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1979.  8.  31.  금요일 저녁

 

본문: 베드로전서 1장 5절 - 7절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하려 함이라

 

 기독교의 구원은 창세로부터 노아 때까지의 구원보다도 노아 이후 예수님이 초림  하실 때까지의 구원보다도 예수님 승천이후 재림 때까지의 구원이 더욱 영광스럽고  또 은혜도 더 많습니다.

 이래서 말세에 이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성령의 은사를 물 붓듯 부어준다고  했습니다. 또 예수님의 공로를 힘입어 중생하고 부르심을 입은 자에게는 하나님의  지극히 큰 능력이 말세에 이 구원을 이루도록 하시기 위해서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말세에 기독자의 구원은 어떤 구원인가? 예수님이 재림하신 이후  영원무궁토록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되는 것이 이것이 믿는 사람의  구원입니다.

 믿는 사람의 구원은 영원무궁토록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과 하나님을 향하여  영광있는자 되어지는 것이 이것이 말세 신약교회의 구원입니다. 우리 신약시대에  난 사람들은 영원무궁토록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들에게 영원히 칭찬 받을 수 있는  이런 구원을 이룰 수 있는 우리들입니다.

 또 영원 무궁토록 하나님에게도 피조물에게도 존귀히 여기는 아주 높이고 귀하게  여겨서 존귀히 여겨 주심을, 존귀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이 구원을 이룰 수 있는  우리들입니다. 위로 하나님에게는 영광을 돌리고 이웃과 모든 피조물들에게는 영원  무궁토록 그들에게 은혜를 입혀서 그들이 모두 감사하고 환영하고 존귀히 여기는  이런 영광스러운 만물이 우리를 영광되게 해 주는 이런 구원을 이룰 수 있는  희망이 있는 우리들입니다.

 우리 기독자들은 뭐 이 지구에 있는 어느 강대한 그런 한 나라에서 한 민족에서  칭찬받고 영광누리고 존귀히 대우받는 이런 정도의 구원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나타나실 때라는 말은 무궁 세계를 말합니다. 무궁 세계에 그때는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이 된 그 세계인데 참 큰 나라입니다. 영원 무궁한  나라입니다. 그 나라는 알파와 오메가여서 끝이 없는 영원한 나라입니다. 그때는  파괴나 이런 변동들이 없는 때입니다.

 이런 나라인데 이런 세계에서 모든 존재에게 칭찬받을 수 있는 우리와 우리  행위를 만들 수 있고, 또 존귀히 여기는 이런 자신과 이런 자기 행위를 마련할 수  있고 또 모든 존재들이 우리로 인해서 잘되었다고 은혜를 입었다고 사은, 은혜를  감사하는 시은의 이 영광이 있도록 우리 자신과 행위를 이룰 수 있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뭐 조그마한 한 동리에서도 칭찬, 영광, 존귀가 있다면 그 참 귀한 것이라 하고  모두 부러워 하는데 우리 한국은 참 남한은 조그만 합니다. 그러나 우리 남한  나라에서도 온 국민 전부가 다 칭찬, 영광, 존귀를 돌릴 수 있는 그 사람이  되었다고 하면 얼마나 그것이 영광되다고 생각을 합니까? 영광이라는 것은 내가  그에게 은혜를 베풀어서 그가 은혜에 감사하는 그 감격의 모든 행위 그것이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한국이나 무슨 이 지구 땅덩어리 여기만이 아니고 이 물질계  우주와, 영계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다 통일이 될 터인데 그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이 모든 것이 다 통일이 될 그때에 하나님에게도 모든 피조물에게도  칭찬받을 수 있는 자기, 자기 행위, 모든 것에게 감사하다고 사은의 표시를 하는  이런 자기와 자기 행위, 모든 존재들이 높이 귀하게 대우해주는 존귀히 여겨 줌을  받을 수 있는 이런 자기로, 행위로 이렇게 짧은 이 한 토막에서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을 여기 말합니다.

