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4 00:58
새 하늘과 새 땅은 의인의 것
1985. 8. 28일 수야
본문 : 베드로후서 3장 11절∼13절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이번 주일 유치반 중간반의 공과가 되겠습니다.
본문 : 베드로후서 3장 6절∼14절 제목 : 새 하늘과 새 땅은 의인의 것 요절 :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 보도다 (베드로후서 3장 13절)
의는 죽지 않는다. 의는 망하지 않는다. 의는 영원히 청청하다. 의의 세계, 의의 나라, 의의 가정, 의인은 영원하다. 의가 있는 곳에 생명과 평강이 충만하고 의가 있는 곳에 행복과 소망이 넘친다. 의인은 산다. 천인 만인이 엎드려져도 의인에게는 재앙이 오지 못한다. 뜻밖에 하늘은 불 타 풀어지고 체질은 녹아지려니와 의인은 새 하늘과 새땅을 유업으로 받는다.
거짓 의를 따르는 자는 결국은 죽고 망한다. 둘째로 참 의는 둘 뿐이다. 하나는 하나님 의요 또 하나는 사람의 의다. 하늘과 땅과 그가운데 가득찬 만물은 지극히 큰 셋의 능력으로 생겨졌고 또 셋의 힘으로 보존되고 살아 가고 있다. 의는 막바로 지극히 큰 이 셋과 결합으로 하나된 것이 의다. 셋은 하나님의 본체와 본체 역사인 영감과 성경으로 나타난 진리다.
(2)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셔서 참 하나님이시요 참 사람인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가 택자를 대신하여 이 지극히 큰 셋(하나님의 본체, 영감, 진리)과 결합하기를 하나님의 전지의 지성과 지공법에 만족을 이룬 결합이 하나님이 하신 하나님의 의다. 이 의는 마귀와 죄와 사망과 세상을 완전히 이겼고 하늘과 땅에 있는 권세를 다 가지게 되었다. 설정한 이 의를 택자들에게 그저 은혜로 주신 것이니 곧 예수님의 대속이다.
(3) 사람의 의는 무엇이뇨? 하나님이 이루신 의 곧 택자를 대신하여 이루신 의를 택자들에게 입혀 주셨다.
순전히 은혜로 입혀 주신 것이다. 사람의 의는 택자들이 하나님의 의를 은혜로 입고 세상과 마귀와 마귀의 사람들과 죄와 사망의 유혹이나 강제에 빼앗기지만 아니하고 보존만 하면 사람의 의가 된다. 이것이 의인이요 의의 가정이요 의의 나라요 의의 교회다. 기독자는 예수님이 주신 하나님의 의를 소유와 몸과 생명과 온갖 것을 다 빼앗겨도 의만 빼앗기지 아니하면 천상 천하에는 해할 자가 없고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유업으로 상속받고 영생과 영원한 제사장, 선지자, 왕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산다.
(문 답) 1. 의의 종류를 말하라. 답 : 가짜 의와 참 의가 있습니다.
2. 참 의가 몇 가지뇨? 답 : 하나님의 의와 사람의 의입니다.
3. 참 의의 능력이 어떠하뇨? 답 : 생명과 평강과 기쁨이 영원합니다.
4. 참 의는 무엇과 결합된 것이뇨? 답 : 천상 천하에 제일 큰 셋 능력과 결합된 것입니다.(이 셋이라는 것을 단단히 기억하십시오.) 5. 사람의 의가 무엇이뇨? 답 : 예수님이 주신 의를 벗지 안한 것이니 지극히 큰 진리와 영감과 하나님과 연결을 세상에게 빼앗기지 않는 것입니다.
네, 이것이 다음 공과가 되겠습니다.
의에 대해서 반사 선생님들이나 보조 반사 선생들이 확신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가르칠 때에 세상 지식을 가르치는 것과 다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도를 전하는 데는 신인양성일위의 예수님의 대속의 지극히 큰 공로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복음을 전하는 데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의 역사와 진리의 능력의 역사가 있습니다. 진리도 독자적인 전지 전능의 능력을 가진 무인격의 이치입니다.
그러기에, 반사 선생님들이 지식만 가지고 전하면 지식만 그 학생들에게 전해집니다. 또, 지식에 자기가 그 지식을 알고 난 다음에 그 지식에 대해서 자기의 깨달음이 있으면 그 지식을 전할 때에 깨달음 같이 전해지게 됩니다.
