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의 힘

 

1981. 11. 30. 월새

 

본문 : 로마서 3장 9절 - 18절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 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우리의 신앙생활에 성패는 요 현실에만 매여 가지고 있습니다. 현실이라면  시간으로는 바로 지금 요것이 현실에 대한 시간이요. 현재라는 요것이 현실에  대한 시간이요. 또 공간적으로는 자기가 현재에 머물고 있는 그 자리가 자기  현실의 장소요 또 종류적으로는 자기가 현재 어떤 일을 당하고 있든지 누구를  만나고 있든지 어떤 물건을 만났든지 사람의 종류나 물건의 종류나 일의 종류나  어려움의 종류나 평안의 종류나 또 기쁨의 종류나 슬픔의 종류나 고통의 종류나  어떤 종류든지 그 종류를 현재 이 자리에서 내가 만나가지고 있는 고것이 자기의  현실입니다.

고 현실에만 자기 구원이 있고 또 현실에만 자기의 실패가 있지 현실 외에는  구원도 없고 실패도 될게 없습니다. 실패된 것도 벌써 실패됐고 구원된 것도  구원됐고 죄우구원과 실패에 좌우는 구원이 되느냐 실패가 되느냐 하는 그 이리  되느냐 저리 되느냐 하는 그 좌우를 가지고 있는 것은 현실뿐입니다. 잘 되는  것도 현실에서만 잘되지 현실을 지나고 나면은 그 다음에는 잘 될 수도 없고  못될 수도 없고 망할 수도 없고 흥할 수도 없고 이미 되어 있는 것 그대로  입니다. 되어 있는 그대로지마는 요 현실에는 이 좌우가 흥망 성쇠가 새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악령은 우리를 꾀워서 어떻게 만드느냐 하면은 과거와 미래 현실 이  세토막이 있는데 과거와 미래만 우리로 하여금 상관을 가지도록 하고 이  현재라는 것은 상관을 가지지 못하도록 그렇게 악령이 우리를 자꾸 유혹을  시킵니다.

예를 들어서 옳은 일을 하는 그 의에 대해서 앞으로 이렇게 의를 하겠다 의는 꼭  미래에다가 붙여버립니다. 악령이 우리를 꾀워가지고 의는 미래에다 갖다  붙여버리요. 앞으로 내가 이래 하겠다 앞으로 하겠다는 그것은 고 다음에  현실에서 고것을 하게 하는데에 다소의 효력이 있을지라도 대개는 악령이 우리를  꼬와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계획이 없을 수 없지마는 그 계획이  현재에 해당된 계획만 현재에 그 미래에 대해서 생각해야 되지 미래에 속한 것을  현재에 말하면 그게 죄가 됩니다. "한날에 괴로움이 그날에 족하니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언제든지 현재에서 해야 되지 현재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좋은 것은 악령이 우리로 하여금 미래에다가 붙여버립니다. 앞으로  내가 이렇게 좋게 하겠다. 앞으로 좋게 하겠다. 내일 좋게 하겠다. 요 다음 시간  좋게 하겠다. 그거다 마귀에게 미혹받는 것입니다. 좋은 것은 이 시간 이 시간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간 해야 되지 이 시간 할 수 없는 일 내일이라야 하지  오늘은 형편과 사정이 오늘은 할 수 없는 일이라면은 그것은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일이지 오늘에 지금 그것을 하는 것은 마귀라는 놈이 내일 이런 것  하겠다. 이렇게 미래의 것을 가지고 말하는 것은 현재에 할 일을 이것을 하지  못하고 미래에 자기의 할 일을 현재 할일과 바꾸어 놓기 위해서 악령이 이렇게  작용하는 것입니다.

또 그 잘못된 것은 잘못된 이 죄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느냐? 죄에 대해서는  악령이 과거에다 끌어 붙여버립니다. 과거에 내가 이런 죄를 지었다. 과거에  이런 죄를 지었다. 원통히 여기면서 그 눈물을 흘리고 아주 아무리 한다고 해도  그것이 소용이 없습니다. 과거에 그런 죄 지은 것을 이 시간에 안지야 됩니다.

이 시간에 안 지어야 되지 잘못된 것도 이 시간에 필요있고 잘할 것도 이 시간에  필요 있지 이 시간 외에 것은 공연한 악령이 미혹시켜서 우리를 끄는 것이지  우리에게 실효없는 일입니다.

그런고로 어떤 일이든지 좋은 일을 좋은 일도 내가 앞으로 그렇게 하겠다.

그래놓고 안속은 줄 알고 앞으로 그래 하겠다. 그런 결심을 했으면 자기는 아주  승리를 한 줄로 그렇게 알고 있지마는 앞으로 할 일 그 일이 오늘은 지금 장소가  다르고 또 때가 달라서 오늘은 못할 일 같으면 오늘은 그일 하지 말고 오늘에  당장 할 일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이 시간 이 시간에 할 일 아닌 일은 우리에게 계획이나 결심이나  하는 그것이 실은 다 미혹입니다. 이 시간에 할 일을 해야 됩니다. 죄에  대해서도 만일 죄를 과거에 지었으면 과거에 죄를 지었으니 과거에 내가 이런  죄를 지었다. 눈물 암만 흘리야 소용없습니다. 과거에 이런 죄를 지었으니 이  시간 내가 이런 죄를 짓지 않겠다. 이 시간 그 죄를 짓지 안해야 됩니다. 과거에  잘못된 것도 잘된 것도 미래에 앞으로 좋은 그런 모든 계획도 이 모든 것이  과거에 대한 일이 있고 미래에 대한 일이 있지마는 이 일을 요것을 함축시켜  가지고 현재라는 요 구멍으로 빼내야 됩니다. 요 현재에 요것이 현재를 통해서  현재라는 요 구멍에 통과를 시켜야 됩니다. 요 현재로 통과시키야 그래야 사는  것이고 승리가 되는 것이지 그저 과거 미래에 대한 미래에만 과거에 잘못된 것을  후회를 하고 미래에 잘할 것을 과거를 하고 또 과거에 잘한 것을 자기가 아무리  오늘에 나비보고 해 봐도 그게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과거나 미래에 대한 그것을 현재에 고걸 적용을 시켜서 현재에 고것이  해당이 돼야되지 그렇지 안하면 다 무익한 것입니다. 그 그것을 현실이라  말하는데 현실은 자기가 현재 당하고 있는 시간 또 자기가 현재 머물고 있는 그 장소 또  자기가 접촉하고 있는 모든 종류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물건이든지 사건이든지  좋은기든지 나쁜기든지 자기가 접촉하고 있는 그 그 어떤 존재나 어떤 그  움직임이나 어떤 그 문제나 이런 것들이 다 자기가 현재 닥치고 있는 그것이  자기 현실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 현실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그것을 만들어주십니다.

