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되어지는 이차 창조

 

1984. 3. 18. 주일오후

 

본문: 에베소서 1 장 22절-23절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성경이 증거하는 기독자의 구원이 지극히 크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 부인 합니다.

성령의 감화가 아니고는 하나님은 절대 불변의 계약으로 우리에게 선포한 이  계약의 말씀이지마는 사람들은 그것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사람 중에는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지음을 받아 난 사람들이 있고 또 이 목적을  이루시는 데에 이용을 당하기 위해서 지음을 받아 난 사람도 있습니다. 이 두  종류로 분류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하나님은 하후  하박의 공평이 없지 않느냐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공평이 있고 없는 그것은  하나님 당신이 담당해서 처리하실 것이니 공평이 없으면 불평의 시비를 하든지  또 대항을 하든지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불의가 없습니다. 또  하나님이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지으신 것과 같이 당신의 뜻대로 하는 일을  아무도 간섭하지 못하고 거기에 존재에 대해서도 참가하지 못하고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도 아무도 변개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짧은 세상이라는 한 토막에서는 사람들의 모든 그 화복이  있다고 말하고 불만 불평이 있다고 이렇게 말을 하는데 하나님의 심판을 거쳐서  아래는 영원한 지옥 유황불 구렁텅이요 하나는 위에 있는 영원한 하늘나라입니다.

하늘나라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유황불 구렁텅이에서도 마지막에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그 하시는 일에 감사를 해서 모든 존재들이 주라고 시인하여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우리의 좁은  견해로서는 그걸 측량도 못 하고 이해 못 합니다. 다만 이 신구약 성경은  구속받은 우리들의 구원에 관해서 말씀하신 것인데 우리들이 할일은 하나님이  주시는 이 구원을 잘 이루어 나가는 것이 우리의 할일입니다.

 그 구원을 위해서 이 신구약 계약서이요 하나님의 모든 구원이요 은혜인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것인데, 이 말씀이 사람의 지식에서 난 것  같으면 사람의 지식들이 다소라도 이해하고 인정하고, 이해하고 인정하는 그  차이는 있고 양의 차이는 있지마는 다소라도 있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딱 잡고 듣지 안하면 들어야 소용이 없습니다. 참 이 구원은 외식이 원수입니다.

이 구원 도리는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에 타락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순전히 별개. 타락지 아니한 자 존하신 창조주 그대로의 나오는,  온전하신 그분에게서 나온 것이 이 말씀이요 또 이 약속이요 구원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신의 감화를 받지 안 하고는 아무도 이 사실을 인정하지 못합니다.

 자기가 택함을 입은 자인지 택함을 입지 못한 자인지, 자기는 중생된 자인지  중생되지 아니한 자인지 그것은 알기 쉬운 것은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이 단 한  마디라도 인정돼지면 그것은 성신의 감화가 그에게 시작된 그 증거입니다. 어떤  사람이 저에게 말하기를 나는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불행스럽게 예정을 했으며  나에게 행복을 예정하지 안했을까 해서 어떨 때에는 부애가 나고 좀 마음에  원망스러운 그런 마음이 생겨진다고 그렇게 말 합디다. 그렇게 여겨지는 그  자체가 택함을 입은 증거입니다. 택함을 입지 아니한 사람은 이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말하든지 거기에 대해서 자기가 웃기나 하고 아주 무시해 버리지 거기에  대해서 아무런 관련성을 감각하지 않는 것이 그것이 불택자들입니다. 벌써 '너는  지옥간다' 할 때에 지옥간다는 그 말이 그에게 무신론자라 할지라도 들을 때에  분개한 마음 이 나는 그것은 그것이 택함을 입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거기에 대해서 아무런 감각이나 자극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성신의 감화를 받지 안하고는 이 말씀을 '참되다' 이렇게 인정  되어지지 않는 것이요, 또 성신의 감화를 받기를 시작한 사람이라도 자기 안에 이  진리를 가루는 악령과 악령의 소유가 되어 있는 죄악이 하나씩 이것이 해결  되어져야 믿어지는 믿음이 생겨지는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가로막는 그 장벽입니다. 죄가 있는 것 만치 하나님의 도와 하나님의 구원은  보이지 안하고 가루어져서 희미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이 말씀이 믿어지지 않는  것은 이 말씀이 믿을 만한 권위가 없어서 그러한 것이 아니고 자기 속에 악령과  죄악이 이 하나님의 생명의 빛을 가리워서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지 아니하고 또 거기에 대해서 욕망이나 갈급이 생겨지지  아니하는 사람은 자기가 시험삼아 담을 헐어 볼 것입니다. 마치 무덤속에 썩어  있는 나사로와 주님 사이에 가로막힌 그 담을 헐 때에 담 안에 있는 나사로와  주님과에 음성이 통할 때에 그 나사로는 썩어서 냄새나는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하나의 주님과 죽음과의 연결이 되면 살아난다는 그 하나의  형식의 계시입니다. 자기가 믿지 아니할지라도 자기에게 있는 자기가 아는 대로의  이거는 틀렸다 싶은 그런 것을 하나씩 고쳐 봅니다. 고치면 눈이 뜨입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씩 실행을 하면 눈이 뜨입니다. 그러면 믿어져서 하나님의  이 약속의 말씀을 자기가 바로 보고 바로 알고 바로 깨닫게 되면 순교 못 할  사람 하나도 없고 또 자기 위해서 살 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주를 위해서, 사는  것이나 죽는 것이나 그분을 위해서 살지 않을 자도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다  깨닫지 못하고 몰라서 그런 것이지.

 그러기에, 이 말씀을 믿어지지 않는 사람이 많다고 우리는 그것을 권위로 봐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믿어지지 않는 사람이 많다 그말은 죄에게 가리워짐을 받은  사람이 많다는 말과 같은 말이고, 또 믿어지지 않는 사람이 많다 그말은 택함을  입지 아니한 사람이 많다 하는 그말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신구약 성경에  계약으로 선포해 놓은 이 말씀을 참되다 인정하려고 애를 쓰고 인정이 되도록  노력을 해야 됩니다. 노력을 하는 것도 성경 말씀을 읽고 듣고 그것도 자기가  아는 대로 잘못된 것을 하나씩 둘씩 고쳐서 말씀대로 그대로 고쳐 나가면 또  알게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회개로 하나님에게는 나아가는 방편이 되어 있고. 또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를 모든 면으로 바로 맺어가는 그 방편은 믿음으로 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믿어지지 않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그 사람을 참 무한한  그 멸망 속에 들어 있는 사람으로 알아저 구원하려고 노력해야 되지, 믿어지지  않는 부인하는 사람이 많다고 거기에 따라서 자기가 많은 사람이 부인하니 나도  어떻게 믿을 수가 있겠느냐' 그렇게 생각 하는 사람은 제 생각대로, 생각하는  사람이지, 성경은 성신의 감화가 없으면 믿어지지 안하고 또 자기가 믿어서 하나  둘 경험하고 체험해 보지 아니하면 믿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가 되시고 또 우리는 만물의 중보자가 되는 교회를  이루어 나간다 이것이 우리 두 가지 목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이 목적이  이루어짐에 따라서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충만이 우리에게 와서 충만해짐으로  하나님은 기쁨이 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시요 주재시기 때문에 당신의 유일하신  기쁨은 당신이 줄 때에 기뻐지고 받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그 본성이 지음받은 존재이기 때문에 어디서든지 받아야 좋아하고 주는  것은 꺼려하는 것이 그것이 피조물의 근성이요, 창조주는 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우리가 받는 것을 좋아하는 그 피조물 존재의 본질과 본성을 가진 것이 근본  지음받을 때에는 하나님 한 분에게만 받고 얻고 모든 피조물에게는 피차가 다,  주는 것 뿐입니다. 그런 것인데. 타락한 후에는 하나님과 끊어지니까 하나님에게  받는 것 보다 피조물들에게 받는 것으로써 바꾸어졌고, 그보다 타락한 것은  피조물에게 받는 것보다 피조물을 탈취하는 것으로써 타락해서 바꾸어진  것입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에게는 받는 것으로 당신에게 영광됩니다. 예수님을 가리켜서  '이는 나의 사랑하는 자요 나의 기뻐하는 자라' 하는 그 말씀은 예수심이  하나님을 무엇을 대접을 해서 그런 것 아닙니다. 거기 발표하기를 '이는 나의  사랑하는 자요 나의 기뻐하는 자라. 이는 나의 아들이라' 이랬습니다. 아들이라  말은 순전히 그 전부가 하나님에게 받아서 생겨졌다 그말이오. 하나님에게 받아서  생겨졌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당신의 것을 많이 받은 자를 더 기뻐하시고,  또 당신의 온갖 것을 많이 받은 자를 기뻐하시고, 줌으로 기뻐하시고 하나님께  받은 그것을, 하나님에게 자신이 모든 것을 공으로 받았습니다. 모든 것을 공으로  받은 그것을 또 모든 피조물에게 공으로 줄 때에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인정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는 하나님의 도는 하나님에게 거저  받고, 공으로 거저 받고 거저 받는 것이 하나님에게는 유일의 기쁨이요  만족입니다. 또 거저 받았으니 거저 만물에게 주는 것입니다. 만물에게 줄 때에,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고 기뻐하시는 그 기쁨이, 그것을 받아 가지고 만물들에게  줄 때에 하나님이 기쁘신 그 기쁨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서 우리 기쁨이 됩니다.