깨달음이라 말은 하나님의 지식에 대해서 자기와는 관계가 어떤 가. 그 지식에 대해서 자기는 과거 현재에는 그 지식과 자기와의 어떻게 관련이 돼 가지고 있으며. 또 어떻게 앞으로 관계를 가져야 될 것인가 하는 그 지식과 자기와의 관계를 바로 찾는 것을 가리켜서 깨달음이라 그렇게 말을 합니다.
그러면, 깨달음이 있으면 지식과 깨달음이 같이 전해질 것이고 또 깨달음에 자기가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그대로 행할라고 애를 쓰면 행함이 같이 전해질 것이고, 또 그렇게 행함으로 자기가 얼마를 만들어졌든지 만들어진 것만치 그 만들어짐이 또 그 학생들에게 전하여 질 것이고 사람이 얼마가 변화가 됐든지 됐으면 변화된 사람이 전하여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말로서 지식만 전하면 외식하는 증거가 되겠습니다.
이렇게 기독교는 지식 그 이면에 뭐 여러 가지가, 논리를 하자면 열 가지도 넘는.
뭐 스무 가지도 넘은 것이 그 속에 신비하게 역사를 합니다. 그러나 증거하는 자가 만일 그 면에 그 진리에 대해서 백 프로 완성을 이루었다고 하면 전했을 때에 그 전함을 받는 사람은 그저 한 십 프로 받아 들 일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전하는 자의 가진 것의 예를 들면 비유컨대 한 십분 지 일 정도는 전달이 되고 그 이상 전달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기에 없는 것은 전달이 안 되는 것입니다.
또 이와 반대로 좋은 것은 이렇지만 나쁜 것은 전하는 그 스승 위치에 있는 사람이 만일 잘못된 것을 하나를 가지고 전하면 밑에 전도를 받는 사람에게는 한 십 배나 잘못된 것이 거게 가 가지고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좋은 것이 전달되는 것과 나쁜 것이 전달되는 그 율이 아주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전할 때에 자기에게 없는 것은 전달이 되지를 아니합니다.
이것은 다 반사 선생님들에게 언제든지 가지고 있는 일반 상식으로 지금 깨닫고 있어야 할 것을 말하는 것이요 본문에 관한 것은 아닌 것입니다.
본문에는 간단합니다.
의는 성경에 산다고 말했습니다. 의는 영영하다고 말챘습니다. 의는 청청합니다.
의는 시들지 않는 것이요. 의는 죽지 않는 것이요 병들지 않는 것입니다. 의는 아무 것에게도 피해를 보지 않는 것이 의입니다. 그러기에 의가 있는 곳에는 생명과 평강이 있고 의는 아무 피조물도 해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개인이나 단체나 가정이나 사회나 국가나 교회나 거기에 이 세상의 어떤 것이 구비 돼 있다 할지라도 의가 없으면 그것은 생명이 없는 것이니 조만간에 다 썩어지고 맙니다. 노아 홍수 때에 노아는 하나님께서 의인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 의의 사람이기 때문에 그는 홍수에 매몰되지를 안 했습니다.
그러므로, 학생들에게 의는 망하지 않는다는 것 죽지 않는다는 해지지 않는다는 것, 낡아지지 않는다는 것, 더러워지지 않는다는 들지 않는다는 것, 아무 것에게도 해를 받지 않는다는 것, 또 그는 변하지 않는다는 이 사실을 의의 가치와 권위를 학생들에게 단단히 인식시켜 두는 것이 좋습니다.
의인은 망하지 않습니다. 의로운 가정은 망하지 많습니다. 의로운 단체는 영영히 서서 있습니다. 의로운 교회는 하늘나라로 들려 올라갈 것이요 의가 없는 것은 다 유황불 구렁텅이로 몰려 들어갑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루를 살든지 일 년을 살든지 몇십 년을 살았든지 의가 된 것은 영영하지만 의가 아닌 것은 온 천하를 얻어도 그것은 다 결국은 사망으로 돌아가고야 맙니다.
그러기에, 이 의의 능력과 의의 가치와 의의 안전함과 의의 평안함을 잘 학생들에게 가르쳐서 주입적으로도 그 속에 박혀서 인간이 가질 것은 의보다 제일 귀한 것이 없다는 이 사실을 그들에게 알려 두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하늘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이 다 불타서 원소로 돌아가고, 모든 일들이 다 드러나고 이러나 의는 우주를 불사르는 그 불에 해를 받지 안했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 들어갔으나 그가 상하지 아니한 것은 의의 힘입니다. 의의 능력으로 상하지 안했습니다. 다니엘이 그가 사자 구덩이에 들어갔으나 그에게 의가 있어서 의의 힘으로 의의 안보로서 사자에게 해를 받지 안했습니다. 요셉 같은 사람이 그가 가정에서나 밖에서나 참 인간이 견디기 어려운 그런 여러 가지 굴곡을 많이 당했지만 그에게는 의가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가해자의 여러 것들이 와 서 부딪쳤지만 실은 하나의 해도 받지를 안 했습니다. 그 모든 거로 인해서 도리어 유익이 됐지 해는 받지 안했습니다.
