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스러기 십자가

 

1980. 8. 19. 화새

 

본문: 마태복음 25장 10절 - 12절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기도) 주의 구속을 찬송합니다. 이 시간까지 보호해 주시고 또 이 시간에 주님 앞에서  새로워질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지식을 바꾸게  하여 주시옵소서. 영감으로 우리들을 새롭게 하시옵소서.

공연히 지식이 잘못됨으로 소망하지 못할 것을 소망하는 불쌍하고 의지하지 못할  것을 의지하는 참 가련하고 욕심을 품지 안해야 될 헛된 것을 주어 심히  어리석고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을 두려워하며 진실로 소용없는 것을 취할려고  노력하는 얼마나 걷길 어리석고 참 마귀에게 속아서 하는 이 비참하고 가련하고  불쌍하고 참혹한 이 가운데 있으면서도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저희  인생들입니다.

여기에서 깨닫게 하실 이는 오직 성령님이시요 주님의 공로로만 되는 것을  아옵나니 우리를 여게서 언제나 깨어 정평 정가할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사  모든 선지 사도들이 위에 것만 찾아 소유도 몸도 생명도 애낌 없이 투자할만치  여게 대한 지식이 확고하였고 가치를 똑똑히 평가하였고 여게 대한 행복과  만족과 기쁨을 누렸기 때문에 다 기울이고도 오히려 마음에 부족을 결론으로  삼고 가는 이 피곤치 아니하는 이 걸음을 악령에게 미혹받아 한없는 고생 한없는  걱정 쓸데 없는 모든 번민과 분망을 가지는 어리석고 미련한 저희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고 저희들대로 갚지 말으시고 불쌍히 여겨 주사 어려운데 있는 자는  헤어 나오고 잡힌 자들에게 다 탈출하게 하사 참된 소망 참된 빛에서 참된  능력을 의지하여 지체하지 않고 주를 행하여 달리고 달려 달음질하는 이  걸음에서도 마지막 끊쳐지지 않는 거까지 피곤치 아니하며 낙심되는 일이 없도록  우리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얼마나 보배로움이 감추었는 이 길을 순전히 마귀에게 속아서 헛된 생각 헛된  욕심 헛된 소망 헛된 만족 가련하고 비참하기가 짝이 없는 저희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주님만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는 저희들 되도록 은혜를 주시옵소서.

이 시간도 성령님으로 우리의 어두움을 다 제거해 주시고 광명케 하사 주의  온전함을 바래보는 사람들이 되도록 은혜를 주시옵소서. 헛된 일로 분망하지  않는 심신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선지자선교회 예비하였던 처녀들은 신랑을 만냈고 예비하지 아니한 처녀들은 신랑을 만내지  못했습니다. 우리 인간으로 부부된 이것은 뭣 때문에 이런 부부 제도를 세웠는고  하니 하나님과 인간과의 그 관계를 알려주기 위해서 이 사실을 나타내는 한 계시  기관입니다. 나타내는 기관으로 된 것입니다.

사람의 부부는 정식 다른 부부라면 그 모든 남편의 모든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이  다 자기 것이 되겠고 또 아내의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이 다 남편의 것이 돼서  둘이의 것을 다 합해 가지고 고생도 같이 근심도 같이 기쁨도 같이 소유도 같이  권세도 같이 이래 되는 것이 정식이요. 요새는 이 부부라는 것이 제일 변질이 돼  가지고 아주 비정화되서 정상적인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마귀가 들어서 빼는 일을 시켰는데 실상은 그렇게 되는 것이 다른  아무 관계와도 부부와 같은 그런 관계가 다른 데는 없기 때문에 부부유별이라.

부부는 별 다른 그 특수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하는 것이 정식인데, 요새  부부라는 것은 이 비유에 맞지 않습니다. 요새 부부 같으면 주님과 우리 사이가  그런 거 같으면 그리 뭐 좋을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 원칙적으로는 주님의 하나님의 이 충만을 다 아무 것도 아닌 우리들이 참  성경에 피투성이가 돼서 아를 낳아 가지고 거리에 집어내 던져 버려서 꼴막거리  죽을라 하는 것을 데려다가 길러서 이제는 아주 미인이 돼 가지고 왕궁에 들어서  거기가서 임금으로 더불어 결혼을 할라 하는 그런 비유를 했는데 아주 죄인 중에  피투성이라 말은 죄인 중에 죄인인 하나님께서 구원해서 의로운 사람을 만들어  하나님과 결혼하는 것처럼 인간이 결혼하는 것처럼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하나님이 충만을 그에게 다 맡길 수 있고 이래서 하나님은 전적 그 성도만  위해서 수고할 수 있고 성도는 전적 하나님을 위해서 살 수 있는 이러한 특수한  관계를 맺어 가진다고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런데 자라고 난 다음에 망령을 부린다고 또 했습니다. 그 비유인데 이것은  주님과 우리 성도들이 한덩어리 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되는 것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되는 것 혹 인간이 모르기 때문에 그 사실 관계를 부부제도로 나타내  보인 이것인데 이것을 말하면 어떤 남자들은 아 우리 마누라 그러면 하나님이  빼앗는가? 하나님의 신부가 되다니 저거 마누라만 하나님의 신부되는 아니라  남자 저도 하나님의 신부입니다.

