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22 13:46
소속과 능동을 바꾸라
1981. 1. 23. 밤 (금)
본문:창세기 12장 1절∼9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오 세였더라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아브라함이 그 땅을 통과하여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곳에 단을 쌓고 거기에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아브라함은 우리의 믿음 조상입니다. 믿음으로 우리의 조상이 된 분입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혈육 자손은 아니지마는 믿음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우리의 믿음의 조상으로 정하시고 성경에 말씀하신 것은 천추만대를 갈지라도 또 무궁세계에 갈지라도 아브라함이 하나님에게 대해서 어떠하심같이 모든 믿는 사람들도 그렇게 본받아 해야 되지 다른 길이 없는 것을 못박아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중간의 신앙의 사람이요 노아 홍수 전에 믿음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믿음의 사람들이 시대 시대 지방 지방에 있었지마는 그들의 신앙도 아브라함의 신앙과 같았습니다. 신앙의 다른 종류가 없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의 종류만 우리 사람들에게 허락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을 믿음의 조상이라 그렇게 믿음의 표본으로 세우지 아니하시고 아브라함을 믿음의 표본으로 세운 것은 우리로 하여금 아브라함의 신앙을 듣기가 쉽고, 보기가 쉽고, 깨닫기가 쉽고, 본받아 믿음을 가지기가 쉽고 또 구비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신앙 사적이 많지마는 오늘밤에 봉독한 이 말씀이 아브라함의 신앙의 시발이라고 할 수 있고 또 신앙의 원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후에 아브라함이 온갖 신앙 생활을 했지마는 그 신앙 생활들은 오늘밤에 봉독한 이 신앙의 다 모형적 신앙이요 본질이나 본성이나 그 진리가 꼭 같습니다. 간단한 이 한 믿음의 표본에서 우리의 모든 인생 문제는 해결이 되고 또 확립됩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서로 가진 관계는 아주 간단하고 명확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시고 명령하신 것이 간단하고 또 이 요구와 명령을 지킬 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어떻게 해 주실 것을 말씀하신 것도 아주 간단합니다.
우리는 아브라함과 하나님과의 이 관계점은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점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시고 요구하신 이것이 우리에게도 꼭 같은 요구와 명령을 하셨고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이를 지킬 때에 어떻게 해 주실 것을 약속하신 이 약속도 우리에게도 꼭 같은 약속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에 기록된 이 사실이 신앙의 원형이며 또 신앙의 강령입니다. 벼릿줄이 됩니다. 신앙의 줄기가 됩니다. 줄기가 없으면 가지도 잎도 꽃도 열매도 맺을 수 없는 것처럼 신앙에 있어서는 여기에 나타난 이 신앙적 줄기가 없으면 개인이나 단체나 어떻게 보기에 아름답고 웅대한 형태를 갖추어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요 그것은 잡된 것들입니다.
그후에 하나님께서 육십오 권이나 되는 성경 말씀을 가지고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하셨고 또 예언도 계약도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말씀은 다 여기에 기록된 이 벼릿줄에 달린 그물 고와 같습니다. 다 여기에 근거하여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에 원줄기가 되는 이 사실을 떠나 어느 성경 어느 성구를 자기가 이행을 한다 할지라도 그는 벼릿줄 없는 그물과 같겠고 그는 뿌리 없는 화초와 같아서 아무리 흥왕해도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할 결실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 요구와 명령을 지키면 우리에게 어떻게 하나님이 해 주신다고 계약으로 선포하셨는가 하는 것을 우리가 여기에서 먼저 찾아봅시다.
첫째로 이 계약을 지키는 자로 하여금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겠다고 말씀했습니다. 큰 민족이 된다는 말은 그 사람의 자손 그 사람을 통하여 출생될 자손들이 다 출생된다 하는 말입니다. 이것이 인간으로서는 제일 큰 의무입니다.
자기를 통하여서 출생될 자손들이 다 그대로 다 출생이 되겠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그에게 저주해서 그로 통해서 나올 자손들이 다 나오지 못하고 멸종이 되는 그런 일들도 많고, 또 하나님을 거쳤을 때에 사람은 살아 있지마는 잉태하는 그 은혜를 제거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하나님이 긍휼히 여길 때에 새로운, 평생 생산해 보지 못한 사람으로 생산하게도 되는 그런 일들을 성경에 기록한 것을 우리가 봅니다.
