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전도방편

 

1985. 12. 3 화새벽

 

본문:사도행전 14장 1절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 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우리가 복음 전하는 이 방식도 꼭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그 방식만 쓰는 것 이 제일 좋습니다. 그 외에 방식 쓰는  그것은, 다 그것은 원 방식은 아니고 임시 방식으로 쓰는 것이기 때문에 좋아 봤자, 좋아 봤자 일시요  그 결과는 반드시 좋 지를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이 말씀하신 그 말씀만 당신은 전했고,  또 당신이 우리들에게 전 하라고 주신 것은 그저 신구약 성경 말씀을 기록해서 우리에게 전해 주신 것뿐입 니다. 그후 선지 사도를 통해서 영감으로 성경을  기록해 주셨지 예수님께서는 글 자 한 자 기록한 것도 남기지 안했습니다. 말씀하신 것 그 외에는, 음행한 여인이 잡혀 왔을 때에 그때에 손가락으로 땅에다가 글씨를 쓰고 즉시 그것을 다 까뭉케 버렸습니다. ‘그뭐 그런 게 뭐 있을 게  뭐 있는가? 거게서 아, 손가락으로 쓰고 났으니까 또 쓴 그것을 그냥  뭐 둬 두는 것보다  뭉케서 헤치는 게 낫지 않겠는 가?’ 또 이렇게 보는 사람은  또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기록된 것은 어떤 것을 다 제하고 어떤 어떤 그 많은 기록 위에 선택돼 가지고 우리에게 계시된 이 말씀인 그 밑에 있는 모든 순서를 그것을 우리가 알면 그냥 이래 글씨 쓰고 그만 이래 주 뭉켄 것이다 그렇게 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요새 뭐 그런 거 쌨습니다. 요새 뭐뭐 참피온 이라든가 그런 것도 ‘그 사람이 일 등했다’ 이래도 그 일등했다  하면 일등인갑다 이렇지마는  그 일등이 일등되는 데까지 올라오는 데는 무엇을 이기고 무엇을  이기고 무엇을 이기고 무엇을 이기 고 이래 가지고 해서, 그러면 그게 세계적인 뭐 참피온이 인제, 제일 일등이 참피 온인갑대요? 그러면 그것은 어느 지역에  참피온이라 어느 모임에 그때 참피온이 라 이라는데, 일등이라 해도 그 일등이 뭣뭣을 잡아 넘기고  뭣뭣을 이기고 난 그 런 일등인가 그것을 사람들이 살핀다 말이오. 졸업했다  하면은 그만 졸업이면 꼭 같은 졸업이 아니고, 학교 졸업을 했다 이라면 ‘졸업을 했어? 무슨 학교인고? 유 치원인가, 국민학교인가, 대학인가?’ 또 대학이면은 ‘어는 대학인가?' 자꾸 그걸 따집니다. 그게 뭐이냐 하면은 그 밑의 것이 뭐이냐  그걸, 뭣보다 위에냐, 뭣보다 위에냐, 뭣 위에냐를 는 거라 그말이오 자꾸 뭣보다 위에냐, 뭣보다 위에냐 그래 가지고, 우리나라로 말하면 서울 대학이 라 이라면 모든 대학보다 위에 있는 대학이로구나, 이것도 또  그것을 밑의 걸 봐 서 위의 가치를 압니다. 아, 무슨 대학보다 낫고, 무슨 대학보다 낫고, 무슨 대학보 다, 무슨 대학보다 낫고, 낫고 낫고  낫고 이런데, 그렇다, 또 그러고 난  다음에는 대학이라면은 ‘그 대학은 무슨 과를 졸업했는고?’ 그럴 때에 그 학교서는 어느 과보다 어느 과가 더 실력이 있고 더 입학하기가 어렵고,  어느과 보다 어렵고 어 느 과가 어렵고, 이래서 제일 어려운 과이면 입학했다 하면은 ‘아, 그래 그 참 아 주 실력 있다. 좋은 데 들어갔구먼. 또 이렇게 말하지.  또 졸업해도 ‘좋은 데 졸 업했구먼’ 이렇게 말하지요. 또 그 대학이라도, 서울대학 해도 서울대학에 서울대 ‘아, 모든 학교보다도 제일 아주 우등되는, 모든 학교보다  위에 있는, 능가한 그 런 학교에 입학했으니까 좋은 학교 입학했구먼.’ 이라고  난 다음에 그러면 서울 대학 안에서는 무슨 과인가, 또  서울대학 안에도 나는 그  잘 모르지마는 거게도 뭐 그저 원서만 써 내면 들어갈 수 있는 그런 과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과 는 없습니까? 우리 ○○○ 목사님 어데  있소? ○○○목사님 어데 있어? 그런 과 도 있습니까? 있어요? 나는 뭐 물으면 저 세상일은 우리 ○○○ 목사님한테 묻습 니다. 저분이 박사 학위 없어도 그 광문 다학이라. 마구 어떻게 많이 읽어 놨는지.

참 많이 읽고 아주 그렇게 광문  다학을 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그러면 책보따리 되기 쉬워요. 책보따리 되기  쉬워. 그렇기 때문에  아무나따나 많이 읽으면 좋은 게 아니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안하고 눈은 보아도 족하지  않는다 했습니다. 그거 뭐 그거 듣기 시작하면 한이 없어. 그러니까, 필요 없는 것은 안 듣는 것이 참  행 복이야. 나는 이 세상 공부  많이 안 한 것이 어떻게  다행인지, 어떻게 행복인지, 지금 생각하면, 몰라. 그거 알았으면 고민할 건데 그놈 다 참 처리하느라고 그랬을 건데 아예 뭐 배운 게 없어 놓으니까 참 좋아요.

인제, 그런 거 모양으로 우리가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이  어떤 말씀이라 하는 어떤 말씀, 어떤 말씀 위에 있는 말씀이냐? 학교  모양으로 말이오. 어떤 말씀 위에 있 는 말씀이냐? 그러면,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다 기록할라면  온 세상에도 둘 곳이 부족할까 하노라 하셨으니까, 그러면 예수님이 행하신 그 일이 자,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이 온 천하에 있는 이 세상 것을 기록한 세상 학문,  세상 학문 세상 책, 세 상 학문 그것보다 예수님이 한 일이 위에 있겠소 밑에 있겠소? 이게 입술로만 할 것이 아니라 똑똑히 느껴야 돼.

하나님을 믿으면 된다 했는데 하나님 믿어 가지고서 전능자 된 자도 있고, 하나님 믿는다 했는데 아무것도 아니고 사람의 발에 밟히는 자도 있겠고 그렇지 않아요? 요셉이가 자기가 알지도 못하는 그 외국에  가 가지고서, 종으로 팔려 가  가지고, 불학 무식한 요셉인데, 요셉이 글 못 배웠어요. 요셉이 공부했다 하면 안 돼. 불학 무식해. 공부할 여가가 있어야지?’  ‘아, 그래도 뭐 독학을  해서 많이 했을 거 다.’ 나는 안 했다 그래 봐요. 나는 안 했다 그렇게 봐요. 요셉이는 공부 안 했다 이래 보는데 다른 사람들은 ‘아, 그래도 뭐 그 보디발 집에서라도 자학 자습으로 자학을 했을 거고, 자학 자습을 했을 것이고, 또 감옥에 가서도 뭘 했을 것이고,’ 그렇게 모두 보는데, 요셉이가 자기가 독학을 해서 많이 공부했다 이렇게 보고 싶 은 사람 손들어 봐요. 요셉이는  독학해서 공부한 거 하나도  없었다 이렇게 보고 싶은 사람 손들어 봐요? 이거 참 이상하네요.  나는 그래 보고 싶어요. 나는 어쨌 든간에 나는 그래 보고 싶고, 그렇게 보고 싶고 그렇게 인정을 하고 싶어.

그랬는데, 그 사람이 어떻게 해 가지고서,  애굽 나라의 그 총리 대신이라면  애굽 나라의 벼슬로서는 제일 큰 벼슬인데, 바로 왕이 있었지마는 왕 그거는 뭐 지위적 으로는 높으지마는 실무의 능력은 총리 대신이  제일 실력이 있는데 그렇게 실력 있는 정치를 했을까? 한 것은 단지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하면 된다’ 요거 믿음 하나뿐이었어, 그만. 아무것도 없었어. 나는 그거 아무것도 없다고 봐요. 만일 딴게 있었으면 요셉이를 하나님께서 떨어뜨려 버렸지 그거  큰 수치를 당하고 더러 낭 파를 당했지 낭파 한 번도  안 당하고 그렇게 꼭  승리로만 일관하지를 안했어요.

그 요셉이는 아무것도 안 가졌어요. 그저  단지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하면 된다, 믿음 뿐이었어. 아무것도 없어. 믿음으로  했어.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하면  된다.

이러니까 자, 하나님이 하라 하면, 말하라 하면 말하지,  또 나무래라 하면 나무래 지, 중단하라 하면 중단하지, 제거하라 하면 제거하지,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하니 까 그 요셉이 지혜가 어떤 지혜겠소? 요셉의 지혜가  전지의 지혜라. 또 하나님을 힘입어서 이래 떡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또 하나님 힘입어서 하니까 요셉이 하는 그 능력은 무슨 능력이오? 말로만 이라지, 말로만 이라지 사실은 사실입니다.

