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1 01:08
바치는 것과 맡기는 것
1982. 5. 26. 수새
본문:빌립보서 2장 5절~11절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오늘 아침에 이 말씀을 주시고 또 이 찬송을 주셨습니다. 이 성구의 뜻은 간단합니다. 여러분들이 여기서 세 가지만 기억하면 될 것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하는 말씀은 마음이 우리 행동으로 말하면 중심이 되기 때문에 말하는 것입니다. 중생된 영이 위에 있고, 그다음에 마음, 마지막 끝에 몸. 이러기 때문에 “마음을 품으라” 하는 이 말씀은 이 사람이 되라 하는 그말입니다. 이 사람이 되어 행동하라, 이 사람으로 이 행동 하라 그말이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어라” 이 사람으로 이 행동 하라.
그러면 어떤 사람이 어떤 행동인데? 첫째는 하나님에게 바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에게 바쳐라. 하나님에게 바쳐 봤자 하나님에게는 쓸모가 없습니다. 없는 가운데에 엿새동안에, 뭐 천문학자가 제가 아무리 안다고 해도, 온갖 학자들이 제가 아무리 안다고 해도 주님이 엿새동안에 만드신 것의 그것의 억만분의 일도 모릅니다. 이러신 분이 우리가 당신에게 바치면 무슨 소용있겠소? 바치나 안 바치나 당신의 것이라.
당신이 인류와 우주를 전멸할려면 전멸하고, 일시에 전멸할려면 전멸하고 또 이런 것을 만들고 싶으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데 우리의 바치는 것이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당신에게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편에서 하나님에게 ‘이것은 이제 주님에게 바친다’ 하고 하나님에게 바치는 사람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에게 바치는 사람 되어야 합니다. 바치는 것은 제가 제것으로 사용하던 자가 우리 마음으로 ‘이제는 하나님에게 바쳐서 하나님이 뜻대로 쓰시도록 바치자.’ 하는 우리 주관편에 있어서 바치라는 것입니다. 바치는 것.
그러면 바치는 것이 이것이, 바쳤는데 바치는 이것이 실상은 맡기는 것이 돼야 됩니다, 맡기는 것. 주님에게 맡기는 것. 맡기다니? 맡기는 것은 돈을 맡기면 돈을 잘 불려 달라고 맡기는 것이요, 물건을 맡기면 잘 보관해 달라고 맡기는 것이요, 또 잘못된 것을 맡기는 것은 고쳐 달라고 맡기는 것이요, 없는 것을 맡기는 것은 잘 만들어 달라고 맡기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데, ‘이 집을 한 채 지어 주십시오.’ 맡기는 것, 없는데 만들어 달라고 맡기는 것, 잘못된 것 고쳐 달라고 맡기는 것, 또 그것을 도둑맞지 않고 썩지 않도록 잘 보장해 달라고 맡기는 것 그렇게 맡기는 성격은 다 그런 것입니다.
바쳤는데, 자기 딴에는 바친 줄 알고 바쳤으니까 제것 아니지 않습니까? 바쳤으니까 제것 아닙니다. 바치는 성격을 가져야 됩니다, 바친 성격. 바쳤으니까 이제 제것은 아니지 않아요? 어떤 사람이 무엇을 하나 바쳤다 하면 그것은 바쳤기 때문에 자기 것은 아닙니다.
이러니까 바친 이 성격을 가져야 합니다. ‘이제는 바쳤다.’ 바친 성격을 가졌는데 바친 그것이 실상은 주님에게 맡긴 이 사실을 깨닫고 맡기는 이 성격을 가져야 됩니다. 자기를 맡기는 것, 어쩌라고? 고쳐 달라고. 맡기는 것은 내 유익을 위해서 맡기는 것이오. 바치는 것은 상대방의 유익을 위해서 바치는 것이오.
첫째는 상대방인 하나님을 위해서 내게 필요한 걸 당신에게 바치는 것이오. 이런 성격을 띠어야 되고, 그러나 바친 것이 실상이 자기가 바쳤다고만 생각해, ‘내가 하나님에게 바쳐서 하나님께 유익되게 했다.’ 이렇게까지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실은 맡기는 것입니다. 당신에게 맡기는 것이오. ‘내가 그에게 의탁한 것을, 그에게 맡긴 것을 그날까지 지켜주실 것을 내가 확신하노라.’ 여기서 사도 바울은 살았습니다.
