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22 14:34
소유권과 용도
1984. 11. 5. 월새벽
본문 : 고린도후서 9장 10절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어제 감사 헌금을 보고하는데 어떤 감사 헌금에 심을 씨를 주시기를 원하는 감사 헌금이라 그렇게. 내가 잘 못 들었는지 몰라도 그렇게 감사 헌금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마 그것도 그럴 것입니다. 씨는 자기가 소비하는 것이 아니고 어려운 가운데서라도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소비하는 것이니까 내가 있기만 있으면 얼마든지 씨를 심으고 싶은데 씨가 없어 문제다 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그 씨를 하나님이 주시기를 바라는 그런 연보를 한 그런 광고를 제가 들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혹 안 나올지 몰라서 어제 제가 광고할 때에 그것을 같이 들어서 다섯 가지를 광고를 할라고 했는데 고만 기록을 안 하니까 그걸 잊어 버려서 광고를 못 했습니다. 광고할라는 것은 자기 구역장에게 가 가지고 거기에 대해서 물어보면 잘 가르쳐 줄 터이니까 씨 받는 그런 길을 배우라 그렇게 말할려고 했었는데.
우리는 성경에 여기 말씀하시기를 자기가 할 수 있는 그런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심을 수 없는 그런 것을 '심을 거 주시면 내가 심으겠는데' 그렇게 하는 그런 것은 다 월권하는 생각이요 그것은 초절되는 그런 생각이기 때문에 그런 것은 나중에 가서 다 무너지고 맙니다. 꼭 신앙생활이라 하는 것은 초월적이어야 합니다.
초월이라는 말은, 돌담을 쌓는 것이 한 개 놓고 또 그위에 돌 놓고 돌 놓고 이래서 높이 올라가는 것이 초월이요, 초절이라 하는 것은 밑에 받쳐 올라가는 것이 아니고 공중에 비행기 뜨듯이 이렇게 하는 그런 공중에서 밑바탕이 없이 끊어져 가지고서 올라가는 그걸 가리켜서 초절이라고 말하는데. 초절은 그거는 사람들이 잘못 생각해서 초절이 되리라 그렇게 생각이 되지 초절은 없는 것입니다. 비행기가 공중에 올라가는 것도 그 비행기가 이 공기라는 것을 그것을 타고서 올라가지 그거 없으면 떨어집니다.
무엇이든지 차차 순서로 올라가는게 좋고, 또 기독교에서 말씀하시는 그 모든 생활은 다 그것이 영생하는 생명 생활이기 때문에 꼭 자라갑니다. 자라가는 생활이라야 돼지지, 딴것을 주, 종합적인 그런 생활이 아니고 무슨 생활이든지 다 자라가는 생활입니다. 그러기에, 지식도 자라가야 되고 믿음도 자라가야 되고, 충성도 자라가야 되고, 봉사도 자라가야 되고 순종도 자라가야 되고 이렇게 자꾸 자라서 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씨만 주면 하는데 그 씨는, 자기가 없는 씨를 심고자 하는 그것은 자기에게 해당치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는 있는 씨로 심어야 합니다. 그러면 있는 씨는, '나는 돈은, 뭐 현재 밥도 얻어먹고 있는데 무슨 내가 뭐 심을 수가 있느냐?' 그 사람은 밥을 얻어먹고 있으면 물질로써는 심을 것이 없습니다. 없으면 자기의 가진 것이. 자기 가진 것이 자기 몸은 있을 것입니다. 몸도 뭐 건강치 안하고 무슨 병신 몸이면 병신 몸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병신 몸을 가지되 병신 몸 가지고 나만 위하는 그런 병신 몸으로 살지 말고 병신 몸을 가지고 첫째 하나님이 아주, 이래도 이것도 나에게 하나님이 주셨으니 감사하다는 그 순서로 죽 내려와 가지고서 심을 씨는 순종 행위의 네째가 심을 씨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 위에 세째를 하고 네째로서 '하나님이 나에게 이 몸을 주셨으니 이 몸 가지고는 어떻게 하나님 섬길 수가 있느냐' 그것을 생각해서. 하나님 섬길 수 있는 자기의 영향에서 잘 구별해서 '내가 요만치는 하나님 섬겨야 되겠다. 요런 걸로 나는 섬겨야 되겠다.' 자기가 하나님을 섬길수 있는 그런 정도데서 하면 됩니다.
