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지혜

 

1981. 4. 14. 새벽(화)

 

본문 : 누가복음 16장 8절-9절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부자의 일을 책임 맡은 청지기가 이런 형편을 당했고 또 이렇게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이렇게 하지 않을 청지기는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택한 자들은 이와 꼭 같은 형편이라도 이렇게 하는 사람들이 많지를 않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는 안 믿는 사람들이 믿는 사람보다 더 슬기롭다고 한  것입니다.

 믿는 사람은 이보다 더 확실한 입장과 처지에 있어도 이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지만 세상 사람들은 이런 형편에서 이렇게 하지 않을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주인이 '이제 너는 우리 집에서 사면하고 나가야 된다' 하니까 쫓겨나면 힘이  없어서 노동도 못 하고 또 나가면 비참하게 될 것이니까 기가 찹니다. 그래서  밤새 생각하다가 아직까지는 부자의 것을 마음대로 얼마라도 할 수 있는 권세가  있으니까 그 권세를 어떻게 활용을 하면 유익이 될 것을 알았습니다.

 부자의 것을 도적질해서 나가면 붙들리게 되고, 또 아무리 알뜰하게 해도  이튿날이면 쫓겨나갈 것이고, 앉아서 아무리 먹는다고 해 봤자 얼마 먹지도 못할  것이고 다만 길은 빚진 사람을 불러다가 빚 탕감해 주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즉시 빚진 자들을 연락해서 불러 놓고 '내가 쫓겨나면 이렇게 많은 빚을  탕감해 줬으니까 탕감 받은 사람들이 얼마만큼이라도 대접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으로 날이 샐 때까지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자기가 맡은 부자의 재산  중에서 한 10분지 2. 3 정도를 법적으로 걸리지 않도록 돌렸습니다.

 그러면, 안 믿는 사람으로서 이런 입장을 만났다면 만 명 중에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이렇게 할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십시오. 안 믿는 사람 쳐놓고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이 바보입니다.

 이런데 우리는 이것보다도 더 확실한 입장을 가졌습니다. 몸이나 소유나  마음이나 능력이나 지혜나 언변이나 온갖 기능, 사업이나 권세나 직장  무엇이든지 주님의 구속으로 인한 것들이요, 청지기가 부자의 것을 보관하는  것보다 더 우리는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산 주의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지금은 얼마든지 우리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죄짓는 데  사용할 수도 있고 의롭게 사용할 수 있으나 일단 세상을 떠나면 세상에서 바로  사용한 것만 무궁세계에서 영원히 가질 수 있고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억억만 년이 가더라도 감해지거나 변동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잘못  사용된 것은 영원히 만나지 못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주님이 피로 값 주고 구속해서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을 입혀 가지고 우리에게 주신 것인 줄 알고 주의 뜻대로 쓰면 그것은  영원히 우리가 쓸 수 있습니다.

 이렇지만 제 마음 제 생각대로 쓰든지, 묵혀 놓든지 어쨌든지 주님의 뜻대로  쓰지 않았으면 그것은 다시는 만나지 못합니다. 영원한 멸망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면 주님 뜻대로 쓰는 것은 무엇인가? 이 비유에서 가르친 대로 청지기가 빚  탕감해 준 그것입니다. 구속받은 내 소유나 내 마음이나 내 몸이나 내 생명이  하나님 앞에 더 큰 상과 영광과 존귀를 받고, 또 영원히 자기 것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길은 청지기처럼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는 것뿐입니다.

 만인간을 위해서 어떤 구제와 봉사를 할 때 인간 구원의 결과가 되지  않았더라도 그 동기가 인간 구원을 위한 것이면 죽는 데 나가지 않을 것이고, 또  목적이 그렇다면 썩는 데 나아가지 않을 것이고, 또 방편이 주님 시키는 대로  주님의 뜻대로 했다면 썩는 데 나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인간 구원이 됐다면 그것은 참 상당한 존영을 받게 됩니다. 이것을 청지기  비유로 깨우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끝나는 시간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나 자신까지도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산 주의 것이니, 내가 가진 모든 것도 다 주의 것입니다.

