고 우리는 그러면 세상이 없는 세상으로 살아야 되겠는가? 오전에 그것을 말씀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우리는 하나님처럼 전적 믿지 안하고, 거기에 대해서는 하나도 그것만으로 단독으로는 믿지 안하고 하나님 한 분을 믿는데, 하나님이, 내가 하나님 한 분을 믿는데 내가 믿는 그 하나님이 믿으라 할 때에, 그것을 믿으라 하는 것만 믿습니다. 그래서, 모든 피조물을 믿는 그게 하나님 믿는 데에 모순되지 안하고 그것 믿는 것이 곧 하나님 믿는 것이 되어지는, 하나님 믿는 것이 되어지는 고 정도에서만 고 종류에서만. 그 부분에서만, 세상에 모든 있는 것을 믿되 하나님 이, 하나님이 믿으라고 하는 것 믿고, 그것을 믿는 것이 하나님 믿는 것에 반대되면 안 믿고. 그것 믿는 것이 곧 하나님 믿는 것이 되어질 때만 믿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무조건 믿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한 분을 믿는 그 믿음으로 인해서 믿는 것들입니다. 요것이 우리가 걸어가는 길입니다. 그렇게 취급하면 세상에 내가 하나도 버릴 것이 없고, 고것을 바로 믿어 바로 상관을 가짐으로 나도 복되고 그것도 복되고 모두가 다 바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하나님을 버리고 저를 믿으라고 하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배치되게, 하나님에게 반대되게. 참에게 반대되게.
진리에 반대되게 옳은 것에 반대되게 그것을 믿으라고 하기 때문에 그것을 믿는 것은 나도 죽고 그것도 죽고 다 몰사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데 대해서는 요렇게 성경이 가르치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피조물에 대해서는 하나님 믿는 일이 되는 고 믿음만 피조물에게 대해서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피조물 믿는 것이 하나님 믿는 것에 반대가 되어지면 그거는 믿을 수 없는 것이고, 피조물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이 믿으라 하는 것만 믿고, 또 그것 믿는 것이 곧 하나님 믿는 것이 되어지고 하는 거기에서만 고 한계를 범위 잡아 가지고 모든 피조물들을 믿는 일을 하는 고것이 피조물은 피조물만치 믿는 것이요 창조주는 창조주만치 믿는 것이기 때문에, 창조주는 그에게 전적 다 믿어야 하는 것이고 피조물은 제한적 신앙을 가져야 되는 것이니까 피조물에 대해서는 어떻게 믿어야 되느냐? 하나님께서 믿으라고 하는 그 범위 내에서만 믿어야 되지 그 법칙을 떠나서 믿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곧 그것을 믿어야 되는 것이 될 때에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그것을 믿게 되는 것. 그것 믿는 것이 하나님 믿는 것이 되어지는 것 그것이라야 믿어야 되기 때문에. 그 믿음은 하나님 한 분만을 믿는 그 믿음이 근거되고 거기에서부터 나온 믿음이기 때문에 그 전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믿어도 그것은 주님 한 분을 믿는 것이지 그것을 믿는 것이 안 되는 것입니다.
또 위하는 것도 그와 같은 이치로 생각하면 됩니다. 하나님 떠나서는 아무것도 우리가 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한 분만 위하는데, 하나님 한 분만 위하니까 하나님께서 '네가 나를 위할려면 요거는 요만침 위하고 조거는 조만침 위하고 요거는 요래 위하고 조거는 조래 위하고' 하나님이. 내가 당신을 위할라 하니까.
'내가 당신을 위해서 무얼 하오리까?' 이라니까 주님이 '아, 요것은 네가 요렇게 위하고, 요거는 위하지 말고, 요거는 위하다가 중단하고, 요거는 더 길게 위하고, 요거는 좀 많이 위하고, 요거는 위할 게 아니고 요거는 박살 내 버리고' 이렇게, 당신이 당신을, 위하는 것으로 땅 위에 모든 것을 위할 수 있고 당신을 위하는 것이 되는 그 위함은 가지지만 당신을 위함이 안 되는 그 위함은 하나도 가질 수 없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내가 지금 부모가 죽었으니까 장례하고 난 다음에. 먼저 가서 장례하고 주를 딿겠습니다' 이라니까 주님이 금했습니다 '죽은 자는 저의 죽은 자로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라라.' 그것을 허락지 안했습니다. '먼저 가족을 작별하고 딿겠습니다' 하니까 주님이 허락지 안하시고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늘나라에 합당치 않다' 그렇게 주님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위하는 것도 주님 한 분만 위해야 되지 다른 거는 위해서는 안된다.
그러면, 세상에 천 가지 만 가지 위하던 것은 어째야 됩니까? 그걸 다 버려라.
안 된다. 그러면, 그것을 다 상관 안 해야 됩니까? 안 해야 될지 해야 될지 너는 모른다. 주님을 위하는데 주님 위하는 것이 그것을 위해야 주님 위함이 되어질 때는 그걸 위해라. 그러면 그것 위하는 것이 주님 위하는 것이 되어진다.
그러기에, 주님 위함이 되어지는 모든 피조물 위함은 하되 주님 위함이 되지 않는 피조물 위함은 금물이라 위하지 못한다 하는 것을 요것을 똑똑히 구별해서 살아야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모든 것을 구별해 가지고 아주 참 호리라도 틀리지 않도록 요렇게 나가야 되는데, 예수 믿는 사람 쳐 놓고, '뭐 그러면 그렇고 저런면 저렇지' 흐리멍텅하게 물에 물탄 듯 술에 술 탄 듯 그저 좋다고 무골 호인으로 벙벙하는 그까짓 거는 예수 못 믿습니다. 그거는 인본주의요. 암만 해 봐야.
다른 사람이 성자라 해도 인본주의라. 제가 처음 믿을 때 성자의 전기들을 봤는데 그게 성자가 아니라. 그거 다 성자 아니라. 작대기로 그어야 돼. 성자가 아니라. 그 다음에 오빌리엔 하는 성자의 전기를 봤는데 그 분은 참 성자라.