그러면 인간적인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마태복음 25장 열 처녀 비유하면 그만 어떤 남자들은 모르고 눈이 뚱구리해  가지고 이거 그러면 우리 마누라 뺏지 않나. 그런 어리석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어. 이것은 하나님과 자기가 하나가 되어 하나님이 자기의 모든 것을 책임지고  하나님의 모든 것을 자기 것같이 이렇게 살아서 활용 할 수가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신데 우리는 완전한 사람이 될  때에 완전한 그것은 하나님과 결합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성질이 완전하면  완전한 성질은 결합되고 또 우리의 마음이 완전하면 마음은 하나님과 결합되고  마음 중에도 자기가 시기하는 마음 그게 완전히 죽어서 없어지면 고 면은  하나님과 결합되고 또 사랑하는 마음 고것이 고면이 온전해졌으면 고 면은  하나님과 결합되고 요렇게 신랑 만나는 것이 고 면이 하나님과 완전 결합이 돼서  그 자신이 하나님으로 인해서 완성되는 걸 말합니다. 완성 신랑 만내는 것은  완성되는 것. 그 사람의 인품이 완성이 됐다. 성품이 완성이 됐다. 그 사람의 참  의지가 완성이 됐다. 그런 모두 완성되는 걸 말하는데 요 완성은 미리부터  준비하는 거기서 완성이 되는 것이지 그 외에 다른 방편은 하나 완성되는 것이  없습니다.

미리 준비를 해야 완성이 되고 완성은 언제되는고 하니 어제 아침에도 증거한  거와 같이 완성은 자기를 전부 주님과 주님의 도를 위해서 기울이지는 고 그때  그러면 자기가 완전히 부인하지 아니하면 주와 진리를 영접지 못할 고런 어려움,  자기의 소유나 몸이나 생명이나 요것을 애끼고 요것을 희생하지 않고는 요것을  버리지 않고는 요걸 내놓지 않고는 주님과 진리를 내놓아야 되는 고런 어려움의  절정을 가리켜서 밤중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그때에 주님과 자기와의 완전한 그 결합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어제  아침에는 그 밤중이 아니면 주님과 결합이 될 수 없는 그것을 어제 짐지는 걸  가지고도 비유를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밤중은 우리를 괴롭힐라 그러는게 아니라 밤중이 아니면 그  주님과 결합이 될 수 없는 고 밤중이라고 비유한 것은 참 최고로 어려운 때를  말합니다. 최고로 어려운 때 자기가 자기를 다해야 하나님과 이렇게 결합이 되지  하나라도 덜하면 그 면은 하나님과 틈이 나 가지고 있고 안된다 말이오. 아무리  사람이 사람 것으로 친절하다고 해도 모든 면이 다 하나가 됐으면 친절하지마는  어떤 면이라도 그 사상이라도 그 사상이 다르든지 견해가 다르면 그만침 그거는  틈이 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친하다고 해도 십분지 일 친한 사람, 백분지 일 친한 사람, 또  어떤 사람은 시설지기고 시설을 지기고 잠깐 그 피곤을 풀기 위해서 사람이  한번씩 시설지기는 시설지길때만 친하지 실지로 사업을 할 때는 그 사람은  근방에 오지도 못하게 합니다.

그러면 시설을 지기는 데만 친하고 또 어떨 때는 뜀 뛰는 데만 친하지 그거  친하다고 다 친하는 아니라 그말이오. 그러면 또 이런 면은 친하지마는 저런  면은 친하지 아니하고 어찌 됐든간에 친하면 고 친한 면이라도 고 면이라도 그  친한 그것이 십분지 일이 친하는지 백분지 일이 친하는지 백분의 분이 다 합해  가지고 산다. 그 결합이라는 그거는 천층만층 다릅니다. 그렇지 않겠소. 아무리  다 말은 같고 뜻이 같고 성품이 같고 모든 욕망이 같고 또 힘도 하나이고 이래야  친해지지 마음이 같지 아니하면 어떻게 친할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그러면 우리 마음은 이 마음 가지고 있고 하나님은 저 마음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 마음과 우리 마음이 다르면 어떻게 친해질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하나님 마음과 내 마음을 합할려고 하면 하나님이 얼마 양보하고 또 우리가 얼마  양보하고 그래 가지고 합해지겠소? 아 안된다 기요.

우리는 다 거짓되고 하나님은 완전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양보도 못하고 또  거기서 조그만치라도 가감을 못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과 친할려면 미리 거짓된 내가 하나님을 따라 가야 친하지.

하나님이 우리 따라와 가지고는 친해지질 안한다 그거요. 따라올 수 없소.

하나님이 죄를 지을 수 있습니까? 불의한 우리를 따라올 수 없소. 이러니까  어쨌든지 내가 마음 다하고 뜻 다하고 성품 다하고 목숨 다하고 이것을 다해야  하나님과 합해질 수 있는데 다하는 이것은 평소에는 다할려 해도 안돼요. 이제  마음을 다할려고 하면 주님에게 대해서 마음을 다할려고 하면 몸도 소유도  생명도 하나도 돌보지 안해야 다할 수 있는 고런 어려움을 당할 때에는 다  아니하고 하는 것도 표가 나고 다 아니하고 하는 것도 표가 나고 또  조그만치라도 두고는 다할 수가 하나님과 하나될 수가 없다 말이오.

그러니까 하나라도 줄 수 없고 다 없어질 수 있는 그럴 때는 결합이 되면 다  없어져야 되고 쪼매라도 가지고는 조고만한 것이라도 하나 가지고는 주님과  결합할 수 없는 고런 지경에 이르면 주님과 결합된 사람도 표나고 될 사람도  표나고 안될 사람도 표나고 또 때는 결합할려면 이것만 버리면 할 수 있지마는  다른 때는 그걸 내놓는 다 해도 내놓을 수도 없고 결합이 안된다 기요. 그러기  때문에 밤중입니다.

그 밤중이라 하는 그것은 그 비유로 지금 이렇게 해 놓은 것인데 고거는 최고로  극난의 절정, 종말 결말을 짛는 그런 자기의 모든 것을 내 놓지 아니하면 주님의  계명을 지킬 수 없고 주님을 주라고 자기가 시인할 수가 없다 그말이오.

