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세례

 

1986. 6. 17. 화새벽

 

본문:사도행전 1장 4절∼8절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우리는 힘으로도, 능으로도, 열심으로도 할 수 없는 구원을 이루어 가는 우리들입니다. 사람이 어떤 실력이 있다고 해서, 어떤 열심이 있다고 해서, 어떤 그 배짱의 담력이 있다고 해 가지고 되는 건 아닙니다. 인적 요소로 우리 구원은 이루어지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순전히 성령님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구원입니다.

그러기에, 성령님이 내게 와 가지고 내 구원을 이루어 주게 하는 데에는 어떻게 하라는 조건이 있기 때문에 그 조건대로 맞으면 뭐 못나도 되고, 병신이라도 되고, 무식해도 되고 다 됩니다. 그러나 이 조건에 맞지 안하면 천하에 제일 선천 후천적으로 겸전한 그런 세상이 제일 위인이라 하는 그런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구원은 절대 이루지 못하고 근방에 오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요것을 우리가 똑똑히 잡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악령이 어떻게 꼬우든지 꼬와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해 가지고서 멸망을 시킬라고 하는 것이 악령의 역사입니다.

사람은 어리석습니다. 그 사람에게 선천적으로 장점이 있으면, 선천적으로 장점 있다 그말은 나기 전에 타고 나기를 잘 타고 났다 그말입니다. 또 후천적으로 장점이 있다 그말은 나고 난 다음에 조건들이 좋아서 모든 준비를 잘 갖췄다 하는 그런 말입니다.

선천 후천적으로 천하 제일 위인이라 할지라도 안 되는데 마귀는, 너는 선천적으로 이 장점이 있으니까 너는 다른 사람과같이 그렇게 힘쓰지 안해도 너는 된다. 또 너는 후천적으로 이런 장점이 있으니까 너는 그런 것 없는 그런 사람과같이 그렇게 힘쓰지 안해도 된다 하는 요 미혹으로써 사람은 전부 멸망받습니다.

너는 나기 전에, 벌써 날 때부터 너는 머리가 좋게 났고, 또 총명이 있도록 나왔고, 지혜가 있도록 나왔고, 신체가 좋고 용모가 좋고 이러니까 구원 얻는 데는 이거 가지고 한 몫 본다. 그러기 때문에 뭐 머리도 나쁘고, 용모도 더럽게 생겼고, 또 총명도 지혜도 없는 그런 사람 일 년 내 가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가서 뭐 새벽 기도 엎드려서 울고 하는 그것보다 너는 하루 아침만 가도 네가 그보다 뭐 아는 것이나, 느끼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이나 다 될 수 있다 이래 가지고 꼬웁니다. 그 마귀란 놈이 그렇게 꼬웁니다. 고거는 순전히 마귀 꼬움입니다. 여러분들에게 그런 생각이 들 때에는 그거는 마귀 생각입니다.

또, 후천적으로, 그거야 배움의 문 앞에도 가 보지 못했고, 국민학교도 가 보지 못했고, 한글도 잘 모르고, 또 그가 이런 저런 모든 수양도, 체험도, 경험도 하지 못했고 한데 너는 오만 것 하지 안했느냐? 너는 지금 최고의 학을 수료했고, 또 온갖 광문 다학으로 수양을 했고, 또 세상의 이치라 하는 것은 다 네가 배워서 알았고, 이러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일자무식 그저 나고 난 후로부터 그저 일이나 하지 아무것도 모르는 그런 사람에 비하면 너야 그 백 배 천 배 낫지 않느냐?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밤낮으로 산에 가고 뭐 또 예배당에 가고 또 울고 불고 간구하고 하는 그런 것보다 너는 한 달에 한 번쯤만 나가도 뭐 그 사람들 한 달 내내 간 것보다 네가 아는 것도 더 알 수 있고, 배우는 것도 더 배울 수 있고, 깨달은 것도 더 깨달을 수 있기 때문에 된다,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하는 고 생각 나오는 고놈이 마귀가 그라는 것입니다. 요거 여러분들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서부교회는 박사가 절단입니다. 자꾸 이 박사들을 살리기 위해서 하는데 그 박사들이 듣기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내가 모르겠습니다. 박사들이 듣기 싫다는 그런 말은 내가 아직까지 간접으로나 직접으로나 듣지를 안했지마는 그것을 소화를 잘 하느냐 하는 염려는 항상 됩니다.

그러면, 박사 말하는 것은 박사 아니라도 자기의 후천의 모든 자격을, 선천 자격을 자기의 자격으로 알아서 그거 하니까 열심히 안 해도 된다, 충성 안 해도 된다 하는 그렇게 생각하는 그런 것을 깨우치도록 하기 위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구원은 아주 못나도 됩니다. 앉은뱅이도 됩니다, 누운뱅이도 됩니다.

