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기능과 만물의 생사기로

 

1981. 11. 4. 수야

 

본문 : 야고보서 2장 22절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믿음은 어떤것이 믿음인고 하니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사는 법칙을 주신 그  법칙을 따라 행하는 것과 하나님의 주장을 따라 행하는 것과 또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이것이 믿음입니다. 같은말 같으나 하나님의 법칙을 어긴면 죄가 되고, 또  하나님의 뜻이 아닌 피조물의 뜻을 따라하면 불의가 되고, 또 하나님과 동행하지  아니하면 원수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하나님의 법칙대로 행하면서도  자기 주장대로 이 법칙을 행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주장을 따라도 하나님의 그 신격과 동행은 하지 아니하고 그 뜻을  따라 움직이시면서도 하나님과 대립된 사람으로 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새생명을 준 그 대속을 베푸신 것입니다. 죄없는  것보다 의로운 것이 더 깨끗하고, 의로운 것보다 하나님과 동거동행이 더  깨끗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만 아니고 어떤 피조물이든지 제 각각 그것에 대한  사는 법칙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또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셨습니다. 또 하나님에게 속하여 하나님과 함께  살게하신 것이 이것이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에게 대한 하나님이 주신  생애 법칙입니다. 이 법칙을 첫째 아담 인류시조로 부터 어겨서 인간은 다 정죄  불의 하나님과 원수 되어서 저주와 사망 아래에서 점점 죽어져가고 점점 저주가  더 심해져가는 이것이 인생입니다. 여기에서 벗어날길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기에 인생이 일반 생육법으로 나는 것은 살기위해 나는게 아니라 그 숫자를  채워 죽음에 숫자를 채워서 죽기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나는 그 시간부터 한  시간, 두 시간, 일년, 십년 사는 것은 점점 죽음에 속한 것이 죽음의 완성이  되어지는 것이요. 영원무궁세계는 죽은 것이 영원히 죽는 그곳이 지옥입니다.

그것은 없어진다는 말이 아니고 영원히 죽어집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렇게 잘못된 가운데서 영원히 죽는 이것을 예수님이 대신  당하시고 여기에서 대속해서 다시 우리를 살려 놓아 산자로 하나님 앞에  서게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산자로 서게 됐는데 산자로 이렇게 선것이 완전히 영원히 산자가  되는 길이 있고, 또 산자로 되어있는 자가 다시 죽는길이 있어. 죽는 길을 걸어  죽는것을 가리켜서 '두번째 죽는다' 그렇게 말했고 죽었던 것이 예수님의 공로로  살아나 영원히 사는 길을 가리켜서 '영생을 이제 얻게됐다 영원히 죽지 않는  영생을 얻게 됐다' 그렇게 성경에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예수님의 공로로 살아났지마는 에덴동산 아담 해와가 죽지  아니하고 산영이 되어 있었지마는 하나님의 사는 법칙을 지키지 안하고 죽는  법칙을 지켰음을 그가 죽고 그에게 속한 모든자가 다 죽었습니다. 죽기전에  산자로 산영으로 두셨던 그와 비슷하게 우리가 예수님의 공로로 인해서 다시  산자가 됐습니다. 죽은 것은 예수님이 대신해 죽고 우리는 산자가 되었습니다.

산자가 되었으니 산자된 우리가 다시 죽는 법칙을 취하지 안하고 사는 법칙으로  살면 영생하고 죽는 법칙을 취하면 둘째 죽음으로서 영원히 사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영은 법칙으로 하나님의 법칙으로 살렸고 실제로 진리와  성령으로 살리셨습니다. 영은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 심신은 하나님의 심판 법에서는 산자가 되었지마는 실상은  우리 앞에 사는 법을 취하여 사느냐, 죽는법을 취해서 죽느냐 하는 것이  우리앞에 있는 갈랫길입니다. 사는 길을 취해서 산것은 그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는 것으로 영생을 얻게 되고, 하나님의 대속으로 살아난것이 에덴동산  범죄해서 죽은 것처럼 우리의 심신이 사망의 법칙을 취해서 그대로 살면 사망의  법칙을 사망의 법칙을 취한 그것은 둘째 죽음으로 영원히 사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의 법칙으로 영생을 얻게되고 사망의 법칙으로 영원한  사망을 얻게 됩니다. 이래서 성경에 말하기를 "성령의 인도는 생명과 평강이요  방편이요 행동이요" 성령의 법칙이 살고 평안하는 법칙과 행동과 방편인  것입니다. 그러면 잊어 버리지 마십시오. 사는 법칙이 무엇인가? 세 가지입니다.

죽는 법칙이 무엇인가 세 가지입니다. 이 사는 법칙을 자기가 지켜 행할 때에는  천하에 모든 것이 죽일려고 해도 죽이지 못합니다. 또 죽는 법칙을 행할 때에는  모든 피조물이 다 그를 살릴려고 해도 소용 없습니다. 왜? 이 법칙을 내신 분이  창조주시요. 이분이 주재시요 주권자시요 이분이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분이 죽는법 취했으면 이분이 죽이기 때문에 안죽을 수 없고 사는법을  취했을때에는 이분이 살리시기 때문에 죽일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는 법을 취했는데 죽는 법칙을 가진 이 세상이 죽인다고 해서 죽였으면 사는  법칙 때문에 죽였으면 이 사는 법칙을 내신분이 다시 죽지 아니할 것으로  영생으로 살려버립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이 사는 법칙을 행해 갈때에  사는 법칙으로 산다고 사는 법칙을 변개시키려고, 사는 법칙을 버리고 저희들이  말하는 사는 법칙대로 살려고 할때에 예수님이 사는 법칙을 변개시키라고, 사는  법칙을 버리고 저희들이 말하는 사는 법칙대로 살려고 할때에 예수님이 사는  법칙을 바꾸지 안했습니다. 마귀가 내논 사는 법칙은 하나님이 내시는 사는  법칙에 정 반대요. 마귀가 내논 죽는 법칙은 하나님이 내신 죽는 법칙에 정  반대입니다. 반대로만 생각하면 됩니다. 둘뿐입니다.

