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1 21:11
복있는 사람과 두 자기를 찾는 법
1988. 1. 29. 밤
본문:시편 1편 1절-6절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행위나 주장을 하는 데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 한 일에 대해서 인정을 하시나 안 하시나 그것을 우리는 생각하면서 해야 하겠습니다.
사람들이 인정하고 안 하고 그 사람이 사람에게 인기를 끌고 못 끄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따르는 사람이 많고 적은 것도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 것만을 가치로 삼고 우리가 살기 매우 쉽습니다. 그것은 그것만으로써는 가치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따르고 많은 사람이 인정한다 할지라도 그것만으로는 안심 못 합니다. 이래서 바울이 말하기를 모든 사람들의 그 중론은 매우 적은 것으로서 여긴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어쨌든지 우리는 가는 곳이 그리스도의 심판 앞에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하나 행동할 때에 심판자가 되신 주님께서 인정하시나 안 하시나 이것을 우리 힘대로는 생각해서 살펴보면서 그렇게 한 자욱, 한 자욱 옮겨 놔야 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생각하면 중생된 자들은 다 알 수 있습니다. 자기에게 당한 일이 아닌 남의 일을 이런 일이 있으니 이것을 하나님이 인정하겠나 안 하겠나 하면 아마 거의 백프로 바로 비판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에게 대해서는 깜깜하게 어두워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그리스도의 심판 앞에 반드시 설 것이니 그분이 인정하나 안 하나 하는 것을 우리가 하나 생각하고 살아가야겠고, 또, 우리가 하는 이 일이 얼마나 계속되며 얼마나 형통할 건가 그것도 생각해 보면 압니다. 이 일이 내가 살아서 말을 하고 주장을 하고 운동을 하고 내가 있는 동안에만 이것이 서지 만일 내가 떠나든지 죽든지 하면은 이 일은 반드시 소멸될 것이다 하는 그런 일이 있고 이 일은 내가 죽든지 떠나든지 이 일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 천하 사람이 다 부정해도 반드시 이는 영원히 남아 있다 하는 그런 것도 우리가 좀 생각해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행위를, 아무나따나 할 것이 아니라 우리 행위를 살펴 가면서 해야 되겠고, 또 그것의 그 수명도 생각하면서 해야 하겠고, 또 하나님의 심판도 생각하면서 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저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면 안심하고 좋아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해서, 많은 사람들이 배척을 해도 든든한 것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인정을 해도 아무런 알속 없는 그런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래서, 우리는 항상 마귀란 놈이 껍데기로 우리를 자꾸 밀어내 가지고 외식하는 사람을 만들라고 애를 씁니다. 우리가 외식에 빠지지 안하도록 항상 노력을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한 사람뿐이었지마는 믿고 난 다음에는 두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있어서, 우리가 조심하고 애쓰고 기도하고 살피면 영생하는 자기로 살 수 있고 그저 조심하지 않고 힘쓰지 않고 기도하지 않고 되는 대로 살아가면 그만 자기 아닌 자기, 원수인 자기, 자기라고 가장을 해 가지고 나오는 옛사람 그놈에게 끌려서 우리는 영육을 다 실패케 하는 길을 걷게 됩니다.
여기에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이 사람이 속사람이요 새사람입니다.
우리 속에 속사람, 새사람, 참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와 영감과 진리로 된 사람이요, 또 이 셋으로 살아난 영육을 가진 사람이라. 피공로와 성령과 진리로 된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아들은 신적 요소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은 첫째 아담에게 속한 영육인데 그 영육을 하나님의 아들된 내가 그것들을 살려 점령해 가지고 그 속에 자리잡고 살고 있고 또 내 속에 하나님이 충만히 와서 계십니다.
그래서, ‘진리의 말씀으로 너희들을 낳았다’ `너희들이 거듭난 것이' 그 말은 거듭났다 말은 두번째 났다 말입니다, 두번째 났다. 처음에 낳은 것은 땅에 속한 아담 해와의 자손인 영육이고 다시 그 외에 딴 우리로 낳은 존재는 하나님의 말씀의 씨로 돼 가지고서 낳은 자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늘에 속한 자가 있고 또 땅에 속한 자가 있습니다. 둘째 아담의 자손도 있고 첫째 아담의 자손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씨로 난 자, 곧 성령으로 난 자. 이제 성령으로 난 것은 죽은 자를 다시 살려서 살려낸 것도 있지마는 그게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의 씨로 우리를 낳은 것, 이 하나님의 자녀가 있어 곧 그 생산법이 다르니 첫째 아담의 자손은 생산 방식이 분식으로 됐습니다. 분열로 됐습니다. 이제 그 요소들이 떨어져 나와 가지고서 이래 됐지마는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 된 이것은 그 요소가 떨어져 나오지 안했고 하나님 한 분의 완전하신 분 그분이, 완전하신 분이 역사하시는 그 역사로 말미암아 우리 수많은 성도에게 진리로 와서 계십니다. 성령으로 와서 계십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와서 계십니다. 그는 하나님의 자녀이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난 자입니다.
