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얻는 구원

 

1986. 12. 19. 밤 (금)

 

 본문:디모데후서 3장 15절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다음 유치반 공과가 되겠습니다. 17공과. 공과 한번 읽습니다.

본문, 디모데후서 3장 15절.

제목, ‘믿음으로 얻는 구원’ 요절,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베드로후서 3장 14절.

서론.‘성경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구원을 얻는 지혜를 주신다.

읽는자, 듣는 자, 지켜 행하는 자가 복이 있다.’ 삼, 본론.

첫째,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은 자존하신 하나님이 창조와 예정 전 목적을 정하신 그때부터 만들기 시작하신 믿음인데 예수님의 도성인신 사활의 대속으로 완성하시고 진리와 영감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만 선물로 주시는 신기한 능력이다. 자원된 시간과 재료는 무한하다. 그런고로 믿는 자에게는 그 효력이 무한하다. 사람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믿음과 전혀 다르다.’ 둘째, ‘믿음으로 받는 구원은 순전 은혜이다. 양성일위 예수님이 대속 사활로 일곱 가지 큰 구원을 이루어 주신 것이다. 본인이 믿든지 안 믿든지 법적으로는 택자의 것이다. 불변적인 기본구원의 근거이다. 그러나 행위구원에는 예수님이 내 대속으로 사활하셨으니 내가 사활한 것이요 나는 예수님 대속에 팔린 예수님의 것임을 믿고 이제는 자기가 사는 것이 아니고 자기 안에 예수님이 주장하여 예수님의 것으로 살 때에 지극히 큰 능력이요 영생이다.’ 셋째, ‘일곱 가지 구원은 대형 죽으심으로 죄, 사망, 마귀에게서 세 가지 해방과 자유 주신 것과 율법 대행과 화친 대행을 생명 바쳐 율법 완행의 의와 화친 완성의 생명을 주신 것과 우리 대신 부활 양성 예수님이 하나님을 대하여 영원히 영감과 진리로 사시는 두 가지 대속을 주어 영생하게 하신 구원이다.’ 문답, 첫째, ‘사활이 무슨 말이뇨?’ `예수님이 우리 대신 죽으시고 또 부활하셨다는 말입니다.’ 둘째, ‘우리가 믿는 믿음은 일반 믿음과 같으뇨?’ `전혀 다른 믿음입니다.' 셋째로, ‘구원이 몇 가지뇨?’ 답에, `일곱 가지입니다.' 넷째, ‘일곱 가지 구원을 말하여 보라.’ 답에, `첫째, 죄에서 해방 자유. 둘째, 사망에서 해방 자유. 셋째, 마귀에서 해방 자유. 넷째, 하나님 율법 완행의 의.

다섯째, 하나님과 화친 완성의 생명. 여섯째, 영감으로 영생. 일곱째, 진리로 영생입니다.’

요것이 다음 공과인데 이 학생들이 뜻을 가르쳐 줘도 잘 모를 겁니다. 이러니까 암기를 시켜서 학생들이 다 외우도록 그렇게 해야 될 것입니다. 이것을 꼭 요번에는 요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외우면 상도 주고 이렇게 해서 주일학생들이 일반적으로 다 외워서 어데 가든지 요 구원을 다 외울 수 있도록 이러면 이 큰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기독자들이 이 구원에 대한 이 교리를 확실히 잡지 못하고 흐미하게 되어 있는 때이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외우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반사들도 외우면 차차 그 속에 있는 뜻을 알게 될 것입니다. 너무 말이 좀 간단하게 해 놔서 어려우니까 반사들도 다 외우도록 노력을 하십시오.

우리가 성경을 많이 읽고 실행하는 가운데서 점점 깨달음이 자라가고 또 깊이 넓게 그렇게 길게 깨달음이 점점 커져야 합니다.

