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

 

1988. 12. 6. 화새 

 

본문: 고린도전서 11장 23절∼27절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여게 기념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기념하라고 하는 이 기념이라는 말씀은  일반적으로 다 쓰는 말인데 그렇다고 해서 혹 또 이 말을 잘못 들어 성경은 세상  말을 따다가 쓴 것이라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신구약 이 성경 말씀을 기록하시기 위해서 모든 언어를 다  준비하시고 그렇게 그 말을 쓰셔서 기록하셨지 인간이 쓰는 말을 하나님이 따다  쓴 것 아니고 하나님이 쓰시려고 마련한 그 모든 언어를 사람들이 갖다가 따다  썼지, 그것도, 이거는 깊은 속에 신신학 이단들이 고등 비평가들이 그렇게  유혹하기 때문에 그런 걸 약간 방어하는 것으로 말합니다.

 고등 비평가라 말은 옛날부터 학자들이 하나님의 도를 어지럽혀서 미혹했던  것입니다. 무식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데 학자들이 그것이 하나님의 도를  어지럽혀서 그 사람들의 이름을 고등 비평가라 이렇게 말합니다.

 기념하는 것은 어떤 그 사실이 한번 있었던 그 일을 그것을 그 후대 후의  사람이, 그 후의 사람 혹은 그 후대의 사람들이 그 일을 자기들이 참 매우 귀하게  여기고 좋게 여기고 또 잊을 수 없는 그런 중요한 그런 일이 되었을 때에 그  후에 후세대의 사람들이 옛날 그 전세 되었던 그 일을 그 후의 사람들이  기억하고 또 생각하고 또 찬양하고 기뻐하고 이렇게 그때에 이루어진 그 일과  같은 그런 모양의 일들을, 그런 행사들을 하는 그런 것을 가리켜서 기념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성찬을 먹을 때마다' 이렇게 여게서는 여세 본문대로는 그런데 '내 피와  살을 먹을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그러면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피흘려 죽으신  그 일이 몇 해가 지나든지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계속 기념하라 그렇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 다음에는 말하기를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면 기념하는 것은 어떤 게 기념하는 것인고 하니 주님이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대속하신, 우리를 세 가지로 대속하신 이 대속을  언제든지 잃지 말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주님이 대속하신 그 대속과 같은, 일은  우리가 할 수가 없지마는 대속하신 그 대속을 우리가 계속 입고 살고 벗지 말고  주님이 대속으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이 구원을 언제나 받아서 이 구원을  모시고 이 구원 받은 자로 살고 초 이 구원받은 이것을 후세대 사람들에게  전하되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계속 전하라 그런 말씀입니다.

 그래서 다른 성경에는 보면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라. 참된 음료라. 이러기  때문에 내 피와 살을 먹고 마시는 자에게는 그 속에 영생이 있고 피와 살을 먹지  않는 자에게는 그 속에 생명이 없다고 주님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래서 주님의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기 때문에 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이  양식을 먹고 힘을 얻은 자는 이 양식을 먹고 정신이 차려지고 사람이 병들거나  약하거나 무슨 피곤하거나 그렇지 않고 이 피와 살의 양식의 힘으로 그 사람이  정상의 사람이 된다고 하면 이 피와 살의 이 양식의 힘으로 그 사람은 '나를  인하여 살리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양식은 계속 먹는 양식이니까 주님이 오실 때까지 또 자기  개인으로서 세상을 끝내고 주님 앞에 설 때까지, 그러면 우리가 세상에서 사는  생활은 몇 해가 되든지 그 전생활은 다 주님의 그 피와 살을 기념하는 생활이  우리의 생활이요,  또 기념하는 생활은 주님의 피와 살을 우리의 그 믿음의 양식으로, 인격의  양식으로 중생된 그 새사람의 양식으로, 이 양식이 썩지 않는 양식이요 영원한  신령한 양식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피와 살을 기념하는 곧 주님의 피와 살을 먹는  일, 믿음으로 이렇게 주님의 대속하심을 생각하고 또 깊이 궁구하고 느껴보고  자기가 체험하고 하는 여기에서 얻어지는 힘이 새사람의 강건의 힘이요 이 힘  전부는 얻은 것만치 그 사람은 주님의 피와 살을 기념하는 생활을 필연적으로  하게 되고, 주님의 피와 살을 기념하는 생활은 곧 '나로 인하여 살리라' 하는  말씀대로 주님으로 인하여 동하고 정하는 그 모든 생애, 또 주님으로 인한 목적  또 주님으로 인한 그 결과까지 맺어지는 그것이, 우리의 전생활로 살아라 하는 그  말씀인 것입니다.

