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령을 밝히는 법칙

 

1989. 6. 12. 새벽.

 

본문: 마태복음 6장 19절∼23절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 뚫고 도적질 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  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은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요 성경의 뜻을 바로 아는 것과 깨닫는 것과 다릅니다. 안다 말은 성경의 뜻을  자기가 지식적으로 아는 것을 말하고 깨닫는다는 그말을 쓸 때에는 그 성경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해야 되는가 하는 그 깨달음을 가지는 것을 가리켜서  깨달음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 깨달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에 그저 잘못하면, 그것도 없는 것보다 낫습니다. '이  성경을 내가 하루 얼마 읽기로 했고 또 몇 독 하기로 했으니까 이 성경을 열심히  읽어야 되겠다' 해서 그 횟수를 채우기 위해서 읽는 그런 것도 안 읽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그보다는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의 그 도리를 자기가 알라고 하는 그 알 마음을  가지고 이렇게 읽는 것은 그보다 좀 낫습니다. 또 알라고 읽는 그것보다는  자기가 알고 '내가 어떻게 해야 되는가?'하는 그것을 알기 위해서, 성경을  읽으면서 자기가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행해야 되느냐 하는 그것을 깨달을라고,  그것을 알라고 읽는 그것이 더 좋은 것이니 그것을 가리켜서 깨달음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아는 거와 깨달음이 다릅니다.

 이래서 깨달음 그걸 가리켜서 말하기를 교리라 신조라 그렇게 말합니다.

깨달음을 가리켜서 교리라 신조라 하는데 교리라 말은 예수 믿는 이 도의 이치를  자기가 깨달은 것을 가리켜서 교리라고 말하고, 신조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믿나  하는 믿는 조건들을 다 정한 것을 가리켜서 신조라 그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깨달았으면 그게 교리가 되는데 일반적 우리 교계에서나 또 우리  진영에서 교리라고 말하면 교리라 하는 것은 그것은 사회성을 띠어야 합니다.

사회성을 띠어야 한다 말은 혼자만 그렇게 깨닫는 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깨닫고 있어야 그게 없어지지 안하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이 깨달아야 되는  그것을 가리켜서 이 사회성이라 그렇게 하고 사회적으로 모두 다 그걸 그렇게  깨닫고 있어야 되고, 또 그 역사성을 가져야 됩니다. 역사성을 가져야 된다 말은  한 시대만 그렇게 깨달을 게 아니고 여러 시대에 걸쳐서 그렇게 깨달은 것이라야  그것이 없어지지 아니하는고로 역사성을 또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새는 사람들이 이상해져서 성경에 대한 깨달음이야 뭐 세상이 하도,  자꾸 하나님이 이렇게 하십니다. 세상은 뭐 정확이라 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온 세상은 정확하다, 이거 정확하게 옳게 바르게 참되게 그렇게 진실되게  하면은 다른 사람들이 그런 사람을 하나의 병든 정신병자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저 뭐 이런 거나 저런 거나 어떤 거라도 그만 그것을 상대하지 아니하고  거기에 맞추어서 뭘 해 볼라 하는 그런 것은 전연히 하면 정신병자로 알고 그만  자기 욕심대로 하는 그 사람을 지혜 있는 사람 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또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그만 그대로 따라가는 것을 옳다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래서 요새 이 우리 교역자회를 모여 보면 서울에 있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은  여기에서 수십 년 하나님의 진리를 배웠지마는 진리 그것은 그 속에 주장되어  있지 안하고 일반 사회에서, 국회에서 청문회할 때에는 청문회에서 하는 그  어투, 말투나 또 발음이나 또 그거 모든 단어나 전부 그걸 쓰고 있습니다.

어떻게 추접한지 그거 똥같이 보여 네가 그까짓 게 좋은 줄로 알고 하지마는  거기에 생명이 하나도 없는 건데 생명 뭉텅이는 버리고 그렇게 하는 게 어떻게  추접한지. 서울에 있는 사람들이 다 그래요. 서울에 있는 사람 가운데서도 보면  젊은 사람들이 더 그래요, 그게 무슨 문화인 줄 알고. 또 이 신문에나 뭐이나 이  신문에서 말하는 그런 단어 그게 가치 있는 말인 줄 알고 그거 따라갑니다. 그만  그거 추접하고 그게, 그러니까 그게 전소망과 가치를 이 세상 모든 언론계나 그  모든 회의들에 말하는 거기에다가 가치를 두고 단어 술어, 단어 그까짓 거야  아무리 좋은 단어라도 그 단어 가지고 죽는 말도 할 수 있고 사는 말도 할수  있습니다. 단어 술어 거기에다 가치를 둬. 이거 보면 저 사람은 도리 이치에  가치를 두지 안하고 말 단어 거 기다가 가치를 둬 가지고 단어에 애를 써서  단어를 좋은 단어를 쓸라고 애를 쓰고 높은 단어 쓸라고 애를 쓰지 예수 믿는  이치를 깨달을라고 하는 그런 것이 없는 그런 사람은 언제든지 외식자입니다.

