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8 20:16
소금-세 가지 존귀한 가치
1984. 11. 7. 밤
본문 : 마태복음 5장 13절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읕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한번 더 읽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라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다음 주일 공과도 이 공과 본문이 마태복음 5장 13절입니다.
이 소금을 말씀하신 것은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의 생활의 그 신비함을 나타 내서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소금은 다른 맛이 하나도 없고 순전히 짠 맛 하나뿐이요. 또 소금은 짠 거외에 다른, 것이 섞여 있지 않는 것이 소금입니다. 소금은 짠 맛, 소금 뭉텅이는 짠 뭉텅이라, 짠 뭉텅이라. 짠 덩어리라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소금이 녹으면 간이 나옵니다. 간이 다 나오면 벌써 소금 덩어리는 없어졌습니다. 또 없어진 그 소금을 다른 잡 것을 다 제하면 또 그만한 소금 덩어리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소금은 다려도 뜨신데 다려도 물만 증발되지 소금은 증발되지 않습니다. 쇠나 이런 것은 녹으면 녹은 것이 그 자체가 녹아져서 그대로 있는 것이나 소금은 녹아지면 고만 다른 것에게 배어 들어가 가지고 흩어져 버립니다. 소금은 녹으면 그 간이 다른 것에게 배어 들어갑니다.
만일 고기를 두고 고기에다가 이 소금을 넣어서 절이면 소금이 녹으면 소금 간이 다 고기 속으로 다 배어 들어갑니다. 또 이 소금을 채소에다가 넣어 놓으면은 그 간이 녹아서 다 채소속으로 다 들어가 버립니다. 음식에도 그러합니다. 우리가 죽을 쑤어 가지고 소금을 타면 그만 소금 그것이 녹아 가지고 그 간이 다른 것에게 쏵 퍼져 버립니다. 그거 좀 다른 거와 질이 다릅니다. 만일 물 한 말에다가 소금 한 숟가락을 한 숟가락을 푼다고 하면 한 숟가락은 녹아 가지고 한 말 물에 다 배어 들어가서 한 말물에 다 퍼져 버립니다. 그것이 다른 물질과 좀 다릅니다. 녹으면 고만 다른 데에 퍼져서 배어 들어가는 것, 녹으면 다른 데로 퍼져 들어갑니다.
그것을 비유로 우리에게 말씀했는데, 소금이 맛을 잃으면 아주 쓸데없는 것이 된다. 또 밖에 버린다. 사람에게 밟힌다. 소금이 변하면 쓸데없고 밖에 버리고 사람에게 밟힐 뿐이다. 소금이 변하지 안하고 소금 그 본질과 본성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정반대로 쓸데없는 거 반대로 아주 쓸모 있는 것이 된다. 밖에 버리는 거 반대로 점점 중요하게 쓰여져서 점점 중요해진다. 중요하게 쓰여진다.
밖에 버리는 반대로 점점 중앙으로 들어 간다. 외부에 있다가 안으로 들어가고 안에 있다가 중앙으로 들어가고 이래서 점점 귀중하게 되어진다. 사람에게 밟히는 것의 반대로 사람에게 아주 존대함을 받게 된다. 고 세 가지를 말했습니다.
소금이 변하면 이 세 가지로 천해진다. 소금이 그 맛을 지니고 있으면 이 세 가지로 존귀해전다 그것을 여기에 말씀했습니다.
뭐 이 쓸모 없다. 쓸데없다. 아주 쓸데 있다 이것은 거기에다 해석을 주를 달라 하면 한정이 없겠습니다. 한정이 없겠습니다. 그만 쓸데없다. 아주 쓸모 있다.
필요한 것이 된다. 밖에 내버려 버린다. 밖에 버린다. 점점 안으로 영접한다. 그 밖에는 외부요 안에는 내부 아닙니까? 그 무슨 물건이든지 쓸모 없으면 점점 바깥으로 내버리고 쓸모 있으면은 차차 귀중한 것은 집안으로 가져 들어가고 집안에서 또 방안으로 방안에서 또 단스 안으로 단스 중에서도 제일 요긴한 데에 간직하지 않습니까? 사람도 외부에 있다가 차차 쓸모 있으면 차차 차차 동회에서 구청으로, 구청에서 시청으로, 시청에서 중앙청으로, 중앙청에서 청와대로 이렇게 자꾸 속으로 안으로 들어가지 않습니까? 이렇게 우리 기독자는 맛잃은 소금되면 그만 제가 아무리 뭐 큰 사업을 하든지 큰 지위와 권세를 가졌든지 어떤 실력을 가졌든지 결국은 아무데도 쓸모 없는 그런 인간 돼 버리고 만다. 제가 무슨 대통령을 하고 어떻게 뭐 노벨상을 받고 어떤 그 부귀와 영광을 가졌다 할지라도 이 소금으로 비유한 데에 이 소금의 맛을 잃으면 그만 쓸데없는 것이 돼진다. 또, 밖에 버려 버린다. 밖으로 내던져 버린다. 또, 사람에게 밟힌다. 요거 참 간단하나마 중요합니다. 또, 소금이 맛있는 참 좋은 소금이 되면 좋은 소금이 되면, 쓸데없는 거 반대이니까 맛 잃은 소금의 반대가 좋은 소금이겠습니다. 좋은 소금이면 못 쓸 소금의 정반대가 되니까 못 쓸 소금은 쓸데없어 그 반대니까 쓸데 있다. 쓸데 있다. 밖에 내던져 버린다. 안으로 점점 영접해 드린다. 사람에게 밟힌다. 사람에게 존대를 받는다.
이런 시편 49편에는 어깨에 메고 다닌다 했습니다. 어깨에 메고 다니고 발의 티끌을 핥는다. 티끌을 핥는다. 베드로 전각에 가면 베드로 동상이 있는데 그 성경에 있는 베드로와 베드로의 그 행적을 본 사람들은 베드로 성전에 가 가지고 하도 베드로에 대해서 은혜를 받고해서 베드로 동상에다가 입을 맞춰 쌓아서 베드로 동상의 발꿈치가 하도 입을 많이 맞춰서 반들반들 닳았답니다. 그럴 것입니다.
제가 그때 가지는 안했는데 손 양원 목사님이 순교를 당하셔서 그때 모두 장례를 하는데 온 뭐 한국 교회의 거의 참 신앙 잘 믿는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다 모여 들어 가지고 그 손 목사님의 그렇게 총도 맞도 안 하고 요 뭐 조금 피도 별 나도 안 했는데 이제 거기에라고 상처를 말하는데 모두 그 남여 성도들이 그 상처와 그 송장. 송장에게 입을 맞추고 막 빨아 쌓아서 입을 맞추고 빨아 쌓아서 막 못 하구로 이래 막고 막 이라더랍니다. 그 송장이지마는 이제 그것도 밟힘을 받는데 그렇게 존대함을 받습니다.