 이래서 '너희가 그리스도로 다시 살리움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곧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하는 이 말씀도, 그 말씀의  중심이 주님이 도성인신하셔 가지고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삼 일 만에  부활하신 이 대속을 너희가 믿고 사모하고 생각하고 이 대속을 네가 네 신앙  인격 새사람의 전양식을 삼아, 이 대속의 이 은혜로 인하여 깨달음도 새로와지고  강건해지고, 소원도 새로와지고 강건해지고, 또 목적도 새로와지고 강건해지고,  자기의 생활하는 그 힘도 주님의 피와 살의 이 대속에서 흘러나오는 이 힘이  너희들의 힘이 되도록 그렇게 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거나 그건 걸 생각지 말고  곧 하늘의 것을 생각해서 살아라.

 너희들은 다 옛사람으로 사는 그거 죽는 생활인데 그것은 다 끝나 버렸고  너희들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 있기 때문에 그분이  영광으로 나타날 그때에 너도 그 영광에 나타나고 그 영광 속에 그 대속 속에서  영생할 너이기 때문에 이렇게 기념하는 생활을 하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피는 곧 죄를 없애기 위해서 흘리신 피입니다. 주님이 죄를 없애는 데는  형을 받는 것밖에는 죄를 없애는 길이 없기 때문에 주님이 죄를 없애는 그 일을  위해서 당신이 죽으셨고, 또 하나님의 공심판을 통과할 수 있는 하나님의 전법을  완전히 이행하는 그 일을 위해서 죽으셨고, 또 하나님으로 더불어 이렇게  화친하는 이 일을 위해서 예수님이 죽으셨습니다.

 부활하신 것은 이 대속의 공로를 설정하시고 이 공로의 혜택을 입고 우리들로  실지로 살고 누리고 그 효력을 우리가 영생과 평강과 하나님을 향하는 그 생애가  계속되도록 하기 위해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속받은 자들이기 때문에 우리의 이 생애는 아주 새 생애가  되어진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나 또 우리가 안 믿을 때에 사는 생애는 그  생애는 죽음이 점점 죽어져가는 그 죽어져가는 것이지 그것은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죽어져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을 떠나는 것은 그  죽어져가는 것이 완전히 다 죽는 그 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해서 그 공로를 근거해 가지고 또 예수님의  부활의 대속으로 우리가 완전히 사망한 것이 살아났고 피조물을 향한 배신의  사망이 하나님을 향하여서 영생하도록 그렇게 우리가 된 새사람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생애는 전부가 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이.

우리의 생애입니다. 빌립보 3장에는 "다니는 사람들 가운데에 십자가의 원수가  많다" 다니는 사람들 가운데에 십자가의 원수가 많다 그말은 무슨 말씀인고 하니  날마다 죽어져가는 옛사람으로 사는 사람이 많고 새사람이 되었으나 날마다  생명으로 살아가고 생명으로 충만해 가는 생명이 자라가는 이 생활을 하지 않고  날마다 죽어가는 이 생활하는 것을 가리켜서 십자가의 원수라 그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요 나와 내 도를 위해서  생명을 바치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말씀을 하신 것이 곧 이런데 대해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힘쓰기를 주님의 생애를 기념하는 생애, 다시  말하면 주님의 생애는 원형적 생애면 우리는 그와 꼭 같은 모형적 생애를 하는  이것이 주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입는 것은 자기가 지식으로 자꾸 새김질하는 것도  그와같이 되어가는 것이요 우리가 실지의 생활을 하는 가운데서 주님의 형상을  닮아져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속에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속이 있으면 그 있는 것은 하나님을 닮은  주님의 대속의 모형 생활이 우리 생애에 나타나게 되고 이 생애로 말미암아 점점  하나님화되는, 대속하신 그리스도화되는 이 성화가 우리 속에 이루어져 이루어진  것만치 이다음 심판을 우리가 받습니다.

