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1 21:13
복있는 사람의 신앙생활 세 가지
1983. 5. 12. 목새
본문 : 시편 1편 3절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우리 믿는 사람의 신앙 생활은 실행하는 것 하나, 또 성경을 상고하며 연구하는 것 하나, 또 자기가 기도하는 것 하나, 이 세 가지가 뱅뱅 돌아가면서 우리 신앙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는 열심히 하는데 성경을 열심히 읽지 안하니까 그만 기도의 힘도 떨어지고 탈선됩니다. 또 기도도 하고 성경도 열심히 보는 사람인데 그 사람이 실행에 힘쓰지 안하니까 그만 자기의 눈이 어두워져 버립니다. 실행해야 눈도 밝고 또 소화가 잘되면 음식이 맛 있고 소화 안 되면 맛 없는 것처럼 실행을 해야 소화가 잘되는 것이니까, 일을 하고 소화가 잘되는 것이니까 성경 말씀을 볼 때에 깨달아집니다.
실행을 안 하면 일을 안 하니까 소화가 안 되니 음식 맛이 없는 것처럼 실행 아니 하면 성경을 읽어도 맛도 없을 뿐만 아니라 깨달아지지도 아니합니다.
성경도 읽고 실행도 하고 이라니까 자연히 묵상이 나옵니다. 자연히 기도가 나옵니다. 성경은 주님과 나와의 관계에 주님이 어떠한 분이시며 내가 어떻게 해야 되며 또 주님이 나에게 어떻게 하시는가? 주님이 축복 주실 때에 어떻게 주시는가? 이럴 때에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시는가? 나는 또 어떻게 그분에게 대해서 해야 되는가? 이 성경은 중매쟁이 한가지입니다. 중매쟁이. 성경은 하나님을 내게 바로 중매해 줍니다. 소개를 해 줍니다. 또 성경은 나를 어떠한 자인 것을 또 나에게 소개해 줍니다. '너는 이런 자다. 네가 지금 이런 자니 이런 자 돼라' 성경을 안 읽으면 자기를 알 자가 없고, 성경 안 읽으면 하나님 알 자가 없고, 또 성경을 읽지 안하면 인간 사회나 만물을 알 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모든 이웃과 만물과 내 자신을 나에게 잘 알려 주고, 또 내가 어떻게 그들에게 대해서 행하여야 되는 것을 잘 알려 주고, 또 그 모든 것이 내게 대해서 어떻게 지금 역사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알려 줍니다.
그러나 성경 안 읽으면 그만 모든 면에 대해서 바로 알지를 못합니다. 눈이 어두운 사람이 뭐 이것 저것 아무것을 봐야 긴지 짜른지, 있는지 없는지, 또 큰지 작은지, 뭐 사람인지 나무 둥치인지 잘 모른다 그거요. 그러나 눈이 밝으면 잘 아는 것처럼 이렇게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바로 보고, 바로 알고, 또 바로 소원하고, 바로 계획하고, 바로 행하게 하는 것이 성경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은 "내게서 안약 사서 발라 보게 하라" 성경을 안약으로 비유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 우리의 심령의 눈이 밝아서 모든 것을 바로 관찰할 수 있고, 또 바로 취급할 수 있고, 상대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성경을 안 읽어도 신앙 생활이 안 되는데 성경을 읽을 맛이 있어야 성경 읽지, 성경 읽을 맛이 없는 것은 실행이 없으면 성경 읽을 맛이 없습니다.
실행을 하면 성경을 안 읽고는 안 됩니다.
자기가 실행을 할라 하니까 어떤 어려운 일이 있으니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나? 여기에 대해서는 나는 어떻게 하며 주님은 내게 대해서 어떻게 하나?' 하는 그것을 알아야 될 터이니까, 시비가 나니 사람이 법률책을 봅니다. 시비가 나니까 무식한 사람도 '이런 시비가 났으니 어라 사법대서에 가 가지고 물어보자. 변호사한테 가서 물어보자.
