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선지자선교회 1981년 7월 7일 화새

 

본문 : 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믿음은 순종인데 순종은 내가 그를 따라가는 것이 순종입니다. 순종은 하나님이  이렇다 할때 내가 그렇게 따라가고 또 이렇게 하라 할때 이렇게 따라가고 또  이것 저것 이렇게 이럿이 말할 때에 하나님이 이것이다 하면 예 그렇습니까 그래  긍정하는 이런 것이 말하자면 믿음입니다. 순종. 순종은 바라는 것들을 만드는  것이 순종입니다. 또 믿음은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라 믿음은 알지 못한 것 보지  못한 것 그런 것을 볼 수 있고 알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되는 그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만드는 것이요 또 믿음은 배우는 것이라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만드는 것이요 믿음은 배우는 것이라.

따라합시다.

믿음은 만드는 것이요! 믿음은 배우는 것이라! 사람이 어떤 기계를 하나 만들려고 하면 당장에 단번에 만들어진 것 아닙니다.

어떤 훌륭한 기술자가 만드는 것을 지도를 하고 재료를 준다 할지라도 무슨  기계를 만들든지 이것을 하나 만들어라 하면 고거 만듭니다. 고거 가지고 기계가  그 완성된 것 아니요. 또 요렇게 긴 것 요것을 만들어라 또 고거 만들었습니다.

만들었다고 되는 것 아니요, 어떤 기계는 한번 만들면 됩니다.

예를 들어서 네가 하나 작지를 만들어라 하면 단박 끊으면 작지가 됩니다.

그렇지마는 또 고보다 조금 가치있는 무엇을 만들라 하면 한동아리만 끊어  가지고 안되고 두 동가리를 끊어야 될 것이 것이고 또 세 동가리를 끊어야 될  것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기계를 만드는데도 또 시키는대로 만들고 여러번 만들어 가지고 그것을  조립을 하니까 기계가 됩니다. 또 집도 네가 이 집을 지으라 하면 그것이 대번  되는 것 아니고 집을 짓는 데에는 터를 마련해라 그 다음에는 기초를 해라 그  다음에는 이제 또 뼈대를 세워라 이래 자꾸 여러번 할 순서를 해 나가면  마지막에는 집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거 모양으로 우리는 성경에 있는 온갖 좋은 것을 소망하는데 성경에 있는 온갖  좋은 것을 우리가 소망할 때에 그 소망하는 것을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님이  시키시는대로 우리가 해야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인데 시키시는대로 한다고  한번에 그것이 된다고 그렇게 생각을 가지면 안됩니다. 또 시키시는대로 이것도  저것도 자꾸 이렇게 할때로 다 하면 나중에 가서 소망하는 것이 이루어집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어떤 그 어떤 성경 가운데에 기록되어 있는 어떤 축복을  받으려고 해도 한번 순종해 되는 것도 있지마는 한번 순종에 되지 아니하고  여러번 순종해야 마지막에 그것이 되어지는 것이라 이거요. 그러면 열 번  순종해야 될 것 있고 다섯번 순종해야 될 것 있고 한 번 순종해야 될 것 있고 참  귀한 것은 평생 순종을 해야 그것이 다 이루어집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하고 깨끗하고 거룩한 사람이 되어지는 데에는 평생 순종을  해야 그게 성공이 되지 그렇지 않으면 안됩니다. 또 믿음은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라 한번 믿으면 또 자기가 모르던 것 알 수 있는 게 있고 또 두 번 순종해야  알 것 있고 열 번 순종해야 알 것 있고 또 한 번 순종하면 볼 수 있는 것도 있고  한 번 순종해 가지고 못보고 두 번 세 번 두 번 세 번 순종하니까 비로소 그것이  자기 눈에 보여지는 것도 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순종하는 것은 모르는 것을 보지 못한 것을 알게 되고 보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있는 도리를 알려고 책상 위에서  일생동안을 연구를 해도 모릅니다. 모르는 게 많이 있습니다. 네가 이렇게 해라  네가 이것을 행해라 할때에 그 행함으로 알 것은 그 사람이 그것을 행하지  안하면 모릅니다. 아주 이 사람이 순종을 참 잘하는 사람으로서 일생동안 순종해  나오는데 한 가지를 순종 안했다 말이오. 한 가지 순종 안했으면 한 가지 순종  안한 고것으로 인해서 자기가 알 것을 모르고 세상을 떠날 수 있고 또 고것을  만들지 못하고 떠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믿는 사람들이 성겨 도리를 예를 든다면 신학자가 목사가 이  성경에 있는 이 도리를 자기가 모두 알려고 애를 씁니다. 바로 알려고 애를  써요. 성경 66권 도리를 바로 깨달으려고 다 애를 씁니다. 또 성신의 감화  감동의 그 인도를 바로 알려고 애를 씁니다. 알려고 애를 쓰지마는 자기가  순종치 아니하면 아무리 책상 위에서 애를 써도 헛일입니다. 순종해야 압니다.

내 입술이 여 붓지요 자꾸 지금 입술이 여 붓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좀  부어 많이 부었지요.

예수님도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사람 아닙니까? 이런데 능치 못하심이 없고  알지 못하심이 없는 하나님이신데 예수님도 인성을 입은 그 인성으로서는 신성은  알지마는 인성은 예수님의 인성으로서도 모르는 것 있습니다. 어떤 것  몰랐습니까? 겟세마네 동산에 가셔 가지고 아주 죽기까지 고민했습니다.

죽기까지 고민을 하시고 참 너무 고민이 되어서 죽을 지경이라 이랬습니다.

아! 그랬는데 그렇게 어려움을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찬식하면서도 몰랐고 또  기드론 시내를 건너갈 때에도 몰랐고 겟세마네 동산에 갈때에도 몰랐고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할때에 비로소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그것이 죽음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지성과 지공법을 만족케 해야 되는 것이니까 그것이 도무지  피조물 가지고는 안되다는 것을 알고 심히 고민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 가라고 성령이 인도하실 때에 갔기 때문에 가 가지고 기도를  했기 때문에 알았지 가서 기도에 착수하기 전에는 몰랐다 이거요.

이러니까 우리가 예수믿는 사람이 알아야 될 것이 얼마나 많은지 또 우리가  만들어야 될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만들어야 되는 그것도  하나님에게 순종하면 만들어지고 아는 것도 순종하면 알아지지 예수믿는 도리는  순종으로 알아야지 순종 아니고는 알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아무리 그 사람이 무식하다 해도 하나님이 인도하시는대로 순종만 하면 얼마  안가서 마지막에는 모를 것이 없는 그런 유식한 사람이 되게 하고 그 사람이  순종하는 것 외에 이 세상 지식으로 공부만 하면 될 줄로 생각하고 죽을 때까지  책상 위에서 연구하고 해도 모릅니다. 그들이 예수믿는 이치는 성경에 말하기를  지혜있고 통달한 사람은 알게 모르게 되고 어린아이는 알게 된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혜있고 통달한 사람은 모릅니다. 아는 사람이 많지 안해요.

그래서 예수님 믿는 이치를 잘 아는 사람 가운데에는 학벌 좋은 사람이 많지  않다 했습니다. 세상 지식 많은 사람이 예수믿는 이치를 잘 아는 사람이 많지  안하다 약간 끼어있기는 끼어있지마는 모두 세상 지식이 없고 순종 잘하는 그  사람들이 다 유식한 사람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더라 그거요.