이래서 의에 대한 가치와 능력과 그의 영원을 단단히 가르쳐 두는 것이 좋습니다. 학생 때는 아무런 사색이나 연구성은 그 시기가 그럴 때가 아니고 그저 주입적으로 자꾸 받으면 속에 기억 부대 속에 들어가고 상상 부대속에 들어가고 사상 부대속에 들어가서 박힙니다.
그러기 때문에 의의 능력을 가르치고 의에 대해서 이제 그 종류를 잠깐 가르쳐 주는 것이 좋습니다. 의는 이렇게 능력 있는 참 의, 산 의, 참 의, 산 의 이 의가 있고 거짓 의, 죽은 의가 있습니다.
거짓 의, 죽은 의는 어떤 것이 거짓 의요 죽은 의인가? 이 세상에 사람들이 의롭다 하는 그런 것들입니다. 세상에 사람들이 인간이 만들어 놓은 그 모든 법칙과 통계 온갖 사상과 목적에 일치가 될 때에 사람들은 평가하기를 의라 그렇게 평가합니다. `의롭다, 의인이라, 의롭다. 의라 말은 한 문 글자로 말하면 옳을 의(義) 자인데. 중국에서는 그때 천문학에서 한문 글자를 얻은 것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때는 중국이 세계서 제일 문화적으로서 선진했습니다. 이래서 거게는 그때에 그 천문학들이 많이 발달되어 있어서 그 한자는 보면 하나님의 계시가 나타나 가지고 있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의라는 그 의자는 양(羊)이라는 그 글자 밑에 나 아(我) 자를 붙이면 의가 됩니다. 양 밑에 있는 것이 의인이라, 의는 양 밑에 있는 게 의라 하는 것을, 천문에서 얻은 글자로 된 것은 대개 올바른 그런 영계의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말하는 의는 인간의 지식을 표준해서, 인간의 입법한 법칙을 표준해서, 인간들의 모든 풍속과 통계를 표준해 가지고 거기에 일치가 되면 의라 그렇게 사람들은 말을 했으나 이 의는 다 가짜 의요 거짓의 의요, 죽은 의요, 죽이는 의입니다. 산 의, 참의는 둘이 있습니다. 참의는 둘이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의 의요. 하나는 사람의 의입니다. 로마서 1장에 보면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났다.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나 믿음으로 믿음에 나아가게 하나니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인은 살리라' 그렇게 거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의는 참의인데 하나님의 의는 어떤 것인가?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 사람의 모양으로 있었습니다. 속에는 참하나님이요 참사람이나 참하나님이신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무형으로 내 주해 계시고 유형한 것은 참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참하나님과 참사람이 일위가 돼 가지고 계셨으니 그분을 가리켜서 예수님이라 그렇게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속은 하나님이나 겉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사람으로 나타나셨기 때문에 사람은 피조물인고, 피조물인고로 창조주에 결합이 되면 살고 창조주와 끊어지면 죽습니다. 이래서 예수님은 그렇게 신인양성일위가 됐지만 죄는 없으신 분입니다. 신성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복종할 이유가 아무 것도 없는 것이고. 또 인성은 죄가 없기 때문에 죽지 않습니다. 그랬는데 예수님께서 택자들의 이 모든 것을 대신, 죄를 대신하시고 자기 의무와 책임을 대신 하시고 하나님과 이 결합을 대신하시는 이 일을 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한 말로 우리를 대신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우리를 대신하기 위해서 오셔 가지고 사람들은 이 셋 큰 능력과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셋 큰 능력이 있는데, 셋 중에 하나는 자존하신 하나님의 본체요, 또 하나는 이 자존하신 하나님의 본체가 역사하신 일이 있었으니 그 역사하신 일을 가리켜서 영감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또 이 영감이 사람들에게 가까이 접할 수 있도록 와서, 사람이 누구든지 접할라면 접할 수 있도록 온 것이 문서로 기록되어 나타난 성경입니다.
