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31 12:05
믿음
1980. 7. 4. 금새
본문 : 요한복음 14장 1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하나님을 하나님에게 배운 대로 알고 하나님을 하나님에게 배워 아는 그대로 대우하라 또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그대로 하나님에게 배운 그대로 예수님을 알고 또 하나님에게 배워 예수님을 아는 그대로 예수님을 상관하라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목적은 이것입니다. 영원히 당신 혼자만 계셨는데 당신이 없는 가운데 당신과 같은 자 곧 당신으로 인해서만 있고, 당신만 바라보고, 당신에게만 얻고, 당신으로 인하여 움직이는 이런 자를 만드시려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이를 위해서 만드신 것 중에는 크게 나누어서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한 종류는 하나님과 예수님에게 대해서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그대로 알고, 또 하나님이 가르쳐 주셔서 아는 그대로 상대하고, 또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그대로 행동하는 이 종류가 하나 있고, 이 종류의 정반대의 종류가 하나 있도록 이렇게 하나님이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그대로의 것들도 있고,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그대로의 움직임들도 있고, 이와 정반대로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반대되어 있는 종류도 있고,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것의 반대되는 움직임도 있고 이 두 종류 두 움직임 이것을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두 종류가 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생겨지는 생겨졌습니다. 이렇게 이 두 가지로 존재케 하고 두 가지로 행동케 하고 그 다음에 셋째로는 이 두 가지로 말미암은 그 결말이 어찌되나 하는 그 결말이 이제 두 가지로 되어 있습니다. 그 결말은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대로 알고 가르치시는 대로 행동하는 그런 존재로 되어 있는 그것에게 영생이 있게 하시고 또 이와 정반대의 영원한 멸망이 있는 이 두 가지 결말이 있도록 하신 것이 무궁세계입니다. 크게 말하면 두 가지뿐입니다.
그래서 유황불 구렁텅이라고 하는 그 무궁세계 그 세계는 어떤 것들이 있느냐? 하나님이 가르치신 대로의 정반대로 아는 것들, 정반대로 행하는 것들, 정반대로 알고 정반대로 행하는 것들이 어떻게 그 결말을 멸망을 받고 있다 하는 그것이 빠짐없이 다 모여 가지고 있는 것이 유황불 구렁텅이입니다. 또 하늘나라는 어떤 것이 하늘나리인고 하니,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대로 알고 가르쳐 주신 그대로 행동하고 그로 인해서 영원한 생명과 평강을, 영원한 생명과 평강을 누리는 것들이 있는 것이 하늘나라입니다.
이 두 가지로 모든 존재 모든 움직임 모든 결말 이것으로 피조물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영계의 피조물이나 우주의 피조물이나 이것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가르치시는 대로 그대로 배워서 아는 것 하나님께 배워 아는 것,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대로 그대로 배워서 아는 것이 영생에 들어가는 요소 중에 하나인데 그러면 하나님이 가르치시면 이 세상에는 가르치는 것이 수 없이 많은데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것은 어떤게 가르치시는가?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것을 말해서 진리라 그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것은 진리가 참된 이치라. 그러면 참된 이치라면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그 진리가 무엇인가? 그것은 곧 두 가지이니 하나는 자연의 지식이라고 하는 자연 계시 자연의 지식, 자연의 지식 일반 지식 일반 지식이라야 됩니다. 일반 지식 특수 지식 이렇게 말하면 여러분들이 잘 구별을 하기 쉽겠습니다.
일반 지식과 특수 지식이 있습니다. 일반 지식은 어떤 것이 일반 지식인고 하니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하신 만물 또 하나님이 이렇게 저렇게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온갖 섭리 요것을 요렇게 재창조로 하고 요걸 또 둘이 합하게 했다가 셋이 합하게 했다가 나누게 했다가 또 요렇게 하는 그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그 섭리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아 하나 예를 든다면 사람들이 다 농사는 자기가 짓는 줄로 알고 제 힘으로 밥 만들어 먹는 줄, 쌀 만들어 먹는 줄 이렇게 알았는데 아무리 애를 써도 흉년이 되어서 쌀을 한 알도 얻지를 못합니다. 물에다 부어도 안 되고 여다 물도 없고 뭐 또 그러고 바짝 타서 안 됩니다.