전지하신 하나님이 전능하신 능력을 가지고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그것을  만들어준 그 현실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 현실에 닥칠는 이를 어떨 때는  짐작을 해서 아 내게 이런 현실이 닥치는 것 보니까 이런 현실은 내게 어떤  면으로 유익을 위해서 이런 현실을 하나님이 주셨다. 이렇게 깨닫는 것도  있지마는 이거는 너무도 이해못할 현실을 닥치기 때문에 깨닫지 못할 그런  현실들도 우리에게 많이 닥쳐옵니다.

그러면 우리가 깨닫지 못할 현실 이거는 참 왜 이런 일이 닥칠까 암만 해도 생각  못하겠네. 왜 이런 일이 닥칠까 이해를 할 수 없는 그런 일은 내가 어두어서  이해를 못하는 것이지 내게 없어도 필요한 그런 것이 닥친것 아닙니다. 없으면  안될 것을 우리에게 닥치게 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무조건 우리는 자기에게 현실을 만들어 하나님이 주실 때는 사람을  통해서 만들기도 하고 나라를 통해서 만들기도 하고 원수를 통해서 만들기도  하고 자연을 통해서 만들기도 하고 원수를 통해서 만들기도 하고 자연을 통해서  만들기도 하고 뭐 풍재 수재 환재 뭐 이런 모든 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내 현실을  만드는 데에는 여러가지 그 당신이 지어 놓으신 만물을 사용해 가지고 현실을  만드는데 만드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그 어떤 현실이든지 이 현실은 주님이 내  구원을 위해서 만드신 것이다. 이러니 이 현실은 나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필요한  현실이다. 이것만은 우리가 확정을 짓고 들어가야 됩니다. 그러면 그런데 어떤  면으로 유익 되겠느냐. 이거는 암만 생각해 봐도 모든 면으로 해가 되지 유익될  것은 하나도 없는데, 뭣 때문에 이 일을 만나게 할까? 이 유익은 되는 것이다.

유익은 되는 현실을 줬는데 내 보기에는 백방으로 생각해도 해될 것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오산이 됐고 오해가 됐지 그것이 실상 나에게 해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내게 유익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서 그러면 어떤 면으로 유익이 되느냐  그것을 연구해서 깨닫는 것이 좋고 깨닫지 못하면 유익될 것인 줄을 알고 어떻게  유익된 것인줄 몰라도 거기에서 그러면 내가 여기에서 하나님의 성경 말씀을  가지고 말씀대로 행하려고 하면은 어떻게 행할 수 있느냐? 행해야 되겠느냐?  먼저 말씀으로 가지고 자기 할 일을 찾아서 작정을 하고 행합니다. 말씀을  가지고 자기 할 일을 찾아서 작정을 하고 행합니다. 말씀을 찾아 가지고 행하면  행하는 가운데에 말씀을 찾아 가지고 행했으니까 이제는 다 됐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왜 말씀은 윤곽적으로만 우리에게 인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비유컨데 울타리와 같습니다. 울장 울장과 같소. 이 말씀대로 하면은 울장  속에는 들었습니다.

그렇지마는 울장 속에 들어 있다고 다 그것이 자기 침대며 침실이며 자기  처소겠습니까? 그 울장이 있고 그 안에는 집이 있고 집 안에는 또 자기 거처하는  방이 있고 있는 것처럼 이 하나님의 법으로 찾은 것은 울장과 같은 것인데 그  안에 성령이 자기를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찾으면 찾아 가지고  그안에 이제 찾은대로 행하게 되면 우리 속에 양심이 살아납니다. 고대로 행하게  되면 우리 속에 양심이 살아나는데 양심이 살아나는 고대로 또 자기가 행하면은  그 속에 영감이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러면 그때에 그것이 영감 인도대로 하면은 고게 뭐이냐? 믿음이 됩니다.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는 믿음이 됩니다. 그러면 그 현실이 하나님이  주신대로 그 현실을 잘 사용해 가지고 현실에서 자기가 수입볼 것을 보는 사람이  되게 됩니다. 현실에서 수입볼 것을 본 사람이 됩니다. 그렇게 현실은 아야  우리가 주님이 지으셨다는 것 내 유익을 위해서 있다는 것 그러면 이 현실에서  죽고 사는 것이 있는 것 망하고 흥하는 것이 있는 것 성공과 실패가 있는 것  요것을 이거는 상식적으로 우리가 단정을 짓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 현실은  나에게 유익을 위해서 있는 것인데 이 현실을 내가 어떻게 사용해야 되느냐?  성경에 이 현실을 자기의 법이라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현실을 내가 그것 밥처럼 현실을 먹고 우리는 자랍니다. 현실을 먹고  강건해 집니다. 그러니까 현실을 먹는 것이 어떻게 먹는 것이냐? 현실을  이용하는 것인데 현실을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이 현실에 내가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것을 찾으면 윤곽적으로 울타리 안에 들어간 것처럼  이렇게 탈선 밖에서 탈선된 그 탈선을 벗어나서 진리 안으로 내가 들어갑니다.