마태복음 10장에 보면 "너희들이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그  사자들 앞에서 내가 너를 시인할 것이고 나를 사람 앞에 시인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내가 그때 시인하지 않겠다." 모든 사람이 주님을 시인하지만 나는  주님을 예수님을 믿는다 하는 이 시인을 하지 아니하고 '예 나는 이제 예수 고만  믿겠습니다.' 이렇게 하도록 되는 그때를 생각해보면 얼마나 어렵기 때문에  그렇겠는가 그말이오. 얼마나 고통스럽고 얼마나 못 견디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래 했는가? 그러니까 그럴 때는 몸도 생명도 목숨보다도 주님을 더 자기  힘보다도 재산보다도 지위 권세 명예보다도 자기 욕심보다도 자기 뜻대로 자기  생각보다도 주님을 더 높이 앞세우지 않으면 그때는 주님을 인정할 수 없는 그런  형편이 되면 그럴 때는 참 다 할 수가 있다기요. 이러니까 고것을 가리켜서  밤중이라 고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주님과 결합이 될 수 있는 최고 절정적으로 모든 것을 다 내놓지  아니하고는 주님의 계명을 자기가 지킬 수 없고 모든 걸 다 내놓지 않고는  주님을 내놓지 안할 수 없는 고런 절정기가 참 우리는 완성기인데 고 부분적으로  완성, 마지막에는 전체 완성, 완성 이래 완성기인데 그 완성기에 완성을  받을라고 하면 미리 준비해야 된다. 어떻게 준비해야 되느냐? 평소 쉬울 때에 자기 현실에서 평소 그 쉬울 때에 자기 현실에서 주님과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자기가 보시래기로 부스래기 말이오. 가루, 조그만한 손해.

조그만한 손해가 닥쳐도 그 주님과 주님의 뜻을 실행을 하고 조금 싫어도  실행하고 좀 가기 어려워도 실행을 하고 어떨 때는 욕을 얻어 먹고도 실행을  하고 그 뭐 별별 좀 참 주님과 주님의 뜻을 행할려고 하니까 세상으로서는 자기  오기도 오기대로 못하고 오기도 죽어지게 되고 성도 참게 되고 분한 것도 참게  되고 하고 싶은 말도 못하게 되고 이 전부가 손해라 그말이오.

이기 있어도 없는 것 같이 이렇게 쪼마석하는 이 손해보는 고기 보스래기.

보시래기라 하면 그말은 시골말인데 가루, 가루 십자가라 그말이오. 가루  십자가. 보시래기 십자가. 고걸 자꾸 주어 모으면 나중에 티글모아 태산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 보시래기 십자가 이것을 나중에 모으면은 큰 십자가가  됩니다. 조금씩 자기가 손해를 봐서 이렇게 모으고 모으니까 손해본 것은 손해를  봤는데 주님이 대신 채워 주시니까 손해본 것이 손해본 걸로 되어 가지고 있을  때도 있고 손해본 손해되지 아니하고 그대로 남아 있을 때도 있다 그말이오.

남아 있을 때도 있고 이렇지마는 고때 고때 주의 계명을 지켰으니까 고 진리는  제 진리가 됐다 그말이오. 또 주님을 모셨으니까 고 면으로서는 주님이 자기  주님이 됐다 말이오. 이래 가지고 고 현실 현실에서 주님과 진리를 자기가  모시고 취한 것이 차차 차차 모두 모으니까 이제는진리도 여러 면으로 자기에게  충만한걸 보면 요 면의 진리도 자기 진리됏고 저 면에 진리도 자기 진리돼서  진리가 자기 속에 충만하고 또 하나님께서 요 면을 책임진 하나님 조 면을  책임진 하나님, 이러니까 내 모든 면을 책임진 하나님이 내게 충만하고 이러면  이것이 기름이라 그말이오.

그래 놓으니까 다른 사람 준비 못한 사람은 그때에 다 뚝뚝 떨어지지마는 나는  주님과 주님의 진리 때문에 희생하는 그런 연습을 많이 해봤기 때문에 어북 큰  희생이라도 척척 할 수 있는 희생의 실력이 생겼지 또 주님과 진리가 나를 돕는  그 위로부터 온 은혜가 모으고 모으니까 키글모아 태산같이 이제는 하나님도  네게 충만하고 진리도 충만했기 때문에 그 밤중인 절정 시험기를 승리로 통과해  가지고 주님과 진리와 나와의 결합이 됐다 이거요. 그러기 때문에 요렇게 평소에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증거할려고 하는 것은 아직까지 나오지 안했는데 마지막으로  말합니다. 우리가 우리 현실에서 자기가 모든 것보다 앞서게 모든 것보다 더  많이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을 사모하기를 성경이 자기에게 가르치는 대로 주님을  거룩하신 주님이시라. 주님은 죄를 미워하시는 주님이시다. 주님은 공의로우신  주님이시다. 주님은 죄와 같이 있을 수가 없으신 주님이시다. 주님은 불의한  것을 소멸하시는 주님이시다. 자기가 성경에서 주님을 어떠 분이시라고 하는  것을 가르쳐줌을 받은 고대로의 주님을 자기대로 고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고  하나님을 상대하면 고것이 바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이 하나님을 그때에 지금  찾은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고 현실에서 이제는 하나님 찾고 하나님을 자기가 아는 대로의 그  하나님을 사모하고 그 하나님을 모시고 그때에 주님이 나에게 명령하신 뭐인가  하는 고 주님의 뜻을 고때에 찾으면 고때에 찾으면 고것이 진리를 자기가 결합될  그 진리를 만난 것입니다. 고거 찾지 아니하고 신구약 성경을 보는 것은 그것은  진리의 끌티를 보는 것이지 자기 진리가 되는 그 진리를 지금 만난 것은  아닙니다.