사실은 사실인데, 믿음이 어찌 되느냐 그게  문제라. 믿음이 어찌 되느냐? 껍데기 말로만 믿는지. 자기가 생각으로만 믿는지, 자기의  무슨 이성으로만 믿는지, 감각 으로 믿는지, 신경으로 믿는지, 기억으로 믿는지, 욕망으로 믿는지, 신경으로  믿는 지 뭘로 믿는지? 인제, 믿다가 어떤 거는 중간에 가다가 떨어져 버리면 헛일이라.

중간에 가다가 떨어지면 죽어요. 예를 들어서 만일 여게서 요새  뭐 세계 모두 무 슨 인공 위성이라 하던가 그것 띄운다고 뭐  이리 쌓는데 그거 해서 잘 성공하면 유명해지고 떨어지면 어찌 돼요? 떨어지면 어찌 돼요? 떨어지면 좀 다쳐요? 박살 돼 버려. 박살돼. 그것 모양으로 이제 믿는 것도 중간에 믿어 가니까, 중간에 믿어 가니까 뭐 전부 위험성은 다 갖추어 가지고 위험있는데 대적하는 것들은 많지, 대 적하는 자들은 많은데 아, 가다가 그만, 믿음이 뚝 떨어져 버리면 그만 물에 푹 빠 져 버려요. 믿음이 똑 떨어지면, 배 안에 있지 뭐한다고 출출이 가 가지고서 물위 로 걸어가다가 그만 믿음 떨어지니까  어찌 됐소, 그만? 물 속에  푹 빠지지 안했 소? 주님 아니면 그거 빠져 죽어  버려요. 뭐 베드로는 빠져 죽지 별  수 없어 그 만. 빠져 죽는 거라.

이거 모양으로, 그러기 때문에, 이거 연습을 잘해야 되지 a는 짐승한테서 많이 배 운 거 있어요. 한 삼 년 됐어. 삼 년 됐는데 저게 불이 났어요. 저 어데 집에 불이 났는가 그래 거석해 가지고서 어째 그 비둘기  새끼가 한 마리 오층에 보니까 케 일이라 하는 풀을 심어 놨는데 케일 밑에  뭐이 꼬물대서 쥐인 줄 알았는데 쥐가 아니라 그거 비둘기 새끼라. 그래 날지를 못해요  날지를 못하는데 에미가 어떻게 물고 왔는지, 어째 왔는지 거게 와  놨다 말이오. 왔는데, 그래 이거 보니까,  그거 참 짐승이라도 그 에미가 와 가지고 물어다 먹이는데 하루 세 번 밖에는 안 먹여 요 보니까. 세 번 밖에는. 그래  놓고는 저 돌아다니고 이라는데, 그 세  번 꼭 올 때가 되면은 요게 나와 가지고서 뭐 고대하고 있기를 얼마나,  하루 세번 밖에 안 오는데 기다리고 있어. 기다리고 있어서 딱, 기다리는데 거게  와 꼭 기다려요. 고 보니까 저 숨어 가지고, 숨어 가지고 요래 가지고 가만히  숨어 은밀히 있다가 고 시간 되면은 그리 가 가지고, 거게 가 가지고 기다리고  있다가서 그래 오니까 받 아 먹고 이라는데, 그라더니마는 차차차차  그라니까 요게 에미가, 주기는  주는데 안 주고 말이지요. 안 주고 고게서, 언덕이 요만치  높아요. 언덕이 요만치 높으니 까 그래 인제 이놈이 그래 가지고 처음에 그 밑에 기다릴 때에는 안 줘, 기다려도.

이놈이 어찌 해 가지고 언덕에 올라 와. 언덕에 올라 와서 기다리면 와 가지고 고 시간 되면 딱 갖다 먹인다 말이오.  그러니까, 언덕까지 올라오고 그놈 또 언덕에 올라오면 고 시간에 와 먹이고 이래.

그래 나중에는 어북 거게  거석해지니까 똑 대번에 고게  와서 먹이는 게 아니라 요게 와 기다리고 있으면은 고게서 안 줘요. 안 주고, 보니까 뭐 먹을 것 줄까  싶 어서 지금 고대하고 있었는데 고게 있으니까 안  주고 저쪽으로 날아가요, 요게서 저쪽으로 날라가. 저쪽으로 날아가니까 이놈이 거게 따라서 이거, 날아가지는 못하 고 이래 걸어서 이래 가지고 자꾸 후득거려 또 그까지  간다 말이오. 거게까지 가 니까 거게 가 또 먹여요. 거게 가 먹이더니마는 그 또 나중에는, 나중에는 오래 동 안 있어 보니까, 거게서, 그라니까 그리 가니까 안 하고  조금 뜬 데 말이지, 날아 서 가야 돼요. 조금 뜬 데. 고게 가서 앉아 가지고 안 먹여요, 그러니까, 요놈이 고 게 가서 또 막 올라갈라 이라니까, 고게 올라가니까 그래 또 먹인다 말이오.

그래 가지고서 요래조래 연습하는데, 처음에 연습할 때  보니까 요게서 조금 날아 가지고 요래 보고, 또 요래 보고, 요래 보고 자꾸 요렇게 연습을 자꾸 그렇게 합디 다. 왜? 연습 안 하고 가면은 뚝 떨어져 버린다 말이오. 죽어 그만 그런데 요렇게 연습하더니마는 그래 나중에는, 실수를 안 해요. 보니까. 그래  훅 뜨는 데 보니까 어북 여게서 저리 옆으로 요리요리 가 가지고, 멀리 안 가요. 고 옆에 언덕 옆으로 요리 쪽 저까지 멀리 가 봐요. 그만 급하면 그리 얼른 들어가서 지금 고게 앉을라 고. 그뭐 그 지혜가 사람보다 지혜가 못지 않는 지혜가 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에 게 복종케 해서 그렇지 그게 둔한 거  아니야 그라더니마는 나중에는 몇 번 연습 해서 이래이래 하더니마는 저 다른 집, 남의 집, 다른 집에 옥상에 한번 날아가 봐 요. 인제 그래 가지고 차차 연습합디다.

그렇게, 앉아서 망대를 짓는 데에 그 비용이 족할는지 안 족할는지 이렇게 계산을 하라고 했는데 우리 믿는 사람은 계산도 안 하고 퍽퍽 달라듭니다. 이라니까 왜정 말년 때에 전부 다 실패해 버렸고, 6 5  때도 실패 다 해 버렸고, 지금도 계산 안 하고 달라들어요. 그러니까, 기독교는 전부이 믿음 가지고만 성공하는 것인데 믿음 가지고만 성공하는데 믿음이 족한지 안 족한지 자기  믿음을 시험해 보지 안해요.

고린도후서 13장 5절에는 ‘믿음에 있는지  없는지 스스로 시험해 보고서 확증을 해라’ ‘아이구 나는 믿음이  요만치밖에는 없다. 그러니까 요거  가지고서 요런 일은 하지마는 조런 일은 못 한다’ 이렇게  시험해 가지고서 믿음의 그 양이 어 느 정도인지 계산을 해 가지고서 얼마나, 요라면 모자란다. 자란다. 그것을 확실히 계산해 가지고 확증을 지우라 했는데 거게  대해서 하나도 그렇지를 안하다 그거 야. 이래 가지고 하기 때문에 다 틀립니다.

그래서, 여게 보니까 1절에 보니까, 두 사도가  바나바와 바울인데,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요 말씀 이 나는 이 14장 중에는 제일 중요하다고 봐요, 제일 제일 중요한 것이. 요 말씀이 14장 가운데서는 우리에게 제일 중요하게 지금 가르치고  있는 거라. 제일 중요하 게 「말하니」 그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에 다른 거 가지고 전하지 안했어요.

요새는 뭐 별별 식을 어떻게 별식을 가지고 있는지 이래 가지고서 어떤 목사님이, 세상 떴어요 아주 유명한 목사님인데, 한번 와 가지고서 요새는 이 전도하는데 입 체적으로 전도를 해야 된다고서 그 사람이 그래 말해. 그래  말하면서 뭐 미국 갔 다 와 가지고 미국은 어떻고 이렇고 자꾸 이리 쌓아면서, 이러면서 자꾸 입체적으 로 전도를 해야 된다고 이래. 아무 말도 안 하고 나는 듣고 있다가서 ‘진리만 변 하지 안할 게 아니라 방편까지도 나는 변하지 않는다고 그렇게 봅니다’ 나는 그 렇게 말했어. ‘방편까지도 변하지 않는다' 이라니까  만나면 그만 어실어실 좋아 질 건데 이래 놓으니까 서로 그만 이래 또 벌어져 결렬해 ‘또 성지 이제 유람을 어짜든지 가도록 합시다. 어쨌든간에  지금 이래 가기로 단정이  됐으니까 가도록 합시다.’ 그래 그 성지 유람 가자 하는 거 또 ‘우리가  그보다 더 많은 것도 성 경에 보고 믿으면 되는데, 가 봐야 별 거 없는데, 가 보면 그럴 것이라 믿으면  되 는데 거기까지 갈 시간이 어데  있습니까?’ 이랬더니마는 가자고 그렇게 왔는데 그만 한참 한 두 시간  앉아서 이야기를 이래 쫙  하고 말했더니마는 그 사람 뭐 성지, 성지 뭐라하노? 성지 여행이라 하는가? 순행인가? 성지  순행 그만 그 사람 파기 해 버리고 그만 안 가 버렸어요, 그만. 갈라고  쌓다가. 교장 선생님이 와 가 지고서 그래 몇 번이나 거게  와 가지고 그라는 걸  그래 자꾸 이래 이래 말해서 이래 버렸더니마는 그만 그 사람도 그만, 그분도 그만 갈  마음이 없던가 그만 그 때 그게 갈라 하는 그 단체가 그만 깨져 버렸어. 안 가 버렸어요, 그만.