진리 안으로 들어 가 가지고 그러면 진리 안으로 들어가는 행동을 하면 진리  안에 들어 왔습니다. 진리 안에 들어가면 거기에서 양심이 인도하는 양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양심으로 가지고 생각해서 양심이 일어납니다. 진리 안에 들어가면  양심이 머리를 듭니다. 양심이 머리를 들어서 양심의 인도를 받으면 양심이  영감에 접선을 시켜줍니다. 영감의 접선을 받아 영감대로 할 때에 고것이  믿음이니 고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 말은 고 믿음은 전능의 전능의  고 능력 이 그 믿음과 함께 한다 그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요 현실에 자기에게 필요한 장소요 필요한 것들이요. 필요한  시간이지 현실 외에는 우리에게는 필요한 것이 없는 것입니다. 또 현실 외에는  있는지 없는지 모릅니다. 이 현실 다음에는 또 현실이 있다고 우리가 이렇게  생각한 이것도 하나의 습관이지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이 현실을 만났지마는 또  현실 다음에는 내 현실은 이것으로 끝나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나는 젊으니까  그래도 앞으로 또 이 현실 다음에 또 현실이 기다리고 있지 않느냐? 그 사람은  사람 죽는 법이 늙어서 죽는 그 한 법만 있는 줄 아는 사람은 젊으니까  안죽는다고 생각합니다. 늙어죽는 그 법 다는 아니요. 그 법 외에 또 있소. 병  들어 죽는다 하는 그 죽는 거기에 병들어 죽는 것만 아는 사라은 병이 안  들었으니까 나는 안죽겠지 늙어 죽는 법만 있습니까? 병들어 죽는 법만  있습니까? 그외에 법도 있어. 갑자가 심장마비가 이런 무엇이 가 가지고 그만  갑자기 죽습니다. 갑자기 죽는 그런 법도 있어. 그만 그 법은 자기가 뭐  건강해도 죽고 병 안들어도 죽고 젊어도 죽는데 그 법은 자기에게 언제 적용이  될런지 모른다 그말이오.

이렇지만 또 죽는 것 이것 뿐입니까? 나는 심장이 강해 심장마비는 없다  하지마는 갑자기 나갔는데 무엇이 딱 부딪혀가지고 또 멀건데서 가다 턱  잡아펴가지고 그 죽음에 죽는 범을 보니까 죽는 방편을 보니까 죽는 죽음의  종류를 보니까? 뭐 그게 열번 아니요. 백번 아니요. 천도 넘어 그 죽는 그런  모든 죽는 종류를 보니까 내게 이거는 해당안된다 하는 그런 것이 몇가지 안돼  그 외에 얼마든지 있으니까 다음 현실은 내가 만날런지 안만날런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음시간에 자기 시간으로 자기 시간으로 계산한다는 것이 그것이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기에 내게는 시간으로는 현재 요 시간만 나에게 필요하고 장소로는 내가  있는 요 장소만 필요하고 모든 종류는 내가 지금 접선하고 있는 요것만 지금  나에게 필요하다. 그러면 이 현실 여서 이것이 무엇 때문에 필요하냐? 이것은  나를 사랑하시는 전지 전능자가 큰 힘 드려서 만들어 주신 현실인데 이 현실이  필요한 것은 나의 생사화복이 영육의 생사화복이 여기에 메였다. 영육의  생사화복이 여기에 메였다. 그러면 영육의 생사화복이 여기 있으면 어떻게 하면  죽는가 죽는 그 길을 성경이 우리에게 말해 주었고 어떻게 하면 사는가 사는  길을 우리에게 말해줬습니다. 죽는 길은 뭐이냐 믿음을 떠나 육체로 사는  것입니다. 육체의 소욕으로 육체의 생각으로 육체의 생각으로 육체의 소욕으로  사는 것이요. 사는 길은 성령의 소욕으로 성령의 생각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육체의 생각이라 소욕이라 이게 뭐인가? 그것은 내나 자기 생각이고 자기  욕심이고 자기 성질이고 자기 뜻이고 자기 지식이고 자기 비판이고 자기 평가지  그것은 죽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육체의 생각은 사망이요. 육체의 반대는 성령이요 성령의 반대는  육체인데 육체의 소욕은 그 현실에 하나님의 소원이 있어. 하나님의 생각이  있어. 하나님의 생각이 영감이요. 하나님의 생각이 영감이요. 하나님의 소욕이  성령의 소욕이요.

그러면 그걸 찾아 가지고 그대로 하면 살아 그걸 찾을려면 어째 찾는데 그걸  찾을려면 첫째로 대충 멸망에서 구원에 가까운데로 뛰들어가야지 하나님의  말씀가지고 찾습니다. 말씀이 이러면 안된다. 이러면 안된다. 여기에는 네가  아는 대로의 말씀은 요렇게 하는 것이 옳다. 그 말씀이 가르쳐 준다 그말이오.

말씀이 가르쳐 주는데 말씀이 가르쳐 주는대로 고대로 들어가면 바로 들어갔으면  양심이 나옵니다. 반드시 양심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로 들어가지 안했으면  제가 암만 하나님의 성경 말씀만 가지고 들어갔다고 요기다, 요기다 떠들어 싸도  양심이 역사하지 안해 양심은 제 욕심에게 지배받지 않는 것이 양심입니다.

양심은 다만 그 사람의 지식에만 지배받지 욕심에는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신앙 양심이라는 것은 성경 진리에게 지배받는 양심을 가리켜서 신앙 양심이라  말하고 불교인의 양심은 불경에 지배를 받는 양심을 가져 불교인의 양심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거기에 들어가면 성경 말씀을 가지고 바로 찾아 들어갔으면  양심이 신앙 양심이 자기에게 이제 안내를 합니다. 산앙 양심이 머리를 듭니다.

신앙 양심을 만나게 되요.

진리를 바로 찾아가지고 들어가면 그 다음에 신앙 양심이 인도하는 것은  신앙양심을 만나게 되는 것은 진리를 찾아 들어간다. 진리를 찾아 들어가는 것은  내가 내 사정에도 메이지 아니하고 내 사정에도 메이지 아니하고 내 욕심에도  메이지 아니하고 내 형편에도 메이지 아니하고 내 성질에도 메이지 안하고 내  뜻에도 메이지 안하고 나를 부인해야 자기 의사를 부인해야 하나님의 의사를  잡을 것 아니겠소. 자기 의사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의사를 딸는 것이 그것이  성경 말씀으로써 자기 갈 길을 찾는 것이요.

그러면 성경 말씀 가지고 대충 성경 말씀 가지고 대충 자기를 부인했소.