예수님은 사는 법칙을 떠나지 안하면 죽일자가 없다. 사는 법칙을 지켜 행하면  어떤게, 뭐라고 한다고? 죽인다고 해도 사는 법칙을 내신 분이 이 법칙을  책임지고 살리시기 때문에 죽여도 이분이 살리시기 때문에 죽이지를 못한다 하는  것을 확고히 믿었기 때문에 요동치 안하니까? 그러면 네가 그 법칙을 버리면  죽인다.죽인다 할때에 죽인다는 그말이 죽일터이니까 사는 법칙을 떠나 저거  법대로 사는 법칙을 취하라 하는 그것이 하나님 법칙에는 죽는 법칙입니다.

저거 법칙대로 사는 법칙을 취하라 할때에 저거 말 대로의 사는 법칙을 버리고  하나님이 전한 사는 법칙대로 행함으로 그들이 하나님 법칙대로 법칙 법칙대로의  사는 법칙을 행하고 저희들이 주장하는 사는 법칙대로 하지 안한다고 해서  예수님을 죽여버렸습니다. 죽여버리니까? 예수님은 이미 죽일때가 된 그 생명이  사는 법칙때문에 죽었기 때문에 그 죽음을 사는 법칙대로 행한 죽음이기 때문에  사는 법칙을 내신 분이 이를 영원히 살려버렸습니다. 다시는 죽이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이 아닌것이 하나도 없는데, 하나님이  지으신 것은 사는 법칙과 죽는 법칙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정해 놓으셔서 죽는  법칙은 제가 죽는 법칙이요. 불의가 죽는 법칙이요.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죽는  법칙이요. 사는 법칙은 죄가 죄를 없이하는 것이 죄없는 것이 사는 법칙이요.

의로운 것이 사는 법칙이요. 또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 사는 법칙입니다. 이  법칙은 영원히 변개치 않습니다. 무궁세계에가도 이 법칙대로 입니다. 영원히 이  법칙은 살고 죽는 법칙입니다. 변개하지 않습니다. 변개가 없습니다.

그대로입니다. 우리는 이 사는 법칙과 죽는 법칙에 대한 확고한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이 지식을 가져도 이 악령은 모든 사람을 저희 부하를  만들어가지고 죽는 법칙을 가지고 이게 사는 법칙이지 하나님이 말씀한 사는  법칙은 사는 법칙이 아니라고 주장을 합니다. 또 하나님이 사는 법칙은 저희들이  이게 죽는 법칙이라고 씨워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온 세상은 하나님이 사는 법칙을 그들은 죽는 법칙이라고  하나님이 이러면 죽는다는 죽는 법칙을 사는 법칙이라고 우겨뎁니다.

우겨데가지고 날뛰는 그것이 온 세상이 진리를 대적하는 악령의 역사입니다.

이럴 때에 우리가 이 지식을 확고히 가지고 요동치 아니하고 사는 법칙으로만  나갈때에는 죽이는 것이 없습니다. 죽지않습니다. 죽었다고 하면 죽을때가  되어서 죽는데, 조금이라도 시간 전에는 조금매 시간 전에는 못죽이는데  죽을때가 되어서 사는 법칙대로 산다고 사는 법칙대로 그들이 죽이는 법칙가지고  죽였으면 이미 죽을것이 사는 법칙대로의 죽은 것이 됐기 때문에 죽은 그것이  죽음 그것이 사는 법칙대로의 것이 됐기 때문에 그 죽음이 영원히 삽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패물 이용이라. 그렇게 말해 패물 이용이라. 패물 이용이라.

이미 죽는 것이니까? 못쓸 것인데, 끝난긴데 끝난 그것이 하나님의 생명 법칙  때문에 그것이 죽었기 때문에 그 죽음 그것이 영원히 살아 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순교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를 사는 그것도 허비 하지말고 사는 그것을 잘 이용해서  살리지마는 마지막에 죽음이라는 그 큰 폐물, 그 큰 폐물을 이용해 가지고  영원히 살게하는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순교로 대접하는  대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의 육체의 것이든지, 영의 것이든지, 소유든지, 지위든지,  쾌락이든지, 명예든지, 권세든지, 자기의 업체든지, 뭐이든지 뭐이든지 요세는  법칙이로만 살고 죽는 법칙으로만 죽습니다. 요걸 확고히 가져야 됩니다.

어떤 사람이 회사를 경영할 때에 그 회사가 죽는 것은 하나님이 죽는다는 그  법칙으로만 죽지 그 법칙외에는 죽이는게 없습니다. 만일 그 법칙외에 다른 것이  사는 법칙으로 그 회사가 사는데 사는 법칙으로 산다고 안 죽는가 보자 하고  죽는 법칙을 가지고 저희들이 강제로 죽였습니다. 죽였으면 그 회사는 사는  법칙으로 인해서 끝이 났습니다. 사는 법칙으로 인해서 끝이 났으면 그 회사는  영원히 사는 것으로 살아납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살리니까! 그거는 영원히 그 회사는 살았고 하나님이  다시 때가 되지 안했으면 살리기를 사는 법칙으로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것을 다시 사는 법칙으로 살게하기 위해서 새것으로 여러배 백배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일생 생활에 온갖 부분 온갖 요소 온갖 종류  그것이 있습니다. 그 가정이 따뜻한 행복한 그 행복한 가정으로 살면 그 행복한  가정이 행복을 가지니 그 행복이 안죽고 사는 법칙은 세 가지 이것입니다. 죄가  없어야 안 죽고, 의로워야 살고, 하나님과 함께해야 그 가정이 되면 죽습니다.

그 가정이 하나님을 떠났으면 죽습니다. 망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닥치는 모든것  이것이 사느냐, 죽느냐 하는 이것은 이 법칙으로만 살고 죽는것이 결정된다 하는  이것을 확고히 잡아야 됩니다.

만일 그것이 하나님의 법칙대로 삶으로 이 세상에 있다가 하나님 법칙대로 살면  안죽는가 보자 하고서 저들이 그들의 사망의 법칙을 가지고 죽였습니다.

하나님의 법칙대로 사는 것을 살라는 것을 그들의 사망의 법칙을 가지고  죽였습니다. 불법으로 죽였습니다. 죽였으면 그것이 생명의 법칙으로 끝냈기  때문에 그거는 영원히 살았습니다. 그것이 끝이 날 때가 됐으면은 영원히 산  그것으로 끝났고, 이미 죽을 것이 영원히 산 것으로 끝났고, 구속을 받았고,  아직까지 남은 그것을 관리할 수 있는 남은 때가 있으면 하나님께서 그것은  생명의 법칙으로 생명으로 옮겨 가버렸고 아직까지 기한이 남았으니까 다시  생명의 법칙으로 살 수 있는 것을 다시 줍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생명을 가지도 그 생명은 다시 얻은 생명이요. 그 업체를  얻어도 그 업체가 남은게 아니라, 그 업체가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마는 그 업체는  하나님께서 다시 주시는 것입니다. 마치 이삭이 그 이삭이 죽지 아니하고  살아있지마는 이삭은 죽음 가운데서 다시 산 이삭이라 새로 아브라함이 얻은  이삭이라 마치 말하면 욥은 그 자녀들이 죽고 새로난 것은 새로난 것이라.

