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의 감염,염색

 

1985. 2. 20. 새벽

 

본문 : 사도행전 10장 44절-48절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니라 저희가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니라

 

 누구나 우리 사람들의 모든 언행 심사의 행동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유 무식 간에 말이나 행동이나 생각이나 뜻이나  모든 움직임이라는 움직임은 마음에서 나와서 그 마음대로, 마음을 가진 대로  움직여지는 것이 사람입니다.

 우리 마음은 근본은 아무 색깔이 없는 무색의 존재입니다. 색깔이 없는 아주  하얀 그런 백색 원단과 같이 이래. 베 쪼가리와 같이 그렇게 색깔이 없는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이 지으셨습니다. 지으셨는데. 마음이 물이 들어서 염색이  됩니다. 하나는 마귀로 염색되고 하나는 성령으로 염색되고 이렇게 두 가지로  염색이 될 수 있는데. 처음에는 무색이던 것을 배암이 들어와 가지고 배암으로  우리 마음을 염색 시켰습니다. 그래서 그때에 법적으로 염색이 됐습니다.

법적으로 염색이 됐는데,  그런면 사람이 한 사람 날라고 하면은 그 영과 육이 아울러서 돼야 사람인데,  육은 부정 모혈로 잉태될 때에 그때에 육은 생겨지기 시작해 가지고 그것이  차차 차차 자라서 사람의 육체가, 사람의 육체가 되지마는, 그러면 영도 부모의  영이 내나 부모의 육의 요소가 된 것처럼 그렇게 영도 부모의 것을 타고 나와서  된 것인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영도 하나님이 그 사람이 있을 때에 부모의  영을 타고 나와 되는 게 아니고 그때에. 육은 부모의 육을 따라서 되지마는  영은 그때 그때 하나님이 지으셔서 지음을 받는 것이 영입니다.

 이래서, 이 문제는 세계적으로 많은 논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을 육을  지으실 때에 육이 부모의 요소를 가지고 지은 것처럼 영도 부모의 요소를  가지고 그렇게 지음을 받는 유전이냐, 그렇지 안하면 그 사람의 육을 지을 때에  영이 같이 그때 부모의 유전이 아니고 새로 지어서 지음을 받은 것이냐, 또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영을 한꺼번에 사람이 날 그 숫자대로 한꺼번에 다  지어 놓으시고 한 육을 지을 때에 한 영을 한 영을 사용 해 가지고서 그렇게  분배해서 영이 지음을 받았는가 하는 이런 논단 때문에 세계 신학자들은 많은  논단이 있습니다. 이라다가 정통 신학자들은 생각하기를 '육은 유전이나  하나님의 형상인 영은 그때 그때 마다 하나님이 다 새로 지으신다' 하는  이것으로서 대개는 공통이 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영에 대해서 부모에게 유전된 것이라 하는 유전설이 있고, 또 한목  창조해 놨다는 전재설이 있고, 한목 지어 놨던 것을 하나씩 그 때 그때  하나님이 한 사람 한 사람 지을 때에 뽑아 쓰신다 해서 전재설이 있고, 또 그때  그때 하나님이 창조하신다는 창조설이 있는데 우리는 창조설을 믿습니다.

 그러면, 창조하면 왜 이런 논단이 나는 고 하니 창조하면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에, 육으로 말하면 육이 창조하나 유전으로 창조하고 이런데, 유전을 통해서  창조 하니까 이렇지만 영은 따로 짓는 것인데, 그러면 영을 지을 때에 하나님이  죄 있는 영을 지었느냐 하는 그런 문제가 이제 대두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지으실 때는 다 그 영과 육을 아울러 깨끗하게 하나님이 짓기  시작했으나 지을 때에 지으실 때에 짓고 나서, 순서적으로 말하면 짓고 나서,  실상은 그 동시지마는 논리적으로 말하면 그 순서가 짓고 난 다음 이지요. 짓고  난 다음에 정죄를 받아 가지고서 다 감염되게 된다 그렇게 사람들이 다 깨닫고  일반 정통이 그렇게 깨닫고 있습니다.

 이래서, 사람의 이 심신은 처음에는 무색의 깨끗한 걸로 지음 받았다. 지음  받았는데 그것이 아담 해와의 정죄받은 그 정죄로 정죄가 된다 이렇게 깨닫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 장생골 집회때 가 가지고 사람의 심신은  근본 무색의 존재로 지음 받았는데 지음받은 후에 감염이 돼 가지고 그렇게  더러워져 있다. 영은 근본부터 그 자체가 더러워진 것은 아니고 주격 책임에서,  그 심신이 범죄한 그 범죄를 주격된 영이 책임을 지니까, 마치 동회면 동회  직원이 잘못한 것을 동장이 책망 듣는 거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주격 책임  위치에서 그렇게 정죄함을 받은 것이다. 그랬는데, 이제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그 영들은 다 거게서 속죄함을 받았다. 그러기 때문에. 로마 8장 1절  이하에 보면 '영원한 때 전부터 정죄함을 받지 않는다' 이랬습니다. 택한  자들은 정죄함을 받지 않는다 그 말은 영이 정죄함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의 이 마음은 마귀로 염색이 될 수 있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로 인한 진리와 성령으로 탈색이 되고 또 새로 염색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과 몸을 하나님에게 드리면  뭐이 되는고 하니 의의 병기가 됩니다. 의의 병기가.

 저 옆에 앉은 저 ○ 선생인가? ○ 집사요? 고 옆에? 이사 왔다 또 갔어? 그래  놓으니까 안 보여요.

 나는 그이가 안 보이는데 이번에 말한 저분을 보고 좀 얼굴이 변해졌나  변해져서 저거 요새 은혜 생활 좀 안 하나 얼굴이 좀 그때 얼굴이 아닌데 자꾸  얼굴이 좀 잘 믿으면 자꾸 좋게 변해지는데 이상찮아. 그래서 내가 지금  물었습니다. 녜 힘을 자꾸 쓰이소.

 내가 엊저녁에 테레비를 좀 봤습니다. 테레비를 잠깐 보고, 보면서 주님  모시고 주님 모시고 모신 요것을 요동치 안하고 주님 모시고 또 주님하고 둘이  이렇게 테레비를 보면서 거게 대해서 생각하고 깨닫고 이래 본다고 해도 나중에  잠깐 테레비를 보고 이제 가 가지고 테레비 없는 내 방에 가 가지고 제 앞에  거울을 딱 해 놨습니다. 거울을 얼마나 해 놨느냐 하면은 거울을 내 방에  거울이 아흡 개인가 여덟 개인가 됩니다. 양 사방 들어온 것도 있고 또 산 것도  있고 이래서. 이제 그거 거울 단 목적은 아마 일반 사람들과 조금 다르긴  다릅니다.

