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의 기능구원


선지자선교회 1985, 2. 9. 새벽

 

본문 : 에베소서 2장 1절-22절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우리는 구원을 두 가지 구원을 받은 자요 두 가지 구원으로 살고 있는  자들입니다. 구원 하나는 기본구원이요, 하나는 건설구원, 건설구원이라 말은  성화구원이라고도 하고 행위구원이라고도 성경에 말을 했습니다. 행한 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신 그 말씀은 행위구원이라는 그 표시. 발표요, 또 집 짓는  비유 그런 것은 다 건설구원이라는 발표요, 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간다  하는 것은 다 성화구원을 발표한 발표인 것입니다. 기본구원은 우리가  주관적으로 알고 난 뒤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우리가 알기 전에 기본구원은  이루어진 것입니다. 기본구원은 우리는 상관 없이 순전히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본구원을 만드셔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기본구원은 그 구원이 어떤 구원인고 하니 우리의 죽은 영을 살린 구원입니다.

죽은 영을 살려 가지고 살아난 영을, 통하여 우리의 육을 구원하는 그 역사를  이루는 것이 건설구원입니다. 기본구원은 영을 살린 것과 산 영을 통해서 이  심신. 마음과 몸으로 된 이 육의 구원을 이루는 그 능력을 가진 것이  기본구원입니다. 건설구원은 이 기본 구원을 받은 자가 기본구원을 힘입어서,  기본구원의 그 능력을 힘입어 가지고 이 심신 구원인 건설구원을 이루어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영은 살아났으나 이 심신은 살아나지를 못했고 영이 살아난 뒤에,  살아난 영이 세 가지로 그 영이 살아났습니다. 살아난 영은 주님의 피공로와  성령의 능력과 진리로 죽은 영이 살아났습니다. 이 세 가지로 살아난 영은,  우리 영 말이오. 영은 이 세 가지 능력을 힘입어 가지고, 이 세 가지 능력을  힘입어 가지고 우리의 마음을 살리고 우리의 몸을 살리는 이 역사를 합니다.

 영은 단번에 살아났지마는 우리 심신이라 하는 것은 단번에 살아나지를 못하고  서서히 그렇게 중복적으로 살아납니다. 왜 그런고 하니, 영은 하나로 되어 있는  단일체요 단일성입니다. 그 성품도 하나요 또 몸도 하나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죽을 때도 단번에 죽었고 또 살아날 때도 단번에 살아납니다. 그러그 이 심신은  단일성의 것이 아니고 종합성입니다. 여러 가지 성품을 뭉쳐서 마치 진흙  덩어리와 같이. 보기에는 한 덩어리지마는서도 그 진흙은 수많은 먼지 같은  것이 모여 가지고 진흙 덩어리가 된 것처럼 우리 마음은 수많은 종류의  요소들이 뚤뚤 뭉쳐 가지고 마음이 됐고 또 우리의 몸도 수많은 먼지 같은  요소들이 뭉쳐 가지고 우리의 몸이 됐습니다. 그래서, 요새는 몸에 한 몸에  여러 세포가 있다 이래서 뭐 손가락 하나만 해도 그 세포가 여러 수만이 된다  그렇게들 다 모두 인제 발견을 해 가지고 말들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중생된 영이 이 세 가지 능력을 입어 가지고, 세 가지 능력을  입어서 영이 우리의 심신을 구원하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이 심신을 구원하는 구원을 몇 가지가 구원을 하고 있느냐?  우리 심신을 몇 가지가 구원을 하고 있느냐? 한번 손가락으로 한번 이렇게  표시해 보이소. 우리 마음과 몸과, 심신으로 되어 있는 이 육을 구원하는 데에  몇 가지가 들어서 구원하는 역사를 하고 있는지 한번 손가락으로 한번 가리켜  보이소. 셋, 넷. 셋으로 가리킨 사람도 있고 넷으로 가리킨 사람도 있고  그라는데, 셋으로 가리킨 사람만 한번 손을 들어 보시이소. 셋으로 가리킨  사람만. 녜. 또 넷으로 가리킨 사람만. 몇 사람 없네요? 넷이 살리는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넷이. 처음에는 넷이라고 들었다가 나중에는 또 셋으로 드네요.

내이 살리는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무엇인고 하니 주님의 십자가의 대속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퍼, 그걸,  대속을 가리켜서 한 말로 피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피, 또 성령, 또 진리, 또  살아난 우리의 영 이렇게 넷이 합작을 해 가지고 우리외 이 심신을 구원하는  역사를 합니다.

 그러면 심신을 구원하는 이 역사를 하는데. 이 심신 구원하는 역사를 할 때에  이 네 가지 능력이 합해 가지고 우리 심신을 구원하는 역사를 하는데 역사하는  그 방편이 무엇입니까? 역사하는 방편이 무엇이지요? 역사하는 방편이  무엇입니까? 역사하는 방편은 신구약 성경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계약입니다.

계약이요 다른 말로 하면은 하나님의 율법이요 또 다른 말로 하면은 진리요 또  다른 말로 말하면 하나님의 뜻이라. 꼭 같은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진리요  진리가 곧 하나님의 율법이요 하나님의 율법이 곧 신구약 성경 말씀이라. 그.

말씀을 요런 면으로 말하면 요렇게 말하고 요런 면으로 말하면 율법이라고 하고  요런 면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고 요런 면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진리라고 이렇게 말을 표시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넷이 우리의 심신을 구원합니다. 그러기에. 이 넷 중에 하나도  빠지면 안 됩니다. 또 이 넷은, 넷 중에 셋은 같이 하고 하나는 빠지는 이런  수가 있느냐? 그런 일이 없습니다. 이 넷은 각각 딴 존재입니다. 예수님의 피도  대속한 피도 딴 존재요 또 성령도 딴 존재요 진리도 딴 존재요 우리의 살아난  영도 딴 존재요. 이 네 존재는 각각 딴것이지마는서도 영원히 서로 따로 나뉠수  없는 하나 된 것이 이것이 기본구원입니다. 그러기에 나누어지지를 못합니다.

나누어지지 못하도록 하나가 된 것이 이것이 중생된 영입니다.

 그런고로 우리의 영은 영 혼자 무엇을 하지 못합니다. 또 하나님은 혼자 하실  수가 있느냐? 하나님도 혼자 못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 말하기를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의 심신이 하나님의 자녀가 됐으니까 하나님의 자녀로  살라고 자꾸 이렇게 권면을 하게 됩니다.

