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기초작업

 

1988. 12. 3. 토새

 

본문: 누가복음 21장 33절∼36절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에 제일 근본된 신앙이 뭐인고 하니, 하나님의 말씀은 획  하나 변개시키는 것이 이 우주와 영계의 모든 피조물을 변개시키고 없애는  것보다 무한히 중량이 큽니다. 모든 피조물은 이 말씀이 창조하셨지마는, 이  말씀은 모든 것을 창조하신 능력의 말씀이요 또 그 자체가 진리입니다.

 이 말씀의 획 하나 없어진다는 그 말 한다고 하면 곧 하나님이 없어진다는  말씀과 같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없어질 수 없음같이 이 말씀도 변동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신앙에, 제일 기초적인 신앙이 이 신구약성경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 없이 확신하는 이 일을 하는 것이 제일 기초적인 신앙생활입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순위를 잘 몰라서, 집을 지으려면 기초가 있어야 집이 올라가지  기초 없으면 못 올라가고 집도 십층을 지으려면 구층이 올라가고 그다음에  십층이 올라가는 것이지 그 순서가 아니면 안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모든 신앙생활은 신구약성경 말씀을 믿는 이것이  신앙생활의 기초요 또 움싹이요 시발입니다. 이 신구약성경 말씀을 자기가  믿으려고 애를 쓰지 않으면 헛일입니다. 사람들은 이 말씀 가운데서 어느 부분은  자기가 믿고, 믿지 않고, 또 말씀에 대해서 악령은 단 한 성구에 대해서  의심하도록 만듭니다. 그러면 의심하는 고것이나 믿지 않는 것이나 고거 좀  차이가 있지마는 의심하면 나중에 믿지 않는 사람됩니다.

 한 성구를 믿지 않는 그 병은 모든 성경을 다 믿지 않는 사람됩니다. 믿지 않는  사람된다 말은 '그래도 믿는데?' 그런 게 아니라 자기 주관에 맞는 것은 믿고 맞지  않는 것은 안 믿는 그런 사람이 돼 버리고 말면 모든 성경은 하나도 안 믿는  사람이요 자기 주관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는다고 하는 그것이  얼마나 거짓부리가 많은지? 하나님의 그 택함은 영원 전, 나기 전, 우리의 행위로  말미암아 택함이 아니고 순전히 객관의 은혜로 우리를 택해 가지고 중생시켜서  구원 하시는 역사기 때문에 택함도 당신이 홀로 택했고 또 우리를 중생시키는  것도 홀로 중생하고, 그러면 중생론에 대해서도 이 성경을 몰라서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제가 무슨 큰 은혜 받으면 그때 중생된 줄로 이렇게 여기는 이 OO교, 이  OO교 이런 데에 잘못된 교리로 삐뚤어진 신앙 가지는 그런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우리의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영원한 때 전부터 하나님의  예택에서 시발돼 가지고 된 구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중생된 데까지는  우리는 거기에 아무런 노력도 작용도 관련도 없이 순전히 객관 은혜로 된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건설구원인 이 성화구원, 자기가 거룩하게 변화되는 이  성화구원은 우리의 주관의 노력을 통하지 않고는 이 구원이 이루어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는 데는 제일 근본된 신앙이 뭐이냐 하면 신구약 육십육 권  하나님의 도리를 자기가 믿는 이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지난밤에도 믿는 데  대해서는 우리의 주관 신앙이 있고 또 객관 신앙이 있다 그런 말을 약간  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하나님의 성경 말씀을 믿으려고 애를 쓰면 믿어지게 됩니다.

믿으려고 애를 쓰면 믿어지게 되는데 애를 쓴 것만치 믿어지게 되고 애를 안  쓰면 믿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힘을 써서 믿으려고 애쓰는 그것이 주관적 신앙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객관 역사로 자기로 하여금 믿어지도록 그렇게 역사를 해 주십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이 나를 믿게 해 주시는 그것이 객관 역사입니다. 그러면 나중에  그 다음의 결과가 뭐이 되느냐 하면 본능 역사가 됩니다. 본능 역사.