손 양원 목사님이 우리 동양에 내나 우리 한국에 있었지마는 한국 사람도 잘 모르지, 모르는 사람도 있지마는 손 양원 목사님의 그 전기가 여러나라 말로 번역이 돼 가지고 세계에 퍼질 때에 모두 세계에 있는 사람들이 다 놀래고 세계에서 손양원 목사님에게 대한 그 흠모와 또 그 추앙과 그렇게 존대를 돌린다는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 기독자가 맛 있는 소금되면 이렇게 세 가지로 존귀해지고 맛잃은 소금 되면 세 가지로 천해진다 아주 요렇게 비유로 해놨기 때문에 그뭐 기억하기 좋고 또 언제든지 우리가 이 도리를 깨닫기 쉽고 기억하기 쉽고 지키기 쉽고 그러니 비유는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비유로 이렇게 하신 것입니다. 기독자는 소금으로 비유했는데 맛잃은 소금이 되면 세 가지로 천해지고 맛있는 소금되면 세 가지로 존귀해진다. 아주 기억하기 쉽습니다.
저는 오늘 오후에 고만 시계한테 미혹을 받았습니다. 그 시계가 꼭 시간은 맞는데 십오 분이라서 뭐 십오 분인가 돼서 십오 분이라 하니까 옆에 있다가 '오늘 설교 안 하십니까?' 이래. 그래도 나는 '와 설교를 안 해?' 이라고 말았는데 나중에 보니까 꼭 지금 옷 다 뭐 딴 옷 입고 지금 이제 발도 벗고 다 이래 가지고 있는데 십오 분 전입니다. 십오 분 전이라서 뭐 이렇게 빨리 빨리 해 가지고서 그래 가지고서 이래 오니까 조금 먹은게 속에 끼역끼역 거립니다.
용서하십시오.
이 설교는 일찍부터 준비해 놨습니다. 해 놓은 것은 다음 주일 거석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 소금을 단단히 가르쳐야 되겠다, 이래서 이 소금 비유를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할수록 참 주님이 우리에게 어떻게 그렇게 간단 명료하게 가르쳐 주셨는지, 그래서 오늘 저녁에 증거하기로 그렇게 작정을 했었습니다.
했는데, 공과를 내가 읽이 보니까 그 공과가 잘 안 돼서 고생을 많이했는데 그 공과가 별 재미없게 됐어요. 재미없게 됐으니까 또 오늘 저녁에 이 설교를 듣고 이 설교대로 공과를 학생들에게 가르쳐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간단하게 이 소금 비유는 기독자를 소금 비유로 했는데. 비유하시면서 소금이 맛을 잃으면 세 가지로 천해지고 소금이 맛있는 소금이 되면 세 가지로 존귀해진다 고것을 학생들에게 단단히 가르쳐 줘야 되겠습니다.
천해지기는 어떻게 천해지는가? 아무데도 쓸데없어. 아무 데도 쓸데없다.
그것은 그 마귀에게는 쓸데 있겠지요. 사망에는 쓸 데가 있겠고 죄악에는 쓸데 있지마는 옳은 것에는 쓸 데가 없다 말입니다. 옳은 것에는 옳게 쓰일 때는 하나도 쓰일 때가 없다. 쓸모 없다. 옳게는 바르게 옳게 유익되게 가치 있게 쓸 그 가치는 하나도 없게 된다.
이러니까, 밖에 버린다. 그는 하나님에게 버려지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에 버려지고 진리에 버려지고 또 이 성도에게 버림당하고 모든 행복에서 버림당하고 하니까 그거는 뒤에 가서 아주 천해질 수밖에 더 있습니까? 버림 당한다.
또, 사람에게 밟힌다. 그래서 가치 없게 되고, 소금이 맛이 있으면 이 세 가지 반대로 사치 있게 된다. 아주 쓸모 있는 거 되어진다. 아주 요긴한 거 되어진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회사의 사장이든지 또 어떤 그 기관장이든지 시장이면 시장, 구청장이면 구청장, 또 장관이면 장관. 또 대통령이면 대통령, 각 분야에서 책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 사람이 뇌물 받고 사람 쓴다' 또 '친분으로 사람 쓴다' 이렇게 말을 하지마는 자기가 중한 일을 맡아 있는데 자기에게 적절하게 쓰일 수 있는 사람, 쓸 가치가 있는 사람, 참 그 사람을 등용하면 자기 맡은 일이 잘 될 수 있는 그런 사람을 구하는 것이 대개 백의 구십 구입니다. 백의 구십 구는 다 자기 맡은 그 일을 맡기면 잘할 수 있는 참자격과 실력과 쓸모 있는 그 사람을 구하지 뇌물 받아 먹고 못쓸 사람을 쓰는 그란다면 그 사람은 어떤 그 기관장이든지 만일 그 국민의 기관장, 대통령이 됐다고 하면 고만 대통령은 고만 당장 망해 버리고 맙니다. 그리한다고 하면은.
그 작은 것이나 큰 것이나 어떤 것이든지 자기 것을 가지고 있고 자기 책임을 지고 있고 자기 것을 가져 있는 사람은 거기에 사람을 쓸 때에는 참 쓸모 있는 그런 사람을 등용하지 뭐 좀 친절하게 한다고 와서 간사하게 아부를 한다고 뇌물을 준다고 아, 쓰면 자기 일 낭파 지울 그런 사람을 둥용 하지 안합니다.
그는 그 뭐 그 모두 친척 뭐 위주로 어짜고 이래 쌓지마는 누구든지 다 자기일을 맡아 가지고서 자기 것을 가져 있는 사람들은 거기에 아주 쓸모 있는 사람을 실력 본위로 자격 본위로 신용이라든지 모두 명철이라든지 자격 본위로 쓰지 다른 것으로 산지 않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쓸데 있어 쓸모가 있으니까 자꾸 안으로 끌어 들입니다. 안으로 끌어 들이면 차차 차차 마지막에는 맨 안에는 누가 있습니까? 맨 안에는 하나님이 계시지요. 그러니까 하나님에게 제일 쓸모 있는 그런 사람이 되겠습니다.
우리 나라로 말하면 저 중앙청에서 청와대 O대통령이 직접 제일 요긴하게 쓰이는 사람이 그 사람이 우리 나라에서는 제일 정권에서는 요긴하게 쓰일 것입니다. 자꾸 안으로 불러 들이지 않습니까? 안으로 점점 그 영접함을 받게 된다. 사람에게 밟힌다. 사람에게 아주 존대함을 받는다.