여게서는 암만 가르쳐도 잘 구별 못 하는데 이번에 ○○○선생이 미국에 카브넌트 신학교 가서 공부하고 와 가지고는 성경을 좀 팔라고 애를 씁니다.

원죄론에 대해서, 본죄론에 대해서, 또 여러가지 구원론 신론 이런 데 대해서 새로 눈이 뜨여서 그것이 어떻게 되는가 하는 거게 대해서 좀 새로운 그 면을 발견하고 알라고 애를 쓰는 것을 제가 봤습니다. 그래서 그만큼 자란 것이라고 보고 대단히 기뻐합니다.

성경은 여러분들이 모르거든 그대로 실행을 하면 아는 길이 있고 그렇지 않으면 성경 말씀을 들을 때에 이것이 옳은가 틀렸는가 하는 것을 잘 성경을 보고 상고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무슨 주석을 보고 참고하든지 그렇게 해서 확고히 잡아야 되지 그렇지 안하면 안 됩니다.

자기가 성경을 읽음으로 깨달아지는 것이나 이런 저런 사람들이 가르쳐 줌으로써 가르침을 받음으로 깨달아지는 것이나 또 이런 저런 주석들을 참고함으로 깨달아지는 그런 데에 반드시 양심을 써서 옳고 그른 것을 정평 정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 성경 본문에 대해서 간추려서 몇 가지를 말하겠습니다.

15절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이제 성경의 귀중성과 정확성을 안 디모데기 때문에 그런 말은 하지 안하고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이 말은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의 정확무오성, 정확하고 하나도 틀림이 없는 정확무오성, 또 성경의 유효성, ‘성경이 참 우리에게 필요하다’ 성경의 권위성 이런 것을 다 알고 성경을 귀중히 평가해서 성경을 공부한 사람이라 그말입니다.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여게 “너로 하여금” 대개 기록할 때에 ‘너희로 하여금’ `너희들로 하여금' 이렇게 많이 말씀하는데 여게는 “너로 하여금” 단수를 썼습니다. “너로 하여금” 단수를 쓴 것은 이것은 성경에 대한 은혜는 개별적이고, 같이 있어도 저 사람은 깨달을 수 있고 이 사람은 깨닫지 못할 수 있고 성경에 대한 은혜는 각각 모두 개별개별이 다른 것을 가리켜서 단수로 말하고 복수로 말하지 안했습니다.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여기 성경은 능히라는 말은 성경은 독자적 권위성을 가진 것을 표시합니다. 세상에 많은 말들이 있으나 그런 말들은 그 사람이 살아 있을 때는 그 말이 권위 있고 또 그 사람이 더 권세를 많이 가졌을 때는 권위가 있고 그 사람이 권세가 없어지든지 죽든지 해서 말한 사람의 권위에 따라서 그 말이 좀 권위 있다가 없어졌다가 그렇게 됩니다. 그러면 말은 말 자체 권위 있는 게 아니라 말한 사람을 따라서 권위가 있고 없고 하는데 성경은 그렇지 않고 독자적 권위를 가진 것이 성경 말씀입니다.

그러면 성경의 말씀을 하나님이 말씀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권위 있으니까 성경이 권위 있는 것 아닙니다. 세상에서는 그 정권자가 말했으면 정권자가 살아 있을 때는 그 말을 권위 있게 인정하지마는 정권자가 다 죽든지 정권을 다 박탈당하든지 하고 난 다음에는 그 말이 권위 없습니다. 그런 말과 같이 성경 말씀을 생각하면 안 됩니다. 성경 말씀은 하나님이 아니고도 성경 자체가 독자적으로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니까 하나님 때문에 권위 있는 것 아닙니다. 이 말씀은 진리기 때문에 독자적 홀로 권위를 가졌습니다.

