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의 계대자

 

1983. 5. 22.주일오후

 

본문 : 베드로전서 3장 8절∼12절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 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

 

 오전에 말한 말씀을 자기 현실에서 한 현실이라도 그 현실에 지켜 보면 힘도  나올 것이고 제가 얼마나 강하며 약하며 악하며 못됐는가 그것도 알 것입니다.

한 시간만 아브라함과 롯의 걸음 중에 '내가 어느 걸음을 지금 걷고 있느냐?'  그걸 생각만 해도 사람들이 겸손해지고 진실해질 터인데 거기 대해서 도무지 뭐  성경은 성경이요 나는 내요 상관없이 이래 살기 때문에 뻔뻔하지, 그러니까  뻔뻔하지마는 하나님 앞에는 진노를 쌓는 것뿐입니다.

 우리가 회개에 대해서도 많이 외쳤는데 어느 정도 회개를 해서 하나님의 노를  풀고 하나님의 책임지심을 입었는지 모르기는 모르지마는 아무래도 하나님께서  이 가짜를 가짜로 나타내기 위해서 당신이 한번 시험은 하실 것입니다.

 미리 함부레 깨끗이 회개하고 준비하면 그때 평안하게 지낼 것이고 공연히  회개도 안 하고 되지 못하고 된 줄로 그러면 그때에 이제 어 리석은 다섯 처녀가  급해서 날뛰어 쌓았지마는 전부 헛수고지 무슨 소용이 있었습니까?  오전에는 그 말씀을 증거하니까 모두 좀 알아듣는 것 같고 그렇기는 그런데  어느 정도 알아듣고 그 말씀이 참 크신 분의 말씀이요 한 말로 천지를 창조한 그  말씀인데 그분이 말씀하신 말씀인데 그 권위를 어느 정도 인정하는지?  인정하는 그것이 사람의 봇짱입니다. 인정 하나도 안 하는 그거는 사람이라  해도 짐승 한가지지 사람이라고는 속에 좁쌀내끼 하나 들어갈 것도 터먹이  없어요. 그를 인정하는 사람은 우주를 다 집어넣어도 그 까짓 거, 우주 그거  얼마나 커서, 뭐? 다 집어넣어도 한쪽 귀때기도 안 찹니다. 영계를 따  집어넣어도 안 차고. 하나님을 모셔야 이제 가 득하고 만족하지.

 예수 잘 믿는 사람은 참 잘난 사람들이오. 대인들이요 위인들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에 있는 것을 다 배설물같이 여긴다는 것은 말뿐 아니오. 실상 그러합니다.

그 말씀을 지켜 행해봐요.

 오늘 오후에 읽은 말씀은 우리 목적이 뭐냐 하는 그걸 지금 여기에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요새는 지금 제가 안 보이는데 한 이십 년 전에 제가 서부교회  왔을 때에 이 밤에 자다가 들으면 뭣이 툭탁툭탁거려 쌓고, 또 아침에도  툭탁거리고, 낮에도 툭탁거리고 '저 무슨 소리고?' 이러니까 '그 사람은 사람  주먹으로 때리는 그것 지금 시합해 가지고 세계에 참피언으로 제일 일등갈려고  그것 하는 사람 아닙니까?' 뭘 포대기다 뭘 이런 걸 해 놓고서 자꾸 이래 뚜드려  쌓데요. 그건 밤이고 낮이고 그것만 뚜드려. 뭐 공부고 뭐이고. '공부는 저  사람은 안 하는가?' '공부가 문제입니까? 그것만 하면 학교는 뭐 아무 제일 좋은  서울대학이라도 시험 칠 것도 없이 그만 무시험으로 들어갑니다.' 자꾸 그것만  뚜드리고 연습하고.

 또 어떤 사람은 내가 한번 보니까 이거는 뭐 이래 놓고 훌쩍 뛰어 가지고 쿡  처박히고 또 뛰어 가지고 처박히고 늘 봐야 그것만 해. 그건 또 뭐 높이뛰기 뭐  그것 지금 세계에 한번 일등이 되려고 한다던가?  이것 모양으로 우리가 부르심을 입어서 예수님 믿게 된 것은 다른 게 아닙니다.

여기에 9절 하반절에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부르심을 입은 이유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함이라"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함이라' 여기는 이렇게 번역이 됐는데 구역에는  '복을 대잇게 하려 함이라' 그렇게 번역이 됐습니다. 복을 대잇게.

 여기 복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복을 대잇게  한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대잇게 한다는 것이요 복을 유업으로 받는다  그말은 예수님은 모든 피조물에 복덩어리입니다. 예수 님은 모든 피조물의  복덩어리요.

 모든 피조물의 생명도 예수님이요, 평강도 예수님이요, 영원 안락도 예수님이요  영생도 예수님이요, 또 영광도 예수님이요, 뭐 치료도 예수님이요 예수님은,  이러기 때문에 그분 직책이 대제사장이라, 거룩한 대제사장이라, 그말은  자존하신 한 분이신 조물주와 모든 피조물과 그 관계의 조화를 예수님 홀로  그것을 바로 조화해 가지고 하나님도 만족히 여기시고 피조물도 만족히 여겨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 아주 그 관계가 잘되도록 하는 그 책임을 맡으심을  가리켜서 거룩한 대제사장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그 일을 완성하시려고 도성인신하셔 가지고 오셨는데, 예수님이  십자가 못박히셨다가 다시 삼 일 만에 부활하심으로써 완성을 하셨는데 그  완성은 하나님의 피조물들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온갖 충만을 피조물들에게 다 줄  수 있는, 피조물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다 받을 수 있는 그런 관계를 설정한  그 공로를 베푸셨습니다. 그것 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뭐 그런 것이 땅위에는 없지마는, 갓난 아이에게 어머니 한 분 있으면 뭐 다  해결되는 것처럼 이 질팡갈팡 피조물들이 멸망인지 구원인지 모르고 이렇게 마구  마귀의 유혹에 들어 가지고서 멸망으로 이미 들 어갔고 떨어져 내려가고 있는 그  피조물들을 예수님 한 분이 들어서 이 조물주 앞에서 그가 참 행복스럽고 영원한  평강과 생명을 누릴 수 있도록 그 모든 관계를 맺고 그 일을 좋아합니다.

 어떤 무슨 회사도 가 보면 그 한 사람이 그 회사를 잘 운영하면 회사 직원들이  다 행복스럽게 다 평안하게 살 수 있지마는 그만 그 사람 하나 없어버리면 그  회사가 무너져 버려.

 나라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 정권자 하나가 참 잘해서 정권자 하나를 잘 만나면  그 정권자가 있는 동안에는 그만 백성이 다 평안하게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잘못돼 놓으면 온 백성이 그만 절단나 버려.