 본능 역사라는 것은 배고플 때 밥먹고 싶은 거, 목마를 때에 물 먹고 싶은 거, 또  추울 때에 따뜻하게 하고 싶은 거, 더울 때에 서늘하고 싶은 그런 게 다 신체적  본능이요, 또 심리적 본능도 그거 다 이래 본능이 있는데 이 본능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지난밤에 우리가 하나님의 도리를 믿고 싶은 그런 마음을 가지려고  믿으려고 애를 쓰는 그것이 시발이 아니고 자기가 볼 수 없게 자기가 모르게  하나님의 객관적 이 구원 역사가 역사하셔 가지고 그 구원 역사에 피동된, 구원  역사에 피동된 자기 주관 역사가 일어나 가지고 믿는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하게 될 때에 자기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있는 전부를 다 기울여서 하나님의 도리를 믿어, 하나님의 도리 믿는단  말은 성경에 기록한 대로 하나님도 믿고, 하나님의 능력도 믿고, 하나님의 사랑도  믿고, 하나님의 계획도 믿고, 목적도 믿고, 섭리도 믿고 다 믿는 그런 것을 성경에  다 기록해 놨기 때문에 성경 믿는단 말은, 성경 믿는다 말은 곧 하나님과  하나님의 그 구원 역사를 다 믿는다는 그말입니다.

 이렇게 자기 모르는 객관 역사로 우리를 믿도록 해서 내가 믿을 마음이  생겨지고 '믿어볼까' 하는 그 마음이 생겨지는 것이 자기 주관에서 나온 것으로  자기는 그렇게 보여지지마는 자기 주관이 있기 전에 벌써 객관의 능력 역사로  역사해 가지고 거게 되동돼 가지고 자기 주관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있는 전부를 다 기울여서 신앙생활하는 그것은 하나님의 객관 역사에  완전히 자기가 정복을 당해 가지고 완전 순종이요 완전 피동이 되어지는 것이  그것이 자기가 있는 힘을 다 기울여서 신앙생활에 열중하는 그 결과가 맺어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볼 수 있는 객관 역사를 하십니다. 하나님이 볼 수 있게 당신이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어서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그렇게 역사하는 것을 자기가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자기가 힘써 가지고  믿으려고 했는데 이제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믿도록 역사하는 것을 자기가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볼 수 있으면 그다음에는 순서가 쩌 되는고 하니 자기의 본능적 신앙이  됩니다. 반드시 더우면 서늘케 하고 싶고 추우면 따뜻하게 하고 싶은 그것이  본능인데,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건 나도 기뻐하고 하나님이  싫어하는 건 나도 싫어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건 나도 원하고, 순전히 하나님의  그 객관 역사와 내 주관 역사가 하나가 돼 가지고 본능 역사가 되어지는 것이  그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성경 말씀 안에도 성신의 감화가 내재적 영감으로 성경 말씀  안에서 성령이 역사를 하지, 또 우리 마음 안에서도, 조명 역사로 조명을 해서  마음에 영감 역사를 하고 있지, 또 우리 속에 움직여서 신앙생활 하고 싶은 그  역사 영감의 역사가 우리 속에 있지, 또 모든 이 성경에 여인이라고 계시록에  말한 대로 하나님의 모든 교회, 모든 교회 성도들 전체를 움직여 가지고 내  신앙이 이루어지도록 이렇게 하려고 역사합니다.

 이래서 우리가 나가다가 '누구를 위해서 기도를 해야 되겠다. 또 뭘 기도를 해야  되겠다.' 이렇게 자기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게 되는 그것이 뭐이냐?  하나님께서, 객관 역사가 당신의 피로 구속한 모든 성도들을 통해 가지고 내  구원을 위해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객관 구원 역사가 보이지 않게  이루어질 때에 그 역사로 말미암아 내가 볼 수 있는 내 움직임으로써 구월  역사를 하게 됩니다. 구원 역사를 하게 되면 제딴에는 제가 출발점이요 제가  능동적으로 하는 거 같지마는 능동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그 역사에  피동적으로 구원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볼 수 있게 힘을 쓰면 이제는 볼 수 없게 역사하시던 하나님께서 이제는  볼 수 있게 나에게 역사해 가지고 구원 역사를 이루도록 그렇게 하십니다. 그러면  그다음에 내게는 뭐이 이루어지는고 하니 하나님과 나와 하나가 될 때에 나에게  본능 역사가, 본능 신앙 역사가 됩니다.

 인제 우리가 신앙생활하는 데도 주일을 지키는 건 주일을 안 지키면 안 되겠고  주일을 지키면 좋고, 그래서 6·25 때 그때에 모든 사람들이 다 참 많은 그  인민군 속에 들어서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은 고통을 당했었습니다. 당하는데 그때  모두 말하는 사람들이 '돈도 원치를 않고 뭣도 원치 않고 어쩌든지 그 신앙의  자유만 줬으면 좋겠다' 그런 말 하는 길 내가 많이 들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어데, 무인도로 보내도 주일이나 자유로 지키구로 했으면 무인도도  좋겠다. 그냥 그러면 거게서 벌거지나 잡아먹고 이런 개구리나 이런 거나  잡아먹고 그래 살아도 주일을 자유로 지킬 수 있는 신앙 자유 있는 세계로 보내  줬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말을 했습니다.