벙어리도 됩니다. 귀머거리도 됩니다. 소경도 됩니다. 자기에게 자격이 있는 그거 가지고 네 가지를 하면은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는 뭐이냐? 하나는 성령 세례 받기 위해서 고난을 참고 견디면 성령 세례 받습니다.

성령 세례 받는 데에는 예수님의 내 대신 죽고 사신 이 공로를 인해서 내가 이 공로를 벗지 안할라고 함으로써 어려움당하는 그 어려움과,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벗지 아니할려고 함으로 당하는 그 어려움과,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벗지 않기 위해서 당하는 어려움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가? 예수님이 내 대신 고난받은 것은 여섯 가지 때문에 고난받았습니다. 하나는 세 가지 죄 때문에 고난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어긴 것 하나, 또 제 마음대로, 제 욕심대로, 제 주장대로, 제 중심으로 산 것 하나, 또 마귀 그놈하고 하나님 배반하고 합작한 그 하나, 그러면 이 세 가지 죄를 예수님이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서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이 죄를 없이 해 주셨기 때문에 이제는 이 세 가지 죄를 안 지을려고 하는 고난입니다. 뭐 학박사도 소용 없고, 앉은뱅이라도 이 세 가지 죄를 안 지을라고 하는 고난당하는 것.

또, 하나는 자기가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고, 또 영감대로 자기가 행하고 이렇게 하는 것 이 두 가지입니다.

그러면, 아까 셋을 안 한 그 하나, 또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영감대로 사는 것, 영감대로 사는 것은 하나님하고 동행하는 것이요, 하나님하고 서로 내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계시는 걸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신다 그랍니다. 하나님과 동거 동행은 성령과 동거 동행하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과 동거 동행입니다. 성령님과 화친한 것이 하나님과 화친한 것입니다.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또 성부의 영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 세 가지를 자기가 배반치 아니하고 가질라고 함으로써 오는 고 고난이 있어야 되지 그 고난 받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그 고난이 있어야 됩니다.

그라면, 뭣 하는가? 그라면은 성령 세례 받습니다. 성령 세례 받다니? 그렇게 예수님의 대속의, 크게 말하면 죄 세 가지를 범하지 안할라고 하는 것, 또 진리와 영감대로 살려고 하는 것 이것을 내가 행하기 위해서 오는 고난 그 고난을 피하지 안하고 그 고난이 어떻게 어려워도 내가 이 세 가지를 그대로 지켜 행하면 성령이 우리에게 옵니다.

성령이 내게 오게 하는 데에는 이 세 가지 사죄, 칭의, 화친 이 세 가지를 내가 지켜 행할라고 힘을 쓰고 지켜 행할라고 하니까 내 밖에서 나를 지켜 행하지 못하게 방해하고 박해하는 것이 있고, 내 안에서 박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내 밖에서는 말씀을 어기지 안할라고 하니까 세상이 박해를 줍니다.

자기가 학생으로서 주일날 공부하지 안할라고 하니까 쫓겨나고 뚜드려 맞고 이래 가지고 있는데 이거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그런 것을 권찰들이 와서 나한테 묻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걸 뭐 밥을 줘야 됩니까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라면서 그런 것을 묻는 그런 권찰들이 많습니다.

그럴 때에 줘야 될 때는 내가 주라 하고서 또 안 줘야 될 때는 안 주라 하고 그렇게 좀 더 그래도 들어가서 맞으면서도 들어가서 밥 먹고 맞으면서도 들어가서 또 학교 다니고 또 그래 하라 하는 거는 또 그래 시키고 아예 그게 공부하는 것이 아닌데 공연히 그래 가지고 그런 것은 네가 그 공부 치워 버리고 그만 어데 직장에를 들어가든지 그래 해 버리고 그런 데 빠지지 말아라 하는 그런 것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너는 공부하고 하나님하고 바꾸는 게 되기 때문에 공부 그까짓 걸 못 해도, 네가 공부로 뭐 ‘내가 모든 대학 중에 제일 좋은 대학 내가 서울 대학에 내가 입학을 하겠다. 서울 대학에 입학을 하되 제일 어렵고 좋은 과에 입학하겠다.’ 그거는 뭐이냐? 공명심이요, 제 공로와 명예심에서 하기 때문에 순전히 마귀 고놈이 주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서 그거 하기 위해서 거게다가 전심 전력 기울이니까 예수 믿는 거는 자연히 등한히 됩니다. 암만 제가 뭐 한다 해도 그거는 예수 믿는 건 껍데기로 허투리 하고 속에 알맹이 성심 성의 정신 그 모든 것은 다 거게 기울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집어 던져 버렸습니다. 그래 가지고 위대하고 소망 있는 사람들이 비참하게 된 것 뭐 얼마나 많애? 여러 수천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세 가지 공로 이것을 안 벗을라고 입고 살려고 함으로 말미암아 오는 고난이 있어도 벗지 안하고 이 세 가지를 벗지 안하고 입고 살라고 함으로 말미암아 오는 이 안팎의 고난, 안의 고난은 뭐인가? 안의 고난은 자기 중심으로 살지 안하고 자기 중심으로, 제 마음대로, 제 뜻대로, 제 욕심대로 살지 안하고 하나님의 인도대로 살라고 하니까 자기 안에 고민이 나옵니다. 자기 안에 싸우는 게 있습니다. 자기 안에 네가 이라면 안 된다 하는 그 악령 악성 악습의 그 세력이 내 안에 와 가지고 그렇게 살지 못하게 합니다. 다른 사람들 말하지 안해도 내 속에서 지금 둘이 싸웁니다.