어떤 권위를 가졌는가? 하나님께서 우주와 영계에 모든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은 이 말씀인 진리에게 명했고 진리는 그 모든 것들을 다 창조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인데 이 진리는 다 전능의 능력을 독자적으로 가지고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말씀이 처음에는 없는 가운데에서 영계와 물질계의 모든 것을 다 창조하셨고 다시 두번째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특별계시로 신구약 성경 말씀이 나타나신 이 말씀은 영원히 진동되지 아니할 것들을 창조하기 위해서 나타나 있습니다. 이 진리는 인격 존재가 아닙니다. 다만 이치 존재인데 이는 독자적 권위를 전능의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전지의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말씀은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받지 않습니다. 세상 지식은 사람에게 업신여김을 받습니다. 명철한 사람은 그 세상 지식을 욕을 하면서 멸시를 하면서 독서를 해도 명철한 자의 머리에는 그 지식이 들어오기 마련이고 또 이용당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은 아무리 명철하고 유식한 사람이라도 이 말씀을 업신여기는 자에게는 평생 읽어도 외워도 한 마디도 그이에게 알려지지 안하고 믿어지지 않도록 해서 이 지식이 이 말씀이 주는 구원은 털끝만치도 받지 못합니다.

그 반면에 이 말씀은 겸손히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독자적 전지 전능의 권위를 가지신 말씀인 것을 믿고 두려운 마음으로 이 말씀 앞에서 가르쳐 달라고 하는 그 자기의 겸손한, 이 창조의 크신 말씀이요 자기는 피조물인 이 위치를 잘 알고 정상적인 사람으로 겸손히 이 말씀을 대해서 구할 때에는 이 말씀이 얼마든지 무능한 자를 유능하게 유식하게 할 수 있고, 또 이 말씀은 아주 병신같은 사람을 아주 명철하고 선천 후천으로 잘난 사람보다 뛰어나게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는 거기에서 비로소 이 말씀의 혜택을 입을 수 있고 이 말씀의 권위를 무시하는 거기에서 스스로 속고 말지 이 말씀은 그에게 이용당하지 않는다는 이 사실을 우리가 똑똑히 알고 성경을 대해야 됩니다.

“성경은 능히” 이는 성경 말씀의 독자적 권위를 말합니다. “너로 하여금” 이 사람이 된다고 저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이거는 개인적입니다. 개적으로 이 말씀과 관계를 가지는 것이지 아무리 아버지가 성경 잘 안다고 아들이 알아지는 것 아니고, 또 남편이 성경을 잘 안다고 아내가 알아지는 것 아니고 아내가 성경을 많이 읽었다고 남편에게 효력 있는 것 아닙니다. 그래서 “이는 너로” 이는 단수의 개인적인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이 무엇인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이라 말은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영원 자존하시고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이 당신 의지 세계에서, 당신 마음 속으로.

의지 세계에서 하신 일의 순서가 있으니 제 일 순서가 그리스도 안에서 목적을 정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목적을 정하신 것이 자존하신 하나님이 역사로서는 첫순서의 역사가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신 것은 존재적으로는 제이호가 됩니다. 하나님이 첫째 자존하셨고 그다음에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목적을 정하신 그것이 제이호로 존재하게 됐습니다. 일호는 자존하셨고 이호는 자존하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제 존재하게 된 것인데 이호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목적입니다.