이번에도 ‘내가 쓸 돈을 하나님에게 바쳤어. 내게 필요한 것 하나님에게 바쳤어.’ 바치는 이런 성격을 가지고 연보를 해야겠고, ‘이제는 바쳤으니까 내것은 아니라’ 내것을 주님에게 내가 필요한 것을 주어 바친다는 이 성질로 주님에게 바쳐야 됩니다.
바친 이것이 실은 당신에게는 필요가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이 실은 하나님에게 맡기는 것인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맡기는 것. 알겠습니까?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무엇을 하나님에게, 껍데기 볼 때에는 바치는 것으로 바쳤습니다. 속에 실상은 그분에게 맡겨서 그분이 내가 세상 떠날 때에 다 없어질 그것을 무궁세계에 그때 가서 잘 해서 우리에게 돌려 줍니다. 무궁세계에 가서 그것의 영원한 사용권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땅 위에서 소유를 바치든지 몸을 바치든지 목숨을 바치든지 바치는 것은 실은 그것이 하나님에게 필요하도록, 쓰도록, 하나님에게 유익하도록 바치는 것 같지마는 그것은 껍데기요 깨닫지를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껍데기는 바치는 그런 껍데기를 가져야 됩니다.
그러나 실은 그분에게 맡기는 것입니다. 내가 바친 것은 그분이 전지한 지혜로, 전능한 능력으로, 우리를 당신을 주시기까지 사랑하시는 사랑으로, 우리 지식을 초월해서 전지한 지혜로 제일 좋게, 우리를 사랑함으로써 우리에게 제일 좋은 것, 전능한 능력으로 잘 만들어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맡기는 것이 되는 이 사실을 깨달아야 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알 것은 껍데기는 바친 것이나 속은 맡겨놨다. 맡겨놨기 때문에 나 할일은 무엇인가? 나는 그분이 시키시는 대로 합니다. 나는 왜 시키시는 대로 할까? 내것을 맡겨놨거든. 맡겨 놨는데, 맡겨 놨지마는 주인은 내라 그거요. 근본 주인은 하나님이지마는 맡겨 놨지마는 거기 관련있는 사람들은 내입니다. 알겠습니까? 좀 어려운 말인데.
몸을 주님에게 내가 바쳤습니다. 몸을 바친 것은 실은 이 몸을 ‘영원 무궁세계에 영광스러운 몸으로 잘 만들어 주십시오. 고쳐 주십시오. 구비시켜 주십시오.’ 깨끗게, 온전케, 편리하게, 유능하게, 참 존귀하게 이렇게 전지한 지혜로, 전능한 능력으로 나를 지극히 사랑하심으로, 날 사랑하시니까 나에게 제일 좋은 것으로 만들어 주고 싶지 않겠소? 좋은 것으로 만들어 주고 싶지마는, 나를 사랑하니까 어쩌든지 내게 좋도록 해 주고 싶지마는, 지혜가 모자라면 안될 거라. 전지한 지혜를 가졌기 때문에 아주 뭐 흠없이 제일 좋은 것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라 그거요. 또 전능한 능력을 가졌으니까, 암만 날 사랑하고 지혜가 있어서 이랬으면 좋겠다 싶지마는 능력 없으면 못할 것 아닙니까? 능력이 있으니 잘하실 수 있다 그거요.