 우리가 받을 사심판은 그리스도의 심판이라고 했는데 그리스도의심판이라 말은  그리스도를 얼마나 닮았으며 얼마나 그 모형이 되어 졌느냐? 그리스도는 제사장  선지 왕인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피와 살은 순전히 제사장 생애요 선지  생애요 왕의 생애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것으로써 그리스도화 됐는지 하는  고것만 구별해 가지고 고것만 무궁세계에 하나님의 나라에 필요한 하나님의  영광으로 등용하고 그 나머지기는 다 유황불 구렁텅이에 갑니다.

 이래서 우리의 이 본체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영육이 다 대속됐기 때문에 이  본체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다 하늘나라 가는 것이요 다만 대속받은 이 본체가  땅위에서 생활하는 그 생활은 그것은 영광이 되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형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일생을 신앙생활했다고 해도 그리스도의 형상은  하나도 없는 사람 있습니다. 제사장 형상은 하나도 없고 선지 왕의 형상은 하나도  없는 사람 있으니 그 사람은 중생한 새사람은 되기는 됐지마는 새사람의 생애의  아무런 실력은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바울은 벌거벗은 자로 나타나지 않기 위해서 마음이 많이 눌려  가지고 있었던 그것은, 벗은 자라 말은 영육의 이 본체는 하늘나라 가 있지마는  그 본체가 만들어 입은 것이 없는 자 되지 않기 위해서 탄식하고 고통한  것입니다.

 만들어 입은 것은 사람들이, 다 같이 부정모혈로 인간으로 태어나기는  태어났지마는 그 사람이 자기가 생애하는 그 생애에서 어떤 사람은 이런 저런  모든 기능을 만들어 입었고 기능을 가진 것만치 영광과 존귀의 가치가 있고  대우도 있는 것이고,  그 사람이 본체는 가지고 있었지마는 아무런 노력하지 않고 기간 동안에  본체에서 나오는 그 모든 정력을 그대로 행락으로 지냈으면 행락만 그에게  쌓였을 것이고 범죄하는 역사에서는 범죄의 기능만 쌓였을 터이니까 이런 것은  다 하늘나라 가지를 못합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그 공력이 불탄다" "불가운데서 구원 얻은 거와 같다" 불에서  나와 구원 얻는 게 아니고, 불에서 나와 구원 얻은 게 아니고 불 가운데서 구원을  얻어 가지고, 구원 얻은 그게 거게서 나온 것입니다. 불 가운데서 구원 얻은 것이  불 가운데서 멸망하지 않고 나온 것이 구원이오. 불 밖에서 구원 얻는 게 아니고  불 가운데서,  뭐 요새 히브리어 헬라어 원어를 많이 안다고 공부하지마는 그 자 람들  요량하면 이 번역한 사람들이 훨씬 능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나라 말로  번역된 말을 그만 우리는 거의, 완전히는 믿을 거 없지마는 한 구십 프로나 백  프로 거의 믿어도 좋습니다.

 이래서, 그 사람이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은 것은 타지 않으니까 다 그것은 상을  받고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은 것은 타버리기 때문에 그 사람은 구원은  얻었지마는 자기 모든 소유가 다 불타 버렸으니까, 불 가운데서 구원 얻었으니까  자기 생명만 살아 나왔지 자기 본체만 살아 나왔지 아무런 소유는 다 잊어버린  그런 것을 하나 모형해서 그렇게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다 뭣을 말한 것인가? 자기의 정력을 주고 산 기능들을 말합니다. 정력을  주고 기능을 사는데 썩어진 기능을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래서  갈라디아서에서는 사람의 심은 것은 무엇이든지 그대로 거두나니 육체를 위해서  심은 자는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으로 심은 자는 영생을 거둔다는 그 말씀이,  자기가 정력으로 소망을 위해서 투자한 것을 말하니까, 정력을 가지고 소망을  위하여 투자했는데 어떤 사람은, 육체로 심었다 말은 안 믿는 사람들이 자기의  정력을 투자하는 거와 같은 그런 투자한 사람들은 다 그것은 썩어진 것 거뒀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에 통과를 못 합니다.