신구약 성경은 진리책을 만난기고 진리 뭉치를 만냈지 자기 진리를 만들 수 있는  진리를 지금 만난 것은 이 시간 내 진리를 만들 수 있는 나는 진리의 것이 되고  진리는 내기가 돼서 진리와 나와 결합될 수 있는 요 진리를 만낼 것은 고때에  자기가 자기 현실에서 주의 뜻이 무엇인가? 고 주의 뜻을 발견하는 고것입니다.

발견했으면 고때에 자기와 결합할 수 있는 고 진리를 만난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고대로 실행을 하면 주님도 자기가 얻고 진리도 자기의 진리로 벌써  가졌습니다.

이러니까 고때에 가진 진리는 전지 전능의 능력입니다. 고거는 하나님의  지능입니다. 하나님의 지능이요. 고때에 모신 하나님은 이런 지능을 가지신 전지  전능을 가지신 창조주요. 대주재시요. 주권자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현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진리 하나님은 창조주  완전자시요. 고때에 자기가 발견하는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 고것은 고기  막바로 하나님의 지능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하나님의 지능을 우리 현실에서 효력 있게 만날 수 있고 신구약  성경을 자기가 외운다 할지라도 이것은 그대로는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 신구약  성경을 외우는 것은 자기 현실에서 자기와 결합될 수 있는 하나님과 진리를  찾아내는 데에 도움이 되는 성경이지 바로 성경책 그대로 자기에게 소용 있는 것  아니라 그말이오.

마치 비유컨데 뭐라고 하면 여기 쌀표가 쌀 백 가마라. 백 가마. 백 가마니 하는  쌀표가 있는데 그러면 그 쌀표 그것만 가져가면 백 가마니를 자기가 사 가지고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백 가마니 쌀을 사 가지고 올 수 있는 그런 표는  표지마는 표 그것만 가지고는 쌀 한 내끼도 되는 것 아닙니다. 그것을 가지고  가서 쌀을 타와야 되지.

그와 마찬가지로 신구약 성경은 백 독을 읽어도 읽어도 아무 소용이 없어. 이  신구약 성경은 쌀표와 한 가지야. 이 신구약 성경을 앎으로 자기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데 신구약 성경이 필요하지. 신구약 성경을 가지고 자기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면 이제 참 하나님을 참 진리를 만나서 하나될 수가  있다 그거요.

이러니까 성경만으로는 쌀표 한 가지라. 이 쌀표. 이거는 바로 종이쪼가리  하나지만 이거는 쌀 백 가마니라. 그만 뭐 가면 돈 안줘도 다 벌서 그걸  가져오기로 쌀표가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렇지마는 그걸 그 표 그걸 쌀을  찾아야 필요한 것이지 찾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지 그 표 그것만 가지고는 그것  뭐 그런 거 백 가마니 표를 만장을 입에 씹어 봤자 쌀 한내끼도 밥 한내끼도 안  되는 기라.

그와 같습니다. 그 비유가 잘될란지 모르지만, 인간 말로는 다 비유가 안되기  때문에 무한한 성경인 고로 그런고로 우리가 현실을 만난 그 현실에는  대주재이신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모실 수 있는 대주재이신 전능 전지자이신  하나님이 내 앞에 와서 계시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 현실에서 하나님 만날라면  만날 수 있소. 이 하나님이 나를 찾아와서 문을 두드리고 계시고 또 요 현실에는  하나님의 지극히 큰 능력이 지혜와 능력이 내 현실에 와 있기 때문에 이 지능도  내 지능으로 삼을 수 있고 이 하나님도 내 하나님으로 삼을 수 있는 지극히 큰  일이 우리에게 봉착되 있다 그말이오.

그러나 사람들은 이것을 고만 알면서도 등한히 하고 몰라서도 등한히 해서 참  이렇게 큰 지극히 크고 말로 할 수 없는 이런 권위 있고 영광스럽고 보배롭고  하나님만 내 하나님이면 하나님이 지은 것은 으례히 내 것되는 것인데 이럴 수  있는 기회인데 이 기회에 이는 버리고 참 쓸 데 없는 만상을 찌리고 찌그리고  죽을 듯이 날뛰는 하는데 그것도 보면 아무 소용없는 것 가지고 그 사람이  공연히 그렇게 참 한없는 소용없는 고생하고 있습니다. 또 좋아서 벙긋거리는  그것도 미치갱이 벙긋거리는 기라. 아무 소용 없는 공연히 헛된 걸 가지고 그것  하나를 해보겠다고서 정력을 기울려 야단을 지기도 또 그것도 무익한 것이라.

간접적으로 간접적으로라도 하늘의 것에게 도움이 되는 것 같으면 그걸 우리가  해야 되지요. 직접하고 간접하고 이렇게 간간접도 하지마는 그것도 아니고  그거는 땅에 것이기 때문이요.

또 하늘의 것을 오히려 죽이는데 있고 손해보이는데 있는 아무 소용이없는 거기  욕심 품어서 정신 잊어버리고 그걸 분해서 거기 시기해서 거기 탐내서 거기 또  취해서 거기 좋아서 거기 끌려서 참 불쌍하고 짝이 없기 가도 한없이 짝이 없는  그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불쌍해서 이걸 구원하시게 했지마는 그래도 또 안 듣는 거는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현실은 이런 현실인데 하나님과 진리가 나를  찾아와서 지금 내 하나님으로 내 진리로 모실 수 있고 가질 수 있는 이런  현실인데 그때 쓸 데 없는 어떤 자는 명예, 어떤 자는 지위, 어떤 자는 권세,  어떤 자는 돈, 어떤 자는 행락, 어떤 자는 가정, 어떤 자는 욕심, 어떤 자는  이것 탐하고 저거하고 모두다 참 무가치 한 것.