그런고로 예수믿는 이치를 아는 데에는 예수 믿는데 대해서 하나님에게 대해서  아는 것 천국에 대해서 아는 것, 또 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이치를 아는 것, 또  내세에 대한 것 아는 것, 미래의 것을 아는 것, 과거의 것을 아는 것, 현재의  것을 아는 것, 하늘에 대한 것, 세상에 대한 것, 하나님에게 대한 것, 모든 것을  예수믿는 예수교 안에서 아는 그 방편은 순종 뿐이라 그말이오. 순종 뿐입니다.

아는 거는 순종 뿐이요.

이런데 세상 것을 아는 거와 같이 되는 줄로 알고 그 사람이 책상 위에서 또  어떤 학자들에게 돌아다니면서 외국에 다니면서 일년을 학교 다니고 또 오년을  연구하고 십년 연구하고 평생 연구해서 연구하면 인간들이 이 사람은 박사라  이렇게 이제는 잘 아는 사람이라 이렇게 인정하다고 해도 예수믿는 이치는  모릅니다.

그러니까 예수믿는 이치는 외국에 가 가지고 연구한 사람. 아주 평생동안을 그저  성경책만 가지고 또 이런 저런 책들만 가지고 연구하는 그 신학자들 암만  연구해도 모릅니다. 그거 가지고는 몰라요 왜 하나님께서 예수교에 대한 이  구원에 대한 것을 아는 데에는 아는 방식이 따로 있다 이거요. 이 구원을 이루는  이 구원에 대해서 아는 방식은 따로 있어 따로 있는데 이 방식을 쓰지 안하니까  암만 해봤자 헛일입니다.

예수믿는 이 구원얻는 이치 예수믿는 일을 아는 데에는 아는 이치가 하나  뿐입니다. 아는 이치가 하나 뿐이요. 아는 이치가 뭐입니까? 순종 이거 외에는  아는 이치 없어. 그건 순종 안하는 사람은 제가 암만 해야 모릅니다.

그러기에 말하기를 그렇게 말합니다. 예수교는 체험의 종교라 그렇게 말해.

체험의 종교라 자기가 체험해야 알지 그전에는 모른다 체험으로만 안다 체험의  종교라 그렇게 경험자들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거는 그래요. 하나님이 이렇게  하라 하는대로 순종으로 알아지는 것은 참 정확하게 알아지는데 순종 아니고  자기가 짐작으로 이래라 저래라 이것 보니 이러니라 저러니라 이렇게 안 것은  그게 바로 안게 못됩니다. 그렇게만 안걸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봤자 그  사람들에게 성화가 없습니다.

그런고로 예수 믿는 예수교에서 알아야 하는 것, 지식해야 되는 것, 예수교에서  보아야 하는 것, 알아야 되는 것, 느껴야 되는 것, 자기가 전부 새것을 감각하게  되는 것, 지각하게 되는 것, 새 것을 깨달아 느끼게 되는 이것은 순종으로만 그  방편을 딱 정해놨습니다. 다른 방편 가지고는 안돼요.

그런데 사람들이 순종 이거 빼놓고 세상 것과 같은 것인 줄 알고 순종 이거는  빼놓고 다른 방편 가지고 아무리 알려고 알면 될 줄 알고 애를 썼지마는  안됩니다. 그러니까 예수교에는 학벌 많은 사람이 예수교에서 유식한 사람은  별로 없어 예수 믿는데 대해서 유식한 사람은 학벌 좋은 것 가지고는 아무  소용없어. 그 학벌 좋은 사람은 도로 속습니다. 학벌 좋으니까 내가 학벌이  좋으니까 아 학벌 가지고 알리라 생각하고 또 자기 학벌대로의 것인 줄 알고  알았는데 이는 하나님이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에 학벌대로의 것이 아니라  그말이오.

그러니까 박사가 목회를 하면 교회가 죽어집니다. 교회가 안돼요. 또 박사에게  은혜 받은 사람 없어요. 그러니까 박사에게 은혜 받는 사람들도 있지마는 그  박사가 자기의 세상 지식을 버리고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순종으로만 알아지는 이  방편인 것을 자기가 인정하고 그대로 하면 박사는 더 잘 알 수 있지요. 박사가  순종하면 더 잘 알 수 있지마는 순종하는 방편이 이 방편을 쓰지 안하고 다른  방편 암만 써봤자 헛일이라 이거요.

이러니까 신학박사들이 자기도 목회를 한번 해보려고 달라듭니다. 신학박사들이  목회를 하려고 달라들지마는 달라들었다가는 목회를 못하고 교회를 내놓고 다시  그래 들어갑니다. 목회하면 그거 참 영광 있는 줄로 압니다. 목회를 하면  백명이면 백명 천명이면 천명 만명이면 만명이 자기를 존대하고 또 자기에게  영광을 돌리고 이렇게 재미가 있는 거시 뭐 목회 이상 재미있는 것이 없지마는  이러니까 아 나도 내가 뭐 목사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니까 내가 신학교 목회 잘  할 것 아닌가 달라들어 봅니다. 달라들면 처음에는 사람들이 무슨 신학교 교장이  신학박사가 이제 그 교회 목사로 부임했으니까 은혜를 받겠다고 사람들이 마음을  단단히 갖추어 가지고 달라드니까 처음에는 어째 한달 두달은 은혜가 되는 것  같더니마는 나중에 몇달 지나가니까 은혜가 안됩니다. 그러니까 교인들이 슬슬  떨어집니다. 일년이 되니까 아주 교인들이 푹 떨어집니다. 아주 우사라  그말이오.

아! 이거 내가 이거 부임하고 난 다음에 교회가 부흥돼야 될 터인데 교회가 자꾸  이렇게 쇠퇴해지니 권위없다 이렇게 될 터이니까 내가 신학자 노릇도 못해먹겠다  아예 사면해야 되겠다. 사면합니다.

이 한국도 유력한 신학자들이 목회하려고 달라들었다가 일년 넘어간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박원선)목사님도 우리 한국에서는 아마 신학자 쳐놓고는 제일  우두머리되는 신학자일 것인데 그분이 교회를 서울 가서 신학교가 이리 저리  되어지고 이러니까 나도 이 목회해야 되겠다. 목회해 가지고 목회를 맡아 가지고  일년이 되니까 교인이 푹 떨어지고 자꾸 이래 되어지니까 안됐다 그만  사면했습니다.

또 그 뒤에 한번 어짜든지 목회하는 데에는 보니까 어떤 그 교역자들 보니까 그  사람이 산기도 많이 가고 산에 그 교인들 데리고 기도하러 가고 이렇게 산집회  하고 이러니까 그 사람 목회를 잘 하니 나도 그 본떠야 된다고 그 교회를 맡아  가지고 그 어른이 교인들을 데리고 제직들을 데리고 산에 가서 산 집회도 하고  산기도도 하고 이렇게 했지마는 목회가 안됩니다. 이래 사면했습니다.

신학자는 목회는 못해요. 왜 그러냐? 성경만 가지고 책상 안에서만 있었지  실지로 자기가 이 신앙생활하는 그런 생활을 그걸 실지로 해보지 안했기 때문에  경험의 지식과 체험의 지식이 없다 이거요. 믿음으로만 알게 해 주셨는데 믿음이  아니기 때문에 이제 교리는 배우면 알지 이 사람이 책에 써놓은 그대로 배워  가지고 그대로 전달합니다. 그 사람들이 깨달은 사람들이 적어 놓은 것을 그대로  전달은 하지마는 깨달아 놓은 사람들의 것을 전달은 하지만 제가 깨닫지는  못한다 이거요. 요것을 가지는 것이 아주 보배입니다.