 또 성령으로 심은 자는 다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영생을 거둔다는 그것은  자기의 정력을 심어 가지고 투자해 가지고 거두는 그 기능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그러기에 세상에서도 그 사람의 정력을 가지고 오만 걸 하지마는 이 사회나  국가에서 등용할 만한 그런 기능은 하나도 없고 사회와 국가에서 감옥에 가둬야  될 만한 그런 도적질하는 것 나쁜 몹쓸 기능만 마련한 사람은 그 사람은 정상의  대우를 받을 수가 없는 거와 같이 이런 것이 다 자연 계시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나라가 어떠하겠습니까?  그런고로 우리가 우리의 생애는 예수님의 피와 살을 기념하는 이 생애가 우리의  생애라. 이것이 곧 피와 살을 내 신앙, 인격의 신앙의 소망의 모든 양식으로 삼는  것,  피와 살은 하늘나라의 소망이 먹고 배가 부르고 힘이 생기는 소망의 양식도  되고 믿음의 양식도 되고, 사랑의 양식도 되고, 봉사의 양식도 되고 모든 존재로  더불어 화평케 하는 이 실력의 양식도 되고, 그는 오전하고 구비하여 다 하나도  썩는 데 이르지 않는 그런 힘이 됩니다.

 이래서 그거 다시 말하면 "나로 인하여 살리라" 했으니까, 주님으로 동하고  정했으니까 주님이 사활로 대속하신 이 대속이, 바로 주님의 피와 살을 먹는 그  먹음으로 인하여 주님의 사활의 대속이 흘러내려 오고 흘러 내려와서 그 사활의  대속이 완전히 내게 내려와 내게 충만하고 내게 충만한 것이 또 이웃에게까지  충만해지도록 하는 그것이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생애는 주님의 피와 살을 기념하는 것이 우리의 생애요  주님의 피와 살에 반대되는 그것이 다 십자가의 원수의 생애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의 할 일은 죄 이것을 어쩌든지 없애기 위해서, 죄는 뭐이 죄인가?  죄는 하나님의 이 선포하신 계약에 위반된 것이 다 죄입니다. 하나님의 성경  말씀에 위반된, 위반된 것을 내게 있는 것을 위반된 것 다 제거해 버리기 위해서  우리는 피와 살을 바쳐서 생명까지 바칠 것이고,  또 내 안에 있는 것을 없애는 동시에 내 밖에서 내 속에 이것을 집어넣어서  죄를 입게 하는 것 내게 의를 벗기게 하는 것 이로 더불어 싸우고 내가 의를  건설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요.

 하나님하고 화친하는 것은 입술로 암만 화친해 봤자 소용없습니다. 하나님과  화친하는 법은 곧 주님의 피와 영감과 진리의 생애를 하는 고것으로써만  하나님과 나와의 연결되는 연결줄이 실나끈같이 자꾸 연결이 됩니다. 아무리 가는  실나끈이지마는 여러 수천 가닥을 모으면 아주 굳센 그런, 실나끈이 합해 가지고  큰 밧줄이 되겠습니다.

 이와같이 우리는 현실 현실에서 내가 진려를 배척하느냐 내가 그 진리를 내가  영접하느냐? 현실에서 그 진리 영접해야 되지 현실에는 영접하지 않고 제가 뭐  책상 위에서 아무리 수십 년을 영접해도 아무 소용이 없어. 그거는 순전히  진공입니다. 그와같이, 듣는 것은 지켜 행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요 행하는 것은 이  실상을 이루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그게 무슨 소용이 없어.