자기에게는 전부 죄뭉텅이요. 요게는 악령의 뭉텅이요. 욕심의 뭉텅이 마 더러운  것만 가득찼는데 허영과 허욕이 가득찼는데 이놈을 가지고 이제 성경 말씀대로  찾을려면 이것을 내나야 돼 이걸 내놓고 내야 죽든지 살든지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라.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 가지고 너희에게 권하노니 몸으로 산제사를  드리라. 이 말은 내야 어떻게 되든지 내 자유나 주관은 제물 위에 제단 위에 논  잡아논 양이 제단 위에 올라갔으면 그거는 꼼짝거리도 못해. 다 죽여서 벌써  올라갔어. 죽이기 전에는 제단 위에 안올라간다 그말이오.

"산 제물로 드리라" 그말은 네 주관이나 자율이나 사욕이나 그런 것은 다 버리고  죽든지 괴롭든지 즐겁든지 뭐 내가 있는 이 사업이 당장 부서지든지 내 목숨이  끊어지든지 하나님의 뜻만 내가 바로 찾겠다 이래야 성경이 바로 해석이 되지고  바로 깨달아지지 이게 없이 허영 허욕을 가지고 암만 배워봐야 헛 일입니다.

그것은 나중에 그놈이 이 성경 말씀을 이용해 먹기 때문에 악한 자 중에 악한  자요. 교만한 자 중에 교만한 자요. 그 자는 참 양의 껍질을 입은 이리기 때문에  양떼를 많이 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가지고 성경 말씀을 가지고 찾으면 성경 말씀대로 찾으면 거기에 절단나는  것은 어떤게 절단납니까? 성경 말씀 누구 뜻이지요. 성경 말씀을 찾으면은 누구  뜻이 절단나요. 저 청년 한번 대답해 봐. 자기 뜻이 절단나지. 자기 뜻이 절단나  대충 자기 뜻이 절단나서 자기를 부인하게 됩니다.

그래 가지고 뜻을 찾아가고 들어가면 그 다음에 이제 양심을 겨우 면접할 수  있습니다. 양심을 면접할 수가 없어. 양심은 신앙양심은 하나님의 진리 지식에만  메이 가지고 있지 그것은 아무데도 메이지 안했습니다.

이러니까 자 신앙양심이면 갑이 신앙양심 을의 신앙양심 그 신앙양심이 각각  자기에게 대해서 자기나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 자타에 대해서 사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양심이 자타에 대해서 사가 없습니까 없습니까? 예 없습니다. 양심이  자기에게 유리하다 분리하다 그 이 사건이 있으니까 이 사건이 이렇다 사건에  대해서 사건에 대해서 자기에게 대해서 또 요 죽음이나 생명에 대해서 물질에  대해서 거기에 자극을 이 양심이 받습니까? 여러분들이 대답은 해도 지금 알지는 못하는 말하고 있습니다. 자극을 안  받았습니다. 자극을 안 받는게 양심이요. 네 거기에 자극받지 않는 것이  양심이요. 거기에 자극 받는 놈은 어떤 놈입니까? 예 거기에 자극받는 거는 어떤  놈이요 뭐이요. 이영인씨 자극받는 그놈은 옛사람입니다. 육체의 사람이요. 그게  자극받는 것은 거기에 자극을 받지 않으면 진리를 바로 찾을 수 있고 진리를  찾아 들어 가면 더 자극을 하나도 받지 안하고 영감과 진리에만 자극받는 양심을  만납니다.

양심을 만나면 양심을 따라 들어가면 그 다음에 성신의 감화가 자기에게 올 때에  이 감화는 자기에게 옳고 바른 것을 정확하게 확고하게 옳고 정확한 것을 옳은  것을 똑똑히 옳은 것으로 우리에게 확신을 시켜줘. 그런 것을 그런 것으로  우리에게 확실히 부인을 시키고 이렇게 해서 깨달은 것도 자기에게 이런 것  같다가 아니라, 이기다. 틀림없이 이기다. 이는 하나님 심판해도 틀림없다.

이기다 자기에게 아는 지식에 지식에 대해서 확고케 해주고 지식을 확고케  해주고 또 거기에 대해서 자기가 책임을 지는 그 책임에 대해서 견고케 해 주고  그 다음에는 능력을 부여해 줍니다. 하면 된다 하는 능력을 자기에게 부여해  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경험했으면 아 요것은 진리를 바로 찾았다. 내가 진리라고 말을  하기는 하지마는 지금 찾아 들어가는 중에 있지요 것이 최종 거룩은 아니다.

바로 진리는 아니다. 좀 찾아 들어갈려면 들어갈 수가 있다. 들어갈 수 있지마는  이 모든 베풀어논 이 현실이 들어가면 절단나니까 더 생각하면 절단 나겠는데  어라. 그만 생각하지 말자. 안 믿는 사람이 그 자꾸 생각하면 병 나겠으니까 술  한잔 먹고 잊어버리자 하는 것 모양으로 그렇단 말이오. 찾아 들어가면 지금  보니 요걸 요게 내나 종점은 아닌데 요 지금 생각하면 옳은 것이 요게 들기는  들었는데 찾아 들어가기는 들어가기는 하겠는데 들어갈라 하면은 이 현실이  절단나니 내가 들어가 가지고 알고 나서 져 버리면 가책 더 받고 고민이 더 있을  터이니까 아라 그만 들어가지 말고 중간에 들어가다가 말자 이럽니다. 중간  들어가다 말자 이럽니다. 고것이 거룩이 없는 자요. 고기 진실이 없는 자입니다.

그럴 때에 들어갈려면 자기를 부인해야 되. 요래 찾아 들어가면 옳고 바른걸  알기는 알겠는데 벌써 의심하이 보입니다. 그래 들어갈려고 하면은 이것도  낭파가 되겠고 이것도 버리야 되겠고 이것도 어째야 되겠고 이것도 다 이래  되지는데 이놈이 아까우니까 어라 그만 들어가지 똑똑히 요기 죄라고 안하려  하면은 죄라 하고서 하려 하면 안되니까 죄인가 아닌가 어름 어름하이  보이지는데 고기 죄 미습하게 보이지는데 찾아 들어가면 반드시 죄라고 판정이  날상 바르면 그만 확정짓고 그 행동하는 것보담은 차라리 확정 안짓고 하는게  낫기 때문에 중간에 가다가 그만하고서 그만 중단해 버려 고 자가 거룩이 없는  자요. 고 자가 진실이 없는 자입니다.

