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 강해

 

1981. 4. 5. 주일오후

 

본문 : 출애굽기 20장 1절-17절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도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살인하지 말지니라 간음하지 말지니라  도적질하지 말지니라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이유를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계명은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를 위해서 주신 계명입니다.

 이 계명은 신구약 66권에 기록된 하나님과의 계약을 간추려서 강령으로 주신  것이니 66권의 강령인 십계명이요, 또 66권 도리는 십계명을 분해한 도리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계명으로 우리와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과 처음에 계약을 맺었으나 실패했고, 두 번째  맺은 계약이 신구약 성경이요,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지킬 조목이 이  십계명입니다.

 십계명을 지키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셔서 당신의 모든 좋은 것을 남김없이  다 주시고, 또 우리에게 해로울 것은 다 제거하시고 방어하시고, 이미 우리에게  잘못되어 있는 멸망의 것도 서서히 치료되도록 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이 계명은 우리의 모든 불행이 치료되는 유일한 방법이요, 좋은 것이  잘 보존되고 유지되는 유일한 법칙이요, 해로운 것은 하나도 우리에게 이르지  못하게 하는 법칙이요, 필요한 모든 것을 다 받을 수 있는 법칙입니다.

 그러면 이 계명은 우리에게 행복을 일으키고, 모든 것을 존재케 한 창조주와  친밀하게 만들고, 금생과 내생에 우리를 온전케 해서 우리의 행동이나 소유나  기능이나 우리 자체를 다 영생케 하는 계명이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지극한 보배로 주신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계명을 지키는 자는 계약의 상대가 되는 하나님에게서 모든 좋은  것을 받을 수 있고, 우리에게 나쁜 것을 치료해 주심을 받을 수 있고, 아무리  택한 중생된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도 이 계명을 버리고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은  그에게 대적이 되시고 또 하나님의 진노와 징계를 받을 뿐인 것입니다.

 이 계명은 간단하게 10가지 강령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제1계명은, 네 앞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무엇이든지 하나님보다 앞세우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높이기도 하나님을 제일 높이고, 두려워하기도 하나님을 제일 두려워하고,  바라보기도, 의지하기도, 섬기기도 하나님을 제일로 삼아서 모든 움직임의  원인이 하나님이 되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의 동기가 하나님이어야 하고, 또  목적이 하나님이어야 하고, 방편도 하나님이 주신 법칙이라야 복이 됩니다. 혹  너무 넓고 커서 이해하지 못할 사람들이 있을지 몰라서 하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가정에서 아들이 제일 머리되는 부모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부모가 좋아하는  일, 부모가 기뻐하는 일, 부모가 원하는 일, 부모가 협조해 줄 수 있는 일,  부모에게 영광이 되는 일을 한다면 그 아들은 복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 부모만 위주로 하고 내 중심 내 위주로는 하나도 못하고....'  이렇게 오해해서 부모가 싫어하고 섭섭히 여기고, 부모에게 욕된 일을 하면 그  아들은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회사도 그렇고 어떤 단체도 다 그렇습니다. 학생도 선생님이 금하는  일은 하지 않고 선생님이 좋아하고 기뻐하는 일을 하면 칭찬받고 선생님에게도  영광이 되니 망할 일이 없습니다.

 개체는 많은 것의 한 분자이기 때문에 전부를 중심으로 위주로 맞춰 가지고  하면 그 단체, 그 나라, 그 학교, 그 사회 안에서는 잘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체가 잘못될 수 있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서 하더라도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에 어느 한도 이상은 넘어가지를 못합니다.

 어떤 단체를 중심 위주로 하면 그 단체가 절단 날 때까지는 형통하고  행복하겠지만 그 자체가 완전이 아니요, 그것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그 자체가  절단 날 때는 위험하게 됩니다. 그런 것은 영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주이신 하나님은 창조자시요, 주재시요, 주권자시요,  완전자시요, 전지 전능자시요, 참이시기 때문에 이분이 좋아하는 일, 이분이  원하는 일, 이분이 권하는 일, 이분에게 영광이 되는 일, 이분이 기뻐할 일,  이분의 비위에 뜻에 맞는 일을 하게 되면 이분이 다스리는 세계 안에서는  성공입니다.

 우리 구주이신 하나님은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요, 모든 것의 주인이십니다.