 이러기 때문에 자기가 진리를 자기 진리 삼는 것은 현실에서 복종하는 것으로만  자기 진리를 삼을 수 있고 또 영감도 자기가 아무리 영감을 받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현실에서 그 영감대로 이행을 할때에 비로소 그 영감은 자기와  하나님과의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죄, 칭의, 화친도 다 이러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의 생애는 주님의 피와 살을 기념하는 이것이 우리의  전생애입니다. 이러니까 십자가의 원수는 뭐이 십자가의 원수냐? 십자가의 원수는  곧 자기 중심으로 사는 그게 십자가의 원수요. 주님은 한 번도 당신 중심으로는  일 초도 못 살았습니다. 당신 중심으로 일 초를 살았다고 하면 그것으로써  예수님의 투쟁은 완전 패전당했고 악령은 완전히 점령을 해서 완전 승리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에게 완전 독재를 당했습니다. 완전 독재입니다. 이거는  털끝만치도 거게서 항거를 못 하고 완전 독재를 당했습니다. 생각 하나도 자유로  못했습니다. 아버지에게 완전 자유를 뺏기고 아버지에게 독재를 당하고  아버지에게 그저 순종할 그 권위밖에는 없었습니다.

 이러니까 그분이 또 우리를 다스리는 것이 완전 독재로만 다스립니다. 이 독재에  복종한 것만 살고 당신에게 책임이 있지 여게 벗어난 것은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성도들도 피와 성령과 진리에게 독재당한 그 생활을 이  세상에 독재하는 것입니다. 천 명 만 명이 해서 반대해도 독재하다가 반대하면  생명이 빼앗겨지고 몸이 빼앗겨지고 자기의 소유가 다 빼앗겨져도 하나님께  독재당한 이 독재는 어데서든지 고대로 이행하는 것이 그것이 기독자의 생활이요  십자가의 도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것은 근 이천 년 동안이나 파묻혀 있던 이 도리가 크게 나타난  것입니다. 그전에도 안 지킨 거는 아니지마는 이래도 이 세상이 점점 온 천하가  짐승과 일곱 머리와 열 뿔이 합하여 하나 되어서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는  때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이래서 세상이 점점 하나 되어서 힘과 힘이 합해지고 모두가 전부 온 세상이  통일되는 이 일을 보고 이제는 참 천국이 시작됐다, 지상 천국이 시작됐다.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허리끈 풀어놓고 어쩌든지 필요한 것을 많이 취해보자 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고, 이렇게 성경을 믿는 사람은 짐승이, 세상을 짐승으로  상징했고 일곱 머리 열 뿔을 여러분들이 많이 들었지마는 일곱 머리 열 뿔이 다  하나되는 이 운동은 이것은 참된 진실한 기독자로 더불어 대립되는 이것이  이루어지는 이 운동이라 하기 때문에, 오늘도 진실한 자 하나님 말씀대로 자기가  살려고, 말씀대로의 지식을 가지고 말씀대로 모든 행사를 하고 말씀대로의 사람이  되려고 하는 사람은 그 어느 노선에든지 그 노선에서 이로 더불어 대립되는  사람은 많지를 않습니다. 많지 않습니다.

 노아의 시대 때와 같이 인자의 때도 이와같이 되리라는 그 말씀이 뭐 별스러운  말씀이 아니라 자기가 살려고 보면 할 것이오. 그는 아무리 수천 수만의 공회가  모였다 할지라도 그 공회에 가면 자기가 살았으면 분명히 거게서 지식으로도  마찰되고 행위로도 마찰되고 사람도 마찰 되지 마찰 안 될 리는 없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모두 다 하나되어 화합되는 것을 좋다고 승리라고 자랑하고 이 운동을  하고 다니지마는 참된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거와 하나되려고 하니 주재자와  하나가 안 되고, 주재자와 하나되려 하니 그와 하나 안 되고 그분의 계약과  하나되려고 하니 땅에 있는 모든 인간들의 온갖 종합 지식과 하나되지 않고,  이러니까 근심 가운데서 수심하면서 그저 모든 것에서 다 배척을 당할지라도  주님의 피와 살과 성령으로만 하나되겠다 하는 이것을 날마다 이 기념하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를, 죄로, 더불어 싸우지 않으면, 죄가 뭐이 죄요? 뭐 살인죄 간음죄  도적질한 그게 죄입니까? 그것만 죄입니까? 그것도 죄지마는 그 까짓거는 껍데기  죄입니다. 그거는 껍데기 죄요. 그 죄는 세상 사람들도 다 말하는 죄요.