이래 볼까 이래 볼까 이렇게 싸우는 고난이 있습니다.

또, 악령을 배척을 하고 성령으로 더불어 살라 하니까 막 안팎에 온 세계가 막 따라서 움직입니다. 주위, 환경, 사회, 학교, 가정, 모든 친구, 뭐 온 세계가 달라들어 가지고서 나를 지금 고민케 합니다.

이렇게 하는 이놈이 와도, 이 어려움이 와도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아라. 이 네가 세 가지를 벗지 안할라고 세 가지를 지킬라고 함으로 말미암아 안팎에 고난이 오고, 안팎에 미혹이 오고, 안팎에 협박이 오고, 안팎에 있는 아는 사람 전체가 똘똘 다 뭉쳐 가지고 달라듭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자기보다 믿음이 어린 것들은 다 달라듭니다.

자기가 만일 그 가정에 있으면은 자기 아버지가 장로고 자기 어머니가 뭐 권찰되고 이란다 할지라도 만일 그 아이가 신앙 제일 나으면 그 아이가 신앙대로 살라고 할 때에 권찰도 방해하고 장로도 방해하고 목사도 방해합니다. 목사도 그 자녀가 신앙대로 살라 할 때에 못 살도록 합니다. ‘그거 네가 그라면 안 된다.

그렇다 해 가지고 네가 뭐 주일날은 지키지마는서도 네가 새벽 기도를 꼭 참석할라고 이라고 하니까 네가 언제 공부 해 가지고 네가 되겠노?’ 이래 가지고 목사들도 새벽 기도 나가는 걸 반대합니다.

또, 공부하고 난 다음에 보니까 벌써 주일날은 열 두시부터 공부해 가지고서 벌써 네시 반이나 네시쯤 되어 가지고까지 공부를 다 이제 끝을 내고, 숙제를 끝을 내고 누워 자는 것이 찍 해야 잠든 것이 한 시간 들었는데 마구 정신 없이 자고 있는데 아버지 어머니가 ‘나를 꼭 새벽 기도에 깨워 줘야 됩니다. 안 깨워 주면 안 됩니다. 깨워 줘야 됩니다. 해도 깨울라고 보니까 너무, 공부하는 것 뻔히 알고 있고 잠 못 잔 것 알고 있는데 오늘도 학교 갈 것인데, 그게 지금 달게 그렇게 자고 있는데 한 일곱시 반쯤이나 일어나면 몇 시간 잘 터인데 그 깨워 달라 하지마는서도 깨워 주기가 참 애처로워서 안 됐다 그말이오.

이러면, 그 어머니 속에서도 둘이 싸웁니다. 깨워 볼까 말아 볼까, 깨워 볼까 말아 볼까 이라다가 결국은 깨우지 안하고 그만 그대로 둬 두고 있었다 그말이오.

그러면, 그 아이는 피곤해 자 가지고서 일어나 가지고서 짜증을 지기고 그 원망을 하고 깨워 달라고 하니까 깨우지 안했다고 뭐 울며 불며 저는 벌써 시간 됐기 때문에 그날 패전했으니까 그거 뭐 학교에 가도 기분도 나지 안하고 자기에게 번연히 하나님의 성령이 지혜와 총명을 안 주는 게 뻔하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이래 가지고, 그래 내가 며칠 전에도 어떤 사람을 만나 가지고 말했습니다. 그 자녀를 죽이는 것은 꼭 아버지 어머니가 죽이지 다른 사람이 죽이지 않는다. 그다음에는 학교 선생이 죽인다. 그다음에는 친구가 죽인다.

가까운 자가 죽이기 때문에 네 원수가 집안 식구리라 하는 것은 가까운 자가 네 원수리라 이렇게 말했다는 말을 거게 대해서 고대로는 안 해도 그런 뜻으로 내가 말한 일이 있습니다.

이래서, 옛사람은 죽이고 새사람으로 살기 위한 요 소망, 옛사람은 죽이고 새사람으로 살기 위한 요 소망 요것을 이루기 위해서 무슨 준비하느냐?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을 벗지 아니할라고 입고 살라고 하니까 고난 옵니다. 이 고난, 고난 와도 벗지도 안하고 입고 사는 요 일을 계속합니다. 요것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안하고 고난당하는 것입니다. 요렇게 하니까 성령이 옵니다.