그럴 때에 '봐라 인간 네가 쌀을 만드는 줄 알아도 하나님이 모든 조건을 맞추어 주는 거기에서 너 인간의 노력이라 하는 극히 작은 것이지 큰 것이 아니다.' 그렇게 알려 주는 것. '야 이것 참 사람 외에' 안 믿는 사람들도 '이 신이 도와야 된다' 이래 가지고 여름에 비가 안 오면 우제 지내러 간다고 저 비 오게 해 달라고 우제 지내는 걸 그들이 모르지만 인간 외에 어떤 분이 비를 주야 된다 해 가지고 우제 지내러 간다고 그렇게 갑니다.
또 이 바람이 지금 부니까 큰 풍재가 있으니까 이 바람한테 빌어야 되겠다 이래서 안 믿는 사람들 이월달 영동이라고 하는데 그거는 아 보름입니까? 이월 영동이지요. 영동이 언제요? 이월 영동 이월달에는 그 바람이 많이 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월 영동이라고 이 바람 신에게 한부래 부탁을 해놓고 잘 보이야 되겠다 해서 바람 신을 섬기는 그런 게 다 사람 외에 어떤 세력이 있다는 그것을 생각하고 하는 것인데, 그런 것이 사람들에게 '너 인간만이 아니고 인간 위에 무엇이 있다' 하는 것을 그 알리 주는 것 그런 것도 하나의 섭리입니다.
그러면 강한 나라가 약해지고 약한 나라가 강해지고, 못난 사람들이 다 잘나지고 잘난 사람들이 못난 자손이 나오고, 부자가 가난해지고 이렇게 자꾸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이런 것을 가리켜서 안 믿는 사람들은 '운명이라, 또 빙빙 도는 순환의 이치라.' 그들은 그러면서 뭣인가 인간만이 아니고 그 외에 무슨 이치가 있다 하는 그런 게 다 하나님이 하시는 섭리인데 그런 것으로서 사람들이 머리를 자꾸 열게 해서 깨닫게 해 줍니다. 또 그것을 양심을 쓰면 바로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자기가 과실나무를 하나 심어 가지고 알뜰히 기르고 이랬는데 그 바라기는 열매를 바래서 심었는데 가지만 무성하고 밭만 그늘로 덮어버리지 열매 하나도 없으니까 참다 참다가 그 농부가 과수원 주인이 부애가 나 가지고 그 도끼를 가 가지고 벨라고 그만 '저놈의 나무 하나도 열도 않고' 찍으니까 옆에 있는 자기 친구나 부인이나 가족이 와 가지고 '그래도 이렇츰 무성했으니까 오래 한번만 또 참아 보자.' 이래 가지고 그런 말이 시골에 가면 들립니다. 과실이 열지 아니하는 나무는 도끼로 감나무에 감이 안 열리거든 도끼로 반쯤 베 놓으면 감나무 감이 연다 그런 말들이 있어.
그래서 안 여는 나무는 그 가 가지고 감나무를 도끼로 팹니다. 이래서 일 년에 한번씩 보면 도끼로 쪼아야 됩니다. 뭐 사정없이 꽉 쪼고 거기다 이제 찰밥을 이래 좀 묻혀 놓고 가서 이래도 하고 이래 합니다.
그런 게 뭐이냐? 그것이 하나 자연 계시라 그 말이오. 아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섭리로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봐라 네가 땅도 네 땅 아니지, 종자도 네 종자 아니지, 비도 네 비 아니지, 공기도 네 공기 아니지 그런데도 네가 조그매 수고하고도 열매를 맺지 안 하니까 마음에 분해서 도끼로 벨라고 달라들지 안하느냐? 네가 어떻게 존재했으며 네가 네것 먹고 어떻게 사는데 네가 그렇게 네 마음대로 하면 되겠느냐?' 이러니까 조금 철학을 가진 사람들은 종교심을 가진 사람들은 사람 외에 이 신을 섬기야 되겠다 그래 가지고 모두 신을 섬깁니다. 알지 못하는 신이지만 인간의 모든 것을 주관하고 있는 신이 있으니까 신을 섬기자 하는 그런 마음이 생겨난 것이 인간의 종교심이 난 것이 인간 네게 또 인과보응이라는 이 도리를 알게 되는 것이, 선한 사람에게는 경사가 있고 악한 사람에게는 그 화가 있다 하는 이런 것도 아는 것이 그게 다 하나님이 섭리로 인해서 안 것입니다.
