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삶의 목적

 

1981. 3. 3. 새벽 (화)

 

본문:로마서 8장 26절∼30절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우리 택함을 입고 중생된 자들을 위해서 주님이 아버지 우편에 앉으셔서 우리를  위해서 쉬지 않고 기도하십니다. 우리의 기도가 모자라도 주님이 우리의 기도를  보충하십니다. 또 이뿐만 아니라 성령님도 우리를 위해서 쉬지 않고 기도를  하십니다. 우리의 기도가 부족해도 성령님이 우리의 기도를 보충해서 충당케  하십니다.

그런고로 우리를 중생시키신 분이 성령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 가지고 우리를  중생시켰습니다. 또 성자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사람되시는 데부터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로 우리를 대속하셨습니다. 또 성령님이 우리를 구원 온전케  이루도록 보증을 서신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의 구원이나 또 우리가 완성되는 이것이 전조건이 다  구비돼 있는데 우리가 믿지 않기 때문에 이것이 다 지체되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다 말은 우리가 인정치 않는다는 것이오. 우리가 인정하지 않고, 이 지극히  큰 사실을 인정하 지 아니하고 또 그대로 우리가 살지 않는 데에서 이루어지지를 않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그 유력한 피조물이 우리 구원을 담보한 것이 아니고 절대자 창조주가  우리의 구원을 담보하시고 이것 때문에 천지 만물도 짓고 또 운영하십니다.

이러니까 우리 구원은 만반의 준비가 다 되어 가지고 이렇게 둘러싸고 있는데  우리 본인들이 믿지 않는 이것으로써 이 구원이 이루어지지를 못하고 중단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를 어느 정도의 구원을 이루려고 하고 계시느냐? 29절에 보면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을  맏아들로 되게 하셨고 우리는 그다음 아들을 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주님과 같은 우리가 되게 하려는 말씀입니다.

맏새끼가 소면 그다음 새끼도 소지 그게 뭐 개가 되겠습니까? 맏아들이  사람이라면 그다음 이산도 아들 사람이지 딴것 뭐 되겠습니까? 예수님을 맏아들 되게 하셨다 그말은, 모든 형제 중에 맏아들 되게 하셨다. 우리  모든 믿는 자들 중에 예수님을 맏아들 되게 하셨다.

그러면 우리 모든 믿는 자들을 예수님과 같은 자 되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정하신 목적입니다.

이래서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모든 예정을 하셨고, 창조를  하셨고, 또 지금도 모든 것을 보존하시고 섭리하셔서 운영하고 계십니다. 또  성자 예수님께서 우리 위해 죽으실 뿐 아니라 살아났고, 또 아버지 우편에서  기도를 계속하고 계시고, 또 성령님이 우리를 위해서 쉬지 않는 탄식으로  기도하고 계시고, 우리를 책임지셨고 “보증으로 성령을 주셨느니라” 했습니다.

우리를 책임졌습니다.

이래 가지고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해 놨습니다.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아들의 형상이라 말은 예수님과 같은 자  되도록 하기 위해서 정해 놓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하나님과 꼭 같은 속성, 인격, 행위를 가지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이래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자라” 했습니다.

빌립이 ‘하나님 아버지는 보이지 안하니까 보여주옵소서.’ 할 때에 ‘내가  너희들과 이렇게 같이 있어도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아버지 와 나와 꼭 같다.’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도록 하기 위했다. 그러면 예수님과 우리를 꼭 같은  자 되도록 해서 예수님은 맏아들 우리는 그다음 순위의 아들로, 여기는 딸은  없으니까 여자들도 다 여기서는 아들입니다. 아들로 삼기 위해서, 아들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렇게 역사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사실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성경 가운데는 온갖 우리에게  계약한 계약이 있는데 그 계약을 다 믿어야 됩니다. 어제 아침에는 ‘모든  계약을 다 믿어라’ 병낫는 것도 믿고, 문둥이가 깨끗해지는 것도 믿고, 우리가  다 믿어야 합니다.

믿는데 다만 하나님께서 그것이 유익이 되도록 하나님이 역사를 하십니다.