 이 성령과 진리가 우리에게 오게 된 것은 먼저 예수님의 피공로로 인해서 오지  예수님의 피공로가 아니면 성령은 우리에게 오지 못합니다. 진리도 우리에게  오지를 못합니다. 또 피공로가 아니면 우리의 영을 살릴 수 없습니다. 우리의  영을 살릴 수 있도록 모든 기초 작업을 다 해놓은 것이 주님의 십자가의 보배피  공로요, 또 기초 작업을 해 놓은 후에 영을 살릴 수 있도록 예수님의 대속의  피로 우리 영을 살릴 수 있는 모든 만반의 준비를 다 갖추어서 하나님의  지성법과 지공법에도 다 해결을 지워 놨습니다. 왜? 우리의 영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이 있으니까 그 문제도 해결을 지워야 하겠고, 또 하나님에게  피동되어서, 하나님에게 완전 피동되는 그 일도 해결 지워놔야 하고, 또  하나님과 원수된 것을 하나로 만 드는 요 화합. 요 결합 요것도 완전히 이루어  놓은 다음에라야 그 사람에게 성령이 갈 수 있고 진리가 갈 수 있지 그래 안  하면 성령이 가면 죽입니다. 진리가 가도 죽입니다. 이 진리는 하나님의 법이기  때문에 소멸하는 불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죄가 있는 데는 가면은 태워  버립니다. 또 하나님께 피동되지 않는 거는 다 태워 버립니다. 또 하나님과  결합되지 않는 거는 태워 버립니다. 그러면, 태우는데, 지금은,  그러기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이 성령과 진리가  가지를 못합니다. 왜 가지 못하는고 하니, 갈 권리가 없어서 가지 못하는 게  아니고 갈 권리는 가졌지마는서도 가면 죽여 버리기 때문에 지금 피하고  있습니다. 피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피하고 계시느냐? 그저 불택자로 말하면  그대로 제가 잘못해 가지고셔 죽는, 영은 단번에 죽었지마는서도 이 심신이라는  것은 단번에 죽지 안하고 나무를 베어 놓으면 베었으면 죽은 나무이지마는서도  그 나무가 아직까지도 진액도 있고 청청한 그 생기가 있으나 베어 놨으니까  시간 문제지 죽기는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마찬가지로 심신은 이미 이  생명에서 끊겨져서 죽기는 죽어 있지마는서도 그것이 죽는 시일이 걸립니다.

그러면 시일이 걸리는데, 나무도 베어 놓으면 그 나무가 그만 하루만 아주 그만  잎사귀가 말라 가지고서 죽는 거 있고 어떤 나무는 베어 놔도 안 죽습니다. 안  죽고 삼 년까지 사는 그런 나무도 있습니다.

 이거 모양으로 생명에서 끊겨졌지마는 어떤 심신은 칠십도 살고 팔십도 살고  요새도 백 이십 세도 살고 또 어떤 심신은 그만 나와 가지고서 고만 죽고 어떤  심신은 그것이 잉태돼 가지고 배 밖에 나와 보지도 못하고 죽는 그런 것도  있습니다. 그거는 각각 그 성질에 따라서 빨리 죽고 늦게 죽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나무도 오동나무라는 나무 있는데 그 오동나무는 말이 그런 말이  있습니다. 오동나무가 말하기를 '아무리 독한 놈의집에 가도 삼 년이야 못  살아?' 한다고 말합니다. 오동나무는 그래 베어 가지고서 저 어데 쳐박아  내버려둬도 삼 년까지는 그게 살아있다 그말입니다. 아주 그거는 오래 갑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심신이라는 것은 이것은 영이 죽었으니까 뿌리 끊긴  나무와 마찬가지로 죽기는 죽어 있는 것인데 그거 다 죽는 것이 시간이 걸려서,  그러면, 하루 살았으면 그만치 더 죽었고 또 일 년 살았으면 그만치 더 죽어서  어떤 사람은 팔구십, 칠팔십 오륙십 삼사십 요래서 사는 동안에 다 죽어 버리는  사람 있습니다. 저는 올해 일흔 여섯인데, 칠십 육 년을 지금 육으로 말하면  죽었는데, 이 육이 죽기 전에, 죽는 것이, 죽을 것이, 죽지 안할 것으로서  변화된 것도 있고, 죽지 안할 것으로 변화된 것도 있고 죽은 것이 죽은 것도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칠십 육 년을 사는 가운데에서 죽지 안할 것으로  변화된 것은 얼마나 변화가 됐으며 또 죽을 것으로 아주 죽어 버린 것은 얼마나  됐느냐? 이 젊음이 다 없어지기는 없어졌는뎨 없어진 그것이 영생하는 것으로  그렇게 변화된 것도 있고 아주 죽은 것도 있고 그렇게 다릅니다.

 이래서 이것이 다 죽으면 그때에 성령이 오고 진리가 옵니다. 죽고 난 다음에  성령이 오고 진리가 오고 다 죽기 전에는 성령과 진리가 불택자들에게 오지를  않습니다. 그것이 제대로, 죄와 허물로 죽었으니까 죽은 그것이, 에덴 동산에서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정죄받은 그 원죄와 자기 중심이라는 '원죄와  또 자기 중심의 행위, 그것을 가리켜 본죄라 말합니다. 그러면, 이 죄와 허물로  죽은 이 심신이 이것이 차차 차차, 원죄는 하나이지마는서도 본죄는  여러가지입니다. 원죄로 사망의 정죄를 받았고 원죄로 하나님과 끊겨져서  죽었고, 원죄로 죽은 그것이, 죽어 있는 그것이 하나씩 둘씩 차차 차차 이렇게  모든 종합체이기 때문에 죽는 것은 뭘로 죽느냐 하면은 본죄로 죽습니다.

본죄라는 것은 자기가 범한 죄를 가리켜서 본죄라 말합니다. 이 본죄로 이렇게  죽는데, 이래서, 그 사람이 다 자기 행위로 다 죽으면 그때에 진리와 성령이  옵니다.

 진리와 성령이 왜 그전애는 오지 안했느냐? 그전에는 오지 안한 것은 그전에  오면은 고만 재대로 죽는 것이 제대로 죽기 전에 성령과 진리 오면은 죽여  버리기 때문에, 소멸하는 불이라서 그만 죽여 버립니다. 죽여 버리니까, 제대로  죽도록 내버려 두지 안하고 죽여 버리니까 그 진리와 성령이 그짓을 안 할라고  오지 아니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라다가 죽으면 이제 옵니다. 죽으면 진리와  성령이 그 사람에게 오면은 뭣 하러 오느냐? 오면은 그때에 이제 심판의  성령으로 오고 심판의 진리로옵니다. 심판의 진리, 심판의 성령으로 와  가지고서 그를 심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불택자에게 그렇고, 우리 택자에게는 이 피와 성령과 진리와 또  우리의 중생된 영이 넷이 들어서, 넷이 들어서 우리의 심신을 살립니다.

살리는데 우리의 심신이 살아난 것도 있고, 이것이 살아난 것도 있고, 영완허  죽지 안할 것으로 살아난 것도 있고 이것이 영원히 영생할 것으로 살아나지  못하고 이것이 지금 죽을 것으로 되어 있는 거 있습니다. 우리의 심신의  마음이나 몸의 이 수많은 분자, 수많은 요소, 수많은 이 종합체의 그 모든 것이  영생할 것으로 이렇게 성화되고 변화된 거 있고 영생으로 변화되지 못한 이것은  이것이 어떤 것으로 되어 있느냐 하면은 이것이 죽을 것으로 되어 있는데 죽지  안했습니다. 아직까지. 죽을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이 죽지 안했습니다.