요래서, 기독자가 이 세 가지로 천해지고 세 가지로 가치있어진다 하는 그것을 뭐고 조직적이 아니고 또 체계적이 아니래도 좋습니다. 그저 주먹 구구의 말도 좋고 뭐 앞뒤가 안 맞아도 좋습니다. 어쨌든지 예수 믿는 사람이 소금 비유에 맛있으면 세 가지로 존귀해지고 맛잃으면 세 가지로 처해진다 요것을 그 학생들에게 몇 번이든지해서 그 속에 꽉 배기도록 그렇게 인식을 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맛있는 소금은 어떤 것이 맛있는 소금인가? 간을 가지고 간을 가지고 있어서 짠 간을 가지고 있고 또 녹아지는 그 성질을 가지고 있으면 좋은 소금입니다. 소금이라도 그 간을 가지지 안하고 간을 가졌다 할지라도 녹아지지 안하연 그거는 못 쓸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간은 뭣을 가리켜서 말한 것인가? 간은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의 공로와 또 성령의 감화 감동과 진리 이 세 가지를 가리켜서 비유해서 소금의 간으로 비유했습니다.
또, 녹아지는 것은 뭣을 비유해서 녹아진다고 했는가? 녹아지는 것은 자기가 차차 차차 없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소금이 녹으면 없어지지 않습니까? 한 가마니가 녹으면 차차 차차 반 가마니 됐다가 또 한 말 됐다가 한 되 됐다가 한 주먹 됐다가 마지막에는 하나도 없어지지 않습니까? 이렇게 자체가 없어지는 것을 가리켜서 소금 녹는 것으로 이렇게 비유를 했습니다.
우리가 없어지는 것은 여러 가지 면으로 없어집니다. 사람이 그 사람이 나서 만일 칠십 년을 살기로 하나님이 수명을 정해줬다고 하면 칠십 년을 살면 하루 살면 그만치 벌써 녹아졌습니다. 하루 살면 그만치 녹아졌고 또 일 년 살면 그만치 녹아졌고 십년 살면 그만치 녹아졌고 육십 년 살았으면 그만치 녹아져서 수명도 그만치 녹아져서 수명도 적게 남았고 건강도 적게 남 았고 힘도 적게 남았고 또 그 건강의 미도 적게 남았고 모든 총명도 지혜도 적게 남았고 모두 적게 남았습니다.
남았는데, 그자체가 차차 차차 소실 돼 나가는 거, 차차 차차 소금 녹듯이 이렇게 없어지는 거. 작아지고 적어지고 이렇게 차차 차차 쇠하고 또 이렇게 이래 없어지는 거, 그러니까 그 없어지는 데는 어떤 사람은 뭐 호의 호식을 잘헤도 그 사람 없어질 거는 없어집니다. 암만 호의 호식을 해도 칠십 년 살 사람이면 뭐 육십 년 살았으면 육십 년 산 것 만치 녹아졌고 칠십 년 되면 죽어야 합니다. 또 그 사람이 아주 못 먹고 참못 입고 고생스럽게 이렇게 살아도 제 명대로는 삽니다. 명대로는 살아서 칠십이면 칠십 년 되면 이제 다 녹아서 송장만 남습니다.
남고 또 녹는데, 어떤 사람은 녹기는 녹는데 녹으면서 돈 때문에 돈으로 돈으로 녹는 사람 있습니다. 돈으로 녹는 사람. 오늘도 돈 때문에 연구하고 돈 때문에 정신쓰고 돈 때문에 정력을 기울였고 돈 때문에 시간을 들였고 돈 때문에 하루 해를 지나보냈고 돈 때문에 그 하루 해에 살수 있는 그런 진액이 정력이 다 없어졌고, 또, 어떤 사람은 자기는 공부 때문에 공부한다고 하루 종일을 공부로 녹아진 사람 있습니다. 공부로 녹아진 사람, 공부로 하루 하루 그 살 모든 자기 자체의 지혜나 총명이나 건강이나 수명이나 이런 것이 그공부 때문에 하루는 공부 때문에 녹아졌다.
또, 그 사람이 이런 저런 사업하는 때문에 녹아졌다. (저 이름이 뭐이지? 졸다 그래 가지고서 학생들에게 뭐이 들어가나? 요게 속에 꽉 들어 가서 꽉 배겨야 주여! 주여! 할 수가 있어. 요게 속에 있어야 팔팔 살아서 그 뭐 세계를 쭈물 쭈물 하고 온 세계가 있으면 이거 내거야 할 수 있는 그런 용기가 나오지 이 진리가 속에 없으면 죽은 인간이야. 쓸모 없어.) 어떤 사람은 그 하루가 아주 춤추고 술먹고 뭐 이라다가 하루 녹아졌습니다. 어떤 사람은 또 테레비 보다가 또 하루 녹아졌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 취직 운동한다고 하루종일 돌아다니면서 녹아졌습니다. 어떤 사람은 또 자기 직장에서 사무 보느니라고 녹아졌습니다. 어떤 사람은 수단 방법을 써서 꾀부린다고 녹아졌고 사기 협잡으로 녹아졌고 행락으로 녹아졌고 또 뭐 체육 연습한다고 또 그래 가지고 하루 종일 녹아져 버렸고 녹아졌다 이말이오.
그래 녹아지는 사람도 있고, 어쨌든지 녹아지기는 녹아지기 마련입니다.
녹아지기는 녹아지기 마련인데 권세 잡을라고 그 권세 잡는 권세 잡는 것으로 공부하는 것으로 행락으로 또 돈벌이로 또 테레비 보는 것으로 또 연애하는 것으로 또 가정 재미로 다 좋기야 좋지마는 이래 녹아지는 것은 기독자가 이래 녹아지는 것은 소금으로 녹아지는 거는 아닙니다. 이것이 맛잃은 소금입니다.
이것이 맛 잃은 소금이오. 맛이 없는 소금.
맛이 뭐이라고 했습니까? 맛이 몇 가지라 했습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십시오. 맛이 몇 가지입니까? 손 가락으로, 저 뒤에. 네, 이래 셋, 요 세 가지 단단히 기억하십시오.
이 기독자들이 하루를 살았는데 오늘 분주하게 이것 저것 때문에 하루 해를 보내고 고만 하루 녹아졌으면 그 사람은 맛 잃은 소금이오. 맛을 잃어 버렸다 말이오. 맛을 가질 수 있는 자가 맛을 잃어 버렸어.
그런데, 맛있는 소금은 어떤게 맛있는 소금이냐? 오늘 하루 자기가 무슨 직장에 있든지 학원에서 공부를 하든지 뭘 하든지 자기가 거기에 있으면서 그 일 가운데에서 자기는 하루 종일 진리 생활 했습니다. 하루 종일 진리 생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생활로 사물을 보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물을 봤고, 또 장사를 하면서 하나님 말씀대로 장사를 했고 또 사람을 분주하게 접촉하면서도 말씀대로 접촉을 했고 무슨 이거 뭐 도구를 만들든지 공장에 뭐 하든지 직장에 뭐 하든지 정치를 하든지 뭘 하면서 그날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걸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그걸 했어 말씀대로 그렇게 할 수도 있고, 인간 생각대로 할 수도 있고 사기 협잡군의 그 정신으로 할 수도 있고 그 도적의 도적질 하는 것으로 그런 일 할 수도 있고, 또 그 일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서 하나님 말씀대로 그 일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어기는 일 하지 안하고 꼭 하나님 말씀대로 고 일을 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오늘 종일은 하나님 말씀을 생각해서 하나님 말씀대로 어데서 했나? 나는 공장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했다. 나는 밥하면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았다. 나는 장사하며 하나님 말씀대로 살았다. 오늘은 해수욕 하면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았다. 오늘은 길을 가면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았다. 오늘은 학교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았다.