그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욥은 죽었는데, 다시 배나 자녀가 나오지  안했느냐? 배나 나온 그 자녀는 죽은 자녀가 아니고 새 자녀가 나왔지,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법으로 인해서 없어진 것이 다시 그것이 없어졌는데,  하나님이 있게 하셔서 다시 있게 된 그것은 뭐이냐? 그것이 남아 새로 살아  세상에 있는게 아니라. 그것은 같고 다시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새것으로 그에게  주신 것이라. 내나 그 회사, 그 집, 그 뜰이 그대로 있어도 하나님이 다시 주신  새것이라. 새로 지음받고 하나님이 새로 주신 것이라 하는 그것을 우리에게  알리기 위해 가지고 형식계시로 많이 보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 나갈때에 모든 것에 있어서 죽느냐? 사느냐? 망하느냐?  흥하느냐? 우리는 살기를 원합니다. 흥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망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죽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사는 것을 원하고 죽는 것을 싫어하는 이것이 전체 사람인데  사람의 소원인데 사는법은 하나님이 지어 놓으신 것의 피조물의 사는 법은 이는  옛날 에덴동산때도, 사사때도, 선지자때도, 신약시기의 초기도, 지금도,  영원무궁도 사는 법칙 죽는 법칙은 변동이 없습니다. 영원히 변동없이 변동이  없는데 우리가 이 지식에 대한 확고한 그 확신이 없습니다. 확신이 없기 때문에  무죄가 무죄라야 안죽고 의라야 살고 하나님과 결합이 돼야 사는줄을 번연히  알고 죄있으면 죽고 불의면 죽고 하나님 떠나면 죽는 줄 우리가 알지마는 자기가  현실을 당면할때에 기업체가 죽는다. 지위와 권세가 죽는다.

이럴때에 우리가 당황합니다. 이 지위가 사는 것은 뚜렷이 사죄 칭의 하나님과  화합 이거 외에는 사는길이 없고 죽는것은 죄 불의 하나님과 떠나는 원수되는 것  이외에는 죽는 법이 없는줄을 우리가 알고 외우고 수백번 외우고 수천번 외우고  확실히 알고 설교도 많이하고 증거도 많이하고 이래도 실제면에 턱 닥치면  악령은 달라들어서 우리를 유혹시킵니다. 저들이 이제까지 가지고 있는 그 법은  타락한 인간의 머리에서 내논 법이요. 그 법을 최고로 조정한 것은 악령입니다.

불신자들 마음 가운데에 마음을 주장하는 공중에 악한 신이라 에베소 2장에  말씀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인간을 죽이려는 것이 저희 목적이요. 저의 사명이요. 저의  직책이요. 인간을 죽이고 망하는 이것이 자기 직책인 그 자가 해논 그 전법이  세상이 사는 방편이요, 세상이 죽는 방편입니다.

이러니까 세상이 사는 방편은 하나님에게는 죽는 방편이고 세상이 죽는 방편은  하나님에게는 사는 방편이고 이러니까 이 사는 방편이 둘이고 죽는 방편이  둘인데 하나님이 낸것과 이 세상이 내논 것과 이 둘이 되기 때문에 우리가  확고히 사죄 칭의 새생명에서 살고 죄 불의 하나님과 원수된데서 죽는다는 요  지식을 확고히 가지고 있으면서도 실제로 자기 회사가 죽는다. 자기 명예가  죽는다. 자기 지위가 죽는다. 자기의 재물이 죽는다. 자기가 딱딱한 안락한  재미있는 가정이 죽는다. 행복이 죽는다. 기쁨이 죽는다. 애정이 죽는다. 뭐이  죽는다. 턱 이렇게 닥칠때에는 얼떨떨합니다. 얼떨떨합니다.

하나님의 법칙으로 보면은 이래야 사는데, 세상 법칙으로 말하면 이래야 살고  하나님 법칙으로 하면 이라면 죽는데 세상 법은 또 저래야 죽는다하고 이러니까  어느 법칙을 쓸까해서 얼떨떨하다 이거요. 그래가지고 이 지식이 확고치 못하고  자기가 말도 많이하고 설교도 많이하고 똑똑히 외우기도 많이하고 잘알고  있지마는 이 지식이 확고치 못해서 확고치 못하다 말은 알면 인정이 돼야 되는데  인정이 돼야 되는데 믿어져야 되는데 하지마는 믿어지지 안합니다. 믿어지지  안해요.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네가 이 우상에게 절하지 안하면 불미에 넣어서 죽인다.

그러니까 그들이 말하는 것은 그 우상에게 절을 해야 사는 법이요. 우상에게 절  안하면 죽는 법이라 그말이오.

이런데 하나님의 법칙에는 우상에 절하면 사는게 아니라. 우상에 절하면 죽는다.

우상에 절 안하면 산다. 이러니 하나님이 법칙과 그 인간들의 법이 정 반대가  되기 때문에 얼떨떨하다 이거요. 하나님 법칙대로 해야 사는데 이 사는 법칙은  이런데 이렇지마는 그 법칙대로 하면 산다는 그것이 믿어지지를 안해. 의심이  나고 인정이 안돼. 뭐 우상에게 절하지 안하면 이 장사들이 옆에 와 가지고 지금  뭐 팔뚝이 이런 팔뚝센 장사들이 뚝 나한테 와 가지고 뭐 이래가지고 지금 이래  쌓고 있는데 그 말해라. 말해서 우상에게 절 안하면 저 불속에 집어던진다.

이러고 있는데 자 번연히 보니까 불속에 들어가면 타죽는 것인데, 하나님  법칙에는 우상에 절하면 죽는다 하지 또 우상에 절 안하면 산다하지 세상에서는  우상에게 절 안하면 죽인다하지 하나님의 법칙은 우상에 절하면 죽는다 하지  절안하면 산다고 하지 이래 놓으니까 이 기가 찬다 이거요.