2절에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하는 말은 너를 통해서 날 자손들이 다 난다 그말이오. 그러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이 요구와 명령을 지키지 안하면 그 사람을 통해서 나올 자손들이 다 나오지 못하고 다 멸망받고 만다 그말입니다.
또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네 이름을 창대케 한다 그말은 그 이름이 세상에 들나게 한다는 말인데 이름이 들나게 한다는 그 말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잘 된다는 말입니다. 잘 된다는 말입니다. 네 이름이 창대케 된다 그말은 네 이력이 아주 위대하게 된다 그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너를 통해서 날 자손들이 하나도 지장 없이 다 이 세상에 출생하게 되리라. 또 출생하게 될 뿐만 아니라 둘째로 너와 네 자손의 생애가 세상에서 위대하게 되고 모든 세상에 다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창대함을 받으리라 하는 것을 약속했습니다. 이것이 인간이 인간에게 대한 큰 두 가지 의무입니다.
자기로 통하여서 날 자손이 다 나게 되는 이것이 첫째 큰 의무를 행한 것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번식하고 모든 것을 다 취하라” 했는데 이것이 인간의 첫째되는 책임이요 또 둘째되는 책임입니다. 첫째 둘째의 의무입니다. 자기로 인하여 자기 자손이 잘 나고 자기와 자기 자손이 잘 되는 이 두 가지 큰 축복을 약속했습니다.
우리는 남의 자손이 된 동시에 남의 선조의 입장과 책임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그러면 나 한 사람으로서 나를 바라보는 내게 속한 자손들이 잘 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후손이 잘 날 수 있는, 우리 후손이 망하지 안하고 우리 후손이 잘 나고 또 유명하고 위대하고 모든 세상에서 욕하지 안하고 칭찬하고 존대할 수 있는 이렇게 유력하고 위대하고 유명해지는 이런 축복을 하나님이 해 주겠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자기의 자손이 잘나고 못나고, 그 자손이 나도 병신돼서 망하고 죽고 가련하게 비참하게 되고 아주 그 자손이 위대하게 다 훌륭하게 날 뿐만 아니라 모든 행위의 복도 받고, 도덕의 복도 받고, 건강의 복도 받고, 모든 지위나 권세나 명예나 물질의 복을 받아서 모든 사람들이 다 존대하고 부러워할 수 있는 이런 자가 되게 해 주겠다고 말씀하신 이것이 두 가지 계약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해 주시겠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 믿는 사람은 자기의 자손이 잘 나는 것과 자손이 잘 되는 이것을 하나님이 요구하시고 명령하시는 이 명령과 요구를 지키는 여기에서 좌우되고 결정되는 것인 것을 확신하고 요 방편으로 자손에게 대한 선조의 의무를 감당하려고 하는 요것이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도, 내가 공부를 많이 시켜야, 이 인간들의 심리학자들이 별별 연구하는 이 과학에 맞추어야, 이 세상들이 가지고 있는 여기에 맞추어야, 이걸 따라서 구비해야 된다고 인정하는 것은 그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닙니다.
그는 하갈의 자손입니다.
우리가 그런 것이 다 필요하지마는 하나님이 주시는 그 주심이 있을 때에 그런 것이 그릇과 같고 도구와 같아서 그것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축복이 올 수도 있고 세상에 비추어 퍼질 수도 있는 한 도구에 지내지 못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 아무것도 그것들이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자기 자손이 잘 나는 것과 또 이렇게 복되게 도덕으로도 모든 세상이 일컫고 물질로도 지위로도 권세로도 건강으로도 실력으로도 모든 사람이 우러러 볼 수 있도록 이렇게 되는 것은 다만 믿음의 조상된 내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점 이 점을 잘 지키는 여기에서만 된다 하는 요것을 믿고 욕망하는 사람이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이것은 뒤로 두고 이것은 무시하고 그게 좀 거리낄지라도 이 세상 사람들이 하는 그 방편, 세상 사람들이 힘이라고 생각하는 그 모든 과학적인 것, 인간의 통계적인 것 이것을 앞세우는 것은 하나님에게는 질색입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미워하십니다.