 이래서 저 구미에서 청교도들이 그때 자기네들이 원해서 배 하나 가지고,  쫓아내서 쫓겨 나갈 때는 '그저 죽어도 어데 신앙 자유 있는 데가 좋겠다' 하고  그래 훌렁훌렁 떠내려가 걸리다가 걸린 것이 미국 땅에 걸려 가지고 거게서  청교도들 신앙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래서 그게 뭐이냐? 벌써 본능 신앙이 된 거라. 본능 신앙이 된 거는 그렇고,  그 신앙이 될 때의 순서는 객관 구원 역사, 객관 역사로 주관 역사가 피동돼서  이루어지고 주관 역사가 피동으로 이루어질 때에 그때는 객관 역사가 보이게  역사해 가지고 우리를 붙드십니다.

 자기가 보기에 알 수 있도록 하나님의 객관 역사가 자기를 벌써 붙들어서 자기  주관이 그 객관에 피동돼서 눈에 보이게 피동돼 가지고 이렇게 순종하도록  이렇게 될 때에는 잠시 후면 그것이 나중에 본능 신앙으로 이제 차차 성화돼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다른 것은 다 그렇지마는 제가 설교하는 설교는 일찍 부터 그 일을  했기 때문에 지금은 거의 본능 역사입니다. 이래서 제가 아무리 성경 볼 때에 이  성구는 참 좋으니까 이거 설교해야 되겠다 그래 가지고 내가 설교를 못 합니다.

꼭 주님이 내 안에서 역사해 가지고 내 본능으로 '아, 이 성구를 해야 되겠다'  그분에게 피동되는 그 본능의 그 성구라야, 그러니까 그 성구는 언제든지 제가  준비해 가지고 나오는 일을 못 합니다.

 그러면 그저, 지난밤의 이 말씀도 저는 딴 말씀을 생각하고 무슨 말씀을  증거할까 이렇게 하는데 그 내려오면서 생각했습니다. 오층에서 내려오며 나에게  주실 때에 이 말씀이 생각이 나서 이 말씀을 증거 했습니다. 이 말씀을  증거했는데 이 말씀을 증거하면서 하나님이 나에게 역사하셔 가지고 나를  붙들어서 성경의 도리를 가르쳐 주고 또 구원 역사하도록 그렇게 하시는 것을  피동으로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그 모든 생활이, 모두 그렇습니다. 선지 사도들의 신앙생활이나 또 모든 성도들의  신앙생활은 다 이런 순서로 이루어져서 자기 신앙생활이라 하는 것이 본능이  되지 않으면 되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래 '네가 총독 앞과 임금들 앞에 붙들려 갈 때에 무슨 말을 할 것을 네가  생각지 말라. 말할 것을 주시나니 말할 걸 주시는 이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시니라.'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자기가 뭣을 죄를 볼 때는 본능적으로 미워하고 또 의를 볼 때는  자기가 본능적으로 안 하고는 못 견디고, 마치 우리가 이 생의 애착이 본능인데,  불에는 아무리 누가 들어가라 해도 불에는 본능적으로 못 들어가게 되고  들어가기 싫고 힘 있는 데까지는 불에 안 들어가서 안 타 죽으려고 애를 쓰는  것이요.

 그러면 그것이 자기의 지식으로 말미암아 그게 차차 본능화되면 하나님의  도리는 자기가 안 지키고는 견딜 수 없는, 지키는 것이 자기의 주관이요 자기의  본능이요 자기가 원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마치 하나님 말씀 어기는 것이 불에  들어가서, 타 죽는 불에 들어가는 거와 같고 하나님 말씀 지키는 것은 불에서  나오려고 애쓰는 거와 같은 그 본능이 됐기 때문에 그는 변동을 못 합니다.

 이래서 '네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를  자유케 하리라' 진리가 자유케 하리라 하는 그 말씀이 다 그런 순서들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이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우리 신앙생활하도록, 믿어서 이 구원을 이루도록 하는  이 역사가 예수님이 피흘려 구속하셨고 우리를 중생시킨 것도 당신이 능동으로  중생시켜서 객관 역사지 우리 주관은 상관도 없었는데 객관 역사로 첫 착수가  뭐이냐 하면 우리를 중생시켰는데 중생시킨 그 이후부터는 중생시킨 영을 통해서  하나님의 그 객관 역사가 우리에게 역사합니다. 이래서 로마서 8장에 보면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자꾸 우리에게 증거해 준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래서 제일 기초적인 신앙이 뭐이냐?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하신하는 이 공부를 해야 됩니다.

