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4 00:53
새 하늘과 새 땅은 의인의 것
본문 : 베드로후서 3장 11절∼13절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이 말씀을 증거한 지가 여러 날이 됐습니다. 그저 계속 증거하나 다른 말이 나오는 것은 아니고 우리가 여게 대해서 이 사실을 인정하고 여게 대한 마음과 몸의 모든 행동적인 변화와 준비가 있어야 될 것이기 때문에 자꾸만 계속 이 말씀을 합니다. 여게 대해서 이제 하나님이 이렇게 예언 해 놓으신 말씀 이 말씀도 다 우리들이 성경대로는 알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것을 다 성경대로는 알고 있습니다. 또 해석을 한 것은 성경을 더 똑똑히 알도록 하기 위해서, 믿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보조의 지식이기 때문에 성경대로만 알았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상이 문제가 됩니다.
이렇게 뜻밖에 이 물질계에 있는 것은 다 불타집니다. 우주에 있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다 불타서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형태는 다 없어집니다. 또 이런 물체 저런 물체는 다 그 체질이 녹아져서 그것도 형체는 다 없어집니다 그러기에, 노아 흥수 때에 사람들이 요긴하다고 필요하다고 각각 지혜를 다 써서 모든 일들을 다 제각각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준비하지 안한 것은 다 노아 흥수에 멸망을 받았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그대로 믿고 인정하고 그대로 행해 준비한 것은 사람들 보기에는 다 조롱거리가 되었고 업신여김을 받았지만 그것만 노아 홍수에서 구원을 얻은 것을 우리가 봅니다.
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예수님의 재림 때는 노아 때와 같다고 그렇게도 말씀을 하셨습니다. 갑자기 주님의 재림이 올 터인데 노아 때와 같이 모든 사람들이 여게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벌 말로 알고 그저 그렇게 하나의 제가 상식으로만 알고 있지 실지로는 알지를 안하고 또 현실적으로는 알지를 안하고 그저 하나 상식의 그저 정도로 알고 있는 그런 것이 모든 사람들인데 그라다가 갑자기 홍수가 내려서 멸망한 거와 같이 갑자기 하나님의 불심판이 내려서 모든 사람들이 다 멸망하게 된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스스로 우리가 자기를 판단합시다. 나는 지금 예수님의 불심판 여기에 노아와 같이 전심 전력이 여기에 기울여져 있는지, 이러니까. 우리 각자가 다 하나님의 뜻이 다른데 자기에게 해당되는 하나님의 뜻을 버리면 당장 그거는 죄를 짓는 것이요 하나님과 상관 없는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이 자기에게 명하신 그 하나님의 뜻을 감당을 해야 되기 때문에 이런 저런 분야에서 각양의 활동을 하고 있기는 있지만 활동하는 그 종류조차도 활동하는 그 목적조차도, 활동해서 마련하는 그 모든 수입조차 도 다 주님의 재림에 불타는 이 심판에 거기서 피난 준비를 하는 것으로 하고 있는 내인지,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그저 등한히 여기고 노아 때의 사람과 같이 이 세상에 먹고 입고 살고, 뭐 가정, 남녀 문제, 또 사고 파는 문제 ,이런 거주 저런 거주의 문제 모두 다 이런 것들에만 하루 종일 관심이 가고 주님이 구름 타고 오시는 데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그런 사람이 아닌가 이 시간도 따져 봐야 될 것입니다. 만일 노아 때의 노아와 같은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불심판을 면하고 구원을 얻을 것이고, 노아와 같은 사람이 되지 못해 있다고 하면 택한 자라면 기본구원으로 하늘나라 가기는 가지만 그 사람에게 건설구원이라고 하는 성화구원 기능구원은 하나도 이루어 가지 못하고 다 그거는 다 불타고 말 것인 것입니다. 거기서 우리를 스스로 자각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갑자기 옵니다. 갑자기 오면 이 모든 것이 다 하늘은 불에 타서 없어지고 모든 체질은 뜨거운 불에 녹아지는데 그때에 타지 아니하고 녹아지지 아니하는 그것만 새 하늘과 새 땅에 갑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 가는 것은 두 가지 종류가 갑니다. 하나는 사람들의 공로는 하나 도 없고 순전히 예수님의 공로로 담당하심으로 인해서 새 하늘과 새 땅에 가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은 손도 대지 안했고 알지도 못했고 생각도 안 했고 전부 예수님의, 대형 대행하신 예수님의 공로로 인하여서 가는 것들입니다. 그런 것을 가리켜서 기본구원에 속한 것이라 그렇게 말을 합니다.
하나만 예를 든다고 하면 우리의 이 몸이 하늘 나라에 가는, 우리 몸이 부활하는 것, 또 우리의 마음의 그 형체가 부활하는 것. 또 우리 영이 또 부활하는 거, 영의 부활은 가리켜서 중생이라고 말하고, 마음의 부활은 이제 회개해서 새로워지는 것이라고 말했고. 몸의 부활은 신령한 몸으로 부활되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영이나 마음이나 몸이 세 가지의 형체는 전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구원 얻게 되는 것입니다. 형체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구원 얻게 되기 때문에 영이나 마음이나 몸이나 형체는 꼭 같은 구원을 얻습니다. 꼭 같은 변화를, 신령한 것으로 변화를 받습니다. 꼭 같이 영생하고 또 하늘나라에 가서 살게 됩니다.
이것은 왜 같은고 하니 사람의, 거게 공로라든지 노력이라든지 하는 사람의 것은 하나도 거게 섞여 있지 안하고 순전히 주님의 대형 대행 대생하신 예수님의 공로로만 가게 되기 때문에 그것은 꼭 같습니다. 부활의 형체도 꼭 같이 다 신령한 몸으로 부활합니다. 또 그 마음도 다 성화되어 가지고 서 거룩하게 변화되어 가지고 하늘나라 다 가게 됩니다. 영도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돼 가지고 다 하늘나라 가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도 꼭 같습니다. 마음의 형체도 꼭 같습니다. 몸의 형체도 꼭 같습니다. 다만 거기에, 하나님이 해 주신 것은 꼭 같이 해 주셨기 때문에 꼭 같고 하나님의 해 주시는 은혜를 입어 가지고 사람들이 노력 한 것은 다릅니다.
