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


선지자선교회 1984년 1월 20일 금야

 

본문 : 출 20:3-6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3절이 제일계명입니다. 일계명은, '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이렇게 하신 말씀은 우리 믿는 사람이라고 다른 신을 접하지 못한다 하는 그런  말 아닙니다. 천군 천사도 신이요, 또 마귀도 신입니다. 우리는 물질로 되어  있는 것과 물질계에서 여러 가지 관계를 가지고 신앙을 이루어 나갑니다. 또  물질제에 있지마는 그 영물들로 더불어도 많은 관계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만들어  나갑니다. 이 만들어 나가는 데에 여러 가지 어려움 있는 그것을 헤치고 믿음을  만들어 나가야 하기 때문에 믿음의 믿음의 선한 싸움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믿을라고 할 때에 (아 이걸 안 두르고 좀 건강한 척 할라고 이랬더니마는  안 되겠습니다. 또 둘러야 되겠습니다.)  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있게 말라는 이 말씀은 그 숭배적으로 순위를  하나님으로 순위의 첫째를 삼고, 또 모든 우리의 감각적으로도 첫째를 삼고,  바래보는 면이나 상종하는 그런 모든 면을 첫째로 삼고, 또 평가적으로도 첫째를  삼으라는 그런 뜻으로 여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 무엇이든지  두지 말아라. 하나님보다 앞세우지 말아라 하는 그런 뜻입니다.

 이는 영원 전에 하나님 한 분만 홀로 계셨습니다. 아무것도 없을 때에 하나님이  생겨진 것 아닙니다. 하나님 홀로 영원히 자존하셨고 다른 것은 없는 것도 있는  것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에 하나님이 나타나셨다  이렇게 말하면 제일계명을 범하는 일이 됩니다. 하나님은 영원 전에  자존하셨습니다. 그분이 어떻게 계셨는지는 우리는 모릅니다. 하나님이 당신이  스스로 계신 분이시라고 하기 때문에 아무 원인없이 홀로 계셨구나 하는 것을  하나님에게 배워서, 우리가, 그렇게 지식 합니다.

 홀로 계시는 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있게 됐습니다. 또, 이 한 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보존되고, 또 모든 것이 생장하고 번식하고, 또 죽고 멸하고 하는 것이 다  이 한 분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없는 가운데서 생겨진 것도 이 한 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생겨졌고, 또 생겨진 것이 이것이 보존되고 성장되는 것도 순전히 이 한분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집니다. 또, 이렇게 있는 것이 없어지는 것도 사람 보기에는  이런 것으로 인해서 없어진다 저런 것으로 인해서 없어진다 그렇게 그 원인들을  말하지마는 없어지는 것도 또 이분 한 분으로 인해서 없어집니다. 이 위치. 이  위치, 이 권위 이것을 하나님은 아무것에게도 빼앗기지 않습니다. 또 양보하시지  않습니다. 아무것에게도 빼앗기지도 아니하고 양보도 안 합니다. 그런고로,  일계명은 언제나 자존하신 이 하나님을 첫째로 두라는 말입니다. 첫째로 섬기라,  또 바라보라, 첫째로 바라보라, 첫째로 의지하라, 첫째로 사랑하라. 첫째로  섬기라, 첫째로 순종하라, 첫째로 두려워하라, 첫째로 의지하라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첫째로 의지하면 바라보면 두번째는 무엇을 바라보는가? 첫째 되신  이분이 이것을 의지하라 할 때에는 두번째로 그것을 의지합니다. 이것을  바라보라 할 때에는 바라봅니다. 그러면, 첫째 첫째가 우리에게 무엇이든지 주면  그것을 둘째로 우리는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의지하는 것이 하나 둘이 아니고 열도 백도 넘습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다른 것 의지하지 말라는 거 아니요. 의지하는 것이 뭐 천도  백도 넘습니다. 우리는 기운 없을 때에 작지도 의지합니다. 모든 의지하는 것은  이분이 다 의지하라고 주신 것이기 때문에, 모든 이분 외에 바라보는 것이나  의지하는 것이나 관계를 가지는 것이나 사랑하는 것이나 좋아하는 것이나 필요한  것이나 그 모든 것은 첫째되신 이분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에, 모든  접촉되는 모든 것은 다 이분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라 선물이라, 또 성경에  말한대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이용하라고 주신 선물들이라. 그러기 때문에,  하나도 버릴것이 없다 했습니다.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사람들이 첫째되신 이  분을 깨닫지 못하고 무엇을 접하든지 접하면 그것이 스스로 생겨진 것처럼  그것을 상대하면 그 상대한 결과는 다 죽고 망합니다. 그러나, 뭐 우상을 우리가  접하고 마귀를 접해도 이것은 첫째되신 주님이 내게 주신 것이다. 당신의 목적인  내 구원을 위해서 내게 주신 것이니 이것도 선물이다. 이것을 잘못 이용하면 안  되고, 예수님은 그것을 잘 이용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버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지으신 바요 주신 바니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요 일계명을 단단히 깨닫고 지키는 사람 되어야 합니다.

일제명은 뭐 별스러운 법칙을 새로 내는게 아니라 그분 혼자 영원전 홀로 계신  자존하신 그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생겨진 것들이 또 그분으로 말미암아 보존되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성장되고 또 파괴되고 멸망하는 것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파괴되고 멸망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분은 창조에만 근본이 아니라 모든  파괴 사망도 그분이 근본이십니다. 그분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어. 그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있어졌는데 이 위치를 사람이 바로 알고 관계를 가지지  안하면 전부가 다 거슬리는 그 역리가 되게 거슬리는 이치, 거슬리는 이치에  거슬리기 때문에 그건 필연적으로 다 패망이 되고야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이든지 이 하나님보다 앞세우면 안 됩니다.

 사람들이 망하는 것은 이계명에 다시 말씀하시기를 이렇게 말씀 했습니다.