이래 가지고 찾아 들어가면 이제 양심을 만나고 양심을 만나면 그 마음에 양심이  영감을 만나주게 되고 그러면 그 다음에 자기가 확실히 압니다. 이는 든든하다.

그때는 자기에게 확고한 믿음이 생겨집니다. 담력이 생겨집니다. 처음에는  거석할 때 이러면 뭐 이거 사업이 어찌되나 인간이 어찌되나, 체면이 어찌되나,  가정이 어찌되나 하지마는 고게 딱 가서 들어가 입가하면은 하나님과 진리와  나와 하나되 하는데 죽으면 죽고 살면 죽어도 산다. 살아도 살고 죽어도 산다.

그때에 나오는 그 힘이 성령이 힘인데 그 힘은 담대히 그 힘 가지고 나가는  사람들을 세상이 막지를 못해 다 세상이 막지 못하는 그 걸음을 걸은 건 다 그걸  가는 것이 걸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요 현실이 보배라는 것을 깨닫고 현실에 대한 요 상식을 바로  갖추어 가지고 있었야 됩니다. 요 현실을 참 보배인데 요것을 먹으면 영도  자라고 마음의 기능도 자라고 몸의 기능도 자라고 이 참 아주 양약인데 요  현실을 먹을 때에 현실을 먹을 때에 뭐하고 먹어야 되느냐 하면 양고기 하고  먹어야 됩니다. 피 속에서 네 피와 살은 참된 양식 참된 음료라고 말하는 것은  고 현실에 주의 피와 살과 함께 먹습니다. 그럴 때에 잘 먹을 수있습니다.

현실은 이렇게 내 생사 성패 이것이 결정되는 현실인데 요 현실에 원수는  뭐입니까? 현실에 날 삼킬 원수는 뭐이요. 원수는 뭐이요. 예 원수는 뭐이지요.

원수, 뭐입니까? 악령! 원수는 악령이요. 악성이요. 악습이요. 이것을 이것이  합해 가지고 있는 그것을 뭐라고 말했지요. 옛사람 그놈이 원수입니다. 그놈이  원수요. 그놈은 어짜든지 그놈이 무슨 사상을 가졌느냐 하니 우리에게 어떻게  역사하는고 하니 그놈은 안일주의입니다. 안일주의! 어짜든지 그놈은 고생없이  평안하려고만 위주로 합니다. 안일주의요. 그놈은 또 누구 일을 생각합니까?  하나님 일 생각합니까? 제일 생각합니까? 하나님 일 생각지 안하고 사람 일  생각합니다. 네가 하나님의 일은 생각지 안하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도다. 자!  그놈은 하나님 사랑합니까? 세상 사랑합니까? 세상 사랑합니다. 그러면 그기요.

아브라함이 아브라함이 그 현실에서 현실에서 하나님 생각했습니까? 자기  생각했습니까? 예. 뭣 생각했소? 하나님의 축복을 생각했소. 하나님의 축복  생각했습니다. 롯은 뭣 생각했소? 정 반대 생각했어. 우리가 현실에서 말을  한다면 백번 말해도 이게 느끼지를 안합니다. 현실 지금 말하는데, 우리는 그  현실 속에 어제 일곱 가지가 들어있다 말했는데, 뭣 뭣 들어 있다 했었지요. 자! 뭣 뭣 들어있소. 마귀, 또 죄, 또 사망, 또  심판의 법, 또 응, 아니야 고 위에,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 응 공로 혈육에  대해 쓰이지 그 다음에 뭣 있소. 생명의 법, 생명의 법, 그 다음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영 하나님, 이래 일곱이 이 현실 속에서 북닥거리는데 우리가 그속에  있소. 이 현실 속에서 잘못 걸리면 망합니다.

이 하나님의 도리를 자기를 부인하 자에게 필요하지 자기를 부인하게 되면 이  지식이 하나님의 지식이요. 자기를 부인하지 부인하기 전에는 자기를 부인하기  전에는 이 지식이 그 사람에게 뭣 됩니까? 지식되요. 남의 복음이 되고 지식  됩니다. 자기를 부인하면 이 말씀이 자기에게 영생이 됩니다. 이 일곱가지가  한테서 이 버멀거리는 거기에서 우리의 구원으로 갈 길이 어는 길인가 마귀!  요놈이 길인가? 마귀! 요놈이 우리에게 달라 들어가지고 우리를 절단낼려고  달라들 때에, 마귀 이놈이 배경이 뭐입니까? 마귀 배경이 뭐이요. 죄에 배경을  가지고 이놈이 우리에게 달라듭니다. 그러면 죄의 배경을 가지고 우리에게  달라드는데 그 죄 그놈은 어떤 독이 있습니까? 사망시키는 독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마귀라는 놈이 와가지고 살살 죄를 짓도록 유혹을 시키가지고 죄만  지으면 이놈이 큰소리나 죄짓기 전에는 마귀는 꼼짝을 못합니다. 마귀의 배경은  죄요. 이러기 때문에 이 배경을 만들려고 자꾸 애를 씁니다. 죄만 안지으면  마귀는 꼼찍 못해. 마귀를 절단내는 마귀를 꺽어서 눌러 밟는 그 방편은 죄  안짓는 기라. 죄를 안짓는데 마귀 요놈이 죄만 없으면 우리는 그 사망시킬 자가  없어! 없는데, 마귀 요놈이 우리가 죄를 짓지 안하면 과거의 지은 죄를 가지고  달라듭니다. 네가 이런 죄를 지어 이런 죄를 짓지 안해. 너는 이런 죄를 지으니  이런 보응 받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 이래 가지고 요걸 송사하듯이 송사를  해재낍니다.

그러면 그때에 마귀라는 놈이 과거의 모든 죄, 이런 죄를 들쳐 가지고 우리를  송사할 때에, 그때에 우리가 그것을 어겨서 벗어나는 법이 뭐입니까? 예? 네,  그놈이 이 죄를 가지고 달라들 때에 죄 내가 지어서 무슨 소용있나. 죄가 나를  어떻게 한다 말인가 하면은 죄 그놈은 또 배경이 있습니다. 죄 그놈의 배경이  있는데 죄 그놈의 배경은 무슨 배경이지요. 죄 배경은 뭐지요. 네 심판 법 그  죄에 배경에는 심판 법이 있기 때문에 그 죄를 멸시 못해. 무시 못해. 죄가  사망시킬라 할 때에 사망 시킬라 할 때에 항거를 못해. 하나님이 이걸 하기  때문에 항거를 못해. 그러면 그럴 때에 심판법이 와가지고 죄가 있으니까  심판해서 영원한 사망을 시키야 될 것 아닙니까? 사망을 당해야 됩니다.