요새는 뭐 이런 식으로 저런 식으로 해 가지고서 복음 전하는 식, 목회하는 식, 물 론 내 그런 식을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이 말하는 이 원리에, 이  원 칙에 이 식이 본식인 줄 알고 이 본식  외에 가끔 가다가 별미와 같이 그때 별식 을 쓰기는 쓰지마는 별식 쓰는 그런 것은 위험성과 폐단이 많이 따라옵니다. 그러 니까, 꼭 본식대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호주에 있는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할 때에, 그분들은 물론 그런 거 다 쓸 수 있겠 습니다. 전하면서 이걸 그냥 말로 거석하니까 자꾸 그림을 그려 가지고서 요거 무 엇을 요래 딱 거석해 거게 잘 붙어요,  보니까. 요걸 가지고 요 종이 쪼가리를 뭘 요래 가지고 요게 다 딱 붙이고 요게다 딱 붙이면 딱  붙여. 요래 딱 붙여 가지고 또 요거 해석을 하고 요 그림에, 전부 그림이라. 붙여 가지고 해석을 하고 또 요거 요래 하나 붙여 가지고 해석을 하고, 요래 밀고, 그 붙여 가지고 전부 그림 가지고 서 다 이래 해석을 해서 이래 가르쳐요.

그러니까, 그분들은 또 그걸 많이 이용하고, 또 환등인가 뭐인가 또 그걸 많이 사 용해요. 환등 그걸 가지고서 그래 가지고서 그 사진을 박혀 가지고서 이래 환등을 사용하는데, 또 예수님도 수염이 큼큼하이 이래 기다랗게  이게 예수님이라 떡 나 와 가지고서 이래 가지고 환등을, 이래 자기네들 사진은 아니고 뭐 그렸겠지. 그림 그렸겠지요. 그린 건데 이래 가지고 또 이래하고, 또 베드로는 수염이 시커머이 막 뚝뚝하이 이래 가지고 좀 억세게  생겼어요. 또 이래 가지고  이게 베드로라 이래 자꾸 가르치고 이라는데, 그라고 인제 그 환등을 가지고 또 이래 거석해서, 그라니 까 사람들도 많이 모이고 모두 그때,  옛날은 그때 활동 사진이라 이라는데,  활동 사진이라 이라는데 그것 가지고서 이래 오면 뭐 그거 왔다 하면은 그 면이 다 모 입니다. 그 하나 왔다 하면은 온  면이 쫙 다 모여 가지고서  이렇게 하는데 그런 식을 가지고서 많이 했습니다. 했는데, 그분들이 와 가지고서 그 선교한 그 결과가 좋지를 못함니다. 그 결과가 없습니다.

또, 선교한 가운데에 아, 이거 선교하는  데 이거 의술이 필요하니까 병원을  세워 가지고서 선교한 그거, 그 선교가 끝이 별로이 좋지를 못합니다. 또 ‘아, 이 선교 하는 데는 학교를 이와같이 해야 되겠다.’ 학교를 계획해 가지고서 이래 하는 거 좋은 거 같은데 실은 밝은 눈으로 보면은 결과가 좋지를  못합니다. 아마 지금 ○ ○○교 같은 그런 데서도 무슨 총회가 모이면은, 학교를 경영한 것은 학교에 돈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니까 그 벌써 무슨 총회를 모이면은 이번에는 그 학교에 이사 장이 누가 되노, 학교에 돈을 그거 돈을 거머쥐고 누가 지금 이 권리를 이래 하느 냐, 이것 때문에 그만 전부 신경은 거게 다 주력합니다. 주력하고, 전부 온, 하나님 의 뜻을 는 것보다도 그만. 학교의 재정에 대해서 재경치, 재정권에 대해서 사람들 이 신경 기울이는 거게다가 전부 주력해 기울인다 그거요.

그러니까, 뭐 이렇고 저렇고 해도 그런  그 기관들 가만히 보면, 총회가  모였으니 하나님의 뜻이 어데 있느냐, 자, 또, 우리의 적이 어데 있느냐, 또 우리가 지금  이 와같이 나가면 어떻게 지금 속화가 돼 나가고 있느냐, 지금  어떤 이단이 들어 왔 느냐, 뭐 할 일이 물 밀듯 들어오니까 할 일이 한정 없이 있고, 또 예방할 일이 한 정 없이 있는데 그거는 아니고 전부 신경이 전부 그거  돈에 가서 다 기울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 시비요. 나중에 가서 보면 또 싸움도 전부 돈 싸움입니다. 싸움도 전부 돈 싸움이라. 이래 놓으니까  돈 싸움 아닌 싸움이  없이 전부 돈 싸움이라.

진리 싸움이 아니고 돈 싸움, 그리 안 하면 감투 싸움, 그만 이것으로 완전히 변질 돼 버리고 마는 그런 것을 우리가  봅니다. 그리기 때문에, 처음에는 효력이 있는 거 같았지마는 성경에 기록한 이 방편은 갈수록이 변동이 없고 다른 방편은 나중 에 가서 폐단들이 많이 생겨집니다.

지금 한 십 오 년인가 됐어요. 저 미국 갔다 온 사람들, 내가 자주 만나지 안한 저 다른 데 있는 사람들인데 만나니까 미국서 이  한국에 있는 교회의 소문을 잘 듣 는대요. 우리는 등잔 밑이 어둡다고 잘 모르는데  그 미국에서는 우리나라 사정을 환하게 다 알고 있어요. 더 똑똑히 알고 있어요.

알고 있는데, 어떤 교회는 이 모든 사교를 가지고서 지금 복음을 전하고 있다. 그 교회가 그렇게 자꾸 크게 되는 것은 사교술이다,  이러기 때문에 주일날이면 그날 왜 그리 많이 오느냐? 그날 모여 가지고서  전부 만나 저 먼데 있던 사람들 만나 가지고 그때서는 뭐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다 사교할  수가 있지, 문의할 수가 있지, 전부 그거는 다 사업  위주로 이렇게 모여 가지고서  그 사교하는 사교라는 방편을 가지고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 그런 방편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도 좋기는 좋습니다. 안 좋은 게 아니고. 그러나 그게 성경적 그런 방편은 좀 아니라 말이오.

만나면 ‘아, 오늘 아무것이를 만날라면은 그리 가야 된다. 아무것이 만날라 하면 은 그 교회 가야 된다.’ 또 ‘아무것이를 만나야 그걸 알지, 그랄라면 그 교회 가 야 된다.’ 전부 이 사업적이요 사교적으로 이제 운동을 해 가지고서 그렇게 한다 그렇게 말하는 그런 하나의 줄기가 있었고, 또 하나는 아, 어느 교회는 현 정권을 이용해 가지고서 정권의 바람을 타고서 그래 정권 바람을 가지고서 지금 복음 운 동을 하고 있다 또 그렇게 말하고 있다고. 또 어떤 한 줄기는 그거는 개인 전도를 해 가지고서 그래 가지고 그 복음을 전하고  있다 그렇게 세 줄기를 미국에서 그 렇게 보고서 말하고 있다 하는 그것을  한 십 오 년 전에  제가 들었는데, 그들이 뭐 눈이 어떻게 밝은지, 먼 데서 보면  보여요. 먼 데서 보면 보이는데 자기 옆에 오면 모릅니다.

여러분들, 뭘 아는 데는 자, 가까이 보면 잘 압니까, 멀리 봐야 잘 압니까? 여러분 들이 확실히 아는 대답해. 그냥  이래 백지 앵무새 모양으로  자꾸 들어 가지고서 그래 옮겨서만 말하는 게 아니라. 먼 데서 봐야 잘 보입니까 가까운 데서 봐야 잘 보입니까? 가까운 데서 잘 보이는 것도 있고 먼 데서 보는 것이 잘 보이는 게 있 다. 그 말 어찌 되노, 그말. 그말 야 변통 없이 대답한  건데. 안 그렇소? 예, 그런 데, 물질에 대해서는 가까운 데서 보는 것이 잘 보입니다. 잘 보이는데, 사람에 대 해서는, 사람에 대한 거, 사람에 대한 것은 먼 데서 봐야 잘 보입니다 가까운 데서 보면 잘 안 보여요.

예를 들어서, 시간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가까우면 잘 안 보입니다. 시간적으로도 가까우면 잘 안 보이요. 시간적으로도. 그러면 지금 자기 동시대 거는 잘 못 봅니 다. 자기 동시대 거는 못 봐도 한 오십 년 전의  일은 보면은 거의 정확하게 됩니 다. 백 년 전의 일은 보면은 아주 정확하게 보입니다. 몇백 년 전의 일은 아주 정 확하게 보여요. 그러나, 자기 동시대 것은 잘 못 봅니다. 시간적으로도. 또 공간적 으로도 자기 옆에 있는 것은 잘  못 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옆에  있는 것은 거게 다 감염 당하고 또 설득 당하고 침노 당해서 잘 못 보지마는 자기와 그 공간적으 로 먼 데 있는, 멀리 있는 것은 잘 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미국 소식은, 미국 것은 우리가 잘 보요. 정확하게 보요. 미국 안에 있는 사람은  잘 못 봐요. 또 우리나라 에 있는 것은 미국에 있는 사람들이 잘 봐요. 이 공간적으로  먼 데 있는 거 보는 것이 잘 보이고, 또 인간적으로는 자기에게 닥친 일, 자기에게 닥친 일이 잘 보입 니까 남의 일이 잘 보입니까? 남의 일이 잘 보여요. 자기 일보다 남의 일이 잘 보 여요.

