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들의 할 의무

 

1984. 10. 2. 화새

 

 본문: 시편 91편 14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얼마 전에 증거하고 이 면 저 면을 계속해서 증거하다가 이제까지 나온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그 창조된 그것이 보존되는 그  법칙과 또 창조된 그 모든 것이 생육하고 번식하는 모든 법칙과 또 창조된 모든  것이 궁지에서 구출함을 받는 법칙과 또 창조함을 받은 모든 것이 점점 향상되고  전진되고 존귀해지는 그 법칙을 다 정해 놓으셨습니다. 그 법칙을 어겨서는 이  모든 일들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보존되는 법칙을 어겨서 보존되는 일이 없고,  생육 번성 되는 법칙을 어겨서 생육 번성되는 일이 없고, 또 구출되는 법칙을  어겨서 구출되는 일도 없고 또 존귀해지는 그 법칙을 어겨서는 존귀해지는 일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성경으로 가르쳐 주셔서 우리가 알고 있고 모든 자연 계시  만물을 보아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어느 피조물 하나가 하나님이 각 각 그 면  그 면에 대한 주신 법칙 이것을 어겨서는 아무것도 안 되는 것을 우리가 잘 알  수 있습니다. 쉽게 물에서 살게 한 모든 생물들은 물이라야 살지 물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안 됩니다. 또 흙속에 살아야 하는 것들은 흙속에 살아야 하지 다른  데서는 살지를 못합니다. 또 그와 반대로 공중에 살아야 하는 것은 공중에  살아야 되지 공중을 떠나서는 살지를 못합니다. 이런 것들이 다 하나님이 주신  정한 법칙을 떠나서는 못 산다 하는 그것을 가르쳐 주시는 하나님의  가르치심입니다.

 오늘 아침에 봉독한 시편 91편 14절에, 사람이 어떤 종류의 궁지에서든지 그  궁지에서 구출되는 법칙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주님을  사랑하는 거 외에는 궁지에서 구출되는 법은 없습니다. 이 외에는 법이  없습니다. 또 우리가 전진하고 향상하고 점점 좋게 개량돼 나가는 이 모든  높아지는 거 이것은 주님을 아는 이 방편 외에는 되는 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  약속도 하나님이 변치 아니하시는 그 법칙과 범위와 제도를 세워 놓으신 것이기  때문에 이를 벗어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줄로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사람들이 왜 분망하고 자유를 갖지 못하느냐? 왜 분주하냐? 왜 자유를 가지지  못하고 항상 불안하냐? 사람들은, 다른 면도 있겠지마는 대개는 사람들의 사는  이 모든 분주와 고민하는 이 모든 것은 다 이 둘 때문입니다. 그래도 어떻게  하든지 궁지에서 벗어나 보겠다, 또 좀 더 높아져 보겠다 하는 이 둘 이것  때문에 사람들은 근심하고 노력하고 분주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이 있기 때문에 그 법칙에 맞지 안하면 하나님은 허락지를  아니합니다. 안 믿는 사람들도 그러하고 또 믿는 사람들도 다 그러합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그 이루어지는 것이 외부적으로 세상적의 것이요, 또 믿는  사람들은 안팎으로 되는 것이니 세상과 하늘나라가 다 이 법칙대로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 사실을 확실히 믿을 때에 우리는 쓸 데 없는 근심 걱정이  없어지고 쓸 데 없는 분주가 없어질 터인데 우리가 이것을 믿는다고 하지마는  믿지 안하기 때문에 끝이 없는 분주와 끝이 없는 근심 걱정의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구출받는 것과 좀 더 존귀해지는 거, 좀 더 풍부해지는 거, 좀  더 윤택해 지는 거, 좀 더 기뻐지는 거, 좀 더 평안해지는 거, 좀 더  행복스러워지는 거 이런 것이 다 한 말로 말해서 높아지는 것인데. 높아지는  것도 구출되는 것도, 구출은 주님을 사랑하는 요거 외에는 구출되는 법이 없고  존귀해지고 더 행복스러워지는 것은 주님을 아는 요 방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러면 주님을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인가?  여기에 대해서 우리는 혼돈되기 쉽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는  사랑이 어떤 것인고 하니 혈통의 사랑.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고 자녀가 부모를  사랑하는 거 같은 혈통적인 그런 사랑의 그 인식이 우리에게 꽉 배어 가지고  있고, 또 자주 만나고 같이 움직이고 같이 거처하고 이렇게 하는, 자주 만나는  이 동류적인 이 사랑, 이 사랑이 우리에게 깊이 인식되어 있고, 또 일반적으로  요새 말하는 사랑들은 방송에서나 뭐 이런 데서 사랑하는 그런 모든 사랑은 다  암수의 정욕적인 사랑입니다. 그래서 모든, 그 새 이름이 뭐이더라? 앙꼬라  하던가? 앙꼬인가? 앙꼬입니까? 잉꼬. 아, 잉꼬. 잉꼬부부라고, 잉꼬 사랑이라고  이렇게 말하는데 그런 거 다 그런 것입니다.