이러니까 그때에 사람들이 어느법을 취하느냐 하는 그것이 인간의 실력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실력이요. 그것이 인간의 실력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실력이요.

그것이 인간의 인격이요. 그게 권위요.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네가 이 금으로  만든 이 신상에게 절을 하지 안하면 불미불에 던져서 네가 타죽을긴데 불미불에  던져 들어가도 네가 섬기는 신이 구원하겠느냐? 이래 물으니까 구원할 수는  있는데 구원하실런지 안하실런지 당신의 뜻이 구원하실터면 불속이 아니라 암만  문제가 없이 구원하실 것이고 당신의 뜻이 아니면 구원을 안하시는데 당신이 이  불에서 살리든지 안 살리든지 사는 법칙이 우상에게 절 안하는 것이 사는  법칙이기 때문에 나는 이 법칙을 취해서 갑니다. 우상에게 절하면 우상에 절해야  살아난다고 당신들이 그래 말하지마는 우상에 절하는 건 죽는 법칙이기 때문에  죽은 법칙을 내가 안합니다.

그 죽는 법칙이라는 것이 확실히 믿어지고 절 안하는 것이 사는 법칙인 것을  확실히 믿어지기 때문에 그들은 그 다급한 불미앞에서 이 두 법칙이 시비를 해도  두 법칙이 신강이를 해도 이 사는 법칙이 믿어지는 것이 요동치 않기 때문에  그들은 평안했다 그말이오. 평안했어. 그들은 담대했어. 그들은 요동치 안했어.

죽고사는 당신의 주권에게 있는데 우리가 사는 법칙은 우상 절 안하는 것이 사는  법칙이기 때문에 나는 사는 법칙으로 가고 사는 법칙으로가지마는 내 생명이  끝날때가 됐으면 당신이 끝나게 하실 것이고 불에 탐으로 끝나게 하시면 끝나게  하는데 그것은 당신의 뜻에 있는 것이지 있는 것이지 자기네들이 이렇게 죽인다.

불로 죽이는게 아니다. 죽이고 살리는 거는 당신에게 있다. 우리는 이것이 사는  법칙이고 이거는 죽는 법칙이다 하는 것을 의심치 안하고 믿어지는 신앙을  가졌기 때문은 그럴때에 당황하지 안했고 기뻤고 즐거웠고 의심하지 안했고  요동치 안했고 흔들리지 안했습니다.

이제 그러기에 인간의 실력이 사는 하나님이 정한 사는 법칙과 죽는 법칙,  인간이 정한 사는 법칙과 죽는 법칙 이 둘이 있는데 하나님의 법칙과 인간 법칙  둘이 있는데 이 법칙에 대해서 어느정도 제가 이 법칙을 인정하느냐? 인정하는  그 차이가 어떤 사람은 조금 인정하지 않는 사람 그러기에 사람들이 살아나가는  이 길에는 죽는 법칙 사는 법칙이라는 이 법칙이 꼭 따라다닙니다. 어느 법칙을  네가 사용할래. 어느법칙을 사용할래 하는 이것이 우리의 현실마다 이 법칙으로  우리는 죽고 사는 것입니다. 이 법칙이 해당되지 안하는 현실이 하나도  없습니다. 전체가 이 법칙에 해당됩니다.

그러기에 이 현실에서 사는 법칙으로 이 현실에 살고 또 죽는 법칙으로 죽고  이러니까 다 살기를 원하고 죽기는 싫어하는데 하나님의 살리는 이 법칙대로  살아 살고 세상이 살리는 이 법칙대로 살아 살고 그러면 하나님 법칙대로 살리는  이 법칙으로 사느냐? 세상이 살리는 이 법칙으로서 사느냐? 이것으로 사는  사람들은 사는길을 택합니다. 회사를 살린다. 지위를 살린다. 명예를 살린다.

권위를 살린다. 행복을 살린다. 기쁨을 살린다. 쾌락을 살린다 하는 이게 전부  이 법칙가지고 합니다. 이게 인정이 됩니까? 따라옵니까? 인정하는데 이 사는  법칙과 하나님 법칙과 세상 법칙이 둘이 조그만한 애기 싸움 어린아이 싸움과  같은 요런 싸움이 붙었을때에는 자기가 사는 법칙을 취했다가 장골이 장골 싸움  같은 이 두 가지 법칙이 힘있게 강하게 싸우는 그때에는 고만 그 사람이 사는  법칙이 죽는 법칙에게 미혹을 받아가지고 사는 법칙으로 살지 못합니다.

이러다가 한번 미혹 받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는 다시 지나가고 나니까 후회가  되어서 그 다음에는 고만하고 죽는 세상 법칙과 하나님의 법칙 세상이 산다는  사는 법칙과 하나님의 법칙이 둘이 지난번에 실패한 고만한 법칙에게 강도가  당했을 때에는 자기가 한번 연단받았기 때문에 하나님 법칙을 버리지 안하고  하나님 법칙대로 이와같이 행해 나가게 되서 점점 자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현실 현실에서 사는 것이 하나님의 사는 이 법칙을 인정하는  그것으로서 그 현실에 살아나고 또 하나님의 법 사는 법칙을 이것을 인정치  못해서 세상이 사는 법칙이라는 그 법칙이 인정이 됨으로서 그 법칙을 따라서  죽고 하나님의 법칙을 따라 살고 세상 법칙을 따라서 죽고 산다 했는데 죽으니까  그거는 미혹입니다.