 그러기에 이것부터 우리가 내 주관이라는 그런 어두운 마음을 다 집어던져 버리고  하나님의 지식이 이는 천지는 변해도 획 하나도 변하지 않는 이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어짜든지 칭찬과 영광과 존귀로 관씌움을  받도록, 이렇게 받을 수 있는 우리들이기 때문에 이런 영광스러운 구원을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힘을 쓰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자꾸 좀 새김질해서 해석을 해 들어가야 합니다. 보자, 그러면  예수님이 나타나실 때에 그때에 칭찬, 영광, 존귀히 여김을 얻게하려 함이라.

칭찬과 영광과 존귀히 여김을 우리에게 관씌움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은 이렇게  노력을 하십니다. 이 가치가 얼마나 큰지 이것을 우리가 좀 실컷 느껴봐야 됩니다.

 이것을 깨달은 사람은 땅위에 아무리 영광스러운 일이 있다고 해도 여기에 비교가  될 영광이 없고 존귀가 없고 칭찬이 없습니다. 아마 온 세계에서 어떤 사람에게  칭찬을 온 세계가 칭찬을 돌리고 영광을 돌리고 존귀히 여긴다면 그 사람은 굉장한  참 복있는 사람이라고 우리가 인정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것과 예수님이 나타나실 때에 하늘과 땅의 것이 다 통일된 전부 한  덩어리 된 그 세계에서 영원 무궁한 그 세계에서 칭찬과 영광과 존귀, 이렇게  여김을 받는 것과 비교하면 어찌됩니까? 이렇게 우리 자신과 우리 행위가 이렇게  영광스럽고 이렇게 존귀하고 이렇게 놀랠만한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자기로 받을 수  있는 자기 행위로 능히 이룰 수 있는 기간의 성도들이 세상에 있는 동안입니다.

 얼마나 귀중한 동안이요 얼마나 가치있는 기간인지? 요 짧은 기간에 이렇게 모든  존재들에게 하나님도 좋아합니다. 하나님도 칭찬하고 하나님도 존귀히 여기시고  하나님도 그에게 영광을 돌리고 야, 네가 참 잘했다 예수님께서 33년 4개월 동안  아주 짧은 인생 살이를 하고 갔지마는 예수님의 생애에 있어서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땅아래 있는 것들이 다 예수님에게 영광을 돌리고 예수님에게 주라 시인하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다 경배를 했습니다.

 우리 사람 보기에는 사생활 30년, 공생활 한 3년 4개월 동안 했으니까 짧은 생활  아니요. 그저 목수의 집에서 일하고 이곳 저곳 다니면서 말씀 좀 가르치고 또  마지막에 십자가에 못박혀서 죽으시고 아주 간단한 생애를 했습니다. 그렇지마는  예수님의 생애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그는 영계와 물질계 심지어 저 지옥에  있는 모든 것까지도 다 예수님에게 칭찬하고 존귀히 여기고 영광을 돌리고 다 나는  당신에게 속해 살겠습니다. 해서 모든 것이 예수님을 주라 시인한 것입니다.