확신하는 공부를 해서 자꾸 확신하도록 애를 써야 된다 말이오. 하나님 말씀을 한  성구 한 성구 자기가 의심 없이 확실히 믿어서 이대로 되는 이 사실을 믿어서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면 참새 한 마리의 생명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천한 것이지만 떨어지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 말씀을 믿어서 이제 원수 앞에, 공산주의 앞에 어떤 뭐 독침  독약 고문 고형 앞에 아무리 있어도 그것이 내 생명을 주관하지 못한다 하는  그것을 믿은 이들이 다 다니엘이요 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들입니다.

 그러니까 불 속에 들어가면 이거는 역사적으로 으례히 타서 죽는 것이 정한  이치지마는 역사를 다 부인하고 역사보다 하나님 말씀을 더 믿었다 말이오. 불에  타 가지고 죽지마는 죽는 것이 다 이게 역사의 전 통계지마는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면 불은 내 생명을 주관하지 못 한다.' 하나님이 나를 주관하신다는 것을 믿는  그 사람에게 믿는 그대로 돼서 불 냄새도 나지를 안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꾸 믿는 이 믿음을 공부를 하고 노력을 하고 힘을 써야 이  믿음이 생겨지는 것이지 힘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말이오.

 그런데 힘을 쓰는 가운데도 제일 어떤 걸 힘을 써야 되느냐? 이 신구약성경  하나님 말씀의 이 전체를 믿는 이것을 힘을 쓰는 것이 제일 신앙의 기초  작업이라 그거요.

 믿는 것은 저절로 믿어지는 게 아니라 내가 믿으려고 애를 쓴 것만치 믿어  집니다. 애를 쓴 것만치 믿어지니까 제가 주관 역사인 줄 알지마는 주관 역사가  있기 전에 벌써 제가 믿고 싶어서 애를 쓰는 그것이 벌써 객꽐 역사에 피동된  주관 역사, 제가 모르는 객관 역사에게 자기가, 자기만 알고 있기 때문에. 피동인  자기 주관 역사가 돼 가지고, 그러면, 그게 차차 차차 심령이 자라게 되면 이제  자기가 알 수 있게 하나님께서 자기를 붙들고 역사하는 것을 자기가 볼 수 있어.

하나님에게 붙들려서 알 수 있도록 '하나님이 날 붙들고 역사하신다'하나님이 이거  날 붙들고 역사하신다 하는 것이 보여지고,  그러고 난 다음에 그 순서가 지나가면 벌써 하나님의 뜻과 자기 뜻이 하나가  된다 말이오. 하나가 돼 가지고 하나님와 뜻이 자기 본능이 됐다 말이오. 본능이  돼서 희로애락이 하나님과 하나라. 지정의나 언행심사의 그 모든 움직이는 것이  하나님과 하나되도록 하기 위해서 이렇게 애를 쓰는 것인데 하나된 것도 있는데  하나 안 된 것도 있어. 하나 안 된 그것 때문에 고통을 해서 하나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우리의 노력인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 말씀을 믿는 이 일을 자꾸 애를 써서 믿으려고 애를 쓰는 그것이  뭐입니까? 하나님의 도리를 내가 '요 말씀도 의심 없이 믿어야 되겠다' 자꾸  믿으려고 애를 쓰는 그것이 무슨 역사입니까? 그거를 믿으려고 애를 쓰는 그게  피동 역사요 자기 주관 억사요? 믿으려고 자꾸 애를 쓰는 그게 주관 역사입니가  피동 역사입니까? 자기의 능동 역사입니까 피동 역사입니까, 믿으려고 애를 쓰는  그게? 내가 발표를 여러분들이 알도록 하기 위해서 주관이라고 말했지마는 그게  주관 역사가 아니고 다 피동 역사라 말이요, 피동 역사. 알겠소? 이거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내가 신구약성경욜 믿으려고,  내가 신구약성경, 자꾸 나는 이거 믿 어지지 안해 내가 믿으려고 애를 쓰는 그거,  믿으려고 애를 쓰니까 차차 차차 믿어집니다. 믿으려고 애를 쓰는 그것을  가리켜서 내가 사람 말로 주관 역사라 말했습니다.

 속의 알맹이는 믿으려고 애를 쓰는 그것이 내가 스스로 내게서 출 발한 능동  역사입니까 하나님의 객관 역사에 나 모르게 내가 피동이 돼 가지고 지금 피동  역사입니까? 피동 역사라 말이오. 이걸 똑똑히 여러분들 알도록 하기 위해서 자꾸  이래 말하니까 그걸 알아들어야 돼지지 못 알아들으면 아무 소용이 없어 제일  처음에 노력하기를 하나님 말씀 믿는 일에 먼저 노력을 하라 그거요.