그런데, 이거 멀수록이, 사람에게 대한 것은  멀수록이 잘 보입니다. 시간적으로도 멀어야 잘 보이고, 공간적으로도 멀어야 잘 보이고, 또 자체적으로도 자기와 또 멀 어야 잘 보이고, 왜 그렇습니까? 왜  그렇지요? 보이기는 보이는데, 그러면 왜 그 래 그런 줄 그걸 알아야지 왜 그렇습니까? 물질은  가까우면 잘 보이지요. 그런데 왜 그럴까? 뭐라 했어요? 그러면 자기란 놈한테 가려  그래. 알겠소? 자기란 놈한 테 가려져 그래. 자기한테 가리워져 가지고 그래요. 자기한테 가리워져서. 자기 욕 심에 가리워지고 자기 중심에 가리워지고 자기 위주에 가리워지고 자기를 사랑하 는 자기를 사랑함에 가리워지고 자기에게 가리워져 가지고서 안 보입니다. 그러면 자기와 멀면 차차차차 그것이 이래 되어 정상화되어지고, 자기와 상관없는 일에는 말이오. 자기와 상관없는 일에 대해서는 아주 정확하게 보게 되는 것입니다. 상관 없는 일에는.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자기를 부인하라 하는 그것이  뭐 참 우리가 생각하면 얼마나 감사한지. 자기만 부인하면 환하게 다 보여. 자기 부인하면 되는 데 자기에게 가리워져 가지고서 모두가 안 보입니다. 그러기에, 시험에 든 사람 자 기는 몰라요. 딴 사람이 멀리 봐야 알지. 그러기에 사람에 대해서는 멀리 봐야 돼.

그래,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그러면, 우리가  예수를 믿도록 지금 만드 는 건데, 믿도록 만드는 데에는 제일 좋은 방편이 뭐이냐  하면은 말이 제일 좋은 방편입니다. 말. 하나님의 말씀을 그만 하면은 돼.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면 돼요.

이 성화라고, 성화라고 그림을 그린 이 성화 그린 게 있는데 그 사람들이 그려 놓 는데, 그걸 보고서 자꾸 익히면, 그걸 자꾸 보면은 우리의 모든 신경이나 감각이나 또 정신이나 모든 이성이나 그런  게 어데로 갑니까? 자꾸 그림  그린 걸 보면은.

그리 가 버려요. 그리 가니까 우리가 믿는 도는 세상이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뭇 하고 알지도 못하고 만나지도 못하고 이런 겁니다. 이거 참으로, 이상해요. 이러니 까 세상 사람들이 통통 거짓말이라 하지, 그들이 보지 못하는 것이지, 보아도 보지 못하는 것이지 들어도 듣지 못하는 것이지 또 접해도 접하지 못하는 것이지 그들 이 느끼지도 못하는 것이지, 이렇게  아주, 무형의 존재, 신령한 존재인데,  유형의 것은 그것이 없어져요. 보이는 것은, 뭐라 했습니까? 보이는 거는 차차 보이지 안 하고, 또 보이는 거는 보이지 않는 데서 나왔고, 그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데서 나온 이거는 신령하고 또 가치가 있기 때문에 그리 되는 것이라 말이오.

이런 건데, 이렇게 이런 신령한 것이기 때문에 이 기독교는, 기독교는 이렇게 나타 내는 것과 찾아 들어가는 게 있어요. 나타내는 것과 찾아 들어가는 게 있는데, 자, 나타내는 데에는 뭘 위주로 해야 돼요?  나타내는 데는? 예? 나타내는 데에는 뭘 위주 해야 되지? 예? 나타내는  것은 자꾸 보이는 걸로 위주해야  돼요. 나타내는 데는 말씀이 귀로 들으면 귀로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귀로 볼 수 있는데, 그러고 귀로 볼 수 있고 눈으로 볼 수 있고 또 손으로 만져 볼 수 있고, 자꾸 이렇게,  그 렇기에 이거는 밖으로 퍼치는 것은, 밖으로 퍼치는  것은 어두운 세상들에게 하기 때문에 이거 자꾸 이 유형적이고 자꾸 이렇게 그 겉으머리는 둔하고 탁하고 아주 값싸고 이런 것으로 껍데기, 자꾸 우리가 무슨 물건을 할라 해도 포장할라 하면은 제일 껍데기는 제일 헐한 걸로 하지 안해요? 헐한 걸로 하고서 속에 알맹이는 자 꾸 귀한 걸로 싸지 않습니까? 그것 모양으로 이 껍데기를  자꾸 헐한 걸로, 이 세 상이 다 알 수 있는 그런 걸로  이렇게 하지마는 속에 알맹이는 들어가면 차차차 차 딴게 돼야 된다 그거요.

이런데, 외부로 표시되는 데는 보이는 것으로 하지마는  찾아 들어가는 것은 점점 안 보이는 것으로 찾아 들어가야  됩니다. 찾아 들어가는 것은  안 보이는 것으로 찾아 들어가. 찾아 들어가는 것을 보이는 거  찾아 들어가면 안 돼요. 이 말이 얼 마나 어려운 말인지 모릅니다. 얼마나 어려운 말인지. 요게 속에 꽉, 들리면 그 사 람 심령이 영의 눈이 있고 그리 안하면 안 뜨인 사람이라. 찾아 들어가는 것은 보 이지 않는 것을 찾아 들어가야 돼요, 자꾸.

이런데, 자, 찾아 들어가는 것을 이것을 자꾸 그림을 그리고 유형적의 것을 가지고 서 이렇게 해 놓으니까 그 사람이 찾아 들어가는 데에는 형체 가진 그런 것이, 유 형의 것이 찾아 들어가는 데에는 방해가 돼요 도움이 돼요? 방해가 돼요. 도움 안 됩니다. 방해가 됩니다. 이제 그것을, 그러면, 자꾸 나타내는 데에는 이것은 도움이 됩니다. 도움이 되는데,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도를 전할  때에는 그런 걸 하지마 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가르쳐 준다든지 또 뭐 진리를 가르쳐 준다든지 구원 도리 를 가르쳐 준다든지 이렇게 가르쳐 주는 것은 자꾸 무형의 것으로, 무형의 것으로 자꾸 이거 가르쳐 줘서 무형의 것으로 자꾸 주력하도록 이렇게 해야 되지 유형의 것을 가지고서 자꾸 이렇게  나가게 되면은 그 사람이  무형의 것을 찾아 나가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그런 유형의 것이 되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무형의 신령한 데 로 찾아 들어가지를 못하고 맙니다. 그만  그게 들어갈라 하면 그게 자꾸 나오요.

여러분들이 기도를 하든지 뭐 할라 하면은 자꾸 이거 시청각(視聽覺)으로 이거 모 두 다, 이거 볼 시(視)자, 이거 보는 게 이게 좋은 거지마는 이게 문제라, 이게  들 어서 이거 보는 거, 보이는  거 이것을 헤치고, 보이는 막을  말이오. 보이는 막을 헤치고 속에 들어가야 뭐이 돼지는 것인데, 자꾸 어쨌든 간에 보이는 것이 가로막 아 가지고서 들어가지를 못하게 하기 때문에 그 사람은 찍근 들어가면 보이는 데 들어가 가지고서 그만 그것으로서 그만 끝을 마쳐버리고 말아요.

여기 ○ 장로라고 여게 ○○  목사님 아는가 모르겠어. 그  ○○읍에 정미소 하는 ○장로라고 키 커다란 사람 알아요?  그때 ○ 집사지? ○집사, 여기  와서 장로됐 지? 큰 아들은 목사 됐고 작은 아들은 저 무슨 고아원하고 사업하는데 큰 부자라 요, 그때. 부자였어요. 이랬는데, 그분이 절 따라다니며  이라더니마는, 참 열심 있 습니다. 뭐 말할 수 없는 열심 있는 사람인데 한번 오더니마는, 그때 내가 집사든 가 모르겠어. 집사든가 아마 내가 그때  아마 집사 같애요. 그런데 그때 집사로서 제가 집회를 많이 하고 다녔습니다. 이랬는데, 거게 와 가지고서 ‘아, 집사님,  내 가 이래 기도를 이래 하니까, 기도하니까 예수님께서 이 십자가에 못을 박혔는데, 그 못박혀 가지고 있는데 그 보니까 그 피가 뚝뚝  떨어집디다. 그래서 뚝 떨어져 서 내가 쫓아 가 가지고서 그 밑에다 대고  이래 그 피를 이래 입에 대 먹으니까 아주 상쾌하고 기분이 참 좋고 그래서 내가 그래 떨어진 피를 먹었습니다.’ 이래 놨다 말이오. 이라면서 그래 인제  ‘그게 뭐 입니까?’ 해서  `그래 늘 그렇습니 까?’ 이라니까, 기도하다가 기도를 그냥 하면 안 되고  기도를 열심히 이래 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형체가 나타나고 그래 그라고 난 다음에 피가 떨어진 그 피를 먹어야 그 다음에 만족이 있지 그 전에는 만족이 없고 이래서 인제, 나는 기도가 안 될 때에는  예수님의 그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형상이 나타나기까지 막 이래 애를 쓰고 그래 애를 쓰면 형상이 나타난대요.  나타나고 난 다음에는 또 애를 쓰면 또 그 예수님의 그 보혈이 떨어진대요. 또 애를 쓰면은 그 보혈을 자기 가 받아먹는대요. 인제, 그러면 인제는 그만 최종적으로 이제 성공했다 하고서 만 다고, ‘그래 그게 뭐입니까? 이래 말해요. ‘그것이  우상 종교인데, 우상 종교인 데 주님은 그렇게 그 과거에 그렇게 하셨지 그런 오늘에  그 형체가 있지 않는다.