 요 33년 4개월, 요 짧은 기간에 요렇츰 가치있는 생활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무슨 학을 공부했소? 무슨 문화의 건설에 일을 했소? 어떤 공로를 세웠소? 이러나  예수님이 하신 생활은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들에게 칭찬과 영광과 존귀히 여김을  얻는 이 생애를 이루었습니다. 이루었소. 이제 이 예수님으로 인한 우리들도 뭐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어린 아이라고 해봤자 수명대로 많이 살아도 백 년  이내인데 또 예수님의 재림은 똑똑히는 모르지마는 2천년이라고 하면 17밖에는  안남았습니다. 안남았는데 그동안이라도 가능하다 그 말이오  앞선자는 뒤서고 뒤선자는 앞선다고 말씀하신 것은 가속도로 달리면 더 짧은  기간에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상에 못박힌 그 강도는 못박혀 가지고 그  순간에 자기가 옳은 일을 해서 예수님에게 칭찬받고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했습니다. 뭐 이 구원이라 하는 것은 삽시간에 이루는 것이요. 되면  삽시간에 이룹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저렇게  섭리하시는데 섭리하시는 것이 우리를 부자되기 위해서 섭리하시는 것도 아니고  무슨 조그만 나라에서 권세나 지위나 또 우리의 어리석은 욕심을 만족시키는 그것  때문에 땅위에 있게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독사와 시랑이 같고 살인 강도같은  더러운 죄인이지마는 하나님이 예수님의 공로로 인해서 우리에게 이 구원 착수를  하신 것은 이렇게 악한 우리라도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에게 칭찬과 영광과 존귀히  여김을 받을 수 있는 이런 사람으로 이런 행위로 갖추어 가지고 세상을 떠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이렇게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큰 소망이요. 이것하고 뭣하고 바꾸겠습니까? 지구땅 덩어리하고 바꾸겠소  안바꾸겠소? 우주하고 바꾸겠습니까? 우주하고도 안바꾸겠소. 자, 아무리 100인이  다 좋아해도 한 사람만 원망, 불평, 원수를 품고 있어도 자타가 결단코 편하지를  아니하고 여러 수백 명 가운데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데 한 사람, 그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진정 나를 기뻐하고 존귀히 여기고 칭찬하고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이런  일을 내가 그 사람에게 전에 했는데 그 사람이 만나 가지고서 나에게 그렇게 할 때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나에게 오는 그 사은도, 칭찬도, 존귀히 여김도 그  존귀가 좋은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나에게 그렇게 해도 우리 마음은 즐겁습니다.