금생과 내세, 영계와 물질계 이 전부를 당신의 집으로 당신의 소유요, 이것은 한  단체가 됩니다. 이 단체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이 단체의 주체가  하나님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분을 중심으로 위주로 하면 잘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이분이 기뻐하시는 기쁨을 내 기쁨으로 삼고, 이분이 원하는 소원을  내 소원으로 삼고, 이분의 성공을 내 성공으로 삼아서 자기를 영광스럽게 존귀케  하려고 하면 하나님의 울타리 안에서는 완전이요 평강이요 영원합니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 집 안과 같고, 하나님의 소유 안 같은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체가 된 하나님의 것 속에서 살면 그분이 빛이요 그분이 중심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는 자유법이요, 완전법이요, 생명법이요, 평강의 법이요,  행복의 법이 됩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세상에 수억억만도 더 되는 개별 개별의 단체들과  대주재와의 관련성 구별성을 모르기 때문에 착각과 오해와 혼돈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에게 떨어진 것도 있고 배치되는 것도 있고 별별 잡것으로  가득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무슨 경영을 하면서 주체가 되시는 이분을 잊고  가까이 접하고 있는 어떤 개체를 위주하고 중심해 가지고 '이것이 어찌 되느냐?  이것에게 어찌 되느냐?' 한다면 그 생각은 주체가 되는 완전을 표준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 잘못될 수도 있고 잘될 수도 있는데, 만일 전존재의 주체에게  삐뚤어지고 몇십 몇백 개별체와 일치되니까 그것들이 환영한다고 해도 그런 것은  깨지는 날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신구약 성경 말씀의 이 법칙을 주셨고 또 영감을 주셨고 양심을  주셨기 때문에 무슨 일을 경영하려면 첫째는 하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  일을 하나님이 축복하시겠나, 좋아하시겠나, 협조하시겠나? 하나님이 벌을  내리지 않으시겠나? 방해하지 않으시겠나? 나 혼자 하라고 던지지 않으시겠나?'  이렇게 이분을 경외하고 이분을 중심으로 위주로 하고 이분이 기뻐하시고  좋아하시고 소원하시는 일만 택해서 경영하는 것이 계명 지키는 것입니다.

 물질계보다 한없이 큰 영계에 수많은 것들도 다 이 법칙대로 타락 없이 사니까  행복합니다. 죽음이나 고통이나 비참이나 파괴가 없는 완전 세계를 이뤄서 살고  있습니다.

 또 이 물질계에서도 인간만이 뒤죽박죽으로 서로 격투해서 상멸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아는 것은 참 극소부요, 인간이 모르는 우주에 놀랄 만한 것이 많지만  그런 것들도 다 이 법칙에 의지해서 존재하고 보존되고 행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 생활은 마치 벌레와 같아서 덤불 밑에서 나서 꼬물거리다가 그 덤불에  묻혀 흙이 되고, 그 골짜기에서 나서 꼬물거리다가 그 골짜기에서 흙으로  돌아가는 이 극소의 움직임.....

 우주에는 수많은 일월성신과 창조된 자연 개체들이 있지만 그 모든 것이 이분의  지능의 법칙을 중심해서 움직이니까 하나도 상충되지 않고 그 궤도와 질서를  따라서 보존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권위 있는 법칙이요, 영원한 법칙이요,  완전한 법칙입니다.