'너를 허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위로 하늘에나 땅에나 땅 아래 뭐 물  속에 있는 무슨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아라' 새긴 우상은 물론 이래 조각을 해  가지고서 글자를 뭐 각하든지 상을 뭐 모양을 각하든지 해서 조각한 것도 새긴  것이지마는 실은 땅 위에 있는 모든 만물을 가르쳐서 그것을 우리가 알도록  표시하기 위해서 이렇게 새겨진 것 저렇게 새겨진 것.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 저렇게 말하는 것. 사람들이 이렇게 이름지은 것 저렇게 이름지은 것.

이렇게 사람들이 발표하고 저렇게 발표하는 것들. 또 하늘에 온갖 종류의 것들.

온갖 모양의 것들. 땅의 것, 뭐 땅 아래 무엇 이것은 무엇이든지 말입니다.

무엇이든지 무엇이든지 그것을 너를 위하면 망한다 그 말입니다.

 너를 위하면 어찌 되느냐? 너를 위하면 그 결과가 우상되고 만다. 너를 위해서  그것을 한 번 마음을 쓰고 정성을 쓰고 힘을 쓰고 이렇게 해서 만들면 내 마음과  정성과 힘과 모든 정력이 다 그리 갑니다. 이걸 기울여 가지고서 나를 위해서  만드니까? 나를 위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그것이 차차 차차 내기에 필요한 것이  됩니다. 내게 필요한 것이 됩니다. 나를 위해서 만드니까?, 내게 필요한 것이  되면 필요한 그것을 필요한 정도로만 하고 거게서 그만 멈추는게 아니라  사람들은 그것이 필요하니 일방적인 지식을 가지고 필요하니까? 그 필요한 것이  많아야 좋겠고 또 그 필요한 것이 튼튼 해야 좋겠고 또 필요한 것이 그것이  요동치 안하고 견고해야 좋겠습니다. 이제 그라는 데는 그것을 내가  만들었으니까? 내가 만들었으니 어떻게 하든지 그것이 내기에 필요하다고 서서히  사람들의 마음이 그리 쏠려 가지고, 그만 당장 앞에 필요한 것은 제가 만들어  놓은 그것이 당장 필요합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필요하다, 축복이  필요하다. 하나님이 필요하다 하는 것은 멀리 보이고 먼데 있고. 그것은 당장  자기에게 지금 필요합니다.

 이러니까?, 자연히 사람은 자기에게 필요한 그것을 잘 보호하고 든든케 하려는  것이. 그것이 인간의 생애 애착의 본능입니다. 이러니까?, 그것을 든든케 잘  하려고 하고 차차 소망이 그리 기울어져서 그것을 소망하고. 그것을 의지하고.

그것을 바라보고 그것이 잘 되면 나는 이제 튼튼하다, 그것이 잘못되면 나는  낭패된다. 이러니까?, 그속에 무엇이 와서 역사를 하고 있는고 하니 악령이  역사를 합니다. 그것이 벌써 꺼꾸러 됐소. 일계명을 어겼습니다. 일계명을 어겨  가지고서 했기 때문에 일계명을 어긴 것이 그것이 뭐이냐? 마귀라는 놈이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를 꼬우던 거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꼬와 가지고 호수를  틀리게 했다 말이요.

 그 첫째, 하나님을 그 바라보고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두지 말라  했는데. 이제는 하나님 멀어지고 자기가 만들어 놓은 자기의 사업이나 재물이나  일생 동안 공부한 지식이나 기술이나 뭐 자기가 이루어 놓은 사회나 지위나  권세나 명예나 이런 것이 가깝게 자기에게 필요하니까? 그만 그 순위를 바꿔  가지고서 그것이 일호가 되고. 하나님은 그만 이호도 안되고 그것이 일호되고.

내가 이호되고, 하나님은 차차차차 멀어지게 돼 버립니다.

 이라니까?, 나중에는 그것이, 그 속에 든 마귀가 처음에는 그렇게 안  하지마는서도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지. 안하면 그걸 보존할 수 없도록 또  하나님을 배반치 안하면 그것이 절단나도록 요렇게 악령이 저거 군대인 모든 그  악령이 주관하고 있는 그 모든 사람들을 움직여 가지고서 열도 스물도 백도 그  사회도 시대도 국가도. 막 움직여 가지고서 자꾸 그 운동을 합니다. 그 운동을  하니까? 나중에 가서 그 사람이, 이제는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사람이 자기가  만들어 놓은 자기에게 필요하다고 만들어 놨는데 그것이 자기를 주관하는 자가  됩니다.

 이래서 거게 '절하지 말고' 하는 말은 거게 복종하지 말라. 절하지 말고  복종하지 말라 했는데 그만 복종하게 됩니다. 복종하고, '절하지 말고 섬기지  말라' 그 섬기지 말라 말은 위하지 말아라, 위하지 말아라. 위하지 말아라.

이런데 사람이 일계명을 그만 벗어 버리면 그 다음에 순위가 달라져 가지고  자기가, 자기가 주격이 돼 가지고, 자기가 주격이 돼 가지고 자기에게 필요한  이런 것 저런 것을 만들어 가지고, 만들고 난 다음에는 이제 하나님은 없어져  버리고 자기가 일호가 돼 가지고 이래 하다가자기 만든 것이 이호가 되고,  이라다가 차차 차차 자기가 만든 것이 일호가 되고 자기는 이호가 됩니다. 그래  가지고서 자기 만든 것에게 자기가 복종하게 되고, 이러니까? 제가 들어서  직장을 만들었고 자기 지위나 권세를 만들었지마는서도 나중에는 직장이나  지위나 재물이나 그런 것이 시키는 대로 계명 어기는 것을, 처음에는 좀 마음에  주저 주저 하지마는서도 얼마 안 가서 뭐 계명 어기는 일을 아주 예사롭게  합니다. 주일을 범하는 것도 예사롭게 합니다. 상관없소. 얼마든지 제대로 하게  됩니다.

 이러면, 이제 한번 하나님의 법과 하나님을 배반해. 차차 이라면 섬기게  됩니다. 이제 그만 섬기게 되어서 저도 모르게 그 사람은 밤이나 낮이나 자기의  정성은 다 거게 기울어져 있습니다. 그거 섬깁니다. 거게 기울어져 잇옵니다.