 과거에 그에게 그 사람이 그렇게 여길 수 있는 과거 생활한 것, 그것을 생각하면  참 기쁘고 즐겁습니다. 그렇지 않소. 뭐 아주 허무한 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내게 대해서 원망이나 불평이나 품고 있는 그것을 생각할 때에 참 기분 나쁘다 그  말이오  그 사람이 나를 원망, 불평해서 기분 나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나에게 원망,  불평할 수 있는 그런 한 토막의 과거의 생활이 참 원통하고 마음에 후회스럽다 그  말이오 이제 칭찬과 영광과 존귀히 여기는 이것이 귀한 것보다도 모든 존재들이  내게 대해서 칭찬과 영광과 존귀히 여길 수 있는 이런 나로 이런 내 행위로 그런  것이 얼마나 존귀한지 모릅니다. 얼마나 존귀한지! 이것을 뭘로 가지고  바꾸겠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하늘 나라의 영광은 이렇게 차이가 있다 그말입니다. 아무리 그  사람이 구원을 얻었지마는 그 나라에 가 보니까 감사하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그  사람에게 칭찬받을 행위가 하나도 없고 이러니까 서로 보고 알기야 알지마는  자기가 이 세상에 산 것이 그에게 아무 상관없는 생활을 했으니까 그가 또 내게  아무 상관이 없다 그 말이오 내가 그에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을 수 있는  존귀함을 여길 수 있는 이런 생애를 세상에서 하고 무궁 세계에 그들을 척 만날 때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이것이 얼마나 참 가치있고 고귀한 생애입니까? 이것이  우리에게는 가능합니다. 가능하요. 자기가 온 천하를 다스린다는 그것보다도  우주와 영계를 통치한다는 그것보다도 모든 존재에게 칭찬받을 수 있는 내 과거  생활, 칭찬받을 수 있는 과거의 나, 존귀히 여김을 받을 수 있는 과거의 세상  살이, 존귀히 여김을 받을 수 있는 세상에서 살던 영광을 얻는 이런 자기로 이  세상에서 살고 무궁 세계에 만물을 척 대할 때 얼마나 그것이 고귀합니까? 얼마나  가치 있습니까? 이것을 무엇으로 바꾸겠소?  여러분들 먹을 것이 없는 것보다도 입을 것이 없는 것보다도 자기에게 대해서  원망, 불평하고 불만스레 여기는 그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몰라서 오해와  곡해를 해서 하는 것도 불안한데 정말로 그 사람이 자기에게 대해서 이렇게  원망하고 불평하고 참 마음에 불만스럽게 여길 수 있는 이런 행위가 그 사람을  대할 때 그 불안이야말로 그 고통이야말로 얼마나 크겠습니까?  이런데 우리가 이 문제를 삽시간에 해결할 수 있다 그 말이오 지금 몇해 남지  아니하고 얼마남지 아니한 이 토막이라도 무궁 세계에서 칭찬과 영광과 존귀함을  얻을 수 있는 이런 사람으로 삽시간에 변화될 수 있고 이런 행위로 변화되어서  내가 잘못한 것을 다 회개하고 모든 것들이 다 칭찬하고 참 예수님의 피 크다,  하나님의 은혜 크다. 이렇던 사람이 이렇게 되었고 나에게 이렇게 하던 사람이  이렇게 하게 되었으니까 해서 이제 모든 원망과 불평과 복수의 이 모든 것은 다  없어지고 칭찬과 영광과 존귀로 관씌움을 얻을 수 있는 이런 생애가 될 수 있는 이  가능성, 이 소망을 가진 것이 우리들입니다. 이것을 이루어 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지금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는 데에는 어떻게 해야 이렇게 되느냐?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한 믿음이 되면 이렇게 칭찬과 영광과 존귀로 관씌움을 받을 수 있게되는  것입니다. 금을 불로 연단하면 잡철은 다 타버리고 순금만 남는 것처럼 이제  잡것이 순금같은 믿음은 어떤 것이 순금같은 믿음이냐? 이것은 그 동기와 목적이  순전히 조물주 구속주 하나님만을 영화롭게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을 자기 것으로 완전히 삼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자기 능력으로 삼아 그 사람이  비록 사람이지마는 그 중심이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의 사람이 되어졌고  하나님의 온갖 충만으로 자기 것을 삼아서 세상에 있는 동안에도 하나님 위주의  살이와 하나님의 온갖 충만으로 자기의 충만을 삼은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충만으로 자기 충만으로 삼는 요 결합하는 행위를 해서 행동할 때마다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는데 이제 그 사람이 피조물과 하나님 사이에서  인간이 자기 위주 자기 중심으로 해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가로막아서 모든  피조물이 저주받아 가지고 있는데 가로막은 자기를 완전히 원수시 해서 부인해  버리고 자기를 완전히 꺾어 죽여버리고 하나님에게 소속되어 하나님의 것으로  충만하여 하나님과 하나되어서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 사이에 하나님의 충만을  피조물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이 중보자 사이에 하나님의 충만을 피조물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이 중보자, 완전히 은혜의 기관이 되어져 가지고 이렇게 하늘 나라  왔으니까 그는 세상에 있는 동안에도 하나님과 만물 사이에 가로막아서 만물을  저주받고 탄식케 했던 이것을 완전히 정리해서 이런 자기를 꺾어서 완전히  부인해서 자기를 꺾어버렸고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 하나님의 충만을 전달해줄 수  있는 이 은혜의 기관, 하나님의 온갖 충만의 기관으로 하나님의 충만을 모든  존재들에게 전하여 줄 수 있는 영원 모든 피조물을 위해서 수고하고 봉사하고  시은하고 그들이 자기가 아니면 행복을 누릴 수 없을만치 이러한 존재로 이루어  가지고 무궁 세계에 나서니까 모든 것들이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돌릴 수밖에  없게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잡것이 없는 믿음입니다. 잡것이 없는 믿음. 이 믿음 되어야 하는데 이  믿음이 될려고 하면 자기가 자기 현실에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원하시고 명령하시고  네가 네 현실에서 이렇게 살아라 하는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명령의 뜻 그것을 찾아가지고 그대로 할려고 하니까 여러 가지 마찰이  생겨집니다. 온갖 마찰들이 생겨지요.

 이러니까 그대로 살려고 하니 자기가 다 절단이 나지. 이 세상 부귀 영광이 다  절단이 나지 자기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요것 하나만 되지 그외 딴 것은 전부가 손해고 전부 절단입니다.