이렇게 나가는데 그러면 자기가 만나는 현실 현실에서 하나님이 정하신 사는  법칙이라는 그 법칙이 인정이 되어지는 것으로 인정이 되어지는 것으로 자기가  사는 법칙을 택하는 것이 아니고 인정이 되져도 인정이 되어도 인정보다 더 간한  그 믿어지는 믿어지는 인정보다 확신되는 고 확신이 있으면 고 현실에서는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이 살리시는 이 법칙을 아는 것 그위에 자기가 그렇다고  인정이 되는 것 그위에 확신이 되는 것 그러면 하나님의 살리는 이 법칙을 알되  세상이 살리는 이 법칙을 알아서 세상이 살리는 이 법칙은 살린다 하지마는 그  죽는 법칙이라 죽이는 법칙이라 하는 것이 이 두 법칙이 알고 그 다음에는  인정이 되어지고 그 다음에는 확신이 되어지는데 확신이 되어지면 한번 확신이  되어졌으면 그걸로서 다냐 요만한 요만한 정도에서는 확신이 됐는데 요만한  정도에서는 확신가진 확신을 가졌는데 마귀가 와 가지고 이 확신을 나를  깨트릴려고 해도 깨지지 안하고 확신을 가졌는데 그 다음에 요게서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에 이겼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 마귀의 지식이 강한 지식이 이 지식을 이것을 능가할만한 강한  지식이 와 가지고 우리에게 마귀 의사는 지식 마귀의 사는 지식이 강하게 와  가지고 하나님의 사는 지식은 틀렸다. 네가 몰라. 그렇다. 이렇게 더 큰 것이  올때에는 여기에서는 사는 하나님의 지식에 대해서 확신이 있어가지고  살았지마는 그 다음에는 확신이 없으면 이 법칙이 사는 법칙인데 암만했봤자  안죽는데 이 법칙이 사는 법칙인데 무슨 문제라 전능자가 나를 지키시고  전능자가 나를 보호하시는데 무슨 문제라 전능자가 자기를 아듬고 있다는 것  전능자가 자기를 보듬고 있다는 것 전능자 품안에 안겨있다는 것 이것을 요렇게  하나님이 사는 법칙 죄짓지 안하고 의롭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요거 자기가  요대로 살면 하나님이 전능 자가 자기를 품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원수가 해해도  문제가 없다 논리는 이런데 이제 믿어지지 않는다 말이오.

논리는 이런데 믿어지지 안해. 믿어지질 안하니까 말은 했지마는 믿어지지  안하니까 이게 고통입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그 사람들은 우리가 그런  장면을 당했을때에는 번연히 우상에게 절하면 죽는 것이요. 우상에게 절하지  안하고 하나님의 법칙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영감을 따라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과 동행에 이러면 전능자가 나를 아듬고 있으니까 전능자는 불보다 세력이  강합니다. 사자보다 세력이 강합니다. 불을 불귀신을 멸할수도 있고 사자입을  봉할 수도 있고 사자를 녹을수도 있고, 이러니까 강하니 이 강하신 이분이  자기를 아듬고 있다는 보호하고 있다는 이것이 믿어지면 그때 두렵지 아니하고  기쁘고 즐거울 정도로 믿어지면 그때에 평강을 누리는데 자기가 그 이하에  사소한 데에서는 믿어져서 평강을 누렸지마는 막상 생명문제인 이 큰일 번연히  불미에 집어 넣는데 집어넣는데 여기에서도 당신이 구원한다 하는 그것이  믿어지지 안할때에는 고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지식에 확고성의 그 강도에 따라 그  사람의 기쁨도 평강도 그 사람의 생애도 그 사람도 그만큼 강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떨어질때에는 그 사람은 고통되는 것입니다. 이기지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하시기를 이 세 가지 생명의 법칙을 우리에게 주시면서 이 법칙이  사는 법칙이라는 것 인정하는 것 이거 믿는 것입니다. 믿음으로만 우리에게  구원하지 믿음이 없이는 다른거는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구원하면  하나님이 불법이요. 이걸 인정하고 인정하는데 예를 들어서 불미에 집어 넣을라  하는데 그때에 자기가 떨면서 하나님 하나님의 법칙에 우상에 절하지 안하면  하나님 나 보호해서 살릴줄 압니다. 살릴줄 압니다. 이러면서도 그 평강이 없이  불에 들어가면 타죽는다는 그 공포나 두려움이라는 그것은 꼭 그대로 갔다  그말이오. 그러면 그 두려움 없는 그것이 믿는 정, 도수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두려움이 없기까지 두려움이 없기까지 그래야 그분의 능력을 믿는  것이요 믿는 것이라 말이오. 이러니까 두려워하는데는 형벌이 있습니다.

두려워하는 자는 어데 못들어가 두려워하는 자는 성안에 들어오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자는 성밖에서 있어 두려워하는 자는 성밖에 있습니다. 구원성 밖에  있다 그말이오. 두려워하는 그걸 좀 경험을 해야 되는데, 여기에 지금 6. 25때도  여 있는 사람들 그 경험을 안해서 참 불쌍해요. 경험을 해야 되는데, 번연히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영감 성신의 감화감동 양심대로 진리대로 하나님 모시고  이래하면 전능자가 날 아듬고 있는데 전능자의 품안에 있는데 두려울게  뭐있겠습니까? 예를 들어 어린 것들이 어린아이들에게 뭐 지식이 천박하지마는  저거 동무하고 싸우다가 저보다 좀 큰 골목대장이 와 가지고 막 주먹으로  떼릴려고 이러니까 겁이 나가지고서 달음질 쳤습니다. 달음질 쳐가지고 저거  아버지 이 사타리새 딱 쫒기가지고 그 품기가지고 뭐라합니까? 아나 때리라 아나  때리라. 하지 안해요. 아나 때리라. 아나 때리라 해도 뭐이냐 하면은 그것보다  더 능가할 세력있는 아버지가 아듬고 있기 때문에 그 품에 안겼으니까 제까놈이  와 가지고 때리지 못할거라 말이오. 아나 때리라. 촉분을 지기면서도  두려워합니까? 촉분을 지길만침 평안하다 말이오. 이 모양으로 이것이 아버지의  능력이 큰것과 그를 능가할 것인가? 보호한다는 이게 믿어지기 때문에 그렇다  말이오.

간단하게 말해서 이렇게 하나님이 이 생명법은 책임진다. 또 이 생명법을 떠나면  천하가 살릴라해도 죽는다 요 지식이 어느정도 자기에게있느냐? 이 지식이 자기  현실에 이 지식이 능가할 때는 그때 평안하고 즐겁고 쉽게 이 법도를 지킬수가  있고 이 지식에 흔들릴 때에는 그 현실에서 이 법도를 지키지 못하고 평안할리가  없는 것입니다.