다음으로 셋째로, 우리는 세상에 난 것이 내가 모든 사람을 복되게 하는 복의 기관이 되기 위해서 우리가 났지 다른 사람을 망치는 저주의 기관이 되기 위해서 난 것 아닙니다.
그러면 내가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에게든지 원수에게까지라도 만물에게까지라도 나로 인하여서 그들이 복을 받게 되는 복의 근거가 되고 복의 기관이 되면 우리의 셋째의 의무를 감당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의 셋째의 의무입니다.
책임입니다.
셋째로는 나를 인해서 복받을 자들이 복을 받게 하는 것이, 나로 인하여 복이 건너갈 자에게 내가 가로막지 안하고 나로 통하여서 그에게 복이 건너가는 이것이 우리의 셋째 의무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시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면 첫째의 인간에게 제일 큰 의무와 책임, 둘째의 의무와 책임, 셋째의 의무와 책임 요것을 완수하게 해 주겠다고 하나님이 약속했습니다.
이렇게 약속하신 것은 인간이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요구하고 명령한, 우리에게 요구하고 명령한, 아브라함에게 요구하고 명령한 곧 그 요구와 명령, 우리에게 요구하고 명령한 이것을 무시하고, 이것을 이행하는 것으로 하나님이 이 세 가지를 해 주실 수 있도록 하는 요 방편을 취하는 자는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이것을 무시하고 이행치 아니하고 다른 것으로써 이 세 가지가 이루어지게 하려는 방편을 취하는 자는 하나님의 적입니다.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여기에 약속하신 대로의 정반대로 하나님이 역사하겠다는 것이 이 계약에 같이 내포돼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은 짝 없는 것이 하나도 없다” 했습니다. 짝 없는 것이 없다 그말은 내가 이렇게 세 가지를 다 책임지고 해 주시겠다 하는 요 계약의 반대는 내가 책임지고 이 세 가지를 깨뜨리겠다는 계약이 내포돼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짝입니다. 하나님이 해 주시겠다는 이 계약의 반대로 이행하지 않을 때에는 요 세 가지를 하나님이 절단내겠다는 그 말씀입니다.
가인이 범죄했을 때에 하나님이 가인을 멸하는 사람을 칠 배나 벌을 주겠다고 가인을 멸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 이유는 가인의 범죄를 하나님이 가인 그 한 사람에게 복수하는 것으로써는 당신의 공의에 만족지 아니하기 때문에 애지중지로 그 피와 살이 전해 가지고서 자녀된 수많은 자손을 일으켜 가지고서 복수해서 멸망시키겠다는 하나님의 복수의 많은 증가의 그 법칙을 거기에 말씀해 놨습니다.
그 다음에는 넷째로서는, 죄악과 사망과 저주와 거짓이 가득 찬 이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나갈 수 있느냐 하는 우리 생에 대한 안보를 약속했습니다.
넷째로는 우리가 이 세상에 삶에 대해서 우리가 평안하게 살 수 있는 우리의 생의 안보를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 약속에, 3절에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우리는 너무도 세상에 사람들이 이중 삼중 십중도 더 되게 표리가 다르게, 안팎이 다르게 표리가 다르게 마음을 가지고 행동을 가지고 달리 되어 있는 사람들이 가득히 쌓여 있기 때문에 어느 사람이 나를 망칠 원수인지 어느 사람이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요 있는 그런 유익된 사람인지 우리에게 필요 있고 없고, 없으면 좋고 있으면 좋은 이 사람의 선별을 우리는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껍데기만 보기 때문에 저 사람은 가장 나를 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그 사람이 결과적으로는 피차에 해하는 원수 중에 가장 큰 원수가 되는 그런 일들이 얼마든지 있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원수가 네 집 밖에만 있는 줄 알아도 “원수가 네 집안 식구니라” 식구리라고 거기에 하나 지혜를 우리에게 경성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사람을 가까이 하며 어떤 사람을 멀리 하며, 어떤 사람을 손을 잡을 것이며 어떤 사람을 그 절교를 해야 될런지 그것 우리는 모릅니다.