 내가 보니까 당장 마귀 상다구니라. 마귀 상다구니인 것이 뭐아 상다구니냐  하면은 이 피부의 색깔이 마귀 상다구니 됐어. 피부 색깔이 보니까 '이거는  틀림없는 마귀 상이다. 이렇게 변해지는구나.' 그래서 이제 앉아서 좀 묵상을  하고 애를 싶고 자꾸 이랬는데, 그라고 나서 새로 보니까 피부 색깔이 제대로  돌아와요. 이상해요. 그만 그렇게 껍데기가 변해 지는데 껍데기 피부가  변해지는데 알맹이는 또 더 변해져. 속의 알맹이 마음이 변해지니까 고기  덩어리 피부가 변해져. 그래서, 요새 내가 보니까, 이분이 ○○○씨 구역이지?  ○○○ 씨 구역 아니오? 이름이 뭐이라? 뭐이요? ○○○ 이? 용모가 자꾸  조그매 씩 변해져요. 영 그전에는 그렇지 안했는데 요새는 좀 보니까 미인이  됐다. 뉘가 보면 미인이라 해. 자꾸 변화가 됐다 말이오. 자꾸 말씀을 들을  때에 듣고 깨달으면 자꾸 변해져.

 이래서, 우리 심신은 무색의 존재인데 마귀로 감염도 되고 또 하나님으로  감염도 됩니다. 이래서 마귀로, 예를 들면 비유컨댄 감염된 것이라 그말이오.

 물들인 거 모양으로 이렇게 되어 있는 이 심신을 여게서 탈색을 할라고 하면  이 심신에 있는 악령에 감염된 그 색깔을 탈색을 할라고 하면은 뭘로 탈색을 할  수 있느냐? 그 탈색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 외에는 탈색을 못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불택자들은 영원히 그는 탈색을 못 받고 마귀로 감염된 고대로  마귀의 것이 돼 가지고 가 버립니다. 그러나, 우리 택함을 입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법적 탈색은 다 받았는데 실상으로 탈색받는 것은 그  사람이 예수님의 공로를 자기가 마음으로 생각하고 또 자기가 고기 덩어리의  움직이는 행동으로 이렇게 예수님의 대속을 입고 이렇게 하면 탈색이 돼  버립니다.

 탈색이 얼마나 되느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입지 아니할 때에는  그것이 죄의 도구가 돼 버리고, 죄의, 마귀의 도구가 되고, 마귀가 썼으면  마귀의 도구가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입으면 의의 도구가 된다 이래  도구. 칼이 도적이 들었으면 도적 칼이 되고 의사가 들었으면 사람 구출하는  칼이 되지 않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이 심산은 도구와 같이, 암만 살인한  도구라도 또 의로운 사람이 그걸 가지고서 사람을 수술해서 살리는 칼도 될  수가 있다 그 말이오. 지금 이런 데는 그렇지마는 만일 일선에 가 가지고 급할  때에 어떻게 되었다고 하면은 그 옆에 무슨 칼이든지 하면 수술 칼로 쓸 수가  있을 거라 말이오. 그러면, 그와 같이 칼 자체에는 악이나 선이나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악한 사람이 잡으면 악용할 수 있는 그런 악한 칼이 되고 선한  사람이 잡으면 선한 칼이 되는 거와 마찬차지로 우리의 심신은 하나님과 우리의  중생된 영이 붙들고 있을 때에는 우리 심신은 참 의로운 도구와 같이 되고  마귀가 쓰면은 이 불의의 죄악의 도구가 된다 그렇게 성경에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 만음이라는 것은, 마음과 몸이라는 것은 무색의 존재가 아담  해와로 말미암아 마귀로 감염된 그때부터 사망과 저주 아래에 있게 됐는데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감염된 것을 탈색할 수 있다. 탈색할 수  있는데, 법적으로는 다 탈색이 돼 가지고 있으나 실상은 탈색된 사람도 있고 안  된 사람도 있다. 법적 탈색 됐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마귀가 중생된 자의  심신에게는 왕 노릇을 못 한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중생된 자의 심신에게는  마귀가 왕 노릇을 못 한다 죄가 왕 노릇을 못 한다, 사망이 왕 노릇을 못 한다  그렇게 성경에 말씀했습니다. 왕 노릇 못 했지마는 실상 활동적으로는 그놈이  와 가지고서 주관을 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거는 자기가 활동적으로는  자기가 활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활동적으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은  활동도 있고 벗어 내버리는 활동도 있기 때문에, 벗어 내버렸을 때에는 그  심신이 심신이 마귀에게 침노를 받고 마귀에게 이용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택한 자들은, 안 믿는 사람은 마귀로 감염된 거  하나뿐입니다. 딴 거 없습니다. 전부 마귀로 감염된 거 하나뿐이지. 석가모니도  마귀로 감염됐고 공자도 마귀로 감염됐고 뭐 톨스토이도 마귀로 감염됐고  소크라테스도 마귀로 감염됐고 공자 맹자도 노자도 다 마귀로 감염됐지 마귀  감염을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인생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은 사람만이 이 마귀의 감염을 법적으로는 다 벗었습니다. 벌써 그  사람이 나기 전부터 벌써 이런 사람이 나면 그 사람은 법적 감염은 다 벗고  있습니다. 이걸 가리켜서 영원한 때 전부터 정죄함을 받지 않는다 하는 그 말이  나기 전부터, '나야 뭐 정죄고 뭐고 있지' 하지마는 나기 전부터 하나님의,  전지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나고 난 다음이나 나기 전이나 하나님의 예정에만  딱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꼭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법적으로는 완전히 탈색을. 예수님이 대속의 공로를 베푸시는  그때에 다 탈색을 받았지마는 구약의 사람들은 미래의 이 탈색을 바라보며  예수님이 십자가위에 대속 하셨을 때에 탈색된 것이 바위 가 갈라지고 자던  무덤이 열리고 또 휘장이 있는, 지성소와 성소 사이의 휘장이 갈라지고 이런  것으로써 탈색이 됐다하는 것이 증표됐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약 시대에  있는 사람들은 지나간 예수님의 대속을, 과거에 이미 되어 있는 그 대속을 입고  우리는 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마귀로 염색됐던 것이 예수 그리스도로 영은 다 대속 할 때  그때에 탈색이 됐고 나지 안한 사람들도 다 그 탈색을 다 밭았습니다. 받고,  법적으로는 말이요. 법적으로는 받았지마는서도 실상적으로는 자기가 할동할  때에 탈색을 받았다가 또 염색을 하나님의, 하나님으로 염색받았다가 마귀로  염색받았다가. 이렇게, 믿는 사람의 생활은 그것이 어찌 되느냐? 이 세 가지  역사가 있습니다. 하나는 아무리 믿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실제의 그 심신이.

심신은 탈색을 받지 못하고 마귀 염색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고. 또  그라다가 이것이 탈색을 받는 수가 있고 탈색을, 그러면. 마귀에 염색된 것을  탈색을 받는 수가 있고 또 탈색받은 것이 하나님으로 염색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세 가지 순서로 자꾸 이래 중복되는 것이 이것이 믿는 사람의  생활이오.