 이래서 어디서든지 일계명에 대해서는 하나님을 둘째로 삼았으면 벌써 계명의  머리를 버린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것을 위해서 일생을 씨름하는 것이 우리의  씨름이요 노력이요, 아무리 좋은 것이 있더라도 그게 첫째가 됐으면 이 계명은  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으로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좁은  범위에서 보더라도 자녀가 부모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해도 얼마든지 살 수  있습니다. 부모가 좋아하지 않는 것을 좋아하는 자녀는 반드시 망합니다. 하물며  하나님이겠습니까?  사랑도 그러하고, 또 두려움도 하나님보다 더 큰 두려움이 있다면 벌써  일계명은 버린 것입니다. 아무리 두려워도 그것보다 더 두려우신 하나님을  깨달아서 먼저 하나님의 두려움부터 해결 짓고, 그 다음에 그 두려움을  해결하려고 하면 기절할 만큼 두려웠던 그걸 발로 밟을 수 있습니다. 아무런  두려울 것이 없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제2로 제3으로 제4로 두거나, 하나님은 생각조차 없이  잊어버리고 그것만 위주로 살기 때문에 비참합니다. 성경에 기록한 이 행복이,  이 권위와 영광이 왜 우리에게는 없습니까? 이 행복이 우리에게 있다면 누가  우리를 불행스럽다고 하며, 업신여기고 멸시할 수 있겠습니까?  학교라는 한 사회에서 동무가 업신여긴다고 복수를 생각할 것이 아니라 '아,  내가 선생님 말을 듣지 않았구나. 욕 듣는 것은 선생님 말씀을 잘 못 들어서  그러니까 공부를 더 하자, 행실을 더 조심하자, 모든 일에 주의하자, 동무들에게  덕을 세워보자!'   이렇게 선생님 말씀을 더 잘 듣고 지키려고 애를 쓰고, 다른 학생이 쿡  쥐어박아도 더 그렇게 하기를 힘쓰면 얼마 안 가서 탁월하게 될 것이요, 다른  학생들이 꿈에도 그 학생 사귀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런 사회에서도 그럴 것  아니겠습니까?  오늘 믿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천대를 받을 때 '왜 나를 천대해? 저  사람이 나를 천대하니까 나도 저 사람을 천대하자. 나를 대적하니까 나도  대적하자. 나를 해하니 나도 해하자!' 한다면, 하나님 없는 세상 사람들의  법칙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해결 법칙이 따로 있습니다. 다윗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욕을 할 때  '저놈을 가서 죽일까요?' '아니다. 그가 욕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서  욕하는 것이니 내게 욕먹을 원인이 있는가 보자. 아, 발견했다. 이것이다.'  자기를 욕할 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아서 그렇게 된 줄 알고 다시 계명  지키기를 힘썼습니다.

 우리도 화가 오면 계명 지키지 않아서 하나님이 주신 화인 줄 알고 계명 지키는  데 더 힘쓰고, 사업이 무너지면 계명 지키지 않아 하나님이 실패를 보낸 줄 알고  계명 지키기를 더 힘쓰고, 또 무엇이 잘되면 하나님이 축복하신 줄 알아서 더  계명 지켜서 더 큰 축복 받으려고 하면 인간들과 더불어 싸울 일이 없습니다.

 이렇게 자연도 원하고 하나님도 원하고, 또 내가 아무리 해도 다른 사람들이  방해하지 않는 이런 자유스러운 생명 법칙을 주셨지만 과거에는 이분이 보장하지  않으시니까 어떤 악의 세력이 깨뜨리면 깨졌습니다.

 그러나 든든한 이분이 배경이 되고 이분이 보증이 되셨으니 우리만 이렇게 살면  우리가 방어하지 못할 것은 당신이 다 제거해 주십니다. 마치 포도나무가 열매를  잘 맺으면 해충은 주인이 소독약을 쳐서라도 다 멸해 주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농부보다 더하십니다.

 이런고로 우리의 모든 생활에 해로운 것이 오면 일단, '하나님께서 보냈구나.

내가 계명을 어긴 연고다. 계명 어긴 것을 회개하자!' 할 것이고, 또 좋은 것이  오면 '하나님이 좋은 것을 보내셨구나. 내가 계명을 지킨 까닭이니 더 계명을 잘  지키자.' 할 것이요,  또 무슨 미래사를 경영할 때도 '하나님을 첫째로 두는 경영이냐, 하나님을 둘째  셋째로 둔 경영이냐? 하나님은 아예 버리고 피조물을 내세워서 1위 2위 3위로  두는 것이냐? 이 경영이 무엇이냐?' 할 때 하나님 없이 하는 것도 망하는 것이고  둘째로 셋째로 두는 것도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모시고 할 수 없는 일은 내 할 일이 아니니 집어던지고,  하나님을 첫째로 모시고도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그 일은 모든 멸망과 함정을  피하는 유일한 지혜의 걸음이 됩니다. 이래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그걸 하나님이 좋아하기 때문에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떼 놓고 좋아하면 반드시 자기를 망칠 하나의 미혹이요 하나의  함정이요, 그것과 자기는 같이 망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로 내 기쁨을 만들고,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하나님이 도우실 수 있는 것을 시작하고, 하나님이 막아 주실 수 있는  방편으로 막고, 하나님으로 전신갑주를 삼아서 전체를 방어하고, 하나님으로  축복의 길과 문을 삼아야 합니다.

 그분을 첫째로 삼고 그분으로 인해서 모든 일이 시발되도록 하는 이것이 우리를  위하는 것 중에 제일 크게 위하고 많이 위하는 것입니다.