 그러면 우리가 자꾸 믿으려고 애를 쓰니까 '내가 믿으려고 애쓰니까 믿어지는  것이니 공연히, 내 주관 행위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나 악령은 우리에게 맏지  못하도록 발을 버투고 이렇게 방해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천하, 인간을 악령이 다  주관하는 그 강한 세력이 있는 마귀인데 내가 믿고 싶다고 믿고 싶은 마음이  생겨지는 줄 압니까? 하나님의 무한한 객관 역사의 능력이 아니면 안 된다  그거요. 이해가 돼요? 물어 보니까 전연히 모르네.

 이러니까 모든 자기의 사람으로 말하면 객관 역사에 내가 피동되는 그것을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자기 보이는 것으로서는 자기가 하고 싶으면 하고 말고 싶으면  마는 자기 주관 역사로 이렇게 보여지나 실상 껍데기를 떼고 들여다 보니까  하나님 앞에서 무한한 역사가 있어 가지고 그것이 뭐 모든 환경, 주위, 모든 인간,  만물, 자연, 자기가 이래 길가 가다 보니까 어떤 물건 하나 봤고 어떤 소리가 하나  들리고 그게 전부 종합해 가지고 우리에게 신앙이 된다 그말이오.

 그러면 하나님이, 우주 속에 내가 보이는 것 안 보이는 거, 아는 것 모르는 것 그  전체 속에서 당신이 구원 역사를 역사해 가지고 나를 믿도록 만든다는 이것을  알게 된다 그거요, 장성해지면. 이래서 그걸 제일 노력하고,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조심하는 이것이 없으면 어찌  되느냐? '방탕함이 돼지고' 스스로 조심하는 일이 없으면 방탕되어지고, 방탕된다  말은 붙들려 매이지 않고 제 마음대로 흔들린다 그말이오. 방탕된다 말은 정함이  없이 이래 마음대로 이래 그게 흔들리는 그걸 가리켜서 말하는거라. 뭐이 흔들려?  마음이 흔들리요. 이 마음도 먹고 저 마음도 먹고 자꾸 마음이 매인 데가 없어.

조심이라 말은 붙들어 맨다 말이오. 마음을 붙들어 맸다 그말이오.

조심이라 말은 마음을 뽈끈 붙들어 맸다 말이오. 네가 스스로의 거게 마음을  붙들어 매지 않으면 이 마음은 마치 키가 없는 배와 같습니다.

 이러니까 바람부는 대로 움직여서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것은 뭐 운전기사 없는, 운전기사 없는 추럭이 시동이 걸려 가지고 있으면 제  마음대로 구불러 가다가 다 박살돼 버리고 말지 뭐 어찌 되겠습니까?  그러기에 조심하지 않으면, 네 마음을 붙들고 운전하지 아니하면 '방탕한다'  이리저리 마구 주 흔들린다. 마음대로 흔들린다. 그러면 방탕함과,  '술취한다' 마음이 방탕하게 되면 술취한다. 세상주의에 점점 취하게 된다. 예수  믿는 것들이 아니라. 목사라 하는 게 전부 세상주의에 가득 차 가지고 있으니까,  그 O목사라 하는 그 목사가 요번에 많이 역사 했는데 뭐 어제 신문에 보니까  OOO씨한테 피동이 돼 가지고 그와 같이 O목사가 그렇게 못된 짓을 해. 그래  가지고 교회를 핍박을 피우고 더렵혔다 그말이오. 이렇게 술취해 그만 마음이  정함이 없어. 마음이 정함이 없어.

 이걸 가리켜서 '성경에는 공중에 나는 새도 집이 있다' 새는 이거 꿍 그러면 이리  날아갔다 저리 갔다 아무 데도 매인 데 압어. 교회는 겨자씨로 비유했어.

겨자씨는 땅위에 심 기면 거게서 뽑히면 죽어. 그리 안 하면 뿌려졌으면 뿌려졌지  옮겨지지를 안해.

 신앙생활이라 하는 건 이리저리 변동이, 하나님에게 뿌리박아 놓으면 요동을 안  해. 꺾여져서 죽었으면 죽었지 이리저리는 돌아다니지, 제 형편에 따라 돌아다니지  안해. 제 형편에 유익하도록 날아 돌아다니지를 안해 정함이 없는 새 그거  모양으로.

 이렇기에 '방탕하게 되고' 그러면 그다음에는 세상주의에게 술이 취하게 되고  세상주의, 이거 뭐 이런 데 저런 데 허영과 허욕을 가지고 예수 믿는다 해도 항상  말 거석하면 '어떻게 하면 돈벌이가 잘되고 뭐 취직이 잘되고 뭐이 잘되고, 어떻게  하면 교인들이 잘 모이고,' 하나님이 해 주는 건 전연히 안 받습니다.