이 기쁨이 모든 만물들에게도 다 이렇게 기쁨이 되어집니다. 그런고로, 천국의  기쁨은 줌으로 기쁨이 천국의 본질과 본성이요 또 바른 법칙대로 받음으로  온유해지는 것이 하늘나라의 법칙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받을 때에 바른  법칙대로 받으면 온유해집니다. 그 법칙을 어겨서 받으면 반드시 불안해지고 그  뒤는 화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천국은 줌으로 기쁨이 되고. 또 그 주는 것을 바로  받으면 온유가 되고 받은 것을 거져 주면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받는  것이 받을 수 없는 자에게. 줄 수 없는 자에게 그것을 받았을 때에는 온유하지  못합니다. 원만한 인격을 가지지 못하고 원만한 평강을 가지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좀 이거 복잡한 말이지마는서도, 하나 예를 든다면, 그 사람이 이  하나님의 계약한 이 계약대로 해서 받는 것, 계약대로 받는 것은 이 계약주  하나님에게 받는 것입니다. 계약대로 해서 자기에게 오는 것도 있고 계약을  어겨서 오는 것도 있습니다. 계약대로 해서 오는 것은 그가 한없이 든든하고  염려없는 온유가 이루어집니다. 온유라는 말은 그 사람 마음이 누굴누굴하이  그렇게 뜨뜻한 아주 그런 것을 가리켜서 성경이 말하는 온유는 아닙니다. 온유는  그 형언할 수 없는 든든한 배경과 든든한 근원을 가졌기 때문에 평안하고  담대해지고 모든 일에 넉넉하고 충만해지는 그 심리의 태도를 표현해서 온유라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성경 말씀을 어겨서 무엇을 받았을  때에는 그 사람이 아무리 기쁘고 즐거워해도, 자기가 자기를 깊이 살피지 못해  그렇지 기뻐하고 즐거워해도 반드시 조금 파고 들어가면 그 안에는 흑암이 들어  있는 것을 자기가 느끼게 됩니다. 이러니까, 그 사람은 결국은 그 온유가  없어지고 마음에 부담과 불만이 생겨지는 것이 인생의 형상입니다. 인생의 본질과  본성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이 이렇게 좁아서, 악령은 자꾸 우리를 좁게 만듭니다. 넓게  생각지 못하게 하고, 길게 생각지 못하게 하고. 또 종류적으로 하나에서 둘,  둘에서 서이, 서이에서 열 이렇게 많은 다수로 생각지 못하게 하고 다수를 자꾸  소수로 이렇게 줄이고, 넓은 것을 좁게 줄이고, 또 많은 세월인 긴 것을 아주  짧게 이렇게 줄여서 악령이 자꾸 그렇게 사람들을 유혹시킵니다. 그러나 성령은  자꾸 넓게, 길게. 깊게, 많게, 모든 다각도 그 다각면으로, 다종류로 이렇게 많은  것을 자꾸 넓혀서 자기가 알고 생각하도록 그렇게 하는 것이 성령의 감화입니다.

 그런고로, 이 성경에 있는 도리를 자기가 책상위에 앉아서 신구약 성경을  읽으면서 이 도리가 뭐라고 우리에게 가르치는고 하고서 연구해서 알라고 애를  써도 껍데기 밖에는 모릅니다. 그 껍데기 속에 있는 것을 아는 데에는 껍데기  인간의 지식으로 이렇게 성경이 이렇게 말해 놨다 하는 그것만 알지 그것이  자기에게 생명이 되고 세상을 이길 만한 권위적으로 믿어지는 그런 지식을  가지지 못하게 됩니다.

 성경을 보고 연구하는 그 연구가 한 깊이 더 들어갈라고 하면 고대로 제가  실행을 해 보면 한 꺼풀 더 들어갑니다. 또 실행을 하는. 그 실행에서 한 꺼풀 더  들어갈라고 하면 참고 기다려 봐야 합니다. 그러면, 그 아는 것이, 기다리는 것은  혹은 일 년, 혹은 십 년. 아브라함은 세상을 떠날 때에 '나에게, 삼 대나 약속한  이 가나안을 하나님이 주시지 안했다' 이렇게 생각지 아니하고 떠나면서 '나에게  이 가나안을 주시지 안하는 것은 영원히 변동되지 아니할 그 나라를 나에게  주시려고 하신 것이라' 그렇게 그는 인내로서 끝을 마쳤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는 그 이름을 말씀할 때에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제까지는 하나님의 도를 이렇게 사람들이 인정하기 어려운 말씀을  말했기 때문에, 왜 인정하기 어려운 말씀인가? 사실대로 쉬운 말씀을  했지마는서도 타락한 인간에게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하늘의 것이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이러니까, 하늘의 것이니 성신의 감화를 받지 안하고는  아무도 깨달을 수 없는 것인데 많은 사람들이 부인하니까 권위가 없이 '아마 그게  참 실상이 아니고 거짓이 들어있는가 보다' 이래 가지고 많은 사람의 부인의  충격을 받아 가지고 자기는 믿음이 흔들리는 이런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지금  이런 말을 자꾸 하는 것입니다. 지금 오후에 증거할라 하는 이 도를 말하는 것  아닙니다. 도를 말을 안하고 다만 도에 대해서 사람들이 어떻게 견해하고 있느냐  하는 그것을 지금 말하고 있기 때문에 이거는 서론에 지나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순전히 하늘의 것이기 때문에 땅의 사람들이 인정이 안 된다  조그만치라도 인정되는 것은, 성신의 감화를 받지 안한 사람은 조그만치라도 인정  안 된다, 조금이라도 인정되면 택한 자요 성신의 감화를 받은 사람이다.

 악령은 사람들을 저희 것을 가지고 죽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악령의  역사입니다. 악령은 에덴동산에서 인류 시조 해와와 아담을 유혹시켜서 멸망시킨  악령은 (저 뒤에 있는 사람들도 와서 왔다갔다 그러지 말고 말씀을 들으십시오.

말씀을 안 들으면 안돼. 여러분들이 말씀을 들어서 꽉 잡고 있으면은 빨리, 열  시간 배울 것이면 한 시간도 안 되어서 다 알 수 있는데.)  이렇게 하늘의 것이기 때문에 땅에 있는 사람들이 모른다. 악령은  에덴동산에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하고 제 주장을 사람들에게, 인식시켜  가지고서 제 주장을 딿도록 하려는 그것이 악령의 목적이요 소행인데 그 따르면  그 결과는 사망입니다. 그러기에, 이 악령이 저희 것을 선전하고 하나님의 이  참된 생명의 도는 자꾸 거짓이라고 증거해서 가루고 선전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악령과 악령의 그 군대들에게 피해를 입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를 바로 알기가  어렵고, 믿어지지를 안하고 어렵고, 또 위의 것이기 때문에 믿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는 순전히 예수님의 공로로 인해서 성신의 감화를  받아야서만 비로소 이 위의 것을 자기가 깨닫게 됩니다.