사람들이 노력한 것은 천층 만층도 더 됩니다. 이래서, 사람들의 노력을 가해 가지고 되는 것을 가리켜서 건설구원이라, 또 성화 구원이라 그렇게, 기능구원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것은 각각 다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오실 때에 불로 우리의 몸이 타도, 우리의 몸이 불에 타진다 해도, 택한 사람의 몸이 타져도 그것은 꼭 같은 부활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또 잘 믿는 사람의 그 몸도 꼭 같은 부활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그 속에 실력이라는 그 건설 기능은 다릅니다. 기능은 꼭 자기가 살려야 됩니다. 자기가 구원을 이루어야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힘이라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이 기본구원을 주셔서 그 기본구원의 은혜를 입고 버리지 안하면 필연적으로 인간이 행하는 건설구원 행위구원을 이루어 가지도록 그렇게 가능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궁극적 면에서는 전부가 다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로 된 것이요 그것을 부분적으로 말하면 기본구원은 인간의 요소가 하나도 상관없이 된 것이고 건설구원 성화구원 행위구원은 기본구원을 얻은 그 사람이 기본구원을 힘입어서 제가 행한 것같이 인간의 노력을 가해 가지고 이루어지는 것이 그것이 건설구원이요 성화구원이요 행위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형체라는, 마음이나 몸의 그 형체, 외형의 그 형체의 구원은 어떤 사람은 늙어 죽어서 그것이 이렇게 이 형체로 부활하고, 어떤 사람은 어떤 것들에게 피해를 받아 가지고, 맞아 죽든지 뭐 총에 맞아 죽든지 물에 빠져 죽든지 어떻게 이렇게 일반적으로 늙어 죽지 않는, 그것 외에 무슨 병으로 죽었다든지 어떤 무슨 사고가 있어 가지고 죽었다든지 또 그렇지 않으면 믿는다고 악의 세력들이 와 가지고 죽여서 악에게 죽임을 당해서 죽었든지 또 불이 와서 타서 죽었든지 몸의 이 외형의 부활은 꼭 같습니다. 이것은 꼭 같습니다. 순교자의 외형부활도, 죄를 범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의 불에 타서 죽은 자의 부활도, 또 제가 잘못해 가지고 무슨 변사로 죽은 자의 부활도, 노쇠해서 죽은 자의 부활도, 병으로 말미암아 죽은 자의 부활도 부활의 그 형체는 꼭 같습니다. 다만 그 안에 있는 기능은 다릅니다.
기능은 다 자기가 기본구원의 은혜를 입어 가지고 제 힘으로 제가 이룬 거와 같은 그런 방편을 통해서, 꼭 보면 제가 만든 것이지 하나님 은혜라고 하지 안 할 만치 자기가 이루어 놓은, 자기가 행한, 자기가 건설한 그것으로써 자기의 심신의 기능이 구원 얻게 되고, 또 영도 부활한 형체는 그렇지만 영도 자기가 힘쓴 거와 같이 해서, 그 영이 자기의 심신을 통치하고 지배하는 그 기능이 어떤 영은 참 만점이 되어 있고 어떤 영은 하나도 없는 그런 영도 있습니다. 영은 중생돼서 온전해지기는 졌지만 그의 노력인 심신을 관할한 그 역사에 대해서는 각각 달라서 그 구원의 차이가 있습니다. 영의 기능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증거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입니다. 이렇게 갑자기 주님의 재림이 오시면 땅에 있는 모든 것은 불살라져서 다 하늘도 온 우주도 지금 있는 이 형태는 하나도 없이 없어집니다. 전부, 이래서 한 말로 말할 때에 하늘도 간 곳이 없고 땅도 없어졌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다 사위어서 원소로 되어 가지고 하나님께서 창세기 1장에 천지를 창조할 때에 액체와 고체가 다 한테 타여 가지고 멍얼멍얼했는데 그것을 하나님께서 둘로 나눠 가지고 하나는 액체라.
물이라 하고, 하나는 고체라. 덩어리라 하고. 그 물과 덩어리를 나누니까 그 사이에 공간이 있는 그것을 가리켜서 이 공간의 우주라 그렇게 말씀을 표시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갑자기 이렇게 와서 모든 것이 다 불사뤄질 터인데 우리는 불타지 아니할 것을 마련해야 됩니다. 불타지 아니할 것을 마련해야 되는데 이것이 오늘 닥칠란지 내일 닥칠란지 언제 닥칠란지 모릅니다. 다만 땅 위에 칠 년 대환난의 아마겟돈 전쟁이 시작되고 공중에 주님의 재림이 임하고 땅 위에서 아마겟돈 전쟁으로써 기독교에 심한 박해가 있고 또 그 다음에 박해로써 믿는 사람들이 다 죽임을 받아 가지고 홀연히 변화해서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고 땅 위에 남아 있는, 믿음 없어서 자기에게 어려움을 면키 위해서 진리와 영감과 주의 대속의 공로를 파는 그런 사람들과 안 믿는 사람들이 남아 있어 가지고 이렇게 서로 전쟁하는 아마겟돈 전쟁이 있는데 그 전쟁에서 서로 이렇게 싸우는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불로 사뤄서 다 심판해 버린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혹 아직까지 세제에 아마겟돈 전쟁이라는 전쟁이 시작되지 안했으니까 예수님의 재림이 좀 남아 있지 않느냐, 또 기독교에 대해서 박해가 없으니까 아직까지도 예수님의 재림은 조금 다문 몇 달이라도 며칠이라도 남아 있지 않느냐, 오늘은 당장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생각하지 않겠느냐 혹 그렇게 우리가 생각하기 쉽겠습니다. 그것도 유혹입니다. 성경에는 말하기를 어느 날 어느 시에 올란지 갑자기 닥친다고 말했는데, 그렇다고 하면 우리는 지금 그 모든 징조와 모든 것을 참고로 해 가지고 오늘은 예수님의 재림이 닥치지 아니 할 것이라는 것을 우리 주관대로 판정을 세울 수가 있겠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판정하지 못한다고 그렇게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그것이 무슨 이유냐 하는 것도 우리가 확실히 해결을 짓고 기다려야만 하겠습니다.
그 아마겟돈 전쟁이라는 전쟁이 그것이 이런 무슨 총칼을 가지고 싸우는 육박전뿐인 것인지, 혹은 과학전뿐인 것인지, 혹은 심리전인지, 사상전인지 우리는 그 전쟁이 어떤 종류로 어떤 모양으로 올란지 우리는 그것을 간단하게 그렇게 생각해서 판정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만일 사상전이라 그렇게 말을 한다고 하면 벌써 큰 전쟁은 붙었습니다. 기독교도 교회가 많지만 이 세상에 속한 교회 하나님께 속한 교회는 뚜렷이 지금 판별이 되어 가지고 있습니다. 또 아무리 하나님께 속한 교회라 할지라도 개인의 신앙으로써 벌써 노아에게 속한 사람과 또 그때에 당시 모든 일반인에게 속한 사람도 뚜렷이 판정이 돼 가지고 있습니다.