하나님의 일은 뭐 멀리 가고 천국도 멀어졌고 심판도 멀어졌고 죽음도 멀어졌고  사는 것 그것만 가까와졌고 또 하나님의 계명도 다 없어 지고 그것만이 자기가  일편단심 그것만 바라보고 의지하니까? 그게 끄는 대로 사업이 끄는 대로  끌려가고 잘난 사람들이 사업이 끄는 대로 끌려가서 예수 믿지 못합니다. 그  제딴에는 잘난 줄 알지마는서도 마귀 지식과 마귀 지혜가 강하지 참 사람의  지혜와 지식은 아주 빈약하고 허무한 것입니다. 또 그거 아니라도 구원 잘  이루었을 터인데 자기 지위나 권세 그것이 끄는 대로 끌려갑니다. 그만 거게  절합니다. 끌려가고, 이제는 일편 단심 모든 것이 그것을 섬기는 자 됩니다.

그러면, 그게 뭐이냐?, 이것이 나를 미워하는 자라. 그것이 하나님 미워하는  자입니다. 하나님 미워하는 것이 그게 하나님 미워하는 자요. 자기가 무엇이든지  만들어 놓은 자기 위해서 만들면 반드시 그것은 우상 되고 맙니다. 제가 아무리  뭐 신앙이 좋고 뭐 절제 의지가 있고 명철하다고 해도 무엇이든지 저 위해서  만들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마지막에 우상의 위치에 앉게 되고 나는 거게  피동되고 그것이 하라는 대로 피동되고 또 그것만 위주로 해 가지고 밤낮 이거  아니면 죽는다 이라면서 그거 섬기게 됩니다.

 그러면 그게 뭐이냐? 그게 막바로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  신구약이 이 계약을 선포해 놓으신 여호와 하나님 우리의 구주가 되시는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미워하는 것이요.

 얼마나 그게 미워하는 것이겠습니까? 요 현실을 딱 닥쳐서 피로 구속해 주신  주님도 옆에 바라고 섰지요. 자요 현실에 내가 너 위해서 죽기까지 해서 널  구속했고 너에게도 지극히 큰 하늘의 소망과 영생을 줬고 이 지극히 큰 소망을  줬으니까? 이제는 네가 나를 따라와야지 내 법대로 살아야지 나를 섬기야지  이렇게 주님은 참 애터지게 옆에서 지금 서서 계십니다. 이런데 여기에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있는 것과 악령이 들어 가지고서 아니다. 나를 따라와야 살지  나 안 따라오면 너 사업 당장 절단 난다, 나 안 따라오면 너거 식구 다 굶는다.

나 안 따라오면 너 직장에서 대번 모가지 척 날아가 버린다, 이놈이 자꾸  위협하니까? 거게서 자 이 둘 중에 가운데 있는 이 참 그 여인과 같이 이래  가지고 있으면서 여게서는 본 남편과 같은 하나님이 지금 옆에 기다리고 섰고  옆에는 간부와 같은 이 마귀와 세상이 기다리고 있는데 이럴 때에 아무리 제가  생각하고 생각해 봐도 하나님은 배반해도 그렇게 당장 자기에게 뭐 멸망이나  주진 안 하지마는서도 이 옆에 있는 이것은 안 하면 당장 이거 또 환란이  나겠으니까? 마음에 안 됐기야 안 됐지마는서도 이제 하나님을. 이놈 좋게  할라고. 하나님을 모르는 척하고 방긋이 웃으면서 그놈에게로 딱 돌아가니까?  자. 이보다 하나님 더 배척하는 것이 어디 있소. 이보다 하나님이 더 분개한  일이 어디 있으며 하나님 미워 하는 일이 어데 있겠소 있기를. 이 이상 미워하는  것이 없습니다.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는 이 미워하는 것입니다. 아비의 죄를 갚되 자손의  삼사대까지 이르게 한다. 그러면 성경에 또 말하기를 부모의 지은 죄 값에  자식을 벌하는 수가 없다 이래 성경에 말해 놨습니다. 이런데 어떻게 부모의  지은 죄값이 자손의 삼사 대까지 가겠느냐?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선조의  신앙행위로 자손에게 천 대까지도 주고 그 선조의 하나님 미워하는 그 행위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돕지 안하십니다. 은혜를 베푸시지 안하시니까? 제가  속절없이 아무리 제가 성성한 식물이라도 비 안 오면 말라 죽어 버리지  어짜겠소. 비 안 오면 말라 죽지 햇빛 안 나면 녹아 죽지.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은혜가 그이에게 없으니까? 그 뭐 삼사 대뿐 아니라 얼마까지도  갈런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하지 말아라 했습니다. 말고, 이제는 이렇게 하지 말아라. 그  말은 너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고 이랬는데 이렇게 하지 말라 그말이요.

이거는 너를 위해서 우상 만드는 것은 잘못하는 것이요. 이러니까? 바로 할라면  내 앞에 네게 다른 신을 있게 하지 말라. 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있게 하지  말라.

 그러면, 자존하신 하나님이요 창조주이시요 또 시은자시요 그 독존하신  유일하신 하나님이신데 이분의 위치가 이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되어졌는데  이분의 이 위치를 바꾸면 그만 그게 다 절단나 버리는 것인데. 이 위치를 바꾸지  말고 나를 네가 언제든지 첫째로 삼아라. 첫째로 삼고. 너를 위하여 너를 위하여  너를 위하지 말고 너를 위하지 말고 내가 현실을 주었을 때 너를 위하지 말고  네게 현실을 주신 그분을 위해라. 네게 현실을 주신 그 그분을 위해라 그 분을  위하면 그분 위하는 것이 뭐이 그분을 위하겠느냐? 그분을 위할라고 하면 그분  위하는 모둔 언행심사는 그분에게 복종하는 그 언행 심사가 된다. 그분에게  복종하는 언행심사가 되면 그것은 곧 그분을 섬겨 위하는 것이 된다. 그 분을  섬겨 위하는 것이 된다. 그러면, 그게 뭐이냐? 그것이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사랑하므로 나에게 명령이든지  요구든지 교훈이든지 무슨 선물이든지 주시니까? 나를 사랑하신 그분이 나를  사랑하므로 이것을 주시니까? 내가, 그분의 사랑을 받으므로 그것을 주를 위해서  내가 행하게 되니 그 모든 행하는 것이 주님이 날 사랑하므로 베푸신 것 내가  주님의 사랑을 받아 주님의 사랑을 받아주님을 사랑하므로 그 일 하니 그것이,  주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요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그것이 뭐이냐 그것이  하나님의 계명 지키는 것이라.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모든 생활하는 것이 주님의 그 사랑이 우리에게 그것을  주셨는고로 그 사랑을 받아 그 사랑을 받는 것으로 우리가 이런 저런 행동하는  것이 되어야 하고. 그분의 사랑을 받는 일 합니다. 그분의 사랑을 받는 일 하는  것이 우리 생활이요. 그분의 사랑을 받아 그분을 사랑하므로 또 하는 것이 우리  생활입니다.