벌로 덤비는 자고 속에 알맹이가 없는 사람이오.

 이래서 우리들은 이 성경을 볼 때에 내가 어떻게 해야 되나 하는 그것을  여기에서 찾아서 깨닫지 못하면 아무 소용 없어. 이제 자기가 해야 될 것을  깨닫지 아니하고 성경 이치만 알아 놓으면 그것 가지고 교만하기만 합니다. 왜?  다른 사람에게는, 사정 없이 다른 사람 행동에 대해서는 성경에 이러니까 이렇고  저렇고 그 사람에게 대해서 적응을 시켜서 정죄하고 심판하는 데는 쓰지마는  제가 행하는 데는 쓰지 안 하니까, 남의 말 하기야 얼마나 쉽습니까? 이라니까  그 사람은 교만한 사람이요, 또 항상 남을 훼방하는 사람이요 폄론하는  사람이요, 또 논인장단 하는 사람이요, 논인장단하는 것은 앉아서 다른 사람 긴  것 짜른 것, 긴 것 짜른 것 남의 말이나 하고 또 식사하고 난 다음에 한번 모여  앉아 가지고 둘이나 서이나 모여 가지고 남을 실컷 헐뜯고 죄를 지어야 마음이  시원하고 잠이 오지 그렇지 안하면은 이제 잠이 안 오니까 찾아간다 그거요.

 찾아가고 만나 가지고 또 재미가 무슨 재미냐? 죄짓는 재미요 그걸로 가지고  일생 동안 삽니다. 죄짓는 재미가 아니면 재미가 없어. 조그마치라도 하나님께  거리끼는 것이라야 재미가 있고 자기의 구원을 깨뜨려 버리고 없애 버리는 게  재미가 있지 참되게 바르게 꼿꼿하게 진실하게 그렇게 해 나가는 거는 재미가  없어 못 하는 거라. 옳은 거는 재미가 없어 못 하고 죄짓는 것이라야, 무슨  죄든지 죄가 속에 들어 있어야 맛이 있고 재미가 있다 말이오.

 사람이 그리 돼 놓으면, 그것을 가리켜서 습성이라 악습이라 이랍니다.

악습인데 악습을 고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악령을 이별하는 것보다도  악성을 제가 고치는 것보다도 악습 고치는 것이 제일 어렵소.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회개할라 하면은 회개하려고 결심하고 나서면은 마귀란  놈은 뭘 가지고 달라드느냐? 악령이 달라드느냐 악성이 달라드느냐? 악습 그놈이  달라들어 가지고 넘어뜨립니다. 이 사람이라는 것은 잘못된 일을 한 번 하고 두  번 하면 그게 버릇이 되는 것인데, 그 습관이 되고 습성이 되는 것인데 그 버릇  그것을 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어제 배운 대로 이제 보물도 무엇이 보물이라 하는 것을 어제 다 배웠습니다.

얼마나 뭐 세밀히 말했습니다. 그게 다는 아니지마는 알 만치 다 눈은 띄웠다 그  말이오. 보물이 뭐이 보물이다, 하늘에 쌓아 두는 건 또 어떤 게 하늘에 쌓아  두는 것이다, 땅에 쌓아 두는 것은 어떤 것이 땅에 쌓아 두는 것이다, 또  동록스는 것은 어떤 것이며 좀먹는 것은 어떤 것이라,  동록이라 하는 것은 곰팡 피는 것입니다. 주위 환경이 깨끗하다면 암만 둬도  곰팡이 안 핍니다. 이 죄악으로 자꾸 썩어지는 것을 비유해서 동록이라고 말한  것인데 이 세상이 죄악 세상이기 때문에 죄악에 물 들어서 죄가 되면은 다  망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기가 이 땅의 것을 위해서 사는 그것은 죄가 안 될  수가 없어. 더러워지지 안할 수가 없어 그러니까 망하지요. 죄를 인해 망하는  것,  또 좀먹는다는 그런 것은 세월이 지나가면 그게 망하고 맙니다. 젊은 사람이 오  세까지 옷을 입어도 뒤에 가서는 세월이 지나가면 빼앗겨서, 열 살 먹을 때 입던  그 옷을 서른 살 먹은 사람이 입으면 미친 사람이라 하고 못 입습니다. 옷은  있어도 못 입어. 서른 살 먹는 사람이 입는 그 옷을 벌써 칠십이니 팔십이니 돼  놓으면 옷은 있지마는 그 옷을 못 입는 거라. 그런 것도 다 세월에 뺏겨지는  것입니다.