이래서, 없는 가운데에 영계의 것이나 이 물질계의 모든 것. 영계가 만들어진 것도 영계 안의 모든 것도, 물질계가 만들어진 것도 물질계 안에 있는 모든 것도 이것이 만들어진 것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느냐 하면 이 셋의 능력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셋의 능력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단단히 기억하십시오. 이 셋의 능력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셋은 지극히 큰 능력을 가지신 전지 전능의 능력이요 완전이요 영원 불변의 능력입니다. 이 셋을 하나님께서 성경에 발표하시기를 하나님의 본체라고 하나는 말했고, 또 하나는 본체의 역사라고 말해서 본훼 역사를 영감이라고 말했고. 또 이 영감을 나타내서 성경이라 이렇게, 말씀이라 성경이라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없는 가운데에 영계나 물질계가 생겨진 것도 이 셋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지음받아 생겨졌고, 또 생겨진 것이 오늘까지 보존되고 관리되고 운영돼 나오는 것도 이 셋의 능력으로 인 하여서 보존과 운영과 그 모든 유지들이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셋의 능력은 모든 것을 없는 가운데서 있게 하셨고 있는 것을 보존하시고 관리하시고 늘 계속 운영하시는 이 지극히 큰 셋 힘입니다.
택한 자들이 이 셋 지극히 큰 능력과. 뱀의 유혹을 받아 가지고 끊어졌습니다.
이 세 능력과 끊어져 가지고 인간들에게는 죽음이 온 것입니다. 죽음이 와서 영원한 사망에 들어 있는 것을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신 것은 우리를 대표해서, 우리를 대신해서 이 세 능력과 다시 한번 결합을 가질려고 시작한 것이 그것이 예수님이 사람되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이 세 능력과 사람들이 결합되어 있는 것을 뱀이 고등 술책을 써 가지고 사람들을 미혹시켜서 사람들은 그 미혹에 떨어져 가지고 그만 지극히 큰 이 셋의 세력들과 완전히 절단이 되어지므로서 영원 한 사망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정 모혈로 태어난 사람들은 났으면 반드시 죽고 죽으면 영원한 유황불 구렁텅이에서 멸망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구출하시기 위해서 지극히 큰 이 세 능력과 다시 재결합을 하기 위해서 그것 때문에 오신 것이 하나님이 사람되어 가지고 오신 것입니다. 사람이 아니면 사람을 대신 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 이 세 가지 절단 된 것을 다시 재결합을 할려고 사람되어,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선 것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그 신성은 인성을 통해서, 사람들이 이 세 세력과 끊어진 것을 다시 결합을 할려고 인성을 통해서 역사했습니다. 신성이 인성을 통해서 인간을 대신하여 세 세력과 다시 재결합을 할려고 신성이 인성 속에서 역사할 때에 예수님의 인성은 신성에게 완전히 복종함으로 이 신성이 이 세 세력에게 완전한 결합을 할 수 있는 이 능력을 인성에게 부여해 줬을 때에 인성은 이 신성에게 완전 복종으로 사람으로서 이 셋 지극히 큰 세력으로 더불어 다시 완전한 재결합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래서 택자들은, 이 택자들을 대신해서 이 세 세력과 다시 결합을 할려고 한 것이 예수님의 대형과 대행과 대화친으로서 재결합을 가졌습니다. 이 결합을 가지니까, 악령이 결합을 끊었으므로 끊긴 자의 모든 것은 악령의 것이 되어서 있었는데 대신하여 예수님이 재결합을 하셨는고로 악령은 거기서 패전해서 다시 내어 놓게 되었고, 예수님은 대신해서 그 모든 것을 완료하셨기 때문에 마귀에게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을 예수님께서 다 다시 피로 값 주고 사 가지고 이 세 세력에 결합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 이렇게 이 셋 큰 세력으로 더불어 절단된 것을 다시 결합하시는 역사를 이루셨는데, 그 결합하신 그 대신하신 그 역사를 하나님께서 전인류에게 입혀주지 아니하시고 택한 자들에게만 입혀 주시고 택함을 받지 못한 자들에게는 입혀 주지 안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설정하신 그 후에 사람은 두 가지 사람으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 세력과 절단된 것을 대신 결합한 이 결합의 공로를 입혀 줘서 이 세 세력과 다시 결합된 사람이 있고, 결합이 되지 못하고 끊어진 채로 그대로 있는 사람 있습니다. 이래서 인류 시조 아담으로부터 이 셋 큰 세력으로 더불어 끊어진 사람 중에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해서 다시 재결합이 된 사람도 있고, 끊겨진 그대로 영원한 사망에서 멸망을 받는 사람도 있어서 사람은 이 두 종류로 나뉘게 됐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나뉘게 됐는데 예수님의 대속을 입히시고 입히지 않는 것은 그 인간의 어떤 행동에 따라서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그 택함에 근거되어서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입은 자들은 이 대속의 공로를 입게 됐고 택함을 입지 못한 사람들은 이 대속의 공로를 입지를 못하게 돼서 사람은 두 종류로 나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대속의 공로를 입은 사람들은 택함을 입은 사람들인데. 택함을 입은 사람들이 택함을 입을 때에, 만물을 예정 창조하기 전에 택함을 입을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입어 택함 입은 자들은 그때부터 그리스도가 책임을 지고 예택을 했기 때문에 책임진 그리스도가,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의 이름을 그리스도라고 하는데, 그리스도라는 하나님으로서 세 가지 직책을 가지고 감당하시는 그 하나님을 가리켜서 그리스도라고 그렇게 이름을 했습니다. 본체는 하나이십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이름하신 이 그리스도가 택한 자들을 영원 전 창세 예정 전에 그리스도가 책임지고 이렇게 택했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사람되어 와 가지고 이 택한 자들의 절단을 다시 재결합으로서 대속하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영원 전 이름이요 하나님의 이름인데.