이는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이요 또 창조하시기 전에 모든 것을 예정하신 예정하시기 전이요, 그러면 셋째입니다. 일호가 하나님 자존이고 이호가 그리스도 안에서 목적을 정하신 것이고 삼호가 이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그때부터 하나님이 만들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이라 말은 이 믿음을 하나님이 쓰시기 위해서 만드실 때에 시작은 천지 창조 전, 예정 전, 목적을 정하신 그다음으로 하나님께서 이 믿음을 조성하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만드시기 시작한 그 믿음이 성자가 도성인신,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 십자가의 대속의 죽으심을 죽으시고 삼 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이 믿음은 완성된 믿음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이라는 것은 택함을 입은 그다음 순서에서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까지로서 완성된 믿음을 가리켜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사도행전에는 “예수로 말미암은 믿음이라” 그렇게 말했는데 여게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이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그 사람이 열심히 강하게 큰소리를 쳐도 법에 위반된 것이면 결국은 굴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아무리 사람이 열심히 강하게 억세게 견고히 했다 할지라도, 어떤 한 조성품에라도 거기에 합당한 물리에 맞지 안하면 그 수고한 것은 결국 무너지고 헛되고 맙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이 구원은 하나님이 내신 이 진리의 법칙에 맞지 안하면 소용 없습니다. 열심도 소용없고, 희생도 소용없고, 충성도 소용없고 아무 소용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신 이 법에 딱 들어맞으면 그저 소리를 내도 좋고 안 해도 좋고 아무도 몰라도 좋고 기어코 그거는 달성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요 성경대로 믿는데 요 성경을 근거해서 성경에 딱 들어맞도록 모든 것을 깨닫고 그대로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오늘까지의 교리 신조라 하는 것은 벌써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근 이천 년이 다 돼 가는데 그때 예수님의 사도들로, 또 그다음에 속사도로, 또 그다음 교부로, 그다음 모든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서 오늘까지 성경을 보고 깨달은 그 모든 깨달은 것 중에 공통성 있고 역사성 있는 것을 가리켜서 교리로 이렇게 제정을 했고 아직까지 그게 공통성 없을 때에는 더 참작해 봐 가지고서 교리와 신조로 제정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깨달음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이라” 요걸 단단히 기억하십시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이라” 이 믿음은 언제부터 하나님이 만들기 시작했느냐? 창세 전 예정 전부터 만들기 시작해 가지고 예수님이 사활 대속하심으로써 이 믿음은 준공이 됐습니다. 이 믿음은 완성이 됐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만들어 준 믿음입니다.

그러면 이 믿음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만들어 놓은 믿음인데 이 믿음은 어데 쓸라고 만들었는가? 이 믿음은 택함을 입은 자들이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으로 이루어 놓은 그 구원을 얻는 데에만 전용할라고 만드신 믿음입니다.

요것을 단단히 기억하십시오. 이 믿음은 그 외에 딴데는 쓰지 못하는 믿음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일반 믿음과 다르다’ 했습니다.

예수 믿는 이 믿음을 이 세상에서 뭐 친구끼리 믿는다, 이 세상에서 믿는다, 자식이 부모를 믿는다, 부모가 자녀를 믿는다, 형제끼리 믿는다, 친구끼리 믿는다, 위가 아래를 믿는다, 아래가 위를 믿는다 하는 그런 믿음과 같은 동일시하면 안 됩니다. 그런 믿음과 같이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 믿음은 만들기를 천지 창조 전부터 하나님이 만들기 시작해 가지고서 예수님이 사활 대속 하신 때까지 해서 이 믿음을 완성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 이렇게 영원 전이라는 영원이라는 이런 자본을, 영원, 억천 뭐 만 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천지 창조는 육천 년이지마는 이 믿음 시작한 것은 육천 년이 아닙니다. 그 믿음 시작한 거는 영원 전입니다. 이 긴 세월과 도성인신과 대신 사활의 대속을 베푸신 이 큰 자본을 들이고 이 순서를 통과해 가지고서 하나님이 만드신 믿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 믿음은 딴데는 쓰지 못합니다. 이 믿음은 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의 대속으로 우리에게 마련해서 주시는 이 구원을 얻는 데만 전용하는 믿음입니다.