이러니까 나는 맡겼지만 내가 맡긴 거기 대해서 관련은 다른 사람은 관련이 없는데 나는 관련을 가졌다 말이오, 맡겼기 때문에. 맡긴 이것이 맡겼다가 도로 되찾을 수도 있고, 또 맡긴 이것이 제가 주인이니까, 맡겼으니까, 맡겨 놨는데 맡겨 놓고 가만히 보니까, 하는 것을 보니, 나는 믿고 맡겼는데 뭐 하는 것이 보니까 좀 섭섭하다 그말이오. 그러면 되찾을 수도 있고, 자기 비위에 자기 마음에 차지 않을 때에는 섭섭함도 가지게 될 것이고, 섭섭함이 심하면 도로 찾을 것이고, 또 마음에 이랬으면 좋겠는데 염려성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습니까?집 짓는, 집을 한 채 지을려고 그 사람에게 맡겨놔요. 나는 모릅니다. 전적 맡겨놔. 맡겨놨지마는 주인이라 그말이오. 맡겨놨지만 주인이니까 가끔가다 한번씩 썩 가 보면 ‘이거는 왜 이리 됐을까? 왜 이리 했을까? 뭐 하는 것이 성의가 없네. 뭐 보니까 지금 참 전심 전력을 기울이지 않네.’아주 시공업자가 참 그 맡긴 그 주인을 극히 사랑해서, 또 그 주인의, 맡긴 주인보다 지혜가 아주 탁월해서, 능력이 탁월해서 건축에 대해서는 아주 참 통달한 사람인데 맡긴 이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는 건축에 대한 무식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척 맡겼는데, 이 사람은 자기 머리대로 머리 있는 대로 계획을 하고 ‘이 사랑하는 자에게 좋은 걸 하나 만들어 주겠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머리 있는 대로 설계를 해 가지고 지금 힘껏 하는데 와 보더니마는 씰죽합니다. ‘왜 이러는고?’ 실죽하고 또 속으로 군담을 합니다. ‘나는 믿고 맡겼더니마는’ 군담을 합니다. 좀 섭섭히 여깁니다.
나중에 그러다가, 그것만 봐도 기분이 나쁜데, ‘저게 내가 있는 힘을 다 기울여 해 줄려고 하는 건데 저게 아무것도 건축에는 모르면서, 맡겼으니까 나를 믿으면, 나를 믿으면 척 맡기며 이럴 건데 섭섭하게,’ 또 ‘왜 이랬을까?’ 의문 저런 걸 가지는 것이 뭐이냐? 그 청부한 그 사람을 믿는 겁니까 안 믿는 겁니까? 안 믿는 것이지. 안 믿는 것이오. 이러다가 이게 심해지니까 ‘이것은 이렇게 했으면 좋지 않습니까?’ 뚱딴지 같은 소리 한다 말이오. 그러면 절단나는데 그거는 알지도 못하고 지금 그 계획한 것의 백분에 일도 안되는 그대로, 또 그러면 그 집이 그만 그거 하나 가지고 그만 전부 무가치한 것이 되어지는데 그것도 모르고 떡 그걸 원한다 그말이오.
이만큼 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만큼 하는 건 좋소. ‘네가 몰라 그러니까, 하거나 말거나 너는 몰라서 그런 것이니까, 내가 너 몰라서 벌소리하는 데에 거기 내가 제재받는 사랑이 되면 안될 터이고, 네가 몰라 하니까 하거나 말거나 어쩌든지 이것을 내가 사랑하는 자이니까 저자에게 좋도록 잘 만들어 떡 내놓으면 뒤에 가서’ ‘아, 그렇습니까?’ ‘그때는 네가 이렇게 하라 했지? 이렇게 하면 싶었지? 내가 그거 알았어. 그렇지만 너 한 대로 그러면 안되기 때문에, 이렇게 하면 싶었지마는 네가 몰라 그렇기 때문에 내가 밀고 나가 이래 해서 이랬지. 지금 어때? 그랬으면 좋겠어?’ ‘아이구, 아닙니다.’ 나중에 감사할 거라 말이오.
이렇지마는, 여기까지는 좋지마는 이게 고집을 피우고 ‘이거 안됩니다. 이거는 꼭 고쳐야 됩니다. 이거는 꼭 고쳐야 됩니다. 이거는 이래 하면 안됩니다. 꼭 이래야 됩니다.’ ‘이게 좋다. 이게 좋다.’ ‘암만 좋아도 싫습니다. 나는 꼭 이래야 됩니다.’ 이래 되는 날이면 어찌 됩니까? 그래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을 강제로 이제 할 수 있습니까? 만일 그때 그래 해야 된다고, 꼭 세워 가지고 그래 해야 된다 할 때에 그래 하면 강제입니까 맡긴 대로 청부해 가지고 하는 겁니까? 예? 강제성이 생긴다 말이오.