그것은 첫째 아담의 자손의 생육법과 달리 둘째 아담의 자손의 생육법은 분산이 아니고 분리가 아니고 그분이 충만하고 충만해서 광대해서 우리 안에 충만한 것입니다. 한 진리가 억만 명 속에도 가서 충만히 와서 계십니다. 한 성령이 억억만 명 속에도 계시니 그 성령은 한 분뿐이십니다. 이래서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요 또 영생을 가진 자입니다.
그러기에, 이 첫째 아담에게 속한 이 영육은 피소유격이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난 자는 주격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지체요 하나님의 몸이요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는 것은 곧 첫째 아담의 자손은 하나님이 내주해 계시기 때문에 성전이라 그렇게 말하고, 우리 안에 하나님이 진리로 성령으로 와 계시기 때문에 우리를 하나님의 성전이라, 또 말씀하시기를 땅에 속한 자는 땅에 속한 자의 형상과 같고 하늘에 속한 자는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과 같다 이랬습니다.
하늘에 속한 자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이오. 땅에 속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의 전이요 소유요 곧 그의 기관이요 도구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우리는 오묘하게 돼 가지고 있어서 우리가 살 때는 반드시 겉사람 곧 멸망받을 옛사람으로 살 수도 있고 영생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그 속성이 우리 속성된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의 속성입니다. 그러면 그 속성이 분산돼 가지고서 우리 속성된 게 아니고 하나님의 속성은 분산할 수 없습니다. 변할 수 없습니다. 갈라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속성이 우리 안에 와 가지고서 우리를 주관하는 주격 속성이 돼 가지고 있어서 곧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그러기에, 자기와 자기를 잘 찾아서 바로 구별하지 못하면 언제든지 다 죽는 생활과 멸망의 결과를 맺고 맙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말로는 ‘새사람으로 살아야 된다. 하나님 아버지 아들로 살아야 된다.’ 하나님 아버지 아들이 영생하고 하나님 아버지 아들이 영생하니까 그의 소유도 다 영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자기와 자기를 찾기가 어려운데 요 자기를 찾는 방편을 시편 1편에다가 기록해서 주셨습니다.
「복있는 사람은」 복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 복있는 사람인고 하니 영생하는 사람이요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된 참사람이요 곧 하나님의 성전이요 하나님의 몸인 참사람을 가리켜서 복있는 사람이라 했습니다. 참사람, 복있는 사람.
참 자기를 찾을라면 어떻게 해서 자기를 찾을 수 있느냐? 참 자기를 찾을라면 1절에, 「복있는 사람은」 이 사람은 참사람을 말합니다. 참사람 자기는 어떠한 사람이냐? 참사람 자기는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는 그 사람이 참사람입니다. 그것이 참 자기입니다.
우리는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고’ 하는 이 말씀을 자기 몸 밖에 이웃에 대해서 관계하는 말씀으로만 그렇게 우리는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것은, 자기 몸 밖에 수많은 악인들이 있습니다. 자기 몸 밖에 수많은 악인들이 있는데 그것보다도 자기 안에 이 악인이 있으니 그것이 곧 옛사람 자기요 자기 아닌 자기요 원수인 자기요 자기를 죽인 자기입니다.
이 자기 이것이 자기 안에 있는 것을 깨닫고 자기 안에 있는 악인으로 더불어 싸워서 악인을 이기면 악인을 이긴 그 사람이 곧 참 자기요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인 자기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기 안에서 싸우는 이 대내전을 싸워서 이기고 난 그 다음에 자기 몸 밖에 있는 대외전을 싸워서 이길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항상 옛사람노릇입니다.
복있는 사람은 누구냐? 참사람,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된 새사람. 이 새사람인지 옛사람인지, 참 자기인지 자기를 죽인 원수인 자기인지 자기와 자기를 구별해 가지고 자기를 똑똑히 알아야 뭐 일이 되겠는데 자기를 찾을 도리가 없어. 자기 찾는 방편을 여기에 가르쳤습니다.
복있는 사람은 참사람 자기를 말합니다. 참사람이 누구냐, 참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참사람은 복있는 사람입니다.