우리가 위하는 것도 이렇게 주님 한 분만을 위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를 들면 아주 개망나니 같은 내게 원수가 하나 있습니다. 원수가 하나 있는데 그 원수를 뭐 위할 필요가 있습니까? 없는데 내가 주님을 위하고 보니까 주님이 있다가 '야, 너 그 원수 그것 위해서 네가 기도해야 되고 네가 권면해야 되고 또 네가 할 수 있는 데까지 그에게 무엇을 필요한 것을 해 줘 가지고 그를 네가 어짜든지 멸망받지 안하고 회개하고 구원 얻도록 그렇게 위해라. 아주 진정으로 위해라' 이라니까. 주님을 위할라고 하니 그걸 위해야 되겠고 그걸 안 위하면 주님 위함이 안 되겠고, 이러니까, 주님 위하기 위해서 그 걸 위해야 되고, 그거 위하는 것 이 주님 위하는 것이지 그걸 위하지 안하면 주님 위함이 안 될 때에 주님 을 위하기 위해서 그걸 위하는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그와 같은 것입니다.
또, 따르는 것도 주님 떠나서 내 단독이, '아. 주님도, 주님 의사를 열 번 들어 줬으니까 내 친구 의사도 한 번은 들어 줘야 되겠다. 또 주님 의사 돌 내가 뭐 백 번은 들어 줬으니까 내 부모의 의사도 또 아무래도 한 번이야 들어줘야 되지 않겠나?' 그게 멸망입니다. 안 됩니다 이제는 주님 한 분의 의사에만 따라야 되기 때문에, 주님 의사를 딿고 보니까 이 모든 의사는 어짜느냐? 모든 의사가 꽉 찼는데 그 의사가 주님 의사에 따르는, 주님 의사에 따르는 것이 되는 그 모든 인간들의 의사는 다 네가 따라라. 그러나, 주님의 의사에 따르는 것에 반대되는 인간 의사는 다 배격해 버려라. 주님 의사에 따르는 것이 되어지는, 주님 의사를 따르는 것이 되어지는 고 인간 의사는 네가 따라야 된다 하는 그것이 우리들의 생활 걸음입니다. 이것은 여러번 말했으니까 다 알 건데 모르는 사람은 뒤죽 박죽 그래 안 돼요.
제가, 언제 여기에 이상한 책이 나와서 그 책을 할 수 없어 내가 그걸 주면서 모든 목사들에게 회람을 시켰습니다. 회람을 시켜 가지고 '이 책을 보고 그걸 비판을 해서. 뭐 잘못된 게 있거든 비판을 해서 여기에다가 표시를 해라. 그래 가지고 나한테로 돌려라' 이랬는데, 학자 박사라면 몰라요. 학자 박사들은 이거는 똥에 똥 탄 듯 물에 물 탄 듯 그만 분별을 못해. 박사들이 그렇게 등신이라 바보라. 분별 못해. 통통 무식한 그것이 그걸 분별을 잘해요.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라는 것은 구별성이라는 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기에, 설교 들으면 '저 사람 비빔밥 신앙이다, 두루 뭉실이다 뼉다구 없는 호인이다' 그런데는 생명이 없습니다. 그런 설교에 무슨 생명이 있습니까? 콩팥을 가려서 '요거는 아니다. 요거다' 해서 바른 진리라야 우리가 그 길로 걸어가고 그래야 구원이 되어지고 그래야 하나님이 동행해 주시지 그렇지 않으면 무슨 하나님이 동행을 해 주시겠습니까? 그래서 오늘은 어려운 것 세 가지를 배웠습니다. 우리는 주님만 믿어야 한다, 주님만 위하여야 한다. 주님만 따라야 한다. 그러면, 주님을 믿는 일을 어디서 할 것이냐? 주님 믿는 일을 모든 피조물에게서 모든 세상에서 해야 된다. 모든 피조물은 주님 믿는 그 일에 이용하는 그 모든 피조물들이다. 주님을 위하는 그 위함에 이용되는 모든 피조물이다 그러면, 모든 피조물은 주님을 위해서 모든 피조물을 관계를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 위함이 되는 피조물 위함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 주님 위함이 되는 피조물 위함만 우리가 해야 될 것.
주님 의사를 따르는 그 따름이 되는 이 모든 인간 의사에 않는 것은 그는 우리가 따라야 돼. 그것 따르지 안하면 인간 의사를 따르지 않는 거 아니라 주님 의사를 따르지 안한 것이 되기 때문에 그것은 반박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요라면 여러분들이 요것을 잘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은 어떤 것이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이냐?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은 이 세 가지, 주님만 믿고 주님만 위하고 주님만 따라가는 이 세 가지 생활을, 늘 평소에 이 생활을 하는 것이 이것이 자기 생활되는 것이 이것이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요, 이라다가, 오랫동안 하면 지루하기도 하고 권태나기도 하고 또 피곤하기도 하고 이러나 자기의 형편 사정 세상 사정이 아무리 변동이 된다 할지라도 십자가의 길은 변동하면 안 되는 그것이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언제는 걸어가다가 걸어가기 싫으니까 말고, 지루하니까 걸어가지 안하고, 피곤하니까 걸어가지 안하고. 또 복잡하니까 걸어가지 안하고 하는 것은 그것은, 생명을 내놨다가 또 가졌다가 그래 할 수 있습니까? 생명은 내어 놓으면 죽는 것입니다. 생명의 운동인 그 숨쉬는 것도 끊어지면 그만 기절돼 죽어 버리고 썩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십자가의 걸음은 생명길이기 때문에 이 생명 길은 중단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평소 어떤 때라도 계속해야 되는 것이 십자가의 도인이요, 이렇게 걸어 가다가 어떤 복잡하고 어려움이 있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어떻게 분요함이 있어도, 어떻게 내게 내 자체의 어려움 환경의 어려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이 십자가의 길을 계속하는 것이 십자가의 도인입니다. 계속 하는 것이 십자가의 도인이요, 계속하지 않는 자는 십자가의 도인이 아닙니다. 또 이 길 걸어가다가 자기에게 무슨 감옥에 갇힐 일이나 그리 안하면 가정이 파괴되는 일이나 또 자기 생명이 위험한 일이나 자기의 모든 산업을 다 뺏기는 일이나 자기에게 온갖 곤욕이나 박해를 당하는 일이나 어떤 일이 있어도 이 길을 걸어 가는 것이 십자가의 도인입니다. 이라다가 마지막에 죽는 일이 있으면 그때는, 죽음에는 어찌 되겠느냐? 생명 문제인데, 생명 문제도, 이 길을 걸어가다가 자기 숨이 끊어지는 것이 그것이 십자가의 도인입니다. 우리는 십자가 도인입니다.
우리는 도인이오.
따라 합시다. 도인! 도인! 도인! 우리는 십자가 도인입니다. 이렇게 가는 것이 십자가의 도인입니다.