기독교에서 모르던 것을 아는 것, 아직까지 보지 못했던 것을 보는 것, 깨닫지  못했던 것을 깨닫는 것, 느끼지 못했던 것을 느끼는 것, 이것은 참 좋은 것인데  어떻게 하면 이렇게 되어지느냐? 어떻게 하면 이렇게 되어집니까? 녜 순종하면  됩니다. 그 외에는 딴 게 없어요.

또 기독교에서는 뭘 만들어 이것을 만든다 저거 만들라 뭘 만들라 하는 것도  다른 방편 가지고는 암만 만들어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순종하면 이것으로만  만들지 딴 거 가지고 만들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그러면 순종하면 그것이 단번에  되어집니까? 예를 들어서 집을 이런 걸 집을 하나 지으려고 하면 한번 한 가지  하면 그 집이 됩니까? 몇가지 열 가지 해야 될 것 열 가지를 다해야 되지 아홉  가지만 해도 안된다 이거요. 백 가지 해야 될 것은 백 가지를 해야 그게  되어지지 백가지 하기 전에는 아흔아홉가지만 해도 그럴듯하게 비슷하게 되는  되지마는 꼭 고거는 안됩니다.

이러니까 기독교 안에서 어떤 좋은 것이라도 그것을 이루는 데에는 그것을  성취하는 데에는 순종이라 기독교 안에 어떤 것이든지 새로 아는 것이나 보는  것이나 느끼는 것이나 깨달아지는 것이나 그런 건 전부 순종으로 된다 요것을  굳게 잡읍시다. 순종은 땀른 것인데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대개 보면 어떤  것이냐? 어떨 때에는 지식을 당신이 땀게 하는 것입니다. 네가 요렇게 알아라  그러면 고거 하나 알았습니다. 고만 지식이 하나 더 됐습니다. 또 요렇게 알아라  지식이 하나 더 됐습니다. 그 지식을 순종해서 하나님의 지식과 같이 됩니다.

그렇지 않소?  제자가 학교에 들어갔는데 이거 아무것도 모릅니다. 이 똑 꼬구랑을 아나  기억해라 기억, 기억이 뭐입니까? 제까짓게 모릅니다. 그저 따라해요. 기억 아  요거 기억자입니까? 그래요 기억자이다. 그러면 고 선생 지식을 따라간다  말이오. 그러면 요 기억이다 요 기억인 것을 요 아이가 알아 너 기억자 써봐라  요랬습니다. 요게 무슨 자고? 기억자 그러면 고 지식은 선생 지식과 같습니까  다릅니까? 예. 같지요. 이제 선생 지식과 같습니다. 고다음에 니은자를 하나  써봐라 고걸 쓸 줄도 알고 보고 읽을 줄도 압니다. 그러면 고 니은자 고거는  선생 지식과 같습니까 다릅니까? 같지요.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하나님과 같은 지식을 만들려고 지식을 가르칠 때에 고  가르친데 순종을 하면 하나님 같은 지식이 되고 또 지혜에 순종하라 할때에 고  지혜에 순종함으로 하나님 같은 지혜가 되어지고 또 하나님이 네가 요렇게  사랑해라 조렇게 사랑해라 해서 고 순종하니까 하나님의 사랑과 같은 사랑이  되어집니다.

그 하나님의 속성대로 하나님이 이런 선 또 이런 거룩 이런 진실 저런 진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이 시키시는대로 이렇게 하니까 하나님의 속성과 같은 속성을  가진 사람이 되어집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속성을 배워 가지고 하나님의 속성을  따라가니까 하나님의 속성과 같은 그런 속성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그  능력얻는 일을 하나 가르칠 때에 요렇게 하라 하니까 고 능력 고게 대한 능력은  하나님과 같은 능력이 됐습니다. 또 한번 하나님의 능력과 같은 능력을 말할  때에는 고대로 하니까 하나님의 능력과 똑같은 능력이 됐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을 따라서 순종하다 보니까 하나님의 속성과 같은 그런  속성을 가진 사람이 되게 됩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에게 자꾸 순종하니까  하나님과 같은 자가 되어져버리지. 성질도 같지 또 지식도 같지 뜻도 같지  이러니까 하나님이 순종하라 할때에 자기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서 한번  순종해보겠다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한번 순종해보겠다 하나님의 마음에 대해서  한번 순종해보겠다 하나님의 지식에 대해서 한번 지식에 한번 따라가보겠다.

순종은 땀른 것 아니요 하나님의 지식에 한번 따라보겠다. 하나님의 지혜를 한번  따라보겠다 하나님의 권능을 한번 따라보겠다 하나님의 하시는 그 의를 나도  한번 따라보겠다. 이렇게 하나님의 온갖 속성이 있는데 그를 한번 따라서 해보자  배워보자 따라해보자 배워보자 고대로 나도 해서 한번 닮아보자 한번 본받아보자  이렇게 자기가 하고 싶습니다. 하고 싶으면 자 내가 이시간에는 하나님의 성품을  내가 한번 따라보겠다 하나님의 성품 한번 본받아보겠다 하나님의 성품을 한번  배워보겠다 하면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의 성품을 배울 수가 있습니까? 배울 수  있습니까? 한번 대답해봐요. 배울 수 있습니까? 자 저 (박) 집사 한번, 배울 수  있습니까? 예. 배울 수 있습니까? 그 덩덤갱이 그거는 소용없는 대답이요.

순종을 해야 뭐 순종하면 뭐 배운다는 것 이제까지 말해놨는데 모르는가 자기가  이 시간에는 나는 하나님의 다른 것 말고 이 시간 나는 하나님의 지식을 한번  따라보겠다 하고 지식에 한번 따라보겠다 지식에 한번 배워보겠다 지식에 한번  본받아보겠다 지식이 하나님과 같이 한번 돼보겠다. 하나님의 지식을 배워서  하나님의 지식을 닮아서 하나님을 본받아서 하나님의 지식같이 한번 돼보겠다  이렇게 자기가 소원합니다.

그러면 자기 소원대로 그 일을 지금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예 없어요. 할  수도 있고 할 수 없다. 저 (손성준) 장로님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예 할 수  있습니까? 할 수 있습니까? 또 고다음에 홍 예. 뭐라 하노? 할 수 있습니까? 또  고다음에 저 김 예. 할 수 있습니까? 녜 고다음에 강, 환경을 주셔야 그러면  현실을 줘야 할 수 있다 그말이오. 아 (손) 장로님도 제 마음대로 이 시간에  하나님의 지식을 따라가고 싶으면 따라가고 싶으면 당장 따라갈 수가 있고 또 할  수가 있다고 이러는데 하나님의 성품을 내가 한번 닮아봐야 되겠다. 배워봐야  되겠다. 따라가봐야 되겠다. 하면 그러면 이 시간에 성품 따라가고 싶으면 그만  따라가고 싶으면 따라가고 (손) 장로님도 그렇다고 하고 저 (홍) 선생도  그렇다고 하고 하는데 또 (김) 선생님도 그렇다고 하고 저 (강) 선생님도  안된다고 하는데 그 무슨 소리요 저 (강) 집사는 안됩니다. 암만 하고 싶어도  하나님이 환경 현실을 줘야 되지 그리 안하면 안됩니다. 또 이 세 분들은 아  됩니다.