억지로 지킨다고 해도 믿어지지 안하면서 억지로 지키기 때문에 그는 믿음이  아니요.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을 인정한다면 강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도울 수가 없다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자는 성밖에 있고  성안에 들어가지 못한다. 구원성안에 들어가지를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요는 뭐이냐? 내가 다니엘 같은 그런일을 닥치든지 또  공산주의자들이 와 가지고 죽인다고 이와같이 하는 것이든지 독침을 가지고  다니든지 이렇게 할때에 그때에 하나님의 그 보호가 보호한다는 이것이 믿어지는  것이 있어야 할 것인데 그게 없는게 문제입니다. 믿어지지 안하면 믿어지지  안하면 하나님이 역사할 수가 없어. 믿어져야 하나님이 우리를 구출할 수가  있어. 믿어져야 구출할 수 있는데 믿어지지 안하면 헛일이라 그말이오.

여러분들이 오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 지난밤에도 내가 잠깐 좀 근심한 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보이니 이러니까 네가 이렇게 하라 했으니 그거 아니면 내가  평안하겠는데 그걸 무시하면 하나님이 지시해 주시는 거는 무시하는 것이니까  그것도 하나님을 거슬림이라 말이오. 영감을 거슬림이라 말이오. 과거에 내가  거창 위천교회 있을때도 하나님이 그래 가르칠 때에 그때에 피해서 그 원수의  욕망을 이루지 못했다. 이거야,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신구약 성경을 주신  이 법칙을 알기가 쉬운데, 이거는 쉬운데 이것을 지키는 것은 뭐이냐 하면 죄를  짓지 안하는 것입니다. 이걸 지키는 것은 죄를 짓지 않는 것이요. 의가  아닙니다. 이걸 지키는 것은 죄를 짓지 않는 것이요. 의는 뭐이냐? 그 법칙속에  그 법칙은 하나님이 법칙 내 줬는데 이 법칙 법칙 범위 내에서 하나님이 그때  그때 지시하시는 하나님 뜻이 있다 그말이오. 하나님이 고게 영감입니다. 고게  따라야 고게 의가 된다 고말이오.

그리고 이제 아무리 영감에 따라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성경이 말한대로  알고 이분을 자기가 모시고 있다는 것이 인정되는 그것이 하나님과 동행입니다.

인정함이 동행인데 이 인정이 안되면 입뿐이지 입신자요. 지식 신자지 입  믿음이요. 지식 믿음이지 실상 믿음이 아니라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그런 일이 다 닥쳐도 이 생명법 사망법이 요동치  안하고 어떤 것이 와도 그 현실을 능가할 만한 그 현실을 능가해서 현실이 나를  내 이 지식을 현실이 생명법 사망법을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이 지식을  믿어지는 이 믿어지는 것을 흔들 수 없는 자가 되면 그걸 이긴다 말이오. 흔들  수 없으면 이기는데 흔들 수 있으면 우리는 실패라 그말이오. 흔들 수 없는 그  모든 현실이 닥칠때에 흔들 수 없는 그것을 능가할 능히 이길 수 있는 그런  믿어지는 이 믿음이 우리에게 문제입니다. 믿어지는 믿음이 문제인데 이 믿음을  우리가 마련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만드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면 이 믿음을 만드는데에는 어떻게 만드느냐? 그 만드는 것이 여기에  있습니다. 어떻게 만드느냐? 믿음이 하는 그말은 자기가 인정하는게 말입니다.

인정하는 이 생애법칙을 인정하는 것이 행함과 함께 일하고 인정하는 이것이  행동하게 됩니다. 인정하는 이것이 행동하게 됩니다. 자기가 생명법 이 법은  생명법이라 인정하는 것만치 자기는 생명법대로 하게 됩니다. 또 사망법을  인정하는것 만치 사망법을 피합니다.

그러면 생명법을 알고 사망법을 아는 요것만침 자기가 사망법을 떠나서  생명법으로 행하게 된다 행하게 된다. 그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한다. 행하게  돼. 무슨 일에 일한다 행함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온전히 되었느니라. 이렇게  자기가 인정하는 예를 들면은 접촉해오는 나를 이 하나님이 생명법 사망법을  나에게 주신 이 법에 대한 확고한 이 확고한 실력을 실력을 아이만한 마귀의  실력 세상 실력 아이만한 세상이 저거가 마련한 살리는 법 죽는 법 이걸 가지고  하나님을 믿는 우리를 미혹시킬려하는 그것이 아이만한 힘을 가지고 올때에는  내가 그 아이만한 그런 미혹이 올때에 이길 수 있는 실력을 가졌는데 어른만한  것이 오면은 나는 팍 쪼그라져서 하나님의 생명법을 믿던것이 다 어디로  가버리고 세상법에 따라가버리고 끌려버리고 만다 그말이오. 그 현실에 도수가  높아지고 높아짐에 따라서 그 세력들이 강하게 오니까? 그러면 우리는 이 일학년에서는 능히 마귀의 법칙을 이기고 하나님의 법칙을  이겨 마귀법을 이길만한 그만한 실력이 있지마는 이학년 마귀의 법칙이 오면은  나는 이길 힘이 없다 그말이오. 없는데, 이학년 이길만한 그 믿어지는 내 실력을  다 가져야 되는데 그것을 가지는데는 어떻게 가질 긴가? 가지는 법칙이 딴거  아무것도 없어요. 일학년 법칙을 가지고 일학년 마귀가 오는 것을 능가할만한 그  법칙이 있으면 자기가 현실에서 일학년 그 실력만한 법칙을 가지고 일학년으로  오는 그것을 내가 양보하지 안하고 그것을 이 법칙대로 행해서 그것을  이겨버립니다. 내가 일학년을 이겨 버렸습니다.

일학년 내 믿음에 실력을 가지고 일학년 마귀에 유혹을 이겨 버렸습니다. 이겨  버리면 고다음에는 뭐이 나오는고 하니 이학년이 오면은 이길만한 이학년이  이길만한 믿음에 실력을 하나님께서 고 댓가로 주시는 것입니다. 고것이  행함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온전케 된다. 또 믿음으로 믿음에 나아가게 된다.

믿음에 나아간다. 네가 요 정도에서 믿어지는 그 믿음이 있을때는 내가 믿어지는  그 믿음 이하에 오는것은 너는 언제든지 웃는다. 기쁘고 즐겁다. 애굽병정과  홍해에 어려움이 앞에 부딪쳤는데 모세는 그 쯤은 믿어지는 믿음을 가졌다  말이오.

그러니까 모세는 기쁘고 즐거운데 그 다른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죽겠다고  지금 참 가슴에 콩이 튑니다. 그면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오는 그 현실에  닥쳐온 그것을 능가할만한 믿어지는 믿음이 있을때 내가 믿어지는 믿음 이하에  것들이 올때에는 나는 기쁘고 즐겁고 평안하고 또 하나님은 그 믿어지는 믿음을  가지고 일할수 있다 그말이오.