그럴 때에 거기에서 우리가 구출되는 법이 뭣입니까? 예수님의 대속을 입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입을 때에 심판법은 상관하지를 못합니다. 우리가 법적으로  심판 받아서 벗어났지마는 우리가 실지 행동적으로 심판법을 행동적으로 내가  다시 벗어나야 되지 실상으로 내가 벗어나야 되지 내 행동으로 벗어나야 되지 내  행동을 벗어나지 안하면 그 법에 심판 법에 걸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내가 몰라도 심판법에서 벗어나가지고 있는 것은 기본구원 그  구원이요. 그러나 내가 건설구원을 실지로 내가 주님이 사죄받아 사죄해 주신  것을 알아 나는 죄없는 것을 자기가 알고 죄없는 자로 의로운 자로 하나님과  화친된 하나님의 부자로 실지로 자기가 실감을 가지고 실지로 그 사람이 돼야  합니다. 자기가 아무리 부인을 해도 법적으로 되어지는 그 기본적인 것은 다  되어 가지고 있지마는 그거는 기본구원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건설구원에는  상관없어. 건설구원은 자기가 주관을 느끼고 깨닫고 해야 된다 그말이오.

예수님의 공로에서 그 문제를 해결짓고 그러면 다 됐습니까? 그러면 이제는  현실에서 구원이 됩니까? 또 뭐이요. 뭐 하나 해야 되지. 생명법이 연결돼야 되  생명법에 예 생명법이 뭐인데 믿음되는 법이지 양심이 안내를 받아 가지고  영감을 받는 고것이 생명법이지 고 생명법이 연결되 생명법에 보호를 받으면 이  생명법에 보호를 받으면 그 보호는 하나님의 보호야 이러기 때문에 죽어도 살고  살면 죽지 안해. 이 생명법에 보호를 받으면 그 보호의 능력은 하나님의 능력  예수 그리스도의 영 이 책임을 지는 이 보호기 때문에 거기에는 사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권세가 없어지기 전에는 그 법이나 권세나 하나입니다.

그러기에 법에 보호를 받으면 법을 세운 그 권세는 책임을 져야 됩니다.

우리나라는 법이라는 것이 희미하요. 변동되기 때문에 이면이 참 느끼기  어렵습니다. 정함이 없는 재물이라는 것 또 세상은 믿을 수 없다는 것 이런 것은  미국 나라같은 사람은 왜 정함이 없는 재물이라 부모 재물 어짜든지 뭐 몇 백년  몇 천년이라도 몇 백년이라도 쪽 계속해 나오는데 그 재물이 금방 부자됐다  가난해졌다 이럴 수 없다고 보니까 그 사람들은 이 성구가 믿기 어려워  우리나라에서는 '아침 부자가 저녁 거지 되고' 자꾸 이러니까 정함이 없는 것을  ale어지기 쉽다 그말이오.

그러나 이법에 권위성이라 하는 것은 한국 사람들이 믿기 어렵습니다. 왜 법이  일정한 법이 없어. 법도 변동이 되지. 법 또 위반되 봤자 이리 저리 맞추어  하니까 법의 권위가 없다 말이오. 그러나 강대국에는 법이 권위가 있습니다.

미국같은 나라도 그 법이 보장할 때에 아무리 뭐 전국이 다 달라들어도 그  못합니다. 법이 있으면 이 법이요 하고 법대로 됐으면은 그거는 상원이고  하원이고 대통령이고 못합니다. 법이 보호를 입었으면 법이 이렇다 했으면  안된다 그말이오. 법에 권위가 있지마는 우리나라 법에는 그게 없어. 그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법이면 하나님이요. 하나님이면 이  법입니다. 하나님은 법 가지고 이 일을 하시고 법은 하나님이 책임을 지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생명법에 이 보호를 받았으면 내가 죽어도 사망이  죽이지 못합니다. 사망은 그 다음 것들이오. 여러분들 자 사망. 사망 위에 뭐  있습니까? 사망보다 더 큰 세력이 뭐 있습니까? 사망보다 더 큰 세력이  뭐이지요. 사망 그까짓 놈이 무슨 세력을 가지고 우리에게 달려듭니까? 사망  그놈에게 심판법이 들었지 사망 그 위에 심판법이 없으면 못해. 그들은 우리를  죽이지 못합니다. 죽이지 못하는 것은 심판법이 주님이 해결 지웠기 때문에  우리에게 대한 우리에게 대한 죄와 사망에 대해서는 예수님이 그 심판법을  당신이 해결 지웠기 때문에 그 우리에게 대한 죄 우리에게 사망 그것은 그  배경이 심판법을 예수님께서 다 이걸 완성을 해서 다 없애버렸기 때문에  제거했기 때문에 사망이 우리에게는 권리를 부리지 못합니다. 죄가 우리 권리를  부리지 못합니다. 그 법을 이것을 해결지운 것은 예수님의 공로요 또 생명법 이  생명법과 우리와의 연결시킨 것이 예수님의 공로입니다. 또 하나님과 우리와의  연결시킨 것이 예수님의 공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공로가 얼마나 큰지 내가 요새도 늘 설교하기를 자  예수님의 이 공로가 얼마나 크며 모든 존재들이 무엇을 위했으면 움직이는 그  모든 것이 언제 정해진 것이 되어진 것이냐 하는 이것을 아무리 말해도 이것의  큰 것을 느끼지를 못합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죄가 땅에 속한 것을 부인하지  안하고 이러기 때문에 항상 물질만 생각하는 물질이 꽉 물들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물질이 그 심령이 꽈 들어 가지고 있으니까 그것에게 하나님의 진리가  비출어질 수 있습니까? 아무리 거울은 거울이지마는 먼지가 한치나 한자나 들이  앉아서 거울속에 위에 한자나 먼지가 채이 가지고 있는데 무엇이 보입니까? 전부  딱아요. 쓸어야지. 앞으로 좀 계속하겠는데 이걸 깨달아야 되요. 깨닫지 못하면  헛일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기 전에는 이 도에는 상관이 없어. 사도행전 8장에 보면은  시몬이라는 사람이 유력한 사람입니다. 아주 세상에서 이 대가리요. 그 지방에  사람들이 다 그 앞에 절절 매는 사람이요. 또 사도들 뒤에 따라 다니면서 얼마나  협조를 하고 수종을 들고 얼마나 날세게 날뛰었는지 배알입니다. 신앙세계  일들이요. 이방세계 일등이요 이랬는데 베드로가 딱 말하기를 "너는 물질과 함께  망하리라" 네 속에 악이 가득찼으니 이 도에는 참예도 못하고 얻을 것도 아무  것도 없느니라. 이어서 네가 돌이켜 회개하면 혹 용서를 받으리라. 용서받을런지  모르지마는 돌이켜 회개하면 혹 용서를 받으리라 네 속에 악이 가득찼다 악이  가득찼다 말이 뭐요. 그 악이라는 말이 뭐이요. 저 두 청년들 대답해봐. 악이  뭐이지? 응 뭐이지? 악이 뭐이지? 자기중심, 피조물 중심, 그게 속에 가득히  찾으니까 하나님의 도도 자기중심과 자기 유익을 위해서 사용합니다.