 이러니까?, 껍데기는 장사도 하고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모든 것을  관직생활도 하고 또 정치도 하고 오만 것 다 하지마는 껍데기 볼 때에는 이 세상  사람과 꼭 같이 하지마는 속에는 주님의 사랑이 왔고 그 사랑을 내가 받고  그분을 사랑하므로 내가 그분 사랑하는 일 하는 것, 그분 사랑하는 일을 하는  것이 우리의 생활이라. 그분 사랑하는 일을 한다. 그 하는 일 그것이 그분  사랑하는 일이라. 자기딴에는 그분 사랑하는 일해. 그분 사랑하는 일 어찌하노.

너는 밥하면서 그분 사랑하는 일 해. 나는 그분 사랑하는 일을 주님이 밥하는  이것을 밥하는 것이 주님 사랑하는 것이다. '그 주님이 밥하라 했기 때문에  주님을 사랑하므로 내가 밥한다' 밥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밥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주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요. 또 주님을 사랑하므로  하는 것이요. 그게 주님을 사랑하는 것 사랑하는 것이요 사랑함이요. 그것이. 또  뭐이냐? 그것이 주님의 계명지키는 것이라. 너 뭐하고 있노? 나 계명 지키고  있습니다. 너 밥하면서 계명 지킨다고 아 나는 계명 지키고 있습니다. 사람들  보기에는 밥하지마는서도 속으로는 계명 지키고 있는 것이라. 사람들 보기에는  사물을 보고 하지마는서도 실은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내가 받는 일  하고 있고 그분을 사랑하는 일하고 있고 또 그분의 계명 지키는 일 하고 있고  이거하고 있는 것이라. 이러니까? 겉은 꼭 같지마는 속이 다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한 자리에서 두 사람이 이 일도 저 일보, 같이 누워 자기도  이래 하지마는 하나는 다 멸망으로 던져 버리고 하나는 생명의 구원으로 다  데리고 간다. 하나는 하나님에게 다 인도를 받아서 구원으로 올라간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요것을 잘 구별해야 할 것입니다. 그 뭐 별 이치가  아니고 하나님이 근본 그분이 그분이 일호입니다. 그분이 일호요 그분이 홀로  자존하셨습니다. 그분이 일호요 그 다음에 그분이 창조하셔서 우리가 생겨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편에는 예정이 있지마는 우리 편에는 그분이  계셨고 그분이 창조해서 우리가 생겨졌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모든 이 생활할 때에 구속받은 것도 내가 그분의 구속을 찾은  것 아닙니다. 그분이 나를 택했습니다. 내가 그분을 찾은게 아니고 그분이 날  찾았소. 그러기 때문에, 언제든지 기독교는 피동적입니다. 그분이 일호요  하나님이 일호. 또 이호는 나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사 삼호 내게 현실을  주셨습니다. 그분이 나를 사랑하셔서 현실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현실을  주셨는데 이 현실을 주신 이 현실을 어떻게 하라 그 말했습니까? 이 현실을 너를  위해서 하지 말아라 이라니까? 그러면 자기 위해서 하지 안하면은 누구 위해서  해야 됩니까? 자기도 위해서 하지 말라고 하는데 뭐 다른 사람 위해 하겠소.

그것이 내나 일계명. 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 하는 그 말씀이요.

이러니까?, 이제 사호에는 주님을 위하고 주님을 위하고 오호에는 주님을  위할라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주님 위하는 것이 성경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성경에서 주님 위하는 구체적을 또 배워야 되겠습니다. 일호도  성경에서 배웠고 이호도 성경에서 배웠고 삼호도 성경에서 배웠고 이 성경에서  배우기 전에는 저절로 생겼다 자연이라 제 힘으로 생겼다 했지마는 성경에서  배워서 일호는 하나님이라, 이호는 내라, 삼호는 주님의 주신 선물이라, 사호는  그 선물을 자기 위해서 하지 말고 주를 위해서 하라고 했다. 오호는 이제 주를  위하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성경에서 오호를 또 배워야 되겠습니다.