 이러기에, 우리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하는 이 사랑에  대해서 잘못하면 이제 말한 이 세 가지 사랑 같은 그런 사랑을 가지고 주님을  사랑하려고 애를 쓰고 또 형제를 사랑하려고 애를 쓰는 그런 혼돈이 오기  쉽습니다. 성경에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상대로 지음받은 모든  사람들을 사랑해야 된다. 보는 사람을 사랑치 않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그것이 거짓말이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요사이 사랑들을 많이 말하는데. 이 사랑이 주님이 말씀하신 이  사랑이 아니고 죽이는 배암의 사랑, 해와를 죽인 배암의 사랑, 아담을 죽인  배암의 사랑, 해와는 누가 죽였는가? 아담이 죽였고, 아담은 누가 죽였는가?  해와가 죽였습니다. 이 사랑으로 혼돈돼 가지고, 지금 말세에 하나님의 원수가  뭐이냐? 사랑입니다. 참 성도들의 원수가 사랑입니다.

 사랑은 두 가지인데,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그 사람을 구출하려고 애를 쓸  때에 간교한 인간들이 배암의 사랑을 가지고 그 사람을 미혹시킬 때에 하나님의  사랑은 저희 타락한 본질에 맞지 안하고 배암의 사랑은 저희 타락한 본질에 맞기  때문에 고만 그 사랑의 유혹을 받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하는 것을 배척해  버립니다. 이러니까, 일 년이고 오 년이고 십 년이고 걸려 가지고 그 사람을  구원해 보려고 오만 노력을 다 한 것도 배암의 사랑 가지고 와 가지고 일시에  꼬우면 그만 그 꼬임에 꼬여 가지고 넘어가 버리기 때문에 참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인간을 사랑해 본 사람이라면 이 배암의 사랑이 적이라, 배암의 사랑이  원수라 하는 것을 다 스스로 느끼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말세에 지금 제일 원수가 되는, 우리를 살해하는 해독이  제일 많은 것이 독한 것이 어떤 것이냐? 사랑이라, 그는 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사람들을 사랑해 본 사람들이 체험해 느끼는 데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요 성경을 보고는 그렇게 좀 깨닫기가 어렵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무슨 궤변같이 듣지 그것을 잘 이해를 안 합니다.

 오늘 아침에는 간단하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인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사랑은 여기에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 하는 말씀을  했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누구든지 가질 수가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랑은  누구든지 가지려면 전지자라야 참사랑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왜? 자기가 자기  아는 대로는 그 상대방을 사랑하노라고 한 것이 자기 지식이 제한이 있다면,  한정이 있다면 그 한정 너머 것은 그 사람에게 대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랑이라 하는 것을 알 수가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지식도 무한해야 되고  영원해야 되고, 지식도 영원해야 그 상대방에게 대해서 영원의 사랑할 수 있는  그런 방편을 취하겠고, 암만 그 방편을, 전지만 해도 안 됩니다.

 또 전능을 가져야 됩니다. 그 상대방을 사랑하는데 상대방에게 유익되게 하는  그 능력이 제한 있으면, 한정이 되면 그 사랑은 중단되고 끝날 수 밖에  없습니다. 영원하고 무한하면 그 사랑하는 자에게 사랑을 영원히 무한히 베풀  수가 있습니다.