손해가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안 믿는 자에게 믿도록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이러니까 어떤 자는 병이 낫는 걸 보고서 ‘하나님 참 계시는구나.’ 이렇게  믿고, 파사 나라에는 다니엘이 사자구덩이에 들었다가 안 죽고 나오니까  ‘하나님 계시는구나.’ 그런 모든 이적을 보고서 하나님을 믿게 됐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성경에 기록된 것을 우리에게 다 주십니다. 우리도  앉은뱅이를 일으킬 수도 있고, 문둥이를 깨끗게 할 수도 있고, 벙어리를  말하게도 할 수 있고, 오만 병 고치는 일도 다 할 수 있습니다.

있는데 다만 그 목적이 뭣이냐? 이적은 안 믿는 자에게 필요하지 믿는 자에게는  필요가 없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없어도 될 때에는 또 그것을 안 줍니다.

또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보고 믿는 자는 복이 적고 보지 않고 믿는 자는 복이  더 많다” 이랬습니다. 그런 표적을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이 될 수 있는 사람은  가급적이면 표적을 주지 않고 믿도록 하려고 하나님이 애를 씁니다.

왜 그것은 표적 없이 믿는 믿음은 끝이 없는 믿음이요, 그 믿음은 끝이 없는  믿음이지마는 표적을 가지고 믿는 믿음은 그 표적에 가다가 머물러 서 가지고 그  표적을 넘기를 힘듭니다.

그러기에 표적을 넘어서지 못하고 그 표적까지 가 가지고 항상 눈에 보이는 그런  것이 나타나는 그것을 기다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 말씀을 인해서 성경을  믿어서 성경에 기록한 것을 믿어 표적 그것보다도 이 성경 말씀이 더 확실하니까  성경 말씀을 인정하는 인정을 가지고 믿는 그 믿음은 한이 없는 믿음이요 끝이  없는 믿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는 눈에 보이는 그런 것을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이기 때문에  이는 순전히 하나님의 영감으로 되는 믿음이요 성신의 감화로 되는 믿음이요  이것이 안 되는 데에는 보이는 표적으로 믿도록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개척교회를 나갔다든지 아주 하나님을 도무지 성경 가지고도 믿지  아니하고 믿지 않는 그런 때는, 그런 장소는, 그런 지역에 가 가지고는 이적이  많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그것 아니면 믿지를 않기 때문에.

그러기에 이 이적은 믿는 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참 계시는구나.’ 하는 것을 믿도록 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요 벌써  성신의 감동으로 성경 보고 성경에 기록돼 있는 모든 사실을 믿는 그자에게는  진리로 인해서 믿었고 성령의 감동으로 인해서 믿었기 때문에 그 믿은 원인이  눈에 보이는 어떤 표적을 가지고서 믿는 그 믿음이 아니고 진리와 영감으로  믿었기 때문에 진리와 영감은 무한합니다. 끝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끝없는 믿음이 시작됐고 또 광대한 믿음이 시작됐기 때문에 그 믿음을  가지고 인정하고 행하면 능치 못할 것이 없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능치 못할 것이 없는 자가 되면은 어떤 자가 된다  말인가? 그 목표는 아들의 형상을 본받아 맏아들 예수님과 같이 되어지는 것이  그것이 이제 목표입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어떤 것이 목표인가 하는 그것을 우리가 잘  깨닫고, 목표는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얻어 세상을 떠날 때에는 우리의 받은  은혜가 다 끝장나 버리고 이제는 안 믿는 사람들과 같이 가는 그것이 우리  목표가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을 떠날 때나 심판 앞에서나 영원 무궁세계에 가도 없어지지 안할 다  영원성 완전성 불변성의 것 이런 것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주님이 십자가 못박혀  죽으셨고 우리를 불렀고 우리가 또 이것을 위해서 노력을 합니다.

그러면 이것을 위해서 노력을 하는 이것이 우리의 목표요 이 목표를 가지고  우리가 노력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세상과 세상 것을 줍니다. 이것은 실은  구하지를 말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다 너희들에게 있어야 할 것인 줄 알기 때문에 이런 것은 구하지 말아라.