 제2계명은, 너는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들을 섬겨 절하지 말라, 그렇게 하면  너와 네게 관련된 자들이 다 망한다, 그것의 정반대는 네가 나를 사랑하고  바라면서 내 법칙을 지킴으로 네 모든 것이 잘 되도록 하는 법칙을 택해야 한다  하는 것입니다.

 네 손으로 만든 것, 네가 일생 동안 만들어 놓은 재물, 일생 동안 만들어 놓은  네 학벌, 일생 동안 만들어 놓은 네 정권, 일생 동안 만들어 놓은 네 모든  기반...

 목석으로 만든 것이든지 쇳덩어리나 돌덩어리로 만든 어떤 것이 네 행불행을  좌우하고, 네 안보를 좌우하고, 네 생명과 네 성패와 안보와 기쁨을  좌우하리라고 생각해서 소망을 두고 상대하면 벌써 위치가 바꿔졌다. 네가  그것을 섬기는 것이 됐으니 너뿐 아니라 네게 가까운 자로부터 삼 사 대까지  패망하게 된다.

 네 안보와 성패와 행불행과 기쁨과 슬픔은 하나님에게 있으니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그의 계명을 지켜라, 그분이 모든 것을 주권하시니 그분이 잘해  주시기를 바라봄으로써 그분을 사랑함으로 이 계명을 지켜라.

 만일 하나님을 바라봄으로써 그분이 잘해 주실 수 있도록 하는 방편인 계명  지키는 이 방편을 쓰지 않고 무슨 기업체를, 무슨 직위를, 무슨 권세를 만들어  가지고 '이것 아니면 나는 못 산다. 우리 가족의 행복은 여기에 달렸다. 안보는  여기 달렸다. 이것만 있으면 어떤 일도 문제없다. 이게 있으니까 예수 좀 잘못  믿어도 된다. 이것 있으니 주일을 범해도 된다. 성경에 위반되어도 든든한  기반이 있으니 문제없다.' 하면 그 사상은 네 삼 사 대까지 망하는 것이라.

 이럴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이치가 이렇지 않습니까? 지극히  작은 것도 당신의 개별 섭리로 당신의 손끝에서 움직이는데 이 하나님 대신에  기업체가 우상이 되고, 기술이 우상이 되고, 학벌이 우상이 되고, 자기의 모든  기능이 우상이 되고, 자기의 모든 사교, 지위, 권세, 제가 만들어 놓은 이런  것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거기 맞춰서 그게 좋아지도록 하고 유리하도록 하고  잘되도록 하면 하나님 대신 다른 하나님이 생겼으니까 얼마나 분노하실  것입니까?   이래 가지고 전부 다 망합니다. 안 믿는 나라들도 이래서 망하고 믿는 나라들도  이래서 망하고 개인도 가정도 다 이래서 망합니다.

 출애굽 할 때 10가지 재앙을 내린 것도 애굽이 행복스럽게 생각하는 것을  낱낱이 재앙으로 친 것입니다. 그들이 미신으로 우상으로 섬기던 것을 쳤습니다.

그들이 의지하던 물을 친 것도 애굽에는 수(水) 터가 좋습니다. 비옥한 땅이요  아주 수원이 좋은데 그걸 쳤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계명 지키다가 무엇이 생겼으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줄 알고, 무엇 때문에 주셨는지 생각하고, 또 당신의 명령에 귀를  기울여서 당신이 사용하라는 대로 사용해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주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만들고, 또 이루어진 것은 주님이  주셔서 이루어진 것이요, 이루어지지 않으면 주님이 연습만 시키고 주지 않는  것이니까 그런 줄 알고, 이렇게 하나님을 든든히 믿고 의지하고 나가야 합니다.

