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25 17:07
신앙양심
1987. 7. 2. 새벽 <목>
본문:베드로전서 3장 17절∼22절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여기 영이라 말은 성령을 말합니다.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
우리가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이렇게 분리하는 이 도리를 평생 예수 믿어도 못 듣고 떠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또 모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서 들어도 믿지 아니하고 항상 옛날로 옛사람으로 자기의 부패한 주관으로 돌아가서 실패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참된 도리를 듣고 믿는 데에서 이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인데 믿지 못하게 하는 것들이 가득 찼습니다.
엊저녁에 ○목사님 설교에, 예수님의 열한 가지 구속을 우리가 입고 살라고 하면은 이 구속을 입지 못하도록 벗어 놓으라고 하는 세력들이 전후좌우에 가득 찼습니다. 우리의 건설구원이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데, 그러면 쉽게 이루어지지 안하니까 대단히 이루기가 힘이 듭니다.
그러면 힘이 들면은 돈이 들어서 힘이 드는가? 육체의 힘이 들어서 힘이 드는가? 지식의 힘이 들어서 힘이 드는가? 무슨 그 사람에게 어떤 것이 들어서 힘이 드는가? 누운뱅이도 다 할 수 있고 어떤 그 구비한 세상에 제일 구비한 사람도 할 수 있고 이런 구원입니다.
구원인데 왜 이리 어려우냐? 어려운 것은 자기 부인하기가 어렵습니다. 모두 자기가 잘나 가지고 자기 주관이 강해 가지고 있고 자기 욕심이 강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 부인하기가 어렵소. 못난 사람은 부인하기가 쉽습니다. 무식한 사람은 부인하기가 쉽습니다. 누운뱅이 병신 중에 제일 병신이 부인하기 쉽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거 어렵다는 것이 뭐 이 세상에 무엇이 있어야 되어서 어려운 것이 아니고 없을 것이 있기 때문에 없애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없애기만 하면은 다른 것은 저절로 돼요.
그러기 때문에 이 건설구원을 이루는 이 구원 도리를 듣고 확실히 믿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이것을 믿지 못하게 하고 다 이 세상같이 살도록 그렇게 주장하는 것이 가득 찼기 때문에 그놈 때문에 구원 이루기가 심히 어렵습니다.
혹 이것을 시간이 있으면 구체적으로 하나 하나 배울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있을란지 모르겠는데 너무도 건너뛰어서 그저 거게서 제일 머리되는 것만 거튼거튼 했기 때문에 성령에 충만한 사람이 아니면 깨달을 수가 없고, 자기를 완전히 부인하는 사람이 아니면 깨달을 수가 없고, 하늘의 소망만을 가지는 사람이 아니면 깨달을 수 없는 그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도 어렵다는 것이 다, 왜 그러냐? 교만을 버리기가 어렵고, 또 겸손을 가지기가 어렵고, 자기 자율을 버리기가 어렵고, 사욕을 버리기가 어렵지 뭐 달리 해서 어려운 것 아닌 것입니다.
간단하게 여러분들에게 지금 말하는데 노아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노아 여덟 식구뿐 아닙니다. 많이 있었습니다. 많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이 방주 시험, 방주 심판을 두시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 홍수 심판을 면할 준비를 하라 하는 것을 하나님이 경고하셨습니다.
경고하셨지마는, 이 경고의 말씀을 듣고 순종함으로 홍수 심판에 구원 얻을, 홍수 심판을 면하고 구원 얻을 사람이 겨우 여덟 명밖에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 듣고 했지마는, 그 준비할 기간에 준비는 안 하고 전부 제 욕심대로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거게만 주력했지 홍수 심판을 면할 여게는 주력하지 안했기 때문에 다 멸망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또 우리는 그와 같이 지금 그때는 홍수 심판으로서 생명이 있는 것들만 멸했지마는 우리가 앞으로 받을 그 불심판은 모든 것이 원소로 화하고 모든 종류도, 형태도, 생명도 완전히 불타서 다 원소로 돼 버리고 맙니다. 원소로 돌아갑니다.
“모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고 또 모든 것이 비밀이 드러나고 모든 것이 없어진다” 하는 그말은 이거는 뭐 사람이나 짐승이나 각종의 형태가 있고 종류가 있는데 종류가 다 없어져 다 원소로 다 소멸된다 그말이오. 그러면 그게 얼마나 큰 문제겠습니까? 그런 것을 많이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그 뭐하는 것인가? 경건치 안한 자와 경건한 자를 구별할 때까지 쌓아 뒀다가서 그 작업이 끝나면은 모두가 다 불타서 원소로 돌아간다 이랬습니다.
그러면 경건이 뭐인데?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 하나님만을 믿고 딴것을 믿지 안해. 딴 말은 안 들어. 하나님 말씀만 듣지 딴 말은 듣지 안해. 어제도 “진실한 자는 이기리로다” 지식이 하나님의 지식 외에 딴 지식은 다 부정하고 하나님 지식 이 지식만을 자기 지식 삼아 있는 것이라는 이것이 강합니다, 아주. 여게 대해서 강하게 느끼지를 못해. 증거를 해도 강하게 느끼지를 못해요.