불택자들은 죽을 것으로 돼 있는 것이 죽지 안했고, 또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자는 어떤 것이냐? 이것이 죽을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이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살아날 것으로돼 있습니다.

 그러면, 불택자의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에 있는, 살아 있는 그때의 심신은  볼택자의 심신은 어떤 심신으로 되어 있습니까? 불택자의 심신은 죽을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죽을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또 택자들의 심신은 어떤 것으로  되어 있느냐? 택자들의 심신은 죽지 아니할 것으로 돼 있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입었기 때문에, 법적 대속을 입었기 때문에 죽지 않을 것으로 되어  있는데, 요것이 현실이라는 고 현실을 만나 가지고 불택자들은 죽을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이 현실을 만나서 죽습니다. 현실을 만나 죽으니까 고만치 수명이  짧아지고 고만치 죽습니다. 만일 십 년 살았으면 그만치, 늙었다는 것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늙었다는 것이 죽었다는 것인데, 그렇게 돼지고, 요 택자들로 말하면 남은 요  심신이, 남은 심신이 요것이 죽을 것으로 남아 있는 것입니까 영생 할 것으로  남아 있는 것입니까? 영생할 것으로 남아 있습니다. 영생할 것으로 남아  있는데, 영생할 것으로서 지금 남아 있으나 영생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영생할  것으로 남아 있는데, 예수님의 대속을 입어서 이것이 영생할 것으로 돼 있는데  영생할 것으로 되어 있는 이것이 영생할수도 있고 영생할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이 영생을 못 하고 영원히 죽는 것도 있습니다. 영원히 죽는 것을 가리켜서  성경에 둘째 사망의 해를 받는다 그랬습니다. 이제 둘깨 사망의 해를 받는데,  이것이 죽지 안하고 영생하는 것으로서 이와 같이 완전히 그 현실을 통해서  영생하는 것이 돼 버립니다. 마치 안믿는 사람들이 죽어 버리는 거. 늙어  버리는 거, 죽어 버리는 거 모양으로 영생할 것으로서 성화돼 버립니다.

 그래서 우리의 이 심신이 현실 현실을 통해 가지고서 영생할 것으로서, 완전히  영생할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이, 영생할 것으로 남아 있는 것이 영생이 되느냐,  영생할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이 영생을 하지 못하고 죽느냐 하 는뎨 그 죽은 그  죽음을 가리켜서 무슨 죽음이라고 말했습니까? 무슨 죽음이라 했습니까? 예?  둘째 죽음, 둘째 죽음. 둘째 죽음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이랬는데 우리의 심신을 살릴려고 넷이 옵니다. 넷이 와 가지고서 지금 영은  벌써 와서 살려 놨습니다. 살려 놨는데, 이 우리의 중생된 영은 그 영이 몇  가지와 연결돼 가지고 있습니까? 몇 가지 연결돼 가지고 있습니까? 세 가지와  연결 돼 가지고 있습니다. 피, 성령, 진리' 이 셋과 우리의 영이 연결이 됐는데  이 연결이 이것이 끊어겼다가 연결됐다가 이렇게 변동되는 연결이 되어 있느냐  하면은 변동되는 연결이 돼 있지 안하고 영원 불변의 연결이 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우리 영이 중생된 것은 영생할 생명으로 중생됐다  그 말은, 생명이라는 것은 뭘 생명이라 하느냐 하면은 하나님과 이렇게 연결된  것을 가리켜서 생명이라 이랍니다. 그러면, 영생될 생명으로 살아났다 그 말은  하나님과 영원히 끊어질 수 없는 연결로 연결이 됐다, 그러면, 우리의 영은  주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로 영원히 끊어질 수 없는 그 연결이 된 것이 우리의  영입니다.

 영인데, 이제 이 네 세력이. 네 세력이 우리의 몸을 살릴려고 옵니다. 우리  몸을 살릴려고 오는데, 우리 몸을, 우리의 이 심신을 영생할 몸으로 영생 할  심신으로 살릴라고 오는데, 몸을 살리러 왔다 말은 몸의 기능을 살리러 왔다  그말이오. 몸의 기능을 살리러 왔다.

 이 몸은 다 이것이 부활합니다. 이것이 기본구원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몸은  다 부활하지마는서도 부활해도 기능 없는 부활로 부활하는 사람이 있고 기능이  구비한 사람의 부활로 부활하는 사람이 있고 다 같이 사람은 사람이지마는서도  그 사람의 기능에 따라서. 이 사람은 의학의 기능이 있다, 과학의 기능이 있다,  그 사람의 기능에 따라서 그 사람이 하루 동안에 받는 그 요금이 몇천만 원이  아니라 몇억만 원도 될 수 있습니다. 몇 억만 원도.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을  뭣이, 우리 나라에서라도 만일 한 무슨 원자나 원자탄이나 뭐 그런 거 하는  데에 이거는 참 아주 우리가 연구하다가 연구하다가 우리나라 사람으로서는  고걸 모르는데 고걸 하나 물어야 되겠는데, 고걸 하나 알아야 되겠는데 고거  하나 아는 기술자를 어떤 강대국에서 그 사람을 청해 가지고 한 마디만, 딱 한  시간만 요렇다고 가르쳐 주면 되겠는데 고 가르쳐 주도록 그 사람을 청할라  하면은 그 나라에다가서 또 허락을 받아야 되고, 그 나라의 허락을 받아 가지고  와야 되는 그러는 데는 고 한 시간 가르쳐 주는 데에 여러 수백억도 될 수가  있습니다. 수백억도 되고, 그리 안 하면 안 옵니다. 안 보냅니다. 이래 가지고  모두 다 국교들이 돼지는 것입니다. 그게 뭐이냐 하면 다 기능이라 말이으.