모르는데 주님이 우리가 요 요구와 명령을 지킬 때에 당신이 나에게 없어서 될 그 필요 없는 사람은 하나님이 멸하시겠다고 말씀했습니다. 다 이것을 멸해버리겠다 말씀했습니다. 그를 내가 저주해서 없애겠다 말씀했습니다. 필요 있는 사람을 축복하겠다고 말씀했습니다.
이래서 나는 사람을 선별하지 못하지마는 하나님께서 선별하셔서 나를 해할 자는 다 없어지게 되고 도망을 쳐서 없어지든지 이사를 가서 없어지든지 망해서 없어지든지 없어지게 하고 나에게 필요있고 유익된 자는 어데서든지 모아들이든지 나든지 생기든지 해서 채우겠다고 말씀하시는 약속입니다. 너를 해하는 자는 다 멸하겠다. 너를 위할 자는 내가 점점 너를 많이 위하도록 자꾸 왕성을 시키겠다 말씀을 했습니다.
이사야 49장에도 보면 하나님이 기뻐한 사람이 된 흑암에서 탈출하고 결박에서 벗어나오는 이 회개하는 믿음의 사람에게 그를 해하던 원수들은 다 어데로 갔는지 간 곳도 모르게 다 없어졌다 이랬습니다. 나를 해하던 자는 다 멀리 도망쳐 가 버렸다 이랬습니다. 나에게 필요 있는 사람은 동에서 서에서 생각도 못하는 곳에서 다 몰려들어와 가지고서 자기의 장식같이 둘러싸서 자기에게 아주 자기를 몸을 장식하고 치장한 것처럼 둘러싸서 거할 곳이 없을 만치 모여들었다고 말씀했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네가 축복하고 싶은 그자를 네가 아무리 축복하고 싶지마는 너는 축복할 권세가 없다. 네 원수를 네가 멸하고 싶지마는 네 원수를 멸할 힘도 너는 없다. 네가 이 요구와 명령을 지키면 네가 축복해야 될 그자에게 내가 축복을 하겠다. 네가 축복해야 될 자에게 내가 축복을 하겠다. 네가 저주해야 될 자에게 내가 저주를 해서 다 멸하겠다.
그러기에 네가 축복하고 싶은 그자에게 내가 축복해 주고, 너를, 네가 저주해야 될 자에게 내가 저주하고, 네가 토벌해서 없앨 자에게 내가 없애고, 숭상해서 흥왕(興旺)케 할 자를 내가 흥왕(興旺)케 하겠다. 네 원수를 내가 갚겠다. 네 축복을 내가 대신 축복하겠다.
이렇게 복잡한 세상에 살면서 내가 모르는 원수까지 당신이 다 원수에 대해서 다 책임을 지시고 내가 모르는 내가 축복하고 내가 위해야 될 자까지 다 당신이 책임지고 하시겠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이래서 모든 네 처세에 환경에 있는 자로 하여금 너를 축복할 자는 축복하도록 내가 만들겠다. 너를 축복할 자는 축복하도록 만들겠다. 너를 저주할 자는 내가 저주해서 그것을 다 제거시겠다.
이래서 수많은 인인 관계를 내가 요 한 가지만 지킬 때에 요 계약만 지킬 때에 당신이 모든 인인 관계에 대해서 내가 모르는 인인 관계를 정리해 주시고 원수는 원수로 내편은 내편으로, ‘너는 모르나 수많은 사람 가운데에서 내가 이것을 너를 해할 자와 너를 위할 자를 다 이것을 내가 알아서 선별해서 내가 이것을 다 정리하겠다. 네게 대해서 원수와, 네게 속한 네편과 원수, 대적과 네편을 너는 모르나 내가 이것을 알아서 다 정돈하겠다.’둘째로 ‘그뿐 아니라 네가 복을 줘야 될 자는 내가 복을 줄 것이고 네가 저주해야 될 자는 내가 저주하겠다. 네 대적은 다 제거시키겠다. 또 너를 축복할 자는 내가 왕성을 시키겠다. 너를 망치는 자는 차차 차차 소멸돼서 너를 망칠래야 망칠 수가 없도록 소멸시켜서 제거하겠다. 너를 축복하는 자는 그것이 하나면 그만큼 할 것이고 둘이면 그만치 할 것이기 때문에 너를 축복하는 자는 내가 왕성을 시켜서 내가 너를 얼마든지 축복하게 하겠다.’ 이래서 인인 관계의 모든 난제를 당신이 책임지고 우리의 안보를 약속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첫째, 둘째, 셋째, 넷째, 인생 문제에 중대한,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된 이 중대한 네 가지 문제를 당신이 해결지워 주시겠다고 약속을 선포했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얼마큼 지나가다가 말씀하시기를, 네가 나를 따라서 이 두 가지를, 요구와 명령을 지키는 지키는 이 지킴은, 이 지킴은 네게 대해서 이 네 가지가 될 뿐만 아니라, 네게 대해서 이 네 가지가 될 뿐만 아니라 그 결과는 전부가 다 너거 후손의 것이 된다 말씀했습니다. 후손의 것이 된다. 내가 지시할 곳으로 가라. 이것이 다 너거 자손에 기업이 되리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책임지신 일이 이 네 가지 책임지셨고 결과적으로 그것이 그의 것이다, 너희들의 자손의 기업이 된다 하는 것으로 다섯째 말씀했습니다.