또 사람들이 죄를 지어서 철통 같이 숨겨 놨지만 그 살인죄가 저거 두 부부 살인한 것이지만 얼마가고 나니까 그 두 부부의 충돌될 때에 그 발견되어서 십 년 후에 십오 년 후에 살인한 그 살인죄가 발각되는 그런 것도 그거 다 하나님의 섭리로 인해서 죄 지은 것은 꼭 들춘다 드러난다 그게 다 하나님의 섭리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 또 인간의 마음이 그 변동되는 것, 인간의 마음이 요렇게 변해지고 조렇게 변해지고 또 인간의 마음이 요렇게 조렇게 해서 그 인간의 마음 다른 사람의 마음을 미운 걸 보아서 자기에게 미운 게 있다 그러면 이 절대자인 어떤 조물주가 있다고 하면 내가 얼마나 믿게 보였겠느냐 사람들에게 얼마나 밉게 보였겠느냐 그 사람들의 행동을 인해서 사람들이 깨닫게 되는 것이 많습니다. 그것이 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특별히 알려 주시는 것은 어떻게 특별히 알려 주신 것인고 하니 신구약 성경 말씀을 가지고 우리에게 알려 주시고, 어떨 때는 또 하나님께서 실지에 어떤 그 역사를 일으켜 가지고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아 구약 성경에 보면 이런 역사 있고 저런 역사 있는 것을 성경에 기록해서 우리에게 줬지요. 그것은 나면서 앉은뱅이가 살아난 그런 것도 하나님이 그런 형식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 것인데 그 형식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 주신 그 형식으로 알려 주신 그것을 가리켜서 형식 계시라 이럽니다.
그 형식으로 알려 주신 그것을 재차 문서로 기록해 가지고 또 우리에게 알려 준 것 있습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문서 계시라 그렇게 말합니다. 형식 계시가 문서 계시로 기록돼 가지고 우리에게 나타난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형식 계시, 문서 계시 이것이 특별 계시요. 그 안에 특별 계시 속에 또 있는 것은 성신의 감화 감동으로 알려 준 이것이 영감 계시입니다. 이 합해서 형식으로 제일 처음에는 알려 줬고, 에덴동산에 아담 하와가 선악과 먹은 그런 것이 성경에 기록돼 있는데 그것이 다 그때는 그런 형식을 가지고 알린 것이 재차 문서로 기록돼 가지고 우리에게 왔습니다.
그러면 특별 계시 속에는 특별히 알려 주시는 특별히 가르쳐 주시는 이 특별 방편으로 가르쳐 주신 것은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형식, 하나는 문서 신구약 성경 문서, 하나는 성신의 감화 감동의 영감 이 세 가지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또 하나님의 창조 모든 창조하신 만물 또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섭리 인간들의 마음이 이렇게 저렇게 자꾸 변동되고 또 마음이 모양이 여러 수천 수만도 넘습니다. 그런 것이 다 합해서 보통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꼭같이 가르쳐 줬소. 가르쳐 줬는데 어떤 자는 여기에 대해서 반대하고, 어떤 자는 여기에 대해서 순응하고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이 있어서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것의 정반대로 자기는 생각하고 또 가르쳐 주시는 대로의 정반대로 행동하고, 또 어떤 자는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그대로 알고 그대로 행동하고 그러면 이 역사가 싸이 나오니까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이것은 변함이 없이 그대로 있고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여기에 반대하는 그 주장과, 지식과, 사상과, 움직임들이 역사가 지나가니까 하나 있으면 더 많아지고, 십 년 있으면 더 많아지고, 천 년 있으면 더 많아지고 이렇게 자꾸 많아진 그것을 가리켜서 세상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세상, 그래 세상은 요한 1서 5장에 보면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있는 것이 세상이라 죄 안에 있는 것이 세상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지금은 이 두 가지가 비등비등하게 지금 이렇게 겨누고 있습니다. 이래서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이것이 반대되는 것을 가리켜서 계시록에는 그 '육백 육십 육이라 육백 육 육이라' "그것은 짐승의 수요 사람의 수니 육백 육십 육이라" 짐승의 수가 말은 세상 수라 말이오. 세상에 하나, 둘 세상에 하나, 둘, 열, 백, 천, 만 있는 것 세상에 있는 것들의 그 숫자 사람의 수라. 한 사람이 말하고, 두 사람이 말하고, 세 사람이 말하고 한 사람이 하나님 반발하고, 두 사람이 하나님 반발하고 반발하는 그런 것들, 그런 것들이 그 모인 것들이라 그것을 총해서 합계를 해서 말하면 육백 육십 육이라. 육백 육십 육이라.