또 어떤 법을 아는 똑똑한 세상 경험 많은 사람에게 가서 물어보자.' 자연히, 이 나라에서 어떤 법으로 지금 처리하고 있는가 나라에서 세운 그 법을 자기가 살펴서 그 법에 위반됐으면 아예 손을 들어야 되겠고, 또 그 법에 자기 하는 일이 남으면은 담대히 나가야 되겠고, 또 지금 앞으로 하는데 법이 이러니까 법에 맞춰서 가야 되지 법을 어겨서 가면 그 법은 그 나라의 세력과 하나이기 때문에 법을 어기면 나라를 어겨야 그 감당하지 그리 안 하면 감당 못 하는 것이니까 자연히 법전을 찾는 것처럼 자기가 실행을 할라고 하면 자연히 신구약 성경 말씀을 상고하게 됩니다.
이래 가지고 신구약 성경 말씀을 읽으니까 그 성경 말씀에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시며 이렇게 하신다. 네가 하는 것은 지금 이렇게 하고 있으니까 삐뚤어졌다.' 이럴 때 그걸 읽으면 '아이쿠야, 내가 이 성경 안 읽었더라면 큰일날 뻔했다.' 성경 읽으니까 '얼른 여기는 돌아서야 되겠다' 또 내가 성경 읽으니까 '너 하는 그 일이 어려운 것 같으나 그 일이 복받는 일이니까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이 네게 모든 배경이 되어 있으니까 그대로 밀고 나가거라.' '주여, 이제 그대로 나가겠습니다.' 또 힘이 나고, 이러니까 성경을 읽으면 맛이 난다 그거요. 일을 해야 소화가, 되고 음식이, 소화된다 말은 음식이 사용됐다 말이오. 음식이 일을 하니까 일하는 데는 진액이 들어야 되는데 이제 음식 먹은 것이 진액이 돼 버렸다 말이오. 진액이 되니까 일도 잘되지 몸은 튼튼해지지 또 음식은 더 맛이 있어서 또 먹고 싶지, 이것 모양으로 실행을 하면 필연적으로 성경을 읽게 된다. 읽을 때에 맛이 난다. 재미가 있고 '참, 이 성경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로구나.' 성경이 아니면 뭐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나 인간이나 만물이나 그 모든 만물에 대한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는 대로 그대로 하면 됩니다.
그러기에 만물관이 성경대로 돼야 된다. 또 나도 성경대로 된 내가 돼야 되지 뭐 성경에 위반되면 하나님하고 대립인데 얼마나 강해 서 겠습니까? 소용이 없습니다. 또 성경대로 된 일이라야 큰소리를 탕 탕하고 담대해지지. 또 다른 모든 사람에 대해서도 성경대로 내가 취 급해야 그가 반대하든지 말든지 결국은 복종을 하지.
성경에다 등을 대고, 성경은 하나님하고 하나이기 때문에. 실행하는 사람은 '참 성경이 이렇게 요긴하다' 하는 것을 깨달아 맛이 있고, 또 실행하면서 성경을 보니까 '아이쿠야, 여기 대해서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되겠구나. 사과를 해야 되겠구나.' 또 그것도 기도지. '성경을 이래 읽었는데 내가 한 일은 어찌 되노? 과거에 한 일은 보자, 성경과 비춰보자. 그것은 성경에 팔십프로는 성경대로고 이십프로는 틀렸다 아, 그것은 성경과 정반대였다.' 그런 게 다 묵상이라 말이오.
성경과 모든 자기 과거 현재 미래를 대조하는 것이고 또 성경으로 모든 존재와 자기와의 관계 그런 것을 이제 수정하고 그것을 다 고쳐야 하는 것이고 이러니까 그것을 생각 안 해 보고야 알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필연적으로 생각난다 말이오. 생각나는 그게 기도입니다.
기도는 성경과 나와, 성경과 내 이웃과, 성경과 하나님과, 성경과 만물과 그 관계가 어찌 되나 하는 그것을 실험하면서 실질적으로 생각해 보는 것이 연구하는 것이라 말이오. 생각해 보는 것, 그게 기도입니다. 이래 생각해 보다가 '아, 이것 잘못됐다. 주여, 잘못됐습니다. 사해 주 옵소서.' 그 기도가 산 기도라 말이오. 그러면 주님이 들으시고.
'이것은 내가 이렇게 성경대로 됐는데 공연히 안 할 걱정 했습니다. 모든 염려, 의심, 낙망, 원망, 불평, 시비, 이것 다 잘못됐습니다.' 하는 그것이 생각에서 나온다 말이오. 뭘 생각해서? 성경 가지고 생각하는 데서 나옵니다. 또 자기 현재 실행도 성경에서 나옵니다. 이러니까 성경이 보배요.