복있는 사람이라 말은 네가 이렇게 하면 복있다 그 말 아니오. 복있는 사람은, 과거에는 그렇게 깨달았는데 그거 잘못 깨달았어. 악인의 꾀를 좇지 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안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안하면 복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깨달았는데 그게 아니라, 알고 보니까.
복있는 사람은, 복있는 사람은 그 악인의 꾀를 좇지 안하든지 죄인의 길에 서지 안하든지 하든지 복있는 사람은 변동없는 복있는 사람 있습니다.
피와 성령과 진리로 된, 하나님의 말씀의 씨로 성령으로 된 예수님의 공로로 된 이 참사람,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 ‘진리의 말씀의 씨로 너희들이 났느니라’ 하신 그 사람이 복있는 사람입니다.
복있는 사람인데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 이 사람이냐? 이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는 이 사람이 곧 복있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곧 참사람입니다. 네 속에 악인의 꾀를 좇지 안하는 그 네가,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 네가 참 네다.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인 네다.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다 말은 자기중심의 모든 계획들을 따르지 안하고 이것을 대항하는 자, 이걸 대항해서 이긴 자. 네 속에 원죄, 본죄, 악령 이 셋이 들어서 도모하고 계획하는 것이 네 안에 있다. 이것을 네 안에 이 계획하는 자가 있으니 그놈이 네 원수요 너를 죽인 옛사람이요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원수 그놈이 있기 때문에 이놈을 대항해서 ‘좇지 않는 자’ 대항해서 이긴 자 이놈을 대항해서 이긴 자 그자가 곧 참 사람이요 하나님 아버지 아들이요 복있는 사람이다 하는 말씀입니다.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삐뚤어진 걸음을 걷자고 하는 것이 네 몸 밖에 친구 중에 있는 게 아니고, 거기에는 뭐 세상에 가득 찼지마는. 삐뚤어진 걸음을 걷자고 하는 수많은 동무가 있고 수많은 인간들이 꽉 있지마는 네 몸 밖에 있는 것보다도 네 안에서, 네 안에서 삐뚤어진 길을 가자고 네 마음과 네 고깃덩어리를 꼬드겨서 꼬우고 있는 그자가 있으니 그자가 너의 원수요 곧 그자가 옛사람이니 그자를 대항해서 싸워서 이긴 자, 죄인의 길에 서지 안하니까 이긴 자 그게 곧 참사람이요 새사람이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인 네다.
네 속에 그것이 없으면 새사람은 파묻혔다. 곧 대항하는 것도 없고 반대되는 것도 없고 전투가 없으면 벌써 새사람은 옛사람 그놈이 마음하고 고깃덩어리하고 합작해 가지고 벌써 파묻어 놨다. 파묻어서 보이지도 안 한다.
보이지도 안 하는데, 보이지도 않았으니까, 참 네가 파묻혀서 보이지 안하니까 그 보이지 않는 파묻혀 있는 참 너를 파내야 될 터이니까 네가 가만히 생각하면은 ‘이 악인의 계획을 지금 세우고 이 심신하고 합작되고 있다. 악인의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 삐뚤어진 지금 길을 도모하고 있다.’ 고것이 너에게 발견이 되거든 고것을 아삼하게 네 속에서 고렇다고 겨우 그저 모기 소리만치 그렇다고 너에게 흔적을 보이거든 바로 그게 네다.
그게 네니까 얼른 찾아서 일으켜서 네 마음도 거기에 속하고 네 몸도 거기에 속해서 이제 그 사람을 강하게 하라.
강하게 해 가지고서 이 두 역사를 이기게 되면 네가 제법 힘이 세고 강하고 뚜렷하고 확실히 네 속에 이제 네가 둘인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될 때에, 하나는 참 네고 하나는 원수인 네라는 것을 네가 알게 된다.
이래서, 그놈의 계획을 물리치고 그놈이 가자는 그 길에 반대하고 따라가지 안하고, 또, 오만한 자리에 앉자고 ‘이만하면 됐다’ 어짜든지 네 현실에서 또 할 일이 있고 또 전진해야 할 일이 있고 또 향상 해야 할 일이 있고 또 새롭게 할 일이 있고 이 원수를 싸워서 격퇴해야 될 것도 있지마는 앞으로 지금 네가 건설해 나가야 될 네 일도 있다는 것을 발견 자꾸 해서 그것이 자꾸 발견돼서 네게 ‘이 일을 해야 될 터인데 이 일이 지금 미진해 가지고 있다. 이 일을 시작해야 되겠다. 이 일이 지금 중단해 가지고 있으니까 이걸 준공을 해야 되겠다.’ 하는, 고렇게 네가 어데까지 나갔든지 거기에서 다시 아직까지 미완성의 길이 있고, 미완성의 길이 있는데 그것이 완성되기 전에 또 새 길이 나온다, 완성되기 전에.