이랬는데 자, 세 분이 된단 말이 맞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보십시요.

장로님하고 또 (홍) 선생님하고 (김) 선생님하고 맞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보십시요. 예 들어봐요 버득 들어봐요 버득 들어봐 확신있게 들어봐. 와  비식그라고 있어. 자 그러면 자기가 암만 닮고 싶고 하고 싶고 무슨 본받고 싶고  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현실을 줘야 배울 수가 있고 하지 아무 현실이나 그  일이 되지 안하고 고거 배울 수 있는 현실 줄 때에는 고거 배우고 조거 배울 수  있는 현실 줄 때에는 조거 배우고 현실 줘봐야 되지 그리 안하면 못배운다 하는  (강) 집사 대답이 맞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보십시요. 나도 듭니다.

맞습니다. 요렇게 알아야 됩니다.

그냥 와서 앉았기만 해서 소용없어. 껍데기 사람은 앉았지마는 속에 들을 귀는  없다 그말이오. 귀는 가리워져 있으니까 뭐이 됩니까? 세 분은 잘못 알았어.

그래 알아 가지고 사람 지도하고 그래 알아 가지고 목회 나가고 하면 참  가련하고 비참하게 됩니다. 목사가 안되면 사람 죽이지나 안하지 그러니까  목사가 받을 심판이 큽니다. 하나님께서 요런 현실을 줄 때에는 요런 현실을 줄  때에는 요 하나님의 지식을 배우게 하는 현실도 있고 지혜를 배우게 하는 현실도  있고 하나님의 성품을 배우게 하는 현실도 있고 하나님의 뜻을 배우게 하는  현실도 있고 하나님의 그 권능을 받게 하는 현실도 있고 각각 다르다 그말이오.

하나님의 사랑을 배워서 가지도록 요렇게 하는 현실도 있고 그러면 자기가 자기  마음대로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뜻 그 뜻을 또 자기에게 영감시키는 영감을  언제든지 자기 마음대로 이것 순종하고 싶으면 이거 순종하고 저거 순종하면  저거 순종하고 순종하고 싶은대로 순종할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요거  순종해라 하는 고 현실에서만 고것만 순종하지 딴거는 순종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순종할 수 있는 고 형편을 딱 만들어 주실때에 고게서만 순종할 수가 있습니까?  뭐입니까? 네 하나님께서 순종할 수 있는 형편을 만들어 주실 그때에 고것만  순종해 딴 거는 또 순종 못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제가 제 마음대로 아 이면을 좀 해보겠다고 됩니까? 하나님이 고  현실을 줘야 됩니다. 고걸 가리켜서 기회라고 말씀할 수 있습니다. 기회를 주실  때에 대해서 이렇게 기회를 주실때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내가 거짓말을 안한다  거짓말을 안한다 암만 거짓말 안한다고 자기가 말해도 소용없어 거짓말하고  참말하고 거짓말할 수도 있고 참말할 수도 있는 고런 환경을 딱 줘야 그때에  거짓말하는 사람도 될 수 있고 참말하는 사람도 될 수가 있는 것이지 고 사건이  없는 거기 제가 안에 방안에 굴에 들어앉아 가지고 있으면서 난 거짓말 안한다  거짓말 안한다 어따가 거짓말 안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있어야 거짓말 안할 수  있고 또 그 거짓말 안하면 거짓말 할 수도 있는 것이지. 고런 기회가 고런  현실을 주지 않는데 제가 굴 안에 앉아서 방안에 앉아서 무슨 거짓말 안해  그렇게 백번 천번 말하면 소용이 있는가 그때에 자 거짓말할 수도 있고 참말 할  수도 있으니까 네가 그러면 한번 거짓말 한번 안하고 참말 한번 해봐라. 그러면  그때에 거짓말 안하고 참말 할 수가 있다 그거야 현실을 주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것을 따라 해라 저것을 따라 해라 하는 따라 해라 하는  것이 종류가 많습니다. 몇가지 종류가 되는지 우리가 모릅니다. 또 따라할 때에  이것이 필요하게 쓰일런지 그것도 모릅니다. 그저 다만 우리는 요 현실에서는  성경에 보니까 요런 현실에서는 요렇게 하라 했다 요렇게 해야 되겠다. 또  고렇게 할 때에 성령의 감동이 와 가지고 네가 이렇게 하기는 하지마는 네가  마음은 딴데 뒀구나 그 마음을 이리 모아라. 네가 요렇게 순종하기는 하지마는  네 목적이 틀렸구나 목적을 고쳐라 이래 가지고 성령이 오살 때에 동기도 목적도  그 성품도 모든 것이 다 그렇게 집중이 돼 가지고 고렇게 할 때는 성령이 됐다  하시고 성령이 함께 동참을 해 가지고 도장을 꼭 찍어요 이것이 가르쳐서 성신의  뭐이라고? 예. 성령이 인치는 것. 이제는 이거 내가 책임진다 책임진다 이거는  합격된다 이거요. 그것이 영감입니다. 이미 종류는 바로 택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 질과 영과 성이 본성이 틀릴 때에는 성령이 합격 안시켜줍니다.

아 요 옆에 병공장에 병 만드는데 보니까 병을 꼭같이 겉은 꼭같이 됐소 이런데  병 선별하는 사람이 이러더니마는 그만 저 궤짝으로 휘덕 던져 탁 깨지고 무엇이  이렇습니까? 아 이거는 중량이 다릅니다. 아 고 사람이 보고 탁 내틀릴라 하는데  그걸 달아라 가서 달아보니까 중량이 가벼워 아 그 사람 어떻게 분별 잘하는지  또 내버리라 내버려 하면서 여 내놓고 있소 딱 내놨는데 보니까 아 이거는 꼭  같은데 뭐이냐고 요 병이 같은데 요게가 얇게 됐습니다. 요게 그 재료가 이쪽에  와 가지고 요는 두껍고 요는 얇아서 안됐어. 딱딱 안다 말이오. 그렇게 보기는  그것도 보기는 우리 보기는 꼭같은 병인데 그 사람이 보니까 뭐 중량이 모자란데  한쪽으로 치우쳤다 이래 가지고 불합격이 된다 그말이오.

이거 모양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현실에 순종은 했지마는 마음은 딴데 두고  있거든. 손으로 발로만 그와 같이 했지 마음은 딴데 두고 있다 말이오. 또  마음도 거기다 집중시켜 가지고 순종은 하기는 하는데 소망이 다르다 그말이오.

소망이 달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라 하는 그게 아니고 저거 마누라 기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 기쁘게 하기 위해서 저거 남편 기뻐하기 위해서 하나님 기뻐하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그 위에 목사 기쁘게 하기 위해서 안 이거 소망이 또  다르다 이거요. 또 하기는 하는데 그 동기가 또 달라 그러면 그 동기부터 고쳐야  되겠다. 이거요. 이거 다 하는 동안에 그 하는 것이 다 지나가기 전에 성령이 와  가지고 야 요거 틀렸으니까 요거 고치라 아 요거 틀렸으니 요거 고치라 이렇게  자꾸 성신이 감동 자기 깨달아진다 말이오. 때닫게 해줄때 그때 고것을 딱  고쳐서 요렇게 하면 하나님의 성령이 볼때에 맞으면 성신의 감화가 오거든  감화가 옵니다. 양심에 편했다가 양심 편한 것보다 감화 감동이 편해. 이래 편해  가지고 또 편해진다 이거요.