 그것 하나 잘되면 하나님께서 풍년도 주시고 평강도 주시고 뭐 오늘 내일 전쟁  일어났어도 전쟁도 다 그까짓 거 다 중단시켜 버리시고, 사무엘이 그 위치를  가지고 했을 때에 사무엘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전쟁이, 그렇츰 전쟁 많은 그  민족이 전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이것 모양으로 보이지 않는 자존하신 이 하나님이 많은 영계와 물질계의  피조물을 지어 놓으시고 이것들을 지금 이 한 분으로 말미암아 먹여 살려야 되고  이 한 분에 모든 것이 이것들을 다 관리해서 길러서 보호해서 치료해서 이래야  되는데 이분이 영이시기 때문에, 영이시기 때문에 물질로 되어 있는 이것들에게  하려 해도 너무 통하지 안하고 거리가 멀어서 암만 해 봤자 마귀란 놈이 와  가지고 '내가 해 줬다' 하면 '그게 해 줬는가?' 그러니까 지금 절에 뭐 야단이  납니다. 하나님이 해 주기는 해 줬는데 마귀가 와 가지고 '내가 해 줬다' 하면  '그런가?' 싶어 거기 머리 숙이지, 또 '앞으로 이란다' 하면 '이래'  돼지지,이러니까 하나님께서 부득이 이 피조물들에게 직접 관계를 가지고  하나님의 모든 것을 인생들에게 유혹 없이 시달해서 평강을 누리게 하려는 그  일을 하려고 도성인신하셔 가지고 오셨던 것입니다.

 그분의 하시는 그 위치, 그분이 하시는 그 위치, 그분이 하시는 그 직무,  그분이 하시던 그 사업, 책임, 그것을 우리로 하여금 대를 잇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뭐 하려고 예수님을 믿으며 또 주님이 십자가의 대속으로 이렇게  구속하셨느냐 하면 껍데기는 보면 뭐 밥 잘 먹고 옷 잘 입고 뭐 이래 가지고서  사는 그런 것을 말해 놨지마는 그것은 땅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것도 줘야 되지  그것 아니면 안 되기 때문에 그런 것을 말해서 유지를 시키면서 외나 목적은  뭐냐? 예수님의 계대자가 되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면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신인양성일위를 가지신 예수님에게 모든 것을 다  기울이시고 예수님은 당신의 피로 구속한 수많은 성도들을 그 지체를 삼아  가지고서 모든 피조물과 그 사이에 중보를 삼아서 중보직을 하도록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에베소 1장에 말씀하시기를 주님은 교회 머리요 우리는 그의 몸인데  교회는 어떤 것인고 하니 만물에게 하나님이 충만케 하시는 그 충만을  피조물들에게 충만케 해 주시는 그것이 교회 직책이라 하는 것을 에베소 1장  끌에 보면 말씀해 놨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예수 믿어서 물론 부자되는 것 건강한 것 평안한 것 다  좋습니다. 그것은 세상이 그것만 가치로 알고 있지 딴것은 가치로 모르기 때문에  그것만 가치로 아는 사람에게 또 그게 잘돼야 그 사람들이 보고 '예수 믿으면  효력이 있는갑다' 해서 나오지 그만 참 알맹이 외나 거룩한 제사장이 되는 이런  것만 된다면 그 사람들하고 너무 그만 초절이 돼 가지고서 아무 조화가 안 맞을  거라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그런 것을 많이 말씀해 놨지마는 실은 예수님의 계대자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잘났든지 못났든지 다 부름을 입은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것 다 그 될 수가 있겠느냐 생각하겠는데,  우주는 영계에 비해서 그거는 뭐 그렇게 아주 평가할 만한 그런 게 못 되는데도  이 우주도 상당히 넓기는 넓은 모양이오. 항성만 해도 십억만 항성이라 하는데  광선의 속도로 가도 몇억억만 년을 가도 못 가는 그런 거리 먼 거리에 있다  하니까 아주 넓은 모양입니다. 그것 또 인간이 아는 데서 그말 하는 것이지  인간이 모르는 그 범위 너머는 얼마나 넓은지 또 그것 모릅니다. 이 영계는 또  끝이 없어. 한없이 크고 넓어, 영계는.

 이러니까 우리가 인제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이 대속을 힘입어 가지고서 우리가  거룩한 제사장이 되고, 또 거룩한 선지자가 되고 왕이 되고, 이래서 예수님과  같은 자가 되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뭐라 했습니까?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지금 연습하는 것은 마치 주먹으로 때려서 그것 세계 제일  될라 하는 그 사람도 밤낮 그것 연습해야 그것 참 참피언이 되든지 말든지 하지  그리 안 하면 안 되는 것인데 우리 연습할 것은 '어짜면 부자될까? 어짜면 지금  뭣 될까?' 하는 그런 거는 우리 연습 아니오. 우리 연습은 예수님의 계대자가  되는 그런 자격을 마련하는 것이 우리 할 연습입니다.

 이러니까 그런 사람도 그런데 우리는 밤으로도 이 연습, 낮으로도 이 연습,  전쟁에 가도 이 연습, 후방에도 이 연습, 장터 가도 이 연습, 이것이 우리의  전공이 돼야 됩니다. 전공.

 우리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함이라' 이랬는데 이 복은 예수님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인데 예수님의 그 직책, 예수님의 지위, 예수님의 권위 그것을  우리도 유업으로 받아 가지고 '내가 이겨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같이  너희들이이기면 내 보좌에 함께 앉으리라' 그 보좌라 하는 것은 통치권이 있는  그런 위치를 가리켜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수님 위에는 하나님 아버지 한 분, 그다음에는 모든 피조물. 또  거기에 속한 우리들은 우리 위에는 주님과 하나님 아버지, 우리 밑에는 모든  피조물, 이 위치를 감당할 수 있는 복의 기관, 만물의 중보자, 제사장, 이  자격을 달성시키는 것이 우리의 목표요 성공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이런 것 저런 것 다 못했어도 어짜든지 참 인제 이 다음에 한번  시합이 있겠는데 참피언을 하겠는데 시합이 있겠는데 이다음에 하나님의  그리스도 심판대 앞에 떡 설 때에 그때에 '너는 그만 했으면 이 지구 땅덩어리가  같은 것 백 개는 네가 맡아 가지고서 중보자가 되겠다. 지구 땅덩어리가 같은  이런 것 만 개는 맡아 가지고 하겠다. 우주는 맡아 가지고 하겠다. 또 영계에  어떻게 하겠다.' 하는 인제 그때에 그것이,  누가복음 19장에 그의 장사를 해서 늘군 데 따라서 한 므나를 남긴 데에는 한  고을씩 차지하게 해 주고 또 열 므나 남긴 데에는 열 고을을 차지하게 준다  그렇게 말씀했는데 그 므나 그거는 하루 품삯이랍니다. 하루 품삯. 하루  품삯인데 하루 품삯에 한 고을씩이면 므나 값이 폭등입니까 폭등 아닙니까?  김해군을 하루 품들어 가지고 김해군을 그걸 뭐 다 산다면 그것 아주 큰 돈벌이  아니고 폭등 아니요?  이 세상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믿음 지켜 이 소망을 가지고, 예수님의 계대자의  이 소망을 가지고 한 행동 한 행동이 뭐 김해 고을 차지하는 그까짓 거는 유도  아니오. 한국 덩어리 같은 이런 거는 몇 억억만 개를 차지할런지도 모릅니다. 이  과장이 아니고 거짓말이 아니오. 성경에 그래 놓지 안했습니까?  이러니까 이것이 우리의 목적이기 때문에, 세상 참피언도 보면, 내가 오늘  새벽에도 떡 일어나 보니까 거기서 짤막한 바지 입고 막 이래 가지고 여기서  저기서 뛰어오고 여기서 뛰어가고 이래 하는 그거는 지금 아마 팔월 올림픽에  지금 '내가 어찌 됐든간에 한번 달리기를 해 가지고 한번 선수를 해 보겠다'  하는 그런 것도 하려고 하면 밤낮 가리지 안하고 전심 전력을 기울여서 연습을  해야 될까 말까 한데 우리가 이거, 이것 참 합격을 얻으려고, 하는 이거는  얼마나 큰 일인지 모릅니다.