그래서 성경에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 베푸신 것을 가리켜서 그리스도가 너희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다 그렇게 성경에 발표를 했습니다.
이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신인양성일위인데 신성의 하나님은 곧 그리스도라는 하나님이었다 하는 것을 그 뒤에 신약 성경에 발표해서 알게 된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의는 이것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하나님이 이 셋 큰 세력 진리와 끊어진 것을 진리와 결합했고. 영감과 끊어진 것을 영감과 결합했고 하나님의 본체와 끊어진 것을 하나님의 본체와 연결을 해서, 연결을 해서 예수님이 대속을 베푸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 대속은 진리가 요구하는 요구에 다 만족을 이루었고, 영감이 요구하는 요구에 만족을 이루었고, 하나님의 본체가 요구하는 요구에 만족을 이루었고 여기에 만족을 이루는 지성 지공의 법이 완전하다 이렇게 함을 이루기까지에는 세상에 악령이 이 일을 이루지 못하게 할라고 방해를 한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에 롯 박히실 때까지의 모든 투쟁인 것입니다.
이래서 악령이 전 우주는 빼앗아서, 우주에 하나님의 대리자가 아담이었는데 대리자 아담을 이 사탄이 미혹시켜서 점령해 버렸기 때문에 아담에게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그 위임된 것은 사탄의 것이 됐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마귀의 것이 되어있었는데 예수님께서 아담을 승리한 이 사탄에게 도 전하셔 가지고 악령으로 더불어 이제 다시 전투하기 시작해 가지고 마지막에 전투의 결과에 예수님이 승리하시고 그는 예수님을 다시 하나님으로 더불어 절단케 할라고 했지만 절단하지 못하고 예수님은 하나님과의 이 세 가지 결합을 우리를 다 대신해 가지고 우리 몫까지 다, 대신 우리 몫까지 해 가지고 완전히 이 세 가지 세력과 결합을 했으니 이 결합 된 것은 인간이 한 게 아니고 이 결합된 것은 신성이 인성을 붙들고 이 결합을 이루었기 때문에 이 결합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의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 의는 의는 진리와 절단되지 안하고 진리와 하나된 그것이 의의 일부 이 영감과 하나된 것이 의의 일부요, 하나님의 본체와 하나된 것이 의의 일부로서 하나님 본체와 영감과 진리와의 완전 이 결합을 가졌을 때에 그것을 가리켜서 의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래서 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해서 하나님 말씀대로 완성을 이룬 것을 가리켜서 의라 이렇게도 해석을 합니다. 그거는 하나님과 결합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의는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이 들어서.