다만 구할 것은 이 성령의 은혜로 아들의 형상을 본받아 예수님과 같은 인격자,  예수님과 같은 사상자,  예수님과 같은 본질과 본성을 가진 자, 예수님과 같은 생애를 하는 자, 맏아들  예수와 꼭 같은 사람 되도록 하려는 것이 이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요 우리의  목적으로 삼고 이 목적을 위해서 전심 전력을 기울일 때에 하나님께서 돈이  필요하면 돈을 주시고, 권세가 필요하면 권세를 주시고, 또 고난이 필요하면  고난을 주시고, 다니엘처럼 죽었다가 살아나는 그런 것이 모든 자들 보기에  필요하면 주시고, 이렇게 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주든지 주면 돈을 줘도 영원한 목적인 예수님의 형상을 입기  위해서 돈도 쓰고 또 지위를 주니까 지위도 내나 이것 위해서 씁니다.

권세도 이것 위해서 씁니다.

모든 좋은 것을 주는 것을 그것 가지고 세상에서 꽁꽁 재어놓고 붙들고 누리고  살려고 하지 안하고, 모든 좋은 것 주니까 그것 가지고 자기 영광스럽게 하고 뭐  세상에서 한번 뽐내고 하지 안하고 어떤 것이라도 좋은 걸 주니까 좋은 것 다  들여 가지고 예수님과 같이 살아서 예수님과 같은 그 인격자, 하나님의 맏아들  예수님과 같은 그런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되기 위해서 전심 전력을 기울이고  모든 걸 다 씁니다.

좋은 것만 주니까 다 그리 쓰더니마는 나쁜 걸 주니까 어쩌는가? 감옥살이를  줍니다. 감옥살이 나쁜 감옥살이도 주니까 그 감옥살이에서 나오려고 애쓰지  안하고 그 감옥살이 하는 감옥살이에서 또 하나님의 맏아들 예수님과 같은 자가  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면 감옥에 들어가서도 하나님의 맏아들 같은 자기가 되려고, 예수님 같은  자기가 되려고, 이것은 저 빨갱이에게 납치를 당해 가지고서, 그러면 저 소련  같은 데 탄광 지하실 탄관에 들어가서 이제는 고역을 합니다. 거게서도  ‘여게서도 나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과 같은 형상을 만들겠다.’ 거게서도  예수님의 심장으로, 예수님의 정신으로, 예수님의 생애로 예수님의 하시는 것  같은 그런 말을 하고 그런 행동을 하고 거게서도 인간 구원에 자기는 전력을  기울입니다.

‘이놈은 탄광에 와 가지고도 이러니까 한번 되게 고문과 고형을 해 보자.’  갖다놓고 되게 고문과 고형을 하니까 고문 고형에서는 아프다 할 줄 알았는데  아프다 할 줄 모르고 고문 고형에서도 하나님의 맏아들 예수님의 형상 입으려고  예수님과 같이 하려고, 고문과 고형하니까 그 속에서 나오는 건 예수님만  나옵니다.

거게서도 보니까 나오는 건 예수님만 나오고 또 들어가는 것은 예수님만  들어갑니다. 사건으로 인해서 더 예수화되어지고 또 이 소리로 인해서 예수님만  튀어나오고, 이러니까 고문과 고형을 줘도 거기에서 흡수해서 받아들이는 것은  예수님의 인격 예수님의 사상이 받아들여져서 더 강해지고 충만해지고 더  예수화되고 또 거게서 언행심사의 행동 나오는 것은 예수님만 거게서 나옵니다.

이것이 우리 믿는 사람들이 땅위에서 주력하는 일들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제는 하나님을 믿으니 보이는 것을 바라지 안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바란다. 보이는 것을 소망해서 살지 안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소망해서 산다  그랬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 무엇입니까? 신령한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  다시 말하면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위해서 살지 안하고 영원한 것들을  위해서 산다. 왜?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기 때문에  그렇다. 또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인해서 생겨졌고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보이는 것은 다 폐해질 것이다. 다 없어질 것들이다.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다. 그러기 때문에 보이는 것으로 살지 안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하여 산다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목표가 틀릴 때에 우리는 흔들립니다. 네가 뭐하려고 사느냐? 예수님의  형상 하나님의 맏아들과 같은 그런 자기를 잠깐 지내가는 이 나그네 세상에서  만들어 가지고 가야 하는 요것이 목표가 되면 부자에서 만들어질 요소도 있고  가난에서 만들어질 요소도 있고, 존귀함에서 만들어질 요소도 있고 말할 수 없는  억울함에서 만들어질 요소도 있고, 죽음에서 만들어질 요소도 있다 그말이오.