배우면 오호인 그 성경에서 우리에게 가르치기를 뭐라고 가르치느냐 하면 이제  주님이 너희에게 구원 주셨으니까? 그 구원을 위해서 이것을 써라 이 현실을  써라 그렇게 하십니다. 그러면 구원을 위해서 이 현실을 쓰면은 어떻게 쓰는  것이 구원을 위해서 현실을 쓰는 것인가? 구원을 위해서 현실 쓰는 것은 이  현실은 죄를 짓지 않는 데에 쓰기 위해서 현실을 주셨습니다. 죄를 짓지 않는  거기에 쓰기 위해서 현실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현실에서 자기가 죄 안짓는 그  일을 성공을 못 하면은 그 현실은 참 바로 이용하지 못했습니다. 또 현실은  하나님에게 피동으로 사는 하나님의 피동 그것을 현실에서 만듭니다. 현실에서  마련하요. 하나님에게 피동을 현실에서 마련을 합니다. 또 현실에서 그라면  어떻게 하는 것이 구원인가? 현실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그 연습을 해  가지고서 그 일을 이제 성공을 합니다. 언제든지 하나님 떨어지지 안하고  하나님이 자기 안에도 계시고 자기 곁에도 계시고 자기가 자기가 활동할 때는  하나님이 자기 곁에 계시고, 활동할 때에는 하나님이 자기 곁에 계시고 자기가  무엇이든지 시작할라고 할 때에는 하나님이 자기 안에 계셔 가지고서 그 발기자  발기자 되셔 가지고서 뭐이든지 시발하시고. 그러면 자기가 처음에 뭐이든지  움직일라 할 때에는 하나님이 자기 안에 계셔서 시발을 하시고, 또 자기가 대외  관계로서 대외전을 할라고 할 때에는 자기 곁에 계시고 이래서 언제든지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는 것은 대내전 자기 안에서 싸움이 일어날 때에는  언제든지 그분으로 인해서 동하고 정하고 그분을 자기의 주인으로 자기 안에  모시는 것이 그것이 주님을 모시고 주의 성전이 되는 것이고,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고, 자기 밖에 있는 어떤 전투든지 전투할 때에는 주님이 자기 곁에 계셔서  자기를 돕고 계시는 것을 자기가 인정하고 믿을 때에 그분의 도움은 올 수  있습니다. 믿지 않으면 그분의 도움이 올 수 없어요. 안 믿으면 안돼. 그러기에  믿는 대로 되리라 이랬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분이 특이한 그 승리 생활한 것은 성경이 발표하기를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동행했다 했습니다. 노아도 하나님하고 동행했다. 또 에녹도 하나님과  동행했다. 사도 바울도 말하기를, 그 사자와 같은 그 맹수성 가진 사람들이 나를  대적할 때에 사자의 이빨에서 내 곁에 서신 주님이 나를 구원하셔서 내가  구출됐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자기가 대외전을 할 때에는 주님이 자기 곁에 서셔서 전지전능  주권자로서 자기를 도우시는 것을 자기가 믿으므로써 그 혜택이 자기에게 오게  하는 것. 또 대내전 할 때에는 주님이 자기 안에 주인이 되셔 가지고서 그 모든  뭐 수족이나 몸이나 모든 전부는 이 주인이 다 책임지고서 모든 것을 관리하고  잘 수호하고 계시는 이 주님을 모시고 그분을 주님을 주인으로 모셔서 그분으로  동하고 정하면 그러니까? 갈라디아서에 바울이 말하기를, 내가 사는 것이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요 호수를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이래서  유다서에 보면 지위를 지키지 아니한 천사를 흑암에 가두어 영원한 결박으로  유리하게 했다고 했습니다. 일차적으로는 천사가 그 지위를 지키지 아니한 그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안한 죄값으로서 그를 결박해 가지고서 영원한 혹암에  가두었다. 혹암에 가두었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자유를 제한시켰다 자유를  축소시켰다 그 말이요. 축소시켜서 처음에는 하늘나라에서 쫓겨나와 가지고  공중에 있다가 이제는 공중에서 쫓겨나와 가지고서 지금 땅에 왔습니다. 이래  땅에서 쫓겨나면 땅에서는 성도하고 싸웠는데 땅에서 성도하고 싸워 가지고  성도에게 쫓겨나면은 이 다음에는 유황불 구렁텅이 가는 것이 그의 가는  곳입니다. 이러니까?, 자꾸 갇히요. 자꾸 손 골 '주:좁고 깊은 구멍으로)로  몰아데요. 손골로. 그러니까? 이렇게 지위를 지키지 안한 천사를 그렇게 했다.

지위를 지키지 안한 천사를 그렇게 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이 소돔과 고모라 성도 권세 있는 자를 멸시하고 지위를  지키지 않는다. 지위를 지키지 않는다. 그게 뭐이냐? 음행이다. 그러면 소돔  고모라 성은 육체적인 음행했지마는서도 그것이 근본 하나님을 하나님의 위치에  모시지 안하고 이 세상으로 더불어 짝했기 때문에 신령한 음행을 했으니까?  육체의 음행이 그 다음에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천사가 이렇게 지위 지키지 안하다가 마귀. 사탄이가 돼 가지고서 그  군대가 얼마나 많습니까? 부하가. 그렇지만 소용 없어. 쫓겨나 가지고  이러니까?, 우리가 이 지위를 지키지 안하면 우리는 멸망합니다. 이 지위를  지키지 안하면. 그러면, 우리가 그러면 여기 일호 이호 삼호 사호 오호 육호  그것을 우리가 지금 호수로 정해 봤는데 그 다음에 칠호까지 정해 봤는데 그러면  이것을 어데서 배웁니까? 배우는 것은 다 성경에서 배웠습니다. 성경에 배운  것은 하나님께 배운 것입니다. 성경에서 배운 것은 하나님께 배운 것이요.

성경에 '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있게 하지 말라' 하는 이게 성경이라 말이요.

이러니까? '나 외에 내 앞에 내 앞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 하시니라' 하면  그라면 알아 듣기 쉽고 나 외에라 하면 그 좀 알아듣기 좀 벙벙하이 그렇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가 구속을 받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무엇을 논리하든지 무엇을 논리하든지 논리할 때에 일호를  하나님으로 두십시오. 무엇이든지 논리할 때에 일호를 하나님으로 둬야 됩니다.

하나님은 일호를 뺏기지 않습니다. 일호를 범하면 그만 타락한 천사와 같이  어두워집니다. 그만 어두움에 가둬 버리요. 일호를 일호를 다른 어떤 것에게  주든지 일호를 제가 점령하든지 하면은 그만 어두워집니다. 그만 어두움에 가둬  버리요. 그 하나님은 빛이신데 그 사람이 일호를 하나님으로 모시면 하나님의  빛이 오셔 가지고서 광명해지고 일호를 버려 버리면 그만 하나님이 떠나시니까?  그사람은 흑암에 가두워집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같이하지 안하니까? 그만  갇히어지게 됩니다.