그러나, 이거는 하루 종일 일해도 한 그저 이삼백원 밖에 이삼백 원밖에는 못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거 뭐이냐 기능 차라 그말이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부활은 다 해서 하늘나라 가기는 가지마는서도 그  기능이 구비한 사람, 그 기능이 아주 없는 사람, 이러니까 부활은 했지만  기능이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렇지 안해요? 예를 들면 그 사람이 만일 머리도  없고 두뇌의 역할도 없고 몸의 역할도 없으면 그 사람을 가리켜서 노망한  노인이라 이래 말합니다. 노망한 노인이라. 그 머리로서도 아무 생각이  없으니까 노망한 노인이라, 이러니까, 밥은 먹고 이래 있지 마는 아무 쏠모  없고 짐만 돼 가지고 있다 그말이오. 그와 마찬가지로 부활은 하기는  하지마는서도 기능이 없는 부활 하니까 그 사람은 하늘나라 가서 아무 쓸모가  없어서 그저 하늘나라 가서도 짐이나 돼지지 아무 쓸모는 없는 그런 것으로서  부활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벗은 자들로 부활한다 그 말은 뭐이냐, 무슨  말이냐 하면은 기능을 많이 입고 부활하는 사람이 있고 그저 기능은 하나도  입지 못하고 부활하는 사람이 있다 그말입니다. 그러면, 벗은 자들로 나타나지  않기 위해서 힘을 쓴다 그렇게 말 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의 영도 이 세 가지를 힘입어서 살았는데. 우리의 심신을 지금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 심신을 구원할라고 이 넷이 들어서 역사를 합그다. 이  넷이 들어서 우리 몸을 구원할라고 애를 쓰는데, 이 넷이 말이오 넷시. 내 영,  또 진리, 또. 성령, 피. 넷이 와서 살릴라고 하는데,  제일 먼저 우리의 심신을 살릴라고 올 때에 제일 앞잡이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심신을 살릴라고 오는데, 이 넷이 오는데 넷이 같이 오지 안하고 이렇게  순서적으로 옵니다. 제일 앞잡이가 있습니다. 제일 먼저 오는 이가 있는데 제일  먼저 오는 이가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예? 제일 먼저 오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피입니다. ○○○목사님이 피라고 말했는데 맞습니다. 예수님의 피가  먼저 옵니다. 피가 안오면, 피가 와서, 피가 와서 우리의 심신을 예수님의 세  가지의 대속으로 이렇게 딱 대속을 입혀야 그. 다음에 우리의 영이 올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대속 하지 안 하면 우리의 영이 건너오지를 못합니다.

왜? 우리의 영이 이 세 가지로 살아났기 때문에 살아난 우리 영이 건너오지  못하고, 예수님의 피의 대속 이 와야 그 다음에 우리의 영이 오고 우리의 영이  오고 난 다음에 진리가 오고 진리가 오고 난 다음에 성령이 오고 이래 가지고서  우리의 이 심신을 살려 내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심신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이것은. 어제 아침에  말했는데 우리에게 법적으로 역사하는 것도 있고 또 우리의 이 심신을 실지로  살리기 위해 가지고서. 살리기 위해서, 실상으로 살리기 위해서 오는 그 영감을  가리켜서 역사적 영감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역사적 영감이라 역사적 진리라.

또 역사적 예수님의 대속이라. 그러기 때문에, 이 예수님의 대속이 오지 안하면  할 수 없어.

 그러면 예수님의 대속이 우리에게, 우리 심신에게 오는 데에는, 대속이 우리  심신에 오는 데에는 먼저 지식으로 오고 우리가 아는 걸로 지식으로 오고, 그  다음에는 실상으로 옵니다. 실상으로 와 가지고서, 지식으로 와 가지고는 암만  지식으로 와도 지식으로 와 가지고는 우리가 지식하는 거 가지고는 실상이  아니기 때문에 못 옵니다. 실상으로 와야 됩니다. 실상으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오고 난 다음이라야 그 뒤를 따라서 우리의 중생된 영과 진리와 성령이  따라 들어와 가지고서 우리를 살린다 그말이오.

 그런데, 그러면, 문을 두드리라 하는 것은 무슨 문을 가리켜 하는 것인 고  하니 우리 심신이 갇혀 있는 문을 말합니다. 우리의 심신을 가둬 가지고 있는  문, 우리의 심신을 가둬 가지고 있는 문인데 우리의 심신을 뭣이 가둬 가지고  있느냐? 우리 심신을 가둬 가지고 있는 것은 죄악이 가둬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문을 열어라 말은 죄악의 문을 열어라 말입니다. 이러니까, 그 안에  갇혀 가지고 있으니까 갇혀 가지고 죽는데 갇혀가지고 죽으면서 이 심신이 죽는  줄 모르고, 가둬 가지고. 이 악령과 악성 악습에게 미혹을 받아 가지고 이 죄악  속에 있으니까 그게 저거 사는 세계인 줄 알고 우리 심신은 말이지, 자기  주관대로 자기 욕심대로 자기 생각대로 자기 소원대로 자기 지식대로, 자기  자율 말이오, 자율대로 이렇게 사는것이 저 사는 것인 줄 알고서 그렇게 살고  오히려 진리와 성령과 주의 피의 공로를 자꾸 멀리 할라고 애를 쓴다 말이오.

고게 뭐이냐 하면. 마귀 요놈에게 꼬여서, 고것이 악령과 악성 악습으로  된옛사람인데 옛사람 고것이 자기인 줄 알고, 옛사람 요게 자기인 줄 알고 요놈  옛사람 요놈하고 악령 악성 악습하고 우리 마음하고 몸뚱이하고 철통같이  하나가 돼 가지고서 제라고 생각해 가지고서 요렇게 감쪽 같이 죽는 일 합니다.

 이러니까, 이제 여게서 옵니다. 와 가지고서 넷이 우리 심신을 살릴라고 문을  두드리는데, 문을 두드리는데 누가 제일 먼저 두드리는고 하니 예수님의  피공로가 두드립니다. 피공로, 피공로가 아니면 거기 들어갈 수가 없다. 성령은  그 안에 못 들어갑니다. 성령은, 성령은, 악령 악성 악습들이 이래 포위해  가지고서 우리의 심신을 죽이고 있는 그속에 성령은 못 들어 갑니다. 성령은 왜  못 들어가는고 하니 성령이 들어가면은 당장 그 사람의 심신이 그만, 불로 태워  버려서 그만, 소멸하는 불이라. 태워 버려 죽이기 때문에, 이거는 살릴라고  하다가 살리지도 못하고 도리어 죽여 버리니까, 진리가 들어가도 그만 죽인다  말이오. 진리와 성령은 불의를 두지 못하는 것이 진리와 성령이라. 불의를  소멸하는 것이 진리와 성령이오.

 그러기 때문에, 피가 아니면, 피가 아니고 진리가 먼저 들어가고 성령이 먼저  들어가면 이거 죽여 버리기 때문에 진리와 성령이 먼저 들어가지 못하고  예수님의 피공로가 제일 앞잡이가 돼 가지고 갑니다. 앞잡이가 돼 가지고  가면은 이 진리와 성령과 중생된 영이 이래 들어갔을 때에 피공로 가 들어가  가지고서 피공로를 영접하면, 피공로를 우리 심신이 영접하면, 사죄와 칭의  화친의 이 공로를 우리가 믿음으로 영접하면 이 성령이 죽일 권리가 없습니다.

진리가 죽일 권리가 없습니다. 왜? 죄를 죽이는데 사죄 공로를 입기 때문에  죽일 권리가 없고, 칭의 공로를 입고 있기 때문에 죽일 권리가 없고, 화친의  공로를 입고 있기 때문에 죽이지를 못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공로가 먼저  들어가서, 예수님의 공로가 떡 들어가 면은 우리 마음이 예수님의 대속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믿으면 벌써 이 악령이 왕노릇을 못 합니다.