그러면 그만 안 들으면 강제가 되니까, 하나님께서 종교는 자유인데, 우리에게 자율에서 능동적으로 당신에게 바쳐 순종하는 걸 원하지, 강제로 할 수 있을진대야 일조에, 하루 아침에 천하 인간이 다 벌벌 떨며 주님 앞에 무릎 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뭐 이 전도 가지고 뭐 그럴 필요가 뭐 있습니까? 강제하면 하나님 같은 온전한 자가 되는 이런 제이 하나님이 될 수 없다 말이오. 강제받는 것이 무슨 이거 인격자이며 존귀한 자가 되겠습니까? 강제 못 하니 우리 구원은 틀린다 그거요.
이러니까 처음에는 바치는 성격으로 겉을, 겉은 바치는 성격인데 실상은 속은 맡기는 것이고, 그러면 셋째로 뭣이 하나 있어야 되겠습니까? 뭣이 하나 있어야 되겠소? 청부업 많이 하니까 물어 볼까? ○○○집사님, 뭐이 있어야 되겠지? ○○○씨 예? 뭐이 있어야 돼? 의심하지 아니하고? 도적 안 맞고, 의심하지 아니하고? ○○○목사님, 저 ○선생, 뒤에? 뭐? 맡겼는데 뭐? 바쳤고 맡겼고 했는데 이제 뭘 해야 될꼬? 순종! 그거 하나 있으면 돼. 안 그렇소? 그거 하나 있으면 인제, 그거 하나 있으면 될 거 아니겠소? 떡 이래 놨으니까 ‘이래 놓은 것 좋아?’ ‘예, 좋습니다.’ ‘여기는 구멍을 뚫을 건데 구멍을 뚫어도 괜찮아?’ ‘내가 맡겼고 전부 맡겨 놓지 않았습니까? 나는 모릅니다. 구멍을 뚫든지 뭐 막든지 뜻대로 하십시오.’왜? 날 사랑하기 때문에, 또 지혜가 있기 때문에, 능력이 있기 때문에, 내가, 잘 해 줄 것을 내가 바라기 때문에 ‘그저 구멍을 뚫든지 뚫은 구멍을 또 막든지 뭐 이거는 나는 당신이 하는 대로 따라가겠습니다. 거기 따라가겠습니다. 당신 하는 대로 따라가겠습니다.’ 따라가는 게 뭐입니까? 따라가는 건 순종입니다. 여기 있으면 됩니다.
바쳤는데 맡겼고 맡겼으니까 순종하는 것 이 셋만 있으면 당신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해 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십니다.
이러기에 제 욕심꾸러기, 원죄를 가진, 이 원죄 가진 인간으로서 먼저 바치는 성격으로 바쳐야 될 것이오. 이번에도 우리가 연보를 바쳤습니다.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왜? 사욕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사욕면에서 바쳤습니다. 바쳤으나 실상은 맡겼습니다. 실상은 맡겼소.
어떤 사람은 바친다 생각하고 바치는 사람, 어떤 사람은 맡긴다 생각하고 맡기는 사람, 어떤 사람은 거기 있지 않습니다. ‘내가 연보를 했으니까 하나님께 맡겨서 뒤에 잘해 주도록 해야 되겠다.’ 거기 있지 않소. 거기 있지 않고, ‘주님의 모든 것이 내것 되었고 내 모든 것은 주의 것이니까 주의 것과 내것은 분별이 없다. 주의 모든 것은 내것이다.’ 주의 모든 것이 내것이지 ‘이거 맡기니 이걸 잘 만들어 뭐 해 줬으면 좋겠다.’ 똑 그런 좁은 세계에서 살지를 않습니다.
이러니까 바치나 안 바치나 한가지요. 그러나 순서는 이제 여러분들이 알 것은 바쳐지는 것, 맡기는 것, 그리고 난 다음에는 그저 그분을 따를 것, 그분을 따를 것. 따라야 그분이 마음대로 하실 수 있지 여기서 이러니 저러니 제 주관 가지고 하니까 일하기가 되다 그말이오.
맡겼으면 딱 맡긴 대로 해야 될 터인데 맡겨놓고 이러니 저러니 자꾸 안심을 안 하니까, 안심을 안 하니 그 안심 안 하는 거 이해를 하도록 할려 하니까 일하는 배나 되다 그거요. 그럴 것 아니겠소? 또 자꾸 이해를 안 하고 섭섭하이 이래 쌓으니까 이거 일하기가 힘이 든다 말이오. 반대를 하니까 할 수 없이 손 떼야 되겠다 그거요.