그것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모시면 하나님이 그것은 자기에게 적당하게  해주신다고 약속을 했는데 그분이 적당하게 해 주시는 것이라야 우리에게  필요하지 하나님과 진리 내버리고 취한 것은 고것만큼 자기에게는 마지막에 그게  뭣 됩니까? 뭣 된다 했지요. 그것이 뭣 된다 했습니까? 누구든지 아는 사람  말해봐. "..." 아니야. 어떻게 자기를 지기 좋게 자기 소원대로 하였든지 뭐라  했습니까?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집니다.

자기 소원대로 한 자에게는 하나님이 뭘로 갚는고 하니 자기 소원대로 안되는  것으로 갚습니다. 그러기에 다게와 내요. 자기 소원대로 산 사람은 자기  소원대로 안되는 것으로 하나님이 갚으십니다. 모든 것을 자기 욕심과 모든 것을  끌어단기는 것으로서 하나님 배반한 자는 자기 것을 빼앗기고 잃는 것으로  하나님이 갚아주십니다.

그러니까 그걸로 길러놓은 것을 그걸로 갚아서 꼭 고 성질 고 종류대로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땅에 있는 무엇을 사랑함으로 하나님과 진리를 배반한 자는  고것은 하나님이 갚을 때에 미운 것으로 갚습니다. 미운 것으로 사랑함을 인해서  사랑하는 그것이 깨어져서 미워하는 것이 되어진다 말이오. 미워하는 것이  되어지므로 사랑하는 것은 좋았지마는 그 배나 미운 것이 돼지니까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 뭣 때문에 죽입니까? 사람 죽이는 것이 제일 그 사람이 사람  죽이는 그것이 자기로서는 생명을 다해서 그 죽이니까 자기에게는 제일 어째서  그렇습니까? 미워서 그런 것입니다. 미워서. 사랑이 변하여 미움이 됩니다.

하나님이 요렇게 복수합니다. 끌어당기는 것이 변하여 뺏기는 것으로 복수하시고  자기가 영광스러워 높아지려는 것을 위해서 하나님과 진리를 배반한 사람은  떨어지는 것으로 갚으십니다.

높아짐으로 좋아했던 그것만 길러났는데 떨어지니 기찰 것 아니겠소. 자기를  얼마나 영화롭게 하고 사치했든지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주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줘라.

그런고로 오늘 아침에는 우리 현실에는 세상과 세상에 있는 모든 것 보다 측량할  수 없는 지극히 크시고 지극히 충만한 하나님과 진리가 내게 와 있기 때문에 이  둘을 영접하면 온 세상을 다 차지한 것입니다. 고 면으로 차지했습니다. 요것을  깨달읍시다.

○○○조사님 나왔습니까? 나왔으면 손 드시오. 나왔으면 손들어서. 안  나왔습니까? 네, 안 나왔으면 오늘 아침에 권찰회 해도 서기가 없기 때문에  권찰회를 오늘 화요일 아침이지만 할려고 했는데 권찰회를 못하겠습니다.

○○○조사님이 지금 아파서 못 나온다 하는데 아파 못 나오는 기 아니라 마음이  병들어서 못 나오는 걸 내가 알고 있습니다. 고것은 미혹을 시키는 고 마귀가  있으니 고것이 그러는데 하나님이 고 상당한 보응을 주실 것입니다. 회개를  안하면.

모두 조금 크면 교역자가 나가고 싶어서 하는 사람들은 여기 권찰 가운데에 남  권찰 가운데에 교역자 나가고 싶은 사람은 전부 내가 다 보낼 겁니다. 그러니까  나가고 싶은 사람들은 다 고걸 그 자원을 하십시오. 그게 정직하지 교역자  나가고 싶은 사람이 교역자 안 나가니까 공연히 있으면서 마귀 노릇이나 하고  다른 사람에게 덕되지 않는 그런 행동이나 하고 삐쭉하이 삐꾼 것 같이 뭐 둘  주고 저 하나 둘이 먹고 하나 안 주는 것 같이 이래 가지고 있으니까 그  어림없어. 그런 건 다 가도 돼. 다 가도 그런 건 다 가도 나 혼자 하나님이 날  붙들고 목회할 수가 있어.

그러고 이제는 누구든지 남 권찰로 나오는 사람은 그 사람은 누구든지 올 수  있어. 와서 내 마음에 시킬 수 있다 싶으면 시키요. 5년 권찰 노릇하면 양성원에  입학시킬 것이고 입학시켜서 일년에 두 학기씩 그러면 6년 걸립니다. 일년에 두  학기씩 그러면 6년 걸립니다. 일년에 두 학기씩만 하면 6년이 걸리요. 6년  걸려서 양성원 졸업하고 또 그러고 난 다음에 4년 권찰 일 알뜰히 보고 그러면  15년 권찰일 알뜰히 보면 그때는 교역자로 나가기로 하고 고렇게 계약을 하고 남  권찰 (쓰겠어요.) 등용하겠어요.

또 그래 가지고 그러면 실력이 됐다 해서 나가기 위해서 자꾸 부덕을 끼치고  자꾸 거기서 미꾸라지가 꾸중물 일쿠듯이 일쿠고 그러면 권찰도 사면시키고 내가  있는 한은 교역자로 등용을 안해요. 사면시키고 자기는 그만 무슨 일 하든지  하도록 내 둬 두지.