이래서, 세상에 있는 이런 운동 저런 운동을 자세히 살펴서 그 심리적으로 사상적으로 정신적으로 이렇게 모든 것을 다 분석해 본다고 하면 날마다 기독자의 그 신앙들은 뭐 수십이 아니라 수천 수만이 죽어져 가고 있습니다. 또 신앙적으로 봐도 그렇고 심리적으로 봐도 그렇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지금은 주님의 공중 재림은 와 가지고 있다 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지금 아직까지 안 왔다는 사람도 있고, 땅 위에 칠 년 대환난이 시작됐다는 사람도 있고 시작이 안 됐다는 사람도 있고 각각 다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자기가 말씀대로 영감대로 참 자기의 신앙 양심대로 어떤 것에게도 제재받지 아니하고 자기가 믿는 신조와 교리대로 그대로 살라고, 양보 없이 살라고 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현 세대를 잘 짐작하고 알게 될 것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이 아직까지 아마겟돈 전쟁이 시작되지 안했으니' 라고 우리는 해서는 스스로 속는 일이 되겠습니다. 또 `지금은 그저, 순교당해서 홀연히 변화하는 사람들이 없으니' 하는 것으로써 예수님의 재림을 연장되어 있다고, 아직까지 임박하지 안했다고 하는 사람도 속는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는 세계적으로 보면 벌써 그 지역적으로 온 세계가 유물주의와 또 유물주의 반대의 인권주의라고 할까요? 인권주의 유물주의가 상대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민주주의는 인권주의요 유물주의는 사람이야 그거 어찌 됐든지 물질이 제일이라 하는 그런 것으로 지금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싸우고 있으나 그 둘은 둘 다 하나입니다. 성경에 말하기는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워서 어린양과 세상에 있는 모든 전체와 다 대립되어 있다고 이래 말하는데 그런 것도 우리가 해석하기 나름이지 벌써 그런 것이 둘로 갈라져 있다 그렇게도 지금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런 걸로 인해서 우리가 아는 대로라도 뭐 월남이라든지 벌써 제국주의나 또 다 민주주의나 군왕주의나 이런 모든 나라들이 자꾸 지금 없어지고 민주주의 나라로 자꾸 이렇게 흡수가 되어지고 또 무신론 공산주의로 이렇게 흡수가 되어져서 세계에서는 신앙의 자유를 뺏긴 그런 지역이 많고 그런 민족들이 많고 그런 국가들이 많습니다. 다 그럴 때는 그 사람들의 생명이 뭐 몇 십 명 몇 백 명으로 말한 게 아니라 몇 천 명 몇 만 명으로 다 죽임을 모독히 말이지, 아주 죽임을 당해 가지고 그런 일들이 다 지내갔으니까 그런 것도 우리가 넓은 범위로 생각할 때에 그것이 다 홀연히 변화된 게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어서 그래 됐는데 그것이 홀연히 변화된다 했는데 마지막 극단에는 죽자 즉시 변화되지만 그 전에는 죽은 사람이 천 년도 기다리고 이천 년도 기다리고, 아담 같은 사람으로 말하면 한, 근 육천 년을 기다려 가지고 예수님 재림하면 이제 부활할 것이지만 혹은 몇 달 동안에 부활했는지 며칠 동안에 부활했는지, 월남이나 캄보디아에서 예수 믿는다고 죽임을 당한 그런 사람들이 혹 무덤 속에 묻었는데 거기서 부활 했는지 그것을 지금 우리가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 내가 이 말 하는 것은 무슨 말인고 하니 예수님의 재림 때의 그 배경 그 환경에 대해서 이러이러하리라 하는 것을 성경에 말씀하신 대로 그것을 증거를 했는데 혹 거기서 자기 주관대로 착각을 해 가지고 어느 성구는 믿고, `아 예수님의 재림 때에는 칠 년 대환난이 있고 공중 재림이 있고, 죽어서 홀연히 변화된다' 하는 그런 일이 있다는 그런 것은 사실을 자기가 믿고. 그런 사실은 자기가 믿고. 그거는 다 그 사실대로 믿고. 예수님의 재림 날짜는 뜻밖에 덫과 같이 밤에 도적같이 어느 시간인지 모르게 이른다는 이것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인데 이 말씀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되기 쉬워서 지금 이것을 예비(豫備)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제가 말하는 것은 뭐 여러분들에게 무슨 호감을 받아서 인기를 그는 그런 설교도 벌써 지나갔습니다. 또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받을라는 그런 것도 지금 다 지나가 버렸습니다. 어짜든지 지금 위급한 일을 당면했기 때문에 한 마디라도 바로 알아 가지고 한 사람이라도 구원을 바로 대비하도록 하는 그것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뭐 문체도 색깔도 무슨 인기도 환영도 아무 필요 없습니다. 다만 하나라도 더 말해서 여러분들이나 내가 알아 가지고 이 구원에 도움이 될까 하는 그거 외에는 딴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 이거 설교하는 데 대해서는 여러분들이 웅변도 기다리지 마십시오. 열변도 기다리지 말고, 또 무슨 정서의 그런 말도 기다리지 말고, 다만 이러냐 저러냐 하는, 그 사실이 뭐이냐 하는 그런 것을 여러분들이 듣고 또 성경에 가서 상고해 가지고 그것을 바로 알기를 바라는 것뿐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재림할 때는 이런 징조 저런 징조가 있다 했는데 마태 복음 25장에 보면 그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25장 31절 이하에 보면, 어린양이 오셔서 심판을 베풀 때에 그때에 보좌에 앉으셔 가지고 인류 전체를 심판을 하시는데, 바다에서 죽은 자도 내어주고 땅에서 죽은 자도 내어 주고 공중에서 죽은 자도 내어 주고 다, 죽은 자들이 다 살아나 가지고 다 그리스도의 심판 앞에 설 때에 그때에 주님이 양과 염소를 나눠 가지고 염소는 왼편으로 양은 오른편으로 다 이렇게 갈라 놓고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기를 이 세상을 창조할 때에 너희들을 위해서 예비한 영영한 나라로 들어가라 이렇게 말했고,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는 이 만물을 창조할 때에 함께 창조된 유황불 구렁텅이로 너희들은 가거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거게 그 성구만 보면 구원 얻을 자와 멸망받을 자들이 동시 심판을 받아 가지고 되는 것으로 그렇게 보기 쉽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성구에 말하기를 먼저 믿는 사람들이 심판 받아서. 