이렇게 모든 것이 불타지는데 의인은 새 하늘과 새 땅에 소망을 가지고서 이 불심판에서 멸망받지 안하고 새 하늘과 새 땅에 옮겨져 구원 얻게 된다. 이렇게 되는 데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네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이랬는데 이것만 하면 됩니다.
이러니까 이 지금 자꾸 제가 오늘 현시대에 있어서 증거하는 것은 그것입니다.
모든 사람과 좀 대립이 되어지는 증거는 뭐이냐? 이 건설구원 이루는 것은 노아 홍수 때에 그 사람들이 다 기본구원은 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얻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 하나님의 아들들 다 이런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 택한 자들에게 하신 말씀이지 불택자에게 한 말씀이 아니라는 말씀을 요것을 자꾸 믿지 안합니다. ‘이건 전부 모든 인류에게 다 하는 말씀이라’ 그게 아니고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택한 자들에게 하신 말씀인데 하나님의 사람들 가운데에 이 시험을 이기고 육체로 구원 얻은 사람이 불과 여덟 식구에 지내지를 못했습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도 애굽에서 인도한 것도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인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애굽에서 나와 가지고서 광야 생활은 했지마는 광야에서 구원 이루어 가나안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가나안을 천국을 상징했다고 다 이제 일반화되지 안했습니까? 했지마는 가나안에 들어간 사람들은 여호수아 갈렙과 거게서 광야에서 성장한 사람들 그 사람들만이 들어갔어.
왜? 딴 사람들은 왜 못 들어갔느냐? 믿지 아니함으로 못 들어갔어, 믿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 가운데에 믿음으로 구원 얻은 사람들이 많지를 못합니다.
예수님의 재림 때도 모두 다 이래 가지고서 이 육체로 구원 얻은 사람들이 많지를 못할 것을 말했습니다.
육체로 구원 얻은 것이 뭐입니까? 우리는 영의 구원과 육체의 구원 두 가지 구원이 있는데 육체의 구원은, 육체 구원이 무엇입니까? 영의 구원은 받았습니까 받습니까? 받았습니다. 육체의 구원은 무엇이 육체의 구원입니까? 육체의 구원은 건설구원이요 성화구원입니다, 건설구원 성화구원.
이것은, 참 이거 얼마나 아주 첩첩이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게 대해서 바른 깨달음을 가지고 바른 해석이 있는지 없는지, 제가 시간이 있으면 칼빈 주석도 박윤선 목사님 주석도 그분들의 주석은 그분들은 모든 유명한 학자들의 모든 주석을 다 참고로 삼아 가지고 했기 때문에 그런 분들의 주석만 본다고 하면은 모든 주석을 다 열람한 거와 같이 됩니다, 다 열람해 가지고 했기 때문에.
그 숫자가 그렇게 적은데 곧 이 물로써 시험한 이것은 물은 뭐이냐?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니까,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니까 그거는 무슨 소리입니까?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니 그것은 무슨 말입니까? 그 무슨 말이지요?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니까 무슨 말이지요, 저 뭐꼬 저 ○○○교회 조사님? 21절에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무슨 말이지요,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모두 성경을 어짜든지 껍데기로 줄줄 미끄러져 가지고서 자꾸 멸망만 취하지 전부 마귀의 감동입니다.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무슨 소리인고, 또 그 뒤에 양성원 학생? ○○○교회인가, ○○○교회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뭐이라? 그래 놓으니까 암만 말 들어도 암만 말해야 소용이 없어. 못 들은 걸 내가 알기 때문에 자꾸 말하는 거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가 무슨 소리입니까, 또 저 ○조사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의 공로로 말미암아’ 하는 것을 여게 말하고 있습니다. 한 자리 있어도 이걸 모르면 어찌 되는 거라, 되기를? 이러기 때문에 껍데기로 줄줄 읽어가고 어짜든지 알맹이를 잡아야 될 터인데 알맹이 잡으려 않고 껍데기로 자꾸이 보편으로 나갑니다. 일반에 무슨 건설구원이 있습니까?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사활의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그말입니다.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너희를 구원하는 것을 지금 표시하고 있다 말이오. 구원하는 것을 지금 표시하고 있다 말이오. “표니 곧 세례라” “곧 세례라” 자꾸 이래 놓으니까 알기가 어렵지.
세례라, 세례가 뭐인데? 세례는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의 공로를 입었다는 것을 표하는 것이 세례입니다. 세례는 예수님과 함께 죽고, 죽으심에 동참하고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 이것이 세례입니다.
나는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살았다 하는 것을 표하는 것이 세례입니다.
그러면 이 세례 생활은 우리의 평생 신앙 생활이 세례 생활입니다. 세례 생활이라니? 우리는 예수님이 나를 대속하셔서 다섯 가지 대속을 주시기 위해서 죽으신 이 죽으심이 예수님이 대신 죽었기 때문에 내가 죽은 것이요 예수님이 설정해 놓은 공로는 나는 손도 안 댔지마는 그거는 내 공로요. 내 공로이기 때문에 나는 주님의 것이라, 나는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주님의 것이요, 내게 대해서는 죽은 것이요, 주님의 것이요, 이것은 주님의 지체로서 주님의 몸으로서 주님의 성전으로 당신이 주권해 쓰실 일이지 내가 쓸 건 아니라.