성경이 보배지마는 가치가 꼭 같애. 성경이 보배지마는 자기가 실행 없으면 성경이 맛 없고 토해지고 아무 필요 없다 그말이오. 인제, 그러니까 실행, 성경, 묵상, 그 기도하는 것. 이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이 세 가지가 뱅뱅 돌아가야 신앙 생활이 바로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 보면 "복있는 사람은" 했다 말이요, 복있는 사람은.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 이 복있는 사람은 그렇게 한다 그말이오. 한다. 또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한다." 그 사람은 비유컨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 좇아 과실 맺는 것과 같다.
복있는 사람이라 그말은 우리가 복이 없는 사람인데 복있는 사람이 될라는 것 아닙니다. 복없는 사람이 복있는 사람이 되지를 못합니다. 우리는 복이 있는 사람인데 복있는 사람으로 살아야 될 터인데 복있는 사람으로 살지 안하니까 제 생활이 아니라 그거요.
복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나무를 시냇가에 심었다. 우리는, 나무는 우리를 비유해서 말씀한 것인데 우리를 시냇가에 심었다. 시냇가에 심었다 말은 시냇가라 말은, 시내라도 여기 강가에, 중국에는 양자강이 있는데 그 강가에는 집이 있다가 금방 물에 떠내려가 버리고 하는, 나무가 아름드리 있다가 훅 뽑혀서 달아나고 하는 그런 게 아니고 요 시내라는 것은 관수위 언덕, 사람이 물을 댈라고 만들어 놓은 그 도랑둑, 도랑둑을 가리켜서 여기에 시내라 한 것입니다. 도랑둑.
그러니까 도랑둑이니까 밑에 얼마든지 물도 있지 또 언덕이 높으니까 암만 장마가 져도 물이 쭉쭉 빠지지, 물이 많이 와도 좋고 또 물이 없는 비가 없는 가물음이 와도 좋고, 뭐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그런 자리다 우리를 딱 심어놨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관수로의 언덕, 그것은 가물어도, 또 장마가 져도 좋은 것 그것은 뭘 가리키느냐?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은총을 말합니다. 하 나님, 하나님과 진리, 하나님의 은혜 진리의 은혜, 하나님 은혜와 진리의 은혜 속에 파묻어 놨다 그말이오. 우리를 하나님의 은혜 진리의 은혜, 하나님의 도움 진리의 도움 거기에다 뿌리를 떡 박도록, 하나님에게 뿌리박고 진리에게 뿌리박도록 우리를 심어놨다 그거요.
그러니까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해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능력의 보호함을 입었나니' 이러니까 우리를 이 시냇가에다 심어 준 농부는 누군가? 심어 준 농부는 곧 주님이십니다. 주님의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이렇게 하나님과 진리의 그 무한하신 은혜에 딱 연결을 시켜놨다 말이오.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의 생명으로 이렇게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 진리의 무한한 은혜, 그 은혜와 우리와의 중보자가 되신 예수님께서 딱 연결을 시켜 놨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복있는 자가 됐는데 복있는 자로 살기만 하면 되는데, 복있는 자로 살기만 하면 된다.
복있는 자는 이렇게 실행하고 기도하고 성경 읽고 이 세 가지 생활을 한다 그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은 복이 있는 사람은, 있을 사람은 이렇게 세 가지 생활을 해서 복있는 사람이 된다 그말이 아니오. 복있는 사람은 이 세 가지 생활을 필연적으로 하는 게 제 생활이라 그말이오. 이렇게 세 가지 생활을 우리가 함으로 복있는 사람 되는 게 아니고 우리가 복있는 사람이니 이 세 가지 생활 하는 것이 제 생활이라는 말입니다.
시냇가에 심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진리와의 이렇게 무한한 능력과, 무한한 은혜와, 무한한 소망에 연결이 돼 있으니 이렇게 연결될 자는 이렇게 세 가지 생활 하는 것이 제 생활이라 그말이오.
그러니까 "네가 그리스도로 다시 살리움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소망하고 위엣 것을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 그게 네 생활이라" 말씀하신 것과 같이 이렇게 우리는 복있는 사람이 됐는데 복있는 사람으로 이 복을 누리면 되는데 이 복을 누리지 않는다 그말이오.