인제 요렇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안하고 아버지의 허락하심을 기다리라 하는 예루살렘 떠나지 안하는 고난이ㅡ요 성경을 바로 딱 깨달아 요거다 확고하게 잡아야 되지 억지로 끌어다 붙인 해석이라 이래 돼 버리면 지금은 긍정한다 해도 죽을 판이 되면은 긍정 안 해요.

이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대속해서,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대속해서 사죄, 칭의, 화친의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고, 또 이 대속의 공로로 영원히 살도록 하기 위해서 삼 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죽고 부활하신 이 대속의 공로를 지금도 ‘내가 모른다. 나와는 상관없다.’ 부인해 버리면 당장 저거 친구돼요.

이런데, 부인하지 안하고 이 공로를 입고 살라고 함으로 그 당하는 예루살렘의 고난인데 오늘 우리도 입고 살라고 하면은, 벗지 안할라고 하면은 오는 고난이 있다 말이오.

그때 그 고난은 그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고 그때 고난을 벗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하는 대로 성령 세례를 받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오늘 우리도 이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오는 고난 이 고난을 벗을라 하면은 이 대속의 공로를 벗어 버려야 되는 것이고, 이 대속의 공로를 입고 있으면 필연적으로 이 어려움은 우리에게 계속하는 것이니까 계속해도 성령으로 세례 받기 위해서, 세례라는 것은 옛사람은 죽게 새사람으로 사는 요 소망을 인해서 요 고난을 받는 것 요것이 성령 세례 받는 일입니다.

요 두 가지가 있어야 돼. 대속 때문에 고난 받는 것, 대속 때문에 고난 받는 것, 또 세례받기 위해서 기다리는 것, 세례받기 위해서 기다리는 것, 세례 받을 소망, 세례 받기 위한 소망, 대속 입고 살기 위한 고난 요 두 가지가 우리에게 있어야 됩니다. 요 두 가지가 없이는 성령 세례 받는 길이 없습니다. 뭐 다른 데는 성령 세례 받는 길이 아무데도 없습니다. 요것뿐입니다.

이런데, 무슨 박사들이 이 고난 받습니까, 또 고관대작들이 이 고난 받습니까, 부자들이 이 고난 받습니까, 잘난 사람들이 이 고난 받습니까, 대 사업가들이 이 고난 받습니까? 제 마음대로라. 제 하고 싶은 대로 제 솜씨껏 날뛰고 솜씨껏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고난을 받는 사람은 이게 될 수 있는 사람도 이거 되고는 이거 못 하기 때문에 이거 내놓고 이거 합니다. 자기가 머리 써서 사업하면은 누구보다도 재산을 확 거머닥칠 수 있지마는서도 이것 때문에 그거 다 포기하고 합니다.

알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와 내 도를 인해서 부모나 형제나 자매나 처자나 전토를 손해 본 자는, 손해 본 자는, 이거 할라니까 손해 본다 말이오. 손해 본 자는 뭐라 했습니까? 손해 본 자는 금생에? 여러 배 백 배 받는다 말이오.

그란다고 해서 주님이 이 당신 위해서 하는 이렇게 고난당하는 사람은 사람이 됐는데 이 사람에게 당신의 모든 축복과 은혜를 맡기지 안하고 누구에게 맡기겠소? 이 사람은 영도 잘되고 육도 잘되고 다 잘됩니다.

그러기에, 성령 세례받는 데는 두 가지, 성령 세례는 이게 소망돼야 됩니다. 성령 세례보다 돈이 더 소망돼도 헛일이오. 성령 세례보다도 더 큰 소망이 있으면은 그리 기울어집니다. 공부가 더 큰 소망이 있으면, 소망되면 그리 기울어집니다.

어떤 사람은 유명한 부흥사가 되기 위해서, 어떤 사람은 교회가 세계 제일 큰 교회가 되기 위해서 그런 것도 다 소망이라 말이오. 그 세계 내가 제일 큰 교회를 내가 만들겠다 해 가지고서 그거 만들기 위해서 소망하는 소망이 좋은 소망 아닙니까? 그거 나쁜 소망이요? 말해 봐. 나쁜 소망이라? 예? 좋은 소망이지.

그거 나쁜 소망으로 생각하는 분 손 들어 봐요. 좋은 소망이라고 생각하는 손 들어 봐요. 좋은 소망이요, 좋은 소망. 좋은 소망입니다.

그런데, 성령 세례 받는 것보다 더 좋은 소망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보십시오. 그 소망이 천하에서 이등 가는 소망이지마는서도 일등 소망이 아니라 그말이오. 그것보다도 자기가 성령 세례 받기를 더 소망하는 소망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요걸 조직적으로 요 똑 체계적으로 요렇게 똑똑히 알아야 되는데 뭐 범벅으로 이래 가지고 예수 믿는 걸 좋아하지, 범벅 설교를 좋아하고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고 범벅 지도를 좋아하지 딱 딱 콩 팥 요것을 구별 해 가지고서 딱 쪼개서 요렇게 하는 거는 싫어한다 그말이오.