 그런데, 믿는 사람 가운데 어떤 사람은 참 마귀로 염색된 것을 단번에 탈색을  딱 받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는 다시 마귀 염색을 새로 입지 안하고 아주 벗어  버리고 피와 성령과 진리로 염색함을 입은 이 염색을 가지고서 세상 끝날까지  사는 그런 참 아주 견고한 그런 신자도 있고 어떤 사람은 뭐 평생 예수 믿는다  해도 마귀에 감염된 이것을 탈색을 한번도 못 하고 고만 그래 가지고 있다가서  죽는 그런 사람들도 있고, 벗었다가 입었다가 또 새로 갈아입었다가, 벗었다가  또 갈아입었다가 또 이제 갈아 입었던 것을 벗었다가 또 새로 마귀의 색을  입었다가 이렇게 중복적으로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의 행위는 전부 이 마음에서 다 나옵니다. 이러기 때문에  지킬 만한 것 중에 제일 지킬 가치가 있는 보배로운 것은 뭐이라고 했지요?  사람의 마음이라 이랬지요? 그 말씀이 어디 있다 했지? 예? 잠언 4 장 23절.

문답을 요새 했는가 단단히 기억하고 있네? 그전에 했 나? 그래. 제일 지키는  것 중에도, 뭐든 지키는 것이나 명예 지키는 것이나 자기 또 생명 지키는  것이나 그런 것보다 마음 지키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왜?  마음을 지키지 안해서 마음을 뺏겨 놓으면 생명이 있으면 있는 것만치 죄를  짓기 때문에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고기 덩어리의 생명보다도 마음  지키는 것이 더 이해가 크다 그렇게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마음을 이 마귀에게 감염된 것을 어짜든지 탈색을 해야  됩니다. 탈색을 하고, 피와 정령과 진리로 완전히 염색을 해 버려야 됩니다.

이래서. 이거 비유입니다. 이 증거하는 것은 성령과 물과 피 이 셋이 증거한다  그 말은 우리에게 자꾸 이 심신에게 알려 듣기고 이래 가지고서 이해를 사켜서.

강제가 안 되니까. 다 강제가 아니고 유기적입니다. 유기적이기 때문에, 강제가  아닌고로 자꾸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서 일러 듣기고 또 성경을 읽어서 일러  듣기고 이렇게 성령으로 감동시키고 이래 가지고 '벗어라, 옛사람을 벗어라, 이  마귀의 감염 색깔을 다 벗어라, 탈색을 해라 벗어버리라. 그라고, 의와 진리와  거룩으로 된 새사람을 입어라. 또 이제 피와 성령과 진리로 된 이 새사람을  네가입어라. 주님의 피공로로 감염되고 또 성령으로 감염되고 진리로 감염되라'  하는 것을 권면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마음은. 우리 마음은 마귀가 염색을 해 놨는데 우리  마음의 이 염색을 벗는 길은 다른 것은 없습니다. 벗는 갈은 다른 것은 없고  예수님의 피공로를 우리가 생각 할 때에 벗어집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할 때에 벗어집니다. 또 성령님이 우리에게 오시면 벗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셋은 하나입니다. 예수님의 피공로를 진정 자기가 이래  생각하면서, 주님이 나를 위해서, 어떻게 크신 분이 나를 어떤 멸망에서  구출하시기 위해서 어떤 존 희생을 하신 것을 이것을 자기가 생각하고  이러니까, 죽기까지 하셔서 나에게 죄 없는 자로 살도록 이 사죄의 공로를  주셨으니, 이 예수님이 하나님이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서 나에게 사죄의 공로를  주셨으니까 나도 죽었으면 죽었지 죄를 범할 수 없다. 이제는 죄 없는 사람으로  살아야 되겠다. 또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나에게 의를 입혀 주셨으니까, 의라  하논 것은 하나님에게 피동되는게 의인데 이러니까 나는 죽어도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피동으로서 계속해야 되겠다. 또 화친은 하나님하고 한덩어리 되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목숨을 줬으면 줬지 하나님하고는 다시 떨어질 수가 없다.

 이래서,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을 자기가 생각할 때에 이 색깔이 마귀 색깔이  벗어 나갑니다. 그러고, 또 요렇게 이 예수님의 세 가지를 생각하는 것은 뭘  생각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세 가지를 생각하는 것은 그 세 가지를 어데서  배웠습니까? 자, 세 가지를, 이 세 가지를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을 어데서  배웠습니까? 저 ○○○ 집사. 예? 하나님 말씀에서 배웠습니다. 백 점  대답했소. 하나님 말씀에서 배웠습니다. 이러니까, 예수남의 대속을 우리가  이렇게 생각하고 묵상하는 이것을 가리켜서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는다, 다음  주일, 이제 요번 주일에 오는 주일에 성찬식 있을 것인데. 예수님의 그 성찬식,  피와 살을 표시하는 그 떡과 포도주를 먹는데, '내 피와 살은 참된 음료라 참된  양식이라 피와 살을 먹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다' 이렇게 했습니다. 이런 것이  뭐이냐 하면 예수님의 이 세 가지 대속의 공로를 자기가 깨달아서 어떻게  베푸신 공로요 이 공로로 말미암아 얼마나 우리가 존귀하게 되고 자유하게  됐는데 이 공로를 내가 어떻게 보존하고 이공로를 내가 모시고 살아야 되느냐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기울여서 모시고 살아야 된다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피와 살을 양식 삼는다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이러기에. 예수님의 공로를 생각하면 말씀을 자기가 생각하는 것이고 예수님의  공로와 말씀을 생각하면 누가 오는 게 아니라 성령님이 오십니다. 그라면 몇이  왔습니까? 예? 몇이 왔지요?  예수님의 공로를 생각하는 것이 내나 말씀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가르쳐 줬지 다른 것이 가르쳐 주지 안하지 안했습니까? 말씀으로 이 해서  예수님의 공로를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공로를 생각하면 이제 두 가지  왔습니다. 그라면 성령 오십니다. 그러면, 성령이 오시면 우리 마음이 탈색이  되고, 예수님의 공로와 진리와 성령이 우리 마음을 주관하게 될 때에 우리  마음은 아주 마귀적인, 사망적인, 마귀적인, 사망적인, 불의적인, 저주 아래  있는 저주적인 모든 더러운 거 하나도 없고 하나님의 마음과 꼭 같은 마음이 돼  버립니다. 하나님 마음과 같은 깨끗한 마음이 돼서, 깨끗한 마음이 되니까 우리  마음이 하나님과 같이 됐을 때에 우리 몸의 행동도 하나님과 같은 행동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 우리 마음이 하나님과 같은 마음이 되면 그 사람의 언행 심사의  행동이 실수가 없겠습니까 우리 한국에서 제일 명철하고 정직하고 의롭고  깨끗한 그 사람의 마음과 같이 되면은 우리 언행 심사가 깨끗하게 되겠습니까?  어느 것이 더 깨끗하게 되겠습니까? 우리 한국에 제일 잘난 사람 아주 똑똑하고  얌전하고 도덕가이고 참 아주 의로운 사람이라 할 수 있는 그 사람의 마음과 꼭  같은 마음 된 그 사람의 행동이 더 낫겠오, 하나님 마음과 꼭 같이 된 사람의  행동이 낫겠습니까? 녜, 하나님의 마음과 꼭 같은 행동 된 사람이 언행 심사가  낫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렇게 이 세 가지로써 우리 마음이 탈색되고 감염이 되면  마귀의 것은 탈색이 되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렇게. 다 변화가 되어지면  사람이 생각할 때에 '아, 장 하나님만 생각하고 또 진리만 생각하고 예수님의  대속만 생각하고 영감만 생각하면 굶어 죽을라고? 그래 가지고야 당장 기계  쓰다가는 손도 다 끊어버릴 것이고 그라다가는, 그것만 장 생각 하다가는  가다가 전봇대에 받혀 가지고 이마 다 깨버릴 것이고 그만 그렇게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기 쉬운데, 자, 그러면, 그 사람이 아주 바보인 사람과 아주  사람으로서 제일 명철한 사람과 같은 사람이 됐으면은 어느 사람이 전봇대에  가서 받힙니까? 어느 사람이 전봇대에 가 받히겠오? 등 신 미련한 사람이 받힐  것이고, 손은 누가 끊습니까? 그 사람이 끊치지. 이러니까. 어리석은 그런 생각  가지지 말라 말이오.