또, '내가 다른 사람을 그래도 구원하기 위해서 이래야 될 터이니까 내가 뭐 눔뱅이가 뭘 구원하겠느냐' 눔뱅이로서 할 수 있는 일 하면 됩니다. 눔뱅이로서, 눔뱅이가 이래 두굴두굴 구불면서 구걸을 하는데 구걸을 주니까 '아, 감사합니다.' 하면서 구걸 받는 것도 주는 상대방에게 감화를 주면 될 수 있을 것이고, 또 거기에서 '아, 나는 이래 눔뱅이가 돼 가지고 있으니까, '네, 감사합니다. 나는 이거 하나님 앞에서 우리 선조나 모두 다 잘 못한 죄값으로 이렇게 눔뱅이가 돼 가지고 있습니다. 어짜든지 건강한 몸 가지고서 주님을 잘 섬기십시오' 그라면서 '이거 참 구걸하게 되니 이거 미안합니다.' 거기에서 입은 다 눔뱅이도 열려 가지고 있으니까 그 입으로 말하는 가운데에서 뭐 대부흥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접촉하는 사람에게 크게 감화를 주고 크게 변화함을 입힐 수 있는 그런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로서 하나님을 위할 수 있는 그 정도, 자기에게 있는 것 가지고 그렇게 하면 됩니다. 있는 것으로 바치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성경에 말씀하시 기를 있는 것으로 바치리 그렇게 연보에 대해서 말씀한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까지 배웠는데 또 잊어 버리면 안 될 것이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간추려서 일곱 가지를 우리가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첫째는 모든 것이 우리를 구속하신 주 하나님의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에 보면 주님이 '말씀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는데 창조된 것은 주님이 짓지 안한 것이 하나도 없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모든 존재는 주님이 짓지 안한 것은 하나도 없다. 이 말씀에서 마귀도 하나님이 지으셨고 죄도 하나님이 지으셨고 모든 근본 전체가 다 하나님 한 분이 근원이라 하는 것이 결론이 돼집니다. 사람들은 자꾸 자기 주관대로 해석하기 때문에 틀리는데. 첫째 모든 것은 우리 하나님의 것이라.
어떤 네가 잡지를 보니까 거기에 말하기를'그렇게 조그만한 팜프렛트인데 왔습디다. '사람들이 자꾸 하나님이라 하나님이라 하면은 거기에는 구원이 없다.
주님이라 해야 구원이 있다.' 그 사람도 대단히 심각하게 깨달은 것을 가지고 애가 터져서 그렇게 보낸 줄 압니다. 네.
하나님이라면 곧 성부요, 성자요, 성령이요 주님이시요 그리스도시요 다 한 분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본체는 하나요 그 직책이 여럿이지 하나님은 한 분뿐이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하나님' 이렇게 말하다가 보면 그만 예수님의 대속을 잊어 버리고 하나님이 창조적인 하나님이라 대 주재이신 하나님이라 그렇게만 생각하고 하나님과 우리와의 밀접한 관계를 가지게 된 그 중보의 하나님을 잊어 버리기 쉽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라고 안 하면 구원이 없다' 그 사람 말하는 것도 하나 그 사람으로서는 심각하게 깨닫고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하나님' 이라니까 뭐 이종교에서도 하나님, 하늘님, 하늘님 한울님 이렇게 말하지마는 그와 같이 예수님의 대속에 대해서 아무런 감각이 없이 그저 그저 이 대주재의 하나님으로만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면, 예수님에 꼭 우리는 붙어야 예수님의 대속에 붙어야 하나님과 연결이 되지 예수님의 대속에 붙지 안하면 연결 못 합니다. 그것 그 가리켜서, 어떤 사람이 들어왔는데 한 사람이 예복를 입지 안하고 왔는데 왜 예복을 입지 안하고 왔느냐 이라니까 그 사람이 대답을 못해서 예복 입지 안하고 온 이자를 묶어서 바깥에 묶어 밖으로 쫓아내라 예수님이 말씀했습니다. 그 예복이 뭐이냐? 그것이 예수님의 대속을 입는 그 대속을 가리켜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이 아니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도 없고 나타 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대속 없이 하나님과 가까워지면은 당장 소멸이 됩니다. 하나님은 소멸하시는 불이라 이랬습니다.