그거는 하나님의 말씀 대로 살수 있는 그 장소지 제가 뭣대로 살았느냐, 뭣으로 살았느냐 하는 그것은 어데 가서든지 하나님 말씀으로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서 하루를 녹았으면 고것이 소금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말씀으로 산다. 또 뭐이냐? 말씀으로 사는데 그저 신구약 성경 말씀이 하니까 껍데기로 그 말씀에 맞추어서 껍데기 그 말씀에 어겨지지 안하고 말씀에 맞추어서 살았지마는 속에 성신의 감동은 없었다. 그 말이오. 성신의 감동 없는 것은 말씀대로 껍데기는 살아도 속 마음은 딴 거 가지고 있어요.
껍데기 말씀대로 살면서도 속에 흉측한 마음을 얼마든지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속속들이고 말씀대로 사는 것은 성시의 감동으로 산 것이라 그 말이오.
그러면 속 마음도 성신의 감화로 성신의 감화하고 진리 하고는 둘이 하나입니다.
그러면 진리대로 살아도 성신의 감화로 안 사는 것 있고 성신의 감화로 산다면 진리로 사는 것은 다 되는 것입니다.
이제 하루 종일 진리로 살면서 하루 해를 지내 보냈다. 오늘은 보자 오늘은 오늘은 내가 말씀대로 하루 해를 지냈어. 그러니까 오늘은 말씀대로 하루 해가 늙어졌습니다. 늙어졌어, 늙어져도 말씀대로 하루 늙었다 말이오. 말씀대로 내 진액이 없어졌어. 시간도 오늘은 순전히 말씀대로 이래 오늘은 하루 해가 지나갔다.
또, 오늘은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생각하면서 주님이 나를 대속해서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새생명을 주셨으니 오늘은 나는 주님의 대속을 받은 자이다. 나는 사죄 받은 자로 사죄받고 오늘 나는 사죄 받는 자다. 사죄 받은 자로 하루를 살았습니다. 사죄 받은 자로 사죄 받은 자로 하루를 살았습니다. 하루를 녹았습니다. 하루가 감해졌습니다. 하루가 녹았습니다. 사죄 받은 자로 하루를 녹았고. 또 칭의를 가진 자로 하루 녹았고, 하나님 앞에 그 대속으로 의를 받았다.
그러면, 하나님께 피동되는 것이 그것이 의인데 오늘 종일 하나님에게 피동으로 내가 이러면 하나님에게 순종이 되느냐 안 되느냐? 그거 생각 가지고서 하나님께 순종으로 하루 종일 녹았습니다. 하나님께 순종으로 녹은 것이 내나 진리로 녹은 것이요 영감으로 녹은 것이요 그래서 그 셋은 하나라 했습니다.
또, 자기가 하나님 잊어 버리고 그만 하나님 잊어 버리고 잊여 버리고 살았다 말이오. 살 수 있는데 종일 거석하면서도 '주님이여 저를 붙들어 주옵소서. 저와 함께 해 주옵소서. 저에게 이런 실언하지 않게 실족하지 않게 해 주옵소서 저에게 믿음을 주옵소서.' 뭐 구스렁 구스렁 해도 그저 어짜든지 주님하고 고 연결을 끊지 안할라고 끊지 안할라고 늘 주님을 생각하면서 주님을 생각하면서 주님을 사모하면서 주님과 주님이 그만 달아 나지 못하도록 자꾸 주님을 불러 가지고서 자꾸 이렇게 자꾸 이렇게 말을 하니 주님이 어찌 가겠소? 우리가 주님을 떨구지 안하는 그 방편은 내가 주님을 계속 사모하고 주님이 허락했기 때문에 계속 사모할 때는 당신이 못 가요. 또 계속 주님하고 대화할 때는 주님이 못 가요. 주님이 우리를 괄시하지 안하십니다. 뭐 이 세상 사람도 잘난 사람이니 못난 사람 그렇지마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대해서 털끝만치도 무시나 멸시나 하지 않는 그런 주님으로 나와 서십니다. 그래서 꺼져가는 등불도 끄저 안하신다, 마른 갈대도 꺾지 안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면, 우리 사람은 그래요. 나도 저 교인들 만나서 어떤 교인들이 공연히 쓸데없는 말 자꾸 해쌓으면 고만 속으로 '하 이 고만하고 갔으면 고만하고 갔으면' 이렇게 귀찮스레 여기고, 이래 그라면 '아, 고만 인제 그만 그거 뒤로 미루고 고만 하입시다.' 이라지마는 주님은 그래 안하신다 그 말이오. 주님은, 여러분들은 몰라도 나는 그래요. 아, 밤새껏 '주님' 하면은 나만 안 자면 나만 졸지 안하면 그분은 졸지 안해요. 나만 당신을 잊어 버리지 않으면 당신은 내 대상이 꼭 되고 있어. 나만 당신에게 말하면 그분은 꼭 대답해 주고 계시거든. 잠시라도 '아야 그러면 너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그만 말아라.' 이래 안 하시고 또 말하면 그거 잘못돼도 고쳐 주시고 이렇지 그 끊지 안하신다 말이오.
오늘 주님과 동거 동행으로 결합으로 이래 가지고 하루 녹아졌다. 그러면 이 세 가지로 녹아지는 거, 진리로 하루가 녹아진 거, 하루가 소멸된 거 또 영감으로 하루가 아주 소실돼 버린 거, 또 사죄로 소실되고 칭의로 소실되고 하나님 하고 결합으로 소실되고 이것으로서 하루 해가 지나갔습니다. 그러면 하루 해가 그만치 적어졌습니다. 고것이 뭐이냐? 고것이 소금으로 녹아진 거. 소금으로 녹아진 거, 고 진리로 내가 살았습니다. 진리로 하루가 녹아졌습니다.
녹아졌는데 이 소금으로 왜 비유했느냐? 소금은 녹으면 녹으면, 소금이 간 뭉텅이인데 간이 녹으면 녹은 것은 전부 다른 것에게로 다 가 버립니다. 다른 물질은 녹으면 그대로 녹아도 그대로 있지마는 이 소금은 녹으면 다른 데로 다 들어가 버려요. 물에서 녹으면 물에 다 들어가 버리고 땅에서 녹으면 땅으로 다 들어가 버리고 채소에 녹으면 채소에 다 들어 가 버리고 녹으면 딴 데로 다 들어가 버려요. 들어갈 데가 없으면 안 녹아요. 들어갈 데만 없으면 안 녹고 들어갈 데가 있으면 들어갈데 있는 것만치 녹아 버려요. 이겨는 녹으면 딴데 들아가 버려요.