그러나 지금은 그런 약속하에서 오지를 안했기 때문에 그러고 ○○○권찰은 약속  후에 왔어. 5년 후라야 5년 말하는데 그 후라야 양성원에 입학할 수가 있습니다.

고래 알고 남 권찰들로 수고할 분들은 이놈이 도무지 평생 교역자는 생각해  보지도 안했고 못하고 또 자격도 없고 이런 사람은 데려다가 일을 시켜서 길러  놓으면 이거는 아직까지 하나님이 쓰시면 내가 어떻게 막겠소. 하나님이 쓰면  내가 못 막습니다.

이런데 부둥기도 안하고 날라고 하다가 날라 가지고 땅에 떨어져서 병신이 돼  가지고 평생 교역자 노릇도 옳은 교역자 노릇을 하지를 못하고 이러면 자꾸  후덕거리니까 그래도 안 내보낼 수 없어 내 보낸다 기야. 이러니까  ○○○조사님도 교역자로 나갑니다. 단 마음으로 하지 아니하는 데는 필요가  없어.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일은 단 마음으로 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등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남 권찰들 가운데 지금 다 교역자로 나가고 싶은 마음을 다 가지고  있는데 다 가지고 있는 건데 아 몇은 아직 안 가지고 있지. 안 가지고 있는데 그  사람들도 2년도 안돼서 더 나갈 사람이라 가질 사람이라.

그래 가지고 나가서 권찰 그 구역장 일을 뚜렷이 해서 제가 여기서 한 그 삼  사백 명이 이삼백 명이면 이삼백 명을 그 교인을 다스리고 그뭐 설교하는 것만  해도 그 할려 하면 많을 터인데 이래서 나가면 고만 나가거들랑 그래도 여게서  삼사백 명 거느렸으면 거기 나가 거해 가지고 교회를 약한 교회를 이삼백  명이라도 올리 세워야 그게 가치가 있지 여기서 삼사백 명을 교인을 다스리고  권면하고 가르치고 이래 하던 사람이 가 가지고 교인 여나무 스무나무 되는데  일년 있어도 스물 오년 있어도 스물 그러면 삼사십 명 그까짓 거 무슨 목회인가?  목회를. 백 명 기르는 기 낫겠소. 그거는 왕 돼고 싶어 그러는 기라. 왕이 되고  싶어서. '아 사모님 사모님, 목사님 목사님, 조사님' 이래 그렇게 다면서 그게  자기 망하는 기라.

그게 명예 영광이고 허영이고 허욕이고 그게 거기서 왕노릇하고 싶어 그런  것이지 정말로 사람 구하는 구원하는 일을 해서 하나님 앞에 가 가지고 상급이  있기를 하나님 앞에 가 가지고 해 놓은 그것이 자기에게 그래도 주님 앞에  예물이 되고 선물이 되어지는 그 심판은 생각도 안한 기라. 우선 조사님  조사님하는 왕되고 싶고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고 왜 내 밑에서 있으면 시집을  살거든. 자꾸 지금 이런 것 자꾸 시키니까 시집한다. 또 살아야 돼.

○○○목사님 여기 오기 전과 지금 딴 사람이라. 내가 그때 서울에 있는데 아주  일등 목사인데 와 보니까 잡탱이라 아무 것도 아니라. 그때와 지금과는  달라졌어.

목회는 그냥 이 말씀만 팔아 가지고 그뭐 교인 이삼백명 된다고 목회 아니요. 참  자기 구원을 이루는 목회라야 되지 자기 구원은 이루지 못하는 목회라면 소용  없고 또 실력도 없으면 자꾸 왕노릇만 해서 그래 놓으니까 이 교역자 나가면  왕만 돼가지고 그 권세나 부리고 교만이나 해져 버렸지. 그 은혜는 받아  갈수록이 겸손해지고 전부 자기의 부족을 느끼고 자꾸 이래 돼지지 교만만  돼지지 아무 봐야 그리스도의 형상은 보이지지를 안한다 기요.

내가 이번 집회에도 어떤 사람 말 들었는데 귀때기가 새파란 교역자가 말이지  그뭐 말하는데 육십 나는 노인이고 오십 나는 노인이고 저거 아버지 저거  어머니뻘 되는 사람이고 뭐 다 해라 그래. 아 이래라 저래라 아 시키는 대로  해야지 이래라 저래라 아 이러니 그 사람들이 저 사람이 저거 어찌 저러노. 그  다음 또 한쪽 머리 있다가 말하기를 뭐 급하고 바쁘면 무슨 상관이 있어. 이래도  그게 무슨 상하요.

그러니까 교역자를 바라서 뭐 사람이 없어서 지금 야단인데 이러기 때문에 실은  교역자로 불러 내 가지고 그게 오래 돼 교역자는 교역자 목회는 하지마는 자기  구원은 헛일이라 그말이오. 자기 구원은 헛일이라.

이런데 교역자가 없는데 나가 가지고 참으로 하나님과 동행해서 목회를 해서  교회를 일으켜 준 사람 같으면 그 사람은 안 둡니다. 그 강제라도 뽑아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길을 시키지 하나님이 시키는 일을 내가 알고 안 시키면  하나님과 나와 그 면으로 대립이 돼지면 그 사람과 또 무슨 상관이요. 그  상관이요. 그 사람 하나 그래 가지고 하나님과 대립되는 그런 어리석은 일 할  긴가? 안합니다. 안해요.

이러니까 그 아무나 따나 시붙였으면 말하면 되는 줄 알고 이거는 구원이라 하는  것은 이 정신 아주 영 마음의 제일 골자 이 인격이 되어지는 것인데 거기서 이런  말 잘못하면 말 한 마디 이런 걸 가지고 제가 알지도 못하고 잘못되면 저 망하고  저거 자손 망하고 가는 곳마다 교인 망치고 헛일이요.