이러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 할라면. 모든 것은 나를 대속하신 하나님의 것이라 이것을 꼭 한꺼번에 연상해서 말 안 할지라도 그 깨달음을 가지고서 그 마음으로 그렇게 발표를 하나님이라고 이렇게 해야 되지 예수님의 대속을 잊어 버리고 하나님이라고 하면은 참으로 그 사람이 팜프렛트 낸 거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되기 쉽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이라 하면은 됐습니다.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모든 것을 다 내게 주셨다' 마태복습 28장 16절 이하에 말씀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라 하면은 주님은 자존하신 하나님이시요, 또 우리의 중보되신 신인 양성 일위시요, 영원 전 자존하신 하나님이시요, 창조주 하나님이시요, 대주재 하나님이시요 만왕의 왕인 하나님이시요. 주권 개별 섭리의 하나님이시요, 주님이 다 이와 같이 하십니다. 하늘에 있는 권세도 다 내게 주셨다 그 말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가지신 모든 것을 신인 양성 일위이신 예수님에게 주셨다는 말이니까 이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줬다 하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예수님의 인성에게 줬다는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첫째는 모든 존재는 다 주님의 것이다. 주님이 주인이다. 주님의 것이다. 주님이라니? 하나님 하나님의 것이다. 주님이 하나님이요 하나님이 주님이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것을 우리가 아는 것이 제일 어렵고 힘들고 바탕이 되는, 바탕이 되는 신앙 행위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것은 주님의 것이요 곧 주 하나님의 것이니 그러니까 이걸 알고 그저 '주님' 하면 벌써 하나님이요 또 '하나님' 하면은 벌써 주님이요, 이것을 잘못하면 떨어져서 '주님' 하면 좀 하나님이 아닌 것 같고 '하나님' 하면 주님과 좀 또 뭐 거리가 다른 거 같고 이렇게 하는 사람이라면 '주 하나님' 이라는게 좋습니다. '주 하나님' '주 하나님' 이렇게 해서 어짜든지 우리의 감각에 비추어지는 이것이 들어서 내 마음이 변화되고, 또 마음이 내몸에 비추어지는 것으로서 몸이 변화되고 내 변화된 몸이 모든 사물에 비추어질 때에 그 사물이 다 거룩하게 되어지는 것이니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래서,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이니 우리가 거기에 대해서 경거망동을 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내가 조브라운 생각으로 저거는 당장 저주를 받아야 될 것 같지마는 그걸 그렇게 못 합니다. 그거 다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주님의 광대하신 그 계획에 그것이 뭐인지 내가 모르면서 그만 속단적으로 그렇게 경솔한 행위 하면 안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미가엘이, 미가엘 천사장인데 미가엘 천사장이 모세의 시체에 대해서, 서로 신강할 때에, 무슨 신강인지는 모르지마는 사탄은 그 시체를 안 줄라고 하고 또 미가엘은 그 시체를 하나님에게로 귀속시킬라고 하고 하는 그런 시비가 아니었던가, 시비할 만한 그런 원인이 과거에 한번 있었기 때문에, 그럴 때에 그 미가엘 천사가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의 하는 일을 꾸짖으시기를 원한다' 그 말은 하나님이 너 하는 일이 잘못 됐으니까 너 하는 일을 그걸 내가 손을 떼야 되지 손 안 떼면 틀렸다. 손 안 떼면 안 된다. 손을 떼라 하는 이것을 하나님이 손을 떼도록 그렇게도 와 주셨으면 좋겠다 이렇게 했지 그 무슨 저주나 책망이나 그렇게 하지를 안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마귀를 말할 때에 어떤 사람에게 알아 듣게 하기 위해서 '마귀 그놈을 사귀면 안 된다. 그게 마귀다. 바로.' 이렇게 말하는 것도 그 사람이 그렇게 안 하면 알아 들을 수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지 실상 그렇게 말할 것 없습니다. 마귀도 하나님이 지으셨고 마귀도 하나님이 다 제 일을 맡겨서 제 일을 착실히 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것이요 또 미끄러지게 하는 것이요 멸망케 하려는 그것이 저의 본분입니다. 본분인데, 그게 있는데 그것을 능가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에 거기에 빠지지 말고 그걸 능가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서 모든 마귀에게 얼마든지 재를 저질렀고 온갖 복잡을 다 만들어도 그것을 다 간추릴 수 있고 그것을 정평 정가할 수 있고 그 모든 것을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도록 그렇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우리에게 지극히 큰 지혜와 능력이 있기 때문에 우리를 연단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마귀가 활동을 하지마는 하나님의 그 통치하에서 그 하나님의 부리는, 하나님께 쓰여지는 그 정도 범위 내에서 하지 제대로 월권하는 행위는 하지를 못하게 돼 가지고 있습니다. 할래야 하지 못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고 하면은, 장성한 신앙가에게 역사하는 그 마귀 역사가 어린 신앙에게 역사한다면 다 무너지고 꺾어져 버리지 남을 자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걸 다 조절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뭐 공산주의가 독침으로 하는 거, 남침할라 하는 거. 뭐 또 이거 무슨 국신으로서 무슨 국신 무슨 국신 또 이렇게 하는 거 그런 거 다 하나님의 법에 완전히 그거는 배반되는 것이고 그거는 참 죄악의 행위이지마는 그것을 총 주관하시고 그 모든 것을 예정하시고 그렇게 이루어지도록 모든 것을 만들어 가지고 나타내시는 분은 누구시냐?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이 세상을 지었다 이랬습니다. 세상을 지었다는 것은 세상은 역사 세계 이 세상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볼 수 있는 이 물질계 우주를 지으시고 그 후에 사람을 지으셔서 엿새 동안에 지은 그것이 세상 시작이요 바탕이요 거기에서 하루 이틀 살아나온 그 모든 것이 약 육천 년 쌓여 왔으니 그것이 다 세상입니다. 세상에는 마귀도 다 들어 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지으셨다, 주님이 지으셨다 이랬소. 주님이.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요렇게 요한복음 1장에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모든 존재에 대해서 이것이 다 주님의 것이요, 주님의 뜻대로 다 움직이고 있는 것이요. 이렇게 저렇게 이것이 저것이 다 모순되고 대립되고 이렇게 되어지는 그것이 일치가 돼 가지고 하나 되는 그 단계가 있으니 거기에서부터 생명 세계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모든 존재가 다 주님의 것인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주님의 것으로 알면 도적질이 일호가 면해집니다. 주님의 것을 어떤 나라의 것이라 뭐 또 개인의 것이라 제것이라 이라기 때문에 도적질한다 그 말이오. 이제 주님의 것으로 알면 도적질 면하는데, 그러면, 미국 걸 다 그라면 미국 것은 하나님께서 미국 사람에게 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것 중에서 미국 사람들에게 준 것이다. 한국 사람의 것은 한국 사람에게 준 것이다.