 이러니까 믿음으로 살려고 할 때에 6장에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이러니까 요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니까 모든 마찰이 옵니다. 이러니 참 어떤 사람은 '아이고  아무래도 요번만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없겠다. 요번만은 양보하고 요 다음부터  살아야 되겠다.' 이래가지고 그 현실에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는 했지마는 너무  그로 말미암아 자기에게 오는 해독이 크기 때문에 그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못하고 버리는 사람, 어떤 사람은 '이 말씀하나, 말씀대로 살려고 하니까 너무도  곧 어려움이 온다. 그러나 내가 이미 세상 떠날 때는 두고 갈 이것 없어진다고  해서 내가 주님의 뜻을 알고 거역할 수 있겠나? 이미 죽을 생명, 이 생명을  빼앗긴다고 해서 주의 말씀을 거역할 수 있겠나?' 어떤 사람은 너무 근심이 돼서  주의 말씀을 부인하고 저버리는 사람, 어떤 사람은 크게 근심하고 참 울면서  불면서 부득이 원통한 마음을 가지고 차마 주의 마음을 버릴 수 없어서 그대로  실행하고 사는 사람, 어떤 사람은 자기 현실에 주의 뜻을 발견하니까 이번에는  주의 뜻대로 살면,  예를 들어서 백 원 손해가 간다. 그럴 때와 이번에는 내가 주의 뜻대로 살면 만  원 손해가 간다 요럴 때 어떤 사람은 백 원 손해가는 것도 '야, 수입이다' 하고  기뻐하지마는 그것보다 만 원이 손해가는 그런 현실이니까 더 기뻐서 '이번에는 큰  수입 왔다.' 하고 기뻐하면서 순종하고 이제 그것보다도 그만 자기 자유가 없이  감옥에 갇히고 가정이고 뭐고 다 파괴가 되고 이러면 이제 더 큰 수입입니다.

 이러니까 '더 큰 손해가 가게되는 이 입장을 닥쳤으니 이번에는 수입이 더  크겠다.' 또 더 기뻐하고 또 그보다도 이번에는 다니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처럼 이번에는 네 현실에서 주의 말씀대로 살면 네 생명은 끊어지니까  이제 네 세상 살이는 끝난다. 별세한다. 이제 세상에서 죽는다. 요런 현실을  당하니까 마구 밤잠을 안자고 기뻐 즐거워합니다.

 이렇게 순종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것이 왜 그런고 하니 5절에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우리가 자기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딱 찾아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믿음인데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요대로 할  각오를 가지면 마음으로 순종한 것이고 그대로 실행을 하면 목까지 순종해서 이제  온전한 믿음이 된 것입니다.

 요렇게 믿으면 그 믿을 때에 그때에 내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지고 내가  그대로 실행하면 하나님의 뜻을 버리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을 내가 영접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했다 그 말이오 그 뜻을 영접한 그 뜻 그것이 전능의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진리인데 그 진리가 전능의 능력을 가지고 있소. 또  그렇게 깨달아 자기로 하여금 요대로 살아야 되겠다는 그 감동을 받은 감동 그것이  또 지극히 큰 능력 전능을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러니까 자기 눈에는 보이지 안하지만 자기가 그 믿음을 착 믿을 때 울면  믿습니다. 울면서 주님이 나 위해서 죽기까지 하셨는데 나도 주님 위해서 이러면서  울면서 믿소. 울면서 믿었는데 눈에 안보이는 지극히 큰 능력이 와 가지고서  자기를 책임진다 말이오.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를 입었다.