 또 이 둘만 가지면 되느냐? 이 둘을 가진 외에 우리를 위해서, 상대방을 위해서  자기에게 이 전지전능의 이것을 다 기울여서 상대방을 위해서 영원히 노력할 수  있는 그게 있는 자라야 되니까 이 세 가지를 가진 자가 피조물로서는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어요. 하늘에도 땅에도 영계에도 우주에도 없습니다. 다만  이 실력을 가지고, 또 마지막에 말한 이 상대방을 위해서 수고하는 이 노력의  무한성을 가진 존재는 우리를 대속하신 주 하나님뿐입니다. 주 하나님 외에는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사랑은 하나님 한 분만 가진 사랑이요, 이  사랑이라야 영원히 구출할 수 있고 또 그를 보다 좀 더 점점 고귀하게 만들 수  있지 이것이 없는 자는 만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이 사랑이요. 또 제일 좋아하는  그 사랑을 한 것만침, 그 사랑이 역사한 것만치 반드시 슬픔과 울음으로 끝을  마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 가지 사랑은 그 사랑이 반드시 슬픔과  울음과 고통과 사망으로 화해지는 것을 우리가 봅니다. 전체가 다 그렇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사랑과 사람을 구별해야 되겠는데.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이 하나님의 사랑인가?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모든 부요를 다 내어놓기까지 우리를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또 하나님의 지극한 존귀를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다 투자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도 모든 것도 다, 전지전능의 이 모든 실력도 우리를 사랑함으로  기울였습니다. 기울였는데,  그러면, 기울여 가지고서 무엇을 하셨는가? 기울여 가지고 하신 것이 우리가  아는 대로 세 가지 했습니다.

 하나는 과거에 삐뚤어진 거, 현재에 삐뚤어진 거, 영원히 삐뚤어진 거 잘못된  것을 전부 책임지고 해결을 지웠습니다. 영원히 잘못된 거 삐뚤어진 거, 그것을  가리켜서 죄라 그렇게 말합니다. 무슨 신인 관계에 삐뚤어진 것이든지 인인  관계에 삐뚤어진 것이든지 사물 관계에 삐뚤어진 것이라든지 자기에게 대한 것이  삐뚤어진 것이라든지 뭣이든지 삐뚤어진 거 잘못 된 거, 하나님의 지성 지공의  그 깨끗하고 곧은 앞에서. 거기에 비추어 조금만치라도 삐뚤어진 것은 다  해결지워서 고쳐서 바르게 옳게 해 주신 것이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또 두 번째 하나님의 사랑은 당신의 모든 것을 다 기울여 완전에게 피동  되도록, 완전에게 피동되도록. 영원불변의 참에게 피동이 되도록 천상천하에  제일 옳고 바르고 참된 이는 한 분뿐이신데 한 분뿐이신 그분에게 피동되도록  이렇게 하시는 이 일을 베푸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에게, 이 완전자에게 속해서 완전자로 더불어 다시는 끊쳐짐이  없는 완전자와 하나가 되는 이 결합, 완전자와 하나가 되는 이 결합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완전자와 결합하니까 그는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업도, 사업의 생명이 뭐이냐? 돈벌이의 생명이  뭐이냐? 상업의 생명이 뭐이냐? 정치의 생명이 뭐이냐? 인간의 모든 활동의  생명이 뭐이냐? 가정의 생명이 뭐이냐? 모든 것의 생명은 하나님과 합치만 되면  살았습니다.

 이 세 가지를 베푸신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실 때에는 이렇게 한 것이 사랑인데,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인가? 하나님은  이 사랑을 가지셨기 때문에 우리를 이 사랑 가지고 사랑할 수가 있었지마는  우리는 사랑이 없으니, 모든 지능이 다 제한되어 있고 또 봉사가 다 제한되어  있으니 우리는 이 사랑이 없는데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우리가 사랑할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어떤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인가? 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 하나뿐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사랑을 우리에게 주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요, 또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은 내가 받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  우리는 구출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으로써 우리가 구출됩니다. 이 방편  외에는 다른 방편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다니? 당신이 모든 삐뚤어진  것을 고쳐 주신 그 고쳐 주심을 받는 것이요 또 삐뚤어지지 않게 하시는  것이니까, 과거 현재의 삐뚤어진 것을, 미래에도 우리가 삐뚤어졌을 때에 그  삐뚤어진 것을 당신이 담당해서 삐뚤어진 데서 우리가 벗어나게 하시는 것과 또  삐뚤어지지 않도록 하시는 그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삐뚤어진  것을 고치는 것과 삐뚤어지지 않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의 구출을 받는 것이라,  요거 외에는 방편이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도 뭐 모든 사람들은 다 낙관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다 다  급해서 놀래고 근심하고 걱정하고 눈물 흘리고 그렇게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 내 어떤 조그마한 아이가 얘기를 하면서 꿈 얘기를 하는데, 아주 동그란  태양같이 그렇게 동그란 게 있는데 그 동그란 속에 우리나라의 지도가 그 안에  그려져 있더라, 그 지도가 그려져 있는데 보니까 그 지도가 이리 저리  하더니마는 분홍색도 아니고 자주색도 아니고, 분홍색도 아니고 자주색도 아닌  그런 뽈그리한 그런 지도가 되어지더라. 그런데 또 제가 생각하기를 이것은  공산주의라면 아주 빨간 붉은 것이 되는데 이것은 붉은 것은 아닌데 뭐인가 하고  나니까 깨니까 꿈이더라 하는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 나는 그 말을 아이의  말이지마는 무심히 듣지를 안했습니다.

