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생순교의 힘은 어디서 자라는가


선지자선교회 1988년 3월 6일 주새

 

본문 : 요 21:15-19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마지막에 19절에 있는 말씀,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이렇게 19 절에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데에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따름으로 자기의 이 세상적 유익이 있음으로 따르는 사람들도 있고, 또 따르다가  세상적 유익이 없으면 따르는 일을 그만 두는 그런 사람들도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르되 세상 유익이 있을 때만 따르지 않고 세상  유익이 없을 때도 따르는 그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세상 유익이 없다고 안  따르고 세상 유익이 있다고 따르고 하는 그런 간사한 사람이 되지 안하고 세상  유익이 없어도 따르는 사람들 있습니다.

 또, 이보다도 더한 사람은 세상에서 주님을 따를 때에 세상 유익이 있는 것도  주를 위해서 그것을 필요로 하고 없는 것도 주를 위해서 그것을 필요로 해서  그저 유익하든지 해가 되든지 다 주를 위해서 그렇게 주님을 따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데, 최고로 주님을 따르는 사람은 참 자기에게 세상적 손, 해가 가도  주님을 따르고 유익이 돼도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 그 사람이 신앙으로 제일 어린  신앙이요, 그보다 더 큰 신앙은 세상에서 따를 때에 유익한 것도 주를 위해서  그것을 다 가지고 또 해가 돼도 주를 따르고, 유익이든지 허가되든지 전부 다  주님 위해서 그것이 필요 하지 자기 위해서는 필요 없는 그런 사람들도 있으니  그 사람이 좀 더 장성한 신앙이라,   일학년 신앙 아니고 그게 한 이학년 신앙이나 된다고 하면 마지막으로는 자기의  모든 세상 것이 다 절단이 나도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 그 사람이 장성한  신앙입니다.

 그런데, 최고로 장성한 신앙은 어떤 게 장성한 신앙인고 하니 자기의 생명이  주님으로 인해서 절단나는 그때에, 그때에 따르는 것이 제일 장성한 신앙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순교의 신앙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 이러라' 하는 이 말씀 곧  이는 주님을 위해서 생명을 바쳐 신앙생활 할 그것을 여기에 가리켜서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순교적인 신앙, 참 순교하게 될 때에 그때에 사람들은 신앙을  지키지 못하고 다 배반하고 호만 마귀에게 삼켜집니다. 죽음을 가져와 가지고  미혹을 시킬 때에 다 떨어집니다.

 성경은 배워서 다 알기는 압니다. 암만 주님을 위해서 죽을라고 해도 주님을  위해서 일 분도 덜 살고 죽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주님을 위해서 생명을 바쳐서  산다 할지라도 주를 위해서 생명이, 정한 생명 전에 죽는 일은 없고 다  생명대로는 산다 하는 것을 알고 있지마는 생명을 바쳐야 신앙을 유지할 수 있는  그런 때에 되면 모든 유혹들, 생애 애착욕의 유혹도 들고 또 그때 의심도 들고  두려움도 들고 이래서 참주를 위해서 순교할라고 일생 동안 기도하고 힘쓰던  사람들도 그런 때를 당하면 그만 주님을 배반하고 일생 동안 신앙생활한 것을 다  헛일하고 맙니다.

 그러면, 우리가 신앙생활할 때에 건설구원이 조그매씩 되지마는 마지막에  최고의 자기 전부를 다해서 주님을 섬겨 사랑할 수 있는 그 최고의 승리라는 그  승리는 대개는 다 생명으로 되는 것입니다.

 생명으로 되는 것은 주를 위해서 죽인다는 그런 어려움을 당해도 신앙을 배반치  않는 그런 신앙도 있고, 또 자기가 곧 죽어가면서도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나  주님을 위하는 그 일을 그치지 안하고 나가는 그런 또, 그거는 순생입니다.

순생이요 순교입니다.

 과거에 홍순철 목사님이라든지 또 전성수 목사님이니 그런 분들은 달랐습니다.