이 성령 세례 받는 이 소망은 돈 소망보다도, 권세 소망보다도, 명예 소망보다도, 지위 소망보다도, 가족 소망보다도, 자기 건강 소망보다도, 자기 육체의 생명 소망보다도, 큰 대교회 이루는 소망보다도, 그것 다 좋지마는서도 그것보다도 내가 성령으로 세례 받는 것, 성령으로 옛사람은 죽이고 새사람으로 사는 요 소망을 제일 소망으로 가지고 요 소망을 이룰 수 있는 준비인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벗지 안하고 입고 살라고 함으로 말미암아 오는 모든 박해 고 박해를 받아도 예수님의 대속을 벗지 않는 요 준비가 있어야 되고, 그러면 이 준비는 고난으로 준비한다 말이오. 고난을 피할라 하면 안 돼요. 고난으로 준비해요.

이 준비함으로 고난이 옵니까 고난으로 준비를 합니까? 어짜요? 고난으로 준비해야 됩니까 이 준비함으로 고난이 옵니까? 준비를 함으로 고난이 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고난을 견디라 말이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마라. 이 고난을 견디라 했어.

이 두 가지 있어야 되고, 또 성령의 권능 얻어서 예수님의 증인되는 것, 예수님의 증인되는 이거, 성령의 권능 얻어 가지고 예수님의 증인되는 것, 우리가 또 우리의 소망이 뭐이냐? 예수님의 증인되는 것. 성령 세례 다음에는 예수님의 증인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편 17편에 세상에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서 이런 것 저런 것 많이 부강해 가지고서 이 부강한 것으로 자기 먹고 쓰고 남는 거는 자녀에게 주고 그것으로 만족하지마는서도 나는 깰 때에, 뭐라 했습니까?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온 천하보다 주의 형상이 더 좋아. 주의 형상이라는 말은 주님의 증인, 주님의 증인, 주님의 증인 그것이 좋아.

주님의 증인은 전 시간에 많이 말하지 안했습니까? 크게 말하면 세 가지가 준비가 돼야 주님의 증인노릇 합니다. 주님의 증인노릇은 주님이 많이, 많은 어려움의 희생으로 가지고서 내게 구원 주셨으니 주신 내 구원을 보존할라 할 때에는 이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되고, 이 구원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 줄라 하는 데도 내가 이 많은 고난을 겪어서 전해야 되지 그리 안 하면 전해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이거 해 가지고 승리했기 때문에 아버지 우편에 앉았는데 우리가 이거 해서 승리하면은 주님의 보좌 우편에 앉습니다. 그러면 주님은 천상 천하에 제 이위를 차지했고, 또 우리는 몇 위 차지합니까? 우리는 몇위 차지합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삼위, 세째 위. 이러니까 이 준비를 해야 되는데 이거 뭐 아직까지도 여러분들이 모르니까 얼마나 지금 말을 내가 해 줘야 될란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내가 이 찬송을 펴 가지고 있습니다. 펴 가지고 있는데 시간이 갔어.

십자가로 가까이 하는 이거, 십자가는 무슨 십자가입니까? 이 십자가는 곧 우리가 세례 받기 위한 준비 십자가요, 준비 십자가. 또 우리에게 주신 이 구속을 보수할라 하는 십자가요, 이 구속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줄라 하는 그 십자가요, 그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

2절에 ‘십자가에 가까이 내가 떨고 섰네’ 왜 떨어? 무서워서 떨고 섰어요? 무서워서 떨어요 어째 떨어요? 무서워서 떱니까 이 십자가 고난 벗을까 싶어서 떱니까, 십자가 고난이 무서워서 피할라고 떱니까 이 고난을 제가 벗어 버릴까 싶어서 떱니까 어째 떱니까? 벗어 버릴까 싶어서 떠는 것이오. 유혹이 많기 때문에. 벗어 버릴까 싶어서.

성도들이 장기간의 고문과 고형 가운데 그때에 내가 혀를 잘못 놀릴까, 공산주의 그런 사람들은 썩어질 아무 소망도 없는 꼬임에 받아 가지고도 이 자기 혀 잘못 놀려 가지고서 이제 공산주의에 대한 그 운동을 방해하는 잘못된 자복이나 그런 비밀이나 말해 줄까 싶어서, 내가 그걸 지금 그 산을 잊어 버렸어요. 여기 위천에 있는데, 무슨 골짜기니라, 그 골짜기? 위천에 거기 내나 빨갱이 많은 골짝 그 골짜기 이름이 뭐라? 거게서 방위대들이 공비 여인 하나 붙들었는데 여인 하나 보니까, 저 건너 여인이, 인제 포위해 가지고 들어가니까 나섰는데 어떻게 미인인지 그 모든 방위대들이 이 전부, 전부 다, 우리가 살려 주겠다, 살려 주겠다고 하고서 다 살려 주겠다고서 뭐 모두 다 뭐 맹세하다시피 다 살려 주겠다고 이렇게 말해도 고 여인이 나오더니마는서도 혀를 요래 딱 내물더니만 돌에다 대고서 콱 요라니까 혀가 딱 똥그라져, 혀를 낼 대로 다 내 가지고 콱 그러니까 혀가 딱 똥그라져 버렸어.