 이러니까 이 일은 예수 믿는 사람은 성공을 했든지 말았든지 한 사람도 이  직책을 못 맡은 사람 없어. 없는데, 어떤 사람은 보니까 조그만한, 이거는 뭐 한  사람도 맡겨 놓으면 그 사람에게 제사장 노릇 할 자격이 없고 복의 기관이 될  자격이 없으니까 그것도 못 맡기겠고 뭐 그러면 거기 가 가지고 뭘 맡길꼬? 한  사람도 맡지 못하면 거기도 혹 짐승이나 있으면 도야지 새끼나 몇 마리  맡길란가? 뭣 맡기겠소?  그때 것을 지금 사람들이 말해도 양심을 안 쓰기 때문에 생각지 않습니다. 지금  수치가 무슨 수치며 지금 영광이 무슨 영광이며, 지금 뭐 권위가 뭐이 권위며 또  천대가 무슨 천대입니까? 우리의 영주처는 거기니까 그 나라에서 인제 거기는  한번 거석하면 그 나라의 권세는 영영하다 했는데,  영원이 되는 그 나라에 가 가지고 어찌 되느냐 하는 그걸 생각하고 사도 바울  같은 이는 예수 믿은 지 그때보다 세상 뜰 때 그때는 더 짐이 무거워서 자기  마음이 눌린 것을 표현하기를 내 마음이 무거운 짐진 것 같다 하루 살면 산  것만치 더 무겁고 더 무겁고 이전보다. 몸과 생명을 다 바쳐서 살면서도 항상  무겁답니다.

 왜? 뭣 때문에 무거운데? '그 날에 벗은 자로 드러날까 함이라' 발가벗은 자로  드러날까 함이라. 입을 수 있는 오늘에 지위와 권세와 영광과 존귀를 입지  못하고 그 날에 벗은 자로 드러날까 함이라.

 그 나라의 것은 전부 영광 존귀인데 아무 데 가도 나는 갔는데 다른 사람은  아무 반가와하는 사람 하나도 없어. 뭐 말해야 듣기도 싫어해. '나 모릅니다. 나  좀 바쁩니다.' 또 '잘 만났다. 네가 아무 때 나한테 이렇게 손해를 보인 자지?'  해 가지고서 손해 배상이나 청구하는 원수들은 가득 찼지마는 환영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인제 이 세상에서 세상뿐인 줄 알고 내라 하고서 마음대로 산 사람들이 그때  만인간 만물 재판이 날 그때에 이제 쥐구멍을 얻지 못해서 지금 야단일  것입니다. 그날을 우리가 생각해 봐야 돼요.

 팔월 십오일 해방이 됐는데 십칠일날 저 있는 면에서, 해방이 됐으니까 모두  축하한다고 거기 모였는데 제가 가서 가니까 그 변에서 '아무래도 이 축하에  대한 강연은 집사님이 해야 된다고 좀 하라'고 이래서 그래 내가 그때 올라가  가지고 제일 첫 설교한 것이 그래 했어요.

 보니까 쑥덕쑥덕거리는데 '저놈이 면 직원으로 있을 때 저놈이 경찰 직원으로  있을 때에 나한테 어떻게 모질게 하고 이렇다. 전부 친일파 로서 이래 가지고  우리에게 모질게 했다.' 이래 가지고 몽둥이 짱글라 가지고 그놈 찾는다고  하면서 뭐 이러는데 이것 큰 살인이 그 면내에서 얼마나 날지 몰라요.

 그래서 그때 거기에 대해서 해방 축하하는 기념 강연을 할 때 그걸 내가 먼저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했다가 해방 주시니까 감사하고 서로 민족끼리  화친해야 되지 그때 그 복수하려고 하면 하나님이 이거 도로 뒤엎어 놓으면 어쩔  것이고? 오늘에 그걸 다 용서하고 이제 새 날을 만났으니까 잘 살자 하는 그  사람이라야 우리 나라에 필요한 사람이지 그런 복수할라 하는 그런 사람은 우리  나라에는 필요 없다.' 몇 마디 이래 했더니마는 뭐 몽둥이 짱글랐던 몽둥이가  없어지고 이랬는데,  몽둥이로 쫓지는 안했는데   뭣이라 하는 사람 그 사람 신체가 한 여섯 자는  됩니다. 건강하고. 이랬는데 다른 사람은 그래 놓으니까 따라다니지도 안하고  찾아 안 다니는데 제바람에 놀라 가지고서 얼마나 놀랐든지 '그 뒤에 석 달  지나고 나 병이 나 그만 죽어버렸어, 그만. 놀래서 말이지, 경기병이 들어서.

 이다음에 우리가 척 그 나라가 바뀌고, 모든 권세가 바뀌고, 이전 하늘과 땅은  없어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나서 모든 제도와 모든 조직과 모든 권세와  모든 이치가 핵 바꾸어질 때 그때는 하루 하나님의 뜻대로 경건하게 산 한  므나의 댓가가 한 고을을 살 수 있다 그렇게 비유에 해 놨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사는 목적을 우리 구원을 잘 이루기 위해서, 그뭐 어 리니까  '그저 구원 잘 이루어야지 구원 잘 못 이루면 안 된다. 구원 잘 이루어라.

어짜든지 구원 잘 이루어야지. 구원 잘 이루는 게 뭐꼬? 행위가 온전해지고  사람이 온전해지고 하는 그런 것이 다 구원이니까 해라.' 그말 하는 것이 실은  '네가 거룩한 제사장이 돼라.'  거룩한 제사장이 돼라는 말 하면 못 알아듣고 거석할 터이니까 그건 꼭 복도  '내 모가치다.' 저 혼자 복을 받아야 좋아하지, 세 사람 복 받는 것보다 두 사람  복 받는 게 낫고 두 사람 복 받는 것보다 저 혼자 복받는 게 나아. 세 사람  받아도 눈이 불근불근거리고 말이지.