또 그중에 또 내게 준 것은 내가 책임을 지고 내가 관리를 하고 내게 맡기신 것이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서 내게 주셔 가지고서 내가 보관하고 있는 하나님의 것이다.
그러면 이러면 도적질 둘은 면했습니다. 이거는 다 소유권적으로 소유권자가 아닌 것이 소유권을 가지니까 도적질이 아닙니까? 이 두 가지 소유권자를 바로 밝혀서 모든 존재가 다 주님의 것이라. 또 내게 있는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이라 이렇게 자기가 알고 이대로 지식하고 가지고 있으면 이것은 도적질 둘을 면했습니다.
또 이제 그 다음에는 다섯 가지 이것을 어떻게. 이걸 네게 줬는데 네게 주 이것을 네가 네게 주신 자의 뜻대로 이것을 취급을 해라. 네 마음대로 취급하지 말고 어떤 세력가의 주장대로도 취급하지 말고 이거는 꼭 내가 너한테 준 것이기 때문에 네가, 네게 준 내가 너에게 이렇게 저렇게 지도 하는 대로 내 지도에 따라서 이 모든 것을 처리해라 요렇게 하나님이 말씀 하셨기 때문에 다섯 가지 당신에게 순종하는 그것으로서 이것이 다 없어져야 되겠습니다. 쓰여져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순종의 일호가 뭐인가? 하나님께서 십분지 일은 하나님에게 바치라 이랬으니까, 하나님이 이와 같이 하나님 뜻대로 하라고 했기 때문에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것이요 또 내게 주신 하나님의 것인데, 이것은 네가 내 명령대로 내가 너에게 규칙 규례를 준 대로 그렇게 해야 된다. 그러면 규칙 순종의 첫째로 네가 십분지 일을 이것을 다 내게 드려라. 이러면 순종의 일호가 십일조입니다.
순종의 일호가 십일조.
그 다음에 순종의 이호가 뭐인가? 순종의 이호가, 네게 준 네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에서 하나님이 머리이신 것을 깨닫고 하나님을 머리이신 하나님 모든 것의 머리이신 하나님, 모든 것의 원인이신 하나님, 창조주이신 하나님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 이 하나님이 머리되심을 네가 깨닫고 이 머리를 네가 깨닫는 것으로써 그 모든 것을 사용하고 또 거기에 있는 머리로써 하나님 머리되심을 섬기는 거, 머리로 하나님 섬기는, 하나님이 머리이심을 네가 이것으로써 배우는 것, 네게 있는 십분지 구 이것 가지고는 하나님이 첫째로 머리되심을 네가 여기에서 이것으로 배워야 된다. 이것 가지고 머리되심을 네가 연습하고 머리되심을 인식하고 또 머리되심을 머리로 이렇게 섬기는 일을 하고, 여러 가지로 머리떼고 나니까 고다음에 또 머리니까 고것 가지고 또 하나님 섬기고 그러면, 모든 것에 다, 모든 것에서 하나님이 머리라. 자기가 무슨 밥을 먹으면서도 '이 모든 것은 다 하나님에게서 나왔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의 원인이시다.' 그러면 머리 대접하는 것이라 말이오. 이러니까, 나는 내게 있는 제일 좋은 것은, 제일 좋은 정성을, 제일 좋은 뜻을, 제일 처음 움직임을 제일 처음 마음을, 제일 처음 관계를, 제일 처음 사모를, 제일 처음 생각을, 이제 무엇이든지 '아, 이분은 머리이시기 때문에 내게 있는 모든 머리되는 것 가지고 이분을 섬긴다.' 그란다고 해서 당신이 안가져 가십니다. 얼마든지 당신이 머리되심을 그것으로 깨닫고 머리되심을 자기가 한번 연습해 보고 머리되심을 또 자기가 한번 실험해 보고 연습해 보고 실행해 보고 자꾸 이렇게 하는 것이 순종의 이호 순종입니다.
이호 순종.
그러면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을 가지고 그것은 하나님이 머리이신 것을 나로 하여금 아는 데에, 하나님이 머리이심을 아는 그 일을 하는 데에 비용으로 써라.