여러분들 이것을 단단히 기억합시다. 가서 자꾸 새김질 하십시오.
바치는 것, 이것이 실은 맡기는 것, 맡겼으면 그를 따를 것. 이것 세 가지를 하면 주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좋은 것이라도 당신의 지능대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다 해줄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만 있으면 이런 면으로, 뭐 경제면으로, 지위면으로, 권세면으로, 건강면으로, 영광면으로, 신령한 면으로, 권위면으로 모든 면으로 얼마든지 해줄 수 있습니다. 좋은 걸 얼마든지 해줄 수 있소. 이 세 가지만 하면 당신은 얼마든지 해줄 수 있는데,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당신이 생명까지 바쳐서 착수하셨는데, 성도들이 이 세 가지를 하지 않고 ‘이것은 내가 내게 필요하니까 못 바치겠습니다.’ 바쳐 봤자 당신에게 필요가 없습니다. ‘이건 내게 필요해 못 바치겠습니다.’ 이러니까 그것을 당신이 어떻게 맡아 가지고 잘할 수가 있겠소?영 바칠 때 바쳐 버리고, ‘주님이 날 구속해 주셨으니까, 구속해 주셨으니까 내것 다 당신의 것 아니냐? 당신이 다 피로 값주고 샀으니까 바친다.’ 바치고 난 다음에, 그리고 난 다음에 맡기는 것. ‘이 다음에 잘해 주실 것이다.’ 맡기는 것. 이것도 실은 완전히 다른 이의 없이, 인색 없이 완전히 바쳤으면 그것이 더 좋소.
그러면 이제 이거는 바치고 난 다음에 아예 아무것도, ‘주님 나 위해서 모든 것 다 주셨으니 나 주 위해서 모든 것 바치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당신의 대속만 내것입니다.’ 하고 딱 바꾸는 것으로 바쳐 놓으면 하나님은 마음 놓고 마음대로 이렇게 저렇게 만들어 가지고 이다음에 하늘나라 가서 떡 주니까 ‘아이구, 주님이여 언제 내가 그렇게 했는데 내게 이렇게 해 주십니까? 이거 어쩐 겁니까?’ 깜짝 놀랄 거라 말이오. 이거 재미있습니다. 바라지 않았는데 척 주니까 재미있다 그말이오. 바라지 않았는데 주니까 좋아하고, 바라지를 않았는데 깜짝 놀라면서 ‘이게 어쩐 일입니까?’ 하니까 주는 이는 참 멋지고 받는 이도 멋지고 참 재미있을 거라 그말이오. 주님은 여러분들 인격자 중에 인격자이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인격자를 만나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모형을 만나는 것인데, 참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존경하는 그 인격을 만드신 이가 주님이시오. 자기가 이상적으로 이러한 인격을 원하는 그, 우리의 마음으로 그림 그려보는 이 인격 그것을 실상으로 만드신 분이 주님이시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 인격을, 이 인격의 근원인 신격을 우리는 든든히 믿고 의지해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쩌든지 우리는 눈에 보이는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보고 깨달아야 되고 하나님을 향하여서 그의 신격 같은 인격으로 어서 닮아가야 됩니다.