 모든 것 다 세월에 뺏겨지는 것이라. 여기에 모두 체육에 참피온 한다고 떠들어  쌓지마는 그거는 한 이삼 년만 있으면 뺏겨져. 아무리 그까짓 거 억세고 잘난  놈이라도 삼 년 더 못 합니다. 삼 년 하면 그 다음에 젊은 사람에게 뺏겨 버리고  저는 자꾸 나앉아야 된다 그거요. 그런 게 다 좀먹는 것이라, 예를 들면.

뭣이든지 세월이 지나가니까, 자기가 아무리 화장을 하고 자꾸 이래 가지고 뭐  삐치고 째치고 이래도 그거는 좀먹는다 그 말이오. 세월이 지나가면 '아, 저  사람은 참 젊게 봅니다.' 젊게 보이지마는 볼 줄을 몰라 그렇지 늙은 게 귀때기  뒤에 붙은 사람은 붙고, 늙은 게 턱에 붙은 사람은 붙고, 피부에 붙은 사람은  붙고, 눈에 붙은 사람은 붙고 그거 다 볼 줄을 몰라 그렇지 보면은 그 나이를  정확하게 알 수가 있다 말이오. 암만 젊은 것같이 색깔 칠을 해 놔도 늙은 걸 알  수가 있고 또 알 수만 있는 게 아니라 그대로 속에 생명이라 하는 건 자꾸 하루  하루 줄어져가고 있기 때문에 그걸 변동을 못한다 그거요. 그런 게 다 좀먹는  것이오. 세월이 지나가는 데 따라서 없어지는 거, 그러니까 그런 것을 하지 말라  그 말이오. 또 도직질하는 것은 마지막에 다 뺏기는 걸 가리켜서 도적질한다  하는 것이기 때문에, 죽음이 와도 다 뺏겨지지, 나이가 많으니까 설설  뺏겨졌다가 나증에는 죽으면 다 뺏겨지지 독한 아버지가 아주 하나도 자녀 안  주고 이래 단단히 똘똘 뭉쳤지마는 나중에 늙어 죽을 때 되면은 결국, 안 줄라고  통장을 누워 가지고 일어나지도 못하는 게 궁둥이 밑에 넣어 놓고 이래 가지고  있지마는 결국은 나중에 가서 숨 끊어지면 떡 내놓으면 그 통장을 누가 가져  가는지 모른다 그거요. 그런 것이 도적맞는 거라. 또 주님이 재림을 하시든지  하면은 도적맞는 거. 세상에서 유지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그 심판에 가면은 다  정죄해서 다 제거한다 말이오.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해 가지고 우리가 무궁세계  들어가는데 심판이 그거 뭐이냐 하면은 검사장이라, 검사. 조사하고 검사하는  것. 이 검사하는 데서 거기에서 검사에 통과가 돼야 무궁세계에 가져가지 검사에  통과 안 되는 것은 무궁세계에 가져가지 못하는 그런 것이 다 도적맞는 거라,  그거. 그것을 또 비유해 가지고 그렇게 했다 말이오. 이래서, 자기의 보물이라는  것을, 이 보물을 그라면 뭣을 위해서 투자할 것이냐? 이 보물을 어떻게 투자할  것이냐? 이 보물은 자기는 건강이라든지 자기의 재산이라든지, 자기 몸의 모든  것, 또 자기 마음의 모든 요소, 자기 생명, 하루 하루 사는 게 생명 아닙니까?  하루 사는 생명 그런 걸 뭘 위해서 지금 사느냐 하는 그것은 필연적으로 다  그렇게 살게 된다 말이오. 그거 투자하게 된다 그 말이오. 그것을 위해 하게  되는데 그 하는 그것이 없어질 것들을 위해서 투자하면은 결국은 그것은 다  멸망을 받고 마는 거라.

 어짜든지 다른 건 생각지 안하고 '이게 유행이니까, 다른 사람보다 내가 유행  일호로서 시장에 돌아다니며 무슨 옷이 유행이 되는고 보자.' 제일 유행되는 거  일호를 제가 사 입습니다. 또 테레비 이런 걸 보고, 만날 그런 거 위해 보는  거라. 그런 것 보고, 또 신문도 보면은 세계에 무슨 토픽이 나오면 그런 거나  보고 이래 가지고 자기가 아주 제일 첨단을 걸어갈라고 이렇게 하는 유행하는  인간들,  이러니까 서울에 있는 교역자들이 모두, 몇 사람이 거기에 물들지 안 해요.