하나님을 머리로 섬기는 비용으로 써라. 하나님을 머리이심을, 하나님이 머리이심을 네가 깨닫는 데에 학비로 써라. 또 하나님이 머리이심을 네가 경험하고 체험해서 정말로 하나님이 머리인가 하나님을 깊이 깨닫고 아는데에 써라 이렇게 하신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렇게 쓴다고 해서 그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점점 좋아집니다. 점점 좋아져요. 제가 어릴 때에, 그것이 뭐 그런게 될란지 몰라도 나침반, 내나 동서남북을 가리키는 그걸 시골 말로는 뭐 쇠라 이랍니다.
동서남북을 가리킨. 뫼자리 볼 때도 그거하고 집 자리 볼 때도 그 사람들이 그래 쇠라 이래. 쇠, 쇠라 하는데, 쇠를 나는 모르고 그 쇠주머니로 벽에다가 못, 쇠 못에다가 딱 걸어 버렸습니다. 걸었디마는, 그래 오시더마는 '아, 이건 쇠 못에 걸면 안 된다.' 이라시면서, 보니까 벌써 그 지남침의 힘 이 쇠에게로 많이 건너가 가지고서, 건너가서 고만 그게 힘있게 안 돌아가요. 힘있게 안 돌아가니까 '봐라. 이 지남석의, 이 지남철의 힘이 저리 못으로 가서 그만 이렇게 약해졌다.' '아, 그게 그리 갑니까? 주머니 끈으로 타 가지고 갑니까?' '아, 가기로요.' '가는가 안 가는가 볼래?' 못에다 이라며 바늘을 가져오시요.
바늘 가져오시디만 '이거 봐라.' 요 못에는 대니까 바늘이 거기 안 대입니다.
이런데 요 못에는 딱 가니까, 걸었던 못에 딱 대니까 그 바늘이 쪽 달아붙어요.
아주 달리지는 안하는데 보니까 달라 붙어 가지고 있어요. 끄트머리 요래 가지고 반쯤 요래 가지고 있으니 달려요. '그만 힘이 그리 나갔다.' '그러면 이거 어째야 됩니까?' 요래 꼬부랑한 무슨 지남철이 있어요. '이거 지남철인데 이거하고 한테 좀 넣었다가 내놔야 된다.' 한테다 거기다, 떡 지남철하고 거기다 한테 떡 붙여 가지고 좀 있다가서 뚝 잡아 떼 가지고서 '봐라' 하니까 뱅뱅뱅 돌아가요. 암만 잡아돌려도 동서남북을 똑똑히 가리킨다 그 말이오.
그거 지금 내가 오늘 아침에 생각이 나는데, 우리가 근본이신 하나님에게 접하게 되며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화해집니다. 그러면 완전화돼지고 또 전지화되고 전능과되고 영원화되고 불변화되고 자꾸 우리가 하나님만 접하면 그렇게 화해진다 그 말이오.
이래서, 첫째는 순종의 십일조를 드리고, 두번째는 이제 그것으로 가지고서 자꾸 하나님이 머리이심을 그걸 가지고서, 머리인가 머리 아닌가 연습도 해보고, 머리로 자기가 한번 섬겨도 보고. 그걸로 가지고서 머리로 대접도 해 보고, 자꾸 그것 가지고 하나님이 머리이심, 머리이심을 머리이심을, 모든 근본이심을.
그분이 모든 원인이요 창조주심을 그분이 모든 주권자이심을 이렇게 네가 아는 지식으로 자라가고 아는 사람으로 성화돼 나가고 하는 여기에 써라. 하나님이 머리되심을 네가 인식하고 대우하고 이렇게 거기에 속하는 이 일에 네가 비용으로 써라.
그라고 난 다음에는 어짭니까? 그라고 난 다음에는네가 감사로 이 모든 것을 써라, 모든 것을 감사로. 눈도 '아, 주님 내 눈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아, 눈이 밝으니, 눈을 진서 밝게 보니까 이거 참 눈이 필요하다' 그럴게 아니라 '이 밝은 눈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또 '이제 이 눈이 어두워지지 않게 해 주옵소서.' 우리는 그런 기도를 다 못 했어요. '눈을 주님이 부르실 때까지 눈을 어둡지 않게 해 주옵소서.' 그러나 똑 거기에 대해서 덧붙여 말하기를 '이러나 이것이 내 사욕인지 모르니까' 모두 다 늙으면 눈이 어두워지는데, '사욕인지 모르니까 사욕이 아니고 들을 수 있으면 어두워지지 않도록 해 주옵소서.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주님 뜻대로 하옵소서.' 그런 또 덧붙임을 해야 된다 말이오. 혼자 구덩구덩 주님하고 그렇게 사겨지는 것이 공연히 공중 대 놓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럴 때에 참 상대방의 서로 대화외 상대가 그 이상되는 분이 없고 의논의 상대가 그 이상 되는 분이 없고 또 그분으로 더불어 사이가 친할 때에 재미있고 맛있기가 그분 이상되는 분이 없습니다.