이러면 이제 종류는 내가 택했는데 고것을 수정해 가지고 합격되도록 하는  데에는 성령의 감동으로 삭개오 믿음으로 고쳐 가지고 이래 합격되는 수도 있고  어떨때는 종별을 내가 택하지 못할 때에는 성경 보고 택하지마는 성령의 감동이  네가 요렇게 해라 종별을 바로 택해줄 때도 있다 이거요. 그러면 성령이 고  종류를 택해줄 때도 있고 내가 종류를 택하지 못할 때에는 종류를 택해주는  일들도 있고 내가 종류는 바로 택했는데 고게 구비해야 될 성품이나 뜻이나  마음이나 힘이나 고런 정성이나 고런 것이 구비되지 안했을 때에 고것을  구비하도록 또 성령의 감동이 역사해주는 때도 있고 또 고게 잘 됐는데 뽑아야  될 못쓸 것이 고 하나 썩어 있었기 때문에 안되니까 네가 요 마음은 뽑아라. 요  마음을 뽑고 해야 된다 네가 독사와 같은 원수를 품은 그런 독을 가지고 네가 요  일을 하니까 목적도 좋고 소망도 좋고 종류도 잘 됐고 양도 좋고 네 성심성의도  다 기울렸지마는 네 속에 지금 사람을 미워하는 고런 일이 하나 들어 가지고  있으니까 네가 다 잘됐지만 요것 때문에 안됐으니까 요걸 뽑아라.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에게는 뭐이 없다 했습니까?예. 뭐라  하노? 영생 영생 영생 고런 건 좀 똑똑히 말해요. 영생.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에게는 영생이 그 속에 없는 줄을 너희들이 알지 못하느냐?  아이 하기를 다 잘했소 뭐 구비하기를 어떻게 잘 했는데 요 속에 사람을  미워하는 미움이 속에 하나 딱 들었다 말이오. 요놈 때문에 전부 다 헛일이라.

이러니까 성경에 고것을 뽑아버리라고 한다 고 말이오. 사람 보기에 그러니까  얼마든지 잘하겠소 얼마나 훌륭했지마는 속에 사람을 미워하는 고런 면도 있다  그말이오. 이러니 하나님 보시기에 안타깝다 그말이오. 모든 건 다 잘됐는데  고거 하나 틀어 가지고 있어 안됐다 말이오.

그러니까 요거 암만 말해도 안되면 마지막에 불로 지집니다. 불로 지져야  화닥거리니까 그때 사람 미워하는 것은 게워냅니다. 어떨때는 고거 게워내기  위해서 그 사람 많은 재산을 그만 똘똘 떨어 거지를 만들어 버리고 그러면  거지가 되니까 그 다음에 그것이 없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있는 하늘나라에 합당치 아니한 그 요소가 있는 그것을  우리의 재산이 없어지는 것보다도 그거 있는 게 탈, 우리 몸이 병신되는  것보다는 그게 탈. 이러기 때문에 사랑하는 자에게는 고 잘못된 것 있으면 죽기  전에 고 요소를 뽑을려고 오만 일 다 합니다.

자 욥이 온갖 시험 다 당하지 안했어. 욥이 온갖 시험을 다 당했는데 욥이 그  시험을 당한 것은 하나님이 뭣 때문에 욥을 그렇게 자녀를 마구 절단을 내고  살림을 절단내고 자기 몸에도 병이 들고 이렇게 했습니까? 그 목적이 뭐입니까?  누가 압니까? 목적이 뭐요? 예. 욥 속에 뽑을 것이 하나 들어있었는데 그것을  욥이 모르고 있었는데 그것을 나중에 회개하겠습니다. 자기는 참 그렇게 해도 다  믿음을 지키고 이렇게 했지마는 나중에 다급해서 친구들이 가 가지고 고만  이렇게 저주를 하면서 훼방을 하고 이렇게 하고 나니까 저 깊이 들었던 것이  마지막에 나와 가지고 자기도 '하나님 내가 왜 이렇습니까?' 하는 하나님을  하나님께 대해서 불만 불평을 품는 거아 같이 고런 것이 한마디 쏙 나왔다  말이오. 나오고 난 다음에 그게 나오고 나서 이제는 욥이 혀가 막혀서 하나님  앞에 회개를 하고 자복을 하고 그 친구들이 있다가 '네가 요렇게 하는 이게  틀리지 안했나?' 마구 조롱을 해댑니다.

그 욥이 그걸 회개해 다 내버렸어. 회개하고 나니까 당장에 잊어버렸던 아들도  배나 줘버리고 살림도 배나 주고 당장 돼버렸어. 하나님께서 고 요소 하나 욥을  사랑하기 때문에 욥을 애끼기 때문에 욥 속에 들어있는 고 요소 한 개를 뽑기  위해서 마구 환경과 자녀를 전부 절단을 내도 고거 하나를 뽑으려고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서는 몇번이든지 징계해 가지고 그에게  뽑을 것이 있으면 그걸 뽑지 안뽑지 않습니다. 하나님에게 참 좋게 할수록  그러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께 충성되지 안한 힘 구원에 힘쓰지 안한 그런  자는 되거나 말거나 집어던져 버리고 까짓거 뭐 죄 하나 지나 전부가  죄덩어리인데 뭐 까짓거 할 것이 뭐 있나 요걸 깨끗게 할수록 하나님께서 고게  대해서 심하게 밝힙니다. 털끝만치라도 거리낌이 있으면 고것을 기어코라도 고걸  뽑도록 하나님께서 만드십니다. 그걸 뽑도록 환경을 줘 가지고 형편을 줘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했습니다. 모든 실패를 줘 가지고 나중에 안되면 몸에 병을 줘  가지고 어쨌든지 죽기 전에 자기에게 뽑을 것을 다 뽑고 하나님 보실 때에 너는  이제 됐다 할 수 있는 요 사람이 만들어져 가지고 거리낀 것 하나도 없이  만들어져 가지고 세상을 떠나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만든다 그말이오.

그러기에 사랑하는 자에게는 얼마든지 징계한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기가 다른  것 다 믿음으로 잘했는데 고게 잘못된 요소 하나가 있는 고 사람이 다른 거는 다  잘했는데 욕심 하나를 뽑지를 못했다 그 사람이 다른 거는 다 잘하는데 속에 그  정이라 하는 정 인정 사정 정 말이오. 정 고것을 죽이지를 못하 고 정에게  피동되고 정적 인물이 돼 가지고 있다 고 무슨 무엇을 무슨 애정을 가졌든지  무슨 동정을 가졌든지 하는 고게 하나 있는데 정을 십자가에 못박아야 되는데  고게 하나 있다 그말이오. 있으면 고 정이 고게 가서 뽑혀서 없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자기가 정을 붙이는 고것을 하다 하다 안되면 고만 자기에게 어떤 징계를  줘 가지고 고 정을 사용할래야 사용할 수 없도록 딱 만들어버렸습니다.