 그런고로, 많은 사람들이 부인하는데 대해서 택함을 입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하는 그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되고, 하나는 악령의 감화를 저 사람은 벗어나지  못했다 성령의 감화를 받지 못했다, 못했다는 그것을 우리가 또 이해해야 되겠고,  그러니까, 믿은 사람들이 부인한다고 우리가 부인하는 그런 어리석은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구원은 순전히 당신의, 위에 하늘에서부터 내려온 당신의 것을  당신의 혼자의 힘으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아무 무슨 피조물의 어떤  것으로 아니고 혼자의 힘으로 주어집니다. 주어지는데 그는 절대자시요 또  창조주시요 주재시기 때문에 아무리 무엇이 방해를 해도 당신의 목적대로  작정하신 그대로 구원을 이루어가고야 맙니다. 우리가 조브라운 마음을 가지고  이렇게 악령의 역사가 이렇게 많이 심하니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서 많이 제재가  있겠다 이렇게 생각하는 그것은 믿음이 없는 소행입니다. 아무리 많아도 우리  배후에 계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더 큽니다. 큰데, 다만 우리가 생각할 것은  하나님이 여기에 대해서, 내가 어느 정도의 거기에 대해서 수종할 내게 분담된  것이 있는데. 내게 분담된 그 의무와 책임을 내가 하지 못해서 이 구원이  중단되고 있는가 그런 것은 우리가 살펴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는 조금도 염려하거나 의심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가서 전도할 때에 '예수 믿어 구원 얻으십시오' 했으면 나 할일  다 했습니다. 그 사람이 무신론자라고 무신론 주장들이 어떻게 한다 할지라도  상관없습니다. 나는 그걸 전하는 것으로서 거기에 대해서는 다 했습니다. 혹은  거기에 대해 뒤에 자기가 기도할 것을 안 한다든지 뭐 다른 의무의 분담된  의무는 다시 있을지라도 그것으로서는 완성된 것입니다. 그러면, 그 말씀을  가지고 그 사람을 하나님께서 구원하실라면 구원하시고 버리실라면 버려두시고  그것은 하나님의 자유에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가리켜서 성경에는 많은  증거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가 인간에게 나타났을 때에 그저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그럴 수 없는 일이라 하는 그런 것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이행해 가지고 되는 그런 일이 있기 때문에 기독교는,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기독교는 비합리적이다. 인간이 아는 이치에 맞지 않는 비합리적이  기독교다.' 또 '이거는 비자연적이다. 이거는 비과학적이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물위로 걸어오시는 그것도 인간의 과학으로 연구 할  때에는 도무지 타당성이 없습니다. 이러니까, 신신학자들은 말하기를 물위로  걸어오신데 거기에 그 물밑에 능이 있어 가지고서 그 능으로 예수님이 타고  오셨다, 물위에 걸어온 것은 아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그것이 신신학자들이  말하는 것중에 한마디입니다.

 또 나아만 대장을 그 엘리사가 요단강에 가다가서 일곱 번 씻고 가라 그라면  나으리라 하는 그런 말도 왜 그 나아만 대장이 분노해 가지고 갔느냐? 그것은  도무지 비합리적이요 비과학적이요 비자연적이라. 자연적이라 말은 이제까지  역사에 그런 일이 없었다 그말입니다. 그러나 그 딿는 자들의 말을 듣고 가서 해  보니까 됐다 그것입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실 때에 그 당한 그 열 가지  재앙이라든지, 그 후 출애굽 후에 된 것이라든지 그런 것은 다 하나님의 인도는  인간의 지식 범위 내위 것이 아니다. 인간의 경험 범위 내의 것이 아니다. 역사  내의 것이 아니다. 역사 밖의 것이다. 인간의 경험 밖에 것이다 인간이 아는 이치  밖의 것이다, 그런 것을 타고 하나님의 선민들을 구출 해 냈고 그 사실을  하나님의 선민들은 믿을 때에 됐습니다. 모세와 아론을 통해서 열 가지 재앙을  내린 것도 그게 세 가지까지는 인간의 요술로서도 그 참 기이하게도 그런 인간의  상상 못할 요술이 있다 해서 세 가지 까지는 있었지마는 그다음의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없는데, 없는 그것을 사실로 인정하고 하라는 대로 순종할 때에  그런 이적은 다 나온 것이 열 가지 재앙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하나님의 도에서 말씀하는 이것을 인간들이 인정 안  한다고. 역사에 그런 일이 없다고 부인하는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가지면 안  됩니다. 부인하는 그 사람도, 이것도 부인하지 말라, 아무리 세상이 비합리적이라  비과학적이라 비역사적이라 비통계적이라 비자연적이라 이렇게 말해도 그들은  성령을 받지 안 했고, 혹은 불택자인지, 택자라고 해도 아직까지 부름을 받아서  중생되지 아니한 자인지 모른다. 그들은 모르는 창조주의, 주권자 주재자가  말씀하시고 그분이 이루실 일인데 그들은 몰라 그렇다. 이렇게 지금 여기에서  설교를 하는 것도 그런 사람들이 되지 않도록 위해서 당신이 하시는 역사지, 하고  안 하고 당신의 뜻대로 그대로 돼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왜 이 말씀을 지금까지 말하고 있느냐 하면. 우리가 일생 동안 벌어서  날뛰어도 그저 조그만한 빌딩 한 채도 못 가지고 사는 것이 우리들이고 또  죽자껀 애를 써도 조그만한 한 몇십만 평 몇만 평하는 그 만한 대지도 가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들인데. 예수님을 믿으면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다 자기  것이 된다. 또 모든 피조물 위에서 모든 피조물의 중보자가 된다,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피조물들에게 이 지위와 사명을 가지고 감당하게 된다 이러니까 이거  모든 사람들이 다 멸시한다 그말입니다. '그 참 예수교는 전부 거짓말뿐이고  도무지 물에 넣어도 붓지 안 할 그런 말 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 말 하니  그것은 불택자들이 많다는 그런 증거고, 또 많은 사람들이 그 말 하는 것은  성신의 감화를 받은 사람들이 그렇게 희귀하다 하는 그것이고, 또 중생자라도  하나님의 도와 가로막아 있는 죄악이 사람들을 많이 가루고 있다 하는 그것을  우리가 알아야 될 터인데 그렇게 알지 안하고 자꾸 자기가 부인해 버릴라 하는,  부인해 버리는 그 사람도 역연 내나 이런 조건에 걸려 가지고서 그와 같이  믿어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은 보배라. 이렇게 지금은 영원 미래를 두고 건설하는 천국입니다.

미래를 두고.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그리스도 안에 통일이 되어서, 그 나라는  알패와 오메가 나라이기 때문에 다시는 변동이 없는 나라다. 그 나라를  건설하는데, 그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과학으로 건설하지 않습니다. 과학으로  건설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과학으로 건설하는 것 같으면 좀 인정할 것인데  과학 그런 것 가지고는 건설을 못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건설하느냐? 없는  가운데에 홀로 계신 그분이, 그분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없을 때에 그분이  '영계야 돼라' 할 때에 그 한 마디에 영계가 됐습니다. '물질계야 돼라' 할 때에  물질계가 됐습니다. 또 '물과 육지가 나누어져라' 할 때에 나누어졌습니다. 또  '바다야 모든 생물을 내라' 할 때에 내렸습니다. 그분이 없는 가운데에서 엿새  동안에 이 모든 것을 말씀 가지고 그 말씀을 할 때에 그 말씀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일차 창조라 하는 것인데 일차 창조는 영원히  없어지지는 안 할 것들이지마는 많이 변동되는 일차 창조요. 이차 창조는  없어지지도 안 할 뿐만 아니라 영원히 변동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변동되지  아니할 나라가 이차 창조의 것입니다.

 이차 창조는, 이 창조를 이루시는 데에 벌써 근 육천 년이나 돼 갑니다. 육천  년이나 돼가는 것은, 일차 창조의 것은 순전히 그거는 하나님의 단독, 단독  창조적으로 이루어졌지마는 이차 창조의 것은 일차 창조의 것이, 일차 창조의  것이 그것이 다 고대로 창조된 그 자체의 종류대로 구비되어 있는 그 완성품으로  창조되어 있는 것인데, 그 일차 창조의 것이 이 창조주이신 주재자이신 이분이  말씀하시는 것을 일차 창조된 그것이 그 말씀하시는 것을 받아서 안정하고 첫째  인정하고 인정하는 대로 움직이는 그 움직임을 통해서 이차 창조의 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왜 이것은 이렇게 하느냐? 이래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  일차 창조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그 본질과 본성을. 따라서 짓기는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그 신성을 만물을 보아서 그 가운데 나타나 있다 이렇게  말했지마는서도 이차 창조의 것은, 하나님의 그 모형이 인간에게 제일 많이  있었는데 인간에게 있는 그 모형이, 이제는 모형 그것이 하나님의 원형과 머리와  몸과같이 결합이 되어 가지고서 이렇게 움직여지는 이런 결합의 역사. 모든 천상  천하의 피조물을 발 아래 두는 이 피조물의 복의 기관이 되고, 하나님의 대리자가  되고, 하나님은 머리고 몸이 되어지는 이와 같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서 아주 이  피조물 위에 탁월한 그런 이차 창조의 존재가 되어지기 때문에 이것도 하나님의  한 분의 역사로 되어지는데, 하나님 한 분의 역사로 되어지는 그 하나님은 무형의  존재입니다. 영체도 없고 물체도 없는 무형의 존재입니다. 무형의 존재인데,  무형의 존재 그분이 아무 것도 보이지 안하고 아무것도 없는 무형의 존재인데  그분은 완전자십니다. 그 완전자가 일을 하신다는 것은 다만 그분의 의사를,  의사를 발표하는 것, 발표하는 이것을 가리켜서 성신의 감화, 영감이라 이렇게  말해, 영감이라.