그러기 때문에 자기 생활인데, 희생이라 하는 것은 남을 위하는 것이 희생 아닙니까? 남을 위하는 것이 희생인데 기독자의 생활은 결국 남을 위한 생활이 된다 말인데, 요 소금으로 비유한 요 특성을 우리가 단단히 잡읍시다.
잡는 것은 뭐이냐? 소금은 녹으면 그 간이 고만 퍼져서 다른 데로 다 가 버린다. 다른 데로 다 가서 다 가 버렸다. 네가 진리로 녹으면 진리로 하루를 살면 그 진리가 네게 있는 그 진리가 하루를 살았으면 그 진리가 그만 다른 사람에게로 다 들어가 버렸다. 영감으로 살면 그 영감이 다른 사람에게 다 나가 버린다. 또 대속으로 살면 대속이 다른 사람에게 그만 다 들어가 버린다. 저야 반대를 하든지 말든지 반대를 하든지 말든지 무신론자든지 뭐 핍박자든지 어쨌든지 그와 상대 생활에서 그와 상대하는 생활에 네가 이 소금으로 녹으면 진리와 영감과 대속으로 네가 하루를 지냈으며 지낸 그 생애가 벌써 다른 사람 속에 다 스며 들었다. 다른 사람 속에 스며들어 다른 사람 속에 진리로 들어가 있고 영감으로 들어가 있고 대속으로 들어가 있다. 고것을 가리켜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속으로 들어 가 있으면 내게 있는 간 다 들어가 버렸으면 나는 어짜고? 들어가 있는데 너는 모든 사람 속에 네가 진리로 들어가 있다. 네가 그 사람 속에 진리로 들어가 있다. 영감으로 들어가 있다. 대속으로 들어가 있다.
그러기 때문에 네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된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하루든지 일생이든지 이 녹는데 뭐 자기가 핍박을 받아서 녹는 것도 있고 병으로 녹는 것도 있고 또 두드려 맞아 녹는 것도 있고 차에 치어 녹는 것도 있고 여러 가지로 녹는 그 방편은 많이 있는데 어짜든지 녹을 때에 요는 이 소금으로 녹느냐 하는 그게 문제입니다. 소금으로 녹는 거.
소금으로만 녹으면 이 소금으로만 녹으면 이 간이 다른 것에게 다 배어 끌어가는 거와 같이 요 비유와 같이 이 세 가지 주님의 대속과 영감과 진리 요 세 가지, 세 가지로만 네가 살면 말이요, 세 가지로만 살면 한 시간 살았으면 한 시간 산 것은 그만치 네 생명이 단축해졌는데 한 시간 살았으면 이 세 가지로 한 시간 산 한 시간 생활은 이 세 가지가 너 아닌 다른 것에게 벌써 가서 힘이 들어 배어 들어가 있다. 배어 들어가 있다.
네가 뭐 핍박을 받아 너 죽인다. 죽인다, 예수 믿으면 죽인다, 죽인다 할 때에 죽인다. 죽인다 할 때에 '죽어도 나 예수 믿습니다.' 그렇게 생명을 내놓고 진리와 영감과 대속의 공로대로 살아서 녹아지는 것이나 녹아지는 것이나 다른 사람이 예수 믿는다고 칭찬을 해 주는 칭찬 받으면서 요 세 가지로 살아서 요 세 가지로 하루 동안 살아서 하루가 없어진 것이나 꼭 같다. 다만 그 핍박이 있는데 이 세 가지로 녹아지는 것은 좀 더 가치 있어서 영광이 더 될 것뿐이지 어짜든지 역항으로 역항속에서 녹아졌거나 순리에서 녹아졌거나 어쨌든지 이 진리와 영감과 대속으로 녹아지기만 녹아졌으면 녹아지기만 녹아졌으면 이것은 참 쓸모 있는 것이다.
어데 쓸모 있느냐? 모든 피조물에게 쓸모 있는데, 아니 피조물 속에 하나님의 교회에 쓸모 있는데, 아니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 당신에게 쓸모 있는 거 됐다. 그러기 때문에 아버지 우편에 앉는다. 가장 쓸모 있는 거 된다. 점점 안으로 그 영접함을 받아서 들어가게 된다. 그러면 어찌 되느냐? 모든 것들에게 밟히는 거 반대로 모든 것들에게 존대함을 받게 된다.
이러기 때문에, 성도들이 요 세 가지로 녹아져라. 요 세 가지로 녹아지는데 핍박 중에도 요 세 가지로 녹아지지 말고 돈으로 녹아지라고 저기 정권자에게 순종으로 녹아지라고, 상관에게 거기에 복종으로 녹아지라고, 또 이렇게 저렇게 녹아지라고 해도 거기에에 만일 소금으로 녹아지는거 반대라면 진리와 영감과 대속으로 그 하루 고 시간을 살아서고 시간을 지내 보낼라고 하면 그 핍박이 있고 압력이 있고 여러 가지 있을 때에 그래도 이 세 가지를 버리지 안하고 이 세 가지로 고 시간을 통과하고 고 생활하고 그 소멸이 됐으면 녹아졌으면고 한 시간이 지나갔으면 너는 이제 가치 있게 되는 것이다.
못 하게 하는데 그리 챘으니까 못 하게 하는데 그리 됐으니까 그것은 대적을 해도 그렇게 소금으로 살았으니까 거기에 대한 상급이 따로 있고 그 상급이 따로 있고, 이러니까 고만치 어려운데 이 세 가지 생활했으니까 상급이 따로 있고, 어려운 가운데서 이 세 가지로 살았든지 쉬운 가운데 이 세 가지로 살았든지 칭찬 받으며 이 세 가지로 살았든지 어쨌든지 이 세 가지로 네가 녹아진 것이 가치 있다.
이 세 가지로 녹아진 것은 하루를 이 세 가지로 녹아지고 한 시간을 이 세 가지로, 녹아 녹아지고 일 년을 이 세 가지로 녹아지고 일생을 이 세 가지로 녹아지고 어쨌든지 이 세 가지로 녹아진 것은 많이 녹아졌든지 적게 녹아졌든지 녹아진 고것은 녹아진 것만치는 그것이 전부이 창조주와 피조물에게 다 쓸모 있는 것이 되어진 것이다. 또 그것은 가장 귀중하게 귀중하게 외부가 아니라 점점 그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점점 내부에서 쓸모 있는 것이 되어서 점점 안에사 쓸모 있는 것이 되어진다. 그러면 귀중하게 전부 귀중히 쓰여지게 된다. 그래 가지고 이렇게 존대함을 받게 된다 요것을 요게서 말씀합니다.