 이런 악이라는 자기 중심이라는 그 악독이 가득찬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런  교훈을 하는 것이지 실은 우리의 목적은 뭐냐?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감이라'  말했습니다. '너희들도 산 돌같이 되어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져 가느니라' 그  말씀이 어데 있습니까?  베드로전서 2장 '너희도 산 돌같이' 산 돌은 예수님을 말합니다.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를,  제사는 모든 이 만물들에게 대해서 만물이 올바른 정신, 올바른 마음, 올바른  소원, 올바른 욕심, 올바른 본질 본성, 올바른 만물관 가지고서 이렇게 하나님을  향하여서 참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의 올바른 그 사람이 되어 이 사람으로  인해서 그런 사람이 되어 하나님에게 이것이 상달되는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제사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의  목적이라.

 우리가 돈을 목적하는 것 같으면 뭐 이것 저것 다 냅두고, 돈을 목적한다면  돈에 유리하도록 돈 손해보지 안하도록 거기에다가 중점을 두고서 전부 그리 다  기울여 붙이지마는 우리는 돈 목적이 아니라 말이오. 돈이야 뭐 좀 유익이 못  돼도 손해가 가도 그 목적은 딴데 있고 그것은 부수적으로 우리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하나의 참 보조의 것들이지, 도움이 되는 것들이지 그게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권세도 그렇고 모든 것이 다 그래요.

 그러기 때문에 여기 말씀하시기를 8절에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 하여 체휼하며' '마음을 같이 하여 체휼하며' 마음을 네가 열 사람  같이 있으면 열 사람의 마음이 다 같은 마음이 되도록 해라. 또 백 사람을 네가  접하면 백 사람 마음이 다 같도록 하라. 그러면 뭐 누구 마음을 따라가겠습니까?  그래 놓으면 서로 제 마음 따라오라고 뭐 시비가 나고 야단일 터인데.

 이제 이거는 뭐냐 하면'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 하여' 그말은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 예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의 마음으로 한 사람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변화를 시켰고, 열 사람을  예수님의 마음을 변화를 시켰고, 백 사람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변화시킨 사람  있고,  이거는 뭐 한 사람도 예수님의 마음으로는 변화시키지는 안하고 전부 제 욕심을  가지고서 제 마음을 따라서 해 놨으면 그게 소선은 대선의 적이라. 그거는  하나님의 큰 원수라 말이오. 점령 많이 했으면 많이 할수록 원수라.

 그러니까 뭐 포프라든지 소련에 있는 그 사람, 그런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을  점령했지마는 하나님의 마음에 일치되지 안하고 엉뚱한 저거 마음에  일치됐으니까 그거야 하나님의 적이라 그거요,  '마음을 같이 하여' 하나님의 마음 그 한 마음, 하나님 한 분의 그 마음화해라.

네가 세상에서 힘쓰기를 네가 접촉하는 모든 사람을 자존하신 한 분이신  완전하신 그분의 마음화되도록 네가 이 일을 힘쓰라. 인제 목적을 자꾸  말합니다. 힘쓰라.

 '하여 체휼하며' 그다음에는 너나가 있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네가 너를  사랑하듯이 모든 사람은 네요 너는 모든 사람이라. 그러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네 몸같이 이렇게, 체휼이라 말은 자기 살같이 긍휼히 여기는 것을 가리켜  체휼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러기에 네 몸같이 사랑하고 여기는 그것을 자꾸  연습을 해라.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사랑하는 이 연습을 자꾸 해라. 또 '불쌍히  여기며' 자꾸 불쌍히 여기는 연습을 해라. 이것 뭐 하려고? 이것 다른 데는  말이지 이것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데도 소용이 없어. 장사하는 데도  소용없고, 돈벌이 하는 데도 소용없고, 전쟁하는 데도 소용없고 권세 잡는 데도  소용없고, 아무 소용없어.

 이 민주주의가 공산주에게 이제까지 회담을 해도 장 앗기기만 앗기는 그거는  뭐냐 하면은 그 사람들은 속으로 딱 가지고 '우리 이제는 부전 조약을 만듭시다.

또 군비 축소를 만듭시다. 약속합시다.' '예 그럽시다.' 그러면 저쪽에는 안  만들어요. 안 만드는데 저거는 솔빡 다 만들었다 그거요. 다 만들어 놓고 .'왜  너거 위약하노?' '잘못했습니다. 앞으로 안 그러겠습니다.' 그것 한 마디면  다요.

 만일 민주 정치에서 그것 하나를 위약해 놓으면 '뭣 때문에 이거 위약했노?'  그만 신물이 나도록 십 년이고 이십 년이고 그것 가지고 씹을 거요.

 세상에서,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본질상 지금 우리 목표는 다른  사람들입니다. 민주주의라는 것도 기독교 종교가 거기 들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적으로는 보면 약해요, 속으로는 강해도.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불쌍히 여기는 자꾸 연습을 자꾸  해라. 불쌍히 여기는 연습을 해라. 형제를 사랑하는 연습을 해라. 형제를  체휼하는 연습을 해라. 모든 사람의 마음이 한 분의 그분의 마음을 다 따라서  그분 마음과 같은 마음이 되도록 하는 이 일에 대해서 자꾸 연습해서 숙달을  해라. 또 '겸손하며' 겸손을 연습을 해라.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자기 중심으로 하는 것, '네가 네 중심으로 하니까  나도 내 중심으로 하련다. 뭐 내가 너한데 지금 하는 게 못 이겨서 그러나? 나도  얼마든지 내 중심으로 할 수 있지마는 그래도 나는 그럴 수 없어서 이렇게  양보도 하고 서로 이해도 하고 이러는데 너는 끝까지 네 중심으로 하는구나.'  그러면 안 된다.

 한정 있는 그런 일 하지 말고 제야 모르니까 죽는 날까지 악의 중심으로 한다  할지라도 나는 목적이 그게 아니니까, 너는 악의 중심으로 자꾸 하고 나는 악의  중심 그것을 변화를 시켜서 이제 하나님 중심의 사람이 되도록 이렇게 하는 것이  내 직업이기 때문에 그걸 자꾸 연습을 해라.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목적이 욕 안 얻어먹기  위해서가 아니고 욕하는 그 사람을 욕 안 하고 하나님께 복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그 일을 연습하기 때문에, 칭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복을  전달해 주는 그 일을 연습을 평생 했습니다. 저 장로님? 자기를 칭찬하고 자기를  막 떠받치고 하는 그 사람에게 복을 전해 주는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그 사람은  그까짓 거 어리광해서 자란 것이오. 만일 그러다가 어떤 사람이 있다가 칭찬  대신 자기에게 욕 한번 해 버리면 그만 복 줄 수 없다 하며 그만 중단해 버릴  거라 말이오.