 그러면, 하나님은 엿새 동안에 우주를 지었는데 뭘로 지었느냐?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의 발표인 영감으로 지었습니다. 영감으로 지었는데 그 영감이 뭐이냐?  영감이 하나님에게서 나올 때에는 영감이라고 하고 그 영감이 거기에서 나와  가지고 역사할 때에 그것을 가리켜서 진리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진리가  모든 것을 창조했습니다. 진리가 창조했는데, 진리가, 창조물 피조물 모든  피조물이 있기 전에 진리가 있었고, 진리가 있기 전에 영감이 있었고 영감이 있기  전에 하나님이 제셨습니다. 이래 가지고, 그러면, 하나님이 이 우주를 뭘로  지었느냐? 하나님이 지으셨다. 하나님이 어떻게 지었느냐? 하나님이 당신의  뜻으로 지으셨다. 당신의 뜻이 뭐인데? 아, 당신의 영감으로 지으셨다. 당신의  영감이 뭐인데? 당신에게서 나온 참된 이치 진리로 지으셨다. 그러면 진리가  뭐이냐? 진리가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말씀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일차 창조도 전부 그대로 됐습니다. 요거 참 좀 알기 어렵습니다. 일차  창조가 다 그렇게 됐는데, 이차 창조도 뭘로 가지고서 이차 창조가 돼 가지고  다시는 변동없는 것, 완전의 것. 영원의 것, 불변의 것, 영생의 것 이런 것이  이루어 지느냐? 이루어지는 것은, 이루어지는 것은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 사람의 자의식, 자의식을 이것을 통해 가지고서 이루어지는데, 자의식을 통해  가지고서 자의식이 이루는데, 인간의 그 사람의 자의식이 이루는데 자의식이  이루기 전에는 뭐이 이루느냐? 진리가 이룹니다. 진리가 이루기 전에는 뭐이  이루느냐? 영감이 이룹니다. 영감이 이루기 전에는 뭐이 이루는가?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한 분 일하시는 것이 영감으로. 그다음에 진리로, 그 다음에  인간의 자의식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일차 창조의 것을 통해 가지고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루어지기 때문에, 하나님도 그대로 변하지 안하고 계시고  영감도 그대로 있고, 영감이 나와 가지고서 뭣 됩니까? 영감이 나와 가지고 뭣  됩니까? 진리. 진리가 나와서 우리에게 뭘로 나타났웁니까? 말씀입니다. 내나  진리나 말씀이나 하나라 말이오. 말씀인데 여기에서 하나님이 영감으로 진리로.

이제 신구약 성경 말씀이. 이 계약 이게 진리입니다. 진리로, 여기에서 일차  창조의 것을 통해 가지고서 영원 무궁한 완전한 것이 이루어지는데 일차 창조의  것과, 일차 창조는 변동될 것 불완전한 것들인데 불완전한 이것을 이제 이차  창조로 영원 완전의 것을 만드실라고 이차적으로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진리를  이렇게 나타났으니까 그다음에 일차 창조인 이 인간과 고 연결이 되어져야  합니다. 요 연결이 되어야 요게 되어지겠는데 고 연결이 되어질 때에고  연결되어지는 고 연결을 가리켜서 뭐이라고 했습니까? 그걸 성경에 뭐이라고  말했습니까? 뭐라고 했지요? 하나님이 계시고, 영감이 나왔고. 영감이 이제  진리가 됐고, 진리가 일차 모든 만물을 창조했고, 엿새 동안에 창조했습니다.

진리가 창조했소. 진리가 창조한 걸 가리켜서 진리가 밖에 나오니까 하나님  말씀입니다. 내나 그 말씀이 한층 들어가니까 진리요 그 진리가 한층 더  들어가니까 영감이요 그 영감이 한층 더 들어가니까 하나님에게서 하나님의  역사가 나왔습니다.

 이래 가지고 일차 창조를 했는데 하나님은 일하실 때에 무슨 이 도구를 가지고  일하지 아니하시고 이런 무슨 이십 세기에 자랑하고 있는 무슨 뭐 원자탄이나  뭐이나 이런 것 가지고 일하지 안하십니다. 당신은 그런 가지고 일하지 안하시고  무형의 존재이신데 왜 무형의 존재냐? 그는 완전자이시기 때문에 형체 속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분은 무형입니다. 그런데, 무형의  존재인데. 그분이 홀로 계시다가서 움직이신 그 첫 움직임이 뭐입니까? 하나님의  뭐입니까?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기에, 이 하나님의 목적이나 하나님의  예정이나 하는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의지 안에 있는 그 순서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의지,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뜻의 순서를 가리켜서 목적을 정하셨다  목적을 위해서 예정을 하셨다 그렇게 우리 사람들 말로 발표합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계시고 그분이 계시고 그분에게서 첫째로 작용된 것이  무엇입니까 작용된 것이? 작용된 것이 뭐입니까? 뜻,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뜻이  이 하나님 자체 밖에 와 가지고서 어떤 존재에게 역사하려고 당신의 뜻은, 당신  안에 있는 그 뜻이, 이제 그 당신 안에서 그 뜻이 나와 가지고서, 썩 나와 가지고  어떤 없는 존재 가운데에, 없는 데에 그것을 하나 뭐 해 보실라고 이래 작용을  하든지, 이미 있는 존재에게 또 이렇게 접촉을 해 보든지, 있는 존재에게 접선을  하든지 없는 존재들에게, 없는 존재들에게, 없는 데다가 역사를 하든지 할 때에  그것을 가리켜서 뭐이라 합니까? 영감, 영감. 영감이, 영감이 나와 가지고서 이  피조물을 접촉을 할 때에, 영감이 나와서 피조물을 접촉할 때에 그 접촉하는 것을  보고서 그것을 가리켜서 뭐이라고 합니까? 진리입니다. 진리. 그 진리가 이제  모든 만물을 지었는데 그 진리를 성경에 표현하기를 뭐라고 표현했습니까? 말씀,  이러니까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무형의 완전자로서 당신이, 당신이 일차적으로 움직이실  때에 그 움직임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뜻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그 뜻이  이밖에 나와서 외계에 나왔을 때에 가리켜서 영감이라. 영감을, 영감 그것을  외계에서 말할 때에 진리라, 말씀이라 이렇게 말하는 데. 말씀으로 지었다 진리로  지었다 같은 말입니다. 영감으로 영감이 어찌 짓느냐? 영감이 진리로 지었다,  영감이 말씀으로 지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존재는 말씀으로 지어져서 일차  창조의 것이 다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에 없는 모든 것을 다 창조하신 것이  하나님이 말씀으로 창조했습니다. 말씀으로 창조했는레, 요한복음 1장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하는 그 말씀은 하나님의 이름을 가리켜서 말씀이라고 했고  영감이 나와서 진리된 그 말씀을 가리켜서 말씀이라고 한 것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다 하는 그 말씀과, 요한복음 1장에 있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이시니라 하는 그 말씀과 태초에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는 그 말씀과 같은 말씀입니까 다른  말씀입니까? 네? 같은 말씀입니까? 다른 말씀입니까? 요한복음 1장에 있는 그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하는, 그 말씀과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했다 하는 그 말씀과 그 두 말씀이 같은 것입니까 다른 것입니까? 같다고  생각하는 분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다르다고 생각하는 분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네. 다릅니다. 다르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버떡 들어봐요, 똑똑히.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네, 다릅니다. 요한복음 1장에는 그 신격을 가지신 생존하신  신격의 존재 제이위 성자를 가리켜서 말씀이라고 했고.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  했다 하는 그 말씀은 우리에게 있는 말씀이니 신구약 성경 말씀과 같은 이런  말씀입니다. 그러면, 제 이위인 말씀이라는 이 하나님이 말씀을 가지고서 천지를  창조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에게 이 신구약 성경 말씀에 나타낸 이 말씀은 곧 없는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일차 창조하실 때에 이 말씀을 가지고서 만물을 '돼라,  있으라' 할 때에 그대로 이루어진 그 말씀의 권위와 이 말씀의 권위와 꼭  같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 하는 그 말씀의 권위나  우리에게 신구약 성경 말씀이나 꼭 권위가 같습니다. 그런데, 이 악령들은 사망케  하는 마귀가 말한 그 말과 같은 그런 말과 같은 말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말씀은 마귀도 이 말씀이 지었고, 이 말씀은 마귀와 모든 존재를 지은 창조의  능력을 가진 이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처음에는 변동될 것 이런 것들을 일차로  창조하시고, 이차에는 변동되지 아니할, 이것은 참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거룩하고  영원하고 불변하고 하는 이것을 창조하시기 위해서 나타나신 말씀이 이 신구약  성경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을 가리켜서 말씀이라 소리 안하고 이 말씀을 가리켜서 뭐이라  합니까? 이 말씀을 가리켜서 뭐이라 할 수 있습니까? 진리, 또 진리가 진리로  나타나기 전에는 또 뭐라고 말합니까? 영감 또 영감으로 나타나기 전에는  뭐이라고 말합니까? 하나님의 뜻. 이렇게 이 순서로 나타나서 역사하시는데 이  말씀이 일차 창조의 된 이것을 가지고 이차 창조를 하려고 이 말씀이 오셨으니,  영감이 오셨으니, 진리가 오셨으니, 하나님의 뜻이 오셨으니. 이차 창조를 하려고  하는데 이 하나님의 뜻도 옛날 창조 때 그때 뜻이나 꼭 같은 권위있는 뜻이요 또  영감도 같은 영감이요 또 진리도 같은 진리요 또 말씀도 같은 말씀인데. 아  말씀이 일차 창조의 것을 통해서, 일차 창조의 것을 이차 창조를 거기다 부과시켜  가지고, 일차 창조의 것에다가 이차 창조의 것을 부과시켜 이차의 창조 역사로  그것을 신령하게 변화를 만들어서, 썩을 것을 썩지 아니할 것으로, 약한 것을  강한 것으로, 욕된 것을 영광스러운 것으로, 혈육의 것을 신령한 것으로, 일차  창조의 것을 이차 창조의 것으로 이렇게 신령하게 승격시켜서, 다 변하는 것을  변치 안하는 것으로, 일시의 것을 영원한 것으로, 유한한 것을 무한의 존재들로  이렇게 개조하는 재창조, 개조하는 이차 창조. 이렇게 개조하는 이차 창조의 것을  하려고 왔는데 그 이차 창조를 하려고 하셔서 이차 창조의 것을 창조하려고 지금  나타난 것이 뭐입니까? 나타난 것이 뭐입니까? 이차 창조를 하려고 나타난 것이  뭐입니까? 무엇입니까? 이차 창조의 것을. 영원한 것 완전한 것을 창조하려고,  이차 창조하려고 나타난 그 창조의 존재를 가리켜서 뭐이라 합니까? 무엇이 와서  지금 창조하려고 존재합니까? 뭐이 왔습니까? 예? 누가 큰 소리 좀 해 봐요. 와?  와 그런데 말씀이라는 소리를 못하고 있어? 말씀, 말씀.