OO교회에 OOO목사 같은 그런 사람은 아예 그런 걸 추접하게 보기 때문에 역부러  쓰던 말도 거기서 많이 써 쌓으면 그런 말 안 써. 또 나이 많은 그런 이들도 좀  그런데 젊은 사람들은 보면 이거 부끄러워서 도무지 못 해. 그 목사라 하는 게  자꾸 세상 따라가고 있는 거 보면 부끄러워. 그래 내가 담대히 '너거는 전부  속화가 됐어. 너거는 여기에 부산 있다가 올라가기 전과 지금과는 사람은 완전히  변해졌어.' 내가 그말을 하는 것이, 저거도 보면 그러니까. 그런데 저거는 그걸  오해를 하고 있어. 이거 자꾸 문화가 돼 가지고 발달되는 것인데 이걸 모르고  있다고.

 언제 여기에 신앙만 보고 성경대로만 살던 사람들이 한번 서울 갔다 오더니마는  '우리는 참 너무 어두운 데서 살았어요. 가 보니까 그 사람들은 뭐,' 보니까  세상 말 하는데 주르르르 하고 신문 말 하는데 소식 말 하는데 쫘르르르 하고  이라니까 그것을,  '눈이 밝아' 눈이 밝아 벗은 것을 알므로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입은 거와  마찬가지로 '눈이 밝아' 하는 그 눈이 밝은 거라. 그까짓 눈 밝으면 멸망이지  좋을 거 뭐 있어? 성경에 하나님 말씀하시는 거기에 대해서 밝아야 하나님의  뜻에 위반되지 안하고 거기 맞춰서 나가야 되는 것이지 마귀 지식 그거 자꾸,  그러니까 그와 같기 때문에 이 세상에 마귀 지식은 대가리를 싸매고 뭐 야단을  지기지마는 거석한 사람들은 마귀 지식 그까짓 거는 아무것도 아니라 그 말이오.

아무것도 아닌 줄로 알아요, 아는 사람들은. 믿음이 적은 사람들도 그래. 그까짓  지식이야 뭐 있으나 없으나. 그래서, 옛날도 그래. 항우라는 사람은 말하기를  '자기의 이 세상 글 지식이라 하는 그런 거는 자기 성명 삼 자만 쓸 줄 알고  읽을 줄만 알지 그까짓 거는 그 외에는 이상은 아무 필요가 없다.' 조금만  잘나면 그런 거는 아주 무시하는 것입니다.

 내가 말하기를 '나는 국민학교 오학년밖에 안 했다' 자꾸 이라니까, 이 소리  하니까, 자꾸 무식하다 소리를 하니까, 이거 무식하다는 것을 선전하니까 다른  사람들은 멸시할 터인데 자꾸 그 말 그만 하면 좋을 건데 자꾸 한다고 이렇게  하는 사람 있습니다.

 '내가 오학년밖에 안 했다' 그말은 무슨 말이냐? 너거 천하에 있는 학자들 다  끌어 오너라. 내가 너거한테 지지 않는다. 그까짓 지식은 다 발 아래 밟고,  불교가 제일 철학으로서는 높은 철학인데 불교의 최고 철학자를 만나 가지고  얘기하면 한 서너 마디 말하면 말할 게 없어. 그만 도망을 쳐 버려, 자꾸 말하자  해도. 내가 뭐이냐?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무한하고 땅에 있는 그런 걸 다  땅에 밟는다' 이것을 말하기 위해서 그렇지 다른 사람들이 보면 무식하다는 걸  말하기 위해서 말하는 걸로 그렇게 알고 있지마는 세상 지식 무식한데 세상 지식  다 가져와도 그런 걸 발 아래 밟지 밑에 내려가지 않는다, 이거 성경 가운데  있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있다는 그것을 자랑하기 위해서 그라는데 암만 말해야  내 속에 있는 말을 못 알아듣는 인간들은 못 알아듣는다 그 말이오.

 술어를 모르면 무슨 상관 있어? 또 뭐 영어나 헬라어나 뭐 히브리어나 라틴어나  독일어나 그 불란서어나 하는 그런 말을 모르면 뭐 상관 있어? 모르면 이치만  알아 놓으면은 옆에 말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통역만 시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인데 그까짓 거 말 뭐 문제야? 이치 아는 것이 그게 문제지. 그렇지 안해요?  과학자도 어떤 기계를 움직이는 거 그 만드는 거 그것만 알면 되는 것이지 꼭  영어 말, 한국말로 하면 안 될 것인가? 모르면 영국 뭐, 영국말로 할라면 영국말  하는 사람을 통역가를 세우지. 그까짓 거는 가치가 없는 거라. 그 속에 이치를  아는 것이 가치가 크고 그게 크지. 그렇지 안해요? 내 말이 맞아요 안 맞아요?  이 젊은 사람은 냅두고 나이 많은 사람들 좀 유식한 사람들 좀 말해 봐요.