 이러니까 욕을 해도 그에게 복을 주도록 또 연습을 하고 또 욕 하는 자를 또,  욕하는 그걸 또 어짜든지 하나님 앞에 복받는 데 지장 없도록 또 욕하는 사람을  고쳐서 하루 백 번 욕하던 사람을 구십아홉 번으로 또 구십여덟 번으로 이러니까  어짜든지 나는 지금 그게 내 성공이요 내 연습이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그 사람을 자꾸 그 사람은  욕하는데 나는 욕하는 그 사람에게 대해서 하나님 앞에 '이 사람이 욕하는 이것  몰라 욕하는 것이니까 저주하지 마시고 용서하시고 어짜든지 감동시켜서  회개시켜서 이 사람도 변하여 새사람되게 할 수 있는 것이 당신에게 있습니다.

당신이 피 흘린 게 이게 아닙니까?' 자꾸 이러면서 그 연습을 한다 말이오.

 하고 또, 그래 해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것 때문에  네가 부르심을 입었다. 그러니까 우리를 어데 쓰실려고 하나님이 구속하셔  가지고 불렀느냐 하면 여기에 쓸려고 우리를 구속해서 부르셨습니다. 우리를  여기에 쓸려고.

 이러니까 우리 소용처가 어데며, 앞으로 우리의 출세할 곳이 어데며 우리의  실력이 어데인가? 우리의 실력은 뭐 멍군장군으로 '네가 욕 한 마디 하면 나는  욕 두 마디 한다. 네가 한 닢푼지 욕하면 나는 열 냥어치 지금 욕을 해 불인다.'  이것 우리가 연습해서 하는 게 아니고 우리는 부르심을 받은 것이 이것 연습해서  이것 익숙하기 위해서 부 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이 연습을 자꾸 해라 하는  말입니다.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예수님의 그  지위를 예수님의 직책을, 예수님의 지위를 예수님의 직책을 우리가 받아  가지고서 일차적으로 예수님이 성공하신 그분을 힘입어서 그분이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 흠없는 중보자 거룩한 제사장이 된 것처럼 -나도 예수님을  힘입어서 아버지와 예수님과 모든 이 원수 모든 인간 만물 그 사이에 중보자가  되면 내가 이기고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은 것처럼 너도 이기면 네 보좌에  함께 앉게 해 주겠다 예수님이 이긴 게 뭐 이겼습니까? 예수님께서 뭐 내의  한벌도 못 입으시고 다 홀딱 벗겨버렸는데 뭐 이긴 게 뭐 있소?  그러나 예수님 당신이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복의 기관, 중보자, 피조물의  잘못한 걸 하나님에게 살살 얘기해 가지고 하나님 마음을 풀어서 '진노하지  마십시오. 이 긍휼히 여기십시오.'  모세가 하나님이 '모세야, 너거 민족을 내가 전부 전멸하겠다.' 이러니까  모세가 하나님 앞에 달라붙여 가지고 '아이고, 그래 마십시오. 그럴려면 그저  나부터, 내가 잘못해 그러니까 나부터 없애 주십시오.' 이래 가지고 하나님  마음을 살짝 돌이켰다 그말이오. 그게 인제 제사장 하는 일인데.

 이렇게 예수님의 이 직책을 유업으로 받아 가지고서 이제 그 지위 그 직책을  대신 받는, 그러니까 예수님의 보좌에 우리가 앉아 가지고서 모든 걸  다스리지요.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것 때문에, 너거가 뭣 때문에 마음을 모든  사람 마음이 하나님의 한 마음에 다 닮아가도록 또 모든 사람을 네 몸같이  불쌍히 여기고, 또 형제를 사랑하고, 또 불쌍히 여기고, 겸손하고,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그뭐 일 대 일로 이래 살 일이지 저 그럴싸나 나 그럴싸나 뭐 다를 개 뭐  있나? 뭐 하필 나 혼자 이래 살 게 뭐 있는가?' 이래도 너는 예수 믿게 된 것이  다른 게 아니라 이 일을 하기 위해서 네가 예수 믿는다. 이 일 뭐?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 중보자 되는 이 일 하기 위해서 네가 믿는다. 정말로 업은 큰  업이고 지위는 큰 지위입니다.

 뭐 '내가 세계 큰 대통령' 하는 그거는 모르는 사람들이 그렇지 사실 할 수도  없지마는 뭐 또 아무리 줘 봤자 실은 그런 것은 눈에 차지 안합니다. 우리  성경을 아는 사람은 우리 지위와 권세 지금 우리 욕 망하는 게 얼마나 큰데 그것  뭐 이 지구땅덩어리 그것 하나 차지해 가지고서 마음이 차겠습니까? 안 찹니다.

 '이를 위해서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곧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의 그 지위, 권세, 직책, 직분 그것을 받기 위함이라. '내가  이렇게 이기고 아버지의 보좌에 앉아서 아버지의 하시는 일 전부 내가 다 하게  된 것처럼 너희들이 이기면 내 보좌에 앉아 가지고 나 하는 일 너거 다 하게  됐다.' 이것이 우리의 목적이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이 주먹으로 가지고 때려서 내가 이기는 그것이 목적이 아니고  주먹으로 때리는 사람을 그 사람을 이제 주먹에 맞고도 견딜 수 있고 원수를  복을 빌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이 우리 직책이라 그말이오.

 '하려 함이라' 10절에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이 생명 사랑하는 것은 육신의 목숨을 안 죽도록 잘 보존하고 그말 아닙니다.

'생명을 사랑하고' '생명을 사랑하고' 참 자존자 절대자 주재자 주권자 그분과  나와의 관계가 맺어진 그것을 참 가치를 알고 그걸 사랑하는 자는,  '생명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가 맺어진 그 관계의 지극히 크심을  네가 가치를 알고 그걸 참말로 귀중히 여기면 그말입니다.

 세상에서도, 어떤 사람 나이가 오래 되고 난 다음에도 여기에 뭘 이래 둘둘  감고 돌아다니는데 '왜 그래 감고 다닙니까?' 이러니까 왕이 자기 손을 한번  그걸 만져 줬다고서 그래 평생 내놓고 다닐 수 없다고 이래 둘둘 감고 다니고.

또 어떤 할머니 한 분은 또 감고 다녀. '자기는 왜 감고 다닙니까?' '내가 꿈에  거석하니까 주님이 와서 내 딸아 하면서 내 오른손을 덜퍽 쥐었기 때문에 그래  내가 이거 지금 아무데라도 그럴 수 없어 지금 붕대를 둘들 감아 가지고 이래  가지고 아무에게도 만지지 안하려고 이래 다닙니다.' 그러는데, 과연 자기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그분과 자기와의 맺어진 관계가 얼마나 귀합니까? 그러기에 그  관계 그것 때문에 충신이라 하는 것은 다 그로써 생명을 바친 사람들 아닙니까?  이런데 '생명을 사랑하고' 네가 자존자 조물주 하나님과 너와의 관계된 관계  결합이라 하는 그것을 정말로 네가 가치를 알고 내가 귀중히 여기면 말입니다.