 이번에 이 구호물자가 오고 하는 데에서 벌써 내가, 나는 많은 사람을 접촉하지  안하는 데도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북을, 어떤 사람이 있다가서  '북괴가 이렇게 무엇을 구호물자를 보냈다.' '북괴가' 이라니까 그 사람이  반발을 해서 말하더라고. '좋게 말하지 우리가 뭐 북괴니 그렇게 말하는 그것도  다 너무 과격한 말이라'고. 벌써 여기에서 이북에 대해서 개인이 말한 것이나 이  정부가 말한 것이나 모든 언론계에서 말하는 것이나 그 말하는 것을 당장에  부인하는 회색이 돼 버렸습니다. 부인하는. 너무 나는 그 말을 듣고 아레 설교한  거는 아닌데, '아마 그럴 것이라' 했는데 벌써 당면한 사람들이 있어요.

 '그래도 그 사람들은, 아주 그렇게 곤고하면 어떻게 남 도와줄 여유가  있겠는가? 그러니까 거기에도 살기는 괜찮은 모양이야. 또 뭐 아주 악독해서  독사 같다고 하지마는 우리가 수재로서 곤란당할 때에 돕는 그걸 보면 또  그분들을 너무 악평을 한 것이야. 그분들은 해방 전과 같은 그런 미개가 그대로.

그대로 변치 안하고 있다고 이렇게 말하지마는 거기에서 온 모든 것이 다  문화적이고 모두 다 개량적인데 그것도 너무 과격한 말이라. 이래서, 우리나라의  남한의 인심이라는 것은 아주 이 반공에 대해서 아주 약화됐습니다. 반공에  대해서 아주 약화가 됐고 이들에 대해서 오히려 지금 우리 남한의 정부에  대해서는 너무한다 저쪽에는 은연중 동정하는 마음이 끌리게 돼졌고,  또 어떤 신문에 보니까 일본에서도 말하기를 '이제는 한국의 긴장 완화가  희망이 있다. 긴장 완화에 희망이 있다. 그들이 그렇게 모두 다 남한을 돕고  있지 남한은 또 도와주는 것을 또 받고 있지' 또 어떤 사람 말 들으니까  남한에서는 왔던 그 그릇에 빈그릇으로 보내지 아니하고 그 차에다가 모든 뭐 이  중요한 거, 개량하느라고 힘 많이 들인 곡식 종자, 또 무슨 전자 제품, 또 모든  의복에 대해서 원단 이런 것을 많이 보냈다고. 작아도 돈은 많습니다. 쌀 한  가마니 해 봤자 쌀 한 가마니가 원단 한 차와 비교는 못 합니다.

 이랬는데, 그런 걸 실력 보냈다 이라는데, 보낸 것을 저기에서 지금 광고를  해서 '아, 우리가 남한에 이랬더니만 남한에서 이렇게 보냈는데 우리가 보낸  값보다도 훨씬 값이 비싼 값이 왔다' 하는 그런 선전이 되면 조금 더 한 번 더  생각할 수가 있고, 그런 것이 없이 그것은 어땠는지 거기에 대해서 아무 표시가  없으면 또 알 수가 있고, 또 이러면 이 기갑차, 기갑 모든 부대를 뒤로 후퇴를  시켜서 이래 하면은 알 수 있고, 그러면 모를건데 야만은 어떤게 야만이냐?  야만은 망각성이 빠른 것이 야만입니다. 야만은 어떤 것이 과만이냐? 망각성  빠른 것이 야만이오. 그러면, 금방 아무리 거석해도 그만, 개라는 그것은 아무리  금방 어떻게 했다 할지라도 멸치 몇 마리만 주면 그만 꼬리 살살 흔듭니다. 나는  개 중에도 제일 못 쓸 개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람들은 좋아하는 세파트 개인데,  세파트 개 나는 그거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 그것은 멸치 세 마리만 처음  만나도 꼬웁니다. 이러나, 토종개는 멸치 세 마리, 멸치 세 포해도 안  꼬여집니다. 잘 먹지도 안 할 뿐만 아니라 그거 먹었다고 대번에 확 넘어가지를  안한다 그 말이오.