밭을 갈고 양을 먹이다가 돌아오니까 이제 주인 먹을 것을 준비해서 다 띠띠고 섬긴 후에 다시 먹으라 하는 고 비유에서 가르침과 같이 먼저 한 일 준공되기 전에 새 일이 벌써 너에게 나오고 있다.
이래서, 너는 ‘이만하면 됐다’ 쉴 사이가 없다. 오만한 자의 자리에 쉴 사이가 없다. 이렇게 이 쉴 사이가 없고 자기는 계속 일하지 안하면 안 되는 고 자기가 있으니 고것이 새사람이요 참사람이요 참 네다.
그라면 여기 세 가지에서 세 가지 참 자기를 찾아서 발견합니다. 그만 서슴을 것 없이 내 밖에 수많은 것 내비두고 내 안에서 이 두 자기가 있어 가지고서 참 나와 원수인 나, 나를 망케 하는 나 아닌 나 그놈과 나를 살게 하는 나 요 둘을 발견해 가지고서, 둘을 발견하는데 수많은 일이 있다 해도 간추려 말하면 그의 계획 악인의 계획, 악인의 길, 악인의 태도 ‘이만하면 됐다’ 하고서 이제 자기로서는 쉬는 것, 항상 쪼치지 안하고 이만하면 됐다 하고서 그 휴식을 할라고 하는 것, 아무리 옳은 성공을 했다 할지라도 휴식할라고 하면은 벌써, 이만하면 됐다 하는 게 아니라 앞으로 자꾸 할 일이 나와서 자꾸 미진한 가운데에 재촉하고 전진하고 향상하고 할 그 일에 미진이 있지 안하고서 ‘이만하면 됐다’ 하는 그놈이 곧 옛사람 그놈이다.
이래서, 이 세 가지에서 세 가지를 자기 안에서 이놈을 대항해서 반대하고 그를 환영하지 안하고 그를 반대해서 거기에 따라가지 안하고 하나되지만 안하면, 그놈을 따라가며 죽일 게 아니라 그저 나만 거기에 피동되지 안하고 협동되지 안하고 이렇게 하면, 그놈이 곧 옛사람인데 네게 패전당해서 네게 쫓겨난 것이요 요 셋으로 그걸 대항해서 이긴 그 자가 곧 네다. 이 세 가지 면으로 그 셋을 대항해서 이긴 그게 네다.
그러면, 네 안에서 이 세 가지 종류의 면으로 분명히 이를 주장하는 자가 있고 이와 대립되는 자가 있고 두 네가 있는 것을 발견해서 대립되는 그 자를 물리치고 그자에 대립되는 네 생활 네 주장 네 방법 너 할 일 그것을 발견하는 그 사람, 발견해 가지고서 고와같이 산 사람 고것이 새사람 네요 참사람 네요 하나님 아버지 아들된 네니 고걸 바로 찾았는가 안 찾았는가 하는 고 시금석은, 참 자기 참사람 자기를 바로 찾았는가 안 찾았는가 하는 그 표시는 어데 있느냐? 2절에,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고것을 찾아졌으면 새사람을 네가 찾아서 새사람이 네가 되고 원수 그놈을 쫓아내고 참 너, 하나님의 아들인 너, 새사람인 너, 참 너를 네가 찾아서 바로 너를 찾아 네가 바로 섰으면 또 그자는 어떤 자이냐? 새사람, 참사람, 참 너는 어떤 자이냐? 그자는 알기 쉬운 것이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자다.
네가 이 셋을 대항하고 나니까 여호와의 율법이 아주 즐거워져서 그 외에 딴거는 뭐 다른 책이니 말이니 그까짓 것 볼 것도 없고 아무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은 대하니까 이 말씀은 크기가 무한하고 가치가 무한하고 권능이 무한하고 진실이 무한하고 그 성과가 무한하고 이제 자꾸 여호와의 율법이 즐겁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의 맛을 알게 됩니다. 가치를 알게 됩니다. 능력을 알게 됩니다.
이러니까,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그라니까 밤낮 생각할 것이 이 말씀 외에는 생각할 게 없어. 직장에서도 항상 이 말씀을 생각하는 가운데서 이 말씀에 내가 준행해야 되고 말씀대로 성취해야 되고 말씀대로의 내가 지식을 가져야 되겠고 말씀대로의 행위를 갖춰야 되겠고 말씀대로의 내가 돼야 되겠고 이러니까 껍데기는 월급받고 그 공장에 가서 일하고 있지마는 속에 알맹이는 항상 여호와의 율법이 즐거워지고 그저 눈을 뜨고 일해도 항상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항상 이 말씀만 생각하게 됩니다. 생각하게 돼.