복을 누리는 그 복이 뭐인가? 우리가 실행할 때에, 복있는 사람이 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자로 인해서 하나님과 진리의 무한하신 그 온갖 은혜에 딱 접선돼서 연결을 시켜 놨으니까 얼마든지 실행해서 투쟁할 수 있다 말이오.
투쟁만 하면 돼. 양보만 하지 안하면 돼요.
악인이, 악인은 제 중심, 그러면 다리오 왕도 다니엘에게 자기 중심으로, 또 느부갓네살 왕도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에게 자기 중심으로, 그것 다 모든 이 세상 것은, 세상에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서 살라고 할 때에 거슬리는 그 모든 것은 자기 중심의 것들이라. 그것이 악한 자들이요, 또 그것이 죄 덩어리요, 그것이 사망덩어리요, 그것이 마귀 덩어리라, 그 네 가지로 된 것이 옛사람입니다. 악령, 세상, 사망, 또 죄, 죄는 뭐냐? 자기 중심 이게 전부 죄라 그거요.
이런데, 모든 세상에서 오는 시험은 제 중심으로 하라고 하는데 그 제 중심으로 하라고 하는 그것이 악한 자들이 우리에게, '꾀를 좇지 않는다' 그말은 악한 자들이 우리에게 강제하지 못한다는 것을 그 암시해서 말합니다. 악한 자들이 강제 못 해.
다니엘이니 하는 그런 사람들도 물론 기도하지 말아라 하는 것이 강제 같지마는 강제할 수가 없도록 돼 가지고 있다 그거요. 저만 안 하면 돼. 악한 자들이 제 주장대로 할라고 이렇게, 꾀라 그말은 절대적인 절대 능력을 가지고서 이래 하지 안하고 이렇게 위협을 주든지 뭐 달래든지 꾀우든지 어쨌든지 그거는 우리가 수락애야 되지 수락 안 하면 안 할 권리가 있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악인의 꾀를 좋지 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다 그말은 하나님에게 위반되는, 신구약 성경 말씀을 이탈되는 것이 다 죄라 그말이오. 그러니까 그 길을 가도록 이렇게 하고, 하지마는 아무리 피조물 중심 뭐 어떤 단체, 국가 중심, 사회 중심, 무슨 중심, 하나님 중심이 아닌 모든 세상에 제 중심 제 위주 하는 그 별별 종류의 세력들이 와 가지고 우리를 그리 가지 말고 우리와 같이 이대로 하자, 또 하나님 말씀대로 내가 할라 하는데 말씀을 어겨서 이래 하자.
아무리 해도, 아무리 그리 해도 그게 뭐이냐? 그것이 햇빛이요 그것이 또 장마 되는 것인데 그것이 햇빛도 되고 장마, 비 많이 오는 장마 되는 것인데 비가 오거나 비가 안 오거나 뭐 햇볕이 쪼이거나 그저 제가 그대로 살면 돼.
시냇가에 심은 나무이기 때문에 그저 아무리 악인이 말해도 악인의 꾀 좇지 안하면 된다 말이오. 안 할 능력이 우리에게 있어. 왜? 그게 시냇가에 심었기 때문에. 햇볕에서 쬐어봐도 저만 거기에서 얼마든지 진액을 뽑으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말이오. 또 아무리 장마가 져서 이래도 물이 쭉쭉 빠지니까 저만 살면 돼.
그러면 여기에 복있는 사람, 시냇가에 심겨져 있는 나무처럼 하나님과 이런 관계가 있기 때문에 암만 악인이 오고 아무리 죄인이 오고 한대도 네가 게을밧고 오만하지 안하고서 열심히 살기만 살면, 살기만 살면 기독자들은 못 이길 공산주의자가 없고 못 이길 시험이 없고 감당 못 할 일이 없다. 왜? 시냇가에 심어놨기 때문에 그렇다.
이제 복있는 자의 생활은 이게 복있는 자의 생활인데 너거는 복있는 자의 생활을 제 생활을 제가 하지 안하고서 제 생활을 벗어버리고 엉뚱한 생활 하기 때문에 안 된다. 그걸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 중보자로 인해서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에 연결돼 있고, 무한하신 능력에 연결되어 있고, 또 능력의 무한한 그 진리에, 또 무한한 지혜로운 진리에 연결돼 있기 때문에 우리를 당할 자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그렇게 함으로, 우리가 그렇게 함으로 뭐이 된다는 말이 아니고 그렇게 해서 다 되도록 다 돼 가지고 있는데 안 해서, 안 해서, 내가 안 하는 것이지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도록 돼 가지고 있다 말이오. 내가 안 해 그렇지.