그런데 그 이상에것이 내게 부딪칠때에는 그 이상에것이 부딪힐때에는 내가  믿어지는 믿음이 거기에 가 가지고는 흔들립니다. 거기에 가 가지고 흔들려지고  암만 믿을라해도 믿어지지 안해. 암만 믿을라고 해도 믿어지지 않는다 이거요.

믿어지지 안하니까 자기에게 불안이 옵니다. 불안이 오면 그게 우리의  고통입니다. 우리의 고통. 왜? 그 고통이 뭐이냐? 믿지 안한것 때문에 고통이요.

또 그 고통에서는 그 두려움이 떠나지 안하면 반드시 패전하고 맙니다. 왜  패전합니까? 하나님이 와 가지고 그것을 역사할 수가 없다 그말이오. 줄수가 없어. 이러니까  고 다음이 고 다음의 것을 오는 것을 능가할 수 있는 고 믿어지는 믿음은 어데서  나오느냐? 믿어지는 믿음은 자기가 현재 믿는 고것가지고 고대로 실행할 때에 고  이상의 것을 믿어질 수 있는 고 믿음을 받고 고 믿음을 받아가지고 또 고대로  실행하면 고 다음에는 그 이상의것을당할 때에 믿어지는 믿음을 가지고 이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

이러니까 우리가 평안 무사할 때에는 무슨 일을 하는 것인고 하니 평안 무사할  때에는 자기에게 믿어지는 믿음 가지고 보스라기 그 모든 전쟁을 해 가지고  믿어지는 믿음으로 또 고대로 지키고 믿어지는 믿음을 가지고 지키니까 그것보다  더 믿어지는 믿음이 나오고 또 믿어지는 믿음 가지고 또 실행을 해 지키니까  그보다 더 큰 믿어지는 믿음이 나오고 자꾸 이렇게 자라고 자라고 해 가지고  믿어지는 믿음 그것으로 처음에는 아주 보잘 것 없는 그 주먹덩이만한 요런  믿어지는 믿음을 가지고 고 믿음 가지고 고 믿어지는 고 믿음 가지고 사는  법칙을 고대로 지켜서 고 믿어지는 고 믿음 가지고 지켜 행하니까 고 다음에  결과로 맺어지기를 이 매주덩이만한 믿어지는 믿음이 생기고 고 믿음 가지고 또  실행을 하니까 집체만한 믿어지는 믿음의 생기고 또 고다음에 집체만한 믿어지는  믿음 가지고 고대로 실행하니까? 그 다음에는 태산만한 믿어지는 믿음이  생기지고 태산만한 믿어지는 믿음 가지고 실행을 하니까? 고 다음에는 온 세상을  다 이길 수 있는 환란이냐, 곤고냐, 핍박이냐, 기근이냐, 적신이냐, 위험이냐,  칼날이냐? 누가 우리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를 끊으리요  높음이냐? 깊음이냐? 뭐 천사냐? 피조물이냐? 그 어떤것이냐? 이 모든 것에서  우리를 구원하고 남음이 있다.

어떤것이 여기에서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겠느냐? 이는  믿어지는 믿음. 그러기에 우리 성도의 성공이 믿어지는데서 성공이 있고 우리  성도의 평강이 믿어지는데서 평강이 있고 우리 성도의 성도의 그 평강이나  성공은 하나님의 살리는 이 법칙이 우리의 사는 길인데, 이 법칙을 누가 그래  걸어가는 것이 믿어져야 걸어갑니다.

믿어져야 걸어가니까 믿어지는 이것이 조그만한 믿어지는 것이 조그만한  성공을하고 큰 믿어지는 믿음이 큰 성공을 하고 믿어지는 이것이 성공하고  믿어지는 이것이 평안하고 믿어지는 이것이 즐겁고 믿어지는 이것이 담대하고  믿어지는 이것으로 인해서 우리는 세상을 이깁니다. 세상을 이기고 구원을  이루어가는 건데 믿어지는 믿음 이것을 키워가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 밤에 이제 결론은 이것이요. 믿어지는 믿음 그것으로 인해서 성도는 세상의  기쁘고 즐거운 평안한 세상이 된다. 그것가지고 온 세상을 이용을 해서 자기  밥이 되고, 가지의 그 소유로 자기의 이용물이 되어진다. 믿어지는 이것이  보배다. 믿어지는 평안도, 성도의 기쁨도 믿어지는데서 나오고, 성도의 평안도  믿어지는데서 나오고, 성도의 담력도 믿어짐에서 나오고, 성도의 능력도  믿어지는데서 나오고 하나님이 그 능력이 성도의 것이 되어지는 것도 믿어지는  믿음 이것이 커진다. 조그만한 믿어지는 믿음이 큰 믿어지는 믿음으로 되어지고  큰 믿음이 더 큰 믿어지는 믿음으로 믿어지는 믿음으로 되어지니 믿어지는 믿음  이것을 키우는 방법이 뭐이냐? 믿어지는 믿음 이것을 키우는 방법은 믿어지는  믿음 고것 가지고 행하면 고다음에 그보다 더 큰 믿어지는 믿음이 나온다.

이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룬다" 응 "믿음으로 믿음을 이루나니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인은 살리라" 죽이지를 못해요. 이러니까 요것이 실상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말로만 말 신자가 되지 말고, 자기가 요 뭐 믿어져 하나님의 사는  법칙 요 법칙대로 조그만한 것 하고 나니까 조그만한 것하고 나니까 그 다음에  이 법칙으로 더 큰 것 할 수 있게 되고, 또 고거하고 나니까 더 큰 것 할수가  있고 이래서 사는 법칙 이것만이 사는데 사는 법칙으로 자기가 행할때에 더  큰것을 사는 법칙으로 할 수 있는 더 큰 시험에도 사는 법칙으로 할 수 있는  믿어지는 믿음이 자꾸 여기에서 나오니 믿어지는 믿음 가지고 지켜 행하면 그  다음에는 이제 처음에 자본은 한 십원이지 십원짜리 믿어지는 믿음 가지고  십원짜리 행함을 하니까? 고다음에 행한 결과로 맺어지는 것은 백원짜리  믿어지는 믿음이 나옵니다. 백원짜리 믿어지는 믿음가지고서 고 법칙대로 지켜  행하고 나니까 그 다음에는 천원짜리 믿어지는 믿음이 나옵니다. 천원짜리  믿어지는 믿음 가지고 지켜 행하고 나니까? 그 다음에는 백만원 천만원 만만원  온 세상 것보다 더 큰 믿어지는 믿음이 나올때에 그때 완전히 세상을 이기고 그  사람을 해할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시급히 믿어지는 믿음을 우리가 빨리 빨리 길러야 됩니다.