 내가 이 진리의 말씀을 들으면 예수님의 피와 성령이 내게 와 가지고서 내  마음이 진리와 같은 마음이 되고 예수님의 피공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베푸실 때의 그분의, 대속의 공로를 베푸신 예수님의 마음과 같은  마음이 되고 성령의 마음과 같은 마음이 되기 때문에, 이제 내 마음은 하나님과  같은 마음이 돼지니까, 자, 하나님과 같은 마음이 되어지면은 사업에 실패를  하겠오 성공하겠오? ○집사. 하나님과 같은 마음이 되어지면, 하나님과 같은  심신이 되어지면 성공하지 실패할 리가 있습니까? 제일 잘 하지. 인간보다도,  인간을 초월해서 인간으로 할 수 없는 인간을 초월한 제일 잘 할 수가 있지.

 이러니까, 이렇게 하나님과 우리의 주님이신 주님을 생각하는 십자가의 대속의  주님을 생각하고 성경 말씀을 생각하고, 새김질하라고 하지 안해요? 성경  말씀을 생각하고, 성신의 감화를 자기가 받을라고 애를 새고 이렇게 하면  '그라다가는 다 세상 일 다 낭파가 되기 때문에 다 큰일난다. 예수 미치괭이가  돼 가지고 다 실패된다.' 이런 어리석은 마귀 어리석은 생각을 마귀 고놈이  자꾸 줍니다. 우리 마음이 밝아지면 일을 밝게 하고 우리의 능력이 더 크지면  능력있게 일하지, 이렇게 밝아지는 것이 하나님으로 진리로 성령으로  밝아지니까 이는 완전자로 밝아지는 것이니 그 사람이 완전자가 되어지는데  무슨 사업을 잘못하겠오?

 이런고로, 오늘 여기 말씀이 그런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무슨 말이오? 베드로가 무슨 말을 했습니까? 하는  것은 고 밑에 보면은 '예수님은, 너희들이 십자가 못박혀 죽으신 예수님은  예언대로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는데 예수님을 자기의 구주로 믿는 사람에게는  정죄와 저주와 사망에서 완전히 해방을 받아서 다 생명의 구원을 얻게 된다'  하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전한 그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그러면 성신 감화가 온다 말이오.

 성신 감화가 우리에게 뭘로 왔습니까?  첫째는, 첫째는 말씀. 베드로가 말씀을 하니 그 다음에 말씀을 통해서 뭐이  왔습니까?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왔습니다. 그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말합니다. 그러면, 베드로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여게 말씀을  전하는데 그 전하는 말씀을 통해서 뭐이 왔느냐 하면은 '예수님은 이렇게  우리의 대속의 구주시다' 하는 그 말씀을 전했다 말이오. 그 내용을 전했다  말이오. 전하니까 둘 왔지요. 그라니까. 그 다음에 성령이 오셨습니다. 그래서,  그때에 이방인들은 구원이 없었는데 이방인들에게 베드로 가 세례 주고 구원의  길을 하나님이 여심을 보고. '하나님이 이 사람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전하는 이 전도를 듣고 나니까, 들을 때에 듣는  사람들에게 당장 성령의 감화가 임해 가지고서 성령의 사람들이 되어졌으니  어떻게 인간이 베푸는 세례를 베풀지 못하겠느냐?' 그래 가지고 제일 먼저  이방인에게 세례 베푼 이가 베드로, 사도 베드로였습니다.

 그런고로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 먼저 생각하는 게 하나님 말씀  영감도 어렵고 예수님의 피공로도 어렵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  생각을 하면은 우리 마음이 차차 차차 밝아집니다. 이 어두움이, 마음 그놈이  그자기 망할 생각 자기 망할 욕심, 자기 망할 취미, 자기 망할 성질, 자기 망할  계획 자기 망할 방편, 자기 망할 뜻, 자기 망할 취미, 자기 망할 모든 경험  자기 망할 습성 이 모든 게 들어 있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 들어  생각하면은, 말씀은 빛이십니다. 말씀은 빛이시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자꾸  자기가 새김질해서 생각하고, 어느 말씀이든지 좋아요. 고 말씀을 가지고서  새김질해서 그 말씀의 도리를 생각하고 이렇게 하면은, 뭐 불은 이스라엘  보면은 금촛대가 있었는데 그 촛대가 일곱 개입니다. 하나에 이래 일곱 개가  달려 가지고 있습니다. 달려 있는데, 하나가 켜지고 하나 켜지고 하나 켜지면  차차차차 밝아지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제 어느 한 말씀을 새김질 하면은 그 말씀을 통해 가지고서 요 말씀이 또  일어나고 고 말씀이 또 일어나고 이래 연상적으로서, 한 말씀을 생각하면, 하  여게도 요 말씀이로구나 여게도 요 말씀이로구나' 그 말씀이 점점. 연상이라  말은 무슨, 연상이라 말은 자꾸 연해서 생각한다 그말이오. 연상. 연상적으로  자꾸 이렇게 떠오르게 됩니다. 이 말씀을 이렇게 자꾸 생각하는 가운데에  예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자기가 차차 차차 알게 되고 예수님과 자기  마음에 점점 가까워지고 예수님에 대해서 자기가 배척한 죄가 회개가 되고  예수님에게 대해 감사가 되어지고 예수님을 점점 내가 모시고 주를 위해서 살고  싶은.