하나님의 세 세력, 이 세 세력과 하나님이 들어서 이 세 세력과 완전히 결합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것을 하나님이 만든 의라 해서 하나님의 의라 그래 성경에 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만들었으면 하나님 만든 것이 인간에게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없는데 하나님이 만드실 때에 사람을 입고 오셔 가지고 속은 하나님이지만 인간을 입고 하나님이 이 완전 결합을 하시면서 이 결합을 예수님의 인성을 통해 가지고 결합을 했기 때문에 이것은 인간이 이룬 의요 하나님이 이루신 하나님의 의요. 인간의 의가 된 것입니다. 이래서 예수님의 대속은 하나님의 의요, 인간의 의가 됐습니다. 우리를 대신 한 인간의 의가 돼서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우리는 의를 입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산 의는 두 가지인데,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 인간을 통해서 하나님의 순전한 능력의 역사로 이 세 세력과 완전 결합을 한 이 의를 하나님이 만드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라 했는데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났다! 로마서 1장 17절 말씀 이하에 말씀하신 복음에 나타났다 말은 하나님이 인간을 통해서 만든 이 의를, 인간을 대신해서 한 이 의를 복음으로, 신구약 성경 말씀을 통해서 이 의를 인간에게 다 나눠줬다 그말이오. 인간에게 나눠줬다. 그래서 복음에 나타났다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하나님의 의요, 인간의 의는 뭐이 인간의 의인가? 인간의 의는 예수님께서 택자를 대신해서 이 완전 결합을 이루신 이 의를 택자들에게 다 은혜로 공으로 입혀 주셨는데 이 택자들이 이 의를 배반치만 안 하는 예수님의 의가 자기 의가 되어지는 그것을 가리켜서 사람의 의라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의는, 사람에게는 의가 없는데 사람의 의라 말은 하나님이신 신성이 사람인 인성을 통해서 우리 대신 의를 건설한 이 의를 우리에게 입혀 주셨기 때문에 이 의가 사람의 의인데 이 의를 사람들이 입고 이 의를 배척하지 안하느냐, 이 의를 배반하느냐 그것이 우리의 현실에서 토막 토막으로 결정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현실에서 하나님의 이 의를 우리가 벗어버릴 수도 있고, 이 의를 벗지 안하고 이 의를 나의 의로 삼아서 이 의를 가진 자로서 현실을 통과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의를 가진 자로 통과할라고 하면 이 의를 가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세상이 악령의 역사. 무력으로, 온갖 미혹으로 세상의 좋은 것을 다 주면서 아름다운 걸 다 주면서 우리의 욕심에 만족하도록 이런 걸 줘 가면서 미혹으로 이 의를 내놓으라고 이 의를 버리고 저희들이 주는 것을 가지라고, 이 의를 가질라면 이제 생명이 죽어야 하니까 이 생명을 버리지 말고 이 의 이것을 버리고 네가 생명을 가지고 살아라 이렇게 유혹을 하고 협박을 할 때에 자기의 모든 것이 다 이 의 때문에 없어질지라도 이 의를 버리지 안하면 그것은 없어진 거는 의 때문에 없어졌기 때문에 의의 것이 됐고 의에게 속한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의만 되면 영원히 죽지 안하고 또 병드는 거나 아픈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슬픈 것이나 이 어떤 해도 받지 안하고 영생을 하고. 또 영원한 쾌락과 행복을 누리고, 또 이 의는 하늘에 있는 것과 땅의 것을 상속받아서 유업으로 가질 수 있고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통치할 수 있는, 그리스도와 같은 제사장도 되고 그리스도와 같은 선지자도 되고 그리스도와 같은 왕도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의인은, 의인은 전지자요 의인은 전능자요, 의인은 완전자요, 의인은 천상 천하의 모든 것을 상속으로 받아서 유업으로 받아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의 주인공이요 그 모든 것을 통치할 수 있는 것이 다 의인들인 것입니다.
이래서, 이런 것은 사람들이 `감히 어찌 사람이 그렇게 그럴 수가 있겠느냐? 그것은 너무 과장된 말이다.' 이렇게 말들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구가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20절 이하에 보면 이제 것이나 장래 것이나 사망이나 생명이나 게바나 아볼로나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이 모든 것이 너희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랬으니까 `그리스도의 것이 되면' 하는 말은 `의인이 되면' 하는 말입니다. 의인이 되면 그리스도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것이 되면 의인이 됐기 때문에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통치할 수 있는 실력을 가지게 됩니다.
이래서, 의의 실력을 말하고, 의의 권위를 말하고, 의의 영광을 말하고, 의의 행복을 말하고. 의의 지위를 말하고 의의 부강한 것을 여러분 반사 선생님들이 이것을 똑똑히 말해 주십시오.