그리스도의 심판을 받아 가지고, 이제 부활해 가지고 그리스도의 심판을 받습니다. 부활이 먼저입니다. 부활해 가지고 그리스도의 심판을 받아서 천 년 동안 천년 왕국 시대에 훈련을 받는 동안 이제 둘째 부활에 참여할 사람들은. 첫째 부활에 참여 못 할 사람들은 천 년이 차기를 죽음 속에서 기다리고 있다가서 천년 왕국 시대가 끝나고 나면 그 다음에 둘째 부활에 참여할 사람들이 다 둘째 부활에 참여하는데 둘째 부활은 심판의 부활이요 첫째 부활은 생명의 부활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때에 첫째 부활과 둘째 부활은 천 년간이라는 긴 세월의 간격이 있습니다. 그 사이가 천년이라는 넓은 간격이 있지만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불신자의 부활과 신자의 부활이 동시에 돼 가지고 같이 심판을 받는 것으로서 그렇게 기록이 돼 가지고 있다 그말이오. 그러면, 거기서 기록한 것은 그것은 심판만을 기록한 것이지 시간을 기록하지 안한 것으로 그렇게 우리가 봐야만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성경에는 여기서는 이렇게 말하고 저기서는 저렇게 말하는데 어느 성구 한 성구라도 그거는 부인하지 안해야 되겠고. 그러니까, 이 성구와 저 성구와 모순될 때에는 반드시 그 모순이 모순이 아니라 일치가 되는 데까지 우리가 찾아 나아가면 일치되는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땅에 이런 징조 저런 징조를 말 한 그것을 잘못 깨닫고, 그렇게 그 징조는 절대성 있는 것으로 믿어서 그런 징조가 있으니까 그런 징조가 아직까지 없으니 예수님의 재림은 오늘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 착각과 오해를 하는 그런 일을 지금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오늘 오전에는 특별히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그런 일들이 우리 주관 생각대로라면 그거 아마 아마겟돈 전쟁은 지금 이렇게 공산주의 민주주의라든지 무슨 무슨 종교전이라든지 이래서 총칼을 들고 원자탄을 던지고 이래 가지고 싸우는 전쟁이라 이렇게 우리는 언제든지 일방적 지식으로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방적 지식으로만 생각하고 있지만 계시록에 기록한 역사를 모두 다 이래 보면 성경에 전쟁이라고 하는 그 전쟁은 사람 보기에는 전쟁이 하나도 아닌데 그것이 성경에는 큰 전쟁으로 되어 가지고 있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루터의 종교 개혁이 되는 그것은 큰 전쟁으로 기록되어 있고 또 로마 교회가 천주교로 이렇게 타락되어 내려가는 그것은 크게 전쟁으로 되어 있지만 그것은 사람들이 자기 주관대로의, 상식대로의 전쟁이 아니기 때문에 전쟁 아니라고 그렇게 다 모두 생각들 가진다 그말이오.
그러나 지금 이 세계로 보면 벌써, 열뿔이 하나가 된다는 그것이 돼 가지고 나가는 것이, 과거에는 종교 종교마다 전부 다 그거 신이 각각 투쟁을 했었고, 또 지역적으로 말해도 나라라 하는 것이 일 고을만도 못합니다. 일 군만도 못하요.
그런 것이 이렇게 저렇게 있었지만 그런 모든 분열되어 있는 조그만한 그 약소국들이 차차차차 이제 단합이 돼 가지고 큰 나라로 화해졌고 또 사상전이라는 것이 무수했는데 벌써 그 사상전이라는 이런 것도 전쟁을 해서, 지금 뭐 남북은 총칼 전쟁이 아니라 이것은 사상 전쟁이요 언쟁 전쟁입니다. 말 전쟁이요 지식 전쟁이요, 이런 것도 있고, 또 이 종교와 저 종교가 과거에는 싸웠지만 이제 종교 통일을 말하고 있고, 또 종교나 무종교 사람이나 다 사상 같은 것으로 통일을 지금 보고 있고 이러기 때문에, 이런 것이 다, 둘이 하나가 되는 데는 반드시 싸움이 일어나 가지고 하나가 됐지 그냥 하나 된 것 아닌 것입니다. 이래서 종교 통일이라, 사상 통일이라, 온 세계는 평화 통일하자 하는 이런 것은 그 속에 우리가 모르는, 우리가 전쟁이라고 생각지 않는 그런 전쟁들이 수많은 전쟁의 전투 후에서 진자는 종이 되고 이긴 자는 상전이 돼 가지고 그와 같이 자꾸 점령돼 나가고 있는 것들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주관, 편벽된 일방적 지식을 가지고 지금 전쟁은 일어나지 안했다 그렇게 생각을 가지고 예수님의 재림은, 아직까지 그래도 남아 있다 이런 그런 망령된 생각을 가지지 말라는 것을 지금 경고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재림은 오늘인지 내일인지 모릅니다. 오늘인지 내일인지, 오늘 온다고 하면 아마겟돈 전쟁이 온다, 칠 년 대환난이 이르렀다, 또 공중에 모두 홀연히 변화돼 가지고 홀연히 변화 되어 갔다, 또 죽은 자들이 다 부활해 가지고 공중에 주를 영접했다 그게 다 보이지 않게 되기 때문에 보이지 앉는 영의 세계로 되어지기 때문에 그 순서들이 다 이루어졌지만 우리의 지식 판단에서는 하나도 이루어지지 안했다고 그렇게 인정 못 할 수 있을 그만치 우리는 어두워져 있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의 재림에 대해서 오늘인지 내일인지 모른다는 그것이 우리 개인의 죽음이 오늘인지 내일인지 모르는 그와 꼭 같은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믿어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 말씀에 대해서, 씨 뿌리는 비유에 보면 돌밭과 길가밭과 덤불밭이 있었는데 그 셋을 부인하면 옥토가 됩니다. 우리가 들은 하나님의 말씀은 온 세상이다, 이런 세상 저런 세상 온 세상이 부인케 해도 부인케 하는 그 세력에게 져서 하나님 말씀을 부인하게 되면 그거 졌고. 온 세상이 다 달라들어도 내가 들은 바의, 내가 아는 바의 하나님 말씀을 믿는 것이 요동치 안했으면 그 사람은 길바닥에 뿌린 씨의 해독을 벗어난 사람이 되겠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라고 할 때에 내 인간의 주관이나 경험이나 체험이나 내 사정이나 모든 경제 문제 모든 문제, 모든 어떤 문제가 있어도. 내 몸이 죽어도 이 말씀은 부인치 안하고 이 말씀을 참되게 인정하면 그 사람은 자기보다 이 말씀을 권위있게 세워서 자기를 부인하고 이 말씀을 믿는 사람이요, 세상을 부인하고 이 말씀을 믿는 사람이요, 자기의 경제면이나 모든 사건면이나 그런 것이 어떻게 된다 할지라도 그것을 부인했지 말씀을 부인하지 않는 그것이 옥토에 뿌린 씨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씨는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맺는다고 말했습니다. 인인 관계서도 완전을 이룰 수 있고.