자기가 자기에게 정이 있는 고걸 버리지 못하도록 미혹하는 고거 없애버리든지  왜 그런 것 다 해도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 그 하나 만드는 것이 보배기 때문에  왜 그거는 우주와 영계를 그에게 다 상속시켜 줄 그런 자이기 때문에 이래서  이걸 가리켜서 불로 금을 연단하는 것보다 더 연단해서 잡것을 다 태워버리고 참  옳고 깨끗한 참된 것만 있게 한다 하는 요렇게 했다 말이오.

내가 어떤 장로에게 가서 심방 가 가지고 그 둘이 갔습니다. 가 가지고  구역장하고 같이 가서 '장로님은 하나 뽑을게 있쓴데 고놈부터 일차적으로  뽑아야 되어지고 뽑기 전에는 구원이 안됩니다' 내가 말했어 그러니까 웃으며  뭐입니까? 고거는 자존심이라는 것인데 자존심 고걸 뽑아야 되지 자기가 아무리  주의 뜻대로 할려고 해서 가다가도 자존심이 걸려버리면 탁 집어치워버립니다.

고게 돌작밭에 뿌린 씨 돌 그놈이 났지마는 뿌리를 가로막아서 말라죽어버리는  자기 자존심 그것 때문에 안됩니다. 그걸 버리십시요. 자존심을 버려야 될 수  있는 고럴때 자존심 꺾어버리고 자존심을 죽여버리고 자존심을 불태워버렸으면  고런 현실에 가서 딱 현실에서 그때에 고게서 순종하면 자존심이 팍 꺾어질 게  될 것인데 고런 기회를 하나님이 만들어주면 가다가 자존심에 걸리면 야 내가  이것만큼은 죽었으면 죽었지 순종 못한다 하고 픽 달아나니 헛일이요. 이러니까  그분이 말하기를 네 참 목사님 저는 내가 이 자존심을 여게 만일 자존심에  걸리고 목숨이 끊어지고 요 두 가지가 있으면 내가 목숨을 끊는 걸 내가  취했으면 취했지 자존심을 내가 딱 꺾는 것은 취하지 안해. 아니 내가 죽었으면  죽었지 자존심은 이거 꺾을 수가 없습니다. 고렇게 고거 꺾어야 된다 말이오.

이래 놓으니까 뭐이 하나님이 만들어서 이거는 참 내게 모욕을 주는 것인데 이거  내게 모욕을 주는 아니꼬운 것인데 이거 모욕주는 것인데 이 모욕을 줘도 고때  가서 참고 견뎌야 될 것인데 모욕을 주는 것인데 참고 견뎌야 될 터인데 고런  환경을 주면 아이고 내게 모욕을 주는 것인데 고걸 내가 할 수가 있는 것이냐?  빼쭉 삐꿔 가지고 빽 돌아가 고게 저 망하는거라 고것 꺾어라 고거 꺾기 전에는  구원 안된다 내가 이랬어. 그분에게 지금도 어떤 일을 만일 자존심에 걸리는 말  한마디 하면 팩 튀어서 당장 뭐 장로는 무슨 장로 예수 안믿는 사람같이 되버릴  것인데 그게 우상이라 그말이오. 예수 믿는 사람은 그게 아닙니다.

이래서 성경에 말하기를 네게 있는 것을 다 버리지 아니하면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 했습니다. 하나님에게 거리끼는 요소 말이오. 그러니까 뭐라고 했어?  자기가 자원해서 옳은 일을 하는 그것과 하기 싫은데 억지로 옳은 일을 하는  그것과 하기야 싫지마는 어쩔수 없어 옳은 일 하는 그것과 자원해서 하고  싶어하는 그 의와 하기가 싫은데 이건 참 눌려서 꺾여서 어쩔수 없어서 하는 이  의와 그 두 의 가운데에 어느 것이 적극적이며 어느 것이 소극적이요. (만수)씨  아 고것이 적극적이라 (배종일)조사 자원해서 하는 것. 이러니까 다 틀렸다  그말이오. 자기가 원해서 하고 싶어서 하는 것 그거는 쉽소 예 하고 싶어하는  가운데에는 순전히 하나님에게 순종인지 고게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오십프로인지 구십프로인지 모른다 그말이오.

예루살렘에 별을 따라갈 때에 박사가 별따라 갈 때에는 그때는 그 별 따라 가는  줄 알았지 자기 마음에는 아 이래 가는 것 보니 예루살렘에 하나님 영광이 나을  터이니까 아마 예루살렘에 간다 자기 의견도 그렇고 별도 그리 인도하니까  안심하고 뚝뚝 갔다 말이오. 아 가다가는 별은 예루살렘을 척 지내서 지나가니까  이 박사가 이거 아마도 왕자가 났으면 예루살렘에 낳지 딴데 나지 안했을 터인데  별은 별대로 가고 저는 저대로 그 예루살렘으로 들어갔어. 이제까지 별 따라  왔는데 자기 따라 온 양이 많소 별 따라 온 양이 많소? 대답해봐. (배) 조사님  대답해봐. 자기 따라 온 것이 양 많지 자기 따라 온 것이 많지 않소.

그와 마찬가지로 자기가 하고 싶어서 이렇게 하는 데에는 거기는 자기가  들어있기 쉽습니다. 자기가 들어있지 안하고 참 영감으로만 된다면 좋지마는  자기가 들어있기 쉽다 이거요. 자기가 하기 싫은데 죽어도 하기 싫은데  하나님에게 눌리고 꺾여서 어쩔수 없어 합니다. 하나님에게 눌리고 꺾어서  하나님이 두려워서 안할래야 안할 수 없어서 한다면 고것은 거기에 그 순종의 뭐  섞인 것이 있습니까? 그 순종에 자기가 섞인 것이 있습니까? 섞인 것이 하나도  없습니까? 하나도 없지요. 하나도 없으니까.

그러기 때문에 주를 위해서 (주를 위해서) 자기가 사용하는 그것이 가치가  큽니까 주를 위해서 내가 사용하는 것이 가치가 큽니까 주를 위해서 싫지마는  억울하게 뺏기고 견디는 것이 가치가 큽니까? 어느 것이 가치가 큽니까? 예  아직까지 파이네. 뺏기고 견디기가 더 어렵습니다. 뺏기고 견디기가 더 어렵소  그게 적극성이라 하는 그걸 내가 여러 수십번이라 말했을 것입니다. 그 귀에 안  들어오니 그런거라. 자기가 주를 위해서 생명을 지금 바쳐서 이렇게 하는 것  자기가 원치 안하지마는 주님 때문에 생명을 빼앗기는 것 생명을 바치는, 바칠  수 있는 그런 일에 생명을 바쳐 일하는 그거는 재미도 있고 하기 쉽습니다.

억지로 자기 생명을 주를 위해서 빼앗겨지는 그거는 참 하기 싫고 억지로라도  하기 힘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더 적극성있는 일이라 말입니다.