 예수님께서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이렇게 말씀하선 것은 예수님께서 이  일을, 이차 창조의 것을 이루시는데, 이제일차 창조의 것이 모든 잘못된 것 모든  부족한 것 이것을 하나님 사람되어 이 모든 것을 홀로 담당하시고서 이것을  완성하사기 위해서 이 일을 책임지고 나타나신 분이 신인 양성일위이신  예수님이시요. 또 이 일을 완성하려고 나타난분을 가리켜서 성령이라 혹은  그리스도의 영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이렇게 이 성자와 성령이 이 일을 책임지고  이루실라고 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무슨 일을 하러 오셨느냐 하면 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 그다음에 영감 진리 곧 말씀 이래 왔는데, 이 말씀과 일차 창조의  것이 이렇게 화합을 해서 가리워진 것이 없이 이렇게 화합을 해 가지고서 합작을  시켜서, 이것을 하나님과 그 사이가 끊겨진 것을 화합을 시켜서 조화를 이루어  이렇게 만드는 이 일을 하기 위해서 땅위에 오셨고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예수님께서 베푸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무슨 일을 하는고 하니 하나님의 뜻이 영감으로,  진리로, 말씀으로 이렇게 나타난 이 일을, 다 책임지고서, 요 일을 책임지고서 이  일을 우리에게 전달하고서 요 중보 역사를 이루실라고 오신 것이 예수님이신데  그로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과거에 잘못된 것 미래에 잘못될 것이 모든 것을  잘못된 것도 다 책임지고 또 바로 되는 것도 이거 대속으로 책임지고 이래  가지고 이 일을 하려고 이렇게 오셔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는데 이 일을  완료하기 위해 가지고서 성령님이 오셨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아버지에게로 가는 것을 너희들이 나를 사랑 했으면 기뻐하였으리라 내가 가야  보혜사 성령이 오신다 성령이 오시면 내 것을 가지고 너희들에게 말할 것이요  너희들을 진리 안으로 이끌어 들이리라. 그래 가지고 내것을 가지고, 내가  대속하신 이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너희들은 얼마든지 하나님과 연결될 수  있고 연합될 수 있고 그것을, 막혀 있는 장벽도 헐었고 또 이렇게 불목된 것도 다  화합을 시켰고. 하나님의 지성법 지공법에서 요구하는 것을 내가 일차적으로  대리로 해 가지고 전부 다 완성을, 완료를 다 했고 이렇게 해서. 너희들이 내가  해놓은 이것을 입기만 입고 가지기만 하면 된다 하는 것을 말씀하시면서 보혜사  성신이 오시면 이 일을 역사할 거다, 내것 가지고 일할 것이다, 또 내것 가지고  말한다, 내것 가지고 일한다, 또 진리 안으로 너희들을 이끌어 들인다 이렇게  주님이 말씀하신 것이 그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렇게 하나님이 뜻으로, 영감으로. 그러면, 이러기에, 예수님이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신 것은 성령으로 잉태했습니다. 영감으로 잉태 했습니다.

영감으로 잉태했소.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뜻이 또 영감으로, 하나님의 뜻이 그  하나님의, 하나님이 하나님의 뜻으로 나타나시고, 그 뜻이 영감으로 나타나시고,  영감이 사람으로 나타나고, 사람으로 나타나 가지고서 이렇게 모든 것을 우리를  대속해서 다 완성하시고 그 완성의 그 구원을 또 말씀으로 우리에게 주어서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지금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일은 일차 창조도 하나님의 뜻, 영감, 진리로 없는 가운데에서  창조했지마는 이차 창조는 그게 아닙니다. 일차 창조는 없는 가운데에서, 돼라  했으니까 됐습니다. 되라 했으니까 됐습니다. 돼라 했으니까 됐지마는서도 이차  창조는 돼라 해서 되는게 아니라 이차 창조 그것의 존재 가치와 존재의 권위를.

존재 권위를 멸살하고 또 내나 일차 창조 때와 같이 없는 가운데 지은 것  모양으로 이런 존재를 지을라고, 하지 안하고 일차 창조의 것을 인정을 해  가지고서 일차 창조 그것이, 이것이 다시 승격되고 변화되고 성화돼 가지고서  되어지도록 이렇게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므로, 이차 창조는 일차  창조의 것이 되고 재료가 되고 원인이 돼가지고 그게 자꾸 진화되고 변화되고  자꾸 성화돼 나갑니다. 하늘의 구원이 오기는 위에서 와 가지고서 밑의 것을 자꾸  변화시켜 가지고서 이와 같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차 창조를 하실라고 영감과 진리가 왔는데, 지금 이제 조화가  뭐이냐? 하나님, 하나님의 뜻, 영감. 진리, 진리가 이래 와 가지고서 무엇을  붙들어야 되느냐? 이 진리 곧 말씀인데 이게 뭘 붙들어야 되느냐? 이 붙드는  것은, 그러면, 뜻과 영감과 진리가 와 가지고서, 일차적으로 와 가지고 뭐이  됐습니까? 사람이 됐습니다. '내가 진리라' '성령으로 잉태했다' 하는, 그러면,  하나님이 하나님의 뜻으로 나타나 가지고서, 그 뜻이 영감으로 나타나 가지고서  사람으로 나타나신 것이 예수님의 신성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신성은 하나님의 본체시요. 하나님의 본체가 자꾸 인간이 알  수 있도록 이렇게 자꾸 나타나셔서 이래 나타나셨는데, 나셔 가지고서 과거에  구약 성경에 있는 구약 성도들도 미래의 그리스도의 대속을 바라봄으로서 그  약속에 준했고, 신약 교회는 예수님이 이루어 놓으신 그 약속을 바라봄으로서  지금 그 대속에 소속해서 준했고 이렇게 된 것인데, 구약에 있는 교회는 예수님이  대속하시고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아남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그대로 완성이 돼  버렸습니다. 완성이 됐기 때문에 이제까지 미결로 되어 있던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휘장이 갈라지는 것으로서 그거는 한 표시인데 갈라짐으로 하나님과 그  인간과 사이에 장벽이 무너졌다는 그 징표로 그래 했고, 또 무덤이 열리고 자던  성현들이 살아났습니다. 예수님이 이 대속의, 십자가의 대속에 죽으심으로 살아  났습니다. 살아났지마는서도. 죄가 헐어지니까 살아났습니다. 죄가 가리워진 죄가  헐어지니까 살아났습니다. 살아났지마는서도 이 사망에서 나오지는 못했는데,  살기는 살았고 사망 속에 있었는데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자던  성현들이 많이 살아났으나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무덤들에서 나왔다,  나와 가지고서 많이 거룩한 성으로 들어갔다 아렇게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이 이루어 놓은 이것을 지금 이 예수님이 이차 창조의 것을 이루실라고  만반의 준비를 다 갖추어 가지고서 이차 창조의 것, 일차 창조의 것을 승격시키고  변화시켜서, 유한한 걸 무한한 것으로, 또 약한 것을 강한 것으로, 더러운 것을  깨끗한 것으로, 혈육의 것을 신령한 것으로 이렇게 변화시키는 이 역사를  예수님이 다 해 놓으시고 예수님 안에서 지금 내적 역사를 가지고서 이것이  변화되어서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지금 변화시키는 이 변화의 전선 단계에  있는 것이 현재입니다.