제가 신준범 목사님은 내가 말은 들었는데 내가 똑똑히 듣지를 못했옵니다. 그런  분들은 다 참 죽을 만치 고통스러워도 고통스러울 때에 주님을 사랑함이나  주님을 위함이 요동치 안하고 계속 사랑하는 것으로써 끝을 마쳤다 말을  들었습니다.

 제가 홍순철 목사님도 말 들으니까 그날 아침에 새벽에 나와 가지고 설교를  하면서, 그냥 나오지를 못해서 다른 사람이 부축해 가지, 고 나와 가지고서 겨우  강단을 붙잡고 서 가지고서 요한복음 21장의 설교를 그분이 설교를 하고 그라고  나서 거기에서 갈 때는 부축해 가지고도 못가고 갈 때는 겨우 모두 다 메고 가  가지고서 들어가 가지고 그만 세상 떴습니다.

 그러면, 암병이라 하는 것은 병 중에 제일 아픈 것이 암병입니다. 그는, 다른  데보다도 위암은 제일 아프다는 그것 다 일반이 다 알고 있는건데 그래도 아프다  소리를 한 번도 하지 안하고서 꼭 마지막에 그 힘 있는 것까지 다해서 생명의  말씀을 양떼들에게 전하는 유언으로 전하고 떴습니다.

 그런 것도 다 하나 생명이 끝나는 그런 어려움의 때도 변하지 안하고 주님을  사랑함으로 그렇게 순생적인 순교적인 그런 신앙을 가지는 것은 어데서  생기느냐! 그것을 요 순서에서 말씀했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상하느냐' '이 사람들보다 더 사랑하느냐'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치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 이랬습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들보다 뛰어난 사랑은 그것은 주님의 어린 양을 먹이는  것입니다.

 어린 양을 먹인다는 것은, 어린 양이라는 것은 뭐 간단하게 어린아이와 꼭  같습니다. 그것은 제가 제 구실은 하나도 하지 못하고 전부 부모의 은혜로 오만  것을 다 하게 됩니다. 그래 좀 키우다가 이 대소변을 가릴 수 있으면 제법  이제는 부모의 하는 일이 수월하게 됩니다.

 제일 어린 양이라는 것은 그거 해야 아무 효력도 나지 안하고 항상 그거는 뭐  조그만치도 가르쳐 봐야 도움도 되지 안하고 또 인도해 봐야 효력도 없는 그런  아주 그것을 가리켜서 어린양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주일학생 가운데도 어린  양이 있고, 또 그게 대소변을 가릴 정도의 그런 학생도 있고, 또 그거 제법  그것이 제가 조심해서 언덕에 떨어지지 안할 그런 것도 제가 조심해 떨어지지  안하고, 또 가다가 물에 빠질 그런 것도 제가 조심해 빠지지 안하고 그만하면  제법 큰 것이오.

 그런 것 모양으로, 길러 보면 이 세상에서 위험한 데 빠지지 않는 자, 죄에  빠지지 않는 자, 나쁜 동무에게 빠지지 않는 자, 그런 못된 말에 유혹받지 않는  자 그런 것도 있고 이거는 뭐 암만 해 봤자 그런 것이 없는 거 있습니다. 그거  뭐 일 년 공을 들이고 이 년 공을 들이고 삼년 공을 들여도 도무지 그런 것을  구별하지 못해 가지고서 묵묵 멸망 가운데에 빠지고 나쁜 동무에게 빠지고 그저  주일도 잘 지키지 안하고 그런 것 있는 그것을 가리켜서 어건 양이라 말한  것입니다.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이랬습니다. 이래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랑을 더 뜨겁도록 하기 위해서 주님께서  그런 역사를 하십니다. 아무리 사람이 심방하고 전도하고 권면해도 그것  가지고서 그 사람이 자라는 거는 아닙니다. 자라기는 주님이 자라게 하십니다.