뭐 아무리 공산주의가 독침을 가지고 와 달라들어도 독침 가지고 온 공산주의를 이길 수 있는 것이 한없는 능력이 있다 그말이오.
아무리 제가 와서 말을 한다 해도 그것은 이 진리가, 이 말씀이 지은 것들이오.
말씀에게 지음을 받은 그것들, 그러니까 그것들을 지은 말씀이 나와 함께 해서 그 말씀과 연결이 돼 가지고 있고, 또 이 말씀을 잡아 부려서 이 말씀을 가지고 이 모든 것을 하신 말씀보다 더 크신 하나님과 나와의 또 연결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돼 가지고 있으니까, 이분보다 낮은 진리에게 지음받은 그 모든 것들인데 나는 진리와 연결된 이 시냇가에 심은 나무지, 하나님과 연결돼서 아버지의 자녀이지, 이러니까 이것을 깨닫고 나만 걸어가면 된다 그거요. 우리는 복있는 자인데 복있는 자로 살면 된다 그거요.
그러면 '그는 시절 좋아서 과실 맺는다' 그말은 시절이라 말은 자기 현실 현실을 말하는데 현실마다 다 성과를 거둔다. 성과는 뭐이 성과인가? 그 현실에 하나님의 뜻대로 그 현실을 통과합니다. 그것이 성과요.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그것을 자기가 성취하지 못하고 그 뜻을 어기면 열매를 못 맺는 것인데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그게 열매 맺는 것이라 그거요.
'잎사귀가 마르지 않고 청청하다' 그거는 우리의 모든 신앙 행위를 말하는 것인데 대외에 대해서 신덕적으로든지 또 자기 주관적으로든지, 주관적으로도 항상 청청하고, 객관적으로도 항상 청청하고, 실상으로도 언제든지 주의 말씀대로 '말씀하시옵소서' 말씀대로 그대로 딱 명중 명중해서 성과를 이루는 것, 이러니까 또 덧붙여서 "무릇 그 행사가 형통하리로다" 주님이 뭐 번개같이 말하든지 뇌성같이 말씀하시든지 주님의 명령에 딱딱 하나도 거침없이 딱딱 성과 성과, 순종 순종으로 결과를 이룬다는 그것을 말 합니다.
형통하다 말은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이 하나도 그저 지체하거나 위반되거나 또 미완성의 그렇게 뭐 육십점 칠십점 팔십점 구십점이 아니라 백점씩으로 딱딱, '세상 임금이 오겠으나 내가 아버지의 명령을 어떻게 지키는 것을 보여 줄 것뿐이다' 말씀하신 대로 주님이 자기에게 요구하시고 명령 하신 그대로 하나 하나 딱딱 실행돼 나갈 수 있다.
이게 뭐이냐? 우리가 힘을 쓰면 된다는 게 아니고 우리는 다 되도록 딱 돼 가지고서 무한한 능력에 돼 가지고 있는데 내가 의심하고 내가 두려워하고 내가 포기한다 그말이오. 나만 포기하지 안하고 그저 참고 기다리고 견뎌 있으면 돼, 견뎌.
'인내의 말씀을 네가 지켰은즉' 그저 주님이 요런 입장 주셨으니까 거기에서 암만 '너 기도 한 달 동안 하지 마라.' 해도 다른 것 할 것 없이 '나는 기도 계속 합니다.' 그만 그라면 돼. 그라고 기도 계속 하면 돼.
'너 여기 우상에 절하라.' '나는 거기 절할 수 없습니다.' 뭐 불에 넣든지 말든지 저 할 것은 절 안 할 것뿐이라. 절 안 하는 것뿐이라. 절 안 하는 것뿐이니까 절을 안 하면 그게 뭐이냐?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수분을 빨아 올리니까 날이 더울수록이 수분을 빨아 올리니까 나무는 무성하게 자라고 열매를 많이 맺는다 그거요.