악령으로 더불어서도 완전한 승리를 이룰 수가 있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완전을 이룰 수가 있다는 것을 가리켜서 옥토에 뿌린 씨로 그렇게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지금도 말하는 것은,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밤사이에 도적같이 오리라' 10절에,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도적같이 온다고 이렇게 하는 것은 이제 자기가 뜻하지 못할 때 오는 걸 말합니다. 도적이 뭐, 주인이 도적 올 줄 알았으면 뭐 예비하지 뭐, 도적은 주인 모르게 오는 것입니다. 그 말은 뭐인가 하면 주님의 날이 자기 생각지 못한 때에 온다는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또 누가복음 21장 34절 이하에도 이렇게 `너희들이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방탕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나니 그 날이 뜻밖에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그러므로 너희들은 이 모든 일이 너희에게 이렇게 닥치지 안하고 이 모든 어려움을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하기 위해서 항상 깨어 있어 기도하라' 하는 말씀했습니다. 항상이란 말도 아침에만, 저녁에만. 어느 날 어느 날 그게 아니고, 항상이라고 하는 것은 계속이라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도 주님이 오실란지 오늘 안 오실란지 우리는 모릅니다.
오늘도 주님이 오실란지 안 오실란지, 오늘 불이 탈란지 오늘 안탈 란지 우리는 모르는 이 사람으로 있어야 이 성구를 성구대로 믿는 사람이지 여기서 다른 에누리를 가지고 제 주관대로 이 말씀을 멸살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이렇게 온 세계가 다 우주가 불탈 터인데 그때에 타지 아니하는 것이 그것이 구원을 얻습니다. 타지 않는 것이 구원을 얻습니다. 타지 않는 것이 구원을 얻는다는 말은 타지 아니한 생애, 타지 아니한 공로. 타지 아니한 명예, 권세. 타지 아니한 심신의 기능 그런 것들이 다, 타지 안한 것들이 구원을 얻습니다. 타지 안하는 것들이 구원 얻는다는 그것은 타지 안함으로 타지 안함으로 구원 얻는 것은 어떤 것이냐 하면 다 건설구원에 속한 걸 말합니다. 건설구원에 속한 것은 타지 안한 것이 구원에 다 참여하게 됩니다.
그러면 어떤 성도가 순교를 당했습니다. 순교를 당했으면 순교당할 때에 총으로 순교를 했든지 칼로 순교를 했든지 순교당할 때에 그 칼에게 죽지 안한 기능만 영생합니다. 원자탄에게 타지 않는 기능만 영생합니다, 총에게 상하지 않는 기능만 영생합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잘 알아야 될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면 그 믿음이 어려서 헛일입니다. 건설구원. 성화구원 행위구원, 하늘나라에 영광이 되는 그 영광인 구원 이 구원은 여러분들이 지금 간단한 시간에 다 해석할 수 없으니까 못 알아 들어도 기억하고 기도하면 성령이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이 구원은 오늘 하늘과 땅이 다 불타도 타지 아니할 그것만 이 구원을 얻습니다. 또 아무리 그 사람을 세상이 달라들어 가지고 불에 화형을 해서 죽였든지, 또 뭐 땅 속에 매 장시켜 죽였든지. 또 어떤 총칼로 죽였든지 이런 해의, 이런 죽이는 해 이런 죽임에게 죽임을 당하지 아니한 그것만 그것이 건설구원에 참여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단단히 알고 믿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세상살이를 할 때에 진리 때문에 영감 때문에, 아주 어려운 말씀입니다. 쉬운 게 아니오. 진리 때문에 영감 때문에 주의 대속의 공로 때문에 이를 버리지 아니할라고 함으로 말미암아 세상에게 조그만한 손해 보고 큰 손해보고 마지막에 죽임을 당하는 그런 일들도 있겠습니다. 그런 것 들에게 작은 손해나 큰 손해나 작은 박해나 큰 박해를 받을 때에 그런 것들에게 박해를 받은 것은 다 멸망을 받고, 요거 단단히 아십시오. 건설구원에 속한 것은 그때에 박해를 받은 것은 다 멸망했습니다. 박해를 받은 것은 다 멸망했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박해를 해도 박해를 사람이 볼 때에는 받는 거 같지만 박해를 하나도 안 받은 그것만 건설구원에 다 들어갔습니다. 그때 만일 그 사람이 어떻게 무슨 형을 받아 가지고 죽었으면 죽을 때에 그 죽임을 당한 기능이라든지 사상이라든지 정신이라든지. 마음의 기능이 그런 거 아닙니까? 마음의 기능이라든지 몸의 기능이라든지 그때에 죽은 것은 건설구원에는 참여를 못 합니다. 그거는 다 영원한 멸망을 받았습니다. 그때에 죽은 것 중에 죽은 것 중에 멸망받지 안하고 구원 얻는 것은, 멸망받지 안하고 구원 얻는 것은 기본구원에 속한 것으로서 인간의 행위는 상관이 없고 다만 하나님의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서만 구원얻게 되는 그것만 그때에 구원에 참여합니다. 그것은 뭐이냐? 기본구원에 속한 것이니까 그거는 이 육체로 말하면 외형의 형태입니다. 육체의 형태요 마음의 형태요 그 속에 기능은 죽지를 안했습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아십시오.