그러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사람들에게 미련한 것이 된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멸망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은 불택자를 가리켜서 말합니다.
불택자들에게는 이 십자가의 도가 그들의 지식에는 이해가 안 됩니다. 그들의 지식에는 이해가 안 됩니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이해가 될 수 없는 것은 왜 이해가 되지 않느냐?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불택자들은 그들은 하나님과 끊어져 가지고 피조물끼리만 말하고 피조물끼리만 계산 대고 피조물끼리만 의논하기 때문에 피조물끼리로 사는, 피조물끼리로서는 이 십자가의 도는 망하는 길입니다. 안 됩니다. 십자가의 도는 피조물끼리만 이렇게 상관을 가져 가지고 살아가는 그 걸음이 아니고, 하나님에게서 떨어져서 피조물끼리만, 저거끼리 우물거리고 이렇게 모이고 이래 서로 상호 협조하고 이래 살던 것이 이제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자존자 창조주 주재자 주권자 그분과 연결이 돼 가지고 걸어가는 것이 십자가의 걸음입니다. 연결이 돼 가지고 걸어가는 것.
그러기 때문에, 이는 창조주와 상관해 가지고 걸어가는 걸음이기 때문에 피조물끼리 상관 해 가지고 걸어가는 걸음으로서는 도저히 수지가 안 맞고 이치가 안 맞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의 지식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걸음이라는 것을 가리켜서 미련한 것이 된다 하는 말이고, 또, 이 길을 걸어가면 불택자가 유익이 있느냐? 유익이 없습니다. 이 길을 걸어가는 것은 불택자에게 유익이 없습니다 유익이 없는 것은 왜 유익이 없느냐? 불택자들에게 유익이 없는 것은 화약을 쥐고 불로 들어가는 거와 마찬가지인 걸음이기 때문에 유익이 없습니다. 이 걸음은 불택자의 그 모는 인격도 주장도 사상도 욕망도 그 모든 영향도 존귀도 완전히 박살 돼서 박살해서 멸하는 것이 이 십자가의 도이기 때문에 그거 찍해야 화약 쥐고 불로 들어가는 것뿐이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미련한 길이 되는 것입니다. 요거 이해가 됩니까? 십자가의 도는 불택자들의 그 모든 행위도 주장도 영광도 다 파괴시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는 마지막으로 멸할 것을 전멸시키는 것이 십자가의 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쉽게 말하면 죄를 멸하는 것이 십자가의 도이기 때문에 죄로 살아가는 자는 그것은 멸해지는 길이기 때문에 십자가의 도는 그들에게 이해도 되지 안할 뿐만 아니라, 또 유익도 되지 안할 뿐만 아니라 다 그 자체를 멸해서 완전히 멸해서 없애 버리는 것이 십자가의 도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죄를 멸하기 위해서 오셨고, 악령을 멸하기 위해서 오셨고.
인본주의를 멸하기 위해서 오셨고, 하나님을 떠나서 피조물끼리 우글거리면서 살고, 피조물끼리 살고 피조물 끼리만도 된다 하는 것을 완전히 박살을 시키기 위해서 오신 것이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요것을 알아야 됩니다. 십자가의 도는 그러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유익이 없고 미련한 것, 불리한 것, 어리석은 것 그런 것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말하는 것은 택함을 입은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왜 하나님의 능력이냐? 요 십자가의 길, 주만 믿고 주만 위하고 주께만 따르는 요 세 가지의 생활이 왜 능력 생활이 되느냐? 요 세 가지 생활은 이 피조물이 대주재 자존자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이분하고 자기하고 이렇게 속함을 시킵니다. 내가 거기에 속해 가지고 하나를 만들어 버립니다. 나와 하나님과 하나 되기 때문에 하나 되는 이 방편이요 이 걸음이기 때문에, 이 생활이기 때문에 권능의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이 걸음 걷는 것이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모든 축복을 다 받을 수 있는 이 받는 걸음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축복을 내가 솔빡 다 받는 이 길이요 이 걸음이요 이 생활이기 때문에 능력의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이래 가지고 이제는. 받을 뿐만 아니라 이 길을 자꾸 걸어 가게 되면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전부가 내 것이요. 하나님도 내 하나님이요 나는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은 내 하나님이라 이러기 때문에, 내가 완전히 하나님의 것이 되어졌으므로 하나님의 모든 것이 내 것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이 기독자의 완성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십자가의 도는 구원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오전에 증거했는데 왜 오후에 지금 신명기 28장을 봉독했는고 하니, 우리 서부교인뿐 아니라 모든 우리 진영 교인. 우리 진영의 교인뿐 아니라 모든 한국에 세계에 있는 모든 흩어져 있는 교인, 이 교인들이 모두 곤고함을 당하고 있습니다. 뭐 근근히 모두 남한테 하나 있으면 둘 있는 양으로 하고, 또 빚을 내도 뻔쩍거리면서 옷을 해 입고 돌아다니고, 자기 지위도 아닌 것도 과장을 해 가지고 자꾸 지위를 만들어서, (○○○, 졸면 안 돼. 조는 거기에 분개해야 돼. 딴 데 분개할 게 아니라 조는 거기에 분개해야 돼.) 모든 사람이 모두, 우리가 다 곤고하게 돼 가지고 있는데 이러니까, 속에 하나 있으면 둘이나 서이나 다 나타낼려고 하고 있으니까 전부 공허하고, 공허하고 허약하다 그 말이오. 허약해. 속이 텅 비어서 약해 가지고 있어. 허약해 가지고 있으니까, 이래 놓으니까 속에 아무것도 보기보다 속에 알맹이라 하는 것이 하나도 없어.
보기보다 속을 들여다보니까 아무 것도 없어.
이런데, 이렇게 이런 우리 기독자들을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하겠느냐 자, 지식적으로도 모두 문화국에 비교하면 수십 년 떨어져 가지고, 있으니까, 문화가 떨어져 가지고 있으니 이것도 어떻게 하며, 또 경제적으로 봐도 모두 모두 빚이 져 가지고 있으니까 언제 빚 갚고 언제 뭐 죽자 껏 모아 볼까, 죽자껏 모아 봤자 그거, 품들어서 모아 봤자 일 년 모으면, 한달에 만일 뭐 밥 먹고 이래 지내 가지고 얼마쯤 저축한다 해도, 한 달에 그라면 만 원씩 벌면, 만원씩 벌면 이십 오만 원입니까? 이십 오만 원 가지고 생활하고 나면 어째 한, 잘 모으면 한십만 원이나 오만 원 안 모습니까? 어찌 돼요? 자, 계산 빠른 사람. 우리 ○장로님.