하나님의 능력이 와 가지고 자기를 보호하고 자기 대신 일한다 그 말이오  이 능력이 올 때에 보이지는 아니했는데 울면서 믿음을 지켰더니마는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그 능력이 와 가지고 배경도, 환경도 변화시키고 사자 입도 막고 또 불이  뜨겁지도 못하게 만들고 또 18만 5천명이 그만 화살 하나도 맞지아니 하고도  시체로 다 뻗으러지고 어찌되었든지 만날 나한테 독사같이 이를 갈고 날뛰던 그  자가 마음이 휙 변해져 가지고서 이상하게 나를 좋아하고 은혜를 베푸는 사람이  되었고 자기 사업에 이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인데 어쩌다 보니까 그 사업이  형통하게 되어버렸고 이러니까 참 이상하다 어째 그러노? 그럴 때가 돼서 그러나?  그 사람들이 모두다 배경, 환경 그것이 어째 변해졌노? 암만 봐야 지극히 큰  능력이 안 보이는데 안 보이지만 일해놓은 것, 일한 것만 나타난다 말이오.

 그러니까 사람들이 '야, 이상하다.' 이러니까 마귀라는 놈이 와 가지고  이상하기는 무엇이 이상해 운이 좋아서 그렇다. 그래 그렇다. 이러니까 이것이 또  반신 반의요. 운이 좋아 그럴까? 이러니까 권찰이 떡 와서 봐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하심을 입었다고 안했나? 네가 믿으니까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를 입은 것이 아니냐? 예, 맞습니다. 그런 것 같애요. 다른 사람도  그렇게 말해요. 이랬는데 그러니까 요 다음에는 현실에서 어려운 문제가 생기니까  야, 그때 같이만 되었으면 이번에 믿음 지키면 더 큰 낭패인데 그때 같이만  하나님이 해 주시면 이러면서 했더니만 과연 보이지 않는 능력이 와 가지고 역사해  가지고 더 굉장한 일을 시켜줬다 말이오.

 이래가지고 어떨 때는 이 능력이 와 가지고 내 몸밖에 있는 일들을 잘 꾸며  가지고서 다른 사람이 다 볼 수 있도록 일들을 지극히 큰 능력이 와 가지고  꾸며가지고 모든 사람이 '아, 이상하다 예수 믿는데 뭐 있는갑다. 이상하다. 아,  그 사람이 미련하게 그런 일 했는데 당장 사자밥이 될 줄 알았는데 그것이 살아  나왔다. 이상하다. 하나님의 권능이다' 이렇게 할 때도 있지마는 그것보다도 어떨  때는 믿음을 턱 지키니까 껍데기 이것은 절단이 나는데 자기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서 절단나니까 더 좋고 낭패가 되니까 더 좋고 자기 안에 와 가지고 자기를  변화시켜서 상상도 못할 자기가 되었다 그 말이오 가만히 되고 나서 생각해 보니까  '야, 이상하다 성경에 기록한 믿음의 사람, 성자 성녀 같네 나도 이상하네. 왜 내  마음이 이렇게 컸어. 내 마음이 어떻게 이렇게 선해. 이상하네. 곧 내일이 사형을  받을 날인데 왜 이렇게 기쁠꼬? 이상하네.' 자기 안에 내재적 변화가 일어나  가지고서 자기 안에 이 능력이 변화를 시켜서 굉장해.

 이러니까 남 모르는 지극히 큰 능력의 역사를 남이 알게 되는 역사, 자꾸 이렇게  떡 오니까 남이 알게 되는 그 역사는 남이 모두 좋아서 야단이고 칭찬하지 자기  속에는 그렇게 좋은 것이 없는데 다른 사람이 '야, 예수 믿어가지고 절단나지  않았느냐?' 이렇게 껍데기에 이 능력이 와 가지고 역사한 것이 없는 그때는 자기  안에 와 가지고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변화, 자기 변화를 시킨 이것으로 인해서  뭐, 좋고 더 좋고 더 얼마나 더 좋다 말이오.

 이러니까 주여, 다른 사람 때문에 그렇지 나로 말하면 내 안에 와 가지고  역사해서 능력이 와서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 더 좋습니다. 다른 사람은 이 사람이  불쌍하다고 이 사람 예수 믿다가 낭패 당했다고 위로하러 왔는데 내 마음은 어떻게  기쁘고 즐거운지 참 측량할 수 없습니다.