해보면 알아요 해보면. 아 교회도 보면 제가 하고 싶은 것 제가 하고 싶은 거는  그거는 시키면 잘합니다, 잘해요. 하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걸 이래 시키면은  하고 싶은 건 시키면 잘 할때에 위에 지도하는 사람이 보고서 이 사람은 됐다  합니까? 아니요 하고 싶은 것은 잘 하는데 이거 하고 싶은 걸 잘 하니까 하기  싫은 것을 한번 좀 시켜보자 으례히 하기 쉽거든 하고 싶은 걸 시키니까 다  해버리는데 하기 싫은 요거 조그매 하기 싫은 것을 시켜보자 조그매 하기 싫은  것을 시키니까 그만 하는 것이 억지로 합니다. 요것은 제가 요것은 옳은 일은  옳은 일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데 저는 전연히 요거는 하기 싫은 일인데  요거 한번 시켜보자 하기 싫은 것이니까 '아 미안하지마는 그거는 못하겠습니다'  요걸 압니다. 알기 때문에 사람을 지도하고 가르치는 사람은 고걸 따라서 양념  삼아 대번에 그러면 죽을 터이니까 조금씩 조금씩 듣기 싫은 말도 대번에 많이  하면 안되니까 조 옳은 말은 옳은 말이지요 옳은 말이면 듣기 싫은 말도 조금매  해서 감당하면 고다음에 조그매 더 듣기 싫은 소리를 하고 나쁜 소리 하면 죄가  되지요. 마땅히 해야 될 옳은 말이요 옳은 말인데도 고 사람에게 듣기 싫은  소리를 조금 했다가 많이 했다 많이 했다가 이제는 자기에게는 전적 듣기 싫은  일이지마는 옳은 말이면 예 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이러기에 정과 욕을 십자가에 못박아라 감정도 못박았고 사정도 못박았습니다.

인정도 못박았고 동정도 못박았고 자기는 다 죽어 없어. 하나님의 뜻이면 죽든지  살든지 이대로 순종하는 이 사람이 되어진 것이 그게 온전한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순종을 이 면을 건설하려고 시키는 것도 있고 저 면을  건설하라고 시키는 것도 있고 이것을 지금 보지 못하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시키는 일 이것을 모르니까 이면을 모르나 이 모르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시키는  것도 있고 아 졸면 기쁨으로 살 줄 알아 안 졸고 이거 알아 들어야 어떤데나  기쁘고 즐겁게 살지 못알아 들으면 기쁘고 즐겁게 살지 못해요. 하나님께서 요거  건설해. 요거는 어떤 때에는 건설하기 위해서 나에게 시키는 것도 있고 또  어떨때는 알려주고 보여주기 위해 시키는 것도 있고 어떨때는 뽑기 위해 시키는  것도 있고 뭐 가지수가 많다 그말이오.

그러면 시키다니, 시킨다 말은 뭣 준다 말이오. 시키는 게 뭐입니까? 뭣 주는  것입니까? 소리 들리는 것입니까? 시키는 거 뭐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시키는  것입니까? 뭣이 시키는 것입니까? 어째 시킵니까? 이것 시키고 저것 시키는데  어째 시켜요? 저 저 예. 현실 주는 게 시키는거라. 확실히 그래 현실 주는 것이  시키는 것이지 그렇게 깨달으면 치질암 까짓거 대번 낫아 하나님이 요구하시면  뽑으면 됩니다. 어떤 거라도 그저 병은 죄값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요런 것을 뽑기 위해서 안되면 요리도 조리도 오만 것 다  합니다.

내가 통계를 맞추어 보니까 교만병이 제일 큰 병이요, 교만. 교만죄가 제일 큰  죄요. 암만 잘해도 그 사람에게 교만해 있으면 그 잘한 것 가지고 저 위해서  살고 저 이용해 살고 모두 다 멸시하고 천대하고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둬 두면  교만 가지고 어짤꼬 그 교만은 자기 위해서 한 것이기 때문에 범에게 날개 준 것  한 가지라.

사도바울이 자기 몸에 찌르는 가시가 있었는데 그 찌르는 가시가 무엇 때문에  있는 것이라. (김기수) 장로님 교만 때문에요. 그것도 사도바울도 교만 때문에  그게 있었어. 아이구 그런 사람이 뭐 있느냐? 나같은 사람이 내가 뭐 교만  아무것도 없는데 뭐 있겠느냐? 그러면 안돼. 안낫아. 교만 있기 때문에 고걸  찾아야 된다 그말이오. 무엇인가 요소가 있어 그렇지 하나님께서 요걸 주려고 요  건설하려고 요거 알려주려고 요거 보여주려고 요거 깨닫게 해 주려고 요거 뽑게  할려고 시키는데 고 시키는 게 뭐라요? 저 (유) 집사님 한번 대답해볼까요?  (유제하) 집사님 시키는 게 뭐입니까? 뭐이 시키는 것이지요? 저 (김) 선생 그래  예. 그 현실 주는 것. 현실 주는 것이 시키는 것이지. 요 현실을 주면 고게  순종해야 되지 않겠소 조 현실 주면 또 고런 순종해야 되지 않겠소. 현실을 주는  것이 우리에게 시키는 것입니다. 현실을 주는 것이 시키는 것인데 요 현실 줄  때에는 요대로 하라고 요 현실을 줬는데 고대로 안하면 순종 안하는 것이지.

하나님께서는 현실을 주시는 것이 시키시는 것이요. 우리는 주시는 고 현실에  합당하게 사는 것이 순종하는 것입니다.

요렇게 가르치고 배워도 모르면 그 사람은 그 귀를 들을 귀가 없는 사람입니다.

양심의 귀가 없는 사람이요. 이러니까 하나님이 사랑할수록 그에게는 털끝만한  것도 거리낀 것을 있게 안합니다. 이 세상 사람은 친근하면 친근할수록 흠과  점이 없다 하는 그런 그 악인 모양으로 하나님이 그런 줄 압니까? 하나님께  가까이 갈수록 하나님과 연발 먼 데 있으면서는 아무 일 없어도 아홉 발 먼데로  한발 가까이 가려고 하면은 마구 고칠 것 고쳐야지 안고치면 큰 일 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갈수록 개끗해져야 돼. 또 하나님께 가까이 갈수록 잘못을  범하면 형이 큽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에 인간이 볼때에 정죄하는 그 죄악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시면  동기 목적 그 결과가 어떤 결과를 이루느냐 사람이 이해 못할 것도 결과는 좋은  결과 목적도 동기도 좋을 수도 있어. 하나님은 속지 안해 하나님은 공평돼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요거는 언제든지 알고 있어야 돼. 건설은 건설으로만 건설된다. 또 아는 것도  순종으로만 알게 된다. 이러니까 치료하는 것도 순종으로만 치료된다. 엊저녁에  내가 보니까 주일학교 반사들이 철야를 하고 이러는데 내가 우리 죄를 하나  깨달았습니다. 이거 자꾸 우리가 그전에 철야도 많이 하고 산기도도 많이 하고  또 금식할 때도 있고 막 자꾸 열심히 이래 하니까 다른 사람들이 살이 뚱뚱하이  쪘는데 우리는 모두 그저 빼빼하이 그랬어. 이랬는데 내가 그 죄를 지었어.

빼빼했는데 그래 이제 모두 말하기를 그런 사람들은 왜 좀 번들번들하이  그러니까 다른 사람 보기에 윤기도 있고 좋은데 우리는 빼빼하이 이러니까 이거  보기 안됐다 아 그 사람은 만나니까 그 사람은 번들번들하이 환한데 우리는  까끌까끌하이 이래 놓으니까 이거 안됐더라.

이러니까 그거야 뭐 잠 많이 자고 좀 수월하고 잘 먹고 그러면 되어지는  것이니까 뭐 그래보지 그 내가 서울 갔다 오면 그만 권찰들이 번들번들합니다.