귀중히 여기면.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 그게 생명인데 그것을 돈보다도 지위보다도 권세보다도  세상에 무엇보다도 그것을 제일 귀중히 여겨서 다른 게 암만 손해가도 그것 손해  안 가면 되고, 그것 손해보고 딴것 취할 그런 마음 없고, 다른 것 다 절단나도  그 관계 안 끊어질라 하는 그 사람이 참 피조물로서는 대인입니다. 우리는 좀  포부를 그게 가져야 돼요. 조부랍게 만날 수성 같은 짐승 같은 그런 이성 없는  그런 욕심에서 살지 말고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이제 좋은 날은 뭐 내일이 좋다  모레 좋다 그게 아니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이다음에 하나님의 심판이  떡 이르면 하나님의 심판에 세상에서 높아서 막 내가 왕이라고 다투던 사람들이  다 거기에서 정죄받아서 유황불 구렁텅이로, 또 예수 믿으면서 내가 제일이라고  또 이래 쌓던 사람들도 심판받아 가지고 저 한쪽 구석에 가서 처박혀서 아무 할  일이 없어.

 세상에는 제일 똑똑한데 거기 가 보니까 할 일이 있어야지? 이리도 가서  구경하러 가니까 '미안하지만 조금 비켜 주십시오.' '왜 그래요?' '그러면 뭐  여기에는 지금 뭣 하는 사람이 여기 있는데 지금 하실 수 있습니까? 그것 좀  가서 이 일 좀 하십시오.' 생전 안 해 봤으니까 할 수가 있소? 생전 생명에 속한  일은 해 보지 안했으니까 할 수가 없어. '그것 나는 안 해 봤는데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할 터이니까 비껴 주십시오.'  여기에서 쫓겨나고 저기서 쫓겨나고 나중에 저 쫓겨나 가지고서 그저 밥이나,  거기서 밥이나 먹고 할 일 없어 만날 팔짱 끼고 여기 가서 놀고 저기 가서 놀고,  세상에서 이제 교만하고 세상 보고 살던 사람은 천국 가면 만날 놀기만 합니다.

그게 영광이 없어  보니까 목사님들도 정년퇴직이라고 뭐 떡 정년퇴직하고 나니까 그만 사형선고  받은 것 같애요. 그 젊어서 창창하던 사람이 정년퇴직 턱 하고 나니까 몇 달 안  됐는데 뒤에 가 보니까 그만 늙은 영감이 돼 가지고 그만 팍 짜부라져서 곧  죽겠어. 사람이라 하는 것은 일하는 재미가 있는 것이고 활동하는 재미가 있는  것입니다. 없는 것 아니오.

 이러기 때문에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그때 이런 심판이 턱 거쳐서  이제는 다시는 죄악이 없고 하늘과 땅에 있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다 통일이  돼 가지고서 우주와 영계가 다 통일이 돼 가지고,  요새 과학이 떠들어 봤자 이 태양 항성에 속한 것도 여기에서 거기에 뭐  건너가는 것도 막 야단을 지기고 요새 뭐 아이들도 우주인이니 뭐이니 떠들어  쌓는데 말이 우주인이지 우주가 얼마나 뭐 큰지 알기나 압니까? 우주인은 우리가  우주인이오. 우주인 그때 우리가 떡 거석해 가지고서 일 초 동안에 우주 이걸 뭐  몇천 바퀴를 돌려면 돌 것이고 영계도 가려면 갈 수가 있을 것이고 그날이 좋은  날이라, 그날이 좋은 날.

 심판 너머 이제 모든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시되 하나님으로 인해서 된 것,  하나님 그분 한 분으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 전부 완전성 영원성 불변성의 것들  그런 것만 이제 있어 가지고서 되는 하늘의 것과 땅위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된 그 나라 그날이 좋은 날인데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그날을 소망하고 사는 자는 주의할 게 있다 말이오.

 '혀를 금하여' 이 혀라는 것이 굉장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손으로 암만 일해  봤자 그 못 해요. 원자탄이 일하는 줄 압니까? 지금도 뭐 원자 핵무기니 뭐이니  이래 쌓지마는 핵무기 그게 어느 사람의 혀끝에 달렸는지 모릅니다. 어느 사람의  혀끝에 달렸는지 몰라요.

 옛날도 전쟁은 전부 혀로 전쟁하는 혀가 이겼지 무기가 이기지 안 했습니다.

지금도 여기 세계에서 암만 신무기를 많이 갖다 놔도 어떤 그 한 혀에게 점령을  당해 가지고 그 말 하는 대로 다 돼 버리요. 그가 속싹속싹하면 다 돼지는  거니까.

 그러니까 이 혀라 하는 것은 세계를 태우는 불이라 했습니다. 세계 보다 악한  것이라 했어. 이러니까 혀라는 것은 악용하면 굉장하고 선용하면 굉장합니다.

 이런데 우리가 이다음에 그 지위를 가서 얻어 가지고 이 혀로 일할 터인데,  척로 일할 터인데 이 세상에서 혀를 아무나따나 놀려 가지고서 혀 놀리고 싶은  대로 놀리고 또 하기 싫다고 말고.

 이 혀를 길들여 가지고서 혀를 연단해서 하나님 보실 때에 '너는 어떤 환경  어떤 역경 무엇이 와도 혀로 네가 실수할 거는 없다'. 혀로 가지고 네가 복의  기관이 저주의 기관이 되거나, 화의 기관이 되거나, 모든 것을 멸망시킬 그런  거는 안 할 것이고 네가 많이 못 했으면 못했지 혀에 실수가 없다.' 이래야 이제  그 직책을 그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것이라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그 소망을 가진 사람들은 혀를 금하여 이 입술을 지금 입술을  연습해야 됩니다. 자꾸 하던 사람은 이 입술을 갑자기 고칠라 해도 안 돼요.

그러니까 자꾸 연습해서 우리 혀도 그저 용서하는 혀, 또 참는 혀, 또 옳은 것을  타이르는 혀, 또 권유하는 혀, 바로 말해 주는 혀, 또 살리는 혀, 사람에게  깨닫게 하는 혀, 옳은 것에 용기를 나게 하는 혀, 이 혀를 자꾸 그런 것을  연습하면 자꾸 그 연습이 돼져요.