빨리 빨리 키워서 믿어지는 믿음이 자꾸 커져야 돼. 왜? 한자리에 있는데 다같은  주남선 목사님하고 추 조사님하고 이 장로하고 세분이 사은회 가 가지고 설교할  때에 설교는 주남선 목사님이 설교했으니까? 그 죄는 주남선 목사님이 그들에게  걸리는데 그래가지고 내무서에 가 가지고 잡아가지고 가 가지고 이제 감방에서  이놈들 어짜든지 원수 풀이를 단단히 해야 된다고 이놈들이 우리를 황충이라하고  우리 망하라 한다고서 이러면서 감방에 가둬 놨는데, 추 조사님하고 이  장로님하고는 하나님의 법칙대로 저희들이 해서 들어왔는데, 이러니까 믿어지는  믿음이 있으면 기쁘고 즐거울 것인데 주남선 목사님은 벙글 벙글거리며  들어오더니마는 아이 좀 이제 좀 쉬야 되겠다고 하면서 그만 십분도 안데서 코를  더렁 더렁 골면서 누워자더랍니다.

다 자는데 이분들은 잠이 옵니까? 지금 죽을 지경인데,그게 뭐이냐? 믿어지는  믿음이라 말이오. 믿어지는 믿음 평강을 했는데,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 능력  같이 하니까 내나 그 자리에서 나왔어. 뭐 하나님이 내보내 저거 마음대로  시험만 했지. 하나님 나가라하면 안나가고 되는가? 그래가지고 아무리 마지막에  생명 이거 폐물 이용으로서 생명 이것을 하나님의 살리는 법칙 때문에 이 생명이  끝나야 이미 없어지는 생명가지고 영원히 사는 생명으로 참 최대의 그  폐물이용이 되는거라. 사람은 사는 것 죽는 것 두 가지인데 사는 것을 주의  법도대로 해 가지고 사는것도 반쪼가리 죽는 죽음이 폐물을 하나님의 법칙대로  죽으면 이것이 반 수입을 단번에 보고 얻는거라. 이것이 순교입니다. 그거  하려고 그 이치를 알았기 때문에 주남선 목사님은 그 일할려고 아무리 기다려야  됩니까? 그래 순교 못 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들 왜? 우리가 닥치는데 요만한 보스라기 같은것도 뻘뻘 떨며 이럴까?  저럴까? 이래 할까? 저래할까? 눈이 쑥 들어가 가지고 지금 어찌할까? 지금  돈문제 사업문제인데 왜, 그리되느냐? 믿어지지 않기 때문에 믿어지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가 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오늘밤에 사는 법칙 죽는 법칙 하나님으로 내가 났는데 요것뿐이면  그만 사는 법칙인데 마귀라는 놈이 하나님이 사는 법칙은 죽는 법칙이랍니다.

하나님이 죽는 법칙 사는 법칙이랍니다. 하나님이 성공하는 법칙은 마귀는  망하는 법칙이라하고 또 하나님이 실패하는 것 같으면 마귀는 이러면 성공한다.

이러기 때문에 당황한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의 평강은 하나님의 이 사는 법칙이 믿어지는 그 정도대로  성공하고 정도대로 평강을 누리고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 생명의 법칙을  믿어지는 그 실력이 인간의 실력입니다. 그 실력이 인간의 평강입니다. 요게서는  평안했지마는 조금만 위에가면 평안을 못누립니다. 어데가도 평안하고 즐겁고  어데가도 내것이고 어데가도 그 모든 걸 능가하고 남음이 있는 이것이 하나님의  생명 지식을 믿는 이 믿음의 이 믿음이 믿어지는 믿음 이게 큰 것이니까? 이것만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똑똑히 기억해요.

그러기에 예수 믿는것은 아무나 따나 믿어도 되는 것 아닙니다. 실제로 자기가  믿음은 행함에선 나옵니다. 믿어지는 믿음은 행함에서 나오요. 그만 조그만한 것  행한것이 큰것 행하고 나중에 가서는 세상을 다 능가하는 행동을 할 수 있다  이거요.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이자리에서 이 말씀을 자기가 확고히 잡아요. 주여! 이제 사자구덩이 앞에서도  불미앞에서도 의심없이 이 사는 법칙을 믿읍시다. 요 세 가지를 지키는데 떨며  지키지말고 겁내 지키지말고 염려하며 지키지말고 의심하며 지키지말고  확고부동한 신앙으로 믿어지는 신앙으로 기쁘고 즐겁데 평안함으로 지킬 수 있는  다니엘이가 사자구덩이 들어가는 그 기도하겠다는 그 이사는 법칙을 지킬때에  얼마나 유유하게 지켰습니까? 얼마나 담대히 평안하게 지켰습니까? 왜, 우리는  이렇게 평안하게 살 수 있는데 이 준비할 수 있는 그 시기를 우리가 하지 못하면  하늘나라는 헛일입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이걸 가져야 돼요. 이걸 가지지 못하면 안됩니다. 뭐 말 신자 그거 소용없어. 말  신자 소용없고 지식신자 소용없어요. 믿어져야 되지 실천이 되어져야 되지. 저  불끄이소. 신관에도 불끄고, 여기에서 확고히 아무리 급해도 이거보다 더 급한  일 없고 큰 일 이보다 더 큰일 없습니다. 네, 이 자리에서 확실히 믿어지는  믿음을 가지고 주여 옳습니다. 앞으로 변하지 않겠습니다 하는 요 마음을 가지고  그는 믿어지는 믿음이 생겨야지 그래 가지고 요 법칙대로 살면 사는 것만치 그  결과는 자꾸 믿어지는 것이 나옵니다. 살면 믿어지는게 더 커지고 살면  믿어지는게 더 커지고 나옵니다. 개적으로나 공적으로나 자기 가정으로나 모든데  이 사는길을 나두고 살지 못하고 망하는 그 길을 피해서 사는 길이 살려면  기도해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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