이러기 때문에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라” 너는 살아 있으나 너는 완전히 죽어서 하나님께 바쳐진 것이라. 이 전체 성경이 환하게 보이고 있건마는 이 육덩이로 생각하니까 이거는 아주 천부당 만부당한 말이 되고 있다 그거요.
그러면 이것은 곧 세례인데 우리 생활은 세례 생활입니다, 우리 생활은 세례 생활.
세례 생활이라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는 죽고 사는 생활입니다, 죽고 사는 생활. 우리 생활은 두 가지 생활이라. 죽는 생활 사는 생활, 죽이는 생활 살리는 생활, 죽이는 생활 살리는 생활, 죽고 사는 생활, 그걸 또 달리 또 다른 말로 하면은 “몸에 더러운 것을 물로 씻어버리는 것이 아니고 착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서 찾아가는 것이라” 그러면 우리는 자꾸 벗는 생활, 또 입는 생활, 또 입고 사는 생활. 벗기는 뭘 벗는데? 사망을 벗지. 죽는 것 벗고, 망하는 것 벗고, 죄 벗고, 불의 벗고, 악한 것 벗고, 거짓부리 벗고, 세상 것 벗고, 자기 벗고 자꾸, 그러면 입기는 뭘 입는데? 하나님 입지. 하나님으로 하나되지.
이러기 때문에 “착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니라”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간다. 여게 하나님은 뭐인고? 여게 하나님은 뭐이 여게 하나님이요? 저게 뭐 조사더라? 저게 포항에 가서 있는? “착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니라” 여기 하나님은 뭐인데? 이 하나님은 뭐인데?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인데 무엇을 가리키는 건고? 찾아봐요.
이렇츰 몰라, 오늘 아침 지금 사흘 아침째지? 이래 가르쳐도 모르니까 여러분들이 뭣을 알고 알겠어? 자꾸 껍데기만 말하면 껍데기로만 알고, 부정하고 ‘이게 옳다’ 이래 가지고서 묵은 둥치 그까짓 것 암만 해 봤자 열매 안 맺습니다. 묵은 둥치가 문제가 아니라 묵은 둥치 있고 난 다음에 새 움이 나야 돼. 거기서 새로 깨달음이 있어야 돼. 이 시대에 가르치는 깨달음을 가져야지 깨달음을 안 가지면 소용이 없어. 절대로 세대를 이기지 못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저는” 저는 뭘 저는 합니까? 여기 다 말해 놓지 안해요? 성경을 껍데기로, “저는” 뭐이 ‘저는’인데, 저 ○조사님? “저는” 하는 건 또 뭐이야, 22절에 “저는” 하는 것?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저는” 하나님 말입니다.
내나 하나님을 향해 찾아간다는 요 하나님은 저를 말하는 것이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말해.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이시오.
“저는 하늘에 오르사” 예수 그리스도, 내나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찾아가는데 누구 찾아가느냐? 예수님 찾아간다 그말이오.
예수님 찾아가는데 예수님 찾아가다니? 예수님 뭐 찾아가? 예수님을 뭐, 예수님의 뭘 찾아가요? 예수님의 뭘 찾아가? 예수님의 뭘 찾아가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를 찾아가는 거라. 부활하심이 뭐인데? 예수님의 사활로 우리에게 열한 가지 구속을 줬어. 지난밤에도 ○목사님이 열한 가지 구속을 말하데요.
열한 가지 구속을 말하는데 열한 가지 구속을 자기 것을 참말로 삼아야 될 줄 알고 삼을라고 애쓰는 사람, 삼는 데에 전심 전력을 기울이는 사람, 또 삼고 있는 사람, 삼은 사람, 설교 들으면 다 알아요. 층층이를 다 안다 그말이오.
그런데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다 순복하느니라” 그런 것들이 다 순복한다. 이 말씀, 뭐할라고 순복해? “순복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는 일은 그분하고 하나되는 일입니다. 그분하고 하나된는 일인데 그분하고 하나되면은 천사들도 우리에게 복종하고, 권세들도 복종하고, 능력들도 복종하고 우리에게 복종해.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다 우리에게 다 복종해. 이 구원이 우리의 건설구원인데 이 구원이 그렇게 쉽게 되겠습니까? 쉽게 되는 것 아니야. 이 구원이 얼마나 어려운데? 노아 때에 이 구원을 얻은 사람은 겨우 여덟 명뿐인데. 이거 문제가 큰 문제인데 ‘노아의 여덟 식구 외에는 다 멸망받았다’ 그러면 그 사람은 지옥 가 있느냐 천국 가 있나 이것도 문제입니다.
일반들은 다 ‘노아 여덟 식구만 천국 갔지 나머지는 다 지옥 갔다’ 이렇게 그만 도매금으로 하고 그 속에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안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가지고서 광야 생활에서 믿지 아니함으로 멸망받은, 이 광야에서 멸망받았는데 그 사람들이 다 지옥 가 있다. 그 사람들이 하늘나라 가 있다. 그 사람들이 택한 자면 하늘나라 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예수 믿는 그 성경 도리를 바로 아는 것입니다. 기본구원 얻은 사람은 많지마는 성화구원 얻은 사람은 극히 적다.