한 달에 얼마나 모을까요, 이십 오만 원 받아 가지고? 스무 닷새밖에 일 못하거든. 주일날 빼면. 이십 오만 원 받아 가지고, 아마 이십 오만 원 받는 사람이라면 이십 만 원은 해야 생활할 거라. 안 그렇겠습니까? 근근히 해도.
그러면 오만 원 남는데. 오만 원이면, 자, 일 년이면 얼마 됩니까? 육십 만 원십 년이면 얼마입니까? 또 백 년이면 얼마됩니까? 하. 백 년 모아야 육천만 원 모으니까 이거 뭐 이래 봐도 감감하다 그 말이오. 이거 언제 이래 가지고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 지우며. 이거 또 글을 배울려 하는 것도 이거 배워 가지고 이래 해도 언제 배워 가지고 이게 되겠나, 또 뭐 사람이 자기가 무슨 기술을 배운다든지 뭐 이래 가지고 이 멸시하고 천대받는 여기에서 이걸 헤고 날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제가 자꾸 이번 궁구를 해 봐요. 늘 이래 하면서 '어째야 우리 교인들이 구출돼 가지고 뭐이 돼 질꼬?' 암만 봐도 쉬운 길은 한 길밖에 없어. 쉬운 길은 한 길밖에 없어. 한 길밖에 없는데 또 그 길은 백에 하나도 실패 없는 완전한 길이오. 한 길밖에 없어. 길은 한 길밖에 없어요.
한 길밖에 없는데 그거 무슨 길일까요? 아마 ○○○집사님 좀 아는가 뭐 빼쭉빼쭉 웃는데, 그거 무슨 길이죠? 예? 한번 대답해 봐요. 예? ○○○집사님.
시간 가. 대답해 봐. 무슨 길이라? 예? 뭐라 하노? 예? 크게 말해 봐요, 여기에 누가. 그래. 축복 받는 길. 그래 축복 받는 길 그 길밖에는 없어. 하나님의 축복 받는 길밖에는, 축복이라야 되지 뭐 축복 받지 안하고 이거 언제 뭐 기어 가고 뭐 알뜰히 하고 부지런히 하고 뭐 이래 한다고 해도 감감하이 안 되겠어. 그래 가지고는 내 평생에 그 결과는 못 보겠습니다. 내가 지금 일흔 여섯 살인데, 일흔 여섯 살인데 만일 백 살 산다 하더란대도 몇 해입니까, 그라면? 이십 사 년 살지? 백 살 살면 이심 사 년 사는데 백 살 사는 사람이 있어야지, 또? 이십 사 년 살아 봤자 아까 오만원 씩 그라면 일 년에 육십만 원이면 육백만 원, 이십 사 년이면 얼마입니까? 천 이백만원, 뭐 천 뭐 몇 백만 원밖에 안 되니 그래 가지고야. 그까짓 것 천만 원 가지고 무슨 재산입니까? 이러니까. 이래 가지고도 안 되겠고. '이게 뭘 이렇게 해야 속성이 될꼬? 이라는데 에는 하나님의 축복밖에는 없다.' 축복이면 그거, 축복 이라면, 여기에 보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노니'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노니 네가 내'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그 행하는 데에는, 행하는 데는 일년 행하면 십 년 행하면 오십 년 행하면 육십 년 행하면 그렇게 뭐 행하는 기간이 여기에 성경에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일 년 행해야 준다 십 년 행해야 준다 그게 없습니다. '오늘날 네게 명하는 이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 내가 네게 복을 줘서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겠다.'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할라면 지식도 뛰어나야 될 것이고, 인격도 뛰어나야 될 것이고, 뭐 정치성도 뛰어나야 될 것이고. 또 활동도 뛰어나야 될 것이고. 수단도 뛰어나야 될 것이고. 경제도 뛰어 나야 될 것이고 모든 문화도 뛰어나야 되고 모든 면이 다 뛰어나야 되지 하나만 뛰어난다고 그게 뛰어나집니까? 이러니까, 주님이 이렇게 뛰어나게 한다고, 주님이 하실라면, 그분이 없는 가운데서 만드신 분이니까 만들어 놓은 것을 세계에 일등 되구로 만들라 하면 그까짓 거야 당장 되겠다, 하루 아침에라도 되겠다 그 말이오 그분이야 하루 아침이라도. 이 제일 못난 인간을 천하에 제일 잘난 인간을 만들려면 하루 아침이라도 만들 것 아니라 뭐 한 시간에라도 만들 수 있겠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이분만이 할 수 있어. 이러기 때문에 이분에게 밖에는 구할 길이 없다, 다른 길은 없다. 이분으로 말미암아 해결을 지워야 되겠다.
제가 이것을 오래 동안 많이 생각해 봤습니다. 뭐로 가지고 할까 이래 봐도 안 되고 저래 봐도 안 되고, 이거 뭐 복음은 전하는데 모두 일꾼들은 다 나섰어.