 변화의 접선 단계에 있는 것이 현재인데, 이제 이차 창조의 능력이 와 가지고  일차 창조한 것을 이것을 접선해 가지고 변화를 시켜야 되는데 이 접선이 뭘로서  접선이 되느냐? 뭘로서 접선이 되느냐? 요것은 일차 창조 되어 있는 요것들이기  때문에 요것이 뭘로서 접선되느냐? 이것을 죽이고 새로 만들라면은, 새로 만들면  또 뭣 됩니까? 새로 만들면 일차 창조의 것 됩니다. 또 부애가 나니까 집어던져  죽여 버리고 또 없애 버리고 또 새로 지으면 또 일차 창조라 말이오. 암만 해야  일차 창조의 것이 되지 일차 창조의 것이 한 단계에서 승격해 가지고서 이차  창조의 것이 안 된다는 그거요, 그러면, 일차 창조의 것을 이차 창조의 것으로서  이렇게 승격을 시켜서 영원한 구원을, 진동되지 안하고 변동되지 안할 것들을  만들라고 이 만드는 역사가 왔으니 그 역사의 이름을 가리켜서 뭐이라 하느냐?  그 역사의 이름을 가리켜서 성령과 물과 피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역사는 또  뭐이냐? 증거라 증거. 하나님은 일할 때에 말씀으로 일한다는 그걸 알아야  됩니다. 또 증거라. 이 증거가 와 가지고서 지금 너희들은 이차 창조의 이래  가지고서 지금, 썩을 것으로 썩지 안할 것을 네가 만들어라, 욕된 것으로  영광스러운 것을 만들어라, 약한 것으로 강한 것을 만들어라, 유한한 것을 무한한  것으로 만들어라, 혈육의 것을 신령한 것으로 만들어라. 자꾸 지금 이게 증거요  말씀이라 그말이오.

 증거요 말씀으로 이렇게 하는데. 그러면, 그 원줄기가 뭐이냐? 원줄기가 뭐이냐?  원줄기는 하나님이 뜻으로 나타나고 성령으로 나타나 가지고서 옛날은 구약  성경으로 나타나 가지고 말씀으로 이래 났다가 그 알맹이 설상이 왔으니 뭐이냐?  예수님이라. 예수님은 모든 신구약 성경의 중심입니다. 이래 가지고 우리들에게  와 가지고 일차 창조된 우리들에게 와서 이차 창조를 하실라고 했는데 이차  창조를 하실라고 하시면서 뭐라고, 말씀 하시는게 아니라 너희들이 이차 창조를  받으면. 이차 창조를 받으면 하나님의 몸이 되고. 이차 창조를 받으면 천상 천하  모든 피조물의 중보자가 된다. 그러기에, 모든 피조물 위에 한 분이신 자존하신  하나님 그다음의 그 위치, 곧 예수님을 가리켜서 '이기고 아버지 하나님의,  아버지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했는데 '너희들도 이기면 내가 이기고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은 거와 같이 너희들도 이기면 내 보좌에 함께 앉으리라' 말씀하신  고대로라 그말이오. 고대로 됩니다.

 이제 이렇게 오셨으니, 오셔 가지고서 지금 이차 창조를 우리에게 베푸실라고  하려고 이래 하시는데, 하기를, 너희들이 이차 창조를 받으면. 이차 창조를 받으면  하나님은 너희의 머리가 되고 너는 하나님의 몸이 된다. 하나님의 몸이 되되  본체적으로 그의 몸이 된다는 것이 아니고 계약적으로 몸이 되고 기능적으로  몸이 되고, 역사적으로 몸이 되어 두뇌 작용을 전부 이 몸이 모든 것에게  역사하듯이 하나님의 모든 뜻이 이 교회를 통해서 성도를 통해서 모든  만물들에게 충만히 역사가 되니 내가 이렇게 하나님의 몸이 되고 또 모든  피조물들에게는 그들의 중보가 된다 하는 이것을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이 오늘  봉독한 에베소 1 장 22절에 있는 말씀이라 그거요. 그 안에 내리보면, 그 안에  보면 더 잘 보이고 있습니다. 또 골로새 1장으로부터 보면 세밀히 또 가르쳐  놓은것이 있다 이거요.

 이런데, 그러면, 이렇게 창조하러 오셨으니 이 일은 그분이 능력을 가지고서  오셨으니까 이 능력에게 이차 창조의 지음을 받아야 되는데, 그 능력에게 이차  창조의 지음을 받아야 되는데 이 지음을 받는 데에는 공부를 많이 해서 지식을  가져야 되겠습니까 기술이 있어야 되겠습니까? 이차 창조하러 오셨는데 이  창조하러 오신 이 창조를 받는 데에는 지식을 가져야 되겠습니까, 열심을 가져야  되겠습니까, 혹은 잘 대접할 수 있는 물질을 준비해서 가져야 되겠습니까, 혹은  무슨 어떤, 권세나 지위를 가져야 되겠습니까? 젊음을 가져야 되겠습니까 늙음을  가져야 되겠습니까? 아름다운 용모를 가져야 되겠습니까? 그분이 이 영감의 이  말씀 곧 진리 가지고서 이렇게 하려고 하는데, 일차 창조의 것을 이차 창조로  개조를 할라 하는데 변화하고 개조를 할라 하니까 일차 창조의 것과 온 이차  창조의 이 능력과 그 조화를 어떻게 맞추겠느냐? 그 조화를 어떻게 해야 조화가  되겠느냐? 어떻게 해야 조화가 되겠느냐? 그 조화가 뭘로 가지고 조화가  되겠습니까? 그 조화가, 그 조화가 일차 창조의 것에 자의식이라는, 자의식이라는  자의식. 이 자유라는 자유. 자유도 죽이지 안하고 자유도 이걸 승격을 시켜야  되겠고 또 자의사라는 그 의사도 이것도 죽이지 안하고 그 의사를 완전히 성화를  시켜서 썩을 것이 썩지 안할 것으로 변화돼야 되겠고 이러니까, 자, 이차  창조하려고 오신 것이 곧 보기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 이 공로는  구약에는 말씀으로 표현했다가서 실지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고대로, '율범을  온전케 하러 왔다' 그 말은 율법에서 표시한 것이 이제 완성이 된다 그말입니다.

완성으로 오셨는데, 완성으로 오셔 가지고 완성을 하시고 이제는 부활하신 후에  또 당신이 이제는 이차 창조를 하려고 서 이차 창조를 예언한 것은 구약  성경이요 이차 창조를 할하고서 와 가지고서, 이차 창조를 하려고 온 하나님의  뜻이 왔는데 온 그를 가리켜서 오순절의 뭐입니까? 오순절에 무엇입니까? 성령  강림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오순절에 나타나 가지고서. 오순절에 성령 감화가  나타나 가지고서 그 성령의 역사가 무엇을 만들었습니까? 무엇을 만들었습니까?  신약 성경을 그 성령이 기록해서 나타냈습니다. 또 뭣했습니까? 교회를  세웠습니다. 교회를 세우고, 지금 하는 일이 뭐입니까? 이 성령이 오신 것도 이차  창조의 일, 구약에 있는 일차 창조의 것들도 짐승을 잡아 바라 봤지만 짐승은  속죄 못 합니다. 짐승을 잡아 가지고 바라본 그것은 예수님의 대속을 예표해서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그 예표를 바라보고 미결 중에 있던 것이 예수님의  사활로서 완성을 이루는데. 구약의 교회도 이차 창조의 것을 예수님이  대속하심으로 그들이 바라보고만 있던 것이 실상이 이루어졌고 실상이 이루어진  증거로서 성전 휘장이 갈라졌고 또 자던 성현 무덤이 갈라졌고 자던 성현들이  살아났고, 그러나 나오지 못했습니다. 무덤에서 나오지 못했습니다. 살아났고,  가리워진게 틔어졌으니까, 하나님의 빛이 왔으니까 살아났지마는 무덤에서 못  나왔어. 예수님이 부활 하신 후에 무덤에서 나왔습니다. 성경에 가서 살펴  보십시오. 무덤에서 나와 가지고 많은 성현들이 거룩한 성으로 들어갔다  이랬습니다. 이렇게 오셨는데, 오셔 가지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이 이차 창조를  하려고 오셨는데, 예수님이 일차로 대속의 공로를 베푸시고 이 공로를 이제 택한  자들에게 이렇게 역사해 가지고서 이차 창조의 은혜를 입혀서 썩을 것이 썩지  안할 것으로, 약한 것이 강한 것으로, 욕된 것이 영광스러운 것으로, 혈육의 것이  신령한 것으로,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할 것으로 이렇게 하시기 위해서 지금  예수님을 대리해 가지고서, '내가 떠남으로 그가 온다' 예수님을 대리해서 오셔  가지고서 그 역사를 계대 인계해 가지고 지금 하러 오신 분이 누구입니까?  오순절에 오신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이 오셔 가지고서 이 일 하는데, 그러면,  성령님이 오셔 가지고 일할 때 또 뭘로 합니까? 또 영감의 말씀을 가지고서 이차  창조밖에는 못 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거 외에는 못 합니다. 하나님은 주먹이  없소 하나님은 무기가 없소. 하나님은 당신의 뜻이 영감으로 나타나면은 없는  가운데 우주 같은 것 이런 것 얼마든지 만드실 수 있고 있는 것, 없앨 수도 있고,  그는, 당신은 무형의 존재기 때문에 뜻으로 이게 영감으로 나와 가지고서 또 멀리  나오니까 진리가 됐고 말씀이 됐습니다.