성화구원 뭐인데? 또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그 공로로 구원 얻는데’ 공로를 믿으면,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 하는, ‘믿음으로 구원 얻지 뭐 어데 자기 행함으로 구원 얻는가? 믿음으로 구원 얻지.’ 녜, 믿음으로 구원 얻습니다.
믿음으로 구원이 뭐인데?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 열한 가지를 믿으니까, 열한 가지 믿으니까 자기에게 사망이 있습니까? 이 믿는 자에게 사망이 있습니까? 믿는 자에게 피조물이 와 가지고서 해할 수가 있습니까? 무슨 침노가 있어? 믿으면 필연적인 신앙 행위 나옵니다. 믿으면 필연적인 신앙 행위가 나와.
노아는, 그 많은 사람이 있었지마는 하나님이 홍수 심판을 말할 때에 다 믿지 안했고 홍수 심판을 노아 여덟 식구는 믿었는데 믿고 보니까 노아는 그 생활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어. 기독교의 구원은 전부 다 필연성입니다, 필연성. 하나 믿으면 둘 믿게 되고 둘 믿으면 셋 믿게 되고 자꾸 필연성이라, 필연성.
이거 뭐 거리가 얼마나 먼데 근근히 끌어 가지고서, 근근히 끌어 가지고 눈을 띄워서 조금 이제 조금 이 생기가 깔딱깔딱 다 뒈져가는 걸 이래 놓으면 빨딱빨딱 숨이 맥이 빨딱빨딱 뛰고 살아날 만하면은 팍 죽여버립니다.
‘그게 필요없다. 믿으면 구원 얻는다.’ 믿는 게 뭐이냐? 믿는 것은 알고, 인정하고, 알고 인정하기 때문에 알고 인정하는 행동이 필연적으로 나오는 것, 예를 들어서 불에 들어가면 타 죽는다 하는 것을 지식으로 알고 믿으면, 불에 들어가면 타 죽는다는 것을 그 사람이 믿으면 믿는 그거는 믿는지 안 믿는지 표시가 뭐입니까? 믿는지 안 믿는지 표시가 뭐입니까? 불에 들어가는 것입니까 불에서 나오는 것입니까? 불에 들어가는 것입니까 나오는 것입니까? 불에 들어가면 타 죽는다 하는 것을 자기가 지식으로 알고 그 타 죽는다는 것을 확실히 믿는다고 하면은 믿는 그 표는 그 사람이 불에 들어가는 것입니까 불에서 피하는 것입니까? 불을 피하는 것이라. 필연적이라. 누가 피하라는 게 아니라 막 있는 힘 다해서 안 들어가고 피할라 하는 거라. 이러기 때문에 지행은 하나라.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하나라.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하나라.
아는데 행하지 않는 것은 말로는 그래도 부인하기 때문에 행하지 않는 거라. 알고 믿으면 행해지게 돼져. 얼마나 이 거짓부리인지? 뭐 전부 거짓부리인데 거짓부리는 잘 들려도 참은 안 들려져.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의 공로를 믿으면 필연적으로, 다니엘이 그와 같이 하는 것을 자기가, 다니엘이 사자구덩이 집어넣을라 해도 그 사람이 조금도 뭐 염려하지 안하고, 두려워하지 안하고, 평안하고 기쁘고, 담대하고, 다리오 왕이 그렇게 하루 종일 조아도 아주 깔보고, 멸시하고, 거게 대해 조금도 두려움이나 염려가 없었던 그것은 뭣 때문입니까? 그 사람이 다니엘이 담력이 있어 그렇습니까 하나님과 하나님의 계약과 하나님의 보호를 믿기 때문에 그렇습니까 담력으로 그렇습니까? 믿기 때문에 그래.
담력으로 그런 것 아니라.
그렇게 믿으면 그런데, 믿으라, 예수님의 대속을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요 믿는다는 것은 이거 무슨 말인고 하니 다니엘이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사자굴이 와도 염려하지를 안하고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전능자를 믿고 자기가 세 사람이 들어갔는데 네 사람이었어. 나중에 나와 보니까 불냄새도 나지 안한 것, 해 보고 알았지.
하기 전에, 불미에 들어가 가지고서 불내음새도 나지 안하는 그 결과를 보기 전에 그걸 확실히 믿는 사람이면은 들어가면 묘한 장기나 보이고, 한번 권위나 보이고, 사람들에게 인기나 올라가고, 사람들의 눈을 놀래게만 했지 염려할 게 뭐 있습니까? 그렇지 안해요? 염려할 게 있어요? 믿는다는 것은 아직까지 되지 안한 그것을 되고 난 후와 같이 그렇게 알고, 안심하고, 인정하고, 행동하는 그게 믿음입니다. 믿음이 뭐이요? 믿음도 근방에 가지도 안한 걸, ‘믿사옵나이다, 믿으면 된다.’ 어찌 믿으면 됩니까, 되기를? 믿는 것은 알고 인정하고 인정하는데 어느 정도 인정하느냐? 그 인정하는 행동이 나타나기까지 인정하는 것입니다. 인정하면, 인정하면은 인정하는 행동이 나타납니다.