이것이, 이제 새사람 찾기 전에 제가 성경 암만 봐야 헛일이오. 아주 새사람 찾기에 가장 용이한 방편을 시편 1편에다가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이러니까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해.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이 사람이 복있는 사람이요 이 사람이 참사람이요 이 사람이 새사람이요 이 사람이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요 이 사람은 영생을 가진 사람이요 영생한 사람이요 이 사람은 전지전능의 유업을 받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이라니까 그 사람의 소원이 하나님의 소원이요 그 사람의 경영이 하나님의 경영이요 그 사람의 하는 행동이 하나님의 하는 행동이니까 그 일이야 잘 안 될래야 안 될 수가 없지. 그 일은 절대성을 가지고서 절대 완성이요 절대 성공이고 절대 성취지.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이제 여기에까지의 우리 새사람 옛사람, 참사람 자기 원수 요것을 구별해서 요 말씀해 놨습니다.
고라고 난 다음에, 4절에,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이제 악인이 처음에 1절에 말한 악인인데, 악인. 자기중심 자기 위주로 사는 그자의 행동은 아무리 많아도 환난 바람 불어도 날아가고 뭐 지금도 우리 나라에 몇 천 명 교인 몇 백 명 교인 이렇게 말하지마는 이제 큰 바람은 죽음 바람이요 하나님의 심판 바람인데 그 전에 조그만 이 지역 지역에 이런 환난 저런 환난, 이런 환난 바람만 일어나고 또 이 유행 바람, 요새 유행 바람 유행 바람만 불어도 다 날아가 버립니다.
이러니까, 이것 뭐 미국만 갔다 와도 고만 유행 바람에 날아가 버리고 가기 전 사람을 찾아보지 못하는데 그까짓 게 무슨 알맹이가 있어? 여기 있다가 서울만 가도, 서울 바람만 불어도 그 바람에도 휙 날아가게 되는데 그까짓 게 무슨 알곡이라? 알곡 없어. 참 기막힙니다. 서울 사람들 이 말 들으면 기가 찬다 하지마는 서울 바람도, 서울 바람 그까짓 거는 부채 바람이라, 부채 바람. 부채 바람에도 다 날아가 버렸어. 다 날아가 버리고 껍데기만 지금 우우우우 해 가지고 야단이라.
이러니까, 네 소원이 뭐이냐? 땅에 있는 소원이지 하늘에 소원 아니라. 네가 교인을 정말로 하나님의 사람 중생된 새사람을 기르느냐 옛사람 그것만 치켜 올리고 칭찬하고 이래 가지고 교인 수나 많으면 좋아하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안해 가지고서 사람을 제게 끌어 붙여서 사람이 찬성하고 사람이 따르고 사람 인기나 올라가면 된다고 전부 그거 다 껍데기 놀음이요, 그거 다. 옛사람 놀음입니다. 옛사람 놀음과 새사람 생활을 구별하지 못하면 헛일이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이러니까 내가 이 생활하는 것이 환난 때는 어찌 될까 죽을 때는 어찌 될까! 내가 어떤 사람 만나 보니까 그 사람 말하기를, 밤인데 아주, 기도하러 가면서, 뭐라 하는가 볼라고서 ‘뭐 그만 여기서 여기 밑에 요런 데서 그만 기도하면 안 됩니까?’ 이라니까 아무말도 안 하면서 ‘언제든지 뭐 아무래도 한번은 혼자 갈 걸음’ 아무래도 혼자 갈 걸음, 아예 처음부터 말이지 다른 사람 안 가는데 혼자 산에 가고 혼자 들에 가고 혼자 갈 걸음, 자기가 언제든지 독보로 걸어가야 되고 신앙 동지도 없고 홀로 가서 마지막 성공 합니다. 우리가 최고의 성공과 승리는 독보에서 있지 뭐 군중들이 많이 뚤뚤 뭉쳐 가지고 있는 그런 걸음 아닙니다.
그라는 사람 더러 봤어요.
이러니까, 이렇게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처음에 악인, 자기중심으로 한 그자가 하나님 심판대까지는 갑니다! 하나님의 심판대까지는 가지마는 심판을 통과하지는 못합니다.