 요새 문화인들은, 문화인들은 세파트와 같다 나는 그렇게 봐져요. 문화인들은  너무 창자가 없다 그거요. 이렇게 모두 다 낙관을 하고 있으니, 이제까지 했던  인식은 다 흐려지고, 너무 배가 부르니까,  이 모든 것이 맷정이라 말이오. 몽둥이 한번 맞아야 정을 다시지, 남한에 있는  우리 교회들도 여기에 대해서 아무 관심 없습니다. 내가 지난 시간에도,  유엔군이 철퇴할 때 백지 울고불고 하지 안할 때는 울고불고 하고, 울어야 될  지금은 좋다고 뭐 낙관하고서 조그마한 근심도 가지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한 대로 어제 그것을 부탁을 해서 종이로 커단하게 전도지,  종이도 결정을 해 가지고 '요만한 두께 종이면 된다. 요런 규격으로 해서 가서  한번 흥정을 해 봐라' 그렇게 말을 해 놨습니다. 또 어제 어떤 사람은 '거기에  대해서 나도 동감이니까 거기에 대해서 나도 이제 좀 협조를 하면, 참가를 하면  싶다, 참가를 하면 싶다' 그라면서 비용을 가지고 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런 어려움에서도, 여기에서도 우리가 하나님의 구출이 돼야 되지 하나님의  구출이 아니면 그거 뭐 정부의 구출이나 또 강대국의 구출이나 그것은 구출  같지마는 너무 그것이 제한되어 있고 또 그것이 시간을 두고 변해지기 때문에  언제 변해질란지 모릅니다. 불변의 당신의 구출이라야 되겠고, 영영한 당신의  구출이라야 되겠고, 전지전능자의, 대주재, 제일 크신 분 그분의 구출이라야  되지 그분의 구출이 아니면. 우리는 벌써 근시자가 아니고 멀리 눈을 보기  때문에 그분의 구출이 아닌 구출은 어떤 강대국의 구출이라도 그 강대국이 아주  말할 수 없는 쇠약국이 된다는 그것이 한 눈에 보이기 때문에 그 쇠약자가  우리를 무슨 구출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또 아무리 구출한다 하지마는 자기에게  평안하니까 구출하지 자기에게 다급한 일이 났으면 자기 일도 감당 못 하는데  언제 구출 하겠다고서 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시야가 넓기  때문에 그런 구출로 안심이 되지를 않습니다.

 그러기에, 이런 구출도, 이렇게 적화의 구출에도, 또 개인의 구출에도, 무슨  다급한 구출에도, 위급한 구출에도 어떤 구출에도 이거는 제한이 없습니다. 어떤  구출이든지 구출은 그저 주님을 사랑하는 거 이 외에는 없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삐뚤어진 것을 모두 다 책임지시고 삐뚤어지지 않도록 역사하시는 그  책임지심을 내가 힘입고 삐뚤어지지 않도록 책임지고 역사하시는 역사를 따라서  내가 삐뚤어지지 안하면 됩니다. 삐뚤어지지 안한, 삐뚤어진 것과 떠난 그것이  모든 멸망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이거 외에 딴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삐뚤어지고 바른 것을 뭐로 가지고서 볼 수 있느냐? 어떤 것을 기준을  하느냐? 삐뚤어진 거 바른 것은,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그 법칙은 옳고 바른  것이고 이치는 옳고 바른 것이니, 고 진리는 옳고 바른 것이지마는 그 진리  외에는 옳고 바른 말이 한 마디도 없습니다. 이러니까, 삐뚤어진 것도 하나님의  진리를 기준해서 그 진리에 삐뚤어진 것은 삐뚤어진 것이요, 또 삐뚤어진 거  고치는 것은 그 진리에 삐뚤어졌던 것을 진리대로 고치는 것이요, 바른 것은 그  진리대로 되는 것이요, 이러니까, 이것이 자기의 구출되는 절대자의 정한, 그  법칙이라 하는 요것을 우리가 믿어야 됩니다.

 자기가 '원리 원칙은 이렇지마는 내기에 당면된 이 임시 이 일에 대해서는, 이  구출은 삐뚤어진 걸 고쳐 주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바른 거 이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 '이럴 때는, 그렇지마는 이럴 때만큼은 안 된다' 하면은 그것이 들어서  자기를 망치고 마는 것입니다. 그저 우리는 끝없이 믿어야 됩니다. 우리를  구출하는 것은 삐뚤어진 데에서 우리를 구출하는 이 구출을 받아서 삐뚤어진  것을 우리가 벗어나야 된다, 이것이 구원 받는 것이다.