그라고 난 다음에 붙들었지마는 말을 못 해. 말 못 해. 자기가 거기다가 자기 본의 아닌 말을 안 할라고서 그렇게 해.

소망 없는 것도 그런데 오늘 우리 믿는 사람들이 이렇게 어려움, 대속 때문에 어려움 오면 대속 벗을까 싶어서 그래 떱니다. ‘내가 떨고 섰네’ `십자가에 가까이 내가 떨고 섰네’ ‘떨고 섰네 거기 있는 계명성 내게 비치시네' 거기 있는 계명성이 뭐이지요? 그 계명성을 뭘로 배웠지요? 여기 ○ 조사, 계명성은 뭐 뜨기 전에 나오는 거라요? 새벽 별을 계명성이라 합니다. 그 계명성은 뭐 뜨기 전에? 샛별이, 샛별 내나 또 딴 데는 샛별이라 했다 말이요, 샛별. 샛별은 새벽별.

새벽별은 해가 돋는다는 지금 신호입니다. 새벽 별 나오고 난 다음에는 이제 해가 옵니다. 해는 주님 아닙니까? 성령이 내게 임하면 그다음에 따라서 주님이 내게 임하십니다. 성령 영접하면 주님 영접합니다.

이러니까 ‘거기 있는 계명성 내게 비치시네’ 이렇게 이 십자가 안 벗을라고, 십자가 이 고난 안 벗을라고, 예수님의 대속을 벗지 않고 입고 있을라고 함으로써 고난, 성령 세례 받을려고 함으로 인한 고난, 예수님의 증인될 수 있는 권능 받을라고 하는 고난,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려고 하는 고난 이 고난을 벗어서 버릴까 해서 벌벌벌 떨면서, 고난이 오니까 두려운 게 아니라 고난 벗을까, 고난 벗는 자, 고난이 어려우니까 고난 벗는 자 될까 싶어서벌벌 떨며 있으니까 성신의 감화가 왔다. ‘거게 있는 계명성 내게 비치시네’ 영감이 내게 오니까 기쁘고 즐겁습니다. 이걸 말하는 것이오.

그래서 이걸, 또 3절에 ‘십자가로 가까이 행케 하옵소서’ 이 고난, 이 고난의 걸음을 뿍뿍 걸어가게 하옵소서. ‘몸소 받은 고생도 알게 하옵소서’ 주님이 나에게 대속 주시기 위해서 얼마나 고난을 받으셨는가, 그러면 내가 이 대속 주시기 위해서 이런 고난 받았으니까 나도 이 대속을 이 고난을 받아도 보존해야 되겠고 나도 또 이 대속을 이 고난으로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야 되지 고난 없이 내가 전할라 해서는 안 된다 하는 그것이라 말이오.

그러니까, ‘몸소 받은 고생도 알게 하옵소서’ 내가 자꾸 그 생활하고 있으니까, 주님의 고난 받은 것, 내가 받은 것 그 요만침 받았으면 주님은 그 억억만 배도 더 되게 고난 받은 것을 내가 체험할 수 있다 그말이오 그러기에, 자기가 예수님의 이 대속의 고난, 증인의 고난 이 고난을 겪지 못 한 사람은 예수님의 고난을 제가 느끼지 못합니다. 체험하지 못합니다. 절대 못 합니다. 안 돼요. 논리로 암만 해 봤자 소용 없어.

‘십자가에 가까이 의지하고 서서 게서 천국 가도록 항상 머물겠네’ `의지하고 서서’ 의지는 뭐? 내가 고난당하지마는 주님 나 위해서 어떻게 고난당해 가지고서 어떻게 해 주셨고, 또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데 주님 내게 전해 주기 위해서 이렇게 고난당한 그 고난을 내가 생각하니까, 예수님이 날 위해서 당한 그 고난을 생각하니까 내 고난은 그까짓 것 소분지라. 예수님이 날 위해서 고난당하신 그 고난을 생각하니까 내 고난 이까짓 거는 아무것도 아니라.

또, 예수님이 내게 이렇게 구원하시기 위해서 고난당한 그 고난은 당신에게 아무 상관없는데 날 구원하기 위해서 그렇게 고난당했는데 나는 나를 구원하신 이 구원을 내버리지 않고, 구원을 뺏기지 안하기 위한 고난이니까 이 고난은 예수님의 고난과 달라. 또 이 고난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전하기 위해서 하는 그 고난, 그 고난에다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오.