 인간이 무엇을 만들어 놓고 그게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주는 줄 아는데, 마치  어린아이에게 숟가락으로 밥을 먹이니까 한 두 살이 됐는데도 방바닥에 숟가락이  흩어져 있으면 거기에다 입을 대고 있습니다. 세 살 먹어도 그렇고 열살 먹어도  그렇게 한다면 바보 아닙니까?  어머니가 고쳐 보려고 젓가락으로 주니까 숟가락이 아니니까 처음에는 먹지  않다가 나중에는 젓가락만 보면 달려듭니다. 그 다음에는 손으로 뭉쳐 주니까  숟가락이 주고 젓가락이 주는 것만 알다가 이제는 손만 보면 입을 벌립니다. 참  애터질 것이오. 그래서 이번에는 밥그릇에 담아 놓고 가만히 놔둡니다. 이렇게  자꾸 하다 보니까 그 아이가 '아, 젓가락이나 숟가락이 밥 주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이 오면 내게 좋은 것을 준다.'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머니가 검정색 옷을 입고 있으니까 검정색 옷 입은 사람만 보면 어머니로  알고 웃다가 또 얼굴을 짐작하고, 나중에는 어머니의 성질을 짐작하고, 어머니의  비위를 짐작하고, 어머니의 교훈을 짐작하고, 어머니가 욕구하고 소망하는 걸  짐작합니다. 이렇게 해서 자라 가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들, 우리가 땅위에 어떤 것을 조성해 놨더라도 그것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해서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는 것은 벌써 하나님이 되게  하시면 되고 안 되게 하시면 안 되는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가 애쓰는 것은 안 되고, 예사롭게 한 일은 잘되는 것도 있는 것은 거기서  '아, 경영은 사람에게 있지만 이루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 하는 걸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못 깨닫고 일생 동안 그 짓만 하면 몹쓸 사람입니다.

 무엇이 이루어졌으면, 없는 가운데서 그렇게 있게도 하셨지만 또 있는 걸  없게도 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 지킴으로, 이래 됐든지 저래 됐든지  계명 지킴으로 됐으면 그것은 나에게 필요하고 유익된 것이니 여기 대해서  이것을 어떻게 활용할까 할 것입니다. 그것이 없다고 행복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것이 있다고 행복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 지킬 때에 하나님께서 내게 필요하고 적절하도록  당신이 주신 선물이니 나는 당신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살 것뿐이요, 당신이 또  그런 것을 만들 수도 있고 없앨 수도 있으니까 우리의 소망이나 근거는  하나님에게만 둬야 합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무엇을 조금 만들어 놓으면 그것만 보고 '아, 이것  있으니까 이것 보고 살겠다.' 해서 거기에 따라붙습니다. 회사를 조금 잘되게  하면 그 회사가 우상이 되고, 하나님은 그 다음이 됩니다. 직장에서 출세하도록  하면 그것이 제1위가 되고 하나님은 제2위가 됩니다. 다 이렇게 우상을  만듭니다.

 그런고로, 그것을 섬기고 그것에게 절하고 소망을 두는 것은 망하는 길이다.

네게 모든 화가 물러가고 모든 행복이 이루어지는 것, 어떤 분야에서 살든지,  어떤 종류의 업체에서 어떤 분야의 생활을 하든지 네게 오는 모든 불행을 막고  행복을 주실 이는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시다.

 화를 어떤 인간이 준다고, 사회가 준다고 하지 마라. 모든 것을 주권해서 그런  것을 도구로 삼을지언정 주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모든 생산도 하나님께서  하신다. 어미 돼지를 통하여서 새끼 돼지를 지으시고, 부모를 통해서 자녀를  지으시고, 바람을 통해서 물이 날리고 모이게 하시고, 태양을 통해서 따뜻하게  하는 이는 하나님이시라.

 모든 것을 주권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요, 우리에게 모든 해로운 것을 보내시는  이가 하나님이시요, 우리에게 모든 좋은 것을 보내시는 이가 하나님이시니  그분에게 좋은 것을 받는 길과 나쁜 것을 치료받는 길은 그를 사랑함으로 그를  바라보고 의지하고 그에게 주권과 영광을 돌리는 믿음으로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떤 파괴든지 그 파괴를 막는 것과 무엇을 건설하려고 하면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그 계명 지키는 것으로만 방편을 삼아야 합니다. 이것 외에  제가 어떤 자리에서 무엇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것으로 자기의 불행을 제감할 수  있고 행복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면 반드시 그 사람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근심  걱정 고통을 가집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절대 없습니다. 살펴보십시오.

 아마 돈 없는 사람들은 '나도 돈만 있으면 행복스럽겠다. 저 사람은 재벌이니까  행복이 넘칠 것이라.' 하겠지만 그것은 무식한 말입니다. 돈 많은 그 사람에게  정말로 행복이 있는지 보십시오. 돈 없는 사람보다도 더한 고통이 그에게 있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 사는 것이 세상 것의 넉넉한 데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고로 우리에게 있는 좋은 것이 파괴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건설하는 이 건설은 당신을 바라보면서 계명 지키는 이것 하나로  법칙을 삼아야 합니다. 이게 2계명을 지키는 것이요, 이 사람을 하나님이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법칙은 온전한 법칙이기 때문에 이 법칙대로 하면 모든 존재에게  거리끼지 않습니다. 또 모든 피조물들에게 거리끼지 않고, 조물주에게도  거리끼지 않고, 그 일이 사리에 틀리지 않고 바로 됩니다.