여기 진영에 교역자들도 벌써 목회한지가 근 삼십 년이 돼도 항상 가야  무능이요. 어데가서 장 쫓겨나 돌아다니고 배척이나 당해 돌아다니고 근근히  다니니까 그까짓 것 목회하면 뭐할긴고 사울 왕이 왕이기 때문에 천물이요. 왕은  왕이기 때문에 그 사람 비참합니다. 왕이 아니고 그 사람이 그냥 평민으로  지냈으면 복 있을 긴데 왕이기 때문에 항상 저는 고통스러웠고 천해졌고 그  마지막에 저주받아서 사망했습니다.

이러니까 남 권찰님들 가운데에 목회 나갈 사람 목회로 나가요. 내가 다 알고  있다 말이오. 덕을 세우지 아니하고 본을 보이지 아니하고 빛을 나타내지  아니하고 무책임하게 이래 저래 가지고 사람들을 자꾸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미혹을 줘 가지고 그래서 하나님의 노여운 마귀 자식이 되도록 그게 지금 마귀  자식인가 성령인가? 지금 그 ○○씨 왔어. 왔으면 손들어봐. ○○씨. 안 왔네.

둘 다 안 왔네. 둘 다 죽었어. 그게 성령의 사람인가 하나님의 사람인가? 어제  내가 네가 나한테 할 말을 단단히 준비해 가지고 뭐인가 와서 말해봐라.

이러면서 어제는 내가 세시에 점심 먹으러 갔는데 그때 보니까 왔다가 아마 가는  것 같애 가는 것 같애. 뭐 여기 있어도 좋고 이 진영 나가도 좋고 다 좋아. 그  인간 보고 내가 일하는 것 아니니까? 내가 고 신과 싸울 때는 전 전국과 그래도  내가 눈도 깜짝 아니하고 하나님의 인도대로만 간 사람이요.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했어. 다 그래 가지고 저거가 나가서 매를 진떡 맞고 맞고 가슴을 찢고  회개를 하고 이렇게 하면 근근히 하나님이 붙드시고 이러니까 그 망할 짓을 할  필요가 뭐 있는가? 다윗은 저거 아버지도 못쓸 놈으로 알았고 저거 형들도 못쓸 놈으로 알았고,  저거 어머니도 못쓸 놈으로 알았고, 이웃 사람도 못쓸 놈으로 알았고, 못쓸  놈으로 알아서 그거는 아들 축에 넣지도 안했소.

사무엘이 기름 부으러 가니까 다 왔기 때문에 이제는 너거 아들이 남지  안했느냐? 왕을 왕을 만들라고 지금 기름 부으러 왔는데 그 아버지가 있다가  첫째 아들 인물이 좋고 지식 훌륭하니까 내 세워도 불합격 불합격 인자 인자  자기 아버지 마음에는 이것들이야 되지 아들이 다 왔느냐? 뭐 인자 다 온  셈입니다 이랬다 말이오. 수에도 수에도 넣지 안했어. 그래도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통해서 그를 데려오라. 그가 오기 전에는 내가 식사를 하지 않겠다.

일국의 대 사사인데 그이 삐끌어지면 다 죽여버린다 말이오. 일국의 대사사라.

그 삐끌어지면 그만 칼로 죽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죽여 버리여.

이랬는데 그러니까 마지막에 저 산골짝에 가 가지고 짐승 먹이고 있는 걸 데리고  왔어. 데려 오니까 하나님이 기름 부어 가지고 그게 다윗 왕이라 그 사람의 신앙  행위를 행적을 보면 죄 지은 것 없어. 마지막에 성공하고 난 다음에 일시 죄  지었다가 회개했지.

그러니까 그 뒤에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뜻에 합당한 다윗이라고 신약  성경에 말씀했어. 인간은 몰라도 하나님이 쓸 수 있는 사람은 안다 이거요.

하나님이 뽑아 쓰는 걸 사람이 모른다고 소용이 있는가? 인간이 반대한다고  소용이 있는가? 하나님이 뽑아 쓰는데. 되지도 아니하고 우쭐거려 어쩌든지 마귀  노릇만 하면 저만 비참해. 범죄하기 때문에 죄를 짓기 때문에 하나가 죄가  들어가면 모든 죄가 다 들어와. 죄 하나 들어오면 모든 죄 다 들어옵니다. 죄는  한뭉텡이요. 어떤 죄가 들어오든지 자기 속에 죄 하나 들어오면 죄라는 종류는  다 지금 연결이 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알아야 돼요.

그래서 한번 다 이제 갈았습니다. 고쳐 가지고 그래 복음 일해야 되고 또 장로된  장립된 장로들도 똑똑히 장로 노릇을 해야 돼요. 장로라 하는 것은 교회의 모든  책임을 짊어지고 이리 그 일을 하는 기 장로인데 장로 세도나 부릴라 하고  정치를 한다 해서 왕 노릇해서 왕 모양으로 앞에 떡 앉은 그런 기나 좋아하는가? 장로가 됐으면 이번 그 집회 가는 데도 되고 장로니까 그 교회 어른이니까 교회  호주라면 됐으면 이거 비가 오면 아이구 어찌 됐노. 나서서 나서 가지고 그러면  비가 오면 어찌 됐나? 이 어찌 되나. 저리 되나 그 살펴봐야 되지는 것이고 또  뭐 이거 밥을 먹었나 어찌 그 어른 노릇을 해야 된다 말이오. 이름 장로가  장로인가? 그래 가지고 장로 대우나 해봤자 자꾸 높여만 주면 그만 높여주기  위해 장로된 것 아닙니다. 장로라 하는 것은 종노릇하기 위해서 장로라. 장로라  하는 것은 모든 교인들이 봉사하는 종되기 위해서 된 것이 장로요.