 이러니까, 이차 창조를 하시려고, 창조하시려고 예언하던 그 예언이, 이차 창조를  하려고 하나님이 예언해 놓은 그 예언이 완성이 돼 가지고서, 그 예언이 완성되고  완성된 이 이차 창조를, 완성해 놓은 이차 창조를 이것을 모든 택한 자들에게  나누어 줘서, 분급해 줘 가지고서 모든 존재들이 택한 자들이 이차 창조의 것을  다 실상으로 받아 가지도록 이렇게 하기 위해서 역사한 그 역사를 책임지고 온  분이 누구입나까? 그 온 분이 누구입니까? 성령님, 오순절 성령님. 성령님은 새  일을 시작합니까 예수님이 하신 그 일을 우리에게 증거합니까? '보혜사 성신이  오면 내것을 가지고 증거하리 라. 내것을 가지고 전해 주리라' 말씀했습니다.

이런데, 그러면, 이렇게 이차 창조하러 오셨습니다. 오셨으니, 일차 창조의 것을  멸하지 아니하고 이것을 개조되고 성화되고 변화시켜야 되기 때문에, 일차 창조의  이것이 가진 자유성도 안 죽이고 살려야 되겠고 자유 의사도 안 죽이고 살려야  되겠고 모두 안 죽이고 다 살려야 되겠는데, 살려야 되겠는데, 살려서, 살려, 그  죽여 말살해 버리고 그만 싹 만들어 버리면 엿새 동안이면 뭐 천하 성도 다 만들  것인데 그라면 자유 의사가 죽는다 말이오. 자유라 하는게 죽는다 이거요.

 이러니까, 이것을 살려야 되어지니 이 하나님이 이 일을 하는 데에는 우리에게  어떻게 노력을 해야 되겠습니까? 노력은 타이르는 것밖에 없습니다. 타이르는  것밖에 없소 타이르는 것. 알겠습니까? 타이르는 방법밖에 없어, 타이르는 방법.

이러니까, 자꾸 가르쳐 주고 타이르고 말하고 말하고 이래 가지고서 자꾸 인식을  시키고 인식을 시키고 성령으로 또 감동을 시켜서 우리 마음을, 성령이 우리  마음을 감화를 시키고 또 진리로 타이르고 자꾸 이래 가지고, 그러면, 타이르고  감동시키고 이렇게 하는 그 목적이 어디 있습니까? 그 목적은 이차 창조하러  오신 이 능력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받아들이는 것. 이차 창조하러 온 이  능력을 받아들이는 것 받 아들이는 것. 그러면 받아들이는 것은 어쩌면 받아  들입니까? 그릇으로 받아들입니까 뭘로 받아 드립니까? 네, '인정합니다.

믿습니다.' 인정하는 걸로 받아들입니다. 인정 말고 다른 걸로서는 받아들일 주가  없어요. 인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인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한  그대로의 내가 마음이 되어야 되고 또 그대로의 사람이 되어지고 그대로의  행동까지 했으면 벌써 사람은 많이 변화가 돼 버렸습니다.

 이러니까, 이차 창조하러 온 그 말씀 그대로의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또 자기는 인식하고, 그대로 지식하고, 그대로 생각하고. 그대로 알고 그대로  소망하고. 그대로 자기는 느끼고 주관이 그대로 돼 버리지, 주관이 그 말씀대로  그대로 변화가 돼 버리지, 행동이 변화가 돼 버리지 이러니까 이차 창조는 일차  창조의 것을 유기적으로 죽이지 안하고 이걸 살려 가지고서 변화를 시켜  가지고서 하는 것이 이차 창조입니다. 이차 창조는 일차 창조의 것을 변화로  합니다. 변화로 하고서 없는 가운데 짓는게 아니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이차  창조의 은혜를 우리가 받는 데에는 입는 데에는 무슨 힘을 가치고 입습니까 무슨  용기를 가지고 있습니까 무슨 과학을 가지고 입습니까. 뭘 가지고 입습니까? 한  말로 말해서 뭘 가지고 있습니까? 네? 자 저 뒤에도 똑똑히 한번 말해 봐요. 뭘로  입습니까? 큰 소리좀 해 봐. 똑 굶은 사람들 모양으로 뭘로 입습니까? 욕심으로?  믿음!! 따라해. 믿음!  따라해요. 믿음! 다 해요. 믿음! 맏음! 믿음! 믿음! 믿습니다!! 확실히 믿습니다!!  인정합니다!! 안팎이 그대로 확신되어서 우리 주관이고 말씀화됐습니다! 이겁니다!  이런 믿음이 없는 데에는 하나님이 일할 수 가 없습니다.

 이러니까, 전부 하나님 하신 것이, 말씀할 때에 모든 사람은 '에이, 거짓말이다'  하는데 '아, 네가 믿으면 이 병이 나으리라.' 약도 안 쓰는데 믿는다고 병이  나아요? '믿으면 병이 나으리라' 믿어 보니까 딱 낫거든. '믿는 대로 되리라.'  '냄새가 나는데 이거 뭐 되겠습니까?' '네가 믿으면 아이구 하나님이 이런  하나님이로구나' 하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서 하나님의 영광을 네가 보리라고  하지 안했느냐?' 다니엘이 믿으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지 안했느냐? '믿으면  하나님 영광을 보리라고 하지 안했느냐?' 하니까 '예' 하고 돌을 굴려 놨다  말이오. 굴려 놓고, 떡 굴려놓으니까 '나사로야' 부르니까 그 죽은 나사로가 살아  나오지 안했습니까? 이것이 하나 우리에게 형식 계시입니다. 허무한 것 같지마는  하나님이 약속한 이 약속을 믿으면 됩니다! 믿으면! 믿으면 돼요! 인정하고 고대로  행하면 된다 말이오. 믿으면 우리가 변화가 돼요 예를 들어서 여기에 공산주의가  독침을 가지고서 어떻게 온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나를 보호하고 계시니, 너희가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로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너희들은 많은 참새보다 귀하지  않느냐? 그것도 너희 아버지에게 생사의 주권이 달려 있다. 너희들은 많은 새보다  귀하지 않느냐? 너희들은 머리털까지도 그가 세신 바 되었다. 이러기 때문에,  너희들이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러니까, 그 말씀을 듣고 믿으면 믿는 것 만치  자기에게는 믿음이 지식으로 믿었으면 말로는 종얼종얼 하지마는서도, 말로 할  때에는 '아, 주님이 우리를 뭐 지키시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이랬지마는서도  실지로가 가지고서 일이 닥치면은 마음으로 믿지 안하고는 마음에 의심이 나니까  떨려지지 또 자기가 주관으로 완전히 믿으면은 평안하고 즐거울 터인데 주관이  믿지 안하니까 믿지 않는 태도가 나오고 행동이 나오게 됩니다. 이러니까,  지식으로 믿고 말로 믿고 행동으로 믿는 것은 말로 행동으로 말미암아 그 속에  마음이 믿어지고 정신이 믿어지고 주관이 믿어지고 자기 사람이 믿어져서 그  사람으로 변화가 되어져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그 말씀대로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이라 말이오. 이걸 우리가 지금 연습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마귀들은 하는 일이 무슨 일 하고 있느냐 하면 자꾸 '거짓말이라  믿지 말아라 믿지 말아라' 그거 하는 것이 마귀가 하는 일이라 그 말이오. 마귀가  왜 하느냐? 마귀는 우리 믿는 일 되면 저는 절단나 버리기 때문에 방해를 합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안 믿는 사람들도 마귀의 다 감화를 받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는 성신의 감화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택한 자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또 뭣 때문에 하나님 말씀 믿어지지 안합니까? 다 말해  놨는데. 택자가 아니라서 믿어지지 않는다, 또 마귀가 들어 믿지 못하게 한다,  성신의 감화를 받지 못해서 믿어지지 않는다 또 하나만 남았는데 뭐이요? 가리워  있는 죄의 장벽을 네가 회개하지 안하기 때문에 믿어지지 않는다 그말이오.