그러면, 죽지 안했는데 그거 어디 갔는가? 마음의 기능이나 몸의 기능이 그것이 진리와 하나 되고 영감과 하나 되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하나 돼 가지고 하나 돼 가지고 변질 안할라고 하기 때문에 그들이 죽였습니다. 변질 안 할라고 하기 때문에 죽였는고로 그것은, 진리와 하나 되고 영감과 하나되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하나 되어 있는 것은 그것이 벌써 살았습니다. 그것이 영생을 가졌습니다. 영생을 하는 것이, 진리와 하나 됐기 때문에 진리를 죽이지 못하면 그걸 죽이지 못합니다. 영감을 죽이지 못하면 그걸 죽이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죽이지 못하면 죽이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도 피조물을 이겼습니다. 세상을 이겼습니다. 악령과 죄와 사망을 이겼습니다. 영감은 벌써부터 이기고 있는 것이요 진리도 그런 것들을 다 이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때에 그 사람의 그 심신의 기능이 진리의 것이 돼서 진리와 하나 되어 있는 기능이라면 그 기능은 진리와 하나 되어 살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뭐라 하든지 그들에게 협박을 당하지 않습니다. 위협을 당하지 않습니다.
그 때에 그들의 협박에게, 협박에게 위험성을 가지고 떠는 것은 진리와 하나 되어 있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영감과 하나 되어 있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의 대속과 하나 되어 있지 않고 내나 첫째 아담에게 속하여 있는 그것으로 그대로 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거는 칼을 맞고 불에 타면 태워지지 영감과 진리로 완전히 변화되어 있는 것은 죽여지지를 안하고 타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모든 어려움이 올 때에 그때에 이 불타지 않은 것 불타지 않을 것은, 혹 생각하기를 `아, 이렇게 세계가 불타기 전에 우리가 그만 순교로 가든지 병이 들어 가든지 늙어서 가든지 갔으면 좋겠다' 그렇게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도 다 계산이 끝까지 계산을, 최종까지 계산을 대지 아니한, 최종까지 비판과 평가를 하지 않는, 도중에서 중단된 모든 판단인 것입니다. 우리가 건설구원에 속한 것은 이런 환난에서 지시 안하고, 신사 참배에서 지지 안하고 죽었으면 그 사람은 됐지 않겠느냐 생각하지만 신사 참배 안 하고 죽었든지 살아 있든지 상관 없습니다. 신사 참배 그런 것에게 굴하지 아니할 수 있는 진리의 것 영감의 것 예수님의 대속의 것 이것은 병들어 죽어도 그거는 살아 있고 맞아 죽어도 살아 있고 또 순교당해도 살아 있고 그냥. 불이 와 도 안 타고 살아 있고 그거는 타지 않습니다.
이렇게 심판의 불에 탈 수 있는 것이 심판의 불을 만나지 안하고 남아 있어도 한가지. 이렇게 세상에서 박해를 당해서 박해를 당할 때에. 칼로 총으로 불로 죽일 때에 죽지 아니할 수 있는 그 기능이 아니고 그런 것들에게 죽을 수 있는 그런 기능은 그런 것을 닥치지 안해서 장수해서 살아도 소용없어. 살아도 죽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죽었으나 살았으나. 불에 탔으나 안 탔으나 병들어 죽으나 늙어죽으나 살아 있으나 꼭 같다는 거 죽을 것은 멸망 할 것은 멸망하고 구원 얻을 거는 구원 얻으니 그런 것에게 하나도 제재를 받지 않는, 어떤 피조물에게 털끝만치라도 제재나 피해를 받지 않는 그것이 영생하고 그것이 완전이지 그것이 아닌 거는 다 소용이 없습니다.
혹 사람들이 생각할 때에 `아, 병들어 죽는 죽음을 피했더라면 순교할라 할 때에 그때 내가 그만 자복하고 신앙을 배반하는 그런 일이 안 닥쳤더라면.' 배반하는 일을 했으나 안 했으나 꼭 같습니다. 신앙을 배반하는 일을 했거나 안 했거나 하나님 앞에는 꼭, 알고 계시기 때문에 꼭 같습니다. 뭐 사람 앞에서 배반한 것으로써 그렇게 표시가 됐으나 표시 안 됐으나 배반하구로 되어 있는 자는 배반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체가 자체가 진리화 자체가 영감화 자체가 그리스도의 대속화된 거 이 변화된 거 이것만이 영생을 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땅에 불심판이 오기 전에, 불심판이 오기 전에 땅에서 이 모든 박해들이 있는데 지역적으로 개인적으로 이렇게 박해들이 있는데 그 박해에게 상하지 아니할 자기 기능이 돼야 되지, 상하지 아니할 기능이 돼야 되지 상하지 안할 기능으로 준비하지 안하고, `그런 것만 피했으면 됐겠다' 하는 그런 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에 땅 위에서 어떤 시시비비한 마귀의 그 수천 수만 가지의 마귀의 미혹이 와도 미혹을 받지 않은 그것만. 그 기능만 영생합니다. 마귀가 어떻게 협박을 한다 해도 그 협박에 떨어지지 안하고 협박에 패전되지 안할 그런 것들만 영생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협박이 있든지 말든지 유혹이 있든지 말든지. 불심판이 오든지 말든지, 순교한다고 죽인다는 그것이 오든지 말든지 상관 없는, 상관 없는, 그런 것을 다 승리하고 초월한 진리와 하나 돼서, 진리와 하나 돼서 진리가 그것이요 그것이 진리라. 진리와 하나 된 거 영감과 하나 된 거, 그것이 영감이요 그것이 진리요 그것이 예수님의 대속이요 대속이 그것이라. 이렇게 하나 된 거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된 것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 것 이렇게 진리의 말씀으로 다시 살아난 거, 야고보서 1장에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첫 열매를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야고보서 1장에, `너희들을 첫 열매로 첫 열매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낳으셨느니라' 이랬어. 진리의 말씀으로 낳았다, 생산됐다 그말입니다. 이것은 살아 있어도 진리의 말씀으로 새로 나서. 진리의 말씀으로 타고 났기 때문에 진리의 말씀화 성화된 것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소에 세상이 해할 수 없는 것을 우리가 마련해야 되겠고, 세상이 죽일 수 없는 것을 마련해야 되겠고 세상이 불 태울 수 없는 것을 마련해야 되겠고. 또 심판불이 태울 수 없는 것을 마련해야 되겠고, 그리스도의 심판이 정죄할 수 없는 것을 마련해야 되겠고 이렇게 세상에게, 어떤 과학적인 박해라든지 인간적인 박해라든지 어떤 박해가 와도 박해를 받을 수 없는 그것으로서 마련된 그것만이 영생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표준해서 우리가 마련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마련된 것이면 세상에서 그런 시험을 닥쳤든지 안 다쳤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 시험 이겼든지 졌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이것으로서 이렇게 진리화, 그리스도화. 