맞아요 안 맞아요? 자, 이 장로님들? OOO장로님 맞아요 안 맞아요? OOO장로님  맞아요 안 맞아요?. 이러니까 떡 이래 가지고 있다가, 저 먼저는 그런 거는 안  해야 되기는 되지마는 그거 나도 한다고 했는데 그래 되는 그거 하나님의 뜻이  있어 그런 거라. 사도 요한에 대한 것을 말씀하다가 자꾸 사도 바울이라고 자꾸  이렇게 말하는데 그래도 모두 다 듣는 사람들은 '사도 바울이라 하거나 사도  요한이라 하거나 저거는 사도 요한을 사도 바울로 저렇게 지금 말을 지금  잘못하고 지금 착각을 하고 있다' 이래도 그 사람은 예수 믿는 도리만 배우지,  이치만 배우지 그런 데 관심을 안 가지기 때문에 그런데,  또 어떤 사람은 '이래도 다른 사람에게 이게 나가면은 혹 다른 사람들이, 어린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할지 모르니까 이것을 말해 줘야 되겠다' 해 가지고  나한테 말을 해 줘서 내가 그라고 나 들으니까 그랬어. 그 말이 나는 내가  잊어버렸는데 어데서 그만 그말 하다가 그 마디 그 말에서 그만 삐뚤어져 나가  버렸어. 그 말에서 그만 사도 요한이가 사도 바울로 삐뚤어져 나갔으나 도리는  맞게 증거했어요.

 여기에서 오늘 아침에 내가 이 말씀을 봉독한 것은 이것입니다. 이 육신의  눈이라는 것은 몸의 등불인데 이 눈이 나쁘면, 눈이 나빠 버리면 자기 몸도  어두워요. 손가락도 안 보이지, 자기 죄도 안 보이지, 환경에 있는 사람도 안  보이지, 물질도 안 보이지 모든 것이 안 보이니까 불편하겠소 안 불편하겠소? 또  불편하다 그 말이오. 불편하고 그 사람이 또 활동하는 데에 얼마나 그거 해가  되는지 몰라. 그런데 눈이 환하게 밝아 놓으면은 얼마나 편리합니까? 이것도  이런데 이것보다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얼마나 어둡겠느냐 하는 그 빛이라  하는, 것은 마음의 그 눈을 가리켜서 빛이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육신의 눈은  육신의 눈이라 했고 '네게 있는 빛이' 하는 그말은 마음의 눈을 가리켜서 말해서  빛이라 말합니다.

 마음의 눈이라는 것은 마음에 제일 모든 것을 옳게 보고 바로 보는 것,  마음으로서 모든 것을 옳게, 마음의 눈으로 옳게 보고 바로 보는 그 마음의 눈은  무엇입니까? 마음의 눈은 뭐이요? 마음의 눈은, 마음의 무슨 마음 가지고 모든  걸 옳게 보고 옳게 생각하고 바로 비판하고 평가합니까? 그게 뭐입니까? 그게  양심이라.

 그러니까 빛이라는 것이, 네 빛이라는 것은 우리 마음의 눈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니 곧 마음의 눈이라는 것은 곧 양심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이오. 알아듣도록  하기 위해서 이런 정도 사람은 이렇게 말하고 저런 정도 사람은 저렇게  말하는데, 여기에는 육신의 눈이 좋으면 참 필요하고 요긴하고 유익이 많고 이게  어두우면 해가 많다. 해가 많다. 이것보다도 네 마음의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뭐라 했어요?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뭐라  했소? '얼마나 하겠느뇨' 얼마나 하겠느뇨 이 말은 끝이 없을 만치 많다  그말입니다. 육신의 눈이 어두운 것보다 마음의 눈이 어두운 것은 그 해가 말할  수 없다. 말할 수 없이 크다 그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육신의 눈이 우리에게 요긴한 그것보다 마음의 눈은 뭐  몇백 배 몇천 배 요긴합니다. 이러니까 이 마음의 눈이 어두우면 이거 참 육신의  눈 어두운 그런 사람보다 얼마나 큰 해가 되는데 사람들은 마음 눈 어두운 것은  별로이 해인 줄을 모르고 고기덩어리의 눈 어두운 그것만 해인 줄로 이렇게 알고  있다 말이오. 그러니까 육신의 눈도 우리가 하나님이 주셔서 이거 뭐 밝을  때에는 주의할 것도 없이 저절로 밝아접고 저절로 이렇지마는 육신의 눈이 딱  병이 들던지 이래 놓으면은 육신의 눈이 이 중요한 줄을 안다 그거요. 육신의  눈이 이게 중요한 줄 알면 그 다음부터는 이걸 좀 주의를 하지마는 그리 안 하면  이걸 주의를 하지 안하고 육신의 눈이 병이 들면 이걸 치료해서 고치려고 애를  씁니다. 이러니까 육신의 눈이 필요성을 알아야, 가치성을 알아야 거기에 대해서  주의도 하고 가꾸기도 하고 또 병이 들었으면 치료하기도 하고 하는 것처럼  마음의 눈이 우리에게 얼마나 귀중하다는 요것을 알아야 이거 뭐 마음의 눈을  가꾸기도 하고 보호하기도 하고 눈을 더 밝게 하려고 애를 쓰지 이 가치를  모르면 거기에 대해서 애를 쓰지 안할 것이라 그 말이오.