왕노릇을 못 하고, 예수님의 대속을 믿어서, 예수님의 대속을 믿으면 사탄이 왕  노릇을 못 하고. 예수님의 대속을 입어서, 실상 예수님의 대속을 입고 예수님의  대속의 행위를 할 때에. 예수님의 대속의 행위를 할 때에 그때에 악령과 사망과  죄악과 모든 악습은 다 깨어지는 것이요 녹아지는 것입니다. 행할 때에.

 그러기 때문에, 악령은 마귀가 악령이요, 악성은 마귀가 좋아서 우리에게 이  부패성 원죄를 준 것인데 원죄가 악성입니다. 악성이라 말은 자기 중심의  인간성이라 그말이오. 그게 악성인데, 악습은 또 자기가 하나 둘 자꾸 자기  중심의 행동해서 모아 놓은 것을 가리켜서 악습이라 말이오. 악습인데, 이렇게  주님의 피공로가 실상으로 우리 속에 들어오게 되면 이 악령과 악성과  악습이라는 것이 이것이 녹아지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악령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뭘 제일 무서워하고 있느냐?  악령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예수님의 피공로를 제일 무서워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피공로가 아니면 그를 멸할 재주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피공로가 없는  사람은 악령과 악성과 악습이, 불택자들은 지금, 우리가 택자라도 중생되기  전에는 악령과 악성과 악습이 딱 붙들고 있습니다. 붙들고 있을 때 그때에  성령이 들어 갈 수 있습니까? 성령이거게 가서 들어 갈 수 있습니까? 못  들어갑니다. 왜 못 들어가느냐? 못 들어가는 것은 이 악령과 악성과 악습이,  이걸 뭉쳐서 말하면 죄인데 죄가 들어서 방어를 합니다. 성령은 하나님  아닙니까? 하나님이 들어갈려고 하면은 못 들어온다 합니다. '왜 못  들어오느냐? 내가 하나님인데 왜 못 들어오느냐?' '이것은 내것인데, 내것인데  어떻게 점령해 가지고 강제를 할 수 있습니까? 법적으로 아니고 이래 강제를 할  수 있습니까?' 꼼짝 못 합니다. 성령이 못 들어갑니다. 성령이 못 들어가는데  이제 들어갈 때에는 심판으로 밖에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싶판자로밖에는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수명이 다 해서 끝이 나면은 심판의  하나님이 와 가지고서 그때에 심판합니다. 심판하면은 악령도 악성도 악습도 다  우리의 심신도 다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이 심신 구원에는 먼저 예수님의 피공로가 들어 와서,  이 공로가, 들어을 때에 이 공로를 우리가, 들어오기는 어떻게 들어 오느냐? 이  과로를 우리가 믿을 때에 들어옵니다. 믿을 때에 이 공로가 우리에게 들어오고.

또, 이 들어온 공로가 들어오기는 믿을 때에 들어오지 마는서도 이 공로가  능력있게 역사하는 거. 이 공로가 역사할 때는 어떻게 역사하느냐? 이 공로가  들어을 때에는 믿을 때 들어오고, 이 공로가 들어올 때에는 믿을 때 들어오고  이 공로가 역사할 때에는 우리가 실상으로 이 공로를 입고 있어야 이 공로가  실효를 나타 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역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공로를 우리가 마음으로 믿을 때에, 마음으로 믿을 때에 이 공로가 와  가지고서 구원이 우리에게 왔고 우리가 실상으로 행할 때에, 행할 때에 우리의  이 심신이 살아나고 원수는 소멸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의 이 세 가지 대속, 사죄와 칭의 화친의  이 대속을 우리가 믿는 것이 첫째 중요하고. 그 다음에는 이 대속을 실상으로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사. 실상으로 가질 때에 우리의 구원이 실상으로  이루어지고 우리가 마음으로 믿을 때에 그 구원이 우리에게 들어오게 되었고,  우리 구원이 됐지마는서도 실상이 안 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 이 말씀 하는 것은, 신명기 28장 1절에 보면은  '내가 오늘날 네게 영하는 이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하나님이라 했으니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됐는데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된  것은 그것은 어떻게 해서 하나님이 내 하나님 됐느냐?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에베소 2장 12절에 보면은 '그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소망이 없다 말은 이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소망은 하나도  없는 사람입니다.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피공로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 된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피공로로 말미암아 우리 하나님이 됐기 때문에 우리가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이루게 되고, 구원을 얻게 되고. 또 우리가 실상으로  입고 있으면 의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 세 가지 과로를  실상으로 입을 때에 우리에게 역사가 그때부터 시작하고. 또 우리 마음으로  믿을 때에 이 역사가 우리 속에 들어오게 되고 마음으로 안 믿으면 못  들어옵니다. 마음으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세 가지 대속의 공로를 믿을  때에 이 믿음을 통해서 쭉 따라 들어오는데, 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믿을  때에, 우리의 마음이 믿을 때에 쭉 따라 들 오는데 몇 가지가 따라 들어옵니까?  손가락으로. 예, 아니 세 가지. 세 가지가 따라 들어오지. 예수님의 공로가  들어을 때에 예수님의 공로를 타고 들어오는 것이 중생된 영, 진리, 성령이  따라 들어오지요. 따라 들어와 가지고서, 들어오는데, 들어오지마는서도,  들어오지마는 내가 그때에 들어왔던 이 넷을 쫓가내는 수가 있습니다. 이 넷을  쫓가내지 안하면 우리 속에 와 가지고 큰 능력으로 역사합니다. 그러나 내가  쫓가내면 안 됩니다.

 그러면, 이 네 가지를 쫓가 내는 수도 있고 또 내가 쫓가내지 안하고 있으면은  이 네 가지 능력이 우리에게 사는 역사를 하는데, 네 가지를 쫓가내는 것은  어떤 것이 쫓가내는 건고 하니, 요 네 가지를 쫓가내. 어제 아침에 쫓가냈다는  말 많이 했지요. 쫓가내는 것은 어떻게 쫓가내느냐? 자, 이 네 가지 이제, 피,  또 중생된 영, 또 진리, 성령이 넷이 들어왔는 데 넷을 쫓가내는 그 방편이  뭐인지? 우리가 쫓가낸 줄 알아야 되기 때문에 네 가지를 쫓가내는 방편이 뭣이  네 가지를 쫓가내는 방편입니까? 어떻게 하면 이 네 가지가 다 쫓겨나갑니까?  요거 잘 들어 알아야 돼. 네 가지가 쫓겨나는 것은 뭣을 하나를 없애 버리면 세  가지 쫓겨나갑니까?  예수님의 피를 없애면 쫓겨 나갑니다. 예수님의 피를 없애면 쫓겨나갑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피를 없애는 것이 뭐이냐 하면은 사죄를 벗어 버리는 것이요,  칭의를 벗어 버리는 것이요, 화친을 벗어 버리는 건데. 사죄와 칭의를 입는  것은 뭐인고?, 그것은 믿을 때에 들어와서 입었습니다. 또 벗는 것은 뭐인가?  벗는 것은, 우리가 이 사죄와 칭의와 화친을 벗는 것은, 벗는 거 어떤 것이  벗는 것인고 하니 사죄를 벗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길 때에, 어길 때에,  사죄가 벗어져 버립니다. 사죄가 쫓겨 나갑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어기면  사죄가 쫓겨나고, 또 자기가 자기대로 자기가 능동자가 돼 가지고 어떤  피조물에게든지 이 피조물에게 피동이 되면 칭의가 쫓겨나갑니다. 칭의의  공로를 내가 벗어 버리는 것이라. 내가 부인하는 것이라. 벗어 쫓겨 나갑니다.