 성경에 말하기를 심는 자도 있고 물을 주는 자도 있고 가꾸는 자도 있지마는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렇게 노력을 한다 해도 그게 자라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는데  왜 내게는 그런 사람 저런 사람을 다 두느냐? 그것이 전부 학생, 그 많은 학생  사랑하는 것보다도 자기를 사랑함이 더 사랑함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걸 먼저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고 그것을 위해서 그 다음 걸 하고 그 다음 것은 그 다음  것을 다 그 사람을 위해서 하고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은 순위적으로 자라가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이래서, 순생하는 것이나 순교하는 것이나, 죽음이 와도 어떤 환난이 와도 어떤  유혹이 와도, 유혹에도 빠지지 안하고 유혹도 이기고 환난도 이기고 모든 죄악을  다 이기고 마귀도 이기고 또 사망을 이기는 것은 하나님과 끊어지게 하는 것이  사망인데 하나님과 그 사이를 끊을라고 어떤 것이 와서 날뛰어도 끊기지 않는  그게 이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순생적인 순교적인 신앙은 어데서 자라느냐? 순생적인 신앙과 순교적인  신앙은 어떤 옥토에서 자라게 되느냐? 그 자라는 것은 곧 주님을 사랑하는  데서만 자랍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데서만 자라고. 또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은 어데서 자라는가? 그 사랑은 어린 양을 먹이고 양을 치고 양을 먹이는  거기에서만 자랍니다.

 그러기에, 제가 늘 말하기를 아무리 장로님이 돼도 반사 아직까지 못해 봤으면  그 사람은 반사보다 어린 사람입니다. 간판은 크지마는 실은 여러분들이 여기  반사 선생님들이 다 반사노릇을 하니까 지금 경험을 많이 했겠지마는 주님이 뭘  좋아하시는가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경험할 것입니다.

 어린 양을 먹일 때에 제일 사랑하신다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벌써 그 사랑을  봐도 알 것이고, 또 양을 다스릴 때에 그거 뭐 양을 관리해서 이것을 바른 신앙  가지도록 할라고 하면은 참 뭐 혀가 그만 나중에는 혓바늘이 서다가 갈라지고 입  안이 터지고 뭐 병이 나고 그렇습니다. 그걸 잘 다스린라고 하면은. 또 양을  먹일라 하면 힘들고. 그런 가운데에서 주님이 날 사랑하시는 것을 알 수가 있고  또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주님의 사랑을 내가 받아 가지는 것도, 주님의 사랑을 받는 것도  그것도 양을 내가 먹이고 치고 다스리는 데에서. 주님을 내가 사랑하는 것도  어데서 자라느냐? 내가 아무리 주님을 사랑하고 싶지마는 그것이 안 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랑이 어데서 자라느냐? 주님의 사랑을 어태서 받느냐?   주님의 사랑을 받는 것도 주님을 사랑하는 사랑이 자라는 것도 전부  양에게서입니다. 양에게서 또 내가 이 세상을 이기는 그 모를 이김이 자라가고  이기는 그 은혜를 내가 받는 것도 양을 구원하는 데 거기에 있습니다. 이것이,  양을 구원하는 게 이렇게 중요합니다.

 그러기에, 사도행전 1장에 보면 제자들이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할 때에 '이것은 너희들의 알 것 아니고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들이  권능을 얻고 '권능 얻어 가지고 뭐 할라고?'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얻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서 내 증인되리라' 그랬어.

'내 증인되리라'  내 증인된다 말은 '예수 믿으시오' 하는 것도 증인이지마는 증인이라 말은  예수님의 제자된다 말인데 예수님의 제자된다 말은 세상의 빛이 된다 말이요  예수님을 세상에게 보여 줄 수 있다 그 말입니다. 예수님을 나타낼 수 있다.

예수님을 보여 줄 수 있다.

 이래서,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예수님을 보고 알 수 있고 예수님을 보고 소원할  수 있고 부러워할 수 있고 예수님을 배울 수 있고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는 이런  것을 가리켜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의 사랑을 내가 받는 것이나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나.

주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나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나 이 사랑이 어데서 자라는가!  양에게서 자랍니다.