 그러니까 육신의 눈보다도 마음의 눈은 그 가치가 무한히 크다 육신의 눈이  어두운 것보다 마음의 눈이 어두운 것은 해가 비교할 수 없을 만치 크다. 이래서  마음의 눈이 필요하다는 이것을 우리가 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어느 정도 자라면 육신의 눈 그것도 필요하지만 그런 껍데기요. 이러니까  육신의 눈으로 사는 게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삽니다. 마음의 눈으로 살기  때문에 마음으로 본다 그 말이오. 마음의 눈으로 모든 일도 보고 사람도 봅니다.

마음의 눈으로 사람도 보고, 일도 보고, 물건도 보고 다 보기 때문에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은 깊이 보고 멀리 보고 널리 봤기 때문에 마음의 눈으로 보고  하는 것은 실패가 적고 육신의 눈만 밝아 가지고 하는 그까짓 거는 마음의  눈에다 대면 전부 자기가 구렁텅이인지 뭐인지 제딴에는 좋다고 들어가는데  보면은 망할 것을 들어갔다 말이오. 망할 데로 자꾸 기어들어가. 어제도 어떤  사람이 와 가지고 뭐 이런 사건 저런 사건을 가지고 얘기하는데 그게 모두  뭐이냐? 마음의 눈이 어둡기 때문에 '네가 이리 이리 하면 그 결과가 이렇다'  하는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래. 그런 사람은 내가, 나한테 즘 데리고 올라  하는데 데리고 오면 내가 말을 해 주면, 말해 주면 그거는 그게 말해 줘서  실행을 하면은 좋을 것인데 실행하지 안하고 더 좋은 주인공이 딴데 있기 때문에  암만 그걸 말해도 더 주인된 놈이 딴놈이 있기 때문에 그거 말하면 그 말까지 해  가면서 '목사님은 이렇게 말하더라' 해 가지고, 좋아 놓으면은 그래 가지고 자살  행위를 하거든. 저 죽을 길을 자꾸 그 뚫고 들어가요. 내가, 어떤 여자 할망탕구  하나 있었는데 그거 내가 한번 만나보지는, 한번 그때 만났던가 누하고 한번  심방 가서 한번 내가 얼굴은 봤는가 모르겠어. 얼굴은 안 봐도 하도 그 구역장이  말해서 알고 있다 그 말이오. 그런데 구역장을 전해 가지고 이렇게 말해도  소용이 없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말 안 들어. 안 듣고, 이래 놓으면 영감  할마이 좋아 놓으니까 이래 제 망할 걸 네가 이라면 '네가 망하니까 좀 정신  차려라' 요래 놓은 것도 그만 저거 좋으니까 그거까지 말해 가지고 일러 가면서,  그래 일러 가면서 그대로 돌아가 버리고 만다 말이오! 이러니까 그 사람에게  그걸 가르쳐 줄 수가 없어.

 내가 어떤 사람에게 '네가 요리 요래 해야 된다' 이래 했더니마는 나중에 며칠  지내고 내가 가 보니까 그 남편이라 하는 것이 자기 아내한테 말했는가 아내가  있다가 '목사님이 우리 남편에게 이렇게 이렇게 말했지요. 나한테 그렇게  말합니다.' 말하는데 목사님이 이래 하라 한다고 이렇게 말하면서 그말까지  말하고 다 하나돼 버리고 마니까 암만 사는 말 해 봤자 소용이 없다 말이오.