불에 들어가면 타 죽는다는 것을 인정하면 인정하는 행동이 나타나고 ‘불에 들어가면 타 죽는다 하지마는 그말 누가 알 수가 있나 믿을 수가 있나? 참 말이가? 그거 다 쓸데 없는 소리 백지 궤변들이다.’ 하면은 그 사람이 불 보고 피할 리가 없다 그말이오. 그렇지 않습니까? 그 사람의 행동을 보아서 믿나 안 믿는 것을 표라.
그러기에 믿는 것은, 믿는 것은 미래에 속한 것인데 미래를, 미래를 자기가 믿음으로써 믿음과 미래가 하나가 된 그것이 믿음입니다. 믿음과 미래가 하나가 된 믿음이오. 그게 믿음이라.
이것을 하나님이 알려 주기 위해서 대구집회 때도 하나님 말씀을 듣고 요대로 믿어라. 믿으니까 그거 좀, 그 믿음은 다, 그 사람이 무슨 장성한 믿음으로 낫는 게 아니라 이 표적들은 그것은 다 없어질 것들인데 없어질 그런 것들은, 이제 영병을 고치고 마음병을 고치고 이 몸에 기능병을 고치는 것은 영원한 것이지마는 고기덩어리병 고치는 그거는 다 고쳐봤자 또 내나 그것 되고 말 것이라. 썩어지고 변형되고 말 것이라.
이거는 뭐입니까? 이것은 믿는 자에게 주시는 게 아니라 믿음 없는 자에게 믿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이런 분이라’ 하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 이랬습니다.
자기네들이 그렇게 그렇다는 것을 알고 인정하고 그대로 살라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요게 네가 옳다’ 하는 표로 병이 낫고 암병도 낫고 무슨 병도 낫고 하는 것이 그래 요대로 믿으면 된다 하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이라 말이오.
그거 무슨 구원입니까? 구원이 아니오. 알려줌으로써 그럼으로써 그걸 인해서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믿고 그대로, 확실히 믿고 그대로 행동이 이루어지기까지 믿는 그것이 우리의 구원이요 그게 믿음이다. 이루어지기까지 믿으면 능치 못할 것이 없는 것이 믿음이다.’ 요것을 자꾸 알리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 말이오.
요렇게 알릴라고 죽도록 가르칠라고, 요걸 땅에 있는 것을 막 가르칠라고 애를 쓰고 끌어올려 놓으면은, 끌어올려 놓으면은 한 마디만 하면 푹 반대하면 땅으로 툭 내려가 버려. 타락해 버리고 만다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이거 사람 살리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릅니다. 이래서 가라지 비유, 가라지 비유 그거 가라지가 방해하고 있어.
우리는 얼마나 이 범위가 넓어서 좀 말하기가 힘들어. “착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지금 미래로 생활하는 것은 뭐이냐? 미래의 생활은 앞으로 지금 나가는 것은, 앞으로 지금 이 현실을 만나 가지고서 이 현실에 지금 사는 이 현실 생활은 무슨 생활입니까? 현실 생활은 무슨 생활이요? 현실 생활은 죽음에 속한 사망에 속한 것, 저주와 멸망에 속한 것, 더러움에 속한 것 그런 것들을 벗는 현실입니다. 벗고, 깨끗하고 참되고 온전한 것을 내가 입는 현실이오. 또 더러운 것은 죽이는 현실이오. 참되고 산 것 생생한 그것을 살려서 기르는 현실이오.
그러니까 이 현실에는 더러운 걸 벗고 참 것을 자꾸 입는 것이 현실 생활인데 이걸 껍데기로 말하다 보니까 “착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네가 앞으로 한 자욱을 밟는, 한 자욱을 밟는, 밟는 것은 뭐이냐? 한 자욱 자꾸 미래에 대해서, 미래에 대해 활동이 제일 일선에서 미래의 활동이 어떤 것이 미래의 활동이라 했습니까? 뭐라고 배웠지요? 미래의 활동이 뭐이지? 미래의 활동이 뭐이지? 자기 미래를 이래 걸어나가는 데에 미래 활동 중에 제일 선봉장으로서 활동하는 그 활동의 이름이 뭐이요, 활동의 이름? ○○○조사? 아니야, 아니야. 그거는 도구야, 도구. 궁구, 사색, 사고, 생각하는 것, 연구하는 것, 그거 찾아 나갈라면 먼저 활동하는 이름 아니요? 그러면 그렇게 그걸 지금 미래를 지금 찾아서 향하여 나가는 데에 제일 선착순으로 활동하는 것이 뭐이냐? 궁구, 사색, 연구, 생각하는 것 이런 것이 제일 일호로 활동하는 것이라.