하나님과 연결이 안 되고 다른 뭐 인간과 연결이 되든지 돈과 연결이 되든지  어떤 거하고든지 연결이 되어 지면 또 화친이 쫓겨 나가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 가지 공로를 믿어서, 나는 이 사죄와 칭의와  화친을 주님이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서 나를 대속했기 때문에 나는 사죄의  것이라, 칭의의 것이라, 화친의 것이라, 나는 사죄의 종이라, 칭의의 종이라,  화친의 종이라, 나는 사죄와 칭의와 화친을, 화친을 내가 모시고 있는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집이라. 화친의 집이라. 성전이라. 또 내가 사좌와 칭의와  화친의 지체라.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몸이라.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일군이라.

제사장이라 선지자라. 이렇게 되는 것인데,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의, 이제 마지막 결론으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실상으로 입고 있으면 실상 구원이 이루어지고 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실상으로는 입지 안하고 말로 입고 있으면 말로 되어지고 자식으로 입고 있으면  지식으로 되어져 있지, 지식이 '여게서 밥이 있으니까 이 밥을 먹으면  배부르다.' 지식으로 '밥 먹으면 배부르다' 또 밥을 먹었다 해도 지식으로 먹고  자기가 실상으로 먹지 안하면 배가 부르지 않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2장에  말씀했는데,  이러기 때문에, 실상의 대속을 내가 입고 있으면 그 대속이 실상으로 와서  역사할 수가 있고, 내가 이 실상의 대속을 마음으로 믿고 실상으로는 벗어  버리고, 마음으로 믿으니까 믿음이 쑥 들어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을 '나를 위해서 대형 대행 대화친 한 것을 내가 믿습니다.' 하면은 이 세  가지 대속의 공로가 뛰어 들어옵니다. 그만 믿으면 즉시 들어옵니다. 뭐  들어올라고 애를 쓰고 우리 구원하기가 지금 하나님이 사람 되기까지 오셔  가지고 구원할려고 애를 쓰기 때문에 믿으면 즉시 들어옵니다. 믿으면 즉시  들어와 가지고서 일할라 하니까, 일할라 하니까 대속의 공로를 획 그만  쫓가내트립니다. 이 대속의 공로가, 믿으면 썩 들어와 가지고서, 들어오면, 그  대속의 공로가 무슨 공로냐 하면 전지 전능의 창조주 조물주 대주재의  능력이니까 들어오면 모든 것 다 안 됩니까? 들어오면, '나는 너로 더불어  먹는다' 말은 나는 너로 더불어서 네게 대한 하나님의 사명을 다 하게 된다. 또  '나는 너로 더불어 먹는다.' 하나님 사명을 내가 너를 통해서 다 하게 된다.

'너는 나로 더불어 먹는다.' 너는 나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네게 맡긴 사명을 다  하게 된다 그말입니다.

 이러니까, 믿을 때에 대속의 공로가 들어왔는데 그 대속의 공로 들어온 것을  쫓가내지만 안하고 있으면 됐습니다. 안 쫓가내면 그 능력이 지극히 큰 역사를  할 수 있습니다. 쫓가내는 것은 그 대속의 공로를 벗을 때에 쫓가내는데, 벗는  것은 어떻게 벗는 거냐 하면은 실상으로, 사죄를 벗는 것은 어떻게 하면 사죄를  벗는 것입니까? 사죄를 벗는 것은 어떻게 하면 사죄가 벗어집니까? 사죄는  신구약 성경 말씀입니다. 말씀에 관한 것입니다. 말씀을 자기가 어길 때에 그  사죄는 쫓겨 나가야 됩니다. 어길 때에 사죄는 나가기 때문에 그 사죄는 내게  사죄의 역사를 하지를 못합니다. 못하고, 또 칭의를 내가 쫓가내는 것은 어떻게  하면 쫓가냅니까? 칭의를 쫓가내는 것은 하나님 외에, 주님 외에 다른 것들에게  피동 되는 것, 돈에게 피동 되든지 왕에게 피동 되든지 장관에게 피동 되든지  상관에게, 피동 되든지 사장에게 피동 되든지 아내에게 피동 되든지 남편에게  피동 되든지 자녀에게 피동 되든지 제 욕심 제게 피동이 되든지 어쨌든지  하나님에게 피둥이 안 된다른 것에게 피동이 될 때에 칭의는 쫓겨 나가게  됩니다.

 그러기에, 믿으니까 들어왔지마는서도 실상 배척을 하니까 쫓겨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본인이, 우리에게 자유성을 줬는데, 자유성, '아, 나는 여게 지금  피동되고 싶습니다.' 하고 여게 피동이 되는데 예수님의 칭의가 이렇게 강제로  안 나가고 있을 수 없습니다. 강제로 안 나가고 있으면은, 왜? 자유성을 줬는데  이 자유가 돈에게 피동되고저 하는데, 하나님께는 피동되기가 싫다 하는데  하나님께 피동됐다고 떡 가지고 있는 그거는 아주 불법이요 그거는 우리  자유성을 죽이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빨리 쫓겨 나가야 됩니다. 안 쫓겨  나가면, 안 쫓겨 나가고 있으면은 뭘로었지요? 안 쫓겨 나가면 무슨 영감과  진리로 있지요? 지금 못 알아 들어, 왜 같이 듣는데 ○○○목사님은 다 알아서  아는 데 몰라. 여러분들이 진리를 몰라. 이거 모르면 안 돼. 그저 아무나따나  둥둥둥 이렇게 떠드는 거 가지고 안 돼요. 하나님의 나라는 이치의 나라입니다.

요 법과 이치에 딱 들어맞아야 되지 맞지 안하면은 심판받습니다. 딱 들어  맞아야 돼요.