이러니까이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는 손해갈 곳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 목적을 목적으로 삼고 이 목적을 달성해 가려 하는 데에는 이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는 고난이나 평안이나 부나 가난이나 꼭 같습니다. 효력이 꼭  같소. 이용 가치가 꼭 같습니다.

고난에 고난을 이용하는 그 가치나 평안을 이용하는 그 가치나, 오히려 평안  가운데 평안을 이용해 가지고서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만드는 것보다는  고난에서 만든 것이 더 큽니다.

왜? 이다음에 하늘나라 가면 평안한 가운데서 만든 사람들은 많지마는 고난  가운데서 만든 사람들은 드뭅니다.

시장에도 가면 그것이 많으면 가치가 적어지고 적으면 가치가 많아집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러니까 천국 가서 보면 고난 받을 때에 믿음 지킨 사람들이  적고 평안 받을 때에 믿음 지킨 사람들은 많다 그거요.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고난이나 평안이나 이용 가치가 꼭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왜 고난은 싫어하고 평안은 좋아하느냐? 그것은 우리 목적이  변동됐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 목적이 세상과 세상 것을 목적을 삼으니까  그것이야 평안한 데는 많고 고난에는 하나도 없지요.

이러니까 인간이 왜 기쁨이 변동되느냐? 왜 담력이 변동되고 평강이 변동되느냐?  왜 노력이 변동되느냐?  만족이 변동되느냐? 그것은 목표가 변동된 거게서 변동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목표를 가지면, 이런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이 목적을  가지고 사는 자들에게는, 뭐라고 했습니까? 뭐라고 했소, 그다음에? 뭐라 했소?  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위해서 맏아들 같은 아들 되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는, 뭐라 했습니까? “모든 것이” 또?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선은 어떤 걸 선이라 합니까? 뭣이 선이지요? 선은 뭣이 선입니까? 모르요?  여반에는? 그래. 남반에 저 뒤에는 대답 안 하네. 뒤에 크게 한번 대답해 봐요,  뭣이요? 뭐라 하노? 잘되게 하는 것? 언제 그래 배웠어? 저 뒤에 또 남반에 그뿐  없어? 잘되게  하는 것 아니야! 잘되게 하는 것 아니라! 틀렸어! 여반에, 저 뒤에? 하나님  중심. 그렇츰 해도, 뭐 잘되기는 뭐 잘돼? 잘된다는 그런 것은 해석이 틀렸어.

그것 때문에 교회들이 다 넘어지고 쓰러져, 정의를 바로 내지 못하기 때문에.

잘된다는 것은 끝이 없습니다. 마귀란 놈이 ‘요것보다는 요게 잘되지  안했느냐?’ 그것 선인가? 아니야. 하나님 중심만이 선입니다. 그걸 똑똑히  가져요. 하나님 중심.

 예수님이 어떻게 살았습니까? 하나님 중심. 예수님은 언행심사가 전부 하나님  중심으로 했습니다. 아버지로 인해서 살았습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모든 것이 합해 가지고 하나님 중심의 사람, 맏아들과 꼭 같은  사람 만드느니라.

모든 것이 합력하다니?  뭐? 고난, 평안, 존귀, 비천, 억울, 욕, 칭찬 전부 합해 가지고서 하나님 중심의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목표를 가진 자는 이것도 필요 저것도 필요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의 현실을 준다는 이 사실을 깨닫고 우리 목적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고  영원 무궁토록 살 하나님과 같은 자 되어지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 아버지의 거룩하심과  같이” “예수님의 깨끗하심과 같이” 이것이 우리 목표니까 우리 목표가 어데  있습니까? 우리 목표가 세상에 있습니까 영원에 있습니까? 영원에 있습니다.