 또 하나님에게만 이제 피동되는, 주님에게만 피동되는 이것을 우리가 받아야  되겠다. 그러면, 주님에게 피동되는 게 뭐인가? 그것이 의입니다. 의라는 것은,  칭의 주셨다 그 말은, 하나님에게만 피동되는 것이 의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삐뚤어진것 그것이 죄입니다. 사죄와 칭의, 주님에게만 피동돼야 된다  또 화친, 하나님과 결합이 돼야 된다, 이것을 가리켜서 화친의 화목의 제물로  드렸다고. 하나님과 화친되는 이 생명 이것이라야 구출된다.

 그러면, 우리가 구출되는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출을 받는 것은 이 세  가지 법칙뿐인 것이니 이 세 가지 법칙은, 불신자들도 저거가 아는 대로의,  저거가 아는 대로의 법칙에 양심대로 삐뚤어진 것을 버리고, 저거가 아는 대로의  그 양심대로 옳고 바른 것에 소속하고 피동되고, 또 옳고 바르고 참된 것에게  화합이 되면,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은 찾지 못하지마는  자기네들이 아는 대로의 그 평가의 옳은 것에서 또 바른 것에서, 또 그분에게  소속한 것으로 이와 같이 되면 불신자의 정권도 잘 유지될 것이고, 또 개인  사업도 잘 유지되고, 그들은 그들대로의 정도에서 구출을 받을 수가 있고 또  존귀해질 수가 있고, 우리 택자들은 그들과 다르기 때문에 고차원에서,  고차원에서. 우리들은 그들의 지식과 다른 하나님의 지식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이 지식을 준해서 우리는 삐뚤어진 데서 벗어나고, 또 하나님에게 우리는  피동되고 완전자와 우리가 결합이 되어지는 이거 외에는 우리가 구출받는 길이  없다 요것을 확실히 가지고 지금, 곧 지금이 피난 때인데,  지금이 피난 때요 나중에 무슨 무슨 일이 났다 하고 난 다음에 그때는 벌써  피난의 시기는 지나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 49장에도 보면 하나님이 은혜  베푸실 때에 그때에 듣는다 이랬습니다. 그러면, 은혜 베푸실 그때는 언제냐  하면은 우리가 기도로써 당신에게 간구해서 당신의 도우심을 입을 수 있는  그것이 도움 받는 기회지. 벌써 사건이 나고 난 다음에 당신의 도움을 받을라고  해도 안 됩니다. 우리는 넉넉히 기도할 수 있고, 모든 사람들이다. 부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신청히 듣는 사람만이면 '아, 과연 이렇게 다급하다' 이래  가지고서 간구할 수 있는 그런 기회입니다. 그때가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것이지,  그때는 무슨 소리 하는 것을 참 아주 아이들 벌소리 하는 것처럼, 잠꼬대하는  것처럼 이렇게 듣고 있다가 그 사건이 닥치니까 그때사 뭐 분발해서, 생명  내놔도 소용없습니다. 안 됩니다.

 이러니까 지금 우리가 이 사죄를 똑똑히 입어야 되겠고, 사죄를 벗지 않는  그것이, 사죄를 벗지 않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죄를 벗지 얻는 것이 주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요, 사랑을 받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생명까지 다 들이고 모든 부요를 다 들여서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주님을 사랑하기를 생명을 들여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생명을 다해서 주님의 이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공로를 내가 받는 것이요, 입고  있는 것이요, 또 내 모든 소유를 다해서 주님의 이 대속을 내가 입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라. 이것이 우리의 구출인 유일한 법칙이라는 것을 알고  여기에 준해서 하는 사람은 자기가, 이 하나님의 구출법을 자기가 믿고 이  구출법대로 자기가 구출함을 입는 사람은 환난이 오기 전에 구출함이 입혀진다는  것을 자기가 체험할 것입니다. 구출함이 입혀진다는 것을 체험할 것입니다.

그래서 벌써 오기 전에, 오기 전에 이 환난을 입고 또 오기 전에 환난에서  구출되어진다는 것을 '아, 이는 든든하다.' 확실히 자기 자신이 구출됨을 자기가  볼 것입니다.