 내가 주를 위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이겨서 어려움을 견뎌서 신앙생활을 하는  순생과 순교는 어데서 자라는가? 순생과 순교의 신앙도 어린 양에게서 자란다  하는 것을 여기에서 보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무리 장로님노릇을 해도 장로님들은 그저 교회에 모든  교인들을 다스리고, 중요한 일을 하기는 합니다. 다스리는 일을 해서, 장로라는  거 어떤 게 장로냐 하면은 교회를 지키는 것이 장로입니다. 사도행전 20장에  요새 늘 말한 대로 '너를 하나님이 빼 세운 것은 네 자신을 구원할 뿐 아니라  모든 양떼들을 네가 책임지도록 하기 위해서 세웠다'  그러기 때문에 장로라 하는 것은 자기 교회를 잘 지켜서, 만일 목사가 그 양을  끌고 다른 데로 이단으로 갈라 하면 못 끌고 가도록 지키는 그게 장로의 하는  일입니다.

 이런데, 보니까 이 장로들이 교회를 지킬 줄 모르고 목사의 종만 돼가지고서  목사가 교인들을 어데로 끌고 가든지 그만 그대로 내비두고 목사하고 한덩어리  돼 가지고서 오히려 양을 삼키고 죽이는 데에 협조자만 된다 그 말이오. 그거는  장로가 안 돼.

 이래서, 여러분들이 주님을 사랑하는 사랑도 이 밭에서 자랍니다. 또 순생하고  순교할 수 있는 신앙도 이 밭에서 자랍니다. 다른 데는 자라지 못해요. 여기에서  자라요.

 그러기 때문에, 장로님들도 주일학교 반사를 하는 거기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의 성장도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도 성장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성장하고 주를 위해서 신앙생활하는 신앙도 성장하고 또 순생도 성장하고  순교도 성장한다. 성장하는 밭은 다른데가 아니다. '나를 사랑하느냐, 나를  사랑하느냐,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어린 양 먹이고 양 치고 양  먹이고 하는 거기에서만 자란다 하는 것을 요게 못박아 놨습니다.

 그러니까, 심방을 가면서도 주님을 생각하면서 심방가고, 또 그 어린 양을,  어린 양은 얼마나 밉상을 지깁니까? 어린 양은 밉상을 지겨도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말씀했기 때문에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이것이 주님을 더 사랑하는 것이라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기를  것이고,  또, 내가 이와같이 지금 양을 기르는 것이 앞으로 순생과 순교의 준비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내 신앙이 요동치 안하고 그 신앙이 일관적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신앙은 어린 양을 기르는 데서 나온다.' 그것을 기억합시다.

 제가 혹 종종 이거 접해보면은 양을 사랑하는 사람, 양을 사랑해도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양 도적은 양을 잡아먹기 위해서, 양도 적은 양을 잡아먹기  위해서, 팔아먹기 위해서, 잡아먹기 위해서 양을 사랑해서 살살살 다루고  사랑하지마는 그게 있고, 창으로 양이 잘 자라도록 하기 위해서 양을 사랑하는,  그 목자도 있어.

 그러기 때문에, 요한복음 10장에 보면은 '절도요 강도요 선한 목자라' 그렇게  구별을 해 놨습니다. 양을 사랑하되 자기에게로 끌어붙여 가지고서 자기하고  하나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자기 것 만들기 위해서 양을 사랑하는 것은 그것은  양을 마지막에 잡아먹습니다.

 어짜든지 양을 사랑하는 그 양을 진리의 사람을 되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의 사람을 되도록 하기 위해서. 그 사람이 영감을 받아 가지고 사는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그것이 뭐이냐? 곧 선한 목자입니다.

 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피곤치 안하면 때가 되면 거두리라 말했습니다. 이 날씨가 춥지마는 이제  주님을 사랑하고 양떼를 사랑하는 그 사랑이 이 추위를 그만 쫓아 내버려서 이  추위가 자기를 제재하지 못하고 그 사랑함이 뜨거워서 이 추위 그런 것을 다  극복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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