 이러니까 뭐 싸우고 찢고 이래도 굉장히 정욕의 이거 정실이라 하는 이거  강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어찌 됐든가 부부간이거들랑 막 뭐 옆에서 백지 분해서  '그럴 수가 있나?' 이를 갈아붙이고 '그런 놈은 어짜고' 이래 쌓아도 그거 다  철이 없는 소리고 경험 없는 소리라. 그럴 필요가 없어. 그라면 '아무래도 너거  남편이 제일이다. 아무래도 너거 아내가 제일이다.' 자꾸 이래 말해 줘야 되지  그래야 뒤에 후회할 게 없지 그뭐 그 결합이라는 그걸 떨어지기가 얼마나 어려운  줄 압니까? 이 세상 사랑을 벗어나야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게 되는데 세상  사랑을 벗어나는 인간들이 별로 없어요. 이거 장 벗어날라 해도 또 얽매이고  얽매이고 자꾸 이래 돼지지.

 이러니까 오늘 아침에는 육신의 눈과 마음의 눈 둘 중에 이 마음의 눈이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하니까 마음의 눈이 밝으면 그런 속는 일을 하지 안해요. 그러기  때문에 육신의 눈은 그거 하나 이용물이지 마음의 눈이 지배를 하고 있어.

 마음의 눈을 보는데 마음의 눈으로서는 이제 이 우주도 보고 우주 너머  무궁세계도 볼 수가 있어. 마음의 눈이라는 건 그렇게 멀리 봅니다. 마음의  눈이라 하는 것은 자기 그 현실만 보는 것이 아니고 죽은 후도 보고 이 지구  땅덩어리만 보는 게 아니라 이 넓은 우주도 보고, 우주만 보는 게 아니라  영계까지 보고, 영계만 보는 게 아니라 자존자 창조주 그분까지 본다 말이오.

그분까지 보고 그 모든 걸 널리 보고 거기 맞춰서 이라기 때문에 틀림이 없어.

그러니까 그런 사람은 이 성경을 '옳다 옳다 아멘 아멘' 성경 말씀 보고 '아멘  아멘' 이렇지마는 육신의 눈만 밝고 마음의 눈이 어두운 사람은 몰라. 마음의  눈을 밝게 하는 데는 어떻게 해야 밝게 해요? 마음의 눈을 밝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이렇게 하면 마음의 눈이 밝아진다' 하는 법칙을 말해 놓았는데 그  법칙대로 해야 마음의 눈이 밝아지지 그 법칙대로 안 하고는, '자기 심령이  밝아서 모든 것 다 환하게 꿰뚫어 알았으면 좋겠다' 암만 해 봐야 소용 없어. 그  심령이 밝아지는 데는 밝아지는 그 방법을 주님이 말씀해 놨다 말이오. 밝아지는  그 방법이 뭐라요? 저 학생 말해 봐. 너 말해 봐, 너? 그래. 조거 알아듣기는  알아듣는데 너 지금 하나 돌아서야 될 것 있는데 그거 돌아서지 못하면 네  일생을 망치고 만다. 너 돌아설 것 버리고, 돌아서서 버릴 것 딱 버리고 딱 하면  희망이 있는데 마귀란 놈이 '조거는 요래 명철하니까' 낚시를 거기다 딱 끼워서  낚시를 딱 끼워 놔. 낚시를 끼워 놓으면 제마음대로 암만 돌아다녀야 소용 없어.

살살 잡아댕기면 나중에 기어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 말이오. 낚시가 모두 마귀  낚시가 끼여 가지고 있는 것을 알아야 돼요.

 고래 잡는 것은, 요새는 고래 잡는 방법이 어떤고 몰라도 고래 잡는 방법은 이  배에다가 줄을 많이 감고 활살을 해 가지고 그 고래를 보면 탕 쏴 버리면 그만  이놈이 고래 몸에 푹 들어가 버리면 위에 떡 벌어져 가지고 안 빠져 나온다  말이오. 이라면 고래가 막 이놈이 맞아 놓으니까 도망을 치는데 그때 배가  따라가면 뿌숴져요. 이러니까 그때는 따라 가면서 자꾸 줄을 풀어 주면서 따라가  가지고 이라면 이놈이 돌아다녀 나중에 기운이 엔간히 쇠잔해지거든 또 그라고  난 다음에는 한 개 더 쏘면은 이제 줄이 실해졌다 말이오.

 이놈 나중에 그라면 그리 가지 못해요. 나중에 그러니까 살아 가지고 있기는  있지마는 아무 힘이 없어. 그럴 때는 배로 가지고 설설 인제 이거 줄을 감으면  저놈이 자꾸 들어와. 이래 가지고 저 육지까기 끌고 나와도 이놈이 힘이  없으니까 헐렁헐렁 이라지 꼼짝 못 해 그러면 육지에 와 가지고 끌어 올려  가지고 잡지 않소 말이요.