 자기 행위가 고쳐지지, 사상이 고쳐지지, 정신이 고쳐지지, 욕심이 고쳐지지,  마음이 고쳐지지, 성질이 고쳐지지, 뜻이 고쳐지지, 경영이 고쳐지지, 지혜가  고쳐지지, 모든 의지가 고쳐지지, 방편이 고쳐지지. 이것만 해도 피조물끼리 살  때 행복할 것이고 높은 자리를 차지할 수가 있는 것인데 하물며 조물주가 그를  돕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만고에 망할 길이 어디 있습니까, 있기를! 망할 길이 있습니까? 망할 틈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너무 좁습니다. 우리는 너무 소인들입니다. 우리는 선이  가늡니다. 너무 포부가 좁습니다. 우리는 너무도 보는 것이 좁습니다. 전체를  보지 못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은 섭섭해도, 그 계명은 어겨도 이것만은 있어야 된다!' 하면  반드시 그 생각을 고치기 전에는 그 사람의 고통은 거기서 나옵니다. 그 사람의  근심이 거기서 나올 것이요, 고통이 거기서 나올 것이요, 고민도 거기서 나올  것이요, 인심 잃는 것도, 수치도, 모든 실패도, 멸시도,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원수 맺는 것도 거기서 나오고, 모든 불행이 거기서 마구 쏟아져 나옵니다.

여러분이 이걸 봅니까? 환하게 보이지 않습니까?  우리의 모든 행불행과 생사는 하나님에게 매였습니다. 그분을 바라보면서 그의  법칙을 지키는 것이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요, 그분을 바라보는 것이요, 그분을  의지하는 것이요, 그분에게 받는 방편이 되는 것이니 이 계명을 지킬 때에  우리는 비교될 수 없는 무한하신 큰 분을 의지하기 때문에 담대합니다. 그분과  밀접하니 든든하고 온유한 자가 됩니다. 어떤 것이 누른다 할지라도 놀라지 않을  수가 있게 됩니다.

 이러니까 인격이 평안하고, 그의 생애가 든든한 것도 하나님이 축복하시지,  만물이 환영하지, 인간들이 대적하는 것도 착각 오해로 대적하기 때문에  양심에도 편하고 조만간에 광명이 비쳐 옵니다. 이것이 시온의 대로로 걸어가는  우리의 걸음인 것입니다.

 제3계명은, '내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했습니다. 이 이름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역사를 가리키는 것인데, 하나님의 역사를 어떻게 우리가 대항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역사를 어떻게 원망하겠습니까? 그래 봤자 제 인격만  더러워지고 사상만 더러워지고 자기 고통만 더하고 지옥만 만드는 것뿐입니다.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지으신 당신이, 모든 것의 주인공 되신 당신이, 모든  것을 운영하시고 보존하시는 당신이 광대하게, 구비하게, 원만하게,  철두철미하게, 완전하게 운영하고 계십니다.

 비오고 눈오고 춥고 덥고 바람 부는 것은 하나님이 전체를 위하고 개체를  위해서 하시는 역사이니 거기에 따라서 살도록 애쓰고 노력할 일이지, 이분의  역사를 원망하고 불평해서 '에, 뭣 때문에 겨울은 이렇게 일찍 오는가? '얘!  원망하면 너는 죄만 짓고, 너만 불행하게 돼. 그렇다고 겨울이 더디 오지 않아.

겨울이 오면 월동 준비나 해서 겨울에 맞춰서 살도록 해라. 봄이 오면 봄에  맞춰서 살도록 해라! 전체의 근원이신 광대한 하나님의 경영과 섭리도 모르고,  만물보다 거짓되고 좁아서 둘도 모르고 너 하나만 알아서 네 생각에 안 맞는다고  불평 불만을 가지면 너만 손해라. 또 번민해 봤자 하나도 네게 순응하지  않으니까 그 힘 가지고 거기 따라서 순응해서 살 일이지 여기에 반해서 망령되이  하지 말아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비가 오면 '아, 하나님이 비를 주시니까 설거지를 해야 하겠다.' 해서 그 일을  하면 되는데, 비가 와서 모두 절단 나니까 '비는 뭣 때문에 오나? 하늘이  썩었나?' 이렇게 욕해 봤자 저만 죄 짓고 하나님의 축복만 감해집니다.