그리스도의 몸 그리스도의 지체, 그리스도의 것, 그리스도의 이 제사장 선지자 왕 그리스도의 것이 되지 안한 것이라면 박해를 안 당하고 있어도 헛일 또 칭찬 받고 있어도 헛일, 박해를 받으면 박해받아서 없어지는 거. 불심판 당하면 불심판에 탈 거, 하나님의 심판 닥치면 정죄 받을 거, 이러니까 이렇게 우리는 모든 것을 이 피조물들에게 해를 받지 아니할 수 있는 것 이런 것으로서 우리의 심신의 기능이 다 속량함을 입습니다. 피조물들에게 해를 받지 안할 수 있는 이런 기능이 부활의 기능인데 이 기능은 하늘의 것과 땅의 것 모든 피조물보다 고차원의 것이요, 모든 피조물들을 다 통치할 수 있고 피조물들이 거게 대해서 아무런 가해할 수가 없는 탁월한 고차원이 존재로 우리가 성화구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렇게 되어 가지고 있나 없나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리기 위해서 현실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되도 못하고 된 줄 알고 자꾸 이와 같이 있기 때문에 이런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주님이 현실을 주시면 현실 주니까 또 다릅니다. 요한복음 11장에 보면 마르다와 마리아가 믿는 믿음을 거게 잠깐 동안 내세워서, 20절 이하에 보면 내세워서 있는 일이 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가 예수님이 오시니까 떡 말하기를 뭐라고 말하느냐 하면 `주님이 지금이라도 우리 오빠를 살리도록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이 다 들으실 줄을 압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라니까. 그 마르다와 마리아는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믿음을 가져서, `지금이라도 나사로를 주님이 살아나도록 기도하시면 살아날 줄 믿습니다.' 하는 말을 했습니다. 그때에 주님이 그 말에 대해서 대답하시기를 `너거 오빠가 죽지 아니 한다' 하니까 `죽지 아니하고 다시 살아난다' 이러니까 금방 믿던 마르다가 또 말하기를 `마지막 때는 살아나지만 지금이야 살아 나겠읍니까?' 또 부인했습니다. 그라니까 주님이 또 말씀하시기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안하는 것을 네가 믿느냐' 말할 때에 또 마르다가 있다가서 회개하고 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내가 믿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털끝만치도 가감이 없는 것을 믿습니다.' 또 믿는 사람 됐습니다. 또 그라니까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이제 이 무덤의 돌을 옮겨 놔라' 했습니다. 옮겨 놓으라 하니까 `아. 죽은 지가 나흘인데, 썩어서 냄새가 나는데 옮겨 놓으면 무슨 소용 있습니까? 또 안 믿습니다. 안믿으니까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하지 안했느냐' 이러니까 마르다와 마리아가 이제 `믿습니다.' 하고 돌을 옮겨 놨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믿음을 통해서 나사로를 살렸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 하는 말씀 그 믿음으로, 오늘 내가 이제까지 불타지 안할 것을 말씀했는데, 불타지 아니할 것은 인간의 힘으로 능으로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는데 하나님의 능력이 와서 일하도록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우리의 믿음입니다. 믿으면 됩니다.
제자들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 먹은 걸 보고 예수님에게 따라오니까 예수님께서 `너희들이 표적을 보고 오는 것이 아니고 떡 먹고 배부른 까닭으로 왔다' 이러면서 `너희들이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토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 이러니까 제자들이 이제 깨닫고 하나님의 일 하라 하는 건 줄 알고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물었습니다. 물으니까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나님 일은 너희들이 몸 바치고 뭐 바치고 아무것도 하는 것도, 다, 그것도 좋지만 그것도 다 지엽의 문제요 하나님의 일은 뭐이냐? 너희들이 하나님을 믿어 주는 것이다.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그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에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에게 와 가지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와 가지고 지극히 큰 능력이 와서 역사하니, 우리가 불이 와서 우리를 태울 때라도 믿음이 요동치 않으면, 믿으면 태우지 못했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불 가운데 넣을 때에 `너희들의 신이 너희들을 불에서 능히 구원할 수가 있겠느냐' 그렇게 말할 때에 그 세 청년이 대답하기를 `능히 구원하실 수가 있습니다. 구원할 수가 있습니다.' 단언했습니다. `아, 불에서 구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구원을 하실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뜻 아닌지, 하나님의 뜻을 어겨서는 하지 안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구원 하실라면 구원하실 수 있지만 구원하실란지 안 하실란지 당신의 뜻이 어떤지 그거는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당신이 불에 태워 죽여야 죽지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자를 불이 죽일 수 없다는 것을 그분은 확실히 믿었습니다. 그라면서 또 말하기를, `하나님 뜻을 오르기 때문에 불에서 구원하지 아니할지라도 당신이 말하는 그 우상에게 절하지 아니할 줄을 아십시오. 하나님의 능력이 불에서 우리를 구원할 것을 확실히 믿고, 또 우리가 사는 게 문제가 아니라 당신의 뜻대로 하는 것이 제일 좋은 것인 줄을 알기 때문에 우리의 사욕대로 할라고 하지를 않습니다.' 하는 그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불 구덩이에 던졌습니다. 던졌을 때에 그는 불에 타지 안했으니 불에 타지 안한 것은 뭣이 들어서 불에 타지 안했습니까? 보니까 세 사람을 던졌는데 네 사람이 그 불 속에 있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면 네 사람인데 한 분은 인자 같다고 그 눈에도 영감시켜서 보도록 했습니다. 이러니까, 세 사람이 갔으면 탈 수 있는데 불 가운데서 구원할 수 있는, 능히 구원하실 수 있는 믿는 그 주님이 그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 능력이 불 가운데서 구원했기 때문에 불 냄새도 나지 안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을 불에 타지 않도록 구원하신 그 능력은 주님의 능력이 구원하셨고 그 능력이 구원하실 수 있도록 그 능력을 끌어온 것은 그 세 청년의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다니엘도 그와 같습니다. 