오늘 아침에 세 가지. 이것만 하면 당신은 우리에게 얼마든지 해줄 수 있어. 우리에게 무엇이든지 줄 수 있어. 우리에게 좋은 걸 무엇이든지 다 줄 수 있지마는 이 세 가지 때문에 지체가 되고 있어. 뭐 권능있는 종도 뭐도 다 될 수 있습니다. 나도 이 세가지가 잘못돼 그렇지, 아직까지 지금 완전히 안돼 그렇지 이 세 가지가 완전되면 인간 완성이오. 이 세 가지만 힘만 쓰면 돼. 여러분들보다는 내가 이 세 가지가 훨씬 앞서 가지고 있어.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내게 대해서 휠씬 일을 마음 놓고 하실 수 있어. 또 훨씬 잘 만들어졌어. 이 세 가지만 있으면 당신은 우리에게 얼마든지 좋은 것을 다 하실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를 결심해요. 맡기지 않고, 맡겼다가 쫓아옵니다. 쫓아와 가지고 ‘아, 미안하지마는 맡긴 거 그거 내게 잠깐 필요하니까 한 시간만 좀 줄 수 없습니까? 한 시간쯤 내가 가졌다가 한 시간 후에 도로 갖다 맡기겠습니다.’ 제것 저 달라 하는데 어쩔 거라? 내 줘야지. 맡겼다가 ‘예, 잠깐입니다. 잠깐. 조금, 조금 이것만, 요게만 쓰고 내가 도로 맡기겠습니다.’ 이거는 뭐 아침에 또 ‘요게만 쓰게’ 또 찾고 도로 찾고. 저녁에 또 ‘요게만 쓰게’ 도로 찾고,제 욕심대로, 제 소원대로, 제 뜻대로, 제 습성대로, 제 취미대로 자꾸 맡겼던 거 찾으니까, 여기서 찾고 이 시간에 찾고 이 자리에서 찾고, 여기서 찾고 저기서 찾고 여기 또 이거 쓸려고 찾고 제 마음대로 하고 찾아 쌓으니까 이제, 이러기 때문에 바쳤으니까 바쳤으니 도로 찾지 못하지 않소? 나라에 바친 것도 못 찾고, 교회에 바친 것도 못 찾고, 사회에 바친 것도 못 찾고 바쳤으면 벌써 그 소유권을 옮겨버린 거라 말이오. 바치는 성격이 있어야 돼. 이랬는데 이거는 바쳤다가 도로 찾습니다. 이통에 안됩니다.
이번에 대구집회 때에는 다 바치겠다고, 이제는 다 바쳐서, ‘이제 다 바칩니다.’ 이랬는데 와 가지고는 또 되찾는다 그말이오. 또 찾아. 이번 건축 연보 할 때는 바쳤다가 또 도로 또 찾아. 또 찾아. 그것 때문에 망해. 그것 때문에 안돼.
영원히 바쳐 보라! 이제 권리를 다 바친 것은 권리 그쪽에 있기 때문에 나는 그 뒤에는 손을 못 대. 권리가 없어. 이렇게 바쳐 보라. 그것이 실상은 주님에게 맡겨서 잘해 주도록 맡기는 것이니까, 나를 사랑하시는 전지 전능자에게 맡겨보라, 어떻게 하든지. 그러니까 너는 그분이 하는 것만 보고 있거라. 따라라. 순종해라 그말이오. 이것만 하면 당신이 우리에게 얼마든지 좋은 것을 다 해 주실 수가 있습니다. 이게 안되면 안됩니다. 헛일이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그러면 ○○○선생 허락이오? 네, ○○○선생 허락입니다. 그러면 중간반 반사들은 이것도 이제 좀 맡기는 셈입니다. 오늘 아침에 이사했다가 내일 ‘저리 가라’ ‘예!’ 또 이사하고, 또 ‘저리 가라.’ 이번에 이사, 이사 두 번 한 사람 손들어 봐. 두 번 한 사람 없나, 아직? 네 번 한 사람 있어. 이사 네 번 한 사람 있대, 이사 네 번 한 사람. 그래도, 그래도 삐꾸지 않아야 되는데 겉만 안 삐꾸고 되는 게 아니라 속까지 안 삐꾸는 것, 열 번 하라 해도 안 삐꿔야 돼.
오늘 아침에 이 기도 마치고 우 가서 이 짐 저리 옮기고 또 그 짐은 또 이리 다 옮겨 놨어? 비었어. 이 짐 저리 옮기고, 또 ○목사님 짐 또 저리 옮기고 오늘 아침에 다 하십시다. 그럴 수 있지요?심방갈 사람은 가요. 남반이 꽉 찼는데 뭐. 중간반 아니라 돼요. 중간반 말고 퍼뜩 좀 그거 수고를 하고 갈 사람 있으면, 중간반은 다 심방가기 때문에 안되고, 이제 ○○○선생만 있으면 되고 남은 것은 다른 모두 남반들, 또 여반들도 시간있는 사람 말이오. 시간있는 사람만 해도 그 두 시간만 옮기면, 한 시간이면 옮길 거라 말이오. 한 시간이면 옮길 터이니까 그저 시간있는 사람만 해요. 그래서 옮기도록 하십시다. 주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