그러면, 감사함으로, 내가 이것은 여기에서 하나님에게 감사하는 마음과 정신과 지식과 뜻과 모든 연습으로 해 가지고 네가 완전히 하나님에게 대해서 감사하는 그런 사람으로 되어져 나가는데 비용으로 써라.
또 그라고 난 다음에. 그러면, 무슨 순종입니까? 그라고 난 다음에는 양식보다도 씨가 먼저다. 그 다음에는 거기에 대해서 씨가 있으니까 네가 씨를 구별해 가지고 또 씨는 심으도록 해라. 그러면, 씨를 구별하면 그거는 씨 외의 것을 심어도 소용 없는 일, 씨를 네가 먹어도 배부르지 안하고 소용 없는 일, 그거는 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거는 전부 사망뿐이지 아무 소용이 없으니까 씨와 양식을 구별해 가지고 씨는 심으도록 해라.
그러면, 남은 거는 어짜 랍니까?남은 거는 또 네가 양식으로 먹어야 된다
이러니까, 그라면 전부 몇 가지입니까? 처음에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바로 알고. 소유권에 대한, 소유권에 대한 것이 몇 가지입니까? 예? 두 가지.
소유권에 대해서 두 가지. 소유권에 대해서 두 가지.
요것을 말로 들으면은 맛이 없고, 어떤 사람은 말로 들으면 맛이 있지마는 실행할라 하면 맛이 없다 이라는데 말로 들으면 그렇지마는 실행을 할라 하면은 참 씹기도 어렵고 소화가 어렵지마는 하면은 굉장한 맛이 나옵니다. 굉장한 맛이. 거기에서 하나님의에 더 두려워할 것 없고 하나님의에 바라볼 것도 없고, 하나님 외에 의지 할 것도 없고 하나님 외에 굴복할 것도 없고 하나님 한 분으로써 전부인데. 하나님이 이 모든 조직들과 모든 세포들을 다 이렇게 나열해 놨기 때문에 하나님의 부리는 종이라 이랬습니다. 세상 정권자를 하나님이 부리는 종들이라. 하나님의 부리는 사자라 이렇게 말해 놨어.
이러니까, 이제 하나님 한분뿐이신데, 하나님이 아버지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머니를 통해서. 하나님이 내 상관을 통해서, 하나님이 내 사장을 통해서, 하나님이 내 호주를 통해서, 하나님이 내 선생님을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 뭘로 통해서 뭘 통해서, 이러니까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인 것을 알고 그를 상대하다 보니까 그에게 대해서 복종할 것은 하나님의, 하나님께 복종하는 복종이라야 복종하지 하나님께 복종되지 안하는 이질적이면 복종 안 한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죽도록 충성하다가도 국기 배례 하라 하니까 나중에 면직을 당해도 안 한다 그 말이오.
죽도록 충성 하다가도. '아, 오늘은 주일인데 오늘 천상 가야 된다.' 주일이 아닌데 토요일날 가야 된다 하면 토요일 또 가야 된다 말이오. 상관이 가자 하면 가야지. 사장이 가자 하면 가야 안 됩니까? 이제 갔었는데. 가 가지고서 이제 주일이 됐습니다. 주일이 됐었는데 '오늘은 이 일을 지금 좀 해야 되겠다.
모처럼 이렇게 와 가지고 일을 다 하고 가야 되니까 일해야 되겠다' 주일날은 또 하면 안 된다 말이오. '아이구' 주일날 못 합니다.' '여기까지 와서, 뭐 하러 왔어 그러면, 오기를? 여기까지 뭐 하러 왔어, 오기를 대체? 이 사람이 정신이 있나 없나? 못 해? 못 하면 뭐 하러 왔어? 여기 오면 이 일 하러 올 줄 모르고 왔어?' 그러면 밉상스럽든지 등신 같을지라도 '가자고 하시니까 제가 순종하지 안할 수 없고, 나를 왕에게 붙여 놨기 때문에 왕의 명령이니까, 왕에게 순종하라 했기 때문에 그 순종이. 왕에게 하나님이 날 붙였고 왕에게 순종하라 했기 때문에 왕의 명령이 하나님의 명령에 위반되지 안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중보자 왕이 들어서 나한테 지금 명령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에게 하나님의 명령인 줄 알고 죽도록 충성합니다. 그래왔습니다. 그렇지마는 주일날 이것 하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지 말라 하기 때문에 이것은 왕의 독단 명령이지 하나님에게 명령을 받아 가지고서 나에게 전달하는 그 명령이 아니기 때문에 이거는 못 합니다.' 그게 어렵다 말이오. 어려워. 고게 권능이라. 고게 권능.
고럴 때 하나님이 같이 하시오.