그러면 육백 육십 육 공 하나 더 치면 육천 육백 육십 육 하나 공 치면 육만 육천 육백 육십 육 암만 해 봐야 육이지 칠 수가 아니라 말이오. 하나님은 이제 그 위에 있는 그 칠수라. 그러면 하나님은 칠 열 말하면 칠십주 칠주 이레 칠주 또 칠십일 칠 년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칠수를 성경에 나타내서 가르쳤습니다.
이러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수를 하나 적지 않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아주 높다 그말이오. 높지만 하나님의 수에는 반대입니다. 이래서 이 세상에는 두 가지 높지만 하나님의 수에는 반대입니다. 이래서 이 세상에는 두 가지 가르침이 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그 말은 하나님을 배워서 알고 배워서 안 대로 내가 행해라. 그러니까 배우는 것이 누구 따라 배웠는고 하나님이 말하는 대로 그대로 자기가 따라가서 알았다 말이오. 그대로 순종해서 그 아는 것이 하나님에게 순종해서 알았다 말이오.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대로 알았으니까 하나님에게 하나님을 따라 안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이거는 종이라' 이러니까 자 종이라 할 때에 '그거는 감이라, 호박이라, 이게 종이라, 호박이다.' 하나 있다가 '아, 종입니까? 네, 내가 종으로 알겠습니다.' 이거는 종이다 하나는 호박이다 이러는데 호박이라 하는 그 사람은 이 종이라고 가르치는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입니까? 거역하는 것입니까? 거역이지요. 종이라고 가르칠 때에 '예, 종입니까 종으로 알겠습니다.' 누가 말하니까? 그것 뭐이고? 그게 종이라. 그 사람은 그 가르침에 따랐습니까, 안 따랐습니까? 따랐지요. 내나 그것이라 그말이오.
그러면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그대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 고것이 믿음이요.
하나님이 하나님에 대해서 가르치시는 그대로 알고 그대로 하나님을 대우하고, 하나님을 상대하고, 하나님을 인식하고, 그 하나님으로 여기고, 하나님을 상대하고, 하나님을 대우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제일 크신 분으로 인정하고 이러는 것이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그것이 또 행동의 믿음이라.
그러면 지식의 믿음, 행동의 믿음 이 두 가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과 내게 대해서 이렇게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대로 알고 가르치시는 그대로 행동하라 하는 그 말입니다. "하나님 믿고 나를 믿으라" 그러면 뭐이냐? 모든 너희들에게 불행이 다 물러간다. 그러면 물러갈 수밖에 없지요.
우리는 이 지식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여러분들 지금 이북과 이남에서 지금 시비하고 늘 싸우고 있지 않소. 싸우고 이는 거 이거 싸우는데 무엇이 들어 그렇게 싸우게 합니까? 뭐 그 사람들 말 들어 보니까 탱크도 많이 만들었고, 총도 많이 만들어 놨고, 비행기도 많이 만들어 놨고, 배도 많이 만들어 놨고, 훈련받은 사람들도 많이 훈련시켜 놨고 이래 해 놨는데 세계가 말하기를 우리 남한보다는 그 모든 것을 몇 배 강하다 그렇게 다 판정을 합니다.
그런데 그러면 그것이 이렇게 남한하고 늘 계속해서 지금 같은 민족이지만 싸우고 이래 가지고 있는데 그 싸우는 것이 무엇이 들어 싸웁니까? 무기가 들어 싸웁니까? 사람이 들어 싸웁니까, 지식이 들어 싸웁니까, 뭐이 들어 싸우지요? 뭐이 들어 싸웁니까? 자 무기가 들어 싸운다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사람들이 들어서 싸운다는 사람 손 들어 봅시다. 지식이 들어서 싸운다는 사람 손 들어 봅시다. 네 지식이 들어 싸웁니다. 지식이 들어서 싸워요.