알겠습니까? 이 구원에만 전용하는 믿음입니다. 딴데는 쓰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이 믿음을 세상 사람들이 뭐 믿고 살자, 믿는다, 안 믿는다, 믿음이 있다 없다, 신용이 있다 없다 하는 그런 거와 같은 일반적인 믿음으로 그렇게 이 믿음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오늘 교회의 전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 믿음을 바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이 믿음의 가치를 바로 모르게 되고 믿음의 가치를 바로 모르기 때문에 이 믿음을 무시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이 믿음은 구원 얻는 데만 쓰는 전용의 믿음입니다. 딴데는 아무데도 쓰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 믿음은 누구든지 가질 수 있는 것 아닙니다. 이 믿음은 택함을 입은 자라야 하고, 또 부르심을 입어서 중생된 자라야 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에게 선물로 믿도록 해 주시는 자라야 믿습니다.

이 믿음은 아무나따나 제가 믿는다고 되는 것 아니고 믿어진다고 되는 것 아니고 암만 믿고 단단히 믿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안 됩니다. 택함을 입은 자에게만 전용, 또 중생된 자에게 전용, 하나님이 이 믿음을 선물로 주심을 받은 자에게만 한해서 전용됩니다. 딴데는 되는 것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 믿음 가지고 “구원에 이르는” “구원에 이르는” 그러면 이 구원에 이르는 것은, 구원에 이른다 말은 구원에 도달한다 말입니다. 도달하는 것은 자기 열심으로도 이 구원에 도달 못 합니다. 충성으로도 도달 못 합니다. 희생으로도 도달 못 합니다. 아무것으로도 말입니다. 아무것으로도 도달 못 하고 이 구원에는 믿음으로만 도달합니다, 믿음으로만. 요것도 참 어려운 말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우리가 무엇을 드린다고 해도 뭐 온 지구 땅덩어리를 다 드려도 그분에게는 그런 것을 크게 여기지 않습니다. 왜? 지구 땅덩어리 이것이 당신의 것이요 또 이보다 더 큰 것도 많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무슨 돈을 몇 억대를 바쳤다고 또 자기가 자기의 아주 능력 있는 일생을 바쳤다고 자기 생명을 바쳤다고 그것을 가치로 하지 않습니다. 요거 중요합니다.

여러분들에게 갈라디아서를 많이 읽어보라고 한 것은 갈라디아서는 율법으로 의를 얻을라 하는 자는 다 멸망하고 그리스도와는 상관없다. 다만 믿음으로 의를 얻어야 된다는 것을 그것을 갈라디아서에 제일 많이 주장을 했습니다.

그러기에 이 구원은 이 믿음이라야 이 구원을 이루게 됩니다. 다른 거 가지고는 이 구원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충성하는 것도 이 믿음이 충성해야 가치 있고, 연보도 이 믿음이 연보해야 가치 있고, 또 그 사람이 깨끗하게 성결 생활을, 도덕 생활을 성결 생활하는 것도 이 믿음으로 인하여 성결 생활해야 가치 있지 믿음 떠나서 천하가 찬양하는 도덕 생활이라도, 성결 생활이라도, 봉사 생활이라도, 충성 생활이라도, 희생 생활이라도 아무 소용 없습니다. 요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라야 합니다.

그러면 이 믿음은 사람들이 믿는 믿음 꽉 찼지 않습니까? 친구도 믿고, 자녀가 부모도 믿고, 부모가 자녀도 믿고 서로서로 믿는 그런 믿음, 그런 믿음 다 소용없어. 그 믿음은 소용없고, 창세 전부터 조성하기 시작해 가지고서 예수님의 사활에서 준공을 한 믿음, 여게만 전용할라고 한 믿음, 하나님이 만드신 믿음, 하나님이 선물로 주셔서 그 믿음 받아 가지고 믿는 그 믿음입니다. 알겠습니까? 제가 조짜배기로 제가 암만 믿고 싶다고 믿는 거 소용 없어. 하나님이 주셔서 받아 가지고 있는, 받아 가진 그 믿음이라야 돼. 그러기 때문에 이는 절대 그분으로 말미암습니다. 다른 데는 들어오는 빈틈이 없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주 얼마나 어려운지. “성경은 능히” ‘성경은 능히’ 이랄 때에 우리가 ‘아, “성경은 능히” 성경은 전능의 독자적 권위성을 가진 성경 말씀이라.’ 이걸 알고 성경을 읽고 성경을 대해야 되지, 우리가 성경을 누워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로서는 이 성경을 이런 성경인 줄 알고 무릎 꿇고 보다가 약해지면 퍼대고 앉아 읽을 수 있습니다. 그게 힘이 없으면은 그래 가지고 못 읽으면 누워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이 말씀을 업신여긴 것이 아니고 자기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는 그 체력을 가졌기 때문에 그렇게 읽어야 되지 이 말씀을 멸시할 때는 그때부터 이 말씀은 멸시를 받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습니다.