그러면 분개해서 분개해서 당장 사형을 내릴 수도 있지마는 사형을 못 내려도 분개해서 '어떻게 하든지 하겠다' 하고서 '그래. 나는 너하고 싶은 대로 하고 나는 나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됐지 뭐 않게 뭐 있나?' 배짱을 딱 두르면 '아, 임금님, 나는 나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 아닙니다. 주님이 하라 하시는 그대로 나는 순종입니다.'고 말 한마디 딱 해 놔야 돼. 고 말 한 마디를 딱 해 놔야 된다 그 말이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러면 떠든다 말이오. 그러면 하나님이 그 말 한 마디에서 딱 일러서 깨닫게 할지라도 '아이구야, 하나님 명령에 순종이라?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마는 하나님이라 하는 그분이 제일 크신 분인데 그분이 내게 대해서 만일 저주를 주든지 반대하든지 하면 내가 어찌 되느냐?' 떨면서, 배짱 가지고 뭐라 한다 해도 가다가. 무슨 발길에 한번 발만 채여도 띠꿈거려도 '아이구야 하나님이 이러는갑다' 그라면 깜짝 놀래서 그만 기절할 수 있다 그 말이오. 하나님이 그 사람을 붙들고 하실 수 있다 그 말이오.
이렇게 하나님은 세밀히 역사하시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우 하지 안하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나타내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권찰님들 무슨 저주하면 안 돼요. 그저 말은 해요. '이라면 하나님이 섭섭해 하십니다. 하나님이 섭섭해 하시면 어찌 됩니까?' 진노한다해서 될 만한 사람이면. 좀 장성하면 '진노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섭섭해 하십니다. 그래 말하고. 또 그보다 더 어리면은 '하나님이 이라면 은혜 안 주실라면 어짤랍니까? 은혜 안 주시고 복 안 주실라면 어짤랍니까?' 정도에 따라서 이렇게 말한다 말이오. 이라다가 '그라면, 뭐 복 안 주면 뭐 어찌 됩니까?' '복을 안 주면 아무 것도 안 되지 않습니까?' 요래 놔야 하나님이 일할 수 있다 말이오.
이래 가지고 나중에 가 가지고서 보니까 이제 참 하나님이 복을 안 주시니 뭣이 발칵 걸려 가지고 일이 안 된다 말이오. 낭파가 된다 말이오. 그러니까, 그러면, 그런 소리 안 했으면 와 가지고서 뭐 '어째야 될꼬?' 예수 믿는데 핑계를 하고서 나중에 믿었더만 이렇다고 자꾸 이래 엉뚱스럽게, 참 양 잡아먹고 개 발 내놓는다 한다하디마는 이렇게 내놓는 것 모양으로 이럴 건데 그래 말을 해 놨으니까 와 가지고 말을 못 하지. 말을 할라면 '아, 이런 일이 됐는데, 그만 내가 그때 그래 잘못돼서 이래 됐는갑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희망이 있고. 또 '아, 나 이래 됐습니다. 권찰님 마음에 시원하시지요? 목사님 마음에 시원하시지요? 장로님 마음에 시원하시지요? 다 이렇게 되라고 했는데 이래 된 거 아니겠습니까? 말씀대로 안됐습니까?' 요렇게 패역을 부립니다. 패역을 부려도 괘씸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 몰라서 저 죽을 줄도 모르고 저 망할 줄도 모르고 하는데. 저 망할 줄도 모르고 하는 것을 감을게 뭐 있는가? 감으면 감는 사람이 나빠.
그러면 그때 위로를 해 줘야 돼. '이래도, 하루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사해 주신다 했습니다. 주님에게 능치 못하심이 없기 때문에 그 보다 더 큰 것도 있고 좋은 것도 더 있습니다. 이러니 요걸 깨끗이 회개하고 하나님에게 우리 기도합시다.' 이라니까 그 사람이. 뭐 교만한 자는 세상에 유식하고 잘난 자는 다 교만해서 속으로는 그래도 뭐 그 띠 거리면서 '아 아, 나는 기도 안 합니다. 이래 해도 그게 속으로는 한다 그 말이오. 속으로 가서 기도해. 속으로 기도 안 하면 한번 더, 한번 더 꼬끌트려 버리면 제까짓게 기도 안 할 수가 없어, 나중에 기도하고 난 다음에 이래 거석하면. 나중에 일이 조그매 살살 펴여 나가면은 그때 웃으며 와 가지고 '아이구, 참 뭐 목사님이, 조사님이. 뭐 장로님이, 권찰님이 인도해 주신 덕택으로 좀 이제 돼 나가는 것 같습니다.' '내가 기도하고 내가 뭐 회개하는 것 보다도, 내 기도 열 번 하는 것보다도 본인 기도한 번을 더 하나님이 더 기뻐하시오. 어짜든지 기도 하시이소.' 이런 자꾸 소망을 해 주면은. 그래 가지고 떡 일이 잘됐다 그 말이오. 그래 그래 점령을 당해 놓으면, 그 양떼가 그 목자에게 고렇게 점령 당해 놓으면 경험 체험으로써 그대로 자라 갔는데 어떻게 반역을 하겠소? 오래 동안 목회하는 가운데에서 그와 같이 되는 것은 다 그렇게 그렇게 실질적으로 실질적으로 주님이 기르시고 주님이 건설하심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져 나가는 것이라 그거요.