 그러기에, 언제든지 우리가 착각하기 쉽습니다. 내가 아, 내가 하나님을 잘  믿어야지. 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지. 내가 하나님을. 이 내라는 것이  나오면 큰일 납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이 먼저 나와야 됩디다.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 되게 해 주셔야 되지. 하나님이 내기에  은총을 주셔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하나님이 나를 불쌍히 여기신다.

언제든지 하나님을 일호로 붙이십시오.

 요거 명심해야 되지 일호에 붙여서 우리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데 하나님,  이호 그 다음에 하나님이 이호는 자기입니다. 하나님 다음에는 자기요. 뭐  그러기 때문에 이웃 사랑하는 것이 좋지마는 이웃 사랑하는 것을 네 몸같이 하라  그 말은 자기가 먼저라 그 말이요. 자기가 먼저.

 이러니까?, 하나님이 하나님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사 현실을 주셨다. 요 현실  안 왔습니까? 요 현실을 받았을 때에 요 순서가 없어 버리면 헛일이고. 요  순서를 없애 버리고 아 현실부터 먼저 찾아 가지고 아. 이 현실이 나에게  닥쳤다. 이러니까? 이 현실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해야 되겠으니까? 이 현실을  하나님 말씀이 어떻게 했는지 이 현실에 대해서 하나님이 뭐라 그 말씀하시는지  이 현실을 하나님 말씀 가지고서 한번 그 상고해 가지고 어떻게 결정을 지워야  되겠다 그러면 그 사람은 현실이 일호가 됐습니다. 현실이 일호가 됐습니다.

현실이 일호, 현실이 일호. 자기가 이호. 이러니까? 하나님 말씀대로 제 딴에는  하면은 잘했다고 생각하지마는서도 그 사람은 벌써 지위를 벌써 벗어났습니다.

 이러니까?, 자, 이 현실을 주면 현실이 일호라, 이 현실을 주면 말씀대로  자가는 행합니다. 아, 말씀대로 했으니 나는 잘했다. 또 마귀라는 놈 이 또 둘째  현실을 주니까? 또 말씀대로 이라면 말씀대로 행했다. 자기는 척척 승리해  나갑니다. 말씀대로 해서 승리해 나가. 또 사물을 또 사호라는 또 현실을  주니까? 또 합니다. 이러니까? 졸졸 요 현실 주니까? 말씀대로. 하야! 너 장하다  말씀대로 네가 꼭 그래 하는구나 또 요거 주니까? 또 하는구나 졸졸졸 끌고 저  끌고 가 가지고 마귀의 무저갱의 구덩이까지 쏙 끌고가 가지고는 팍 빠져 버리면  다시는 못 나오는 것이라. 이러니까?, 우리는 요 순서를 착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날 사랑하사 현실을 주셨다. 요거 삼호. 일이 삼호 됐는데 사 호에  가서 사호에 가서 현실을 주셨으니 이 현실을 그만 나를 위하여 하면 안됩니다.

이 현실은 내 구원 위해서 주셨다. 안돼. 헛일이라. 내 구원 위해서 주셨다  하면은 된 것 같해도 안 됐습니다. 왜 안 됐느냐 초절이 됐기 때문에 헛일이라  말이요.

 그러면, 이 사호에는 현실 주신 것은 주를 위하라고 주셨습니다. 주를  위하라고, 성경에 말해 놓지 안해요? 너를 위하지 말라 하니까? 뉘 위하라는  말이요? 주님 위하라는 말 아닙니까? 지금 주님하고 자꾸 상대해서 말하고  나오지 안해요? 너를 위하지 말라 했으니까? 주님 위하라 하는 것이라 말이요.

주님 위하라고. 너를 위하지 말아라 했으니까? 주님 위하라는 말입니다. 주님  위해서 그러면 주님을, 위할라고 하면은 어떻게 하면 주님을 위하는 것이  되겠느냐? 성경에 와서 또 오호에 성경에 가서 또 물어봐야 되겠습니다.

이제까지도 성경에 배웠지만 또 성경에 물어봐야 되겠어. 성경에서 물어보면  성경이 어떻게 하면 주님을 위하는 것이 된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줍니다.

 그러면 육호에는 뭐이냐 성경이 뭘 가르쳐 주느냐 하면은 성경이 가르쳐  주기를, 너 그리스도의 구속을 입으라고 현실을 주셨다. 네가 현실에서  그리스도의 구속을 입는 것이 주를 위함이다. 요 육호 나왔다 말이요. 그러면  이제 칠호에 가 가지고는 그러면 현실에서 그리스도의 구속을 입다니 그리스도의  구속을 입는 것이 어떤 것이 그리스도의 구속을 입는 것인가? 구속을 입는 것은  네가 죄악이 바다 물같이 가득 차 있는 죄악이 바다 물같이 가득 차 있는 이 땅  위에서 네가 죄악에 물들지 않는 것 죄를 용납지 않는 것, 죄와 상관하지 않는  것. 마치 이 수은이 수은이 먼지 구덩이에 넣어 놔도 먼지는 먼지 대로 수은은  수은 대로 또록또록 하이 따로 이래도는 것처럼 네가 이 죄악이 암만 관영한 이  죄악 속에 들어도 너는 죄악에 물들지도 안 하고 죄악이 네 속에 들어오지도  아니 하고 너는 죄와 또렷이 구별하게 사죄받은 그대로 네가 요 현실에서 있는  것이 현실에서 사죄를 완성하는 것 사죄를 완성하는 것을 현실에서 해라. 사죄를  완성은 현실에 합니다. 그거는 법적으로는 됐지마는서도 그 사죄를 자기가  완전히 사죄를 입는 것은 현실에서 입습니다. 현실에서 사죄를 입지 안 한 것은  전부 다 죽어 버립니다. 그러기에 현실에는 죽는 것이 현실이요 사는 것이  현실이요. 그러니 현실은 죽이고 살리는 것이라 현실에는 죽이고 살리는 것이  현실이라. 현실에서 네가 사죄하라고 이 현실을 선물로 주시지 안했느냐 이것이  주를 위함이다.