이 말씀이 독자적 전능의 권위성을 가진 이 말씀인 것을 아는 그자에게 이 말씀은 나타납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혜 있고 통달한 자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에게 나타내서 알게 해 주십니다.

그러기에 이 말씀은 독자적 권위를 가지신, 없는 가운데서, 우리가 뭐 이 세상, 과학들 떠들어 쌓지마는 그 과학이 하나님이 엿새 동안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그것의 한 부분을 가지고서 떠드는 것 아닙니까? 만든 분이 크지 그 만들어 놓은 것을 몇천 년 지내서 오늘에사 발견해 가지고 이렇다 저렇다 그 아는 것이 큽니까? 만드신 이가 더 크지 않습니까? 그러기에, “능히 너로 하여금” 이 성경은 독자적 권위성을 가졌기 때문에 이 권위를 가진 줄 알고 성경은, 성경은 하나님이 죽으시고 살으신 사활의 대속으로 베풀어 놓으신 이 일곱 가지 구원, 이 일곱 가지 구원 지극히 큰 구원 이 구원을 자꾸 새겨서 깨달을 때에 이 구원은 우주와 영계를 다 차지하고 남습니다.

그러기에 이 구원을 알고 알고 또 알고 알고, 이 구원을 이렇게 지극히 큰 구원인데 이 구원은 무엇으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가?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이 믿음은 어떤 믿음인데? 영원 전부터 착공해 가지고서 예수님의 사활로 비로소 완성을 한 믿음입니다. 여게만 전용하시는 믿음입니다. 보배로운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어떻게 이 믿음을 우리가 가질 수 있는고? 하나님이 선물로 주셔야 가질 수 있는데 하나님에게 이 믿음을 선물로 어떻게 받을 수 있는가?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이 믿음을 어떻게 받을 수 있는가? 받는 유일한 방법이 무엇인가? “성경은 능히” “성경은 능히” 성경 외에는 하나님이 만드신, 이 힘들여 만드신 이 전용의 믿음을 우리에게, 이 믿음을 우리에게 주실 이는 없습니다. 이 성경 외에는 이 믿음을 우리에게 주실 이는 없습니다. 또 이 구원을 이루는 지혜를 주는 것도 성경 외에는 우리에게 줄 자가 없습니다.

그러면 여게서 성경은 우리에게 몇 가지를 주신다고 여게 말씀했습니까? 몇 가지 주신다고 말씀했습니까? 손가락으로 한번 가리켜 보십시오. 몇 가지 주신다고 말씀했습니까, 여게?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그러니까 이 성경은 우리에게 몇 가지를 주신다고 여게 나타냈습니까? 손가락으로. 다른 사람 모르요? 둘 둘. 둘 말해, 둘.

저 ○○선생은 둘 딱 말했네, 둘. 뭐? 믿음 지혜. 믿음 지혜 둘. 이거는 성경이 우리에게 이 구원을 얻는 이 지혜를 성경이 우리에게 주고 이 구원을 얻는 믿음을 성경이 우리에게 주지 다른 사람은 다른 것은 우리에게 줄 능력이 없습니다.