그러면 그 활동할 때에 활동하는 데에는 활동하는 데에 그 당사자, 당사자라 말은 이 차용계약서라면 빌려 준 사람 빌린 사람 그 두 사람을 가리켜 당사자라 말합니다. 또 원고와 피고, 시비할 때는 원고와 피고를 말할 때 당사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그때 이렇게 자기 미래를 돋파 나가는, 생각해 가지고서 연구해 가지고 사색해 가지고 그대로 나가야 되겠는데 이렇게 자기 미래를 사색하고 돋파 나가고 이렇게 하는 데에는 거게 당사자가 몇이라 했습니까, 손가락으로? 둘.
이거 하도 모르니까 이거, 둘.
둘인데 뭐입니까? 저 지금 ○○○교회 조사님인지 뭐인지 지금 손가락을 둘 들었는데 뭐인고 한번 말해 봐요. 주관과 객관, 백점이라. 주관과 객관. 요것도 마음을 다 기울여서 전폭을 기울여야 알아지지 전폭을 기울이지 안하고 ‘뭐 말하는고 보자. 구경이나 해 들어보자.’ 이러기 때문에 이라는 사람은 헛일입니다.
이 설교록을 저 외국에서 보고서 그것을 보고 ‘이거 아무래도 사야 되겠다’ 역부러 설교록을 살라고 이까지 와 가지고서 이래 거석하고 하는 그런 사람들은 보는 것과 듣는 것이 한 자리에 듣고 봐도 달라.
알면 변동 안 할 건데, 암만, 어떤 사람이 그렇게 말했어. 이 도가지를 하나 만들라고 지금 좋은 도가지를 만들라 하니까 이거 뭐 말리고 굽고 이라니까 한 달 동안 걸리는데, 한 달 걸리는데 한 달 걸려서 만들어 놨는데 어떤 사람이 와 가지고 그만 톡 때려서 그만 금을 가게 해 버렸어. 그만 도가지가 그만 금이 갔다 말이오.
금이 갔는데, 그라니까 그 사람이 만든 사람이 울고 있으니까 그란 사람이 있다 말하기를 ‘이거는 고칠 수가 없습니까?’ ‘이거는 고칠 수가 없다.' 이거는 고칠 수가 없다고서. 이거는 뭐 사그릇인데 깨졌으니까 어떻게 고치겠느냐고.
고칠 수가 없다고.
그라면서 말하더래요. ‘이것은, 이것은 깨진 것은 고칠 수 없어도 상관 없는데 사람을 만드는 것은 사람을 만들라고 이렇게 수십 년 들어서 사람을 만들라고 애를 써도 어떤 마귀의 작용이 와 가지고 한 개 탁 때려버리면 금 가 버리면 다시 그걸 사그릇 깨진 거와 같이 고칠 수가 없다.’ 고칠 수 없습니다. 다시 또 앞으로는 무엇이 될지라도 깨진 거는 고치지 못한다는 걸 이걸 알아야 돼. 깨지는 것.
내가 이름은 잊었는데 어떤 성자가 하도 자기 거석한 방해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사그릇 도가지를 만들어 놓고 그걸 깬 그걸 가지고서 그 사람에게 말했다는 그런 말을 내가 책에 쓰인 걸 읽어봤어.
이래서 거게 당사자는 주관과 객관이라, 주관과 객관. 이 둘인데 주관과 객관.
주관은 뭐인데? 주관은 무엇을 무슨 주관입니까? 주관은 무슨 주관이요, ○○○? 자기네들 귀에 안 들려. 참 예수님 재림 때에 보면은 노아의 때 여덟 식구뿐 없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 영광스러운 구원을 이루어 가지고서 갈 사람이 많지를 못할 거라. 뭐 수십 년 예수 믿어야 들어도 보지도 못하는 사람 있지, 또 듣는 가운데에서도 방해는 열 번 받고 듣는 거는 또 한 번 들으니까 또 헛일이지. 또 듣는다 할지라도 확실히 믿지 않기 때문에 헛일이지.
믿어보면 될 건데, 믿어보면 실험하고 경험하고 실험의 지식과 체험의 지식이 하나님의 계시 지식과 일치가 되는데 하나님의 계시 지식이 자기가 실험해 보니까 ‘아멘’ 자기 몸으로 체험해 보니까 `아멘’ 이리 돼져 가지고서 요게 믿음인데, 믿음으로 믿음에 나아가는 것은 알고 인식하고 실행하고 나니까 자기에게 경험의 지식 체험의 지식으로서 알게 되고 또 그라니까 ‘믿어야 되겠다’ 또 믿고 또 믿고 이래 가지고서, 여기 믿음이라 하는 것은 뭐이냐? 믿음이라 하는 것은 미래에 믿는 게 아니라. 미래에 속해 있는 믿음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된 믿음이 과거가 되어진 그것이 믿음의 온전입니다. 알겠습니까? 믿고 믿음으로,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한다”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할 때에 온전한 믿음이 된다” 했어. 성경이 틀리요? 성경을 믿느냐 인간을 믿느냐? 뭘 믿느냐? 성경을 믿느냐 이 세상의 학자들의 학을, 학자들의 그 말을 믿느냐? 뭘 믿느냐? 네가 하나님 믿느냐 사람 믿느냐? 뭘 믿느냐? 냉정스럽게 비판해서 내가 믿음에 있나 없나 자기를 시험해 봐야 합니다. 그래 확정해야 돼. 속으면 헛일이라.