이것이 이리요. 자기중심을 버리지 안한 자는 이 복음이 자기에게 복음이 되지  못하고 지식이 됩니다. 지식은 뭣하지? 지식은 뭣 맺지? 교만케 합니다. 왜 이  복음이 되어서 이 말씀대로 행해 보면 죄인 중에 죄인이라 괴수죄인이라 이래  되는데, 행하지 안하면 이 지식을 가지고 다른 사람 비판합니다. 자기가 지키지  안하고 이 지식을 가지고 다른 사람 비판합니다. 자기가 지키지 안하고 이  지식을 가지고 다른 사람 비판할 때에 그 사람은 교만이 되고 말아! 이 지식대로  행하면 자기가 자꾸 죄인이 되져, 이 지식대로 하려고 하니까 죄인 되다가, 주님  만나니까 더 조인 됩니다. 이것이 구원으로 나아가는 길이요.

그러기 때문에 혀영과 허욕을 버리야 됩니다. 버리고 그저 요 나그네 세상에서  빨리 자기를 만들어야 되 만들고 쓰는 것은 왜 요셉이를 요셉이가 애굽 나라  총리대신 하려고 무슨 대학을 했소! 뭐 대가리 싸매고 무엇을 했소! 사람들  데리고 교제를 했소. 내가 어제 어떤 사람하고 말했습니다. 우리 ○목사님  ○○○목사님 박사 학위를 못 받고 나왔으면 좋겠다. 내 진정 내가 내 속에는  못받고 나왔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왜 못받고 나올만침 고만침 속화가 안됐으면  좋겠다 그말이오. 속화가 안됐으면 오늘에 교수들이 자 이 하나님의 복음이  인간구원이 하나님의 교회가 어떻게 되나 자기 이해 불구하고 자기를 부인하고  이것을 행하여 참 욕망을 기울이고 있는 사람이 천에 하나 끼었거나 말거나  합니다. 어쨌든 자기가 먼저요. 자기 유익 자기 유리 자기 사람 만드는 것, 자기  유익한 것, 그것 가지고 하기 때문에 학교에서 시험을 칠 때에 시험에 백점  맞으려면 그 선생 심리를 이용해 가지고 알아가지고 그 선생이 좋아하는대로만  하면 백점 다 나옵니다. 아무리 옳아도 선생이 거리끼면 안되요. 이런 세상이라.

우리가 나그네 세상에서 시간이 없어. 이러기 때문에 그저 제가 찾아  돌아다니면서 자기를 행복되게 하려 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는 손떼요. 네가  널 행복되게 하는 거는 네 해봐라. 네가 무슨 힘이 있나. 자기가 자기를  행복되게 하려 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은 상관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출세시킬라 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은 상관없어. 자기가 자기를 다 물셀틈없이  오만 것 다 갖춰서 윤곽과 세포까지 전부 자기가 자기 위해서 전부다 해 놨는데  하나님의 뭐 할 일이 뭐 있겠소. 하나님은 나는 당신에게 맺깁니다. 내게 대한  거는 당신이 해 주십시오. 나는 당신 시키는 대로 하는 것 요것 하나만  하겠습니다. 모든 것 다 맺깁니다. 다 맡아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지키시는데  죽는 길로 구별했으면 죽는길 했습니다. 죽을 길로 불속으로 밀어 넣습니다.

아무데나 북북 들어갑니다. 왜 너와 들어가노 주님이 불로 들어가라 하기 때문에  들어갑니다. 그리 가면 안 타죽나 주님이 다 죽는걸 나한테 시키셨습니까?  죽어도 살겠지요. 이것이 신앙입니다. 요셉이가 애굽나라 총리대신 될 그런  꿈꾸었습니까? 요새는 꿈이라는 말이 순복음교회에서 많이 날라오는데 꿈꿈 어데 갖다가 신자가  무슨 꿈을 꾼다 말이오. 무슨 꿈을 꿔 신자는 정확하게 보고 요것이라 하고  보고서 결심하고 생명내 놓고 각오하고 이래 가지고 하는 것이지 꿈에 이런  허영과 허욕을 가지고 내는 줄 압니까? 아니요. 기독자에게는 꿈이 없습니다.

기독자에게는 꿈이 없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고때 고때 꿈이 아니고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의 하늘나라가 사는 우리 목표 고 방향 고것 믿고, 향방 고것 가지고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그때 그때 인도하면 나를 대통령을 시킬런지 문둥이를 몰라  뭐 하려 할지 몰라 어쨌든 나 할 일은 내 현실에서 주의 뜻 지키는 것뿐이라  이랬는데 애굽나라에 총리대신을 갑자기 시켰지 등용은 하나님이 등용해야 되지  인간이 등용하는 것 재미가 없어. 하나님의 등용하는 것은 인간이 막지 못해요.