 이러니까 이제 믿음을 지킬 때는 울면서 지켰지마는 지켜보니까 지극히 큰 능력이  와 가지고 역사하는 것을 겪어보고 자꾸 경험해 보니까 이제는 울면서 지켜는 것이  아니라 현실은 주의 뜻을 지킬려고 할 때 그 어려움 없이 지키는 것보다 어려움  있는 것이 좋고 작은 어려움보다 큰 어려움 있는 것이 좋고 큰 어려움보다 세상이  깜짝 놀랠 수 있는 이런 어려움 있는 것이 좋다 그 말이오 왜? 능치 못함이 없는  이 능력이 와 가지고 역사하는 그것을 경험하고 체험했거든.

 그러니까 "여러 가지 시험으로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이 능력이 와 가지고 역사한 결과 뒤에는 기뻐한다  말이오. 다니엘이 사자 구덩이에 들어갈 때에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울고 불고  야단을 지겼지마는 나올 때는 모든 사람들이 얼마나 기뻐했소. 다니엘 자신은 사자  구덩이에 들어갈 때에 울면서 들어가지 안했소. 근심하며 들어가지 안했소. 또  하나님의 큰 역사에 구경하겠다. 지극히 큰 능력이 와 가지고 나를 순교하는 것이  좋으면 순교시킬 것이고.

 이러니까 삶이 반 죽음이 반인데 반이 남아있는데 인생반 살이를 완전히 성공하게  하니까 좋고 또 죽을 때가 안됐으면 변화를 시켜 살려서 나올 터이니까 또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의 증거를 하니 좋고 큰 수입이, 이래도 저래도 수입이니까  기쁨으로 들어갔다 말이오.

 그러니까 인을 쿵 찍어서 조서를 내렸는데 이 조서를 보고 다니엘은 좋아서 기뻐!  이것이 뭐냐?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를 입어 믿음 지킬 때는  근심했지마는 그 후에는 오히려 크게 기뻐한다" 요 신앙의 경험과 체험을 많이  가졌기 때문에 다니엘은 기뻐 여전히 문 열어놓고 여전히 하루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해서 기도했다 이거요.

 이러니까 이제는 한 번 두 번 이래 보니까 어찌됩니까? 현실을 턱 닥쳤는데 옆에  사람이 있다가 '야, 이렇게 해야지. 너 하나님 말씀이 이래 하라니까 이래  해야된다. 야, 그러면 안된다. 옆에 사람들이 수십 명이 와 가지고 그러면 안된다  이래 해야 된다.' 수십 명이 와 가지고 지글거리고 유혹을 한다고 해도 그것이  유혹이 되지 안해. 뭐라 해도 응응...., 그래 그래..... 암만해야 속에  들어와야지. 나는 확정 짓고 단정했어. 내 현실, 과거 현실을 만날 때 인간 뜻  이렇고 하나님의 뜻 이런데 하나님의 뜻대로 해서 지극히 큰 능력이 와 가지고  역사하는 것을 내가 많이 경험하고 체험했기 때문에 내 현실에 인간의 뜻이냐 내  뜻이냐? 그런 것은 근방에 오지도 못해. 아예, 확정 놨어. 그것이 와 봐야 뭐  유혹도 없어.

 이러니까 자기 생애에 하나님의 뜻 외에는 거기는 참 아이들 말로는 명함도  못내놔. 하나님의 뜻 외에는 아무것도 근방에 오지도 못해. 하나님의 뜻 뿐이라.

하나님을 위하는 그 중심 목적뿐이오. 힘은 제 힘으로 할려고 하지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내가 시작만 해놓으면 지극히 큰 능력이 와서 해 줄거.

 이러니까 제 힘으로 하면 되겠다 하는 그것만 택할 것이 아니라 못할 일 없어.

아이구야, 그것이야 어림도 없다. 전능한 능력이면 할 수 있어. 이러기 때문에  이제는 그 사람이 사는 것이 하나님 위하는 것과,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 요 세 가지뿐이라.