이러기 때문에 무섭습니다. 세계에 원자탄이니 수소탄이니 하지 하지만 그거 무서운 것 아닙니다. 그보다는 지식이 무섭습니다. 지식이 무섭소. 지식이 무서운데 그 지식을 사람이 가졌을 때에 그 지식을 뭐라고 말하느냐 하면 사람이 가졌을 때에는 사상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사상이라, 생각 사자, 생각 상자 사상이라니 사상이라는 것은 그 사람이 그 어떤 지식을 그 사람이 가지고 그 지식대로의 사람이 됐을 때에 그것을 가리켜서 그 사람의 사상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기에 '그 사람의 사상이 참 깨끗하다, 사상이 아주 어둡다 더럽다' 이러는데 하나님 앞에 배워서 하나님의 지식대로의 사람이 되어 있으면 그 사람은 하나님대로의 사상을 가진 사람이니 그 사람을 가리켜서 신앙 사상을 가진 사람이다. 그 사람의 사상은 신앙이라 하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이 사상이 틀리면 고만 절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생각하기를 이 사상에 대해서 중요성을 느끼지 않습니다. 이 지식에 대해서 중요성을 느끼지 안합니다. 그게 뭐이냐? 신조와 교리라는 것, 신조와 교리라는데 대해서 중요성을 느끼지 않는 것, 신조와 교리에 대해서 한 신조가, 신조라 말은 어떤 네가 믿기를 어떻게 어떻게 믿느냐 하는 것이 신조입니다. 교리라 말은 성경은 어떻게 깨닫느냐 그말입니다. 내나 교리대로 신조하는 것입니다. 교리대로 신조하는 것, 그러면 신조가 먼저 아니고 교리가 먼저입니다. 아 교리대로 그 사람은 신조하는 것이요, 신앙하는 것이요.
그러면 어떻게 신앙하느냐? 그 신앙하는 그런 모든 조목들을 말하는 게 신조입니다. 그래서 공산주의를 가리켜서 성경에 말하기를 일곱 머리 중에서 나온 여덟째 머리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일곱 머리 중에서 나온 여덟째 머리라.
일곱 머리는 뭘 가르쳤느냐? 이것은 타락한 그 이후 오늘까지의 모든 인간들의 그 사상을 가리켜서 그 일곱 머리라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일곱 사상, 일곱 사상이면 세상을 주관하고 이는 일곱 사상의 정치라 그말입니다.
그러기에 공산주의 저도 하나의 머리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면 일곱 사상 그런데 이제까지 역사에 있는 모든 정치를 통틀어서 모든 사상을 통틀어서 일곱 머리라 이랬는데 숫자가 일곱이라 그런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정한 숫자를 가리켜서 일곱이라 이러는데, 인간이 정한 숫자를 십이라 십으로 만수 하나, 둘, 셋, 넷, 다섯, 열, 또 열하나, 열둘 그렇게 또 그러면 열이 됐으면 또 백, 또 백하나 그 십으로 만수를 하고 하나님을 일곱으로 만수를 했기 때문에 그 칠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하신 것을 숫자로 할 때에 전부를 총칭할 때에는 칠이라 말하고 인간이 그 하는 것을 총칭할 때에는 열이라 그렇게 상징해서 성경에 말씀합니다.
그러면 일곱 머리라는 것은 이제 까지에 땅 위에 있는 모든 전 사상에서 여덟째 왕이 나왔는데 그 이름이 멸망이라 그래 공산주의를 여덟째 나온 이름 멸망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뭐이냐? 공산주의라는 것은 껍데기는 보면 재산을 같이 하자 하는 그 공산주의, 공산주의가 나중에 이상적으로 돼 나가면 그게 사회주의가 됩니다. 공산주의의 이상적인 사회주의라 이렇게 말하지만 그 공산주의의 이상적인 사회주의라 이러는데 그게 뭐이냐? 보이는 것을 위주로 하는 것이 공산주의입니다. 보이는 것을 위주로 하는 것, 들린 것, 보이는 것, 나타난 것을 위주로 하고 보이지 아니하는 것을 보이는 것보다 무시하는 것이 그것이 내나 유물주의요 유물주의. 공산주의는 과학주의입니다. 과학주의 그것도 내나 공산주의입니다.
공산주의 유물주의의 반대는 어떤 것이냐? 그것은 그 유신주의, 그 여 지금 유신체재라 하는 그것말고 오직 한 분 유일하신 그 하나님 유일하신 그 대주재 그분을 찾아서 그분 위주로 하는 것이 그것이 유물주의의 정반대입니다.
그러기에 그것을 가리켜서 종교라 철학이라. 그러면 철학이나 종교나 그것은 사촌간입니다. 그 같은 종류의 것들입니다.