 이래 가지고 '교인들 모으는 방법이 이런 게 있다.' 이래서 '아이 그까짓 거 키워  봤자, 아무리 키워 봤자 키워 놓고 나면 다 어데로 도망 다 가 버리고 없는 것,  주일학교 백지 비용만 들이지,' 그거 그래요. 장년반은 오면 교회에 돈이 모입니다.

그러나 주일학교는 돈만 들기만드요. 그거, 그게 뭐 돈 냅니까? 이러니까 그거  주일학교 하는 데는 돈이 한 달에 얼마나 많이 드는 줄 압니까? 이래 키워 놔  봤자 주일학교 그거 열심히 해 봤자 나중에 가서 보면 중학교 입학하면 그만  학교가 달라지니까 또 달라지지, 고등학교 가면 더 달라지지, 또 대학 가면 더  달라지지, 사회에 나가면 더 달라지지, 키우기만 키워 놔 버렸지 전부 남 좋은  일만 하고 다 가 버리고 없어지니까 그거는 어리석은 일이다. 주일학교 힘쓰는  거는 어리석은 일이다. 그저 주일학교 남이 가르 쳐서 길러 놓은 거, 벌써  중간반까지 길러 놓은 것 그런 거 따오는 게 제일이다. 그거 따오는 거,그거는  그래도 거의 세상 생활이 결정이 됐고 인생관이 결정이 됐기 때문에 그것은  끌어다 놓으면 좀 알곡이 되고 오래 된다.

 이러니까 그런 주일학교 하는 그런 힘을 들여서 장년반을 끌어들이면 장년반이  잠깐 모이고 연보도 많이 나오고 이렇게 교회 유지가 잘 된다. 이래 끄는  방법에는 방송 설교를 하면 잘 끌어진다. 또 뭐 이래 가지고 자꾸 뭘 책을 써  내서 이러면 그거 또 인제 잘 돼진다. 또 총동원 주일로 지켜 가지고 자주 자주  총동원 주일을 지켜 가지고 이래 가지고 막 바람을 불려 가지고 이래 하면  돼진다. 오만 수단 방법 다 기울입니다.

 하나님이 해 주시지 않으면 안 된다. '아버지께서 보내지 않으면 올 자가 없다'  아버지께서 보낸 자는 아무리 막아 봐도 막을 수가 없다. 그분이 보낸 자는 온다.

이 하나님을 믿고, 죽은 자에게 복음을 뿌려서 이거 '심으면 이게 난다' 하는  이것을 생각지 않고,  이래 놓으니까 몇천 명 되는 장년반 교회에 주일학생을 물으니까 백오십 명인가  된다 해. 뭐 장년반이 삼천 명인가 이천 명인가 되는데 주일학교 학생은 숫자를  물으니까 백오십 명인가 된대요. 그거는 수로 치지 않습니다. 남 해 놓은 거  이렇게 주 모아서 따먹으면 되지 그 어린 것 키워 가지고 언제까지?  그래도! 어릴 때에 그 속에 진리 넣어 놓은 것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어데 가도  예수 믿으면 되고 구원 얻으면 되는 것이지 꼭 저거 교회 와 가지고 뭐 연보  십일조를 내야 됩니까?  그게 뭐이냐 하면 뚫고 들어가서 분석을 하면 그게 뭐이야? 절도요 강도요  이리라. 제 사람 만드는 거라, 하나님 사람 만드는 게 아니고. 그 속의 최고의  주인은 자기라. 최고의 주인은 자기.

 '술취함과' 그러고 나면, 나중에 세상주의로 들어가고 나면 뭐이 그다음에 순서가  나오냐 하면 생활의 염려가 온다 말이오. 어떻게 좀 잘 살까 하는 생활의 염려가  나와. 돈을 탐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는데 어쩌든지 생활 염려에 볼끈  눌려 가지고 있는데 무슨 예수를 믿을 거야, 믿기를? 수지는 전부 세상이 다  차지하고 마귀가 차지하고 있는데. 자기 속의, 마음의 제일 보좌 높은 자리는  마귀가 와서 점령하고 왕이 딱 돼 가지고 있는데 뭐 예수님이 와 가지고. 거게  종질 하려고 들어 와요? 안 와요.

 영은 중생 했지마는 이 성화구원은 자기가 제일 주로 모셔야 들어오지 그리 안  하면, 마음 가운데는 마귀가 왕이 돼 가지고 있는데 예수님이 월권으로  들어가려면 들어갈 수가 있는가? '이 사람이 지금 나를 좋아하고 나를 왕으로  모시는데 무슨 권리를 가지고 나한테 와서 밀어 내노?' 못 밀어내는 거라! 못  밀어내! 자기 주관이 죄를 회개해야 당신이 들어오지 회개 안 하면 못  들어옵니다.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마음이 둔하여진다 말은 뭐 둔하다 말이요?  세상 일에도 둔해져요. 세상 일에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요 꾀 조 꾀. 요 사업 조  사업, 이 길 저 길, 요 점포 저 점포 뭐 요 교제 저 교제 그런 것 짜다라 예민한  것 같지마는 실상 뒤에 가서 끝을 맞춰 보면 다 자살 행위만 했지 아무 소용이  없다 말이오.