그러니까, 형상 없는, 형체가 없고 네가 사상적으로 상상적으로 사모적으로 또 비 판적으로 평가적으로 그렇게 생각을 하고 또  성경이 그걸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성경에 문서적으로 그렇게 알고 그라고 난  다음에 영감적으로 네가 깨달아 느끼 도록 그렇게 해라.’ 자꾸 인제 요렇게 말하니까 그분이 그걸 버릴라고, 나중에는 그게 아닌 줄 알고 버릴라고 애를 써도 아마 버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죽자껏 가 는 게 거게 밖에 못 들어가고 맙니다.

우리가 주님 앞으로 가까이 나갈라 하면은 그런 것은 벌써 외부적이고 이라기 때 문에 그런 걸 해치고, 그런 거 없는 가운데에 무형의 존재인, 형체가 없고 그저 성 경이 나타내서 성경이 그 말씀으로 진리로 이런  분이라 하는, 무형으로 무형으로 서 성경이 가르치신 그 주님을 찾을라고 애를 쓰면은 거의  좀 바로 알게 됩니다.

또 그보다도 더, 성신의 감동이 자기에게 주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영감으로 가 르쳐 줄 때에 그 주님을 만나면 주님을  바로 찾아서 만난 것이 되는 것이겠습니 다.

그래서, 이거 성화 그림을  그려 가지고서 예수님에게 대해서  이렇게 소개하거나 또 사도들에게 대해서 소개하는 거 그것은 우리에게  백해 무익입니다. 해만 있지 유익은 한 내끼도 없는 것입니다. 왜? 그 예를 들어 베드로라면 베드로 수염이 이 래 놨다, 뚱뚱하다, 보니까 막, 그려  놓은 거 보니까 억세게 그려 놨어.  베드로가 억센가? 이래 그려 놨는데 이걸 안 보고 서적 중 인물로, 계시 중 인물, 하나님이 계시로 나타내신 그 인물, 그러면 형체 없는 베드로,  형체 없는, 성령이 가르치는 그 베드로를 우리가 찾아서 자꾸 이래 알면 베드로가 유형의 그거 아니고 베드로 의 그 신앙성, 신앙의 인격성, 그의 실수성, 그의 속성, 그이의 그 지능성, 그의 용 감성 이런 것이, 형체 없는 그것이 우리에게 알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만 형체가 되면은 형체에 가로막혀 가지고서 나아가지를 못해요.

그래서, 그런 방식들이 많은데 우리가 나중에 언제 가면 말할 때가 있겠지마는 여 게 그림을 그려 가지고서 성경을 연구하는 그런  식을 하는 그런 일들이 많이 있 습니다. ○○○장로도 그것을 가지고서 한창 인기를 끌었습니다. 인기를 끌었는데, 그러니까 나중에 그 도가 결과적으로 오늘에는 지금 많이 왕성은 돼서 크고 하기 는 하지마는 그 도가 전부 보면은  외식적이고 피상적이고 이렇게 가견적인 도만 가지고 있지 그 속에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그 도가 어두워져 가지고서 바로 들어가지를 못하고  항상 이거 그만 세상적이요  사회적이요, 이런 이 세상적의 도가 되고 말고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는 것을 자꾸 눈이 어두우니까 깨닫지는 못하고, 그러니까 그 도가 자꾸 속화가 자꾸 돼 나간다 그말이오.

그와 마찬가지로 벧엘 성서 연구라 하는 거, 벧엘 성서 연구라 하는 것을 내가 책 을 조금 봤는데, 이제 그 보니까 아주 징그러운 방식을 쓰고 있어요. 징그러운 방 식을. 징그러운 방식을 쓰고 있는데, 그라면은 자기는 그거 가지고서 잘 이용하면 은 좋은 줄로 이래 알고 있지마는  많은 사람을 어둡게 만들었으니까 하나님께서 상당한 그 복수를 하실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 방식을  우리가 다 피해야 합니다.

피하고, 그저 이 문서로 전도하는  거. 이거 뭐, 나도 하도  그리 쌓아서 설교록을 이것을 그저 말한 대로 그걸 녹음해 가지고  그만 고대로 거기서 하나 가감도 안 하고 뭐 그저 틀렸거나 말았거나 고대로만 이래 해서 기록한 그 설교록을 이렇게 해 나오고 있는데, 실은 그것도 내가 내치 안 하다가 많은 사람들이 자꾸 그걸 기 록을 해 가지고서 필기를 해 가지고 자꾸 이래 하고 하기 때문에 이 필기하면 이 거 보면 대조를 해 보면은 필기한 것이 뭐 그저, 사이비하지 그런 거 같지마는 아 니라요. 아니고 그만 요긴한 거는 다 빼 버리고 필기하는  사람이 자기 주관이 필 요하다 하기 때문에 자기 주관에 맞은 대로만 필기했기 때문에 같은 것을 필기했 지마는 전부이 각각 자기  주관과 이 말씀과 둘을  조화를 붙여 가지고 필기하기 때문에 전부 가짜가 돼 버리고 말았어. 이래서 ‘이러면 이거 전부 그 안 되겠다.

이거 원본이 있어야 되겠다. 내가 한 말은 내가 심판에  가서 책임을 지지마는 이 거 안 한 말을 자꾸 이래 가지고 하면 나중에 가서  이 고약도 안 하게 되겠다.’ 그래 가지고서 이제 고대로 기록하는 거, 그 설교한 거  녹음한 고대로 고만 하나 그 뭐 가감도 하지 안하고 빼지도 안하고 고대로 기록한 거 고것을 하라 해 가지 고 이래 하는데 실은 이것도 다 폐단되는 일이, 이것도  다, 잘못된 이거, 속화 방 식으로 나는 그래 그 좀 평가가 돼져요.

왜 그러냐? 신구약 성경 있으니까, 신구약 성경 있으니까 성경을, 고 성경 외에는 문서라 하는 것이 없고, 물론 뭐 무슨 교리가 이런 거 있지마는 성경 외에는 다른 문서는 없고 신구약 성경만 있고,  요 말씀을 자기가 깨달은  대로 입으로 전하고 나면, 입으로 전하면은 입으로 전한 그거는  그 형체가 없기 때문에, 형체가  없기 때문에 입으로 전한 것은 잘못  전했으면은 마귀가 차지 할  것이고, 잘못 전하면 마귀가 가지고 왔을 것이고, 바로 전하면 성령이 가지고 왔을 것이고, 이러니까 이 렇게 해서 고 택한 자면 성령이  역사해 가지고서 고 바로 기억도  될 것이고, 또 잘못되면 이렇게 마귀가 와 가지고 저거가 이용할 것이고 이렇게 해서 손해가 하 나도 없겠고 바로 되겠다. 그러나  이 문서가 있으니까 그  사람이 성령의 감화를 받아 가지고서 말한 것을,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기 위해 서 말씀에 보조 역활을 해 가지고서 보조의 말, 성경 말씀 외에 그를 더, 말하자면 잘 나타내는 데에 돕기 위해서 보조의 말이 있고 보조 말이 있고, 외나 진짜 말씀 이 있고, 또 진짜 말씀 안에 뭐이 있습니까? 진짜 말씀 안에  뭐이 있소? 뭐 있습 니까? 말씀 안에 진리 있고, 말씀 안에  진리 있고, 그 말씀은 보이지마는 진리는 안 보여요. 말씀 안에 진리  있고 진리 안에 또  뭐 있습니까? 영감 있어요. 영감 안에 하나님 계셔요.

이런데 그 사람이, 칼빈이면 칼빈이 깨달았으면 칼빈이  말한 말은 기록해 가지고 서 전달이 되지마는 칼빈이 그 말 속에  진리 있는 그 진리는 비숫하게 이래했지 그 진리는 기록을 못 한다 그말이오. 그 진리를 표시한, 진리를 표시한 말을 기록 하니까 그 말은 기록이 되지마는 말  속에 그 무한한 진리, 말  속에 있는 진리는 그거는 참, 사람이 우리가 그거 느끼지 않소? 진리를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기 위 해서 이렇게 말하고 저렇게 말합니다. 말을 암만 해도 그  말하는 것이 그 진리를 정확히 나타내 주지를 못합니다. 나타내 주지 못하기 때문에 그  말한 그 말을 자 꾸 그러니까, 한 진리를 알리기  위해서 요래도 말하고 조래도  말하고 자꾸 수십 가지로 이렇게 말하는데, 말해도 그 진리를 정확하게 완전 발표를 못 한다 그말이 오. 발표를 못 하는데, 또 그 사람이 말한 거 중에서 진리를 하나 증거하기 위해서 백 가지 면으로 만일 말을 했다고 하면은 일 면만 기록했다 말이오. 일 면만 기록 한 고 문서만 가지고 이제는 다른 거는 그 진리도 다  상관 없고, 진리 속에 뭐이 있어요? 영감도 상관 없고, 영감을 어떻게 전하겠소? 영감도 상관 없고, 하나님도 증거해 주지도 못하고 단지 말한 그 말만 한 이것만 거머쥐고 이것만 제일이라고 이것만 제일이라고 거머쥐고서 이것을  우상처럼 해 가지고서  이제 칼빈이 말한 데는 그 가감을 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렇지마는 이거는 사람이 말했기 때문에 그 칼빈이 말한 것이나 우리가 말한 것이나  꼭 같지 뭐 딴 게 뭐없는 거 아니오? 천주교가 교황이 말하는 것이 성경  말씀과 같다 하기 때문에 틀린 것이 지, 틀린 것이지, 그뭐 말하는 것이야 교황이 말한 것이나 누가 말한 거나 같은 거 아니겠습니까? 이 칼빈의 말이나 우리 말이나  같은 것인데 ‘칼빈 말한 데는 가 감을 못 한다.’ 이래 가지고 칼빈 말한 걸 틀린 거  만일 한번 말했다 하면 틀렸 다 하면 큰 야단 날 것입니다.