 오늘에 이 세 가지 대속이 구출이라는 것을 확실히 믿고 이 대속을 우리가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기울여서 이 세 가지 대속을 우리가 받아 입고 있는  이것이, 이것이, 이걸 입기 위해서 이 모든 것을 빼앗겨도 입는 이것이 생명을  다해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모든 소유를 다해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나 전부를 다해서 주님를 사랑하는 것이라.

 이러기 때문에, 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주님의 대속을 받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것은 우리에게 대속을 입히신 것이  우리를 사랑하는 것이요, 요것을 알고, 그러면, 우리 주님을 사랑하는데, 생명을  다해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생명을 다해서 이 세 가지 대속의  구출을 내가 받아 입고 사는 것이 그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 '저가 나를 안즉 높이리라' 이것도 그러합니다. '안즉' 주님은, 첫째로  주님은 나를 대속하신 하나님이시다, 대속하신 하나님인 것을 알고, 대속하신  하나님이시니 그분이 나를 놓지 않습니다. 그분이 나를 놓지 않고 그분이 나를  버리지 않습니다. 그분이 나를 놓지 아니하시고 그분이 나를 버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대속의 이 사랑을 자기가 확실히 인정하고 대속의 사랑을, 하나님이  너를, 하나님이 계시지마는 네가 요런 면에는 하나님께서 너를 이와같이  사랑하겠느냐, 요것까지 구출하시겠느냐, 요것까지 돕겠느냐, 요것까지  동행하겠느냐 요렇게 해서 배암이 와 가지고 유혹을 시켜 가지고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케 하는, 고 의심케 하는 의심이 올 때에는 그때는 반드시 큰 성과를  지고, 전제로 하고 오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때,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케 할 때에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치 안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그것  가지고서 하나님이 존귀케 한다. 그 외에 딴 길이 없습니다.

 또 자기에게 어떤 일이 있을 때에 하나님의 전지하심이, 전지하심이 내게  대해서 아 모든 걸 당신이 다 내 사정을 다 아시고 하시니까, '하나님이 내게  대한 모든 사정을 아시고 나를 사랑하시니' 하는 요 사랑과 하나님의 전지의 이  지혜를 자기가 인정하는 고 인정을 통해서 우리는 높아집니다.

 또, 하나님께서, 아무리 그래도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할 때, 그 현실을  당했을 때에, 현실을 당했을 때에 어떤 강한 세력을 큰 세력을 당하면 하나님의  전능을 의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전능을, 그만 그 세력에게 우리 사람은  어리석소. 큰 능력이 와서 우리에게 무슨 기압을 한다든지 우리에게 협박을  한다든지 할 때에는 고만 그 큰, 땅위에 있는 큰 능력을 보면 하나님의 능력이  그만 멀어지고 하나님의 능력이 부인해지고 하나님의 능력이 그렇게 능력으로  전능으로 보이지 않는다 말이오. 그럴 때에, 고럴 때에 그 대적의 강한 세력,  대적의 강한 세력에서 구출되는 법은 뭐이냐? 대적의 강한 그 세력 앞에서  하나님의 전능을, 하나님의 전능을 자기가 믿고 의지하고 바라는, 하나님의  전능, '하나님의 전능이 나와 함께 하시고 하나님의 전능이 나를 구출하시니  그까짓 능력이 암만 있어 봤자 무슨 일이 있겠느냐' 하는 그것을 믿는데에서  평안을 누리고 또 그렇게 인정을 하고 고대로 행동하는 데에서 높아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전능, 모든 것이 와서, 복잡한 그 순서를 통과해 가지고서  별별 기묘 오묘한 일들이 있으니까 사람들이 그만 복잡해서 혼돈 돼서  얼떨떨하지마는 이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이라. 주님은 대주재시라 이것도  주님의 것이라 김일성이 너도 주님의 것이라, 김정일도 주님의 것이라, 어떤  대통령도 주님의 것이라, 아무리 큰 사람이라도 주님의 것이라, 내게 어떻게  세력을 가지고서. 힘을 가지고 어떻게 한대도 다 주님의 것이라, 주님의 것이니  내가 장차에 내가 유업으로 받을 내 유업, 내것이라 하는 요것을 믿는 자에게는,  그에게 고통을 주지 못하고 또 그에게 가까이 가지를 못합니다.