이러니까, ‘십자가에 가까이 의지하고 서서’ 의지하는 것은 예수님의 고난 생각하니까 내 고난이 그까짓 것 아무것도 아니라 그말이오. 예수님의 고난 생각하니까 내 고난이 아무것도 아니라. 그러기에 예수님의 고난을 의지한다 말입니다. 예수님의 고난 생각하니까 내 고난이 아무것도 아니라서 다 성도들이 고문과 고형의 어려움을 당할 때에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함으로 그 고난이 아무것도 아닌 그것으로서 승리하지 안한 사람 하나도 없어. 전부 그것으로 승리했습니다.

제가 왜정 말년에 감옥에 갔다 온 사람들도 내가 만나 봤는데, 많이 만나 봤는데 그 사람들에게, 내가 다른 사람은 냅두고 영익목사, 영익목사가 그때 경찰서에 잡혀 갔습니다. 잡혀 가고 이랬는데 그는 잡혀 가고 이랬는데, 나는 싸우기만 싸웠지 그때 잡혀 가고 뭐 그렇지 안했어. 싸우기만 싸우고, 나는 어째 하나님이 그때 내비뒀어. 뭐 이래 이때 지금 이 증거하라고 그런 모양이라. 뭐 그렇게 신사 참배를 반대하고 일본 부장하고 뭐 싸우고 막 메어 때리고 이래도 어짜든지 나는 그때 하나님이 허락지 안하니까 잡혀 가지를 안했다 말이오.

안 하고서 제가 있는 교회의 교인은 신사 참배 한 사람도 안 했어. 개명교회는 신사 참배 하나도 안 했어. 여기 저 가만 있어. 여기 박봉선씨 여기 있어? 그때 신사 참배 했어? 신사참배 하는데 가지도 안했어. 잡으러 오지도 안했어.

하나님이, 기이합니다. 그거 내가 뭐 잘해 이긴 거 아니라 당신이 쓰시기 위해서 더럽히지 안할라고 그와같이 한 거라.

내가 동방 요배 그런 거 내가 알았소? 그런데 동방 요배 다 일어나 섰는데 이거 동방 요배를 하는 그래해야 된다 하니까 어쩐지 아니꼬와서 앉고 싶어서 앉았다 말이오.그래 그 예배당에 많은 사람 가운데 그때 앉은 사람은 나 하나뿐이야. 안 하고 앉은 사람은 나 하나뿐이라. 하나님이 당신의 이 복음을 위해서 그때부터 간수해 두셨다 그말이오.

그런데 그 영익목사 잡혀 갔는데 그 뚜드려 맞고 그래 신사 참배 안한다 하고서 원청 거석하니까 나왔어, 항복을 안 하고 나왔다 말이오. 항복 안 하고 나왔는데 내가 물었어, ‘그래, 너 그라면 그래 맞을 때에 어떻더노?’ 예수님이 나 위해서 고난당한 그 고난을 생각하니까 아픔이 다 물러가서 늘 예수님이 대신 맞아 준다 하는 그 말을 나는 믿지 안 했는데 요번에 경험을 했다고.

그렇게 그들이 막 마구잡이로 때리는데 하나도 아프지도 안하고 그 속으로는 ‘주님이 나 위하여 고난당하셨으니까 이거 주님 위한 고난이요, 주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다. 좀 더 때렸으면 좋겠다.’ 싶어서 좀 더 때릴까, 아프게 때릴까 암만 생각해도 아플란가, 또 아플란가 또 아프지 안하고, 아플란가 또 아프지 안하고, 도무지 아픈 꼴을 못 봤다고 그래 말해요. 그 떡이 돼서 나오기는 나왔는데 아픈 꼴 못 봤다 더 어째 그만 좀 아프도록 좀 때려주었으면 주를 위해서 좀 아파 봐야 될 터인데. 아파 봐야 될터인데 아픈 꼴을 당하지 못했어.

그것이 뭐이냐? 그 주님의 고난을 의지함을 인해서 다 그게 되는 일이라 그말이오.

그래서, 이 찬송 뜻을 내가 말할라고 이래 했는데, 이래 펴 놨었는데 그만 시간 다 갔어.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꼭 예수 믿는 사람은 예루살렘ㅡ딴걸 하면 모르니까ㅡ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허락하심을 기다려라, 몇 날이 못 되어서 너희들이 세례 받으리라, 이것은 내가 너희들에게 분부하는 것이요, 또 이제 하나님께서 너희들에게 약속하신 말씀이다, 믿고 자기가 참고 견디면 되는 것이라.

또 너희들의 소원 다 버리고 예수님의 증인 노릇하는 이것만을 유일의 소망으로 삼으면 된다 하는 요거 잊어 버리지 마.