그러기에 여덟째 왕에서 나왔다 그 말은 보이지 않는 보이는 것보다 보이는 것을 나타내신 보이는 것보다 큰 그 어떤 존재 어떤 신이 있다 그것을 부인합니다.
과학은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 과학입니다. 과학은 신의 존재를 부인하고 눈에 보이는 이 과학을 신보다도 위주로 그러기 때문에 과학자에게는 미신이 없습니다. 과학자에게는 미신이 없고 과학자에게는 우상이 없습니다.
유물주의자도 그러합니다.
그러면 미신 또 그 우상 모든 그 종교 철학 이런 것들은 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그것을 크다고 여기고 그것을 더듬어 찾으려고 애를 쓰는 것들이 다 그런 것들입니다. 거기에 속한 것들입니다. 또 과학 또 공산주의 이런 것은 다 이것이 보이지 않는 것보다 보이는 것을 위주로 해서 한 것이기 때문에 여덟째 왕 공산주의라 하는 것은 이제까지에 사람들이 군왕주의니, 군주주의니, 뭐 민주주의니, 제국주의니, 뭐니 무정국이니 하는 그런 전부 그런 것이 다 뭐이냐 하면 보이는 것 위주입니다.
그러면 그런 그 사상이 마지막으로 똘똘 뭉쳐 가지고 하나의 그 뚜렷한 그 세력으로 자체가 나온 게 있으니 그게 뭐 여덟째 왕이라. 그 공산주의를 여덟째 왕으로서 요한계시록에 표현했습니다. 공산주의는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는 것보다 더 크게 여기는 것이 그것이 공산주의요 사회주의는 어떤 것이 사회주의냐? 이 모든 것을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존재 이 신의 존재보다도 인간이 크다 인간이 제일이다. 인간 위주로 생각하는 그것이 사회주의입니다.
사회주의, 사람을 제일로 사람을 지상으로 여기는 것이 사회주의요, 또 보이는 물질 이것을 위주로 하는 것이 그것이 공산주의다.
그러면 공산주의는 사람의 그 마음보다도 사람의 몸을 귀하게 여깁니다. 아 또 정치주의는 어떤 것이 정치주의냐? 정치주의는 물질보다 사람보다 이렇게 이렇게 저렇게 합하고 나뉘고 하는 이 조직 움직임 이 움직임을 제일 움직임이 제일 중요하다 움직임을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이것이 정치주의입니다.
또 도덕주의는 어떤 것이 도덕주의냐? 도덕주의는 이것은 사람과 사람이 서로 사는 데에 사는 데에 거기에서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도록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도록 하는 그게 사람이지 그게 제일이지 해치는 그건 소용 없다.
사람들이 모든 사람들이 남에게 유익을 끼치는 그만 덕 보이는 그러면 쉽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는 그게 제일이다. 인간이 남에게 유익 끼치지 못하면 무슨 소용 있느냐, 남에게 유익 끼치는 게 제일이다. 이렇게 유익 끼치는 것을 위주로 하는 그것이 이제 도덕주의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뭐이냐? 신앙주의입니다. 신앙주의라 말은 불교도 모든 신앙 있지만 기독교는 신앙주의라 말은 하나님을 그 제일로 삼아서 하나님을 제일로 삼아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에게만 복종하고,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그대로 알고,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그대로 행하니까 하나님이 가르치신 대로 아니 하나님이 영원 자존자시요,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그대로 하나님을 배우고 보니까 하나님은 완전자시요, 영원 불변자시요, 단일성의 하나님이시요, 하나님이 가르치신 대로 배우고 보니까 하나님이 없는 가운데에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요, 하나님이 가르치신 대로 하나님을 알고 보니까 하나님은 주권자시요, 모든 것의 주인공이시요. 하나님은 지극히 작은 거나, 큰 거나 혼자 당신이 섭리하신 분이라. 이렇게 하나님이 당신이 이렇다고 가르쳐 준 것입니다.
그러기에 신학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당신이 어떤 분인가 하는 것을 가르쳐 주신 당신이 가르쳐 주신 그 가르쳐 주신대로의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냐 하는 것을 공부하는 것이 신학인데, 요새 신학은 딴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제가 오늘 세 시에 조금 못 되어서 깨 가지고 세수를 하고 기도를 하는데 하는 가운데서 내가 생각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지금 세계가 아 교회로서는 이 신본을 반대하는 인본 하나님의 이 계시를 반대하는 인간의 모든 자율 이것이 지금 마지막으로 이제 있는 수입을 발칵 봐 가지고 예수님이 재림할 터인데 이것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느껴서 내 마음이 많이 조렸습니다. 조려서 이 미국에 가 있는 분들이 학위를 받아야 되느냐 하는 것이 내게는 이제 하나의 생각하는 과제가 됐습니다.