「죄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삐뚤어진 사람들은 옳은 사람들 모인 데에 거기에 참여하지 못합니다. 제 행위가 삐뚤어지고 행위가 죄인데 행위가 삐뚤어진 가운데에서 많은 삐뚤어진 행위하고 나니까 제 사람도 삐뚤어졌는데 삐뚤어진 사람 삐뚤어진 행위가 어떻게 옳은 행위에 참가할 수가 있겠습니까?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을 망하리로다」
이런고로 여기에서, 자기 아닌 거짓부리 자기, 자기를 죽인 자기, 자기의 심신을 멸망시킬라고 꼬울라고 온 원수, 자기 아닌 자기 그놈을 쫓아내 버리면 평안한데 그놈이 들어오면 탈이 납니다.
자기 아닌 자기 그놈이 뭐입니까? 자기 아닌 자기 그놈이 뭣으로 됐습니까? 자기 아닌 자기 그것이 뭐입니까? 자기 아닌 자기 그놈이 자기인 척 하고 와 가지고서 내 마음을 꼬우고 내 몸을 꼬와 가지고서 그놈이 내 마음과 몸을 망칠라고 하고 있습니다. 자기 아닌 자기.
그놈이 내 속에 와 가지고서 내인 척 가장을 해 가지고 하고 있는데 그놈의 이름이 뭐입니까? 이름이 뭐이요? 악령, 또? 악성이 뭐입니까? 원죄. 악성이 원죄입니다. 에덴동산에 받은 원죄요. 악성. 악습은 본죄입니다.
이것이 와 가지고 꼬와서, 악령 악성 악습, 마귀와 원죄와 본죄가 내 속에서 이놈이 주장해 가지고서 내 심신을 제맘대로 할라고 자꾸 이 심신을 꼬와서 저하고 합작이 되자고서 이렇게 꼬우고 있는 이것을 보고 이것을 반대하고 내 심신을 거기에서 빼앗아서 자기에게로 붙이는 사람, 붙였든지 못 붙였든지 대립이 된 사람, 대립이 돼 있는 사람 그것이 중생된 새사람이요 참 자기입니다.
자기 안에 이 두 사람이 있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발견할 수 있을까? 발견하는 것은 자기 현실에서 이 세 가지로 발견하면은 똑똑히 발견해서 참 자기도 발견할 수 있고 자기 아닌 원수도 발견할 수 있으니 자기 현실에서 참 자기도 자기가 발견하고 참 자기 아닌 그것도 발견하고, 그러면, 이 심신은 소유물입니다. 심신은 도구와 같은 것이오. 이러기 때문에 심신이 참 자기를 주인으로 모셔서 참 자기와 하나 되어서 자기에게 속해 살면 이 심신도 속하여 산 그것은 전부 영생이 되어지고 자기 아닌 원수 그놈에게 꼬여 가지고 이 심신이 그놈에게 꼬여서 그놈하고 한 덩어리가 돼 가지고서 움직인 것은 전체가 하루고 열흘이고 일 년이고 십 년이고 몇 십 년이고 전체는 사망되고 맙니다.
요것을 구별해서, 목회를 하면서도 그거 있고 설교하면서도 그거 있고 교인들 심방하면서도 그거 있고 말을 주고받는 데도 그거 있고 자기 안에 두 놈이 있는 것을 요걸 깨달아서 원수 고놈과 참사람 나와 두 자기가 있는 것을 깨달아서, 자기 안에서 두 자기가 있는 걸 깨달아 하나는 자기 아닌 놈이 자기인 척 가장을 해 가지고서 나온, 나를 죽인, 에덴동산에서 인간의 영을 죽인 그놈, 또, 악령이 죽여 놓은 인간성, 악령이 죽여 놓은 인간성, 악령이 죽여 놓은 인간성, 변질된 인간성, 악령에게 죽임당한, 마음과 몸이 있는데 마음과 몸을 죽인, 마음과 몸을 죽인 고 인간성, 마음과 몸을 죽인 인간성 고놈의 이름이 뭐입니까? 고거 이름이 뭐입니까? 악성이야, 악성.
마귀란 놈이 와 가지고서 우리 속에 악성을 넣어 줬습니다. 악성을 넣어 줬어.
악성을 넣어 줘 가지고 악성이 떡 와 가지고서 심신을 통치하고 있으니까, 악성이 들어서 심신을 통치하고 있으니까 악성 그게 제인 줄 알지마는 악성이, 자기 영을 죽이고 대신 와 가지고서 자기 남편은 죽여 버리고 그놈이, 남편 죽인 그 원수 간부 그놈이 와 가지고서 지금 아주 남편인 척 하고 날뛰니까 이 눈먼 마음과 눈먼 몸뚱이 이거는 저거 본남편인 줄 알고 날뛰고 야단을 지긴다 말이오. 지금도 그래! 예수 믿는 중생된 사람들도.