우리는 끝이 없는, 끝이 없는 영원한 끝이 없는 목표인데, 오늘 믿는 사람들이 토막 토막에서 자꾸 조급해서 제가 뭐 좋은 일 있으면  ‘감사합니다.’ 좀 안 되면 `아이구' 근심하고, 금방 믿었다가 금방  낙심했다가, 금방 믿었다가 금방 낙심했다가, 금방 기뻐했다가 금방 슬퍼했다가,  금방 담대했다가 금방 또 오그라졌다가, 이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끝이 없는 소망을 우리가 가졌기 때문에 끝이 없는 믿음을 가지고 끝이 없는  기쁨, 세상이 빼앗을래야 너희 기쁨을 빼앗을 수 없는 그것이 주님이 주신  기쁨입니다. 세상이 빼앗지 못한다는 그 담력이 하나님이 주시는 담력입니다.

세상이 다 깨어지거나 없어지거나 없어지지 않는 그 소망이 우리 소망이오.

이 세상이 다 불타도 불타지 않는 그것이 우리 성공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주리지도 목마르지 않다 그말은 언제나 절단나는 일도 불만되는 일도 없는 것이  우리 소망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사는 목적은 예수님의 형상 곧 하나님의 맏아들 예수님과 같이  자기를 의인으로, 거룩한 사람으로, 죽음에서도 하나님 중심, 마구 세상에서  어떻게 존귀하게 돼도 하나님 중심, 모든 사람에게 억울하게 매장을 당해도  하나님 중심, 칭찬을 받아도 하나님 중심, 어데서든지 하나님 중심으로 자기  행동을 해서 하나님 중심의 사람이 되어지는 요 수입이 우리 수입입니다. 요것만  우리가 만드는 것이 우리 만드는 것이오.

그러기에 성경을 보고 영감으로 믿는 자들에게는 이제는 땅에 있는 것이  이루어지는 그것이 우리 목적이 아니라. 땅에 보이는 이것이 우리 목적이 아니고  영원한 게 목적이기 때문에 땅에 있는 그것은 아예 우리가 구할 필요도 없고  필요 있는 대로 당신이 얼마든지 필요 있는 대로 적당하게 보급해 주려 했기  때문에 거기 대해서는 관심할 필요가 없어.

이러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이렇게 구하지마는  이는 너희 천부께서 다 아시는 것이기 때문에 이 세상 사람이 구하는 것과 같은  그런 것을 구하지 말아라. 너희들은 구할 것이 무엇이냐? 그 나라의 그 의를  구해라. 이게 너거 구할 것이다.

이런 것들은 너희들에게 있어야 될 것인 줄 알고 하나님이 너희에게 적당하게,  많아 필요하면 많이 필요하면 많이 주고, 적어 필요하면 적게 주고, 또 고난당해  필요하면  고난 주고 이렇게 하는 것이니까 거게서,좋은 데서만 이루어 놓으면 그것은 바른  것이 아닙니다. 좋을 때만 하나님 중심으로 하다가 고통스러우면 하나님 중심을  버릴 수 있는, 하나님 중심이 실력이 없으면 되겠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골고루  연단받아야 되지.

전쟁하는 사람이 만날 달음질하는 것만 연습하고 길 줄은 몰랐으면 그것밖에  연습 안 했으니까 적의 총탄이 오는데 뻐뜩 서가지고 달음질만 치면 그것 다  죽어버리지 뭣 하겠소? 기는 것도 배워야 되겠고, 또 땅굴 파고 들어가는 것도  배워야 되겠고 별걸 배워야 되지 않습니까?  여게서도 하나님 중심 저게서도 하나님 중심 모두 다 하나님 중심 어데든지 그래  가지고 연단받은 사람이 되어야 된다 그거요.

그런고로 우리가 목표를 바로 가져야 됩니다. 목표를 바로 가지고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별별 필요한 순서를 주는 것이니까 그 모든 것이  합력해 가지고 하나님 중심의 사람을 만드는 것이니까 그걸 깨달아야 되지  목표가 변동되고, 모든 것이 다 구비해야 되지 좋은 것만 가지고 안 된다는 요걸  모르기때문에 사람들이 그때 이룰 구원을 이루지 못하고 마귀밥이 돼 버리고  맙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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