 우리의 죄는 하나님의 절대 정확무오한 그분의 도리에 이탈되는 것 삐뚤어진  그게 죄입니다. 거게 삐뚤어진 게 죄요. 대한 민법 뭐 세계에 로마제국의 그 국법  그런 것도 아무 소용없고 아무 가치 없습니다. 당신의 선포해 놓은 법 거게  삐뚤어진 것만이 죄입니다.

 이래서 우리의 생애는 주님의 피와 살을 기념하는 거이 우리의 생애라 하는  요것을 기억하고, 이 생애가 뭐이냐? 주님의 피와 살을 따라서 죽는 것이  십자가요, 없어지는 게 십자가요.

 이래서 이것을, 주님의 십자가의 이 걸음을 걷는 이게 미련한 자들에게는, 멸망할  자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여지고 구원 얻은 사람들에게는 아주 지혜의 생활이요  숭리의 그것이 능력의 생활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십자가의 원수라 하는 요것을 단단히 생각하고 내가 십자가의  원수의 길을 걷고 있나 정말로 십자가의 군병의 걸음을 걷고 있나? 이게 아니면  저거요 저게 아니면 이거지 그 사이에 중간은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모형적 교훈으로 말씀하실 때에 '쪽발로 걸어가지  않고 새김질 안 하는 것은 그것은 부정하기 때문에 생명에서 토하여 내치고 먹지  못하고 그거는 주검을 만지지도 말아라. 네가 먹을 수 있도록 네게 입에 제대로  들어오고 먹을 수 있도록 돼 가지고 있는 그런 것을 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고  멀리 해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라. 이러기 때문에 이 신구약 성경은 전부  하나를 가르치고 다 집결 집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 말씀을 기억하고  기념합시다.

 그런데 전부 내가 서울에 간 교회들은 전부 속화됐다. 속화됐습니다. 속화됐어,  뭐. 절대 속화됐어. 저거가 암만 큰소리하고 해도 속화됐습니다. 죽자껏 진리를  증거해도 속화됐어. 그런고로 이것을 깨어서 알아야 됩니다.

 우리의 쾌락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주님이 마지막으로 당신의 것이 다  바쳐지고 대속이 완성되었을 때에 십자가의 성공을 했을 때에 이것을 기뻐  마지막으로 유언으로 찬양한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는 것을  옛사람이 볼 때에는 참 저거가 두려운 죽음 옛사람이 볼 때에는 '예수님도 죽음을  당하니까 별수 없이 마지막에는 그렇게 불평 원망 낙망했구나' 그랬으면 예수님의  대속은 안 됩니다.

 어떤 자가 그렇게 해석을, 전부 다 오늘까지 다 해석을 다 그렇게 하고 있지마는  그게 해석이 틀렸다는 것은 예수님이 그랬으면 그런 죄는 죄 아닙니까? 원망하는  죄면 죄지, 불평하는 죄면 죄지. 그뿐만 아니고 원하고 원하여서 우리의 대속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공법에서 '남의 자유를 어떻게 꺾을 수가 있느냐?' 자원해서  자원했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의 공법에서 거부를 못 해서 된 것인데 자원하는  가운데 세포 하나라도 원하지 않음이 있었으면 그것으로써 넉넉히 하나님의  공법에서 걸어 넣을 수가 있습니다. 마귀는 송사할 조건이 되기 때문에 예수님은  대속의 완성을 보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완전히 다 바쳐지는 것으로써 그렇게 기뻐하고  즐거워했는데 옛사람 육덩이는 해석을 하기를 '예수님도 참 죽음을, 원청 죽음은  두려우니까 이렇게 지금 근심하고 불안하게 여기셨다.' 이렇게 해석하니까 성경  전체가 다 옛사람이 성경보고 해석하는 것과 새사람이 성경보고 하는 것과 저거  옛사람이 지금 설교하고 있다.