이러니까, 자기 속에 이 자기 아닌 자기, 원수인 자기 그놈을 자기 원수인 것을 똑똑히 깨닫고 이놈을 똑똑히 알고 이놈을 미워해서 이놈으로 더불어 대항해 싸울라 하는 이게 없는 사람은 뭐 도매금이요, 그건 물을 것도 없이 일생 동안 그만 사망 생활입니다.
자, 원수 그놈의 이름이 뭐입니까? 악성이라 말이 무슨 말이요? 악성이라 말이 무슨 말이야, 악성이란 말이? 악성이란 말이 무슨 말입니까? 녜, 자기중심의 인간성입니다. 자기중심의 인간성. 자기중심으로 날뛰는 그 자기 속에 인간성.
자기중심으로 날뛰는 그 자기 성질. 자기중심의 자기 성질. 자기중심 자기 위주로 자기중심으로 하려는 자기 성질 그것이 악성인데 그게 뭐이냐? 내 마음을 사로잡아서 완전히 제것을 만들어 가지고서 내 마음 고깃덩어리 이놈은 그것도 모르고 이놈에게 꼬여 가지고서 자기중심으로 하는 그것이 자기에게 유익된 줄 알고, 자기중심으로 하면 사망입니까 생명입니까? 자기중심으로 하면 사망입니까 생명입니까? 자기 위주로 하면 사망입니까 생명입니까? 그러면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로 하면은 그것이 영생되는 것을 우리가 믿습니다.
요걸 자꾸 익혀야 돼. ‘내 중심 내 위주, 내 중심 내 위주 요것은 내가 아니고 원수인 내다. 요놈이 내 마음을 꼬와 가지고서 내 마음을 지금 멸망시킬라고 하고 있다.’ 그래서 자기중심의 생각이 나오고 자기 위주의 생각이 나오면 고 생각은 자기 생각입니까 원수의 생각입니까? 고게 자기 생각입니까 원수 생각입니까? 원수 생각이오! 요것만 알고 판정하면 일이 됩니다.
사람이 요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네가 지금 요 생각 가지는 요것이 네 중심의 생각이냐 하나님 중심의 생각이냐? 너를 위주하는 생각이냐 하나님을 위주하는 생각이냐?’ 이거야 환하게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너를 위주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네냐 너를 죽인 원수냐?’ 고게까지를 못 나가. ‘고거는 나를 죽인 원수입니다' `그러면 원수이면 그놈은 네 마음이냐 네 고깃덩어리냐? 네 마음과 고깃덩어리가 다 원수이냐 네 마음과 고깃덩어리에서 뭣을 쫓아내면 마음과 네 몸뚱이가 살아나느냐?’ 뭘 쫓아내야 몸뚱이와 마음이 살아날 수 있습니까? 그 마음과 몸뚱이가 똘똘 뭉쳐서 제 중심 제 위주의 그 육이 돼 가지고 있는데 제 중심 제 위주의 육이 돼 가지고 있는 그것을 살릴라면, 그 심신을 살릴라면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습니까? 부인해야? 뭣을 그놈을 쫓아내고 죽여 버려야 자기 심신이 살아납니까? 마귀 그놈은 쫓아내 버리고, 또? 자기중심 자기 위주의 성질 고게 이름인 뭣입니까, 고게? 악성. 고놈을 죽여야 됩니다.
알겠습니까? 고놈을 죽여 버리면 우리 마음이 살아납니다. 고놈을 죽여 버리면 우리 몸뚱이가 살아납니다.
악습은 자기중심 자기 위주의 버르장이, 자기중심 자기 위주의 버릇, 자기중심 자기 위주의 습성, 습관, 버릇, 자기중심 자기 위주의 버릇 요놈을 따라할 게 아니라 고놈을 딱 죽여 버리고 끊어 버리고 고놈을 없애 버리면 내 심신은 살아납니다.
그러면, 내 심신이 해방되는 것은, 영은 다 해방됐고. 내 심신이 해방되는 것은 뭣에서 해방이 돼야 됩니까? 악령에게서 해방이 돼야 되겠고, 악령이라 하는 거는 자기중심의 영입니다. 자기중심의 영에서 해방돼야 되겠고 자기중심의 그 인간성에서, 내 속에 자기중심의 이 인간성이 있는 요놈을 완전히 죽여 버리고 요게서 해방을 시켜야 되고 자기중심의 습성 버르장이에서 완전히 해방을 시켜야 살아나지 그 외에는 살아나는 길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 시편 1편을 집에 가서 가만히 읽어 보면서 똑똑히 ‘내 속에는 나 아닌 나와, 나 아닌 나 그놈이 뭐이요, 나 아닌 나 그놈이? 나를 죽이고 내인 척하고 가장을 해 가지고서, 이 심신의 본남편은 영인데 이놈이 들어서 영을 죽이고, 본남편을 죽이고, 본남편을 죽인 내 영을 죽인 간부 악령 이놈이, 악령 악성 악습 이놈이 떡 들어와 가지고서 남편인 척 하고서 꼬우니까 고만 이 심신 등신 이것이 꼬여 가지고서 일생 동안을 제인 줄 알고, 그러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자기중심 자기 위주의 행동을, 목사에게도 제 중심 제 위주의 처사를 ‘이 일은 틀렸다’ 하면은 고만 발악하고 달라듭니다.