일꾼들이 지금, 지금 사도 뭐 유력한 목사들이 여기 중간반 반사도 꽉 찼지 권찰도 꽉 찼지 또 주일학교 반사도 꽉 찼지 거의 가면 다 일등 목사요. 가면 다 일등 목사로 할 수 있는 데, 갈라 해 봤자. 자, 어디 가서 길가 가서 이래 뭐 외쳐 가지고 될 만한 그런 실력은 없고, 어디든지 기성 교회가, 예배당만 있으면 그만 외치면 목사가 되겠는데. 자, 분교가 지금 열 여덟 군데가 있는데 그것도 터를 살라 하면 한 군데 일억씩 주고 살라 해도 그라면 열 여덟 군데면 십 팔억이 들어야 될 것이고. 또 거기에 집을 지을라 하면 또 일억씩 할라 하면 또 십 팔억, 삼십 육억이 돼야 될 것이고 이래 돼야 되는데, 삼십 육억 커녕 삼천 육백만 원도 없는데 이거 뭣 하겠소? 이라니까, 하기는 해야 되겠는데 이걸 어떻게 해 가지고 할까? 그러면 교인들에게 '연보를 내라' 뭐 거지같은 교인들 톨톨 다 털어 내 봤자 그 까짓 것도 또 몇 푼 안 되니 그래 가지고도 안 되겠고. '안 됐다. 하는 것은 그저 주님이 복을 줘서,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니까 경제적으로 뛰어 나야 되지 뭐 그리면 딴 것만 뛰어날 건가? 당신에게 복 받는 길 밖에는 없다. 이 길밖에는 없다.' 이 길이 제일 첩경이라. 제일 쉬운 길이라 이러니까 우리는 모든 면으로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야 이 복음으로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가 있겠습니다. 경제로도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야 되겠습니다. 이러니까, 주님이 하실라면 당장에 할 수 있어 그것은 여기에 보니까 신명기 28장에 보니까 네가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 민족 된다. 네가 성읍에서도. 성읍에서도 복을 받아서 성습에서도 제일 대가리가 된다, 또 들에서도 농사짓는 데도 제일 대가리가 된다. 항상 대가리만 된다,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는다. 모든 사람에게 꾸어주지 꾸일 것은 하나도 없다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는다. 뭐 자손도 자손 잘되게 우리가 할라 해도 잘 됩니까? 이런데. 네 소생이 모두 다 복 받아 잘 된다 전부 여기에는 보니까 무슨 순서를 노력을 해 가지고. 뭐 해 가지고, 어떻게 해 가지고, 몇 해를 걸려서 이런 게 하나도 없고 '복 받아야 된다' 전부 복 받아야 되는 거라.
성읍에서도 복 받고 나가도 복 받고 들어가도 복 받고 소생도 복 받고 네 소유도 복 받고. 전부 복 받아 가지고 된다 이랬으니까 이 복만 받았으면 해결이 되겠습니다. 안 그렇겠습니까? 복만 받았으면 해결이 되겠어.
복만 받으면 해결이 되겠는데 복 받는 것은 또 말해 놨다 말이오. 여기 말씀하시기를. '내가' 하는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내가' 신명기 28장 1절에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너희들에게 명령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하나님 여호와라 말은 하나님이란 말이오. 하나님께서. '네 하나님 여호와 내가' 그말입니다.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그러면, 성읍에서도 복 받고 들에서도 복 받고 네 몸의 소생도 복 받고 토지의 소산도 복 받고 짐승의 새끼도 복 받고 우양의 새끼도 복 받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12절에는 말이지요.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으사' 하늘의, 하늘 문을 열고 막 디리 쏟는다 하니까 그 어찌 되겠습니까? 엿새 동안에, 엿새 동안에 우주를 지었으니까 그분이 한 시간만 복을 쌓는다 해도 굉장할 것입니다. 이런데 하늘 문을 열고 들이 쌓아 놓으면 그거 뭐 이 우주 이런 것 몇 억억만 배도 되지 않겠습니까? 이거 뭐 당장에 그분이 할라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말이오. 이 길밖에는 없다 이 길이 그리하면 무슨 이거 도박 모양으로 모험성인가? 그거 아니오. 하나님은, 절대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는 계약의 말씀입니다 계약적이오.
'보고를 열으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 줄지라도 꾸지 아니할 것이요 이러니까, 모든 사람에게 꾸어 줄 것이 있고 꾸일 것이 하나도 없다 하니까. 모두, 전부 부도가 나 가지고 이리 저리 피난도 돌아다니고 또 뭐 돈을 떼어 먹었다고 예배당에 오다가 멱살을 들리기도 하고 또 이렇게 싸우기도 하고, 또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이렇게 모두 야단을 지기는데 이거 좀 암만 해도 해결을 지워야 되겠는데, 그분이 우리에게 그만 물질의 복 주면 물질 문제가 해결이 될 것이고, 아주 불출. 못난 인간에게 인간 복을 주시면 다 잘나고 명철하고 그럴 것이고 그분이 복 주면 모든 사람이 감탄하는 모두 감화의 사람이 도덕의 사람이 돼서 모든 사람이 다 우러러 이렇게 보게 될 것이고, 그분이 와야 되겠다 말이오.
그분이 안 와 가지고는 해결을 못하겠어. 그분이 와야 되지, 그분이 와 가지고 복을 줘야되지 그분이 아니고는 안 되겠어요. 아무리 뭐 잘난 사람이 어떻게 되고 어떤 횡재수를 닥치고 무슨 장사를 잘하고 뭣을 장소를 잘 얻고 뭐 암만 해 봤자, 장소 잘 얻어 봤자 애터져 안 되겠어. 또 무슨 물편을 해 가지고 어떻게 또 돈을, 그것도 안 되겠어. 그것도 애가 터져서 안 되겠어요. 이거 되어져야지.
그것 가지고 언제 되겠소? 이러니까, 요는 '오늘날 네게 명하는' 우리 현실에서 당신이 명하는 고 하나 또박 또박 지키면 당신이 그것 보고. '너는 장소가 좋으니까 이 복 받아라, 너는 또 장사의 종류가 좋으니까 이 복 받아라, 너는 장사의 머리가 있으니까 이 복 받아라, 우리에게 있는 것 하나도 말하지 안했소. 당신이 복으로 주마 했어, 복으로. 이러니까, 이 분이 오면 되겠다 말이오. 이런데. 오늘 우리가 피조물끼리 자꾸 어정거리지 말고, 그분이 복 주실 수 있는. 복을 받을 수 있는 이 길을 택하는 것이 이것이 아주 제일 지혜 있고 능숙한 일인 것입니다.
시골에서 보면 그래요. 이 세상 일도, 그거는 뭐 온전한 거는 아니지만 어떤 사람 보면 화전밭에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누워 자고 막 자꾸 화전을 파서 한 포기 요것도 가꾸어야 되고 조것 가꾸어야 되고 또 저축하고 암만 해 봤자 나중에 살림 톨톨 털어 보면 그저 몇 천만 원도 안 돼요. 산골에 뭐 논을 개간한다고 애를 써 가지고, 보면 손톱이 지고 피가 다 나오고 이렇게 개간해 가지고 몇 평을 만들었다, 논을 개간하고 이래 가지고 죽자껏 해 놔도 나중에 그거, 우리 동네 ○○○이라는 사람, ○○○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뭐 미련 하기가 곰이라 합니다. 어찌 일을 많이 하든지 이렇게 하는 데, 나중에 파산될 때 팔아 보니까 그거 뭐 몇 백만 원도 안 돼요. 참 허무해요 논 그거 한 마지기 도시 것은, 뭐 요새 돈 이백만 원 가는 것을 한십만원도 안 줄라 해.