주관은, 주관에도 수많은 게 많이 있지마는 다 제거해 버리고 착한 양심이라야 돼.
양심만 가지고도 안 돼. 착한 양심, 하나님 중심 양심, 이거 뭐이냐 하면 신앙 양심이라.
신앙 양심이라 말은, 신앙 양심은 뭐 신앙 양심인가? 신앙 양심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진리 지식대로 양심이라 말인데 진리 지식대로 양심이라 말은 무슨 말이요? 그걸로 끝났습니까? 아니오. 신앙 양심은 하나님의 진리 지식의 지배를 받는 양심이라 그말인데 그 양심은 무슨 양심이라? 영감 양심이라야 돼. 하나님의 진리 지식의 문서 지식에 순종하는 양심이 이제 썩 나가면은 영감에 순종하는 양심이 돼. 영감이 돼, 영감. 이것 가지고서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
이 하나님은 무슨 하나님이지? 이 하나님은 무슨 하나님이지?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 무슨 하나님이라? 예? 성자 하나님. “저는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계신다”고 똑똑히 그뒤에 밝혀 놓지 안했어요? 그러면 예수님 뭐 할라고? 예수님의 열한 가지 구속을 말한 것이라, 열한 가지 구속.
사죄에 대해서 세 가지, 세 가지 자유, 해방과 자유. 또 하나님의 공심판 통과의 의,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해서 부자간 된 이 화친, 다섯 가지.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다섯 가지, 부활하심으로서 여섯 가지. 부활하심으로 첫째가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중생, 또 그다음에 뭐이요? 진리 영생, 영감 영생, 또 뭐이요? 제사장, 선지자, 왕직. 이거 연습이라.
이거 연습이고 지금, 연습이라니? 연습이 우리가 이거 되어 가지고 있소 안 되어 가지고 있소? 되어 가지고 있는데 연습이라. 연습을 해야 자라지? 이거 다 종자는 받아 있지마는 기르지 못하니까 자라지를 못해. 자란 것을 뭐라 했소? 그 공적이 불타면, 기른 것은 영생인데 기르지 못했기 때문에 헛일이라.
자, 이런데 여러분들이 앞으로 온 우주가 다 불탈 때에 그때에 불탐의 해를 하나도 보지 안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지는 것이 오늘입니다. 불이 타도 해 하나도 보지 안해. 해를 하나도 보지 안하고 불이 타면 탈수록 자꾸 좋아져. 왜? 더러운 거 썩어진 거는 자꾸 벗어지고 자꾸 새 것이 나오니까 자꾸 좋아져.
여러분들 여기 지금 옥을 진흙 밭에서 캐놨는데 그 옥을 자꾸 들이 씻으니까, 씻으니까 옥이 주먹덩이가 뭉텅하게 주먹덩이만한 게 자꾸 씻으니까 자꾸 작아집니다. 작아지니까 옥이 손해요 옥이 유익이요? 더러운 걸 씻으면 자꾸 유익이지. 또 옥을 얼턱덜턱하게 이렇게 됐는데 그걸 자꾸 이래 가니까 자꾸 갈아내니까 가치가 높아지요 적어지요? 가치가 커지지.
이와 마찬가지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생명은 완전한 것이기 때문에 연단을 받을수록이, 시험을 당할수록이, 환난을 당할수록이 자꾸 좋아지고 깨끗해지고 커지고 가치 있어지지, 나빠지는 게 아니라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너희들은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를 입었나니 이제 여러가지 시험을 당하여 잠깐 근심되지 안할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왜? “이것이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보배로워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뭐라 했습니까? 칭찬과 영광과 존귀함으로 관씌움 받는 지금 이 준비하고 있어. 그게 무슨 손해야? 완전히 사람이 거듭난 새사람으로 살아야 이 건설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보는 것도 듣는 것도 다 틀려.
이러니까 우리는 부패성이 강해요. 부패성이 강하기 때문에 옳은 말 천 번 들어도 부패성 말 한 번만 들어도 그리 쭉 당겨 가. 얼마나 위험한지? 이래, 잘 생각하고 자꾸 이 구원을 이루도록 이렇게 노력하면 그러면 그 노력은 피곤하냐? 아니오. 이 노력에 기쁘고 즐겁습니다. 세상에 이 노력이 되면 사람이 조금 어느 단계에 가면은 세상에 좋아할 게 하나도 없어. 모든 사람이 좋아하면 그 사람을 위해서 할 수 없이 그 사람을 위해서 ‘아, 좋다.’ 하지만 속으로는 좋은 게 아니라. 속으로는 좋은 게 하나도 없어. 좋은 게 하나도 없어. 귀한 게 하나도 없어. 가치 있는 게 하나도 없어. 믿을 것도 없고 의지할 것도 없어. 탐할 것도 없어. 애쓸 것도 없어. 받을 것도 없어.
전부 예수 그리스도 한 분 그분에게, 그분뿐이라. 믿을 것도 그분, 의지할 것도 그분, 바라볼 것도 그분, 좋아할 것도 그분, 사모할 것도 그분, 얻을 것도 그분, 바칠 것도 그분, 교제도 그분, 이분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 이렇게 되는 것이 천국입니다.