 그러니까 진리가 들어오고 주님이 들어오고 그라고 난 다음에는 성신의 감화가  들어옵니다. 성신의 감화가 들어오고 이라면 우리 마음에 마귀로 감염된 것이  다 탈색이 되어져 버리고 이제 하나님과 진리와 피공로로, 이 의로 물들이는  물로 들어왔기 때문에 이 하나님의 색깔로 물을 들이니까 비유컨대 하나님의  색깔이 만일 청색이라 이라면 청색의 물을 들였으니 하나님도 새파랗지 나도  새파랗지 이라면 저 외부에 볼 때에는 그 사람이 하나님인지 그건지 모른다  그말이오. 속에는 보면은 그거는 하나님의 물을 들여서 물만 푸르지 속의  배쪼가리는 하얀 거와 마찬가지로 탈색하면 딴것 이지마는서도 물을 들여  놓으니까 다 푸른 게 돼 버렸다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멜리데섬에 걸렸을  때에 바울이 그 독사가 무는 것을 보고서 이래 털털털 터니까 그만 독사가  떨어져 죽었다 말이오. 그라고 난 다음에는 모든 섬 사람이 있다가서, 독사  물린 걸 보고 '아, 하나님 앞에 범죄해서 저주받은 자이다' 하고 그만 도망을  쳐 버렸는데. '보자' 먼데 가서 도망쳐 가지고 보니까 이래 가지고 툴툴 터니까  금방 죽을 줄 알고 있으니까 안 죽고 또 나무 갖다가 이래 봉사하고 하는 것을  보고서와 와 가지고 '이거는 사람이 아니다. 이거는 신이다' 이랬다 말이오.

그래 가지고 그때 석 달 동안 아주 거기서 생활을 잘 하고 교회를 세웠던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 마음이 마귀가 들어오면 우리 마음이 순전히 마귀화돼 버립니다.

마귀와 꼭 같이 됩니다. 마귀와 꼭 같이 되기 때문에, 마귀와 꼭 같이 되니까  마귀와 꼭 같이 된 내 생각은 그 전부가, 생각 전부가 지식 전부가 이 전부가  뭐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 말씀 대적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이 생명 역사를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놈만 오면은 두 말 할 것 없이 하나님의  말씀은 믿어지지 안하고 또 하나님의 구원도 믿어지지 안하고 성신의 감화는  받아지지 안하고 '예수 잘 믿으면 망한다'하는 요 결론을 탁 내는 것이 그  놈이라 그 말이오.

 그러나, 이놈을 쫓아내고 주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가 와 가지고서 내 마음을  감동시켜서 내 마음이 변화됐을 때에는 '죽어도 죄는 지을 수 없다. 죽어도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하나님께 피동되어 하나님을 따라서 죽었으면 죽었지  하나님에게 피동된 이 피동은 내가 놓지 않는다. 하나님 말씀을 어기는 이런  일은 죽었으면 죽었지, 하나님 말씀 어기는 것이 죄인데, 어기지 않겠다. 또  하나님 모시고 사는 이 하나님과 한 덩어리 되는 내 마음의 하나님과 같은 마음  됐고 또 내 생각이 하나님 생각과 같이 생각하는, 하나님과 나와 같이 되는,  하나님은 머리가 됐고 나는 몸이 된 이 하나 된 이 하나를 이거 절대로 놓지  않겠다' 하는 요 사람이 되어서, 예수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 요 셋의 요 심신이  돼 가지고, 이 셋의 심신이 돼서 이 셋의 심신이 되어 가지고, '이 셋을 안  내놓으면 너 죽인다' 요랬을 때에 요런 경우를 만나면, 요 자기의 심신은 요  셋의 것이 돼서 요 셋으로 물을 아주 진하게 딱 들여서, 요 셋으로 물을 딱  들여 요 셋의 것이 완전히 되어 있을 그때에, 그때에 고것으로 끝나 버리면,  고것으로 끝나 버리면 이제 완전히 이 세 가지로 완전히 변화된 것으로서 끝이  나기 때문에 끝이 나 죽어 버렸으면 다시 그거 돌아오지 못합니다. 죽었으면은  다시 이것이 탈색되지 않는다 말이오.

 탈색되지 안하고 완전히. 완전히 하나님과 진리로 염색이 되어서 하나님과  진리를 완전히 입어서 내 마음도 몸도 전부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을 그 때에,  그때에 이제 고렇게 된 고것으로써 끝이 딱 돼서 끝을 마쳐 버리는, 고것으로  끝을 마쳐 버리는 것이 줘젓오, 또 끝을 안 마치고 있으면은 또 탈색이 되고 또  변동될 터이니까 끝이 안 마쳐지는 것이 좋겠오 끝이 마쳐 지는 것이 좋겠오?  자, 과이 마쳐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보이소. 녜, 그거야  뭐 다 좋지요. 그러면, 끝이 마쳐지는 것이 좋으니까 그럴 때에는 끝이  마쳐졌으면 좋다고 끝이 마쳐지기를 원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보이소, 원하는  사람. 만일 손을 들었는데 될 것입니다. 이 대로만 됐으면 이만하면 세계를  구원할 수가 있습니다. 이만하면 세계를 구원할 수가 있어.

 나는 그전에는 좀 마음에 섭섭했었는데. 주일학교 학생들이나 소망을 가질까  이랬는데, 요새 지금 반사들, 또 뭐 권찰들, 내가 설교를 더러 시키는데, 시켜  놓고 가만히 듣습니다. 듣고 보니까 마음에 흐뭇해. 이것들이 변하지만 안하고,  이 탈색이 지금 염색이 잘 돼 가지고 있는데 탈색만 안 되면 되겠는데 이것들이  탈색이 된다 그말이오.

 그래 내가 어제 어떤 학생에게도 말했어. 직접 안 하고 간접적으로 '그 게  뉘고?' 이라니까 뭐 누구라 이래. 누군데, '그 사람이 뭐 하노?' 이라니까 지금  대학원 다닌다고 이래. 이래서, '큰일 났네. 그게 지금 염색은 잘 됐는데, 그게  탈색이 되면 헛일이다. 지금 고대로 그만 거석해 가지고, 아주 마귀 지식  소용이 없는 것이니까 거석하고 그만 자꾸 이 길로 나갔으면은 그게 참 세계를  울릴 만한 그런 하나님의 종이 되겠는데 그게 모르겠다. 그게 대학원 이 년  동안에 그게 무슨 또 다 탈색을 해 버리고 쓰지 못할 딴것에 염색돼 가지고서  나중에는 엉뚱이 같이 가 가지고서 그저 뭐 돈이나 벌고 '저 어데 세상 그런  권세나 지위나 잡아 가지고서 한 달에 월급 많은 거나 보고 그래 썩은 일만  하다가 갈 건가 모른다. 아직까지 그거 뭐인지 모르겠다' 그만 지금 거석하면  좋겠는데 말해 봐야 안 들을 거라 그거요. 이런데, 안 들어도 좋아요. 거기  가도 좋아요. 거기 가도 좋은데 거게 갈라 하거든, 대학원 그까짓 놈의 공부를  하거들랑 무슨 아무, 죽는 공부, 내나 마귀 지식 공부하는 것인데 그것도  선물로 이용하면 돼요. 그것을. 그것을 하나님 섬기는 데에 소용하면 되는데  그놈이 나를 이용해 가지고 그 놈 시키는 대로 내가 가면 헛일이라. 그것을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하는 데에 그것이 필요한 이용물로 하면 되는 것인데  잘못하면 주객이 전도되기 쉽다 말이오. 꺼꾸로 되기 쉽다 그거요.