내가 없으니까 새벽기도 안나오고 그래 자서 번들번들하이 내가 오면  까끌까끌하이 그래 말라버렸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이 확실하니 좀 그래보자  이랬는데 이래 가지고 이거 뭐 철야도 안하고 금식도 안하고 또 일도 또 몸  아껴서 어짜고 이러니까 병은 더 든다 이거요.

이랬는데 내가 며칠전 말 들으니까 나한테 뭐하는 게 아니라 아 목사님도 좀  꽃마을에 갑시다. 가서 금식도 하시고 이럽시다. 너거 금식해 가지고 유익된 게  뭐이냐? 이러니까 아 모두 가서 금식기도하고 와 가지고는 몸이 훨씬 건강하고  좋아졌어요. 이런데 이거 뭐 기도 안하고 철야 안하고 금식 안해 가지고 모두  우리가 병드는 병인 모양이라. 철야하고 금식하고 하니까 좋아진답니다.

엊저녁에 보니까 주일학교 반사들이 뭐 금식 안하고 금식은 또 그전에 했고  엊저녁에 철야를 한다는데 남중간반 반사들 남반사는 철야하고 아 여반사는  철야하고 남반사는 또 철야 안하기로 했습니까 뒤에 합니까? (서) 목사 남반사는  아 주일날 저녁에만 어제가 주일날 저녁인가 여반사는 요새 보니까 그 철야하는  것 같은데 남반사들은 몸이 약하니까 안하는가 해야 됩니다. 남반에도  철야해야지 하면 같이 해야지 또 부장은 했습니까? 부장은 더 해야지 내가  늙었으니 어쩔 수 없지마는 젊은 사람이면 젊은 사람 다 함께 해야지 자기만  그라고 여러분들이 처음에 기도할 때에 기도 안되니까 눈을 딱 감고 요래 가지고  고요히 기도하면 가다 자버립니다. 그거 열어 조금 열어 놓으면 요 문 딱 잠가  놓으면 여반사는 요쪽에 있으니 고함질러 막 고함을 질러 막 두드려대 이러면서  기도하십시요.

처음에 기도할 때에 기도하면 그만 기도에 발동치다 보면 나중에 기도하고  나중에 보면 또 황소가 둘이 싸움하면 구덩이가 파지요. 나중에 싸움 잘하는  황소 두 마리 불싸움 시켜 놓으면 그만 막 땅이 이만하이 구덩이가 파졌어 아  중간에 막 자꾸 이래 뒤로 파재끼 싸워재끼니까 기도하면 나중에 막 그만  솔기둥을 붙잡고 하나님에게 막 매달리고 막 야단 지기고 하다 보면 흙구덩이가  패여버리고 이렇게 다 그 발동을 해 가지고 기도를 했지 그냥 이래 가지고 되는  게 아니라 하나도 없습니다.

엊저녁에 소리 더러 내고 그랬는데 그 해요. 그 (안효일) 저서 보면 기도할 때에  그래 하면서 그래 하다가 나중에는 그만 이제 기운도 기진해지고 심령이  깨버렸다 말이오. 심령이 깨지면 초롱초롱하기 그 마음으로 기도하는 그 기도가  자꾸 되어진다 말이오.

이래고 나가야되는 것이지 처음부터 가만히 기도하다 보면 자버리고 맙니다.

간절히 기도해요. 인제 그것이 아 입문에 그래 해야 된다 말이오. 그러니까 처음  기도는 저 산에나 사람 없는데 가 가지고 많이 고함을 지르고 그만 발동을 하고  이래 해서 해야 됩니다. 그리고 그 철야기도를 그전에는 하다 물론 기도하다  잤지요 잡니다 자지요. 그런데 그전에는 제가 여 부임하고 난 다음에는 삼년  동안은 그 어느 몇몇 사람이 남녀반에 몇몇 사람은 하루밤도 안자고 계속해서  철야했어.

또 그 다음에는 그저 계속해서 거의 다 산에 가서 밤마다 산에 기도하고 새벽에  내려와 새벽예배 보고 이랬는데 그때는 병이 하나도 걸렸는데 그때는 병이  안들었는데 마르기는 말라도 병은 안걸렸는데 요새는 마르진 안하고 살은 띵띵  쪘는데 암병이니 뭐 간병이니 자꾸 들어재낀다 그말이오.

이거 하나님 앞에 안바쳤으니까 충성이 없으니까 죄값으로 병들었다 그거 생각이  돼. 중간반 반사들 철야하는 것 잘합니다. 그 남반도 철야하십시오. 또 자유로  해 하기는 젊을때 뭐 철야한다고 철야하면서 자는 그 잠이 진짜 잠이라 그거는  참 잠이 오고 싶어 자는데 그외에는 개울 파는 것인데 그런다고 잠 안잡니까? 잠  잡니다. 그럴때는 고만 누우면 잠와 이래 놓으니까 누워서 잠이 안오니까 굼불  굼불 잠이 안와서 그때 우리는 철야할 때는 참 잠이 잘 와요. 그 소원이 같이  이야기합니다. 이야기하면 그만 잡니다. 별명이 있어. 아 조사님은 앉으면  잔다고 그 뭐 옆에 교인들이 뭐라고 뭐라고 싸도 그 소리는 궜전에도 안들온다  말이오. 그따위 소리 들어도 안들어보나 아예 속에 이말은 들어야 되겠다.

싶으면 잠이 깨지마는 쓸데없는 거는 그만 들리지 안하고 잠이 와버린다  말입니다. 앉아도 잠 오고 다른 이야기 해도 누가 앉아서 데리고 앉아서 이야기  한다고 아야기 암만 해. 저는 열심을 다해 가지고 아야기하는데 나는 쿨쿨  자면서 앉아서 코를 곯고 잡니다. 그때가 좋은 때라 이거요. 그때는 참 잘 잠만  자는거라 지금은 쓸데없는 잠 자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잠도 잘 자고  기도도 많이 하고 또 성경도 많이 보고 이렇게 해야 되겠다. 이거요.

안에 있는 사람이 나가 (백을순) 씨 안에 사람이 나갈라 하니까 아이 내가  걸렸으니까 그 사람 사정이 그러니까 내가 이거 얼른 일어서야 나가줘야 되겠다.

미안하게 생각해야 할 것인데 안에서나 가면서 뚫고 나갈라 하니까 상을  찡그리는데 고거 뽑아버려요. 고거 안뽑아버리면 구원 헛일이요. 아 얼른 아이구  이거 내가 일어나줘야 되겠다. 아이 이러면 되겠나 일어서 편리한대로 이렇게  해주면 좋은데 그래 못해줬으면 아이 이거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이래야 될  터인데 그거 나갈라 하는 사람 아이구 이거 비좁은데 뚫고 나갈라 한다 상을  찡그리고 이캅니다.

 이래요 이래. 그거 안뽑아버리면 구원 안된다 말이오. 그 요소가 없어야 돼요.

그 요소가 없어야 돼. 그래야 구원이 되지 그것 있어 구원이 안돼 이래도 노  안내고 저래도 주를 위한 노가 아니면 노가 나오지 안해 주를 위한 성질이  아니면 성질이 나오지 않습니다. 주를 위한 것이 아니면 분이 아니면 분이  나오지 안하고 주를 위한 것이 아니면 (주를 위한 것이 아니면) 감사가 나오지  안하고 이래야 됩니다. 순전히 하나님으로 피동돼야 되지 이 사람이 되어져야  돼요. 이러면 구원이 되지 이 사람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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