이것으로써 우리의 땅의 문제는 다 해결이 됩니다. 또 땅의 문제가 해결되는 이것이 영원한 문제가 해결입니다. 무궁세계에 하늘과 땅의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될 때에 교회는 복의 근원입니다.
교회는 복의 기관입니다. 교회는 영원히 모든 존재의 조상입니다. 땅에서 맨 것은 하늘에서 다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 늘 고민합니다. 우리는 수많은 원수에게 대해서 가슴을 아프고 쓰고 있습니다. 이 원수를 어떻게 처단할 것이냐? 네가 원수를 어떻게 갚을 것이냐? 네가 마땅히 복을 줘야 될 그자에게 네가 어떻게 복을 주겠느냐? 또 이 모든 사람들이 모든 존재들이 너를 위하는 것이 되어져야 되지 너를 해하는 것이 되어져서는 안 되겠는데 이것들로 하여금 어떻게 너를 위하는 것이 되게 하려냐? 너를 해하는 것들을 어떻게 해서 네가 다 제거하겠느냐? 인간이 할 수 없는 이 중대한 네 가지 문제를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우리 당대뿐만 아니라 이것이 너의 자손의 기업이 된다 마지막에 말씀했어. 이 땅을 너의 자손에게 주는 기업이 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고 명령하신 것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하나님이 그 댓가로 이행해 주시는 것이 이렇게 크고 우리에게 필요한 전부인가 하는 것을 우리는 여기에서 찾아봐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고 명령하시는 것은 간단합니다.
“네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라” 하는 것이 하나 명령입니다. 그 다음에는 “내가 지시할 곳으로 가라” 가되 ‘이렇게 가면 어데로 갑니까? 이렇게 가면 어찌 됩니까?’ 그것 없습니다. 주님이 지시해서 가라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지, 불이든지 물이든지, 감옥이든지, 가난이든지, 멸시 천대든지, 전염병이 걸릴 그 병막이든지, 감옥에든지, 어데든지 가리지 안하고 내가 지시하는 대로 가라.
다만 네가 알고 있을 것은 지시하는 대로 가면 하나님이 이 네 가지 책임을 져 주셔서 인간 문제를 해결지워 주실 것이고 다섯째로는 그 모든 것이 너의 자손의 기업이 되게 해 주시겠다고 하신 이것만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시하는 그 명령대로 걸어갈 때에 그 길이 어떤 길이든지 이리 가면 무엇이 닥칠 것이든지 무엇이 닥치든지 어떤 길이든지 상관하지 말고 이대로 가면 이 네 가지 하나님이 계약하신 대로 너에게 모든 네 의무와 책임과 본분과 난제를 해결짓고 축복해서 내가 네 대신 해 줄 것이고 또 너뿐만 아니라 이것이 너의 자손에 대대에 기업이 되도록 이렇게 해 주겠다 하는 요 계약만 믿고 가는 것입니다. 요것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걸어가는 걸음입니다.
하나님이 계약해 주신 요 계약만 믿고 하나님이 인도하는 대로 걸어갑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 하나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하나요. 명령은 이것뿐입니다. 하나님 명령은 이것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명령을 지켜 가려고 하면 죽음이 오든지, 가난이 오든지, 사업에 실패가 오든지, 세상 매장이 오든지, 감옥이 오든지, 어떤 일이 오든지 그것은 상관하지 말고 내가 명령한 대로 가라.