요거 매일 가억하고, 이 설교를 할라 하면은 뭐 여게 대한 것을 얼마를 나가야 될지, 해야 될지 모릅니다. 뭐 하다가 엔간하게 말겠습니다. 자기가 자꾸 깨달아져서 여게 대해서 무한히 깨달아지는 것 있어야 돼.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산에 가든지 어데 가든지 가 가지고서 집에서든지 성령을 만나면 심령이 밝아져 가지고서 알고 알고 알고 알아서 모든, 우주를 다 알아서 우주 그까짓 것 보면은 딱 요거 똑 계란 한 개 같애.

이렇게 보여지는, 우주를 다 포위하고 우주를 내가 포섭하고 이걸 내 속에 집어 넣어도 우주 그 까짓 거 뭐 억억만 개 집어 넣어도 찰 수 없는 이런 큰 자가 되어지는 것이 우리인 것입니다. 성령이 오면 이렇게 돼져.

이러니까, 하나님의 창조하신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통치할 수도 있고 관리할 수도 있고 그걸 얻을 수 있지만 그까짓 것 다 소유하고 마음에 안 들어.

그거 다 준다 해도. 꼭 이제 자존자 하나님, 삼위 일체 하나님을 내 하나님 삼아야되지 그 외에는 아무 바랄 것 좋을 게 하나도 없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여러분들, 환난이 가까왔습니다. 어짜든지 기도 많이 해야 돼요. 기도 많이 하고 전도 많이 해요. 전도하는데 전도지 박으라고 들어온 사람이 일호에 이십 오만 원 들어왔고, 이호에 이십 오만 원 들어왔고, 삼호에 이십 오만 원 연락 왔고, 또 사호에 또 십만 원 개인이 들어왔고 이래 들어와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그 전도지 박아 가지고 가지고서, 아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양이라. 자꾸 전도지 박아서 해 달라고 그렇게 연보가 자꾸 들어와요.

들어오는데, 이래 가지고, 어서 그거 하이소. 내가 다른 광고할 때 그리 안 했는데, 아이 다섯 사람 어른 다섯, 사람 열 사람 요것은 자기가 기도의 제목으로 정하는 고 열 사람입니다.

그 열 사람인데 그만 자기 혈육적으로, 또 자기 취미적으로, 또 자기의 무슨 가까운 이웃적으로, 또 자주 만나는 것으로, 또 직장으로 이렇게, 마지막에는 뭐이라? 마지막에는 어떤 사람이라요? 원수, 마지막에는 원수, 자기와 제일 먼 사람, 이렇게 해서 중학교 이하로 다섯 사람, 또 고등학교 이상으로 다섯 사람 열 사람 기도 제목으로 정해 놓고 이 전도지 박이거든 하루 몇 사람 이하 전해야 돼요? 스무 사람 이하. 그거는 뭐 이상은 마음대로 하지마는서도 잘못하면 남용하기 쉬워. 기도 많이 하고 이래 가지고서 스무 사람씩 전하는데, 스무 사람 더 많이 전하는 거야 상관없지 않느냐? 스무 사람 이상으로 전해서 이상으로 벗어나가는 것, 또 스무 사람 했는데 이하로 내려오는 것, 올라가는 것 내려가는 것 어느 것이 좋습니까? 꼭 같이 나빠. 꼭 같이 나빠.

그거 알아야 돼요. 내가 오십 호씩 전도하라고, 백 명 이하 되는 교회는 오십 호씩 전도해라. 또 좀 열심 내면 삼백 명 이하 되는 교회는 매일 오십 호씩 호별 방문 전도를 해라. 그 전도하는 데에 전도하다가 요 마을에 전도하니까 마흔 아홉 집을 전도하고 한 집이 모자랍니다. 한 집이 모자라는데 한 집을 더 갈라 하면은 거기서 한참 날은 저문데 동네 한참 걸어가야 있으면은 ‘아이고 내일 한 집 더하면 되지’ 그게 마귀 유혹이라. 알겠어? 그럴 때에 한 집 때문에 가. 한 집 때문에 갔어. 갔는데, 한 집 때문에 갔으면은 한 집 전도하고, ‘여기까지 왔다가 한 집 전도하기는 아깝다’ 보니까 있으니까 거기서 한 집 더 해서 쉰 한 집 했어. 쉰 한 집 그게 유혹이라.

마흔 아홉 집도 안 되고 쉰 한 집도 안 되고 고 쉰 집은 쉰 집 고것을 자기 혼자 결정했지마는 고것을 꼭 시종 일관으로 한번 시행을 해 보라 말이오. 거게서 자기라는 사람이 요 진리 형틀에 딱 들어맞는 요 사람으로 만들어지고, 긴 거는 끊고 짧은 거는 잇고 이래서 진리대로 이래 사람 요 진리의, 성령의 형틀 속에 딱 드는 성령적인 사람,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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