 이 청지기가 제 것이 아닌 줄 아는 데서 염려와 걱정이 나왔고 지혜가 생겨났던  것이지, 만일 제 것으로 알았다면 이런 지혜를 연구할 리 없고 배짱을 부리면서  주인이 아무리 건방지다고 해도, '내가 내놓을 줄 아나!' 하면서 그날 밤에  독이나 품지 빚쟁이들을 불러다가 탕감해 줬겠습니까?  청지기가 제 것이라 착각했으면 그날 밤에 주인한테 빼앗기지 않으려고 싸울  연구나 하고 독이나 피우고 악이나 피우고 욕이나 하지, 빚진 자를 불러다가  탕감시키려는 지혜가 나올 리가 없습니다.

 그 지혜가 안 나왔으면 계산 대고 쫓겨나는 것으로 끝이지 무슨 권리가  있습니까? 미친 사람처럼 제 것이라고 해봤자 이튿날 주인이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지, 안 나가면 내쫓든지 법으로 붙잡아 갈 것 아닙니까?   계산을 대기 전까지는 권리가 있어도 계산이 끝나면 털끝만큼도 권리 없는 것을  아니까 걱정도 나왔고 근심도 나왔고, 또 아무 힘이 없으니까 비참하게 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렇게 빼앗긴다는 것과 비참해진다는 이 두 가지 걱정으로 인해서 빚을 탕감해  주는 길을 발견해서 즉시 이행했습니다. 그러니까 주인에게 칭찬 받고 쫓겨난  다음에 영접받고 대접받았습니다.

 오늘 믿는 사람도 이 두 가지를 못 깨닫고 주님 뜻대로 하지 않으면 영원한  멸망뿐입니다. 당신이 대속했지만 당신 뜻대로 하지 않으면 대속은 자연히  벗겨집니다. 법적으로 벗겨지게 되어 있습니다.

 영이 구원 얻고 몸이 부활하는 것은 주님의 공로로 됐지만 건설구원은 행한  대로 갚아 주신다고 했기 때문에 부활할 때의 능력이나 하늘나라의 영광, 존귀,  부요 이런 것은 행한 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는 사람들은 주님의 구속을 받아서 영생 안에 있고 완전 안에  있지만, 주의 구속을 아직까지 입지 못했기 때문에 주님 시키시는 대로 했으면  그것만큼은 주의 구속을 완전히 입은 것이고 그때 이용된 요소는 완전히 구속을  입게 됩니다.

 그러나 주의 구속을 입겠느냐, 이 세상을 입겠느냐 할 때 세상을 입게 되면  죽음으로 바꾸는 것이 됩니다. 이렇게 우리의 모든 요소는 현실에서 죽음과  구원으로 판정이 되는 것이고, 세상에서 주의 구속을 하나도 입지 못했으면 그  사람은 기본구원만 가지고 하늘나라 가기 때문에 비참하고 가련합니다.

 청지기가 땅을 파자니 힘이 없다고 한 것처럼 무궁세계에 가면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세상에 했던 그것을 무궁세계에서 기르고 사는 것인데  세상에서 하지 않은 것을 그때 가서 다시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에게 현실은 '구속을 입을래, 세상을 입을래? 구속을  차지할래, 세상을 차지할래?' 하는 현실입니다. 그 현실에서 세상이 시키는 대로  하는 자는 주의 구속을 입혀 줄 수가 없습니다. 입지 못하면 영원히 빼앗기게  됩니다.

 이 사실을 깨달아서 자기에게 가진 것이 주의 구속을 입지 못하면 헛일이라는  것을 기억하면 그 사람에게는 지혜가 나올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3절에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했습니다.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것은 우리의 영입니다.

 성령의 결과를 입은 영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양자 될 것이라 한 것은 아직 양자가 안 됐다 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육은 구속이 안 됐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안 됐습니다.

 이 구속을 온전히 입느냐? 자기 현실에서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의 구속을 입고  죄를 대적해서 죄 없는 자로, 죄짓지 않는 자로, 의를 행하는 자로, 하나님과  화친 동거 동행하는 자로 통과하면 그 현실 통과에 사용된 요소는 완전히 주의  구속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이 구속을 버리고 죄를 짓고, 주님의 구속의 의를 버리고 불의를  행하고, 주님의 구속의 화친을 버려 하나님을 배반하고 세상과 화친하면서  현실을 지냈으면 그 요소는 다시 두 번 시험이 없습니다. 한 번밖에 없습니다.

 구속을 버리고 세상과 하나 될 때 이용된 요소는 돈이든지 직업이든지 권세든지  지위든지 몸이든지 몸의 기능이든지 말이든지 마음의 기능이든지 언변이든지  총명이든지 목숨이든지 완전히 세상 것이 됐습니다.