죽자껏 애를 써도 안 되는데, 그것이 어째 이렇게 그만, 그런 사람이 나와 가지고 저게 아주 돈 많은 부자의 사장들 집에 가 가지고 심부름군으로 들어갔는데. 하도 착실히 심부름 하니까 고 쓸모 있다 싶어서 심부름을 또 조금 더 키워 주고 더 키워 주고 더 키워 줘 가지고 나중에 가서는 고만 그 회사의 아주 중책임을 맡기고 그 회사의 모든 물건을 만들어 가지고 '이것 총판을 네게 줄 터이니까 네가 전국에 이걸 다 총판 줘라, 이것 팔아라' 이래 가지고 그만 부자가 됐어.
여기서 저 ○ 씨라고 있지요? ○ 씨라고 알지요? 여기 저 내나 ○○중 고등학교, ○○중고등학교인가 무슨 고등학교 이사장, 모르요? 예? 몰라? 여기에 ○사장 있지 안해요. ○ 사장? 요 위에. 아, ○사장, 옳지 ○사장. ○사장이 아니라 ○ 사장이라. 그랬는데, ○사장이야 ○사장. 옳지. 그 친척이 와 가지고.
화전 파다가 와 가지고 거기에 들어가 가지고 이제 조금 몇 해 좀 꼼짝 꼼짝 이라더니만 그만 그 총판해서 당장 그만 이런 부자가 돼 버렸어. 그 뭐 산전에 가 가지고 몇 대 고생한 것보다 훨씬 나아. 그런 것도 잘 만내면 그렇다 그 말이오 그런데, 그분보다도, 이거 뭐 이런 정권자 저런 뭐 잘난 자 이런 학자 이런 뭐 사장 만내 가지고 하는 것도 좋지만 그도 다 거지들이고 언제 만날지 모르니까 큰 부자 한 번 거머쥐자 말이오. 큰 부자 큰 부자. 아주 제일 크고, 제일, 참말로 이 부자 하나 거머쥐고, 그분이 또 말하기를 내 말만 잘 들으면 너희에게 모든 걸 다 주겠다 했으니까 그분이 신실한 분이라. 이분 한번 거머쥐고 한번 시작해 보자 그 말이오. 이러면, 참 왕대 끝에 왕대가 난다고 이분 거머쥐고 무슨 의논을 해 가지고 거기에서 한번 재주를 부릴라 하는 사람은 큰 성공 할 거라 그 말이오 이래 가지고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돼서 '자, 우리 분교 할랍니다.
분교 합시다' 하면 '아이구 내가 할랍니다.' 이 사람이 분교하면 되고 분교 하나 할려 하면 이억 내야 되는데 '아 내가 이억 내지요.' 저 사람도 '아, 내가 낼랍니다. 내 내가 낼랍니다.' 이래 가지고 이래 해서. 우리 교인이 한, 장년반만 해도 재적수로 말하면 몇천 되니까 이런 사람들이 이래 가지고 하나 앞에 뭐 이억이고 삼억이고 내 가지고 한 군데고 두 군데고 분교 내면 우리 한국에 교회가 삼천 교회가 설 수 있지 않소? 우리 주일학교 중간반 반사들은 냅두고 중간반 학생들도 목사 노릇 다 하요. 중간반 학생들 설교하라 하면 요새 뭐 어지간한 목사보다 훨씬 낫습니다. 미국에서 유명한 어떤 사람이라고 딱 오백만 명이 모였다는데, 오백만 명 모여 가지고 그분 설교하는 것 보니까 우리 교회 주일 학생만 어림도 없습니다. 내가 그때 가서 한번 들어 봤어. 하나도 설교에 생명의 뼈가 없어. 그런데, 그때 모이기를 그때 오십만 명인데 또 그 후에는 뭐 오백만 명 모였다 하던가?
이러니까, 아무래도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받는 이길 밖에는 없습니다. 축복 받는 거는 어째야 되느냐?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는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모는 세계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리라.' 그러면, 오늘날 네게 명한다. 요게 문제라 말이오. 오늘날 네게 명한다. 성경 말씀대로 하면 복 준다 하면 그만 그때부터 딱 두 주먹 거머쥐고 창세기 1장으로부터 자꾸 지켜 나갑니다. 창세기 1장 지키고 2장 지키고 3장 지키고 자꾸 이래 지켜 나가겠는데 요것도 아니라 말이오 이 육십 육권의 도리가 많이 있는데 오늘 어느 성구를 말하는지 그게 문제라. 오늘 어느 성구를 말하는지.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그것 딱딱 맞춰야 되어지니까 이게 문제라 말이오,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이 신구약 성경대로 요대로 순서적으로 행한다 하면 그거 쉽겠습니다. 뭐 순서적으로 행한다 하면 일 년이면 다 할 것 아닙니까? 일 년이면 요것도 한번 해 보고 저것도 한번 해 보고 자꾸 그대로 하면 일 년이면 끝날 터이니까 되겠는데 그게 아니라. 이거는 오늘 네게, 오늘날이라 하는 그거는 현실인데 이 현실에서 내가 네 현실에 대해서 요래라 저래라 하는, 그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 가지고 그와 같이 행하는 것이라야 이래 복을 주신다고 했으니까 현실에서 하나님 뜻 찾기가 어렵다 그거요. 이게 어려워.
어렵기 때문에 자기는 찾아서 한다 하는 것이 엉뚱한 짓 해 가지고 도로 실패할 길만 가게 된다 그거요.
그러면,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 데에 그 찾는 방편을 가지고 우리가 그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 가지고, 찾는 게 어렵습니다. 바로 찾아 가지고 행하면, 행하고 나니까 복을 받아서 그만 속에 힘이 나오지, 마음의 힘이 나오지, 의지가 힘이 나오지. 기쁨의 힘이 나오지, 소망의 힘이 나오지 이라면 그만 저절로 자꾸, 자꾸 커져 간다 말이오. 잠깐 무럭무럭 커져 가지고 되어지는 것인데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다는 것이 이것이 심히 어렵다, 어려운데. 어떻게 하면 찾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찾을 수 있을까? 하나님의 뜻을 찾는, 찾아 가지고 걸어가는 걸음,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 가지고 걸어가는 그 걸음이 무슨 걸음이뇨? 그것이 막바로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것이 막바로 십자가의 길입니다. 요걸 알아야 돼요. 여기에 열쇠가 있어.