다른 것은 물론 우리가 하면은 다른 사람이 내가 악을 해도 다른 사람이 물들 수 있고 또 이런 뭐 기술을 해도 물들 수 있고 이래 있지마는, 요 기독자가 소금으로 비유한 것은 기독자가 진리와 영감과 세 가지 대속으로 녹아진 것은 대속으로 한 시간을 한 시간을 감소가 됐든지, 그냥 뭐 이 직장에서 아무일 없이 하루 지나도 하루 지나면 녹았습니다. 하루 지나면 녹았어. 안 녹는 사람은 없어, 다 녹기는 녹아. 녹는데, 돈으로 녹는 인간 권세로 녹는 인간, 그 악독으로 녹는 인간, 행락으로 녹는 인간, 모든 정욕으로 녹는 인간 다 있고, 진리로 그 하루가 녹는 사람 있다 말이오. 영감으로. 이렇게 녹으면 네가 많이 녹았든지 적게 녹았든지 녹은 것은 이 세 가지로 존귀한 가치를 가지게 된다.
인간이 이 세 가지로 녹지 안하고 제가 뭐 세계의 정권을 다 손 아래 거머쥐고 움직였다 할지라도 네가 세계의 제일 큰 권세를 가지고서 네가 녹아졌다 할지라도 하루 녹아졌으면은 그날은 맛잃은 소금이기 때문에 너는 천해졌고 너는 무용지물이 돼졌고 너는 하나님과 모든 만물에게 다 버림 당한 것이 되고 말았다. 요 비밀을 우리에게 말한 것입니다.
그러고, 물론 다른 것도 감염도 되고 또 피동도 되어지고 이렇게 돼 지지마는 그래도 그거는 얼마 이래 되지마는 소금이라 하는 거는 그 간이 녹아지면 녹아진 양만치 하나도 허실하지 안하고 그 녹아지게 된 그 상대에게 물에 녹아졌으면 물에게, 또 뭐 생선에게 녹아졌으면 생선에게, 채소에 녹아졌으면 채소에게, 녹아지게 한 거기에 녹아진 것만침은 그 속에 다 들어가 버렸습니다. 하나도 남김 없이 하나도 다 들어가 버렸다.
기독자가 진리와 영감과 대속으로 녹아지면 녹아진 거는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안하고 고거는 순전히 그 택함을 입은 모든 성도 속에 다 들어가 버렸다. 다 스며 다 들어가 버렸다.
이래서, 이것으로서 네가 한 고을을 점령하고 두 고을을 점령해서 한 므나로 살면 한 고을, 두 므나로 살면 두 고을 이렇게 점령해 가지고서 너는 모든 택자의 모든 택자의 그 심령 속에 네가 들어가서 자유로 자유로 이렇게 살겠다.
네가 들어가서. 그들의 생명이 되고 그들의 권위가 되고 그러면 네 자체는 없느냐? 주님은 우리 속에 계시지마는 당신의 자체는 본체는 또글또글하이 그래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요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전도하는 것이 우리는 전도하는 것이 증거는 뭐 인간이 입으로 전도하는 거 뭐 힘이 있지마는 그거 인간이 전도하는 그것보다도 증거하는 거 셋입니다. 성령과 물과 피 이 증거하는 것이 셋이 있으니 이 셋은 하나라 했습니다.
그러면, 이 셋으로 내가 사는 이것이 이 씻을 다른 사람 속에 고만 집어 넣는 것입니다. 하나도 남김없이 집어 넣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믿지 않는 가정에서 남편을 믿으라고 자꾸 하는 그 말로 하는 그것도 좋지마는, 베드로전서 2장에 보면 말로 권면하는 거 가지고는 듣지 안하는 그 남편이 아내의 그 녹아짐을 보고 아내가 하루 녹는 거 보니까 진리로 녹거든, 하루 종일 그 사람은 하루 종일 진리로 산다 그 말이오. 진리로 녹아져, 영감으로 녹아져, 죄 안 지을라고 무죄로 녹아져. 그 절대자에게 피동으로 녹아져, 그 하나님을 벌벌 떨면서 하나님 떨어지지 안할라고 이래 녹아져.
그것보고 남편 회개한다 했습니다. 회개 한다. 두려움으로 두려움을 보고 남편이 회개한다.
뭐 두려움은 남편이 엉크리니까 벌빌 떨어서 '오늘 주일은 못 간다' 하면 벌벌 떨고. 그러는 거는 뒤져야 돼. 뭣 때문에 하나님의 딸이 그렇게 죄 지으라 하는데 엉크린다고 거석해. 성경에 말하기를 그들의 엉크리는 그 얼굴보고 두려워하고 말보고 두려워하고. 그들이 모든 장치 베푸는 거, 고형과 고문 할라고서 베푸는 그 장치 보고 두려워하면 내가 두려움을 줄 것이다 이랬습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전능자의 아들이 아니며 전능자의 네가 백성이 아니냐, 전능자가 보고 있느냐, 주권 그 섭리를 가지신 그 분이 네 안에 거하시는데 네가 뭣 때문에 두려워하느냐 이랬습니다.
이러니까, 그 두려움 말하는 거 아니오. 벌벌 두려워 하는 거 뭐이냐? 저 제가 허천 있을 때에 황산에 개평댁이라고 그 아마 정씨인 모양이라. 그 개평정씨, 개 평댁이면 정씨인 모양이라 개평댁인데 양반이라요. 그런데 참 팔방 미인이라. 이 사람이 이라면 그거 떼지 못해서 이래서 온 동리 사람들은 다 비위 안 상할라고 좋아했는데 하나님 비위는 딱 상했다 말이오, 그래 놓으니까 그 가정이 다 망해 버렸어요. 다 헛일 돼 버리고 말았어요.
'아, 그런데, 내일은 우리 집에 저 제사인데 다른 집에는 가고 우리 집에는 안 와줘도 됩니까? 할머니가 우리 집에 제사 지낼 때 와서 좀 돌봐 줘야 됩니다.' 이라면 '아, 내일 주일인데 안 됩니다.' '그라면 나 할머니 안 볼랍니다.' '아이구 어짤 수 있나? 내 가지.' 사람 좋지. 죽었다 그거요. 그래 두려워하는 그 두려움을 말하는 거 아니고 하나님 두려워하고 진리 두려워하고 영감 두려워하고 예수님의 대속 두려워해서 거기에 삐뚤어지지 안할라고 그 어긋나지 안할라고 고대로 살라고 뻘뻘 떠는 그것 보고 남편이 '야, 참 하나님이 계시는구나. 참 심판의 지옥이 있구나. 진리가 있구나. 영감이 있구나.' 회개한다 했습니다. 이러니까, 요걸 굳게 잡읍시다.