 마음이 둔하여진다 말은 어두워져. 예민하지를 못해. 민첩하지를 못하고 총명이  없어져 버려요. 지혜가 없어져 버려요. 이러니까 먼저 하나님의 도리에 대해서  둔해져 버려. 하나님의 뭐 재림에 대해서 무슨 상관이 있나, 심판에 상관이 있나,  심판은 하나도 생각지 않고 그날 제 앞에 닥친 그런 것만 생각하지,  우리가 최고의, 죽는다는 것 생각하고 하나님의 심판 생각하고 무궁세계가 있는  거게 준해서 그것을 위해서 살아야 되는데 우선 껍데기만 그거 하고 있고.

부활한다는 것 생각하고 한 것 생각하고 이 세상살이는 거게 대해서 아무 생각  없어.

 이러니까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제  하나님의 말씀의 그물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하나님의 법칙은 우주에 가득 차서  뭐 조그만한, 조그만한 피라미 새끼도 못 나가게 이렇게 딱 그물을 쳐 가지고  있어.

 하나님의 그물은, 말씀의 그물은 이 우주에, 피라미 새끼 한 마리도 뚫고 나가지  못하도록 좁은 그물을 딱 쳐 놓고 있어. 좁은 그물을 딱 쳐 놓고 이래 있기  때문에 그 그물은 벗어나지 못해.

 이래서 시편 2편에, 이 군왕들이 전능자의 결박을 벗어나려고 애를 씁니다. 애를  쓰니까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비웃습니다.

네까짓 게 뭐인데 내 지금 이와같이 지금 이 망을 철조망을 내가 벗어나려고  애를 쓰느냐?  다만, 이 망에 걸려서 다 뒈진다. 뒈지는데 이 망에 걸리지 않는 것은 사죄, 칭의,  화친, 영감, 진리 요것만 이 그물에 쏙쏙 불거진다 요대로 하는 것은 그물에  자유하고 그물이 있거나 말거나 쏙쏙 쏙쏙 다 불거져 그물이 아무 상관없어. 암만  돌아다녀도 그물에 하나도 걸리지 안해.

 요 그물은 무슨 그물이냐? 예수님의 대속과 진리와 영감 요게, 요거 어기는 것,  요거와 일치된 것, 요거와 일치된 거는 자유하고 요거와 일치 안 된 거는 다  걸리도록 돼 가지고 있어. 마치 지남철이 뭐 돌도 있고 나무도 암만 있어도  자유하지마는 쇠는 딱 걸려 버립니다. 쇠는 딱 걸려. 이와 마찬가지로 이렇게  하나님이 다 불법한 자들을 걸려서 다 죽도록, 제 마음대로 하는 것, 이 그물이라  하는 건 제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것아 고물에 걸려 버립니다.

 하나님이 말씀한 대로 가라 하는 데 간 것은 이 그물에 걸리지 안해. 오라 하는  데 온 것은 걸리지 안해.이 말씀을 듣고 제 마음대로 마음도 제 마음대로, 생각도  제 생각대로, 욕심도 제 욕심대로, 뜻도 제 뜻대로 취미도 제 취미대로, 제  마음대로 하면 요거 다 걸려 뒈진다 그말이오. 이걸 알아야 돼요.

 갑자기 온다. 그러기 때문에 네가 깨어서, 이거는 천하의 모든 사람들에게 다  온다. 이러니까 재림만 아니야. 세상에 안 죽는 사람 누가 있어? 죽음이 다 오고,  천하 사람에게 다 오고 예수님의 재림도 다 옵니다. 이러니까 '이 날이 너희에게  덫과같이 오지 않도록 네가 항상 깨어서 기도해라'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깨어 기도하라 인자 앞에 서도록  깨어 기도하라는데 그거 무슨 말이요? '인자 앞에 서도록' 왜 하필? 왕 앞에 서는  게 좋소 거지 앞에 서는 게 좋소? 왕 앞에 서는 게 좋소 거지 앞에 서는 게  좋소? 제일 무지 무능 천인 앞에 서는 게 좋소 잘나고 유력하고 권세 있고 부자  앞에 서는 게 좋소? 저 대구에서 온 집사님, 한번 대답해 봐? 누구 앞에 서는 게  좋지? 인자 앞에 서도록 기도하라 했는데 인자는 제일 거지 가난뱅이 천한 거  아주 무지 무능해서 집 한 칸도 마련 못 하고 송곳 꽂을 땅도 없는 그분이십니다.