 '얘, 너는 낭패봤다고 하지만 비 안 오면 굶어죽는 사람도 있어. 7년 대한 가뭄  때도 오늘 하루만큼은 비가 안 오면 좋겠다고 하는 그것이 인간의 마음이야. 왜  너만 생각하고 전체는 생각지 않아?'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없는 가운데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보존하시는 대주재,  전지 전능자, 나보다도 모든 만물을 더 사랑하시는 이분이 당신의 지능에  맞춰서, 당신의 보응에, 당신의 통치에 맞춰서 하시는 것이니 불평하지 말고  거기에 맞춰서 살 것이지, '왜 이렇게 되는가?' 하지 말아라.

 또 흉년이 오면 '왜 흉년이 드는가?' 해서 네가 반성하고 거기 맞추어서  진노에서 벗어날 요량이나 해야지, 배고프다고 야단을 부리면 쌀이 나오나? 안  나온다 그거요.

 그러기에 하나님의 경영과 하나님의 운영을 공연히 악평 논평 원망하지 말고  거기에 순응해서 살 것이고,   또 신령한 면을 생각해서, '왜 이렇게 흉년이 드나? 왜 이렇게 풍년을 주나?  배부르라고 주셨나? 아니다. 배부른 것 외에 또 있겠지. 왜 흉년을 주나?  배고프라고? 배고픈 것 외에 딴 것 있지.' 보이는 그 이면에는 무엇인가 당신과  우리와의 관계점을 찾아보면 반드시 감사할 것도 있고 회개할 것도 있고 돌아설  것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연구하고, 보이지 않는 것에서 또  더듬어 가지고 하나님께 맞춰서 그분을 대항하지 말고 그분의 노를 풀어야지,  분노하신 하나님을 대항해서 싸워 봤자 자기만 망하지 그분이 찡그리기나  하겠느냐 말입니다.

제4계명은,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이 당신에게 점점 가까워지고, 모든  피조물이 당신이 주시는 축복으로 잘 살도록 하시려고 날 중에 머리되는 날로  택해서 하루씩 정하셨으니 처음 1차 창조에서는 안식일로 정했고, 2차로는  십자가의 진동치 않을 나라를 창조하신 그 창조의 주일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이날은 하나님께서 2차 창조, 진동되지 아니할 신령한 무궁세계  하늘나라의 것을 우리에게 창조해 주시고, 대속해서 이 구속을 주시고, 이  구속을 이루어 가는 데 합당한 우리가 되어서 이날을 통해서 하나님과 나는  밀접해지고, 이날을 통해서 하나님께 이질되고 이성되고 이행(異行)되어  하나님께 삐뚤어진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일치시켜서 하나님과 가깝게 만드는  성화, 하나님을 따라 성화되어 가는 것, 하나님화되는 이 일을 하는 날이  주일날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살 때 영과 육에 필요한 것이 많은데 이런 것을 가리켜서  복이라 합니다. 그래서 영과 육에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받는 날, 이 복 받는  날에 당신이 가르친 이치대로 행하면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복을 만듭니다.

 이러니까 이날은 다른 일은 다 버려 두고 이 일에만 전력을 기울여라,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이 일에 전력하고, 네 영육에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말씀으로 주시니  그 말씀대로 행하면 실상이 되느니라. 그러므로 이 두 가지를 얻기 위해서 이  주일은 다른 일은 그만 두라.

 '엿새 동안에는 네 일을 힘써 하라.' 주일날 네가 하나님과 가까워진 그  상태에서 퇴보하지 말고 하나님과 가까워진 상태로 일주일 동안을 살아  연성해라.

 영육에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서 방편으로, 이치로, 생활 법칙으로, 생활의 그  법칙으로, 율례로 네게 주실 때에 그대로 실행하면 실상이 되니까 엿새 동안에  이모저모로 네 영육에 필요한 것을 만들어라, 이것이 네 일이니라.

 그런데 하나님과 가까워진 상태가 변하지 않아야 하는데 그만 변질이 됐습니다.

그러면 또 다시 돌아서고 다시 일어서서 엿새 동안을 연습하니까 어지간히  연습이 되어서 이제 성화된 그대로 유지가 됩니다.