나는 또 ○○에서 그 쫓겨 나온 것이 좋아요. 좋은 점도 있어요, 나는. 항상 그 진 영은 우리가 했기 때문에  그 미련을 가지고 지금도  위해서 기도하고 참 아끼고 또 좋아하고 이래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거게 있었으면은 칼빈에 거슬리는 말은 한 마디도 못 했을 것이야. 못 했는데 지금으로  말하면 내가 깨달아 가지고 말한 것은 칼빈이 깨달은 그, 교리라면 깨달음이라 말인데, 깨달음이라 말인데 칼 빈이 깨달음과 우리가 깨달음이 그것이 얼마나 많은  차이가 있는지 모릅니다. 그 런 걸 말하지 못했을 거라. 그러기에 그런 걸 발표하고 이런 걸 생각하면 좋아요.

이런데, 그 문서가 있으므로 말미암아, 그게 없으면, 그게 없으면 성경뿐이니까 성 경 가지고서 자꾸 기도하고 뭣 하고 이래 가지고서 열심히 연구하고 깨달으면 그 사람에게, 칼빈에게 역사한 영감이 지금도 죽지 안했으니까  그 영감이 같이 계시 니까 그이에게 영감한 그  영감이 지금도 영감시켜 가지고  뭐이 될 터인데 자꾸 이렇게 그만 문서가 있으니까 문서 그놈만 딱 치우쳐 가지고서 문서 고것이 형태 화된, 문서 그것이 한 가다가 됐어. 형틀이 됐다 말이오. 형틀. 문서 그것이 형틀이 됐기 때문에 그 형틀 밖에는 나오지 못하고 전부 그 형틀적인, 칼빈 형틀적인, 칼 빈 형틀 속에 딱 끼워 놨기 때문에 주물 공장에서 주물을 할 때에 고 형틀 딱 만 들어 놓고 그 무쇠 물을 녹혀 가지고서  쭈르르르 부으면 고 형틀대로 딱 만들지 는 거와 마찬가지로 요 형틀 딱 맞추니까  고 형틀대로의 사람이 돼 버리고 교리 가 돼 버리고 말지 영감이 하는 그것이 그것 때문에 방해를 가지고서 못 하게 된 다 그거야. 이러니까, 이거 참 문제다.

그래서 지금 저도 자꾸 이렇게, 이러저리 지금 생각하는 중에 있습니다. 있는 것은 주 기철 목사님이 세상을 떠나실 때에 당신의 설교집을 다 가져오라 해 가지고서 그 설교집을 모아서 가져오는 대로 뭣 때문에  가져 오라 하는지 몰랐는데 다 가 져오라 해서 가져오는 대로는 다 가져 왔더랍니다. 가져오니까 그 앞에서 불을 사 르라 해서 불을 사뤘답니다. 주님  앞으로 가까이 갈 때가  가까와 오니까 영안이 밝으니까 지금 문제라 그말이오. 지금 그게 들어서 도리어 자기도 성령이 와 가지 고서 깨닫기는 깨달았는데, 성령은 그대로 늙지도 안하고 쇠잔치 안하고 계시니까 그분 계시면 지금 시대에  따라서 자꾸 정확하게 이렇게  증거해 줄 터인데 도로 자기가 거석해 가지고서 영감이 역사하는 일을  방해하는 일이 되겠다 싶어서 태 우라 했는데, 그것을 생각하면 나도 지금 이렇게, 이거  자꾸, 이걸 참고로만 삼아 야 되지, 참고로만 삼아야 되는데 이래서 그걸, 이제 필기한 그걸 틀린 게 많으니 까 그래도 말하는 대로는 바로 해야 되겠다 해 가지고  설교록을 했는데, 이게 들 어서 자꾸 이게 방해되고 이러니까 이걸 어째야 되나? 또, 다른 데서도 요새 보면 말이지. 다른 데, 신학에 있는, 신학교 있는, 신학교 교 장들 또 교수들 그런 분들이 이걸 가지러 많이 오면, 그분들 오면 몽땅 다 사버려.

다 사고 앞으로 거석하고 이러는데, 어떤 교수 한 분은 그라더래요. 자기가 열 처 녀 비유를 자기는 자꾸  연구를 이래 가지고 하는데  아만 뭐 원어 연구했다든가 뭐 하는데 이거는 다, 열 처녀가 다 구원 얻은 것이  그게 확실한데 온 세계는 다 다섯 처녀 지옥 갔다고 이렇게 하니 이게  참 항상 연구의 제목이었는데 어째 그 거 설교록을 뉘 집에 가 한번 들춰 보니까  고게 마침 들춰져 봐서 보니까 그 다 섯 처녀도 구원얻었다 하기  때문에 고만 깜짝 놀래  가지고서 그래 그분이 당장 와 가지고서 뭐 다 사 가지고 가고 앞으로 다 달라 한다고서 이래 이와같이 말해.

그말 하더래요, 그분이. 그래서 사러 왔다고. 그런 면은  재미가 있지마는 이 사람 은 이렇게 깨달아. 그걸 참고로 삼으면 좋은데 고 형틀  속에 파묻혀 놓으면 큰일 납니다. 형틀 속에 파묻혀 놓으면 그만. 그 사람을 가두는 감옥이 돼 버리면은, 그 사람이 영감을 받아서 얼마든지 자유할 수 있는데  자유하지 못하도록, 영감을 받 지 못하도록 그 사람을, 그 사람의 깨달음, 이 갑이라는 사람의 깨달음 그 형틀 속 에 딱 파묻히면, 아, 하나님께서 이래 깨달게 하셔 이 사람은 이래 깨닫고 저 사람 저래 깨닫고 자꾸 이래 그 깨닫는 범위가 넓은데, 이게 문제라.

○○○ 목사님이 이 성경을 가르칠 때에, 거게는 전부이 대소지를 다 내놨습니다.

그 구약도 대소지 내놓고 신약도 대소지 내놨는데, 그 대소지를 내놨는데 저도 그 때 그걸 사기는 샀는데 어데로 갔는지 없어요. ○○○ 목사님이 대소지 낸 거, 없 는데, 그것을 저도 보고서 거게서 깨달아졌는데 동지자를 내가 하나 만났어. 언제 한 부선 목사님을 만났어요. 만나 가지고 이렇게 그 대소지를 내 가지고서 이렇게 성경을 가르치는데 이 대소지 내서 이래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 이것이 어떻습니 까? 내가 질문을 했어요. 질문하니까 한 부선 목사님 말이 그런 말을 해요. 이 대 소지 내는 이거 고 면으로는 좋기는 좋은데 고만 이 대소지를 이래 내 가지고 이 래 하면은 성경에 무한한 범위를 유한한 범위  속에 가두는 것이 된다 하는 고런 말을 했어요. 그 한 부선 목사님이. 참 무한한데, 요렇게는 똑 말 안 해도 고런 뜻 으로 말했어요. 무한한 범위를 유한한  범위 속에 가둔 게  된다. 고 말을 듣고서 그때 나는 깜짝 놀랬어요. 참 신령한 종이다 그렇게 느꼈습니다.

고게서 내가 놀랬고, 또 하천 풍언씨가 강도를 하는데,  설교를 하는데 말이오. 설 교를 하는데 그 만주에서 설교를  하면서 예수님의 그 피가,  예수님의 피가 우리 속에 들어와 가지고서 역사를 해야 된다. 예수님의 피가 우리 속에 들어와서 역사 해야 하는 그것을 들어 가지고서 예수님은, 예수님의 피는 흘려서 버렸는데, 예수 님의 피는 흘려서 버려서 없어졌는데, ‘예수님의 피가 지금 우리 속에 들어와 가 지고서 역사해야 된다. 예수님의 피를 우리가  받아야 된다.’ 인제 그게 자꾸 유 행돼 가지고서 이 ○○○ 이니 ○○○씨가 그걸 가지고 많이 말하다가 지금은 힘 에 밀려갔습니다.

인제, 그말을 한 부선 목사님이 하는데 그 무슨, 말의 골자는 뭐이냐 하면은 예수 님의 그 피, 유형의 피 그 유형을, 유형을 버려 버리고, 그 형상을 버리고,  유형을 버려 버리고 그 유형으로  나타낸 그 속에 예수님의  대속하신 그 공로의 내부에 인간의 말로나 표시할까 그림으로 그릴 수 없는, 또 말로도 다 표시할 수 없는 그 속에 예수님의 공로를 그것을 우리가  자꾸 깨닫고, 내 피와  살을 먹으라는 것을 깨닫고 이래 가지고 해 가지고서 이렇게 그 양식 삼아야 한다는 것인데, 무형으로, 무형으로 돼 버렸는데, 무형으로 돼 버렸는데 그걸  유형으로 만들기 때문에 이거 는 순전히 이거는 세상화 해 버리고 육체화 해 버리기  때문에 이거는 나중에, 이 도는 마지막에 다 속화돼서 세상화되게 되고 세상도가 되고 만다 이렇게 말한 걸, 그런 말, 세밀히 안 해도 그런 말 퍼뜩 들었어요.