 마지막에 그 사람이 주님의 구속을 버리고 세상이 시키는 대로 하다가 생명이  끝났으면 그 생명의 기능은 영원히 죽어 버렸습니다. 육의 생명의 기능은 죽어  버렸습니다.

 그러면 생명의 기능이라는 것은 얼마나 큰 것입니까? 영생을 가졌더라도 육체의  생명의 기능, 손이나 발은 육의 생명을 힘입지 않고는 작용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고깃덩어리의 기능에는 간 기능도 있고, 팔 다리 기능도 있고, 마음 기능도  있고, 총명 기능도 있고, 지혜 기능도 있고, 명철 기능도 있습니다. 이렇게 육의  생명의 기능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는 어느 기능이 제일 큽니까? 생명의 기능이  제일 큰 기능입니다. 이러니까 평소에 잘 믿어도 마지막에 예수님을 배반했다면  그 생명은 예수님의 구속을 완전히 버렸으니 다른 기능이 있더라도 그 기능은  목이 끊어진 것과 같습니다.

 병들어 죽든지 늙어 죽는 것이 예수님 배반하고 죽는 것보다 낫습니다.

그것보다 '세상에 순종해서 살겠느냐 하나님에게 순종해서 죽겠느냐?' 하면서  세상이 위협할 때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으로 생명 끊어지는 것이 1등이요, 이  순교자는 최고의 심신의 기능을 소유하고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구속받은 자기의 소유와 몸과 생명이 어떻게 영원 무궁세계에서  효력을 가질 수 있는지 발견하게 되는 것은 위에서 말한 두 가지를 아는 데서  발견이 되지 이 두 가지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발견이 될 수가 없습니다.

 청지기가 만일 부자의 소유를 제 것으로 알았다면 변호사를 찾든지 어떻게  하든지 빼앗기지 않을 미련한 연구나 했지 꼼짝없이 쫓겨나갈 것이니 오늘 밤에  어떻게 공작할까 하는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오늘 믿는 사람들도 주님이 부르면 그만이요, 또 구속받지 못하면 영원히  빼앗긴다는 걸 느끼지 못하면 제 몸뚱이요 제 생명이요 제 기능이요 제 소유요  제 사업이요 제 권세요 제 기능으로 알아서 제 마음대로 하다가 제게 보관된  것을 완전히 죽이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빚진 자를 탕감시켜 준 것처럼, 우리도 구속받은 것을 세상 떠난 뒤에  영원한 처소에서 대접받고 또 구속하신 분이 기뻐하실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자타의 구원을 위해서 쓰는 것 외에는 없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장사를 하든지 다른 사람하고 이야기를 해도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쓴  것만 영원히 삽니다. 그 외에는 소용이 없습니다. 자기 명예를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장사하는 것처럼, 무슨 운동하는 것처럼 어떤 일을 했다면 주님은  하나도 참고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타의 구원을 위해서 쓴 고것만 책임집니다.

 그러면 자기 구원 또 다른 사람의 구원을 생각하면서 본을 보이고 빛을 보이고,  인간에게는 죽음과 부활이 있는 걸 보여 주고 이렇게 자기 몸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전생활에서 보여 주는 그런 것도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에 보면, 남편이 강퍅해서 아내의 전도함을 인해서는 듣지  않아도 아내의 두려워하는 것과 단장하는 것을 보고 그 남편이 믿는다고  했습니다.

 아내가 두려워하는 것이 남편을 두려워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죄지을까, 하나님 섭섭하게 할까, 하나님의 심판에 걸리까, 무궁세계에  천한 사람 될까 하는 데 대해서 겁을 냅니다.

 남편이 처음에는 웃지만 아내가 진정 애타하는 걸 보니까 '하나님이  계시는가보다, 아 심판이 있는가보다, 죄 짓지 않으려고 하는 걸 보니까 아마  내세가 있는가 보다!'   또 아내가 단장하는 것을 말했는데, 머리 단장하고 몸 단장하는 겉사람 단장도  해야 하지만, 언행심사에 참 흠없는 사람이 되고자 얼마나 조심을 하는데 그만  조금 실수가 되면 마음에 아파하고 후회하면서 뼈아프게 느끼면서 자꾸 고치려고  애쓰는 그런 속사람 단장을 말한 것입니다.