아무래도 믿어야 우리가 성화가 되고 변화가 돼야 될 터인데, 이제 우리는 택한  자요 성신의 감화를 받은 자요 이러니까 우리가 할일은 뭣만 하면 됩니까?  우리가 할일은 뭐이요? 두 가지 할 일인데 하나는 뭐이요? 마귀의 군병들이 믿지  말라고 하는 그 많은 사람들의 미혹을 다 버려야 된다 그 말이오. 그거 하나  버리고, 또 하나 뭐입니까? 하나 뭐입니까? 죄를 회개하면 된다 말이오. 왜  확신이 없습니까? 이러니까, 아무래도 우리가 믿어야, 인정하고 실지로 전능자의  보호라는 것이 내 말로만 아니고 내 지식으로만 아니고, 내 감정으로만 아니고 내  본능 주관 전부가 다 믿는 자 되어서 이제 나와 같이 하시는 분의 그 능력의  보호를 입고 있으니까 '그 능력만 못한 것이 올 때에는 염려가 없는 그것이  뭐이냐 하면 이 능력을 믿는 증거라 그 말이오. 이래서 이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이것을 믿음으로서 우리는 변화되어서, 우리는 믿음으로 변화 되어 그 사람은  참지 못할 것이 없고, 견디지 못할 것이 없고, 두려워할 것이 없고. 못할 일이  없고, 못 갈 길이 없고, 왜? 이 분의 약속을 우리가 믿기 때문에, 우리가 그  약속대로의 영원한 하늘나라의 존귀한 그 자체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모든  존재를 구원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니까 내가 견딜 수 없는 고통의 어려운 그것도  약속을 믿으므로 두려울 것 없고, 약속을 믿으므로 염려할 것 없고, 약속을  믿으므로 그 어려움을 통해서 다른 사람을 살린다 그말이오. 약속을 통해서 그  어려움이 영광과 존귀가 된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약속을 믿을 때에 이 면을 봐도 평안하고 저 면을 봐도 평안하고 이  면을 봐도 담대하고 저 면을 봐도 담대하고, 그 면을 봐도 확실히 소망이  확실하고 견고하고 이러니까, 언제든지 믿고, 언제든지 바라보고, 언제든지  의지하고, 언제든지 맡기고, 언제든지 순종하고 이것이 변해 질 수가 없는 것이  우리들이 자기를 부인하고 이차 창조로 오신 이 말씀을 인정하고 믿는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것이 능력입니다. 우리가 뭐 이차 창조의 것은 우리 힘으로 하는 것  아니오. 우리가 믿으므로 이 세상의 좀 행동이 다르지요. 믿으므로 다른 사람은  놀래 떠는데 안 떨고, 다른 사람은 죄짓는데 죄 안 짓고, 다른 사람은 땅의 것을  인해서 갈급하고 걱정 근심에 빠지는데 근심 걱정에 싸이지 안하고, 모든 걸 다른  사람은 제가 모든 책임을 제게 책임을 맡기고 맡고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맡기는데 믿는 사람은 주님 한 분에게 맡기고 아무에게도 맡기지 안해. 어디 맡길  데가 어디 있으며, 의지할 데가 어디 있으며, 믿을 데가 어디 있으며, 의논할 데가  어디 있으며. 배울 데가 어디 있으며. 인도받을 데가 어디 있습니까? 아무도 없어.

그분 한분 뿐이라.

 이러니까, 이렇게 나갈 때에 나가는 사람들에게 모든 그 믿고 안 믿는 그 표시가  그이의 행동에 나오고, 말에 나오고, 태도에 나오고, 정신에 나오고 이 모든 얼굴  껍데기에 나오고 온유에 나오고 겸손에 나오고 왜 온유에 나오느냐? 그 분이  있으니까 평안하고 염려가 없어. 왜 겸손하냐? 그 분이 계시고 그 분에게 받지  안한 것이 하나도 없으니까 제 잘난 척 할 것이 하나도 없다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사람들로 온전케 하고 옳은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러면, 온전케 하려고 이차 창조를 하러 오셨는데 이차 창조로 온 이 말씀의  온전케 하는 것을 자기가 입는 데는 뭘로 입습니까? 어쩌면 입습니까? 예? 또  잊어버렸네. 아, 이 말을 이라면 뭐 거석할 것이 아니라. 이런 말이 나오면  '믿음!!' 이 그만 속에 그만 불이 나올 건데. 이 이차 창조로 이렇게 와서  영광스럽게 이래 만들려고 왔는데 세상은 부인하는데 뭘로 받습니까? 죽은  소리라. 그래, 믿음!! 믿음!! 믿습니다!! 천지가 변해도 요동치 안해! 이 신앙이  세상을 이깁니다! 이것이 능력입니다. 세상 사람은 부인하는데 그 말씀을 믿는  것이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이오. 하나님을 아는 것이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오. 그분을 참되다 인정하고 그 분의 말을 참으로 소망해서 받는 것입니다.

믿음 외에는 받는 이차가 없어. 받는 이치가 없다는 걸 이제까지 해석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하시기 때문에 말씀하는 걸 받는 데에는 우리가 믿고 그대로  순종하는 것밖에 없어. 하나님이 돈을 주실 때 돈을 주시는가? 아니오. 돈도, 돈도  주실 때에 말씀을 주시요. '이게 어디 돈입니까?' '야야 그대로 행해봐.' 그 말씀을  그대로 행하니까 돈이 나옵니다.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바다야, 모든 생물을  내라' '내가 어찌 생물 냅니까?' '믿어' '내가 생물낼라 하지만,' '너만 내려고 해  봐' 바다물이 있다가서 생물 낼라 하니까 바다에 있는 수많은 어류와 바다 가운데  사는 모든 생물들이 다 나왔습니다. 제가 하나나 만들었습니까? 제가 인정할 때에  하나님 말씀하신 그대로 됐다 이거요. 일차 창조도 이러고 이차 창조도 똑 요  방식으로 됐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은 일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무엇이냐?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자기 속에 주관 그 더러운 것을 버립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없이 믿고, 믿지  못하게 하는 모든 세상 그거는 마귀들이 유혹해서 그런 것이니까, 믿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그들은 마귀에게 속한 것이요. 나에게 믿을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세상이 믿지 못하게 할수록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마귀가  더럽다 할수록 우리는 좋다고 인정해야 됩니다. 마귀가 가라하면 우리는 안 가야  됩니다. 마귀가 하라 하면 안 해야 됩니다. 마귀가 하지 말라 하면 해야 됩니다.

왜? 그놈은 우리 죽일 놈인데 정반대자라 그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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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73 믿음-기도-성경/ 마태복음 7장 7절-8절/ 850705 지권찰회 선지자 2015.10.31
3972 믿음대로 응해 주시는 주님/ 마태복음 8장 5절-13절/ 810819수새 선지자 2015.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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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68 믿음에서 떠날 때와 믿음을 가질 때/ 디모데전서 4장 1절-2절/ 830611토새 선지자 2015.10.31
3967 믿음-원수,주의점/ 에베소서 1장 19절/ 831108화새 선지자 2015.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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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65 믿음으로 믿음에/ 로마서 1장 14절-17절/ 860228금야 선지자 2015.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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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62 믿음으로 얻는 구원/ 디모데후서 3장 15절/ 1986. 12. 19. 공과 선지자 2015.10.31
3961 믿음으로 얻는 구원/ 디모데후서 3장 15절/ 861219금야 선지자 2015.10.31
3960 믿음으로 얻는 구원/ 디모데후서 3장 15절/ 1986년 17 공과 선지자 2015.10.31
3959 믿음으로 죽은 것이 살아나는데/ 요한복음 11장 39절-44절/ 871210목새 선지자 2015.10.31
3958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히브리 11장 5절-6절/ 870129목새 선지자 2015.10.31
3957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 마가복음 9장 21절-27절/ 880630목새 선지자 2015.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