천주교가, 천주교 이거, 그 관념이 없기 때문에 천주교는 전부 미사 드린다는 것이 전부 신구약 성경에 있는 모든 성경적 인물들을, 인물들을 자꾸, 무형으로 연구할 라고 하지 안하고 자꾸 유형으로 자꾸 이거 나타낼라고 이와같이 하기 때문에 그 것이 마지막에는 우상 종교돼서  불교나 꼭 같소.  천주교는 불교와 꼭 같습니다.

불교와 다른 게 하나도 없어요. 이런데 이걸 교회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거게는 미사 드리는 그게 법이  되고, 분명히 이계명에 말해  놓기는 말해 놨는데 그걸 생각지 안하고 이라기 때문에 천주교와 합동  번역도 하고, 천주교에 대해서 아무, 깨달음이 옛날보다 더 많이 깨달아져야 될 터인데 천주교에 대해 깨달음이, 이것은 깨달음이 점점 어두워졌기  때문에 천주교와 다 하나가  됩니다. 천주교와 개혁교와 하나가 돼요. 그것은 이제 천주교가 회개를  해서 하나되느냐 하면은 그 세력은 강해지는데 거게 따라가 가지고서 하나  되기 때문에 완전히 개혁교는 이 제 속화돼 가지고 없어지는 것이지 개혁교가 살아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꾸, 부득이 해서 하나님이, 보이지 안하는 하나님이 나타나기 위 해서, 그러면, 하나님이 영감으로 나타내 가지고 나타냈으면 좋은데 영감으로 나타 내도 모르니까 그 다음에 또 진리로 나타내 가지고 또, 진리로 나타내도 모르니까 그 다음에 또 문서로 나타내 가지고서, 문서로 나타내 가지고도 또 흐미하니까 고 다음에 책으로 이렇게 신구약 성경이라 하는 이  성경으로 나타냈습니다. 그래 성 경으로 나타냈기 때문에 이제, 성경으로 나타냈으니까 우리는 성경이라는 유형 외 에는 다른 유형이 필요가 없다, 그걸 뭐 정죄는  할란지 모르지마는, 그렇다. 그러 고, 이 전도하는 방식을 그저 문서로 이랬으니까 문서까지는, 문서로 하는 문서까 지는 뭐 이렇게, 성경도 문서로  했으니까 문서까지는 그래도. 다른  무슨, 문서에 없는 다른 지식을 그려 가지고서 그림을 그리든지 무슨 또 무슨 조작품을 만들어 가지고 무슨, 조작을 해 가지고서 이렇게 해 가지고 하는  그런 것은 우리가 위험 하니까 안 하는 게 좋겠다 그렇게 생각이 돼집니다.

이래서, ‘말하니’ 그러기 때문에 이 말씀, 우리가 말만하면은 다 된다. 말이면은, 우리가 말까지는, 너희들이 전하라 주님이 시켰으니까, 네가 이 말을 전해라, 이거 가르쳐라, 말로 가르치는 거는 주님이 똑똑히 분명히 우리에게 말씀해 놨고, 말로 가르치는 거는 주님이 우리에게 명령을  해 놨고, 이 말을  문서로 써서 기록해라 하는 그런 것은 우리에게 명하지는 안 했습니다. 안 했는데, 신구약 성경을 문서로 기록했기 때문에, 기록할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그것은 아주  이거는 큰 소리로 주먹 내댈 만한 그런 것은 안 되고, 말로 하는 거는 주님이 이 말을 전해라,  말을 전해라 이랬기 때문에 말로 전하는 이것이 제일 완전한 방편이요, 하나님으로서는 제일 말단 방편 이 이상은 나가지  말라 하는 그런 것으로써 우리가  좀, 말은 못 할지라도 생각을 가지고 그 이하의 그런  방편까지는 나간다면 탈선되기 쉽지 않 느냐, 그런 것을 우리가 조심해서 가지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래서, 우리가 믿음을 만들자 하는  것은 이 말씀이, 설교자는  말이요, 설교자는 이 말씀이면 다다. 나는 이  말씀으로 가지고 사람을 살리고  말씀으로 그 죄악을 깨뜨리고 말씀으로 마귀를 깨뜨리고 말씀으로  사망을 깨뜨리고 말씀으로 생명을 일으키고 말씀으로 사람을 성화시키고 이 말씀 가지고 하는 이 말씀의 권위를 자 꾸 우리가 믿어야 되겠는데, 그러기 때문에 이 말씀의 권위를 믿기 위해서 우리가 성경을 공부합시다.

이래서, 성경을 읽을 때에 요 면으로, 요 각도로 여러분들이, 요 각도로 눈을 뜨고, 요게 대한 요 각도 요 모때기로  말이오. 요 면으로 눈을 뜨고서  성경을 읽는 요 각도의 눈을 지금 뜨자 요 각도의 우리가 눈이 뜨이자  그말이오. 이 각도의 눈을 뜨지 못했어요. 이 각도의 눈을 뜨지 못하고 하기 때문에  지금 하면은 그래도 그 거는 철학도 한 마디 들어야 되겠고, 과학도 한 마디 들어야 되겠고, 요새 또 뉴우 스도 또 한 마디 들어야 되겠고, 또 모두 대 정치가의  것도 위인의 것도 하나 들 어야 되겠고 이 종교의 인물도 하나 들고 이런  거 저런 거 다 말해야 이제 된다 하니까 실은 그걸 똑똑히 따지고 보면은 제가  주님 소개하는 게 아니고 제 소개 하는 것이오. 제 소개하는 거. 그 자가 제 소개하는  거라. 하나님께서 고 자를 박 살을 시켜 버립니다. 고런 자가 반드시 최종에는  목회를 못하고 하나님께서 박살 을 시켜서 대 수치를  당하도록 고렇게 만들어 버리고  마는 것을 우리가 눈으로 보면 볼 수 있다 말이오.

당신이 말씀하시는 그 말씀과, 인제 말, 이 진리와 영감과 예수님의 피 이 셋만 가 지고 자꾸 우러 먹고, 이 셋만 가지고  자꾸 증거하고, 이 셋의 능력이 와 가지고 하기로 하는 그 자를 하나님께서 절대 버리지 안하고 쇠퇴하게 하지 않습니다. 갈 수록 자꾸 소생을 시킵니다. 자꾸 소생 시켜요.  그 뭐 다른 방식이 많아도 그 사 람이 나이가 많으면 마지막에는 돌아올 것입니다. 정치 바람으로 한 사람도 그 사 람이 하나님께 밉상으로 보여서 집어 던지지 안했으면은 마지막에는 말씀으로 증 거하는 데로 이래 돌아올 것이요, 딴  데로 가지 않습니다. 자기가 뭣을 사교술로 이와같이 한 그것도 나중에 그 사람이, 하나님이 버리지 안했으면 그것을 다 회개 를 하고 버리고 이 말씀 증거하는 것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나중에 사교술로 했으 면 그 사람은 이 세상에 다 장사로 세상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세상으로 끌어냈지 이거 하나님 앞으로 끌어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마지막에 죽기 전에 복이 있으면 후회를 하고 그것을 완전히 전복을 시키고 갈 것이고, 그걸 전복 못 시키면 그 사 람도 마지막에 종말은 세상이 되고 마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을 것이라. 아주 이 중대한 말입니다.

이래서, 이 자꾸 이 말씀의 권위가 믿어지도록 만드는 것이 그게 뭐이냐? 믿음 만 드는 것이라. 그러면 이  말씀에 대해서, 어데 그런  말씀이 있습니까? 이 말씀은 열방을 다 파괴하고 건설하고 심으고 뽑고’  그 말씀이 어데 있지요? 한번 누가 한번 읽어 봐. 예레미야 1장 몇 절입니까? 여게 있습니다. 예레미야 1장 9절, 「여 호와께서 그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로 뽑으며 파괴 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 뭘로? 이 주의 말씀은 이 렇게 능력 있지 않습니까? 이러니까, 이런 말씀을 자꾸 찾아 가지고서 ‘야, 말씀 은 능력 있다. 말씀이면 다다. 이래 되어 말씀이면 다니까 이 말씀의 능력을 자기 가 믿고, 말씀의 능력을 인정하고, 말씀의 능력을 힘입어서 말씀으로만 이래 증거 할라 해야 되지 ‘이 말씀의 능력 가지고는 뭐, 이까짓  거 가지고는 유치하다 모 자란다. 이 그림을 그려야 된다.’  이 벧엘 성서 연구  같은 그림을 그려 가지고 뭐 배암도 그리고 용도 그리고 뭣도 그리고  자꾸 이 그림을 그려 가지고서 이래 해야 된다. 이것이 뭣이냐 하면  이 말씀의 권위를 멸시하고  무시하기 때문에 그 자에게 하나님이 같이 하시겠소? 우리가 업신여기는 큰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이 걸 알아야 돼요. 아, 말씀의 권위면 열방이나 모든 것을 파괴도 하고 파멸도 하고 건설도 하고 뽑기도 하고 심으기도 하고 이거 뭐 이거 다 인데 뭐. 이만하면 다인 데 뭐 딴거 또 원할  게 뭐 있습니까? 이러니까,  우리가 믿는 대로 된다 말이오.