 그러기 때문에 다른 것에게 피동이 되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지 안 할  때에는, 어기지 안할 때에는 사죄를 입고 있는 것입니다. 어기지 안하면은  사죄를 다른 것으로서 쫓가내지 못합니다. 사죄는 와가지고서 능력으로  우리에게 역사합니다. 또 하나님에게만 피동되면 역사하는데 하나님께 피동되지  안하고 다른 것들에게 피동되면은 이제 칭의의 이 공로는 법적으로는 되어  있지만 이 공로는 역사적으로는 역사할 수가 없어 쫓겨나가요. 일단 쫓겨  나가야됩니다. 믿을 때 들어오고 또 반대할 때에 쫓겨 나갑니다. 이 화친의  공로는 우리에게 믿을 때에 들어와 가지고서 이 공로가 우리에게 머물러 있는  것은 어떻게 머무느냐? 하나님과 떨어지지 안하고, 하나님과 요 결합이 돼  가지고 떨어지지 안하고 있을 때에는 이 공로가 역사하지마는서도 하나님과  결합이 떨어지면 그만 이 공로는 다시 쫓겨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결합이 된다는 것은 예를 들면은, 하나님의 속성, 지식이 하나님의 지식과 나와  연결되어 있고, 내 지식이 하나님의 지식과 연결되지 안하고 내 지식은 내  지식대로 하나님의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대로 지식이 떨어져 버 리면 그만 금이  가는 것입니다. 또 지혜가 떨어지면 금이 가고 선이 떨어지면 금이 가고,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멀어지면 금이 가고, 또 진실이 떨어지면. 거룩이  떨어지면. 의가 떨어지면 이 모두가 다 주권들이 떨어지면 떨어지면 자꾸 금이  가서 쫙 갈라져 버린다 말이지요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과 내가 지식이 같고 마음이 같고 소원이 같고 생각이  같고 성품이 같고 하나님과 나와 하나 되는 거. 하나 되어서 이 결합이, 하나  된 이 결합이 끊지지 안할 때에 이 세 가지 능력, 피와 성령과 진리의 능력이  내 영을 통해 가지고서 내 육체에 일하기 때문에 그것은 전능이라.

 그럴 때에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다.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다.' 다시  말하면,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날 게 아니라 우주 모든 피조물 위에  뛰어난다, 우주 모든 피조물 위에만 뛰어날 게 아니라 영계와 물질계의 모든  피조물 위에 뛰어난다. 여게 뛰어나서 하나님, 고다음에 모든 피조물, 피조물  위 하나님과 고 사이 위치 요 교회의 위치가 지위가 여기인 태 정상적인 지위  고 지위를 점령하게 된다. 하나씩 둘씩 점령하게 된다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 증거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 됐는데, 그러면, 이 하나님 된 것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하나님 됐는데 대속의 공로를 내가 입고 있어야 성령도 와서 역사할  수가 있고 진리도 역사할 수가 있지 대속의 공로를 벗으면은 진리와 성령이  우리에게 와서 역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대속의 공로를 마음으로 믿고 있으면 이 대속의 공로는 들어왔기는  들어왔고, 내가 실상으로 이 대속의 공로를 입은 생활을 하면은 입은 생활을  통하여서 역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범죄하지 안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지 안하는 거기에서 역사할 수 있고, 또 주님에게 피동될 때에 고 피동되는  고 피동을 통해서 역사할 수 있고, 하나님과 결합된 고 결합을 통해서 역사할  때, 떨어지면 역사할 수가 없다 말이오. 전선이 이래 붙어 가지고 있으니까  불이 환하이 밝았는데 이게 떨어져 가지고서 어떻게 전기의 역사를 할 수가  있습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지식으로 믿는 거, 지식으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거 있고 마음으로 믿는 거 있고 실상으로 믿는 게 있으니까  실상으로 믿는 것은 어떤 것이냐? 실상으로 사죄를 자기가 가지고 있고 입고  있고. 칭의를 입고 화친을 입고 있는 것은 실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지  안하고 있는 것이요, 하나님에게 피동되어 있는 것이요, 하나님과 결합되어  있는 것이니까, 요게 실상이 돼져야 실상의 역사는 이루어지고 실상 안 되면  나가 버립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데 교회에 말하기를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네가  죽었다' 그렇게 말해요. 살았다는 이름은 있다 그 말은 뭐이냐 하면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고만 있지, 입고만 있지, 자기가 그저 입고 있으면  '믿습니다.' 했는데 '믿습니다.' 하니까 이 공로가 쑥 들어왔다 말이지요.

 예를 들면은 여게 햇빛이 강하게 비어 있는데, 태양이 비취어 있는데 여게  포장이 씌워 있다 말이지요. 있으니까. 이렇게 이것이 딱 가리워지니까 그만  깜깜해져서 이 햇빛이 소용이 없어. 사진기에 이 앞에 뭐 가리는 거 있지  않습니까? 이래 가리워 가지고 있으니까, 가리워 가지고, 딱 막 이 가리워  가지고 있으니까 이 밖의 것이 아무 촬영이 안 되는데 고걸 딱 퍼뜩 해, 탈깍  해 딱 열면 이 안에 딱 박혀진다 말이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빛이 우리 속에 들어차 가지고 역사할라 해도 딱  가리워 있으니까 역사 안 하다가 믿으면 쑥 들어왔다 말이오. 믿으면 쑥 들어와  가지고서 그 다음에 배척하지 안하는, 고 배척하지 안할 때에, 쑥 들어와  가지고 들어온 그 현실인데 현실에 썩 들어왔는데 그 현실에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지 안해서 사죄를 입은 행동, 또 칭의의 행동, 또 하나님과 한덩어리 된  행동 요 행동을 통해서. 요 세 가지를 통해 가지고서 우리에게 구원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행함이 없는 믿음은 홀로 있어 죽은 것이니라'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네가 아무리 사죄 공로를 말하고 있지마는서도 현재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지 안한, 어기지 안해야 고게 행함이고, 또 하나님에게만 피동되는  고 피동이 행함이기 때문에, 또 하나님과 한덩어리 된 것이 행함이기 때문에 한  덩어리 된, 고 하나가 된, 하나가 된 고 하나 된 고것을 통해서, 하나님께  피동되는 고 피동을 통해서, 하나님 말씀을 어기지 안하는, 어기지 않는 고  어기지 않음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그만 어겨 버리면 헛일이라 그말이오.

그러면, 어겨 버리면 죽어 버려요. 이러기 때문에 사데 교회는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었다,  그러기 때문에 네가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살리기 위해서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생각하면 나온다 그말이오. 생각하면 나오는데,  생각하면 나오는 것은, 생각으로 믿든 거 아닙니까? 생각하면 나 오니까,  예수님의 대속과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온 거 있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이 우리에게 크고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온게 더  크다 그말이오. 예수님의 대속이 우리에게 크고 대속으로 말미암아 온 게  뭐입니까? 대속으로 말미암아 온 것이 성령도 대속으로 말미암았고 진리도  대속으로 말미암았고 우리에게 중생도 대속으로 말미암았고 모든 기본 구원이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왔다 말이오. 왔기 때문에, 이제  생각하면 된다 그 말은 생각하면 '아. 나는 대속을 받은 자라' 그라면 벌써  들어왔다 그거요.