 그거 모양으로 마귀란 놈들이 우리를 그래. 그거는 '저놈은 뭘 좋아하는고'  저놈 좋아하는 그 활살을 가지고 한번 탕 놔서 딱 낚시줄이 딱 걸려 놓으면은  그저 제맘대로 돌아다니게 하지마는 그것을 이래 가끔 가다 당겨보고  '당겨보니까 끌려온다. 당겨보니까 끌려온다.' 이래 가지고 거기에 당겨  끌려오는 것은 결국은 거기에 끌려가 가지고 일생을 망치고야 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꼭 은혜가 많은 곳에 죄도 많고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많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쓸모 있는 일꾼은 마귀 그놈도 쓸모 있는 일꾼인지 알기  때문에 저놈은 단단히 단속해야 되기 때문에 단단히 단속합니다. 이러니까 '내가  우상이 뭐인가? 내가 뭘 지금 우상인고, 내게 뭣이 지금 제일 주관하고 있는가?'  요걸 딱 알아 가지고 그걸 깨뜨려서 아예 없애고 고거 낚시줄 그놈을 살살  끊든지 빼내든지 이래 가지고 막 전심 전력을 거기에다 기울여도 참 하나님이  돕지 안하면 안 된다 말이오. 이리 돼지면 나중에 살아져요. 오늘 아침에 대답을  잘했어. 마음의 눈을 밝히는 법은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는  그 외에는 밝아지는 길이 없어. 그라면 마음의 눈이 밝아져요. 마음의 눈  밝아지는 것이 그라면 일조 일석에 됩니까? 자기의 소유와 몸과 마음 자기의  생명 이것을 어떻게 쓰나 하는 이 일을 문제를 삼아서 이것을 바로 쓸라 하면은,  이것을 안 쓰는 시간이 있어요? 안 쓰는 시간 없어요, 이거, 전부 이거 가지고  살기 때문에. 이러니까 전시간에 걸쳐서 이것을 바로 쓸라고 애를 써야 심령이  밝아지는 것이지 심령이 욕심 모양으로 뭐 다른 것 뭣을 당장 한 가지로써 눈이  밝아지는 게 아니라 그 말이오. 일생 동안을 자기의 모든 소유나 몸이나  마음이나 생명 이것을 하늘에 쌓아 두는 것, 영원히 없어지지 안할, 가치 있는  그것을 보고 거기에다 투자하는 이 일을 하는 가운데서 우리의 심령이 밝아질 수  있다 그 말이오. 그래야 심령이 밝아질 수 있고 하나님의 도리를 깨달을 수도  있고 증거할 수도 있지 그렇지 않으면 심령이 밝아지는 길이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보물을 땅에 쌓아 두는 일을 한 번 하면은 마음의 눈이 그만치 그만  가리워져 버립니다. 가리워져. 교회 주변 청소 또 지금 바로 권찰회 모입니다.

반사 선생님들은 공과를 외울 것과 실행 실천할 것, 꼭 경험 체험의 지식이  있어야 힘이 나옵니다. 하루 삼십 분 기도 잃지 말 것. 사람을 기르는 데는 자기  마음 속에 넣어 놓고 길러야 돼요.

 또 요새, 우리 교회서는 뭐 진미진주를 다 받아요, 지금. 귀신 공부하는 거  하고 있는데 얼마나 그게 중요한 줄 압니까? 인류 시조 때 에덴 동산에 인류  타락한 그것이 간추려 놓은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멸망이라 하는 것과 구원이라  하는 것을 그렇게 깨닫기가 쉽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그라고 사람의 사람이 되지 말아요. 거기에 또 피동되지 말아요. 삼십팔 년  병자, 뭐 그만 그 병자 아무것도 필요 없어. 그만 나으면 나아 버려. 이러니까  뭐 사는 길을 얼마나 가르쳐 줬는데. 오늘이 월요일이지? 내일이 화요일이지?  모레 수요일날 밤에는 우리 OOO전도사님이 설교해요. 인제 자꾸 내가 말하는  것은 뭐이냐? 등대가 눌리거든. 그런 가운데에서 좀 깊이 깨달아져서 자기도  깨닫고 하나님이 같이 안 하면 안 되니까. 그라는 그런 가운데서 혹 좀 이  구원에 좀 높이 올라가고 빨리 달아나가서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더  만들어질까 해서 자꾸 그렇게 말하고 있어. 그 말하는 것은 더 애끼고 사랑해서  되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인데 '다른 사람은 시키지도 안하는데 왜 그리  시키는가? 또 그런 다른 사람은 말하지 안하는데 자꾸 이래 말해 쌓아니까 안  됐다.' 안 됐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좋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말이오. 우리  OOO장로님은 좋게 생각해요 안 좋게 생각해요? 감사하게, 감사하게 생각하지.

여러분들 알라고 이런 말 하는 거라, 여러분들 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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