 이러니까 사람들 여기 내가 중간반 반사들을 봅니다. 이 중간반 반사 그것 뭐  반사되기 전에야 순 그것들이 깡패고 뭐 야만이고 뭐 볼 게 하나도 없습니다. 뭐  무슨 가치가 있어요? 아무 가치가 없어, 이랬는데 이걸 끌어다가 떡 중간반  반사를 만들어 놓으니까 반사라 하는 게 가 가지고서 그래도 그 만나 가지고  깡패 노릇 못 하겠고 이러니까 가 가지고 '야, 아무래도 주일 지켜야 되고 성경  부지런히 봐라. 기도 어찌 해라.' 속에 하나도 없는 게 말이요, 하나도 없지마는  그 말을 자꾸 하고 다니니까 그 사람 돼진다 그말이오.

 그래도 저 지난번에 거창집회 때 가 보니까 이게 하던 놀음이 돼 놔서 그만  깡패 행동이 나와 가지고서 몽둥이로 가지고 아이들을 뚜드려서 아이들이 삐꿔서  다시는 안 갈라 하고 뭐 어짜고 하는데 그래도 반사직을 하니까 그 위치에서  자꾸 그걸 그걸 연습을 하니까 지금은 제법 아마 어북 한 사오십 되는 그런  수양이 있는 사람들도 그 반사들 못 당할 것입니다.

 이 주일학교 반사들도 만날 생각에 공부 외에는 가 가지고 학생들에게 가서  자주 가고 심방 가니까 자꾸 시간만 있으면 심방 가 가지고는 성경 말씀만 하지  좋은 말만 하지, 사람 살리는 말만 하지, 구원하는 말만 하지, 망하는 말 그런  말 할 수가 없다 말이오. 그러니까 다른 사람에게는 마귀 놀음을 해도 제가 맡은  학생들에게는 아주 천사같이 말합니다. 이러니까 이게 참 좋다 그거요.

 이러니까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악한 말이라 하는 것은 자기 중심의,  자기 중심의 말, 제 자랑 말, 자기 중심의 말 그런 말을 자꾸 그치게, 하나님이  권세를 주셔 '자, 네가 어느 지역을 살리라.' 이래 맡겨 놨는데 그래 가지고서  한 마디 그만 자기 중심의 그게 딱 돼 버리면 거기 속한 사람 그만, 천사장 하나  타락하니까 싹 무너져 간 것같이 다 무너져 가 버릴 거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악한 이 말, 자기 중심의 말을 안 하도록 이걸 자꾸 연습을 해요.

이러니까 어떤 사람들은 그래 말합니다. 웅변은 뭐이요? 은이요 뭐 무언은  정금이라 하던가 이래 말하는데 나는 그것 반대요. 무언이 정금이라면 옳은  진언은 생명이다.

 자꾸 말 많이 해요. 말을 많이 하되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만 하고, 사람 살리는  말만 하고, 죽이는 말 하지 말고 하루 종일, 하루 종일 말해도 사람 살리는 말만  했지 죽이는 말 안 했으면 굉장히 연습된 것입니다.

 한부선 목사님에게 내가 언제 한번 들었는데 거기에 할머니가 한 분 있는데  이분은 하루 종일 입을 닫고 안 있대요. 우물에 가서도 또 말하고 여기에 가서도  말하고 장 말하는데 그 말해도 말에 못쓸 말은 한 마디도 없어요. 전부 말하는  게 사람 구원 하는 말, 사람에게 믿음을 주는 말, 이런데 그 하루 종일 자꾸  말을 하면서 사람을 살리고, 믿음을 살리고, 사람을 고치고, 행위를 고치고 하는  그런 말을 자꾸 하는 그것이 우리가 진리에 속한 말을 하면 내 말이 효력이 있는  게 아니라 내 말만 해 놓으면 나를 통해서 말한 하나님이 그 배후에 책임을 지고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저 강퍅한 사람에게 이 말 해 봤자 그래 듣겠나? 듣든지 말든지  주님이 시치는 대로 말했으니까 말하면 설마 뒤에 인계는 하나님이 맡지' 하고서  '그거 하면 틀립니다. 안 됩니다. 이래 해야 됩니다.' 이러면 그게 된다 그거요.

 여기 뭐꼬   뭣이고?   뭣입니까, 그 사람이?  가라고 주일학교 반사? 자기  회사에서 있을 때에 모든 사람이 다 싫어해. 하면서 자기 일은 어짜든지 직원들  안 하면 안 하는 것까지 제가 혼자 다 이래 하면서 직원들 이것 또 잘못된 것은  '이것 잘못됐습니다. 이것 고칩시다.' 심지어 사장한테도 가 가지고서 '이거는  이라면 일이 안 됩니다. 이거 바로 이래 합시다.' 그러니까 온 직원들이 다 그것  그만 밉봐서 그걸 떨어 내려고 이래 가지고 그래 나중에 거기 그만 나오고  이랬는데 지금은 내가 말 들으니까 어북 부자가 됐대요.

 자꾸 우리는 혀를 연습해서 첫째는 혀를 금하여 한다고 말 안 하는 좋은 게  아니라.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남을 꾀우는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좋으라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 이러니까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사람은 혀를  연습해야 되고, 또 행동 연습해야 되고, 또 중심 연습 해야 돼요.

 이다음에 하늘나라 가 가지고 요 중보자 위치에서 요걸 잘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 감당할 수 있으며,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신임하고 맡기며,  또 맡기실 때에 자기 맡은 바 일을 낭패 안 지우고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군가? 첫째는 중심이 바로 돼야 돼.

 중심이 그것을 고치려고 중심을 고치려고 하면 중심 고치면 행동 그거는 저절로  그까짓 거는 고쳐지는 것이고, 중심 고쳐도 이 말은 버릇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잘 안 고쳐져. 말은 이거는 자꾸 중심만 고쳐 놓고 난 다음에는 옳은 말만 자꾸  하게 되면 나중에 가서 쑥 튀어 나오는 것도 그만 그래 돼 버리요.

 이러니까 우리는 복의 기관이 되는 이것이 우리의 목적이요 우리의 성공이니까  모든 대인 관계에 과연 복의 기관이 될 수 있는 모든 대인 관계에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이 될 수 있는 이것 위해서는,  전부 보니까 복의 기관의 자격이라. '마음을 같이 하는 것 긍휼히 여기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이  혀를 금하라, 또 중심을 고쳐라.' 딴데는 보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느니라'  하는 또 그 말씀이 있는데 거기에는 중심을 가리켜서 말해 놨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부름을 입은 목적이 어데 쓰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으며  우리가 어데 쓰이기 위해서 부르셨는가?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이 뭐  인가? 우리의 소용처가 어데인가? 우리의 직책이 뭐인가? 또 우리 위치가  뭐인가? 우리의 실력이 무슨 실력인가? 우리 실력은 제사장되는 실력이요,  선지자되는 실력이요, 왕이 되는 실력 이것이 우리의 실력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첫 열매이신 예수님의 그 실력 같은 그 실력이 우리  실력이라. 뭐 이십세기의 과학이라면 떠들어도 과학 그것 우리 실력 아니오.