 그래서, 어제도 내가 어떤 학생을 하나 불러 가지고서, 고게 하도 주님을  영화롭게 기쁘시게 하기 때문에 내가 불러 놓고 말하기를 '네가 공부가 차차  자꾸 진학을 하고 있는데. 네 공부가 우상이 되느냐, 음행의 포도주, 우상이  되느냐 네 받는 지식이 하나님의 선물이 되느냐? 선물이 되면은 그것이 너에게  유익을 주고 우상이 되면 너는 망한다. 이러니까 내가 우상 되고 선물 되는  고것을 내가 가르쳐 주면서 말을 해서 그렇게 주의를 시켜서 내가 어떤 학생  하나 보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 우리가 성공하는 것은, 자, 내가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이 성공하겠오 마귀같이 되는 게 성공되겠오? 마귀같이 되는 것이  성공되겠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하나도 없지. 하나님 같이  되면은 성공 되겠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이봐 하나님같이  되면 다 성공되지. 그렇지 않소?  하나님같이 되는 데에는 딴거 없습니다. 자꾸, 안 되는 거 같지마는 하나님이  말씀했다 말이오.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도다' 이라니까 그만  그러니 모든, 자기가, 자기가 어떤 사람이 됐느냐 하는 그거는, 자기가 보면 다  저 잘난 재미로 사는 데 압니까? 자기 행동의 결과를 보면 알아. 결과가 그  모든 일이 형통해. 그 모든 일이 형통하다 하는 것은도 적질 해도 도적질도  형통하고 사기 협잡도 형통하고 또 뭐 그런 모든 죄 짓는 것도 형통하다 그  말이 아니고, 그의 무릇 행사가 다 형통하다 그 말은 그가 어떤 칼날  앞에서라도, '사자 구덩이 집어넣는다. 너 함부래 기도하지 말아라' 하는  거게도 형통이라. 거게도. '아. 나는 기도하는 것은 변동할 수 없습니다.' 죽  통과하니까 '사자 구덩이에 집어 넣었는데, 집어넣었는데 그 권능이 사자  구덩이를 툭 치고 나와 버리니까 온 나라 사람들이 다 놀랬다 그말이오.

불구덩이에 집어 넣었지마는서도 이제 '나는 우상에 절안 할 줄 아십시오. 나는  다른 신에게 절을 하지 안할 줄 왕은 아십시오.' 요렇게 딱 말했을 때에 고만  관통을 해 버렸다 말이오. 그러니까, 불 가운데 한 번 들어갔다 나오니까 다른  사람들이 보고서 그만 '이 사람들 섬기는 하나님에게 대해서 누구든지 해하는  말 했으면 그는 사형을 한다' 이렇게까지 다 락 변해졌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여러분들, 우리가 꼭 요걸 잡아서, 우리가 성공 하는 데에는  하나님같이 되면 성공하고 마귀같이 되면은 망한다는 것은 다 알고  있지마는서도 내적으로 구체적으로 들어가 가지고는 그만 유혹을 받게 된다  말이오. 하나님같이 되는 데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 말씀과 주님의  말씀을 인해서 하나님 말씀이 제일 처음에, 말씀을 인해서, 두 번째 오는 것은  뭐입니까? 피공로, 말씀을 새김질 하면서 말씀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온  성경은 전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말씀이라도  이 말씀을 새김질하다 보면 예수님의 대속과 나와 가까워집니다. 말씀. 둘째로  오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 그라고 난 다음에 마지막으로 세째로 뭐이  왔습니까? 성령이 오셨습니다.

 이 셋이 오면 우리라는 이 마음은 변화됩니다. 내 마음이 변화돼요. 내 마음에  마귀로 물들어 있는 것이 치료가 됩니다. 치료가 돼. 여러분들이 그래 보라  말이오. 안 되는 가. 자꾸 말씀을 생각하고 예수님의 피공로를 얼마 동안  생각하고 보니까 못 쓸, 못 쓸 욕심이 없어집니다. 못 쓸 더러 운 못쓸 사기  협잡하는 욕심이 없어집니다. '저놈을 복수를 해야되겠다'하는 그 악독이  없어집니다. 잔인이 없어집니다. 또 '내가 세상의 부귀 영화를 한 번 사기  협잡을 해서라도 한번 취해야 되겠다' 하는 그런 허영과 허욕이 없어집니다.

모든 더러운 욕심이 없어집니다. 모든 취미가 없어집니다. 모든 더러운 습성의  다른 사람이 보면은 다 칭찬할 수 없는 것이고 틀렸다 조롱하고 그렇게  감탄받지 안하고 할 수 있는 나쁜 거는 차차 차차 이 세 가지만 사모하다  보니까 없어져 버렸습니다.

 사람이 자기 마음을 깨끗게 하는 것이 제가 결심 가지고 깨끗게 못 한다  알이오. 어리석소. 결심을 할 수록이 점점 마귀의 색깔이 더 짙어옵니디 안  됩니다. 이 세 가지를 생각하면 수루루루루 녹아져 버린다 말이오. 수 루루  녹아져. 나는 그걸 몰라서 그런데, 그런 과학을 좀 알았으면 그 실물을 들어서  말했으면 좋겠는데 아무리 막 얼음이 딴딴하이 이래 있어도 그 만 열만 오면  그게 스르르 녹아져 없어지지 않습니까? 열만 오면 녹아져. 그거 모양으로 우리  속에 마귀로 감염돼 있는 것이 이 세 가지가 들어오면 스르르르 녹아집니다.

스르르 녹아지면 완연히 변화되는 걸 봅니다. 자기 마음이 변화됐다, 이 악독한  마귀적인 마음이 성령으로 변화됐다 하는을 확실히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변화되면 기쁨도 딴 기쁨이 됐고 취미도 딴 취미가 됐고 소원도 딴 소원이 됐고  욕심도 딴 욕심이 됐고 이거는 전부 성령의 소욕, 자, 따라합시다. 성령의  소욕! 성령의 소욕! 성령의 소욕은 하나님의 욕심이라 말입니다. 내 욕심은  하나님의 욕심이 그만 내 욕심 돼 버리고 말았어. 그 다음에는 육체의 소욕이라  말은 마귀 욕심이라 말이오.