우리 현실에서 내게 명령하신 하나님의 명령 고것을 바로 찾아 가지고 딱 지키면 주님께서 복을 주셔 가지고 천하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신다고 했는데 그러면, 단번에 지켜 가지고는 안 되지만 자꾸 지키고 지키기만 하면 자꾸 이 모든 것이 구비되고 구비되고 구비되니까 나중에 구비가 되면 마치 다이나마이트 약 재어 놓은 거 모양으로 폭발을 하면 그때 가서 확 이루어진다 말이오. 이루어지는데 그 뜻을 찾아 가지고 하나씩 둘씩 지켜서 건축하는 것, 건설하는 것, 구비하는 것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는 성공하는 첩경이라.
지름길이라. 영과 육에 성공하는 지름길이요 첩경이라.
그러면, 그 뜻을 어떻게 찾을까? 그 뜻을 찾는 데에는 요 세 가지가 찾는 비결입니다. 요 세 가지가 하나님의 뜻을 찾는 데에 유일한 그 비결입니다.
유일한 비결이오. 뭐? 요 세 가지 뭐이냐? 어디서든지 '이 현재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럴 때에는 '이 진리에서 아무도 믿지 말고 하나님만을 내가 믿는 사람이 돼야 되겠다. 요라면 하나님 믿는 것이 되겠나, 저라면 하나님 믿는 것이 되겠나 어떻게 하면 하나님만을 믿는 것이 되겠느냐' 거기에서 하나님만을 믿는 것을 찾을라고 하면 고거는 찾기 쉽습니다. 여기에서 요라면 하나님 믿는 것이냐 저래야 하나님 따르는 것이냐. 보면 '아, 요라면 요것 믿는 것 아니다. 요라면 믿는 것이다.' 고 하나님만 믿는 것을 찾을라고 하면 하나님만 믿는 것이 되는 것을 찾기가 쉽다 말이요. 하나님만 믿는 것을 찾고, 그 다음에는 아무도 위하지 안하고 나 위해서 대속하신 주님을 위하고. 그러면.
'요라면 주님을 위하는 것이 되겠나 저라면 주님을 위하는 것이 되겠나' 고렇게 찾으면 쉽다 말이오. 주님 위하는 것만을 찾고 그 다음에는, '자, 그러면, 내가 요래야 주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냐 조래야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냐? 어째야 따르는 것이냐?' 첫째, 일호 이호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어짜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되겠느냐, 요 삼호에 가면 거의 다 찾아졌어, 고거, 주님만 믿고 주님만 위하고 주님의 뜻에만 따를라고 요렇게 하다 보니까 고 현실에 하나님의 뜻에 딱 명중이 돼 버립니다 요것이 요 비밀이라. 그거 안 해 본 사람은 몰라요. 요 첫째 둘째 셋째 요것을 할려고 하다 보니까 나중에 가서. 그 서이 맞추고 보니까 고 시간에 '내가 네게 명한 하나님이 내게 명하는 고 명령을 딱 맞췄다 말이오. 맞추면 맞춘 것은 압니다.
맞춘 것은 본인이 알아요. 맞추면 본인의 양심이 쾌해지고 맞추면 성신이 와 가지고 나에게 '아, 잘됐다 옳다' 하면서 나에게 위로를 주고 기쁨을 주고 평강을 주고 담대 주고, '맞다 고거 다.' 딱 고 파고 난 다음에, '이 일이야 심판 안 받는다. 이 일이야 천추 만 대 가도 아무도 정처 할 일 없다. 요거야 맞다. 요거야 옳게 됐다. 바로 되었다.' 하는 그것이 자기에게 확신이 온다 말이오.
그래 가지고 자꾸 하나씩 찾아 나가면 나중에. 처음에는 오십 점짜리 찾았다가 그 다음에는 육십 점짜리 찾고 그 다음에는 칠십 점 짜리 찾고 그 다음에는 팔십 점짜리 찾고 그 다음에는 구십점짜리 찾고 그 다음에는 백 점짜리를 찾아 가지고 딱 명중하게 된다 말이오. 이럴 때에, 그거와, 다 찾다가 보니까, 그렇게 찾다 보니까 내라는 사람도 그런 것을 다 주시면 감당할 사람도 되었고. 감당할 사람도 되었고. 또, 감당할 사람도 되었고, 감당할 사람이 되고 보니까 아예 거기에 대해서 소용 없고, 그거 주기는 자꾸 주시는데, '주여 내가 이보다 더 좋은 것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것 주십시오.' 이래 가지고 영감으로 충만하고 진리로 충만하고 주님의 피의 대속으로 충만한 또 고급을 원합니다. 고급을 원해. 고급을 원해 가지고 이것이 자기 것이 돼서 예수의 피로 충만하고 성령으로 충만하고 진리로 충만하면 다 돼 버렸어, 그만.
그라면 그라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요 하나님의 것이 내 것이라.
하나님의 모든 것이 자기 것이라는 것이 확실히 믿어지게 됩니다. 세상이 뭐라 한다 해도 '하나님은 내 편이시다. 하나님은 내 하나님이시다. 나는 하나님이 나를 도와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까 뭐 피조물에게 가 가지고 아이구 궁하게 그렇게 아부하면서 뭐 굴욕하는 그런 일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주님을 위하고 주님을 믿고 주님을 딶는 일을 위해서는 뭐 뺨을 맞아도 가만히 참고 있지만 그것에게 뭐 얻기 위해서 그런 곤욕스러운 그런 일을, 용욕스러운 일은 털끝만치도 안 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은 가장 뼈 없는 사람 같으면서 가장 뼈가 강한 사람이요, 남한테 속도 없고 창자도 없고 뭐 이래도 좋다 저래도 좋다, 뺨을 쳐도 '허허 허허' 무골 호인 같지만 가장 강한 철석같은 것이 속에 들어 있는 것이 기독자라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에스겔서에 하나님의 사람을 말하기를 '단쇠 같다' 단쇠, 벌거이 달은 단쇠. 저주 물공장이나. 주물 공장이나 철공소에 가면 그 아주 물 같이 녹여서 가마에 벌건 물이 하나 가득 이룽이룽하이 이래 가지고 있으니까 벌거이 어떻게 색깔이 좋은지 그놈 한 그릇 퍼 가지고 훅 둘러 마셨으면 좋겠지만 둘러마셨다 하면 절단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보니까 물씬물씬하고 부들부들하고 속도 없는 것, 등신같고 뭐 듣기 싫은 소리를 해도 그만 괜찮고 뭐 멸시를 당하고 이래 아주 모욕을 줘도 뭐뭐 허허 하고 이라니까 저거는 등신이다 했는데 딱 접촉해 가지고 가서 보니까 단쇠라. 단쇠라. 이러니까 저희가 겉으머리 보고는 우리에게 오면 저거 욕심대로 다 될 줄로 알고 썩 들어왔지만 막상 들어와 가지고 제 욕심대로의 하는 것으로 할라고 하니까 한 마디도 안 듣습니다. 한 마디도 안 들어. 요게 기독자입니다. 이러니까, 아주 누굴 누굴하고 유한데 속에 가 보니까, 참 바위 가죽이 둘렀다 하더만 껍데기는 발간 물 같은데 속에는 무엇이든지 들어가면. 불의한 것은 들어가면 다 타 버려요. 요것이 기독자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은 이제 우리가 세계 민족 위에 뛰어나는 것. 여러분들이 좀 이래 가지고 좀, 돈도 연보들 많이 해 가지고. 분교에서는 자꾸 뭐 터를 사야 되고 이런데, 터 사야 되겠어. 분교에 한 군데 모이는 그 모인 수가 칠십이고 팔십이고 이백이고 삼백이고 뭐 삼백까지, 제일 많이 모이는 데가 얼마 모이요? 예? 이백 오십, 이백 오십이 모이니까 그거 교회 돼야 안 됩니까? 이런데, 뭐 돈이 있어야지? 터를 살 돈이 있어야지? 이러니까. 이거 뭐 돈이 없으니까.