 또 또 뭐입니까? 이 현실에서 네가 칭의를 네 칭의로 삼아야 된다. 네가 칭의를  실상으로 입는 것은 현실에서 입는다. 현실에서 법적으로 입은 칭의를 벗어 내  버릴 수도 있고 그 칭의를 네가 영원히 입을 수도 있다. 이의를 입을 수 있다  이것이 주를 위함이다. 그거하라고 현실 주셨다.

 그러면, 또 뭐입니까? 이제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다. 하나님을 모시소.

네가 대내전 할 때에는 네 안에 주님을 모시고 너는 성전이 되고 대외전 할  때에는 이 전지 전능 사랑의 주님이 너를 곁에 서서 보호하고 계시는 것을  믿으라. 이것이 주님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현실을 닥칠 때에 사람들은 여게 대해서 의심해 가지고 떨어집니다.

그 제가 거창에 들어가 가지고서 ○○○목사님이 집회했을 때에 나는 직접  듣지는 못했는데 그 어떤 사람이 이야기 하라 하니까?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다 하는데 그 이야기 하는데 골자를 내가 한마디 들어 보니까? ○○○ 목사님이  마태복음 38장 20절 '나는 세상 끝날 까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는 요 말씀을  놓지 안하고 언제든지 주님이 나와 같이 계신다. 요 한 절 가지고서 감옥도  넉넉히 이겼고 모든 시험 다 이겼고 다 평안했고 아무래도 그 세상이 날뛰지마는  그것을 만드시고 그보다 크신 분이 자기와 함께 계시니까? 문제가 없다 그  말이요.

 그런고로, ○○○ 목사님이 시 지은 것 보니까? 모든 원수의 총칼은 웃음으로  대했다 이렇게 그 시를 지어 놨습디다.

 이러니까? 오늘 우리가 여기에서 단단히 기억합시다. 사람이 어데서 떨어지는고  하니, 그만 일호를 일호로 정하지 못하고 이호를 일호로 정하는 데에서 실패해  버립니다. 이호를 일호로 정하는 데에서. 요거 단단히 기억해요. 이호를 일호로  정하는 데에서 실패해요. 이호를 일호로 정하고 나면 그 다음에 이호가 항상  이호로 있습니까? 무엇이 이호 됩니까? 이호를 일호로 딱 정해 가지고 있으면 그  다음에 그 일호가 뭐이 됩니까? 뭐 이 일호 되지요? 자기가 하나님을 일으로  해야 될 터인데 자기를 일호로 삼아 가지고서 자기를 일호로 삼아 가지고서 우리  현실 현실을 돋궈 나가게 되니까? 그리되면 그 이 현실이 몇 호지요? 손가락으로  가르쳐봐 현실이 몇 호요? 셋째 삼호. 삼호인데 이호를 일호를 삼아 놨으니 얼마  가면 이제 제가 항상 일호가 됩니까? 일호가 또 다른 것이 일호가 됩니까? 저  남반 한 번 대답해 봐요. 무엇이 일호 됩니까? 녜. 이제 삼호가 삼호가 일호  됩니다. 삼호가 일호 됩니다.

 삼호가 일호 되는 걸 가르쳐서 여기 성경에 뭐라고 말씀, 뭐 된다고 했습니까?  우상 우상 된다고 했습니다. 그 필연적으로 되는 것이요 안 될 수가 없어.

우상돼. 우상이 되면 그 시키는 대로 해야지 어짤 것이요. 돈이 시키는 대로  해야 되고 직장이 시키는 대로 해야 되겠고 또 자기의 뭐 무엇이든지 우상된  그게 시키는 대로 해야지. 이 시키는 대로 하고 나면은 또 그걸 위하지 안할 수  없어. 그만 그것만 위해서 살게 돼요.

 그러니까? 그것이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이라.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이라.

미워하니까? 하나님께서 그를 미워할 수 밖에 더 있느냐? 하나님을 위하니까?  이제는 하나님하고 둘이 전쟁을 붙습니다. 하나님 하고 대항하고. 하나님보다 큰  사람이 있습니까? 누가 하나님을 대항하겠습니까? 누가 그 분을 이길 수가  있겠소.

 이런고로 참 어리석습니다. 요거는 마귀라는 놈이 우리를 꼬아서 그런데 조금  눈감고 성경 아는 사람은 명상하면 그 순서가 다 나오는데 그만 눈감지 안하고  자꾸 마귀라는 놈이 막 부딫힙니다. 마귀는 분주한 가운데에 힘을 씁니다.

분주하고 요란한 데에 힘을 써요.

 그러니까? 벌써 징을 당당당 두드리고 둥둥둥 야단지거들랑 그거 귀신 인줄  알아야 됩니다. 그 벌써 믿는 사람들도 물론 하나님으로 인해서도, 그 스룹바벨  성전 지을 때에 우는 소리인지 노래 부르는 소리인지 모를 만침 막 떠들고 이래  하기는 했지마는서도 지진 난 데도 또 불 가운데도 바람 가운데도 계시지  안하시고 여호와께서 어디 계신다고 했습니까? 대답해 봐. 저 사람 모르는 가베  세미한 음성 세미한 음성. 양심으로 가만히 들으면 고요히 영감시켜 준 그  가운데 계신다 그 말이요. 이러니까? 마귀라는 놈도 얼렁뚱땅해 가지고서 그만  이래 가지고서 호 수를 바꿔 버립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이중 살아야  되요. 이중으로 살아야 돼. 왜 겉에 사람을 대하는 사람 있고 속에서 주님을  대해 가지고서 이라면서 주님을 대하면서 여기에는 거저 주님을 대해 가지고  주님으로 의논한 것을 이 기술상으로 대해야 돼. 사람들을 구원하는 그런 구원의  방편으로 대해야 되지. 그만 그게 전부인 줄 알면 큰일 납니다. 이러니까?,  대개는 사람들이 일호를 자기를 둡니다. 일호를 자기 두면 그거는 두말할 것  없이 우상 섬기는 자가 되고 밥니다. 일호를 자기를 삼지 말고 일호를  하나님으로 삼고, 이호를 현실로 삼지 말아요. 이호는 자기로 삼고, 삼호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것이니까? 현실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니 이제 삼호로  삼고, 사호에 가서 하나님이 선물로 주시기를 뭐 할라고 주셨느냐? '내 구원  위해서 주셨다' 하면 안 되요. 그 사호를 하나님이 하나님 당신 위하라고 그거  주셨다. 요 사호가 요래 되어야 됩니다. 당신 위하라고 주셨다. 그러면 오호는  이제 성경에 보니까? 당신 위하라고 주셨는데 당신 위하는 것이 뭐인가? 당신  위하는 그것이 사죄와 칭의와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하는 요것을 그 현실에서  이루는 것이 그것이 이제 주님을 위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하면 그게 뭐이냐? 자기 전 생활이 웃는 것도 성내는 것도  밥먹는 것도 일하는 것도 머리 쓰는 것도 계획하는 것도 큰 소리치는 것도  모두가 다. 하나님이 얼마나 욕심이 많소. 참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우리에게 대해서는 부스러기 하나라도 놓기를 싫어 하십니다. 부스러기 하나도  안 놓소. 이러기 때문에 우리의 움직임의 전부가 당신을 사랑함이 되어야  된답니다. 당신을 사랑함이 되어야 만족이랍니다. 웃는 것도 웃는 그것이 당신  사랑함이고. 당신을 사랑함으로 웃고, 웃는 그게 당신 사랑함이 됐고 사랑함으로  웃고 사랑함이 됐고 당신의 사랑을 받아서 당신을 사랑함으로 웃고 사랑함이  되는 것.