그런고로, 오늘 아침에는 두 가지는 소유권에 대해서 이것을. 소유권자를 어만 사람으로 했기 때문에 도적질 됐는데 소유권 도적질했던 것을 이것을 회개함으로 도적질을 면하게 되고, 다섯 가지는 하나님이 이렇게 저렇게 사용하라고 그렇게 우리에게 법규를 주셨는데 하나님의 법규를 어겨서 제 마음대로 사용했기 때문에 다섯 가지 사용 도적질 용도 도적질이라 말이오. 용도 도적질을 했는데 그것을 회개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해요. 그란다고 해 가지고서 우리에게 모자라는 것이 없어.
그러니까, 자꾸 하나님에게 그와 같이 할수록 하나님께서. '아, 이라면 이거 바쳐 놓으면 헛일인데?'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하나님이 주신다고 약속하신 그를 소망해요. 소망해요. 소망해야 오지 소망 안 하면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인데 부인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어떻게 일할 수 있습니까? 다 자유성이 '아, 안 한다' 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이 할 수가 있겠느냐 그 말이오. 안 한다 하는데 하면은 그 해 주시는 것을 않게 했다고 해 가지고서 도리어 악령의 것이 더 되고 말것 아니겠습니까? 이러니까, 둘은 소유권적으,로 도적질한 것을 회개를 하고 고다음에 다섯 가지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해야 되는데 하나님의 뜻을 어겨서 제 마음대로 제 사욕대로 사용했기 때문에 그것이 용도에 대해서 용도 도적질 다섯 가지, 요것을 기억하고 회개를해서 우리가 하도록 합시다.
어제 연보 나온 것은 내가 언뜻 들었는데, 뭐 일억 천 이백만 원인가 됐답니다.
그랬는데, 많이 나왔습니다. 나왔는데 제가 그때 말하기를 '얼마만 나왔으면 좋겠지' 그 말 언제 했지요? 얼마 말했습니까? 예? 예? 얼마 말했어요? 일억? 일억 말했어? 일억 오천 말했지요? 일억 오천 말했을 겁니다. 내가 벌말 같으면 일억 오천이 안 될 것이고 하나님이 주셔서 말했으면은 일억 천 이백만 원이지만 일억 오천이 될란지 모릅니다. 녜, 그래 어제 나온 것까지는 그래 됐습니다.
어제는 재독에 참여한 사람이 삼백 이십 오명이 참여했습니다. 네 다 지혜 있고 복있는 사람입니다. 어짜든지 참석해서 들어야 우리는 변화가 됩니다. 우리가 듣는다고. 듣고 내가 결심하는 그게 아니오. 들으면 내가 결심하는 내 주관이 아니고 들을 때에 그 나를 듣게 하는 그 말씀과 말씀 안에 있는 내재하는 영감이 나를 변화시킵니다. 그 듣는다는게 내가 객관의 능력으로써 내가 변화함을 받는다 말이오. 내가 듣고 내가 결심한다고 될진대야 한 번 들어 이래 하지마는 그게 아니라. 그 안에 내재하신 객관 능력이 듣는데 나를 변화시켜. 그런고로 재독을 많이 듣는게 좋습니다.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또 그러고, 인사로 전도하는 그 전도지 꼭 전하십시오. 어제 저는 또 이 만큼 가지고 나왔었는데 그만 주일학교 이 반 저 반 양사방 돌아다니면서 보다 보니까 그만 다 줘 버리고 나중에는 없이 돌아다니니까 다른 사람들이 볼 때에 '아, 이거 목사님도 만나도 전도지 전하지 안하면서 우리만 전하라 하는가' 이렇게 될것 같아서 좀 마음에 민망스러웠습니다. 그거 변호도 다 못 하고, 어제 이만큼 가져 왔었는데 그만 전하고 나니까 한 장도 없어져 버려서 나중에 만난 사람들에게 못 줬습니다.
그것도 전하고, 전하면서, 전하며 보면 '밤낮으로 회개의 눈물을 강처럼 흘릴지어다' 그거 생각을 하면서, 또 '주 하나님의 진노와 징계의 그걸 보는 눈을 그걸 그 동자를 쉬지 말지어다' 하는 이런 것을 자꾸 이렇게 생각함으로써 그때 내가 변화가 된다 그 말이오. 내가 변화가 돼요. 참 하나님께서 회개의 눈물을 주셔야 되는데 회개의 눈물 없는 그것이 박 윤선 목사님은 하늘나라는 눈물이 여비라 이랬습니다. 하늘나라 가는 여비가 눈물이 여비라. 눈물을 흘려야 여비가 있지 눈물 없으면 벌써 배가 고파서 헛일이라 그 말이오. 여비가 떨어지면 갑니까, 어찌? 못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