어라. 그저 부지런히 벌고 '또 밥 먹을 것 죽 먹고 이래 가지고 영양실조로 병 들지 말고 그거 암만 해 봐야 안 되겠어. 그거 암만 해 봐야 그것 가지고는 계산이 안 맞아요. 이러니까 그저 오늘날 네게 명하는 명령을 지켜 행하면 명령하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축복해서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겠다' 이래 말씀했으니까 이 현실에서 주님의 명령을 찾아 가지고 고 명령대로 또박 또박 걸어서 삼 년만 걸어가면 우리 서부 교회가 아마 한국에 제일되는 부자가 될 것입니다. 뭐 경제, 재산이라는 하는 것은 삼 년만 하면 됩니다.
저도 그 경험이 있어요. 처음에 그렇게 가난하게 이래, 다 술도가 해서 번 돈 다 없애 버리고 나니까 뭐 삼 년 동안 콩 이파리 죽먹었어 콩 이파리 먹을 때 한 끼 먹는데 쌀 뭐 한 숟가락도 안 들어가. 밥 한 숟가락 안 들어가. 전부 한 콩잎만 먹고 한 삼 년 살았어. 삼 년 살고 나니까 어디서 돈이 들어오는지 자꾸 돈이 들어오는데 그러면 누가 돈 갖다 주는가? 돈 안 갖다 줘요 이런데, 어째 됐는지를 몰라. 그랬는데. 그 골짜기에서 제일 부자야.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자꾸 축복해 주시니까 그럴 수밖에 더 있어요? 그러니까, 소도 한 마리 사 놓으면 자꾸 어디로 번져 가는지 자꾸 번져 나가고. 또 삼 농사도 말이오, ○○○ 집사 저기 있네. 길뚝뱀이 알지? 길뚝뱀이 그 골짜기에 제일 유명한 논이라 길뚝뱀이인데 그 논을 누가 사라 해서 샀다 말이오. 사 가지고 삼을 갈았어. 삼을 갈았는데 삼 갈아 가지고 삼을 찌니까 모든 사람들이 곱다고 베 놔 줄 터이니까 삼을 주면 갈라 입자 해요. 삼을 주면 베를 놔 가지고 서로 갈라 먹어요. 이랬는데, 그걸 다 줘 가지고 베를 받았는데 베를 받으니까 그거 가지고 파니까 논 값이 더 됐어 한해 삼 농사 지어 가지고 일등 호 답 값이 더 됐어.
자꾸 이래 돼지니까 이거 뭐 어찌 되겠소? 이러니까 당장 부자가 됐지.
여러분, 이래 가지고 어짜든지 삼 년만 하면 될 터이니까 이제 삼 년만 하면 그거 되고. 이래서, 물질에 대해서 궁핍이 없고 그라면, 인물 양성을 할라해도.
그거 다 인물 양성은 하나님이 해 놨어 여기에 보니까 이거 ○○○이 이것도 목사라 하면 될거고 저 뭐꼬? ○○○이도 목사라 하면 될 거고 그 옆에 ○장로도 목사라 하면 될 것이고, 저게도 목사, 막 전체 간단지 목사로구만. 각단지 목사요. ○○○이도 목사지 각단지, 여기 뭐 각단지 목사가 다 되겠어. 이런데 참 아이들 말로 이게 없어. "주: 엄지와 검지로 동그랗게 보이심." 이러니까, 우리가 어짜든지 잘 믿어 가지고 모든 걸 축복 받아서 이래 가지고 한번 되도록 한번 해 봅시다. 그러면,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다 돼요.
요새 자꾸 지금 데모 일어나고 하는 저거는 뭐이냐? 그런 것 보고 우리는 놀랠 필요는 없고, 어짜든지 우리는 이럴수록 기도 열심히 해야 되겠다, 기도만 열심히 하고 계명만 지키면 그 모든 것이 내것이 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도 내것 김일성도 내것 김정일이도 내 것 다 내것 됩니다. 이런, 이런 절대적인 계약의 권위있는 약속이 있는데 이 약속을 따라서 하지 우리가 뭐 딴거 뭐 헤매일 것이 뭐 있습니까, 있기를?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작정합시다. 이제는 죽든지 살든지 내 현실에서 주의 뜻을 찾아 가지고 요대로 꼬박꼬박 걸어가겠다, 십자가의 도, 요래 걸어가다가 낭파를 당하고 난 다음에 승리가 오는 것입니다. 손해가 가도 걷고 어려워도 걷고 핍박받아도 걷고 무엇이 깨어져도 걷고 감옥에 갇혀도 걷고, 이 일 외에는 성공 길이 없습니다. 뭐 다른 성공 길을 찾을라고 학원을 돌아다니고 또 어디 뭐 회사를 찾아다니고 그것보다도 어짜든지 이 부자에게 속해 가지고 한번 간편하게 성공하는 이 길을 한번 걸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