이러니까 우리는 지극히 큰 능력에 연결되어 있고 절대자의 책임진 그 책임에 안보되어 있고 무한한 은혜에 연결돼 가지고 있으니까 나만 배반 안 하면 된다 말이오.
우리가 하나님 말씀 지키는 게 아니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지 안하면 된다 말이오. 그 슬하에 있으면 된다 말이오.
하나님 말씀을 떠나지 안하면 되는데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내가 떠나 그렇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지 안하고 그대로 있으면 된다 말이오.
떠나는 건 뭣 때문에 떠나느냐? 제가 깨닫지 못해 가지고서 염려 의심 두려움 이게 들어서 그러는 것이지 뭐 지키는 게 힘들어 그런 게 아니라. 하나님 말씀 떠나지만 안하면 돼요. 모시고 그 슬하에 그저 피난만 하고 있으면 된다 그거요.
그런고로 우리는 항상 주님의 지극히 큰 사랑과 은혜와 능력에 이 중보자로 말미암아 연결돼 있는 것, 우리를 시냇가에 심은 나무라 말이오.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앞으로 되는 게 아니고 시냇가에 심은 나무같이 돼 가지고 있어.
이러니까 아무리 햇볕이 쪼아도 진액 빨아을리면 되는 거라. 아무리 햇볕이 쪼아도 진액만 빨아올리면 되는데 나무 제게 병이 들었으면 안 됐지 입장과 환경은 다 좋다 그거요. 못 할 게 없어. 아무리 시냇가에 심은 나무라도 나무 그 자체가 병들어 있으면 그거는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자체의 고장 외에 배경은 다 잘돼 가지고 있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십 분 기도 후에 사층에서 권찰회 있습니다. 현장? 오늘도 봉사원이 필요합니까? 또? 그래, 아무래도 우리가 하기는 해야 되니까 뭐 안 나오면 또 말하고 또 말하고 자꾸 얼마든지, 우리가 해야 될 일이지 누가 하겠소? 그러니까 봉사원들이 그저 기회 놓치지 말고, 하면 자 기에게 힘이 되고 기쁨이 되고 은혜가 됩니다. 또 그것이 참 보배가 됩니다. 이러니까 시간 있는 대로 나와서 어짜든지 봉사를 뭐 한 시간도 좋고 두 시간도 좋고 늦게 와도 좋고 일찍 와도 좋고 이러니까 와 가지고서 봉사를 해서 어서 다 정리를 하도록.
그러고 외부에 이 도색을 해 놨는데 멀리서서 보고 가까이서도 보고 좀 그래 보시이소. 보고, '그 도색이 조금 색깔을 무슨 색깔을 가했으면 좋겠다' 그런 것도 좀 보고, 아마 내가 퍼뜩 와 보니까 그 색이 좋기는 좋은데 밑에 원청 이것 뭐 먼지를 턴다고 털었지마는 이게 거석해 놓으니까 먼지하고 페인트하고 서로 반죽을 해서 붙여 놓으니까 시커멓습디다. 이러니까 그것을 한번 그 색깔을 더 칠하면 좋다든지, 예를 들면 조금 희면 좋다든지, 좀 누르면 좋다든지, 조금 붉으면 좋다든지 그것을 자기 의견 나는 대로, 이름일랑 기록하지 말고 의견 나는 대로 써서 저 신고함에 넣으면 그것을 오늘 내 보고 '보자, 모든 대중들의 눈이 어떤고?' 해서, 그런 거는 뭐 어데, 그것도 참된 것 있으면 그것 찾을라고 하는 것이니까 보기 좋으면 됩니다. 건물이 크고 하니까 거기에 어떤 색깔이 좋은지, 또, 교회니까 어떤 색이 좋을란지? 색깔 그거 마치 화장하는 것 한가저인데 분바른 것 한가지인데 화장 잘못해 놓으면 험하고 아주 험한 사람이라도 화장 잘해 놓으면 아름다운 것이고 이러니까 이미 집은 지어 놓은 것이니까 한번 그 도색해 놓은 걸 한번 살펴 보시이소.
새벽기도 안 나오는 사람들 권해 가지고서 자꾸 나오도록 그렇게 해서 아무래도 이 들어야 되고 또 자기가 깨달아야 됩니다. 그리 안 하면 안 돼요. 새벽기도 안 나오는 사람들은 자기는 자기대로에 잘 믿는데 어데로 갔는지 모르게 탈선돼 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