잘난 사람 앞에 서는 게 좋아요 거지 앞에 서는 게 좋 아요? 주님 앞에? 주님이  거지라.

 주님을 가리켜 인자라 했어. 하나님이 모든 부요 영광 존귀 권세 다 우리 주려고  내놨는데. 이 내놓은 그분에게, 그분 앞에 서도록 말이오. 그분이 내놓은 걸 다  자기가 하도록, 하나님의 부요를 우리에게 주는데 그걸 다 유업으로 받도록 이제  네가 조심해서 해라.

 그러면 이거 어데서 해야 되느냐? '스스로 조심하라' '스스로 조심하라' 마음을  붙들어 매라. 마음을 붙들어 매지 않으면 이 마음이 방탕해진다. 이렇게 마음이  방탕해지고 또 술 취한다. 그다음에는 생활 염려가 나오게 돼서 마음이 아주,  마음에 아무 감각 없는 그런 마음이 돼서 둔해져 감각 없는 마음이 된다.

 "스스로 조심하라" 네 마음을 스스로 붙들어 매라. 스스로 붙들어 매라 말이  무슨 말이요? 지난밤에 짜다라 많이 말했는데. 뭘로 붙들어 매라 말이요? 밖의 뭐  둥구나무에 붙들어 매라 말이요, 기둥에 붙들어 매라 말이요, 전봇대에 붙들어  매라 말이요, 어데 붙들어 매라 말이요? 속에, 네 속에 나오는 그 줄에 붙들어  매라.

 네 속에 나오는, 네 속에 뭐? 네 속에서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의 대속의 피도  나오고 영감도 나오고 진리도 나오니까 거게 붙들어 매라. 거게 네 마음을 붙들어  매지 않으면 이 마음이 흐트려져 가지고 네 일생 동안 영원 무궁을 좌우할 수  있는 이 일생 동안의 생활이 다 헛일되고 만다 그말이오.

 신앙생활은 조심해야 되고 힘써야 되는 것인데 우리 진영에는 '예수를 그래  믿으면, 뭐 관광갈 시간도 없지, 어쩌든지 이 총공회 이거 백 목사 .교훈대로 하면  눈코도 뜰 여가도 없지 한번도 쉴 여가도 없이, 아이구 그놈의 시집살이 아이구  이제 나오니까 참 좋다. 관광도 자꾸 가니까 좋고 야외예배도 가니까 좋고 이  마음대로 사니까 좋다.' 좋지마는 그 자유가 어찌 됩니까? 어찌 돼요? 그물에  걸려. 그물에 걸려. 그물 꼭 쳐 놓고 있어, 지금.

 이러기 때문에 이 그물을 보면서, 주의 날이 덫과같이 올 터이니까 그걸 보면서  여게 걸리지 안하도록, 뭘? 진리는 자유해. 진리대로 된것은 아무데도 걸릴 데가  없어. 아무것도 못 걸어, 진리대로 하는 것은. 영감대로 하는 걸 누가 걸어?  사죄를 누가 걸어? 칭의를 누가 걸어? 아무도 걸지 못해. 이 사죄 칭의는 하나님  속에도 자유로 출입해. 사죄, 칭의, 화친, 영감, 진리는 하나님 속에도 마음대로  돌아다녀요. 사람들 속에도 돌아다녀. 그 사람이 못 들어오게 하면 못  들어옵니까? 그 사람 속에도 다 마음대로 들어가서 속을 다 들여다 보고 다  이렇게 하고 있는데.

 이제 하루 삼십 분 기도 잃지 맙시다. 또 반사 선생님들은 꼭 체험과 경험을  가지고 가르쳐야 됩니다. 부장 선생님들과 반사 선생님들, 보조반사 선생님들 다  정신 차려서 자기 사명을 잘 감당하고 주님 구름 타고 오실 때에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으로 너에게  맡기겠노라. 주인의 즐거움에 와서 참여할지어다.' 그 날을 생각하면서,  땅위의 인간이 다 좋아해도 그까짓 거 없어지는 건데 무슨 소용이 있어? 땅위의  인간에게 잘 보여 봤자 그까짓 거 다 없어질 건데 무슨 소용 있어? 땅의 인간,  코에 호흡이 있는 것 천하 인간 다 뚤뚤 다 뭉쳐 가지고 저하고 한덩어리 돼도  아무 가치 없어. 그거 뭉치고 그게 되면 하나님과 멀어집니다. 신앙 경험한  사람들이. 그러기 때문에 땅의 것을 다 배설물로 여깁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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