성경이 무슨 능력? 그는 성경은 독자적 전능의 권위를 가졌습니다. 이런데 성경은 이거 할라고 왔습니다. 이번에 지금 나타난 이 성경은 일차적으로는 우주와 영계를 창조한 하나님의 말씀이지마는 이차적으로 나타난 말씀이 성경 말씀인데 이 말씀은 진동되지 안하고 변동되고 안하고 더, 일차 창조보다도 무한히 탁월한 고차원의 이 창조를 할라고 오신 것이 이 성경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이 성경 말씀의 권위를 알고 우리가 성경을 성경으로 대우할 때에 그 사람은 성경의 혜택을 입고 이 성경을 성경으로 대우하지 않는 자는 성경의 혜택을 입지 못합니다.

저는 예수 믿은 그날부터 이제까지 늘 이 성경에 대해서 ‘육십육 권 도리를 바로 깨닫게 해 주시고 이 진리가 나를 붙들고 불쌍히 여겨서 구원시켜 주옵소서’ 하는 그것은 아마 나보다 더 기도 많이 한 사람은 별로 거게 대해서는 없으리라 내가, 뭐 물론 다른 사람 깨달으면 다 그럴 것입니다.

그저 하루도 기도할 때마다 육십육 권 도리를 낱낱이 다 바로 깨닫게 해 주시고 바로 깨달음으로 이 능력이 와서 나를 바로 실상의 구원을 이루게 해 달라는 것, 바로 깨닫게 해 달라는 이 뭐 기도는 얼마나 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서 그런지 성경 깨닫는 은혜를 저에게 비교적으로 내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더 그 은혜를 더 많이 준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내가 많이 받았다는 게 아니고 내게 대해서는 그 은혜를 제일 많이 주지 안했나 그렇게 지금 제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그러면 이 성경은 우리에게 구원을 얻게 하는 믿음이 있게 하고 지혜가 있게 하고 이 두 가지가 있게 하니 그저 무조건 성경을 듣고 읽고 지켜 행하고, 듣고 읽고 지켜 행하고 이러는 가운데에 점점 하나님 독자적으로 조성하신 전용물이 되어 있는 이 믿음은 우리에게 점점 더하여지고 또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점점 더하여집니다. 그러기에 이 구원을 이루는 전용 믿음을 더 점점 더 받을라고 하면은 성경에게 우리가 달라붙어서 성경에게 달라고 성경에게 구해야 되겠고 이 지혜도 성경에게 구해야만 합니다.

그다음에 하나만 더하고 맙니다.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신다” “구원에 이르는” ‘구원에 이르는’ 하는 요 뜻을 또 잘 우리가 깨달아야겠습니다. 구원을 잡는, 구원을 잡는, 구원을 취하는, 구원을 얻는, 그런 말보다 요게는 정확히 해 놨습니다. “구원에 이르는” 구원에 이른다는 말은 구원에 점점 도착한다 말입니다. 점점 구원에 자꾸 가까이 가서, 구원에 가까이 가서 구원에 마지막에 절정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이 구원은 기본구원인 중생구원은 단번에 이루어졌고 우리의 이 건설구원은 중복적으로 이 구원은 이루어지는 것인데 이 구원은 점차적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구원이 몇 가지입니까? 예를 들어서 제일 처음에 해방과 자유를 얻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죄에 대해서 자유, 사망에 대해서 자유, 마귀에게서 자유, 자유라 말은 죄에게 조그마치도 피동되지 안하고 마귀에게 피동되지안하고 사망에게 피동되지 안하는 이 일은 단번에 되는 것이 아니라 자꾸 차차 차차 자기가 힘을 쓰므로 점점 되어서 믿음에 이른다, 믿음에 도달한다, 믿음에 점점 점점 가까이 나아간다. 그러니까 도달한다. 믿음에 이른다.

그러기에 우리가, 일곱 가지의 예수님의 대속구원은 기본구원과 달라서 이 대속구원, 이 성화구원은 이것은 점차적으로 이루어져 나가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가 똑똑히 기억해야 됩니다.