 또 그 다음 주일날에 다시 더 성화되어서 나아가고, 점점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덧입히시려고 우리를 불렀다고 말씀하신 것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제5계명은, 앞에 이 네 가지 계명을 지키므로 이 네 가지 계명이 5계명으로부터  10계명을 명령합니다. 5계명으로 10계명까지는 이 네 가지 계명에서 나온  것입니다.

 네 가지 계명은 6가지 계명을 명령하는 주권을 가졌고, 이 네 가지 계명은  하나님께서 이 네 가지 계명을 명령한 주권을 가졌습니다. 이 4계명의 주인공은  하나님이시요, 6가지 계명의 주인공은 위에 네 가지 계명입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을 첫째로 삼으면, 하나님만을 소망을 하면, 하나님의 섭리에  맞추어 살려고 하면, 주일날 성화와 복이 되는 그 법칙을 받았다고 하면 5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허락한 땅에서 오래 살리라.'

 제6계명은,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사람을 사랑하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넘치도록 갚아 주리라. 사람을 사랑하면 사람 사랑한 그 값을 주님이  갚아 주리라.

 제7계명은, '간음하지 말라.' 남의 아내나 남의 남편이나 탐내지 말라.

일부(一夫) 일부(一婦)로 하나님이 정해 준 것으로 만족히 여겨라. 사나이마다  여인을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 좋으나 음행의 연고 때문에 한 사나이에게 한  아내를 주는 것이니 이것으로 족한 줄 알고 7계명을 범하지 말아라.

 제8계명은, 네가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 때에 네 형편에 오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기업인 줄 알아서 다른 탐심을 가지지 마라. 하나님의 법대로 살 때  자기에게 온 것은 하나님이 주신 제일 좋은 자기의 기업이요, 이것 외에 달리  탐하면 다 도적질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어겨서 욕심 품는 것도 노력하는 것도  다 이것은 도적질입니다.

 제9계명은, 이웃을 해하려고 거짓 증거를 하지 말라. 사람에게 거짓말하지  마라. 사람을 속이는 일 하지 마라. 이웃을 해하는 말을 하지 마라. 네 좁은  생각에 이웃을 유익하게 하는 것이라, 유익한 말이라 할지라도 거짓말을 하지  마라.

 제10계명은, 네 이웃의 것은 무엇이든지 탐내지 말라. 네가 계명을 지킬 때  하나님이 네게 주시는 그것이 네 분복이요 분수요, 너는 너를 몰라도 하나님이  너를 지으셨고 너를 아시기 때문에 네게 적당하게 주신다.

 시기도 적당하게 하셔서 밥을 먹을 때도 있고 죽을 먹어야 될 때도 있고 배를  곯아야 될 때도 있고, 부자로 지내야 될 때도 있고 가난하게 지내야 될 때도  있어서, 하나님이 네 모든 것을 전지의 지혜로 아시고 네게 알맞게 해 주셨으니  좁은 네 생각으로 '많으면 좋겠다. 적으면 좋겠다.' 하지 말아라.

 네 이웃의 형편이 네 형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도 하지 마라. 그것은 네게는 만  가지에 맞지 않는다. 네 것이 너에게 맞은 것이니까 네 것 가지고 네가 바로  하려고 노력하면 네가 보기에 좋아하는 다른 사람이 가진 그것 못지 않게 너도  좋은 것을 만들 수 있다.

 이웃에게 있는 것을 탐하는 자야! 그것이 네게 오면 너는 망한다. 전능자가  너에게 합당하게 줬기 때문에 네게 없는 다른 것은 네게 다 해로운 것이요, 네게  화가 되기 때문에 어리석게 그런 것을 너의 좁은 견해에서 탐하지 말아라.

 이것이 생명의 길입니다. 생명의 법칙입니다. 고요히 십계명을 생각하면서,  간단하니까 우리의 생활에서 이 십계명을 생각하면서, 십계명이 막을 때는  아무리 좋아도 가지 말고, 십계명이 틔워 놓을 때는 가고,  또 십계명이 인도할 때는 죽어도 가고, 십계명이 막는 걸음은 천만금이 있고  어떻게 지위 권세 명예가 있어도 가지 않아야 우리가 생명과 행복과 평강을 찾는  것이 됩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여기에 입각해서 살지 않으면 그리스도 안에서는 얻을 것은 없습니다.

기본구원뿐입니다. 성화구원도 없고 초자연의 하나님의 능력의 돕는 신기한 것도  구경 못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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