십자가에 못박혀 모든 것을 대속하셔서 좀 있으면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영계  것과 물질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다 통일되는 이 일이 이루어질 건데 그 일을  성공하신 예수님의 그 실력을 갖추어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그 실력을 갖추어 그  지위 달성하는 그것이 우리의 성공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보면은 '저 사람은 밤낮 뭐한다고 똑 포대기 하나 갖다  주먹으로 자다가도 일어나 툭 때리고 툭탁툭탁 이래 때리고 또 이래 때리고 자꾸  이래 쌓는가?' 그 목적이 있어 그렇다 말이오.

 '저거는 감정도 없고, 저거는 오기도 없고, 봇짱도 없고, 유감도 없고,  복수성도 없고, 저거는 아무것도 없고 뭐 저런 게 있어?' 주먹 가지고 포대기  때리는 사람 모양으로 우리 목적은 우리를 뽑아 세우신 것이 거룩한 제사장,  하나님과 피조물의 중보자, 모든 지저분한 멸망할 피조물들을 하나님 앞에서  구원 시키는 이 존영한 그 직책을 우리에게 맡기시고 그 직책을 가질 수 있는  이런 자격을 갖추기 위해 했기 때문에 그 연습하는 거라 그말이오.

 그러니까 땅위에서 요 연습하는 연습, 참는 연습, 원수를 사랑하는 연습, 또 안  들어도 타이르는 연습, 권면하는 연습, 고치는 연습, 바른 말 하는 연습, 자꾸  이래서 세상에서 그 연습을 잘하든지 못하든지 죽는 날까지 우리는 지금  연습입니다. 지금 하는 게 연습이오. 일해 놓은 그거는 몇닢푼치 안 돼.

 연습인데 그 연습하면, 이다음에 그리스도의 심판대를 지내고 난 다음에는  '너는 보자, 이 점이 모자라니, 또 이 점은 거석하니, 너는 모든 것이  구비하다.' 자기 실력 갖춘 대로 무궁세계에서 예수님이 가지신 위치, '내가  이기고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은 것처럼 너희들이 이기면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해 주겠다.' 하시는 예수님의 위치에 앉는 그 위치를 어느 정도 차지하든지  그것이 우리 목적이요 성공이니까 요것을 깨닫고 두 주먹을 거머쥐고 달립시다.

 다른 사람은 '저 사람은 안 참고 일 대 일로 그러는데 너는 이 등신아 왜 그래  복수를 안 하고 그래 하노?' 우리 할 일이 따로 있거든. '너는 그런 일에  대해서는 서로 일 대 일로 그러는데 왜 너는 창자도 없는 사람같이 그래  하느냐?' 우리는 거기 할 일이 다르니까. '다른 사람은 복수하는데 너는 원수를  위해서 복을 빌고 원수 그 사람이 어짜든지 회개해서 의인되도록 하기 위해서 그  사람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이 미쳤노 왜 그짓 하느냐? 우리 직책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이것을 똑똑히 알아야, 우리 직책이 뭐이며 우리 목적이 뭣이라는 이걸  알아야 우리가 그것을 달성하지 일반인과 같이 우리는 그런 것 아닙니다.

 계시 1장 5절에 보면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해방하사' 그건 다 갇혀 있다  말이오. '해방하사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존귀를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이기고 아버지의 보좌에 앉아서 아버지가 모든 피조물을 홀로  통치하신 그 보좌에서 예수님이 모든 것을 통치하기 때문에 하늘에 있는 것과  땅의 것을 다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말씀했는데 이와 같이 너희들이 이기면  내가 이기고 아버지의 보좌에 앉은 것과 같이 너희들이 이기면 내 보좌에 함께  앉아서 영원히 모든 것에 통치하되 세상 권세자는 권리 부리니까 밑에 사람들이  다 싫어합니다.

 세상 권세자들은 그 권세 가지고서 밑에 사람들을 손해를 보이니까 그런데 이  권세는 복 주는 권세요, 잘 되게 하는 권세요, 그를 참 잘 살게 하는 권세이기  때문에 이 권세 있는 사람일수록 자꾸 막 기어 들어가서 존대하지 그렇게 뭐  시기하고 질투할 그런 게 없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요 자기의 직책이 이래 뭐라 하는 것을, 직책이 무엇이라 하는 것을 똑똑히  알고 요것만 굳게 잡아도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뭐 연습하고 있지?' 그것만  하면 다 해결할 수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러는데 너는 뭐 하려고 너 혼자 그러면 어쩔 것이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전공은 딴것이거든. 우리가 딸 참피언은 따로 있어.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3736 복음의 소망과 법칙으로 살 것/ 베드로전서 1장 24절-25절/ 880325 지권찰회 선지자 2015.11.01
3735 복음전도의 권위/ 다니엘 12장 1절-4절/ 890709주전 선지자 2015.11.01
» 복의 계대자/ 베드로전서 3장 8절-12절/ 830522주후 선지자 2015.11.01
3733 복의 근원/ 창세기 3장 17절-19절/ 810208주전 선지자 2015.11.01
3732 복의 기관/ 출애굽기 20장 4절-6절/ 840625월새 선지자 2015.11.01
3731 복의 기관이 되자/ 마태복음 5장 14절-16절/ 880715 지권찰회 선지자 2015.11.01
3730 복의 범위/ 디모데전서 6장 17절-19절/ 831204주전 선지자 2015.11.01
3729 복있는 사람/ 시편 1장 1절/ 871030 지권찰회 선지자 2015.11.01
3728 복있는 사람/ 시편 1장 1절-6절/ 880130토새 선지자 2015.11.01
3727 복있는 사람/ 시편 1장 1절-3절/ 800919금새 선지자 2015.11.01
3726 복있는 사람과 두 자기를 찾는 법/ 시편 1장 1절-6절/ 880129금야 선지자 2015.11.01
3725 복있는 사람의 신앙생활/ 시편 1장 1절-4절/ 830513금새 선지자 2015.11.01
3724 복있는 사람의 신앙생활 세 가지/ 시편 1장 3절/ 830512목새 선지자 2015.11.01
3723 복있는 신앙/ 시편 1장 1절-6절/ 890310금새 선지자 2015.11.01
3722 복있는 신앙/ 시편 1장 1절-6절/ 890310금야 선지자 2015.11.01
3721 복있는 자와 복없는 자/ 시편 1장 2절/ 800929월새 선지자 2015.11.01
3720 복있는 자와 복없는 자/ 시편 1장 2절-3절/ 800925목새 선지자 2015.11.01
3719 복있는 자와 복없는 자/ 시편 73장 1절-19절/ 801001수야 선지자 2015.11.01
3718 복있는 자와 복없는 자/ 시편 1장 1절-2절/ 800926금새 선지자 2015.11.01
3717 복잡한 난제 해결/ 창세기 13장 1절-14절/ 860402수야 선지자 2015.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