그런데. 그 의는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를 무슨 의인이라. 아무 데 무슨 무슨 의인이라, 뭐 정감록이가 의인이라 무슨 토정 비결이라 그런 거는 다 마귀가 말한 순 거짓말입니다. 거짓말이오. 이제 의는 둘뿐인데 하나는 하나님의 의 하나는 사람의 의인데, 사람의 의는 하나님의 의를 공으로 얻어 입고 이 의를 버리지 안하면 그 사람은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저녁에 증거할라는 것은 그것입니다. 의인이 무엇이기 때문에 그렇게 권세가 있고 그렇게 아무 것에게도 피해를 받지를 아니하고 항상 청청하고 영원한가 하는 그것을 오늘밤에 말할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거는 간단합니다. 의는. 이 우주와 영계에는 큰 세력을 가진 것이 큰 세력을 가진 것이 셋이 있습니다. 큰 세력을 가진 것이 셋이 있는데. 이 셋 이 없는 가운데서 하늘도 만들었고 땅도 만들었고, 하늘의 것도 만들었고 땅에 있는 것도 만들었고, 모든 것을 이 셋이 들어서 이 모든 것을 만들었고 지금까지 보존하고 지금까지 관리하고 지금까지 먹이고 입히고 기르고 다스려서 나쁜 것은 죽여 없애 버리고, 또 양성하고. 이 셋이 만들었고, 이 셋이 모든 것을 주권해 가지고 통치하고 있습니다. 이 셋이 통치 않는 것은 털끝만한 것도 없습니다. 이 큰 세력이 셋이 있는데 이것이 자존 한 세력이요 모든 것을 다 창조하고 보존한 세력이요 주권하고 있는 세력이요 만주의 주의 세력이요 만왕의 왕의 세력인데 이 큰 세력이, 그 세 큰 세력이 있는데, 의는 이 셋 큰 세력과 결합이 되어서 이 둘이 끊어질 수 없도록, 이 세 세력과 끊어질 수 없도록 요렇게 하나로 결합되는 이것이 의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의는 죽지 않습니다. 의가 있는 가정이라 말은 그 가정이 가정적으로. 가정적으로 하나님이 입혀 주신 이 의를 가정으로 벗지 안하고 그 가정이 어떤. 이 의 때문에 궁핍을 당해도 그 가정이 이 의를 버리지 안했고 어떤 고문과 고형을 당해도 그 가정이 의를 버리지 안했고 어떤 수난을 당해도 의를 버리지 안했고. 그 단체가 그 개인이 그 교회가 이 의를 버리지 안한 그것은 영원히 삽니다.
이러기 때문에 왜 의가 이렇게 세력이 있느냐? 지극히 큰 이 세 세력으로 더불어 영원 완전한 결합된 그것이 의기 때문에 의가 된 것은, 의가 언제 의가 되느냐? 의는 현실에서 됩니다. 현실에서 뭘로 되느냐? 믿음으로 됩니다.
믿음으로 되는데, 이 믿음이라 하는 것은 사람들이 이렇게 공중에 띄워 놓고 현재라는 현재와 실상이라는 실상 이 실상과 현재를 합하면 현실이 됩니다. 이 실상과, 자기에게 닥친 실상과 현재라는 시간과 둘을 합하면 현실이 되는데, 이 현실에 있는 믿음이 믿음이지 현실에 없는 믿음은 뭐 미래에 대해서 내가 이렇게 하겠다 과거에 이렇게 했다, 그까짓 것 다 아무 소용없습니다. 현실에 당한 믿음이 믿음이니 이 현실에 있는 코 믿음 가지고 현실에서 믿음 가지고 만든 것이 이것이 의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의는 이 지극히 큰 세력과 결합된 그것이 의이기 때문에 인간은 없지만 예수님이 대신 결합했는데 우리는 이 의를 벗지만 안하면 됩니다. 벗지만 안하면 된다는 이것을 단단히 기억합시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명상 가운데서 이 셋의 세력을 여러분들이 명상하고 명상하고 명상하고. 구상하고 구상하고. 또 감상하고 감상해 보십시오. 이 셋의 세력이 얼마나 큰지, 이 셋의 세력이 얼마나 큰지. 이 셋의 세력과 결합이 됐는데 무엇이 해하겠습니까? 이 셋의 세력과 자기와 결합돼 있는 것을 확실히 자기가 체험할 수 있습니다.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 셋의 세력을 가진 이 셋으로 더불어 자기가 끊쳐지지 않기 위해서 생명을 뺏겨도 끊쳐 지지 안했고, 자기가 사업의 모든 희생을 당해도 끊쳐지지 안할라고 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을 다 손해봐도 이 셋으로 더불어 끊쳐지지 아니할라고 애쓴 사람은 이 셋과 결합이 된 것을 자신이 확실히 경험합니다. 확실히 체험합니다. 확실히 경험하고 확실히 체험합니다. 확실히 경험하고 체험했을 때에 경험하고 체험한 그것이 천하가 두렵지 않습니다. 사망이 두렵지 않습니다. 거기는 사망이 없습니다. 우리가 그러나 그 시기가 지나가서 또 변해지면 또 변해집니다.
그러므로, 의에 대한 이 실력을, 권위를, 존귀를, 가치를 학생들에게 단단히 가르치고. 이 의는 이제 상식적으로 세상이 말하는, 세상들이 말하는 의가 많기 때문에 그것을 배격하지 안하면 뒤에 가서 세상 일반 그 의도 이와 같은 줄 알고.