십 분 기도 후에 결혼 상담 있습니다.
○○○조사님, 이번 공과가 뭐이요? 그 열세 가지인데 그게 공과모음에 대해서 몇에 있어요? 공과모음 책에 있지 안해요? 그러니까 요번에는 공과 박아 주지 말아요. 공과 박아 주지 말고 공과모음책 그거 보고 읽고 베끼고, 베껴 쓰고 이래 가지고서 가르치라 해. 장 암만 키워 봐야 누운뱅이 만들어 놓고 밥을 떠먹여.
밥을 떠먹여도 이건, 떠먹여도 안 돼.
이러니까 어머니가 죽고 난 어린아이 내가 기르는 걸 내가 봤는데 그 아버지가 기르는데 말이지, 이거는 그냥 먹으면 안 돼. 밥을 입에 넣어 가지고 씹어. 이래 막 자꾸 이래 씹어 가지고서 그래 가지고서 인제 물이 되면 그걸 먹여. 그래 가지고 길렀는데 건강하게 길러졌어요. ○○교회 ○집사라고 아주 수집사인데 그 사람 저거 아버지가 그래 가지고 길렀어.
그게 별것인 줄 압니까? 여기 새를 길러보면, 여기 아마 ○○○집사님은 알 거라.
새를 기르면은 새가 새 새끼 그까짓 게 어떻게 서숙알이니 이런 거 다 먹습니까? 못 먹어요. 이놈을 자꾸 씹습니다. 씹어 가지고서 말이지요, 씹어 가지고서 자기가 먹어. 먹어 가지고서 새로 게워 가지고서, 먹어 가지고 속에서 위장에서 소화를 시켜 가지고 게워 가지고서 새끼를 먹여. 그래 가지고 길러. 나중에는 씨를 물어다가 그만, 사료를 물어다가, 서숙이면 서숙 물어다가 먹이면 그냥 돼져.
그러면 그때 다 큰 거라.
이와 같이 공과도 자꾸 이래 놓으니까 뭐 내가 주일날 새벽에나 또 가르쳐 주고 이라고 하니까 되는데 도무지 공과 준비를 안 해. 이러니까 이제는, 반사직이, 반사직 이게 세계에 제일 강대국 대통령직보다도 천천만 배 억억만 배도 더 큽니다. 인제 주님 구름타고 오시면 그래. 그 나라가 되면 딴거 소용 없어. 그렇게 가치 있는 직책인데 이걸 예사로 하고 있어. 왜? 한 사람의 생명이 우주보다 큰 건데 우주보다 큰 것 제가 날마다 지금 만들고 있고 기르고 있고 하는 이것이 반사 직책이라.
이러니까 반사된 분들은 어짜든지 ‘하나님을 향한 지식 13가지’ 그것이 지금 요번 공과니까 고거 보고 베껴 가지고서 외워 가지고, 베끼고 외워 가지고 가르치도록 하십시오. 다 알겠습니까? 그래서 엊저녁에 공과를 박지도 안 했는데 이제 베겨서 익혀서 그래 해야 돼. 자꾸 공과를 새 공과만 할 게 아니라 이것 뭐 알지도 못하고 아무 소화도 못 시키고 있어. 그러니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외워야 돼. 자꾸 외워 가지고, 그 지식을 아는 다 알고 있는 목사님들이 많지를 못해요. 알겠습니까? 와 놓으니까 예사로 여겨.
또 세상에 잘난 사람들은, 잘난 사람들은 어리석다고 안 듣습니다. 안 들어.
믿어지지 안해. 그것이 길가밭이라. “지혜 있고 통달한 자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에게 나타낸다” 했거든. 지혜 있고 통달한 사람이 잘 알 건데 왜 몰라? “지혜 있고 통달한 자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에게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주님이 말씀하신 거라. 주님이 몰라서 말했겠소? 어리석지 말아요.
어짜든지 자기 양심을 써서 이 건설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전심 전력을 기울이지 안하면은, 이 건설구원은 영생인데 영생 이룰라면은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힘 다하고 뜻 다해야 된다 했는데 이게 쉬운 일이요? 어째? 그런데 도둑놈이 가르치기를 ‘예수님의 공로를 믿음으로 된다’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닌데 그 말이 자기네들이 깨달은 대로의 그 말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열한 가지 대속의 구원을 확실히 자기가 믿으면 영생 가진 자가 죽음에 무슨 떨고 있어, 영생 가진 자가? 하나님 아버지 아들이 여기 대통령 아들만 돼도 세도를 부리는데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뭐 그렇게 칙칙하게 비굴하게 더러운 행위를 할 게 뭐 있는가? 이 열한 가지 대속을 믿으면 필연적으로 열한 가지 대속을 믿을 때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생활이 필연적으로 나올 수 있는 이 믿음이 아니면 믿은 게 아니라 그말이오. 알아듣겠습니까? 알아듣겠어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어짜든지 이 구원은 천상천하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자기 것 만들 수 있는 구원이기 때문에 온 한국을 차지하고 세계를 차지하는 것보다 더 큽니다. 이런 것을 믿어야 돼. 믿는 사람이 되지 그것도 안 믿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