그날 밤에 수해가 와 가지고 뭐 물이 와 가지고 그렇큼 그런 데도 또 비가 와  가지고 중간반 학생들이 막 그래 있는 데도 그 보니까 그 나와보지 안해. 자기는  온 교회 장로라면 책임이 다 있는 긴데. 그 장로들 거기 온 걸 내가 보지  안했어. 누가 왔다 갔는지는 모르지만. 그 수해 나는 데도 몇 보이고 몇 이는 안  보이고. 그러면 안돼요. 하나님이 노여워하시요. 이름만 가져도 소용없어. 이름  없어도 일하는 하나님은 다 아시요. 백 목사는 모르지만 하나님은 알지 안해요.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를 백 목사가 안 알아주고 미워하면 무슨 소용 있어.

하나님이 인정해 주고 높여 주면 돼지. 백 목사가 하나님 아니요. 백 목사  위해서 여러분들이 장로 노릇도 하지말고 권찰도 하지말고 주님 위해서 해. 나는  내 몫아치만 하면 돼. 내 몫아치는 지금 내가 새벽 설교하고 수요일 금요일 주일  설교하고 나만침 요만침만 설교하면 한국의 목사 놔두고 세계 목사라도 지금  목사 쳐놓고 나만침 지금 일하는 사람 없다고 내가 자신해요. 일년 내내  새벽기도, 오전 오후, 수요일, 금요일 설교 도맡아 놓고 혼자 하는 그런 사람  그런 목사 있는가 알아봐요 가서. 한국에는 없어.

또 아침이면 저녁까지 온 교인들 이래도 저래도 자꾸 지금 그래도 만나서 자꾸  이래 뭐 살펴서 이래 문제들 자꾸 이래 말하고 그 권찰회 모여놓으면 그  가르치느라고 이것을 교인들 되기 위해서 가르치지 그 뭐 그 사람 그런 교만을  가르치는 것 아니요. 부득이 양떼를 길러야 되기 때문에 세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마구 입에 그 침이 마르도록 이렇게 자꾸하는 건 말하고 싶어. 그런  아니고, 이렇게 하는 것 그것도 다른 사람은 일년 가야 그런 것 한 두번 있을까 말까 해.

나 할 일만 하면 돼. 나 할 일만 하면 나 할 일만 하면 됐지 나 위해서  하지마라. 나 나는 나 할 일하는 것이고 또 그 사람들은 여러분들은  여러분들대로 주 위해 하는 것이고 권찰도 그래 나 할 일 했으면 교회가  무너져도 좋고 일어서도 좋고 나 할 일만 맡아 하면 되는 기야. 하나도 맡겨  놓으면 충성되이 하지는 아니하고 그저 칭찬이나 하면 좋아하고 영광이나 받을라  하고 왕 대접이나 받을라 하고 그거는 다 망하는 기라. 똑똑히 날 알라거든 내가  지금 목회한 지가 삼십여년 됐는데 그 목회할 때 어떻게 해 나왔는고 그걸 나올  때 그때 봐. 그 살펴봐 앞에 부터.

지금도 볼라면 자기네들이 내가 칠십 여세라. 칠십이 넘었어. 칠십이 넘었을  때에 나만침만 목회자로 그렇게 하면 그만 상등이라 중등 아니라. 뭘 본 떠.

저거 젊어서 기운 펄펄한 저거와 고런 면의 육면으로서 그 사람은 없어도 교회는  돼. 내가 없으면 교회가 지금 현재로서는 하나님께서 내가 없으면 현재 없으면  하나님이 날 붙들고 썼기 때문에 또 내가 죽으면 하나님 또 다른 사람 또 세워  가지고 그때는 그 사람 붙들고 인도하시지. 헛되이 교만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들이 이 복음을 방해하고 사람 구원에 만나면 그 사람 믿음을 슬 떨어트린  자의 그 결과를 보응이 오는 걸 눈으로 본다 말이오. 눈이 어두워 몰라. 보면  알아. 어찌 되는 걸. 여러분들이 볼라면 얼마든지 보고 있어. 지금 우리 교회  안에 있어. 몇이든지 있어 지금.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알지 못하심이 없고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만큼 모르지 않소. 하나님은 속지 않소.

하나님은 사람의 날뛰는데 그 설득 당하고 설복 당하고 매수 당하고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이러니까 하나님 계시면 되고 하나님 모시고 알뜰히 충성되이 할 일이고 그렇지.

그러니까 교회 와 가지고 평신도로서 이리 저리 돌아다니는 사람들 다 그 사람들  여게서 못 견디니까 나갔고 나간 뒤에 가 봐. 그런 짓 하다가 나간 뒤에 그  사람들 끝이 어떤고 가서 좀 살펴보라 그말이오.

교회에서 마귀 노릇하고 교회 교인들 신앙 손해 많이 보이고 그 사람 못 견뎌  갔는데 그러면 뒤는 어떤고 보라 기요. 그런 것 알아 볼만해요. 또 잘 믿는 사람  뒤도 좀 알아봐? 잘 믿는 사람 뒤가 어떤고 어떻게 하나님이 축복을 하는가?  예수 잘 믿는 것은 영도 잘되고 육도 잘되고 다 잘됩니다. 영만 잘되지 육  못되는 것 아니요. 천하 만인 위에 뛰어나게 한다 했는데 그 성경 아닙니까?  과연 그렇습니다. 미국이 저거 청교도들의 그 조상 청교도들 그들의 신앙 때문에  저리 된 것이요. 지금 저거가 복 받는 일 하지 안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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