우리가 이래도 저래도 늙습니다. 왜? 첫째 아담으로 인해서 범죄한 우리기 때문에 죄 아래 있기 때문에 어쨌든지 죽기는 죽습니다. 죽으니까 제가 이래도 늙고 저래도 늙고 어쨌든지 늙어서 죽는 거, 뭐 죽음에는 변사도 있고 또 병사도 있고 노사도 있고 다 있지마는 어쨌든지 끝을 마쳐서 하나도 없이 솔박 다 녹아지기는 녹아지는 것입니다.
녹아지는데, 뭘로 녹아지느냐? 진리와 영감과 대속으로 네가 녹아지면 그 녹아진 거는 지극히 큰 세 가지의 이 존영한 가치가 이루어진다. 하나는 하나는 쓸모 있는 거. 하나는 등용, 모든 피조물들에게 너 없으면 안 된다.
피조물들에게 너 없으면 안 되는 그렇게 요긴한 네가 존재가 된다 창조주도 너 없으면 안 된다. 그렇게 요긴한 존재가 된다. 밖에 버리는 반대로 안으로 영접하게 된다. 모든 만물에게 필요한 것이 인류에게 필요하고 인류에게 필요한 것이 모든 그 하늘에 있는 모든 것에게 필요하고 하나님에게 필요하고 진리에게 필요하고 필요한 것이 되어진다. 땅에 발에 밟히는 대신에 이렇게 존대함이 되어진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소금이 그 녹는 것처럼 우리가 소금이 간을 가지고 녹았기 때문에 다른데 배어 들어 가지 물로 가지고 녹아지면 다른데 안 배어 들어갑니다. 여러분들. 물은 물에 물 탔기 때문에 물은 딴데 안 들어가. 간 이놈은 녹으면 간이 당장에 다 들어가 버려요.
이러기 때문에, 성도들이 이 세 가지로 녹아지면 이 세 가지로 녹아진 그 전부는 다 그 모든 다른 사람에게 다 가 가지고서 이 생명 역사를 하게 된다. 뭘 얻느냐? 그걸 대속의 사람을 만들고 영감의 사람을 만들고 진리의 사람을 만들어 버린다.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가치 있게 된다. 맛을 잃으면 천해진다. 인간이 이 세 가지로 하루면 하루 녹아지지 안하고 딴 걸로 녹아지면 이렇게 세 가지로 천해진다. 요거 단단히 기억하십시오.
그러면, 나는 지금 이 직장에서 사무를 보고 있으면 내가 사무 보고 있으면 내가 그러면 이 일로서 녹아지느냐? 사무를 보면서 나는 오늘 주님의 진리대로 성경 진리에 맞추어서 진리대로 나는 이 사무를 봅니다. 진리의 사람으로 사무를 봅니다. 이 일을 하면서 이 일을 하면서 진리대로 하고 이 일을 하면서 진리를 지키고 이 일이 아니면 진리 못 지키는데 이 일에서 나는 진리 지킵니다. 그 일에서. 장사군이면 장사하는데서 진리 지키고 남에게 종이면 종질하는 데서 진리 지키고 그렇지 않습니까? 이렇게 거기에서 기독자가 소금처럼 이렇게 이 소금이 간으로 녹아지는 것 처럼 이 세 가지로 기독자가 하루를 녹든지 한 시간 녹든지 일생을 녹았든지 뭐 반 년을 녹았든지 얼마를 녹았든지 녹아진 것은 다 이 세 가지로 그 존귀한 대우를 받게 된다. 이 세가지로 존귀한 대우를 받게 된다 녹아진 거는 어데? 녹아진 거는 다 다른 사람 속에서 다 들어가 버렸다 다 들어가 버렸다. 네가 진리로 녹아지면 진리로 녹아지면 그 진리대로 녹아진 것이 그 사람에게 뭐 진리를 받아라 하지 안해도 좋다. 네가 진리로 네가 살았으면 말이오. 녹아진다는 말은 살라 말이오. 우리는 요거 똑똑히 알아야 돼요.
녹아지는 거는 우리는 이래도 저래도 녹아지는 것입니다. 어짜든지 칠십 년 동안이면 다 녹아져요.
녹아지는데, 이것을 희생이라 하는 그 말 하는 그것은 왜 그러냐? 이게 전부 말하자면 내가 이 세 가지 간으로 진리로 영감으로 이와 같이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으로 하루를 살았는데 산 이게 전부 위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요, 옆으로 전부 인간을 구원하는 일이 다 돼 버리고 말았다 말이오. 인간을 구원하는 일이 다 되고 말았기 때문에 이것을 희생이라 이런 말을 붙이나 실은 자기 생활이라 그 말이오. 자기 생활. 자기 할 일 자기가 하는 거라.
이래 녹아질 거 저래 녹아질 거, 이래 소멸될 것 저래 소멸될 것 이래서 단축 해질 것, 이래 차차 차차 제감돼 나갈 것, 이렇게 해서 삭감되고 이렇게 저렇게 삭감될 이것이 이 세 가지로 네가 살아져서 소감이 되면 세 가지 이렇게 존영한 가치가 있는 것이니, 세 가지, 이 뭐 세 가지가 그뭐 하나 고정적인 것이 아니고 이 세 가지는 언제든지 역사적입니다. 역사적 인 것.
자, 쓸모 있는 것도 장, 살아 역사하는 것 아니요? 이거 하나 죽은 시체의 고체, 좋은 보배로운 나무 덩어리 모양으로 그런 거 아니고 이 살아 역사하는 것이오. 쓰이는 것도 살아 역사하는 것이요, 또 영접 받는 것도 역사하는 것이요. 이렇게 존대하는 것도 다 역사하는 것이라 말이오. 이 세 가지로 녹으면 이렇게 세 가지로 영원히 역사하는 영원히 역사하는 이런 존대한 것이 되어진다 현재 하면은 그것은 어디로 가느냐? 녹아진 것은 전부 다른 사람에게 다갔다.
네가 너거 집에 혼자 예수를 믿어도 혼자 믿으면서 네가 진리로 하루 종일 살고 진리로 일 년 살고 진리로만 살면 네가 진리로 산 그 진리는 너거 가족이 욕을 해도 너거 가족 속에 다 들어가 버렸다. 다 들어갔다 진리가 다 그 속에 다 들어가 버렸다. 영감으로 살면 영강이 다 들어갔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살면 대속이 다 들어갔다. 네가 고것으로 새로 산 그 진리로 하루 살아서 없어진 그 진액은 사람 보기에는 그 진액은 없어지지마는 그 진액 없어지는 날 네가 하루 살고 공로는 공로의 효력은 그 가족들이 다 들어갔다. 너 하나만, 너 하나만 이 세 가지로 그 한 이삼 년만 살아도 이삼 년만 살면 그 이 세 가지가 이삼 년 동안 전부 스며 들어갔으니 저는 예수 믿는 걸 반대를 해도 결국은 예수 안 믿고 못 된다. 택한 자면 예수 다 믿게 된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요것을 단 단히 굳게 잡읍시다.