다윗은 아무도 몰라 줬어. 나를 몰라준다. 날 이런 줄 몰라준다. 날 좀 알아줘야  될 터인데, 인간이 널 알아주면 하나님은 널 안 알아줘 인간에게 알아주기를  원하는 그 인간은 하나님이 안 알아줘, 응 자기가 하나님 앞에 알아주기를 또  하나님이 알아주기를 원하는 그 자는 하나님 버려버립니다. 알아주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자꾸 작은 자요. 자꾸 못난자요. 무능한 자요. 이기  자기 부인이요. 자기 부인한 것만침 하나님은 알아줍니다. 자기가 무능한 것보다  완전히 죽은 자 죽은 거와 같이 된 제단 위에 재물 그 자를 하나님이  알아줍니다. 그 자를 두고 쓰시는 것이요.

다윗은 사무엘이 기름 부으러 왔었는데 아들 일곱을 다 데려다 놓고서 기름 붓고  난 다음에 아무리 봐야 참 데리고 왔는데 아무 것도 아니라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이제는 사무엘이 기가 차서 너거 아들이 이것 뿐이가? 예. 다  왔습니다. 하나 남은 그까짓거야 뭐 어릴때부텀 글도 안배우고 항상 저 산꼴작에  가서 양이나 먹이고 한긴데 그거는 와 봤자 그렇습니다. 여기에 쓸모없으면  그거는 와봐야 그렇습니다. 사무엘이 있다가 안 데리고 오면 내가 먹지를  않겠다. 일국의 원수가 먹지 않겠다 하니까 그 집이 절단 나는 것 아니요.

그러니까 데리고 왔어 오니까 볕살에 꾸이서 빨가이 까제 모양으로 꿉힌기  조매한기 바짝 말라 가지고 온다 그말이오. 하나님이 이가 그노라 기름을  부어라. 자기 부모도 형제들도 이웃도 다 부인했지마는 하나님은 압니다. 이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요.

하나님이 등용하는데 누가 버리겠소. 하나님이 등용하지 안하고 인간이 등용하는  것을 그걸 어떻게 하나님이 인간 저거 마음대로 등용하는 것을 하나님이  쓰시겠소. 우리도 목회자로 이렇게 등용을 하지마는 우리 보기에 그렇지  하나님이 등용을 하는지 안하는지 뒤를 보면 압니다. 등용 안한게 있고 등용  한게 있소. 등용 한 거는 되요. 등용하련지 안하련지 그거는 자기 부인하는가  안하는가 그것보고 알 수 있소. 약함에 있는 것, 무지 무능에 있는 것, 죄인에  있는 것, 죄인으로 있고 무능자로 있고 무지자로 있고 항상 하나님과 인간에게  해를 끼친 인간 못한 인간으로 있는 그 인간을 하나님이 들어 쓰십니다. 왜 그게  됐거든 인간적으로는 못나고 자기를 부인하니까 이렇지마는 그러니까 하나님의  것으로 될 수가 있다 그말이오.

인간에게 막혀서 하나님에게 들어가지 못하는데 그런고로 우리는 모든 일에  염려없는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을 든든히 믿고 그분은 내 모든 사랑 다 했으니까  든든히 믿고 그분에게 맡겨놓고 겸손히 자기 현실에서 자기 믿음만 꼬박 꼬박  지켜나가면 됩니다. 똑똑히 각오를 가지요.

그래 이리 저리 돌아다니지마 돌아다니면 잡탱이 되가지고 이 복음은 못들어요.

복음은 듣지 못하고 소용이 없어. 이 복음이 안들어가 이 복음은 아무데나  갖다가 이것도 저것도 자꾸 들어서 되는 것 아니라. 약물 쑥물 쓴물 하는 것이  잡탱이를 데려다 놓으면 안됩니다. 다 들어갔거든 고 말과 요 말씀과 요래  비교를 해 가지고 둘 다 옳으면 둘 다 같은 것이면 내나 이미 배운데 배워야지  둘다 비교해 볼 때에 이보다 낫으면 나은대로 가야지. 어짜든지 평가적으로  사십시오. 비판적으로 사십시오. 자기의 사욕이나 주관이라 하는 완전히 버려야  됩니다. 그리고 허영과 허욕은 있으면 우리를 망칩니다. 한번 사람이 허영의  마음을 한번 먹고 한번 행동했으면 그 댓가가 얼마나 큰 줄 압니까? 허영 허영의  일을 한번 마음을 먹고 고 일 한번 했으면 고것이 일생이 망치는 일생을 망치는  거로 일생으로 댓가를 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다 거기에서 망하는 것이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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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54 순생없이는 순교없다/ 고린도전서 9장 23절-27절/ 871103화새 선지자 2015.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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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52 순전하고 신령핝 젖/ 베드로전서 2장 1절-3절/ 860211화새 선지자 2015.11.22
2851 순종 하나만 가질 것/ 로마서 8장 26절-36절/ 840225토새 선지자 2015.11.22
2850 순종으로 한 몸 되는 관계/ 에베소서 1장 19절-23절/ 840221화새 선지자 2015.11.22
2849 순종의 원리/ 고린도전서 3장 16절-17절/ 800427주전 선지자 2015.11.22
2848 순종해본 사람이 권찰직 감당/ 누가복음 5장 10절-11절/ 860711 지권찰회 선지자 2015.11.22
2847 술 취함과 성령의 충만/ 에베소서 5장 19절-27절/ 791027토새 선지자 2015.11.22
2846 스룹바벨 성전/ 학개 2장 1절 19절/ 820527목새 선지자 2015.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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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44 스스로 속는 이유는/ 갈라디아서 6장 7절-8절/ 890625주전 선지자 2015.11.23
2843 스스로 속이지 말라/ 갈라디아서 6장 6절-10절/ 791210월새 선지자 2015.11.23
2842 스스로 조심하라/ 누가복음 21장 34절-36절/ 831202금새 선지자 2015.11.23
2841 스스로 조심하라/ 누가복음 21장 34절-36절/ 850818주후 선지자 2015.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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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38 승리의 힘/ 로마서 3장 10절-18절/ 811204금새 선지자 2015.11.23
2837 승리의 힘/ 로마서 3장 9절-18절/ 1981. 11. 29. 주일학교 공과 선지자 2015.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