 안 믿는 사람들도 그런 통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거는 하나의 신화지마는  성삼문이가 어렸을 때에 어머니 등에 업혀 가지고 있는데 큰 청금대호가 나와  가지고서 엉크릴 때에 어머니 등에 업혀 가지고 있는 성삼문이가 있다가 '이놈  물러가' 그라니까 어린 아이가 그라는데 고만 그 천금대호가 이렇게 머리를  숙여서 절을 하고서 그만 물러 가더라고서. 그런 말이 있어. 그거는 뭐이냐? 안  믿는 사람들도 그렇게 그 사람에게 그런 담력과 그런 자기에게 가진 그 담력과  위력에 모든 불신자들도 그 사람의 가진 담력과 위력에게는 모든 피조물의  맹수까지라도 거기는 제재를 받고 압제를 받는다 그런 말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은 대주재시라, 우리 주님은 모든 것의 주인이시라, 우리  주님은 전능자시라, 우리 주님은 전지자시라, 우리 주님이 모든 것을 만드셨다,  우리 주님이 주권으로 모든 것을 작고 큰 것을 개별적으로 단독 주권적으로  섭리하신다 하는 이것을 의심 없이 믿고, 믿음으로 인해서 자기 마음이, 믿으면  평안해지고 담대해지고. 평안해질 수 있고 담대해질 수 있는 그 믿음을 가지고,  또 상대방에 대해서 얼마든지 끝없는 여유를 가지고 상대해서 상대방에게 대해서  유유하게 그를 하나님이 사랑하시듯이 내 기업으로 사랑하는 그 사랑을 가지는  거 요것으로서 높아진다. 요것으로서 높아진다.

 우리는 이 일이 당장에 되는 것 아닙니다. 당장에 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일이 우리에게 오기 전에는 수백 번 수천 번 그런 순서를 통해서  지극히 작은 것에서 경험하고 체험하고 체험하고 체험해 가지고서 자꾸 이렇게  자라는 줄 모르게 이 모든 식물들이 자라는 것처럼, 아이도 자라는 것이 보이지  않게 자라는 것처럼 이렇게 우리를 기르는 것이기 때문에, 수많은 우리 현실에서  하나님의 이 대속을 세 가지를 내가 받아서 입는 것과 하나님이 영원 자존자시요  모든 것의 다 예정자시요 창조주시요 보존자시요 주재자시요 주권자시요 개별  섭리자시요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다 예정하시고 창조하신 주님이시라 하는  것을 요 믿는 것이 대번에 안 되고 자꾸 요 믿는 일을 연습하고 연습해 가지고서  그에게 믿음이 얼마나 있든지 있는 것만치 평강을 누릴 것이고, 또 있는 것만치  그 능력이 와서 역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에는 전부 믿음을 말했습니다. 믿음을. '네가 믿는 대로 되리라'  인정하는 대로 되리라. 인정하는 대로. 인정하는 대로 네 마음도 만들어질  것이고 인정하는 대로 네 얼굴빛도 만들어질 것이고, 아무리 평안하다 해도  얼굴이 창백해지면 속에서 안 믿는 증거요. 다른 사람은 창백해지는데 그 사람은  기쁘고 즐겁고 평안하이 얼굴이 화색이 돌고 기쁨이 나면은 그 사람은 믿는  증거라 그 말이오.

 이러니까, 우리가 마음이 평안해지고 또 그 모든 행동에 여유가 있고 또 거기에  따라서 어떤 일이 있어도 그 행동이 무슨 강한 세력에게 주님을 아는 것이  요동치 안해야 또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요동치 안해야 구출된다  요것은 아주 압축한 소리입니다.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나를 안즉 높이리라' 아는  그것을 통해서만 높아집니다. 당신을 인정하는 그것을 통해서만 높아지는데  인정이 안 되는 자에게 높아지는 길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선지자선교회

어짜든지 지금은 시급합니다. 낙관하지 맙시다. 이것이 전쟁으로 뚝딱 해 가지고서 무슨 전쟁이 되어서 어떻게 되면 이게 쉬운데 이 평화 통일 평화 통일 하지만 슬슬 이래 가지고서 평화하다 이라다 보면, 언제든지 이제까지 역사가 공산주의하고 민주주의하고 서로 평화적으로 평화적인 조약을 했을 때에는 민주주의에서는 평화적인 조약을 다 지켰고 공산주의에서는, 평화적인 조약을 가졌을 때에는 민주주의가 공산주의를 그렇게 적대시하지 못하는 그런, 공산주의가 암행을 해서 지하 운동을 해 가지고서 그들이 자라게 하는 그런 기회 준 거 외에는 통계가 없습니다. 그런 기회 준 거 외에는 통계가 없습니다. 이런데, 모두 사람들이 야만으로 망각성이 있어 가지고 다 잊었다 그거요. 루우스 벨트 때부터 오늘까지 그거는 통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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