그거는 정죄해서, 그거는 죽은 의요 죽이는 의요 그거는 멸망받을 의니까 정직해 버려야 되고. 정죄해 버리고 이 두 가지 의를 산 의 두 가지를 말하는데 그 의는 하나님의 의, 하나님이 만드신 의 그 의를 우리에게 줬으니 우리는 그 의를 벗지만 안하면 우리는 그 의가 내 의가 됐기 때문에 그것이 사람의 의니 벗지 안한 것이 뭐이냐? 그 의를 벗지 안한 것은, 벗지 안하는 것은 내가 이 세 세력과, 세력과 끊쳐 지지 안할라고. 어떤 것이라도 어떤 박해라도 끊쳐지지 안할라고 최후까지 끊쳐지지 안한 그것이 하나님의 의를 입은 것이니 인간의 의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단단히 기억하고, 요래 살아야 됩니다. 요래 살면 세상은 내 것입니다. 뭐 세상이 조롱하고 비웃고 얼마든지 하지만 비웃어도 상관없습니다. 조만간에 다 나타납니다. 조만간에 나타납니다. 이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많습니다. 우리는 믿읍시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어떤 행사 때 묵념을 하는 데 대해서 설명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신고함에 써넣었습디다. 그 묵념은 세상 어떤 행사 때에 뭐에 대해서 묵념하면 그때는 우리는 그 묵념을 할 수 없습니다. 뭣에 대해서 묵념하라 할 때는 우리는 그때는 묵념을 할 수가 없고, 다 묵념하면 머리를 이렇게 숙이며 묵념하는데 그때는 뭣에 대해서 묵념을 하라 할 때에 그렇게 시켜서 묵념하지 말고. 숙이지만 말고, 숙이지 안하면 그 사람들에게 이제 묵례 명령에 순종 안 한 것입니다. 그럴 때 눈감고 묵념하면서 무슨 단군에게 대해서라든지 뭐 이순신 장군에 대해서 이렇게 묵념하라 만일 그란다고 하면 우리는 그때에 숙이지 안하고 이래 가지고 우리나라를 위해서 국충한 사람이고 하니까 대단히 감사를 하고 또 우리들도 나라에 대해서 충성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그렇게 우리는 묵상 기도를 하나님께 할 수 있습니다. 묵상 기도를 하나님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모양이라도 버려라 했는데 그것은 다 악한 게 아닌가? 그래도 좋습니다. 좋고, 그러면 이 다음에 이제 그러면 하나님께서 진가를 또 더 알아 볼라고 하면 이 다음에는 거게다가 절을 하라 하는 그런 것이 옵니다. 반드시 그런 게 옵니다. 그럴 때는 이제 그걸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미리부터 자기가 그렇게 해 가지고 그 어려움을 자취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혜롭게 살아야 됩니다. 지혜롭게. 그러니까, 하나님의 성경 말씀에 걸리지 안하는 것은 얼마든지 세상이 요구하는대로 다 하고, 하나님 말씀에 걸리는 것은 안하고 그렇게 한계를 지워야 되지 공연히 자기가 의에도 지나치게 하면, `의에 지나치면 기한 전에 죽으리라'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러니 그런 것을 잘 알아서 하고, 그러기 때문에, 만일 단군 신사에 대해서 묵념하면 우리는 거게 묵념을 하지 못합니다. 머리 숙여서 못해. 그러니까 묵념하는 사람은 다 이래 머리를 숙이는데 그때 우리는 이래 꼿꼿하이 이래서 가지고 하늘을 향해 보고 나는 나대로의 묵상 기도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거기서는 머리 숙이지 안하는 것으로서 그 표명을 하면 됩니다. 지금은 이렇지만 주님이 다 이것을 이제 마지막에는 단군 신사도 해 가지고 신사 참배 하라고 해 가지고 강제로 또 하는 나라가 될란지 모릅니다. 뭐 지금은 민주주의라 하지만 구미 정치를 다 본받아 가지고 하지만 앞으로 뭐이 될란지, 하나님이 하시기 때문에. 그러므로 어쨌든지 의를 팔지 마십시오. 어떤 일이 있어도 의를 팔지 안하면 삽니다.
그라고, 새벽 기도 어짜든지 다 나오도록 하시이소. 새벽 기도 나와서 배워야 되지 안 배우면 어찌 압니까? 뭐한다고 못 배웁니까? 뭐 좋은 거 있어서? 주님 구름 타고 오늘이라도 오시면 다 그거 다 불탈 것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