그러면 내가 이 네 가지를 내가 해 주겠다 말씀하신 이 계약을 믿고 가는 것이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하나님 명령을 지켜 간다는 자가 그 명령 지키는 그것이 자기 눈 앞에 평탄하면 가고 어려우면 안 가고, 유익이 되면 가고 해가 오면 안 가고 하는 이것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요 명령 거역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은 명령을 지키는 그 명령이 험하든지 순하든지 그 명령 지키면 하나님이 능치 못하심이 없고 알지 못하심이 없고 모든 것에 주재가 되신 이 하나님께서 큰 민족, 네 이름 창대케, 복의 근원, 복의 기관, 험악한 세상에 있는 네 모든 안보, 요렇게 안보해 줄 수 없습니다.
요것을 당신이 책임진다고 했기 때문에 죽음에서도 살려낼 수가 있고, 감옥에서도 구출해 낼 수가 있고, 낮은 데에서 높이도 할 수가 있고, 없는 데에서도 있게도 할 수가 있고, 죽은 자를 살려낼 수가 있는 그분이기 때문에 그분의 약속을 믿고 그분의 명령 순종에 어떤 그 현실을 만날지라도 개의치 안하고 약속하신 그분을 믿고서 그 명령에 복종해 나가는 것이 이것이 아브라함의 자손이오.
그러면 하나님이 요구하신 것은 무엇인가? 요구하신 것은 소속과 능동을 바꾸라는 것을 하나님이 요구하십니다. 인간이 자기의 근거지, 자기의 근거지, 자기의 근거, 이 세상에서 났기 때문에 이 세상을 근거하여 세상에 속하고 세상에 따라서 움직이는 이 움직임, “아비 친척집을 떠나라” 자기의 근원되는 이 사람들, 이 사람에게 소속하고 사람에게 피동되는 이것을 옮겨라. 세상에 속한 거기에서 네가 거기에서 옮겨 여호와 하나님에게 속하고, 인간에게 소속한 네가 옮겨 하나님에게 소속하고, 세상과 인간에게 피동하던 네가 이제는 하나님께 피동하는 자가 되라. 거기에서 떠나 내가 지시하는 곳으로 가라.
이것이 하나님의 요구입니다.
소속과 능동을 옮기는 이것이 하나님의 요구요 이것을 옮겨서 하나님에게 소속되고, 그것에게 피동되던 것이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소속을 바꾸고 피동을 바꿔라 하는 이것이 요구요 명령입니다. 이것 둘뿐입니다.
그러기에 믿는 사람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계약된 이 계약을 받으려 하는 자는 첫째가 소속을 바꿔야 됩니다. 자기가 어데 속했느냐? 어디다가 근거를 두고 있느냐?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에게 자기가 근거를 두고 있느냐 인간에게 근거를 두고 있느냐, 완전히 뽑아 옮겨서 하나님에게 소속하고 하나님에 근거되어 있느냐? 이 근거를 바꾸는 것입니다. 소속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저 움직이는 것은 돈에 따라서 움직이느냐, 인간에 따라서 움직이느냐, 시대에 따라 움직이느냐? 많은 숫자든지 적은 숫자든지 큰 자나 높은 자나 자기 속에서 나온 자나 자기가 그 속에서 나온 그이나 어떤 자라도 인간이나 이 세상을 네 근거로 삼지 말고, 소속으로 삼지 말고, 그것을 인해서 움직이는 그것을 바꿔라! 이제는 하나님 소속되고 하나님께 근거해서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이는 자로 움직이라! 요 두 가지만 하라! 그러면 너에게 대한 금생과 내세에 모든 것을 내가 책임지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라보면서 이 두 가지 방편으로 자기의 금생과 내세에 대한 모든 것을 계약하신 하나님에게 맡기는 것이 이것이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이것이 없이는 안 됩니다. 아무리 사이비하게 아무리 수십 봉지 수천 봉지로 싸서 덮어 가루어도 하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둘째 대우를 받지 않습니다. 그는 제이의 숭배를 받지 아니할 분입니다. 그분은 뭘해도 수지를 받지 찌끼를 받지 아니하실 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