 그런고로. 어짜든지 결론은 자꾸 성경을 읽든지 듣든지 하는 가운데에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자꾸 들어가십시오. 성경 말씀을 읽고 듣는 데에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들어가고 예수님의 공로로 들어가면은 그 다음에 뭣  만납니까? 그 다음에 뭣 만나요? 성령 만나요, 성령. 성령 만나면 성령이 우리  마음을 감화시켜 주면 내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꼭 같은 마음이 되기 때문에  마귀의 마음은 다 물러가 버립니다. 이라고 나면 제 눈이 밝아지면 보일 거라  말이오. 서로 만날 때에, 그라고 난 다음에 사람을 만나면 제 둘도 없는 친구를  만나는데 만나서 그 친구 하나 보면 '아 요게 마귀로구나. 저 사람이 요 말하는  것이 요게 마귀로구나. 저 사람을 지금 만나니까 그 목적이 보니까  마귀로구나,' 전부 자기 친한 사람이 전부 마귀가 다 마귀 사람이 돼 가지고  자기에게 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제 여게 빠지지 안해야 되겠다 하는  대항적인 전투가 거기서 생겨지게 됩니다. 그러면 자기가 차차 차차 하나님  같은 사람의 마음으로 변해서 행동도 변해지고 이래 가지고 우리가 성공되는  것이기 때문에,  제일 말 잘하는 건 일호에 무엇을 대관절 가져야 되겠습니까? 바쁘고 뭐 죽고  급하든지 뭐 가져야 돼요? 예? 예? 옳지. '성경' 하지 말아요. '하나님  말씀'해요. 성경. 성경도, 좋지마는 어짜든지,

 저 먼저 사회할 때, ○○○ 장로님 저기 와 앉았는데, 축도할 때에 '하나님의  종의 축도로 폐회하겠습니다.' 이 말이 입에 잘 안 나온다 말이오. 그래  가지고서 '목사님의 축도로' 또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잘 안 나옵니다. 안  나와서 '성경 말씀' 이래, 성경 말씀이 변해서 이제는 성서가 됐습니다. '성경'  하니까 자꾸 이러니까 '성서' 성서가 신사요, 성서가 하이칼라요, 성서가  문화인이요 지성인이요. 성경이 성서 됐고 하나님 말씀이 성경 됐고. 하나님  말씀, 인제 어짜든지 하나님을 말하는 건 마귀 그놈이 싫어하기 때문에  싫어합니다.

 이래서, 강단에서 '아, 하나님의 종이라 하나님의 말씀이라' 이라는 그 소리가  듣기가 싫어서 마구 사경적인 운동이 있지마는서도 제가 죽기 전 에는 꼭  이라니까, 이라고 있으니까 이제 이렇지 딴 데 가면 여러분들이 가 가지고서  성경 읽으면서 '이제 하나님 말씀 봉독하고 하나님의 말씀 증거 해주겠습니다.'  하는 그 강단이 얼마나 있는 가 보십시오. 별로이 없습니다. 하나님 말하기도  싫소. 또 '목사님이 나와서' 목사보다도 박사가 낫습니다. 이제 목사보다도  박사가 나은 자는 박사를 죄를 짓고라도 박사 해 가지고서 어디든지 내놓으면  박사라 해야 되지 목사라 하면, 자, 목사가 낫오 박사가 낫오? 목사가 낫다고  평가하는 지식은 뭐이며 박사가 낮다고 평가하는 지식은 뭐입니까? 성경은  목사가 낫고 박사는 마귀 지식이그라는 거라. 이러니까 '박사님 나와서 이제  말씀 증거해 주겠습니다.' '말씀 증거해 주겠습니다.' 이라다가 나중에는  '박사님 나와서 이제 강의해 주겠습니다. 강의 하나 해 주겠습니다. 연설해  주겠습니다.' 나중에는 '연설해 주겠습니다.' 이래 될 거라 말이오.

 이런데, '하나님의 종이라 하나님 말씀이라' 하나님의 종이 높아지기를 원해서  그런 게아니오. 하나님의 종이라는 소리라 하니 내가 높아지기를 원하는, 내  소원은 내가 높아지지 안하고 나는 지금 아주 어디든지 파고 제일 낮아진 자리  있기는 있고 또 내가 증거하는 데에 다른 사람들이 이 증거를 권위있게 들어서  증거는 '아, 백 목사가 설교해? 그러면 나도 한 번 가서 들어 봐야 되겠다. 백  목사가 집회해? 아. 거기 가야겠다.' 세계 사람들이 나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는 세계가 다 알고 구하기를 원하고, 욕 백 목사는 잘못하면 하나님  말씀 올라가는 데 제가 같이 따라 올라갔다가는 부러집니다. 같이 따라  올라가다간 죽어. 나는 안 올라가고, 나는 사는 처소가 제일 낮은 자리 제일  무지 무능의 요 자리있어야 살지, 고 자리가 나 살 자리이고 고 자리가 나  피난처지 올라가는 그 자리는 위험해서 총 맞을 자리입니다. 이렇게 세상이  자꾸 변해져 나가.

 이러니까. 봐. 성경 말씀, 성경 말씀 말하는 것과 '뭘 제일 첫째로 가까이  해야 되지?' '성경 말씀을 가까이 해야 됩니다.' 이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해야 됩니다.' 하는 거와 그거는 금덩이요 하나는 은덩이입니다.

알겠오? 또 '목사' 하는 거와 '하나님의 종' 하는 거와 자꾸, 왜? 자꾸  하나님을 가까이 해서 하나님의 엄위와 권위를 자꾸 세우기 위해서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여기 오면은 처음에는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말씀이라 하니, 뭐  하나님의 종 저 높아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종이라 해야 하나님의 종  자신도 '내가 하나님의 종인데, 높아지는 것보다 하나님의 종 인데'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을 따라 움직이는 게 하나님의 종 아니오?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하는 것이 하나님의 종 아니오? '하나님의 종' 하는 데에는 큰 책임이  무겁습니다. 옆의 사람이 '하나님의 종' 할 때에는 어깨가 묵직해지고 또 그  사람 '목사' 할 때에는 조금 가벼워지고 '선생님' 할 때에는 아무 일 없어.

네나 내나 그거야 뭐 일 대 일로 어떤 일 이라도, 선생이야 오만 일 다 짓는  것인데 뭐 말할 개 뭐 있는가? 주의 할 게 뭐 있어? 이렇게 하나님의 종이라고  말하는 그것은 그 사람에게 더 하나님에게 붙들려 매여서 '너는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종이 하나님의 말을 전해야 되지 하나님의 말 아닌  마귀 말 전해야 되느냐? 하나님 말이 아니고 인간 말을 전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말인데 이래서, 하나님을 더 말살하는 이 세대에  하나님을 더드러 내려 하는 그것인 것입니다.