요번 주일에 가르칠 거.
우리 기독자를 소금으로 비유한 것은 소금은 간 그것 맛 밖에 없는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 기독자는 요 세 가지 뭉텅이가 돼야 된다. 진리 뭉텅이가 돼야 되고 영감 뭉텅이가 돼야 되고 세 가지 대속의 뭉텅이가 돼야 되는데 이 세 가지로 말하자면 세 가지는 하나입니다. 하나가 바로 됐으면 이 세 가지 다 됐소.
이 뭉텅이가 돼서 그것은 입도 그 뭉텅이지 손도 그 뭉텅이지 귀도 그 뭉텅이지 그 모든 전체가 다 그 뭉텅이라. 이렇게 돼 가지고 이렇게 돼 가지고 하루를 녹아졌으면 하루 살이를 했으면 이틀 살이를 했으면 이틀 녹아지면 이틀이 수명이 감해져서 수명도 감해졌고 정력도 감해겼고 건강도 감해졌고 자기의 모든 그 심신의 요소도 다 그만치 삭감되어지지 안했습니까? 그만치 소감되지 안했습니까? 소감되어졌으면 그대우는 이 세 가지 대우가 된다. 대우는 이 세 가지 대우가 돼진다. 세 가지 대우가 돼진다.
네가 이 세 가지로 녹아진 거는 어데 갔노? 녹아진 거는 어데 갔노? 녹아진 것은 돈으로 녹아졌으면 네가 그거는 심판거리되고 말았지마는 이 세 가지로 녹아졌으면 녹아진 것은 다른 사람에게 벌써 배어 들어가 버렸다. 다른 사람에게 배어 들어갔다. 이러니까, 네가 너거 가족이 만일 열 명이면 열 명, 너거 교인들이 백 명이면 백 명, 백 명 가운데에 너 하나가 요 세 가지로 녹아지면 이것이 말 안 해도 그 속에 다 배어 들어갔다. 배어 들어가서 나중에 얼마 있다 보니까 전부이 짜게 됐소 전부 소금 맛이라. 전부 소금 맛.
이 채소로 이랬는데 보니까 채소가 아주 그만 맛있는 김치가 됐습니다. 아주 그 생선을 생 걸로 먹을라 하면 맨 걸로 먹을라면 싱거워 못 먹는데, 소금이 들어가 놓으니까 간이 맞은게 맛있게 됐습니다. 맛도 있지 썩지 못하구로 방부도 되지 이것만 들어가 놓으면 사람이 안 썩겠다. 이것만 들어가면 사람이 썩지 안하고 이것만 들어가면 참 맛있는 사람이 된다. 참참 인간 맛이 있게 된다. 인간 가치가 있게 된다.
이러기 때문에, 이것을 요 비유를 단단히 기억하고 참 우리가 맛잃은 소금, 맛있는 소금. 소금으로 녹아지면 어떻게 존귀해지며 대우가 어떻게 존귀해지며 어떻게 중요하게 쓰여질 중역자가 되어지며 얼마나 영접을 받으며 얼마나 존대를 받으며 녹아진 그거는 어데 갔느냐? 녹아진 그거는 모든 사람 속에 다 들어가 버렸다.
모든 사람 속에 다 들어갔다 네가 진리로 녹아지면 녹아진 것 만치는 다른 사람 속에 진리로 들어가 버렸다. 영감으로 녹아지면 녹아진 것 만치 영감이 다른 거 속에 들어가 버렸다. 네가 대속으로 녹아지면 녹아진 거만치 그속에 들어가 버렸다. 네가 이대로 사는 것으로써 그 속에 스며드는 이걸랑 생각지 안하고 네 입만 가지고서 그 맛잃은 소금이 돼 가지고서 돈으로 살고 다른 인간적으로 인본으로 혈육으로 살고 이 세 가지는 하나도 살지 안 하면서 말만 가지고 예수 잘 믿어라. 예수 믿어라. 암만 해 봤자 하나도 스며들어가지 않는다. 네가 요대로 살면 뭐 딴데 갈 데가 없다. 고 스며들어가 버린다.
그래 너 한 사람이 이 세 가지로 하루 이틀 또박또박 너만 살면 너 가졌던 그 영감과 진리가 거기에 다 들어가게 된다. 들어가면 너는 없고 들어가면 하나님의 원리는 나뭇가지의, 여기에서 이 나뭇가지가 밑에 접가지, 잎사귀 있어 가지고 이 양분이 자꾸 나가야 이 대목 가지가 크지 대목 가지가 크지 그러니까 안 나가면 안 큽니다. 천국은 줄수록이 커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줬기 때문에 아주 큰 부자가 됐습니다. 그런고로, 그와 같이 우리는 이렇게 해서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고 이렇게 되면 우리 자체는 점점 하나님으로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 공과를 단단히 기억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데에는 제일 권위 있는 방편이 뭐이냐? 내가 고대로 사는 거 요대로 살아서 살았으면 살아서 소멸된 것안치 줘서 배어 들어가 버렸어. 배어 들어가면 진리 영감대로 산, 돈 보고 살았으면 돈이 오고 권세 보고 살았으면 권세가 오지마는 이 세 가지로 살았으면 돈로 안 오고 아무것도 안 와. 돈은 안 와도 돈은 안 와도 조물주에게 쓸모 있는 자 되어지고 모든 그 택한 자들에게 쓸모 있는 자 되고 만물에게 쓸모 있는 자 되고 마귀에게는 쓸모 없는 것이 된다. 마귀에게는 쓸모 없지마는 다른 데는 다 쓸모 있는 자 된다. 점점 존귀해서 안으로 영접함을 받는다. 이렇게 발에 밟히는 당신하고 이렇게 높이 존대함을 받게 된다.
이러니까, 대우도 좋고 소금으로 녹으면 대우도 좋고 또 소금으로 녹은 그 자체의 역사도 굉장히 큰 역사를 하게 되고, 그 속에 살게 되니까. 너 영감으로 살아라 하지 말고 네가 영감으로 살면 그 영감으로 살아서 네가 녹아진 것만치 네가 한 시간 살았으면 한 시간 산 영감으로서 한 시간 산 거 그것은 한 시간 산 영감이 벌써 가라 말 하나 마나 사람들에게 벌써 다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진리와도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이 중요한 것을 간단한 소금 비유로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어짜든지 새김질하고 새김질하고 깨달아서 여러모로 깨달아 가지고 가치 있는 사람 되어집시다. 맛잃은 소금이 세계를 점령하면 뭐할 겁니까? 맛 잃은 소금이 노벨상을 받으면 뭐 할 겁니까? 맛잃은 사람이 소금이 그 뭐 뭘 가지면 되겠습니까? 천하를 차지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맛잃은 소금은. 주권자 조물주가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뭐 다른 길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