 이러니까 그의 믿음에 잡것이 하나도 없어. 잡것이란 다 타버리고 잡것은 하나도  없다 말이오. 다시말하면 피조물의 것이 하나도 없어. 순전히 완전자의 것으로만  움직여 사는 요것이 금을 불로 연단해서 순금만 남은 것처럼 요런 요런 모든  순서를 모든 현실을 겪고 나니까 이제는 이 사람은 순전히 하나님으로만 살고  하나님으로만 살고 피조물인 자기는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뿐이지 하나님으로만  살고 하나님의 지혜로만 살고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살고 하나님의 성품으로만 살고  하나님의 소원으로만 살고 하나님으로만 살지 하나님으로 사는 그 외에 잡것이  하나도 없으니 금이 순금된 것보다 인생들아, 너희에게 하나님으로만 살고 인간의  요소가 하나도 없고 하나님의 요소로만 살 수 있는 이렇게 너는 완전히 변화될 수  있는 것이니 너희들에게 가능하다 하는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 능력이 오니 이 능력이 오면 뭣합니까? 순교만 시킵니까? 아니, 이  능력이 오니 이 능력이 와서 장사도 하지, 이 능력이 와 가지고 이혼한다고 지극히  하더니 이 능력이 오니 딱 들어붙지. 이 능력이 오기 전에는 이제 모든 사람들이  다 멸시하고 천대하더니 이 능력이 오니까 모든 사람이 존대히 여기지. 이 능력이  오기 전에는 만날 연구해야 돈 밑질 것만 장 합니다. 돈 밑질 것밖에 없어. 밑질  것만 해. 세근 머리가 꽉 막혀서 다른 사람 돈 버는 것 보고 나도 해보자 하니까  그만 시세가 내려 자꾸 밑졌다 말이오. 이 능력이 오니까 무단히 모든 사람이 이것  안하니까 이것 한 번 해볼까? 하는데 그렇게 박히게 자꾸 싸게 살려고 뻔드럽게 할  수 있나? 어라, 뭐 달라는 대로 주지. 이러니까 물건 사 놓으니까 다른 사람이 이  바보, 이 천치 봐. 예수 믿는 바보. 지금 현 시세보다 훨씬 많이 줘 놨으니 이것  어찌 되겠느냐? 이랬는데 사기는 비싸게 사놨는데 시세가 어떻게 돼? 올라갔어.

얼마나 올라갔는지. 이렇츰 올라가니까 아무것이 그 사람 그것 많이 사 놨는데  그것 좀 내가 사야 되겠다. 그 사람 그것 많이 사 놨는데 그것 좀 내가 사야  되겠다. 떡 사러 와 가지고 이것 좀 팔아라 하니까 아, 팔지요. 아, 헐찍하게 샀나  좀 어지간히 남기고 팔아라. 어지간히 남기고 팔지. 야, 얼마만 주면 요새 장 시세  얼마인데 얼마하면 내가 얻어 먹을 것 뭐 있나 그러니까 헐하게 나 얻어먹구로  많이 벌었나 좀 그래 헐하게. 야, 그래 주지. 헐하게 주지. 비싸게 사고 헐하게  팔아도 자꾸 남소.

 이 지극히 큰 능력이 와서 일하니까 이래 살아도 되는데 이 능력으로 말이오. 이  지극히 큰 능력으로 살아야 되는데 못나고 앞뒤가 꽉 막힌 깜깜 어두운 제 지능을  가지고 살려고 하니까 예수님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들을 편히 쉬게 하겠다.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이다. 너희들에게 해독끼치지 아니한다 오라! 오라!"  여러분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믿는 자에게 평강이 있고 믿는 자에게 영광이 있습니다. 믿음은 수입 중에 제일  큰 수입이요. 믿음보다 더 큰 수입은 없어. 믿음이 하는 수입이 제일 큰 수입이요.

믿음이 하는 수입이 제일 커! 믿음버리고 무슨 수입한다고 야단 지기겠어요?  믿음이 하는 수입이 제일 큰 수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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