그러면, 내가 사망을 이기는 거, 사망을 이기는 것도 차차 차차 이겨 나갑니다.

처음에는 사망에게 죽기를 두려워함으로서 일생 동안 사망의 종된 자가 사망에게 자유하고, 어떤 천하가 억만 금을 가지고 와도 죄에게 자유하는 자는 그 돈하고 죄하고 왔다고 죄에게 복종하지 않습니다. 내가 죽을 경우에 있을 때에 나를 살리는 생명하고 죄하고 같이 왔다고 해 가지고서 살기 위해서 죄를 짓지 않습니다.

돈 때문에 죄를 짓지 안하고 또 살기 위해서 죄짓지 안하고 또 마귀에게 마귀가 어떻게 한다고 할지라도 그로 인해서 죄짓지 않는 거. 그러면 자유한다 말은 사망에 자유한다, 그때 내가 여게 교역자회 때에 한번 말이 났는데, 사망에 자유한다, 죄에 자유한다, 마귀에게 자유한다. 자유한다는 말은 범죄하지 않는다 하는 그말입니다.

잘못하면 죽음에 자유하는 것이 뭐인가? 죄에게 자유하는 게 뭐인가, 마귀에게 자유하는 게 뭐인가? 마귀에게 자유하는 것도 마귀로 말미암아 죄짓지 않는 것이 자유하는 것이요, 또 사망에 자유하는 것도 사망으로 인하여 범죄하지 않는 것이 사망에 자유하는 것이요, 또 죄에 자유하는 것은 죄로 말미암아 죄를 범하지 않는 것이 죄에 자유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차차 차차 자라가게 됩니다.

이래서, 시간 너무 많이 가서 오늘 저녁에는 또 요만치 하겠습니다. 오늘 저녁에 배운 것을 여러분들이 집에 가서 읽어 봐서,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요거 무슨 말인가?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요거 무슨 말인가? “성경은 능히” 요거는 무슨 말인가? “너로 하여금” “너로 하여금” 너로 하여금은 또 무슨 말인가? ‘너희로 하여금’ `너희들로 하여금' 하지 안하고 “너로 하여금” 단수로 “너로 하여금” 무슨 말인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이라는 믿음은 무슨 믿음인가? 이러기 때문에, 여게만 전용하기로 썼기 때문에 우리에게 하나님이 이 믿음을 줘서, 이 믿음, 우리에게 이 구원에 대해서 믿어질 때는 벌써 하나님이 줬습니다.

뭐 생각할 게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힘들여 만든 믿음을 하나님이 나에게 줘서 믿는 믿음이니까 그만 믿으면 됩니다.

믿으면 되는데 그러면 쉬운가? 믿으면 되는데 그거는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 자는 이 구원에 대해서 믿어지는 믿음이, 믿어지는 그 믿음이 이 쌀내끼만치도 안 생깁니다. 절대 안 생깁니다. 우리에게 믿어지는 믿음이 작으나 크나 있는 그것은 이것이 어떻게 큰 믿음을 하나님이 선물로 우리에게 주셔 가지고 된 것이지 제 주관의 생각으로 된 것 아닌데 마귀란 놈이 와 가지고 ‘네가 뭐 믿었다 의심했다 하지 않느냐? 그거 네 주관 생각이지.’ 이러기 쉽습니다. 주관 생각이 아닙니다. 요거 얼마나 구별하기가, 인제 요걸 구별해서 알아야 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그러면 이 성경 말씀이 믿음과 지혜를 우리에게 만들어 줍니다. 그외 딴걸로 만들지 못합니다. 구원에 이르게 한다. 구원은 몇 가지인가? 구원은 여러분들이 잘 아는 대로 예수님의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일곱 가지 큰 구원 받은 거 그것을 가리켜서 구원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거는 공과에 일곱 가지가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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