어짜든지 제 중심 제 위주의 이 일을 숭상을 하고 보호를 하고 협조를 하면 좋아합니다, 좋아해.
이러니까, 인간이 저를 돕는 자인지 해하는 자인지 그걸 몰라. 저를 위하는 자인지 저를 죽이는 자인지 그걸 몰라.
이래서, 악성 악습이 우리 원수라. 내 육도 영도 이 세상도 내세도 전부 망치는 것은 악령 악성 악습 이 세 놈이 들어서 망친다. 이놈은 나의 철천지 원수다 요걸 판정짓고 확고하게 가진 사람은 희망이 있어요. 이것을 가진 사람이 많지 못해.
「복있는 사람은」 복있는 사람은 말한 것은 이렇게 악인의 꾀 좇지 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안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 앉지 안하고 이 일 하면 복있는 사람이다 말입니까, 이 일을 하면은 복있는 사람이 된다 말입니까 복있는 사람은 그런 것을 아예 대항하는, 대항하고 그들과 한편이 안 된 그 사람이 복있는 사람이라 말입니까? 그래야 복있는 사람이 된다 말입니까 복있는 사람은 그들과 대립이 되어 있는 그 사람이 복있는 사람이라 말입니까? 이 복있는 사람은 이미 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까 이제 세 가지를 행함으로 복있는 사람이 됩니까? 행한 후에 복있는 사람이 됩니까 복있는 사람이 이미 돼 있는 복있는 사람이 이 세 가지 행동을 하는 것입니까? 복있는 사람이 먼저, 전재, 먼저 있는 것입니까 사후에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사후에, 이 행사를 하고 난 뒤에 복있는 사람이 되어진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봅시다. 이 사전에 복있는 사람이 되어 있는데 이 복있는 사람은 이 세 가지 행동을 하는 것을 보아서 알 수 있다. 복있는 사람이 행동하기 전에 이 복있는 사람이 되어 있는 것으로 믿는 사람 손 한번 들어봅시다. 이래.
나도 이제까지 이렇게 깨닫지 안하고 달리 설교했어, 다른 설교했었어. 이제까지 다른 설교했었어. 다른 설교했었어. 여러분들 들으면 그렇지요? ○○○ 목사, 내가 그전에 어떻게 설교했어? 결과로 복있는 사람된다 했지? 아니야! 이제 이것을 내가 산에 가서 깨달았어요.
그러기 때문에, 이제 보니까 그게 아니라. 이제 참,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써 중생돼서 복있는 사람이 돼 가지고 있는데 이 사람을 파묻어 놓고, 이 사람의 성격은 어떤 성격이냐? 이 사람을 찾을라면 이 현실에서 이 세 가지를 대항하는 그 사람이 곧 복있는 사람이요 참사람이요 참 내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니 고 사람이 네 마음의 주인이요 네 주인이기 때문에 고 사람에게 복종해 가지고 하나돼 가지고서 옛사람 너 아닌 너 이놈을 죽이라 대항해라 하는 것이오.
그러면, 그 사람이 되면은, 이 대내전에서 이 복있는 사람이, 이 원수를 셋 원수를 이긴 이 복있는 사람 이 사람은 원수를 이기고 난 다음에 그 사람의 행동은 어떠하지요? 그 사람의 행동은 어떻습니까? 본성적으로 그 사람의 행동은 어떠해요?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해. 즐거워해. 밤낮으로 여호와의 율법만 자꾸 묵상해. 이 말씀만 자꾸 묵상해. 일을 해도 자도 만날 이 말씀을, 이 말씀 외에 더 좋은 게 없어.
이 사람이 새사람이라! 그러면, 우리가 새사람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있는지! 평생 새사람 한번 만나보지도 못하고 예수 믿다가서 불 가운데 구원 얻은 자와같이 가는 사람들 많습니다.
이제 연구 제목으로 딱까리는 떼 놨으니까 가서 얼마든지 새겨서 배부르고 아주 무럭무럭 무성하게 자라기를 바랍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