 아내가 이렇게 단장하는 것을 보면 자기는 살인 강도 같고 도둑놈 같습니다.

자기는 쓰지 못할 잡부요 아내는 거룩하고 거룩하고 깨끗한 사람으로 자꾸  단장하니까, '아이구, 안 되겠다!' 하고 믿는 자가 됩니다.

 이런 것이 역연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하는 것이요, 자타의 구원을 위해서 한  것이니 이 요소만 영생하지 그 외의 것은 영원히 멸망입니다.

 중간반 반사들도 죄나 짓고 엉뚱한 생각이나 하면서, 잘해봤자 집에서  설거지하든지 남의 집에서 사무나 볼 사람입니다. 그런 곳에서도 값있는 일을 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살다가 썩는 것이고, 그날그날 밥이나 위해서 살 것인데,  반사가 되고 나니까 자다가 꿈속에도 '아, 이 학생이 떨어졌다. 아무개가  교회에 나오지 않으려고 한다!' 해서 엎드려 학생들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밥  먹는 것도 다 잊고, '내가 심방을 게을리 했더니만 그렇다...' 이렇게 되는 것이  다 자기 구원이요, 자타의 구원이 됩니다.

 주일학교 반사도 힘들지만 하루를 쉬면 주일학생들에게 토큰 줄 게 없으니까  일하러 갑니다. 이게 얼마나 복이지만 깨닫지 못하니까 하루하루, 한 주간 한  주간 생활을 정금 같은 생활로 살지 못하고, 토큰 준다고 다 없애버리고 돈 한  푼도 모으지 못했다고 썩은 생각이나 하면 옳은 일 하다가 낙심할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낙심해서 가룟 유다와 같이 알속은 차리겠지만 어리석은 일이요, 지혜 있는  사람은 일생 동안 다 이 일에 바치고 삽니다. 얼마든지 취할 수 있지만 취하지  않습니다. 이게 더 큰 수입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기 때문에...

 이러니까 일생 동안 잘하든지 못하든지 목회에 헌신하려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깨달아서 그런 것이요, 목회 생활하면 영광스럽고 대우받으니까 하겠다는 자도  있겠으나 그것은 실은 이용물입니다. 모세의 지팡이요.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의 권능에 붙들려서 일은 해도 생명은 없다 말입니다.

농사짓는데 농구가 일은 하지만 생명이 있습니까, 농사 짓는다고 밥 먹여줍니까,  이불 밑에 잠재워 줍니까? 다 쓰고 나면 창고에 던져 놓지요.

 이와 같이 구속하신 주님을 위해서, 주님이 소원하시는 자타의 구원을 위해서  하는 사람도 있고, 다른 벌이보다 이 벌이가 낫다 싶어서 하는 사람도 있는데,  요즘은 목사 벌이가 다른 벌이보다 낫다, 사람들에게 대우받는데 더 낫다  하던데, 그것은 동기와 목적이 다른 것이요, 자기 위하는 것이기 때문에  품꾼이요 삯군입니다.

 자기 위해서 품 들었으니까 아무리 일해봤자, 아무리 큰 목회해도 얻을 상급은  하나도 없습니다. 아무리 큰 구역이라도 상 받을 것은 하나도 없어요.

 우리는 이걸 깨달아서 지혜롭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같이 예수 믿고 살아도  세상을 떠나면 굉장할 것입니다. '아이구, 저 사람은 저렇구나!' 자기가 압니다.

자기가 어느 정도 힘을 쓰는지, 동기와 목적이 뭐인지 알아요. 어리석지 맙시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무엇 때문에 자타의 구원을 위해서 할 것인가? 무엇 때문에 주를 위해서 살  것인가? 이걸 깨닫고 해야 피곤치 않습니다. 깨닫고 하는 자는 하면 할수록 더  탄식이 되지, '아, 내가 너무 지나치게 많이 했다!' 하는 그런 망령된 생각은  나오지를 않습니다.

 목회를 해도, '어떻게 하면 내게 유익할까?' 하는 것을 연구하는 것은 양의  껍데기를 입고 속으로는 노략할 이리요. 한번 웃어 주고, 등을 어루만져 주고,  한번 좋아해 주니까 그것만 따라가는데 어리석습니다. 양은 어리석어요,  그러니까 양 껍데기를 입은 이리를 동무로 알고 전부 잡아먹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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