 또 모든 움직이는 그 전부가 당신을 사랑하므로 그의 계명 지키는 것이 돼.

밥먹는 것도 그 계명 지키는 것. 일하는 것도 계명지키는 것, 말하는 것도  계명지키는 것, 전부 제명지키는 것이 되어야 이래 당신이 만족 하십니다.

이렇게 당신은 우리를 전폭을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으로서 당신의 전부를 다  기울여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전부를 당신에게 드려서 전부를 당신  위해서 털끝만한 것도 썩는 일이 되지 안하고 다 완전 영원불변의 것으로서 주님  모시고 주님과 영원히 동행 동생 하도록 하기 위해서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 까지  은혜를 베푸신다. 그러면 모든 내가 하는 언행 심사 그 전부가 주님이 날  사랑하신 그 사랑에 감격해서 주님을 사랑하므로 언행 심사를 한 그것이 언행  심사 그것이 바로 주님의 사랑이 된 것 그것이 주님의 사랑이 되는 것 요것이  영광의 찬미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이 되고 그것이 바로 일을 하면서  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계명 지킨 것이라 그것이 계명 지킨 것. 계명  지킨 것.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것 외에 딴 것은 하나도  하지 못하고 눈도 뜨지 못 하게 하고 당신만 바로 하기 때문에 나의 사랑하는  신부요 너의 눈은 너울 속에 있는 비둘기 눈 같다. 너울을 쓰면은 그 신부 너울  쓰면 딴데 봅니까? 딱 요래 가지고서 이제 주님만 바라 보는 그걸 묘사해서  너울속 비둘기 눈 같다 나의 사랑하는 신부여 너의 눈은 아름답다. 너울속  비둘기 눈과 같다. 비둘기는 정조 있다고 하지 안했습니까? 그 성경에 그렇게  말했다 말이요.

 그런고로, 우리가 요 호수, 아주 요것을 중하게 여깁시다. 언제든지 일호 이호  삼호 사호 오호 육호 칠호 요것을 단단히 호수를 기억해서 그만 일호가 제일 그  탈선되기 쉬워. 일호 탈선되면 헛일입니다. 나는 주를 위해서 죽겠다 주를  위해서 어찌 하겠다 뭐 그라면 잘 믿는 것 같지마는서도 아니요. 일호는  언제든지 주님을 둬야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주일 학교 다음 주일에는 하나님 앞에 만 명을 약속했는데 주일 학교 만 명을  약속했는데 잊어 버렸습니까? 자 반사 선생님들 손 한 번 들어 보십시오. 반사  선생님들 손 한번 버떡 들어봐요 버떡 영광스러운 손이야 버떡 들어봐요 여기  있습니까? 예 이제 한 번 따라합시다. 만 명! 똑 저녁 굶은 소리 같애! 만 명!  만 명!! 만 명! 그래 이제 우리가 기도하고 또 잃어버린 양을 찾으면 만 오천  되겠어요. 만 오천. 잃어버린 양을 찾으면. 주님도 잃어버린 양을 찾을라고  하늘에서 우리에게 찾아 오셨는데 우리가 뭐 그 잃어 버런 양을 찾기 위해서  새벽에 가고 어데로 춥고 뭐 어렵고 얼음판에 미끌어지고 뭐 상관이 있겠소.

 어떤 내가 그 권찰 한 분 말 들었는데 말 들었는데 자꾸 이 그 말을 듣고 그  사람이 거기에 어디 있다 소리를 듣고서 그 주소만 하나 받아 가지고 자꾸 어린  양 찾으러 가는데 가다 보니까? 또 미끌어지고 가다 보니까? 또 미끌어지고 자꾸  그라다 보니까? 그 소변이 누려워서 자꾸 소변이 누려워서 소변 누는가 싶었더니  나중에 보니까? 피가 줄줄 흘렀어. 그래 월수도 아닌데 월수도 아니라 치질에서  자꾸 피가 나더래요. 궁둥이가 거 터져서 그것도 모르고 자꾸 갖다 가고. 이거  주님이 원하십니다. 녜. 이 십자가의 도 아닙니까?  우리가 뭐 할 대로 다 하고 남는 것 가지고서 찌끄러기 가지고서 주님에게  바치는 이거 하지 맙시다. 수지는 다른데 다 쓰고 찌끄러기만 주님에게 바치는  그거 주님앞에 죄송한 일입니다. 이제 요번 주일은 기도하고 자꾸 기도 많이해.

기도 하고 또 심방도 하고 이래서 어떻게든지 이번에는 만 명 올려야 됩니다. 저  지난 주일같이 올라가면 내일 주일에는 만 명이 됩니다.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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