 이래서 ○○○ 장로님, '목사님이 나와서' 하는 그걸 가서 단단히 애기를,  해가지고서 '이러니까, 이러니 이래 하지 마십시오.' 그래서 ○○○ 장로님도  소개할 때에 '하나님의 종' 처음에는 혀가 안 꼬꾸라져서 혀가 안 꼬꾸라져서  아니꼽지마는서도 '하나님의 종' 이래 했습니다. 이라는데 우리 ○○○  장로님은 '하나님의 종' 이래 내치 이랬는데 지난 주일은 어째 그만 구습이  말이지요, 입에 익어서 말이지요, 구습 입에 익어서 그만 그래 나왔는지 그래  돼 버려요.

 또 요번에 여전도회 할 때 보니까 여전도회 서기가 회의록을 낭독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런데 그래도 밑에 있는 교인들이 다 은혜 되도록만 해야 될 것  아니겠오? 백 목사 높이라고 절대 하는 말 아닙니다. 그런 것이 만분의  일이라도 있으면 내가 어리석은 자요. '백 영희 목사가' 성경 읽고라던가 뭐  '어떻게 어떻게 말씀했습니다.' '백 영희 목사가' 할 때에 자기도 그 말이 하고  난 다음에 주저주저하지 안하고 그러면 낭파당했고, 낭파났고, 또 그렇게 '백  영희 목사가' 할 때에 이래 하고 나서 다른 사람도 들을 때에, 암만 뭐  사람이지만 님자는 높이는것 인데, '서방님. 선생님' 하는 데 목사를 님자  붙인다고 나쁠 게 뭐 있겠오? '목사님' '장로' '하는 것보다 '장로님' 불일,  높일 만 하지. '장로님 집사님 권참님' 님 자 붙이는 건 저거 서방님이라 말이  아니고 높인다 말이오. 높인다는 말이기 때문에 높일 수 있지 않습니까?  이렇지,  '백 영희 목사가 성경 어디를 보고 어떻게 어떻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라는  것과, 예를 들면 말이지요. '하나님의 종 백 영희 목사님이' 목사라면 누군지  모를 터이니까, 하나님의 종이라면 누군지 모르기 때문에, 이름을 밝혀야  되니까 '하나님의 종 백 영희 목사님이 하나님의 말씀 어데를 읽고 이렇게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줬습니다.' 하면 거게는 하나님의 축복이 막 마구  쏟아집니다. 알겠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이 작은데서부터 이걸 예사로 지내기 때문에 눈이어 그고 귀가  어두워서 이 세대가 이래요. 이 세대가 뭐인지를 몰라요. 이러니까 얼마 안  가면 서부 교회는 자기네들이 하나 안 하나, '서부 교회 저거는 별스러운  교회다, 저거는 별스러운 교회다 뭐 신비주의라', 자꾸 이단이라는 말이 자꾸  더 커질 겁니다. 왜 그들과 하는 게 정 다르기 때문에. 커지나 이 이단으로  커지고 이 이단으로, 지금 이대로 이래 이 단으로 커지면은 참으로 성공입니다.

어리석지를 마십시오.

 그래서, 이것도 지금 어만 말인데 '성경 말씀' 이렇게 하는 입술을 고쳐  버려요, 성경 말씀. 물론 책과 성경이라고 이래 성경에 기록해 놨습니다.

기록해 놓은 것은 사람들이 모두 이 육십 육 권을, 이 육십 육권을 성경  말씀으로 이래 하나 다 같기는 같지만 성경 말씀이라 하는 것 보다도 하나님  말씀이 더 좋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 읽든지 듣든지 해서 새김질을 하십시오. 그라면  자기가 예수님의 피공로를 생각할 수 있는 사람으로 밝아집니다. 자기가 변화가  돼. 그라고 난 다음에 예수님의 피공로를 자기가 생각하고 사모하고 하면은 그  다음에는 그런 가운데 성령이 오시면, '주여 나도 주를 위해서 죽게 해  주옵소서.' 소원이 살고 싶은 소원이 없고 어찌 됐던 간에 내가 마음과 소유와  몸과 생명이 순전히 주님의 것이 다 되어져서 '너 예수 안 내놓으면 죽인다.

예수 안 내놓으면 죽인다' 이라니까 그때 '아, 나는 죽어도 예수 믿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내 주로 모십니다.' 요렇게 말할 때는. 내 언행 심사와 내  전체가 예수님의 것이 딱 되었을 때에 고 때에 '네 요놈, 그라면 죽인다!  하고서 총으로 탁 놓든지 목을 탁 베든지 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생명이 딱  끝나면 예수님의 것 전부 다 돼 가지고서 끝이 딱 났으니까 그것이 완전히 썩을  것이 썩지 안할 것으로 완전히 변화되고 완성된 것입니다.

 이러니까. 성령 오면은 이걸 원하고, 마귀가 오면은 예수 믿는 것은 꿈에도  보기 싫고 듣기도 싫고 말하기도 싫고 어짜든지 이 세상 욕심만 가득히 차서 이  세상을 전부 다 차지했으면 좋겠다 하는 그자가 되어지니, 그러니까 그 사람이  세상을 다 차지하고 싶은데 언제 그 사람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와 진리를  차지할 여가가 어디 있겠습니까? 완전히 망한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요 말씀을 그저 암만 들어도 몰라.

 자, 첫째 우리가 제일 지금 구할 것이 뭐입니까?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 구하면 그 다음에 뭐이 나옵니까? 예수님의 대속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대속이 나오면 그 다음에 예수님의 대속에 대해서 감격이 나옵니다.

감격이 나오는데 그 감격이 뭐 입니까? 성령님입니다.

 그래서. 자꾸 우리가. 이 생명의 복음인데. 여러분들이 자꾸 들으니까 이렇지  그렇게 쉬운 거 아니고 뭐 흔한 것 아닙니다. 저는 아무 데도 배우지도  안했어요. 책도 성자들 전기만 내가 읽어 봤지 어떤 교리니, 칼빈 강의가 책은  있지마는서도 칼빈 강의 그거 단 내가 한 서너줄, 한 페이지도 안 읽었어. 한  페이지도 다 안 읽었어. 그라고 버려 버렸어. 다 갖다가 그만, 요번에 그 책을  다 여기 편집실에 다 보냈어요. 다 보냈는데. 아마, 있는 대로 다 보내 버렸어.

아마 저 조그만한 몇 짐은 되겠습니다. 다 보내 버리고 지금 있는 거 이거 보자  뭐인가 모르겠는데 그거 봐야 또 그것도 하나도 쓸모가 없어. 하나도 봐야.

성경 한 권이면 다라.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예사로 여기지 말고 꼭 요대로 실행을 해야, 이라면  돈도 나오고, 이라면 돈도 나오고 지위도 나오고 권세도 나오고 취직도 나오고  영광도 나오고 평안도 나오고 기쁨도 나오고 행복된 가정도 나오고 다  나옵니다. 못나오는 거 없어. 하나님이 지은 것은 다 나올 수가 있어. 다 할  수가 있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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