다니엘이 사자 구덩이에 들어가나 사자가 나를 삼키지 못한다. 사자 구덩이 속에도, 천하 사자가 다 달라들어도 주님이 나를 죽게 하시지 안하면 사자는 나를 해하지 못한다. 사자 구덩이 속에 암만 빠져도 사자는 내 생명을 해할 수 없다. 왜? 내 생명은 진리와 하나 되어 있고 영감과 하나 되어 있고 주님의 이 구속과 하나 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 되어 있는 내 생명을 세상의 아무것도 해하지 못한다. 다만 주님 이 떠나라 해야 떠나지 아무것도 해할 수 없다는 것을 믿는 그 믿음을 가지고 사자 구덩이에 던질 때에 그는 담대히 들어갔으나 그는 진리와 하나 되어 있고 영감과 하나 되어 있고 하나님의 구속과 하나 되어 있는 다니엘을 사자는 해하지 못했습니다. 다니엘은 그 뒤에 죽었습니다. 죽은 것은 하나님이 다니엘을 죽게 해서 죽었지 다른 것은 죽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진리와 영감과 하나 되어 있는 예수님의 대속을 믿으면 하나 되어 있는 건데 하나 되어 있는 이것을 자기가 의심치 안 하고 하나 되어 있는 자는 피조물이 해할 수 없다는 이 사실을 믿는 믿음을 놓지 안하고 이 믿음이 흔들리지 안할 때에는 그 능력이 와서 지키고 있기 때문에 아무도 해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살다가 죽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죽게 해서 죽지, 공산주의가 독침으로 암만 찔러도 독침이 죽이지는 못한다. 주님이 죽게 해야 죽지 내 생명은 주께 속했지 독침에게 속했지 않았다는 것을 믿는 믿음은 독침이 해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렇게 불타지 아니할 거 또 불타나 안 타나 우리가 개적으로 박해를 당해 때에서 또 구속을 받는 거 우리가 그 박해가 없어도 현재에 이 평범한 평소 생활에서 이 불타지 아니할 것으로 마련하는 거 이것은 다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의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으면 됩니다. 믿으면 하나님이 와서 하실 수 있습니다. 믿는 자는 세상을 이깁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을 약속하신 거를 믿는 자가 세상 피조물을 두려워할 것이 뭐 있겠습니까? 내 아버지 가 창조주시요 내 아버지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보다 크신 분인데 이제 그것들로 인해서 두려워할 것이 뭐 있겠습니까? 모든 것이 내 아버지의 것인데 먹을 거 입을 거 염려하고 굶어 죽을까 두려워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그들의 협박에 어떻게 떨어지겠습니까? 그들이 온갖 유혹과 간교로 이간을 붙인다 할지라도 내 아버지보다 크고 나은 이가 없는데 어떻게 그 유혹에 떨어지겠습니까? 아버 지를 믿지 안해야 떨어지지 아버지보다 좋은 분이 없는데 무슨 미혹을 받겠습니까?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이 계약의 말씀을 믿읍시다. 이 말씀에 선포하신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 것을 믿고,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걸 믿고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어떻게 된 것을 믿고, 우리에게 현실을 주신 것도 그분이 주셨고 현실을 주실 때에 나는 생명으로, 진리가 내 생명이라 진리로 사는 게 내가 새생명으로 사는 것이라, 영감으로 영감으로 사는 게 새생명으로 내가 사는 것이라, 내가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사는 것이 영생하는 새생명으로 사는 것이라.
이 새생명으로, 영생하는 새생명으로 사는데 무슨 피조물이 죽일 것입니까?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우리의 원수는 주관입니다. 우리의 원수는 주관입니다. 온 천하가 한덩어리 됐다 해도 그까짓 거는 소용없습니다. 다 거짓말쟁이고 거짓부리입니다. 다 죽고 불탈 것들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이 대속과 영감과 진리만 참됩니다. 그 외에는 참이 하나도 없습니다.
(기도) 주님 믿음은 힘으로도 능으로도 할 수 없고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하시지 아니하였습니까?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우리의 믿음 없는 것을 불쌍히 여겨 주사 주님의 피공로로 인한 믿음을 주시옵소서. 피 공로로 인한 성령의 감화의 믿음을 주시옵소서. 피공로로 인한 진리 역사 의 믿음을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들이 믿음 없는 자 되지 않게 하시고 주님과 주의 대속과 주님의 영감과 진리를 확실히 믿는 이 믿음이 우리의 능력이 되게 하시고, 이 믿음이 지혜가 되게 하시고. 믿음이 용기가 되게 하시고, 믿음이 부요가 되게 하시고, 믿음이 우리의 전 소망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들에게 이 시간 믿음을 주셔서 오늘 이 시간에 말씀 하시 모든 하나님의 심판의 불이 임할 때에 타지 아니할 것은 믿음의 힘이라고 말씀하신 이 믿음을 우리에게 주시옵소서, 노아 홍수 때에 홍수 심판에 멸망하지 안한 것은 믿음의 힘이었던 그 믿음의 힘을 우리에게 주시옵소서. 영원히 멸망받지 안하고 다 영생하는 기능이 되는 이것은 다 믿음으로 되는 것이오니 영생하는 기능이 되는 믿음을 우리에게 주시옵소서. 우리 각자들에게 믿음으로 충만케 하시옵소서 믿음의 선물을 이 시간에 주사 주님의 주시 선물로 우리 각자 한 사람도 믿음 없는 자 되지 말고 다 믿을이 있어 실상의 믿음을 가지게 하여 주시고, 모든 지식의 믿음, 상상의 믿음, 상식의 믿음 공간과 거리가 먼, 현실과 실상에 관련 없는 이 믿음을 다 죽여 주시고 현실과 실상에 있는 이 믿음을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다시 기도합니다.
이제 주께서 새로 불러 주신 형제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들은 오늘까지 주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주님의 사랑하는 자녀들의 사랑의 권고로 인해서 생명의 도에 나아왔사오니 오늘부터 주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저들을 맡아서 주관하사 범사에 함께 하시고 범사에 의논할 때에 가르쳐 주시고 인도해 주시고 구할 때에 들어 주시고 모든 부르짖을 때에 주께서 안보해 주시옵소서. 이리하여서 세상에서 염려 없이 주님만을 믿고 의지함으로 온갖 것을 주님의 뜻대로 살아 주님이 주시는 축복을 입어서 세상도 형통하고 믿음도 형통하고 주님 한 분으로 전부를 삼아 주님 한 분의 것으로 영육이 다 행복될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와 같은 믿음을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