믿는 대로. 백지 소용없는 걸, 아, 이 사람이 예를 들어 이 사람이 전능자다.  전능 자다 이래 믿으면 됩니까? 우리가 믿는 대로 되는 것은 이제, 참이 있는데 우리가 그걸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러니 인정하면 된다  그말이오. 그거 아무라도 인정 하면 이 사람도 전능자라 한다고 됩니까? 전능자인데 우리가  이 옛사람, 악령 악 성 악습으로 된 이것이 들어서 믿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알지 못하게 하기 때문 에 자꾸, 이제 네가 바로 알면 된다 그말이오. 믿는  대로 되는데, 이 말씀을 무시 하는데 뭐이 되겠소? 이 말씀을 무시하는데.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아, 서부교회도 백 목사 죽으면 뭐 그분뿐이지 그분 죽고 나면 그렇다.’ 내가 그 소리를 듣고서 비웃어, ‘서부교회는 아무 방식을 쓰지 안 했다. 아무 방식을. 전부 이 말씀 방식밖에 쓰지 안했기 때문에 말씀이 깨져야 깨 지지 깨지지 않으면 깨지지 않는다. 말씀이 해 왔기 때문에  다른 세상 어떤 방법 을 가지고 세웠으면 세상이 깰 수 있는 방법 같으면 그렇지만 세상이 깰 수 없는 말씀만 가지고 세웠기 때문에 세상은 깨지를 못한다.  갈수록이 더 똑똑히 드러났 지 깨지는 못한다.’ 내가 그런 말을 듣고서 나 혼자, 혼자 구수렁거리는 그런 일 을 내가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성경에서 자꾸 ‘보자. 이  말씀의 권위가 어떤고?’ 그 말씀의 권위를 알기 위해서 우리가 성경을 보자 그말이오. 그 면에 대해서 아직까지 눈을 못 뜨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이러니까, 요게 중요하고 요게 큰 거라. 요거 큰 거. 아, 내가 이 말씀 보니까 ‘하, 여기도 말씀이 했구나. 여기도 말씀이  했구 나.’ 신구약 성경을 다, 그 면에 눈을 뜨고 보면은  전부이 말씀이 다 했는데, 말 씀이 다 했는데, 말씀하니까 말씀이 다 했는데 뭐 딴거 찾을 게 뭐 있어야지? 이래서, 우리가 그 면을 거석해서, 우리의 힘은 뭐이요? 우리의 힘은 제일 껍데기 힘은 뭐이요? 성경 힘이요, 그 다음에 힘은 뭐이요? 이 말씀의 힘이요, 그 다음의 힘은 뭐이요? 진리 힘이요, 그 다음의 힘이 뭐이요? 영감 힘이요, 그 다음의 힘은 뭐이요? 하나님의 힘이요, 하나님이 그리  쭉 나왔기 때문에 그분  찾아가는 데는 그리 찾아가야 되지 달리 찾아 갈  수는 없소. 또 그분이 당신의  모든 좋은 것을 주실 때에 뭘로 주셨느냐 하면은 그분이 그 좋은 걸 주실 때에 영감으로 이래 통 해서 줬고, 영감 파이프로 나왔다 말이오. 영감 파이프로  나왔지, 그 다음에는 진 리 파이프로 나왔지, 진리 파이프가 말씀 파이프로 나왔지, 말씀 파이프가 성경 파 이프로 나왔지, 거게 다 떡 대 놓으면 다 받는 거라. 달리는 받는 길이 없어요. 달 리는 받는 길이 없어. 이러니까, 다른 방식을 쓰지 말라 그말이오.

내가 언제 목회 한 주보를 봤는데, 주보에 보니까 아주 조직을 많이 해 놨어요. 요 런 조직 조런 조직, 이거 보니까  이 사람은 이래 부흥하니까 고  조직도 했고 저 사람은 또 저래 부흥하니까 저 조직도 하고, 이런 조직 저런 조직 방식을 많이 썼 는데, 내가 말하기를 그분에게 대해서 ‘이런 걸 많이 쓰다가 보면 나중에 평가하 기를 고만 외나 진짜는 무시해 버리고 평가가 그리 기울어져 버리고 말면은 외나 껍데기만, 책 보따리만 가지고 속에 있는 그 보석은 말이지, 진주는 그만 다 흘리 버리고 만다. 이러니까 아예 이  뚜둑뚜둑 싼 거 말이오.  보석이 진주가 속에 뚝 꿀밤 만한 거 하나 있는데 아, 이 꿀밤 하나 이런 것도 제일 비싼 거는 얼마나 갑 니까? 누가 알아요, 좀 가격을? 제일 비싼 거  얼마나 가? 알 건데, 저 ○○○ 선 생 몰라요? 사보지 안해도 말도 못 들었어, 요만한 거. 요만한 거, 요만한 거 제일 비싼 거 얼마 갑니까? 그 몇천만 원 가는  것 그런 거는 없습니까? 몇천만 원 가 는 거 없는가? 꿀밤만한 거. 그 값이 없어요? 몇천만 원  그것이 가? 세계에 이게 제일이라 하면 몇천만 원이라도 그거 서로 살라 해요. 그런  걸, 그런 걸 딱, 요것 만 말이오. 요 보석 요놈만 손가락에 딱 거머쥐고 요래  있으면 안 흘리지마는 이 걸, 잘 간수한다고 말이지요.  ‘이거 간수하는데 필요하다. 어라.  책보에 싸라.’ 또 이거 간수하는데 그 책보에만 싸 가지고 안 된다. 짚동에 싸라.’ 이래 가지고 나중에 보니까 그 싸놓기를 이 집채  무더기만한 이 모두 짚북더기나 보자기에다 이래 싸 놨습니다. 이래 싸 놨으면 어째요?  싸 놨으면, 나중에 그라다가 그걸 잘 간수했소 잘못 간수했소? 나중에 이라다 보면 그만 북더기만 거머쥐고 그 알맹이 는 어데로 갔는지 못 찾기도 쉽다 그말이오. 이런 뭐 북더기 같은 이런 그 잡탱이 인 거 그런 게 좀 필요하기는 하지마는  그런 거 가지다가는 나중에 알맹이 잊어 버리기 쉬우니까 아예 이것도 저것도 다 치워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 말하니까 유 대인과 헬라인과 모든 사람들이 다 믿었는데 그만하면 됐지, 아, 말씀이면 열방을 파괴할 것은 파괴하고, 파멸시킬 거는 파멸시키고, 건설할 거는 건설하고, 뽑을 거 는 뽑고, 심을 거는 심고, 아, 이라면 다 되지 그 외에 딴 거 요구할 게 뭐 있습니 까, 있기를?

자, 오늘 아침에는 이제 요 말씀을 가지고, 지난밤에 우리가 사도행전 14장을 연구 했는데 전부 보니까 대학자들이라. 뭐 고렇게만 연구해서 파면은 자꾸 그래요. 또 설교하고 나서 보면은 또 더 깨달아지고, 또 설교하면 깨달아지고 이라니까 그 한 설교 가지고서, 요 14장 가지고서 자꾸 누가 바로 착수했다 하면은 일 년 내 설교 해도 남을 게 있어. 일 년 내 설교해도  남을 거라. 또 설교해 놓고 보니까 또 그 안에 아이고 요걸 증거 못 했다. 또 증거하고, 또 증거하고, 또 증거하고, 자꾸  증 거하고 자꾸 증거해. 그러면 나중에 어데가 만나 누구 만나느냐 하면은 주님 만나 요. 주님을 만나요. 지극히 큰 능력을 만나요. 아, 이런데 자꾸 껍데기로 이래 나가 지 말고.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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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3 성공의 비결-하나님 말씀 생각/ 마태복음 13장 8절-9절/ 830916금새 선지자 2015.11.05
3232 성공의 원인 계명지키는 것/ 요한복음 5장 25절/ 870318수새 선지자 2015.11.05
3231 성공하는 방편/ 신명기 28장 1절/ 881230 지권찰회 선지자 2015.11.05
3230 성도가 가질 것/ 베드로전서 1장 24절-25절/ 820516주새 선지자 2015.11.05
3229 성도가 가질 것/ 로마서 6장 1절-7절/ 820530주전 선지자 2015.11.05
3228 성도가 어떤 복있는 자인가/ 마태복음 25장 5절-13절/ 840202목새 선지자 2015.11.05
3227 성도는 세상의 소금/ 마태복음 5장 13절/ 1974. 12. 22. 제51공과 선지자 2015.11.05
3226 성도들의 할 의무/ 시편 91장 14절/ 841002화새 선지자 2015.11.05
3225 성도를 구원하는 성경말씀/ 이사야서 34장 16절-17절/ 1975. 5. 26. 제 21 공과 선지자 2015.11.05
3224 성도에 대한 주님의 요구/ 아가 4장 6절-9절/ 820829주전 선지자 2015.11.05
3223 성도에 대한 주님의 요구/ 아가 4장 6절-9절/ 1982년 36 공과 선지자 2015.11.05
3222 성도에게 주신 견고한 성읍/ 이사야 26장 1절-10절/ 1974. 2. 10. 제6 공과 선지자 2015.11.05
3221 성도의 구원생활/ 베드로전서 3장 10절-12절/ 840901토새 선지자 2015.11.05
3220 성도의 구원생활/ 야고보서 1 장 5절-8절/ 841007주후 선지자 2015.11.05
3219 성도의 기능부활/ 요한복음 5장 29절/ 880525수야 선지자 2015.11.05
3218 성도의 길/ 요한계시록 2장 8절-11절/ 890809수전집회 선지자 2015.11.05
3217 성도의 길/ 야고보서 1장 15절-21절/ 1976년 19 공과 선지자 2015.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