 옛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팔아먹고 이래 지금 구멍가게 지금 수입 방법을  장사하는 방법을 하고 있다 하는 것과 새사람이 하는 것과 다릅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은 사람을 평가할 때에 신장이나 용모나 그 모든 세상의 그  사람의 가지고 있는 세상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 하는 그것을 가치로 보지마는  나는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다르다. 나는 사람의 중심을 본다. 이 중심이  문제입니다. 중심. 이것을 못 찾으면 헛일입니다. 아무리 그 사람이 일생 동안 뭐  그리스도를 위해서 죽고 살고 한다고 해도 중심이 바꾸어지지 않는 사람  있습니다. 그 사람이 죄를 짓고 돌아다녀도 중심이 바꿔진 사람 있소. 마지막에  생명이 끝나는 종말 시간에는 표가 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의 참 예수님의 피와 살을 기념하는 이 생애가 어릴 때는 우리는  울며 가지마는 손양원 목사님 그런 이나 주남선 목사님 그런 이들은 이제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를 그렇게 소원을 했지마는 그렇게 마음에 시원하게 생명은  바치지를 못하고 순생만 했지 순교는 하지를 못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순교를  했습니다.

 그러기에 이 그리스도인들의 최종의 쾌락은 어데 있느냐? 자기가 십자가로써  자기 것이 다 투자되었을 때, 썩은 것이, 욕된 것이, 약한 것이 혈육의 것이  완전히 투자돼서 심어질 때에 그것을 기뻐하는 이 기쁨이 우리의 기쁨인데 이  기쁨이 우리에게 있는가 없는가?  이 기쁨은 그렇게 쉽게 되는 게 아니고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다' 하는 이렇게 소원이 순전히 여게 있기 때문에 이 일이  이루어진 것이지, 여게서도 땅에 있는, 안 믿는 사람들이 다른 방편 가지고 돈  취하는 방편이나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 믿는 것 가지고 취하는 방편 가지고 돈  취하는 것이나, 명예 지위 권세 자기를 높여서 자기를 왕 삼는 것이 안 믿는  사람들이 뭐 투표권 가지고 왕 삼는 그 방편이나 자기가 하나님의 성경 말씀  가지고 이렇게 해서 왕 삼는 그것이나 다 같은 것인데 하나는 고등 죄악이요  하나는 무지의 서민의 죄악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는 그렇게  흐리멍덩 아닙니다. 아주 좁고 좁고 좁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삼십 분 기도 잃지 말고 기도합시다.

 공회라 하는 공회가 내나 '신임 투표해 가지고 하자. 우리가 공회서 순종치  아니하면 그것은 용납할 수 없다.' 이렇게 다 저거 입으로 말하고 저거 손으로  들어 가지고 결정하고 약속하고 이래 놓고 이 공회서 한 거, 하는 것을 현저히, 투표하자 하는데 '우리 교회는 그거 하는 것이 불리해서 그만 나는 투표 안  하겠다' 안 한 사람이 있어도 '이 안 한 데 대해서 처리를 어떻게 하렵니까' 해도  입을 딱 다물고 하나도 말하지 안했습니다.

 내가 어제 그래서 뭐, 다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래도 좀 살겠다고 저거가  진리와 이 공회를 저거 거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그 대표적으로 하나 내가  OO목사가 가만히 있기 때문에 내가 좀 말했어 OO목사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내가 그렇게, 그게 다 내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라. 그래 시시하게  여기기 말아요.

 그래 가지고 하나가 제 마음대로 하는 것 이행 못 하면 그까짓 공회 다 치워  버리고 마는 거지 그게 뭣 될 것이요? 그렇게 약게 그래서 '그러면 사람 내  사람된다. 이래 놓으면 내 사람된다. 요 기회에 내 사람 만들자.' 네 사람 다  만들고 천지를 만들어 봐라. 하나님이 네 하나님 안 된다! 안 돼.

 십자가가 뭐이 십자가인데? 옳은 것 때문에 희생당하는 게 십자가지. 진리  때문에 희생당하는 게 십자가지. 자기야 배척을 당하고 죽임을 당해도 주를  높이고 주의 도를 높이는 그것이 순교요 순생이지. 딴데 있는 줄 압니까? 다 그런  지혜는 다 마귀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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