 그런데, 할 일은 뭐이냐 하면 '지키라' '받은 것을 지키라' '지키라' 네가  사죄를 받았기 때문에 사죄 받은 것을 지키라 예수님이 대신해서 하나님 말씀  어긴 것을 다 당신이 대신해서 너는 하나님 말씀 어기지 안한 사람이 됐다.

하나님 말씀 어긴 것이 없는 사람이 됐다' 그게 사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어긴 것이 없는 사람이 됐다.' 어긴 것이 없는 사람이 됐는데 제가 어겨  버리니까 헛일이라 그말이오. 또 '하나님과 너는 연결된 사람이 됐다. 나는  공로 없지만 연결 시켜 놨다.' 연결된 사람이 됐는데 제가 하나님에게 피동되지  안하고 딴 데 피동돼 버리니까 예수님의 공로를 벗어 버렸다 말이오. 그러면  예수님의 공로는 자기에게 역사하지 못하고 벗어 버렸다 말이오. 또 하나님과  한덩어리를 만들어 놨는데, 한덩어리를 만들어 놨는데 제가 실상은 딴거 하고  한덩어리가 되니까 하나님과 한덩 어리된 것은 쫓겨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행함이 없는 믿음은 홀로 있어 죽은 것이니라.' 그러기에  '지키어 회개하라' 지키라 말은 지키면 되고, 회개하라 말은 과거에는 네가  이렇게 했지마는서도 이리 돌아서라 그말이오. 과거에는 이랬지만 이리  돌아서라. 과거에는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김이, 하나님 말씀 어김이 없는  자가 네가 됐는데 하나님 말씀을 다시 어겼으니까 고걸 회개해서 이제는 하나님  말씀 어김이 없는 자로 돌아서라. 또 네가 다른 것에게 피동되지 안하고  하나님께 피동된 자를, 피동되는 자를 만들어 주신 것이 칭의 만들어 준  것입니다. 이런데 다른 것에 피동됐으니까 고걸 회개하라. 딴 데 되동되지 말고  하나님께 피동이 되라. 또 다른 거와 한덩 어리 된 그것을 네가 회개해서  하나님과 한덩어리 되라.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결론으로, 하나님과 나와의 한덩어리  한덩어리 된 고 한덩어리에서만 우리 구원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고 피동에서만 구원이 이루어지고. 성경 말씀을 어기지 안하는 범위 내에서만  우리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지 다른 데는 실상의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행함이 없는 믿음은 홀로 있어 죽은 것이니라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어째 됐든지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지 안하면 헛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보면 고 실상의, 고 실상이 이루어지는  것은 멀고 구경만 해. 천리 만리 먼데 자꾸 이렇다 저렇다 이렇게 말로만 이래  이래 선포를 하는데 고대로 살라 하면 헛일이라 말이오. 그대로 살라 하면  헛일인데, 고 실상 어떻게 하면 구원이 이루어지는 고것은 구원이 이루어지는  데는 구원에 딱들어 맞혀야 되는데, 딱 닿아야 되는데 전기 모양으로 접선이 딱  돼야 되는데, '이럴 때는 이라면 산다. 동으로 가면 산다 서로 가면 산다' 자꾸  이라고 있지마는서도 동으로 간다 하면 동으로 어디로 가야 될란지, 요 우리  구원이라는 것은 여게 접선 되는 게 뭐이냐? 전기. 요 전구에는 뭐 전선이 암만  거기 많이 와도 소용이 없습니다. 암만 '전기가 들어갔다, 그 집에 전기가  들어갔다.' 암만 들어가야 소용없어. 전기 들어간 거, 전기 들어갔으니까  좋겠다 했지만 아니, 소용없어. 암만 들어와도. 여기 접선이 딱 돼야 돼. 접선  딱 돼, 접선이 딱 돼야 되기 때문에 접선된 요게 문제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처음에 모르는 사람은 상식이 문제이지마는서도 상식보다도  지금은 접선되는 고것을 우리가 알고 접선이 되면 살고 접선이 끊어지면  죽습니다. 그러면, 접선이냐 접선 아니냐 고것을 우리가 밝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암만 들어도, 똑똑하 알아서 잡아 놓으면, 똑똑히 그걸잡아 놓으면  좀 요동치 안하지마는 잡기 전에는 뭐인지 지금 모르니까, 자꾸 모르기 때문에  자꾸 지금 거듭 거듭 말하고 있는 것이오. 말하고 있는 게 내나 한 가지 말인데  요 면으로 요 각도로 또 말해 주고 또 못 알아 들으니까 조 각도로 말해 주고  자꾸 다각도로 이렇게 여러 다각도로 말해 준 거 내나 한 진리를 지금 알리기  위해서 다각도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딴 진리가 아니고. 그런데 암만 금방  가르쳐 놓고도 물어도 모르니까 그래 가지고 어째 됩니까?  그러니까 우리에게 지혜와 총명을 달라 하십시오. 말씀하시기를 야고 보서  1장에 '지혜가 부족하거든 후히 주고 꾸짖지 안하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구역에는 '반드시 주시리라' 했습니다. 우리가 그의 지혜와 총명을 구해야 되지  어두워지면 안 돼요. 자꾸 지혜와 총명이 어두워지면 안 돼요. 사람은 늙어도  지혜와 총명은 늙지 않습니다. 안 늙어요. 저는 이번에 아프고 난 다음에  지혜와 총명이 그전보다 훨씬 좀 밝아졌지 늙어 지지 안했어. 가만히 보니,  그래서, 모든 심리학자들이 '정신은 늙지 않는다' 그런 말 했는데 그걸  부인했는데 그건 실지로 늙지 안해요. 늙지 안 해. 내가 어제도 어떤  사람들에게, 젊은 사람을 말하기 때문에, 뻔히 가 보고 오니까 자꾸 보고  모른다 그거요. '아, 이거는 이런데 와 그러냐? 너 거 젊은 사람들이 와 그래  혼이 빠졌느냐?' 내가 그렇게 말했어. 몇 사람에게 말했어.

 이러니까, 우리가 지혜 총명을 달라 해야 돼요. 달라 해서 이 진리를 배유면  기억하고 다 알고 이래야 자기가 현 생활 당했을 때에 이거 진리에게 복종하지  내가 진리에게 복종될 때에 당신이 책임지지 당신에게 복종 안 할 때는 아무  상관이 없어.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진리를 제가 써먹는다 하지만 아니오. 진리는  써먹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진리를 모시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써먹는  거 아니라.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우리가 모시고. 이렇게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 베푸신 이 공로이기 때문에 이 공로를 우리가 모시고 이 공로를 모시고  이 공로를 떠나지 안하고 이 공로 슬하에 있으면 우리는 삽니다. 죽일 자가  없오.

 고 실상의 구원은 실상으로 대속의 공로를 입고 있어야 됩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실상으로 입고 있어야 성령과 진리가 우리에게 실상으로 와  가지고서 역사를 해서 변화를 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실상으로 안 입고 있으면  소용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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