그분들이 학위 받으려고 하면 점점 사람들이 안 된 것을 자꾸 더 인식해야 되겠고 가져야 되겠고 이래서 성경주의라는 이것이 희박해지지 않겠나, 내가 그분들을 공연히 희생시키는 것이 아닌가 이래서 한번 좀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대단히 주님의 재림이 급박한 때가 됐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새 이 가르치는 것이 주님의 재림에 급박한 그 준비요 또 앞으로 우리가 닥칠 이 환난의 준비입니다.
그래서 우리 현실이라는 것은 어떤 것이 현실이냐? 믿음을 만드는 현실로 우리가 전력을 기울이야 됩니다. 믿음을 만드는 현실, 믿음을 만들다니 믿음은 하나님에게 순종으로 아는 것, 순종으로 행하는 것 고 두 가지가 합해서 믿음입니다. 순종을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대로 그대로 아는 것, 또 하나님이 가르치신 그대로 행동하는 것이 그것이 믿음입니다.
우리 현실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치신 대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대해서도 가르쳤고, 사건에 대해서도 가르쳤고, 물건에 대해서도 가르쳤고, 인생의 가치에 대해서 가르쳤고, 어떻게 살아야 되는 것도 가르쳤고, 죽음에 대해서도 가르쳤고, 산 부활에 대해서도 가르쳤고, 심판에 대해서도 가르쳤고, 무궁세계도 가르쳤고, 영생에 대해서도 가르쳤고, 영원한 멸망에 대해서도 가르쳤고, 하나님에게 대해서도 가르쳤고, 인간의 심리에 대해서도 가르쳤고 빠진 게 없이 다 가르쳤어.
그러면 이대로 배워서 내가 이 현실에 이대로 아는 이 지식으로 이 사상으로 이 지식대로 비판하고, 이 지식대로 평가하고, 이 지식대로 욕망하고, 이 지식대로 경영하고, 이 지식대로 방편을 써 이 지식대로 행동하려고 하는데 여기에 반대 육백육십육이 막 강하게 몰아 들어와 육백육십육이 강해 몰아 들어와 가지고 자꾸 우리를 부인케 합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성령으로 감동시켜서 하나님이 그에게 영감으로 은혜주지 않는 자로서는 인간으로서는 이 육백육십육에 넘어가지 안할 자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생명책에 지금 이후로 생명책에 독명되지 아니한 자로서는 이 짐승의 수와 이 사람의 수에 표를 받지 아니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안되는데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게 하려고 여러분들에게 다른 사람이 듣지 안하는 이 말씀을 듣게 되고 또 듣게 되는 그것이 복이요. 이 두 가지가 있는 걸 알게 되는 것이 복이요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 주셔서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이대로 지식하고 이대로 살기를 원하는 이 사람이 큰 복을 받았소 영감을 받은 사람요. 이렇게 살려고 애를 쓰는 이것은 벌써 하나님이 와서 착공해 가지고 이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현실에서는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대로 내가 지식하나 하나님 외에 이 악령이 가르치는 대로 지식하나 이 두 가지가 서로 싸웁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점을 우리가 노력해야 됩니다.
앞으로 좀 더 계속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래 가지고 아는 것 아니요.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이 말씀을 자꾸 외우고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 현실 자기에게 어떤 근심되는 큰 근심되는 일 있으면 근심되는 그것이 있으면 그거 내나 세상이 주는 건데 그게 있으면 그만 하나님에게 배운 것이 그만 흔들립니다. 요런 어려움에서 흔들리나 안 흔들리나 어느 거냐? 세상이 주는 최고의 어떤 역사에게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 흔들리지 않는 지식 말이오. 흔들리지 않는 지식 흔들리지, 않는 행동 이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우주와 영계를 상속시킵니다.
우주와 영계를 그 사람에게 주요. 그러기 때문에 이 우주나 영계는 누구의 것이 되느냐 믿는 사람의 것이 됩니다. 이러니까 어쩌든지 이 세상에서 요것 성공해 가지고 가면 참 성공자요. 그런고로 요것을 성공해 가도록 우리는 노력해야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